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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흙과 돌을 사용해 지은 숲속 돌집 꿈꾸는 다락방
흙과 돌을 사용해 지은 숲속 돌집 꿈꾸는 다락방 아끼고 보듬은 사물이 반질반질 윤이 나고 본연의 빛을 발할 때 우리는 ‘품위’가 느껴진다고 한다. 땅끝마을 해남에서 만난 아담한 돌집이 바로 그러하다. 글 사진 백홍기 취재협조 이세일(목수), 윤용신(플로리스트) 부부 해남에 있는 작은 목신마을에서 아담한 돌집을 만났다. 방 한 개와 주방 겸 거실, 다락을 갖춘 8평 크기의 작은 집이다. 이곳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부부가 산다. 돌집을 처음 계획한 건 아내 윤용신 씨다. 타지에서 일하다 귀촌 한 윤 씨는 부모님이 살던 고택 마당 옆에 있던 창고를 허물고 작은 돌집을 지었다. “혼자 살 때부터 집에 관심이 많았어요. 현대식 아파트나 넓은 단독주택이 아니라 숲속의 작은 오두막 같은 집이요. 어린 시절에 겪은 추억과 감성이 무럭무럭 자라 꿈이 된 거예요.” 윤 씨의 꿈은 할머니 집 옆에 있던 초가집 지붕 아래 다락방에서 움텄다. 오래 묵은 책 냄새와 촛불이 일렁이던 다락에서 그녀만의 감성을 키운 것이다. “다락방에 대한 로망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잘 가꾼 살림살이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예쁜 마당에서 놀던 기억도 좋았어요. 이러한 것들이 몽상에 불과했던 집에 대한 추억을 현실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거죠. 오래전부터 나만의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집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가 고향에 돌아와 꿈의 집을 지어보기로 한 거예요.” 아내의 플로리스트 작업실 앞마당을 부부가 함께 새 단장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이세일 목수 작업실이다. 오랜 곡괭이질 뒤에 잠시 허리 펴고 아내의 작업실을 바라보는 이세일 목수. 작업실은 이세일 목수 혼자 만들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작업실 풍경. 이세일 목수 작업실이다. 이곳에서 자기만의 작품 세상을 이뤄내 여러 차례 전시와 초대전을 거치며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나무 숟가락과 스툴 만들기 등 다양한 수업도 진행한다.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게 한 집 윤용신 씨가 돌집을 선택한 건 오래될수록 예뻐진다는 게 이유다. 어려서 아버지가 직접 짓고 살았던 돌집에 대한 기억도 한몫했다. “막상 돌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은 다음부터는 돌만 보였어요. 어떤 돌이 예쁜지 가는 곳마다 돌을 살폈어요. 돌도 지역마다 색과 질감이 달라 찾기 힘들었는데, 지인이 미황사(해남 서정리)가 있는 지역의 돌이 예쁘다고 했어요. 미황사 근처에 있는 밭을 개간하며 쌓아둔 돌을 가져와 집 토대를 쌓기 시작한 게 2008년 6월이에요.” 규모는 혼자 살 집이라 아담한 크기로 계획했다. 당호는 <꿈꾸는 다락방>으로 지었다. “목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 사람은 경험이 필요했고 저는 집이 필요하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함께 시작했어요. 하지만, 서로 모르는 게 많다 보니 힘들어져서 결국 그분이 손을 떼고 다른 분을 소개받았어요.” 두 번째로 소개받은 목수가 현재 남편이 된 이세일 목수다. 20대 초반 불교 조각에 입문해 한창 이름을 날리던 이 목수도 자기만의 삶을 찾아 고향인 해남에 돌아와 조용히 작품 세계를 넓혀왔었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돌집’을 통해 만나게 된 것이다. 집 짓기는 1,500만 원으로 시작했다. 주재료는 주변에 널린 흙과 돌을 사용했지만, 그래도 적지 않게 건축자재 구매 비용이 필요했다. 부족한 예산은 틈틈이 일해 보충했다. 과정이 더뎠지만, 급할 게 없고 얽매일 것도 없었다.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는 집을 보며 윤 씨는 행복하기만 했다. 그 사이 두 사람의 관계도 점점 견고해져 갔다. 집을 완공한 2010년 그해 봄 얽매인 제도를 싫어했던 그들답게 고택 앞마당을 정리하고 가볍게 혼례상을 차려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모님이 살던 옛집을 지나 부부의 공간인 돌집으로 향하고 있다. 고택은 손님을 위한 게스트로도 이용한다. 윤용신 씨는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돌집을 북향으로 배치하고 오솔길을 만들었다. 초보자도 쉽게 짓는 어스백 하우스 Earthbag House “이 집은 어스백 Earthbag 공법으로 지었어요.” 어스백은 영어 Earth와 Bag 합성어로 흙을 담은 부대(마대 혹은 포대)로 짓는 공법을 말한다. 흙 부대 또는 흙 자루 집이라고 하는 어스백 하우스 Earthbag House는 1984년 NASA(미항공우주국)에서 흙밖에 없는 달에 건축물을 짓기 위해 논의하던 중 이란 건축가 네이더 카 흐릴 리 Nader Khalili가 제안한 방법이다. 어스백 공법은 원형과 곡선 구현이 가능하며, 아무 흙이나 사용해도 되기 때문에 구하기 쉽고 쌓는 것도 간단해 초보자들도 쉽게 집을 지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흙 부대 폭이 넓어 자연스레 벽체가 두꺼워져 단열과 축열, 방음 효과가 높고 흙 밀도가 높아 충격에도 강해 자연재해에도 안전하다. 이 집은 양파망에 흙을 담아 층층이 쌓고 외벽을 돌로 마감했다. 실내 안쪽 벽은 황토로 미장한 뒤 바탕색을 회벽으로 칠하고 실별로 다른 색을 입혀 아늑하게 꾸몄다. 돌 벽과 잘 어울리는 예쁜 하늘색 목문을 열면 현관 없이 바로 거실과 마주한다. 벽과 주방가구, 살림살이에 부부의 온갖 감정과 이야기가 지나온 시간만큼 쌓였다. 낡고 허름한 공간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작지만, 넉넉하게 보이는 건 비움에 의한 여유로움 때문이다. 윤용신 씨의 다락에 대한 로망이 이 집을 짓게 했다. 오픈스페이스로 만든 다락 뒤에 보이는 또 다른 다락방은 시공 실수로 인해 지붕 아래 생긴 공간을 활용한 것이다. 다락에서 내려다 본 이세일 목수. 부부가 고택 툇마루에 앉아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손때 묻은 벽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였다. 아치로 쌓은 아궁이 상부 아귀가 맞지 않아 다른 돌로 끼워 넣은 쐐기돌이 포인트 역할을 했다. 이 집은 8평이지만, 필요한 공간 요소는 다 갖췄다. 비결은 공유 개념이다. 공간을 기능별로 나누고 하루 공간 사용 시간을 따져보면,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공간을 공유 공간에 포함시켜 다기능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 집은 작은 집을 효율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현관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에 거실-주방-식당-응접실 기능을 한 공간에 담은 공유 공간을 배치하고 주방 옆 안쪽에 안방을 뒀다. 거실 상부에 있는 다락은 기둥을 세울 때 실수하는 바람에 지붕 아래 작은 공간이 더해졌다. 그 덕에 방이 하나 더 생겼다고 한다. 소소한 실수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궁이의 아치를 쌓을 때 정점에 끼워 넣는 쐐기돌 아귀가 맞지 않아 살짝 삐져나온 게 오히려 미적인 효과를 내게 된 것, 굴뚝을 잘 못 설치해 이를 가리려고 단을 쌓은 게 멋진 벤치가 된 것 등이다. 실수를 오점汚點으로 생각하지 않고 재치와 유머로 넘겨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부부의 건축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윤용신 씨의 플로리스트 작업실을 짓고 있고, 커가는 딸의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이것들이 끝나면 마지막 건축이 기다리고 있다. 딸이 결혼한 뒤 가족과 놀러 올 때 함께 거주할 공간이다. 돌집이 윤용신 씨만의 공간으로 계획했다면, 다음 집은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시작할 것이다. 햇볕 좋은 날 앉아서 쉬는 돌 벤치도 굴뚝 위치를 잘못 배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실수가 때론 재미를 줄 수 있어 꼭 나쁘지만 않다고 한다. 고택과 돌집 주변에 널린 풍경. 인위적인 것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이곳만의 풍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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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보물창고 같은 전원생활 청주 혁찬이네 전원일기
보물창고 같은 전원생활 청주 혁찬이네 전원일기 어느 날 본지가 운영하는 SNS 네이버포스트 기사에 “우리 집도 구경 오세요”라는 댓글과 블로그 주소 하나가 달렸다. 자연스레 마우스를 클릭해 블로그를 구경했다. 전원생활을 하며 겪는 현실적인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결국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명종 씨가 있는 청주로 직접 찾아가 혁찬이네의 리얼 전원생활을 엿보고 왔다. 글 사진 이수민 기자 취재협조 혁찬이네 blog.naver.com/kormc789 청주에서 전원생활 경력 4년차가 된 이명종 씨. 전원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누리며 겪은 다양한 경험담을 블로그에 담아내고 있다. 2018년 4월, 당시 마흔 둘이던 이명종 씨는 단지 내 최연소로 전원주택을 짓고 입주했다. 전원생활 시작한지 3년이 넘은 지금, 주택 곳곳에 이명종 씨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이명종 씨는 전원생활을 계획하는 이들, 그리고 이제 전원생활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블로그에는 실질적인 전원생활 정보가 가득하다. 가장 먼저 이명종 씨에게 전원주택에 살면서 좋은 점을 물으니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라고 꼽는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가족 모두의 건강이 정말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그리고 전원생활은 평생 심심하거나 한가할 틈이 없어, 뭔가 새로운 걸 계속할 수 있는 ‘보물창고 같다’고도 말한다. “저처럼 사부작거리며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장점이고, 안 맞으면 모든 게 일거리밖에 안 되죠. 아파트가 이미 완성된 기성품이라면 전원주택은 롤플레잉 게임장이라고 보심 됩니다.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레벨업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미래의 손주들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다양한 추억을 남겨 줄 수 있다는 점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여기에 좋은 사람들과 많은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들었다. 꽃이나 꽃씨, 채소 씨앗 등 처음 살 때는 비싸지만 1~2년만 지나면 처치곤란일정도로 늘어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무료 나눔하는 게 일상이 되며 받는 기쁨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는 걸 배우게 된다고. 하지만 로망만으로 절대 전원주택을 짓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연예인의 삶이 TV에서는 화려해 보여도 그 이면에는 정말 많은 고충들이 있는 것처럼 전원주택 생활도 TV에서 보는 모습이나 어쩌다 하루 놀러가서 느끼는 즐거움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 또, 전원주택을 구입해서 입주하는 건 쉽지만, 나가는 건 맘대로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원주택은 최악의 경우 평생 안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조심스레 귀띔한다. “전원주택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고가의 레저용품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살 때는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게 샀지만, 팔 때는 반값으로 내놓아도 안 팔리기 때문이죠. 가능하다면, 집을 짓기 전에 무조건 전세든 월세든 정착하고자 하는 지역에 매물로 나와 있는 전원주택을 골라 1년 정도 살아보세요. 그렇게 시범기간을 지내보고 본인과 가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다 생각이 든다면 그때 그 집을 사 버리거나 부지를 사서 자신만의 집을 지으시길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전원생활을 선택하려는 예비 전원생활자를 위한 조언을 요청했다. “전원생활을 시작하기 전, 이미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선배들과 대화 중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고, 반드시 물어보시구요.” 전원일기 1 29.97평, 단층 전원주택 짓기 우리 집은 29.97평이다. 그 이유는 30평이 넘으면 감리비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지을 것이 아니라면 대개 30평 미만으로 짓는 게 낫다. 건축공사 총비용은 평당 420만 원 정도로 대략 1억2천600만 원으로 업체와 계약하고 바로 공사 들어갔다. 하지만 계약 이후 ‘지붕은 역시 기와가 최고’라는 나의 고집이 발동해 900만 원이 추가돼 건축비가 1억3천500만 원으로 늘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공법은 경량 목구조로 결정했다. 혁찬이네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곰순이. 보디가드 호피무늬 진돗개다. 시공사는 선배 건축주에게 묻고 선택 아마추어인 초보 건축주가 수많은 시공사 중 옥석을 골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주변에 자신의 집을 지은 사람 중 건축업자와 멱살잡이는 기본, 소송 등 살인만 안 나면 다행이라 할 정도로 많은 분쟁을 겪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비단 건축업자가 나쁘다고 치부하기 보다는 건축업자와 건축주의 궁합이 안 맞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건축주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오판하고 그대로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다툼이기도 하고, 일부 건축업자의 경우 알면서도 건축주가 묻지 않았으니 얘기 안 해 준 것이라며 내빼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실, 건축업자가 자선사업가는 아니니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를 먼저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무턱대고 지으려고만 하지 말고, 꼼꼼하게 알아보고 천천히 준비할 것을 권한다. 또 좋은 방법으로는 이미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선배 건축주를 많이 만나보는 것이다. 현재 짓고 있는 집의 건축주에게 시공업체에 대해 묻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면 그 사람들도 신병훈련도 못 마친 나와 같은 수준이니까. 최소 완공하고 1년이 넘은 집의 주인을 만나 물어보는 것이 좋다. 날림 공사는 1~2년 지나면 곳곳에서 티가 나기 마련이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완공 후 A/S로 연락했을 때 잘 조치해주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내 경우에도 이미 입주해 살고 있는 건축주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을 때 바로 계약했고, 착공에 돌입했다. 파고라, 연못, 그네, 해먹 등 야외에서 누릴 수 있는 재미거리가 마당 곳곳에 있다. 2층 천장고를 가진 단층 주택 나는 재산이라고는 적금은커녕 대출 5억뿐이다. 맨땅에 헤딩했다. 막연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가지고 있는 아파트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팔지도 못한 상태에서, 여윳돈 한 푼 없이 짓기 마음 먹었는데, 그때 아내 말로는 무슨 배짱으로 집을 덜컥 짓느냐며 와이프 친구나 주변 동네 아줌마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비용 낭비 없이, 그렇게 29.97평으로 지었다. 그리고 2층은 과감히 포기했다. 이미 다락이 있는 아파트 최상층에서 5년 가까이 살아본지라 다락이나 2층 구조가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단층으로 지었다. 2층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로망이 있을 수 있지만, 귀찮아서 안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2층 높이로 천장고를 높였다. 덕분에 평수는 단층이라 넓게 빠지면서도 주변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단층의 궁색함이 없어진다. 30평을 2층으로 지으면 계단 등 쓸데없는 공간 손실이 많다. 되돌아보니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았다. 크고 높은 거실은 넓게 탁트인 개방감을 준다. 단점은 겨울에도 시원하다. 작정하고 난방하려면 난방비가 꽤나 나올 거다. 구조는 경량 목구조로 지었다. 철근콘크리트에 비해 벽 두께가 절반, 약 20㎝정도 밖에 안 되어 공간 손실이 적다. 목조주택이라는 재질 특성상 단열은 기본이고 시멘트 독 같은 걱정도 없다. 애들 아토피가 심해서 선택한 이유도 있는데 애들 아토피는 이사 온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다 나았다. 지금은 아예 아토피가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주택은 30평 미만의 천장고 높은 단층으로 지었다. 거실과 연결돼 있는 다락 공간은 아이들의 플레이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원일기 2 1m 높여 집짓기와 데크공사 전원주택에 살면 큰 창고가 필요하다. 시골집 같이 땅이 넓으면 마당 한 구석에 비닐하우스라도 길게 치면 되지만, 단지 내 전원주택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뭐하나 구질구질하게 지어 놓거나 널브러져 있으면 집 전체가 망가진다. 그래서 애초에 데크 아래공간을 창고로 써야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선룸에 다양한 운동기구를 설치해 이명종 씨 가족만의 홈짐이 탄생했다. 1m 높게 지은 뒤, 아래공간은 창고로 우리 집은 마당 지면보다 높여서 지었다. 즉,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부터 1m 높게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더 높게 하고 싶었지만 건축법상 1m 이상을 높이면 건축승인이 나지 않는다. 집짓기 전부터 데크 아래공간을 창고로 쓰겠다는 계획이 있었기에 그렇게 했다. 전원주택에 살면 큰 창고가 정말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목재, 철근, 비계 설치 파이프, PVC파이프 등 긴 자재들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 결론적으로 대만족, 대성공이었다. 날씨와 관계없이 바비큐를 즐길 방법을 고심하다가 생각해낸 아이디어. 선룸 한쪽에 야외 테이블을 놓고, 연기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환기통을 설치했다. 주택 주변을 두른 데크 공사 집 완공 후 데크공사도 했다. 우리 집은 단층이다 보니 같은 30평이라고 해도 2층으로 지은 집 보다는 건물 테두리의 길이가 꽤 길다. 이 얘기는 데크를 깔아야 될 면적이 넓다는 뜻이다. 우리집 데크 면적은 꽤 넓다. 집의 4면 중 앞과 양 옆면(총 3개면)을 빙 두르다 보니 대충 계산해도 15평 정도가 나왔다. 평당 50만 원씩 계산해서 데크 비용만 750만 원정도 들었다. 그나마 집을 지었던 시공사에게 맡겨 저렴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주택을 높여짓고, 하부 공간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평소에는 데크로 만든 커버로 닫아놓고 사용해 깔끔하다. 전원일기 3 데크 방수 대작전 애당초 데크 아래를 창고로 쓰려고 계획한 나의 작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데크 방수다. 물론 데크 전문업체에 의뢰하면 방수작업까지도 해준다. 데크를 놓기 전에 합판을 깔고, 방수포 깔고, 여기에 합판을 또 깐 다음 데크를 두르면 깔끔하게 완벽 방수가 되는 데크가 된다. 이 정도 작업이 진행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남는 목재, 철재, 지저분한 여러 가지 안 쓰는 물건 보관 용도로 만드는 건데 그런 고액의 방수작업 비용을 쓸 것 같으면 그냥 필요할 때 목재, 철재 같은 자재를 때마다 사서 사용하는 게 돈이 덜 드는 셈일 거다. 데크 방수처리의 차선책 나홀로 방수할 수 있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해 봤다. 정말 집 지을 때 했던 고민보다 데크방수에 들어간 노력이나 고민이 더 컸던 것 같다. 사실, 데크 설치 시 업체에 방수까지 해달라고 하려다 비용 듣고 바로 포기했다. 얇고 넓은 플라스틱 판이 있으면 그걸 먼저 깔고 그 위에 데크를 깔면 완벽한 방수가 되리라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찾아낸 것이 ‘렉산’이라고도 불리는 PVC판이었다. 아크릴과 같이 투명하고 두께도 아주 얇은 것부터 두꺼운 것까지 종류가 여러 가지다. 각종 건물의 녹색 비 가림막 캐노피가 다 렉산이다. 렉산의 가장 큰 특징은 깨지지 않는다는 것. 유레카를 외쳤지만 곧 좌절했다. 렉산의 비용이 어마무시하다. 그래서 차선책을 찾아봤다. 롤렉산이라고 하여 가공되지 않은 렉산 원판을 그대로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가격이 천차만별이므로 잘 비교해서 살 경우 거의 반값에도 살 수 있다. 하지만 포기했다. 가격 자체도 비싸고 그걸 화물로 배송시켜도 거의 100㎏이 넘는 롤렉산을 혼자 옮기기엔 불가능해 보여 현명하게 포기했다. 그러고나서 아무런 방수작업 없이 한동안 그냥 창고로 사용했다. 결과는 폭망. 비가 한번 오고 나니 그 아래 있던 자재들이 여지없이 젖어버렸다. 인조잔디로 초저렴 방수처리 완성 그러다 데크 위에 인조잔디를 깔아볼까 생각했다. 마당의 천연 잔디와 어우러져 미관상도 괜찮을 듯 싶었다. 결론적으로 최고의 아이디어였다. 15평 정도를 덮을만한 인조잔디는 롤의 형태로 큰 걸 사야한다. 이 또한 인터넷을 잘 뒤져봤더니 거의 반값에 살 수 있었다. 15평을 다 덮을 만큼의 양을 사는데 20만 원 채 안 들었다. 우선 데크 난간을 다 떼어내고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두 겹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저렴한 천막 원단을 사서 다시 한 겹 깔았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인조잔디를 깔았다. 그러고 나서 데크 난간을 다시 설치해서 인조잔디를 고정시켰다. 효과는 최고다. 절대 비가 새지 않아 목재든 철재든 완벽하게 잘 보관하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생각지 못했던 효과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데크 목재에 최소 1년에 한번 발라야하는 오일스테인을 바를 필요가 없어졌다. 전원주택 단지는 대개 의외로 햇빛을 가리는 장애물이 없기에 햇빛이 강하다. 다시 얘기하면 아무리 처음에 잘 만들어도 데크에 발라놓은 오일스테인이 금방 날아간다. 처음 만들 때야 업체에서 오일 스테인까지 깔끔하게 발라 블링블링하게 만들어주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모두 건축주의 몫이다. 오일스테인 값도 비싸지만 일일이 바르느라 허리가 끊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인조잔디를 덮어버리니 고생할 일을 덜어낸 셈이 됐다. 전원일기 4 전원주택 실제 난방비 우리집은 난방을 LPG 가스로 한다. 가스회사에서 대형 가스통을 설치해주고 계량기에 체크된 만큼 청구하는 시스템이다. LPG다 보니 주방용 가스레인지도 다 같이 쓰고 있다. 가스 요금은 난방, 온수, 주방 가스비가 모두 포함돼 있다. 주택 난방은 LPG 가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관리비가 1/3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파트 관리비 1/3 수준 LPG 가스로 난방하면 난방비 폭탄 맞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이들이 많고 전원주택 입주를 생각하는 이들 대부분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단독주택이라 난방비 많이 나오지 않아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년 지출 총액 기준으로는 아파트 관리비의 1/3도 안 나오고, 한겨울 가장 많이 나올 때가 10만 원 후 반~ 20만 원 초 반대다. 그것도 동절기 6개월 정도뿐이고 나머지 6개월은 소액 정도만 나온다. 이사오기 전 34평 아파트에 살 때는 관리비가 평소 20만원 대, 동절기에는 35~38만원 나왔었는데 그때 생각하면 지금 난방비는 엄청 저렴한 수준이다. 난방과 단열 효과 좋은 목조주택 참고로 우리 집은 목조주택인데 목조주택의 난방과 단열효율이 좋다고 한다. 콘크리트 주택의 경우에는 콘크리트 자체가 여름에는 달궈지고 겨울에는 얼어서 그 자체에서 계속 열기나 냉기를 방출하지만 목조주택은 그런 게 전혀 없이 그냥 차단해버린다. 철근콘크리트조, 목조 건축, 스틸 하우스 등 건축구조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살아보니 목조주택이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전원일기 5 태양광패널 설치하기 요즘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에 태양광패널이 설치돼 있는 걸 보게 된다. 예비 전원주택 건축주들은 태양광패널을 설치하는 게 좋은지 아닌지 고민이 될 수 있다. 우리집은 2018년 7월 가정용 태양광패널 3kw짜리를 설치했다. 창고 위에 설치한 게 아니라 아래 태양광패널을 기둥을 세워서 높게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럼 튼튼한 아연각관 기둥 위에 태양광패널이 설치된다. 그런 다음 각관에 샌드위치 판넬만 붙이면 간이 창고로 쓸 수 있다. 주차장 지붕으로 쓰는 이들도 있다. 단, 문을 달면 건축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또, 지자체 마다 기준이 다르므로 반드시 확인해보길 바란다. 창고 크기를 짓는 데만 견적이 500~600만 원 정도 나왔는데, 우리 집은 완공된 태양광패널 밑에 샌드위치 판넬만 붙여 공사비로 150만 원만 지불하고 간이 창고를 덤으로 얻었다. 태양광패널은 7년 할부로 설치했다. 월 39,700원 X 84개월 = 약 3,334,800원. 태양광패널을 설치할지 말지를 고민할 때, 평소 내던 전기세와 태양광패널 설치 후의 전기세가 월 39,700원 이상 절감되면 설치할 가치가 있고, 39,700원보다 적게 절감되면 할 필요 없는 것이다. 내가 설치하고 전기세를 직접 내보니 매월 전기세가 거의 대부분 기본료 수준인 6,000~7,000원 대밖에 나오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 에어컨을 거의 밤이고 낮이고 틀다시피 했더니 7월, 8월에는 4만 원대가 나왔다. 참고로 우리 집은 2018년도에 333만 원주고 설치했는데, 2020년에 우리 동네 태양광 설치한 이웃들에게 물어보니 100만 원정도에 설치했다고. 2년 새 태양광패널 설치 지원 보조금이 늘어나서 실 설치비가 10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태양광패널 지원금은 국비지원과 지방비 지원 두 가지가 있다. 각 관할 지자체에 국비, 지방비 둘 다 지원받으려면 언제, 어떻게 설치해야하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때를 잘 맞춰서 둘 다 지원 받으면 엄청 싸게 설치할 수 있다. 태양광패널 아래 창고 안. 온갖 도구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 중이다. 그밖에 마당 곳곳에서 펼쳐지는 일상들 그늘진 공간에 인삼 키우기 집 뒤쪽으로 일년내내 그늘이 지는 통로 공간이 아까워서 새싹인삼을 키워봤다. 올 1월 31일 파종했다. 씨앗을 하나씩 심으라고 하던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줄파종했더니 지금 바글바글하다. 1년은 그냥 이대로 키우고 겨울에 전부 뽑아서 다시 하나씩 모종으로 간격 맞춰 심을 계획이다. 집 뒤쪽에 1년 내내 그늘진 자리가 못내 아쉬웠는데, 그 자리에 새싹삼을 키우면 된다는 말에 바로 시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다. 닭을 위한 미니 텃밭 만들기 닭을 방사해서 키우면 좋겠지만 방사하면 천적의 공격 등으로 위험해서 어쩔 수 없이 막혀 있는 닭장에서 키운다. 신선한 풀을 계속 공급해 주기가 너무 귀찮아서 아이디어를 냈다. 닭의 모가지가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위치에 철제 망을 설치하고 그 안쪽으로 이파리가 자라면 뜯어먹을 수 있도록 미니 텃밭을 만들었다. 미니 텃밭에는 쑥갓, 상추, 민들레 등 온갖 씨앗을 다 심었다. 그리고 테스트로 무청 2개를 씨를 뿌려놓은 미니 텃밭에 꽂아두니 닭들이 이파리만 잘 쪼아 먹었다. 성공이다. 마당 한쪽에 닭들이 좋아하는 지렁이, 곤충 등을 키운다. 토양을 덮어주는 멀칭재배에 검은 비닐을 사용하면 잡초 제거와 수분 증발을 막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명종 씨는 양봉도 시도하고 있지만, 여왕벌 관리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비계 설치 파이프로 저렴하게 파고라 만들기 전원주택에 살면 가장 기본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 중 하나가 파고라다. 하지만 비싸다. 집을 지으면서 손상돼 시공사에서 버리는 비계 설치 파이프를 얻어놓은 것이 있었다. 포도나무 그늘 아래 테이블을 놓고 커피 한잔 마시고, 포도, 키위, 다래 따 먹고, 아들내미랑 장기 한판 둘 수 있는 파고라가 갖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손상돼 버리려던 파이프를 얻어둔 것으로 파고라를 만들었다. 비계 설치 파이프는 철물점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포도나무 아래 앉아 아들내미와 장기 한판 두고 싶은 마음에 비계 설치 파이프로 직접 파고라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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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 4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 4 집과 사람, 자연과 소통하는 집 세 가족 공동체 마을 2호집 차콜하우스 자연과 시각적, 공간적 연결을 고려하고 소통을 중요시한 주택이다. 외관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내부는 쓰임새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 인테리어는 자연소재를 사용해 한옥 스타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글 사진 박창배 기자 취재협조 코비즈건축협동조합 HOUSE NOTE DATA 위치 경기 고양시 성사동 지역/지구 제1종일반주거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베라산취락), 과밀억제권역 건축구조 철근콘크리트조, 경량 목구조 대지면적 201.00㎡(60.80평) 건축면적 73.71㎡(22.30평) 건폐율 36.67% 연면적 136.17㎡(41.19평) 1층 66.51㎡((20.12평) 2층 69.66㎡(21.07평) 다락 32.40㎡(9.80평) 용적률 67.75% 설계기간 2019년 6월~2019년 12월 공사기간 2019년 12월~2020년 6월 설계 및 시공 코비즈건축협동조합 070-4895-6028 건축비용 총 3억 2800만 원(3.3㎡ 당 800만 원) 토목공사 비용 1300만 원 토목공사 유형 옹벽, 침목, 성토, 투수블록, 조경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징크(컬러강판)(한성하우징) 벽 - 스토(지정색)(Sto Korea) 데크 - 방킬라이, 합성 내부마감 천장 - 코르크, 석고보드 벽 - 석고보드, 코르크 바닥 - 원목마루, 코르크마루(이건마루) 계단실 디딤판 - 오크(자체제작) 난간 - 평철 단열재 지붕 - 그라스울 보온판(가등급) 외단열 - 비드법보온판2종1호(가등급) 창호 알루미늄시스템창(이건창호) 현관 탄화목(자체 제작) 조명 LED등, 간접 및 매입등(아인산업) 주방기구 상판 오크 원목(주문제작) 위생기구 대림바스 난방기구 귀뚜라미 가스보일러 세 가족 공동체 마을 2호집 건축주인 베짱이와 꽃잔디 부부. 이들은 2006년 충남 서천에 위치한 산너울마을이라는 생태전원마을 프로젝트에서 만났다. 당시 아내 꽃잔디는 조경담당 과장이었고, 남편 베짱이는 토목건축팀 과장이었다. 둘은 마인드가 통하고 삶과 주거에 대한 방향이 비슷하다 보니 대화가 잘 통했고, 연인으로 발전하고 결혼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생태전원마을 조성 프로젝트 공사기간은 거의 2년 정도였어요. 당시 저희 회사는 주택 설계, 시공, 컨설팅까지 진행한 회사로 시공이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공동체, 관계, 생태, 순환 등 소프웨어적인 부분까지 관리하는 회사였죠. 그때 도시라는 공간에서 각자 나이, 직업, 성별, 가족관계 수 등 정말 다양하지만 공동체라는 큰 틀과 생태라는 철학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면서 저희도 마음이 통하는 분들과 전원에 집짓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둘은 결혼 후 일과 생활 때문에 도심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지만 첫째 아들을 낳고 어린이집 다닐 즈음 아내는 일반적인 교육과정보다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세 가족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현관. 내부는 자연소재를 사용한 한옥 스타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거실부터 식사공간 주방까지 탁 트여 한 눈에 들어온다. 거실은 아이들 놀이터 겸 모임장소로 사용하는 다용도 공간이다. 거실에서 본 명상방 입구. 명상방은 한옥 스타일로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끌어당김의 법칙 ‘끌어당김의 법칙’이 통했던 걸까. 베짱이와 꽃잔디는 세 가족과 공동육아를 하면서 살아온 환경은 서로 다르지만 특별한 만남이었다고 한다. “서로 닮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작게는 친환경 먹을거리부터 크게는 삶의 목표 등 공감대가 통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공동체 삶을 꾸려나가다 보니 갈등도 있고 서운한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죠. 