통합검색
주택&인테리어 검색결과
-
-
채소 키우는 시인의 작은 문학관, 강화 목조주택
- 상상의 세계에서 글을 퍼 올리는 시인의 마음에는 늘 초록의 전원이 펼쳐져 있지만 그것을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아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전원에서 텃밭 가꾸며 시 쓰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던 채련 시인의 꿈이 이뤄지는 날 그녀는 처음으로 손수 키운 채소를 한 아름 안아보는 기쁨도 맛보았다. 글, 사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부 건축정보위치 인천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건축형태 복층 경량 목조주택대지면적 825.0㎡(250.0평)건축면적 207.9㎡(63.0평)외벽재 대리석(C-Black), 스터코 플렉스지붕재 징크내벽재 실크벽지, 시더 무절 루버, 게르마늄, 햄록(몰딩)바닥재 강화마루창호재 시스템창호난방형태 기름보일러식수공급 상수도설계 및 시공 혜림하우스 '꿈에 그리던 초원 마을이/ 문수산 능선 아래/ 수채화로 펼쳐 있었네 … (중략) … 이슬 머금은 푸성귀 따서/ 오물조물 소반 짓고/ 산새 들새 소리 모아/ 도원경에 사랑 짓는/ 그 여자의 집// 범속한 세파 등지고/ 그 여자만의/ 행복 주소를 가지고 있었네'(채련의 시 '그 여자의 집'가운데) 시인 채련(필명) 씨는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마음 한 자리는 언제나 전원에 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한적한 시골에 집 짓고 텃밭을 가꾸며 글 쓰는 시인으로 살고 싶구나"했다. 전원생활은 그녀의 꿈이었다. "전원생활이 노후에나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작은 문학관을 겸하는 전원주택을 짓고 싶다는 바람이 하나 더 생기면서 남편에게 동의를 구해 집을 올리게 됐어요." 사실 지극히 도시생활을 좋아하는 그녀의 남편과 두 딸은 집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집이 완공된 다음에도 그다지 반색은 없었다. 행복하고 설레었던 건 오직 그녀였다. 건축과정에서는 전원생활에 큰 관심이 없었던 '도시남자' 남편과 의견이 충돌해 작은 말다툼도 있었다. 가령, 공기 좋은 곳에서 손님이 잠깐 머물다 가도록 손님방을 드리자는 그녀와 "글쎄"하던 남편… 결국 서로 조금씩 양보해 원룸 형태의 손님방을 드리되 규모를 조그맣게 하는 데 합의를 보았다. 그녀는 지금도 손님방 규모를 더 키우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러나 겉으론 표현하지 않는다. 전원주택을 지은 것만으로도 남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완공이 거의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쯤, "시인인 집사람에게 선물하는 집이니 각별히 안전에 신경을 써 달라"고 했다는 남편의 말을 시공사 혜림하우스 대표로부터 전해 듣고 가슴 뭉클했던 그녀. 평소 다정한 말을 아끼는 남편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 감동은 더 크게 다가왔다. 손님을 치르기에 부족함 없는 넉넉한 거실. 조명 장식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식당과 거실을 일자형으로 개방감 넘치게 배치했다. 안방. 수납공간이 넉넉한 아일랜드 카운터를 드린 주방.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식당과 거실에 모인 손님과 대화를 나누도록 배치했다. 1층 채련 시인의 서재. 문만 열면 바로 덱이고 텃밭이다. 6게스트룸. 침실과 욕실, 주방을 갖춘 작은 방으로 채련 시인은 더 넓게 만들지 못해 아쉽다. 별도의 입구를 만들어 마음 편하게 사용하도록 했다. 1층 평면도 시문학 행사와 초보 농사꾼을 배려한 공간한 출판사에서 감성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이후로 감성시인으로 통하는 채련 씨는 2000년《한맥문학》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김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사랑은 외로움을 수반한다》(2004),《 저들도 그리우면 운다》(2006) 등 5권의 시집과 1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또한 그녀는14만 4000명의 회원들이 소속한 다음카페 '시인의 파라다이스'카페지기로 활동하며 《파라문예》를 발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강화 주택을 단순히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서둘러 짓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을 사랑하고 시를 쓰는 회원들과 모임을 진행하고 시화전 등 문학행사를 여는 문학관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친지, 지인들과 바비큐 파티를 열며 담소를 즐기는 평화로운 시간을 갖는 것. 그런 바람을 혜림하우스 측에 전달하니 덱 면적을 넓게 하자고 제안해왔다. 채련 씨는 처음에는 '너무 넓은 거 아닌가'하고 느꼈단다. 그런데 집들이 파티를 해 보니 널찍한 덱이 쓸모 있음을 알게 됐다. 선견지명이 있는 시공사 의견을 따르길 잘했다고. 207.9㎡(63.0평) 규모의 건물에 비하면 밸런스를 깨트릴 정도의 덱 규모는 아니다. 좁은 부지에 덱을 넓게 드렸다면 갑갑하거나 위화감이 들 법도 하겠지만 건물을 앉히고도 180평가량의 여유가 있으며 집 정면으로는 밭과 도로로 시야가 트여 덱은 야외 활동에 편리함을 더 해줄 뿐이다. 2층 아이 방. 아이들은 도시 아파트가 더 좋다며 잘 따라오지 않는다. 2층 복도. 곳곳에 가족과 친구들 사진 액자를 걸어 집을 아늑하게 꾸몄다. 2층 평면도 경사 방향과 각도가 서로 다른 징크 지붕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건물은 배경의 나지막한 산세를 따라 편안하게 앉혀졌다. 이곳을 주로 사용하는 시인을 배려한 흔적은 곳곳에 보인다. 날씨와 작물에 관심이 지대한 초보 농사꾼을 위해 거실과 서재 전면은 덱으로 바로 이동하도록 분합문을 설치하고 거실 후면에 배치한 주방/식당에서도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도록 공간 구성을 했다. 덱에는 일하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파라솔과 테이블이 넉넉하게 놓였다. 현관 바로 맞은편에 화장실을 둔 것도 마당일 하는 사람을 배려한 공간 배치다. 실내에서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거실과, 거실과 시원스럽게 오픈된 주방/식당 배치도 다양한 모임과 손님을 여유롭게 치르도록 배려한 것이다. 거실 한쪽 벽에는 유해산소 제거, 면역기능 증진, 항암 작용, 관절염 완화 등 인체에 유익함을 주는 흰색 계통의 게르마늄을 전면 시공해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함과 편안함을 얻는다. 