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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묘막墓幕하면 무덤 가까이에 지은, 묘지기가 사는 작은 집만을 떠올린다. 그렇기에 경기도 여주군의 명성황후(1851∼1895) 생가가 1687년에 부원군 민유중의 묘막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솟을대문과 一자형 행랑채, ㄱ자형 문간채와 안채가 口자형 구조를 이루는 규모가 큰 집이기 때문이다. 이연영(73세) 씨가 충남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가야산 등산로 어귀에 지은 109.1㎡(33.0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도, 그 배경이 명성황후 생가와 비슷하다. 이곳에는 천주교 박해 때 관군을 피하여 들어와 화전火田을 일구던 건축주의 증조부모를 비롯하여 조부모와 부모의 묘를 모신 선산先山이 있다. 건축주는 15년 전 선산에 아버지를 모시면서, 그 가까이에서 살고자 1935년에 지은 고옥古屋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명절이나 기일忌日에 건축주 형제들이 다 모이면 집이 작고 낡아 여간 불편하기에, 올해 그 옆에다 ‘┌ ’형 현대식 한옥인 목구조 황토집을 지은 것이다. 건축주 형제들은 집이 가족 단위 휴양지로 사랑 받는 길이 2㎞인 황락계곡과 가깝기에 평소에도 휴양 삼아 자주 들른다.


건축정보
·위 치 : 충남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건축형태 : 단층 목구조 황토집(홑처마 팔작지붕)
·건축면적 : 109.1㎡(33.0평)
·외벽마감 : 전돌, 황토벽돌 줄눈 마감
·내벽마감 : 한지, 루바, 타일(화장실)
·지 붕 재 : 한식 기와
·바 닥 재 : 우물마루(거실, 주방/식당), 콩댐 한지(방),
타일(화장실)
·천 장 재 : 서까래·개판(거실), 루바(주방/식당, 화장실)
·창 호 재 : 수공 문살 목문, 새시
·식수공급 : 지하수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설계 및 시공 : 행인흙건축㈜ 031-338-0983 www.hangin.co.kr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는 500년의 풍파 속에서도 전국의 성城 가운데 원형이 잘 보존된 ‘해미읍성海美邑城’이 있다. 조선 초기 상왕上王인 태종이 1421년(세종 3년) 서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막고자 쌓기 시작하여 1491년(성종 22년)에 완성된 성으로, 1866년에서 1882년 사이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잡혀온 천주교인 수천 명을 참형한 곳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을 끼고 가야산 방면으로 접어들면 황락저수지와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한 일락사 사이에 109.1㎡(33.0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이 웅장하면서 부드러운 선을 드러낸다. 건축주 이연영(73세) 씨가 천주교 박해 때 관군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화전火田을 일구던 증조부모를 비롯하여 조부모와 부모를 모신 선산先山을 가까이에서 돌보고자 마련한 집이다. 15년 전부터 1935년에 지은 집에서 살다가 명절이나 기일에 형제들이 다 모이면 집이 작고 낡아 불편하기에, 그 옆에다 현대식 한옥 구조로 황토집을 지은 것이다. 당초 기존 집을 헐고, 그 자리에다 집을 지으려고 했으나 지목地目이 하천〔川〕이라 건축이 불가능했다.

전통 ‘┌ ’형에 현대적 실용성 담아

이 집은 기둥과 보와 도리를 사개맞춤으로 짜서 맞추고 부연附椽(며느리서까래) 없이 처마 서까래만 뽑은 홑처마에, 위의 절반은 박공(‘∧’모양)이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인 팔작지붕이다. 집터는 약 826.5㎡(250평)로 동에서 서로 뻗은 주머니형이고 좌측 도로 너머에 수령이 오랜 벚나무와 기존 살림집이 자리한다. 또한 좌측에서 북측으로 산자락을 에돌아 가야산 등산로가 이어지고, 우측으로 나지막한 산이 에두른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유홍준 저著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5대 사찰 중 하나로 꼽은 개심사가 나온다.

집은 주변의 자연과 문화유적과 잘 어우러져 편안해 보인다. 그 까닭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담은 전통 가옥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자연에서 쉽게 구하는 나무와 흙과 돌로 집을 지을 때 천지인의 삼재를 담아냈다. 즉 하늘의 햇빛과 비와 바람 같은 천기天氣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천天의 구조’인 부드러운 지붕, 땅의 습기와 땅의 자기磁氣 같은 지기地氣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지地의 구조’인 기단과 구들과 마루 그리고 천기와 지기 사이에 위치한 사람이 거주하는 ‘인人의 구조’인 방이 그것이다.