이웃사촌으로 10년을 생활하다 보니 가족 같은 마음이 들어 함께 공동체 마을까지 만들게 됐어요.” 코비즈협동조합의 일원인 베짱이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프로젝트 현장소장을 자처했다. 집을 짓기 보다는 관계를 짓는다는 마음이었다. 최소 3년 하자보증은 기본이고 30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짓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부지는 있는 그대로의 모양을 최대로 살리고 싶었다. 땅 구입 후 구옥을 철거하고 땅이 원래 생긴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자고 세 가족과 코비즈 설계팀에 제안했다. 지붕은 오랜 시공경험으로 터득한 경사지붕을 권유했다. 방수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또 경사 지붕에 맞게 내부에 다락을 만들면 아이들이 커가면서 좋은 추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세 가족과 코비즈도 베짱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주방은 후정으로 시선과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주방은 주부의 작업 공간이기도 하다. 1층 계단실은 거실, 주방에 있는 부모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돼 있다.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는 집 베짱이와 꽃잔디는 주택 설계할 때 자연과 시각적, 공간적 연결을 중요시했다. 비 오는 날 빗소리 듣고, 바람 좋은 날엔 차를 마시며 쉼을 누릴 수 있는 야외 공간과 주방 옆 식사 공간 앞에 데크를 설치해 날씨 좋은 날에는 야외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계획했다. 외관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내부는 실용적이고 쓰임새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 인테리어는 자연소재를 사용한 한옥 스타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내외 공간 배치는 주부의 짧고 편리한 동선을 고려하고, 공간마다 수납장을 짜넣어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거실, 식사 공간, 주방은 한 동선으로 탁 트이고 넓다. 거실은 소파 등 최소한의 가구를 배치해 아이들의 놀이터이가 되기도 하고 손님맞이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다용도 공간이다. 주방은 식사 겸 주부의 작업 공간으로 계획하고, 식사 공간(큰창), 데크, 후정(프라이빗 정원)으로 시선과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층 가족실과 안방, 다락이 보인다. 가족실은 아이들 놀이공간으로 이용하다가 필요 시 방으로 사용할 수 있다. 2층 안방. 2층 계단실은 거실, 주방에 있는 부모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이 소통하기 쉬운 구조로 연결돼 있다. 또 계단 높이를 낮게 하고 디딤판을 넓게 해 어린 아이들이 오르내리기 편하게 고려했다. 아이들이 자라 가족 수의 변화를 고려해 유용한 공간 구조를 계획한 점도 돋보인다. 2층 중간에 가족실을 두어 그림그리기와 놀이공간으로 이용하다가 필요 시 방으로 사용하고, 아이들이 독립해서 나가면 가족실이나 부모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손님이 올 경우를 고려해 편리한 동선에 변기와 작은 세면기를 욕실과 분리해 설치했다. 아이들의 비밀 공간인 다락. 아이들 자유롭게 노는 모습에 만족 집 짓고 사는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부러워하지만, 부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한다.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이웃과의 관계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고 아직 공사가 끝난 게 아니라는 것. “집 짓는 게 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살면서 가꾸고 만들어나가야 할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공유 마당 가꾸는 것도 최소한 1년을 지켜보면서 우리 부지에 맞는 것들을 5년 10년 30년을 내다보고 심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녀도 일단 층간소음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우리 자녀들이 마음 놓고 집 안팎에서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고, 그 모습을 보면 집짓기를 잘했고 보람을 찾는 것 같습니다.” 1호집 밀크하우스와 나란히 자리한 2호집 블랙하우스. 색상대비 효과로 뚜렷해 보인다. 주방과 이어진 데크. 날씨 좋은 날에는 야외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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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3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3 진짜 집짓기는 지금부터 세 가족 1호집 밀크하우스 ‘포비와 스머프’, ‘베짱이와 꽃잔디’, ‘바람개비와 막대기’가 함께 일구고 있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세 집이 나란히 지은 데다 외벽 색깔이 다 다르다보니 1호집은 하얀 집, 2호집은 검은 집, 3호집은 녹색 집으로 불린다. 동네 아이들은 1호집 외벽 색깔이 하얗고 모양이 우유갑을 닮았다고 ‘밀크하우스’라고 부른다. 글 사진 박창배 기자 | 취재협조 코비즈건축협동조합 ※고양시 성사동 ‘세가족 마을’은 공동육아를 하던 이웃끼리 뜻을 모아 만든 작은 마을이다. 본지는 2020년 9월호부터 5회에 걸쳐 ‘마을 만들기’, ‘마을 내 세 가족 집짓기 과정’을 순차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HOUSE NOTE DATA 위치 경기도 고양시 성사동 지역/지구 제1종 일반주거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베라산취락) 건축구조 철근콘크리트조, 경량 목구조 대지면적 201.00㎡(60.80평) 건축면적 73.44㎡(22.21평) 건폐율 36.54% 연면적 126.32㎡(38.21평) 1층 66.47㎡(20.11평) 2층 59.85㎡(18.10평) 용적률 62.85% 설계기간 2019년 6월~12월 공사기간 2019년 12월~2020년 6월 토목공사비용 1300만 원 토목공사유형 옹벽, 침목, 성토, 투수블록, 조경 건축비용 560만 원(3.3㎡ 당) 설계 및 시공 코비즈건축협동조합 070-4895-6028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아스팔트 이중슁글(하성하우징) 벽 - 스타코플랙스(Sto Korea) 데크 - 합성데크 내부마감 천장 - 석고보드 벽 - 석고보드 바닥 - 데코타일 계단실 디딤판 - 원목(애쉬) 난간 - 평철 핸드레일 단열재 지붕 - 글라스울 보온판(가급) 외단열 - 비드법 보온판 2종 1호(가등급) 창호 PVC 250 이중창(이건창호) 현관 탄화목 마감(자체 제작) 조명 라디룸 주방기구 soso design 위생기구 대림바스 난방기구 가스보일러(귀뚜라미) 배치도 “하늘과 산을 가리는 높은 건물을 싫어하고,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자연과 가까운 삶,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삶을 원했어요. 시골로 가지 않는 이상 그런 땅은 그린벨트일 수밖에 없었지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1호집인 포비와 스머프 가족. 이들은 집을 짓기 전에도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부부는 아이가 자연과 가까이하며 자라고 마당에서 반려견을 키우고자했는데, 운 좋게 그린벨트 내 단독주택을 찾아 전세로 8년째 살고 있었다. 하지만 포비(남편)는 자신들만의 집을 짓고 싶었다. 가까운 지인이 집을 짓는 것을 보면서 그 마음이 더욱 커졌고 호시탐탐 기회를 모색하던 중 마음 맞는 이웃을 만났다고. “남편은 집을 짓는 과정 자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어서 매력적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싫다고 버티고 버텼지만 남편의 고집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웃들의 설득으로 결국 백기를 들었어요.” 내부는 거실-패밀리룸-다이닝룸-주방-다용도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계단은 동네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는 곳이기도 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한 면을 가득채운 책장과 우드슬랩테이블이 시선을 압도한다. 동선에 따라 순환하는 구조 포비와 스머프는 시간적, 재정적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외관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지붕은 방수 면에서 우수하고 따뜻하고 빨간머리앤의 그린게이블처럼 전통적인 박공지붕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땅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박공지붕이 나왔지만 이에 만족해한다. 내부 디자인은 1, 2층 모두 계단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것이 특징이다. 거실과 패밀리룸, 다이닝룸과 주방, 다용도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살짝 비틀어지면서 공간이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건축주 부부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설계는 아니어서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살아보니 매우 실용적이라고. “거실에서 주방 싱크대가 잘 보이지 않으니까 설거지가 좀 쌓여 있어도 괜찮거든요(웃음).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공간이 나누어지고, 나누어지면서도 벽이나 문으로 막혀 있지 않아 답답하지 않아요. 개방감이 있으면서도 공간마다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거실과 이어진 가족실. 커튼으로 공간을 나눌 수도 있고 분리할 수도 있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책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북카페 느낌이 연출됐다. 식당과 주방. 식탁 앞 고정창으로 뒷집 정원과 텃밭, 산의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집짓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 인테리어도 특별한 콘셉트를 설정하지 않았다. 재정적 여력도 없었지만 그럴 필요성도 못 느꼈다는 것. 그냥 자신들이 가진 자원인 땅의 모양과 주변 풍경, 예산과 시간의 범위 안에서 삶을 가장 자연스럽고 편한 방식으로 담아낼 그릇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거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한 면을 책장으로 가득채운 부분과 한 가운데 자리한 우드슬랩테이블이다. 마치 도서관 같기도 하고 북카페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여기서 책도 보기도 하지만 일도 하고, 딸아이는 공부를 하고, 손님이 많이 올 때는 식탁이 되기도 한다. 한쪽 구석에 자리한 주방은 막힌 것처럼 보이지만 현관과 연결돼 있고 뒷마당과도 통해 동선이 자유롭고 편리하다. 내부는 1, 2층 모두 계단을 중심으로 순환하도록 계획했다. 2층 복도. 1, 2층 계단에 보이드 공간을 둠으로써 개방감을 한결 강조했다. 부부 침실. 답답하지 않게 문을 달지 않았고, 가림막 역할을 하는 책장을 두었다. 부부는 막히고 답답한 것을 싫어해서 1, 2층 계단에 보이드 공간을 두었다. 뒷집 정원과 텃밭, 산의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는 식탁 앞에는 커다란 고정창을 설치했다.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고정창 앞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단다. 책이 많고, 고정창도 많고, 조명이 많아서 그런지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이 “북카페 아니냐”고 묻곤 한다고. 부부 침실에서 본 모습. 좌측 딸 방과 정면으로 작업실이 보인다. 입구에서 본 정면. 동네 아이들은 이 모습을 보고 우유갑을 닮았다며 밀크하우스로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중에는 예전 집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어쩌면 하드웨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단독주택에 살아서 그런지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우리는 예산 때문에 마무리를 못했던 것이 많아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고, 하나씩 장만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진짜 집짓기가 시작된 거죠.” ‘포비와 스머프’,‘베짱이와 꽃잔디’,‘바람개비와 막대기’가 함께 일구고 있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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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2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2 3개월이 30년 같았던 세 가족 집짓기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로 한 ‘포비와 스머프’, ‘베짱이와 꽃잔듸’, ‘바람개비와 막대기’ 세 가족. 이들은 일을 추진할 때 만장일치를 규칙으로 하고 있다. 어느 누가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소소한 일이라도 모두가 마음에서 동할 때 함께 일을 추진한다. 세 가족이 함께 진행한 땅 구입부터 집짓기 과정을 소개한다. 글 사진 박창배 기자 | 자료제공 세 가족과 코비즈협동조합 배치도 5차 스케치배치도 6차 스케치 공동육아로 만난 세 가족은 또래 자녀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학부모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학부모 모임들 중 가까운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단독주택을 짓는 것을 보자, 이들도 부러운 마음에 자기들만의 집과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입지는 자녀들이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대곡초등학교가 자리한 고양시 대장동 인근을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대장동 주변은 땅값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곡초등학교 교사인 바람개비가 차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로 하고 지역을 확장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구옥이 있는 부지 모습 구옥을 철거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부지 모습 2017년 겨울, 스머프와 바람개비가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고는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는 베짱이에게 집을 지을 수 있겠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베짱이 역시 바로 추진하자고 했다. 세 가족은 들뜬 마음으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맥 빠진 답변이 돌아왔다. 팔 수 없는 땅이라는 것.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는 것이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베짱이는 그 땅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고 한다. “사실 부지를 본 첫 느낌은 너무 초라해 보였어요. 귀신 나올 것 같은 오래된 구옥이 있는 허름한 곳이었거든요. 구옥이 없다는 상상을 하자 마음에 들었고, 규모와 가격 면에서 이만한 땅을 찾기란 어려울 것 같았어요.” 세 가족 공동체 마을의 모형 007 작전 방불케 한 땅 구입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에 베짱이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부동산중개사무소에 들러봤다. 그러자 근저당 설정이 풀려 이제는 팔 수 있다고 했고, 세 가족은 긴급회의 후 바로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막상 땅 구입을 위해 부동산중개사무소를 방문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세금체납 건으로 10평 남짓한 땅 진입로가 압류돼 있는 것이다. 세 가족은 아쉽지만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이들 학교와 15분 거리밖에 안 되는 위치며 자금에 맞는 땅 규모며 마음에 드는 곳이어서 놓치기 싫었다.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이와 같은 부지를 찾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세 가족은 부지 진입로 압류 건을 직접 해결하고 땅을 구입하기로 했다. 체납된 세금을 지주 대신 입금해주고 압류가 풀리는 즉시 땅 계약을 마무리 짓기로 한 것이다. 역할을 나눴다. 1명은 세무소에서 토지 압류 건 문제를 해결하고, 1명은 공인중개사무소에 대기하고 있다가 압류 건이 해결됐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땅 값을 지급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1명은 법무사와 계약사항과 등기소에서 압류 건을 확인하기로 했다. 수시로 휴대폰으로 진행 상황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식으로 세 가족은 2018년 봄에 고양시 성사동 땅 210평을 평당 400만원에 구입했다. 이웃주민들은 “이곳에 빌라를 지으려고 이미 여러 업체에서 땅을 보고 갔고, 땅 모양도 안 좋고 진입로가 너무 좁다며 다들 포기하고 돌아갔는데,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 땅을 샀느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진입로가 좁다보니 공사차량으로 인한 민원발생으로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세 가족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세 가족은 2020년 3월 15일 일요일에 집을 지어주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하고 같이 살 이웃들에게 화합을 청하는 고사를 지냈다. 세 가족 모두 허탈했던 땅 배분 땅 구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지만, 세 가족이 공동명의로 구입한 땅을 3등분으로 분할해야 했다. 협소한 땅을 3등분으로 분할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배분하는 게 더 큰 난관이었다. 모두가 원하는 땅을 배분받기를 바라는 게 당연지사.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원하지 않는 땅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땅 배분 방식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중 두 가지 방식으로 압축됐다. 하나는 제비뽑기였고, 또 하나는 1, 2, 3지번 중 원하는 땅과 원하지 않는 땅을 선택하고 그에 대한 이유를 각각 적어보기로 했다. 그런 다음 이유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되는 가족에게 해당 땅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두 번째 방식으로는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제비뽑기 방식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원하지 않는 땅을 뽑더라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토목공사와 조경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세 가족이 공동으로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제비뽑기하는 날, 세 가족 모두가 가슴을 졸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허탈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원하던 땅이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제비뽑기 후 세 가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땅 배분이 끝나고 나서는 설계에 들어갔다. 땅의 크기가 210평 정도이고 진입로와 도로부지를 제외하면 200평, 세 집으로 나누면 65~68평이 나왔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적용하면 바닥 평수는 20평대, 전체평수는 40평 전후의 2층집 모양이 그려졌다. 집과 집 사이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마당을 함께 공유하기로 했다. 대지 모양도 반듯한 모양이 아니기에 3등분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서리 쪽 자투리 공간들이 생겼다. 설계는 2018년 봄부터 가을까지 5개월 정도 걸렸다. 설계하는 동안 세 가족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전원주택 전문 잡지를 보며 스크랩하고 부부간에 상의하고, 자녀들과 상의하고, 또 세 가족 간에 정보를 공유하며 상의하는 등 시간가는 줄 몰랐다는 것. 하지만 시공에 들어가면서 다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세 가족 공동체 마을은 베라산을 등지고 도심 속 작은 마을의 맨 끝 쪽에 자리한다. 원주민과의 마찰과 비교하는 마음 가장 큰 문제는 원주민과의 마찰이었다. 여기저기서 민원이 들어왔다. 앞으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이웃이기도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불편한 관계가 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원주민과 공사차량이 이동하는 동선에 있는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양해를 구했다. 식사대접을 하기도 하고 과일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공사가 진행되는 3개월이 꼭 30년 같았을 정도라고 한다. 그나마 세 가족이 함께 하다 보니 다행이었다. 원주민과 민원 대응도 세 가족이 역할을 나눠서 맡았다. 만일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포기했을 것 같다고 한다. 세 가족이 함께 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있었다. 옆집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힘들었다는 것. “안 그러려고 해도 세 집을 동시에 짓다보니 비교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우리는 못하는데 옆집에서 하는 것을 볼 때 부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죠.” 건축에 종사하는 이들이 하는 말 중에 ‘친한 사람 집짓기’, ‘내 집 짓기’ 그리고 ‘그곳에 함께 사는 것’이 세 가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한 애로사항도 있었다고 한다. “함께 살 사람이 시공을 맡다보니 시공자도 저희도 애로사항이 컸던 것 같습니다. 가깝게 지내왔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이웃사촌이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했고요. 그리고 시공자 입장에서 뱉은 말도 애초에 모르던 사람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가까운 사람이어서 그런지 왠지 서운한 감정이 들었어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현장소장을 맡은 베짱이도 공사를 진행하면서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토로한다. “이웃으로 만나 관계를 유지하는 거와 클라이언트 관계는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건축주들과 형님 동생하면서 아주 가깝게 지냈는데 공사를 진행하면서 서먹서먹해졌어요. 이웃사촌의 집이고, 직접 살 집이다 보니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려다 보니 부담감을 주면서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시공하는 입장에서 아내도 클라이언트 중 1명이었고, 아내한테도 많이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에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 가족의 집짓기는 2019년 겨울에 첫 삽을 뜨고 2020년 여름에 완공을 보았다. 갈등도 있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서로간의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좋은 공동체 마을을 가꾸어나가겠다는 게 세 가족의 소박한 희망이다. <공사 과정> 01 부지 내 외부 옹벽 터파기 02 옹벽 기초 버림 타설 03 옹벽 거푸집 해체 및 3호집 1층 주차장 기초 철근 배근 04 1, 2호집 기초 철근 배근. 3호집 2층 바닥 거푸집 설치 05 1, 2호집 기초타설 및 양생 중. 3호집 2층 바닥 철근 배근 완료 06 경량 목구조 자재 반입 07 1, 2, 3호 외부 단열재 및 지붕 서까래 및 방수시트 완료 08 1, 2, 3호집 철근콘크리트 공사 완료. 내·외부 거푸집 해체 09 1, 2, 3호집 지붕 공사 전경. 1호집은 아스팔트 이중그림자 슁글, 2, 3호집은 징크로 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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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1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1 공동육아로 뭉친 세 가족과의 특별한 만남 고양시에 있는 ‘성사동 세가족’ 마을. 이들은 10년 전 이웃으로 만나 공동육아를 하며 살다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마을을 만들었다. 공동체마을을 통해 삶과 이웃, 자연이 교집합 하는 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다. 그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다. 특별한 인연, 코비즈건축협동조합과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 백홍기 기자 | 자료협조 코비즈건축협동조합 070-4895-6028 www.cobees.net 10년 전 이웃으로 만나 공동육아를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고양시에 작은 ‘성사동 세가족’ 공동체 마을을 만든 이들은 ‘포비와 스머프’, ‘바람개비와 막대기’, ‘베짱이와 꽃잔듸’라는 애칭을 사용한다.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통용되는 애칭이다. ‘○○네 엄마, 아빠’, ‘아저씨, 아줌마’호칭은 거리감이 있어 위계를 없애고 편하게 생활하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공동육아는 나눔이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다. 때론 그 과정에서 이웃과 가족애가 쌓이기도 한다. 세 가족이 모여 자기들만의 공동체마을을 만들기로 한 것도 지난 10년간 쌓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존 주거 형태는 스머프네만 마당이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생활하고 바람개비와 꽃잔듸네는 전형적인 빌라에 살았다. 세 가족은 집이라는 형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조금 더 편리하고 변해가는 생활 패턴을 담아낼 공간과 울타리 없이 편하게 자기 집처럼 왕래하며 함께 모이고 웃음이 넘치는 따뜻한 공간을 원했다. 건축전문가를 만나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쯤 코비즈건축협동조합(이하 코비즈)과 인연이 시작됐다. 코비즈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뭉친 사람들이다. <배치도 1차 스케치> <배치도 4차 스케치>‘성사동 세가족’ 마을 배치도 스케치 단독주택을 계획할 때 앞마당이 넓은 것을 선호하지만, 여러 해를 지나고 나면 넓은 뒷마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성사동 세가족’은 모두에게 드러나는 정원이 아닌 세 가족을 위한 후원 같은 넓은 뒷마당을 제안했다. 하지만, 가운데 집 형태가 길어져 익숙하지 않은 평면과 배치 때문에 여러 다른 의견이 나왔다. 정원을 어디에서 바라보는가에 대한 의견 차이도 있었다. 최종 배치는 뒷마당을 없애고 주택이 앞마당을 감싸는 형태가 됐다 특별한 사람들의 만남 2013년 3월, 건축 관련 일을 하는 몇몇이 카페에서 좋은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의기투합했다. 코비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코비즈건축협동조합을 설립하고 7년간 6개 단지 공동체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해 주택 70여 채를 짓고, 복합시설 프로젝트 3개를 완공했다. 정상오 조합이사장(건축시공기술사)은 ‘함께 사는 좋은 집’을 만들겠다는 공감대로 뭉친 건축 관련 전문가 단체라고 소개했다. “코비즈는 타일공, 목수, 정원사, 페인트공, 조적공, 미장공, 거푸집 기술자, 시공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현장소장, 설계하는 디자이너들 등이 모인 건축 집단입니다. 제도에 의한 분리보다 진심으로 건축을 걱정하고 건축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건축인, 건축가라 할 수 있습니다. 코비즈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따로 일하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고 일해야 좋은 결과물을 얻습니다. 마치 합창과 같습니다. 개체가 아닌 협력을 통해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코비즈에선 집이 아닌 ‘코하우징’을 짓는다고 한다. 함께 사는 주택을 말한다. ‘함께’라는 의미는 아파트 공동주택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주택 ‘구성’과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의 ‘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구성과 수라는 것은 우리 개개인이 상대하는 즉, 친밀도를 유지하는 구성과 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코하우징은 한 사람 또는 한 가족이 이웃을 이루며 서로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적정한 규모의 작은 마을 단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사동 세가족’마을 스케치 과정 설계를 진행하기 위해 전체 의논을 나누며 1차 스케치한다. 스케치한 결과는 설계에 바로 반영하지 않고 여러 의논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공간을 찾고 아이디어를 반영하며 새롭게 스케치한다. ‘성사동 세가족’은 스케치를 네 차례 거쳐 원하는 공간을 찾았다. <배짱이와 꽃잔듸네 1차 스케치> <배짱이와 꽃잔듸네 4차 스케치> <막대기와 바람개비네 1차 스케치> <막대기와 바람개비네 4차 스케치> <막대기와 바람개비네 입면 스케치> <스머프와 포비네 1차 스케치> <스머프와 포비네 4차 스케치> 집은 빵이다! 코비즈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기간이 다소 길다. 그 시간을 정 조합이사장은 ‘발효 과정’이라고 한다. “밀가루 반죽으로 바로 빵을 만들어도 되지만, 더욱 좋은 식감과 풍미를 갖추기 위해 발효를 거칩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죠. 도면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가족들과 끊임없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깊이 이해하고 집에 대한 애정도 더욱 커지죠.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입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죠. 그래서 급하게 진행하면, 좋은 집을 완성하기 어렵습니다. ‘생각의 발효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계에서 충분히 검토한 이야기를 그대로 적용하려면 꼼꼼한 시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장 기술자들도 더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함께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시공이 길어지면, 그만큼 비용이 올라간다. 건축주 입장에선 고민일 수밖에 없지만, 비용이라는 부담을 뛰어넘어 코비즈를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집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단적인 예로, 코비즈가 진행하는 현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의논하는 모습은 새롭지 않다. 공간 활용성, 효율적인 배선과 배관 배치, 사용자 편의성 등 조금이라도 개선점이 필요하거나 더 좋은 방식이 있을 거 같으면, 해당 기술자가 즉석에서 스케치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다 모여 열띤 토론을 진행한다. 그래서 늘 현장은 토론장으로 변하고 벽과 바닥은 캔버스가 된다. 건축주는 물론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 모두 즐겁고 행복해야 좋은 집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모형도 현장답사와 스케치 단계를 거친 후 모형도를 만들었다. 실내 인테리어 코비즈는 수평·수직으로 공간이 막히지 않고 산책로 같이 열린 공간을 선호한다. 햇살 가득한 툇마루와 모호한 내·외부 경계를 형성하는 한옥과 같은 공간이다. 큰 세상 향한 작은 마을 코비즈cobees 이름은 함께라는 ‘co’와 꿀벌 ‘bees’를 더해 ‘함께 일하는 꿀벌들처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협력을 통해 집을 짓는 생명체 가운데 가장 집을 잘 짓고 자연에 좋은 일을 하는 건 벌입니다. 코비즈는 우리와 이웃, 세상에 좋은 건축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집과 마을, 도시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축주를 포함해 집이라는 공간을 형성하는데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건축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공간을 두고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한다. 돈을 버는 공간, 놀이나 휴식, 취미를 위한 공간 등 목적과 욕망에 따라 공간은 다양한 형태로 쓰임을 갖는다. 코비즈는 이러한 공간을 통해 이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그 과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가족이 머무는 집을 통해 자연과 이웃을 연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웃이 모여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마을은 아이들의 학교가 된다. 학교는 다시 아이와 마을사람들의 정원이 되는 행복한 ‘마을학교정원’이라는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들은 꿈같은 이야기를 재현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성사동 세 가족은 코비즈와 인연이 아니었다면 공동체마을 프로젝트가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작은 땅에 각각의 요구 조건에 맞춰 공동체마을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건축 환경은 까다로웠고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기 어려웠다. 현장 스케치 공사를 시작하면 현장은 모든 기준이 된다. 사무실에서 그린 도면은 현장에서 현실이 되기 때문에 현장 소장과 현장 기술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늘 토론의 결과가 좋은 건 같은 마음과 뜻으로 모여 오랜 기간 함께해왔기 때문이다. 단열·기밀·구조·디테일 마감 건물을 잘 짓는 건 기본이다. 단열과 기밀, 구조 디테일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간단하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기본에 충실 한다는 것은 타협이 아닌 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비즈가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며 늘 중심에 둔 단어는 ‘생활’이고 생활이라는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에 집중한다. 그래서 코비즈는 ‘성사동 세가족’ 마을을 각각의 집을 전체 가운데 한 개체로 보고 ‘생활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다 보니 이해 차이는 있지만, 충분한 시간을 거쳐 함께 하나씩 해결해냈다. 세 가족도 그들이 바라던 ‘생활’과 지향점이 같았다. 코비즈에서 세 집을 구성하고 공간을 연결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따로 또 같이’다. 그 과정도 수월하진 않았다. 세 집, 세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 소개한다. 외부 진입로에서 주차장을 지나면 넓은 마당에서 각 주택으로 연결된다. 마당 배치는 볕이 잘 들고 함께 지내기 편한 구성이라 모두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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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흙과 돌을 사용해 지은 숲속 돌집 꿈꾸는 다락방
