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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달라! 두 얼굴의 집 양평 통나무주택
- 경기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남한강 행복마을에 모던한 주택 2채가 거울에 반사된 듯한 모습으로 앉혀져 있다. 전망은 넓은 마당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 세월초등학교 쪽으로 펼쳐진다. 약 20년간 통나무 주택을 지은 목지가 대표가 포스트&빔 공법으로 지은 통나무 주택이다. 글 최은지 기자 사진 백홍기 기자 취재협조 통나무건축 목지가※ 기사 하단에 이 주택과 관련된 영상을 링크시켰습니다. 자세한 사항이 알고 싶으시면 영상을 클릭해 주세요. HOUSE NOTEDATA위치 경기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건축구조 캐나다식 통나무 Post&Beam 공법대지면적 463.00㎡(140.06평)건축면적 89.14㎡(29.96평)건폐율 19.25%연면적 135.14㎡(40.88평) 1층 89.14㎡(26.96평) 2층 46.00㎡(13.91평)용적률 29.19%설계기간 3개월 공사기간 3개월분양비용 4억 5천만 원 설계 및 시공 통나무건축 목지가 010-7599-6332 https://blog.naver.com/howtolog B동 측면에 있는 현관에 들어서면 좌측 내부에 있는 중문으로 동선이 이어진다. 남한강 행복마을에 70여 세대 단독(전원) 주택이 조성돼 있다. 남한강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산줄기가 시원하고 멋진 자연환경을 제공한다. 단지에서 300m 거리에 세월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들은 편하고 즐겁게 시골길을 거닐며 통학할 수 있다. 차로 15분 거리에는 양평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어 나름 괜찮은 교육 환경을 갖췄다. 대형마트, 은행, 관공서, 골프장, 콘도 등 편의 시설과 위락시설도 차로 10~20분 거리에 있어 편리한 생활환경을 갖췄다. 또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중부내륙고속도로와 평창하남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강남까지 1시간 내로 갈 수 있다. 주방은 ‘ㄷ’자 형태로 계획해 넓은 조리 공간을 확보했으며 천장은 높여 개방감을 줬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과 데크하고 연결되는 도어를 크게 계획해 전경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B동 계단에서 바라본 주방 B동은 현관을 측면에 두면서 정면에 생긴 공간을 포치로 활용해 휴식을 취하면서 바비큐 파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교통, 교육, 편의시설을 두루 갖춘 이곳에 목지가 김종근 대표가 건축주들의 의뢰를 받아 10여 채의 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김 대표가 2필지를 분양받아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은 통나무주택 두 채를 지어 직접 분양에 나섰다.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집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달라져요. 저는 현관에서 집으로 들어섰을 때 첫 느낌이 포근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 것과 내부에서 보는 바깥 전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하는 사람이 고민을 많이 해야 돼요. 건물 배치 방향, 내부 공간 구성, 창 크기와 위치 등에 따라 집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좋은 아이디어를 적용하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료를 수집해 수차례 그림을 그리고 수정하는 걸 반복해요.” 이런 고민을 거쳐 대지면적 330평에 통나무주택 두 채를 나란히 정남향으로 배치했다. 통나무주택이지만 외관은 리얼징크와 탄화목재로 시공하고 지붕은 경사지붕으로 계획해 일반 모던한 주택처럼 보인다. 보통 통나무주택이라면 구조재 자체가 마감재 역할을 한다. 육중하고 나무의 자연스러운 멋이 통나무주택의 매력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외벽을 다른 소재로 마감했다. 통나무라는 특징을 드러내는 것보다 사용자의 편의를 배려해서다. 김 대표는 “그동안 외관까지 통나무를 노출해 주택을 지었는데 몇몇 건축주가 주기적으로 칠 작업을 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며 “이를 보안하기 위해 마감재를 사용해 외벽을 덮어 관리는 쉬우면서 최신 트렌드에 맞춰 모던하게 계획한 것”이라고 한다. B동 1층 방. 적재적소에 창을 배치해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실내에서 전경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내부 설계중량 목구조 주택과 통나무주택 차이점은 가공에 있다. 기계 가공을 최소화하고 현장에서 목수들이 직접 나무를 깎아 짜 맞춤으로 연결하는 걸 통나무주택이라고 한다. 짜 맞춤은 난이도 높은 기술이기 때문에 완성도는 전적으로 목수들 역량에 달렸다. 김 대표는 “목지가의 목수들은 예전에 제가 진행한 집짓기 프로그램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었다”며, “통나무주택 매력에 빠진 몇몇과 함께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오면서 완성도 높은 주택을 지어 왔다”고 자랑한다. 포스트&빔 공법 통나무주택은 기둥과 도리, 장선으로 뼈대를 세운 목구조다. 구조재는 짜 맞춤으로 연결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는 경량 목구조와 같은 투 바이 식스(2″×6″) 방식으로 벽체를 제작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견고하다. 또, 주택 내부는 기둥과 보를 그대로 노출시켜 자연 그대로의 멋을 만끽할 수 있고 나무가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있는 쌍둥이 주택은 공유한 듯 공유하지 않은 유연한 경계로 적절한 프라이버시를 제공한다. 현관도 A동(좌측 건물)은 정면에 B동(우측 건물)은 도로와 인접한 뒤편에 배치해 동선이 부딪히지 않게 했다. 현관 배치에 따라 내부 구조도 살짝 달라졌다. B동 2층 방. B동은 2층 계단을 오르면 욕실과 방 2개가 나오는데, 방 1개는 크기를 크게 해 필요에 따라 공간을 구분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A동은 현관 중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거실과 주방을 마주한다. A동은 주방 옆에 욕실을 배치하고 복도로 방을 연결해 독립성을 강조했다. A동 2층에 배치한 두 개의 방은 비슷한 면적으로 계획했고 방 사이에 수납장을 뒀다. MATERIAL외부마감지붕 - 리얼징크외벽 - 리얼징크/탄화목재데크 - 방부목내부마감천장 - 레드파인루버내벽 - 도배/레드파인, 편백바닥 - 강화마루계단실디딤판 - 나왕난간 - 오비스기단열재지붕 - 인슐레이션 가등급외단열 - 인슐레이션 가등급내단열 - 인슐레이션 가등급창호 독일식 시스템창호현관문 독일식 코렐주방가구 한샘위생기구 대림바스난방기구 기름보일러, 태양광, 벽난로 “내부는 기본적으로 현관에서 들어오면 주방과 거실을 대면하는 구조예요. 그리고 각각 1층에 방 1개와 욕실, 2층에 방 2개와 욕실을 마련했는데, 구조는 조금 달라요. A동 1층은 거실과 주방 옆에 욕실을 배치하고 방에서 복도로 연결해 독립성을 강조한 반면, B동 1층은 욕실을 현관 옆에 배치해 어느 공간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강조했어요. 2층은 A동을 수납 중심으로 계획해 비슷한 면적의 방 2개를 배치하고 그 사이에 수납장을 설치했어요. B동은 수납보다는 방 크기를 다르게 해 필요에 따라 공간을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게 계획했습니다.”두 주택은 공통으로 주방 천장을 높여 집 안에 들어섰을 때 시원한 개방감을 준다. 각 방은 적재적소에 창을 배치해 바람은 통하게 하고 풍경은 끌어 담아 몸과 마음이 시원하다. 두 주택 사이에는 나무를 심어 경계를 줬다. 주택은 모두 전경을 향해 배치했다. 외관은 리얼징크와 탄화목재로 시공하고 경사지붕에도 리얼징크를 사용해 모던한 스타일이다. 20년간 통나무주택을 지어온 김 대표는 일본에서 처음 취미로 집 짓는 것을 배웠다. 이후 활동 영역을 넓혀 차곡차곡 지식을 쌓아 포스트&빔 공법에 대한 교본을 만들고 통나무주택 짓기 프로그램도 운영할 정도로 깊은 내공을 다졌다. 조금만 더 약았다면 생활은 좀 더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남은 건 손에 박힌 굳은살이 전부라는 김 대표. 그는 “지금은 바빠서 교육을 진행하지 않지만 통나무주택에 관심 갖고 배우고자 하는 분들은 언제나 공사 현장에 참여해 무료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환영의 뜻을 비췄다. 추가 [목조, 통나무주택] 겉과 속이 달라! 두 얼굴의 집 양평 통나무주택 목지가에서 설계 및 시공 사례 더 보기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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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달라! 두 얼굴의 집 양평 통나무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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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모던 & 컨츄리 스타일 통나무주택
- 마을 앞의 냇물이 너무 맑아서 달이 그냥 지나지 못하고 몸을 씻고 간다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洗月里. 이곳 남한강행복마을 전원주택단지 최상단에 앉혀진 주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강과 산줄기를 굽어보고 있다. 건축주 부부가 예전 주말주택 건축 경험을 바탕으로 지은 통나무 기둥 & 보 공법 상주용 전원주택이다. 세라믹 사이딩과 징크로 마감한 모던하고 심플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구조재인 통나무 기둥과 보, 도리를 그대로 노출해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살린 컨츄리 스타일이다.글 최은지 기자 | 사진 윤홍로 기자 취재협조 통나무건축 목지가※ 기사 하단에 이 주택과 관련된 인터뷰와 영상을 링크시켰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이 알고 싶으시면 영상을 클릭해 주세요. HOUSE NOTE●DATA위치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건축구조 통나무 Post & Beam(캐나다 방식)대지면적 1,157.03㎡(350.00평)건축면적 109.09㎡(33.00평)건폐율 9.42%연면적 161.98㎡(49.00평) 1층 109.09㎡(33.00평) 2층 52.89㎡(16.00평) 다락 56.19㎡(17.00평)용적률 14.00%설계기간 3개월공사기간 3개월건축비용 3.3㎡당 600만 원설계 및 시공 통나무건축 목지가 010-7599-6332 blog.naver.com/howtolog 지형지세를 활용한 주택 배치부부는 2005년에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 주말용으로 통나무 원형圓形 기둥·보 구조에다 2″×6″경량 목구조를 가미한 하이브리드 주택을 지은 바 있다. 그리고 10여 년간 주말마다 그곳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다가 최근 남편의 은퇴 시점에 맞춰 이곳에 상주용 전원주택을 지은 것이다. 부부는 세월리 남한강행복마을의 어떤 매력에 빠져 정착한 것일까.“분양 소식을 접하고 처음 찾았을 때 남한강을 끼고 단지로 들어오는 길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또 멀리서 휘감아 들어온 남한강 물줄기가 단지 앞에서 머물다가 빠져나가는 형국이기에 풍수적으로 좋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산과 강이 모두 바라보이고 햇살이 잘 들며 전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에 주택을 짓고 싶었는데, 이 마을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했어요.” 대지의 서쪽과 남쪽은 주택이 들어선 필지에 접하고, 동쪽과 북쪽으로 단지 내 진입로가 조성된 점을 고려해 주차장과 진입로를 주택 후면에 계획했다. 부부가 매입한 대지는 서쪽의 양자산과 동쪽의 남한강 사이에서 있는 서고동저西高東低 지세로, 대지에서 바라보면 개군산, 남한강, 주봉산, 양자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지의 서쪽과 남쪽은 주택이 들어선 필지에 접하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푸른 숲이 감싸며, 단지 내 진입로는 동쪽으로 나 있다. 주택은 조망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산 비탈면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북쪽으로 최대한 붙여서 배치했다. 레벨 차가 나는 전면 마당과 집터 간 경계는 조경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언덕 정원으로 꾸몄다. 이로써 푸른 언덕 위의 주택에선 가까이는 마당의 조경을, 멀리는 주변의 산과 강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마당 고정관념을 깬 통나무주택의 변신주택을 짓기 전 부부는 건축 구조에 대해 고민했다. 예전 주말주택은 통나무 기둥이 굵은 원형이라 중후한 느낌은 좋았지만, 외관이 다소 투박한 데다 실내 공간 활용 면에서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다. 부부는 그런데도 이번에 또 통나무주택을 지은 것이다.“3년간 다양한 구조를 알아봤는데, 그래도 오래 생활해온 통나무주택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쉬웠던 통나무 기둥이 최근 얇아지고 모양도 사각으로 가공하기에 원하는 스타일의 주택을 지을 수 있겠더라고요.” 현관 후원 뒷마당 화덕 및 다용도실 문 부부는 주말주택 건축과 리모델링으로 인연을 맺은 목지가에 설계·시공을 맡겼다. 한 업체에 연이어 주택을 맡기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은 일이다.“예전 집에서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고, 목지가는 무엇보다 저희가 원하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어요. 이번 집도 디자인이 잘 나왔는데, 특히 냉·난방비가 전보다 훨씬 적게 나와서 좋아요. 지난겨울 월평균 기름값 10만 원, 난로용 펠릿값 5~6만 원으로 실내 온도를 24℃로 유지하고 지냈으니까요.”이 주택은 통나무 사각 기둥 사이에 경량 목구조재를 넣고, 그 사이 중공층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단열재를 충진했다. 여기에 단열과 기밀성이 좋은 독일식 시스템창을 적용했기에 자연 에너지 효율성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외관을 모던하고 세련되게 디자인하고 요즘 유행하는 징크와 세라믹 사이딩으로 마감했기에 외부에선 통나무주택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그 구조를 짐작할 수 없다. 현관을 들어서 3연동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복도와 마주한다. 복도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안방과 거실이 나온다. 안방은 코너에 작은 창을 냈다. 부부가 이 창을 통해 주택 주변을 확인할 수 있다. ●MATERIAL외부마감 지붕 - 징크 벽 - T18 세라믹 사이딩(고노시마) 데크 - 캔퍼스(하드우드)내부마감 천장 - 도배, 레프파인 벽 - 도배 바닥 - 강화마루, 레프파인계단 디딤판 - 레드파인 집성목단열재 지붕 - 글라스울 R30 내단열 - 글라스울 R21 외단열 - 글라스울 R30창호 독일식 시스템창호주방기구 한샘위생기구 대림난방기구 기름보일러(경동), 벽난로, 필름난방 거실에서 마당 쪽으로 시스템창을 크게 설치해 시원한 조망을 담아내며, 데크로 바로 드나들 수 있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가는 방법이 두 가지다. 복도를 통해 가면 바로 동선이 주방으로 연결되며, 소파 쪽으로 난 개구부를 통해 가면 서재를 거쳐 대각선으로 동선이 이어진다. 서재를 활용한 공간 분리이 주택은 수납공간 확보와 실별 공간 분리가 눈에 띈다. 복도를 기준으로 현관, 공용 화장실, 수납공간, 계단을 후면에, 주요 공간인 거실, 주방/식당, 서재를 전면에 배치한 구조다. 주차 공간이 있는 주택 후면 중간 부분의 현관으로 들어서 중문을 열면 먼저 복도와 마주한다. 복도 우측이 주방/식당, 수납공간이고, 좌측이 거실과 안방이다. 그리고 현관 앞에 내벽을 통해 복도를 만들어준 서재가 거실과 주방/식당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한다. 거실과 주방/식당 사이에 배치한 서재가 완충 역할을 한다. 남편은 “거실과 주방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편하다”고 한다. 주택의 메인 공간인 거실에 마당과 주변 풍광을 한눈에 담아낸 큰 창호가 있다. 거실과 주방/식당은 복도를 통해서, 또 서재에 대각선으로 낸 개구부를 통해서 연결된다. 아내는 “거실은 쉬는 공간이라 주방의 물소리나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소음이 될 수 있어 주방과 떨어뜨리고 서재를 가운데에 넣었다”며 “남편이 공부하거나 책을 보다가 두 공간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주방/식당을 가능한 넓은 면적으로 설계했으며, 마당과 쉽게 오갈 수 있게 창호를 설치했다. 2층은 출가해 가정을 이룬 두 아들네 가족이 오면 머무르도록 계획한 공간이다. 1층 현관 옆 포겟도어를 열면 나오는 계단을 오르면 좌우로 고풍스럽게 꾸민 방과 미니 주방이 있다. 2층은 출가해 가정을 이룬 두 아들네 가족이 오면 머무르도록 계획한 공간이다. 계단을 오르면 방과 미니 주방이 먼저 보인다. 또, 마당을 바라보며 안쪽으로 들어서면 통나무주택의 매력을 발산하는 거실이 나온다. 천장을 박공구조에 맞춰 높이고 창을 크게 내 개방감이 들고 조망은 절정에 이른다. 그 한쪽에 터널 형태로 비밀의 공간처럼 디자인한 다락이 있다. 2층 거실도 동쪽의 탁 트인 전망을 향해 큰 창을 냈다. 또한, 천장 높이를 높이고 고창을 내 개방감이 느껴진다. 2층 거실에서 좁고 낮은 통로를 지나면 다락이 나온다. 손주가 이곳에서 마치 아지트처럼 숨고 놀 수 있어 좋아하는 공간이다. 다락 욕실 건축주는 앞마당을 넓게 계획해 조경을 갖추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제가 정원에 관심이 많아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땄어요. 이 기회를 통해 알게 된 지식으로 거실 앞을 데크, 꽃밭, 잔디 정원으로 구분하고, 정원에 소나무, 반송, 철쭉, 삼색 조팝, 등을 심고, 사초 정원도 만들고 싶어 핑크뮬리 같은 식물도 심었어요.” 건축주가 주택에서 데크-꽃밭-잔디 정원 순으로 마당의 면적과 조경을 직접 계획했다. 햇빛이 잘 드는 남쪽에 텃밭을 배치하고, 전망이 빼어난 동쪽에 마당을 계획했다. 주택 배면 모습 추가 [목조, 통나무주택] 남한강 모던 & 컨츄리 스타일 양평 통나무주택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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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모던 & 컨츄리 스타일 통나무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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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전원주택】 통나무에 담아낸 가족 사랑