게르마늄에 적정 수준의 습도를 유지하도록 놓아 둔 앙증맞은 분수에서 나는 물소리가 자칫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던한 공간에 청량감과 편안함을 준다. 널찍한 덱에는 간간이 나무를 심어 자연 그늘을 만들고 심미성을 더했다. 목련꽃 피는 4월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으며 시낭송회를 열기에 충분하다. 게스트룸 앞쪽 테이블을 놓았다. 단열을 고려해 창을 작게 낸 건물 배면. 나지막한 산세와 마을에 어울리게 건물을 높이 올리지 않았다. 문학관 만드는 것과 더불어 손수 텃밭을 가꿔 보고 싶었던 채련 씨는 오죽하면 완공을 기다리지 못하고 한참 집이 올라가는 공사현장 옆에 텃밭을 일궈 농사를 시작했다. 고향이 농촌이라도 호미 한 번 잡아보지 않은 그녀는 '도시남자'남편의 어설픈 삽질과 걸레질 제대로 못하는 두 딸의 응원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밭을 일궜다. 네 식구가 손바닥만한 밭을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답답하게 보던 공사현장 인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밭갈이를 도와준 게 큰 보탬이 됐다고. "꽃이 피었나 싶더니 열매가 맺히고 며칠 만에 가 보면 금세 자라 있는 걸 볼 때, 얼마나 신기하고 기특한지… 여린 상추랑 쑥갓, 아욱, 시금치, 오이, 고추… 고추는 지난여름 비가 많이 와 탄저병에 걸려 다 못쓰게 됐지 뭐예요." 지난겨울 김장도 처음으로 손수 심은 45포기의 배추로 담갔다. 입주 전에는 김포신도시 아파트에서 20분 거리로 멀지 않아 틈만 나면 이곳으로 냉큼 달려왔다. 집 올라가는 것보다도 텃밭이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단다. '싹이 얼마쯤 올라왔을까, 물이 없어 말라죽지는 않을까.' 값으로 따지자면 그 오가는 자동차 기름 값만도 수확한 채소 값보다 더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텃밭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처음 맛보는 기쁨을 어디 돈으로 잴 수 있을까.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 주택&인테리어
- 전원&단독주택
-
채소 키우는 시인의 작은 문학관, 강화 목조주택
-
-
커튼월에 자연을 담은 화성 62평 2층 스틸하우스
- 따사로운 봄볕 아래 탱글탱글 물오른 붕어를 낚는 강태공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화성시 매송면 송라리 송라저수지 상류 우측에 자리한 전원주택. 봄꽃으로 둘러 쌓인 이곳에도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 정원을 가꾸느라 바삐 움직이는 이가 있다. 안양시 만안구에서 전기, 소방, 조경사업을 하는 동신전업 김동만 씨(62세)다. 4월 초, 대지 300평에 연면적 62평 2층 스틸하우스를 짓고 이주했다.건축주는 조경사업을 위한 농장을 조성하느라 80년대 후반부터 이곳에 1만여 평의 땅을 매입했다. 그 중 300평 대지에 2003년 4월부터 집을 짓기 시작한 지 꼬박 1년 만에야 입주한 것이다. 그린벨트지역이라 갖가지 규제에 발목이 잡혀 그동안 맘 고생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건축일은 불과 3개월 남짓했는데 각종 서류더미에 치여 1년을 질질 끌었으니……. 일례로 입구에 십여 년 넘게 있던 기둥 세 개를 헐고 다시 세웠는데 관에서 가운데 것만 남기고 양쪽 기둥을 헐라고 하는 겁니다. 이제야 겨우 한시름을 놓고 맘 편하게 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그간 저나 시공사나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 집이 앉혀진 자리엔 약 30여 년 이상 된 한옥 1채(약 30평)와 2년 된 20평 정도의 슬래브집이 있었다. 건축주에게는 딸이 5명 있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딸만 빼고는 출가해 모두 근처에 살고 있다. 슬래브집은 주말주택 겸 농장일을 하려고 지은 것이다. 그런데 외손주들과 어울려 주말을 보내기엔 협소할뿐더러 불편하기까지 하여 부인조차 찾지 않았다. 당시 4층 사옥 맨 위층을 주택으로 사용하던 터라 건축주는 이참에 한옥과 새로 지은 슬래브집을 허물고 가족들을 위한 새 보금자리를 짓기로 맘을 먹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 소개로 신영건축사사무소 최길찬 소장을 만나 스틸하우스를 짓기로 한 것이다. 가족 간의 정이 싹트는 집 최길찬 소장은 부지를 보고, 흡사 어머니가 아이를 두 팔로 꼭 껴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남쪽으로는 저수지 위를 시원스레 달리는 고속철도가 보이고, 서쪽엔 농장을 지나 구릉이 있으며 북쪽과 동쪽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대지를 감싸고 있다. 한 사찰에서 절터로 사용하도록 매매를 요구했을 정도로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땅이라고 건축주도 말한다. 최 소장도 그러한 지형 조건을 살려 설계·시공에 반영했다. “이런 형상의 땅이다 보니 외벽이나 지붕의 색상을 흔한 하얀색이 아닌 연한 황토색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설익은 가을의 화려하지 않은 단풍들이 갈참나무 사이로 군데군데 섞인 듯한 연한 갈색 벽돌과 황금색 아스팔트 슁글을 선택했고, 액센트로 검은색 대리석(C-블랙)과 다소 진한 듯한 오일스테인을 칠한 방부목 사이딩과 넓게 둘러싼 부드러운 동판을 사용했습니다.” 평면 구성은 공용공간인 거실과 식당을 중심으로 배치했다. 거실과 식당 그리고 주방에서 바라보이는 주된 조망의 방향은 저수지가 보이는 남쪽이 아니라 동남쪽에 꾸며지는 정원이다. 이 정원을 덱(Deck) 속까지 깊이 끌어들여 다시 2층의 발코니와 서재까지 정원을 연결시킨 것이다. 실제 주방에서 스크린을 내려놓고 창을 통해 중정(中庭)을 바라보면 대나무(烏竹) 그림자가 실루엣처럼 번지면서 바람에 흔들린다. 시원하고 싱그러운 느낌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이 대나무 그림자는 겨울 햇살엔 아주 따뜻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또한 현관에서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픈식 세면대가 나온다. 농장일을 하고 실내로 들어올 때 편리하게 손을 씻도록 배치한 것이다. 2층 서재와 공용침실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2층 발코니에선 1층 덱에서 깊이 빨아들인 대나무(오죽) 정원과 덱의 소나무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막내딸 방을 서쪽에 배치했는데 이는 감수성이 강한 여학생의 성격을 고려해 별도의 남쪽 발코니를 주고 베이윈도우를 달아서 서남쪽으로 건축주가 정성을 들여 가꾸는 농장이 한눈에 펼쳐지도록 한 것이다. 