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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가장 빛나는 식탁
- 우리 음식, 놋그릇 테이블 위엔 다양한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 음식, 솜씨, 정성 그리고 이야기. 서양 음식과도 멋진 조화를 이루는 우리 그릇, 유기는 그런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또, 사용하면 할수록 그 빛이 더해지는 느낌 있는 그릇이다. 설날에 가장 빛나는 식탁을 꿈꾼다면, 이런 스타일링에 주목해보자. 글 라이프스타일 스튜디오 켈리 070-8803-1210 http://cafe.naver.com/studiokelly 사진 및 자료 제공 놋이 02-736-6262 www.noshi.co.kr 01 나눔 둥근 합_ 유려한 곡선을 가감 없이 드러낸 합처럼 품위 있는 그릇은 없다. 나물이나 산적 등 이웃 어른들께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을 보낼 때 더 격이 있는 합은 서양 음식을 담아도 멋스럽다. 02 손흘림 사각 합_견과류와 과일, 심지어 해산물을 갓 찌어내 담아도 식감 돋는 사각 합. 03 비정형의 손흘림 샐러드 볼_비대칭형의 미래형 유기인 샐러드 볼. 나눠먹는 음식을 담아내면 돋보인다. 04 손흘림 네모 플레이트 & 브루게스타_치즈나 핑거 푸드 등 와인과 곁들인 술안주 요리에도 멋진 스타일링 센스를 보여줄 플레이트. 05 디저트 볼_아이스크림이나 연시, 과일 디저트 등을 소담스럽게 담아낼 수 있는 미니 볼. 06 나눔 담기_오목한 볼 형태의 개인 그릇. 수프나 죽 등의 국물 요리를 담아내면 온기도 유지할 수 있다. 07 우리 찬 담는 그릇_나물이나 연어 샐러드 등. 동서양 어떤 음식을 담아도 예쁘게 데커레이션이 가능한 찬 그릇. 08 손흘림 냄비_우리 음식이라면 갈비찜이나 탕 요리를 담아내겠지만, 서양 음식의 영역으론 치즈 퐁뒤까지 소화할 수 있는 그릇이다. 09 손흘림 조약돌 플레이트_형태를 자유롭게 표현한 플레이트로 동서양 음식은 물론, 어떤 음식도 그릇 덕분에 더 돋보일 디자인이다. 10 두드림 네모 플레이트_생선 요리나 전, 구이 등 어떤 요리도 담기에 좋고, 특히 스테이크 요리 등을 담으면 온기도 유지돼 좋다. 11 면기_면이나 찜 요리 등을 멋지게 담아 손님상 차림에 내놓을 수 있는 그릇. 둥근 형태를 벗어나 미래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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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가장 빛나는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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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 놀이공간에 역점 둔, 고양 43평 2층 스틸하우스
- 아이를 위한 전원주택 서울을 가른 한강이 북녘땅을 적신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합쳐 내리는 곳, 여기에 김포가 있고 서쪽으로는 강화가, 그리고 고양시가 있다. 자유로를 타고 북녘으로 오르면 펼쳐지는 물이 얼핏 바다라 여겨지지만, 사실 그 정체는 분명하지가 않다. 바닷물이 득세하는 밀물 때면 짠맛이 분명한데, 비라도 많이 내려 유입량이 많아지면 바다도 아니고 민물도 아니게 된다. 이 덕에 예부터 이 지역은 농수산물이 풍부하기로 이름나기도 했다. 강 하구의 비옥한 땅에서는 전국 최고 품질의 쌀이 자랐고, 강과 바다가 합쳐지는 기수(汽水)역에는 각종 물고기가 모여들어 해산물의 보고가 됐다. 이 농수산물은 한강을 거슬러 한양으로 갔고 임진강과 서해를 돌아 개성으로도 갔다. 지금은 철조망에 가려 옛 영화는 역사 속에서 잠시 쉬고 있지만, 언젠가 한바탕 장이 설날이 다시 오겠지. 통일 분위기나 신도시 등의 부동산 호재는 일단 재껴두더라도 고양시와 파주시 일대는 동글한 산세에 삼수(三水)가 끼어 있어 전원주택지로도 한 몫 한다. 의외로 아직 개발이 안된 곳도 많아 수려한 경치와 맑은 공기는 물론이고 여기에 자유로와 1번 국도가 있어 교통도 좋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한 일산과 서울이 인접해 병원이나 쇼핑센터 등 대도시의 편의시설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 두 딸의 인성교육 위해 전원생활 서울 서북쪽에서 통일로를 타면 고양시를 지나 설문동에 닿는다. 웬만한 도시인이라면 의외의 한적함에 놀라고, 또한 호사스런 전원주택단지에 또 한번 놀랄 만한 풍경이다. ‘소달구지 운운’할 것만 같은 진입로 끝으로는 고급 전원주택 수십 채가 단지를 이루며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박용만 씨의 43평 규모의 2층 스틸하우스가 서 있다. 박 씨가 지난해 10월 부지를 매입하고 올 4월부터 3개월 여의 공사 끝에 완공한 것. 박 씨는 여느 전원주택생활자들과는 달리 40세가 채 안된 젊은(?) 나이다. 원래 일산 토박이였는데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부모님과 함께 정발산으로 이사하게 됐고, 결혼 후에는 증산의 아파트에서 6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우연히 시작한 도시생활. 물론 편리한 점이 많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도 커져갔다. 무엇보다도 박 씨는 커가는 두 딸아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의 교육을 위해 전원생활을 결심하게 됐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대도시나 8학군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박 씨 부부는 공부보다는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의 일산은 아직 시골이었던 터라 그 역시 어린 시절을 들과 산에서 뛰놀았는데, 두 딸아이에게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단다. 더욱이 박 씨는 아동미술학원을 운영했던 터라 아동의 정서교육에 누구보다도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설문동 전원단지 주변에는 이미 비슷한 크기의 전원주택들이 많아 그리 적적하지는 않을 듯했고 주변에는 야트막한 산과 논이 있어 전원의 분위기를 한껏 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박 씨와는 달리 도시에서 나고 자랐던 아내 성명숙 씨는 처음에는 전원생활이 망설여졌지만 잘 다듬어진 주변환경에 마음이 놓여 쾌히 동의했다고. 더욱이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 병원 등의 편의시설이 있고, 15분 거리에는 초등학교도 있어 당분간 아이들의 학교걱정도 없었다. 아파트를 판 돈으로 건축비는 충분했고, 대지는 지난해 투자목적으로 평당 60만 원에 매입해두었던 땅이었다. 이미 들어선 전원주택들 사이로 도로포장은 잘 된 편이었고 부지도 닦여져 있어 공사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 386세대의 도시형 전원주택 비닐사이딩으로 마감한 외부는 전형적인 스틸하우스의 모습이지만, 내부는 실크벽지와 패브릭 VP도장을 사용해 고급스러우면서도 차분한 느낌이 강조됐다. 정원에는 잔디는 물론 조경석을 곳곳에 깔아 아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외관상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유난히 넓은 덱(Deck)이다. 이 공간은 전원생활을 좀더 만끽하려는 의도 외에도 실용공간으로의 활용도도 고려했다. 현관과 전면창 앞의 덱 바닥의 일부를 잘라 여닫을 수 있도록 했는데, 그 밑에는 에어컨 송풍기를 넣어 미관상의 문제를 해결했고, 다른 한쪽에는 장독을 땅에 뭍을 수 있도록 했다. 실내는 요즘 건축패턴에 맞춰 각 방의 크기는 줄이는 대신 거실을 크게 확보했다. 특히 천장을 터놓아 거실이 한결 넓어보이도록 했고, 거실 뿐만 아니라 부엌에도 전면창을 내어 환풍과 채광을 최대한 확보한 점이 돋보였다. 설계시 박 씨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두 딸아이의 놀이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었다. 덱은 높이를 최대한 낮춰 안전을 기했고 정원 한 쪽으로 미끄럼틀과 함께 모래를 깔아 아이들이 흙장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락방이 있는 별채도 원래 창고로 쓰려 했지만 결국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개조했다. 2층에 있는 2개의 방도 가구를 전혀 놓지 않은 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무늬벽지를 붙이고, 장난감을 가득 채워놓은 모습은 마치 동화 속의 어느 나라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잠을 잘 때는 각 방을 쓰지 않지만, 머지않아 공부방이 될 것이다. 2층은 복도식이라도 한 쪽의 넓은 공간에 전면창과 통하는 테라스를 만들어 조망을 확보했다. 또한 작은 수납장을 만들어 장난감이나 책을 수납하도록 한 것도 박 씨 부부의 ‘자식사랑’이 배어나오는 아이디어다. 단열재로 사용한 SKY VIVA라는 섬유질 성분은 인슐레이션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단열효과도 떨어지지만, 인체에 무해하다는 장점이 있다. 난방은 심야전기를 이용한 자갈축열식을 택했다. 심야전기보일러는 온수를 이용한 방식과 전열봉으로 방 바닥에 깔아놓은 자갈을 덥히는 자갈축열식이 있다. 후자는 초기 설치비가 비싸지만, 열효율이 높고 고장이 적은 장점이 있다. 정남향에서 약간 서쪽으로 기울어 채광은 괜찮은 편인데다 실내조명도 많이 설치해 화사한 실내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박 씨는 고급스럽게 만들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집을 지으면서 여기저기 잔 욕심을 내다보니 평당 건축비가 중급 수준인 300만 원이 들었단다. 아파트는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 만큼은 가족과 오래 살 것이라 생각하니 박 씨 부부는 어느 한 곳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도심의 편리함은 그대로 유지한 채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생각한 전원생활. 수도권의 전원주택이 가지는 당연하면서도 강력한 또 다른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386세대의 도시형 전원주택이랄까? 田 ■ 글ㆍ사진 신동성 기자 ■ 건축정보 주 소 :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설문동 대지면적 : 180평 건물구조 : 스틸하우스 건물규모 : 1층 - 34평, 2층 - 16평, 부속동 - 9평 건축면적 : 43평 연 면 적 : 60평 건 폐 율 : 28.88% 용 적 률 : 33.38% 외 장 재 : 비닐 사이딩 지 붕 재 : 아스팔트 이중그림자슁글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내 장 재 : 실크벽지, 패브릭 VP도장 바 닥 재 : 강화마루, 타일 단 열 재 : SKY VIVA 난방형식 : 심야전기자갈 축열식 식수공급 : 지하수 건축비용 : 300만 원 ■ 시공 : 시스템건축(031)909-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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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 놀이공간에 역점 둔, 고양 43평 2층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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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게스트하우스 낭만을 건축하다. 07_남해 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
-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여행자의 낙원 남해 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 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는 산해진미로가득해 입이 즐겁고, 곳곳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있어 눈이 즐겁다. 이러한 남해를 천천히 둘러보기 위해 여행자의 쉼터를 찾는다면 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한다. 글과 사진 │ 백홍기 취재협조 │ 남해 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 www.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com 아늑하고 편리함을 담은 이색적인 공간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 필자와는 달리 잠자리가 불편하면 좀체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아늑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독일마을 게스트하우스는 구원자나 다름없다. 여기에 이국적인 독일마을 분위기와 어울리게 이색적이면서 깔끔한 인테리어는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곳 주인은 여행에서 얻은 경험으로 작은 배려도 놓치지 않았다. 옆 사람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조명을 갖추기 위해 각 침대 머리맡에 램프를 설치하고, 간단한 휴대기기 사용하는데 편리하도록 개별 콘센트도 설치했다. 휴대폰 충전을 위해 해매지 않아도 된다. 2층 침대는 원목으로 견고하게 만들어 삐걱거리지 않아 조용하다. “여행을 좋아해 외국에서 살 때 여러 나라를 다녔어요. 여행하다가 숙박할 때 아쉽고 불편했던 것을 떠올려 아늑하고 조용하면서 편리한 공간을 만드는데 노력했죠.” 남해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거실. 스페니쉬 타일과 벽난로, 디자인 가구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담아냈다. 게스트하우스 특성상 개인 여행자가 많아 의자도 개별적으로 배치했다. 프로방스풍의 주방은 상부 수납장을 뜯어내고 거실과 동일하게 바닥을 마감했다. 개수대와 주방 후드는 예전 것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분위기에 맞게 색만 칠했다. 프로방스 스타일을 좋아하는 주인 취향에 맞춰 리모델링한 내부. 오래된 듯한 타일과 목제 가구가 아기자기하고 예쁜 공간을 만들어냈다. 침실은 개인이 이용하는 데 불편하지 않게 개인용 램프와 콘센트를 갖췄다. “내가 원하던 나만의 공간 연출” 7년 전 여생을 보내려고 남해로 내려온 정혜란 씨는 살면서 우연히 독일마을에서 매물나온 주택을 발견하자 마음에 담아두었던 게스트하우스 운영계획을 세웠다.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외국의 B&B(Bed and Breakfast) 시설을 보고 은퇴하면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3년 전 이 집을 보고 나만의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싶어졌죠. 기본 구조는 그대로 놔두고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로 바꿨어요.” 약간은 낡은 느낌에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프로방스 스타일을 좋아하는 정혜란 씨는 색이 바랜 듯한 타일로 공용 공간을 꾸몄다.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도 이에 맞춰 적절하게 배치했다. 각 실은 편안한 쉼을 제공하기 위해 그린 톤의 벽지를 사용했다. 가장 눈에 띄는 벽지는 다락이다. 천장이 낮은 다락은 누웠을 때 답답하지 않고 나무 그늘에 누운 느낌을 담아 밝은 나뭇잎 벽지를 사용했다. 