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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고택 쌍산재 한옥체험관】 명당明堂의 결을 따라 명가名家의 얼을 새기다
-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굽이굽이 돌아 당도한 곳. 여느 이웃집과 다를 바 없는 작고 소박한 한옥 대문이 열리고 마당에 발을 내디디자, 댓잎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간다. 그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그 규모를 드러내는 집의 모양새에 홀려버린다. 명당明堂의 결을 따라 명가 名家의 얼이 아로새겨진 곳, ‘ 쌍산재 雙山齋’. 그 전통과 세월을 품은 명문 고택의 고졸한 향기에 취해본다. 글과 사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부 취재협조 쌍산재 한옥 체험관 www.ssangsanje.com 쌍산재는 밖에서 보면 그리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민가지만 대지 규모가 5천 평에 이르고 별채로 서당이 있는 큰 집이다 한국 풍수지리의 원조 도선국사가 풍수의 이치를 연마했다는 명당,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지리산과 섬진강을 배산임수로 하는 호쾌한 풍광 아래 쌍산재가 자리한다. 해주 오 씨의 고택인 쌍산재는 화엄사와 문수사 자락의 중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바로 사도리沙圖里다. 동네 이름도‘ 모래로 그림을 그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리산 골짜기의 물길이 섬진강과 합해지면서 평평한 모래사장을 만들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곳에 자리한 쌍산재는 조상이 높은 벼슬을 하거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의 집은 아니지만, 7백~8백 석의 농사를 지었던 부농의 집이었다. 그럼에도 집 자체는 장엄하지 않고 소박하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은 민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도리 일대는 해주 오 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지 5백 년이 된 집성촌이라고 한다. 오 씨 조상들이 들이마시고 내쉰 호흡이 5백 년 동안 이 동네에 고스란히 축적돼 있다. 조상과 후손의 호흡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쌍산재에는 알 수 없는 편안함과 평화로움이 있다.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데서 오는 연속성일 것이다. 해주 고택에 사는 사람과 그 공간을 지켜주는 가신神이 서로 경계를 허물고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와 살림채, 건너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8백 석 농사를 지은 부농의 집이지만 소박하기 그지없다. 식구들은 보리밥을 먹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 서도 일꾼들에게는 쌀밥을 먹였다고 한다. 300년 세월을 품은 명문 고택쌍산재로 들어서기 전에 눈길을 끄는 것은 당몰샘이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샘으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그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전국 1위 장수마을인 원인이 이 물에 있다 하여 지금도 인근에서 수시로 물을 길어 온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영험한 샘물 덕분에 쌍산재의 대문은 왼편 모퉁이로 물러나 있다. 쌍산재는 대문 앞에서 바라보면 그 포용력을 알 수 없다. 이 집은 자신의 진면목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작고 소박하지만 안으로 들어서야 그 규모를 드러내는 집의 모양새처럼, 쌍산재의 주인들은 선행을 드러내지 않으며 마을 공동체와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은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문도 작다. 그러나 일단 집 안에 들어서면 달라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집이다. 전체 대지는 5천 평. 대문에 들어서면 대문 바로 옆에 남자들의 공간이었던 사랑채가 있고 그다음으로 안주인이 살림하던 살림채, 시집가기 전의 처녀들이 머물렀던 건너 채가 있다. 대문 왼쪽으로 최근에 만든 응접실 겸 다실 채가 하나 더 있다. 집의 규모도 소박하다. 위압감이 없다. 조선 평민의 집 규모이다.대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집 뒤로 넘어가는 돌계단 길이 있다. 울창한 대숲 사이로 난 돌길이다. 한 발 한 발 돌을 디디며 처마가 멋들어진 별채와 아담한 정자인 호서정을 차례로 만난다. 쌍산재 대문 바로 옆에는 전국 10대 약수 중 하나인 당몰샘이 있다. 지리산의 약초 뿌리가 녹아 있는 물이라 전해진다. 최근에 새로 지었지만 대숲의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제법 운치 있다. 대숲이 끝나면 아래쪽과는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쌍산재의 보석과 같은 공간이 자리한 이곳에서는 두 번 감탄사를 터뜨리게 된다. 대숲을 지나는 돌로 만든 계단을 대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집 뒤로 넘어가는 돌계단 길이 있다. 울창한 대숲 사이로 난 돌길이다. 한 발 한 발 돌을 디디며 처마가 멋들어진 별채와 아담한 정자인 호서정을 차례로 만난다. 20 m쯤 통과하면 작은 동산이 나온다. 이 동산에는 고구마 밭도 있고 목화밭 그리고 각종 채소밭도 있다. 동백나무 터를 지나면 첫 번째 감탄사가 나온다. 대략 80 m 정도를 통과하면 집 한 채가 다시 나타난다. 대숲의 깊은 그늘을 빠져나와 만나는 빛의 세상으로, 하늘과 잔디밭, 동백나무에 둘러싸인 서당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너른 옛집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서당채는 집안의 자제들이 모여 글을 배우던 곳으로, 이 집의 종손인 오경영 씨도 서당채에서 천자문을 떼고 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글 읽는 소리 들으며 자란 동백나무, 치자나무, 산수유나무가 호위하는 공간이다. 두 번째 감탄사는 쌍산재 쪽문을 열어젖히는 순간에 터져 나온다. 서당 오른쪽으로 나가면 영벽문映碧門이 있고 이 영벽문을 열어젖히면 쌍산재와 나란히 자리한 저수지가 와락 안겨든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에 조용히 쪽문을 열고 나가 저수지를 산책하는 것은 쌍산재에 머물며 만나는 즐거움 중 하나다. 툇마루에 앉아 나무 사이로 내려앉는 햇살을 즐기는 봄이 제법 운치 있다. 대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집 뒤로 넘어가는 돌계단 길이 있다. 울창한 대숲 사이로 난 돌길이다. 한 발 한 발 돌을 디디며 처마가 멋들어진 별채와 아담한 정자인 호서정을 차례로 만난다. 은둔하듯 기거하며 즐기는 한옥 체험의 묘미집안 아녀자들이 푸성귀를 심어 가꾸던 텃밭은 잔디밭으로 바뀌어 부모 따라 여행 온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는 공간이 됐다. 한옥 체험의 즐거움 중 하나는 따끈한 아랫목을 즐기는 것이다. 쌍산재의 모든 숙소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있다. 보통은 보일러를 가동하지만, 손님들이 원할 경우 직접 아궁이에 불을 땔 수 있도록 준비해준다. 나뭇가지로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을 듯싶다. 쌍산재 고택을 찾은 이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하룻밤 자고 난 이들이 하나같이 정신없이 잘 잤다고 말한다. “나무, 돌, 흙으로 지은 한옥집이 요샛말로 몸에 좋은 친환경 주택 아닌가요. 우리 사는 그대로 문도 다 열어 놓고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갓집에서 푹 자고 일어난 듯한 기분이에요.” 해가 나는 날은 햇볕 드는 대로, 비 오는 날은 빗물 떨어지는 그 운치를 즐기는 것이 이곳의 멋이다. 처마의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좋다며 비 오는 날엔 대청마루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단다. 옛집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서당채는 집안의 자제들이 모여 글을 배우던 곳이다. 