- 동갑내기 부부는 인터뷰 내내 신혼부부처럼 깨소금이 쏟아졌다. 남편은 부부 동반 모임에서 통나무주택을 배경으로, 원목 데크 위를 무대 삼아 멋들어진 노래 한 곡을 뽑아냈다. 사방이 탁 트인 대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며 부르니 흥이 절로 났다. 부부는 올해 입주했지만, 마치 몇십 년은 살고 있었던 듯이 주택의 포근함에 푹 빠져 있었다. 글. 김경한 / 사진. 최은지 HOUSE NOTE DATA 위 치 경기 양평군 강상면 건축구조 통나무 포스트, 빔 목조 용도 수변구역 대지면적 429.00㎡(130.00평) 건축면적 72.60㎡(22.00평) 연면적 112.20㎡(34.00평) 1층 72.60㎡(22.00평) 2층 39.60㎡(12.00평) 건폐율 16.92% 용적률 26.15% 설계기간 2015년 10월 ~ 2015년 11월 공사기간 2015년 11월 ~ 2016년 2월 공사비용 1억 8천7백만 원(3.3㎡당 550만 원)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이중 그림자 슁글 외벽 - 시다 사이딩, 징크 내부마감 벽 - 레드파인 루버, 편백 루버, 파벽돌 천장 - 레드파인 루버, 편백 루버 바닥 - 강화마루 창호 - 미국식 시스템 창호 단열재 지붕 - 인슐레이션 R30 외벽 - 인술레이션 R19 설계 및 시공목지가 010-7599-6332 http://blog.naver.com/howtolog 두터운 신뢰 위에 쌓은 집 “부부 사이가 워낙 좋다 보니 여기 올 때마다 새로운 활력을 얻고 가는 기분이에요. 사모님이 차려주신 밥상엔 부부가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고들빼기며, 고춧잎, 들깻잎이 올려지는데, 그 쌉싸름한 자연의 맛이 웬만해선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자꾸 찾아오게 되더라고요.” 건축주에게 설계 시에 특별히 무엇을 요구했는지 묻자, 목지가 김종근 대표는 부부를 칭찬만 하다 근처 현장으로 서둘러 떠났다. 부부에게 물어봐도 답변은 김종근 대표와 비슷했다. 자신들은 김 대표를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크게 요구한 사항은 없었다는 답변뿐이다. 김종근 대표조차 얼마나 답답했던지 “집이 지어지는 모습이 궁금하지도 않냐”며 제발 현장에 와보라고 다그쳤을 정도다. 물론 김종근 대표는 부부에게 시공 과정을 시기마다 휴대폰 사진으로 전송해주긴 했다. 또한, 부부 입장에서도 목지가에 공사를 맡기기 전에 이미 사전조사를 철저히 마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부는 목지가를 시공업체로 선정하기 전, 김종근 대표가 일본 유학 후 처음 지었던 집부터 최근에 지은 집까지 두루 다니며 집주인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평균 4~5년을 살아온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살아보니 정말 좋다는 것이었다. 사전 데이터를 충분히 수집한 부부는 바로 목지가와 시공 계약을 맺었다. 거실은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멋진 풍광을 살리기 위해 창을 크게 냈다. 천장은 통나무주택의 특성을 살려 서까래를 드러낸 동시에, 벽면은 파벽돌로 마감해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내의 바람대로 넓게 시공한 주방에는 되도록 수납공간을 많이 확보했다. 주방 벽면도 기존 통나무주택과는 달리 타일로 마감해 깔끔하면서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족이 함께 만족하는 공간 부부에게 요구사항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설계 단계에서 자신들의 취향과 바람을살짝 내비쳤다. 집이 들어설 부지가 전망이 좋으므로 최대한 이점을 살려주고, 안방은 몸이 안 좋은 아내를 위해 친환경적으로 시공하기를 원했다. 김종근 대표는 전망을 살리기 위해 사방으로 창을 크게 냈다. 그 덕분에, 부부는 왼편으로 은은하게 흐르는 남한강과 오른편으로 멋스럽게 뻗어있는 양자산 줄기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밤이 되면 남한강 줄기를 따라 뻗은 도로의 가로등이 멋진 야경을 선사한다. 이사 첫날에 안주인은 확 트인 창문 사이로 쏟아져 내린 밤하늘의 별빛에 마음을 빼앗겨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대학 공부 때문에 시화신도시 아파트에 머무는 자녀들이 친구들을 데려와 별장처럼 쓰고 갈 정도다. 자녀들이 친구를 데려올 때마다 마치 교대하듯 시화신도시로 떠밀려 가는 부부지만, 그래도 자녀들이 즐거워하니 그걸로 크게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양평 주택은 통나무로 지었으므로, 전체적으로 친환경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집이다. 아내 사랑이 각별한 남편은 추가로 아내를 위한 선물을 했다. 몸이 안 좋은 아내가 편안한 잠자리에 들수 있도록 안방 전체를 편백나무로 마감 처리한 것이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가 다른 나무에 비해 5배나 많이 방출하고, 항균작용이 뛰어나 진드기 번식을 막아주며, 면역력을 증가시켜 감기 예방에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이 좋지 않은 아내를 위해 안방 벽면과 천장을 모두 편백나무로 마감했다. 편백나무는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다른 나무에 비해 5배나 많이 방출된다. 계단은 거실과 안방, 주방이 연결된 통로 중앙에 위치해 2층으로의 이동이 쉽다. 계단 옆은 스터드 벽면으로 마감해 개방감이 있으면서도 비교적 좁은 계단의 느낌을 상쇄하도록 했다. 2층 거실은 공용 공간이자, 손님방으로 활용 가능한 공간이다. 혹은 아들과 딸 두 사람이 모두 왔을 때 딸은 자녀방에서 자고 아들은 복도에서 잘 수도 있다. 2층은 대학 공부로 바빠 쉽게 찾아오지 못하는 자녀를 위한 공간이므로, 애써 크게 시공하지 않았다. 자녀방은 주변에 큰 건물이 없어 비교적 사생활 보호가 쉬우므로 창을 크게 냈다. 자녀방 안에는 산뜻한 산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는 그네를 설치해 자녀의 편안한 휴식을 도왔다. 시골 인심이 그리워 찾은 곳 집을 소개하던 부부는 서로를 다그치는 듯하면서도 은근히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그런 부부가 양평 세월리에 위치한 전원주택 단지에 집을 장만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50세대를 분양 중인 이 단지 내에는 현재 10여 세대가 들어서 있다. “비록 아직 지역 커뮤니티를 구성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향후에 주민이 더 들어오면 지금보다 활기찬 마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10여 세대의 주민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돌아가면서 고기 파티도 하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나누며 시골 인심을 나누고 있어요.” 사랑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부부가 퇴직할 때 자녀들이 감사패를 직접 만들어서 전달했을 정도로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사랑이 넘친다. 자녀들은 집을 완성하고 난 후에 부부에게 한 번 더 고마움을 표시했었다. 자신들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이처럼 멋진 집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다는 게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뿌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눈이 쌓인 장독대가 보고 싶어 장독대를 손수 만들고 있다는 건축주. 중년의 고개를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그이지만, 여전히 순수한 감성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장독대 사랑은 요리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하는 은근한 마음도 배어 있음을 부부의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원목 데크는 부부와 지인들이 함께 모여 파티를 열 때 노래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라이브 무대로 활용한다. 밤이 되면 은은한 조명 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무대를 은은하게 비춰주므로 음악만 틀어놓으면 금세 분위기에 취한다. 데크 앞에 마련한 식탁에서 바라보는 산자락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축주는 대지 위에 다양한 채소를 심은 텃밭을 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대가 다 들어서지 않은 전원주택 단지의 한 곳을 빌려 제법 큰 규모의 텃밭도 별도로 가꾼다. 이렇게 해서 얻은 수확물은 이웃에게 나눠주며 사람 사는 정을 나누고 있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 www.countryhome.co.kr잡지구독 신청 www.countryhome.co.kr:454/shop/subscription.asp (스마트폰은 현재 무통장 입금 신청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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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전원주택】 통나무에 담아낸 가족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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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 집이 일궈 낸 천혜의 조화 양평 40평 복층 목조주택
-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 자리한 연면적 40평 복층 경량 목조주택. 외벽은 시멘트 사이딩과 이미지 스톤으로 마감하고, 물매 가파른 지붕엔 30년 산 이중 그림자 아스팔트 슁글을 얹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공용공간은 심플하면서 따스하게, 마스터-룸은 화사하면서 고급스럽게 그리고 객실과 작업실은 조용하면서 차분하게 꾸몄다. 동화 속의 풍경 같은 곳에서 아름다운 집을 짓고 오감으로 자연을 만끽하며 사는 사키하라 토시오·강혜숙 부부의 집으로 들어가 보자. 건축정보 ·위 치 :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부 지 면 적 : 212평 ·연 면 적 : 40평(1층 32평, 2층 8평) ·건 축 형 태 : 복층 경량 목조주택(2″×4″) ·외벽마감재 : 시멘트 사이딩+이미지 스톤 ·내벽마감재 : 벽지 ·지 붕 재 : 30년 산 이중 그림자 아스팔트 슁글 ·천 장 재 : 루바+벽지 ·바 닥 재 : 강화마루 ·창 호 재 : 시스템 창호 ·난 방 형 태 : 기름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건 축 비 용 : 평당 350만 원 설계·시공 : 에덴하우징 031-774-3808 www.3808.co.kr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마을 앞을 지나는 냇물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여 냇물에 비치는 달이 몸을 씻는 듯하다고 해서 세월리(洗月里)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강상면 신화리에서 세월리를 거쳐 서남쪽 대석리와 여주군 경계까지 이어지는 6킬로미터 정도 길이를 세월계곡이라고 하는데, 그 주변은 기암괴석과 수풀이 우거지고 잣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세월리 입구에 눈에 띄는 음식점이 있는데, 그 음식점 뒤편으로 난 작을 길을 따라 50미터 정도 올라가면 전원주택 단지와 두 채의 집이 눈에 들어온다. 산뜻하면서 우아한 외관이 돋보이는 집. 일본인 사키하라 토시오(64세)·강혜숙(52세) 부부의 보금자리로 잣나무 군락으로 이뤄진 숲이 옆에 자리해 더욱 눈길을 끈다. 전원에서 노후를 보낼 요량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이들 부부. “여태껏 도심에서만 살다 보니 한적한 시골이 그리웠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전원에서 마음 편히 쉬고 싶었지요. 꽃밭과 텃밭도 가꾸고 싶었고요.” 놀란 가슴 진정시키는데 3년 일본의 토요글래스(주)에 근무하던 사키하라 토시오 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비즈니스 차 대한유리공업(주)(현 두산유리(주))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이후 그는 일 년에 몇 차례씩 영등포구 문래동에 자리한 대한유리공업(주)을 방문하면서 한국과의 정을 쌓아 나갔다. 89년에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강혜숙 씨와 결혼을 했고, 33년간 근무하던 토요글래스(주)에서 정년을 맞은 98년부터는 아예 삶의 터전을 한국으로 옮겼다.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한국에 오면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포근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매년 몇 차례씩 비즈니스 외에 여행 삼아 한국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특히 양평의 빼어난 자연 경관에 푹 빠져 노후를 이곳에서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사키하라 토시오·강혜숙 부부는 양평군 양수리 인근의 빌라에 살면서 전원주택을 지을 준비를 했다. 서두르지는 않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여행 삼아 양평 주변을 둘러보면서 마땅한 부지를 물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를 소스라치게 한 일이 발생했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텔레비전 등의 가전제품까지 쓸 만한 물건을 통째로 훔쳐 가는 싹쓸이 도둑이 든 것이다. 그러한 일이 3년에 걸쳐 세 번이나 발생했다. 이후 전원생활을 포기하기로 했다는 강혜숙 씨. “인적이 뜸하지 않은 곳에 자리한 빌라인데도 도둑이 드는데 한적한 전원주택의 경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자 전원생활이 두려워졌습니다. 만약에 집에 혼자 있는데 도둑과 마주치면 어떡하나… 생각만 해도 끔찍했으니까요.” 강혜숙 씨의 놀란 가슴이 가라앉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 늘 전원을 동경하며 살아온 남편을 위해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고.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끼칩니다. 하지만 전원을 그리워하는 남편을 보니 괜히 죄 짓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전원생활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부부는 예전처럼 다시 전원주택 부지를 보러 다녔다. 그러던 중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갑을빌리지 바로 옆에 개발해 놓은 필지를 보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했다고. “이곳의 자연 환경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바로 옆에 전원주택 단지가 있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서 2005년 7월 212평을 평당 40만 원에 구입하고 곧장 집 지을 준비를 했습니다.” 부지를 마련하자, 이후의 과정은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됐다. 시공사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에덴하우징과 계약을 맺고 목조주택을 짓기로 했다. 부부는 시공사에게 복층으로 하고 방은 세 개로 하되 1층에 두 개, 2층에 한 개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8월 4일 시작한 공사는 10월 10일까지 이어졌다. 동화 같은 집 짓고 자연을 만끽하며 집은 연면적 40평(1층 32평, 2층 8평)평 복층 경량 목조주택으로, 외벽은 시멘트 사이딩과 이미지 스톤으로 마감하고, 물매 가파른 뾰족 지붕엔 이중 그림자 아스팔트 슁글을 얹었다. 나무로 만든 나지막한 흰색 펜스, 대문에서 현관까지 10여 미터 이르는 곡선 모양의 자갈길, 전면에서 우측면까지 덱을 널찍하게 내어 전원주택의 운치를 한껏 돋우었다. 여기에 잣나무 군락이 어우러져 꼭 동화 속의 집을 보는 듯하다. 배치를 보면 대문은 서남향으로 앉히고, 현관은 남쪽으로 냈다. 현관과 같은 방향으로 거실과 주방, 마스터-룸, 2층 작업실을 앉히고, 그 반대편으로 1층 객실과 욕실을 각각 드렸다. 벽체는 2″×4″ 구조재로 골조를 세우고, 그 사이에 인슐레이션(R-19)을 채운 후 안팎으로 OSB 합판을 댔다. 그리고 외벽에는 타이벡을 붙인 후 시멘트 사이딩으로 마감하고, 내벽에는 석고보드를 댄 후 벽지를 발랐다. 지붕은 2″×10″ 장선을 깔고 서까래를 얹은 후 골조 사이에 인슐레이션(R-30)을 채운 후, OSB, 방수 쉬트, 아스팔트 슁글 순으로 시공했다. 바닥은 기초 위에 보일러 시공 후 미장한 다음 강화마루를 깔았다. 현관 쪽의 지붕에는 포치 기능을 겸하는 작은 박공지붕을 덧씌우고 마스터-룸 앞쪽의 덱 위에 2층 발코니를 설치하여 자연스럽게 덱의 활용도를 높였다. 이외에 창호는 캐나다 산 시스템창호를 설치하고, 난방은 기름보일러를 설치했다. 이렇게 짓는 데 소요된 비용은 평당 350만 원, 총 2억 원이 들었다. 내부 평면을 보면, 1층은 부부 중심의 공용공간으로 구성하고, 2층은 작업실로 구획했다. 1층에는 거실, 주방 겸 식당, 욕실이 딸린 마스터-룸, 객실, 화장실을 배치했고, 2층에는 1층 거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가족실과 작업실을 배치했다. 인테리어의 경우 공용공간은 심플하면서 따스하게, 마스터-룸은 화사하면서 고급스럽게 그리고 객실과 작업실은 조용하면서 차분하게 연출했다. 거실과 주방은 베이직과 아이보리 계열의 벽지를 바르고 천장은 루바로 마감했다. 마스터-룸은 골드 톤의 벽지를 바르고 중후한 풍의 가구를 들였다. 건축주 부부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하단다. 가끔 일 때문에 서울로 나가게 되면 탁한 공기에 질려 빨리 돌아오고 싶어진다고. “역시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녹색의 향기가 가득한 전원에서 살다 보니 자연 차분해지고 놀랐던 마음도 안정이 되었습니다. 빛, 바람, 자연의 소리 등을 오감으로 만끽하며 산다는 게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이곳에서 눈앞으로 멀리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철에 따라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는 자연을 감상하는 즐거움이야 말로 이들 부부에게 가장 큰 행복이다.田 글 박창배 기자 / 사진 최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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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 집이 일궈 낸 천혜의 조화 양평 40평 복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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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함께 하는 삶, 양평 43평 경량철골조주택
-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는 시인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수인 이기윤(50) 씨가 전원생활을 위해 새롭게 뿌리내린 곳이다. 본지에 1년 가까이 생동감 있는 전원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세월리로 향하는 기자의 마음은 처음과 같이 설레기만 했다. 양수리를 거쳐 양평대교를 지나 십오 리(6㎞)쯤 지나오자 곤지암·이포 방면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자리 잡은 마을 세월리에 도착했다. 88번 지방도로와 44번 지방도로가 교차하는 곳으로 양자산의 수려함과 남한강의 수줍은 미소가 먼저 객을 맞는다. 근처에는 경치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곳이 많아 연인들과 사진가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이 교수를 만나기로 한 곳은 세월 머리방 앞이다. “세월머리방? 바로 저기지. 지금은 문을 닫았는데……. 가도 아무것도 없어.” “이기윤 교수? 새로 이사온 집? 저기 골목으로 들어가야 될 걸.”이라고 답해준 친절한 아주머니 덕에 초행길이라 더듬거려야했을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 마을 앞을 지나는 냇물이 너무 맑아 달이 그냥 지나지 못하고 몸을 씻고 가 세월리(洗月里)로 전해진다는 아름다운 곳. 이 교수가 이곳을 알게 된 것은 1998년이다. 평소 다산 정약용 선생을 존경해온 터라 육사 문학부 생도들과 함께 봄이면 남양주 능대리에 위치한 정약용 생가와 묘소 참배를 위해 자주 들르던 곳이었는데, 그 해 화가인 후배가 산수유마을로 이사를 했고 그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능대리를 거쳐 도립리로 가야 했다. 바로 도립리로 가는 길 중간에 세월 리가 위치한다. 그 첫 만남에 반해 이곳에 뿌리내릴 결심을 했다. 청송 심씨의 집성촌인 마을에는 현재 213세대 500여 명이 살고 있으며 단일동네로는 양평에서 제일 크다. 이 교수는 지난해 7월, 농가주택과 함께 부지 165평을 매입하고 백색의 집을 얹혔다. 9월까지 트럭 100대 분량의 흘과 돌을 쌓고, 집짓기는 10월부터 그 이듬해 3월까지 이어졌다. 공사가 한창이던 10월부터 12월까지 추운 날씨로 인한 시멘트 양생의 어려움으로 진통을 겪기도 했다. 농민들의 삶 속에 동화된 집 건축당시 부인 김영희(49) 씨는 집을 2층으로 얹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전원생활을 계획하고 전원으로 이주한 사람 중에는 농민들의 삶 속에 동화되지 못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현대인들의 주거생활을 살펴보면 생활 할 수 있는 최소 공간으로 묶여 이웃끼리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시골을 보면 형태적으로는 떨어져 있으나, 열린 공간에서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집을 2층으로 얹는 것은 경관을 확보한다는 지배욕이 앞서는 개인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건축의 구조는 43평의 주거동과 10평의 별도 건물로 구분된다. 별도의 건물은 현재 상경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부인 김 씨를 위한 화실이다. 주거동의 실내 구조는 현관입구를 기준으로 우측으로 방, 좌측으로는 거실로 구성돼 있다. 부부침실과 자녀 방이 욕실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주방의 조리대 부분이 거실과 벽을 두고 있어 분리된 공간으로 독립성을 갖는다. 주방 건너편에는 서재가 있고 넓은 창을 통해 안개 피어나는 배밭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다용도실과 보일러실이 별도로 구성돼 있다. 화실은 부인을 위한 독립된 공간으로 꾸몄다. 화장실과 간이 주방이 준비돼 있고 벽면 상단이 유리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책상을 만들어 마을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한다. 또 해마다 열리는 한일작가 교류전에 참가하며 문화의 발전과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옛 집과 같이 아궁이를 쓸 수 없으니 건축당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난방이다. 넓은 창이 많지만 겨울을 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를 이용한다. 식수는 1984년 개통된 마을 간이상수도를 이용하고 있다. 다랫골의 맨 위 양자산 줄기에서 시작되는 이 물은 매끈한 온천과 같고 단맛이 혀끝을 감돈다. 집 앞 키 큰 나무 위에 지은 까치집에 찾아든 까치의 울음소리가 정답고 평화로운 세월리. 그 안에서 자연훼손을 걱정하며 자연을 아끼고 걱정하는 이 교수의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돈다. “자연에 순응하는 집을 짓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과제”라고. 떠나가는 사람들, 떠나온 사람들 이 교수의 가족들은 육군사관학교 관사 아파트에서 23년 간 생활했다. 때문에 그의 큰아들 상훈(24)이 아버지와 같은 육군사관생도의 길을 지원했을 때는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간의 기초 군사훈련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이 교수의 눈빛에서 단단한 부성애가 전해졌다. 둘째 아들 상섭(22)은 현재 대학교에 다니며 주말이면 어김없이 세월리를 찾는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전원으로 이사 온 가족이 있다. 3년 간 자신의 집을 손수 짓고 있는 임철승 씨가 바로 그다. 이 교수의 전원일기 주제가 되기도 했지만 세월리를 향한 그와 가족들의 결심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그의 사랑스런 두 아이 동형, 동완이 형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게 먼발치로 뵌다. 간식 먹을 시간도 없이 학원가방을 바꿔들고 서둘러 집을 나서는 도시의 아이들과 달리 주위를 관찰하고 이야기하며 여유로운 걸음을 걷는 아이들의 미소가 행복해 보였다. “참교육이란 이런 거겠지…….”혼자 중얼거려 본다. “우리 동네는 텃세가 없다”고 말하며 외지인과 화합해야 마을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마을 이장 심재준 씨. 까치가 울기 전, 이른 아침부터 어김없이 “아‥ 아‥ 마을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로 시작되는 낭랑한 이장님의 마을방송은 주민들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골사람들 나름대로의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의 통솔력과 현명함으로 원만한 해결을 얻는다고. 한길에는 동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알 수는 없었으나 심익보, 심재욱 부자의 미소를 본 듯하고, 마을일이라면 언제나 앞장서 일하는 세월리 청년 심용보 씨의 예쁜 결혼소망이 이뤄지길 희망하며, 동네 슈퍼 주인 내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듯한 착각이 든다.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역사의 등뼈를 베개 삼고, 마음 어른들과 주민들이 보내주는 따뜻하고 정겨운 인심을 이불 삼아 전원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겠노라”는 이 교수의 굳은 다짐을 엿보고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즐겁고 뿌듯하기만 하다.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 정보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가평읍 금대리 건축형태 : 경량철골조주택 대지면적 : 165평 건축면적 : 본관 43평 + 화실 10평 외벽마감 : 시멘트 사이딩 내벽마감 : 실크벽지 천장마감 : 실크벽지 난 방 : 심야전기보일러 지붕마감 : 아스팔트슁글 식수공급 : 간이 상수도 건 축 비 : 평당 230만 원 조경비용 : 2000만 원 ■ 설계 : 토우건축사사무소 (031-774-0545) ■ 시공 : 융성건업 (011-320-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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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함께 하는 삶, 양평 43평 경량철골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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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밴쿠버빌리지, 캐나다식 39평 목조주택