주방은 입구에 설치된 미닫이문을 제거해 드나들기 편하게 했다. 주방 상부 수납장은 뜯어내 답답함을 걷어냈다. 아래 수납장과 후드는 예전 것을 분위기에 맡게 색칠해 재탄생 시켰다. 제거한 주방 미닫이문은 다락에서 난간과 칸막이로 새롭게 배치됐다. 보물섬에서 보물찾기 “남해를 둘러보기엔 하루는 너무 짧아요. 구경할 때도 많지만, 한 곳을 가더라도 천천히 남해의 정취를 느껴보길 권해요.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마을 골목 사이를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남해를 가면 첫 째 해안도로를 추천한다. 그리고 계단식의 아기자기한 논이 펼쳐진 다랭이 마을, 1960년대 파독 광부과 간호사의 노후를 위해 조성되기 시작해 남해를 대표하는 명소인 독일마을,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해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내려다보이는 보리암 등이 있다. 어느 한 곳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마음에 여유를 담고 느린 발걸음으로 천천히 둘러보길 권한다. 유럽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형 체스판. 놀이공간이면서 쉼터이고 포토존인 이곳은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넓진 않지만 가볍게 산책하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기에 좋은 마당. 사시사철 푸르게 조경수를 갖췄다. 독일마을 내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걸어서 관광하기에 좋다. 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는 정혜란 씨가 남해에서 만난 언니 양해경 씨와 함께 운영한다. 친자매는 아니지만 이들을 단단하게 엮어준 건 남해의 아름다움이다. 이 둘의 향후 여정은 어찌 될지 모른다고 한다. 다만 확실한건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의 행복을 거두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남해 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 주인장 정혜란 씨 “아름다움에 반해 자리 잡고 게스트하우스까지 하게 됐어요” Q. 남해에 자리 잡게 된 이유는? A. 아름다움에 반했죠. 마을과 해안도로, 일출과 일몰 등 모두 그림처럼 예뻐서 살게 됐죠. 처음부터 게스트하우스를 계획하고 온건 아니고, 경치 좋은 이 집을 보고 다시 생각했어요. Q.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A.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이 찾는데 이유도 가지각색입니다. 공통점은 쉬러 오는 거죠.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는데 세 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한 프랑스 부모가 성장한 아이들에게 모국의 정서를 보여주려고 8명의 가족이 다 함께 찾았던 일입니다. Q. 운영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A. 운영한지 3년 됐는데 딱히 어려움 점은 없었어요. 운영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예컨대 모든 손님이 다 함께 놀 때는 함께 즐기지만 한 사람이라도 쉬는 사람이 있으면 방해되지 않게 주의할 것과 적당히 마무리해줄 것을 부탁하죠. Q. 특별한 공간이 있다면? A. 모든 공간마다 정성들여 특별하지 않은 곳이 없죠. 그런데 손님들은 야외에 설치한 체스를 유독 좋아하는 거 같아요. 유럽에서 공원에 설치된 것을 본 기억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도 잠시 생각하며 쉬는 공간으로 계획했죠. 이국적이고 나름 예뻐서 그런지 사진도 가장 많이 찍는 포토존이 됐어요. GUESTHOUSE INFO 주 소 경남 남해군 독일로 21-3 전 화 010-6593-5432 홈페이지 www.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com 출입시간 입실 13:00~, 퇴실 11:00 가 격 1인 1박 30,000 (평일, 주말 동일) 성수기 1인 1박 35,000 (여름 성수기,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연휴) 수용인원 5실 17명 조식제공 08:30 ~ 10:00 토스트, 계란프라이, 계절과일, 커피 물품시설 노트북 주변관광 독일마을, 원예예술촌, 해오름예술촌, 바람흔적미술관, 국립남해편백자연휴 양림, 설리해수욕장, 보리암, 다랭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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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게스트하우스 낭만을 건축하다. 07_남해 독일마을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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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한 조각'마다 '한 땀' 정성을 담아 하나로 다양한 분위기 연출
- 조각보'한 조각'마다 '한 땀' 정성을 담아 하나로 다양한 분위기 연출 할머니가 장에서 사오신 암탉, 설빔으로 만들어 입을 고운 옷감, 고향집에 다녀온 사람들의 양손 가득 쥐어진 갖가지 음식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보자기에 싸여져 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 쓰여진 보자기는 이처럼 그 용도에 따라 형태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물건을 담거나 싸는 기능을 넘어 그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특히 천 조각을 이용해 만든 조각보의 경우, 새로운 예술품으로 인정을 받는 등 또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고 있다. 전통적인 분위기의 소품을 이용해 설날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것은 어떨까. 선물을 싸는 보자기에서부터 벽걸이 장식용 보자기 등 다양한 보자기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물건을 싸거나 덮기 위해 만든 보자기는 복(福)을 담아 두는 도구로 상징되기도 한다. 물건을 운반하는 데에 수시로 사용했던 보자기는 크게 수를 놓은 ‘수보’와 천 조각을 이어서 만든 ‘조각보’로 나뉘어진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담아 만든 조각보는 어떤 대상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처럼 복을 비는 마음을 대신했던 조각보는 ‘쪽보’라고도 하며, 지방마다 밥부재, 보재기, 보래기, 포대기, 보자, 보따리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불려 우리나라의 보자기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가깝게 사용해 온 생활용품이다. 물건을 싸고, 담고, 덮는 등 그 용도가 다양하다. 그에 따라 옷보, 이불보, 상보, 예물보, 예단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러한 보자기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사각형이 대부분이며, 특수한 상황에 따라 사주단자나 예물을 담을 때에는 변형된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해 왔다. 삼베나 모시, 명주 등으로 의복을 만들고, 남은 옷감을 그냥 버리기에 너무 아까워 한 조각씩 모아 만들었던 조각보에서 조상의 근검절약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쌀 한 톨이라도 아끼며 살아야 했던 일반 서민층에서 주로 사용된 조각보지만, 최근에는 그 예술적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는 추세다. 조각보의 명인으로 인정받은 김현희 씨의 경우, 일본에서 단독으로 전시회를 가졌고, 그의 작품은 일본 고등학교 가정교과서 표지에 실려 있을 정도다. 관리방법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조각보의 재료는 모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모시는 천연섬유질을 추출하여 만든 옷감으로 손질하기가 매우 까다로워 주의가 필요하다. 중성세제를 사용해 세탁할 경우, 오랜 시간 담가두지 않도록 주의하고 반드시 손세탁을 한다. 짜는 방법은 비틀지 않고 위아래로 가볍게 눌러 짜야 모양의 변형이 없다. 인사동에 밀집한 전문점 이러한 조각보가 최근에는 집안이나 실내를 장식하는 데 훌륭한 소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름철에 사용하는 발이나 커튼을 대신해 실내에 장식되는가 하면, 테이블을 장식하는 테이블러너, 밋밋한 벽면의 미술작품을 대신하는 등 실생활에 사용되는 범위가 매우 넓어진 것이다.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 만들었던 옛날과는 달리, 기하학적인 무늬를 디자인하며 다양한 색상으로 직접 손바느질로 잇는 조각보는 이제 더 이상 생활용품이 아닌 ‘작품’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인사동에는 이러한 조각보를 한두 점 걸어놓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매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서로 다른 모양의 무늬와 색의 천을 하나씩 이어 만든 방석과 쿠션부터 핸드폰 고리, 찻잔 받침, 핸드백 등 조각보를 응용한 생활용품이 다양해 보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특히 외국관광객들의 조각보에 대한 감탄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의 생활 속의 지혜가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구성미로 재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田 보자기에 담긴 다양한 의미 보자기는 ‘보자(褓子)’라는 한자어에 접미사 ‘-기’가 더해져 만들어진 말이다. 한편, 보자기 외에도 ‘보따리, 보퉁이’ 등이 있고, ‘보’가 단독으로 쓰이는 것에서, ‘보(褓)’라는 한자어에 접미사 ‘-자’가 더해져 이루어진 말로도 볼 수 있다. ‘보(褓)’자의 본래의 뜻은 강보(襁褓), 곧 포대기 또는 어린아이의 옷이었는데, 후에 물건을 싸는 ‘보’의 뜻으로도 전의되어 쓰였다. 복을 기원하며… 보자기는 전통혼례 때에 사주 단자나 채단을 겉은 다홍색, 안은 청색인 보자기에 싸는데, 이것은 청홍(靑紅) 보자기가 복을 부르는 매체이며, 복을 싸 두는 도구라는 데에 기인한다. 수보는 조각을 이어 만드는 조각보와 달리 많은 문양을 수를 놓아 만든 것이다. 나무와 꽃을 비롯하여 학, 봉황, 공작 등 상서로운 새와 나비, 풀벌레 등이 많이 사용된다. 이런 것을 보에 수놓은 까닭은 이들이 지닌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민속에서 나무는 신성시되고, 꽃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부(富)를, 열매는 다복(多福), 다산(多産), 다남(多男)을 상징한다. 새나 나비는 기쁨과 복을 상징하고, 원앙은 부부 간의 금실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양을 수놓은 수보 또한 초복의 도구임을 알 수 있다. 간직하려는 마음을 상징… 물건을 싸는 보자기는 푸는 행위보다는 싸는 행위가 강조된다는 점에서, 간직하려는 심리적 태도와 비밀로 하려는 마음을 상징한다. 조선 시대부터 우리나라에는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메고 다니며 파는 봇짐 장수가 있었다. 보부상(褓負商)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이미지는 고전 문학에서 두루 나타난다. 그러나 현대 문학의 경우, 보부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봇짐을 이고 다니며 행상하는 여인들의 이미지가 주로 나타난다. 서양에서는 보자기가 물건을 싸는 의미로서보다는 무엇을 덮는 베일(veil)의 의미가 더 보편적이다. 특히 이슬람의 전통에서 베일로 덮는 것은, 이 세상과 격리시켜 혼자만의 내면에서 신과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에서도 베일은 신의 최상의 보호물로 인식되는데,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남을 볼 수 있는 능력의 획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출처 한국문화 상징사전/동아출판사 글·사진 조영옥 기자 촬영협조 솝리(02-725-2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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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한 조각'마다 '한 땀' 정성을 담아 하나로 다양한 분위기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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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을 만든다(I)
- 집은 사람을 만든다 (I)양동 마을에는 고택이 많다.그 중에서도 향단(보물 제412호)과 손동만 씨 가옥인 서백당(중요민속자료 제23호)이 유명하다. 필자는 두 고택을 답사하고 너무도 대조적인 환경에 놀랐다. 향단은 양동 마을 입구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있다. 향단의 정면은 독특하다.우리나라 건물에서는 지붕의 합각면을보여주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 향단은 합각면을 정면으로 보여 줄뿐만 아니라 연속해서 보여줌으로써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고 매우 화려해 보인다. 외부의 모습하고 달리 향단의 내부는사랑채에서 바라보는 정경 외에는 집안이 너무 답답하고 보잘 것이 없었다. 필자에게 향단에서 살라고 한다면 한시라 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안채는 행랑채와 안채의 기단 사이에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 반빗간 형식으로되어 있는 부엌을 거쳐 들어간다. 안채는사방 두 칸 밖에 안 되는 안마당에 면해있다 안마당의 규모가 다른 집보다 작은데다가 처마까지 튀어나와 하늘을 가리고 있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돌아 나오면서 그러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심성은 편협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향단을 본 뒤에 찾아간 서백당은 전혀다른 느낌이었다 안채의 안마당은 넓으면서 밝았고, 집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있어 마을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원한조망을 가지고 있었다. 향단과 비교하면마치 천상 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집에들어가자 매우 편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집주인(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이 반색을 하며 우리를 맞았다. 찬찬히 잘 보고 가라는 말과 함께 직접 이곳저곳의 문을 열어주었다. 집과주인의 인상이 닮아 있음을느꼈다. 