- 흙과 돌을 사용해 지은 숲속 돌집 꿈꾸는 다락방 아끼고 보듬은 사물이 반질반질 윤이 나고 본연의 빛을 발할 때 우리는 ‘품위’가 느껴진다고 한다. 땅끝마을 해남에서 만난 아담한 돌집이 바로 그러하다. 글 사진 백홍기 취재협조 이세일(목수), 윤용신(플로리스트) 부부 해남에 있는 작은 목신마을에서 아담한 돌집을 만났다. 방 한 개와 주방 겸 거실, 다락을 갖춘 8평 크기의 작은 집이다. 이곳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부부가 산다. 돌집을 처음 계획한 건 아내 윤용신 씨다. 타지에서 일하다 귀촌 한 윤 씨는 부모님이 살던 고택 마당 옆에 있던 창고를 허물고 작은 돌집을 지었다. “혼자 살 때부터 집에 관심이 많았어요. 현대식 아파트나 넓은 단독주택이 아니라 숲속의 작은 오두막 같은 집이요. 어린 시절에 겪은 추억과 감성이 무럭무럭 자라 꿈이 된 거예요.” 윤 씨의 꿈은 할머니 집 옆에 있던 초가집 지붕 아래 다락방에서 움텄다. 오래 묵은 책 냄새와 촛불이 일렁이던 다락에서 그녀만의 감성을 키운 것이다. “다락방에 대한 로망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잘 가꾼 살림살이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예쁜 마당에서 놀던 기억도 좋았어요. 이러한 것들이 몽상에 불과했던 집에 대한 추억을 현실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거죠. 오래전부터 나만의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집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가 고향에 돌아와 꿈의 집을 지어보기로 한 거예요.” 아내의 플로리스트 작업실 앞마당을 부부가 함께 새 단장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이세일 목수 작업실이다. 오랜 곡괭이질 뒤에 잠시 허리 펴고 아내의 작업실을 바라보는 이세일 목수. 작업실은 이세일 목수 혼자 만들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작업실 풍경. 이세일 목수 작업실이다. 이곳에서 자기만의 작품 세상을 이뤄내 여러 차례 전시와 초대전을 거치며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나무 숟가락과 스툴 만들기 등 다양한 수업도 진행한다.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게 한 집 윤용신 씨가 돌집을 선택한 건 오래될수록 예뻐진다는 게 이유다. 어려서 아버지가 직접 짓고 살았던 돌집에 대한 기억도 한몫했다. “막상 돌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은 다음부터는 돌만 보였어요. 어떤 돌이 예쁜지 가는 곳마다 돌을 살폈어요. 돌도 지역마다 색과 질감이 달라 찾기 힘들었는데, 지인이 미황사(해남 서정리)가 있는 지역의 돌이 예쁘다고 했어요. 미황사 근처에 있는 밭을 개간하며 쌓아둔 돌을 가져와 집 토대를 쌓기 시작한 게 2008년 6월이에요.” 규모는 혼자 살 집이라 아담한 크기로 계획했다. 당호는 <꿈꾸는 다락방>으로 지었다. “목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 사람은 경험이 필요했고 저는 집이 필요하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함께 시작했어요. 하지만, 서로 모르는 게 많다 보니 힘들어져서 결국 그분이 손을 떼고 다른 분을 소개받았어요.” 두 번째로 소개받은 목수가 현재 남편이 된 이세일 목수다. 20대 초반 불교 조각에 입문해 한창 이름을 날리던 이 목수도 자기만의 삶을 찾아 고향인 해남에 돌아와 조용히 작품 세계를 넓혀왔었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돌집’을 통해 만나게 된 것이다. 집 짓기는 1,500만 원으로 시작했다. 주재료는 주변에 널린 흙과 돌을 사용했지만, 그래도 적지 않게 건축자재 구매 비용이 필요했다. 부족한 예산은 틈틈이 일해 보충했다. 과정이 더뎠지만, 급할 게 없고 얽매일 것도 없었다.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는 집을 보며 윤 씨는 행복하기만 했다. 그 사이 두 사람의 관계도 점점 견고해져 갔다. 집을 완공한 2010년 그해 봄 얽매인 제도를 싫어했던 그들답게 고택 앞마당을 정리하고 가볍게 혼례상을 차려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모님이 살던 옛집을 지나 부부의 공간인 돌집으로 향하고 있다. 고택은 손님을 위한 게스트로도 이용한다. 윤용신 씨는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돌집을 북향으로 배치하고 오솔길을 만들었다. 초보자도 쉽게 짓는 어스백 하우스 Earthbag House “이 집은 어스백 Earthbag 공법으로 지었어요.” 어스백은 영어 Earth와 Bag 합성어로 흙을 담은 부대(마대 혹은 포대)로 짓는 공법을 말한다. 흙 부대 또는 흙 자루 집이라고 하는 어스백 하우스 Earthbag House는 1984년 NASA(미항공우주국)에서 흙밖에 없는 달에 건축물을 짓기 위해 논의하던 중 이란 건축가 네이더 카 흐릴 리 Nader Khalili가 제안한 방법이다. 어스백 공법은 원형과 곡선 구현이 가능하며, 아무 흙이나 사용해도 되기 때문에 구하기 쉽고 쌓는 것도 간단해 초보자들도 쉽게 집을 지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흙 부대 폭이 넓어 자연스레 벽체가 두꺼워져 단열과 축열, 방음 효과가 높고 흙 밀도가 높아 충격에도 강해 자연재해에도 안전하다. 이 집은 양파망에 흙을 담아 층층이 쌓고 외벽을 돌로 마감했다. 실내 안쪽 벽은 황토로 미장한 뒤 바탕색을 회벽으로 칠하고 실별로 다른 색을 입혀 아늑하게 꾸몄다. 돌 벽과 잘 어울리는 예쁜 하늘색 목문을 열면 현관 없이 바로 거실과 마주한다. 벽과 주방가구, 살림살이에 부부의 온갖 감정과 이야기가 지나온 시간만큼 쌓였다. 낡고 허름한 공간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작지만, 넉넉하게 보이는 건 비움에 의한 여유로움 때문이다. 윤용신 씨의 다락에 대한 로망이 이 집을 짓게 했다. 오픈스페이스로 만든 다락 뒤에 보이는 또 다른 다락방은 시공 실수로 인해 지붕 아래 생긴 공간을 활용한 것이다. 다락에서 내려다 본 이세일 목수. 부부가 고택 툇마루에 앉아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손때 묻은 벽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였다. 아치로 쌓은 아궁이 상부 아귀가 맞지 않아 다른 돌로 끼워 넣은 쐐기돌이 포인트 역할을 했다. 이 집은 8평이지만, 필요한 공간 요소는 다 갖췄다. 비결은 공유 개념이다. 공간을 기능별로 나누고 하루 공간 사용 시간을 따져보면,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공간을 공유 공간에 포함시켜 다기능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 집은 작은 집을 효율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현관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에 거실-주방-식당-응접실 기능을 한 공간에 담은 공유 공간을 배치하고 주방 옆 안쪽에 안방을 뒀다. 거실 상부에 있는 다락은 기둥을 세울 때 실수하는 바람에 지붕 아래 작은 공간이 더해졌다. 그 덕에 방이 하나 더 생겼다고 한다. 소소한 실수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궁이의 아치를 쌓을 때 정점에 끼워 넣는 쐐기돌 아귀가 맞지 않아 살짝 삐져나온 게 오히려 미적인 효과를 내게 된 것, 굴뚝을 잘 못 설치해 이를 가리려고 단을 쌓은 게 멋진 벤치가 된 것 등이다. 실수를 오점汚點으로 생각하지 않고 재치와 유머로 넘겨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부부의 건축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윤용신 씨의 플로리스트 작업실을 짓고 있고, 커가는 딸의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이것들이 끝나면 마지막 건축이 기다리고 있다. 딸이 결혼한 뒤 가족과 놀러 올 때 함께 거주할 공간이다. 돌집이 윤용신 씨만의 공간으로 계획했다면, 다음 집은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시작할 것이다. 햇볕 좋은 날 앉아서 쉬는 돌 벤치도 굴뚝 위치를 잘못 배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실수가 때론 재미를 줄 수 있어 꼭 나쁘지만 않다고 한다. 고택과 돌집 주변에 널린 풍경. 인위적인 것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이곳만의 풍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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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흙과 돌을 사용해 지은 숲속 돌집 꿈꾸는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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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보물창고 같은 전원생활 청주 혁찬이네 전원일기
- 보물창고 같은 전원생활 청주 혁찬이네 전원일기 어느 날 본지가 운영하는 SNS 네이버포스트 기사에 “우리 집도 구경 오세요”라는 댓글과 블로그 주소 하나가 달렸다. 자연스레 마우스를 클릭해 블로그를 구경했다. 전원생활을 하며 겪는 현실적인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결국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명종 씨가 있는 청주로 직접 찾아가 혁찬이네의 리얼 전원생활을 엿보고 왔다. 글 사진 이수민 기자 취재협조 혁찬이네 blog.naver.com/kormc789 청주에서 전원생활 경력 4년차가 된 이명종 씨. 전원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누리며 겪은 다양한 경험담을 블로그에 담아내고 있다. 2018년 4월, 당시 마흔 둘이던 이명종 씨는 단지 내 최연소로 전원주택을 짓고 입주했다. 전원생활 시작한지 3년이 넘은 지금, 주택 곳곳에 이명종 씨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이명종 씨는 전원생활을 계획하는 이들, 그리고 이제 전원생활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블로그에는 실질적인 전원생활 정보가 가득하다. 가장 먼저 이명종 씨에게 전원주택에 살면서 좋은 점을 물으니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라고 꼽는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가족 모두의 건강이 정말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그리고 전원생활은 평생 심심하거나 한가할 틈이 없어, 뭔가 새로운 걸 계속할 수 있는 ‘보물창고 같다’고도 말한다. “저처럼 사부작거리며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장점이고, 안 맞으면 모든 게 일거리밖에 안 되죠. 아파트가 이미 완성된 기성품이라면 전원주택은 롤플레잉 게임장이라고 보심 됩니다.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레벨업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미래의 손주들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다양한 추억을 남겨 줄 수 있다는 점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여기에 좋은 사람들과 많은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들었다. 꽃이나 꽃씨, 채소 씨앗 등 처음 살 때는 비싸지만 1~2년만 지나면 처치곤란일정도로 늘어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무료 나눔하는 게 일상이 되며 받는 기쁨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는 걸 배우게 된다고. 하지만 로망만으로 절대 전원주택을 짓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연예인의 삶이 TV에서는 화려해 보여도 그 이면에는 정말 많은 고충들이 있는 것처럼 전원주택 생활도 TV에서 보는 모습이나 어쩌다 하루 놀러가서 느끼는 즐거움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 또, 전원주택을 구입해서 입주하는 건 쉽지만, 나가는 건 맘대로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원주택은 최악의 경우 평생 안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조심스레 귀띔한다. “전원주택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고가의 레저용품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살 때는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게 샀지만, 팔 때는 반값으로 내놓아도 안 팔리기 때문이죠. 가능하다면, 집을 짓기 전에 무조건 전세든 월세든 정착하고자 하는 지역에 매물로 나와 있는 전원주택을 골라 1년 정도 살아보세요. 그렇게 시범기간을 지내보고 본인과 가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다 생각이 든다면 그때 그 집을 사 버리거나 부지를 사서 자신만의 집을 지으시길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전원생활을 선택하려는 예비 전원생활자를 위한 조언을 요청했다. “전원생활을 시작하기 전, 이미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선배들과 대화 중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고, 반드시 물어보시구요.” 전원일기 1 29.97평, 단층 전원주택 짓기 우리 집은 29.97평이다. 그 이유는 30평이 넘으면 감리비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지을 것이 아니라면 대개 30평 미만으로 짓는 게 낫다. 건축공사 총비용은 평당 420만 원 정도로 대략 1억2천600만 원으로 업체와 계약하고 바로 공사 들어갔다. 하지만 계약 이후 ‘지붕은 역시 기와가 최고’라는 나의 고집이 발동해 900만 원이 추가돼 건축비가 1억3천500만 원으로 늘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공법은 경량 목구조로 결정했다. 혁찬이네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곰순이. 보디가드 호피무늬 진돗개다. 시공사는 선배 건축주에게 묻고 선택 아마추어인 초보 건축주가 수많은 시공사 중 옥석을 골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주변에 자신의 집을 지은 사람 중 건축업자와 멱살잡이는 기본, 소송 등 살인만 안 나면 다행이라 할 정도로 많은 분쟁을 겪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비단 건축업자가 나쁘다고 치부하기 보다는 건축업자와 건축주의 궁합이 안 맞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건축주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오판하고 그대로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다툼이기도 하고, 일부 건축업자의 경우 알면서도 건축주가 묻지 않았으니 얘기 안 해 준 것이라며 내빼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실, 건축업자가 자선사업가는 아니니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를 먼저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무턱대고 지으려고만 하지 말고, 꼼꼼하게 알아보고 천천히 준비할 것을 권한다. 또 좋은 방법으로는 이미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선배 건축주를 많이 만나보는 것이다. 현재 짓고 있는 집의 건축주에게 시공업체에 대해 묻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면 그 사람들도 신병훈련도 못 마친 나와 같은 수준이니까. 최소 완공하고 1년이 넘은 집의 주인을 만나 물어보는 것이 좋다. 날림 공사는 1~2년 지나면 곳곳에서 티가 나기 마련이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완공 후 A/S로 연락했을 때 잘 조치해주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내 경우에도 이미 입주해 살고 있는 건축주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을 때 바로 계약했고, 착공에 돌입했다. 파고라, 연못, 그네, 해먹 등 야외에서 누릴 수 있는 재미거리가 마당 곳곳에 있다. 2층 천장고를 가진 단층 주택 나는 재산이라고는 적금은커녕 대출 5억뿐이다. 맨땅에 헤딩했다. 막연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가지고 있는 아파트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팔지도 못한 상태에서, 여윳돈 한 푼 없이 짓기 마음 먹었는데, 그때 아내 말로는 무슨 배짱으로 집을 덜컥 짓느냐며 와이프 친구나 주변 동네 아줌마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비용 낭비 없이, 그렇게 29.97평으로 지었다. 그리고 2층은 과감히 포기했다. 이미 다락이 있는 아파트 최상층에서 5년 가까이 살아본지라 다락이나 2층 구조가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단층으로 지었다. 2층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로망이 있을 수 있지만, 귀찮아서 안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2층 높이로 천장고를 높였다. 덕분에 평수는 단층이라 넓게 빠지면서도 주변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단층의 궁색함이 없어진다. 30평을 2층으로 지으면 계단 등 쓸데없는 공간 손실이 많다. 되돌아보니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았다. 크고 높은 거실은 넓게 탁트인 개방감을 준다. 단점은 겨울에도 시원하다. 작정하고 난방하려면 난방비가 꽤나 나올 거다. 구조는 경량 목구조로 지었다. 철근콘크리트에 비해 벽 두께가 절반, 약 20㎝정도 밖에 안 되어 공간 손실이 적다. 목조주택이라는 재질 특성상 단열은 기본이고 시멘트 독 같은 걱정도 없다. 애들 아토피가 심해서 선택한 이유도 있는데 애들 아토피는 이사 온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다 나았다. 지금은 아예 아토피가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주택은 30평 미만의 천장고 높은 단층으로 지었다. 거실과 연결돼 있는 다락 공간은 아이들의 플레이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원일기 2 1m 높여 집짓기와 데크공사 전원주택에 살면 큰 창고가 필요하다. 시골집 같이 땅이 넓으면 마당 한 구석에 비닐하우스라도 길게 치면 되지만, 단지 내 전원주택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뭐하나 구질구질하게 지어 놓거나 널브러져 있으면 집 전체가 망가진다. 그래서 애초에 데크 아래공간을 창고로 써야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선룸에 다양한 운동기구를 설치해 이명종 씨 가족만의 홈짐이 탄생했다. 1m 높게 지은 뒤, 아래공간은 창고로 우리 집은 마당 지면보다 높여서 지었다. 즉,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부터 1m 높게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더 높게 하고 싶었지만 건축법상 1m 이상을 높이면 건축승인이 나지 않는다. 집짓기 전부터 데크 아래공간을 창고로 쓰겠다는 계획이 있었기에 그렇게 했다. 전원주택에 살면 큰 창고가 정말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목재, 철근, 비계 설치 파이프, PVC파이프 등 긴 자재들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 결론적으로 대만족, 대성공이었다. 날씨와 관계없이 바비큐를 즐길 방법을 고심하다가 생각해낸 아이디어. 선룸 한쪽에 야외 테이블을 놓고, 연기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환기통을 설치했다. 주택 주변을 두른 데크 공사 집 완공 후 데크공사도 했다. 우리 집은 단층이다 보니 같은 30평이라고 해도 2층으로 지은 집 보다는 건물 테두리의 길이가 꽤 길다. 이 얘기는 데크를 깔아야 될 면적이 넓다는 뜻이다. 우리집 데크 면적은 꽤 넓다. 집의 4면 중 앞과 양 옆면(총 3개면)을 빙 두르다 보니 대충 계산해도 15평 정도가 나왔다. 평당 50만 원씩 계산해서 데크 비용만 750만 원정도 들었다. 그나마 집을 지었던 시공사에게 맡겨 저렴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주택을 높여짓고, 하부 공간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평소에는 데크로 만든 커버로 닫아놓고 사용해 깔끔하다. 전원일기 3 데크 방수 대작전 애당초 데크 아래를 창고로 쓰려고 계획한 나의 작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데크 방수다. 물론 데크 전문업체에 의뢰하면 방수작업까지도 해준다. 데크를 놓기 전에 합판을 깔고, 방수포 깔고, 여기에 합판을 또 깐 다음 데크를 두르면 깔끔하게 완벽 방수가 되는 데크가 된다. 이 정도 작업이 진행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남는 목재, 철재, 지저분한 여러 가지 안 쓰는 물건 보관 용도로 만드는 건데 그런 고액의 방수작업 비용을 쓸 것 같으면 그냥 필요할 때 목재, 철재 같은 자재를 때마다 사서 사용하는 게 돈이 덜 드는 셈일 거다. 데크 방수처리의 차선책 나홀로 방수할 수 있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해 봤다. 정말 집 지을 때 했던 고민보다 데크방수에 들어간 노력이나 고민이 더 컸던 것 같다. 사실, 데크 설치 시 업체에 방수까지 해달라고 하려다 비용 듣고 바로 포기했다. 얇고 넓은 플라스틱 판이 있으면 그걸 먼저 깔고 그 위에 데크를 깔면 완벽한 방수가 되리라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찾아낸 것이 ‘렉산’이라고도 불리는 PVC판이었다. 아크릴과 같이 투명하고 두께도 아주 얇은 것부터 두꺼운 것까지 종류가 여러 가지다. 각종 건물의 녹색 비 가림막 캐노피가 다 렉산이다. 렉산의 가장 큰 특징은 깨지지 않는다는 것. 유레카를 외쳤지만 곧 좌절했다. 렉산의 비용이 어마무시하다. 그래서 차선책을 찾아봤다. 롤렉산이라고 하여 가공되지 않은 렉산 원판을 그대로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가격이 천차만별이므로 잘 비교해서 살 경우 거의 반값에도 살 수 있다. 하지만 포기했다. 가격 자체도 비싸고 그걸 화물로 배송시켜도 거의 100㎏이 넘는 롤렉산을 혼자 옮기기엔 불가능해 보여 현명하게 포기했다. 그러고나서 아무런 방수작업 없이 한동안 그냥 창고로 사용했다. 결과는 폭망. 비가 한번 오고 나니 그 아래 있던 자재들이 여지없이 젖어버렸다. 인조잔디로 초저렴 방수처리 완성 그러다 데크 위에 인조잔디를 깔아볼까 생각했다. 마당의 천연 잔디와 어우러져 미관상도 괜찮을 듯 싶었다. 결론적으로 최고의 아이디어였다. 15평 정도를 덮을만한 인조잔디는 롤의 형태로 큰 걸 사야한다. 이 또한 인터넷을 잘 뒤져봤더니 거의 반값에 살 수 있었다. 15평을 다 덮을 만큼의 양을 사는데 20만 원 채 안 들었다. 우선 데크 난간을 다 떼어내고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두 겹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저렴한 천막 원단을 사서 다시 한 겹 깔았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인조잔디를 깔았다. 그러고 나서 데크 난간을 다시 설치해서 인조잔디를 고정시켰다. 효과는 최고다. 절대 비가 새지 않아 목재든 철재든 완벽하게 잘 보관하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생각지 못했던 효과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데크 목재에 최소 1년에 한번 발라야하는 오일스테인을 바를 필요가 없어졌다. 전원주택 단지는 대개 의외로 햇빛을 가리는 장애물이 없기에 햇빛이 강하다. 다시 얘기하면 아무리 처음에 잘 만들어도 데크에 발라놓은 오일스테인이 금방 날아간다. 처음 만들 때야 업체에서 오일 스테인까지 깔끔하게 발라 블링블링하게 만들어주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모두 건축주의 몫이다. 오일스테인 값도 비싸지만 일일이 바르느라 허리가 끊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인조잔디를 덮어버리니 고생할 일을 덜어낸 셈이 됐다. 전원일기 4 전원주택 실제 난방비 우리집은 난방을 LPG 가스로 한다. 가스회사에서 대형 가스통을 설치해주고 계량기에 체크된 만큼 청구하는 시스템이다. LPG다 보니 주방용 가스레인지도 다 같이 쓰고 있다. 가스 요금은 난방, 온수, 주방 가스비가 모두 포함돼 있다. 주택 난방은 LPG 가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관리비가 1/3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파트 관리비 1/3 수준 LPG 가스로 난방하면 난방비 폭탄 맞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이들이 많고 전원주택 입주를 생각하는 이들 대부분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단독주택이라 난방비 많이 나오지 않아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년 지출 총액 기준으로는 아파트 관리비의 1/3도 안 나오고, 한겨울 가장 많이 나올 때가 10만 원 후 반~ 20만 원 초 반대다. 그것도 동절기 6개월 정도뿐이고 나머지 6개월은 소액 정도만 나온다. 이사오기 전 34평 아파트에 살 때는 관리비가 평소 20만원 대, 동절기에는 35~38만원 나왔었는데 그때 생각하면 지금 난방비는 엄청 저렴한 수준이다. 난방과 단열 효과 좋은 목조주택 참고로 우리 집은 목조주택인데 목조주택의 난방과 단열효율이 좋다고 한다. 콘크리트 주택의 경우에는 콘크리트 자체가 여름에는 달궈지고 겨울에는 얼어서 그 자체에서 계속 열기나 냉기를 방출하지만 목조주택은 그런 게 전혀 없이 그냥 차단해버린다. 철근콘크리트조, 목조 건축, 스틸 하우스 등 건축구조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살아보니 목조주택이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전원일기 5 태양광패널 설치하기 요즘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에 태양광패널이 설치돼 있는 걸 보게 된다. 예비 전원주택 건축주들은 태양광패널을 설치하는 게 좋은지 아닌지 고민이 될 수 있다. 우리집은 2018년 7월 가정용 태양광패널 3kw짜리를 설치했다. 창고 위에 설치한 게 아니라 아래 태양광패널을 기둥을 세워서 높게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럼 튼튼한 아연각관 기둥 위에 태양광패널이 설치된다. 그런 다음 각관에 샌드위치 판넬만 붙이면 간이 창고로 쓸 수 있다. 주차장 지붕으로 쓰는 이들도 있다. 단, 문을 달면 건축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또, 지자체 마다 기준이 다르므로 반드시 확인해보길 바란다. 창고 크기를 짓는 데만 견적이 500~600만 원 정도 나왔는데, 우리 집은 완공된 태양광패널 밑에 샌드위치 판넬만 붙여 공사비로 150만 원만 지불하고 간이 창고를 덤으로 얻었다. 태양광패널은 7년 할부로 설치했다. 월 39,700원 X 84개월 = 약 3,334,800원. 태양광패널을 설치할지 말지를 고민할 때, 평소 내던 전기세와 태양광패널 설치 후의 전기세가 월 39,700원 이상 절감되면 설치할 가치가 있고, 39,700원보다 적게 절감되면 할 필요 없는 것이다. 내가 설치하고 전기세를 직접 내보니 매월 전기세가 거의 대부분 기본료 수준인 6,000~7,000원 대밖에 나오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 에어컨을 거의 밤이고 낮이고 틀다시피 했더니 7월, 8월에는 4만 원대가 나왔다. 참고로 우리 집은 2018년도에 333만 원주고 설치했는데, 2020년에 우리 동네 태양광 설치한 이웃들에게 물어보니 100만 원정도에 설치했다고. 2년 새 태양광패널 설치 지원 보조금이 늘어나서 실 설치비가 10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태양광패널 지원금은 국비지원과 지방비 지원 두 가지가 있다. 각 관할 지자체에 국비, 지방비 둘 다 지원받으려면 언제, 어떻게 설치해야하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때를 잘 맞춰서 둘 다 지원 받으면 엄청 싸게 설치할 수 있다. 태양광패널 아래 창고 안. 온갖 도구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 중이다. 그밖에 마당 곳곳에서 펼쳐지는 일상들 그늘진 공간에 인삼 키우기 집 뒤쪽으로 일년내내 그늘이 지는 통로 공간이 아까워서 새싹인삼을 키워봤다. 올 1월 31일 파종했다. 씨앗을 하나씩 심으라고 하던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줄파종했더니 지금 바글바글하다. 1년은 그냥 이대로 키우고 겨울에 전부 뽑아서 다시 하나씩 모종으로 간격 맞춰 심을 계획이다. 집 뒤쪽에 1년 내내 그늘진 자리가 못내 아쉬웠는데, 그 자리에 새싹삼을 키우면 된다는 말에 바로 시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다. 닭을 위한 미니 텃밭 만들기 닭을 방사해서 키우면 좋겠지만 방사하면 천적의 공격 등으로 위험해서 어쩔 수 없이 막혀 있는 닭장에서 키운다. 신선한 풀을 계속 공급해 주기가 너무 귀찮아서 아이디어를 냈다. 닭의 모가지가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위치에 철제 망을 설치하고 그 안쪽으로 이파리가 자라면 뜯어먹을 수 있도록 미니 텃밭을 만들었다. 미니 텃밭에는 쑥갓, 상추, 민들레 등 온갖 씨앗을 다 심었다. 그리고 테스트로 무청 2개를 씨를 뿌려놓은 미니 텃밭에 꽂아두니 닭들이 이파리만 잘 쪼아 먹었다. 성공이다. 마당 한쪽에 닭들이 좋아하는 지렁이, 곤충 등을 키운다. 토양을 덮어주는 멀칭재배에 검은 비닐을 사용하면 잡초 제거와 수분 증발을 막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명종 씨는 양봉도 시도하고 있지만, 여왕벌 관리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비계 설치 파이프로 저렴하게 파고라 만들기 전원주택에 살면 가장 기본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 중 하나가 파고라다. 하지만 비싸다. 집을 지으면서 손상돼 시공사에서 버리는 비계 설치 파이프를 얻어놓은 것이 있었다. 포도나무 그늘 아래 테이블을 놓고 커피 한잔 마시고, 포도, 키위, 다래 따 먹고, 아들내미랑 장기 한판 둘 수 있는 파고라가 갖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손상돼 버리려던 파이프를 얻어둔 것으로 파고라를 만들었다. 비계 설치 파이프는 철물점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포도나무 아래 앉아 아들내미와 장기 한판 두고 싶은 마음에 비계 설치 파이프로 직접 파고라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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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보물창고 같은 전원생활 청주 혁찬이네 전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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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 4