- 주말의 쉼터 양평 밴쿠버빌리지, 캐나다식 39평 목조주택 이 집은 2″×6″와 2″×4″ 혼합형 1층 목조주택으로, 외부는 2″×6″이고 내부는 차음을 위하여 2″×6″와 2″×4″ 이중으로 마감하였다. 지붕을 이루는 트러스(Truss)는 캐나다 현지에서 구조계산을 거쳐 제작한 것을 들여왔다. 거실의 경우 트임형 트러스 구조에다 루바로 마감했는데 확 트인 느낌을 들게 한다. 전면창은 창틀에 집성목을 사용하여 두세 개의 슈퍼윈도우를 연이어 올림으로써 채광 효과는 물론 해방감마저 준다. 또한 거실보다 60센티미터 정도 높게 4∼5평짜리 3개의 침실을 일직선에 배치함으로써 거실문화를 강조하였다. 여기에 높은 창(Clerestory Windows)을 통하여 주방과 식당에 밝은 빛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물이 맑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경기도 양평군 세월리(洗月里)에 위치한 캐나다식 목조주택 단지인 밴쿠버빌리지(Vancouver Village). 세계적인 목조주택 전문회사인 캐나다 바이스로이(Viceroy)사가 시공한 전원주택단지다. 바이스로이는 구조재와 창호시스템, 실내·외 도어, 사이딩, 내·외장재 등을 자체 공장의 최첨단 시설에서 직접 가공 생산하여 각 부문별 패키지로 공급하는 회사다. 양평 밴쿠버빌리지는 바이스로이사 제품을 패키지로 들여와 목조주택을 1000여 가구 이상 지은 경험 많은 캐나다의 목수들이 직접 시공하였다. 총 27가구 가운데 4가구를 우선 분양 중인데, 작년 10월 중순 심명섭 씨(42세) 가족이 주말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 목조주택, 튼튼하고 구조변경 쉬워 선택 외국인회사 한국지사장인 심명섭 씨는 미국에서 20여 년 살다가 1999년에 영구 귀국하였다. 미국에서도 1950년대에 지은 목조주택에서 살았는데 다른 형태의 주택에 비하여 안락했다고 한다. “목조주택이 콘크리트주택에 비하여 몸에 좋다는 건 익히 아는 얘기죠. 저는 목조주택에 살면서 지진 등에 의한 붕괴 위험이 적고 우풍(外風)이 없어 에너지 효율이 높으며, 구조변경이 쉽다는 게 무엇보다 맘에 들었어요. 내구 연한도 시공만 제대로 하면 200년은 거뜬하게 견디죠.” 다만 문화가 다른 탓에 국내에서는 바닥을 제외한 내·외벽과 지붕만 목조로 짓는 것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미국에서 살던 집은 바닥이 지면에서 떠 있는 목조이다 보니 상·하수도에 이르기까지 구조변경이 훨씬 쉬웠다고 한다. 심명섭 씨가 밴쿠버빌리지에 주말주택을 마련한 계기는 양평의 알프스로 통하는 세월리의 수려한 경관과 목조주택으로 지어졌다는 점 때문이다. “단지 앞으로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과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산에 마음을 빼앗겼죠. 더욱이 목조주택인 것을 알고는 친근감이 들어 마음을 정하는 데 주저치 않았습니다.” 그는 주5일 근무제가 일반화 된 외국인회사에 다니다 보니, 주말이면 늘 가족과 함께 전원을 찾곤 했다. 주로 펜션에서 묵었는데, 이는 아파트와 별 다를 게 없는 콘도에서 묵을 바에야 뭐 하러 전원을 찾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가 주말마다 펜션을 찾을 게 아니라, 아예 전원에 내 집을 짓고 안주하자는 마음에 밴쿠버빌리지를 찾은 것이다. 현재는 주말주택으로만 사용하고 있는데, 첫째인 승민(초등학교 4학년)이가 외국인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 이 집은 2″×6″와 2″×4″ 혼합형 1층 목조주택으로, 외부는 2″×6″이고 내부는 차음을 위하여 2″×6″와 2″×4″ 이중으로 마감하였다. 지붕을 이루는 트러스(Truss)는 캐나다 현지에서 구조계산을 거쳐 제작한 것을 들여왔다. 거실의 경우 트임형 트러스 구조에다 루바로 마감했는데 확 트인 느낌을 들게 한다. 전면창은 창틀에 집성목을 사용하여 두세 개의 슈퍼윈도우를 연이어 올림으로써 채광 효과는 물론 해방감마저 준다. 또한 거실보다 60센티미터 정도 높게 4∼5평짜리 3개의 침실을 일직선에 배치함으로써 거실문화를 강조하였다. 여기에 높은 창(Clerestory Windows)을 통하여 주방과 식당에 밝은 빛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심명섭 씨는 “몇 달 전 단지를 빽빽하게 에워싼 침엽수림이 드문드문 잘려나가 실망이 컸는데, 알고 보니 국유림을 간벌(間伐)하는 것으로 안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면서 “맑은 물과 원시림 여기에 순박한 마을주민들까지 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 캐나다 목조주택 시스템 캐나다 주택의 대부분은 목구조로, 연간 새로 공급되는 주택 중 75퍼센트가 단독주택이며 현장 조립 방식이다. 캐나다는 세계 임산물(林産物) 수출시장의 19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 남서부의 밴쿠버가 목조주택 산업의 중심도시로, 우리나라에 반입되는 캐나다산 목조주택 자재의 90퍼센트 정도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캐나다식 목조주택 시스템은 ‘프리-엔지니어드(Pre- Engineered)’ 또는 ‘프리-컷 홈(Pre-Cut Homes)’, ‘패널식 목조주택(Panelized Wood Housing)’, ‘투 바이 포 목조주택(2″×4″ Wood Frame Housing)’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러한 명칭에 상관없이 200년이 넘는 캐나다 목조주택 시스템은 견고한 구조, 높은 에너지 효율, 신속한 시공, 압출(壓出) 성형 등의 장점으로 인하여 전 세계 주택시장에서 점유율을 급속히 높여가고 있다. 설계에 있어 고도의 구조적 성능을 발휘하도록 한 게 특징이다. 따라서 횡하중에 대한 저항성이 높으면서도 가볍고, 근본적인 하중 분산 및 지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장점은 규격이 큰 목재의 필요성을 없애고 설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또한 세심하게 설계한 주택의 높은 단열성으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였다. 이라크에 전운이 감돌면서 세계적으로 고유가 및 고에너지 비용 시대에 직면했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높은 단열성은 낮은 에너지 효율을 가진 주택에 비하여 냉·난방비 부담면에서 상당한 절감 효과가 있다. 캐나다 목조주택 시스템은 구조재, 창호, 지붕 트러스(Truss) 등 건물의 외피(Building envelope) 모두 즉시 조립이 가능한 패키지로 제작하여 제공하므로 시공 과정이 매우 단순하고 신속하다. 더욱이 연간 4만 채의 목조주택을 공급하는 바이스로이(Viceroy) 등 일부 업체에서는 주방가구, 도어, 계단 등 일련의 마감재도 함께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총 공사기간을 약 3개월로 단축하였다. 田 ■ 글 윤홍로·사진 이혜연 기자 * 캐나다 목조주택의 구조 * 쪾마루 장선 - 인공 건조된 규격 목재를 사용하고 덮개용 합판의 규격은 4″×8″이다. 쪾지붕 구조 - 고품질의 규격재를 사용하므로 구조적으로 우수하다. 서까래 틀은 사전에 절단되어 공급되며, 조립의 편의를 위하여 레이블이 부착되어 있다. 쪾외벽 구조 - 외벽은 현장에서 간편하고 편리하게 시공하도록 2″×4″ 또는 2″×6″로 제작한다. 쪾단 열재 - 고품질의 파이버글라스 단열재를 외벽, 마루, 지붕 등의 구조에 사용한다. 6밀리미터의 폴리에틸렌 방수 시트가 습기를 완전하게 차단한다. 쪾외부 도어 - 표준 외부 도어는 코어(Core)가 단열재이고 웨더스트립, 알루미늄 재질의 문턱이 부착된 에너지 절약형 스틸 클 래드 도어이다. 쪾내부 도어 - 콜로니얼 중공형 도어로 백색으로 도장되어 있다. 쪾창호 - 고품질의 슈퍼 윈도우를 사용한다. 유지 관리가 필요 없는 실용적인 PVC 창문은 아름다움과 단열 효과가 뛰어나다.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건축형태 : 캐나다식 목조주택 ·건축면적 : 39평 ·대지면적 : 300평 ·구 조 재 : 외·내벽 2″×6″, 내벽 2″×6″, 침실 (2″×4″)×(2″×6″) ·내부마감 : 석고보드 후, 벽지마감 ·지붕마감 : 4각 아스팔트싱글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난방시설 : 기름보일러 ·바닥마감 : 원목 온돌마루 ·건 축 비 : 평당 300만원 ■ 시공 : 바이스로이 e-m 하우징 02)-555-1176 ■ 분양문의 : (주)Just Korea (011-9772-7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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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인테리어
- 전원&단독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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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밴쿠버빌리지, 캐나다식 39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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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거실창 인상적인 50평 통나무주택
- 통나무로 지은 집 탁 트인 거실창 인상적인 50평 통나무주택 이 집은 현관과 연계해 포치를 만들어 내부와 외부 생활이 자연스럽게 연계되고, 베란다를 크게 배치하여 마당과 마당 넘어 텃밭까지 자연스럽게 조망할 수 있다. 또 거실에 들어서면 반팔각의 거실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천장까지 오픈 처리하여 탁 트인 시원한 공간을 연출한다. 사용된 통나무는 지름 180mm의 미국산 더글러스퍼이며, 내벽은 루버(폰데로사 파인), 바닥재는 오크 온돌마루가 놓여졌다. 단열재는 스티로폼과 글라스울이 부분적으로 함께 쓰였고, 난방은 심야전기 보일러와 기름보일러를 겸하고 있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한동안 통나무주택 바람이 불었었다. 당시 '전원주택'이란 개념이 막 생겨났던 터라 전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통나무주택은 그야말로 매력적인 주택 유형이었다.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있던 만큼 통나무주택은 건강, 운치, 자연과의 조화로움까지 동시에 채워주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손남순씨 역시 그러한 통나무 주택의 매력에 반해 이 집을 구입했다.손남순씨 댁은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강변에 위치해 있다. 서너 세대의 통나무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규모의 단지로 손씨댁은 단지로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집이다. 이 집은 95년 지어진 통나무주택으로 대지 2백평에 건평은 50평이며 건축 완료 이듬해인 96년 3억원을 주고 일괄 구입했다. 지금이야 다소 흔해 졌지만 넓고 시원하게 탁 트인 거실과 번쩍 들린 전면의 처마가 당시엔 무척이나 웅장하고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당시 한참 주가가 오르던 양평이란 동네인데다 물가 가까운 곳에 지어진 통나무집이었으니 손씨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후로 6년이 지났지만 이 집은 주변의 어느 집보다 윤기가 흐른다.그동안 관리를 잘해 외관상 6년이 지났다는 인상을 받기 어려우며 지금은 마당의 잔디와 조경까지 잘 가꿔져 오히려 더 짜임새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건축물 자체도 만족스럽다. 현관과 연계되도록 포치를 만들어 내부와 외부 생활이 자연스럽게 연계되고, 베란다를 크게 배치하여 마당과 마당 넘어 텃밭까지 자연스럽게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내부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거실에 들어서면 반팔각의 넓은 거실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천장까지 오픈 처리하여 탁 트인 시원한 공간을 연출한다.실내 구조는 1층이 방과 거실, 주방, 식당, 화장실, 다용도실, 보일러실로 꾸며져 있고, 2층엔 작은 거실 한 쪽에 방 2개와 화장실을 두었다. 거실쪽을 오픈 처리하여 2층에서도 1층 거실창을 통해 전면을 조망할 수 있다.이 집에 사용된 통나무는 지름 180mm의 미국산 더글러스퍼이며, 내벽은 루버(폰데로사 파인), 바닥재는 오크 온돌마루가 놓여졌다. 단열재는 스티로폼과 글라스울이 부분적으로 함께 쓰였고,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와 기름보일러를 겸하고 있다. 사실 손순남씨의 전원생활은 이 번이 처음은 아니다. 애초엔 경기도 성남의 단독주택에서 살았었고, 이후 경기도 광주 곤지암쪽으로 터전을 옮겨 남들보다 먼전 전원생활에 눈을 뜨고 빨리 시작했다.그러나 곤지암에서의 전원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개발 열기에 휩싸여 공장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주거지로는 마땅치 않은 환경으로 급변했다. 떠나기로 마음을 굳히고 이후 찾은 곳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통나무 주택이다.지금까지 5년을 살았지만 이 곳에서의 생활은 나무랄데 없다. 잘 가꿔진 마당이 있고 텃밭이 있고 주변환경도 매우 조용한 편이다. 가까이 이웃들이 있고 가끔 놀러 오는 자식들이 있으니 적적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다만 아쉬운건 적은 가족수에 비해 집의 규모가 크다는 점인데, 이것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잡초를 뽑는 손씨의 손길이 더욱 바빠 보인다. 田 ■ 글·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위치: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부지면적: 대지 2백평 건물형태: 2층 통나무 주택 건축면적: 50평(1층 32평, 2층 18평) 건축연도: 95년(구입해 입주한 연도는 96년) 구입금액: 3억원(96년 대지 2백평, 주택 50평 일괄구입) 실내구조: 1층- 거실, 주방, 식당, 안방, 화장실 2, 다용도실, 보일러실2층- 방 2, 소거실, 화장실 벽체구조: 지름 180mm 통나무(미국산 더글러스퍼) 내부마감: 루버(폰데로사 파인) 창호재: 우드컬러 알루미늄 및 원목 이중창 단열재: 스티로폼, 글라스울 바닥재: 오크 온돌마루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기름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건축비: 평당 3백80만원(95년 건축당시 금액)■ 설계 및 시공: 풍산우드홈 031-769-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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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거실창 인상적인 50평 통나무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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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가까우면서도 개발은 한산 IMF이후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 많아
- 1 여주 수도권 가까우면서도 개발은 한산 IMF이후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 많아 -------------------------------------------------------------------------------- 서울로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좀 먼 지역이지만 굳이 매일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면서 서울과의 접근성이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거쳐를 옮겨 전원주택을 짓고 살아도 불편함이 전혀 없는 지역이 바로 여주다.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개발에서 밀려있어 가격이 좀 낮은 편이다. 그런 이유로 IMF이후 상대적으로 수요자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 남한강을 끼고 대체로 산세가 낮으며 들판이 넓은 여주군은 농사와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농가가 많고 신륵사국민관광지, 영릉, 효종릉 등의 유적, 그리고 도자기의 산지로 유명하다. 영동고속도로가 여주를 지나고 있으며 수원-여주-원주를 잇는 42번 국도가 4차선으로 확포장 되었고 양평-여주를 거쳐 장호원으로 빠지는 37번 국도도 여주를 지나고 있다. 이천-여주간 4차선 국도 등의 도로망이 발달하여 타 도시간의 교통연계성이 뛰어난 중부내륙지방의 교통요충지다. 서울로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좀 먼 지역이지만 굳이 매일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면서 서울과의 접근성이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여주로 거쳐를 옮겨 전원주택을 짓고 살아도 불편함이 전혀 없을 것이다. 특히 이곳은 팔당호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으로 신설공장의 규모와 종류가 제한돼 있어 대규모 산업시설이 거의 없고 타 시군에 비해 오염이 덜 되어 있어 산업기반시설이 발달돼 있지 않아 인구증가도 더디다. 한마디로 수도권의 개발권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전형적인 농촌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주거환경은 좋은 지역이다. IMF이전까지 전원주택바람을 거의 타지 않았으며 단지개발도 늦게 시작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권의 다른 지역에 비해 땅값이 싼 전원주택지들이 많아 IMF가 시작되면서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역이다. 여주군내에서 전원주택지로 선호되는 지역은 광주군과 양평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북면과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금사면, 흥천면, 북내면, 강천면, 여주읍 인근지역들이다. 여주읍 여주읍과 가까이 있는 상리와 매룡리, 연양리, 신률리 등은 영동고속도로의 진입이 쉬워 교통이 편리함은 물론 읍내의 문화, 의료시설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어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높다. 특히 인근에 영릉을 비롯 신륵사 등 관광지가 있으며 여주 컨트리클럽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곳 상리의 경우 지가가 매우 높은데 1급지 대지의 경우 평당 70만원, 준농림지 1급지의 경우 평당 25만원선이다. 그외 매룡리, 연양리, 신률리 등지의 경우 대지가 20만~40만원선이고 준농림지의 경우 10만~15만원정도다. 가남면 3번 산업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으로 경관을 크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전형적인 농촌풍경을 잘 간직하고 있어 전원환경이 좋다. 특히 농장이나 과수원을 하기에 적합한 지형이 많아 귀농을 위한 토지의 거래가 많은 곳이다. 4차선 도로의 주변에는 30만~40만원을 호가하는 땅도 있지만 큰길을 벗어나 지방도로에 접한 농지나 임야의 가격이 아직은 싼 편이다. 큰 도로에서 벗어난 지방도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주변 준농림지역 농지를 5만~6만원 선에서도 구할 수 있다. 강천면 여주읍에서 신륵사를 지나 강원도 문막으로 가는 42번 도로변으로부터 강천면이 시작된다. 강원도와의 접경지역이라 서울서 다소 먼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현재 여주~문막간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교통은 훨씬 좋아 질 것으로 보인다. 강천면에서 남한강을 끼고 있는 가야리, 적금리, 굴암리, 강천리 등의 지역들은 강변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전원주택지가 상당히 많다. 강을 볼 수 있는 지역과 강이 보이지 않는 지역에 따라 가격편차가 심한데 강이 보이는 준농림지역의 농지는 10만~15만원선, 대지는 20만~30만원선에 거래가 되고있다. 도로가 외지거나 강이 보이지 않은 지역의 농지는 4만~5만원으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금사면 양평군 강상면, 광주군 실촌면과 경계가 접한 금사면 지역은 여주군에서는 서울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전북리, 금사리, 외평리, 이포리 등은 여주지역에서 가장 서울과 가깝고 특히 강을 끼고 있어 전망이 좋아 오래전부터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이러한 인기 덕분에 가격이 상당히 높게 형성되어 있다. 대지의 시세는 40만~50만원, 준농림지역의 농지는 30만~4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대신 도곡리, 소유리, 하호리, 장흥리 등의 지역은 10만~15만원 정도에 괜찮은 전원주택지를 구할 수 있다. 능서면 이천-여주간 4차선도로 양측의 능서면은 4차선도로의 개통이후 상당히 가격이 오른 지역으로 도로변과 그 외 지역과의 토지가격 차이가 상당히 크다. 