향단과 서백당의 분위기가 너무도 차이가 나는 것이 인상 깊어 답사를 안내한 분에게 두 집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했더니 ,이곳 마을 주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향단의 주인은 꼬장꼬장한성격으로 마을 일에 비협조적인 반면, 서백당의 주인은 성격이 원만하고 마을 일에도 협조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집의분위기대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성격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국의 수상을 역임했던 윈스턴 처칠이 "사람은 집을 만들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 "라고 했던 것에 딱 들어 맞는 경험이었다.틀을 씌우듯 집을 닮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환경은 사고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환경이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집과 같은 인공 환경까지 포함한다. 집은 아니지만 도구 하나가 우리의 삶에 변화를 준 사례를 보자이제 핸드폰은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되는생활필수품이다. 핸드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네 생활도 많이 변했다.우선 '기다림' 이라는 단어가 갈수록 생소해진다. 얼마 전까지도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기다림에 대한체념이 깊게 배어 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오가는 데 시간이걸렸다. 따라서 오랜 시간 무조건 기다리는 것은 사감을 지치게 한다. 기다리는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위로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그러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조금만 늦어도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것은 연락할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연락할 수 있는 만큼 말없이 조금만 늦어도 화를 낸다 그만치 만남의 방식도 변했다. 예전 같으면 날짜. 시간, 장소를 결정하고 만났지만, 이제는 당일 만나자는 내용만 정하고 다른 것은 상황을 봐 가며 결정한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는 '코리안 타임' 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자주 늦었기 때문에 생긴 단어다. 우리가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한 것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부터 몸에 밴 시간관념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시간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예절로자리 잡았다 따라서 약속 시간을 얼마나잘지키는가에 따라 사람됨을 판단했다.서구보다 나중에 산업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핸드폰이없던 시절에는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이중요한 매너 였다. 핸드폰이 생필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상황은 뒤집혔다 이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약속 시간에 늦을 때 핸드폰으로 사정을 말하면 웬만큼 용서하는 사회로 바뀌었다. 핸드폰이 없었다면 결코 있을 수없는 변화다. 이처럼 도구 하나가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데 하물며 집은 어떠할까. 집도 사람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 유형이 어떠하든지 간에 변화는 행동뿐만 아니라 정서와 사고에도 영향을 끼친다. 햇볕이 들지 않는 집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든지 장마가 계속될 때 마음이우울해지는 증상을 느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 우울증 환자가 증가한다는 의학의 통계하고도 일치한다. 등산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계곡을 지날 때는 답답하다가도 능선에 올라가면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을느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감정이 누적된다면 끝내는 우리의 정서로 뿌리내릴 것이다.아랫목과 윗목의 질서 의식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겼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고사 (古事)는 집과 주변의 환경이 성격 형성 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교훈을 보여 준다. 그만큼 집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생 활과 정서를 형성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 했다. 그러면 집이 한국인의 정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아보자. 먼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수직적 질서 의식에 집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이야기해 보겠다 수직 질서를 강조하는 원인이 유교의 질서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수직적 관계를 강화하는 데는집의 구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재래의 온돌은 지금의 온돌하고 구조가 다르다. 현재의 온돌은 바닥에 깔려 있는파이프를 통해 더운물을 순환시켜 방을덥힌다. 바닥에는 파이프가 일정한 간격으로 깔려 있고, 펌프로 더운물을 강제로순환시키므로 방바닥이 골고루 따뜻하다. 과거의 온돌은 불길이 직접 닿는 아궁이 쪽(아랫목)과 연기가 빠지는 굴뚝 쪽(윗목)의 온도차가 컸다 구들을 잘 들인(시공한) 집에서는 비교적 고른 온도를보였다. 그러나 구들을 제대로 들이지 못 한 집은 같은 방 안에서도 온도의 차이가 심해, 윗목은 앉기조차 힘들 정도로 차가 웠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방 안에서도 바 닥의 온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 • 하석으로 자리가 나뉜다.파이프로 바닥 난방을 하는 집에서는 방바닥의 온도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요즘의 집에서 방석을 사용하지 않는 것 은 난방 방식이 과거하고 다르기 때문이 다. 예전처럼 온돌의 난방이 일정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방바닥이 뜨겁거나 차갑기일쑤였는데, 그것을 방석으로 적절히 조절했다 지금의 온돌은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방석을깔고 앉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방바닥이 균일한 온도를 유지하는 현재의 집에서는 아랫목과 윗목의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상석과 하석의 구분이 모호(模糊)하다. 그래도 설날에 세배(歲拜)할 때 보면, 방에서 상석의 위치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세배를 받는 사람이 앉은 자리가 그 집의 상석이다. 대개는 문과 멀리 떨어져 있고 장을 배경으로 앉는 위치가 많다. 그러나 안방에 침대를 들여놓은 집에서는 상 • 하석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침대가 있는 방에 사람이 모이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거실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상 •하석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텔레비전이 잘보이는 곳이 상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상하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 막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유치원에서는 온돌에 관련된 노래를 가르쳤다. "윗목에 앉아라, 아이 차가워 아랫목에 앉아라, 아이 뜨거워"라는 가사인데 전통 방식으로 만든 온돌을 체험하지 못한 우리아이는 노랫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노랫말에 생활을 담지 못하다 보니 아이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글 최성호(산솔도시건축 대표)글쓴이 최성호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서 '산솔도시 건축'을 운영 중입니다. 주요 건축작품으로는이화여자대학교 유치원 박물관 • 인문관 약학관, 데이콤중앙연구소,삼보컴퓨터사옥, 홍길동민속공원 마스터플랜,SK인천교환사 등이 있습니다.산솔도시건축 02-515-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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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을 만든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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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간 직접 보고 들은 일본 펜션의 모든 것
- 3박4일간 직접 보고 들은 일본 펜션의 모든 것 -------------------------------------------------------------------------------- 앞서 두 곳의 펜션 운영주들이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펜션을 운영했던 것에 비해 [<아미 펜션>의 반상씨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펜션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경우다. 따라서 펜션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어 펜션 전문 컨설팅 업체인 <가즈토 호프>에 의뢰해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컨설팅 비용으로 지불한 금액은 약 3백만엔(약 3천만원)이었으며 이 금액에는 입지 선정에서부터, 마케팅 방법, 메뉴 설정을 비롯해 운영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또 <가즈토 호프>를 통해 컨설팅을 받았던 42개 펜션 운영주들과 정기적으로 친목 모임을 갖고 지금까지도 운영에 따른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한다. -------------------------------------------------------------------------------- 월간 <전원주택라이프>와 <렛츠고펜션월드>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일본 전문 여행사 <야호재팬>이 주관한 <일본 펜션투어>가 지난달 9일부터 12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가이드를 제외하고 양사 관계자를 포함해 모두 18명이 참여한 이번 투어는 <애초 20명 미만일 경우엔 행사를 취소한다>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시도인 만큼 <실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양사의 의견일치와 기신청자들의 의견을 들어 예정대로 진행을 결정했다. 참가자들 중에는 부부끼리 참가한 경우가 많은 편이고, 유형별로는 대부분 펜션 운영을 계획중이거나 일부 참가자중엔 이미 펜션을 운영하고 있어 일본 시스템의 벤치마킹 차원에서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현지 일정은 나리타공항에 도착해 하코네와 닛코를 거쳐 후쿠시마에서 돌아오는 일정이었으며 첫날은 펜션에서 직접 머물며 직접적인 서비스를 체험하기도 했다. 대체로 오전을 관광 일정으로 할애하고, 오후를 펜션 일정으로 나누어 진행했는데 일본 펜션 운영주들과의 만남에선 진지한 분위기에서 많은 정보들이 쏟아졌다. 3박4일간 진행된 <일본 펜션투어>를 진행 순서에 따라 답사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아침 10시쯤 출발한 비행기는 12시를 조금 넘겨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 나온 시간은 1시쯤이었고 일행들은 미리 대기해 있던 버스에 몸을 실으며 본격적인 <일본 펜션 투어>에 들어갔다. 동경의 날씨는 한마디로 무덥고 끈적끈적했다. 수은주가 35도를 육박하는 데다 습도가 높아 몸으로 느껴지는 더위는 수치상의 수은주를 훨씬 웃돌았다. 현지 안내를 맡은 <야호재팬>의 김훈씨는 후텁지근한 지금의 날씨가 전형적인 일본의 여름 날씨고, 비가 자주 내리고 흐린 날이 많아 쾌청한 날이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3시간 정도를 달려, 목적지인 <시오사이 펜션>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5시가 가까울 무렵이었다. 운영주인 아오끼씨의 안내를 받으며 펜션에 도착한 일행들은 각자 방을 배정 받아 여장을 푼 뒤, 펜션 이 곳 저 곳을 둘러보았다. <시오사이 펜션>은 일본 가나가와현 남부 <시오사이>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다음날 목적지인 하코네와는 버스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모두 10개의 객실과 자그마한 온천, 테니스장을 부대시설로 갖추고 있는데 외부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흰색과 하늘색이 조화를 이룬 남국풍 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이미지는 지은 지 10년 정도 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한 두 차례 손질을 하였음에도 깔끔하고 산뜻한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6시30분부터 시작된 저녁 식사는 어촌 마을답게 어류와 해산물 중심으로 제공되었다. 운영주가 직접 낚시로 잡았다는 어류를 비롯해 3종류의 회와 꽃게, 소라, 닭고기 스테이크, 밥, 된장국, 샐러드, 과일 등이 소량으로 그릇에 담겨 개인별로 제공되었다. 가짓수는 제법 많은 편이었으나 조금씩 제공되었던 터라 한국의 푸짐한 식단에 익숙한 참가들에겐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식사가 끝나고서는 단체로 간단히 온천을 즐긴 다음, 8시30분부터 본격적인 펜션 공부에 들어갔다. 순서는 간략하게 아오끼씨로부터 펜션에 대한 소개를 듣고, 참가자들의 질문과 답변 순으로 이어졌으며 현지 안내인 김훈씨가 통역을 맡았다. 시오사이 펜션, 경기 좋을 땐 연간 7억 매출 <시오사이 펜션>의 아오끼씨는 펜션을 열기 전에 여관을 먼저 운영했다고 한다. 이 여관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데 여관 운영으로 모아진 돈으로 지금의 펜션을 오픈했고, 올해로 운영 10년째를 맡고 있다고 한다. 