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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한국형’이니, ‘토속적’이니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로 그러한 말을 머리에 인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잘 팔린다. 한옥, 황토, 흙집 그리고 구들을 주제로 한 책들이 서점 진열대를 장식하는 것을 보면 주거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 민족 고유의 정체성正體性 찾기로 보아야 할까? 오랜 경기 침체와 열강의 수입 개방 압력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 양상이나 실태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이 시대 우리 주거문화의 정체성은 어떤 얼굴이어야 할까. 민족의 영산靈山 강화도 마니산자락에 자리한 42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건축정보
·위 치 : 인천광역시 강화군 장화리
·건축형태 : 단층 목구조 황토집
·건축면적 : 42평(부속사 다용도실, 보일러실 4평)
·외벽마감 : 전돌 줄눈 마감, 회벽
·내벽마감 : 한지, 타일(화장실)
·지 붕 재 : 한식 기와
·바 닥 재 : 우물마루(거실, 주방/식당), 콩댐 한지(방), 타일(화장실)
·천 장 재 : 서까래·개판(거실), 루바(주방/식당, 화장실)
·창 호 재 : 수공 세살 목문, 새시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구들
·설계 및 시공 : 행인흙건축 031-338-0983 www.hangin.co.kr


인천광역시 강화군 장화리 마니산 등산로 어귀에 서북향으로 앉혀진 42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 소싯적에 일본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린 건축주가 고국에서 노후를 보내고자 지은 주택이다. 인천공항에서 가까운 데다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냈다고 한다. 담의 키를 웃도는 솟을대문과 그 양옆에 늘어선 돌과 흙으로 턱지게 쌓아 기와를 얹은 담 그리고 담 너머로 보이는 팔작지붕, 언뜻 보아도 권위와 부를 거머쥔 예전의 대갓집을 떠올리게 한다. 마니산을 뒤에 두고 가까이 호수를 품고 있으니 배산임수背山臨水로 지세地勢도 나무랄 데 없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조상들의 지혜를 오늘날에…


처마와 서까래 문지방이 둥근 솟을대문을 열자 하늘을 받쳐 든 듯한 완만한 곡선의 지붕선 아래로 처마를 이루는 서까래와 부연附椽이 가지런히 격조 높은 자태를 뽐낸다. 처마는 서까래가 기둥 밖으로 빠져나온 공간으로, 그 길이만큼 비의 들이침을 막아 흙벽을 보호하고 햇볕을 차단해 여름철에 시원하다. 우리네 조상들은 서까래 하나(홑처마)만으로는 처마를 길게 뽑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처마 서까래 끝에 네모나고 짧은 서까래를 덧얹었다(곁처마). 바로 며느리서까래라고도 하는 부연이다.

기단과 초석 마당에 이르자 넓은 장방형 터 좌측으로 ‘ㄱ’자형 주택이 단아한 모습을 드러낸다. 전돌(검정색 구운 벽돌) 기단基壇 위에 사다리형 초석이 기둥을, 장주초석長柱礎石이 누마루를 받친다. 기단은 집을 지면에서 높여 습기를 차단하고, 주초柱礎라고도 하는 초석은 기둥 밑에 놓여 습기를 차단하면서 기둥이 받는 하중을 지면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장주초석은 누마루 자체가 높은 만큼 이를 받치는 기둥에 빗물이 닿거나 튀기 쉬우므로 키를 높인 것이다. 누마루는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잘 되도록 지면에서 높이 띄운 공간으로 대개 양반가의 사랑채에 많았다. 이 주택의 누마루에 앉아 계자난간鷄子欄干에 팔을 걸치면 낮은 담 너머로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난간과 풍혈風穴(바람 구멍)이 구름처럼 생겨 마치 구름 속 선경仙境에 머무르는 듯하다. 예부터 누마루를 담보다 높이 지은 까닭은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위한 방편이겠지만, 한편으로 농번기 때 농터를 부쳐먹는 일꾼들을 감시하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전돌과 치장 이 주택은 목구조 황토(황토벽돌 조적)집인데 이상하게도 외벽에서 기둥과 전돌 그리고 회벽만 보일뿐 황토벽돌 줄눈마감이나 기둥을 가로지르는 하방, 중방, 상방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도 방화벽을 만들고자 주초와 주초 사이나 중방 하단에 전돌이나 기와 그리고 육면체의 사괴석四塊石으로 벽을 두껍게 쌓아 올렸다. 이 방화벽은 화재 예방뿐만 아니라 흙벽 보호 그리고 치장적 성격이 강했다. ‘행인흙건축’ 이동일 대표는 이 주택의 경우 물에 취약한 흙벽의 단점을 보강하고 외장의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전통 한옥의 방화벽을 응용한 시공법을 접목시켰다고 한다. 보다 발전된 형태로 외벽 창틀 하단에 전돌을 쌓고, 그 안과 상단에 흙벽돌 이중 쌓기를 한 것이다. 대개 목구조 황토집은 흙벽돌 모양과 문양을 살리기 위해 황토 줄눈 마감만 하거나 간혹 황토나 회벽 미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황토벽돌 이중 쌓기 이동일 대표는 황토벽돌 이중 쌓기로 외풍을 잡았으며 그 과정에서 하방, 중방, 상방이 사라졌다고 한다. 즉 작은 황토벽돌(폭 10㎝)로 기둥을 감아 도리 위까지 올려 쌓는 방식으로 틈을 없앰으로써 한기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흙벽돌 이중 쌓기란 무엇일까. 이 대표는 8치(약 27㎝) 기둥 안쪽에 맞추어 폭 20㎝의 황토벽돌(300×200×150㎜)을 쌓은 후, 그 안쪽으로 폭 10㎝의 작은 황토벽돌(195×90×55㎜)을 한 장 더 쌓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작은 황토벽돌은 기둥 안쪽으로 쌓여져 기둥과 외벽(황토벽돌)의 틈 발생을 안쪽에서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외진 기둥(外陳柱 : 건물 외곽의 외진 칸을 감싸는 기둥)과 서까래를 걸치는 도리의 결합 부분도 그 위까지 높여 쌓음으로써 단열을 보강한다는 것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대청을 중심으로 가족을 한자리에…


