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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처음으로 지구 자전설을 주장한 영조 때 실학자이자 문인인 담헌 홍대용의 남산골 별장 이름은 ‘유춘오留春塢’였다. 홍대용은 가야금 뜯는 실력도 대단해 산기슭 유춘오에는 해질녘이면 가야금을 비롯해 거문고, 퉁소, 양금, 생황 등 각양각색의 악기가 한데 어우러졌다. 봄이 머무는 언덕, 유춘오. 그렇게 영혼의 봄을 노래하던 음악 애호가들의 아지트인 유춘오가 경기도 고양시 성석동 언덕 위에 재탄생했다. 물론 그때 그 유춘오는 아니다. 우연하게도 택호宅號가 일치할 뿐 이 두 집의 연결 고리는 없다. 다만 봄의 생기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기는 주인장이라는 점에 공통분모가 있겠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고양시 성석동
·건축형태 : 복층 철근콘크리트
·지역/지구 : 관리지역
·대지면적 : 173평(571.90㎡)
·건축면적 : 75.02평(248㎡)
1층 -47.58평(157.59㎡),
2층 - 27.44평(90.71㎡)
·외벽마감 : 치장벽돌, 대리석, 드라이비트
·지붕마감 : 아스팔트 슁글
·내벽마감 : 대리석 이미지월, 무늬목, 벽지
·바 닥 재 : 대리석, 우드 플로링, 타일
·천 장 재 : 도장, 벽지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이중창
·난방형태 : 가스보일러
·식수공급 : 상수도
·설 계 : (주)건우리종합건축사사무소
02-565-9441
·시 공 : (주)지아이디자인
02-336-0095

“저-기 팽팽한 능선을 그리는 산을 좀 보세요.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긴 호흡으로 수평선을 긋는 산을 보았어요? 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참 장관이에요.”

60여 년 살아오면서 일몰에 대해 요즘같이 길게 이야기하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는 오정환(62) 김현숙(59) 부부는 유춘오가 가진 조망권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다. 특히 2층 오정환 씨의 서재에서 동쪽과 남서쪽을 향해 열린 두 개의 창으로 바라보이는 북한산과 고봉산은 여느 유명 산수화가의 그림 뺨친다. 마치 두 산이 원래 그 곳에 있던 것이 아니라 황혼을 바라보는 이들 부부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일부러 자리를 잡고 앉은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남서향으로 앉힌 이 주택이 주변의 자연 환경을 집 안으로 고스란히 끌어안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창을 사방으로 드문드문 낸 덕분이다. 잘 생긴 액자처럼 벽에 걸린 창들은 채광과 조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간결하고 강력한 공간 분할

자연스럽게 쌓은 돌계단을 오르면 왼쪽으로 건축주가 특별히 요구했다는 넓은 정원이 펼쳐지는 가운데 단정하게 정리된 느낌을 주는 라임스톤의 포치(Porch)에 이른다. 정원을 더 넓게 쓰고 조경을 고려해 덱(Deck) 기능은 2층으로 올렸다.

1층 현관은 외부 동선動線을 집약하는 역할을 하고 진입공간, 공용공간, 매개공간, 사적공간으로 각 공간을 분할했다. 이 집의 독특한 구조 가운데 하나로 현관에 들어서면 시선을 차단하는 긴 복도와 마주하는데 기류가 통하게끔 양쪽으로 낸 창은 시각적으로 시원스럽다. 복도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전면에는 거실이, 후면에는 식당과 부엌이 있다. 이들 공적공간과 안방 사이에는 중정中庭과 계단실을 두어 공간을 한 번 더 분할했다. 집 바깥 정면에서 보면 중정과 시야가 확 트이게끔 창을 낸 계단실이 겹친다. 이처럼 심플한 공간 분할법을 구사하면서 독특한 입면을 창조해 놓았다.

1층은 부부 전용공간으로 안주인의 동선을 고려해 안방·거실·식당·부엌을 근접 배치했다. 한편 안방과 거실 사이에 만든 중정은 거실의 기능과 함께 프라이버시를 높였다. 2층은 출가한 자녀를 위한 두 개의 방과 북한산의 조망과 기운을 끌어들인 서재로 구성했다. 바깥주인의 사색과 휴식을 고려해 서재 남측에는 정원의 기운을 느끼고 이웃의 지붕들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넓은 발코니 겸 덱을 배치했다.

언덕 위에 장방형으로 앉힌 이 주택은 외부인이 집을 올려다봤을 때 위엄과 함께 자칫 앞을 가로막는 듯한 갑갑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을 극복하고자 공간 분할의 설계 콘셉트를 통해 여러 개의 수직과 수평 철근콘크리트가 이루어 내는 기하학적이고 모던한 이미지로 변화를 주었다. 공간 분할에 매개 역할을 하는 창은 외부에서도 집을 관통하는 파란 하늘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창이 내부에서 자연과 동화를 허락하듯 외부에서 역시 건축물의 인공적이고 딱딱한 이미지를 감소시키는 데 한몫을 한다.

