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충북 영동 성위제 가옥은 안채가 집 가운데 서향하여 자리하고 안마당을 사이로 앞쪽에 사랑채가 있다. 안마당 남쪽에는 커다란 광채가 놓이며 광채 측면 서쪽이 경영 공간인 바깥마당이다. 바깥마당 앞으로 대문간이 있으며 그 남쪽으로 담을 넓게 돌려 이웃과 경계했다. 북쪽으로 담을 ㄱ자로 꺾어 사랑채에 붙여 사랑마당과 구분 짓고 일각대문一角大門으로 연결했다. 안채 뒤에 넓은 텃밭이 있고 수많은 학鶴이 서식하여 마치 신선지경神仙之景에 이른 느낌이다. 이곳 나무 아래에 조그만 사당채가 있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 위치한 성위제成渭濟 가옥(중요민속자료 제 144호)은 자주 보는 여느 반가班家와 모습이 많이 다르다. 산을 등지고 서향으로 앉혀진 가옥으로 넓은 대지를 품었음에도 격식을 차리지 않은 전형적인 농가에 가깝다. 부농富農이 집을 소박하게 짓고자 한 의지를 느낄 정도로 사랑채와 안채, 문간채, 광채 배치가 편안하다.

이 가옥에서는 내외 개념이 엿보이지 않는다. 상량문에 본채와 부속채 모두 1927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광채만은 18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건축 연대가 사회 전체의 내외 개념이 약해진 일제 중반기 무렵이다. 따라서 이전처럼 내외 개념을 지키기보다 살림집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여 편안하게 계획했을 것이다.

문간채를 따로 두었음에도 사랑채를 독립시켰다. 과거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문이 없이 사랑마당에서 그냥 들어간다. 사랑채 뒤쪽에 자리한 안채는 대지 중앙 서남향으로 사랑채와 약간 빗겨나 있다. 안채 좌측의 커다란 광채 측면 남쪽에 대문채가 있다. 또한 안채 뒤쪽 낮은 담으로 둘러싸인 넓고 평평한 뜰은 예전의 텃밭으로 보인다.

아담하고 정겨운 사당

뒷담에 일각문一角門(대문간이 따로 없이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서 문짝을 단 대문)이 서있고, 그 너머 북서쪽 구석에 사당이 위치한다. 최근 고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사당은, 그 형태가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특이한 형태다. 전면 한 칸 측면 칸 반의 맞배지붕으로 아담하여 정겹기까지 하다.

우선 전퇴前退(집채 앞쪽에 다른 기둥을 세워 만든 조그마한 칸살)에 흙바닥 대신 특이하게 마루를 깔았다. 툇마루가 높지 않아 토방과 별 차이가 없다. 영역을 구분하여 신을 벗고 들어가되, 의식을 편안하게 치르게끔 배려한 재치가 돋보인다.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고자 풍판風板(바람과 비를 막으려고 길이로 잇댄 널빤지) 대신 처마를 길게 뽑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튀어나온 부분의 무게로 도리가 처지는데, 이것을 방지하고자 기둥에 까치발(무게를 받치고자 수직면에 대는 직각 삼각형 모양의 나무나 쇠)을 대 도리를 받쳤다. 나무가 풍족하던 예전에는 큰 부재로 도리를 만들어 처짐에 대비했지만, 당시 나무를 구하기 힘들다 보니 이렇게 처리했을 것이다. 조금 군색窘塞해 보여도 구조면에서 안정감을 준다.

최소 자재로 최대 효과를

이 가옥에서 눈여겨볼 곳은 모습이 특이한 광채이다. 필자도 많은 고택을 답사했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다. 정면 네 칸에 측면 두 칸인 초가인데 개방적인 남쪽 두 칸은 헛간으로, 나머지 여섯 칸은 한 짝씩 끼웠다 떼었다 하는 널빈지로 벽을 두르고 마루를 깔아 광으로 쓰고 있다. 현재 헛간 부분 중 뒤쪽 한 칸은 외양간으로 쓴 듯하다. 상부에는 다락을 드려 쓰임새를 높였다.

구조는 3량 집인데 오량집 구조가 제격일 정도의 큰 규모로, 가운데 높은 기둥〔高柱〕을 세워 곧바로 종도리(마룻대 ;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를 받치게 했다. 측면이 두 칸 정도이면 3평주 집으로 꾸미기 마련인데, 안채처럼 가운데 기둥을 낮은 평주平柱로 하고 창방(기둥 위에 건너질러 장여나 소로, 화반을 받는 가로재) 위에 대공(들보 위에 세워서 마룻보를 받치는 짧은 기둥)을 세워 종도리를 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곳은 그보다 훨씬 원초적인 방법 즉, 기둥을 세우고 장혀로 종도리를 받치게 했다. 옛날 목조 발달 전 사용하던 기법이다.