최 소장은 우연이겠지만, 가을 낙엽이 지고 난 한가한 오후, 이 창에 서면 빨갛게 익은 홍시를 힘겹게 달고 있는 한 그루의 작은 감나무 가지가 정겹게 들어오고, 봄이면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감아 들어온다고 한다. 덱 난간은 나무로 처리하지 않고 마천석을 버너로 구워 장대석으로 붙였다. 이는 넓은 땅에 위치한 작은 볼륨의 집이 대지와 만나는 곳에서 좀더 큰 힘을 딛고 서는 느낌을 주고자 했으며, 색상으로는 황갈색의 흔한 단풍 속에서 그래도 정제된 맛의 조경용 단풍 같은 느낌을 주고자 한 것이다. 내부에서 덱을 바라보면 마천석 버너구이 두겁석 밑으로 C-블랙이 깔려 있는데, 거실에 앉아서 이 대리석에 비친 덱의 소나무와 대나무 정원 모습도 좋은 소재가 되도록 꾸몄다. 이 집은 자연 속에 묻힌 채 사면으로 그 숨결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형상이다. 특히 남쪽에서 북쪽으로 낸 커튼월과 열 십(十)자로 설계한 데는 건축가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인터뷰 참조). 최 소장은 시공하는 동안 설계, 자재, 공법 선정 등 많은 부분에서 재량권을 부여해 준 건축주에게 건강한 삶과 행복함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이 집을 바친다는 말을 남겼다. 田 ■ 시공사 인터뷰 - 열 십(十)자에 담은 뜻은 이 집은 동서로 길게 되어 있지만, 1층 동쪽 끝 주방이나 2층 동서쪽 끝 덱 그리고 딸의 방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서로 연결돼 있다. 긴 복도를 연결하는 중간벽들에 여러 개의 창(내부 고정창 포함)을 내 서쪽의 감나무와 목련이 보이도록 시각적 동선을 직선화한 것이다. 이런 시각적 동선처리는 남북으로도 이어져 앞마당에서 커튼월을 통해 집 뒤 얕은 산의 진달래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기법은 현관문 밖에서도 현관문의 중간에 뚫린 유리와 중문유리를 통하고 마지막으로 공용화장실 전실을 통해 북쪽의 산이 보이도록 했다. 그 이유는 실제로 복잡한 평면이라도 시각적이지만 열 십(十)자 식으로 크로스시켜 집안의 움직임을 쉽게 파악하여 가족 간 서로의 관심거리를 좁히고자 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커튼월을 둔 이유는, 북쪽의 산을 바라볼 때 보는 사람은 북쪽을 보지만 그 산의 위치에서 보면 남쪽의 산이 되도록 한 것이다. 남쪽의 산은 해가 잘 들고 통풍이 좋아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식생의 변화를 빨리 가져다 주므로 봄의 색과 가을의 색상을 잘 표현한다. 그러므로 북쪽을 향하는 창도 충분히 두었으며 집으로 가려진 그늘진 부분도 최대한 줄이고자 커튼월을 통과한 햇살이 북쪽의 산에 전달되도록 하였다. ■ 글·사진 윤홍로 기자 ■ 건축정보 ·위 치 : 화성시 매송면 송라리 ·대지면적 : 198.13평(655.00㎡) ·건축면적 : 37.62평(124.38㎡) ·연 면 적 : 60.18평(198.96㎡) ·층 수 : 지상 2층 ·구 조 : 스틸하우스 ·외벽마감 : 벽돌 + 방부목 사이딩 + 커튼월(복도) ·지붕마감 : 동판각재심기 + 아스팔트 슁글 ·덱(Deck) : 바닥(방부목 Hem-Fir) + 난간 (마천석 버너 구이 + C-블랙) ·내부마감 : VP+실크벽지 ·바 닥 재 : 수입 온돌마루 + 이태리타일 (RAGU+PALATIUM) ·창 호 : AL-WOOD 유럽식 시스템창호 ·방 문 : 천연무늬목 후레쉬 도어 ·몰 딩 : MDF 위 천연무늬목 ·창틀/문틀 : MDF 위 천연무늬목 ·핸드레일 : 평철접기 위 에폭시 페인트 ■ 설계·시공 : 신영건축사사무소
-
- 주택&인테리어
- 전원&단독주택
-
커튼월에 자연을 담은 화성 62평 2층 스틸하우스
집짓기 정보 검색결과
-
-
[최길찬의 전원주택 설계 노트 8] 인연因緣
-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한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재능과 부, 혹은 예술 문화 등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인연'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2002년 월드컵 기간 중에 필자는 경기도 하남시에서 식당으로 사용하던 통나무집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당시 건축주는 종합건설회사와 장학재단을 비롯해 몇 개의 회사를 거느린 회장이었다. 어느 날 건축주가 필자에게 함께 가볼 곳이 있다고 하여 영문도 모르고 따라 나섰다.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화성시 송라리 저수지가 보이는 개발제한구역 내 농장이었다. 건축주는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체격 좋은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두 분은 아주 오랫동안 같은 업계(전기공사업)에서 일했고 형제애보다 더 큰 우정으로 두 가문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저기 보이는 저 집을 헐어 버리고 여기에 제대로 된 집을 하나 지어 드리세요"라고 말했다.그러자 "아니 나는 아직 집 지을 준비도 안 됐고 저 집도 새로 지은 지 1년도 안 됐는데… 아직 하룻밤도 지내본 적이 없는 집인데……." 하면서 "그래도 ○회장님이 모시고 온 분이니 저 집이 아까워도 다시 해볼 수밖에" 하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건축주(앞으로 지어질 송라리 주택의)는 5자매를 둔 딸 부잣집의 가장으로 한때 경영하던 회사가 어렵던 시절 부인이 직접 회사 일을 챙기면서 회사를 튼튼한 기반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러다 몇 년 전 부인의 건강 상태가 나빠졌고 급기야 수술까지 받았는데, 퇴원 후 부인은 "죽기 전에 농장에 좋은 집 지어서 살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에 건축주가 직접 목수를 불러 아주 튼튼하게 집을 짓기는 했는데, 그 집을 보고 부인은 맘에 들지 않아 여태껏 하룻밤도 자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집터가 명당자리라면서 스님들이 오셔서 절을 짓고 싶다며 팔기를 원했지만 건축주는 나중에라도 와서 살 것을 생각하고 거절했다고 한다.건축주 라이프 스타일 분석건축주의 가족 구성원은 60대 후반의 부부와 장모님, 딸 다섯. 딸들 중 막내는 당시에 중학생이었다. 거주하는 곳은 4층짜리 회사 사옥의 3층과 4층이었으며 막내딸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현재의 집에서 살 계획으로 새로 지어질 집은 당분간 주말주택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주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분이라 전체적으로 실망스런 내용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야 알았지만 어떤 것이 설령 잘못 됐다 하더라도 열심히 하다가 잘못 된 것이나 오류는 이해하는 성격이고, 다만 이런 경우 돈이 많이 들어가더라도 만족스러운 상태로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생명을 소중히 여기는데, 실례로 농장에는 집 잃고 떠돌던 개를 데려와 손수 털을 깎아주고 식사도 함께 할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돌본다. 