연접한 푸르메전원주택단지를 비롯해 타 전원주택들과 어우러짐을 생각해 라임스톤의 온화함과 파스텔톤의 벽돌로 부드럽고 밝은 벽체를 구성하고 지붕선 역시 타 주택들의 선에 맞춰 지나치게 튀지 않게 했다. 반면 간결하고 강력한 매스(Mass) 변화로 차별화와 절제된 외관미는 살렸다.

건강한 삶 위해 자연을 집 안으로

174평의 대지에 연면적 75평으로 올린 이 주택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시공 6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말 완공했다. 3년 전 부지를 마련한 오정환 씨는 마음이 맞는 시공업체를 선정하고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고. 이 주택을 시공한 (주)지아이디자인(대표 최득수)을 만난 것도 다른 건축사와 의견 충돌이 심해 틀어진 후다. 지난해까지 르노삼성자동차 부사장 직에 있던 오 씨는 르노삼성자동차 매장의 인테리어를 담당한 지아이디자인의 깔끔한 일 처리에 신뢰감을 갖고 건축을 의뢰했다고 한다.

지아이디자인은 건축주 내외의 1년 365일 ‘봄이 머무는 언덕’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특히 조경이 취미인 오 씨를 위해 마련한 넓은 정원과 발코니, 중정의 작은 정원 그리고 서재를 비롯한 각 방에 자연을 조망할 수 있고 자연의 기운이 집 안에 머물도록 하는 창문 등이 그것이다. 거실과 안방 사이의 작은 정원은 오 씨가 직접 설계하고 조경한 것으로 오죽과 철쭉을 비롯해 다양한 꽃나무가 집 안에 생기를 더한다. 안방에는 중정의 꽃나무를 감상하도록 앉은키 높이로 장방형의 창을 낸 것 역시 건축주 내외를 배려한 설계 포인트다. 2층 자녀방에도 좌우로 긴 창을 내어 나무껍질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자작나무 숲을 감상할 수 있다. 안주인인 김현숙 씨가 자작나무를 특별히 좋아해서 집의 오른쪽과 담 사이의 노는 땅에 심었다. 키가 20미터까지 자라고 4월이면 꽃을 피울 자작나무는 옆집과의 자연스런 경계를 이루면서 사생활을 보호하고 이웃에게도 좋은 볼거리를 준다.

외관과 하모니를 이루는 인테리어 ‘앤틱&모던’

실내 디자인은 거실에서 보듯이 앤틱(Antique)을 기본으로 집의 안팎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모던한 이미지를 살렸다. 규모를 최대화하여 자연 채광을 통한 시각적 개방감을 극대화한 거실은 바닥에 짙은 빛깔의 무늬목을 깔았으며 벽은 블랙 톤의 대리석으로 마감하고 부분적으로 벽지를 사용했다. 매립형 벽난로와 맞은편의 블랙 대리석을 포인트로 사용함으로써 블랙 특유의 화려함을 축소하고 모던한 감각이 살아나는 효과를 냈다. 제 2의 응접실을 겸하는 식당은 거실과 이어지지만 공간 구분의 효과를 위해 베이지 톤의 벽과 우드 블라인드로 차별화했고 부엌에는 블랙 톤으로 디자인함으로써 거실과 조화를 꾀했다.

계단실 초입에 설치한 미닫이문에서도 건축주를 배려한 설계자의 꼼꼼함이 엿보인다. 미닫이문은 1층의 열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계단 아래 자투리 공간을 깔끔하게 차단한다. 특히 수납이 집안일을 돌보는 가정주부에게 큰 골칫거리인 만큼 주부인 김현숙 씨가 감탄하고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집 짓고 몇 년 더 늙은 기분이라는데 우리는 이 집 짓고 나서 늘 행복했어요.”

멀리 보이는 산이 마치 집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고 사방에 흩어진 꽃송이를 보면 사방팔방이 마치 내 정원 같다고 말하는 김현숙 씨는 성석동 언덕에 새로 지은 이 집의 장점으로 자연 조망을 꼽는다. 전원이라지만 거리상 도시에 가깝고 각종 편의시설을 지척에 있어 불편함도 못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일산 빌라에서 살 때에 비하면 공기가 확연하게 달라 상쾌하고 전원생활의 여유도 누릴 수 있어 시인 천상병이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소풍 온 기분이라고. 7년간 가꿔온 개인 농원에서 나는 두릅을 올 봄에도 실컷 먹을 텐데 유춘오에서는 그 두릅나물 맛과 향기도 전에 비해 더 구수할 것 같단다. 어서 천지가 꽃빛으로 물드는 오월이 되어 유춘오의 진면목을 지켜보고 싶다고 부부는 말한다.田



박지혜 기자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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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은 집] 현대적이고 독특한 형태미를 완성한 고양 75평 복층 철근콘크리트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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