대로변은 준농림의 농지도 50만~60만원을 호가하고 있지만 큰길에서 좀 더 들어가면 4만~5만원대의 준농림지도 더러 있다. 이곳 지역은 갑자기 가격이 상승한 지역이라 가격상승에 편승하지 못하고 예전 가격인 지역도 더러 있어 눈여겨 보면 주변시세보다 훨씬 싼값에 전원주택지를 구할 수 있다. 대신면 양평-여주간 37번 국도를 이용하거나 양평군 강하면 세월리를 거쳐 이포대교를 이용할 수 있는 대신면은 교통이 편리하고 강을 끼고 있어 경관이 좋다. 천서리의 막국수촌과 전지역에 산재한 도자기촌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서울의 전원주택 수요자들뿐만 아니라 드라이브객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토지가격도 만만치 않다. 준농림지는 평당 20만~30만원, 대지는 40만~5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으며 현재 4차선으로 확장중인 37번 국도의 도로공사가 끝나면 토지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큰 지역이라 투자이익도 노려볼만 하다. 이곳 당산리와 백석리 주변에는 군용 비행장이 있어 전투기 이착륙때 소음이 심한 지역이 있으므로 이곳의 토지를 구입할 때는 평일에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북내면 신륵사에서 양평쪽으로 빠지는 331번 지방도로를 따라 북내면이 이어지는데 오염되지 않은 하천이 흐르는 조용하고 아늑한 환경으로 전원주택지로 권할만한 곳이 많다. 특히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도전리 지역은 산들로 갖혀 있어 매우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경관은 좋고 가격은 낮아 입소문을 통해 전원주택을 지어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최근들어 주변의 시세와 차이가 없다. 대지의 시세는 25만~30만원선, 준농림지역의 농지는 보통 10만~15만원정도고 4만~5만원 정도에서도 매물이 있다. 산북면 여주군이면서도 양평군과 광주군 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으로 양평을 거치거나 곤지암에서 양평으로 가는 44번 지방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으로 지가는 광주나 양평과 비등해 매우 높은 지역이다. 특히 이곳 양자산의 동남쪽으로 하품리와 백자리 지역의 계곡이 물도 맑고 전원주택지로 좋은 땅들이 많은데 토지의 가격이 아주 높은 지역이다. 이들지역에서는 준농림지역 농지도 20만~30만원의 시세를 보이고 있고 대지는 50만원에서도 매물이 귀하다. 점동면 여주읍에서 남쪽 장호원으로 가는 37번 국도를 따라 5분 거리인 점동면은 거리감 때문인지 아직도 토지가격이 상당히 낮은 지역이다.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등 3도의 경계점이 모였다 하여 이름 붙여진 청미천 주변의 삼합리와 장안리 등지가 경치가 좋아 주변 지역보다 가격도 다소 높은 편이다. 점동면 전체를 보면 농지의 가격은 5만~6만원선, 대지는 15만~20만원선에서 형성돼 있다. 흥천면 이천-여주간 4차선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여주에서 비교적 가격이 낮은 지역이다.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군용 비행장이 있는 대신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만큼 비행장 주변의 소음이 심한 지역은 피해야 하는 것이 좋다. 이곳 지가는 대지의 경우 평당 20만~35만원정도며 준농림지는 5만~15만원수준이다. 여주군 추천매물 (자료제공·시골정보센터 02-412-4141) 소 재 지 면 적 가 격 특 기 사 항 강천면 가야리 대150평 4,000만원 구옥1동, 남향, 텃밭 버스정류장 3분거리 산북면 백자리 전338평 6,500만원 준농림지역, 전용허가득, 경관 좋음 곤지암 10분, 주변 전원주택 다수 산북면 용담리 전720평 1억5,000만원 전용허가득, 뒤로 산, 곤지암 15분, 밤나무 산북면 백자리 대,전420평 1억7,000만원 뒤로 산, 포장도로, 밤나무, 구옥 전원주택 다수, 곤지암 15분 산북면 상품리 대140평 1억6,000만원 신축건물40평, 개울접, 20세대단지내 국도에서 200m 북내면 외룡리 답625평 평당6만원 준농림지역, 도로접, 개울접, 남향, 마을에서 600m 여주읍 연라리 대200,전826평 평당6만원 1억7,000만원 주택 50평, 준농림지역, 뒤로 산, 남향, 여주읍내 2Km 흥천면 귀백리 대166평 3,000만원 폐농가 1동, 남향, 10여호의 마을 마당에 큰 느티나무 있음 흥천면 율극리 임야870평 평당11만원 토임, 2차선포장도로접,이천I.C10분 곤지암10분,야적장 및 공장용지 적합 여주의 전원주택 단지 연라리 전원마을 여주읍 연라리에서 현재 한창 개발중인 전원주택단지 ‘연라리전원마을’은 주변 토지시세에 비교해 분양가가 매우 저렴하다. 대지의 평당 분양가는 25만~28만원이며 건축을 원할 경우 조적조는 평당 2백20만원, 스틸하우스는 평당 2백40만원에 지어주고 있다. 주변에 30만원이하인 대지를 찾아보기 힘들며 강이 보이는 지역은 6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부지의 총 면적은 약 1만8백평이며 총 55개 필지로 나누어져 개별등기가 돼 있다. 필지별 면적은 1백30평~2백50평으로 다양하다. 여주읍에서 331번 지방도 가남방면으로 약 3.4㎞ 지점, 여주나들목에서 7분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연화산 서쪽 자락 정남향에 위치해 있다. 주위에 남한강과 신륵사, 영릉, 목아박물관 등의 관광명소와 여주CC, 금강CC 등 10여개의 골프장이 있다. 단지에서 1㎞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다. 연라리 전원마을 현장에서 만난 이규현 이사는 “최고 품질의 전원주택을 최저가격으로 분양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분양받는 즉시 개별 분할등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 연라리전원마을 0337-882-9720 글·김경래 / 도움말·김태기(전원주택사업자협회회장, 02-557-7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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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가까우면서도 개발은 한산 IMF이후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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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국도 진입 편리성, 한강 조망권이 가격 좌우
- 연속기획·국도따라 전원주택따라 즇 서울에서 속초까지 1. 양평 신설국도 진입 편리성, 한강 조망권이 가격 좌우 -------------------------------------------------------------------------------- 양평을 찾는 전원주택 수요자들의 발길이 최근들어 많아져 달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실거래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IMF로 입맛들이 많이 까다로워져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발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에 대한 불신이 많아 형성가격의 반가격에 흥정을 하려하는 수요자들도 많다. 그러나 지금 양평지역의 전원주택지는 IMF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하였기 때문에 이런 가격의 매물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곳 부동산업계의 이야기다. -------------------------------------------------------------------------------- 전국의 전원주택지 중 IMF의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곳이 양평지역일 것이다. 전원주택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용인, 광주를 지난 전원주택 불길이 양평에서 한창 치솟아 오르고 있을 때 IMF의 폭우를 만나 중도에서 사그라 들었다. 그렇게 추락했던 양평이 최근들어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이곳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여름을 접어들면서 찾는 발길이 많아졌다며 분위기를 전한다. 전원주택 실수요자들 보다는 소액투자를 목적으로 한 발길이 늘어 도로개통 여부, 개발계획 등 관련내용을 깐깐히 훑어보고 있어 아직은 입맛이 매우 까다롭다. 서울에서 양평으로 빠지는 6번 국도는 양평읍에서 44번 국도를 만나 양양까지 간다. 양평지역에서 국도를 따라 반경 4㎞에서는 대심리, 국수리 등이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높다. 6번 국도가 팔당에서 양평까지 관통되기 전에는 양수리 인근 지역이 인기있었으나 지금은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새로 개통된 도로가 이들 지역을 우회해 가기 때문이다. 양평지역의 특징은 신설국도 진입 펀리성과 북한강과 남한강의 조망권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양서면 지역 국도가 관통해 가는 양서면 지역은 양평에서도 전원주택 붐이 일찍 불기 시작한 곳이다. 현재의 교통상황에서 볼 때 국도가 확포장 개통되기 전인 98년과 비교, 서울 강남에서 진입시간이 1시간이상 단축되었다. 국수·청계권의 경우 주변이 청계산을 비롯해 중미산, 유명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지역적으로 협소한데다 이미 전원주택지로 활발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대규모 전원주택단지의 조성은 어려운 편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산과 작은 계곡, 분지형 들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격은 준농림지 농지가 평당 20만~30만원, 전용허가를 득한 농지가 25만~30만원대다. 대심·복포권은 전원주택지라기보다는 별장형 전원지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남한강과 인접해 강과 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양평지역에서 강을 조망하면서 남향인 유일한 강변전원지로 지가가 매우 고가다. 고급전원주택단지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준농림지가 평당 35만~70만원, 허가를 득한 곳은 지역에 따라 50만~2백50만원까지를 호가한다. 서종면 지역 북한강 유역이 개발제한에 묶이기 전인 95년부터 전원주택지로 성가를 높이고 있었으나 신설국도가 양수리를 우회함으로써 도로개통의 덕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상대적으로는 손해를 보고 있는 지역이다. 북한강을 보고 있는 동향의 택지와 넓은 계곡 인근의 산지가 특징으로 수목이 울창한 곳이 많아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높다. 인근 국수·청계권과 비교해 서울에서 진입하는 도로가 좋지 않으나 실제로는 서울 강남에서 약 45분~1시간 20분이면 진입이 가능하다. 지역조건에 따라 가격 편차가 심하나 준농림지가 15만~40만원, 전용허가를 득한 것은 35만~60만원대다. 특히 이곳은 카페나 가든 등으로 개발된 곳이 많아 진입로 부근에서 주거지로서의 아늑함은 많이 훼손돼 있다. 옥천면 지역 옥천면지역의 경우 용천·신복리권의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전원주택지가 형성돼 가고 있으나 신설국도가 옥천면의 외곽을 우회하고 있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인근 유명산과 사나사 등 관광지가 있으며 한화리조트가 있어 일찍이 서울 근교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다. 서울 강남에서 약 50분~1시간 10분정도 걸린다. 준농림이 10만~30만원, 허가를 득한 택지의 경우 25만~44만원선이다. 양평읍·용문면 지역 양평읍에서 용문면에 이르는 국도구간은 산악지를 관통한다. 신설국도의 영향이 별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양평읍에서 가장 인기있는 지역은 신설국도에서 진입성이 좋은 오빈리 지역으로 준농림지가 평당 25만원, 전용허가를 득한 곳이 30만~50만원선이다. 양평에서 양서면 다음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용문권은 서울진입이 예전에 비해 매우 쉬워져 꾸준한 가격상승을 보이고 있는 지역이다. 준농림지가 평당 10만~30만원, 전용을 득한 곳이 25만~50만원선에서 가격이 형성돼 있다. 이들 가격은 용문산의 조망권과 신설국도에서의 진입편리성에 의해 결정된다. 강상·강하면 지역 신설국도의 개통으로 많은 이익을 본 곳이 강상면 지역이다. 세월리의 경우 강과 인접해 있는 농지가 평당 25만원대고 계곡에 조성중인 전원주택지는 분양가가 평당 60만원선이다. 서울진입이 1시간대로 비교적 교통여건이 좋지만 인근 곤지암 등의 영향으로 가격대는 일정수준에 머물러 있다. 강하면의 경우 신설국도의 개통으로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다. IMF에 의한 가격하락 후 회복이 더딘 지역으로 준농림지가 10만~15만원, 택지가 25만~45만원대에서 가격이 형성돼 있다. 기타지역 양평-여주간 국도상에 위치해 있는 개군면의 가격대는 평당 5만~15만원선으로 IMF이전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강을 접하고 있는 택지도 가격차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신설국도에서 30분대로 현재 교통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지않은 지제면 지역은 한가한 전원주택지를 찾는 수요자라면 눈독을 들여볼만 하다. 깊은 산과 계곡으로 전원주택지로서 환경을 잘 갖추고 있으나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특히 중앙선 전철 복선화가 조기에 이루어질 경우 구든역을 중심으로 하는 일신리권이 유망하다. 가격은 준농림지가 6만~12만원이고 허가를 득한 곳이 10만~20만원선이다. 단월·청운·양동권에서 신설국도 인근 전원주택지로 개발이 가능한 곳은 광탄과 용두리 일대다. 이들지역의 가역은 평당 2만~10만원선이다. 田 글·사진 / 김경래 현장분석 상록수공인중개사사무소 박화서 대표가 말하는 “양평” 전원주택형 베드타운으로 변모 양평군은 수도권의 주 상수원인 팔당호를 안고 있어 주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환경오염과 관련된 개발은 일체 불허돼 왔다. 더욱이 금년도 9월부터 시행예정인 일명 한강법에 의해 더욱 개발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수도권에서 강원도(설악, 동해권)로 진입하는 국도의 확포장 및 신설로 인해 서울 강남권과 동부권 진입이 용이해져 그간 용인이나 파주 등 서울의 서북부, 서남부권에 비해 인지도나 호감도에서 밀리던 약점을 많이 회복하고 있다. 또한 개발이 억제됨으로써 개발위주의 타지역에 비해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고급 전원주택지역으로 변모되어갈 것으로 보인다. 준농림 임야 개발 활발 개발부담금이 올해 말까지 면제돼 양평군의 준농림지 임야의 개발은 전답 등에 비해 대규모로 이루어 지고 있다. 이에따라 가격의 편차도 다른 물건에 비해 심하다. 임야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수·청계·대심권의 가격은 매우 비싼데 이 지역 준농림 임야의 경우 평당 12만~13만원, 개발허가를 득하고 공사가 진행중인 것은 평당 15만~25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강을 끼고 있는 임야의 경우 지역이 한정돼 있어 평당 70만~80만원에서 가격이 형성돼 있다. 이들 대규모 개발 임야의 경우 내년부터 다시 개발부담금이 부과되면 그만큼 가격상승 요인을 지니고 있다. 특히 6번 국도가 확포장되고 나면 현재의 개발물량은 상당히 부족할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양평읍을 중심으로 준농림 임야의 가격은 3만~5만원이고 이 가격은 양평군의 일반적으로 형성된 가격이다. 단월면, 양동면, 청운면의 경우 지역과 면적에 따라 1만원대의 준농림 임야도 있다. ■상록수 공인중개사 0338-774-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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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국도 진입 편리성, 한강 조망권이 가격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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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정신적 중심성을 찾아서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황명찬
-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바락바락 애를 쓰니까 노자 같은 이가 무위(無爲)를 가르쳤다. 그는 유위(有爲)의 병에 걸린 인간들에게 무위라는 약을 처방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위에 안주한다면 그것 또한 큰 병이 아닐 수 없다. 유위와 무위를 나눈 것부터가 사실 잘못된 것이다. 우리 인간의 관념과 사고가 만들어 놓은 함정이다. 자연상태에서는 유위와 무위의 구별이 없다. 그저 그럴뿐이다.” - 황명찬의 《무위(無爲)도 넘어서》 중에서 어린아이에게 하양 백지를 준다면 조만간에 본연의 색을 잃고 어떤 추상적인 선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 시간이 짧든 길든 간에 분명 그리될 것이다. 이는 아이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연륜이 쌓일수록 채워지는 선이 추상에서 구상으로 바뀐다는 차이를 보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빈 것’을 보면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어린시절에야 큰 억압이 안 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것은 일종의 강박으로 작용해 수시로 스스로를 억압한다. 빈 것을 채우되 가능하면 ‘잘’ 채울 것. 그러나 백지는 ‘하양’으로 이미 차있는 것일 수 있다. 물을 비워낸 컵은 ‘빈 컵’이 아니라 공기로 가득 찬 컵일 수 있고, ‘아무 것도 없음’은 그 ‘아무 것도 없음’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동양화에서의 여백이 주는 그 풍부한 느낌 역시 이와 같은 이치다. 여백의 미. 도시인에게는 좀체로 찾아보기 어려운 그것을 찾아내고 싶었다. 한 달 내내 마감과 사람들에 얽혀 너무 ‘꽉 찼다’고 생각할 즈음 사람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제법 규모있게 내린 눈이 세상살이로 과포화된 뇌를 식혀준다. 내면적인 혁명 “주위에서 전원생활을 한다니까 용기있다고 하데요.” 사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각박한 도시라지만 어느날 툴툴 털고 귀향할 수 없음은 그를 구체적으로 계획해 본 사람이 더욱 절실히 깨닫는 문제일 것이다. 전원생활이란 돈만 있으면 집을 구해서 들어가는 도시와 달리 터잡는 것부터 온 몸으로 부딪혀야 되는 수고로움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돌연 전원행을 택한 이들에게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명찬 선생은 그 용기를 좀 더 구체화시킨다. 일종의 ‘혁명’이라고 보는 것이다. 세계 유명 아이스크림회사 사장 아들이 상속권을 포기하고 전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미국의 잘 나가는 법률가들이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어떤 계기로 충격을 받고, 그에 대한 반성이 따르면서 내면적인 혁명이 발생해야 합니다.” 그에게도 이러한 변화가 있었다. 외국에서 수학하면서 오히려 동양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깨달음이 생겼고, 동양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물질적인 것, 양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던 것에서 정신적이고, 질적인 것으로의 전환. 그것은 일종의 수련이 되어 그의 마음은 서서히 변화했다. 치유의 집 몇 년 전 병이 있는 사람이 들어가면 누구나 곧 낫게 된다는 ‘치유의 사원(Healing temple)’이야기를 보고 감명받은 선생은 집과 가족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관계자들이 ‘사랑, 평화, 자비, 조화’라는 공통의 염원으로 건설해 그러한 정신과 기운으로 몸의 병까지 치유된다는 그 곳처럼 집도 가족도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 이것이 전원으로 오면서 ‘집’ 자체에도 신경을 쓰게 된 동기다. 설계와 시공은 건축가 조병수에게 의뢰했다. 세월리에서 본 그의 주택이 좋았던 탓이다. 요구사항은 ‘편해서 들어가면 나오기 싫은 집’일 것. 편하고, 따뜻한 집,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다. 집도 편안함으로 가족을 불러들이고, 가족 역시 그러한 기운 속에서 서로를 사랑으로 대해야 모두가 건강하다는 생각이다. 전원주택으로 흔히 볼 수 없는 박스 형태의 집이 지어졌다. 외부로는 절제와 정돈을, 내부로는 가변성과 시각적 자유를 준 디자인이다. 주변의 풍광은 창문을 투과하면서 크고 작은 그림이 되고, 창문들은 제 구실을 다해 모자람 없이 햇빛을 전달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내부는 최소의 가구만이 놓여져 그 주인의 성품을 대변한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 부부 모두 시골출신이라 전원생활에 거부감이 없었고, 워낙 호흡기가 민감해 서울서 살 적에도 공기 좋은 곳만 찾아다녔다. 현재 서울의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두루 살았지만, 집값이 오르기 직전 이사를 나오곤 해, 아들은 “돈 피해 다니시냐”며 놀린단다. 이런 사정이야 남들이 보기에는 참 아깝고 답답하겠지만 정작 그들 부부는 태연하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앞으로 할 것도 남아있으니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태극권과 태극검으로 하루를 열고, 책을 읽거나 주변에 산책을 나가 사색에 잠기며, 아내와 함께 맛있는 식당으로 마실을 간다. 어찌보면 심심할 수 있는 일상.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면 도시인과는 다른 무엇으로 꽉 차있어 풍요로운 모습이다. 현재 이들 부부에게 소망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티벳으로의 여행이다. 그 중에서도 ‘카일라스 산’. 4대 종교의 성지라 알려진 성산이다. 사진과 지도를 펼치며 설명하는 황명찬 선생의 마음은 이미 티벳에 있다. 선생의 목소리를 따라 함께 티벳의 고원을 달린다. 田 ■ 글·사진 이민선 기자 ■ 프로필 황명찬. 1936년 생. 전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강원도 간성의 시골마을에서 출생해 그 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69년부터 약 4년 간 도미, 씨라큐스대학에서 사회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원장, 대학원 원장, 충주캠퍼스 부총장 등을 역임하고, 환태평양지역 지역학회(PRESCO) 회장, 한국환경정책학회 회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고문, 한국 지역학회 고문, 한국 주택정책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2년 전부터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부인 이명숙 씨와 함께 야생화를 키우며 자연생활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지역개발론》, 《한국의 토지와 주택》 등의 전문 서적과 수필집 《한 손으로 치는 손뻑소리》, 수상집(隨想集) 《무위(無爲)도 넘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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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정신적 중심성을 찾아서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황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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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다시 봄을 기다리며