한 번은 농장에 매어 두고 키우는 암컷 개가 임신해 강아지를 여러 마리 낳았다. 건축주는 "개 한 마리 건사를 못해서 임신시켰다"며 아주 호통을 쳤다. 이유인즉 살아있는 생명체는 반드시 거두어 잘 키워야 하는데 그 많은 새끼들을 다 돌보려면 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써야 할까 하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이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었다.·건축주는 조경에 대한 식견이 풍부했다. 회사의 복도나 사무실, 집 안까지 수많은 화분으로 장식했다. "이 화분은 10년 전 ○회장께서 주셨고, 또 이 화분은 5년 전 누가 주셨고, 이 나무는 금송인데 어디서 구해 왔으며 또 이 감나무는……." 그 많은 사연을 가진 식물을 죽이지 않고 오랫동안 그 사연과 인연을 간직한 채 잘 가꾸어 왔던 것이다.·손주들을 위하여 별도의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아직도 미완성된 계획을 추진 중으로 손주들이 주말이면 농장을 찾아와 조부모를 뵙도록 하는 것을 상례화하는 것을 보면 가족 구성원 내 어른으로서의 위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아내에 대하여 그간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길 때에는 낭비적 요소를 싫어해 가급적 직원들과 함께 직접 하려고 든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부인은 썩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회사 구내식당과 집에서 먹는 반찬용 고추, 호박, 쌀, 상추 등 대부분을 농장에서 부인과 함께 가꾸어 조달하며 큰 결정 사항 외에는 회사일은 직원들에게 맡기는 편이었다.건축주의 요구 조건·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알아서 좋은 건물 지어주세요" 외에는 없었다. 사실 건축설계를 하면서 이런 경우 좋은 점도 많지만 일은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발생한다.·자재 선정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았다.·다만, 너무 호화스러워 보이는 형태의 집이나 노출콘크리트 같은 현대적인 집보다는 일반적인 단독주택을 원했다.대지 분석 및 배치 계획·대지에서 정면으로 송라리 저수지가 보이도록 배치할 경우 남향 배치에 뒤쪽은 산이고 어려움이 없는 땅이다.·다만, 건축물의 뒤쪽에 산과 만나는 곳이나 대지 주변으로, 역 ㄷ자 형으로 이루어진 산 능선과 만나는 곳곳에 조경수 및 유실수들을 아주 잘 가꾸어 놓았기에 건축물은 전면뿐 아니라 건축물의 좌측면으로 넓게 펼쳐지는 농장과 우측 뒤를 돌아가는 곳들을 향해 모두 열린 형태 또는 접근이 가능하도록 동선이나 시선을 교차시켜야 한다.·내부 주거공간은 최대한 방을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너무 답답하게 작은 방들이 겹치는 것은 피하고자 하며 1층에 부부침실만 두고 2층에 막내딸을 위한 전망 좋은 방 1개와 나머지 방 2개 정도면 200㎡(개발제한구역이므로 총 면적의 제한)가 될 것이다.·동선이 막히더라도 시선이 통과하도록 한다. 시선의 통과는 열십十자 형으로 뚫리도록 해 현관에 들어서면 뒤쪽 산 조경이 보이고 뒤쪽 산에서 작업할 때라도 앞마당이 보이고 서쪽에서 바라보면 동쪽의 정원이, 동쪽에서는 서쪽의 농장이 보이도록 배치한다.·설계 당시에 건물 우측에 해당하는 동쪽 마당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분합문(드나드는 큰 창)을 설치하고 여기에 정원을 끌어들여 덱을 계획한다. 이는 남측에 분합문을 둘 경우 여름철이면 뜨거운 남쪽 햇살을 피하기 위하여 늘 커튼을 치거나 차양을 설치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기에 남측으로는 조망용 창문 정도만 둔 것. 따라서 벽난로도 남측으로 배치하고 주된 창을 동측으로 열어 두기로 한다.또한 거실과 맞닿은 동측 덱은 평면상 뒤쪽에서 동측 마당을 향해 뻗어나간 식당에서 볼 때 남측이 되기에 덱의 끝에 고정형 큰 창을 두고, 덱의 끝 부분에 오죽烏竹을 심어 놓아 식당에서 스크린을 통해 실루엣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오죽을 감상하도록 한다.한편 식당의 2층 부분에 좀 큰 덱형 발코니를 설치한다. 이곳에 올라서면 여름철 1시 이후의 뜨거운 햇살은 자연스레 1층 지붕에 가리고 남측의 주된 정원과 식당 앞의 키 큰 대나무의 흔들림이나 저수지가 모두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감수성이 강한 막내딸을 위해 별도의 전용 발코니를 계획한다. 배치 계획상 어쩔 수 없이 서쪽 위치(안방 위)이지만 오히려 서측의 농장이 한눈에 들어와 훌륭한 조망을 확보한다. 다만 서쪽의 긴 햇살은 최대한 피해야 하기에 남측에 주된 창을 두고 서측으로는 예쁜 베이-윈도우(삼각형 돌출창)을 두기로 하되, 그 곳에 서면 농장에 있는 목련꽃이 한눈에 들어오고 가을 스산해지는 저녁나절 허공에 매달리듯 열린 선홍색 감들을 볼 것이다. 그러다 달이 뜨면 또 어떤 생각을 하느라 턱 괴고 앉아 있으려나.·배치 및 평면 계획을 하다 보니 1층 거실의 천장고를 확보하고자 지붕을 높여야 하지만 그 지붕은 2층 서재 겸 거실에서 바라보는 전망을 방해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2층의 서재 겸 거실 방을 다른 방이나 복도보다 1계단 높게 만들기로 한다. 천장에는 천창을 설치해 남쪽을 향한 개방감 부족을 해결. 서재 겸 거실과 2층의 뒤쪽 방은 식당 위 발코니를 공동으로 사용 가능하도록 한다.입면 및 외부 마감에 대한 계획·외부 마감재는 따뜻한 계열의 벽돌을 기본으로 필요한 부분만 목재 사이딩으로 마감한다. 지붕재는 전면에서 바라보이는 둥근 지붕 및 현관의 지붕은 동판 각재심기로 하고 나머지는 황금색의 아스팔트 슁글을 사용한다.·이 집에 대하여 앞뜰과 뒤뜰을 나누는 복도 부분은 모두 커튼-월로 처리해 개방감을 최대로 확보한다.·대지는 어머니가 아이를 감싸는 듯한 ㄷ자 형이지만 이로 인하여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는 습해질 우려가 있어 1층 바닥을 약 1m 정도 높게 계획하다 보니 수직적으로 비례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어쩔 수 없다. 이 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평적으로 강한 선이나 재료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전면 덱의 핸드레일을 없애고 마천석(검은색 돌)을 버너로 튀겨서 거칠지만 부드러운 질감의 회색 빛깔을 띄는 장대석(세로로 길게 만든 판상형 돌)을 만들어 마치 핸드레일의 수직선 같은 느낌을 주도록 한다.