왜 이러한 방식을 취했을까. 보통 삼량집은 대들보에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친다. 오량집일 경우 대들보 위에 종보를 세운 후 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치거나, 칸살의 크기를 달리하여 가운데 기둥을 고주로 삼아 종보를 세우고 대공을 올리곤 한다. 이러한 것은 대부분 격식을 갖추는 집의 경우이다.

이 가옥도 당시 전형적인 농가의 광채 형식을 취한다. 최소 재료로 최대 효과를 거두기 위해 처음부터 격식을 갖추어 집을 짓지 않았다. 광채에 대들보감 같은 큰 부재 사용은 부담스럽기에 작은 부재로 짓는 구조 방식을 택했다. 이는 초가집이기에 가능했다. 기와집이었다면 서까래에 가해지는 하중으로 이러한 방식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광채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벽체 처리 방식이다. 그 구성을 보면 문을 단 전면부는 흙벽이고, 그렇지 않은 측면과 배면은 기둥에 하방과 중방, 상방을 설치 후 그 사이에 널빈지를 채웠다. 널빈지는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자귀로 대충 다듬은 다음 판판한 면은 안쪽으로, 자귀질한 면은 바깥쪽을 향하게 붙였다. 이렇게 벽체를 만들다 보니 마치 산간의 통나무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광채 부재는 문짝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귀만으로 다듬었다. 그동안 보아온 가옥들 대부분은 대패질하여 잘 다듬기에 이렇듯 거친 모습은 익숙지 않다. 언뜻 무식하게 지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그 투박함 속에서도 세밀함이 묻어나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자귀는 매우 거친 도구이다. 그러나 벽을 보면 제멋대로 생긴 나무를 다듬었음에도 틈이 많지 않다. 자귀만으로 이렇게 정밀하게 지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외형만큼 수더분한 내부

대부분의 집이 권위를 내세우고자 안채를 팔작지붕으로 꾸미는데 비해 이 가옥의 안채는 우진각지붕이고 네 칸 반 전툇집이다. 검박하게 집을 지으려고 한 집주인의 의지가 엿보인다. 안채는 부엌을 동쪽에 두고 안방, 대청, 건넌방순으로 배치했다. 특이하게 안방이 한 칸임에도 건넌방은 안방보다 규모가 큰 칸 반이고, 건넌방 모서리에 툇마루를 드리고 측면으로 반 칸 규모 골방을 배치했다. 이러한 배려로 건넌방 쪽이 상대적으로 규모도 크고 격이 높아졌다.

동시대 지은 집에서 건넌방의 격을 높인 경우가 많다. 1930년 지은 것으로 보이는 음성 팔성리 고가(음성군 문화재자료 3호)도 건넌방의 격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 이유는 안채와 사랑채의 구분이 애매해지면서 건넌방이 집주인같이 중요한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부엌은 살강(그릇 따위를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을 들여 처마 밑 공간을 활용했다. 안방은 한 칸 크기로 전퇴에 툇마루를 놓고 대청을 전퇴까지 튼 전면 개방형으로 구조도 외형만큼이나 수더분하다. 내진주內陣柱를 고주 대신 평주로 사용한 3평주 3량집이다.

사랑채 역시 전툇집이지만 부엌이 없는 쪽 두 칸 뒤쪽을 조금 늘려 규모를 키웠다. 현재 이곳은 통로로 고쳐졌는데 옛 도면을 보면 벽장으로 사용했던 듯하다. 부엌과 벽장을 설치한 곳은 기둥 열이 맞지 않는다. 부엌 쪽 모서리 기둥이 조금 안쪽으로 들어와 지붕이 상대적으로 더 튀어나간 꼴인데 어쩔 수 없이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가 되었다. 캔틸레버란, 한쪽 끝을 고정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된 보로, 외관은 경쾌하나 같은 길이의 보통 보에 비해 4배의 휨 모멘트를 받아 변형되기 쉬우므로 강도 설계에 주의를 요하는데 주로 건물의 처마끝, 현관의 차양, 발코니 등에 많이 사용된다. 이 부분 도리를 기둥에 전달하고자 사당에서 사용하던 까치발을 놓았는데 역시 목수의 재치가 돋보인다. 사랑채는 3칸 규모 초가집이다.

이렇듯 성위제 가옥은 전반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차분한 모습이다.田


최성호 사진 홍정기 기자

글쓴이 최성호 님은 1955년 8월에 나서,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2년에서 1998년까지 (주)정림건축에 근무했으며, 1998년부터 산솔도시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이야기》가 있습니다.
문의 : 산솔 도시 건축연구소 02-516-9575
http://blog.naver.com/seongho080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고택을 찾아서] 격식보다 기능적 편리함을 택한 영동 성위제 가옥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