겹겹이 나무를 심어 공부하는 사람이 밖으로 주의를 빼앗기지 않도록 했다. 서당채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영벽문이 나온다. 이 문을 열면 바로 드넓은 저수지가 펼쳐진다 지금의 나를 내려놓고, 과거의 나와 재회할 수 있는 명문 고택에서의 하룻밤. 단지 한옥의 정취에 물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고택의 고풍스러움을 맛보며 은둔하듯 기거하는 묘미가 있다. 항상 이리저리 떠다니는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종가와의 재회는 어느 순간부터 잊고 있던‘ 정주민’의 기억을 일깨워주는 시간 여행의 창이 되기도 한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명가의 전통과 세월을 품은 명문 고택의 고졸한 향기에 취해보시라. 서당의 편액에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고 쓰여 있다‘. 근본을 세우면 도가 저절로 생겨난다는’ 뜻이다. 역대 이 집 주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마음이기도 하다 문의 쌍산재한옥 체험관 010 3635 7115 www.ssangsanje.com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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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고택 쌍산재 한옥체험관】 명당明堂의 결을 따라 명가名家의 얼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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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현대식 한옥】 삼대에 걸친 원(願)을 푼, 한옥집 '진여재'
- 삼대(三代)에 걸친 간절한 원(願)을 푼 사람이 있다. 경남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늘밭마을에 34평 전통 한옥을 지은 이용문씨다. 건축주는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충남 서천의 빈농(貧農)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허름한 초가집 옆에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덩그렇게 높고 큰 기와집이 있었다. 끼니조차 때우기 버거웠던 때, 삼시(三時) 기와집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당시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아야지!’ 하는 할아버지의 한숨 섞인 소리는 어린 맘에도 사무쳤다.글·사진 윤홍로 기자 건축 정보위치 경남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건축형태 단층 전통 목구조 흙집(한옥)부지면적 300평건축면적 34평평면구조 ‘ㄱ’자 형벽체구조 심벽치기외벽마감 황토 맞벽 후 회벽처리내벽마감 황토 맞벽 후 황토미장창호재 2중 목창바닥재 황토, 운모, 참숯가루, 송진가루, 백모래지붕마감 토기와난방시설 기름보일러 및 전통구들건축비용 평당 600만 원설계 및 기술지도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전통미와 실용성의 조화고향 서천을 맨주먹으로 떠나와 양산에서 기반을 닦고 자녀들도 성장하자,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되뇌시던 말이 맴돌았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아야지!’ 하지만 양산에서 삶의 뿌리를 너무 깊숙이 내렸기에 귀향해 기와집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도심 한가운데 기와집을 짓기도 뭣해 90년대 중반 전원행을 결심했다. 그 후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해 전국의 이름난 전통 한옥을 두루 답사했다. 우진각지붕의 처마선이 외벌 기단 앞까지 뻗어 있어 벽체에 빗물이 들이치거나 튀는 것을 막아준다 토담회 회원들과 손수 지은 ‘진여재(眞如齋)’이용문 씨의 집은 안채인 기와집과 사랑채인 초가집 두 채가 마을을 굽어보는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혀져 있다. 전통 흙집 기술인 양성자 과정을 이수한 이용문 씨와 동기생 8명이 모여 지은 집이다. 이들은 수료 후에도 ‘토담회’를 만들어 친목을 유지하고 있는데 저마다 제집을 지을 만한 능력의 보유자들이다. 건축주는 “8명의 대목(?)이 한데 어우러져 지은 집인 만큼 완성도는 더할 나위가 없이 좋다"라고 한다. 울산 울주군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서부터 제자에게 줄 100여 년 된 항아리를 손수 싣고 온 윤 소장도 곳곳을 둘러보고는 흡족해하는 눈치다. 그리곤 자수성가하여 삼대에 걸친 원을 푼 이용문 씨에게 ‘진여재(眞如齋)’라는 당호(堂號)를 써주었다. 늘밭마을을 한 눈에 내려보는 누마루에는 '진여재'라는 당호堂號가 걸렸다. 안방과 건너방, 부엌,화장실 등 각각의 실을 연결하는 툇마루 튓간 기둥 사이애 분합문을 달았다. 황토를 짚과 반죽해 심벽치기한 벽체 이렇듯 겉모습만 보면 전통 가옥이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댓돌에 신을 벗고 분합문(分閤門 : 대청과 방 사이나 대청 전면에 다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툇마루를 통해 현대식 안방과 건너방, 욕실, 주방, 구들방이 연결된다. 퇴칸 기둥 칸살(間─) 사이에 분합문을 단 것도 현대적이다. 여름에는 문을 활짝 열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며, 겨울에는 문을 닫아 햇볕은 받아들이고 바람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천장에 대들보와 도리, 서까래가 노출된 안방과 대청 사이에는 뗐다 달았다 할 수 있는 4짝 불발기분합문(두꺼운 창호지를 발라 빛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함)을 달아 필요시 공간을 넓게 사용하도록 했다. 가구와 함께 전통미를 살린 대청 취사 공간인 입식부엌은 가구를 ‘ㄱ’ 자로 배치했으며 여기에 잇대어 다용도실과 장독대로 통하는 문을 내 전통가옥의 단점인 긴 동선(動線)을 단축시켰다. 한편 기본공간인 화장실과 욕실, 보일러실을 우측 끝부분에 두어 생활의 편리성을 더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다 현대 주거생활의 편리함을 접목시킨 보기 드문 주택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뼈대는 전통 방식인 목구조로 결구(結構) 했다. 기둥머리를 사개맞춤으로 하고 보아지(기둥머리에 끼워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와 주두(柱頭)를 얹어 보와 도리를 더욱 안정감 있게 받쳐주고 있다. 또 도리 받침 장여 밑에 사방으로 소로를 넣어 건축미를 한층 더 높였다. 목재와 흙을 주재료로 한 심벽구조(心壁構造)로 지은 한옥은 단열성은 우수하지만 상대적으로 기밀성(氣密性)이 떨어진다고 한다. 기밀성은 창문과 문의 틈새, 벽의 틈새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좌우된다. 하지만 이 집은 기름보일러를 땐다는 것을 차치(且置) 하고 창문이 많음에도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또한 기밀성이 높으면 실내가 탁해지기 쉬운데, 벽체가 황토라 물 흐르듯이 공기가 순환해 맑고 깨끗하다. 이는 전통적 가옥구조에다 현대적 기술을 응용한 한국전통초가연구소의 목구조 흙집 시스템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윤 소장은 “내력벽과 비내력벽 모두 질이 좋은 황토를 짚과 함께 반죽해 18㎝ 두께로 심벽치기함으로써 축열 효과를 높였다”라고 한다. 목구조의 취약점은 습기다. 살아 있는 나무에게 물은 생명과 같지만, 목재로 사용될 때는 습기에 섞고 벌레가 꾀므로 치명적이다. 때문에 하인방(下引枋 : 벽 아래쪽 기둥 사이에 가로지른 인방) 아래 40㎝ 지점에 벌레를 방지하려고 소금을 뿌린 후, 그 위에 항균과 습기 제거용 참나무 숯을 10㎝ 정도 깔고 다시 마사토를 덮고 황토로 마감했다. 전통미와 현대적 실용성이 돋보이는 이용문 씨의 한옥. 건축주가 전통 목구조 흙집 건축 기술을 배운 토담회 회원들과 5개월 동안 함께 지은 집이다. 더욱이 할아버지, 아버지도 뜻을 이루지 못한 원을 이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마을을 굽어보는 누마루에 걸린 ‘진여재’란 당호처럼 이용문 씨의 집에선 건축주의 삶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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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현대식 한옥】 삼대에 걸친 원(願)을 푼, 한옥집 '진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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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나는 집을 짓는 (주)행인흙건축