한 때는 특별한 마케팅을 펼치지 않아도 될 만큼 운영이 잘 되어 연간 7천만엔(약 7억원)까지 매출을 올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만큼의 매출엔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초창기 1~2년 정도는 적자를 보았고, 3년째에 들어서서 비슷하거나 흑자로 돌아섰는데 5년째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의 안정된 수익이 발생했다고 한다. <시오사이 펜션>의 이용 가격은 1박2식(저녁, 아침)에 주중은 1인당 8천5백엔(8만5천원), 주말은 9천5백엔을 받고 있으며, 시즌에는 1천엔 정도를 더 얹어 받는다. 그러나 설날이나 추석, 그리고 황금 연휴 기간에는 1만3천5백엔 까지 받는다고 한다. 지금도 주말에는 대부분 만실(滿室)이며, 주중에는 약 40%의 객실 가동율을 보여 10개의 객실 중 4개 정도가 찬다고 한다. 메뉴는 오픈 초기엔 프랑스 요리를 중심으로 제공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호응도가 줄어 일본식을 가미했고, 이후부터 반응이 좋아지고 생명력도 길어졌다고 한다. 특히 바닷가에 위치한 만큼 대체로 회를 중심으로 한 해산물이 기본 식단으로 꾸며지데 이는 시오사이 펜션의 가장 큰 특징이며 방문객의 호응도 매우 높은 편이라고 한다. 고객층은 초창기에 프랑스 요리를 특화시키면서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30대 이후의 직장인 및 가족 단위 고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운영주 아오끼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요리와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도 했었는데 이런 이유로 이제는 자연스럽게 요리에 초점을 맞춘 펜션이 되었다. 홍보 및 마케팅은 잡지와 인터넷을 이용한다. 많은 펜션이 생기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갈수록 홍보비용이 증가해, 초창기엔 3~5%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매출의 15%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인터넷은 단순히 펜션을 소개하는 정도로 실시간 예약 시스템은 없으며 홈페이지를 보고 전화를 해 예약하는 시스템이다. 인력 운용은 평상시 2명이 관리하고 있지만 바쁜 시즌에는 5명까지 인력을 증원하는데, 이 때엔 아르바이트나 친척의 손길을 빌린다고 한다. 이밖에 인터넷에 할인 쿠폰을 만들어 이를 프린트해서 가져오면 일정액을 할인해 준다든가, 일정한 저녁 시간(2~3시간 정도) 동안엔 1인당 9백80엔만 내면 마음대로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한 점도 <시오사이 펜션>의 전략이자 특징 중 하나이다. 1시간 가량이 예정됐던 <펜션 공부>는 1시간30분 정도 진행되어 10시쯤 마무리되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낯선 곳에 대한 궁금증과 뒷 얘기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모두들 20여분 거리의 포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본에서의 첫날밤이 깊어질 무렵, 비로소 어색함과 서먹함이 사라지고 오랜 친구인양 서서히 이야기꽃,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하코네, 아시호수와 오와꾸다니 계곡 다음날 아침.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태풍이 일본을 관통하며 적지 않은 양의 비를 뿌렸다. 오늘 일정은 하코네로 이동해 오전에 <아시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와꾸다니 계곡>을 본 뒤 오후에 <보네 펜션>을 들리기로 한 날이다. 어쨌든 정해진 일정인 만큼 그대로 진행을 하기로 했으나 워낙 많은 양의 비가 내려 모두의 마음이 무거웠다. 더욱이 태풍이 일본 내륙을 따라 그대로 북동진 할 것으로 예보되어 자칫 일본에 머무는 내내 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더 마음들이 무거웠다. 9시쯤 <시오사이 펜션>을 출발한 버스는 10시쯤이 되어서야 하코네 <아시 호수>에 도착했다. 그러나 세차게 내리는 비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고, 급기야는 아시 호수 유람선이 폭우로 운항을 중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행은 빗속의 <아시 호수>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 예정지인 오와꾸다니 계곡 역시, 폭우로 가느냐 마느냐를 놓고 다소 의견이 분분했다. 일단은 가보자는 의견이 많아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했는데, 이동 중, 김훈 가이드는 이런 날은 자칫 유황 냄새가 더욱 지독해 노약자나 임산부는 특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실제, 30여분을 달려 올라간 오와꾸다니 계곡은 입구에서부터 강한 유황 냄새를 풍겼다. 낮은 기압으로 땅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유황 가스와 수증기는 하늘 높이 오르지 못하고 바닥에 깔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유황 냄새도 더욱 진하게 풍겼다. 온천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에 모두들 신기해했고, 여기 저기서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는 장면도 한국의 방문객들에겐 매우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유황 온천에 찐 계란도 한 두개씩 맛을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 비가 조금 잦아들어 우산을 드는 것만으로 돌아다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코네의 한 식당에서 일본식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 일행은 다음 예정지인 <보네 펜션>으로 향했다. 단순 숙박지 아닌, 휴식의 공간 <보네 펜션> <보네 펜션>은 하코네 아시호수로부터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펜션 주변으로 여유 부지가 많은데다 운영주가 체계적으로 잘 관리해 운영 17년째를 맞고 있음에도 매우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대체로 산의 경사지면에 들어앉아 앞쪽으로 일반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고, 뒤쪽으로는 온천과 테니스코트가 있는데 뒤쪽으로부터 산 정상부에 이르기까지는 감귤나무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앞쪽으로 민가와 너무 가깝지 않느냐]는 참가자들의 질문에 운영주 키타무라씨는 [17년전 이 곳에 펜션을 지을 때만해도 주변으로 민가가 없었으나 지금은 바로 앞까지 주택이 들어서게 됐다]고 말했다. 키타무라씨에 따르면 초창기엔 여행 일정에 맞춰 단순히 자고 가는 숙박시설로만 인식했으나 지금은 누구나 편히 머물다 가는, 즉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 펜션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주요 이용층은 직장인들이 많은 편인데 업무를 마치고 바로 펜션으로 향하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맨 몸으로 오더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객실은 모두 4가지 스타일로 이용 요금은 8천9백엔에서부터 1만2천엔 사이며, 음식은 프랑스풍의 요리가 제공된다. 홍보는 전날 들린, 시오사이펜션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홈페이지와 잡지를 통해서 알리고 있었다. 운영은 초창기엔 부인과 함께 운영했으나 부인이 세상을 뜨고 부터는 혼자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끔 아들이 도와주기도 하는데 미혼인 아들이 얼른 결혼을 해서 아들 내외가 함께 운영에 참여해 주었으며 하는 것이 키타무라씨의 가장 큰 바램이라고 한다. 이밖에 <보네 펜션>의 몇 가지 특징은, 우선 펜션에 들어 와서는 실내외 어디에서든지 금연이라는 점과 또 주변에 축제나 이벤트가 있을 때에는 이용객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해 이러한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1시간 이상 진행된 보네 펜션에서의 미팅은 3시를 넘겨서야 마무리되었고, 일행들은 버스에 올라 다시 동경으로 향했다. 하코네에서 동경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고, 호텔에 도착하면서 잠깐의 휴식과 식사를 마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지었다. 닛코, 주젠지 호수와 게곤노다케 3일차가 되었다. 화창하게 개인 푸른 하늘이 어제의 궂은 날씨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밤사이에 태풍이 동경을 완전히 빠져나가면서 3일차 아침은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까지 가세해 마치 한국의 가을 하늘을 연상시켰다. 안내를 맡은 김훈씨는 [습도도 높지 않고, 하늘까지 새파란 이런 날은 일본에선 매우 드믄 경우]라고 알려 주었고, 참가자들의 얼굴도 어제와 달리 모두 밝아져 있었다. 오늘은 동경 신도청전망대를 거쳐 닛코로 향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시간 관계상 동경 신도청 전망대를 아래에서 잠시 관람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동경에서 닛코까지는 3시간 가까이 소요되었고, 목적지인 주젠지 호수와 게곤노다께 까지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주젠지 호수는 화산의 분출에 의해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호수로 해발 1천7백 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아래에서 호수까지 오르는 길이 매우 험난하고, 지대가 높아 기온이 낮은데다 바람까지 선선해 호수 정상에서의 느낌은 쾌적하고 매우 상쾌했다. 주젠지 호수를 둘러보고, <나베 정식>으로 점심을 마친 일행은 이어 <게곤노다케>라는 거대한 폭포로 자리를 옮겼는데 순간, 방문객 모두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지난밤 내린 폭우 탓에 폭포의 물줄기는 장관을 이루었고, 심한 물보라까지 가세해 참가자 모두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더욱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백미터 아래도 내려가 밑에서 올려다보는 폭포의 모습은 더욱 장관이었다. <태풍이 준 선물>이라고 운을 뗀, 가이드 김훈씨는 이렇게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쏟아지는 장관도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어서 <꽤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오전 관광을 마친 일행은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아미 펜션>으로 향했다. <아미 펜션>은 주젠지 호수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애초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땅을 일괄적으로 매입해 펜션 및 숙박시설 용으로 분양했기 때문에 5개의 펜션이 밀집해 있다. 본관과 별관으로 분리된 아미 펜션은 별관에 4개의 객실이 있고, 지난해 완성된 별관에 3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다른 펜션에 비해 침실과 욕실, 거실의 구분이 명확히 구분되었고, 실당 면적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애초엔 미국 스타일이었으나 지금은 유럽 스타일로 바뀌었고, 내외부 인테리어나 가구들도 모두 영국에서 들여 온 앤틱들로 차 있었다. 운영자 반상씨 역시 여느 펜션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운영 경험을 통해 터득한 많은 정보들을 쏟아 내었다. 컨설팅 업체를 통해 시작한 <아미 펜션> 앞서 두 곳의 펜션 운영주들이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펜션을 운영했던 것에 비해 <아미 펜션>의 반상씨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펜션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경우다. 따라서 펜션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어 펜션 전문 컨설팅 업체인 <가즈토 호프>에 의뢰해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컨설팅 비용으로 지불한 금액은 약 3백만엔(약 3천만원)이었으며 이 금액에는 입지 선정에서부터, 마케팅 방법, 메뉴 설정을 비롯해 운영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또 <가즈토 호프>를 통해 컨설팅을 받았던 42개 펜션 운영주들과 정기적으로 친목 모임을 갖고 지금까지도 운영에 따른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한다. <아미 펜션>의 또 다른 특징은 예약 시스템이다. 앞서 들렸던 다른 펜션들이 운영자와 고객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예약이 이뤄지는 반면, <아미 펜션>은 중간에 <가즈토 호프>가 이 역할을 일정 부분 대신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가즈토 호프>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들이 컬설팅한 여러 펜션들을 소개하고, 고객들이 이를 보고 마음에 드는 펜션을 실시간으로 예약을 하게 된다. <가즈토 호프>에선 예약 사실을 해당 펜션에 알려주고 펜션에서는 이용객으로부터 이용료를 받아 일정액의 수수료(5~6%, 또는 8%)를 <가즈토 호프>에 송금하는 시스템인데 올 초부터 도입해 운영중이라고 한다. 반상씨에 따르면 그동안 잡지 광고를 통해 전화로 예약하는 경우가 절대적이었으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예약 시스템이 점차 늘어, 카즈토 호프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이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일대일>로 고객을 상대하면서 전화 예약을 받는 것에 비해 훨씬 업무적으로 부담이 줄일 수 있게 되었다며 잡지 광고 보다 비용도 저렴한 편이어서 지금의 시스템에 매우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아미 펜션의 이용 요금은 본채의 경우, 8천8백엔이며 별채는 1만8백엔이다. 별채는 지난해 3천만엔을 들여 새로 지은 것으로 3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유럽 분위기 특히, 영국풍에 초점을 맞추었고, 객실마다 독립된 온천 시설도 갖추고 있어 인기가 좋다고 한다. 매출과 순익에 대해서는 대략 연간 2천2백만엔 정도라고 밝혔는데 앞서 들렸던 펜션들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어서 다소 의아스러웠다. 반상씨는 오픈이 후 한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다 불과 수년 전에야 적자와 흑자를 넘나드는 수준으로 올라왔으며, 지금도 썩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어서 생활하기 다소 빠듯한 실정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쉬운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 <아미 펜션>을 둘러보고, 나온 시간은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3일차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일본 펜션 투어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일행들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가 있는 후쿠시마로 향했다. 