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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최정심 원장(계원디자인예술대학 전시디자인학과 교수)이 텃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8년이다. 재직 중인 대학 부지 한편을 다듬어 몇몇 교수들과 함께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게 인연이 돼 지금에 이르고 있으니 10년이 넘었다. 흔히들 제철 먹을거리만 수확할 수 있어도 '텃밭 잘 가꿨다'라고 하지만 최원장 텃밭은 이수준을 넘었다. "텃밭은 나에게 사고의 밭이자 아이디어의 밭"이라고 말하는 최 원장. 그의 텃밭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홍정기 기자 사진 송제민 기자

 

 

 

 

 

최정심 원장은 낡은 농가주택을 고쳐 쓴다. 슬레이트 패널을 걸쳐 놓은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담을 비롯해 집에 들어간 모든 재료들이 재활용된 것이다. " 예전에는 새 것을 좋아했어요.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바뀌었지요. 자연에서 배웠다고나 할까요."이게 무슨 말인가. 이어진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특성, 순리 그리고 생태를 배우게 됐어요. 텃밭을 시작한 지 3~4년 됐을 때 수확하고 남은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새로운 것을 얻는 만큼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도 생기는구나. 지금까지 만드는 것에만 열중했지 이것이 쓰임을 다하고 난 후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업으로 삼고 있는 디자인에 있어서도 생산과 소비의 문제, 배설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보게 됐답니다."
최 원장은 텃밭에서 순환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했다. 원활한 순환이 이뤄져야 생명·생태계가 건강해지듯 디자인도 작품도 폐기 후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틈나는 대로 바자회를 열어 중고 물품을 교환하는 것도 텃밭에서 얻은 지혜다.

 

 

텃밭에 맞춰 집 구조를 잡다

2002년 강남 아파트에 거주하던 최 원장은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아 지금의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텃밭을 돌보느라 매일 서울에서 학교가 위치한 의왕까지 오가기도 힘들었던 터라 마침 잘됐다 싶어 이주를 결심했다고. 낡은 주택을 헐지 않고 최대한 기존 것을 보존한 채 몇 가지만 반영했는데 우선순위에 둔 것은 역시 텃밭이었다.
집은 주방/식당이 전면으로 고개를 내민다. 통유리로 마감한 주방/식당 앞으로 넓은 덱을 깔고 그 위에는 여러 명이 앉아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도록 식탁을 놓았다. 그리고 덱에서 몇 걸음이면 텃밭이다. 주방 어디서든 텃밭이 훤히 보여 작물 생장을 수시로 관찰할 수 있으며 수확한 작물을 주방에서 요리해 덱에서 바로 즐길 수 있다. 주방/식당→덱→텃밭으로 연결되는 동선을 최단거리로 잡아 편의성을 높이고 눈과 입이 동시에 즐거운 '텃밭 라인'을 형성한 것이다.
주방/식당보다 작은 거실과 다락으로 올라간 침실이 주는 불편함은 최 원장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텃밭 일이 주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는 그냥 즐겁다고 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텃밭을 일구지만 얼마 못 가 포기하는 전원생활자가 많다고 하자 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다. "왜 그렇죠?"라는 단답이 전부다.

 

 

혼작이 준 공존과 공생의 의미

텃밭에서 배운 것은 배설 그리고 재활용의 지혜뿐이 아니다. 공종, 공생의 철학도 얻었다. 흔히들 잡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잠시라도 손을 놓으면 작물보다 높이 자란 잡초로 여간 고생이 아니다. " '정말 뽑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봤어요. ' 과연 무슨 기준으로 뽑을 것인가?'되물었지요. 나름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말이죠. 그 해답을 조선시대 혼작에서 얻었어요. 기준없이 뒤섞어 심고 가만 놔두면 알아서 살아남고 없어지고 하는 것이에요. 잡초가 작물에 피해를 줄까 걱정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자연스레 서로 공존하고 공생하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니 제 마음도 편해졌어요."최 원장 텃밭 한가운데 혼작을 위한 네모난 공간이 있다. 이 작은 네모의 틀이 주는 의미가 이렇듯 깊고도 넓었다.
최 원장은 집 담장을 넘어 세상으로 텃밭을 가져 나왔다. 재직 중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서울 인사동 골목에 텃밭일구기사업을 진행하는데 최원장이 직접 주도하고 나섰다. ' 골목 길채원 프로젝트'로 인사동 골목골목, 옥상, 발코니 등 공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텃밭을 일굴 계획이다.
이미 주민들과 상당 협의가 끝나 실행만 남겨둔 상태. 계원디자인예술대학 평생교육대학원에 '텃밭에서 식탁까지'라는 과정도 만들어 일반인 대상으로 관련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화분 하나만 있어도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그 화분 하나가 주는 의미는 접해보면 압니다. 저에게 텃밭이 사고의 밭이자 아이디어의 밭이 된 것처럼 누구에게라도 각별한 의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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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전성시대] “텃밭은 사고의 밭이자 아이디어의 밭” 텃밭에 맞춰 주택 구조를 잡은 최정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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