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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은 전원주택지로 이름난 곳이다. 빼어난 경관을 지닌 데다 자동차전용도로가 부분 개통되면서 전원주택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진열·황정희 부부는 한 달 전, 울산시 2층 슬래브집에서 살다가 손수 23.4평 단층 전통 한옥을 짓고 이주했다. 이들 부부가 15년간 전원주택지를 찾아다녔다는 것도 그렇고, 황정희 씨가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서 흙집 짓기 과정을 수료한 동기생 세 명과 함께 3개월 만에 집을 지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통 건축 방식에다 현대의 편리성을 접목시켜서 적은 면적에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건축정보


·위 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

·대 지 면 적 : 300평

·건 축 면 적 : 본채 23.4평
(별채 - 5.8평 목구조 전통 흙집, 평당 280만 원)

·건 축 형 태 : 1층 단독 전통 한옥

·평 면 구 조 : 현대식 일(一)자형 겹집

·실 내 구 조 : 온돌방 2, 구들방 1, 거실, 주방, 다용도실, 욕실, 현관, 부엌 겸 보일러실

·벽 체 구 조 : 황토 이중 심벽치기

·벽 체 마 감 : 황토 맞벽 후 내벽 황토 미장, 외벽 회벽 미장

·지 붕 재 : 전통 토기와

·바 닥 재 : 황토+운모+백모래 혼합 황토

·창 호 재 : 외부 우드 컬러 하이새시, 내부 목문(세살문)

·난 방 형 태 : 전통 구들 및 심야전기 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정 화 조 : 10인용 오수정화조 설치(혐기여상폭기방법)

·시 공 기 간 : 2005년 2월∼4월(3개월)

·건 축 비 : 평당 500만 원

설계·시공 :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011-556-2007) www.koreachoga.co.kr


이진열(52세)·황정희(46세) 부부는 전원생활을 계획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에 23.4평 전통 한옥을 짓고 이주했다. 이진열 씨는 보건환경연구원 공무원이고, 황정희 씨는 울산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강의하는 교수다. 울산시내 2층 슬래브집에 살다가 한 달 전에 이주했는데, 지금도 이사를 덜 끝내 학교에 강의하러 갈 때마다 살던 집에서 필요한 세간을 한두 개씩 옮겨온다고.


“어릴 적부터 막연히 향토색 짙은 흙집을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시집오기 전에 흙집에서 산 것은 아니에요. 생계를 쫓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느라 어느 한 곳에 정착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자주 간 곳은 지금 금싸라기 참외로 유명한 성주인데, 예전에는 수박농사를 더 많이 지었죠.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여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인 집성촌으로 일가친척이 모여 살았어요. 흙집을 지은 것은 아마 그때의 기억들이 머릿속 깊이 각인돼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흙집을 짓기로 한 직접적인 계기는 울산시의 2층 슬래브집에서 살던 15년 전에 찾아왔다.


“남편의 친구 부인이 온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 여러 곳을 다녔는데 특별히 이상한 데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울산 외곽에 살림집과 식당을 겸한 흙집을 지은 후로는 몸이 말짱해졌어요. 우리 부부가 그 댁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식당이라 음식 냄새가 심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또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몸도 개운했고요. 그때부터 쌍둥이 딸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전원에서 흙집을 짓고 살기로 맘먹었죠.”


그후 이진열·황정희 부부는 전원주택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해 10년 전에 울주군 인보리의 땅 600평을 평당 4만 원씩 주고 샀다. 산으로 둘러싸여 공기 좋고 물 맑아서 샀는데, 갈 때마다 썩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산임수형은 맞았으나 전면이 산으로 가로막혀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더 남향으로 좌향을 틀어 집을 앉히려고도 했으나 뒷산이 받쳐주지 않아 결국 다시 맘에 와 닿는 땅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4년 전 여기에 당시 밭이던 땅 300평을 평당 25만 원씩 쳐서 7500만 원에 샀다고 한다.


“전원주택지를 고를 때 대전제는 이 다음에 애들이 다 빠져나가더라도 스스로 오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친구들과 놀러오고, 결혼해서도 자식들 데리고 놀러올 수 있는 그런 곳 말예요. 여기는 집터 뒤에 골 깊은 산이 있어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요. 가까이 석남사를 비롯해 멀리는 경주까지 30분이면 닿지요. 또한 우리 부부의 근무지까지 40분이면 족했는데, 최근에는 산북농공단지까지 자동차전용도로가 개통돼 더 빨라졌어요.”



15주 교육받고 ‘경주목수’소리 들어


15년간 전원주택지를 찾아다닌 것도 그렇지만, 특히 황정희 씨가 여성의 몸으로 경성대학교 부설 한국전통초가연구소(소장 윤원태) 동기생 세 명과 함께 3개월 만에 자신의 집을 지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평소 한번 맘먹은 일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린다는 황정희 씨.


