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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섬에서

김창범

집을 짓는다면
크레파스로 그리듯 짓고 싶다.
크레타 섬에서 만났던 바람을 따라
하얀 회벽에 파랗게 노랗게 색을 칠하고
창문마다 지중해 푸른 물을 담고 싶다.
층층이 매달린 빨간 꽃들이
멀리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집,
세찬 바람 속에 추녀를 낮추고 
사라져가는 수평선을 지키는 집,  
온종일 신들의 회랑을 거닐다가 
밤이 되면 그리움의 등불을 켜드는 
작고 소박한 집을 지으리라.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길목에서
크레타 언덕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말라버린 꽃다발은 그대로 놓아두리라. 
늦은 오후, 그리스식 테라스에 앉아
석양처럼 가물대는 세월을 집어 올리며
남쪽 바닷가에 하얀 집을 세우리라. 
노란 햇빛으로 벽을 바르고 
파란 그리움으로 지붕을 얹으리라.


시작 노트 _ 집은 추억을 만들고 추억은 기쁨을 짓는다.
30년도 넘었지만 그리스의 크레타 섬은 아직 생생하다. 런던에 체류할 때, 혼자서 그리스를 여행하며 찾아간 곳이다. 아테네에서 배를 타고 연안을 일주한 코스 가운데 지중해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들과 중세 마을들을 잊을 수 없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크레타 섬의 한 마을은 천국처럼 보였다. 배에서 내려 마을 골목을 찾아다닌 일과 지중해의 눈부신 물빛을 반사한 하얀 집들의 자태가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 필자의 마음에 지어진 크레타의 집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 집은 내 마음에 추억을 만들고 그 추억은 나만의 기쁨을 지어간다. 추억의 집을 짓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가 깃든 아름다운 마음의 집을 지어가기 바란다. 그곳은 늘 우리를 기다린다. 언제나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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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 시인의 시로 짓는 집] 크레타 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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