- 세월리로 이사 온 지 한 해가 다 되어 간다. 봄부터 시작한 잔디와 나무 심기에서 비롯해 채소와 푸성귀 키우기, 화단 가꾸기, 계단 만들기 등 여름과 가을 동안 쉼 없이 일을 한다고 했는데도 또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이 바로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봄을 준비하는 일일 것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거름을 주지 않는다면 나무들이 꽃을 온전히 피우겠는가. 김장을 하지 않는다면 겨울과 이른봄에 무엇을 먹겠는가. 여기는 시골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준비는 봄을 기다리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초겨울 바람이 세월리의 들판을 가로질러 간다. 가을걷이가 다 끝난 들판에는 이제 바람이 머물고 갈 벼들도 무 배추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대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갈대들만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바야흐로 이제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다. 겨울 준비는 아직은 뭐라 해도 김장하는 데서 시작된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과 무채로 김장 속을 만들어 김장하는 모습은 전통적인 김장 담그기 그대로다. 물론 모든 재료는 세월리에서 농사를 지은 것들이다. 그러니까 김장하는 모습은 도시에서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자신들이 직접 농사를 지은 채소와 양념으로 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지난 토요일 한창슈퍼에서는 큰 길가에서 김장을 하는데, 서울 사는 아들딸들이 모두 내려와 함께 하고 있었다.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운데 김장은 한 항아리씩 채워지고 있었다. 서울로 가져 갈 것들은 주로 비닐 포대에 담겨지고 있었지만 김장독을 묻는 것이 최고의 맛이라고 이장이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김치 냉장고가 그 맛을 따라가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라고 말이다. 용보네도 김장을 다 끝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고추밭 농사는 망쳤지만 다행히 강가에 있는 고추를 거둘 수 있어서 양념 걱정은 없었다. 세 식구 먹는 데 백 포기 정도 했으니 넉넉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할 때 용보는 가장 행복한 듯했다. 내가 김장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 이장이 이렇게 말했다. 김장하는 집 세 군데만 들리면 올 해 김장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정말이다. 이렇게 인심이 살아 있는 곳이 세월리다. 김장을 하는 데는 아직은 품앗이가 절대적이다. 도시에 사는 가족들끼리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끼리 김장 날을 서로 다르게 잡아 품앗이를 하는 것이다. 익보네가 아직 김장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 김장 날을 늦게 잡은 모양이다. 품앗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노동 방식의 하나다. 그러나 모내기에서 풀베기, 타작까지 기계로 하는 실정이다 보니 김장 같은 가정일에 품앗이가 남아 있는 것도 다행이다 싶다. 품앗이는 노동의 효율을 올리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도 크게 기여해 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장을 같이 하다 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집마다 각기 독특한 김장 맛을 다 알게 되는 것이다. 천차만별인 사람들의 성격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세월리에서 첫겨울 준비를 하는 우리집은 아직은 김장이 문제가 아니다. 개집 보수, 수도꼭지 보온대책, 나무 거름주기 등 겨울나기 준비가 태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개 한 마리를 키우기로 한 것이 이렇게 일이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개집을 짓기도 전에 아내가 개를 몰고 오는 바람에 서둘러 지었는데, 목공에 능숙하지 못한 관계로 개집 하나를 만드는 데 이틀이나 걸렸을 뿐 아니라, 앞집 동완이 아빠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중요 기둥만 세우고 거기에다 베니어판을 대기만 했기 때문에 판자로 지붕과 옆을 보완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멍석을 만들어 넣는 등 보온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제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됐다. 세월 주유소에서 데려온 개는 러프 콜리라는 스코틀랜드를 원산지로 하는 종류인데 덩치에 비해 매우 온순하여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만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평소 개나 애완동물들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정이 들어버린 데는 콜리(이름을 그냥 콜리라고 부른다)가 사람을 잘 따르고 온순한 면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아내와 둘만 사는 집이다 보니 가족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집을 떠나있는 상훈, 상섭 두 아들이 오는 날이면 옛 식구가 만난 것처럼 좋아하니 이제는 영락없이 같이 살아가는 운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올해 심은 나무들도 우리 집에서 첫겨울을 나게 되었다. 나무들의 겨울나기는 가을에 거름을 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봄에 뿌리를 내리고 첫여름을 나는 데 나무들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한다. 그것을 나무들의 몸살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음력 유월만 넘기면 그 나무는 자연적인 생명을 다할 때까지 산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이런 나무들이 겨울을 온전하게 나기 위해서는 봄과 여름 내내 소진해버린 에너지를 보충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거름주기인데, 생각보다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에 보통 20킬로그램들이 한 포대 이상은 주어야 한다니 퇴비도 퇴비지만 거름 주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월리로 이사 온 지 한 해가 다 되어 간다. 봄부터 시작한 잔디와 나무 심기에서 비롯해 채소와 푸성귀 키우기, 화단 가꾸기, 계단 만들기 등 여름과 가을 동안 쉼 없이 일을 한다고 했는데도 또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이 바로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봄을 준비하는 일일 것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거름을 주지 않는다면 나무들이 꽃을 온전히 피우겠는가. 김장을 하지 않는다면 겨울과 이른봄에 무엇을 먹겠는가. 여기는 시골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준비는 봄을 기다리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장 심재준 씨는 오늘도 걱정을 했다. 내년에는 우리 마을에 여성회관을 하나 짓는 것이 소원인데 하면서. 이런 마을일에 정작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세월리에서 일 년 동안 살았다고 생각하니 왠지 허풍만 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마을일이나 개개인의 사정에 같이 걱정하면서 동참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오늘은 달도 늦게 뜨는 밤, 달빛 대신 별빛이 세월리 초겨울의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밤을 지키는 저 별처럼 세월리 마을 주민 모두의 마음 속에 언제나 별 하나씩 빛나기를 바라본다. 그동안 변변치 않은 글을 연재해 주신 전원주택 라이프에 감사 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세월리 이장을 비롯한 주민 여러분께 건강과 보람이 언제나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田 ■ 글 이기윤(시인·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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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다시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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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용보의 가을
- ** 길고 푸른 가을강의 아침 안개, 여름이 자나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강심에서 솟아 나오는 안개의 뒷면에 그런 상처가 있는 줄을 누가 알겠는가. 언제나 수줍은 듯 웃으며, 헛된 농사일이나 고된 마을일을 마다않고 해 내는 용보의 마음속에 여름 날 장마비보다 더 굵은 세찬 비가 내리고 있는 줄 누가 알겠는가 ** 양평의 가을은 안개의 계절이다. 이포 나루를 지나 강상면 세월리와 개군면 하자포리 사이로 흐르는 남한강은 가을이면 안개의 주산지가 된다. 해가 오르기 전에는 진을 치고 있는군사들처럼 끄떡도 않다가 햇살이 비추면 북쪽으로는 용문산, 남쪽으로는 양자산 골짜기를 타고 못이긴 듯 슬며시 올라가곤 한다. 안개는 그 자체만으로는 문학적으로 복선이나 낭만적 비유물로 원용되기도 한다. 또한 사진 작가들은 세상을 신비롭게 만드는 차양으로 안개를 렌즈에 담는다. 요즘 출근길에 양수리 다리를 지나면 수많은 사진 작가들이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줄을 지어 서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처절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구나 그 강물이 여름 내내 붉은 흙탕물로 흘러가던 것을 본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안개를 볼 수가 없다. 아침 해가 오르기 전후에 강에서는 김이 나듯 안개가 솟아오른다. 강물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강물을 끓이고 있는 듯이 말이다. 이른 아침 제 몸을 스스로 데우는 강물을 본다 흙탕물 뒤집어쓰고 온몸을 뒤척이던 여름마저 하얀 인고의 꽃으로 피워 올리는 그리운 성자의 뒷모습처럼 오라 또다시 겨울을 준비하는 자여 갈꽃 하얗게 몸을 푸는 가을강 아침 안개 속으로 이 시는 필자가 얼마 전에 쓴 <가을강>이라는 작품이다. 강물에서 피어나는 안개가 여름 내내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내고, 흙탕물로 흐르던 그 인내와 아픔이 피워내는 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강에서 살지 않는 자는 안개의 참모습을 모르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개가 인내와 아픔의 꽃이라면, 세월리에 사는 용보는 안개 같은 사나이다. 심용보(42)는 세월리 5개 반 중 2반의 반장이다. 반장으로서 마을 일을 한몫할 뿐 아니라, 집안 아저씨뻘인 마을 이장을 개인적으로 보좌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천성이 착하기도 하지만 특정한 직업이 없는 데도 있다. 지난 일요일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우리 집에서 매운탕을 끓였다. 이장과 심재두,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천렵을 한 후 개울가에서 매운탕을 끓여 먹을 작정이었는데 마침 비가 내리는 바람에 우리 집 원두막에서 끓이게 된 것이다. 집에서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파, 마늘, 고추장 등 양념이 필요했는데 팔이 불편한 용보가 그 심부름을 다하였다. 이렇게 용보는 작은 일에서부터 마을의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앞장서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용보가 작은 농사일 외에 특정한 직업이 없는 것은 왼쪽 팔을 거의 못쓰기 때문이다. 두 팔이 다 성했을 때는 직장도 다니고 제대를 한 후에는 양조장을 한 부친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 심재성(76) 씨는 어려서 다리를 다쳐 한쪽 다리를 저는 데도 불구하고 그 형제가 공동으로 양조장을 경영하였다. 그러나 탁주 구역제가 무너진 뒤 경영이 어려워지자 문을 닫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부인 박음전 씨와 아들인 용보 셋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용보가 팔을 못 쓰게 된 원인은 교통사고였다. 그의 아버지가 양조장을 할 무렵인 1990년 탁주 배달을 다녀오다 그가 타고 가던 오토바이와 관광버스가 충돌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신체 부위는 별로 다친 데가 없었는데, 왼팔로 통하는 어깨부분 신경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무렵 시골에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치료를 하는 경우나 보험 관계의 일에 도와 줄 사람이 없는 바람에 완벽한 치료나 사후 보상 문제에 심각한 손해를 봤다고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팔이 저려오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올 경우에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용보가 올 가을에는 유난히 한숨을 자주 쉰다. 남의 논을 빌려 지은 벼농사도 반타작이요, 고추는 완전히 말라죽었기 때문이다. 들깨가 조금 남아 있어 용보 아버지가 불편한 몸으로 베고 터는 데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속이 상해도 한참 상한 듯했다. 그래도 입으로는 불평 한 마디 없다. 다만, '그것 털어서 뭐 해유, 참 내 원'하고 한숨만 쉴 뿐이다. 논 1,200평에 수확량 벼 28가마, 이것이 용보가 올해 지은 농사 전부다. 평년에는 오십 서너 가마는 나왔다니 딱 절반이다. 거기에다 도지세 10가마 제하고 나면 18가마, 이것을 도정하면 쌀 80키로 그램들이 10 가마가 나온다. 돈으로 환산하면 180여 만 원, 인건비는 고사하고 농비 200여 만 원에도 못 미치는 액수이다. 이것이 용보가 올해 거둔 가을의 전부다. 남들 같으면 날씨 탓하랴, 농민 정책 탓하랴 입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지만 용보는 남 탓 할 줄 모른다.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도 후천적 장애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장애자인 두 부모님을 스스로 모시고 사는 용보는 삶의 고통과 아픔을 너무나 깊게 체험하고 있기에 한 해 농사 정도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깊고 푸른 가을강의 아침 안개, 여름이 지나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강심에서 솟아 나오는 안개의 뒷면에 그런 상처가 있는 줄을 누가 알겠는가. 언제나 수줍은 듯 웃으며, 헛된 농사일이나 고된 마을일을 마다않고 해 내는 용보의 마음속에 여름 날 장마비보다 더 굵은 세찬 비가 내리고 있는 줄 누가 알겠는가. 이렇게 고되고 아픈 가을을 보내면서도 요즘 용보가 선보러 다닌다는 말이 들려온다. 그래서 올 가을이 다 끝나고 겨울이 오기 전에 세월리 청년들 모두 힘을 모아 용보를 장가보내야 할 것이다. 농사만이 가을 수확의 전부가 아니기에. 용보와 용보 새색시 될 사람 화이팅! ■ 글 이기윤(시인·육군사관학교 교수) 글쓴이 이기윤은 시인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수이며, 현재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 살고 있다. 1997년 《시와 시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9년 시집 《자전거와 바퀴벌레》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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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용보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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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리에도 삼거리가 있다
- ** 심재두 씨는 청송 심씨 가문의 후예로서 이 마을에서 태어나 오직 한 곳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흔치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요즘 생각은 대부분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아무데서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투 하나하나에서나 행동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삼거리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 옆에 집터로 좋은 땅이 있는데 팔아서 농협 빚이라도 좀 갚았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조상들에게도 미안한 듯이 어물거리며 이야기한다. 나는 그 날 저녁 내내 그 마음의 삼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현실과 미래, 그리고 자존심의 삼거리를 말이다. ** 세월리에는 두 개의 도로가 교차하는 삼거리가 있다. 하나는 곤지암에서 세월리를 거쳐 양평에 이르는 98번 지방도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양평에서 세월리를 지나 이포 방향으로 향하는 88번 지방도로다. 양평 쪽에서 보자면 이 길들은 세월초등학교 앞에서 갈라져 각각 제 방향으로 향한다. 물론 거꾸로 말하면 거기에서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세월초등학교 앞에는 삼거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다릿골 다리에서 곤지암 방향의 갑을빌리지 앞으로 새 도로가 나는 바람에 그곳 앞에도 새로운 삼거리 하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세월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많이 서성댄다. 그곳에서는 아랫마을, 윗마을 그리고 다릿골 사람들이 하나 둘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이포나 곤지암 방면으로 가는 사람들이 길을 묻기 위해 잠시 정차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포 방면으로는 휴게소가 없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다가 삼거리에 있는 슈퍼에서 간단한 음료수 등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아예 전북리 강가에서 놀기 위해 라면 등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마을 청년들은 이런 모습을 조금 떨어진 마을회관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 일쑤다. 주로 지나다니기만 하는 이런 사람들과 한데 서성이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기도 한 것이다. 나그네로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어디론가 놀러가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색다른 감정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 마을 청년들이 그 삼거리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마을 청년들 중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눈을 지닌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심재두(43) 씨다. 