또한 이 집은 전통 건축 양식에다 현대 과학과 실용성을 접목시킨 부분에 주목할 만하다. 충청도 일부를 포함한 중부지방의 전통 가옥인 ‘┌ ’형 배치 즉, 동선이 대문-마당-마루(대청)-안방 또는 건넌방, 대문-마당-부엌/광으로 이어지는 이 모든 공간을 현대인의 생활에 맞추어 마루(거실)에서 이어지도록 구성한 것이다. 대청 격인 거실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누마루를 뽑고, 그 뒤에 드레스룸과 욕실이 딸린 안방과 주방/식당·다용도실을, 좌측에는 건넌방과 공용 욕실을 배치했다. 또한 조망을 고려하여 전통 배치에서 주방/식당과 안방의 위치를 바꾸고 실용성을 살려 외부 공간인 화장실/욕실과 다용도실(광)을 실내에 드렸다.

건축주는 좌측의 누마루와 안방 주방/식당은 주인 공간으로, 대청과 건넌방은 공용 공간으로 사용한다. 한편 형제들이 자손을 데리고 다 모이면 30여 명에 이르기에, 그 때에 대비하여 주방/식당을 방으로 쓰도록 거실과 주방/식당 사이에 미닫이문을 달았다. 건넌방 뒤에 드린 화장실은 거실에서 바로 보이지 않도록 그 앞에 장식장을 놓은 점도 돋보인다. 황토 침대를 놓은 안방과 건넌방 모두 모서리 공간을 활용하여 붙박이장을 설치하고, 거실에는 현대식 벽난로를 놓았다.

현대 건축법으로 되살린 전통미

설계 및 시공사인 ㈜행인흙건축의 이동일 대표는 건축주가 15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살림집 옆에 지은 집이라 늘 그곳에 있던 것처럼, 또한 주변의 자연 경관에 폭 안긴 것처럼 디자인했다고 한다. 홑처마 팔작지붕 양식을 따른, 이 집의 특징으로 황토벽돌 이중 쌓기와 외벽 창틀 하단부의 전돌 방수벽 구성, 각 공간별 다양한 형태의 창문 사용을 꼽을 수 있다.

황토벽돌 이중 쌓기 : 외풍과 웃풍을 막으려면 황토벽 자체의 보완이 절대적이기에 예전의 심벽 대신 황토벽돌로 이중 쌓기 방식을 도입했다. 나무 기둥의 질감을 살리고자 기둥(24㎝) 안쪽으로 폭 20㎝ 황토벽돌을 쌓고, 나무 기둥이 수축하며 발생하는 틈-황토벽돌은 진공 압착으로 제작하므로 수축이 현저하게 줄었음-을 보완하고 단열을 강화하고자 내부에서 나무 기둥까지 감싸도록 폭 10㎝ 황토벽돌을 1장 더 쌓는 방식이다. 또한 황토벽돌을 바깥기둥〔外陳柱〕과 서까래를 받치고자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도리의 결합 부분에도 도리 위까지 높여 쌓음으로써 단열을 보강했다.

전돌 방수벽 구성 : 외벽의 중창 하단부에 전돌(까만 벽돌)로 마감하여 장마나 태풍에 대비하면서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느낌을 살렸다. 외부에는 황토벽돌 소자, 내부에는 황토벽돌 대자 크기의 전돌을 쌓고, 그 위에 황토벽돌을 이중으로 쌓았다. 전돌은 방화벽처럼 돌출되지 않으면서 하방, 중방, 상방이 없는 단조로움을 보완하고 전통 가옥의 멋스러움을 살리며, 특히 창틀 하단부가 비에 노출되지 않게 막아준다.

각 공간별 창문 사용 : 외부는 새시를, 내부는 목창을 사용하여 전통 가옥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외부 새시는 복층 유리로 단열을 높였으며, 내부 목창은 문살 바깥에 유리를 끼우고 안쪽에 창호지를 발랐다. 매년 새로 갈아주던 창호지 마감의 번거로움을 피하되 문살로 빛이 투과하는 정취는 그대로 살리고 단열성은 높인 것이다. 문살의 모양은 누마루와 연계된 황토 침대를 놓은 안방에는 불발기(문 한가운데에 교창交窓이나 완자창을 짜 넣고 창호지를 붙여 채광이 되게 문을 바르는 방식)로 멋을 살렸고, 중문 등 미닫이는 촉대구살, 중창 및 한식 창은 세살 목창으로 각 공간마다 창호의 특성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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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초에 착공하여 5월 말에 완공한 이 집은 조상을 모신 선산 가까이 형제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종가宗家 격이다. 건축주는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 그런지 서구식 집은 가벼워 보이는데 우리 집은 묵직하면서 아름답고 편안하다고 한다. 지금도 상량식 때 형제들이 모여 부르는 ‘어머니’ 노래에 맞추어 상량 도리가 올라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田


윤홍로 기자 사진 서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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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으로 지은 집] 조상의 숨결을 찾아서, 서산 109.1㎡(33.0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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