-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 4 집과 사람, 자연과 소통하는 집 세 가족 공동체 마을 2호집 차콜하우스 자연과 시각적, 공간적 연결을 고려하고 소통을 중요시한 주택이다. 외관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내부는 쓰임새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 인테리어는 자연소재를 사용해 한옥 스타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글 사진 박창배 기자 취재협조 코비즈건축협동조합 HOUSE NOTE DATA 위치 경기 고양시 성사동 지역/지구 제1종일반주거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베라산취락), 과밀억제권역 건축구조 철근콘크리트조, 경량 목구조 대지면적 201.00㎡(60.80평) 건축면적 73.71㎡(22.30평) 건폐율 36.67% 연면적 136.17㎡(41.19평) 1층 66.51㎡((20.12평) 2층 69.66㎡(21.07평) 다락 32.40㎡(9.80평) 용적률 67.75% 설계기간 2019년 6월~2019년 12월 공사기간 2019년 12월~2020년 6월 설계 및 시공 코비즈건축협동조합 070-4895-6028 건축비용 총 3억 2800만 원(3.3㎡ 당 800만 원) 토목공사 비용 1300만 원 토목공사 유형 옹벽, 침목, 성토, 투수블록, 조경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징크(컬러강판)(한성하우징) 벽 - 스토(지정색)(Sto Korea) 데크 - 방킬라이, 합성 내부마감 천장 - 코르크, 석고보드 벽 - 석고보드, 코르크 바닥 - 원목마루, 코르크마루(이건마루) 계단실 디딤판 - 오크(자체제작) 난간 - 평철 단열재 지붕 - 그라스울 보온판(가등급) 외단열 - 비드법보온판2종1호(가등급) 창호 알루미늄시스템창(이건창호) 현관 탄화목(자체 제작) 조명 LED등, 간접 및 매입등(아인산업) 주방기구 상판 오크 원목(주문제작) 위생기구 대림바스 난방기구 귀뚜라미 가스보일러 세 가족 공동체 마을 2호집 건축주인 베짱이와 꽃잔디 부부. 이들은 2006년 충남 서천에 위치한 산너울마을이라는 생태전원마을 프로젝트에서 만났다. 당시 아내 꽃잔디는 조경담당 과장이었고, 남편 베짱이는 토목건축팀 과장이었다. 둘은 마인드가 통하고 삶과 주거에 대한 방향이 비슷하다 보니 대화가 잘 통했고, 연인으로 발전하고 결혼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생태전원마을 조성 프로젝트 공사기간은 거의 2년 정도였어요. 당시 저희 회사는 주택 설계, 시공, 컨설팅까지 진행한 회사로 시공이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공동체, 관계, 생태, 순환 등 소프웨어적인 부분까지 관리하는 회사였죠. 그때 도시라는 공간에서 각자 나이, 직업, 성별, 가족관계 수 등 정말 다양하지만 공동체라는 큰 틀과 생태라는 철학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면서 저희도 마음이 통하는 분들과 전원에 집짓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둘은 결혼 후 일과 생활 때문에 도심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지만 첫째 아들을 낳고 어린이집 다닐 즈음 아내는 일반적인 교육과정보다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세 가족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현관. 내부는 자연소재를 사용한 한옥 스타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거실부터 식사공간 주방까지 탁 트여 한 눈에 들어온다. 거실은 아이들 놀이터 겸 모임장소로 사용하는 다용도 공간이다. 거실에서 본 명상방 입구. 명상방은 한옥 스타일로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끌어당김의 법칙 ‘끌어당김의 법칙’이 통했던 걸까. 베짱이와 꽃잔디는 세 가족과 공동육아를 하면서 살아온 환경은 서로 다르지만 특별한 만남이었다고 한다. “서로 닮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작게는 친환경 먹을거리부터 크게는 삶의 목표 등 공감대가 통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공동체 삶을 꾸려나가다 보니 갈등도 있고 서운한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죠. 이웃사촌으로 10년을 생활하다 보니 가족 같은 마음이 들어 함께 공동체 마을까지 만들게 됐어요.” 코비즈협동조합의 일원인 베짱이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프로젝트 현장소장을 자처했다. 집을 짓기 보다는 관계를 짓는다는 마음이었다. 최소 3년 하자보증은 기본이고 30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짓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부지는 있는 그대로의 모양을 최대로 살리고 싶었다. 땅 구입 후 구옥을 철거하고 땅이 원래 생긴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자고 세 가족과 코비즈 설계팀에 제안했다. 지붕은 오랜 시공경험으로 터득한 경사지붕을 권유했다. 방수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또 경사 지붕에 맞게 내부에 다락을 만들면 아이들이 커가면서 좋은 추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세 가족과 코비즈도 베짱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주방은 후정으로 시선과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주방은 주부의 작업 공간이기도 하다. 1층 계단실은 거실, 주방에 있는 부모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돼 있다.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는 집 베짱이와 꽃잔디는 주택 설계할 때 자연과 시각적, 공간적 연결을 중요시했다. 비 오는 날 빗소리 듣고, 바람 좋은 날엔 차를 마시며 쉼을 누릴 수 있는 야외 공간과 주방 옆 식사 공간 앞에 데크를 설치해 날씨 좋은 날에는 야외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계획했다. 외관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내부는 실용적이고 쓰임새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 인테리어는 자연소재를 사용한 한옥 스타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내외 공간 배치는 주부의 짧고 편리한 동선을 고려하고, 공간마다 수납장을 짜넣어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거실, 식사 공간, 주방은 한 동선으로 탁 트이고 넓다. 거실은 소파 등 최소한의 가구를 배치해 아이들의 놀이터이가 되기도 하고 손님맞이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다용도 공간이다. 주방은 식사 겸 주부의 작업 공간으로 계획하고, 식사 공간(큰창), 데크, 후정(프라이빗 정원)으로 시선과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층 가족실과 안방, 다락이 보인다. 가족실은 아이들 놀이공간으로 이용하다가 필요 시 방으로 사용할 수 있다. 2층 안방. 2층 계단실은 거실, 주방에 있는 부모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이 소통하기 쉬운 구조로 연결돼 있다. 또 계단 높이를 낮게 하고 디딤판을 넓게 해 어린 아이들이 오르내리기 편하게 고려했다. 아이들이 자라 가족 수의 변화를 고려해 유용한 공간 구조를 계획한 점도 돋보인다. 2층 중간에 가족실을 두어 그림그리기와 놀이공간으로 이용하다가 필요 시 방으로 사용하고, 아이들이 독립해서 나가면 가족실이나 부모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손님이 올 경우를 고려해 편리한 동선에 변기와 작은 세면기를 욕실과 분리해 설치했다. 아이들의 비밀 공간인 다락. 아이들 자유롭게 노는 모습에 만족 집 짓고 사는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부러워하지만, 부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한다.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이웃과의 관계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고 아직 공사가 끝난 게 아니라는 것. “집 짓는 게 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살면서 가꾸고 만들어나가야 할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공유 마당 가꾸는 것도 최소한 1년을 지켜보면서 우리 부지에 맞는 것들을 5년 10년 30년을 내다보고 심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녀도 일단 층간소음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우리 자녀들이 마음 놓고 집 안팎에서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고, 그 모습을 보면 집짓기를 잘했고 보람을 찾는 것 같습니다.” 1호집 밀크하우스와 나란히 자리한 2호집 블랙하우스. 색상대비 효과로 뚜렷해 보인다. 주방과 이어진 데크. 날씨 좋은 날에는 야외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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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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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3
-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3 진짜 집짓기는 지금부터 세 가족 1호집 밀크하우스 ‘포비와 스머프’, ‘베짱이와 꽃잔디’, ‘바람개비와 막대기’가 함께 일구고 있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세 집이 나란히 지은 데다 외벽 색깔이 다 다르다보니 1호집은 하얀 집, 2호집은 검은 집, 3호집은 녹색 집으로 불린다. 동네 아이들은 1호집 외벽 색깔이 하얗고 모양이 우유갑을 닮았다고 ‘밀크하우스’라고 부른다. 글 사진 박창배 기자 | 취재협조 코비즈건축협동조합 ※고양시 성사동 ‘세가족 마을’은 공동육아를 하던 이웃끼리 뜻을 모아 만든 작은 마을이다. 본지는 2020년 9월호부터 5회에 걸쳐 ‘마을 만들기’, ‘마을 내 세 가족 집짓기 과정’을 순차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HOUSE NOTE DATA 위치 경기도 고양시 성사동 지역/지구 제1종 일반주거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베라산취락) 건축구조 철근콘크리트조, 경량 목구조 대지면적 201.00㎡(60.80평) 건축면적 73.44㎡(22.21평) 건폐율 36.54% 연면적 126.32㎡(38.21평) 1층 66.47㎡(20.11평) 2층 59.85㎡(18.10평) 용적률 62.85% 설계기간 2019년 6월~12월 공사기간 2019년 12월~2020년 6월 토목공사비용 1300만 원 토목공사유형 옹벽, 침목, 성토, 투수블록, 조경 건축비용 560만 원(3.3㎡ 당) 설계 및 시공 코비즈건축협동조합 070-4895-6028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아스팔트 이중슁글(하성하우징) 벽 - 스타코플랙스(Sto Korea) 데크 - 합성데크 내부마감 천장 - 석고보드 벽 - 석고보드 바닥 - 데코타일 계단실 디딤판 - 원목(애쉬) 난간 - 평철 핸드레일 단열재 지붕 - 글라스울 보온판(가급) 외단열 - 비드법 보온판 2종 1호(가등급) 창호 PVC 250 이중창(이건창호) 현관 탄화목 마감(자체 제작) 조명 라디룸 주방기구 soso design 위생기구 대림바스 난방기구 가스보일러(귀뚜라미) 배치도 “하늘과 산을 가리는 높은 건물을 싫어하고,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자연과 가까운 삶,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삶을 원했어요. 시골로 가지 않는 이상 그런 땅은 그린벨트일 수밖에 없었지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1호집인 포비와 스머프 가족. 이들은 집을 짓기 전에도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부부는 아이가 자연과 가까이하며 자라고 마당에서 반려견을 키우고자했는데, 운 좋게 그린벨트 내 단독주택을 찾아 전세로 8년째 살고 있었다. 하지만 포비(남편)는 자신들만의 집을 짓고 싶었다. 가까운 지인이 집을 짓는 것을 보면서 그 마음이 더욱 커졌고 호시탐탐 기회를 모색하던 중 마음 맞는 이웃을 만났다고. “남편은 집을 짓는 과정 자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어서 매력적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싫다고 버티고 버텼지만 남편의 고집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웃들의 설득으로 결국 백기를 들었어요.” 내부는 거실-패밀리룸-다이닝룸-주방-다용도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계단은 동네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는 곳이기도 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한 면을 가득채운 책장과 우드슬랩테이블이 시선을 압도한다. 동선에 따라 순환하는 구조 포비와 스머프는 시간적, 재정적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외관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지붕은 방수 면에서 우수하고 따뜻하고 빨간머리앤의 그린게이블처럼 전통적인 박공지붕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땅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박공지붕이 나왔지만 이에 만족해한다. 내부 디자인은 1, 2층 모두 계단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것이 특징이다. 거실과 패밀리룸, 다이닝룸과 주방, 다용도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살짝 비틀어지면서 공간이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건축주 부부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설계는 아니어서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살아보니 매우 실용적이라고. “거실에서 주방 싱크대가 잘 보이지 않으니까 설거지가 좀 쌓여 있어도 괜찮거든요(웃음).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공간이 나누어지고, 나누어지면서도 벽이나 문으로 막혀 있지 않아 답답하지 않아요. 개방감이 있으면서도 공간마다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거실과 이어진 가족실. 커튼으로 공간을 나눌 수도 있고 분리할 수도 있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책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북카페 느낌이 연출됐다. 식당과 주방. 식탁 앞 고정창으로 뒷집 정원과 텃밭, 산의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집짓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 인테리어도 특별한 콘셉트를 설정하지 않았다. 재정적 여력도 없었지만 그럴 필요성도 못 느꼈다는 것. 그냥 자신들이 가진 자원인 땅의 모양과 주변 풍경, 예산과 시간의 범위 안에서 삶을 가장 자연스럽고 편한 방식으로 담아낼 그릇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거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한 면을 책장으로 가득채운 부분과 한 가운데 자리한 우드슬랩테이블이다. 마치 도서관 같기도 하고 북카페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여기서 책도 보기도 하지만 일도 하고, 딸아이는 공부를 하고, 손님이 많이 올 때는 식탁이 되기도 한다. 한쪽 구석에 자리한 주방은 막힌 것처럼 보이지만 현관과 연결돼 있고 뒷마당과도 통해 동선이 자유롭고 편리하다. 내부는 1, 2층 모두 계단을 중심으로 순환하도록 계획했다. 2층 복도. 1, 2층 계단에 보이드 공간을 둠으로써 개방감을 한결 강조했다. 부부 침실. 답답하지 않게 문을 달지 않았고, 가림막 역할을 하는 책장을 두었다. 부부는 막히고 답답한 것을 싫어해서 1, 2층 계단에 보이드 공간을 두었다. 뒷집 정원과 텃밭, 산의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는 식탁 앞에는 커다란 고정창을 설치했다.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고정창 앞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단다. 책이 많고, 고정창도 많고, 조명이 많아서 그런지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이 “북카페 아니냐”고 묻곤 한다고. 부부 침실에서 본 모습. 좌측 딸 방과 정면으로 작업실이 보인다. 입구에서 본 정면. 동네 아이들은 이 모습을 보고 우유갑을 닮았다며 밀크하우스로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중에는 예전 집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어쩌면 하드웨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단독주택에 살아서 그런지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우리는 예산 때문에 마무리를 못했던 것이 많아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고, 하나씩 장만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진짜 집짓기가 시작된 거죠.” ‘포비와 스머프’,‘베짱이와 꽃잔디’,‘바람개비와 막대기’가 함께 일구고 있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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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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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2
-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2 3개월이 30년 같았던 세 가족 집짓기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로 한 ‘포비와 스머프’, ‘베짱이와 꽃잔듸’, ‘바람개비와 막대기’ 세 가족. 이들은 일을 추진할 때 만장일치를 규칙으로 하고 있다. 어느 누가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소소한 일이라도 모두가 마음에서 동할 때 함께 일을 추진한다. 세 가족이 함께 진행한 땅 구입부터 집짓기 과정을 소개한다. 글 사진 박창배 기자 | 자료제공 세 가족과 코비즈협동조합 배치도 5차 스케치배치도 6차 스케치 공동육아로 만난 세 가족은 또래 자녀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학부모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학부모 모임들 중 가까운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단독주택을 짓는 것을 보자, 이들도 부러운 마음에 자기들만의 집과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입지는 자녀들이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대곡초등학교가 자리한 고양시 대장동 인근을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대장동 주변은 땅값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곡초등학교 교사인 바람개비가 차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로 하고 지역을 확장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구옥이 있는 부지 모습 구옥을 철거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부지 모습 2017년 겨울, 스머프와 바람개비가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고는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는 베짱이에게 집을 지을 수 있겠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베짱이 역시 바로 추진하자고 했다. 세 가족은 들뜬 마음으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맥 빠진 답변이 돌아왔다. 팔 수 없는 땅이라는 것.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는 것이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베짱이는 그 땅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고 한다. “사실 부지를 본 첫 느낌은 너무 초라해 보였어요. 귀신 나올 것 같은 오래된 구옥이 있는 허름한 곳이었거든요. 구옥이 없다는 상상을 하자 마음에 들었고, 규모와 가격 면에서 이만한 땅을 찾기란 어려울 것 같았어요.” 세 가족 공동체 마을의 모형 007 작전 방불케 한 땅 구입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에 베짱이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부동산중개사무소에 들러봤다. 그러자 근저당 설정이 풀려 이제는 팔 수 있다고 했고, 세 가족은 긴급회의 후 바로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막상 땅 구입을 위해 부동산중개사무소를 방문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세금체납 건으로 10평 남짓한 땅 진입로가 압류돼 있는 것이다. 세 가족은 아쉽지만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이들 학교와 15분 거리밖에 안 되는 위치며 자금에 맞는 땅 규모며 마음에 드는 곳이어서 놓치기 싫었다.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이와 같은 부지를 찾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세 가족은 부지 진입로 압류 건을 직접 해결하고 땅을 구입하기로 했다. 체납된 세금을 지주 대신 입금해주고 압류가 풀리는 즉시 땅 계약을 마무리 짓기로 한 것이다. 역할을 나눴다. 1명은 세무소에서 토지 압류 건 문제를 해결하고, 1명은 공인중개사무소에 대기하고 있다가 압류 건이 해결됐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땅 값을 지급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1명은 법무사와 계약사항과 등기소에서 압류 건을 확인하기로 했다. 수시로 휴대폰으로 진행 상황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식으로 세 가족은 2018년 봄에 고양시 성사동 땅 210평을 평당 400만원에 구입했다. 이웃주민들은 “이곳에 빌라를 지으려고 이미 여러 업체에서 땅을 보고 갔고, 땅 모양도 안 좋고 진입로가 너무 좁다며 다들 포기하고 돌아갔는데,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 땅을 샀느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진입로가 좁다보니 공사차량으로 인한 민원발생으로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세 가족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세 가족은 2020년 3월 15일 일요일에 집을 지어주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하고 같이 살 이웃들에게 화합을 청하는 고사를 지냈다. 세 가족 모두 허탈했던 땅 배분 땅 구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지만, 세 가족이 공동명의로 구입한 땅을 3등분으로 분할해야 했다. 협소한 땅을 3등분으로 분할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배분하는 게 더 큰 난관이었다. 모두가 원하는 땅을 배분받기를 바라는 게 당연지사.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원하지 않는 땅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땅 배분 방식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중 두 가지 방식으로 압축됐다. 하나는 제비뽑기였고, 또 하나는 1, 2, 3지번 중 원하는 땅과 원하지 않는 땅을 선택하고 그에 대한 이유를 각각 적어보기로 했다. 그런 다음 이유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되는 가족에게 해당 땅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두 번째 방식으로는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제비뽑기 방식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원하지 않는 땅을 뽑더라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토목공사와 조경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세 가족이 공동으로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제비뽑기하는 날, 세 가족 모두가 가슴을 졸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허탈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원하던 땅이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제비뽑기 후 세 가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땅 배분이 끝나고 나서는 설계에 들어갔다. 땅의 크기가 210평 정도이고 진입로와 도로부지를 제외하면 200평, 세 집으로 나누면 65~68평이 나왔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적용하면 바닥 평수는 20평대, 전체평수는 40평 전후의 2층집 모양이 그려졌다. 집과 집 사이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마당을 함께 공유하기로 했다. 대지 모양도 반듯한 모양이 아니기에 3등분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서리 쪽 자투리 공간들이 생겼다. 설계는 2018년 봄부터 가을까지 5개월 정도 걸렸다. 설계하는 동안 세 가족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전원주택 전문 잡지를 보며 스크랩하고 부부간에 상의하고, 자녀들과 상의하고, 또 세 가족 간에 정보를 공유하며 상의하는 등 시간가는 줄 몰랐다는 것. 하지만 시공에 들어가면서 다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세 가족 공동체 마을은 베라산을 등지고 도심 속 작은 마을의 맨 끝 쪽에 자리한다. 원주민과의 마찰과 비교하는 마음 가장 큰 문제는 원주민과의 마찰이었다. 여기저기서 민원이 들어왔다. 앞으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이웃이기도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불편한 관계가 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원주민과 공사차량이 이동하는 동선에 있는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양해를 구했다. 식사대접을 하기도 하고 과일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공사가 진행되는 3개월이 꼭 30년 같았을 정도라고 한다. 그나마 세 가족이 함께 하다 보니 다행이었다. 원주민과 민원 대응도 세 가족이 역할을 나눠서 맡았다. 만일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포기했을 것 같다고 한다. 세 가족이 함께 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있었다. 옆집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힘들었다는 것. “안 그러려고 해도 세 집을 동시에 짓다보니 비교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우리는 못하는데 옆집에서 하는 것을 볼 때 부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죠.” 건축에 종사하는 이들이 하는 말 중에 ‘친한 사람 집짓기’, ‘내 집 짓기’ 그리고 ‘그곳에 함께 사는 것’이 세 가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한 애로사항도 있었다고 한다. “함께 살 사람이 시공을 맡다보니 시공자도 저희도 애로사항이 컸던 것 같습니다. 가깝게 지내왔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이웃사촌이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했고요. 그리고 시공자 입장에서 뱉은 말도 애초에 모르던 사람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가까운 사람이어서 그런지 왠지 서운한 감정이 들었어요.” 세 가족 공동체 마을 현장소장을 맡은 베짱이도 공사를 진행하면서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토로한다. “이웃으로 만나 관계를 유지하는 거와 클라이언트 관계는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건축주들과 형님 동생하면서 아주 가깝게 지냈는데 공사를 진행하면서 서먹서먹해졌어요. 이웃사촌의 집이고, 직접 살 집이다 보니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려다 보니 부담감을 주면서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시공하는 입장에서 아내도 클라이언트 중 1명이었고, 아내한테도 많이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에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 가족의 집짓기는 2019년 겨울에 첫 삽을 뜨고 2020년 여름에 완공을 보았다. 갈등도 있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서로간의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좋은 공동체 마을을 가꾸어나가겠다는 게 세 가족의 소박한 희망이다. <공사 과정> 01 부지 내 외부 옹벽 터파기 02 옹벽 기초 버림 타설 03 옹벽 거푸집 해체 및 3호집 1층 주차장 기초 철근 배근 04 1, 2호집 기초 철근 배근. 3호집 2층 바닥 거푸집 설치 05 1, 2호집 기초타설 및 양생 중. 3호집 2층 바닥 철근 배근 완료 06 경량 목구조 자재 반입 07 1, 2, 3호 외부 단열재 및 지붕 서까래 및 방수시트 완료 08 1, 2, 3호집 철근콘크리트 공사 완료. 내·외부 거푸집 해체 09 1, 2, 3호집 지붕 공사 전경. 1호집은 아스팔트 이중그림자 슁글, 2, 3호집은 징크로 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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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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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1