심재두는 마을회관 앞이나 이장이 일을 보는 삼흥중개사 사무실에서 그 쪽을 바라보며 가끔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 사람들 참 팔자 한번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그 눈빛과 혼잣말 속에는 바로 농삿일을 하는 요즘 청년들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정도와 색다른 감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사실 심재두 씨는 청송 심씨 가문의 후예로서 이 마을에서 태어나 오직 한 곳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흔치 않은 사람이다. 2대 독자인 그는 비록 영광의 계급인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지는 못했어도 6개월 방위로 국토방위의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기도 했다. 3년 전에는 아버지를 여의고 지금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거기에다 자손이 귀한 집안의 외동아들답게 중3, 중1, 초등학교 5학년생 등 3자녀를 두고 있으니 여섯 식구가 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전통적 농촌 가족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심재두 씨의 요즘 생각은 대부분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아무데서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투 하나하나에서나 행동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내가 약간 걱정스런 말투로 1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 농토는 얼마나 되며 어떤 작물을 주로 재배하느냐,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냐 등을 물으면, “뭐 그런 걱정을 다 하느냐” 는 식으로 받아넘기기 일쑤다. 그러나 그 받아넘기는 말 속에는 농촌 청년들이 지니고 있는 비애를 찾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술이나 한잔 합시다”라는 말속에서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 그의 집과 농사짓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차를 같이 타고 갔다. 아랫마을에 있는 그의 집은 1980년대 중농의 전형적인 가옥으로 비교적 현대식으로 잘 가꾸어져 있었고, 살림이나 농사짓기 위한 공간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옆으로 약 1500여 평의 밭이 있는데, 그곳에는 오이와 호박이 비닐하우스 속에서 수확기를 맞고 있었다. 수확기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그런지 조금은 어수선한 하우스 속의 오이, 호박 넝쿨들이 재두 씨의 마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옆에 폐허가 되어 가는 비닐 하우스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버섯재배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수지가 맞지 않아 몇 년 전에 그만두고 그냥 방치시키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랑곳없이 논농사가 5, 6천 평 있으니 먹고살기에는 걱정 없다고 강조한다. 어수선함과 방치된 감정을 일부러 숨기면서 먹고살기에는 걱정 없다는 그의 말 속에서 단순한 낭만주의자의 그늘을 넘어 깊은 비애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런 그를 얼른 부추겨서 내친 김에 강가로 가자고 했다. 느티나무와 비석거리를 지나 남한강과 용문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세월리 강가로 향했다. 통나무 전원주택을 지나자 갈대밭이 나왔다. 때마침 불어오는 저녁 바람에 갈대들이 몸을 흔들며 어린아이들처럼 ‘와와’ 함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가장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국악박물관(건축 중)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는데 마침 개를 몰고 산책하고 있는 소설가 김민숙 씨를 만났다. 간단한 수인사를 하고는 갈대밭 속 길을 향했다. 찻길인데도 무척이나 구덩이가 많고 물이 고여 있어 시골길의 베테랑 기사인 재두 씨도 운전하기에 그리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이 길이 바로 모래채취를 위해 만든 길이라고 한다. 원래 세월리 강 가운데는 모래톱이 서너 개나 있었고 강가에는 넓은 모래밭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어디선가 모래와 골재를 파가기 위해 이 길을 만들고 또 그 바람에 모래섬들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파인 길을 비틀비틀 나아가면서도 재두 씨는 “허허…….” 소리를 내며 연신 강 쪽을 바라본다. 사라져버린 섬들이 기억에 떠오르듯이 어렸을 때의 뛰놀던 모습들이 갈대들의 몸짓에서 묻어나는 듯이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세월천과 용담천이 어우러져 강물로 들어가는 어귀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놀고 있다. 낚시를 하는 사람, 천렵을 하는 사람, 그리고 불을 피워 무언가 구우면서 연기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재두 씨는 그런 것과 자기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다만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몰지각한 사람들만 없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쓰레기 더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장마가 지고 물이 불어나면 그것들은 버리고 간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또 흘러가겠지. 삼거리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 옆에 집터로 좋은 땅이 있는데 팔아서 농협빚이라도 좀 갚았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조상들에게도 미안한 듯이 어물거리며 이야기한다. 삼거리를 지나자 이장 사무실 앞에는 몇몇 청년들이 나와 있다. 소주 한잔하면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한다. 나는 그 날 저녁 내내 그 마음의 삼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현실과 미래, 그리고 자존심의 삼거리를 말이다. 田 ■ 글 이기윤(시인·육군사관학교 교수) * 글쓴이 이기윤은 시인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수이며, 현재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 살고 있다. 1997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9년 시집 《자전거와 바퀴벌레》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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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리에도 삼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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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부터 대보름까지
-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올해도 설날이 오기 전에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들판에도 산에도 또 얼어붙은 강물 위에도 눈은 많이도 쌓였다. 그래서 2003년 1월의 세월리는 온통 은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겨울 농사를 하지 않는 탓인지 논둑에 내린 눈은 저 혼자 쌓였다 녹았다 하고 있었다. -------------------------------------------------------------------------------- 그런데도 다행스런 것은 도로에 쌓인 눈은 금새 녹아버려 교통에 별 지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양리에서 세월리로 넘어가는 사슬고개를 걱정들 했지만 고갯길이 대부분 양지쪽으로 나 있어 그것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로가 나기 전인 30여 년 전만 해도 사슬고개가 하도 험해서 비가 조금만 내려도 버스가 다니지 못해 시오 리(十五里) 길을 걸어가곤 했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추억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을 오르내리는 나에게 추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은근히 걱정스런 말을 건네곤 했는데 생각보다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로가 잘 나 있으며 제설작업도 제때에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는데, 추억이란 이렇게 사람을 오래도록 가두기도 하는 모양이다. 세월리에서 처음으로 설날을 맞이하기 위해 섣달그믐날 세월리로 온 식구가 내려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동네가 조용하기만 하였다. 한길에는 동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먼 고향으로 내려가는지 자동차만 분주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동네 청년들이 어디에 모여 있는지 수소문하여 찾아가 보니 마을회관 2층에 대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명절 전날 고향의 어느 사랑방에 모여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것을. 그래서 달 없는 깜깜한 밤을 오히려 더 밝게 지새우는 것을. 그러나 그런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가지고 간 술도 마다 한 채 오락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은 내가 그리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몇 마디 인사 끝에 되돌아 나오는데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한 사람이 뒤따라 나왔다. 그 사람은 이 동네에 살고 있지만 성남으로 출퇴근하는 바람에 동네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기가 한 달에 한 번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보니 그곳에는 도회지에서 고향을 찾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위에는 주먹만한 별들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설날 아침도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설날 다음 날 아침, 서울에서 내려온 이명화 씨 부부와 함께 청송 심씨 입조인 심권의 신도비를 찾았다. 신도비는 아랫마을 야산에 있는데, 이 마을 출신으로 교육자이자 수필가인 심영구 씨에 의하면 이 비로 인해 이곳을 비석거리라 불렀다고 한다. 보학(譜學)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이명화 씨는 신도비를 살핀 후, 이곳은 심권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다 객사(客舍)에서 병사한 이 분을 선영이 있는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라 한다. 그리고 보면 그의 선친인 심희세를 모신 이곳에 다시 심권을 모심으로써 그 후손 일족이 여기에 정착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300여 년 동안 14대에 걸쳐 청송 심씨 일족들이 이 마을의 중추를 이루면서 청주 한씨, 최씨 등과 어울려 살았던 것이다. 일족이 한창 번성을 이룰 때는 70여 세대에 이르기도 했으나 지금은 20여 세대만이 남아 있다. 점심을 먹은 후, 마을회관 아래층에 있는 노인정을 찾았다. 미리 연락을 한 관계로 노인회 총무이신 심재욱 씨를 비롯하여 임덕재, 심재성, 이창호, 임준현, 전홍선 씨 등 여러 분이 나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설날을 맞아서 그런지 촌로답지 않게 모든 맵시가 세련되어 보였다. 이사를 한 후 아직 공식적인(?) 인사를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기도 하여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차츰 분위기가 무르익자 서로 앞다투어 말씀을 해 주시는 모습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가 이 마을의 물맛이 너무 좋다고 하자, 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아랫마을, 윗마을 그리고 다랫골 등을 합쳐 세월리라 통칭하지만 옛날부터 5·16 이후 행정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세월천을 기준으로 강가 아랫마을은 세심리(洗心里), 산 쪽 윗마을은 세월리, 그리고 시냇물이 발원하는 골짜기는 다랫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세심리는 세심정(洗心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그렇게 불리웠고 골짜기에는 다래가 많이 열려 다랫골이라 불렀다 한다. 여하튼 씻을 세(洗) 자가 많이 들어간 것을 보면 예부터 이곳은 물이 맑고 깨끗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해방되기 전까지 이곳에는 양조장이 여러 개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물맛이 좋기 때문인데, 당시 주류에 관한 법에 의하면 1개 면에 막걸리 양조장 1개가 통상적인 원칙이었지만 이곳은 그것을 초월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면소재지도 아닌 이곳에 세워졌던 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는 전량 세심리 나루터를 통해 서울로 직송되어 인기리에 판매되었다고 하니 이곳의 물맛은 알아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1984년에 21가구가 발의하여 설치한 간이 상수도는 다랫골 뒷산인 양자산 줄기 8부 능선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집에도 그 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온천물로 착각할 정도로 비누가 잘 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생수로 마실 때는 단맛이 혀끝에 감돌기도 한다. 선인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물맛이 좋은 곳치고 인심 사나운 곳이 없다고. 그래서인지 10여 년 전에 다랫골로 들어와 살고 있는 전홍선(67) 씨는 “이 마을의 인심과 우애는 남다르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서로서로 믿고 도와가며 살기 때문에 담장도 필요 없다”고 하는 전홍선 씨의 안색은 뒤늦게 이곳에 들어 온 사람답지 않게 긍지와 자부심에 차 있었다. 그런데 정월 열 이튿날(양력 2월 12일) 조용하던 마을에 잔치 마당이 벌어졌다. 오전 11시쯤 갑자기 동네 마이크에서 트로트 풍의 흥겨운 노래들이 흘러 나왔다. 전달 사항에 앞선 전주곡이려니 했는데 음악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 그래서 마을회관 앞으로 나가보니 이게 웬일인가. 마을회관에는 ‘대보름 맞이 윷놀이 한마당’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고, 마당에서는 마을 어른들은 물론이고 남녀노소 모두 나와 흥겹게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서는 청년들이 어른들을 대접하려고 삽겹살을 굽고 있고, 마당 가운데에서는 윷놀이가 한창이었다. 아, 그래서 설날에는 가족 중심으로, 대보름에는 마을 중심의 축제 행사를 하는 것이 이 마을의 전통이구나 하는 사실을 겨우 알게 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축제를 보면서 어울려 산다는 것의 의미를 또 한번 깊이 느낄 수 있었다. 田 이기윤〈시인·육군사관학교 교수〉 [글쓴이 이기윤은 시인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수이며, 현재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 살고 있다. 1997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9년 시집 《자전거와 바퀴벌레》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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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세월리(洗月里)로 간 까닭은
- 나의 전원일기 세월리(洗月里)로 간 까닭은 세월리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리적으로는 88번 지방도로와 44번 지방도로가 교차하는 곳이며, 마을 뒤로는 높이 710미터의 양자산이 수려하게 펼쳐져 있다. 마을 앞으로는 중부 지방의 젖줄이자 우리 역사의 산 증인인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곳이다. 특히 양자산은 천진암이 있는 앵자봉과 더불어 광주산맥의 한 등뼈를 이루며 광주군 퇴촌면과 여주군 산북면의 경계를 만들어 경기도 남동부의 3개 군이 접하는 곳이다. -------------------------------------------------------------------------------- 내가 이 세월리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이 마을 앞을 지나게 되면서부터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육군사관학교 문학부 생도들을 봄이 되면 남양주 능내리에 데려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와 묘소를 참배하게 하였다. 다산은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사람이자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이를 본받고자하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던 중 1998년쯤 후배인 설경민 화백이 이천군 백사면 도립리 산수유 마을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능내리를 거쳐 도립리까지 돌아서 다녀오게 되었다. 세월리는 바로 능내리에서 도립리를 가는 중간에 있었다. 양수리를 거쳐 양평대교를 지나 십오리(6㎞)쯤 가면 곤지암 방면과 이포 방면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 삼거리 마을이 바로 세월리였다. 이곳에는 전교생이 80명쯤 되는, 작지만 그 이름만큼이나 예쁜 세월초등학교가 있고 보건진료소가 있으며 초등학생들의 시장기를 달래주는 슈퍼도 있다. 세월리, 한자로는 洗月里라고 쓰는데, 그 유래는 양자산 다래골에서 발원하여 이 마을 앞을 지나는 냇물이 너무 맑아 달이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몸을 씻고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물이 맑으면 선녀탕이니 용소(龍沼)니 하여 조금은 추상적인 이름을 붙였던 것에 비해, 밤이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달을 매개로 하여 이름을 붙였다니 얼마나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가. 이 아름다운 이름에 마음이 이끌려 이 마을 앞을 지날 때면 마음과 몸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양자산 기슭에 있던 주어사(走魚寺)라는 절은 천진암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서학을 맨 처음 공부하고 토론하던 강학회가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이 주변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처절한 삶을 살았던 당대의 젊은이들의 고혼이 서려 있는 곳이기에 느낌이 남달랐다. 지금은, 주어사는 물론 그에 딸린 암자였던 천진암과 곤지암도 자취는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 있어 더욱 처연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또한 역사의 기록은 없으나, 세월리에서 주어사 쪽으로 가는 길에 대감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세월리 노인회 총무인 심재욱(67세) 씨에 따르면 권철신, 권일신 형제가 살았다고 하여 그렇게 전해진다고 한다. 전원주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지금 서울 근교 즉 남양주, 광주, 양평, 용인, 안성 등은 물론이고 멀리 여주와 강원도 일부까지도 전원주택 단지 조성 붐이 일고 있다. 그래서 전망이 좋다고 하는 산자락이나 산기슭은 예외 없이 붉은 흙을 드러내 놓고 있다. 도시에서 찌든 삶을 회복하기 위해 전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무어라 할 수는 없지만 훼손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먼저 자연 훼손이 그것이다. 특히 한강을 비롯하여 강줄기가 조금이라도 내다보이는 곳이면 전원주택 사업자가 산을 헐고 깎아 택지를 조성하는 바람에 치마 잘린 여인네의 모습으로 안쓰럽게 서 있는 산이 얼마나 많은가. 전원적 삶을 누릴 권리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자연을 보존할 의무는 더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쉽기만 하다. 두 번째는 전원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업자들에 의해 선정되든 아니면 스스로 동호인들을 만들든 함께 무리 지어 모여든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면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도시적 삶의 형태를 전원이라는 공간으로 이동한 데 불과하다. 전원이란 무엇인가? 이는 공간적 개념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원이란 바로 전원적 삶이 숨쉬고 있는 곳이며, 전원적 삶의 주체란 바로 지금까지 전원을 지키고 있던 농민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원적 삶의 주체들이 지켜 온 삶의 가치가 배어 있는 곳이 전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원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들이 지켜온 가치에 동화되는 것이며, 그들과 함께 숨쉬고 살아가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생각 끝에 지난 여름 세월리로 가리라고 마음을 먹고 마을 노인회관 앞에 있는 부동산 소개소에 들렀는데, 마침 그곳은 공인중개사인 유형근(42세) 씨와 마을 이장인 심재준(42세) 씨가 마을 사무를 보고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서 이장님께 나의 생각을 말한 후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대지 165평의 농가주택을 하나 소개받아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난 후부터 철근 조립식 주택(40평, 사업주:융성건업, 대표:김학덕)을 지었다. 앞집은 2년 전에 안양에서 이사 온 임철승(43세) 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두 자녀의 교육을 위해 도시에서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대부분 자녀 교육 때문에 도시로 몰려가고 있는 세태에 비추어 볼 때, 그 마음이 너무나 세월리라는 이름처럼 맑고 아름다워 보인다. 세월초등학교 1학년인 동형(8세)이와 이제 7살인 동완이가 새침떼기 흉내를 내며 자라고 있는데, 그 애들이 나중에 다 자라면 얼마나 깨끗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겠는가. 심권(沈權, 1643∼1697) 이래로 청송 심씨 일가들이 이 마을에서 300년 이상을 살면서 만들어 놓은 따뜻한 인심과 애정은 집을 짓는 동안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직장 관계로 매일 내려가지 못하는 데도 이장님이나 임철승 씨,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보여준 관심과 애정은 벌써 내가 이 마을 한가운데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부터 나는 이 마을에서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역사의 등뼈를 베개 삼고, 마을의 어른들과 주민들이 보내주는 따뜻하고 정겨운 인심을 이불 삼아, 전원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리라 굳게 다짐해 본다. 田 글 이기윤 <시인, 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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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세월리(洗月里)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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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이장님, 이장님, 세월리 이장님