- 사람 냄새나는 집을 짓는 (주)행인흙건축 이동일 대표 ‘사람’ 냄새나는 집을 짓고자 한다. 현대인들이 ‘흙집’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는 건강주택이기 때문이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좋아 보이지 않는 집이 있고, 소박하고 아담한 집이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도 한다. 집은 모름지기 건축주와 시공사, 현장 일군들이 함께 짓는 공동 작품이다. 앞으로도 건축주의 영혼과 시공사의 숨결, 일꾼들의 손길이 소망하는 집을 만들겠다. ■연혁 및 주요 시공 실적 ·1998년, ‘솟대 흙건축 연구소’ 설립 ·1999년, (주)행인흙건축 설립 ·1999년∼2003년 △이천 솟대전원마을 시공 △용인 솟대전원마을 시공 △여주 본두리 주택 시공 △원주 금창리 주택 시공 △이천 신원리 주택 시공 외 다수 ·2004년 △양평 지제면 주택 시공 △평택 서탄면 주택 시공 △서산 팔봉면 주택 시공 외 다수 흙 건축 전문 (주)행인흙건축은 1998년 ‘솟대 흙건축 연구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9년 5월 (주)행인흙건축으로 이름을 바꾼 뒤, 이천시 호법면에 솟대전원마을 현대 흙집 4개동 완공을 시작으로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도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행인흙건축은 ‘한옥 목구조 흙벽돌집’을 기본으로 하고 ‘혼합 구조 흙집’, ‘경량 목구조 흙집’ 등 새로운 형태의 한옥 흙집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 건축의 마감 사양을 적용하고 통일시켜 현대 한옥, 현대 흙집의 정형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이론과 기술력을 바탕이 돼야 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끊임없이 노력과 도전이 있기에 가능했다. (주)행인흙건축은 이론과 현장 기술력을 바탕으로 설계, 자재, 공무 등 체계적인 현장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관리는 대표가 전체 현장을 총괄하고 설계, 기획, 기술을 위한 기획실과 솟대흙건축 연구소를 두고 있다. 현장 관리는 현장 소장별로 각기 하나의 현장을 책임지는 체계로 이뤄져 있다. 각 공정별로 토목 기초팀, 한옥 목수팀, 기와팀 등 약 30여 개의 일사불란 팀으로 짜여 있다. 앞으로 (주)행인흙건축은 단순 돈벌이 수단으로써의 회사가 아닌 ‘흙집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기여하는 회사, 한국의 자연과 건축,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연 학습장형 대안학교를 만드는 회사, 노인 주체의 황토실버타운을 조성한 회사로 나간다는 계획이다. (주)행인흙건축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109-4 TEL : 031)338-0983 www.hangin.co.kr 53평 한옥산세를 팔작지붕에 살포시 담아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의 언덕을 지나면, 고즈넉한 전원(田園)이 펼쳐진다. 서울과 경계한 지역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여유로운 풍경이다. 서울의 상가주택에 살던 건축주는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불암산자락의 610평 부지를 8년 전 평당 40만 원에 매입했다. 콘크리트집을 전문으로 짓는 건축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한옥을 택했다. 용인의 한옥집에서 나고 자랐기에, 한옥집의 푸근함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지대가 높은 동남향 터에 뒷산의 산세를 고려해 ‘ㄱ’자로 배치 설계를 했다. 주된 목재는 북미산 햄록을 사용하고, 서까래는 강화산 육송을 사용했다. 외부의 자연환경으로부터 벽체를 보호하고 햇빛을 피하는 그늘을 만들기 위해 처마를 길게 뽑았다. 며느리서까래라고도 하는 부연(附椽)을 덧달아 처마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한옥의 기품을 더한다. 특징은 돌출된 현관 지붕과 거실 그리고 집의 양쪽 지붕에는 목기연을 단 박공이 팔작지붕의 전통미를 더한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건축형태 : 단층 목구조 황토집 ·연 면 적 : 53평(지하 6평 별도) ·외벽마감재 : 황토벽돌 줄눈마감 ·지붕마감재 : 현대식 기와 ·내벽마감재 : 황토미장 후 벽지 ·바닥마감재 : 황토 미장 후 장판, 원목마루 ·창 호 재 : 하이섀시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건축비용 : 평당 550만 원 29평 황토집 집은 삶을 담는 그릇 경기도 양평군 명달리, 양평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이곳은 양수리 일대의 카페촌과는 달리 강원도의 조용한 산골 마을을 연상시킨다. 남편은 정형외과, 부인은 피부과 전문의로 바쁜 시간을 보냈던 건축주 부부는 잘 나가는 의사의 길을 접은 채 명달리로 삶의 공간을 옮겨왔다. 행인흙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써의 집을 소망하는 건축주의 바람을 최대한 담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건축주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주변의 넉넉한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소재를 택했다. 목구조에 황토를 더해 집을 앉히고, 간이 주추에 목재기둥을 세워 목재의 변형을 방지했다. 외벽 창틀 하단에는 인조석을 사용해 황토로만 마감할 경우의 밋밋함을 없앴다. 실내 구조는 거실 겸 주방, 방, 욕실과 다용도실로 이루어져 있다. 각 방의 구들은 일반 난방과 겸용할 수 있다. 거실은 삼량식 구조로 대들보와 서까래를 노출시켰으며, 내부벽은 루바와 황토미장을 노출시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 ·건축형태 : 목구조 황토집 ·연 면 적 : 29평 ·외벽마감재 : 인조석 + 황토 미장 ·내벽마감재 : 루바 + 황토 미장 ·지붕마감재 : 아스팔트 슁글 ·바닥마감재 : 강화마루 ·창 호 재 : 우드 섀시 + 창살창호지 여닫이창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56평 복층 황토집 현대와 전통의 어울림 건달산 자락에 위치한 56평 목구조 황토주택. 환경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건축주의 바람을 최대한 반영했다. 건축주는 초가흙집을 원했지만, 초가집의 특성상 복층 구조 및 유지관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 목구조 황토주택을 선택했다. 기본 시스템은 옹벽 블록기초를 한 뒤, 민도리 형식의 한옥 목구조로 구성했다. 뼈대가 되는 구조재는 햄록을 사용했고, 벽체는 30센티미터 흙벽돌로 이중 쌓기를 했다. 한옥인 만큼 전통 가옥에서 느껴지는 디테일이 잘 표현되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것이 특징이다. 용마루와 팔작지붕, 처마끝의 전통 이미지는 창호의 문양으로 이어져 단정하면서도 율동감이 느껴지고,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의 처마 선은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더한다. 거실창의 안쪽 유리면에는 한지를 끼워 넣어 은은한 햇살이 들어와 커튼을 별도로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실내 구조는 현대 생활에 알맞게 각 방과 욕실 등을 배치했고, 기둥과 보, 서까래 등은 모두 노출시켜 한옥의 실내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이 집은 한옥은 불편할 것이란 편견을 극복하고, 현대 한옥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준 좋은 예이다. 서구풍의 고급주택을 선호한다면, 한옥의 기품과 현대 기능을 모두 갖춘 형태로 한번쯤 검토해 볼만한 유형이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건축형태 : 목구조 황토주택 ·연 면 적 : 56평(1층-40평, 2층-16평) ·외벽마감재 : 황토벽돌 ·지붕마감재 : 개량형 한식기와 ·내벽마감재 : 한지 벽지 ·바닥마감재 : 한지 장판, 정마루 ·창 호 재 : 우드 섀시 ·창 호 재 : 심야전기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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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나는 집을 짓는 (주)행인흙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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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에 걸친 원(願)을 푼, 양산 34평 현대식 한옥집 진여재(眞如齋)