“15년 전에 남편 친구의 집을 방문한 후, 우리 집도 나무와 흙만 갖고 내 손으로 짓겠다고 맘먹었어요. 4년 전에 집터도 장만했겠다 아들 준해가 작년에 군에 입대했고, 올해 쌍둥이 딸인 슬기와 슬비 모두 대학에 입학했으니 더 이상 전원행을 미룰 이유가 없어졌지요. 사실 나는 적극적이고 용기도 있는 편이에요. 겁도 없이 잘 설친다고나 할까. 딸 쌍둥이를 낳고 두 돌이 되자 대학에 입학해 학사는 물론 석사, 박사 과정까지 밟았으니까요.”


황정희 씨는 2004년 하반기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서 흙집 짓기 과정을 마쳤다. 2003년 윤원태 소장과의 첫 만남부터 오기가 발동했다고.


“윤 소장 님에게 평소에 좋아하는 야생화차 지하 저장고를 들일 맘에 콘크리트 기초 위에다 흙집을 앉히고 싶다고 하자, 발끈하더군요. 우리네 전통 흙집이 뭔지나 알고 찾아왔냐는 거였어요. 그때 내 손으로 흙집을 지을 바엔 이곳에서 제대로 배워서 짓자고 맘을 정했죠. 그 당시엔 일주일 내내 강의를 맡았기에 흙집 짓기 강의를 듣지 못하고, 해를 넘겨서야 15주 강의를 받았어요.”


한국전통초가연구소의 흙집 짓기 과정은 흙집 짓기 이론(4주)과 현장 실습(11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황정희 씨는 8기생 15명과 함께 현장 실습으로 국악인 이선숙 씨의 별채를 지었다. 현재 이선숙 씨는 자신이 살던 흙집을 아토피성 피부염을 심하게 앓는 애들을 둔 제자에게 내어주고 별채에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 별채가 경주목수들이 지은 집보다 더 훌륭하다고 한다.



전통 공법에 현대 주택의 편리성 접목


황정희 씨는 15주 흙집 짓기 과정을 마친 후, 동기생인 김영석(29세), 손정목(41세), 김성열(51세) 씨와 금년 2월 23.4평 단층 일(一)자형 겹집을 짓기 시작했다. 황정희 씨는 학교 강의 관계로, 김성열 씨가 목수의 우두머리라 하는 도편수를 맡았다. 24개의 기둥과 130개의 서까래용 재목의 껍질을 벗기는 데 열흘, 그것을 다시 깎고 다듬는 데만 달포 걸렸다. 그후 주초를 놓고, 기둥에 보를 얹어 그 위에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까지는 삼 일 걸렸다.


“나는 학교 강의를 하면서도 재목의 껍질을 절반 벗겼고, 기둥과 들보가 연결되는 직각 부분에 끼워 넣는 48개의 보아지도 다 깎았어요. 여자지만 실습할 때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지요. 길이 7미터 되는 마룻대를 올려 끼워 맞추는 상량 때는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천장은 대나무로 외를 엮고 황토와 짚을 섞어 이긴 알매를 20센티미터 두께로 올린 후 황토미장을 했다. 또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우진각지붕에는 전통 토기와를 얹었다. 기단에서 하인방까지 높이가 40센티미터인데 맨 밑에서부터 참나무 숯을 30가마(평당 1가마 반) 깔고 소금, 황토, 마사토, 황토, 엑셀파이프, 황토, 맥반석 순으로 마감했다. 6센티미터 황토 미장 위에 신비의 돌이라 불리는 맥반석을 깐 이유는 열전도율이 황토의 2.5배라 난방 효과가 우수하고, 황토와 마찬가지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벽체는 두께가 20센티미터인데 인방과 인방 사이에 40센티미터 간격으로 힘살대를 박은 후, 대나무 외를 이중으로 엮어 그 사이에 짚과 황토를 이겨 채우고 황토 미장을 했다. 이러한 전통 방식에 따라 이 집은 3개월 만인 금년 4월 준공을 보았다.


평면은 편리성을 강조한 현대식이다. 작은 평수임에도 각 실을 적절히 구획해 온돌방 2, 구들방 1, 거실, 주방, 다용도실, 욕실, 현관, 부엌 겸 보일러실 등을 들였다.


“최소한 장작을 때는 구들방 하나와 서재, 안방은 필요했어요. 사실 방은 잠만 자는 공간이기에 작게 내고, 대신에 거실을 넓게 빼고 전면에 통유리 전망창을 내 실내를 밝게 꾸몄어요. 한편 기와집이다 보니 초가집과 달리 기단을 쌓고 집터를 높였어요. 나를 포함한 동기생 네 명이 3개월 만에 이 집을 지었다고 하자, 믿지 않더군요. 상량문에 집을 지은 사람들의 이름과 날짜를 기록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은 실명제네요.”


계곡하고 접한 본채 우측에는 5.8평의 목구조 전통 흙집으로 별채를 앉혔다. 자식들이 부모 눈치 안 보고 친구들과, 나중에 결혼을 해서는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쉬었다 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밟기까지 도움을 준 고마운 이들에게 보답하는 맘도 담겨 있다. 이사한 지 이제 한 달밖에 안 돼 집 안팎이 어수선하다는 황정희씨는 지금 마당 한쪽에 정자를 어떻게 놓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田




윤홍로 기자 / 사진 박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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