- 좋은 집 짓는 사람들의 코하우징 이야기1 공동육아로 뭉친 세 가족과의 특별한 만남 고양시에 있는 ‘성사동 세가족’ 마을. 이들은 10년 전 이웃으로 만나 공동육아를 하며 살다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마을을 만들었다. 공동체마을을 통해 삶과 이웃, 자연이 교집합 하는 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다. 그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다. 특별한 인연, 코비즈건축협동조합과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 백홍기 기자 | 자료협조 코비즈건축협동조합 070-4895-6028 www.cobees.net 10년 전 이웃으로 만나 공동육아를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고양시에 작은 ‘성사동 세가족’ 공동체 마을을 만든 이들은 ‘포비와 스머프’, ‘바람개비와 막대기’, ‘베짱이와 꽃잔듸’라는 애칭을 사용한다.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통용되는 애칭이다. ‘○○네 엄마, 아빠’, ‘아저씨, 아줌마’호칭은 거리감이 있어 위계를 없애고 편하게 생활하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공동육아는 나눔이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다. 때론 그 과정에서 이웃과 가족애가 쌓이기도 한다. 세 가족이 모여 자기들만의 공동체마을을 만들기로 한 것도 지난 10년간 쌓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존 주거 형태는 스머프네만 마당이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생활하고 바람개비와 꽃잔듸네는 전형적인 빌라에 살았다. 세 가족은 집이라는 형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조금 더 편리하고 변해가는 생활 패턴을 담아낼 공간과 울타리 없이 편하게 자기 집처럼 왕래하며 함께 모이고 웃음이 넘치는 따뜻한 공간을 원했다. 건축전문가를 만나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쯤 코비즈건축협동조합(이하 코비즈)과 인연이 시작됐다. 코비즈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뭉친 사람들이다. <배치도 1차 스케치> <배치도 4차 스케치>‘성사동 세가족’ 마을 배치도 스케치 단독주택을 계획할 때 앞마당이 넓은 것을 선호하지만, 여러 해를 지나고 나면 넓은 뒷마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성사동 세가족’은 모두에게 드러나는 정원이 아닌 세 가족을 위한 후원 같은 넓은 뒷마당을 제안했다. 하지만, 가운데 집 형태가 길어져 익숙하지 않은 평면과 배치 때문에 여러 다른 의견이 나왔다. 정원을 어디에서 바라보는가에 대한 의견 차이도 있었다. 최종 배치는 뒷마당을 없애고 주택이 앞마당을 감싸는 형태가 됐다 특별한 사람들의 만남 2013년 3월, 건축 관련 일을 하는 몇몇이 카페에서 좋은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의기투합했다. 코비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코비즈건축협동조합을 설립하고 7년간 6개 단지 공동체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해 주택 70여 채를 짓고, 복합시설 프로젝트 3개를 완공했다. 정상오 조합이사장(건축시공기술사)은 ‘함께 사는 좋은 집’을 만들겠다는 공감대로 뭉친 건축 관련 전문가 단체라고 소개했다. “코비즈는 타일공, 목수, 정원사, 페인트공, 조적공, 미장공, 거푸집 기술자, 시공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현장소장, 설계하는 디자이너들 등이 모인 건축 집단입니다. 제도에 의한 분리보다 진심으로 건축을 걱정하고 건축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건축인, 건축가라 할 수 있습니다. 코비즈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따로 일하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고 일해야 좋은 결과물을 얻습니다. 마치 합창과 같습니다. 개체가 아닌 협력을 통해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코비즈에선 집이 아닌 ‘코하우징’을 짓는다고 한다. 함께 사는 주택을 말한다. ‘함께’라는 의미는 아파트 공동주택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주택 ‘구성’과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의 ‘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구성과 수라는 것은 우리 개개인이 상대하는 즉, 친밀도를 유지하는 구성과 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코하우징은 한 사람 또는 한 가족이 이웃을 이루며 서로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적정한 규모의 작은 마을 단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사동 세가족’마을 스케치 과정 설계를 진행하기 위해 전체 의논을 나누며 1차 스케치한다. 스케치한 결과는 설계에 바로 반영하지 않고 여러 의논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공간을 찾고 아이디어를 반영하며 새롭게 스케치한다. ‘성사동 세가족’은 스케치를 네 차례 거쳐 원하는 공간을 찾았다. <배짱이와 꽃잔듸네 1차 스케치> <배짱이와 꽃잔듸네 4차 스케치> <막대기와 바람개비네 1차 스케치> <막대기와 바람개비네 4차 스케치> <막대기와 바람개비네 입면 스케치> <스머프와 포비네 1차 스케치> <스머프와 포비네 4차 스케치> 집은 빵이다! 코비즈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기간이 다소 길다. 그 시간을 정 조합이사장은 ‘발효 과정’이라고 한다. “밀가루 반죽으로 바로 빵을 만들어도 되지만, 더욱 좋은 식감과 풍미를 갖추기 위해 발효를 거칩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죠. 도면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가족들과 끊임없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깊이 이해하고 집에 대한 애정도 더욱 커지죠.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입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죠. 그래서 급하게 진행하면, 좋은 집을 완성하기 어렵습니다. ‘생각의 발효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계에서 충분히 검토한 이야기를 그대로 적용하려면 꼼꼼한 시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장 기술자들도 더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함께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시공이 길어지면, 그만큼 비용이 올라간다. 건축주 입장에선 고민일 수밖에 없지만, 비용이라는 부담을 뛰어넘어 코비즈를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집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단적인 예로, 코비즈가 진행하는 현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의논하는 모습은 새롭지 않다. 공간 활용성, 효율적인 배선과 배관 배치, 사용자 편의성 등 조금이라도 개선점이 필요하거나 더 좋은 방식이 있을 거 같으면, 해당 기술자가 즉석에서 스케치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다 모여 열띤 토론을 진행한다. 그래서 늘 현장은 토론장으로 변하고 벽과 바닥은 캔버스가 된다. 건축주는 물론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 모두 즐겁고 행복해야 좋은 집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모형도 현장답사와 스케치 단계를 거친 후 모형도를 만들었다. 실내 인테리어 코비즈는 수평·수직으로 공간이 막히지 않고 산책로 같이 열린 공간을 선호한다. 햇살 가득한 툇마루와 모호한 내·외부 경계를 형성하는 한옥과 같은 공간이다. 큰 세상 향한 작은 마을 코비즈cobees 이름은 함께라는 ‘co’와 꿀벌 ‘bees’를 더해 ‘함께 일하는 꿀벌들처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협력을 통해 집을 짓는 생명체 가운데 가장 집을 잘 짓고 자연에 좋은 일을 하는 건 벌입니다. 코비즈는 우리와 이웃, 세상에 좋은 건축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집과 마을, 도시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축주를 포함해 집이라는 공간을 형성하는데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건축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공간을 두고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한다. 돈을 버는 공간, 놀이나 휴식, 취미를 위한 공간 등 목적과 욕망에 따라 공간은 다양한 형태로 쓰임을 갖는다. 코비즈는 이러한 공간을 통해 이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그 과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가족이 머무는 집을 통해 자연과 이웃을 연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웃이 모여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마을은 아이들의 학교가 된다. 학교는 다시 아이와 마을사람들의 정원이 되는 행복한 ‘마을학교정원’이라는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들은 꿈같은 이야기를 재현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성사동 세 가족은 코비즈와 인연이 아니었다면 공동체마을 프로젝트가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작은 땅에 각각의 요구 조건에 맞춰 공동체마을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건축 환경은 까다로웠고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기 어려웠다. 현장 스케치 공사를 시작하면 현장은 모든 기준이 된다. 사무실에서 그린 도면은 현장에서 현실이 되기 때문에 현장 소장과 현장 기술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늘 토론의 결과가 좋은 건 같은 마음과 뜻으로 모여 오랜 기간 함께해왔기 때문이다. 단열·기밀·구조·디테일 마감 건물을 잘 짓는 건 기본이다. 단열과 기밀, 구조 디테일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간단하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기본에 충실 한다는 것은 타협이 아닌 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비즈가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며 늘 중심에 둔 단어는 ‘생활’이고 생활이라는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에 집중한다. 그래서 코비즈는 ‘성사동 세가족’ 마을을 각각의 집을 전체 가운데 한 개체로 보고 ‘생활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다 보니 이해 차이는 있지만, 충분한 시간을 거쳐 함께 하나씩 해결해냈다. 세 가족도 그들이 바라던 ‘생활’과 지향점이 같았다. 코비즈에서 세 집을 구성하고 공간을 연결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따로 또 같이’다. 그 과정도 수월하진 않았다. 세 집, 세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 소개한다. 외부 진입로에서 주차장을 지나면 넓은 마당에서 각 주택으로 연결된다. 마당 배치는 볕이 잘 들고 함께 지내기 편한 구성이라 모두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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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에세이/열한 번째 이야기] 아파트 열풍을 바라보며..과연, 이 많은 아파트는...
- 지금 온 나라가 아파트 열풍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아파트 값을 잡기 위해 정책을 총 동원하고, 정치권은 아파트 값 폭등에 대한 책임 공방에 열을 올린다.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전문가들을 동원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아파트 대책에 대한 의견을 쏟아낸다. 집 없는 서민들은 며칠 새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뛰어오른 아파트 값에 발을 동동 구르고, 아파트 소유자들은 이 기회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밤잠을 설친다.그야말로 온 나라가 아파트 때문에 난리다. 몇 달 사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며칠 새 아파트 값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올라가다니…….이런 상황에서는 일할 맛이 날 리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저축해도 언제 모을지 모르는 그 엄청난 금액이 며칠 사이에 굴러들어 오는 세상에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집 한 칸 장만하기 위해 그동안 한 푼 두 푼 모은 사람들의 실망감은 또 어떻겠는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아파트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드는지… 그 답답하고 삭막한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좋은가.이 난리(?) 속에 전원에서 토끼와 새, 닭을 기르고 한창 피어나는 국화꽃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본다. '과연, 이 많은 아파트들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아파트 공화국의 실태요즘 사람들은 아파트를 너무 좋아한다.그 때문인지 아파트를 엄청나게 짓는다. 해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아파트가 지어진다. 이젠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는다. 도시야 땅도 없을뿐더러 비싸서 그렇다지만, 그 넓고 넓은 농촌 들판에까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한가롭고 경치 좋은 농촌에 나 홀로 선 아파트를 보면 '아파트가 그렇게 좋은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최근 아파트를 둘러싸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아파트 동 입구에 비밀번호 키를 설치한 것은 일반화된 지 오래고, 특정 아파트 단지 정문에는 건장한 청년들이 정보기관처럼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마치 중요 기관을 방문할 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니 어디 친구나 친척집인들 편히 찾아갈 수 있을지… 참, 인심 고약하게 변했다.게다가 최근에는 특정 아파트를 두고 '코뮤니티 밸류'니 '코뮤니티 프라이스', '브랜드 프라이스'라는 희한한 용어까지 등장했다.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그들만의 가치나 값을 형성하는 아파트의 등장은 바람직하지 못한 풍토가 아닐 수 없다.그런데 이런 아파트 열풍과 초고층 아파트를 보면서 걱정(?)되는 일이 있다. '과연, 이 많고 많은 아파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까?'지금 당장은 그런 염려를 안 해도 될 것처럼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아파트 값을 내려볼까 하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 그래서 온갖 정책을 다 동원해 아파트 값을 때려잡는 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 이름도 생소한 개발이익환수금, 재건축개발부담금, 기반시설부담금… 여기에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등. 아파트를 못 짓게 하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다 동원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열풍은 쉽게 식지 않고 오히려 난리가 난 것이다.심각한 가구 수와 인구의 감소 현상지금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인구와 가구 수의 감소 현상이다.이러한 현상은 학교 문제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진학 문제는 심각했다. 고등학교 졸업생에 비해 대학이 턱없이 부족해 늘 대학 진학을 걱정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생이 없어서 정원을 못 채워 경영난을 겪는다는 대학들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 차원에서 각 도에 국립대학 하나만 운영하기 위해 통폐합 작업을 벌이고 있다.이런 현상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사실 이러한 문제를 예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특히 정책을 조정하고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물론 예측했는데 학교 설립자들이나 운영자들이 자신들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 당국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하는 대학을 통제해야 했다.그렇다면 아파트를 그렇게 선호하는 사람들이나, 아파트 사업이 호황이라고 계속 짓기만 하는 건설회사가 그런 어려움에 처한 학교 운영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또 지금 당국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급변하는 사회와 아파트앞으로 인구와 가구 수의 감소 현상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그동안은 먹고살기에 급급했다. 자녀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가르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추었다.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나은 환경과 밝은 미래를 만들어 줄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아이들이 줄고 있다. 아예 아이들을 낳지 않으려는 풍조도 생겼다. 심지어 싱글족까지 등장해 가구 수도 줄고 있다.진학이 힘들 정도로 학교가 부족하지 않기에 입시전쟁도 사라지고 있다. 학원까지 굳이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는 온라인 교육이 더 활성화되고 학습지 선생님이 학생들을 방문해 가르친다. 웬만한 물건은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택배회사에서 다 갔다 준다. 심지어 원격 진료까지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좋은 학원이나 편의시설이 많아 살기 좋다고 특정 지역으로 몰려갈 필요도 없게 된다.이런 상황은 자신만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만든다. 예전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아이들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이렇듯 자신이 더 중요함을 인식하는 경향이 커진다. 적당히 일하고 취미생활이나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는 데 관심이 많아진다. 좀더 윤택한 삶을 즐기는 방향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게다가 주5일 근무제가 정착돼 즐기고 놀 수 있는 여유 시간이 많아진다. 또한 의식과 생활 수준의 발달로 세컨드 하우스(Second House : 도시에는 간단한 생활만 가능한 집을 마련하고 전원 등에서 건강과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집)가 일반화될 것이다. 더욱이 인터넷의 발달로 재택근무가 늘고 은행 업무 등 웬만한 일은 집에 앉아서 모두 해결한다. 이것은 거리나 지역을 초월하는 개념이 되어 굳이 도시로 몰릴 필요도 없을 뿐더러 특정 지역에 대한 인기 몰이도 없는 세상으로 만든다.사실 이러한 생활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단지 온라인 교육이나 주5일 근무제, 세컨드하우스 등이 아직은 일반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지금 어른들이나 익숙지 않아 깨닫지 못할 뿐 요즘 젊은이들은 이미 그런 세상을 즐기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젊은이들의 세상이 될 때는 지금과는 완전히 판도가 다른 세상이 될 것은 자명하다. 불과 몇 년 후면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유비쿼터스 시대다. 사실 이 유비쿼터스도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멀리서도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 행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우리의 주거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 분명하다.먼 여행지에서도 집의 보안, 관리 등 대부분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이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굳이 복잡하고 꽉 막힌 도시에서 살 필요가 없게 된다. 실제로 건축설계를 비롯한 건축업계에서 이 부분에 대한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도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코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직 컴맹세대만 익숙지 않을 뿐이다.바로 이러한 변화와 급변하는 시대를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시대에는 우리의 주거 문화, 특히 도시와 교통, 생활편의 시설이 좋다는 특정 지역의 아파트로만 몰려가는 상황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한다.아파트, 이젠 특단의 대책이 필요이러한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모든 일에는 시기가 중요하다. 시기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앞에서 언급한 학교 문제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지금은 온 나라가 아파트 열기로 가득하다. 모두가 도시로, 강남으로, 초고층 아파트로, 주상복합아파트로 가지 않으면 난리가 날 것처럼 생각한다. 웬만한 지방 사람들도 도시에 한두 채의 아파트나 원룸을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도시에 있는 자녀들을 위해 그리고 투자 목적으로 그런 사람도 상당 수 있다.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 우선 당장 아파트 값이 비싸니 너도나도 그런 기류를 타려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인들이야 먼 미래를 예측할 능력도 없고 당장 아이들 교육이 급하다. 그러므로 비싼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지금 당장은 아파트의 미래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옛말에 유의해야 한다. 학교 문제처럼 지금의 아파트 인기가 떨어져 모두 아파트를 떠날 때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정책 당국자, 지나치게 아파트에만 매달리는 건설회사 그리고 건축 전문가들은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당장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강남불패'니 '대마불사'라 해서 특정 지역의 대형 초고층 아파트로 몰려드는 아파트 맹신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가상 시나리오-골칫덩이로 변한 아파트내가 이런 주택에서 살고 싶었던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다. 원래부터 아파트라는 것은 싫언젠가 이런 시대가 올 것이다.젊은이들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지겹게 살던 아파트에 싫증을 느껴 모두 아파트를 떠나고, 그 넓은 아파트에는 노부부나 독거노인들만 남는다. 유학이나 외국 여행 등 외국 생활을 경험해 본 젊은이들은 외국처럼 경치 좋고 공기 맑고 한가로운 곳에 자리한 주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또 인구와 가구 수의 감소, 온라인과 유비쿼터스 등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아파트 값은 폭락하고 아무리 싸게 내 놓아도 살 사람이 없어 파산 직전에 처한 입주자가 한둘이 아니다. 여기에 많은 아파트들이 급변한 시대와 맞지 않는 구조와 설비로 엄청난 관리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마저 폐쇄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도 고치지 못해 30층이 넘는 초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아예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이런 아파트는 20년이 넘어 낡고 최근의 첨단 가재 도구와 어울리지 않아 쓰기도 불편해 재건축을 추진한다. 그러나 환경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과거보다 더 강화된 건축 관련법을 맞추기 어렵고, 특히 아파트 분양은 상상도 못해 사업성이 없어 재건축을 포기하고 만다.여기에 대해 정부도 속수무책이다. 폐허가 된 아파트 단지가 수백에 달해 국가 예산으로 관리할 수도 파괴하기도 어렵고 빈터를 활용할 마땅한 대책도 없다. 모두들 도시를 떠나기에 지금처럼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백화점이나 판매시설 등 마땅한 용도의 건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이에 반해 농촌이나 경치 좋은 곳에 지은 소위 레저형 아파트나 전원주택에 대한 인기가 폭발해 농촌에는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게 된다.현 시대에 맞는 웰빙 주택을 개발하라지금으로서는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그야말로 웃기는 가상 시나리오다. 아니 지금은 전혀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또 일반인들은 모른다. 미래의 경제나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그저 강남이 좋다고 하니 제비 따라 강남 가고, 고층 아파트가 인기가 있다니 우르르 그곳으로 몰려다닐 뿐이다. 사실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환기가 안된다. 또 방마다 에어컨을 틀어도 더위가 여전한데도 집값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그러나 정부는 미래를 예측하고 경제나 사회 분위기가 어떻게 변할지 판단할 수 있는 각종 데이터나 자료도 있고, 그것을 분석할 유능한 인재들이 있다. 또 앞으로 변하게 될 사회에 대비해 국민들을 계도해야 할 책임도 있다. 보다 더 윤택하고 쾌적한 국민들의 삶을 위해 미래의 주거 문화도 선도해야 한다.특히 웰빙, 웰빙이라고 설쳐대는 요즘보다 더한 웰빙 세상이 될 미래에 어떤 주거가 국민들에게 웰빙 주택이 될지, 그 대안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최근 아파트가 급등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대안이나 좋은 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단계별로 주택이 있어야 하는데 고급 단계의 주택이 부족하다 보니 아파트 값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신혼시절에는 소형주택에 살다가 자녀가 자라면 다음 단계 주택인 중형주택으로 옮겨가려 할 것이고, 그 다음 단계에는 더 좋은 주택을 원하게 된다. 아파트 값 상승으로 이러한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이 모든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염려가 없다고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사회의 변화는 엄청나다. 또한 건축 전문가들도 그러한 정책을 뒷받침해 줄 웰빙 건축을 개발하고 선도하기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한다. 그야말로 국민이나 소비자들에게 보다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고 또 사회 변화에 맞는 집이 어떤 집인지 빨리 찾아내 모든 정책을 거기에 맞춰야 한다. 단순히 아파트 값만을 잡기 위한 임시 처방적 대책이 아닌 장기적이고 그야말로 사회의 흐름에 대처할 수 있는 특단의 '웰빙주택정책'을 마련해야 한다.지금 아파트가 인기 있고 선호도도 높다고 마구잡이식으로 아파트만 짓게 놔둬서는 안 된다. 당장 아파트 값의 폭등 현상을 잡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 아니라 먼 미래, 아니 몇 십 년 후에 일어날 상황을 예측하는 지혜를 짜낼 때 비로소 국민에게 보다 안정된 주거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각종 취미생활을 즐기며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전원주택은 사회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좋은 대안이라고 본다. 田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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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에세이/열한 번째 이야기] 아파트 열풍을 바라보며..과연, 이 많은 아파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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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얼큰하고 시원한 '매운탕'
- “요즘 도시에 김치를 직접 담그거나 요리를 하는 주부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 집도 처갓집에서 가져다 먹거나 사먹는데요.” 우리 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거래처 사람이 한 말이었다. 시골에 살다 보니 요리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주위에 나이 많은 어르신들로부터 요리에 대한 정보도 쉽게 접하다 보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견하게 어지간한 음식은 직접 하는 편이다. 지난 추석에도 두부며 묵 등을 직접 쑤고 봄에 얼려 둔 쑥으로 송편까지 빚었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다. 이제 시골살이 7년 차에 접어들다 보니 환경에 어지간히 적응해 나가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아직도 음식만큼은 사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시골의 정서는 철에 따라서 음식의 재료들을 저장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가뭄 탓에 잘 여물지 않은 들깨 송이를 보면 속이 타지만 어느새 시골 마을의 어머니들은 들깻잎을 따다가 깻잎지를 담가 놓았고, 요즘은 끝물 풋고추를 따서 고추 밑반찬을 만들 궁리에 여념이 없다. 이런 시골 정서 속에 살다 보니 나 역시 그 분위기에 편승하게 되어 콩나물도 기르고 여러 가지 밑반찬 만드는 기술이 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어렵고 자신이 없는 요리 중에 하나가 각종 매운탕과 찌개 요리다. 재료의 특성을 살리면서 국물 맛을 내는 일은 어떤 노하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아도 전문 음식점에서 먹는 맛이 나질 않았다. 우리 동네는 십만 평의 큰 저수지를 끼고 있어서 민물고기를 접할 기회는 많지만 그동안은 비린내가 심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피해 왔었다. 더구나 우리 동네에는 수질 보호를 위해서 음식점 허가를 내주지 않아 마땅히 민물고기 요리를 맛보거나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붕어 요리가 제철이라는 음력 8월인 요즘 우리 옆 동네 서천군에 이름난 매운탕 집이 있다고 하기에 원정을 가서 매운탕 요리를 맛보고 요리법까지 배워왔다. 바다 생선과 달리 민물고기는 냉동 상태일 때보다 활어를 써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매운탕 집 서천군 마산면 ‘물고기 세상’의 안찬수 사장은 항상 집 앞 신봉 저수지에서 직접 잡은 붕어와 메기, 배가사리, 가물치 등의 재료만 사용한다고. 이 사실은 그가 그물을 걷으러 가는 새벽 시간에 함께 동행을 해서 내가 직접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 매운탕에는 각 음식점마다 비법인 육수와 양념이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내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매운탕의 육수로는 콩나물과 무를 푹 끓인 물을 쓰면 한층 시원한 맛이 난다는 정보도 있었지만 ‘물고기 세상’의 매운탕은 얼큰한 양념 맛에 비법이 있다고 했다. 싱싱한 민물고기 등의 재료가 준비됐으면 된장,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마늘, 양파, 대파 등의 양념에 물을 붓고 끓인다. ‘물고기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한약재와 비법 양념 달인 것을 한 숟가락 넣어서 끓이지만 보통 가정에서 매운탕을 끓일 때는 굳이 비법 양념을 쓰지 않고도 불 조절만 잘하면 된다고 한다. 고춧가루는 좀 매운 것을 쓰고 된장과 고추장은 너무 많이 넣으면 걸쭉해지거나 원재료의 맛을 덮어 버리기 때문에 항상 유의해서 한 티스푼 정도만 써야 한다. 그리고 불 조절에 있어서 한소끔 끓이고 난 다음에는 약한 불로 줄이되 너무 오래 끓여서 살코기가 물러지지 않을 만큼만 끓이라고 했다. 붕어는 매운탕보다 찜으로 많이 쓰이는데 기력을 보해 주는 효과가 있고 깊은 맛이 있다고 한다. 붕어들이 살이 오르는 이맘때에는 수험생들이나 운동선수들의 보양식으로 인기가 있다. 신봉 저수지에는 자연산 메기도 잘 잡히는데 메기 매운탕은 가시가 없고 살코기가 많아서 어린아이들을 동반했을 때 먹기 좋은 음식이다. 흔히 ‘빠가사리’라는 억센 발음으로 불리는 배가사리 매운탕은 가시가 많아서 먹을 것은 별로 없지만 가시에서 우러나오는 국물 맛이 시원하고 담백해서 소주 안주나 해장용으로 먹으면 좋다고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민물고기 매운탕에는 냄비 바닥에 삶은 시래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양념이 적당히 배어 들어간 시래기는 살코기를 먹는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그리고 얼큰한 국물 맛에 적당히 입맛이 길들여지고 난 다음에는 수제비를 떠 넣어서 감칠맛도 느끼게 해주기 마련이다. 안 사장은 거의 모든 매운탕에 수제비를 넣지만 붕어 매운탕에는 잔가시가 많아서 수제비가 들어가면 위험할 수가 있어서 넣지 않는 것이 좋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가정에서 특별한 비법이 없이 쉽게 매운탕을 끓여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묵은 김치를 넣고 끓이는 방법을 추천해 주었다. 요즘은 김치냉장고 덕택에 작년에 담근 김장 김치를 여전히 먹는 집들이 많을 것이다. 다시 김장철이 다가오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에 혹시 민물 낚시라도 떠난다면 여러 가지 양념을 챙길 필요 없이 묵은 김치만 가지고 가서 냄비에 김치를 깔고, 그 위에 매운탕 거리를 놓고 물만 부어서 끓여 주면서 간만 맞추면 얼큰한 매운탕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 방법은 나도 당장 써먹어 봤는데 남편으로부터 친구들 불러서 소주 한 잔 하고 싶을 정도는 된다는 평을 들었다. 방송에서 소문난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를 보면 어느 집이든지 ‘비법 양념’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만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을 봤을 것이다. 일종의 ‘쇼맨십’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호기심을 증폭시켜 기어이 한번 먹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데는 충분한 효과가 있다. 매운탕 집 ‘물고기 세상’의 안찬수 사장으로부터 매운탕 요리에 대한 한바탕 강의를 듣는 동안 나 역시 그 ‘비법 양념’에 대한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차마 그 비법까지 가르쳐 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줌마 정신으로 안 사장을 졸라서 그 ‘비법 양념’ 한 통을 얻어 올 수는 있었다. 그 ‘비법 양념’ 한 통에 의기양양하게 돌아 왔지만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 내 핸드 메이드 매운탕 맛은 아직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田 글 오수향(och0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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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얼큰하고 시원한 '매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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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 돌아오는 길