·이렇게 해 놓고 보니 전체적으로 역동성이 부족한 너무 조용한 집이 될 것 같아 현관 부분엔 씨블랙(검은 대리석) 물갈기(광이 많이 남)로 튀는 색상을 적용하고 지붕의 각과 90도가 되도록 벽체를 기울여 놓았다.건축공사 시행 및 계속되는 인연건축주가 매일같이 농장으로 출근해 공사 기간 내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것 같았는데 막상 공사가 시작되자 현장 동측의 정원에 대형 천막을 설치하고 그곳에 의자까지 준비해 놓고는, "덥고 지칠 때 이곳에 앉아서 현장 감독하십시오. 일이야 작업하는 분들이 알아서 하실 테니까" 했다. 또한 현장 작업자들을 위하여 주변에 키 1m 정도 되는 쇠꼬챙이에 재떨이 대용으로 빈 음료수 캔을 매달아 주는 것으로 현장 감독을 끝냈다. 그리고 일이 끝날 때쯤 함께 소주 한 잔 하러 가는 정도 외에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작업자들이 맘 편하게 일하도록 배려했다.공사가 끝난 후 한해 겨울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건축주 부인이 수술 후 절절 끓을 정도로 따뜻한 방에서 지내야 하는데 이 집은 바닥 온도가 그렇게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곳저곳 점검을 해 보았다.거실의 경우 주방/식당과 연결돼 있으며 거실 바닥은 원목마루를, 주방/식당에는 타일을 시공했는데 타일 부분은 따끈따끈한데 마루 부분은 그리 따끈따끈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아뿔싸! 값비싼 수입 원목마루는 일반 온돌마루보다 두꺼운 데다 바닥에 스펀지 같은 쿠션 층이 있어서 바닥의 열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외국은 바닥 난방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열전도율이 적은 바닥 마감재가 유리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바닥 난방을 하는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록 이것 때문에 항상 건축주 내외에게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지금도 길 가던 사람이 집 구경하러 오면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누가 왔다 갔는데 최 사장에 대해 설명하고 연락처를 알려 줬다"고 말한다.필자가 어쩌다 방문하면 꼭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최 사장 왔어. 같이 점심 먹으러 가려는데 당신 시간 있어요?" 대부분의 점심 메뉴는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간장게장이고 여기에 건축주가 좋아하는 오가피주 한 병이 덤으로 준비된다. 재작년에는 넷째딸까지 결혼시키고 이제는 손주들도 더 늘었다. 부인께서 맘에 들어 하시지 않는다는 까닭에, 손주들을 위해 만들던 놀이터는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 부인은 회사일에서 손을 놓고 주로 농장을 돌보다 보니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전해 듣는다.필자가 이 인연을 더 소중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미해결된 부분을 올해 겨울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다.지금 연결돼 있는 많은 또 다른 인연들-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을 위해 해야 할 다른 것이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田글 최길찬<건축사·시공기술사>
-
- 집짓기 정보
- 주택설계
-
[최길찬의 전원주택 설계 노트 8] 인연因緣
-
-
[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전원주택과 조경
- 전원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내 이웃과의 마을 공동체적 사고와 생활 그리고 취미 생활, 이웃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정원 가꾸기'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정원을 보고 즐기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여기에는 가꾸는 노력의 즐거움이란 큰 의미가 더해져야 한다.잔디밭에 잡초를 뽑고 예쁜 소나무가 죽지 않도록 영양제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 마당을 블록화해 보자. A블록에는 3월에 피는 꽃을, B블록에는 야생화를, C블록에는 가을에 피는 꽃을 그리고 담을 따라 돌면서 대문 주변에는 5개의 빨간 꽃잎이 진한 5월의 장미를 심어 보자.이런 정원은 어떨까? 덱(Deck)의 한 귀퉁이 물 항아리에는 부레옥잠이나 가시연꽃이 떠 있고, 낙엽이 나뒹구는 10월이면 감수성 예민한 딸아이의 2층 방에서 서측으로 난 장방형 창을 통해 어느덧 빨갛게 익은 홍시가 석양빛을 머금어 그 붉은 기운이 터질 듯 풍요롭게 매달린 모습. 또 남편과 아이들이 나간 초여름 식당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 '후두둑'거리는 소리에 놀라 시선을 돌리면 남편의 두 주먹만한 목련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뻐근해지는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세월의 아픔도 느낄 수 있는 곳.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녀딸아이에게 어릴 적 혀끝을 달콤하게 적셔 주었던 사르비아 꽃 꿀 냄새의 추억을 들려주는 그러한 곳.하나, 조경, 결코 서두르지 말자집은 3개월 정도면 지을 수 있지만 조경의 중요한 인자因子인 나무와 꽃 그리고 잔디 등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지나야 제몫을 다하는 요소로 자리를 잡는다. 그 때문에 적어도 5년 정도 장기 계획을 세우고 접근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그런데 너무 장기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막상 입주 후 수년 동안 꿈꾸듯 기대해 온 전원주택과 썰렁한 마당은 그 컨셉이 일치하지 않는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그것을 인정하기 어렵기에 어느 정도 장성한 멋진 소나무를 들여오고 이렇게 저렇게 돈을 들이게 된다.필자는 무덥던 7월 꽤 오랜 세월 알고 지냈으며, 설계일도 많이 소개해 준 경기도 광주의 K권사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분은 필자의 설계가 맘에 안 드는지 항상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변경하면서 당신의 생각과 건축 기법을 많이도 쏟아 붓곤 한다. 때론 그것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화하면 언제나 반갑게 받고 잊을 만하면 설계 건을 소개 주는 분이다.