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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도시 중심의 수직적 경관보다 고궁이나 한옥과 같은 수평적 경관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옥에서 대청과 구들 문화를 체험한 이들은 한국인의 정서를 깊이 이해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조상의 지혜와 정情이 담긴 한옥을 살기에 불편한 집으로 치부한다. 혹자는 집을 삶을 담는 '여유로운 그릇'이 아닌, 환금성을 지닌 '각박한 부동산'으로만 인식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러한 가운데 요즘 전원주택을 중심으로 우리네 전통 살림집인 한옥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여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시동리 호숫가에 자리한 142.2㎡(43.0평) 한옥형 목구조 황토집이 그 좋은 사례다.

 

건축정보
· 위 치 : 홍천군 남면 시동리
· 대지면적 : 892.6㎡(270.0평)
· 건축면적 : 142.2㎡(43.0평)
· 건축형태 : 한옥형 목구조 황토집
· 외 장 재 : 전돌, 황토벽돌 위 황토 모르타르
· 지 붕 재 : 한식 기와
· 내 장 재 : 한지 벽지, 황토 모르타르
· 천 장 재 : 벽지, 오량천장(거실)
· 바 닥 재 : 우물마루(거실, 주방/식당), 콩댐 한지(방), 타일(화장실)
· 창 호 재 : 수공 문살 목문, 새시
·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 식수공급 : 지하수
· 설계 및 시공 : 행인흙건축㈜ 031-338-0983 www.hangin.co.kr

 

 

 

 

집터를 잡을 때는 먼저 지리地理를 고려하고, 그 다음으로 생리生理(살아가는 이치)와 인심人心, 산수山水를 고려해야 한다. 네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살기 좋은 터가 아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지은《택리지擇里志》의 내용 중 일부인데, 오늘날 전원주택지를 정하는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수도권에서 강원도로 향하는 길목이라 접근성이 좋고,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아늑하고, 어느덧 호형호제呼兄呼弟할 만큼 주민들이 온순하고, 집 가까이 나지막한 산과 저수지가 있으니 집터로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시동리에 142.2㎡(43.0평) 한옥형 목구조 황토집을 지은 오세강(56세) · 최정균(52세) 부부의 얘기다. 남편 오씨가 외국 기업에 다녔기에 이들 부부는 노르웨이, 캐나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오랜 기간 살았다. 아내는 남편이 오래 전부터 '우리 귀국하면 전원에서 생활할까'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한다.
"싱가포르에 살 때 '전원에서 살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그저 로망(Roman)이겠거니 그렇게 지나쳤는데, 귀국을 앞두고 한옥에 대해 파고들더라고요. 우리 집을 설계 시공한 행인흙건축도 그때 인터넷 서핑을 통해 미리 점찍어 뒀고요. 2006년 8월에 귀국해서는 6개월간 땅만 보러 다녔어요. 처음에는 반대했는데 남편의 주장이 워낙 강하여 따라나섰지요. 별 수 없잖아요. 바늘 가는 데 실도 간다고… 한편 남편이 외국 땅, 외국 기업에서 경쟁하느라 스트레스에 시달렸기에 전원생활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찾는 것이 낫겠다 싶었죠."

 

 

 

 

 

느림의 미학을 담은 현대 한옥

 

오세강 씨는 깊은 산골에다 집을 지으려 했으나 아내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서울 도심에서 1시간 30분 남짓한 이곳이 아내와의 타협점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에서도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산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런 까닭에 산에 접한 집터만 고집했지요. 이 터는 모양이 불규칙하긴 해도 산과 호수가 있으니, 우리 스타일에 맞추어 가꾸자는 생각으로 장만했지요."
이미 건축 형태는 한옥형 목구조 황토집으로, 설계 시공사는 전통 살림집인 한옥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행인흙건축으로 정한 상태였다. 오 씨는 현대식 건물에서 살려면 굳이 전원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외국 사람들과 늘 생활하다 보니 정체성正體性이라고 할까, 가장 한국적인 게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우리의 정서가 가득한 한옥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 서적을 7권 읽으면서 한옥에 담긴 '느림의 미학'을 발견했지요."
2008년 4월 착공하여 7월에 준공한 이 집은 설계를 여러 차례 변경한 끝에 모습을 드러낸 ㄴ자 형태의 한옥형 목구조 황토집이다. 중부지방 한옥은 대개 ㄱ자 형태를 띠는데, 이 집은 산과 호수 조망을 염두에 두고 ㄴ자로 틀어 앉혔다. 좌향坐向은 현관을 기준으로 하면서 남향이지만, 조망권은 동남향이다.
구조체는 자연석 외벌 기단에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도리와 보를 사개맞춤하여 가구架構를 짰다. 또한 홑처마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를 얹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중인방을 설치하고 하단에는 황토벽돌과 치장벽돌을, 상단에는 황토벽돌을 이중으로 쌓았다. 이 과정에서 황토벽돌과 접하는 원형 기둥을 가공했다. 하단은 치장벽돌 줄눈으로, 상단은 황토 모르타르로 마감했다.

 

 

 

 

 

산수山水를 집 안에 끌어들여

 

평면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가족실과 거실 · 안방 · 사랑방(서재) · 누마루를 一자로 배치하고, 좌측에 주방/식당을 덧붙인 ㄴ자형 구조다. 주방/식당뿐만 아니라 각 실의 개구부를 일렬로 배치함으로써 모든 공간에서 호수 조망이 가능하다.

 

 

 

 

가족실과 거실 사이에는 전통 한옥의 대청처럼 접이식 문을 설치하여 필요에 따라 넓게 사용하도록 했다. 거실 천장은 더글러스퍼와 육송(대들보)으로 짠 오량五梁구조인데 10자 기둥을 사용하여 고를 높였다. 마룻대의 상량문은 오세강 씨가 붓글씨를 서너 시간 연습하여 직접 쓴 것이다. 안방과 사랑방 사이에는 원형 포켓도어를 설치하여 두 공간을 일체화시키고, 구들을 놓은 사랑방 옆에는 1자 정도 고를 높여 누마루를 설치했다.
안방에 딸린 욕실은 욕조와 바닥, 벽면을 일본 삼나무(스기)로 마감하고 새시 창호와 목재 세살창과 광창을 냈다. 사랑방에는 머름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세살 목창을 냈는데, 머름대는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할 뿐만 아니라 방 안의 온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이 집에는 최정균 씨가 외국에서 생활하며 틈틈이 모아온 가구가 많다. 기존 가구를 그대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집을 설계했는데, 최 씨는 가구들이 아파트보다 한옥에서 더 잘 어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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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강 · 최정균 부부는 전원생활에 적응하는 단계라 몸은 고되지만 마음만은 편안하다고 한다. 오 씨는 사람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아파트 생활은 그럴 일이 별로 없기에 현대병을 달고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 씨는 남편이 아침 일찍 마당에 나가 목가구를 만들다가 오후 5시 30분이면 퇴근하듯 들어온다고 귀띔한다. 이들 부부는 전원생활을 제대로 즐기려면 체력이 필요하므로 60대는 너무 늦고 50대 초반이나 중반이 적당하고 말한다.

 

 

 

 

- 글 · 사진 윤홍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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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집] 산수山水를 담고자 집을 거꾸로 앉혀 홍천 142.2㎡(43.0평) 한옥형 목구조 황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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