- 삼대(三代)에 걸친 간절한 원(願)을 푼 사람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늘밭마을에 34평 전통 한옥을 지은 이용문(53세) 씨다. 건축주는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충남 서천의 빈농(貧農)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허름한 초가집 옆에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덩그렇게 높고 큰 기와집이 있었다. 끼니조차 때우기 버거웠던 때, 삼시(三時) 기와집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당시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아야지!’ 하는 할아버지의 한숨 섞인 소리는 어린 맘에도 사무쳤다. 70년대 이른 새벽이면 으레 확성기가 찢어져라 터져 나오는 소리,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하지만 손바닥만한 땅뙈기를 뼈마디가 부서져라 일군다고 해도 기와집을 짓기란 요원(遙遠)하기만 했다. 이용문 씨는 1976년 군 복무를 마치고 스물여섯 되던 해, 금의환향(錦衣還鄕)해 할아버지께서 그토록 염원하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겠다는 일념(一念)으로 고향을 등졌다. (주)롯데삼강에 취직해 일자리를 따라 터를 닦은 곳이 경남 양산. 한 점 혈육이라곤 없는 타향에서 오직 앞만 보고 젊은 혈기를 불태웠다. 1981년 경남 함안이 고향인 황정화(48세) 씨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슬하(膝下)에 1남1여를 뒀다. 그가 운영하는 (주)롯데삼강 양산 대리점도 날로 번창해 매출액이 전국에서 1, 2위를 다퉜다. 전통미와 실용성의 조화 고향 서천을 맨주먹으로 떠나와 양산에서 기반을 닦고 자녀들도 성장하자,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되뇌시던 말이 맴돌았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아야지!’ 하지만 양산에서 삶의 뿌리를 너무 깊숙이 내렸기에 귀향해 기와집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도심 한가운데 기와집을 짓기도 뭣해 90년대 중반 전원행을 결심했다. 그후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해 전국의 이름난 전통 한옥을 두루 답사했다. 6년 남짓 발품을 숱하게 팔았건만 집터 고르기에서부터 그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한 게 없었다. 자신감을 잃어갈 즈음에 만난 사람이 전통 흙집을 보급하는 ‘한국전통초가연구소’ 윤원태 소장이다. 윤 소장은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이자 한국학과 겸임교수로서 전통 건축 기술을 강의하고 있다. 2001년 12월, 이용문 씨는 전통 흙집 기술인 양성자 3기 과정(18주)을 이수하면서 전통 한옥을 짓는 데 자신감을 얻었다. 또한 풍수지리(風水地理)를 배우면서 20여 년 전, 친구와 함께 찾았던 양산시 내포리 늘밭마을이 명당지세(明堂地勢)임을 떠올렸다. ‘넓은 밭’에서 유래했을 늘밭마을은 원동자연휴양림이 자리한 토곡산 600미터 고지에 있다. 신어마을 초입에서 계곡을 따라 난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비좁은 산길을 40여 분 거슬러 올라 하늘과 맞닿을 즈음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다. 산과 하늘이 맞닿은 곳에 마을이 있다는 것을 보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사방이 산으로 감싸인 분지임에도 예부터 소금만 빼면 부족할 게 없다는 늘밭마을에는 13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풍수지리상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에다 뒤에는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 줄기인 토곡산이, 앞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원동천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다. 이용문 씨가 도시의 각종 편의시설과 문화 혜택을 마다하고 이 곳에 터를 닦고 한옥을 지은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케 했다. 토담회 회원들과 손수 지은 ‘진여재(眞如齋)’ 이용문 씨의 집은 안채인 기와집과 사랑채인 초가집 두 채가 마을을 굽어보는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혀져 있다. 전통 흙집 기술인 양성자 과정을 이수한 이용문 씨와 동기생 8명이 모여 지은 집이다. 이들은 수료 후에도 ‘토담회’를 만들어 친목을 유지하고 있는데 저마다 제집을 지을 만한 능력의 보유자들이다. 건축주는 “8명의 대목(?)이 한데 어우러져 지은 집인 만큼 완성도는 더할 나위가 없이 좋다”고 한다. 울산시 울주군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서부터 제자에게 줄 100여 년 된 항아리를 손수 싣고 온 윤 소장도 곳곳을 둘러보고는 흡족해하는 눈치다. 그리곤 자수성가하여 삼대에 걸친 원을 푼 이용문 씨에게 ‘진여재(眞如齋)’라는 당호(堂號)를 써주었다. 본채인 34평 한옥은 목구조 흙집으로 평면 간(間)잡이는 ‘ㄱ’자 형태다. 대청 좌우에 안방과 건넛방을 배치하고, 안방 옆에는 다용도실과 주방을 그 앞에 구들방 하나를 덧붙인 후 단을 높여 누마루를 냈다. 그리고 건넛방 옆에는 화장실과 욕실, 보일러실을 내 ‘ㄱ’자형을 이룬다. 이는 건축주의 고향인 충남 서천, 즉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주거 형태를 다소 변형한 것이다.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 외벌 기단(基壇)을 쌓아 초석(礎石)을 놓은 후, 원형기둥(圓柱)을 반듯하게 세우고 벽체에 빗물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단보다 길게 뽑은 우진각지붕(네 면에 모두 지붕면이 만들어진 형태)의 처마선이 전통미를 더한다. 원형기둥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살림집에서는 법적으로 금해 명문세족(名門世族)만이 사용했던 것이다. 또한 지면으로부터 높이 띄워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잘 되도록 구들방 끝에 놓은 누마루도 대갓(大家)집을 떠올리게 한다. 구들방에 불을 때는 아궁이는 누마루 밑에 있다. 구들방은 예전에는 ‘욱실’이라 하여 노약자들이 몸을 추스르는 비일상용 방으로 사용했다. 황토를 짚과 반죽해 심벽치기한 벽체 이렇듯 겉모습만 보면 전통 가옥이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댓돌에 신을 벗고 분합문(分閤門 : 대청과 방 사이나 대청 전면에 다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툇마루를 통해 현대식 안방과 건너방, 욕실, 주방, 구들방이 연결된다. 퇴칸 기둥 칸살(間─) 사이에 분합문을 단 것도 현대적이다. 여름에는 문을 활짝 열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며, 겨울에는 문을 닫아 햇볕은 받아들이고 바람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천장에 대들보와 도리, 서까래가 노출된 안방과 대청 사이에는 뗐다 달았다 할 수 있는 4짝 불발기분합문(두꺼운 창호지를 발라 빛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함)을 달아 필요시 공간을 넓게 사용하도록 했다. 취사 공간인 입식부엌은 가구를 ‘ㄱ’자로 배치했으며 여기에 잇대어 다용도실과 장독대로 통하는 문을 내 전통가옥의 단점인 긴 동선(動線)을 단축시켰다. 한편 기본공간인 화장실과 욕실, 보일러실을 우측 끝 부분에 두어 생활의 편리성을 더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다 현대 주거생활의 편리함을 접목시킨 보기 드문 주택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뼈대는 전통 방식인 목구조로 결구(結構)했다. 