닛코에서 후쿠시마까지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으며 7시 가까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이동 중 버스 안에서 김훈씨는 애초 예정됐던 후쿠시마 발 비행기가 태풍의 영향으로 이륙 여부가 불투명해 좀 더 안전을 위해 센다이 발 비행기로 계획을 변경했다고 알려 주었다. 3일차 저녁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일행은 일부 호텔 내에서 쇼핑을 하거나 온천욕을 즐겼고, 일부는 마무리 차원에서 간단히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이 자리에선 이번 투어가 대체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며, 아쉬운 점으로는 거리가 멀어 이동시간이 많았다는 점을 꼽았는데 다음 투어 때는 이런 점을 감안해 일정을 잡아 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몸은 좀 피곤했지만 마지막 날 밤이 가는 것이 아쉬웠던지 삼삼오오 늦도록 맥주 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펜션에 대한 얘기, 일본에 대한 얘기, 이번 여행에 대한 얘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 후쿠시마에서의 마지막 밤이 점점 깊어갔다. 4일차 되던 날. 어제와 마찬가지로 맑게 개인 하늘이 유럽의 가을을 연상시켰다. 호텔 창문으로 비치는 전경의 호수는 맑고 투명했으며 파란 들판에 점점이 들어선 알록달록한 집들은 흡사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김훈씨에 따르면 이 곳은 겨울철 스키어들의 발길이 잦은 곳으로 한적하고 조용한데다 기온도 대체로 낮은 편이어서 휴양지로 제격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1시30분 발 비행기였기 때문에 일행은 10시쯤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고, 센다이 공항까지는 2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1시30분을 조금 넘겨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했고, 푸른 창공을 박차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 ■ 글 사진 류재청 ■ 시오사이 펜션 www1.ocn.ne.jp/~kmps ■ 보네 펜션 www4.i-younet.ne.jp/~bonefeme ■ 아미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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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설악에서 근기로 빚다 송천 떡마을 아주머니들
- 강원도 양양군 서면, 33가구가 살고 있는 산골 송천리는 떡을 테마로 널리 알려져 떡 만들기 체험과 떡을 맛보려는 이들의 발길이 사시사철 꾸준하다. 쿵덕쿵덕 떡 메를 치고 밤을 새워 떡을 빚은 지 38년. 떡을 팔아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고 나니 그 새까맣던 머리카락은 백발이 성성해졌다. 명절은 멀리 있어도 그와 상관없이 매일같이 떡을 빚는 송천 떡집 아주머니들을 만났다.글 박지혜 기자 사진 백희정 기자 취재협조 송천떡마을 033-673-7020 songcheon.invil.org "당거 주소 당거 주소/ 오야라 장창 당거 주소/ 웃가래서 힘써 주 먼/ 밑가래서 당거 줌세/ 어깨야 다리야 한심 써라/ 오늘 밤도 야심허다~"까만 하늘 총총한 별들마저 숨죽이고 개들도 침묵하는 깊은 밤, 하늘 에서 먹물을 뿌린 듯 시커먼 마을 가운데 유독 한 집만이 불을 밝힌 채 다. 꿈결에 들은 이야기 털어내고 사부작사부작 반쯤 감긴 두 눈이 그 불빛을 향해 간다. 웅크린 어깨, 주머니에 지른 손에는 아직 어제의 떡 만들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단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다시 떡 만들러 나간다."그래도 어떡혀. 먹고살라면 해야제."꼭두새벽 3시. 송천 떡집에 15명의 아주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떡을 만들기 시작한다. 각자의 자리가 정해진 것도 누가 지시하는 것도 아닌 데 그 일사불란함이 물새 떼가 군무 추는 듯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 시각 이 곳에서 떡을 만들다 보니 한결같이 동작이 몸에 뱄다. 그래서 일하는 내내 따로 말이 필요 없다."새벽 3시면 어김없어. 1년에 딱 두 번, 그러니까 추석하고 설날. 그 날만 쉬어."떡은 시간이 지나면 굳어버리고 상품 가치를 잃으니 만들어 바로 팔 거나 배송해야 한다. 그러니 새벽에 일할 수밖에 없다. 새벽 일이 고되 긴 해도 달리 생각하면 이곳 떡 맛이 좋아 매일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 다는 말이니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오전 6시 속초에서 출발하는 고속 버스 첫차에 떡을 실어 보내면 서울에서도 오전 중에 받을 수 있다.본격적인 작업은 새벽 3시부터지만 당번은 자정부터 준비 작업을 해 둔다. 전날 물에 불려 놓은 쌀을 찌고 빻고 반죽해 덩어리 떡을 빚어 놓 으면 새벽에 떡판을 깔고 인절미, 바람떡, 팥소 찰떡, 약밥 등 그날 주 문한 여러 가지 떡 모양을 잡고 포장까지 작업을 이어간다. 이렇듯 일 을 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가 부지기수다.아침 6시경 작업을 마치고도 몇몇은 쉬지 못한다. 떡 만들기 체험 손 님들이 오면 이를 지원하고 배송 시간 여유가 있는 다른 주문 떡을 만 들기도 한다. 짬짬이 집에 가서 눈을 붙이기는 하나 찰떡처럼 몸에 뭍 은 눅진한 피곤은 쉬이 가실 리 없다. 새벽 밝히며 떡 만들기를 38년홍천에서 인제를 거쳐 푸른 동해까지 인도하는 44번 국도를 타고 한 계령의 위엄스러운 바위산과 장쾌한 계곡의 비경에 감탄하고 내리막을 달리다 구룡령으로 빠지는 길로 접어들면 바로 송천 떡마을이 보인다. 사방으로 산이 보위하고 계곡을 낀 구릉지로 아늑한 마을이다. 분위기 가 편안하고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때문인지 마을 안에 있으면 세상을 잊을 정도다. 과거 탁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주민의 30~40%가 탁씨 성 을 가졌다.예전에는 옛 지명을 따서 소래 떡마을이라 했고 지금은 송천 떡마을 로 유명해졌다. 기계로 떡을 만들지 않고 38년 전 마을에서 떡을 만들 左떡 만드는 아주머니들. 왼쪽부터 김웅자(56세) 손원옥(69세) 박경자(60세) 김매자(62세) 박희순(65세) 신이순(67세) 김연화(65세) 씨. 다른 8명의 아주머니들은 기자가 아침 잠을 자는 사이 잠을 청하러 집으로 돌아갔다. 1 마을에서 유독 허름한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보수를 하지 않아 깨진 기와와 휘어진 주심도리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2 마을회관과 떡집(가운데). 농어촌 테마 마을 사업 지원을 받아 지은 현대식 방앗간이다. 어 팔기 시작한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일일이 손으로 빚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떡메로 치고 손으로 떡을 빚는 떡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고객도 꾸준하게 다녀간다. 마을은 어떻게 떡을 만들게 됐을까.떡 사업은 마을 부녀회 주도로 시작했다. 송천 토박이 탁동리(68세) 씨는 젊은 시절 시내에 나가 화물운송 사업을 하 며 전국을 다니다 20년 전 아내 김매자(62세) 씨와 다시 고향으로 들어왔다.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김매자 씨가 떡마을 내력을 이야기한다."옛날부터 이곳은 농토가 적고 논농사도 조금씩 지어 농사만으로 먹고살기 힘들었어. 생계유지를 위해 집에서 먹고 남은 쌀과 곡물로 떡을 만들어 마을 밖으로 나가 팔았어. 낙산사나 오색약수 관광객들에게 팔았지."1970년대 초 한계령에 도로가 뚫리면서 설악산과 동해 관광객들이 송천리 앞을 지나다니게 됐고 마을 아주머니들은 관광객들에게 떡을 팔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밤을 꼬박 새워 떡을 빚어 이른 아침 광주리에 이고 인근 오색약수와 낙 산사, 하조대로 행상을 나갔다."그런데 그것도 못하게 했어. 잡상인이라고 관광지에 못 들어오게 하고 들키면 벌금을 물게 했어. 도망 다니면서 행 상하고 그러다 들켜 벌금 물기도 하고… 지금은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연로해서 일을 그만두신 분도 계시고 그래."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같은 큰 대회를 치르면서 국립공원 법이 강화되는 바람에 행상을 금지했을 때 이야기다. 그렇 게 떡 팔던 아주머니들은 2년간 장사를 거의 접었다가 마을 부녀회에서 나가서 팔지 말고 마을에서 팔아 보자는 의견을 모아 7~8명이 모여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처럼 마을 입구에서 팔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송천 떡을 한 번 먹어 본 사람들의 맛있다 는 입소문이 나면서 송천 떡마을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설악의 자연과 어머니의 근기로 빚은 떡송천 떡 맛을 본 사람들은 자꾸 이곳 떡만 찾게 된단다. 보기에는 같은 인절미고 바람떡인데 맛이 다르다는 얘기다. 왜 맛이 다른 걸까. 우선 재료에서 다르고 만드는 과정에서 차이가 난다. 송천이 위치한 자연 조 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로 오색약수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을 논 에 대고 농약을 쓰지 않는다. 떡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공기 좋고 물 맑은 이곳에서 직접 재배하고 얻은 것으로 사용한다. 단오 절식으로 가 장 고가인 취떡에 들어가는 수리취는 산꼭대기 양지 바른 곳에서 직접 채취해 오며 다양한 떡에 두루 들어가는 쑥은 오뉴월 송천 언덕에 지천 으로 나는 쑥을 캐다가 일 년 내내 쓴다. 떡 하나에 자연의 풍미를 그대 로 담았다고 하면 될까. 떡끼리 서로 붙지 않게 하기 위해 보통 기름이 나 물을 쓰는데 송천에서는 벌집에서 꿀을 내리고 난 다음 벌집 찌꺼기 인 밀랍에 들기름 섞은 것을 쓴다. 이것도 떡 맛을 좋게 하는 요소다.송천 떡이 요즘 사람들 입에 익숙해진 떡 맛과 다른 이유가 또 있다. 보통 유통되는 떡은 공장에서 생산한 쌀가루로 만든다. 이 쌀가루를 보 다 싼 값에 공급하기 위해 수입쌀이나 오래된 쌀로 종종 쓰는데 이런 재료로 만든 떡은 질기거나 딱딱하고 식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송천 떡 은 그해 농사지은 쌀로 필요할 때마다 찧고 쪄서 만들고 있다. 입안에 들어가면 졸깃졸깃하면서 부드럽다.그리고 무엇보다 빠지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더 있다. 마을을 경제적 으로 윤택하고 활력 넘치게 만든 '우먼 파워'들의 자부심과 열정이 떡 맛에 더해진다. 어머니들의 희생과 근기가 없었다면'송천 떡'브랜드 도 없었을 것이다. 송천 떡집 아주머니들은 대개 환갑을 넘겼고 최고령 이 69세다."떡 만들어 팔아 자식들 학교보내고 시집장가보내고, 다들 그렇지 뭐." 떡을 만들다 보니 젊음은 바람처럼 가버렸고 팔이 욱신거릴 때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으려나'하는 마음도 든다. 10년 후엔 누가 이곳에서 떡을 만들고 있을까. 대중교통도 음식점도 하나 없는 이곳은 여느 농촌 처럼 노년층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마을이 영농조합법 인을 세워 떡 사업 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과 일거리를 만든 덕분에 젊 은이들이 하나둘 안착하고 귀농·귀촌 인구도 늘고 있다.손원옥(69세) 할머니의 등은 앉으나 서나 떡 빚을 때처럼 구부정하 다. 할머니는 팥고물처럼 거멓게 물든 손으로 말랑말랑한 인절미에 고 물을 듬뿍 묻혀 기자의 입안에 쏙 넣어준다."옛날에는 떡 광주리 머리에 이고 망령고개를 넘어 20리를 걸어 나가 떡 팔러 다녔어.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이야기 있지? 그게 송천 마을 전설이라는 얘기도 있었어. 그 전에는 감나무가 아주 많아 감마을이라 했지. 그땐 더 힘들었어. 감을 따다 두 광주리씩 이고 나가 팔았는데 그게 어찌나 무거웠던지. 감에 비하면 떡은 훨씬 가벼워 좋았지. 그 많던 감나무도 어데 갔나 없어졌어. 오지도 그런 오지가 없 었어. 황톳길에, 오두막집에, 밥도 겨우 먹고 살 정도였는데… 그래서 옛날엔 감 팔아먹고 살고, 지금은 떡 팔아먹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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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설악에서 근기로 빚다 송천 떡마을 아주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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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세시기] 앞뒷집 떡메 치는 소리 동구밖까지 들려온다
- 음력 십이월은 늦겨울이라 소한(小寒) 대한(大寒) 절기다. 눈 덮인 산봉우리 해 저문 빛이다. 낮에 잠깐 얼굴은 들어낸 해는 어느새 사라지고 밤은 길다. 새해 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가 ……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는다. 깨강정 콩강정에 가을내 말린 곶감하며 대추, 화롯불에 생밤이라. 술 동이에 술이 가득하고, 돌 틈에 샘물 소리 졸졸 흐른다. 앞뒷집 떡메 치는 소리 예서 제서 들려 온다……. - <농가월령가 12월령 중에서> 한겨울 추위에 장독이 깨진다’는 말이 있듯 쩡! 쩡! 추위에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한겨울, 소한 대한이 걸쳐 있는 1월(음력 12월)은 겨울 중에서도 단연 그 한기(寒氣)를 자랑한다. 올해는 포근하고 눈이 많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큰 폭으로 기온이 떨어지는 기습한파가 가끔 몰아친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 시기 가장 걱정하는 건 추위지만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게 있다. 바로 화재와 가뭄이다. 건조한 날씨로 불이 일어나기 쉽고, 가뭄이 들 때가 많아 보리 등 겨울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농가에선 과거 소한·대한 때 꿈쩍도 않고 집에만 있었지만 요즘은 비닐하우스 일을 비롯한 여러 특용작물 재배로 인해 바쁘기는 매 한가지다. 그래도 한겨울엔 동치미 국물에 군고구마, 군밤을 먹으면서 따뜻한 아랫목에서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은 팽이치기, 연날리기, 스케이트 타기 등을 하며 밖에서 뛰노는 게 제일이다. 태양력으로는 이미 새해가 시작됐지만 우리네 마음에 새해는 1월 하순에 있는 설날이다. 예부터 음력 12월은 설을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보냈다. 설날 전까지의 생활방식이 잔뜩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라면 설 이후에는 무언가를 준비하는 활력으로 보낸다. 이제는 봄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겨울 명절을 지내기 위해 도시에서 올 손자손녀를 위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팽이나 윷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 간단한 팽이 만들기 향나무 팽나무 등 단단한 나무를 5∼10cm 높이로 깎고 한쪽 끝을 둥글린 다음 둥근 쇠알을 박는다. 팽이채는 길이 40∼50cm의 싸리나무 같은 막대기 한 끝에 30~40cm의 끈을 달아 채찍을 만든다. 채찍은 질긴 가죽이나, 광목, 무명, 실, 닥나무 속껍질을 꼬아서 만들고 끝을 15cm 가량 남긴다. ■ 간단한 윷 만들기 1.장작윷(장 윷, 가락 윷): 박달나무, 밤나무, 붉은 통싸리나무를 길이 15∼20cm, 지름3cm로 자르고 길이로 반을 쪼개 네 가락을 만든다. 2.종지윷(밤 윷, 좀 윷): 5cm정도의 나무 조각 네 짝을 맞추어 조그만 종지에 담아 내젓다가 바닥으로 던진다. 주로 윷점이나 놀음에 썼다. 이 밖에도 정식 윷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콩이나 팥, 연필을 쪼개어 던져 놀던 콩 윷, 팥 윷, 연필 윷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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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세시기] 앞뒷집 떡메 치는 소리 동구밖까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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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세시기(歲時記)]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