- "참, 길 좋다!"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저절로 나오는 감탄이다. 산골 어디를 가나 아스팔트 포장된 넓은 길을 거침없이 달릴 수 있으니 후련하고 시원한 마음에 우러나오는 말이다. 대다수의 농가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니 길이 차를 불러들이고 차가 길을 만든 셈이다.요즘 시골의 도로는 수확한 과일 상자를 가득 싣고 지나가는 트럭으로 붐빈다. 이곳 청도는 감을 나르는 트럭이 줄을 잇는다. 씨 없는 반시로 유명한 고장임을 보여 주는 광경이다. 가까운 밀양 얼음골엔 사과를, 경산엔 포도를 운반하는 트럭들이 저마다 바쁘게 도로를 달린다. 시골길이 좋아야 하고, 정작 농가에 자동차가 있어야 하는 사정을 알 수 있다.온통 발갛게 익은 감으로 뒤덮인 이곳 산골에도 주말이면 감을 따러 도시에서 온 자녀들의 자동차와 감을 나르는 트럭으로 골목이 비좁다. 먹음직한 감을 가득 따 담은 경운기는 힘찬 동력으로 잘 포장된 산등성이 농로를 누비고, 집집마다 마당엔 산더미처럼 감이 쌓여 있으며 검게 그을린 산골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이곳은 아주 깊은 산골이었다. 일흔이 된 아랫집 할머니가, 열아홉에 시집올 때만 하더라도 마을 앞의 도로가 좁은 산길이었다고 했다. 앓는 아가를 업고 마을 뒤 산을 넘어 읍내 병원을 다녀오는 데 하루해가 걸렸다고 하니 그때의 사정이 가늠이 된다. 도로가 넓어지고 자동차가 다니게 된 것은 불과 이삼십여 년 전이다.도시를 떠나 산골에 집을 지어 살고 싶은 내 꿈이 잘 이루어 진 것도 길이 좋은 덕분이다. 한 시간쯤 달리면 부산에 있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고 모임에도 참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편리한 길을 따라 대처로 떠나간 사람도 있지만 나는 편리한 길을 따라 산골로 돌아왔다.길이 불편하던 시절 도시로 나간 사람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절망으로 바라보았다. 돌아온 이도 자신의 삶을 후퇴로 여기며 어깨가 쳐졌다. 도시로 나가 명절날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고향집에 들어서야 잘 된 것으로 보아주던 시절이었다.고향 산골을 찾아 들어온 지금의 나를 도시 친구들은 부러움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고향 친구들은 반갑게 맞아주고 있으니 삶을 바라보는 의식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이제는 돌아오고 싶은 길,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서성이는 걸음들이 있을 것이다. 고향의 집을 비워 놓고 땅을 놀리고, 도시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사람들은 빨리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 결실의 계절에 진홍빛 감을 뚝뚝 따는 손맛이 어떤 것인지, 빨갛게 익은 사과를 따고, 탐스런 포도송이를 손에 쥐는 맛을 느끼지 못하고 노는 손은 아깝다.몇 해 전, 절친한 사이였던 할머니 몇 분이 젊은 시절 마음을 모아 작은 아파트 하나를 공동으로 구입하여 큰 아파트로 평수를 늘리며 여가를 즐겁게 지내는 것을 TV로 보았다. 틈이 나면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놀이를 하며 노년을 외롭지 않게 지내는 모습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모임의 장소가 도시의 아파트가 아닌 텃밭이 있는 시골집이면 어떨까? 흙을 일구고 나무를 가꾸며 사는 일은 생각 보다 훨씬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다. 그것은 생명을 키우는 일이며 목숨을 이어가는 값진 노동이기 때문이다. 생산이 생명이 되는 이유다.씨를 뿌리고 가꾸며 힘이 닿는 만큼 밭일을 하고 감나무를 돌보며 지난해보다 더 굵어진 감을 따는 나의 산골생활은 즐겁다. 내 노동이 알찬 결실이 되어 거둬들이는 이 기쁨을 어디에 비할 것인가.한 무더기 감을 따놓고 훤하게 바라보이는 강줄기를 따라 산기슭을 돌아나가는 길을 바라본다.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과일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달린다. 내 이름이 적힌 감상자도 서울로 달려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도시와 시골이 공존이 되는 길은 편리함의 목적과 생산을 위한 의미로 위대하다. 저 길을 돌아오는 걸음은 아름답다. 田 글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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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에세이/열번째 이야기]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과 추억 만들어 주기
- 모든 게 조상 탓 아이들의 모든 것은 부모에게 달려 있다. 용모나 신체, 건강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국적, 자라는 생활환경까지도 부모에게 물려받는다. 부모가 도시에 사느냐, 농촌에 사느냐? 아파트에 사느냐, 주택에 사느냐? 여기에 따라 아이들의 생활환경도 결정된다. 한때는 부모의 신분까지도 그대로 물려받기까지 했다. 부모가 양반이면 아이들도 양반, 부모가 머슴이나 상놈이면 아이들도 머슴이나 상놈이 됐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운명이다. 자신이 원한 것도,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닌데 부모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달라진다? 신체적인 거야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시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부모가 머슴이라고 아이들까지 머슴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운명이라지만 너무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대물림'이라는 새로운 풍속도까지 생겼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했다. 이제는 전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지금은 공부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보니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 그래서 '학력의 대물림'이니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현상까지 생겼다. 이런 거야 노예제도처럼 인위적인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사회 현상 같지만 그래도 이래서는 안 된다. 평생 자신이 당한 어려움도 서러운데 그것을 소중한 아이들에게까지 그대로 물려준다니… 안 된다. 정말이지 그래서는 안 된다.어쨌거나 모든 게 다 부모 탓이다. 아파트 숲과 콘크리트 상자가 아이들의 고향집 이런 상황을 좁혀서 생각하면 아이들이 살아가는 집도 마찬가지다. 요즘 도시 아이들의 대부분은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다. 아파트가 실질적인 고향이고, 어린 시절의 모든 추억이 아파트 숲에서 이루어진다. 아파트에서 자고 아파트 숲을 지나 학교와 학원 등을 오가는 것이 '아파트 아이들'의 생활이고, 이게 다 아파트에 사는 부모님 덕(?)이다. 꼭, 산과 들을 지나 개울 건너 학교에 가야만 아이들에게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자라는 것이 특히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정서적으로도 좋다. 또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다. 어른이 되어 보면 어린 시절 자연과 벗하며 놀고, 학교에 다니던 추억은 삭막한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더운지 추운지도 모르는 집에서 사는 것과 새찬 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며 사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에도 차이가 엄청나다. 오염된 공기 속에 사는 도시 아이들은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고 심지어는 아토피 등 심각한 증세가 많다. 이런 병은 도시의 아파트가 아닌 공기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낫는다고 한다. 이것도 다 부모 잘못(?) 만난 탓이다. 게다가 답답한 콘크리트 상자가 아이들의 고향이고 아파트 숲 속에서의 생활이 추억의 전부라는 것은 너무나 삭막한 일이다. 앞으로 아이들의 세상은 지금보다 다양하고 훨씬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어떠한 생활을 하게 할까? 지나치게 공부나 실력만을 강요하고, 오직 학교와 학원에만 몰두하게 하고, 게임이나 컴퓨터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보다 정서적이고 추억이 많은 어린 시절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물론 모든 아이들에게 음악가나 시인이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꼭 그런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하려면 정을 알고 진정한 삶을 알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무슨 아파트에 사느냐, 몇 평짜리 아파트에서 사느냐가 아이들에게 친구와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자녀가 요즘은 모든 게 단세포적이다. 공부가 제일이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삶의 전부다. 모든 것이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의 중심이 되는 정신, 국가에 대한 생각, 부모에 대한 효성, 스승에 대한 은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등은 뒷전이다. 모든 게 자기중심이고 개인주의적이다 보니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살아가는 환경 특히 성장기 아이들의 생활환경이 그들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대부분의 유명한 음악가나 시인 등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좋은 경치 속에서 자랐다. 정치인이나 실업가 등도 그렇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에도 각계의 최고 지도자는 'Country Boy' 즉 도시가 아닌 시골 출신이다. 도시 출신자들이 차지하는 자리는 대부분 중간 보스나 관리자 정도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나 재계 최고 지도자들의 출신지가 어디였던가? 이런 것은 도시나 지방과의 환경 차이가 심하지 않았을 때도 그랬는데, 지금처럼 아파트로 가득한 도시생활에서는 더 심화될 게 분명하다. "건축은 생활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살고 있는 건축에 맞추어 생활해 나간다는 뜻이다. 그 건축이 좋은 환경을 갖춘 곳에 있으면 좋은 환경으로, 좁은 건축이면 좁은 대로, 편리한 건축이라면 편리한 대로 생활하게 된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어른들과 건축 전문가들의 책임이 크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줄 책임이 있다. 건축가는 비록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살지는 않지만 이 사회와 모두를 위해 좋은 건축을 만들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건축, 특히 주거 환경은 어떤가?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집이나 주변 환경은 '진정한 삶'보다는 경제적인 데 비중이 더 크다. '인간적인 삶'보다는 지나치게 부동산적이고 편리함에만 의미를 두고 있다. 살아가는 재미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집보다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한 배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있기는 하다. 오직 성적을 위한 것으로, 그러한 배려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벌어지는 개발 사업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그 시절의 풍광을 한꺼번에 망가뜨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어른들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는 것들이다.모두에게, 특별히 아이들에게 좋은 주거 환경은 편리하기만 하고 부동산적이며 성적을 올리는 데 있지 않다. 이런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소박하고 인간적인 정과 추억 그리고 정신이 깃든 그런 환경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각각의 자녀 방이 좋기만한가 웬만한 요즘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이 있다. 아이들을 위해 아예 안방까지 내준 집도 있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더 잘하라고 특별히 배려한 것이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므로 프라이버시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정말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 우리 자랄 때 이런 나만의 공간이 있었더라면 너무 좋아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요즘 아이들이 그런데 대한 감사함이나 소중함을 알까? 혹시나,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모두가 그런데… 당연한 것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한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서운하다. 어쨌거나 자기만의 공간에서 잘 자라 주면 좋은 일이다. 혹시 그런 탓으로 예전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형제 간에 정이 부족하고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요즘은 형제라야 대부분 두세 명이 전부인데도 예전 우리 형제들하고는 다르다. 주위에서 종종 둘밖에 안 되는 형제끼리 꼭 남 보듯 하는 걸 본다. 이러한 현상은 각자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 것만 가지고 놀고, 자기 책상, 자기 침대에서만 자란 탓이 아닐까? 대여섯 명이 대부분이던 우리네 형제들은 한 방에서 같이 공부하고, 놀고, 싸우기도 하면서 몸을 부대끼며 살았다. 추운 겨울에는 서로 이불을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하고 내 옷이나 내 양말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살았던 탓인지 형제 간의 우애가 요즘 아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뭔가 맛있는 것이 있으면, 심지어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 빵까지도 어린 동생에게 주려고 배고픔을 참아가며 책가방에 꼭꼭 숨겨왔던 그런 눈물겨운 사연들이 우리네에게는 얼마나 많은가. 비록 서로 다툴 때도 많았지만 누군가가 남에게 맞고 들어오는 날에는 온 형제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때로 부모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먹기도 하고, 많이도 맞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부모에 대한 효심이 있었고 또 우리들은 강인했다. 물론, 요즘의 우리 아이들도 그러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예전 우리네 형제만 못하다.이 모든 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치게 자기만의 공간- '각자 자기 방'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어느 건축주의 자녀에 대한 배려 어느 건축주 생각이 난다. 그 분은 딸만 둘 가진 주부다. 자신의 집을 설계해 달라면서 특별히 아이들의 방을 가변성 있게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아이들 방을 각각 만들기는 하되 두 방을 연접하게 하고, 그 사이의 벽은 반드시 가변적으로 계획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아이들의 방이 'ㄱ'자 형상이 됐다. 이러한 계획은 공부를 하거나 각자 생활할 때는 책장 등으로 구획된 자기만의 공간을 이용하고, 잠을 자거나 노는 시간 등은 가급적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도록 배려한 것이다. 형제들끼리 지나치게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폐단을 막아 보자는 의도였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며,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밤늦도록 꿈을 가진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내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학교도 늦게 끝나는 데다, 학원에 다니느라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다. 그러므로 집에 있는 때만이라도 둘이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어쩌다 집에 있는 동안에도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 간의 대화나 정이 돈독해질 리 만무하다. 이러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보완해 보자는 그 건축주의 생각은 요즘 세태를 볼 때 현명한 선택 같았다. 또, 다락방을 강조한 건축주도 있었다. 다락방은 꿈과 재미가 넘치는 작은 공간이다. 그 건축주는 그러한 꿈의 공간을 자녀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어 했다. 원래 다락이란 지붕 속을 활용하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다. 그러므로 천장이나 벽이 일반 방과는 다른 모양이다. 또 창 모양도 특이하고 예쁘다. 특히 다락방은 비가 오는 날이나 스산한 가을에는 더 운치가 있는 공간이다. 사람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갖게 하고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러한 다락방은 여성들이나 특히 장난기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과 소녀들이 좋아한다. 약간은 어둡고 아늑한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 읽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다. 때로는 기도하는 방으로도 좋다. 조용하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편안한 곳이다. 그곳에 올라가면 때로 무섭기도 하고 천장이 낮고 좁아 아늑함을 주기도 한다. 특히 그 건축주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고, 어느 영화에서 본 그러한 다락방을 특별히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공간을 건축적으로 만들어만 준다면 나머지는 자녀들과 함께 꾸미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그동안 구상한 아이디어와 자녀들의 생각을 합하면 아주 독특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은은한 조명과 음향 기구를 특별히 준비할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그 건축주는 그러한 생각과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와 같은 부모의 배려는 아이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키워 주기에 충분할 것이고,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될 때는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과 환경 만들어 주기 내가 이런 주택에서 살고 싶었던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다. 원래부터 아파트라는 것은 싫었으니까, 어떻게 하든 아파트를 떠나고 싶었다. 특히 더 단독주택에 살려고 했던 이유가 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과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우리 아이들도 여느 애들처럼 아파트에서 나고 자랐다. 그렇게 자라는 동안 늘 안타까워했다. 비록 입고 먹는 것은 예전보다는 좋을지 몰라도 자라는 환경을 생각하면 우리 때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늘 하는 일들이 아파트에서만 이루어졌다. 방과후에 집에 오자마자 학원에 가야 하고 어쩌다 시간이 나면 위층의 친구 집과 우리 집을 오가며 만화나 게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전부였다. 밖에서 논다고 해봤자 형식적으로 조성해 놓은 좁은 어린이놀이터가 전부였다. 말이 놀이터지 그게 어디 애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인가? 놀려고 나온 어린이는 많은데 모래밭 조금하고 그네, 미끄럼틀, 철봉 등이 각각 하나씩… 아파트 놀이터는 법에 규정되어 있다. 사실 이런 시설마저도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렇게 어린이 놀이터를 거창한 법률로까지 규정한 것은 국가적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비싼 땅에 사업성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 리 만무할 것이므로… 그러니 아파트를 건설하는 과정을 보면 사업성에 맞추기 위해 아파트를 최대한 확보하고 남은 자투리 부분에 형식적으로 놀이터를 배치하기 마련이다. 요즘 대단지 아파트야 조경 등의 시설을 잘 만들지만 하여간 아이들이 이와 같이 인공적이고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틀에서 자라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시설은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사업성을 맞추느라 아파트가 우선인 상황에서 조성된 단지 조경이나 놀이시설 등의 외부 환경이 자연과 비교될 수 없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이고 정성을 들인다 한들 어찌 인간이 만든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자연 세계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산과 들, 흐르는 시냇물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 숲과 산골짜기 등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의 세계는 사람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꿈과 추억을 만들어 준다. 이곳에서 물고기도 잡고, 물장구 치고, 매미·잠자리도 잡고 그 넓고 넓은 자연에서 뛰어 놀아도 시원찮을 아이들이 아파트 상자와 아파트 숲에서 자라게 된 것도 다 어른들 탓이다. 토끼, 병아리 기르는 것이라도 보고 자라라 이러한 것은 우리 어린 시절이나 가능했던 일이다. 학교도 늦게 끝나는 데다 학원 다니며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컴퓨터와 TV, 게임 등 할 것도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그렇게 생활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자신이 아파트에 사니 이것부터 불가능하다. 그런 자연에서 살게 하려면 당장 시골로 이사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그러므로 애당초 냇가가 있고 산과 들이 있는 그런 곳에서 물놀이하고 매미 잡는 일 같은 것은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는 못한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라도 기억할 만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우선 마당이 있어서 정원과 꽃밭, 텃밭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거기서 진돗개, 연못, 닭과 병아리 등을 기르는 것(바쁘신 분들이니까 그런 것을 직접 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런 모든 것은 내가 할 것이므로)을 보고 자라게 하고 싶었다. 봉숭아, 분꽃, 채송화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라 알려주고 싶었다. 병아리라는 놈이 태어나는 모습과 그 놈들이 봄철에 노니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또 한 가족이 함께 일을 하며 작업을 통하여 가족 사랑을 알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도 아파트에 살다 보면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자기 방에서 밤늦도록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늦잠 자기 일쑤다. 거실에 나와도 TV에 열중하느라 이야기할 틈도 없다. 이런 생활로는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들고 가족 간 대화도 없어 한 가족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지나치게 콤팩트하고 편리하게만 만들어 놓은 아파트생활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빠하고 나 하고 만든 꽃밭에∼"도 경험해 보고, 강아지랑 같이 놀면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엄마아빠가 하는 일을 돕고 텃밭에서 농사(?)짓는 일이며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아파트에서 자라기에 아파트가 전부인 줄 안다. 어쩌다 드라마에 마당이 있는 집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게 생각한다. 하긴 요즘 아이들은 그런 집을 본 적도 별로 없고, 그런 곳에 사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도 없다. 오직 한정되고 답답한 아파트라는 곳에서 사는 것이 대부분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니 아이들도 지겨워 한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줄곧 아파트에서 살았으니 싫증이 날만도 하다. 얼마 전 어느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요즘, 유학이나 외국 근무를 경험한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보다 주택을 더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최근 대학생치고 유학이나 어학연수 다녀오지 않은 학생들이 별로 없다. 외국에서 환경도 다른 데다 넓은 주택에서의 생활은 아파트에서만 살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넓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파트는 한정된 공간에 모든 것을 다 갖추다 보니 아이들 방은 대체로 작다. 모든 게 주부 중심으로 거실, 주방, 안방 등을 넓게 하다 보니 별수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대형 아파트라도 자녀 방은 별로 크지 않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살림이 많다. 침대, 책상 등은 필수요, 컴퓨터, 책장, 때에 따라서는 피아노, 옷장 등 웬만한 집 살림살이 정도 된다. 게다가 대체로 아이들은 정리할 줄도 모르고 청소할 시간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 방에 들어가면 그런 난리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 집을 지으면 아이들 방을 가능한 크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특별히 아이들 방은 좋은 위치에 배치하자 창 모양도 그렇고 창에서 바라보이는 외부 환경을 고려해 위치를 정했다. 딸아이의 방 앞에 테라스를 만들고 그곳에 조명을 달았다. 창 앞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어 계절마다 좋은 경치를 만들어 준다. 여름의 울창한 모습과 가을의 노란 단풍 그리고 흰눈 내리는 겨울의 경치는 그만이다. 아들 방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은행나무와 외부 경치 또한 아주 좋다. 공부를 하던 중에 책상에 앉아 바라보이는 경치가 좋도록 각별히 배려했다. 무엇보다 수납공간을 많이 만들었다. 아이들은 얼마지 않으면 우리 곁을 떠난다. 언제 결혼하여 떠나갈지는 모르지만 떠나기 전만이라도 넉넉하고 좋은 환경에서 지내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도 아파트가 아닌 이런 주택에서의 생활을 대단히 만족스러워 한다. 아예 다시 아파트에 사는 것은 답답하다고 반대한다. 특히 계절마다 변하는 마당과 꽃밭 그리고 넓고 넉넉한 공간들을 좋아한다. 인근의 자연환경도 좋아한다. 가끔씩 마을과 공원을 산책하고 가까이에 있는 한강까지 하이킹도 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기대하던 아이들의 생활이다. 田 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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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에세이/열번째 이야기]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과 추억 만들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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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을 하나로-금산 생태건축과학관 임상훈
- 국내 유일의 생태건축 체험관인 금산 ‘에너지생태과학관(이하 과학관)’ 관장 임상훈 박사. 그는 사재 1억 원을 털어 충남 금산군 복수면 백암리에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건물을 만들었다. 주거를 겸할 수 있는 ‘생태건축 0번지’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로 앞에는 개울이 흐르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의 180평 대지에 앉혀진 42평 건물로 언뜻 보기에는 여느 농가주택과 다름이 없다. 임 박사는 건축물의 철거로 인한 폐기물의 발생을 최소화하고자 기존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했기 때문이라고. “과학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건축 폐기물의 발생을 최소화했고, 이 과정에서 사용한 재료들도 친환경 에너지 절약형이에요. 벌레가 살도록 나무 기둥에는 무독성 페인트를 칠하고, 재래식 장판지를 깐 뒤 니스 대신 콩기름을 발랐어요. 탁자와 문은 재활용품을 사용했고요. 창고와 화장실에는 투명 소재 폴리카보네이트를 천장과 일부 벽에 붙여 자연 채광을 적극 유도했지요. 또한 건물과 마당을 연결하는 계단과 장애우용 경사로에는 폐벽돌과 폐유리 등을 활용했고, 건물에서 나온 대부분의 폐자재를 재활용했어요.” 과학관은 초기 계획에서 시공까지 자연 환경을 최대한 살려 지은 점이 특징이다. 기존 ‘一’자형 한옥 및 컨테이너 하우스를 개조했기 때문이다. 한옥을 중심으로 처마 쪽으로 유리문과 복도를 만들고, 부엌을 방으로 개조하고, 그 옆에 조적을 쌓아 5평 남짓한 부엌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건물을 철거할 때 나오는 폐기물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또한 그 폐기물을 재활용함으로써 환경 파괴를 최소화했다. 외부 환경과의 친화성 과학관이 지닌 외부 환경과의 친화성은 개방성과 접지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임상훈 박사는 개방성은 자연광이 들어오고 외부의 경치가 보이며 기상 조건이나 더위와 추위의 정도를 실내에서 알 수 있다는 것이고, 접지성은 수목이 보이고 정원이나 지면으로 곧장 연결된다는 것이라고. “주방의 남쪽 면을 오픈시킨 점, 욕실에 있어 외기에 면한 부분으로 창을 개방한 점에서는 개방성을, 그리고 복도나 주방 및 방에서 언제든지 지면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접지성을 만족시킨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내외 공간을 연결할 경우 개방적일수록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개방성과 프라이버시를 동시에 만족시키고자 했다고. “기존 한옥의 처마 밑으로 벽돌을 쌓고 창으로 오픈시켜서 반 옥외 공간을 두어 안방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했어요. 하지만 안방에서의 개방감은 줄어들므로, 문을 활용해 여닫음으로써 개방감과 프라이버시를 충족시켰지요. 또한 낮에 안방 문을 닫았을 때 조도를 확보하고자 창호지를 발라 빛이 스며들도록 했고요. 욕실의 경우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고 안에서 밖이 내다보이는 특수 유리를 설치했어요. 물론 야간일 때를 대비해 밖에 전등을 달았기에 안팎에서 불이 켜지므로 눈부심 때문에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지요.” 과학의 원리가 한눈에… 첨단 건축물 과학관에서는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생태에 관한 체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작은 농가주택에서 무슨…’ 하고 의아스러워하겠지만 문을 여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태양열 집열판과 발전용 풍차, 햇빛과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 태양광 자동차 만들기, 풍력 발전 모형 만들기 등을 위한 각종 기자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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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을 하나로-금산 생태건축과학관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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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팽개치기' 한번 해보실래요?