- 나의 전원일기 이장님, 이장님, 세월리 이장님 세월리는 40대 초반의 이장이 이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50∼60대라면 젊은이 취급을 받고 있는 곳이 우리의 농촌 현실인데 40대 초반의 의욕에 찬 청년이 이 마을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다는 것은 세월리의 축복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203세대라는 마을이 어디 작은 공동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세월리 심 이장의 하루는 짧기만 하였다. -------------------------------------------------------------------------------- 내가 작년 7월 세월리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맨 먼저 만난 사람이 이 마을의 이장인 심재준(42) 씨였다. 그의 첫인상에서는 시골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도회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세련되고 자연스런 헤어스타일, 깔끔한 옷맵시, 절제된 대화 등에서 그렇게 느꼈다.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자신을 ‘세월리 쌍둥이’라고 하면 양평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라고 했는데, 다소 터프하게 보일려고 그런 말을 했는지 몰라도 말씨나 매너가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2002년 7월에 땅(164평)을 매입하고 10월에 착공에 들어갔는데, 그는 건축업자의 선정에서부터 토목공사, 이웃주민들에 대한 양해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자상하게 보살펴 주었다. 직장 관계로 현장에 자주 내려가지 못하는 사정을 배려하여 매일 현장 체크를 해 주었으며, 상량을 할 때는 많은 주민들을 독려하여 풍성한 자리가 되도록 힘써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언제나 강조하는 것은 ‘우리 동네는 텃세가 없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에는 주민들의 분위기를 마을의 이장이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포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는 동네 사람들과 외지인들과의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과 그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였다. 그는 조선 숙종 때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심권(1643∼1697)의 14대 후손으로, 심경섭(작고) 씨의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나 세월초등학교와 양평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 마을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군복무를 하기 위해 고향에 잠시 머문 뒤 다시 고향을 떠났다. 1980년대 초 이농현상이 극한에 달했을 때, 그도 도회지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농촌을 떠난 이농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 생활이 어디 말만큼이나 그리 호락호락한 것인가. 도회지의 변두리에서 서성이며 바라보는 도회의 네온사인 불빛이 어디 고향 마을을 비추는 별빛처럼 정답기나 했겠는가. 그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잠시 가내 공장을 경영하다가 본격적인 농군이 되었던 것이다. 2000여 평의 농지에 농사를 지으며 마을의 청년회장을 4년 동안 역임하기도 한 그는 지금까지 5년 째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다. 세월리는 양평군에서 단일 마을로는 세대수가 가장 많은 동네이다. 총 203세대에 500여 명의 주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주민과 외지인이 각각 절반을 이루고 있다. 외지인들이 들어와 있는 곳은 갑을빌리지, 세월빌리지, 나루터전원주택, 통나무전원주택, 한울전원주택, 다랫골의 화가촌 등인데 이곳의 주민들이 마을 행사 등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심 이장의 노력 덕분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원주민과 외지인들이 화합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 외에도 이 마을의 큰 자랑거리는 세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마을 사람들과 동문회(회장 : 심재혁)의 단합된 힘으로 세월초등학교를 폐교 직전에서 저지한 일이다. 1990년대 말, 우리의 농촌은 극심한 이농현상으로 인해 취학 아동이 줄어들자 수많은 시골 초등학교들이 강제로 폐교를 당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데에 또 하나의 어려운 점이 더해져 사실 시골의 공동화 현상이 더욱 가속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에 세월리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세월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이 벌어졌는데, 인근 여주군의 폐교된 학교의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스쿨버스를 구입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한 결과 지금은 85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작지만 아름답고 알찬 학교로 거듭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젊은층인 30∼40대가 40여 세대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우리 농촌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사실이 이 마을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마을 청년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마을의 들녘을 무공해 청정지역으로 조성해 반딧불이와 메뚜기 등이 서식하는 곳으로 탈바꿈시켜 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이곳은 도회에서 지친 심신을 주말을 이용하여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학습장으로서도 그 역할이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바로 40대 초반의 이장이 이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50∼60대라면 젊은이 취급을 받고 있는 곳이 우리의 농촌 현실인데 40대 초반의 의욕에 찬 청년이 이 마을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다는 것은 세월리의 축복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203세대라는 마을이 어디 작은 공동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세월리 심 이장의 하루는 짧기만 하였다. 그는 오전 8시 전후로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마을회관 앞에 있는 사무실은 유형근(42) 씨의 부동산 중개사무실과 함께 있는데, 마을 주민들의 민원도 수리하고 외지인들에게 마을의 현황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데에는 안성맞춤이다. 집이 비록 낡아 현재는 새 사무실을 갑을빌리지 앞에 신축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안온한 분위기가 낯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 곳에서 두세 시간 마을 민원을 받고는 오전 11시 전후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강상면 사무소로 향한다. 거의 매일 오는 면사무소에서 그는 먼저 마을 주민들이 부탁한 민원 등을 해결하고는 마을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면장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거기에서 그는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또한 강상면 이장협의회 총무를 맡고 있어 인근 마을의 이장들과 만나 강상면의 발전책을 진지하게 토론하기도 한다. 면소재지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그는 오후 두세 시경에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세월천 건너 강마을, 초등학교 인근의 본동네, 다랫골의 전원주택지, 도로가의 갑을빌리지 등을 한바퀴 돈다. 마을 곳곳에는 도로 수리 공사, 건물 신축, 부지 정리 등이 언제나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마이크를 잡는다. “마을 주민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고속도로 건설 부지에 편입되는 땅을 가지신 분은 주민등본과 인감 도장을 가지고 5시까지 마을 회관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 …” 낭랑하고도 무게 있게 울려 퍼지는 심 이장의 목소리에 우리 집 앞 후박나무 가지에 있는 까치집으로 들어가던 까치가 날개를 멈칫거리고, 뒷집 저녁 연기가 잠시 몸을 낮추다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아내와 2녀(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4학년)를 둔 가장으로서 자신의 일보다 마을 주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해 헌신하는 심 이장을 볼 때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소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田 글 이기윤<시인, 육군사관학교 교수> 사진 정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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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이장님, 이장님, 세월리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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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강상면 일곱 마을 이야기
- 나의 전원일기 강상면 일곱 마을 이야기 세월리로 내려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었다. 그동안 마을 주변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 마을 어른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 이 마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쥐꼬리만큼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가 본 곳보다는 가 보지 못한 곳이 더 많기 때문이다. -------------------------------------------------------------------------------- 얼마 살지도 않아 세월리에 대하여 다 알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듯이, 마을의 겉모습만 보고 그 마을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세월리의 참모습을 보기 위한 첫 단계로 세월리의 주변 이야기부터 하기로 한다. 그림을 그릴 때 현실감이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원근법을 쓰듯이, 주변의 이야기에서부터 중심의 이야기로 이동하는 것도 세월리를 더욱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세월리는 양평군 강상면에 있다. 양평군은 1908년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쳐져 양평군이 되었다. 그 당시 강상면은 남시면(南始面)으로, 현재의 강하면인 남중면(南中面), 1914년 광주군으로 이속된 남종면(南終面)과 더불어 남한강 남쪽에 있는 3개 면을 이루었다. 그러고 보면 남시면이란, 양평군의 남쪽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실제로 광주의 곤지암 방면이나 여주의 이포 방향에서 올 때, 남한강의 남단에서 만나는 첫 마을이 바로 대석리와 세월리로 남시의 의미가 살아 있는 곳이다. 이러한 강상면은 북쪽으로부터 병산리, 송학리, 교평리, 신화리, 화양리, 세월리, 대석리 등 7개 동리가 양자산 줄기와 남한강 사이를 따라 거의 일직선으로 놓여 있는 것이 특색이다. 제일 북쪽에 있는 병산리는 백병산 밑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강하면과 접경해 있으면서 양평읍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백병산은 양자산이 남한강 쪽으로 뻗으면서 형성된 산인데, 이 산을 중심으로 골짜기마다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농업을 주로 하지만 현재에는 마을 앞을 지나는 88번 도로를 따라 발달된 상업에도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병산리에는 고려 초기 석물인 돌거북상이 있다. 이 돌거북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한을 통일할 때, 이 고장 출신인 함규 장군의 전승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 상은 높이 1.24미터, 길이 2미터, 폭 1.4미터로 고려 초기 석조물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요인 《반달》의 작곡가인 윤극영 선생의 묘소가 있으며, 더 멀리로는 조선왕조 선조의 딸인 정근옹주의 묘와 광해군 때 벼슬을 지낸 김이원의 사당과 신도비가 있다. 송학리는 병산리에서 양자산 골짜기로 들어가 있는 마을로 양자산과 백병산 사이에 있으며, 송산리와 학곡을 합친 이름이다. 이곳에는 예부터 유명한 구사곡(九寺谷) 약수터가 있는 마을이다. 구사곡이란 구절골로도 불리웠는데, 양자산과 백병산 사이에 있는 아홉 골짜기마다 절이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약 600여 년 전에 지어진 사찰들로 알려진 이 절들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으나, 이 골짜기에서 나오는 약수는 그 효험이 아직도 많이 알려져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송학리에는 오이와 팽이버섯 작목반이 있어 농가 소득을 높이는 데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강하면 성덕리로 넘어가는 곳에 길마재라는 고개가 있다. 교평리는 교암과 평리를 합친 이름이며 강상면의 소재지다. 양평대교를 건너면 바로 닿는 곳이 교평리인데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농협 등이 있어 이 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교평리에도 표고 작목반이 있어 특수작목 재배가 활기를 띄고 있는데, 송학리에 있는 팽이버섯 재배와 더불어 양자산과 남한강이 어우러져 형성되는 신선하고 맑은 공기와 환경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곳에는 강가에 봉의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이 정자는 조선시대 윤승훈이 지었다고 한다. 신화리 신당리와 내생화를 합친 이름이며, 양자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서 교평리에서 양자산 쪽으로 약 15분 정도 걷는 거리에 있다. 이곳에는 약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상초등학교가 있다. 지금까지 약 43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강상초등학교는 충효예를 강조하는 인성교육과 가정보다 더 좋은 학교 환경 조성에 그 교육적 특성을 두고 지역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 육성에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평리를 지나 곤지암 방면으로 가는 강기슭과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화양리이다. 화양리는 외생화와 양곡을 합친 이름이며, 대체로 강과 산이 잘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서 볕이 잘 들어 꽃이 환하게 잘 피는 마을이라는 뜻도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조선왕조 시대 명종 때 태어나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봉의정을 지은 윤승훈의 묘가 있다. 그리고 한국방송공사 남한강 연수원이 자리잡고 있는 앞강에는 도러소라는 깊은 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화양리를 지나 짧지만 경사가 꽤 높은 사실고개를 넘으면 세월리다. 그리고 세월리를 지나 왼쪽으로 가면 여주군 금사면이 나오고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나가면 대석리가 나온다. 대석리는 대감리와 백석리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백석리는 흰돌이 많은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대감리는 대감이 살던 곳이라는 이름이다. 그런데 대감리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로 하나는 조선 전기 권근의 후예인 권일신, 권철신 두 형제가 살았던 곳이라는 설과 양근 김씨의 시조인 김인찬이 살던 곳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설이 정확한지는 기록으로 보아서는 분간할 수 없으나, 이 두 설이 지닌 시대가 400여 년 정도 차이가 있으므로 다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곳에는 지석묘가 있는 것이 특색이다. 마을 입구 100여 미터 전방 밭두렁에 있는 이 지석묘는 모두 6개이며 남방식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 지석묘로 보아 이 주위에는 청동기 시대인 약 30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강상면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강상면의 모든 동리 이름들은 수많이 존재하던 옛 마을들의 이름들을 합친 것이 특색이다. 세월리도 세심리와 월리를 합친 이름이 아니던가. 앞으로 이 옛 마을들의 유래를 찾으면 더 풍성한 역사가 나오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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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강상면 일곱 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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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그래도 임철승 씨는 나무를 심는다”