- 겨울의 눈은 다음해 농사에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다. 그 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한다. 그 풍년은 당장 보리농사에서부터 나타난다. 옛말에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가 적어 보리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아침나절의 겨울내음도 익숙해져 버리고 길어져만 가는 밤의 길이도 ‘동지’라는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 추수를 끝낸 황량한 들판을 보고 있으면 왠지 적막감과 외로움이 엄습하고 소복이 내리는 눈이 외로운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12월. 전원에 정착한 이들이 외로움과 적막함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다. 그러나 이 계절엔 이 계절 나름의 재미가 있는 법, 옛 사람들은 긴긴밤과 적막함을 함께모여 새끼줄을 꼬며 화톳불에 고구마, 군밤 등을 구워먹으며 사람들과의 유대로 계절이 주는 외로움과 밤의 지리함을 이겨냈다. 수정과, 홍시, 군고구마, 군밤 끝없이 나오는 군것질 거리와 사는 이야기로 밤 깊어 가는 줄 모른다. 이것이 겨울이 주는 따뜻함이다. 올 12월의 처음은 24절기 중 대설(大雪)이 맞이한다. 7일이다. 대설은 말 그대로 눈다운 눈이 이때쯤 내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해마다 눈이 고르게 오는 것이 아니어서 대설이라고 해도 어느 해는 11월 말에 있는 소설보다 적게 오기도 한다. 그리고 2003년의 마지막은 22일 동지(冬至)가 장식한다.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이 날이 지나면 하루 낮 길이가 1분씩 길어지는데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때는 땅속의 물기가 얼어 부피가 커지면서 지면을 밀어 올리는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엔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보리밟기를 하기도 했다. 12월인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이때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할 일이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쑤기로 부산할 때다. 메주를 잘 만들어야 한 해 반찬의 밑천이 되는 장맛이 제대로 나기에 갖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잘 씻은 콩을 고온에서 단시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손으로 비벼보아 뭉그러질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삶은 콩은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뺀 후 둥글넓적하게 혹은 네모지게 모양을 만든다. 모양을 갖춘 메주를 그대로 며칠 방에 두어 말린 후,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알맞게 뜨면 짚을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둔다. 메주 달 때는 대개 짚을 사용하는데 이는 짚에 효소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좋은 나일론 끈이 많지만, 메주를 달 때 유독 짚으로 묶어 다는 이유는 푸른곰팡이의 번식을 양호하게 하기 위함이다. 잘 모르고 나일론 끈으로 달아 메주를 버리기면 장맛이 형편없어 진다. 메주를 띄울 때도 곰팡이가 잘 번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불 같은 것을 덮어 주는데 이때도 천연섬유로 된 이불이어야 좋지 나일론 등 합성섬유로 만든 이불은 좋지 못하다. 이는 곰팡이 균도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이다. 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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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세시기(歲時記)]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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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부터 대보름까지
-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올해도 설날이 오기 전에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들판에도 산에도 또 얼어붙은 강물 위에도 눈은 많이도 쌓였다. 그래서 2003년 1월의 세월리는 온통 은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겨울 농사를 하지 않는 탓인지 논둑에 내린 눈은 저 혼자 쌓였다 녹았다 하고 있었다. -------------------------------------------------------------------------------- 그런데도 다행스런 것은 도로에 쌓인 눈은 금새 녹아버려 교통에 별 지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양리에서 세월리로 넘어가는 사슬고개를 걱정들 했지만 고갯길이 대부분 양지쪽으로 나 있어 그것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로가 나기 전인 30여 년 전만 해도 사슬고개가 하도 험해서 비가 조금만 내려도 버스가 다니지 못해 시오 리(十五里) 길을 걸어가곤 했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추억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을 오르내리는 나에게 추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은근히 걱정스런 말을 건네곤 했는데 생각보다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로가 잘 나 있으며 제설작업도 제때에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는데, 추억이란 이렇게 사람을 오래도록 가두기도 하는 모양이다. 세월리에서 처음으로 설날을 맞이하기 위해 섣달그믐날 세월리로 온 식구가 내려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동네가 조용하기만 하였다. 한길에는 동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먼 고향으로 내려가는지 자동차만 분주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동네 청년들이 어디에 모여 있는지 수소문하여 찾아가 보니 마을회관 2층에 대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명절 전날 고향의 어느 사랑방에 모여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것을. 그래서 달 없는 깜깜한 밤을 오히려 더 밝게 지새우는 것을. 그러나 그런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가지고 간 술도 마다 한 채 오락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은 내가 그리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몇 마디 인사 끝에 되돌아 나오는데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한 사람이 뒤따라 나왔다. 그 사람은 이 동네에 살고 있지만 성남으로 출퇴근하는 바람에 동네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기가 한 달에 한 번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보니 그곳에는 도회지에서 고향을 찾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위에는 주먹만한 별들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설날 아침도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설날 다음 날 아침, 서울에서 내려온 이명화 씨 부부와 함께 청송 심씨 입조인 심권의 신도비를 찾았다. 신도비는 아랫마을 야산에 있는데, 이 마을 출신으로 교육자이자 수필가인 심영구 씨에 의하면 이 비로 인해 이곳을 비석거리라 불렀다고 한다. 보학(譜學)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이명화 씨는 신도비를 살핀 후, 이곳은 심권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다 객사(客舍)에서 병사한 이 분을 선영이 있는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라 한다. 그리고 보면 그의 선친인 심희세를 모신 이곳에 다시 심권을 모심으로써 그 후손 일족이 여기에 정착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300여 년 동안 14대에 걸쳐 청송 심씨 일족들이 이 마을의 중추를 이루면서 청주 한씨, 최씨 등과 어울려 살았던 것이다. 일족이 한창 번성을 이룰 때는 70여 세대에 이르기도 했으나 지금은 20여 세대만이 남아 있다. 점심을 먹은 후, 마을회관 아래층에 있는 노인정을 찾았다. 미리 연락을 한 관계로 노인회 총무이신 심재욱 씨를 비롯하여 임덕재, 심재성, 이창호, 임준현, 전홍선 씨 등 여러 분이 나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설날을 맞아서 그런지 촌로답지 않게 모든 맵시가 세련되어 보였다. 이사를 한 후 아직 공식적인(?) 인사를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기도 하여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차츰 분위기가 무르익자 서로 앞다투어 말씀을 해 주시는 모습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가 이 마을의 물맛이 너무 좋다고 하자, 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아랫마을, 윗마을 그리고 다랫골 등을 합쳐 세월리라 통칭하지만 옛날부터 5·16 이후 행정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세월천을 기준으로 강가 아랫마을은 세심리(洗心里), 산 쪽 윗마을은 세월리, 그리고 시냇물이 발원하는 골짜기는 다랫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세심리는 세심정(洗心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그렇게 불리웠고 골짜기에는 다래가 많이 열려 다랫골이라 불렀다 한다. 여하튼 씻을 세(洗) 자가 많이 들어간 것을 보면 예부터 이곳은 물이 맑고 깨끗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해방되기 전까지 이곳에는 양조장이 여러 개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물맛이 좋기 때문인데, 당시 주류에 관한 법에 의하면 1개 면에 막걸리 양조장 1개가 통상적인 원칙이었지만 이곳은 그것을 초월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면소재지도 아닌 이곳에 세워졌던 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는 전량 세심리 나루터를 통해 서울로 직송되어 인기리에 판매되었다고 하니 이곳의 물맛은 알아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1984년에 21가구가 발의하여 설치한 간이 상수도는 다랫골 뒷산인 양자산 줄기 8부 능선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집에도 그 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온천물로 착각할 정도로 비누가 잘 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생수로 마실 때는 단맛이 혀끝에 감돌기도 한다. 선인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물맛이 좋은 곳치고 인심 사나운 곳이 없다고. 그래서인지 10여 년 전에 다랫골로 들어와 살고 있는 전홍선(67) 씨는 “이 마을의 인심과 우애는 남다르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서로서로 믿고 도와가며 살기 때문에 담장도 필요 없다”고 하는 전홍선 씨의 안색은 뒤늦게 이곳에 들어 온 사람답지 않게 긍지와 자부심에 차 있었다. 그런데 정월 열 이튿날(양력 2월 12일) 조용하던 마을에 잔치 마당이 벌어졌다. 오전 11시쯤 갑자기 동네 마이크에서 트로트 풍의 흥겨운 노래들이 흘러 나왔다. 전달 사항에 앞선 전주곡이려니 했는데 음악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 그래서 마을회관 앞으로 나가보니 이게 웬일인가. 마을회관에는 ‘대보름 맞이 윷놀이 한마당’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고, 마당에서는 마을 어른들은 물론이고 남녀노소 모두 나와 흥겹게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서는 청년들이 어른들을 대접하려고 삽겹살을 굽고 있고, 마당 가운데에서는 윷놀이가 한창이었다. 아, 그래서 설날에는 가족 중심으로, 대보름에는 마을 중심의 축제 행사를 하는 것이 이 마을의 전통이구나 하는 사실을 겨우 알게 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축제를 보면서 어울려 산다는 것의 의미를 또 한번 깊이 느낄 수 있었다. 田 이기윤〈시인·육군사관학교 교수〉 [글쓴이 이기윤은 시인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수이며, 현재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 살고 있다. 1997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9년 시집 《자전거와 바퀴벌레》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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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옥문화 만들어가는 은평한옥마을