- 내가 2003년도에 쓴 ‘팔매 던지기’라는 기사(전설이 되어 버린 팔매 던지기)가 있다. 그후 방송까지 타게 돼서 공연히 나는 동네 어르신들을 동원하느라 애를 먹었다. 당시 동네 어르신들이 촬영에 협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여러 가지로 힘들었고 촬영하면서 깬 저수지 가 음식점의 유리창 값까지 변상해 주면서도 연신 굽신거리느라 힘겨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그 ‘팔매 던지기’가 방송에 나간 후로 해마다 가을 무렵이면 종종 타 방송사로부터 다시 방송 의뢰를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촬영에 비협조적이던 어르신들의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실 방송이 나간 후 ‘팔매’가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이 유명인사가 되었다. 장에 가도 ‘6시 내 고향’에 나왔다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지들의 빗발치는 전화를 받으며 졸지에 연예인 취급을 받게 되었으니 어르신들이 달라질 수밖에……. “기자 양반, 나 다시 한번 테레비에 나가게 좀 해주면 안 될까?” “이런 게 있는데 취재 좀 안 할랑가?” 과거 도시에서 굴러들어 온 풋내기로 취급하던 마을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태도가 변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취재거리 제보에도 적극적이 되었다. 나 역시 그 당시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 기사를 썼는데, 이젠 시골살이에 적응하다 보니 ‘팔매’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생겨서 보충 기사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는 ‘팔매 던지기’라는 말보다 ‘팽개치기’라는 말을 더 많이 쓴 다는 것도 방송이 나간 후에 알았다. 그리고 동네에 ‘팽개바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 일상 언어 속에서 ‘팽개치다’라는 동사가 주로 쓰이지 ‘팽개치기’라는 명사형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은 ‘팽개치기’라는 용어가 언어로 잘 쓰이지 않음을 뜻하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어 가는 가을이면 어린 시절 ‘팽개치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산다. 무엇인가를 힘있게 던지는 행위를 뜻하는 ‘팽개치다’라는 뜻 그대로 ‘팽개치기’는 들판의 참새들을 쫓기 위해 돌을 쉽게 날리도록 만든 ‘팔매’라는 기구를 말한다. 전에 쓴 기사에도 팔매 기구들을 자세히 소개했지만, 그때는 사진기가 없어서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에는 사진과 함께 설명을 다시 해보려 한다. 팔매 기구에는 흙팔매, 줄팔매, 망팔매, 후리채 등의 4종류가 있다. 이 4종의 팔매기구들은 보기에는 어설프지만 사용자의 연령순으로 배열을 한 것이다. 또 이 팔매 기구들에는 나름대로의 과학적 원리가 있고 그 위력도 대단하다. 흙팔매는 대나무 막대기 끝을 열십자로 쪼개서 논둑의 흙을 찍어서 던지는 것으로 힘이 약한 어린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구였다. 일손으로는 부족하고, 가을 농사로 바쁜 어른들에게 방해만 되는 아이들에게 흙팔매를 쥐어서 들판으로 내보내서 새를 쫓게 한 기구였다. 줄팔매는 Y자 모양의 휘어지는 나뭇가지에 노끈을 걸어서 그 사이에 돌을 넣어서 멀리 튕겨 나가도록 하는 기구인데 조금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몇 번의 연습을 거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기구다. 이 기구는 순수하게 새를 쫓는 용도 이외에 높은 가지 위에 달린 열매를 따거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편지를 담 너머로 배달하는 데에도 알맞다. 돌이 날아가는 성능이 위협적이어서 상상력을 더 확대해 보면 철제 무기가 발달하기 전 고대 부족들 간의 전쟁에서도 요긴하게 쓰였을 것 같다. 망팔매는 긴 대나무 막대기 끝에 모시 끈으로 망을 엮어서 돌을 집어넣고 원심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휘휘 돌리다가 목표물을 향해 던지는 것이다.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맞히는 용도로 쓰였다. 이 망팔매에 돌을 넣어 던지면 적어도 120미터쯤은 가볍게 날아간다고 한다. 제법 힘깨나 쓴다는 사내들이 이 망팔매를 어깨에 둘러메고 들판으로 나서서 한바탕 팔매질을 하고 나면 동네 참새들이 한동안 조용했을 것이다. 후리채는 막대기에 굵은 새끼줄을 길게 꼬아서 연결한 것으로 채찍처럼 생겼다. 이 것을 머리 위에서 휘휘 돌리다가 반대 방향으로 내리치면 요즘 과수원의 새를 쫓는 대포 소리를 녹음한 소리만큼이나 위협적인 소리가 난다. 4가지 기구 중 유일하게 돌이나 흙을 사용하지 않고 기구 자체로만 이용하는 것이며 웬만한 테크닉이 없이는 절대로 위협적인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허수아비만 외롭게 서 있게 되는 겨울이 오면 동네의 피끓는 사내들은 용골 모퉁이 팽개바위 아래에 모여서 줄팔매와 망팔매에 돌을 장전해서 팽개바위를 넘기는 시합을 했다고 한다. 또 멀리서 팽개바위를 향해 돌을 던져서 맞히거나 넘기는 시합도 했다. 팽개바위가 마주 보이는 건너편 길 아래에는 커다란 돌이 하나 놓여 있어서 거기 서서 팽개바위를 향해 팔매를 던졌다. 그 거리는 대략 200미터 이상이 되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신작로가 생겨서 그 돌이 없어졌는지 풀숲에 묻혀져 버렸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팔매로 팽개바위를 넘기는 시합은 마을과 마을 간의 대결로 발전해서 긴 엄동설한을 즐겁게 보내면서도 다음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한 체력 단련의 한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그것 뿐만이 아녀, 계백 장군이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에도 저 팽개바위에다 팔매로 팽개치기를 했다고 하는 걸. 계백 장군 고향이 우리 동네인걸 보면 모르겠남.”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이제 앞을 다투어 내게 정보를 주는 정보원들이 되었다. 실제로 팽개바위는 산 중턱에 불쑥 튀어 나와 있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은데 새의 부리처럼 생긴 생김새마저 지상에서 돌팔매를 던져서 넘기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면, 어르신들이 굳이 계백 장군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팽개바위가 있는 아래쪽에 부여군에서 ‘계백 장군 무예촌’이라는 체험 학습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계백 장군의 정기가 팽개바위에 서려 있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믿어야 할 것 같다.田 글 오수향(och0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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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팽개치기' 한번 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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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6)] 감나무 아래에서
- 조선의 문인 박인로가 이덕형을 만나러 갔다 돌아오던 날도 요즘 같은 가을날이었을 것이다. 같은 연배의 문신 이덕형이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가 삭탈관직削奪官職되어 은거하고 있었을 때였으리라. 경기도 양수리, 손님을 배웅하는 길섶엔 억새가 하늘거리고 구절초 보랏빛 꽃이 맑게 피어 있었겠다. 벼가 누렇게 익어 황금빛으로 펼쳐진 들판이 보이는 길목, 배웅하는 오리장 지점의 주막에서 이별주가 차려진 상위에 놓인 홍시는 안채에서 내어준 것을 심부름 소년이 조심스레 들고 따른 것일 듯하다. 홍시가 놓인 소반을 앞에 두고 마주앉은 두 선비의 맑은 얼굴이 순간 가을 석양빛으로 물들었을 것 같다.중국 삼국시대 때 손권의 모사謀士였던 육적은 원술을 방문하였던 여섯 살 때 차려 내어온 귤 세 개를 어머니께 갖다드리겠다고 몰래 가슴에 품었다지만, 홍시를 품어가도 반길 어머니가 없는 박인로의 서러웠던 심정이 절절한 시가 되었다.감은 추운 날 더욱 그 진가를 드러낸다. 찹찹하니 입 안에 스며드는 단맛이 일품이다. 맛도 맛이거니와 그리움과 추억이 배어나는 것이 감이다. 상 위에 차려진 감을 선뜻 먹지 못하고 시 한 수를 읊은 박인로의 심정도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홍시를 좋아하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선비의 아픈 마음이 선연히 전해온다.다른 과일과 달리 겉과 속이 같은 빛깔의 감은 충과 효를 의미한다. 그래서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차려지는 빨간 홍시는 어떤 과일보다 단연 으뜸이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아껴 두었다가 내어놓는 겨울날의 홍시는 그 빛깔만큼이나 정이 묻어난다. 먹을거리가 많은 요즘에야 그렇지도 않지만 우리네 어릴 적만 하더라도 홍시는 귀한 대접이었다.감나무가 많은 산골에 들어와 살면서 감이 익을 때마다 나도 사무친 그리움에 젖는다. 봄이면 감나무마다 넉넉하게 거름을 내어 가을날 주렁주렁 달린 감을 바라보며 흡족한 웃음을 지우시던 아버지가 그립고, 겨울이면 홍시를 뒤주 안에 감춰 두었다가 하나 아들인 오빠에게만 내어 주던 야속하던 어머니가 그립다.참으로 정하게 흙을 일구며 살다 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산골에 집을 지으면 가장 먼저 감나무를 심겠다고 다짐하였던 나는 이곳 산골에 황토집을 지으면서 가장 먼저 감나무를 여러 그루 베어내어야만 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터가 감나무 밭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밭 둘레와 집 둘레에 스무 그루가 넘는 감나무가 있어 나 혼자 돌보기에 벅차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감을 딸 때이다. 높은 가지에 달린 감을 일일이 장대로 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곧잘 땅에 떨어져 못 쓸 것이 되곤 하였다.익어 가는 감을 보면서 올해는 어떻게 감을 잘 딸 것인가 궁리를 하고 있는데 먼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장문자 씨죠? 이번에 출간한 《풍경속의 집》을 읽었습니다. 그곳에 감나무가 많지요? 제가 고안하여 만든 감 따는 감조리를 보내드릴 테니 마을사람들과 나눠 쓰세요.""저… 어디에 계시는 누구신지요?""나는 이대철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경기도 용인입니다. 오래 전에 산골로 들어와서 사는데 《얘들아, 우리 시골 가서 살자》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곳이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아! 그렇습니까. 선생님의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야기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의 책을 읽고 선물까지 보내주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이튿날 감조리 50개가 든 큰 상자가 배달되어 왔다. 나는 곧 이장에게 알렸으며, 이장은 오토바이에 상자를 싣고 아랫마을 윗마을 집집마다 사정을 전하며 하나씩 선물했다.오래전에 터 잡은 산골이 도시가 되어 다시 강원도 어느 골짝을 찾아들어 가겠다는 이대철 씨의 전화 목소리는 참 씩씩하다. 그곳 '하늘말 농장'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화 목소리에 담겨 있다. 이 가을, 감이 익어 가는 감나무 아래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나는 선물 받은 장대로 홍시를 따며 고마운 하늘말 농장의 주인을 생각한다.바람 부는 겨울, 혹여 그분이 청도를 들리시면 나는 아껴두었던 홍시를 고운 시엽지에 받쳐 대접할 것이다. 후세에 남을 시 한 수 읊지 못하더라도 이미 오늘 이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시보다 아름답다.田글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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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6)] 감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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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일곱번째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설계하고 만든 연못
- 세상 참 좋아졌다. 내 집 안방에서 구만리 멀고 먼 나라에서 열리는 월드컵경기를 실황으로 보고, 메신저를 이용해 외국으로 유학 간 아이들과 무료로 대화도 하며, 전화나 컴퓨터를 이용해 은행 일을 보는 세상이다.그런데 이런 일들을 신기하거나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보다 더 거창한 일도 일어나는 세상에 '뭐 그런 걸 갖고 그러냐'고 한다. 그 거창한 일들은 불과 몇 년 전에는 꿈에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옛날로 치면 천지가 개벽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앞으로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만들어 즐거워하기 그렇다면 이 일들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이나, 그 과정들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게 아닌가? 지금부터라도 무심코가 아닌 일부러 '그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해 보자. 그러면 지금 내가 하는 이 일들이 더 신비스럽고 좋아 보인다.물고기 기르기도 마찬가지다. 빨간 색깔의 물고기가 있다는 것과 이 신기한 놈들을 집, 그것도 '어떻게 내 집에서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더 귀하고 놀랍다. 누군가의 덕택에 얼마되지 않은 돈으로 귀한 물고기를 기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가. 그런데 물고기 기르기를 하찮게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물고기를 살 돈이면 생선 몇 마리 사다 먹는 게 낫다." "그게 뭐 별거라고, 그까짓 일을 하려면 차라리 TV를 보든지 낮잠을 자든지 하지." 이 좋은 세상에서 어찌 그리 재미없는 생각만 하고 사는가. 만약 내가 어느 냇가에서 빨갛고 예쁜 물고기를 잡았다고 치자. 그 기쁨의 값은 물고기를 사는 값하고는 비교할 바 아니다. 그러니 이 좋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온갖 취미 생활을 즐기며 윤택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 게 어떨까. 허구한 날 TV를 보든지, 낮잠만 잔다면 정말 멋없는 일이다. 옛날의 추억 어린 시절, 냇가나 논에서 물고기를 잡아다 기른 적이 있다. 예쁜 물병에 담아 책상 위에 두거나 마당을 파서 연못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돌봤지만 이내 죽고 말았다. 철모르던 어린 마음에 더럽고 지저분한 냇가나 논보다 우리 집 깨끗한 물에서 살게 하면 놈들이 더 좋아 할 줄 알았다. 매일같이 깨끗한 물로 갈고, 맛있다고 여겼던 먹이만을 골라 계속해서 주었다. 그러나 놈들에게는 그 일들이 해로울 뿐더러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어린 나이의 순수하고 예쁜 마음이었다. 지금은 비록 나이를 먹었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하루하루 치열하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 살기에 때로는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그때의 추억 속에서 살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놀라운 것을 보았다. 연못도 그랬지만 그 속에서 빨간 물고기들이 노닐었다. 무더위에 뛰놀다 갈증이 나서 뛰어간 우물가에서 본 연못과 금붕어들… '우아, 거∼창하다!'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여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당시 집에 수도, 더욱이 연못까지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거기에다 빨간 물고기까지… 그곳에서 본 금붕어는 내가 난생 처음 본 예쁘고 아름다운 빨간 물고기였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자 나는 이런 추억과 기억들로 연못을 좋아하게 됐고, 그에 관한 동경은 계속 이어졌다. 군복무 후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한 일도 마당 한 구석에 조그만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근무할 때도 유리와 실리콘으로 만든 수족관에다 현지 냇가에 살던 열대어를 길러 새끼까지 배양했다. 결혼하여 아파트에 살 때도 연못을 만들었다. 아파트도 연못 만들 곳은 많다. 거실 한 쪽에 두꺼운 비닐을 깔고 호박돌로 벽을 만들기만 해도 훌륭한 연못이 된다. 발코니에도 어렵지 않게 조경과 함께 비닐과 자연석으로 연못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내 마음대로 놓고 싶은 위치에 맞는 크기로……. 이렇게 만든 연못 속에서 한가로이 헤엄치는 물고기가 얼마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인지. 물고기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거나 자연 속에 있는 상상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다. 연못이나 수족관이 있으면 할 일(?)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물갈이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물고기 배설물과 이끼를 제거하는 것인데 생각하기에 따라 '일'이 될 수도 있다. 연못 속의 자갈과 여과기 등을 모두 들어내 물을 적당히 빼고 이리저리 도망치는 물고기들을 잡는 것 등. 힘들다고 생각하면 '일'이 된다.그런데 이런 일을 어린 시절 물장난을 상상하며 하면 보통 재미가 아니다. 아무리 나이 들었어도 어린 시절처럼 하고픈 때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냇가에서 물장난을 많이 쳤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치고 물장난을 싫어하는 아이 없고, 물장난을 치지 않고 어른 된 사람 없다. 옷 버린다고 혼나지만 물가에 있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다. 그 시절에는 물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물장난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물장난을 생각하면서 자갈을 들어내고 이리 저리 도망치는 물고기들을 잡는다. 비릿한 물 냄새가 그 옛날 냇가를 생각나게 한다. 이 나이를 먹고도 어린 시절 물장난 치는 기분으로 물갈이를 하는 '일'이 아주 재밌다. 건축과 연못 그러던 내가 건축을 하게 됐고 기회가 닿는 대로 설계하는 건축에 연못을 만들었다. 사실 연못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은 많다. 주택은 말할 것도 없고 공장을 설계할 때도 마당 한 구석에 어떻게든 연못을 넣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연못에 시큰둥해 하거나 반응이 별로 좋지 않다. 심지어 도면에는 분명히 연못이 있는데도 정작 현장에 가면 서운하게도 설계대로 연못을 만든 경우가 드물다. 그 집이 내 집도 아니고 아무리 내가 설계했다지만 건축주가 만들지 않겠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그런 때는 연못이 없으면 준공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연못을 거창하게 만들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좋은 공간과 환경에 주변과 어울리게 연못을 만들면 건축이 얼마나 여유롭고 한가롭겠냐며, 아무리 설득해도 도무지 반응이 좋지 않다. 또 어떻게 해서 만든 연못에 물고기 한 마리 없이 황량하게 놓인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주인을 잘못 만난 건축물도 불쌍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겉모습이 번드르르하고, 특히 편안한 것이나 인테리어 등에만 관심이 많다. 대체로 재미도 없고 멋도 없다. 아파트나 주상복합처럼 편안함만 추구하는 콤팩트한 공동주택을 지나치게 선호한다. 그런 공간에서 편안함만 추구할 뿐 마당 가꾸기나 연못 만들기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만들어 놓은 연못이나 멋진 조경물을 보면 '참 좋다'고 한다. 태생적으로는 그런 것들을 싫어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직접 이런 것들을 만들어 즐기는 것은 어떨까.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어 좋고 가족에게도 아주 좋은 추억이 되지 않겠는가. 내 집에 연못을 만들다 그런 내가 '내 집'을 지었다. 건축을 한다면서 남의 집만 지었는데 드디어 내 집을, 내가 직접 설계하고, 내가 직접 지었다. 그러니 건축주를 설득할 필요도, 눈치볼 사람도 없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또 설계비니 공사비에 연연하지 않고,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건축을 했다. 정말 이렇게 홀가분하고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그동안 아무리 좋은 건축을 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남의 건축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건축은 다른 예술과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음악가나 미술가, 시인 등은 악상이나 시상이 떠오르면 작품을 만든다. 물론 이들도 듣고 보고 읽어 줄 사람들을 의식하겠지만 건축처럼 발주자의 특별한 요구가 없어도 자신이 만들면 된다. 그러나 건축은 건축주의 발주 요구와 특성에 맞추어야 한다. 게다가 복잡하기 그지없는 건축 관련법에 합당하기까지 해야 한다. 건축에는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과 복잡하기 그지없는 건축법에 맞추는 것은 기본이고 튼튼하고(構造), 쓰기(機能)좋고, 아름다워야(美)한다. 이 구조, 기능, 미를 건축의 3요소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도 튼튼하지 못하거나 사용하는데 불편하다면 좋은 건축이 될 수 없다. 또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도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모양이 좋지 않으면 그것도 좋은 건축이 아니다. 음악이나 시에는 기능이나 법규 같은 것도 필요 없고 오직 작품성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건축은 어렵다. 특히 다른 사람의 건축은 더 더욱……. 그런데 처음으로 내 건축을 하면서 '내 평생 소원'인 연못을 만들었다. 소꿉장난처럼 아파트 발코니나 거실 구석에 비닐로 적당히 만든 것이 아닌 '연못다운 연못'을 만들었다. 마당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마당 한 가운데에 연못을 두 개씩이나 당당하게(?) 만들었다. 물론 아무리 내가 설계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지만, 또 다른 건축주인 아내를 설득해야한다. 처음에는 아내도 고객인 일반 건축주만큼이나 이견이 없지 않았다. "무슨 집 안에 양어장을 만들려는 것도 아닌데 웬 연못을 두 개씩 만드느냐." "하필이면 그 좋은 마당에, 그것도 한 가운데 만드느냐." 하긴 내가 들어봐도 그렇게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도 아니고 내 평생 처음 찾아온 호기인데… '내 평생의 소원'이니까 이것만은 내 뜻대로 밀어붙였다. 연못 설계하기 사실, 설계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설계란 내가 생각하고 구상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설계도 설계 나름이어서 규모나 기능이 복잡한 건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연못도 건물은 아니지만 집과 마당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동선動線 그리고 조경 등을 함께 고려해 계획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양어장을 할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둥그런 모양의 연못을 두 개씩이나 만들었을까? 그리기를 좋아하는 건축가로서의 습성 탓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기타(Guitar) 때문이었다. 기타는 건축 이상으로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자랑삼아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두 차례의 클래식기타 연주회와 초청연주회도 가진 바 있고, 또 다른 연주회를 갖고도 싶다. 한때는 기타리스트로 대성(?)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이런 둥그런 기타의 형상을 연못을 만드는 데 이미지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치도에 연못 만들 곳을 구상하다가 먼저 식당 앞에 하나의 작은 원(연못)을 그렸다. 식당에서 바라보는 연못 속의 물고기 노는 모습, 얼마나 멋지겠는가? 또 하나의 둥근 기타 모양은 거실 앞에 큰 원(연못)을 스케치했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연못 속의 물고기가 노는 모습 또한 굉장히 멋질 것이다. 그리고 이 두개의 원을 각각의 원의 흐름에 따라 곡선 형상으로 실개천을 만들어 연결했다. 두 원을 따라 연결된 곡선(실개천)의 느낌이 아주 좋았다. 마치 기타 지판 위의 기타 줄을 연상하기까지 했으니… 하여간 설계 그림으로는 참 좋았다. 설계를 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잘 될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자기도취(?)에 빠진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나중에야 어떻든 일이 잘 된다는 생각에 빠진 그 때만은 만족스럽기도 하고 그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다. 게다가 내 집에 그렇게 만들고 싶던 연못 그림(도면)이 마음에 드니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잘 맞아떨어진 실개천(기타의 지판 모양)이 나중에 보니 두 연못의 통로로 연못물의 순환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좁은 수로를 따라 오가는 것을 좋아하는 물고기의 습성과 맞아 기능적으로도 아주 효과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수로를 오가는 놈들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게다가 때로 이 실개천에 둑을 만들거나, 물레방아를 만드는 등 이 나이에 물장난까지 하며 놀고(?)있으니… 참, 할 일 없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한심한 아저씨라고 해야 할지. 내가 봐도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나는 좋다. 남들이 뭐라 해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나는 너무나 좋다. 가족이 총 동원된 연못 공사 이렇게 설계한 연못 공사를 내가 총괄하고 아들딸과 아내까지 총 동원해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비를 절약하겠다는 의도보다도 내가 그토록 만들고 싶었던 연못을 설계자인 나의 의도대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에게 도면을 주고 시키면 되지만 그들은 대체로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할 뿐 현장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을 부리지 않는다. 모든 공사는 도면대로 하는 것이지만 때로 설계와 실제 현장 상황과는 다른 경우가 있다. 아무리 설계가 좋아도 그림은 실제 모양과 차이 나게 마련이다. 