기둥 머리를 사개맞춤으로 하고 보아지(기둥머리에 끼워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와 주두(柱頭)를 얹어 보와 도리를 더욱 안정감 있게 받쳐주고 있다. 또 도리 받침 장여 밑에 사방으로 소로를 넣어 건축미를 한층 더 높였다. 목재와 흙을 주재료로 한 심벽구조(心壁構造)로 지은 한옥은 단열성은 우수하지만 상대적으로 기밀성(氣密性)이 떨어진다고 한다. 기밀성은 창문과 문의 틈새, 벽의 틈새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좌우된다. 하지만 이 집은 기름보일러를 땐다는 것을 차치(且置)하고 창문이 많음에도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또한 기밀성이 높으면 실내가 탁해지기 쉬운데, 벽체가 황토라 물 흐르듯이 공기가 순환해 맑고 깨끗하다. 이는 전통적 가옥구조에다 현대적 기술을 응용한 한국전통초가연구소의 목구조 흙집 시스템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윤 소장은 “내력벽과 비내력벽 모두 질이 좋은 황토를 짚과 함께 반죽해 18㎝ 두께로 심벽치기함으로써 축열 효과를 높였다”라고 한다. 목구조의 취약점은 습기다. 살아 있는 나무에게 물은 생명과 같지만, 목재로 사용될 때는 습기에 섞고 벌레가 꾀므로 치명적이다. 때문에 하인방(下引枋 : 벽 아래쪽 기둥 사이에 가로지른 인방) 아래 40㎝ 지점에 벌레를 방지하려고 소금을 뿌린 후, 그 위에 항균과 습기 제거용 참나무숯을 10㎝ 정도 깔고 다시 마사토를 덮고 황토로 마감했다. 전통미와 현대적 실용성이 돋보이는 이용문 씨의 한옥. 건축주가 전통 목구조 흙집 건축 기술을 배운 토담회 회원들과 5개월 동안 함께 지은 집이다. 더욱이 할아버지, 아버지도 뜻을 이루지 못한 원을 이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마을을 굽어보는 누마루에 걸린 ‘진여재’란 당호처럼 이용문 씨의 집에선 건축주의 삶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田 ■ 글·사진 윤홍로 기자 ■ 건축 정보 ·위 치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건축형태 : 단층 전통 목구조 흙집(한옥) ·부지면적 : 300평 ·건축면적 : 34평 ·평면구조 : ‘ㄱ’자 형 ·실내구조 : 방3, 구들방1, 주방, 다용도실, 욕실, 화장실, 보일러실, 누마루 ·벽체구조 : 심벽치기 ·외벽마감 : 황토 맞벽 후 회벽처리 ·내벽마감 : 황토 맞벽 후 황토미장 ·창 호 재 : 2중 목창 ·바 닥 재 : 황토, 운모, 참숯가루, 송진가루, 백모래 ·지붕마감 : 토기와 ·난방시설 : 기름보일러 및 전통구들 ·건축비용 : 평당 600만 원 ·공사기간 : 2002년 12월∼2003년 5월 ■ 설계 및 기술지도 : 한국전통초가연구소(052-263-3007 www.koreacho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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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단독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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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에 걸친 원(願)을 푼, 양산 34평 현대식 한옥집 진여재(眞如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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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한옥과 현대 건축의 조화, 주문진 30평 표준 한옥
- 난 꿈에서도 귀향(歸鄕)을 꿈꾼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 귀향을 꿈꾸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귀향’이란 모티브를 이용한 소설도 많다.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 역시 삼포라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고향을 상실하고 떠돌아다니는 뜨내기 인생의 애환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고향이 없어질 리야 없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던 마음의 고향을 잃어 버렸다는 상실감을 드러낸다. 여기 마음의 고향을 찾아 귀향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강릉에서 횟집을 경영하며 토종을 연구하는 최근호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 자연과 더불어 살며 후손에게 건강하고 밝은 생활터전을 물려주고자 하는 생명살림의 공동체 운동을 주도하는 ‘한살림’에서도 활동 중이다. 최 사장이 가장 중요시 하는 부분 역시 ‘한국식, 삶을 사는 것’.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위치한 30평 황토주택은 ‘숨을 쉬는 집’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최 사장은 10년 전 전원생활을 계획하며 고향인 연곡에 1040평의 땅을 마련했다. 집 앞에는 소금강 줄기인 연곡천이 흐르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못을 만들어 사방으로 물이 흐르는 자리에 매료됐다고 한다. 1급수인 물에는 산천어와 버들치, 메기, 꺽지가 살고 태풍의 피해도 비켜 가는 아늑하고 편안한 자리다. 150평을 형질변경하고 30평 짜리 황토주택을 얹었다. 한 전시회 관람에서 눈 여겨 봐둔 시공업체인 ‘한옥세상’에 건축을 의뢰했다. 분업 시스템으로 완성된 건축 공사는 올해 7월부터 8월로 이어지는 한 달 가량 진행됐다. 공사기간이 현저하게 단축된 데는 이유가 있다. 한옥세상의 건축 시스템은 원목 수입에서 가공, 현장조립, 설계·시공과 마감에 이르기까지 분업화하여 체계적인 공정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과정의 멈춤 없는 운영으로 보기 드물게 시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규격화된 목재는 절단과 일정량의 포장까지 자동공정을 거친다. 뿐만 아니라 한옥 문틀과 고급 몰딩까지도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생산이 가능하다. 황토벽돌 전문 생산 업체인 ‘황토세상’은 황토와 운모의 배합으로 물에 개어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완성해서 시판 중이다. 신광용 대표는 황토와 숯을 이용한 전통한옥의 완성으로 새로운 주거문화를 완성하고자 노력 중이다. 오대산 자락에 위치한 황토주택의 토목공사와 조경은 최 사장이 토지 구입 당시부터 해마다 가꿔오고 있으며 그 비용만도 1억 원 가까이 들었다. 단풍으로 물든 수려한 경관과 고풍스런 소나무가 전통한옥과 현대식 건축의 조화로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황토벽돌로 완성된 벽체는 단열이 잘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건강을 위한 주택이 됐다. 건축주도 허리 통증과 축농증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이런 얘기는 이 집에서 묵고 간 사람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는 현재 강릉에서 생활하며 이곳을 세컨드주택으로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남는 방을 펜션 개념으로 운영하며 체험학습을 준비 중이다. 운영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한번 방문한 손님 중에는 중복해서 한옥집을 찾는 이들이 많다. 새로운 생태주거문화의 완성 건축은 가공된 목재로 골조를 세우고 한옥 형태의 건축으로 완성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버선발의 코끝처럼 지붕의 섬세한 표현이 아름답다. 문틀도 직접 생산된 규격화된 제품을 이용했다. 황토벽돌을 이용해 벽체를 쌓고, 천장에 흙으로 발라 열 차단과 보온에 힘썼다. 내부는 한옥의 멋을 더하는 단아한 한지로 마감했다. 방은 총 3개로 단란하게 꾸며졌으며 남향으로 얹혀진 주택은 커다란 창을 통해 풍부한 채광과 조망이 가능하다. 특히 한식 2단 기와를 얻은 지붕선이 아름다워 시공업체의 자부심 또한 크다.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자연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 사장은 자연을 닮은 넉넉함을 지니고 있다. 자연의 훼손을 안타까워하고,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생명의 숲’ 회원이기도 하다. 뜰에는 아궁이에 얹혀진 가마솥이 검게 그을린 얼굴을 부끄러운 듯 드러내고 있다.