대청 중심의 공간 배치 이 주택은 ‘ㄱ’자형으로 중앙에 대청 격인 거실을 두고 우측에 현관과 공용 화장실·구들방을, 좌측에 누마루와 드레스룸·화장실이 딸린 안방 그리고 주방/식당으로 공간을 배치했다. ‘ㄱ’자형 전통 살림집은 대개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건넌방이, 좌측에는 안방과 아궁이 부엌이 자리한다. 그러고 보면 이 주택은 주방/식당과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을 제외하면 전통 살림집과 마찬가지로 대청을 중심으로 각 실을 배치한 셈이다. 몇 가지 특징을 보면 먼저, 욕조와 분리시킨 가족 공용 화장실에 거실과 구들방에서 통하는 두 개의 외여닫이문을 냈다는 점이다. 우물마루가 깔린 거실 앞에는 걸터앉기에 편한 쪽마루를 ‘ㄱ’자형으로 내고 전면에는 미닫이 유리창과 한지를 바른 접이식 목木세살창을 달고, 거실과 후면 차실茶室과의 경계에는 미닫이 목세살창을 달았다. 거실과 차실에서는 바로 아일랜드형으로 꾸민 주방/식당 그리고 다용도실과 바깥 장독대로 이어진다. 눈에 띄는 공간이 황토침대 밑에 한식 수납장을 짠 안방으로 황토침대에서 불발기(문 한가운데에 교창交窓이나 완자창卍字窓을 짜 넣고 창호지를 붙여 채광이 되게 문을 바르는 방식) 접이식 창을 열면 누마루로 이어진다.

전망과 건강을 고려한 창과 마감재 이 주택의 창호는 목수들이 현장에서 직접 짠 수공품으로 독특한 역할을 해낸다. 미닫이 세살 창호는 각 실을 구분하고 접이식 세살과 불발기 창호는 집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조망을 시원스럽게 한다. 또한 각 실에 배치한 가구 역시 목수들이 짠 것으로 마감재와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맛을 자아낸다. 거실과 주방/식당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안방과 구들방에는 콩댐(불린 콩을 갈아서 들기름 따위에 섞어 장판에 바르는 일)을 한 한지 장판을, 그리고 물 사용이 많은 화장실에는 타일을 깔았다. 벽면에는 코스모스 잎으로 수놓은 한지를 발랐다. 거실 천장은 2평주二平柱 오량五梁(2평주는 내부에 기둥 없이 앞뒤 평주에 대들보를 걸어 구성한 것, 오량은 다섯 개의 도리로 구성된 지붕틀)으로 서까래와 개판蓋板(서까래, 부연, 목반자 따위 위에 까는 널빤지)이 드러나 있고 방과 주방/식당은 평천장으로 각각 한지와 루바로 마감했다.

매트 기초와 구들 난방 이동일 대표는 전통 한옥과 현대 한옥을 구분하는 기준은 난방 방식의 차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구들방에 불길을 들이려면 방고래가 있어야 하기에 그 높이만큼 지표면에서 올리고, 이 높이에 맞추어 마루를 깔았는데 통풍을 위해 마루 밑은 터놓았다고 한다. 현대에 이르러 난방 방식의 변화는 건물의 기초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즉 지표면과 구들 사이, 지표면과 마루 사이의 공간이 필요 없어졌는데, 그 이유는 방바닥 높이 정도에서 지표면의 습기를 차단하는 바닥을 형성해야 배관을 깔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배관 난방이 용이한 콘크리트 기초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 주택의 경우 구들방을 드린 곳은 외곽 테두리만 줄기초 옹벽으로 세우고 구들이 놓일 방바닥과 아궁이, 굴뚝 자리는 터놓았다고 한다.


이 주택을 ‘전통 살림집과 현대 살림집의 장점을 접목시켜 재구성한 주택’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우리 주거 문화의 정체성 찾기에는 분명한 기준을 두어야 한다. 이동일 대표는 그 기준을 첫째는 ‘집의 배치와 공간 구성’이라는 내용적 측면, 둘째는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인 틀(뼈대와 지붕 모양)이라는 형식적 측면, 셋째는 ‘난방 및 건축 소재’로 기능적 측면을 꼽았다.田


윤홍로 기자·사진 홍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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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집]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찾아서 강화 42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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