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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의 집

김창범

아직 밀풀 냄새가 풍기는 방,
새 문종이로 말끔하게 도배한 사랑방에
정월 햇살이 쏟아진다.
콩기름 먹인 따끈한 장판 위에서
아버지는 이른 점심을 준비하신다.
발갛게 숯불을 피운 풍로 위에
작은 솥을 올려놓고 찬밥에 김치를 썰어 얹는다.
몇 방울 참기름을 곁들여 볶는 정성에
고소한 냄새가 온 방에 넘친다.
팔랑대는 문풍지 사이로
흰 눈 쌓인 마당이 문득 내려다보인다.
소반 가득히 내려앉는 햇살을 받아들고
아버지와 마주 앉는다.
아버지는 도란도란 새해 새 집을 지어 가신다.
내 등을 다독이며 들려주시는 목소리에
툇마루 참새들이 호르르 날아오른다.
나도 활짝 방문을 열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낮달을 바라본다.
올해도 우리 집은 
마음 높이, 높이 지어져간다.


*시작 노트 _ 보이지 않는 집을 지어가며
음력 설을 기다리던 새해 어느 날,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홀로 점심을 준비하신다. 어머니는 이웃집에 일보러 가시고 참 한가로운 낮이다. 안동에서 팔십 리를 더 들어간 낙동강 강변의 작은 마을은 비록 가난하지만, 나에게는 행복한 곳이다. 작은 기와집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시는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살아가는 얘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집이란 겉으로 보이는 집보다는 보이지 않는 집이 더 따뜻하다.“정월의 집”은 아버지와 함께 마음으로 지어가던 우리 집, 희망의 집이다. 또다시 새해 정월이 왔다. 저마다 마음의 새 집, 따뜻하고 아름다운 집을 지어가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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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 시인의 시로 짓는 집] 정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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