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삶을 가꾸는 그의 솜씨다. “도시에서 지친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향약집성방》에서는 배와 명치가 아플 때 황토를 뜨겁게 하여 천에 싸서 찜질을 하면 곧바로 낫는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황토의 원적외선 기를 받으면 산후통, 각종 질병 등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실내 공기 정화 살균은 물론이고 방충, 습기와 악취 제거에도 효과가 뛰어납니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족 쉼터로 꾸밀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화 속에서도 자연을 통해 넉넉한 미소를 베푸는 최 사장과 잊고 지내던 마음속의 고향을 찾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황토집에서의 하룻밤. 주변 관광지로는 설악산과 오대산, 작은 금강산이라고 일컬어지는 소금강과 일출이 아름다운 정동진이 가까이에 있고, 황토집 뒤편으로는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어느덧 성큼 다가온 가을햇살과 감나무에 풍성하게 매달린 감은 최 사장의 너그러운 표정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당 한가득 퍼진다. 田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 정보 ·위 치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건축형태 : 황토주택 ·부지면적 : 1040평 ·건축면적 : 30평 ·외벽마감 : 황토벽돌 줄눈마감 ·내벽마감 : 한지 ·천장마감 : 황토, 루바 ·난 방 : 전기보일러 ·지붕마감 : 한식 2단기와 ·식수공급 : 150미터 지하수 ·건 축 비 : 평당 350만 원 ·토목공사·조경비용 : 1억 원 ■ 설계 ·시공 : 황토세상(033-434-0801), 한옥세상(031-58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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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한옥과 현대 건축의 조화, 주문진 30평 표준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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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미와 기능성의 조화, 여주 33, 20평 목구조 황토집
- 건강을 생각한 집 전통미와 기능성의 조화, 여주 33, 20평 목구조 황토집 여타 건축방식에 비해 목구조 황토집의 가장 큰 장점은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이 집을 시공한 행인흙건축의 이동일 대표는 ‘목구조 황토는 독성 물질이 없는 천연재료인데다 흙은 통기성을 갖춰 건강에는 최고’라고 강조한다. 특히 나무는 자체적으로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있어 항시 집 안의 습도를 쾌적하게 유지시켜 주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를 나와 양평 방면으로 몇 킬로를 가다보면 양자산 자락의 앵두봉 아래로 나란히 선 집 3채가 보인다. 인근의 용인이나 양평에 비해 아직 개발의 손길이 덜 탄 탓에 푸르름과 깨끗함을 간직한 이곳은 양평과 광주의 접경지대인 여주군 산북면 하품리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에 남향받이의 옥(玉)같은 땅에다 모 대기업의 간부로 근무하는 건축주가 지난 3년 전에 그의 친구와 함께 이 부지를 매입했고, 올 5월에 황토집을 지었다. 800여 평의 부지에 본채와 별채가 있고, 창고 두 채에 정자가 있는데, 이들과 나란히 선 조적조 주택은 함께 땅을 샀던 친구의 집이다. 마당 안에 여러 채의 집을 앉힌 모양은 전통 한옥집의 채나눔 방식을 재현한 것이다. 별채는 손님이 왔을 때 묶어가는 ‘사랑채’의 역할이고 본채 뒷편의 창고에는 지하 저장고와 1층에 주차장이 있다. 산자락 밑으로는 정자도 세워 한여름에 앉아 풍류가를 불러 봄직도 하다. 목구조 황토집의 가장 큰 장점은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이 집을 시공한 ‘행인흙건축’의 이동일 대표는 ‘목구조 황토는 독성 물질이 없는 천연재료인데다 흙은 통기성을 갖춰 건강에는 최고’라고 강조한다. 특히 나무는 자체적으로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있어 항시 집 안의 공기를 쾌적하게 유지시켜 주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내구성에서도 목조주택은 여타 주택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목조주택은 나무에 홈을 파 끼우는 방식으로 시공하는데, 완공된 후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제자리를 잡으면서 더욱 안정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 전통 계승한 오량구조 팔짝지붕 본채는 건평 33평 규모의 단층인데 거실 남쪽과 서쪽의 뜨럭(축담, 뜰돌이)을 합하면 모두 40평이다. 본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입구와 지붕이다. 대문은 전통 한옥의 모양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뒷 면은 합판으로 대고 전 면은 목재를 짜맞춰 휘거나 뒤틀림을 방지하도록 했다. 문의 턱 높이를 낮추었고 거실과 뜨럭의 바닥면도 일치되도록 해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요즘의 한옥이 박곡지붕으로 시공하는 게 보통인데 반해 이곳은 전통한옥의 구조를 그대로 살린 오량구조의 팔짝지붕으로 설계됐다. 간이 주추에 8치×8치 사각 목재 기둥을 세우고, 처마도리와 보, 서까래로 구성됐다. 물론 지붕마감도 아스팔트슁글 대신 전통 기와를 올렸다. 천장은 보통의 경우라면 환기를 위해 내부 칸막이와는 관계 없이 그냥 터놓기 마련이지만, 이곳은 방과 화장실, 거실 사이에 칸막이벽을 올려 소리가 새는 것을 막았다. 반면에 방 천장은 석고보드로 마감해 단열을 보강했는데, 특히 서까래 사이의 환풍구로 들어오는 찬 공기를 천장에서 잡아 주기 위해 2중으로 시공했다. 본채의 벽체는 주요 주거공간임을 고려해 20cm와 10cm의 흙벽돌 2장을 겹쳐 30cm두께로 쌓아 단열효과를 높였다. 하지만 목조주택은 목재의 수축으로 인해 목기둥과 흙벽돌의 이음매가 벌어지는 현상이 종종 일어나므로, 시공 과정에서 은박매트를 접어 넣은 후 목기둥에 흙벽돌을 붙여 이런 현상을 방지토록 했다. 외부는 황토벽돌 줄눈마감을 했고, 내부는 황토미장 후 한지로 마감했다. 흙집은 대체적으로 물을 잘 흡수해 자칫 구조가 약해지는 단점이 있는데, 두 채 모두 바닥을 지표면에서 80cm 정도 높이고 처마를 1m 정도 길게 빼내어 일상적인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 문제를 해결했다. 화장실 내벽의 경우도 방수미장은 하단부만 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곳은 완벽한 방수를 위해 시멘트 모르타르로 전체를 마감했다. 창틀에서 유입되는 찬 공기를 막기 위해서 이중창을 사용했다. 또한 외부 섀시와 흙벽 이음매의 마감을 말끔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개구부에 완전 건조목으로 된 가 창틀을 놓고 외부 섀시와 내부 목창을 고정한 후 시다 방부목으로 띠장처리를 했다. 20평 규모의 별채 역시 한옥 목구조 방식의 골조에 목조지붕, 20cm 흙벽돌 벽체, 기와지붕으로 마감했다. 다만 본채와는 다르게 오량구조의 맛배지붕을 사용해 전통미를 극대화 시킨 게 차이점. * 전통미와 실용성 조화 이룬 내부 외관은 비교적 전통미를 살린 반면 내부는 현대 주택처럼 생활의 편리함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됐다. 현관문을 중심으로 거실과 부엌이 일자로 놓이고 양안으로 3개의 방과 화장실이 있는 T자 구조다. 부엌에는 다용도실을 별도로 빼내어 적재 공간을 확보했다. 3채 모두 기름보일러를 사용하지만, 본채의 작은 방에만 별도로 온돌을 놓고 전통방식 그대로 나무를 때 덥히도록 했다. 거실에도 벽난로를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오량구조의 지붕은 천장고가 높아 시원하면서도 거실을 더욱 넓어 보이게 하고, 창문은 모두 나무와 섀시의 이중 창으로 미관과 단열효과를 동시에 해결했다. 평소엔 사람이 살지 않는 별채는 2개의 방에 거실과 부엌이 있다. 특히 거실 앞 뒤로 툇마루를 두고 넓은 창을 양 쪽으로 내어 탁 트이게 만든 구조를 채택, 통기성과 채광이 좋다. 이외에도 본채와의 동선을 고려해 창고 뒷편에는 지하 저장고를 설치했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정문 좌측으로도 창고와 주차장을 놓았다. 흙이라는 같은 재료를 갖고도 3채의 집은 이렇게 서로들 다르다. 비슷한 듯 다양하면서도 제 각각의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게 흙집의 매력이자 한옥의 기품인 것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전통 주택의 기능과 미(美)에 현대주택의 편리함을 조화시킨, 그러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버리지 않은 이 집들은 어쩌면 우리네 전통 한옥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田 ■ 글ㆍ사진 신동성 기자 ■ 건축정보 ㆍ주 소 :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하품리 ㆍ부지면적 : 800평 ㆍ건물면적 : 본채-33평(뜨럭 포함 40평) 별채-20평 별채-20평(조적조) ㆍ건 축 비 : 본채(470만원), 별채(350만원) ㆍ구 조 : 목구조 황토벽돌집 ㆍ외벽마감 : 황토미장 ㆍ내부마감 : 황토미장+한지 ㆍ지붕마감 : 기와 ㆍ난 방 : 기름보일러(본채 일부는 온돌) ■ 시공 : 행인흙건축(031-335-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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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X _ 지붕공사, 한옥도 변해야 산다