동네에 들어선 집들이 몇 채 되지 않아서 더욱 그러했지만 집이 지어졌을 때 건축주인 K권사 부부와 마찬가지로 필자도 맘에 안 드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하면서 입이 그냥 딱 벌어지고 말았다. 집에는 세월이 지나면서 삶의 냄새도 많이 보태졌지만 무엇보다는 조경이 압권이었다.함께 1층 덱에 앉아 부드러운 원두커피를 마시면서 K권사는 반 자랑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꽃과 식물 그리고 그것을 찾아 날아드는 벌과 나비에 관해 거의 곤충이나 식물학자 수준에 미칠 정도로 많은 내공을 쌓은 것이 필자와는 더 이상 이야기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아∼. 네, 그렇군요.' 하는 감탄사만이 필자가 응대하는 답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필자의 어리석은 충고를 듣고 야생화와 잔디 그리고 키 작은 나무 몇 그루만 심었던 마당이 이제는 이른봄부터 계절별로 피어나는 꽃들과 이를 찾는 벌과 나비들이 가을까지 쉼 없이 마당을 들락거렸다.무엇보다 100여 평이 되는 마당이 많은 꽃들로 비좁아 보였다. 서커스 곡예사처럼 한철이 지나 꽃이 지면 그 자리를 대신해 다른 꽃들이 스르르 아주 자연스럽게 무대를 장식했다. K권사는 그렇게 꽃이 퇴장할 즈음에 대비해 다른 꽃들이 말없이 무대를 채워 나가도록 꽃을 즐겨 심어 놓았다.그렇다! 이 분은 전원이란 멋진 풍경 속에 예쁜 집을 짓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채워지지 않는 세월의 공간을 꽃과 나비로 시각화시킨 것이다. 대화 중 필자는 작년에 설계한 양평의 B건축주(두 분은 친구 사이)가 '앞으로 5년 만 지나면 우리 집이 K권사 댁보다 정원을 훨씬 예쁘게 꾸밀 테니 두고 보라'는 다짐을 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K권사 왈, '그 친구는 우리 집에만 오면, 얘! 저 꽃은 무슨 꽃이니 너무 아름답다. 얘! 저거 꽤 여러 포기네 나 몇 포기만 줘라.'고 한다는 것이다.친구지간에 안 줄 수도 없고… 정성껏 가꾼 꽃인데다 비록 여러 포기지만 몇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어 왔고, 또 씨앗을 내려 옆의 자리를 채워 놓은 내 집 식구들이기에 쉽사리 줄 수 없어 눈치를 좀 준 모양이었다. 함께 차를 마시고 K권사는 서울에 누가 좋은 옹기를 갖고 있다고 하여 실으러 간다며 함께 집을 나왔다.둘, 조경 계획에 건축물 안팎을 포함시키자가끔 '조경을 어디에 하지?'하고 물으면 사람들 대부분은 '그야 당연히 마당에 하지.'라고 답한다.필자가 이번에 캐나다 동부지역인 밴쿠버(Vancouber), 휘슬러(Whistler)를 포함해 록키산맥을 돌아보고 왔다. 그저 그 넓은 대륙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지도를 펴놓고 바람처럼 '휙' 스쳐지나 왔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나무만 팔아도 200년을 먹고 살 수 있다는 나라답게 거의 모든 집들의 뼈대와 마감재 그리고 차가 다니는 교량도 나무였다. 건축 재료로 목재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끊임없이 이어진 조경 시설물과 꽃과 나무들, 그것도 모자라 보나 창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꽃바구니에다 예쁜 꽃들을 가꿨다.필자도 처음 조경은 그저 마당에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다가 짧은 소견머리 덕분에 좀더 발전시켜서 겨우 덱 한가운데 구멍을 뚫어 잘생긴 소나무를 한 그루 심고, 다이닝 테라스 가운데 나무를 심어 그 주변을 감싸는 야외 테이블을 설계에 반영했다. 그리고는 무슨 대단한 설계인양 건축주에게 침 튀기면서 '이것만은 꼭 하세요.'라고 권유해 왔다. 그 넓은 대륙에 눈만 돌리면 숲과 물이 있는 나라에서 집의 외벽, 대들보, 내부에 끊임없이 만들어 놓고 즐기는 조경을 보면서 그저 카메라 셔터만 눌러댈 뿐 달리 할 일이 없었다.셋, 조경 시설물을 좀더 풍성하게요즘 우리나라 목수들의 나무 다루는 솜씨가 참으로 많이 좋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방부목으로 덱을 짜고 목조주택의 골조시공만 하면 상당한 기술을 가진 것으로 자부했지만, 이제는 정말 일반화된 주택 시공 목수들의 기술이 됐다.그런데 안타깝게도 건축주들의 평당 공사비적인 접근, 그리고 업체들은 여기에 맞추어 수주하느라 덱이나 조경 시설물에 대해 건축 설계나 시공 견적을 최소로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막상 설계나 시공계약 시 이러한 부분을 축소했더라도 건축공사가 끝나갈 무렵이면 상당수의 건축주는 덱의 면적이나 화단 박스 등의 조경 시설물을 더 늘려 주기를 원한다. 자연 자재를 새로 발주하느라 별도의 운반비 지급은 물론 이미 철수한 목수들까지도 새로 불러와야 한다. 결국 건축주의 예산 증가 내지는 시공업자의 고통 감수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넷, 겨울철에도 관리하기 쉬운 조경을우리나라의 전원주택은 대체로 공기 좋고 물 맑고 산 좋은 곳에 많이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봄부터 늦여름까지는 특별한 조경을 하지 않아도 주변의 녹음과 경치로 아름답고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자녀들이나 친구들도 여름철 더위를 피해 자주 방문하기에 집 안 분위기도 시끌시끌하고 활기가 넘친다.반면 낙엽 지는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면서 정원의 나무와 꽃들은 물론 뒷산의 낙엽들도 그저 싸늘한 바람에 어지러운 흩날림만 더한다. 여름 내내 그림을 그리러 내려왔던 옆집 화가 내외도 내년 여름에 다시 오겠다고 떠나고, 여름 내내 별장으로 사용하던 뒷집도 사용 횟수가 줄면서 마을은 다시 침묵에 잠긴다.그래서 조경은 겨울을 생각해야 한다. 거실 앞에 적어도 풍성하게 잘 빠진 상록수 한두 그루쯤은 있어야 하고, 여름 내내 왕성한 성장과 화려한 꽃을 자랑하던 마당에는 뭔가 그것을 대체할 조그만 것들이 있어야 한다. 나무일 수도, 보기만 해도 훈훈해 보이는 참나무 장작을 잔뜩 쌓아 놓은 퍼걸러(Pergola)일 수도 있을 것이다.또한 거실에서 바로 바라보이는 덱과 그 덱을 지나서 정면에 보이는 잔디밭의 일부에는 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하는 양잔디를 심는 것도 좋다.그리고 조경 계획을 할 때, 특히 경사지 전원주택은 그 경사면을 따라 발파석을 이용한 돌쌓기를 하고 그 사이사이에 회양목, 영산홍, 자산홍, 진달래, 철쭉 등 관목류를 심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돌광산이나 토목 건축 현장에서 큰 돌을 깨트려 가공된 발파석이 그리도 자연스럽고 좋은 것인지도 의문스럽지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서 그 발파석 사이에 바람에 날려 온 비닐도 걸려 있고 여름 내내 화려함과 함께 돌들과 어우러지던 관목류들의 모습은 애처로움마저 든다. 