- 한옥.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서이자 건축문화다. 북촌과 서촌엔 수많은 방문객이 오가며 활기찬 기운이 넘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한옥을 서울 미래자산으로 규정하고 육성하고자 2008년 12월 ‘서울 한옥선언’ 후 2011년 은평뉴타운 내 한옥마을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한옥마을인 은평한옥마을이 탄생한 순간이다. 북촌과 서촌이 1920~1930년 사이 근대 한옥을 보여준다면 은평한옥마을은 2010~2020년대 현대한옥을 보여주는 마을인 셈이다. 은평한옥마을 시작부터 지금까지 마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글 전원주택라이프 기획취재팀 취재협조 국가한옥센터, 은평구청, 서울시 한옥건축자산과 은평한옥마을의 탄생은평한옥마을은「건축법」제71조 제5항에 의해 은평재정비촉진지구(이하 은평뉴타운) 3-2지구 단독주택지를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 및 고시(2012년 10월 4일) 하면서 시작됐다. 은평뉴타운 3-2지구는 단독주택 지구(약 5만 2000㎡)로 70%인 3만 6776㎡가 한옥지정구역이다. 서울시는 인근에 있는 진관사, 삼천사 등 역사 문화자산과 북한산 둘레길 등 자연환경과 연계해 서울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육성할 계획으로 조성했다. 은평뉴타운 3-2지구는 한옥용지, 일반주택용지, 근린생활용지로 나뉜다. 은평한옥역사박물관 기준으로 남쪽은 일반 단독주택 용지며 북쪽은 한옥용지다. 한옥용지는 필지면적 최소 135㎡, 최대 410㎡며, 2층까지 건축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한옥 보전 및 진흥에 관한 조례’에 따라 한옥 밀집지역으로 지정돼 서울시 한옥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호당 1억 5000만 원 상당 보조금과 융자금(2020년 6월 기준, 3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조건)을 지원받을 수 있다.북촌, 서촌과 다르게 은평한옥마을은 필지 간 높이가 평평하다. 은평뉴타운 처음 조성할 당시에 공동주택을 지으려고 부지를 평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에 단독주택지로 변경됐고, 서울 한옥선언 후속 조치 일환으로 일부분을 한옥용지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한옥 규모도 순수 주거용 40채 내외에서 2014년 156필지로 지금과 같이 주거뿐만 아니라 상업시설까지도 건축할 수 있게 했다. 은평한옥마을은 2012년 9월 분양을 시작했으나, 초기엔 대부분 미분양이었다. 6년 전만 해도 30% 밖에 팔리지 않았다. 한옥마을이란 콘셉트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분양 주관사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필지 규모를 축소·재구획했다. 교차로에서 진관사로 들어가는 진관대로 입구에 근린형 단지를 조성해 공용 시설을 두고, 진관대로 기준 북쪽은 1가구 단위 작은 필지로, 남쪽은 2가구까지 지을 수 있는 큰 필지를 구획했다. 2년 전 마지막 근린생활용지가 팔리며, SH는 필지 분양 업무를 종료하고, 한옥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은평구청으로 이관했다. 은평구는 지형도면을 고시하면서 은평재정비촉진지구 3-2지구 단독주택지 내에 한옥에 대한 여러 가지 특별 사항을 제안하고 있다.「건축법」대지의 조경과 대지 안의 공지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건축물로부터 인접대지경계선까지 50㎝만 띄우면 된다. 일조권 확보를 위한 건축물 높이 제한도 적용받지 않는 등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에 따라 계획·관리하고 있다. 오랜 기간 끝에 올해 안으로 한옥 준공율이 90% 가까이 될 예정이다.지난 2월 서울시는 북촌, 경복궁 서쪽 지역 등 오래된 한옥마을에서부터 새롭게 조성된 은평한옥마을까지 한옥 밀집 지역 12곳을 대상으로 ‘한옥마을 주민공동체 지원 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혀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한옥마을이 주거공동체로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주민 주도로 한옥마을의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적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마을 자산을 활용한 공동체 사업 지원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주거환경에 대응하는 21세기형 한옥은평한옥마을 한옥은 조금 특별하다. 단순히 신축이라서가 아니다. 아파트 등 서구식, 현대식 생활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주거환경을 따라가지 못해 구시대적 유물 취급받던 한옥을 현대 생활양식에 맞추어 새롭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를 21세기 서울형 한옥이라 명명했다. 기존 한옥이 자생 또는 계획적으로 집합 경관을 가지며 다양한 대지 및 거주 조건에 적용 가능한 주거 및 주거 이외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한옥이었다면, 21세기 서울형 한옥은 기존 한옥에 입체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면서도 공공, 민간, 상업 등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는 한옥이다. 21세기 서울형 한옥은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현대 생활에 부족함이 없으며 새로움을 누릴 수 있는 창의적으로 설계된 한옥을 말한다. 서울시는 한옥을 8개 유형으로 나눴다. 미니한옥 딩크족 부부를 위한 15평형 내외의 소형 한옥골목집합형 공동 골목을 중심으로 미니한옥을 집합시킨 유형마당집합형 공동 마당을 두고 개별 집으로 들어가는 중소형 집합형전통형 대청을 중심으로 구성된 품위와 격식이 살아있는 유형가족형 부엌을 중심으로 모이는 현대적 가족생활에 적합한 유형경사지형 경사면이 많은 서울 지형적 특성에 맞게 들어선 유형주상복합형 주거와 상업(공방, 사무실, 카페 등)의 복합 유형구법결합형 아뜰리에 같은 작업 공간을 다른 구법으로 결합시킨 유형 은평한옥마을의 멋은평한옥마을은 북촌과 서촌 한옥과 느낌이 다르다. 오래됨에서 나오는 고즈넉함보다 새로움에서 보이는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 강하다. 은평한옥마을만의 멋인 셈이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한옥을 소개한다. 마을 역사를 한눈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마을 초입에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은평의 역사와 한옥 문화를 둘러보는 박물관이다. 마을 조성과 함께 2014년 10월 개관했으며, 2층 은평역사실에선 은평뉴타운 개발 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이 지역 사람들의 옛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다. 3층 한옥실은 한옥의 문화 정체성과 정서를 비롯해 한옥의 친환경성, 과학성, 건축 과정 등을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다. 관람시간 9시~ 18시(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휴관)문의 02-351-8524 http://museum.ep.go.kr/ 한국 전통문화 체험 너나들이센터 한복 입고 사진을 찍고 싶다면 너나들이센터에 꼭 들리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옆에 위치한 너나들이센터는 2층 한옥으로 지어 박물관의 부가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1층에서는 기획 전시가 열리며, 2층에서는 한복을 대여한다. 무엇보다 강종순 한복 디자이너의 작품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 1층 전시실에는 능화판과 능화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진을 통해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능화판-우리 책문화의 멋>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관람시간 9시~18시(매주 월요일 휴관) 한복체험 9시~17시(대여마감 16시 30분, 박물관 입장권 소지자 한해 무료)문의 02-351-4433 은평한옥마을 최초 한옥 화경당(셋이서문학관) 화경당은 은평한옥마을의 최초 한옥이다. 은평한옥체험관으로 사용하다 현재 셋이서문학관으로 운영 중이다. 셋이서문학관은 이름 그대로 은평 출신 문인 천상병·중광·이외수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21세기형 한옥에서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1층은 북 카페로 운영해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고, 2층은 세 작가의 개개인 공간으로 꾸며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그들의 삶의 방식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관람시간 9시~ 18시(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휴관)문의 02-355-5800 한옥에서 즐기는 미술 삼각산금암미술관 2018년 4월에 개관한 삼각산금암미술관은 ‘한옥 속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한국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로, 1층에서는 사랑방 등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2층에선 기획 전시를 즐길 수 있다. 현재 <매화전-허백련, 허달재>를 전시 중이다. 의재 허백련은 남종문인화의 대가며, 직헌 허달재는 허백련의 손자이자 창신적 남종문인화로 평가받는 작가로 품격 있는 매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시간 매일 9시~18시(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휴관)문의 02-351-4343 한옥에서의 하룻밤 일루와유 달보루 “제일 가는 누각에서 누워 놀다”는 말을 뜻하는 일루와유 달보루壹樓臥遊 達寶樓. 이곳은 미술박사인 조진근 관장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각종 공연과 전시, 다이닝, 강연, 숙박을 접목한 신개념 문화 살롱을 지향한다. 2층 누각에 앉으면 전통한옥과 현대식 한옥의 멋을 고루 느낄 수 있고, 전면에 북한산 절경이 멋에 멋을 더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은 전체 및 공간별로 대여할 수 있고, 공간 대여가 없으면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한다. 문의 1644-1346 www.ilwy.kr 고즈넉함과 고소한 차가 일품 진관사 진관사는 삼각산 서쪽 기슭에 있는 조계종 소속 고려시대 고찰로 불암사, 삼막사, 심원사와 함께 한양 근교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은평한옥마을에서 진관사로 향하는 길목은 수령 150년 이상 된 느티나무 네 그루가 반갑게 맞아주며, 진관천 따라 펼쳐진 백초월길이 평안함을 더한다. 한국전쟁 당시 모두 불타 다시 재건한 절이지만, 소나무에 둘러싸인 특유의 고즈넉함은 그대로다. 2009년 이곳 칠성각에서는 백초월 스님이 독립운동 당시 사용한 태극기와 여러 신문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진관사에서 운영하는 한옥 카페에 앉아 속세는 떨쳐버리고 잠시 자연을 느껴보자. 문의 02-359-8410 www.jinkwansa.org 눈여겨볼 만한 한옥현대 기술과 한옥의 만남 낙락헌樂樂軒낙락헌은 2017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한옥으로 기존 한옥 배치를 재해석하고, 콘크리트와 목조 하이브리드 구조로 시공한 주택이다. 필로티 구조로 누마루 슬래브를 ‘한 손으로 쟁반을 받치듯이’ 띄워 올려, 그 아래에 주차와 현관, 수납공간 등을 넣었다. 낙락헌을 설계한 조정구 건축가는 마당 중심 ‘내향적인 구조’의 도시한옥으로는 건축주가 바라는 ‘전망 좋은 집’을 만들 수 없기에 형태를 뒤집어 설계한 것이다. 누마루와 3칸 대청이 대지 형상에 맞게 이어지면서, 모든 공간에서 북한산 전경과 습지 그리고 느티나무를 바라다보는 새로운 형태의 ‘외향적인 한옥’이 만들어졌다. 조정구 건축가는 나머지 공간에도 선큰과 채광 창, 자연스러운 레벨 변화를 주어 한옥 ‘아래 공간’을 ‘밝고 쾌적한 거주 공간’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만든 공간은 주차와 현관 등 ‘한옥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 모던한 공간 속에 가족이 모여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독자적인 삶의 영역’이 됐다. HOUSING DATA구조 철근콘크리트조, 한식 목구조대지면적 230.00㎡(69.57평)건축면적 91.70㎡(27.73평)연면적 175.02㎡(52.94평)건폐율 39.87%용적률 39.87%규모 지하 1층, 지상 1층설계 조정구, 조지영, 양수민㈜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02-3789-3372 www.guga.co.kr시공 건축주 직영사진 박영채 작가 소통하는 생활 한옥 월문가月門家월문가는 2019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한옥이다. 박상욱 건축가의 작품으로 은평한옥마을의 작은 대지에 현대생활을 수용하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설계했으며,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디자인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월문가에는 전통적인 사대부가의 채 구성 방식을 집약해 적용시킨 새로운 시도를 했다. 사랑채, 안채, 별당 공간과 기능 그리고 상징성을 함축해 작은 한옥 한 채에 녹여 넣었다. 필요한 요구 면적 대비 부족한 수평적 면적은 집약시키고, 반대로 그로 인한 압력은 수직 방향으로 지상 및 지하로 확장해 해결함으로써 땅 규모에 대한 제약을 극복했다. 대문 옆 루는 사랑채 상징이자 마을과 소통을 의미한다. 2층 서재는 별당의 상징이며 휴식공간이자 북한산 조망공간이기도 하다. 독립생활이 가능한 지하는 선큰 2개를 적용해 햇볕과 공기가 통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공간은 마당과 소통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HOUSING DATA구조 한식 목구조대지면적 204.70㎡(61.92평)연면적 99.68㎡(30.15평)지하 70.23㎡(21.24평)1층 79.79㎡(24.13평)2층 19.89㎡(6.01평)목재 국내산 소나무(우드코리아)건조 압체식 진공 고주파건조(우드코리아)설계 건축사사무소 자향헌시공 ㈜구트구트 / 우드코리아사진 이도기획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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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옥문화 만들어가는 은평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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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서2_새로운 한옥문화 만들어가는 은평한옥마을