- 집은 그 집 주인을 닮을 뿐 아니라 집에서 사는 사람은 그 집을 닮아간다. 특히 직접 집을 짓는 경우엔 두 말할 것도 없다. 집 지을 당시의 경제적 상황이나 집 주인의 식견에 따라서 집 모양이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은 집은 나를 닮았음에 틀림없다. 팔작지붕의 멋들어진 지붕선이 없다는 건 내 신분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징표일 것이다. 그저 단아하고 소박한 우리 집 지붕의 모양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집이 사람을 살려야지 사람이 집의 위세에 눌리면 안 된다. 글 황인찬 지붕의 역할은 비 가림과 난방이다. 그런데 전통 한옥에서 추구하는 하늘을 나는 듯한 지붕선은 이런 기능보다는 외형적인 멋에 치중한 느낌으로 엄청난 건축비가 지붕공사에 들어간다. 흙을 얹고 한식 기와를 사용해서 만든 팔작지붕 형태는 공사비가 3.3㎡(평)당 60만 원 이상 소요된다. 우리 집 건축면적이 117.3㎡(35.5평)으로 지붕 면적이 211.6㎡(64.0평)니까 기와를 잇는 공사비만 4,000만 원이상 들여야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이 비용을 1,000만 원 이하로 줄이되 똑같은 오지기와(흙을 구워 만든 기와)를 사용하고 싶었다. 우연한 기회에 건축박람회에 갔더니'고령기와'에서 출시한 평판기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거다! 뒤도돌아보지 않고 평판기와를 사용해 지붕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값은 4분의 1 정도지만 전통 한식 기와에비해서 완벽한 방수를 자랑하고 지붕의 무게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에 매력을 느꼈다. 그림의 떡 팔작지붕 상량식을 끝으로 집 짓기의 고비가 넘어가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 짜기까지 마음을 졸이면서 차질 없이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미 준비된 서까래를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한데 상량식은 집 짓기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오르막길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야말로 남은 과정은'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어울릴까!서까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14자(4m 20㎝) × 4치(12㎝) × 2치 5푼(7.5㎝) 각재를 사용했다. 서양식 지붕 형태를 지향한 퓨전 한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데 멋은 좀 없을지 몰라도 각재 서까래는 보통 둥근 서까래 치목 과정보다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고 비용도 2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살림집으로서의 편리하고 단아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지금도 우리 집에 구경 오는 사람들은 각재 서까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곤 하는데 나는 지금도 각재 서까래를 사용한 것에 확고한 신념이 있다. 언젠가 우리 한옥도 서민들에게 각광받으려면 기존의 틀을 깨지 않으면 안 되기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리라 본다. 지붕 형태는 맞배지붕이다. 그러면 왜 전통 한옥의 백미라는 팔작으로 하지 않고 맞배 형태로 지었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도 나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흔히 전통 한옥은 지붕에서 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기둥과 도리 그리고 보로 연결된 사각구조가 '땅'을 표현한다면 멋지게 휘어진 지붕 선은'하늘'즉 우주宇宙를 나타낸다.처마선이 안으로 휘어진 것을 안허리곡이라 하고 끝이 위로 올라가고 가운데가 밑으로 휘어진 것을 앙곡이라 부르는데 용마루 부분까지 이렇게 절묘하게 휘어지면서 지붕은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팔작지붕 형태만이 진정한 전통 한옥을 대변한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팔작지붕 모양을 한 한옥은 예전에도 보통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지붕 공사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가는 한옥이라 해도 이런 곡선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전통 한옥 하면 절이나 재실 혹은 궁궐이나 종갓집에서나 볼 수 있는 팔작지붕만 고집하고 그게 아니면 한옥이 아닌 것처럼 무시하는 작금의 세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물론 팔작지붕은 멋있다. 각재 서까래를 걸고 있는 모습.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맞배지붕으로 비교적 간단한 맞배지붕 형태를 택한 이유는 실용적인 면 때문이다.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 한옥집의 천장은 모두 벽지로 발라져 있었다. 밤만 되면 그곳은 쥐들이 대운동회를 열곤 해서 빗자루나 베개를 천장에 던져 잠잠하게 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다락방이 있는 곳은 곶감이나 꿀단지를 넣어두는 수납공간으로 혹은 여름에 공부하거나 낮잠 자는 훌륭한 공간이었는데 그에 비해 천장으로 도배를 해버린 곳은 쥐들의 아지트가 되기 십상이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의 모든 천장을 다락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맞배지붕으로 해야 모든 방에 다락 공간이 확보될 수 있다. 팔작지붕은 구조상 다락을 넣는 곳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락은 조금만 잘 꾸미면 더할 나위 없는 수납공간이자 생활공간이 되고도 남는다. 다락은 완충역할을 한다. 지붕과 방 사이에서 열기를 차단하면서 여름에는 방을 시원하게 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준다. 맞배지붕 시공 중인 모습과 완공 후의 모습. 맞배지붕은 경제적이다. 팔작지붕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거의 30%는 절약할 수 있다. 또 집 짓기 전 설계 시에 염두에 두었던 기와를 사용하려면 맞배지붕 형태에만 가능했다. '고령기와'에서 출시한 평판 기와를 설치할 계획이었는데 비용은 보통 한식 기와의 5분의 1밖에 안 되면서 내구성이나 편리함에서 우수하다.사찰 등지에서 사용하는 한식기와는 3.3㎡(평)당 50만 원이 넘어간다. 그러면 우리 집 지붕 면적이 211.6㎡(64.0평)이니까 지붕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갈 수 있다. 또 생태주택을 지향하면서 시멘트기와를 사용하기는 싫었다. 흙 얹는 대신 서양식 목조주택 시공법으로 ㅣ개판걸기ㅣ서까래 걸기가 끝나고 나면 바로 개판작업이 이어진다. 이 개판 작업을 위해 그 해 겨울 한달 이상 정성들여 준비했다. 견적을 뽑을 때 두께 7푼(21㎜) × 폭 5치(15㎝) × 길이 9자(270㎝) 판재를 주문했다. 이 판재 중에 집 안에서 보일 한 면만 곱게 대패질 했다. 