때로는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콘크리트 옹벽과 그 표면을 담쟁이 넝쿨이나 방부목 등으로 따스함이 느껴지도록 처리한다면 한결 관리가 쉬워지지 않을까.다섯, 시각적 완충지대를 설치하자일산 정발산공원 쪽 도시형 전원주택을 돌아보면 흔히 생각하는 예쁜 집들이 너무 많다. 그 집들을 밖에서 바라보면 정말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경도 아름답다.그렇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생각을 깊게 하여 그 집 안에 들어가서 밖을 내다보자. 아주 편안한 옷차림으로 그 마당에서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며 여름 오후를 보낼 수 있을까? 또 주말에 자녀들이 내려와서 바비큐 파티라도 열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그렇다 많은 건축주들이나 설계자들이 가장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거의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처럼 남향의 햇살을 원하다 보니 거실이나 마당을 남쪽으로 열고, 정원도 남쪽 도로에 접하여 배치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조경이 길을 가는 나그네의 입장에서만 아름답지, 정작 건축주는 그 정원을 즐기기 어렵다. 남들과 시각적, 공간적으로 공유하는 곳에 위치하는 정원과 건축주만을 위한 개인 정원(Privy Garden)의 성격이 강한 중정中庭도 있어야 한다.대지가 너무 작아서 그 계획이 어렵다면 건축물을 배치할 때 일부분을 도로 쪽에 배치하거나 가벽, 담, 수벽 등을 이용해 햇살도 들어오고 시선도 차단되는 곳에 정원을 만들자. 집 안의 거실이나 식당 등에서 이 정원을 언제나 감상할 수 있고, 또 아주 편안한 옷차림으로 언제나 접근 가능하도록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田글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
- 집짓기 정보
- 특집기사
-
[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전원주택과 조경
뉴스/칼럼 검색결과
-
-
[세계가 반한, 제주에 살다] ‘제주 테라피’가 되는 곳 - 방송인 허수경의 리모델링 주택
- 300개가 넘는 오름이 입이 쩍 벌어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어디서든 바다로 통하는 길이 열린 제주. 그 안에 산다는 것은 그녀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딸 별이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장난치는 일은 도심에서 얻어 온 감기마저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녀가 정성을 담아 리모델링한 조천 주택을 찾았다.글 박지혜 기자 사진 홍정기 기자 취재협조 대한ENC 064-749-2178 www.제주목조주택.kr 매일 오후 4시 한결같은 낭랑하고 옹골진 목소리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 허수경 씨는 제주에 산다. 어머니 고향 제주를 오가다 '제주 테라피Therapy'에 '중독'돼 8년 전 아예 여기에 둥지를 틀었다. 제주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은 심신에 치유효과를 준다. 최근에는 10년 정도된 30평 단층 주택을 복층으로 증축, 리모델링했다. 조천읍 언덕에 화사한 화이트 톤의 얼굴로 서 있는 주택은 내외부 곳곳에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그녀의 감각이 녹아 아늑한 공간을 연출한다. 깃들어 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곳이다.아쉬운 점이 있다면, 6세 된 딸 별이를 두고 일주일의 반은 이곳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는 점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다.먼 길을 오가는 불편과, 딸과 짧은 작별인사를 반복하는 마음아픔이 있지만 제주 생활을 포기하지 않음은 한 마디 말로 단정할 수 없는 제주가 주는 무한한 행복감 때문이다."제주는 자연 그 자체예요. 멀리 가지 않아도 집 앞이 바로 자연이고 곳곳이 아름다워요. 아이를 키우기에도 여기가 딱이에요." 증축한 2층은 손님을 위한 공간이다. 그녀의 디자인 감각, 데코 솜씨를 한껏 발휘했다. 계단을 활용한 수납장, 밤에는 침대가 되는 소파, 지저분한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세면대하부 수납장,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는 다이닝룸 거울, 환기와 채광과 전망까지 책임지는 욕실 창 등 욕심나는 아이템들이 다 모였다.친언니처럼 지내는 지인이 이 마을에 산다는 까닭이 컸지만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그녀에게 조천읍만한 데도 없었다. 집에서 보면 우측으로 한라산이 보이고 좌측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생태공원과 바다… 집을 나서면 지척에 널려있는 유원지가 아이의 놀이터이자 훌륭한 체험 교육장이다. 별이가 꼭 다니게 하고 싶은 초등학교도 인근에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지고 잔디가 깔린 운동장의 그녀가 홀딱 반한 '상상 속의 학교'다. 공간 곳곳에 그녀의 섬세한 손길이…해발고도가 높은 조천읍 지역은 제주에서도 춥기로 유명하다. 눈 구경이 어려운 제주지만 이곳은 눈이 소복이 쌓일 정도.뚜렷한 사계절을 좋아하는 명쾌한 그녀에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선사할 정도로 계절감이 느껴지는 이곳에 올린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 보자.1층은 살림집이고 2층은 그녀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손님 공간이다. 손님이 편하게 쉬다 가도록 계단실을 외부 건물 배면에 내었다. 30평 콘크리트 건물 위에 20평 경량 목구조로 증축한 2층은 1층 경사지붕을 그대로 살린 탓에 바닥에 단차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걸 그대로 살려 공간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침실과 주방, 다이닝룸이 오픈된 구조는 단차를 이용해 공간을 구획하고 개방적인 공간을 아늑하게 만든다.복층 주택을 갖고 싶었던 허수경 씨는 기존 주택을 허물고 개축할까도 고민했지만 건축폐기물이 많이 나오고 시간과 공정이 길어지는 등 걸림돌이 많아 증축으로 결정했다. 1층은 기존 건물 골격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 구조를 변경하고 내외부 마감을 다시 했다. 외부는 1충 벽돌 마감을 그대로 유지한 채 2층과 통일해 흰색 스터코를 칠하고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2층에 포인트 벽돌을 붙였다. 