우선 스케일 감각에서 실제와 도면의 크기는 다르다. 또 모양이나 위치가 현장 상황과 다를 수도 있다. 이렇게 실제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게 공사인데 일하는 내내 지켜보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그때마다 이래라 저래라 하기도 쉽지 않다. 또 그렇게 따라 할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남에게 공사를 맡기느니 아예 내가 직접 하는 게 훨씬 속 편하다. 게다가 인건비까지 줄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자, 이제 땅 파는 일부터 시작하자.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삽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땅 파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어느 깊이부터는 흙이 딱딱하여 도저히 내 힘으로는 어려웠다. 그런데 그동안 어리게만 보았던 아들이 나서서 그 힘든 일을 다 해치웠다. 평소에는 아직 내가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역시 아들은 위대(?)했다. 이 일과 여러 작업을 통해 아들을 보았다. 솔직히 그동안 보탬이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같이 늦잠 자고, 무슨 일이 그리도 많은지 집에 붙어있을 때도 없고… 하여간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 집을 짓는 과정이나, 특히 같이 작업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힘든 일이다 싶으면 먼저 하고, 아비를 생각하는 마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아들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평소에도 착한 구석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몸을 부대끼는 막노동을 같이 하니 역시 내 아들이구나 실감했다. 이래서 '옛날부터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하여간 이번에 아들 덕 좀 보았다. 비단 땅 파는 일뿐 아니라 나무 옮겨심기, 벽돌쌓기, 텃밭 갈기 등 힘들고 궂은 일들을 솔선수범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으로 감동시켰다. 아들이 이러니 평소에 착한 딸도 더 착하게 보였으며, 아내는 더 말하면 잔소리이고 그러니 예부터 하는 말들이 다 옳다. '힘들고 어려운 집에 효자 난다'고 온 가족이 함께 작업을 하다 보니 평소와 다른 가족 간의 정도 느꼈다. 힘들고 땀 흘리는 모습을 서로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런 힘든 일을 통해 아버지의 힘든 모습을 보고, 아들의 힘과 부쩍 자란 모습을 보며 가족은 서로를 알게 됐다. 사실 살다 보면 가족이 함께 할 일은 별로 없다. 외식이나 여행이 고작인데 함께 몸을 부대끼는 일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특히 아파트 생활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두 바쁘기도 하지만 온 가족이 몸을 부대낄 기회조차 없다. 사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많았다. 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주택에 살면 가족과 함께 고치고 만드는 일이 많았다. 이렇게 온 가족이 막노동(?)을 한다는 것은 단독주택에서나 있는 특별한 행사였다. 가족끼리 하다 보니 공사기간은 엄청 걸렸다. 기술자들에게 맡겼다면 열흘이면 마칠 것을 주말마다 공사(?)를 했기에 두 달 정도 걸렸다. 그러나 공사를 하면서 위치나 모양을 임기응변적으로 변경도 하고 가족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그렇게 연못을 만들고, 물을 채우고, 물고기를 처음 넣던 날의 기쁨은 남이 만들어 준 연못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내 집에서 물고기를 보는 즐거움 세상에는 즐거운 일들이 많다.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물고기를 기르거나 각자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살 것이 너무 많다. 이러한 일은 큰돈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특정 계층의 사람만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는 일은 몇 가지 것들을 포기하는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파트를 떠나 전원생활을 한다면 바로 내 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물고기들을 기를 수 있다. 정말 이렇게 예쁜 물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집, 그것도 '내 집'에서 온 가족과 함께 보는 것처럼 행복하고 황홀한 일이 있을까. 놈들은 내가 연못가로 가기만 해도 어느덧 주인을 알아보고 멀리서부터 달려온다. 실개천을 열심히 오가는 모습은 그 어떤 광경보다 아름답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는 것은 어릴 때와는 다르다. 어린 시절에는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그냥 좋았다. 지금은 놈들의 모습을 삶과 생활에 대한 온갖 걱정 그리고 여러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한참 그런 생각과 함께 시원하게 유영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놈들의 한가롭고 여유로운 모습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특히 오묘한 기타 음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놈들을 바라볼 때는 더욱 마음이 편해지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도 한가로이 볼 수 없다. 주로 아침 시간에 놈들을 본다. 새벽기도에 다녀와 진돗개와 닭·토끼들을 돌보고, 운동을 한 후 약간 시간을 내거나 아침을 먹으면서 그리고 출근하기 전에 잠깐씩 놈들을 본다. 세상에 이 보다 더 한가하고 좋은 시간은 없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물고기를 기르거나 연못을 만드는 일은 별게 아니다. 그러나 하찮은 이 일처럼 큰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것도 흔치 않다. 그동안 유별난 나를 만나 뜻하지 않게 연못 공사에 동원된 가족도 이 연못을 보고 흐뭇해 하니 가족의 화합을 위해서도 이 연못은 아주 좋은 역할을 했다. ※이 연못은 금년에 다시 리모델링을 하여 지금은 하나의 원(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파고라를 만들었다.田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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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일곱번째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설계하고 만든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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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5)] 둥지
- 산골에 황토집을 지으면서 여유 있는 터에 두 평이 되는 정자를 앉혔다. 정자 마루 하방에 흙돌담을 둘러쌓은 것은 황토집에 어울리는 맵시를 갖추기 위함도 있었지만 마루 아래를 창고로 쓰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집을 짓고 남은 자재와 연장들을 넣어 두기에 좋았다. 입구가 있는 반대편에 파이프로 공기통을 만들어 그물마개를 끼워 두었는데 그물마개는 땅에 떨어져 버렸고 나는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었다.뜰의 나뭇가지에 부쩍 늘어난 새들이 교태롭게 지저귀던 이른 봄, 새 한 마리가 그곳을 기웃거렸다. 포르르 자리를 옮겨가며 들여다보고 주위 살피기를 계속하더니 이튿날은 짝까지 데리고 와서 살폈다. 분명 둥지 터를 찾고 있었다.'그래, 어서 집을 지어라. 방해하지 않을 테니'서재 유리창으로 훤히 내다보며 새의 동작이 어찌나 귀여운지 마음이 무척 즐거웠다. 밖에서는 안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색유리라 새는 주위의 조용함에 안심하고 살피는 눈치였다. 배와 꼬리가 진한 황토 빛을 띠고 회색 날개에 흰점이 보이는 새를 나는 우리 황토집에 걸맞게 '황토새'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제비만한 크기에 날씬한 몸매가 아름다웠다.셋째 날, 혼자 찾아든 황토새는 한참을 기웃거리더니 파이프 안으로 날아들어 갔다. 지름이 불과 10센티미터인 둥근 공간에서 몸을 움츠리고 앉아 안을 살피고 밖을 내다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더니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그곳에 찾아들지 않았다. 땅 높이와 가까운 곳인데다 바람이 불면 비가 뿌려 칠 것을 염려했던 터라 더 안전한 곳을 택했을 거라는 생각에 서운했지만 안심을 하며 잊고 지냈다.그후 몇 날이나 지났을까. 안채 모퉁이 처마 아래 상인방 편편한 목재 위로 날아드는 황토새를 보았다. 지푸라기 새집이 보일 듯 말듯 은밀한 곳이다. 세상에, 새는 완벽하게 안전한 곳에 둥지를 튼 것이다.장마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어느 해보다 많은 강수량을 기록하며 인간을 위협한다. 폭염과 폭우로 해마다 이상기온이 계속되는 것은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들으며 엄청난 수해는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자업자득이 아닌가 돌아본다.산에서 내려오는 빗물이 우리집 도랑에서 넘쳐난다. 콸콸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꺾어 도는 정자 옆 감나무가 서 있는 언덕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마당을 덮친다. 언뜻 먼 태곳적 이야기 한 자락을 떠올리며 삽과 괭이를 들고 얼른 뒷밭으로 올랐다.중국 하왕조 때의 우禹임금은 아버지 곤이 실패한 치수공사를 성공시켜 임금이 되었다. 강의 하류에서 둑만 쌓아 장마가 질 때마다 홍수를 거듭하는 아버지의 실패를 보고 강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 물길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여 나라를 구했다. 그 업적으로 임금이 될 수 있었으니 물길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는 능히 나라를 다스릴 줄 앎이다.넘쳐나는 도랑의 둑을 손보지 않고 재빨리 뒷밭으로 오른 나도 물길을 갈라놓았다. 괭이와 삽으로 흙을 떠내어 둑을 만들어 놓은 물길을 따라 빗물이 갈라졌다. 언덕을 넘쳐흐르던 빗물은 순하게 도랑을 따라 흐르고 대신 대문 앞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많은 빗물이 흘러내렸다. 안전한 우리 집을 바라보며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으슥해지는 기분이다."이만하면 나도 주인 몫을 잘 한 거지!"내 말에 빙긋이 웃어주며 고마워하는 우리 집을 세밀히 보살핀다.산길이든 마을길이든 애초에 길은 대부분 물길을 따라 만들어진다. 비 내리는 날 산을 오르면 모든 등산로가 물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하나의 나무가 가지를 이루고 서 있는 형상이 산의 물길이다. 끊기거나 얽혀 있지 않은 질서를 이루고 있다. 계곡을 건너 다시 길이 이어지는 원리가 그런 연유에서이며 작은 골은 큰 계곡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계곡은 두 능선을 가른다.처음 집터를 보러왔을 때 뒷산의 지형을 살피며 마을 어른들에게 안전함을 물어보고 집 둘레의 물길을 둘러보며, 둥지를 짓기 위해 우리집을 찾아든 황토새의 살핌만큼이나 신경을 썼다. 본채를 앉힐 터의 뒤 언덕에 이중으로 돌을 쌓아 여유를 둔 것도 넓은 마당을 갖겠다는 욕심보다 안전을 염두에 두었다.집중호우로 산사태가 져 마을이 휩쓸리고, 사람이 실종되고, 언덕이 무너져 전원주택이 상하는 광경을 TV로 보며 저 일을 어찌하나 싶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앞으로 지구온난화는 더욱 심할 것이며 폭우로 인한 수해는 증가할 지도 모른다. 전망이 좋고 물이 좋은 산기슭이나 강가에 전원주택지를 택할 때 더욱 폭우에 대비한 안전에 유의해야 할 일이다.유난히 새가 많이 날아드는 우리 집 감나무엔 오늘 새벽에도 새들의 연주회가 이어졌다. 산골생활에서 누리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이른 아침에 듣는 새소리다. 각양각색의 새소리가 합주가 되어 잠을 깨운다. 요즘 가장 맑고 곱게 들리는 새소리는 분명 우리 집에 둥지를 튼 황토새 새끼들의 지저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것은 아름답다.田글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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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여덟 번째 이야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어느 시대에, 누가 만든 노랫말인지 삶의 지혜가 묻어 난다. 모든 것은 때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텐데 잘못 생각하면 한심하다 할 수도 있다.'젊고 힘이 있을 때 열심히 일해야지 젊어서 놀라니.' 그러나 살아갈수록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특히 전원주택에 살다 보니 이 노래의 참뜻이 더 이해될 때가 많다. 좋은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좋은 집에서 살거나… 좋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그때, 바로 그런 것을 해야 한다.사람의 감정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든지 좋다.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웃음이 나온다는데 나이 들어 갈수록 좋은 것이 별로 없다. 감정은 점점 메말라 가고, 온갖 걱정과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살아나던 감정도 달아난다. 그러므로 느낄 수 있을 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아무리 좋은 것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좋은 것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라이프사이클과 인생 살이아이들은 예쁘고 귀엽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한창 기를 나이에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다. 지치고 힘들면 아무리 귀엽고 예뻐도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 나이가 바로 그런 때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여유가 생길 때면 비로소 아이들이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아기를 기른다면, 정말 예쁘게 잘 기를 텐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야말로 인생에 있어 버스 떠나간 지 한참이 지나 버린 것이다.음악도 학창시절 듣던 느낌과 나이 들어 듣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같은 음악인데도 그 옛날 느낌이 아니다. 학창시절 특히 가을 녘 '솔베이지 송'이나 '히브류 노예들의 합창' 등을 듣던, 그때의 감흥은 대단했다. 그것도 어쩌다 라디오에서나 점심시간 학교 스피커에서 흘려 듣던 음악인데도……. 그런데 지금은 당시의 라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오디오로 듣지만 그때와 같은 감격은 없다.여행도 그렇다. 수학여행을 가던 시절. 수학여행비의 납부가 가능할지에서부터 출발하기까지의 여러 절차들이 참, 마음 졸이게 했다. 그 수학여행 가는 날은 어찌 그리도 더디 왔던가? 드디어 만원 버스와 완행열차를 갈아타고, 달리는 차안에서 바라보던 가을 들녘의 풍경과 단풍이 노랗게 물든 산사山寺, 맛도 없는 반찬에 허름하던 식당, 복잡하기 그지없던 여관 방 그래도 그 시절의 여행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돈 걱정은 말할 것도 없고 좋은 자가용차에 콘도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어 모든 것이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여유로운 여행이 왜 그때만 못하는가?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역시 다 '나이 탓'이다.이것이 인생이다사실은 아이들을 기를 그때, 나이 들어서처럼 넓은 집과 생활의 여유가 있었어야 했다. 그랬어야 아이들에게도 원 없이 잘 해주고, 예쁘게도 키웠을 것이고, 귀여움을 한껏 만끽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특수한 사람 외에 대부분의 신혼들은 전세를 살거나 내 집이 있어도 여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경우도 불안정하여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다. 사는 재미를 느끼는 면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때 모든 것이 더 여유로워야 했다.또 한창 감성이 풍부하던 그 학창시절에 좀더 여유로웠어야 했다. 마음껏 책도 사보고, 좋은 음향기구에도 빠져보고, 다양한 경험을 했어야 했다. 그런 기회가 많았다면 아마 모르는 소질도 개발되어 세계적인 음악가로 대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나이 때는 도저히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여행도 그렇다.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 시절에 여행을 많이 했어야 했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수학여행도 좋지만, 그런 것 이상의 자유 분방한 여행을 경험했다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청년 시절에 유럽을 여행하며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여행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보는 것뿐 아니라 홀가분하게 집과 가족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평상시와는 다른 많은 것을 스스로 보고 느낀다.이처럼 사람에게는 '때'가 중요하다. 기회가 됐을 때, 기회를 살리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바로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때 그러한 일을 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나다. 그런데도 뭔가가 필요한 그 시기에는 모든 것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아쉽게도 그러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나이 들어 아쉬워만 할 뿐이다.'이것이 인생이다.'살어리 살어리 주택에서 살어리랏다!집도 그렇다. 아파트에서 사는 많은 사람도 언젠가는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한가하게 살고 싶어한다. 그런 집에서 꽃도 기르고, 애완견과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자녀 문제, 교육 문제, 직장 문제, 생활의 편리성. 자금 문제, 가족의 반대, 부동산적 가치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유 때문에 하고는 싶지만 그저 마음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은 단 한번 뿐으로 이 시간이 지나면 그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는데…….물론 자녀와 가족, 부동산 등이 중요하긴 하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나', 바로 내가 더 중요하다. 내가 있어야 자녀도 있고 가족도 있다. 그런 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는 싶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로 실행하지 못 하다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나이 들어 은퇴 후에나 가능성이 보인다. 이렇게 은퇴 후에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누리는 축복일 뿐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마저도 불가능하다.최근 주5일제, 환경과 건강 문제 등으로 분위기는 좋다. 그러나 분위기는 성숙되어도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고 있어 포기한 채 살아간다.그런데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단 한번 사는 인생인데 아이들 때문에? 가족 때문에? 그렇다고 자녀나 가족, 뭐 그런 것들을 아예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중요한 것들도 적당히(?) 해결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몇 가지는 포기하고 용기도 내 보자. 포기하지 않거나 용기를 내지 않으면 끝내 못한다.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황금기?누구에게나 문제는 있다. 그러나 어차피 모든 것을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 어떻게 자녀 문제에서부터 부동산적인 문제까지 모두 해결할 것인가. 당연히 어렵다.그래서 극히 중요한 문제-아이들의 대학진학-만 해결된 후 용단(?)을 내렸다. 많은 생각과 준비 끝에 드디어 탈脫아파트를 결행한 것이다. 사실 아파트를 떠나기까지 실로 오랜 세월이 걸렸고 수많은 노력을 하였다.이곳은 양평이나 용인 등과 같이 먼 곳이 아니라 서울의 개발제한구역에 있는 취락마을이다. 그래서 출퇴근이나 아이들의 통학 그리고 생활 여건 등에 문제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강이 가깝고 야산과 밭으로 둘러싸여 공기도 맑고 한가하다. 무엇보다도 넓은 마당이 있어 갖가지 취미 생활이 가능하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텃밭과 꽃밭 등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연못과 닭장, 토끼장, 새장과 진돗개네 집 심지어 정자까지도 직접 만들었다. 여기에 금붕어와 잉어, 꽃 닭과 병아리, 새와 토끼까지 기르니 평생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사실 이런 생활이 우리들이 어린 시절 살던 모습으로 그 동안 우리는 아파트라는 곳에 너무 빠져 있었다. 그 놈의 돈이 뭔지, 자식들이 뭔지, 부동산이다 교육 등을 생각하다 보니 그 동안 '나는 없었다'. 몇 년째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 망설였던 가족이나 아이들도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것을 반대한다. 이런 생활이 더 좋고 행복한 것은 오랜 아파트생활 탓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늘 하는 일이라는 것이 TV를 보는 등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런 답답한 생활을 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생활을 하니 이게 바로 '내 생애 최고의 황금기'가 아닌가 생각된다.이곳에서의 생활은 얼마나 다양하고 흥미 있는 일이 많은지 알 수 없다. 바로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이다.이곳에서의 생활은 할 일이 많다. 아니 일하는 재미로 일부러 일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재미있는 일을 할 시간이 없다. 아침시간이 너무 아까워 일찍 일어나지만 금방 시간이 지나간다.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출근하기 싫을 때도 있다. 주말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여유로운 날이다.이 같은 생활에 빠져 있다 보니 아쉬움이 있다. 바로 안타까움이다. 좀더 일찍 이런 생활을 했더라면……. 나이가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부터 이런 생활을 했어야 하는 아쉬움 말이다. 그 누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한심하다고 하는가?즐겨 보세, 즐겨 보세, 젊어서 즐겨 보세!가끔은 봄이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과연, 이렇게 좋은 봄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사실 이제는 그럴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생각은 우리를 정말 슬프게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이 마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상태로 그 좋은 봄을 느낄 수 있을 때는 몇 번 되지 않는다. 얼마나 안타깝고 아까운 인생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봄을 생각하면 그 봄 가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보통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그런지 아니면 평생 언제까지나 이런 봄을 맞을 것처럼 생각들을 하는지, 천만의 말씀이다.그러니 이 봄도 아까워하며 봄을 즐길 수 있을 그때 그 봄을 즐겨야 한다.나이가 들수록 도시에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자녀들을 길러야 하는 젊은 시절 빼고, 힘이 빠진 나이인 때를 빼고 나면 이렇게 하고 싶은 생활을 할 때는 뻔하다. 바로 지금이 그대가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 그 때다.이렇게 사는 나를 보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재미있는 생활을 하느냐?'고 엄청나게들 부러워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참 안타깝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왜, 그렇게 부러워하면서도 이렇게 살지 못하느냐?'고.그들이나 나나 비슷한 나이에 대부분의 조건도 비슷하다. 그들, 아니 이 글을 읽는 웬만한 사람들도 물론 그렇다. 특히 버블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값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과연 그 비싼 아파트에서 얼마나 '사는 맛'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꼭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만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곳에서의 답답하고 재미없는 생활이 '진정한 삶'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병문안이나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면 흔히들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앞으로 이렇게 살지 말자,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그렇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그 동안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우리의 자녀와, 가족들과,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살았다. 주말이 즐거운 것은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일주일 내내 무위도식한 사람은 평일이나 주말이나 다를 것이 없으므로 주말이라는 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자신을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있다.이제는 우리도 남은 인생을 충분히 즐길 때도 되었다.田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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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여덟 번째 이야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