그리고 홈대패로 쪽마루의 이음처럼 암수홈을 팠다. 나중에 지붕에 개판을 덮을 때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사실 이 작업은 목공기계로 해야 하지만 값비싼 기계를 살 수 없으니 그냥 전동대패와 홈대패 그리고 손 대패로 하나하나 먹을 쳐서 맞추어 놓았던 것이다. 기존의 전통 한옥에서 개판은 서까래를 따라서 덮는다.서까래가 휘어져 있기 때문에 서까래 간격에 맞는 넓은 판재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도 최근에 제재기술이 발달한 다음에 생긴 것이고 그 이전에는 산자를 엮어서 위에는 흙을 얹고 아래에도 흙을 발랐던 공법이었다. 옛날 분들은 나중에 밑에 발랐던 흙이 세월이 흐르면서 떨어지면 그것을 보수하느라 많은 돈을 들여야 했던 기억도 날 것이다. 준비한 개판은 서까래와 직각으로 만나 덮게 돼 있었다. 각재 서까래를 사용했으니 평고대를 먼저 걸고 난 후 처마 끝부터 시작해서 홈에 맞추어 덮어 나가니 밑에서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인테리어 효과를 낼 수 있고 기능 면에서도 최상의 공법이라고 자부한다. 서까래를 전부 하나로 엮어주니 지붕이 얼마나 튼튼하겠는가. 예전에 초등학교 교실 바닥 마루판을 기억하면 된다. 그 마루판이 지붕 위로 올라간 것이다.개판을 덮을 때 목수의 손에는 물집이 잡힐 정도로 못질을 많이 한다. 요새는 타정총이 보급됐기에 훨씬 수고를 덜 수 있다. 못도 녹슬지 않는 알루미늄 재질로 돼 있어 이미 서양식 목조주택에서는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 한옥에서도 더 이상 녹스는 기존의 철 못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못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타정 총을 사용하니 인건비를 훨씬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이다. ㅣ인슐레이션ㅣ지붕에 흙을 얹지 않기로 했다. 손수 일할 수 없을 뿐더러 비실용적이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한옥 지붕에 흙을 얹는 이유는 예전에 특별한 단열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흙을 두껍게 올리면 집이 시원한 것은 물론이다.또 흙과 기와를 올려야 집이 잠을 잔다고 한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짜 맞춘 부재들이 지붕 무게 때문에 모두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그런데 여름철 집중호우(게릴라성)를 겪으면서 비가 새는 한옥을 흔히 만난다. 시간당 300㎜가 오는 상황에서 기와가 샐 경우 흙을 얹게 되면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재 서까래 위에 개판을 가로로 대고(한옥의 개판은 서까래와 평행으로 설치) 그 위에 서양식 목조주택에서 사용하는 인슐레이션(보온재)을 올렸다. 이보온재를 선택하는 데 당시 상당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스티로폼을 사용하자니 환경 호르몬이 발생된다고 해서 서양식 목조주택에서 검증받은 그라스울(유리섬유) 인슐레이션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인슐레이션 사이에는 각재를 걸쳐 놓아 다음에 이어질 합판에 못을 박을 수 있게 했다.이런 공법은 동료 목수의 집에서 서양식 목조주택을 지으면서 배운 것이다. 비용도 저렴하지만 매우 합리적인 공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흙을 덮는 공법에 비하면 훨씬 간편하고 저렴하다. 문제는 생태적인 주택을 지향한다면서 왜 이런 공법을 사용했느냐 질문을 받을 때다. 나는 되묻고 싶다. 그럼 반드시 지붕에는 무거운 흙을 두껍게 올려야만 하는가? 이 부분은 손수 집을 지을 분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 생각된다. ㅣO.S.B.합판ㅣ보온재를 덮은 다음 이어지는 공사는 합판을 덮는 일이다. 방수시트를 깔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합판 역시 서양식 주택에서 사용되는 O.S.B.합판을 구입했다. 두께 11㎜인 이 합판은 기존의 합판보다 값은 저렴하지만 기능은 훌륭해서 애용된다. 기존의 합판 4×8 사이즈가 2만 원인데 비해서 절반 값이면 구할 수 있다. O.S.B.합판을 덮는 것은 개판 위에 미리 대어둔 각재에 모서리가 절반씩 올 수 있도록 해야 튼튼하기 때문이다. 이 때도 타정 총을 사용하면 훨씬 편리하다. 대개는 15㎝ 간격에 못을 하나씩 박아야 한다. ㅣ방수시트ㅣ합판 공사가 끝나고 바로 방수시트를 깔아 나갔다. 방수시트는 그 자체로 완벽한 방수를 자랑한다. 기와가 샐 경우 흙은 전혀 방수 기능을 못하는 대신 방수시트는 2차적으로 완벽한 방수를 해준다. 여름을 지나면서 억수 같은 장대비가 올 때 나는 다시 한 번 우리 집 지붕 공정에 대해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아내와 자화자찬을 하곤 한다.방수시트는 한 롤당 2만 원 정도 한다. 방수시트는 기존의 루핑이라는 제품을 보완 개량한 것인데 그 기능이 아주 좋아서 완벽한 방수를 자랑하고 햇볕에 노출되지만 않으면 반영구적인 것이 큰 장점이다. 날씨가 좋은 날 처마 끝부터 겹쳐서 용마루 쪽으로 깔아 올라가야 하는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밑에 부착된 비닐만 벗겨내면 자연스럽게 합판에 달라붙는다. ㅣ평판형오지기와ㅣ합판 공사가 끝나자 기와 이을 준비에 들어갔다. '고령기와'에 평판기와를 주문할 때 지붕의 모양과 면적(평수)만 알려주면 알아서 견적을 내 준다. 15톤 트레일러로 주문을 하니 기와 값만 550만 원 정도였고 운임비와 지붕 공사할 때 쓴 인부들의 인건비까지 합해서 750만 원 정도 소요됐다. 이것도 좀 많이 들어간것인데 용마루 부속 기와는 우리 집에 안 어울려 용마루 부분에만 한식 기와를 다섯단 올리고 망와를 설치해서 100만 원 정도 더 소요됐다. 평판기와를 시공업체에게 맡길 경우 13만 원 정도 소요된다.평판기와는 그 강도가 매우 단단하고 시공하기에 아주 편리하다. 기와 간격에 맞추어 미리 한 치(3㎝) 각재를 깔아놓은 다음 기와를 처마부터 얹어 나가면 되는데 이 기와에는 홈이 하나하나 파여 있어 자연스럽게 맞게 된다. 귀기와 용마루기와 등을 이을 때는 실리콘으로 접착시킨다. 이렇게 맞배지붕 형태를 통해서 실용적이고 비용 면에서 대대적인 절약을 할 수 있었는데도 지금 우리 집처럼 누가 지어 달라고 하면 3.3㎡(평)당 600만 원 정도 받아야 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 한옥을 짓는 비용은 너무 많이 든다. 결국 이 비용 때문에 전국의 전원주택이 모두 서양식 일색으로 지어지는 것이다.한옥 하면 불편하면서도 비싸다는 선입관을 대다수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 한옥이 부흥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는 한옥학교에서 가르칠 때도 끊임없이 역설한다. 전통 한옥 공법은 철저히 배우되 한옥 살림집으로 다시 인기를 끌지 못하면 먹고살기 힘들 거라고……. * 우리 집 지붕 모양은 맞배지붕이지만 서양식 지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 지붕이 너무 단조로워서 명색이 전통 한옥 공법으로 짜 맞추어진 집에 안 어울리는 것 같아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오지 황토기와의 밝은 톤으로 이어진 우리 집 지붕은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에도 한여름 녹색이 우거진 계절에도 그 색조가 자연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고 점점 마음에 들었다. 눈 덮인 황토 한옥에 황토색 오지기와의 모습은 차라리 하나의 수채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을 쓰는 오늘도 지나다니던 길손들이 차를 멈추고"집이 하도 예뻐서 구경 왔다"고 해서 한옥학교 교육을 잠시 멈추고 집 구경을 시켜주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하랴!田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황인찬 님은 네티즌에게'하늘재'로 더 유명합니다. 인터넷 블로그 '하늘재 (http://kr.blog.yahoo.com/hanuljae)'를 통해 집 짓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농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과정까지 밟으며 학문에 경지를 넓혀온 그는 어느 순간 한옥 목수가 되기로 결심했고 한국전통직업학교 교수로 강원도에서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그가 거주하는 덕유산자락 개량 한옥은 3년간 공들여 손수 지은 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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