허 씨가 일일이 붙이는 자리를 지정했을 정도로 주택 공사 전반에 그녀의 시선과 감각을 담았다.창밖으로 멀찌감치 함덕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공간에 굳이 테마를 붙인다면 '여행자의 휴식'이다."제주로 여행 오는 손님을 위해 별장처럼 만든 공간이에요. 이 공간에서 모든 게 다 해결되도록 미니 주방과 식당, 욕실까지 넣었어요. 나도 여행 온 느낌을 내고 싶을 때, 생각을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 이 공간을 사용해요."내추럴함과 클래식한 분위기가 풍기는 2층 공간은 낙엽송 패널을 계단, 장식장, 몰딩에 통일감 있게 적용해 심플하고 편안함을 준다. 그녀는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원목장과 조명기구, 패브릭, 소품들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치했다. 수납장 문손잡이를 직접 사다 달았을 정도로 곳곳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2층에서 1층 덱으로 내려오면 뒷집 마당에 핀 목련꽃이 낮은 담장 위로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민다. 도시의 그것과 달리 꽃잎마저 여유로워 보이는 이곳 제주에서는 휴식다운 휴식이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집이 예쁘든 그렇지 않든 자연환경이 좋으니 제주에서는 집도 아름답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이 밀려드는 아름다운 집에서 그녀는 일주일마다 3박4일간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
- 뉴스/칼럼
- 전원칼럼
-
[세계가 반한, 제주에 살다] ‘제주 테라피’가 되는 곳 - 방송인 허수경의 리모델링 주택
-
-
[전원일기] 목련이 피는 뜨락에서
- 다시는 꽃피는 봄날을 볼 수 없을 것 같이 냉랭하기만 했던 겨울이 저만치 물러나고, 연분홍치마를 입고 거리에 나서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뭇 사내들의 눈길을 한꺼번에 받을 것 같은 봄날이 왔다. 헐벗었던 가지에 꽃부터 피우고 초록빛 잎사귀로 계절을 나는, 목련 꽃봉오리가 솜방망이처럼 부풀어오르고 있다. 목련의 꽃이 피기 시작하면 봄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무르익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는 폐교에는, 집에는 마을 어귀를 지키는 정자나무처럼 성성한 목련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 목련이 만개했을 때의 찬란함을 5년째 누리고 있다. 그 목련꽃이 피었던 화려한 날을 그렇게 누려보고 나니, 미스코리아 같은 여인과 3년쯤 살아보니 별스럽지도 않더라는 느낌이었다. 여고시절, 버스 두 정거장 거리를 주로 혼자서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에 다닐 때, 새학기가 시작할 무렵, 하얀 풍선이 둥실 떠오르는 것처럼 남의 집 대문 안에 피었던 하얀 목련만 보면 내 가슴도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순백의 영혼에 사로잡힌 것처럼 아찔해져서 그 자리에서 빙빙 돌아버릴 것 같은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 남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점점이 떠 있는 하얗게 부풀어오르는 목련꽃 풍선 사이로 검정색 교복이 걸어왔다. 약속을 한 것처럼 매일 등교 길에 그 남학생과 마주쳤다. 그가 나를 의식해 모자를 고쳐 쓰는 짧은 순간 나와 눈빛이 마주쳤던가. 나도 새침떼기처럼 남의 집 담장 안에 막 피어오르는 목련꽃으로 눈길을 돌려버렸지만, 혹시 내게 말을 걸어올까 하는 기대로 가슴은 얼마나 콩닥거렸는지. 목련꽃이 화려하게 핀 어느 봄날, 나는 엉큼하게도 그 남학생이 내게 장난치듯 수작이라도 한번 걸어오기를 기다렸고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난다면 하얀 목련이 등불처럼 켜진 밤거리를 손잡고 함께 걸어보자고 할 셈이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 남학생과는 3년을 그렇게 스치기만 했을 뿐 어떤 작은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남학생이 숫기가 없었던 것인지, 나한테 매력이 없었던지 둘 중에 하나겠지만 입심만 강해지는 이 나이에 첫사랑 이야기만 나오면 여고시절 그 남학생을 떠올리게 된다. 눈길 한번 못 맞춰 본 지금은 얼굴도 생각 안 나는, 봄날 잠깐의 꿈처럼 목련꽃 그늘 사이로 스쳐지나간 그 남학생이 첫사랑이라고 우기고 싶다. 남의 담장 밖으로 둥실 떠오른 목련만 동경하다가 아름드리 목련이 두 그루나 버티고 있는 이 집에 들어오면서 내 목련이 필 날을 기다리던 즐거움도 함께 누렸었다. 허나, 목련의 화려한 날은 단, 3일 천하에 불과했다. 목련이 지는 모습이 화장을 지운 미스코리아의 맨 얼굴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을 때는 실망이 통증으로 왔다. 넓적한 푸른 잎과 번성한 가지들로 여름내 그늘을 만들어 줘 야외용 테이블을 나무 아래에 가져다 놓은 호사는 좋았지만 가을이면 갈색으로 수분이 빠져나가 뒹구는 잎들은 감당 못할 것이었다. 낙엽 태우는 냄새도 어느 정도지, 두 그루에서 쏟아내는 낙엽을 태우는 일은 웬만한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낙엽을 태우다 말고 겨울을 나는 동안 우리집 목련 나뭇잎은 쓰레기처럼 온 마당을 굴러다녀 내 잔소리의 표적이 된다. 갑자기 따뜻해진 이틀 사이에 우리 집 목련이 피는 속도가 빨라졌다. 햇볕이 많이 받는 쪽의 목련은 벌써 속이 환하게 보이는 웃음을 흘리며 3일 간의 유혹을 시작하고 있다. 올해도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리집 목련의 장관에 차를 멈추고 꽃구경을 할 것이며 동네사람들은 꽃그늘 아래 사진 한 장 박고 싶다며 내게 카메라를 맡기고 목련꽃에 찬사를 쏟아 부으며 꽃그늘 아래로 파고 들 것이다. 함께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목련은 밤 12시가 지나면 재투성이 아가씨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와 같은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田 ∴글쓴이 오수향은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 살면서 글쓰기의 꿈을 쫓아가고 있는 주부입니다. 공주 KBS,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수향의 시골살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메일을 보내보세요.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답니다
-
- 뉴스/칼럼
- 전원칼럼
- 컬럼
-
[전원일기] 목련이 피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