-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서2 새로운 한옥문화 만들어가는 은평한옥마을 한옥.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서이자 건축문화다. 북촌과 서촌엔 수많은 방문객이 오가며 활기찬 기운이 넘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한옥을 서울 미래자산으로 규정하고 육성하고자 2008년 12월 ‘서울 한옥선언’ 후 2011년 은평뉴타운 내 한옥마을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한옥마을인 은평한옥마을이 탄생한 순간이다. 북촌과 서촌이 1920~1930년 사이 근대 한옥을 보여준다면 은평한옥마을은 2010~2020년대 현대한옥을 보여주는 마을인 셈이다. 은평한옥마을 시작부터 지금까지 마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글 전원주택라이프 기획취재팀 | 취재협조 국가한옥센터, 은평구청, 서울시 한옥건축자산과 은평한옥마을의 탄생 은평한옥마을은「건축법」제71조 제5항에 의해 은평재정비촉진지구(이하 은평뉴타운) 3-2지구 단독주택지를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 및 고시(2012년 10월 4일)하면서 시작됐다. 은평뉴타운 3-2지구는 단독주택 지구(약 5만 2000㎡)로 70%인 3만 6776㎡가 한옥지정구역이다. 서울시는 인근에 있는 진관사, 삼천사 등 역사문화자산과 북한산 둘레길 등 자연환경과 연계해 서울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육성할 계획으로 조성했다. 은평뉴타운 3-2지구는 한옥용지, 일반주택용지, 근린생활용지로 나뉜다. 은평한옥역사박물관 기준으로 남쪽은 일반 단독주택 용지며 북쪽은 한옥용지다. 한옥용지는 필지면적 최소 135㎡, 최대 410㎡며, 2층까지 건축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한옥 보전 및 진흥에 관한 조례’에 따라 한옥 밀집지역으로 지정돼 서울시 한옥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호당 1억 5000만 원 상당 보조금과 융자금(2020년 6월 기준, 3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조건)을 지원받을 수 있다. 북촌, 서촌과 다르게 은평한옥마을은 필지 간 높이가 평평하다. 은평뉴타운 처음 조성할 당시에 공동주택을 지으려고 부지를 평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에 단독주택지로 변경됐고, 서울 한옥선언 후속 조치 일환으로 일부분을 한옥용지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한옥 규모도 순수 주거용 40채 내외에서 2014년 156필지로 지금과 같이 주거뿐만 아니라 상업시설까지도 건축할 수 있게 했다. 은평한옥마을은 2012년 9월 분양을 시작했으나, 초기엔 대부분 미분양이었다. 6년 전만 해도 30% 밖에 팔리지 않았다. 한옥마을이란 콘셉트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분양 주관사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필지 규모를 축소·재구획했다. 교차로에서 진관사로 들어가는 진관대로 입구에 근린형 단지를 조성해 공용 시설을 두고, 진관대로 기준 북쪽은 1가구 단위 작은 필지로, 남쪽은 2가구까지 지을 수 있는 큰 필지를 구획했다. 2년 전 마지막 근린생활용지가 팔리며, SH는 필지 분양 업무를 종료하고, 한옥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은평구청으로 이관했다. 은평구는 지형도면을 고시하면서 은평재정비촉진지구 3-2지구 단독주택지 내에 한옥에 대한 여러 가지 특별 사항을 제안하고 있다.「건축법」대지의 조경과 대지 안의 공지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건축물로부터 인접대지경계선까지 50㎝만 띄우면 된다. 일조권 확보를 위한 건축물 높이 제한도 적용받지 않는 등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에 따라 계획·관리하고 있다. 오랜 기간 끝에 올해 안으로 한옥 준공율이 90% 가까이 될 예정이다. 지난 2월 서울시는 북촌, 경복궁 서쪽 지역 등 오래된 한옥마을에서부터 새롭게 조성된 은평한옥마을까지 한옥 밀집 지역 12곳을 대상으로 ‘한옥마을 주민공동체 지원 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혀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한옥마을이 주거공동체로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주민 주도로 한옥마을의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적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마을 자산을 활용한 공동체 사업 지원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주거환경에 대응하는 21세기형 한옥 은평한옥마을 한옥은 조금 특별하다. 단순히 신축이라서가 아니다. 아파트 등 서구식, 현대식 생활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주거환경을 따라가지 못해 구시대적 유물 취급받던 한옥을 현대 생활양식에 맞추어 새롭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를 21세기 서울형 한옥이라 명명했다. 기존 한옥이 자생 또는 계획적으로 집합 경관을 가지며 다양한 대지 및 거주 조건에 적용 가능한 주거 및 주거 이외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한옥이었다면, 21세기 서울형 한옥은 기존 한옥에 입체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면서도 공공, 민간, 상업 등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는 한옥이다. 21세기 서울형 한옥은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현대 생활에 부족함이 없으며 새로움을 누릴 수 있는 창의적으로 설계된 한옥을 말한다. 서울시는 한옥을 8개 유형으로 나눴다. 미니한옥 딩크족 부부를 위한 15평형 내외의 소형 한옥 골목집합형 공동 골목을 중심으로 미니한옥을 집합시킨 유형 마당집합형 공동 마당을 두고 개별 집으로 들어가는 중소형 집합형 전통형 대청을 중심으로 구성된 품위와 격식이 살아있는 유형 가족형 부엌을 중심으로 모이는 현대적 가족생활에 적합한 유형 경사지형 경사면이 많은 서울 지형적 특성에 맞게 들어선 유형 주상복합형 주거와 상업(공방, 사무실, 카페 등)의 복합 유형 구법결합형 아뜰리에 같은 작업공간을 다른 구법으로 결합시킨 유형 은평한옥마을의 멋 은평한옥마을은 북촌과 서촌 한옥과 느낌이 다르다. 오래됨에서 나오는 고즈넉함보다 새로움에서 보이는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 강하다. 은평한옥마을만의 멋인 셈이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한옥을 소개한다. 마을 역사를 한눈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마을 초입에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은평의 역사와 한옥 문화를 둘러보는 박물관이다. 마을 조성과 함께 2014년 10월 개관했으며, 2층 은평역사실에선 은평뉴타운 개발 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이 지역 사람들의 옛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다. 3층 한옥실은 한옥의 문화 정체성과 정서를 비롯해 한옥의 친환경성, 과학성, 건축과정 등을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다. 관람시간 9시~ 18시(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휴관) 문의 02-351-8524 museum.ep.go.kr 한국 전통문화 체험 너나들이센터 한복 입고 사진을 찍고 싶다면 너나들이센터에 꼭 들리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옆에 위치한 너나들이센터는 2층 한옥으로 지어 박물관의 부가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1층에서는 기획 전시가 열리며, 2층에서는 한복을 대여한다. 무엇보다 강종순 한복 디자이너의 작품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 1층 전시실에는 능화판과 능화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진을 통해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능화판-우리 책문화의 멋>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관람시간 9시~18시(매주 월요일 휴관) 한복체험 9시~17시(대여마감 16시 30분, 박물관 입장권 소지자 한해 무료) 문의 02-351-4433 은평한옥마을 최초 한옥 화경당(셋이서문학관) 화경당은 은평한옥마을의 최초 한옥이다. 은평한옥체험관으로 사용하다 현재 셋이서문학관으로 운영 중이다. 셋이서문학관은 이름 그대로 은평 출신 문인 천상병·중광·이외수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21세기형 한옥에서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1층은 북카페로 운영해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고, 2층은 세 작가의 개개인 공간으로 꾸며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그들의 삶의 방식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관람시간 9시~ 18시(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휴관) 문의 02-355-5800 한옥에서 즐기는 미술 삼각산금암미술관 2018년 4월에 개관한 삼각산금암미술관은 ‘한옥 속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한국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로, 1층에서는 사랑방 등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2층에선 기획 전시를 즐길 수 있다. 현재 <매화전-허백련, 허달재>를 전시 중이다. 의재 허백련은 남종문인화의 대가며, 직헌 허달재는 허백련의 손자이자 창신적 남종문인화로 평가받는 작가로 품격 있는 매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시간 매일 9시~18시(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휴관) 문의 02-351-4343 한옥에서의 하룻밤 일루와유 달보루 “제일 가는 누각에서 누워 놀다”는 말을 뜻하는 일루와유 달보루壹樓臥遊 達寶樓. 이곳은 미술박사인 조진근 관장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각종 공연과 전시, 다이닝, 강연, 숙박을 접목한 신개념 문화 살롱을 지향한다. 2층 누각에 앉으면 전통한옥과 현대식 한옥의 멋을 고루 느낄 수 있고, 전면에 북한산 절경이 멋에 멋을 더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은 전체 및 공간별로 대여할 수 있고, 공간 대여가 없으면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한다. 문의 1644-1346 www.ilwy.kr 고즈넉함과 고소한 차가 일품 진관사 진관사는 삼각산 서쪽 기슭에 있는 조계종 소속 고려시대 고찰로 불암사, 삼막사, 심원사와 함께 한양 근교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은평한옥마을에서 진관사로 향하는 길목은 수령 150년 이상 된 느티나무 네 그루가 반갑게 맞아주며, 진관천 따라 펼쳐진 백초월길이 평안함을 더한다. 한국전쟁 당시 모두 불타 다시 재건한 절이지만, 소나무에 둘러싸인 특유의 고즈넉함은 그대로다. 2009년 이곳 칠성각에서는 백초월 스님이 독립운동 당시 사용한 태극기와 여러 신문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진관사에서 운영하는 한옥 카페에 앉아 속세는 떨쳐버리고 잠시 자연을 느껴보자. 문의 02-359-8410 www.jinkwansa.org 눈여겨볼 만한 한옥 현대 기술과 한옥의 만남 낙락헌樂樂낙락헌은 2017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한옥으로 기존 한옥 배치를 재해석하고, 콘크리트와 목조 하이브리드 구조로 시공한 주택이다. 필로티 구조로 누마루 슬래브를 ‘한 손으로 쟁반을 받치듯이’ 띄워 올려, 그 아래에 주차와 현관, 수납공간 등을 넣었다. 낙락헌을 설계한 조정구 건축가는 마당 중심 ‘내향적인 구조’의 도시한옥으로는 건축주가 바라는 ‘전망 좋은 집’을 만들 수 없기에 형태를 뒤집어 설계한 것이다. 누마루와 3칸 대청이 대지 형상에 맞게 이어지면서, 모든 공간에서 북한산 전경과 습지 그리고 느티나무를 바라다보는 새로운 형태의 ‘외향적인 한옥’이 만들어졌다. 조정구 건축가는 나머지 공간에도 선큰과 채광 창, 자연스러운 레벨 변화를 주어 한옥 ‘아래 공간’을 ‘밝고 쾌적한 거주 공간’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만든 공간은 주차와 현관 등 ‘한옥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 모던한 공간 속에 가족이 모여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독자적인 삶의 영역’이 됐다.HOUSING DATA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한식 목구조 대지면적 230.00㎡(69.57평) 건축면적 91.70㎡(27.73평) 연면적 175.02㎡(52.94평) 건폐율 39.87% 용적률 39.87% 규모 지하 1층, 지상 1층 설계 조정구, 조지영, 양수민 ㈜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02-3789-3372 www.guga.co.kr 시공 건축주 직영 사진 박영채 작가 소통하는 생활 한옥 월문가月門家월문가는 2019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한옥이다. 박상욱 건축가의 작품으로 은평한옥마을의 작은 대지에 현대생활을 수용하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설계했으며,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디자인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월문가에는 전통적인 사대부가의 채 구성방식을 집약해 적용시킨 새로운 시도를 했다. 사랑채, 안채, 별당 공간과 기능 그리고 상징성을 함축해 작은 한옥 한 채에 녹여 넣었다. 필요한 요구 면적 대비 부족한 수평적 면적은 집약시키고, 반대로 그로 인한 압력은 수직 방향으로 지상 및 지하로 확장해 해결함으로써 땅 규모에 대한 제약을 극복했다. 대문 옆 루는 사랑채 상징이자 마을과 소통을 의미한다. 2층 서재는 별당의 상징이며 휴식공간이자 북한산 조망공간이기도 하다. 독립생활이 가능한 지하는 선큰 2개를 적용해 햇볕과 공기가 통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공간은 마당과 소통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HOUSING DATA 구조 한식 목구조 대지면적 204.70㎡(61.92평) 연면적 99.68㎡(30.15평) 지하 70.23㎡(21.24평) 1층 79.79㎡(24.13평) 2층 19.89㎡(6.01평) 목재 국내산 소나무(우드코리아) 건조 압체식 진공 고주파건조(우드코리아) 설계 건축사사무소 자향헌 시공 ㈜구트구트 / 우드코리아 사진 이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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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서2_새로운 한옥문화 만들어가는 은평한옥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