- 나의 전원일기 “그래도 임철승 씨는 나무를 심는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랑과 인간 사랑의 정신을 심고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나무와 숲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나무와 숲이 없는 산을 한번 상상해 보자. 그것으로 인해 물질적 곤란을 겪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황폐함이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랑과 인간 사랑의 정신을 심고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리에 본격적인 봄이 찾아 왔다. 봄이 오면 꽃들이 만발하는 세상을 그리기도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까’ 하고 궁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나무심기 행사를 벌여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식목일 행사를 꾸준히 한 지가 오래되어 그런지 식목일이 되었는데도 동네가 조용한 것이었다. 하도 이상하여 이장님께 물어보니 연례적인 마을 차원의 식목 행사는 이제 없어진 지 오래고, 다만 상급기관에서 묘목을 주면 마을에서 가끔씩 심는 경우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실 심을 데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내가 의례적인 식목 행사에 길들여져서 그런가, 아니면 이제 누구도 식목 행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현실이 올바른 것인가. 한동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국민들 중 40대 이상 정도 되는 사람들은 식목일에 관한 특별한 추억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쯤의 식목일에는 누구나 다 삽과 호미를 들고 학교로 나와 그 주위에 나무를 심었으며, 오후에는 마을로 돌아가 마을 이장들의 선도 하에 너도나도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나무를 심는 동안 학교에도 마을에도 ‘내 나무 네 나무’가 자랐고, 모두들 자신들이 심은 나무에 애정을 가지는 동안에 학교 사랑도, 마을 사랑 정신도 스스로 자랐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식목일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다. 역사적으로는 1910년 4월5일 순종황제가 친경제 행사 때에 나무를 심은 사실에서 비롯하여 식목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4월3일로 되었다가 다시 해방 이후 4월5일로 환원되었는데 1949년부터 공휴일로 정해졌다. 또한 자연림이 울창한 남미나 오세아니아, 그리고 북미나 스칸디나비아반도 등의 국가들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국토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우리나라의 경우 식목일은 오늘날의 우리 산야가 푸르게 된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말이다. 몇 해 전 산림청에서 개최한 시낭송회에 참가했다가 몇몇 산림 전문가들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식목일과 산림녹화 사업이 없었다면 근대화는 불가능했다고 한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1962년부터 정부는 체계적인 조림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는데, 그것에 관련된 일화 하나가 생각난다. 1960년대 후반 어느 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강릉을 방문한 자리에서 “산들이 왜 저렇게 헐벗고 있느냐”며 그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들을 힐책하였는데, 그 소리를 들은 강릉시장이 “동해지방에는 바람이 하도 심해 식목을 한 효과가 반감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때 박대통령은 “그렇다면 군대식 참호를 파서라도 묘목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그 지방에서는 나무 한 그루에 참호 하나씩을 파서 나무를 보호한 결과 오늘날 동해안의 숲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19세기에는 독일이 유일하게 산림녹화 사업에 성공한 나라였다면, 20세기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림녹화 사업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불과 삼사십 년 전에 산림녹화에 온갖 정성을 다했던 우리 자신들과 선배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과 정성에서 비롯된 나무 사랑의 정신이 이처럼 쇠퇴하고 만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산림녹화 사업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벌써 그것을 멈출 때는 아니라고 본다. 현재 1헥타르 당 축적을 보면, 뉴질랜드가 125㎥, 일본이 145㎥, 그리고 독일이 268㎥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겨우 63㎥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 중에서 20년 미만의 유년기 나무로 조성된 숲이 40퍼센트이고, 20∼40년의 소년기 숲이 50퍼센트로 전체 숲의 90퍼센트가 유소년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앞으로 적어도 일이백 년 동안에는 꾸준하게 나무를 심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나무와 숲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나무와 숲이 없는 산을 한번 상상해 보자. 그것으로 인해 물질적 곤란을 겪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황폐함이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랑과 인간 사랑의 정신을 심고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생태 보존이니 자연친화 사상이니 하면서 어느 부문을 막론하고 환경 마인드를 강조하지 않는 데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구호나 슬로건을 외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실천적 행동 하나 하나가 결국 그러한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 심을 데도 없고, 이만 하면 굳이 나무를 심을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이른 속단이다. 그리고 정말 나무를 더 심을 필요가 없다면 나무를 가꾸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참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도 세월리 사람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장님 사무실에서 대추나무를 심겠다고 자전거에 싣고 가는 사람도 있고, 자식 교육 때문에 일부러 이 곳으로 이사 온 앞집 임철승 씨가 오늘도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서울 양재동까지 가서 어린 주목과 소나무 등을 사 와서 아침부터 묘목장에서 정성스럽게 심고 있다. 그렇게 심은 어린 나무들은 동형이와 동완이가 자라 듯 쑥쑥 자랄 것이며, 그리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갈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말이다. 나무는 자라 숲이 되고 동량이 되듯이, 나무와 더불어 자란 동형이와 동완이는 앞으로 사랑을 나누어주는 천사가 되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참다운 인재가 될 것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田 ■ 글 이기윤<시인, 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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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그래도 임철승 씨는 나무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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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대를 이어 농사짓는 심재욱, 심익보 부자의 미소
- 나의 전원일기 대를 이어 농사짓는 심재욱, 심익보 부자의 미소 오월 초순까지 유난히 많은 비가 내리더니 중순 들자 가물기 시작한다. 가문 날씨야 물이 부족하지 않아 견딜 만하지만 일찍 찾아 온 더위는 농사일을 하는 데 어려움을 더한다. 날씨가 어디 농군 마음에 딱 맞아떨어진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지만 그래도 때 이른 더위에 농사일이 즐거울 리 있으랴. --------------------------------------------------------------------------------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면 세월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그 곳은 유형근 씨가 공인중개사 일을 주로 보고, 이장 심재준 씨가 마을 일을 보는 일종의 합동사무실이다. 마을회관과 길 하나를 두고 마주하는데, 길가에 있는 옛날 새마을탑에 ‘부동산’이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을 뿐 아무런 간판도 없고, 농촌의 구옥을 그대로 쓰고 있어 흙바람 벽이 유난히 눈에 띄는 정겨운 곳이다. 오늘도 일을 마친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청년회장인 심은섭, 청년회 총무 심충섭 그리고 청년회원들인 심재만, 심익보, 심용보 씨 등이 그들이다. 총무를 제외하고는 모두 40대인 이들은 하루 일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언제나 이곳으로 오면서 너나할 것 없이 소주와 안주거리를 챙겨 들어온다. 술잔이 돌아가면 그들은 노동의 고단함도 잊은 채 농사에 대한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우리집 골목 입구에 사는 심익보 씨의 말이 저녁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비가 좀 왔으면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불만이라는 것이다. ‘비를 기다리는 이유야 가지 모종을 냈으니 비가 오면 가지가 뿌리를 내리는데 좋아서겠지’ 짐작한 내 생각과 달리, 심익보 씨의 속뜻은 비가 오면 좀 쉴 수도 있을 거란 의미였다. 참 정직하면서도 농민의 고단함이 스민 말이라,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심익보 씨는 오늘 가지 모종을 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모종을 노지로 옮겨 심은 것이다. 물론 가지 농사뿐만 아니라 오이, 배추, 상추, 고추, 파 등 특용작물을 재배하면서 논농사도 곁들여 짓는다. 밭농사 8000여 평, 논농사 3000여 평을 지으니 중농이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5일장인 양평장에도 고정 가게를 두고 내다 팔며, 서울의 가락시장과 청량리시장에도 출하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농협빚 3000만 원은 갚을 길이 요원하다며 검은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그의 모습에서 순진함과 현실의 고달픔이 겹쳐온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과 더불어 한 집에 산다. 그의 아버지 심재욱 씨는 세월리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농사일을 하며 5남매를 키웠다. 지금은 장남 찬보 씨와 4남 문보 씨 그리고 딸인 선미 씨는 출가했고, 차남인 익보 씨가 아버지를 거들어 농사일을 하며 산다. 대를 이어가며 농사일을 하는 셈인데, 이런 건 세월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재욱 씨는 키가 별로 크지 않다. 반면에 아주 단단한 체구를 지니고 있다. 한평생 농사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사람의 모습이리라. 밭두렁에서는 밭두렁과 함께, 논두렁에서는 논두렁과 함께 살아온 세월의 모습이 그의 작으면서도 단단한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것만 같다. 그 분은 언제나 웃으며 살아간다. 이사 와서 얼마 안 돼 아직도 이 마을 분위기가 익숙지 않아 서먹서먹한 나에게도 만날 때마다 친절하게 웃으며 맞아 준다. 가끔 우리집 앞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데, 내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 언제나 오토바이를 멈추고 말을 건넨다. 나무를 심을 때는 나무 이야기를, 수돗가에 있으면 물 이야기를, 잔디를 심고 있으면 잡초 이야기를 하면서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하는 마음씨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 분을 볼 때마다 나는 고향에서 지금도 작은 농사일을 돌보며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를 떠올린다. 한 때는 중농을 경영하면서 11남매를 키운 우리 아버지의 작고 단단한 몸맵시나 남을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아내나 자식들에게는 가끔 무섭게도 보였지만 남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진실한 농부의 마음이라는 것을 나도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짜증을 내지만 남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코 우연하게 생긴 것은 아니다. 노동의 고달픔으로 인해 집안 식구들이기에 짜증을 낼 수 있는 것이고, 남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것은 바로 흙에서 배운 마음씨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집안 식구들에게는 고달픔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고 남들에게는 온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그 정신이 바로 흙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요한 세월리의 밤하늘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다. 심재욱 씨인들 5남매를 키우면서 몸과 마음이 편할 날이 있었겠는가. 나날이 발전해 가는 도시의 문명 따라 등록금과 물가는 해마다 치솟아 오르고, 가뭄과 수해는 한 해 걸러 돌아오는데 가난한 농부가 어찌 마음 편히 살 길이 있었겠는가.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땅이요, 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한 생각하는 것이다. 땅만한 스승이 없고, 흙만한 가르침이 없는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이 고달픈 농사일을 오늘까지 해오면서 저렇게 미소를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얼굴색이 검고 체구는 작지만 이 세상 누구도 지을 수 없는 미소를 심재욱 씨는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들 익보 씨가 연신 팔뚝을 걷어올린다. 검게 탄 팔이 굵고 단단하게 보인다. 비가 좀 와서 쉬었으면 하는 말은 농담이라고 강조한다. 비가 온다고 해도 비닐하우스에서 할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도 좋다. 이른봄부터 지금까지 그만큼 일을 했으면 좀 쉰들 누가 뭐라 할 수 있으랴.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월리가 아니면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심재욱, 익보 두 부자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미소와 고달픔이 아련하게 배어나는 그 농담을 들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로 돌아오는 사람들이여, 흐르는 시냇물 소리도 맑고, 청산의 우거진 수풀도 아름답지만 진실한 농부의 웃음과 농담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권할 따름이다. 田 ■ 글 이기윤<시인, 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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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전원주택라이프] 전원주택_양평 통나무주택_목지가
- 월간전원주택라이프 http://www.countryhome.co.kr 겉과 속이 달라! 두 얼굴의 집 양평 통나무주택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남한강행복마을에 모던한 주택 2채가 거울에 반사된 듯한 모습으로 앉혀져 있다. 전망은 넓은 마당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 세월초등학교 쪽으로 펼쳐진다. 약 20년 간 통나무 주택을 지은 목지가 대표가 포스트&빔 공법으로 지은 통나무 주택이다. 글 최은지 기자 | 사진 백홍기 기자 | 취재협조 통나무건축 목지가 HOUSE NOTE DATA 위치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건축구조 캐나다식 통나무 Post&Beam 공법 대지면적 463.00㎡(140.06평) 건축면적 89.14㎡(29.96평) 건폐율 19.25% 연면적 135.14㎡(40.88평) 1층 89.14㎡(26.96평) 2층 46.00㎡(13.91평) 용적률 29.19% 설계기간 3개월 공사기간 3개월 분양비용 4억 5천만 원 설계 및 시공 통나무건축 목지가 010-7599-6332 https://blog.naver.com/howtolog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리얼징크 외벽 - 리얼징크/탄화목재 데크 - 방부목 내부마감 천장 - 레드파인루버 내벽 - 도배/레드파인, 편백 바닥 - 강화마루 계단실 디딤판 - 나왕 난간 - 오비스기 단열재 지붕 - 인슐레이션 가등급 외단열 - 인슐레이션 가등급 내단열 - 인슐레이션 가등급 창호 독일식 시스템창호 현관문 독일식 코렐 주방가구 한샘 위생기구 대림바스 난방기구 기름보일러, 태양광, 벽난로 남한강행복마을에 70여 세대 단독(전원)주택이 조성돼 있다. 남한강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산줄기가 시원하고 멋진 자연환경을 제공한다. 단지에서 300m 거리에 세월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들은 편하고 즐겁게 시골길을 거닐며 통학할 수 있다. 차로 15분 거리에는 양평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어 나름 괜찮은 교육환경을 갖췄다. 대형마트, 은행, 관공서, 골프장, 콘도 등 편의시설과 위락시설도 차로 10~20분 거리에 있어 편리한 생활환경을 갖췄다. 또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중부내륙고속도로와 평창하남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강남까지 1시간 내로 갈 수 있다. 교통, 교육, 편의시설을 두루 갖춘 이곳에 목지가 김종근 대표가 건축주들의 의뢰를 받아 10여 채의 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김 대표가 2필지를 분양받아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은 통나무주택 두 채를 지어 직접 분양에 나섰다.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집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달라져요. 저는 현관에서 집으로 들어섰을 때 첫 느낌이 포근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 것과 내부에서 보는 바깥 전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하는 사람이 고민을 많이 해야 되요. 건물 배치 방향, 내부 공간 구성, 창 크기와 위치 등에 따라 집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좋은 아이디어를 적용하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료를 수집해 수차례 그림을 그리고 수정하는 걸 반복해요.” 이런 고민을 거쳐 대지면적 330평에 통나무주택 두 채를 나란히 정남향으로 배치했다. 통나무주택이지만 외관은 리얼징크와 탄화목재로 시공하고 지붕은 경사지붕으로 계획해 일반 모던한 주택처럼 보인다. 보통 통나무주택이라면 구조재 자체가 마감재 역할을 한다. 육중하고 나무의 자연스러운 멋이 통나무주택의 매력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외벽을 다른 소재로 마감했다. 통나무라는 특징을 드러내는 것보다 사용자의 편의를 배려해서다. 김 대표는 “그동안 외관까지 통나무를 노출해 주택을 지었는데 몇몇 건축주가 주기적으로 칠 작업을 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며 “이를 보안하기 위해 마감재를 사용해 외벽을 덮어 관리는 쉬우면서 최신 트렌드에 맞춰 모던하게 계획한 것”이라고 한다.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내부 설계 중량 목구조 주택과 통나무주택 차이점은 가공에 있다. 기계 가공을 최소화하고 현장에서 목수들이 직접 나무를 깎아 짜맞춤으로 연결하는 걸 통나무주택이라고 한다. 짜맞춤은 난이도 높은 기술이기 때문에 완성도는 전적으로 목수들 역량에 달렸다. 김 대표는 “목지가의 목수들은 예전에 제가 진행한 집짓기 프로그램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었다”며, “통나무주택 매력에 빠진 몇몇과 함께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오면서 완성도 높은 주택을 지어 왔다”고 자랑한다. 포스트&빔 공법 통나무주택은 기둥과 도리, 장선으로 뼈대를 세운 목구조다. 구조재는 짜맞춤으로 연결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는 경량 목구조와 같은 투 바이 식스(2″×6″) 방식으로 벽체를 제작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견고하다. 또, 주택 내부는 기둥과 보를 그대로 노출시켜 자연 그대로의 멋을 만끽할 수 있고 나무가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있는 쌍둥이 주택은 공유한 듯 공유하지 않은 유연한 경계로 적절한 프라이버시를 제공한다. 현관도 A동(좌측 건물)은 정면에 B동(우측 건물)은 도로와 인접한 뒤편에 배치해 동선이 부딪히지 않게 했다. 현관 배치에 따라 내부 구조도 살짝 달라졌다. “내부는 기본적으로 현관에서 들어오면 주방과 거실을 대면하는 구조예요. 그리고 각각 1층에 방 1개와 욕실, 2층에 방 2개와 욕실을 마련했는데, 구조는 조금 달라요. A동 1층은 거실과 주방 옆에 욕실을 배치하고 방에서 복도로 연결해 독립성을 강조한 반면, B동 1층은 욕실을 현관 옆에 배치해 어느 공간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강조했어요. 2층은 A동을 수납 중심으로 계획해 비슷한 면적의 방 2개를 배치하고 그 사이에 수납장을 설치했어요. B동은 수납보다는 방 크기를 다르게 해 필요에 따라 공간을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게 계획했습니다.” 두 주택은 공통으로 주방 천장을 높여 집 안에 들어섰을 때 시원한 개방감을 준다. 각 방은 적재적소에 창을 배치해 바람은 통하게 하고 풍경은 끌어 담아 몸과 마음이 시원하다. 20년 간 통나무주택을 지어온 김 대표는 일본에서 처음 취미로 집 짓는 것을 배웠다. 이후 활동 영역을 넓혀 차곡차곡 지식을 쌓아 포스트&빔 공법에 대한 교본을 만들고 통나무주택 짓기 프로그램도 운영할 정도로 깊은 내공을 다졌다. 조금만 더 약았다면 생활은 좀 더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남은 건 손에 박힌 굳은살이 전부라는 김 대표. 그는 “지금은 바빠서 교육을 진행하지 않지만 통나무주택에 관심 갖고 배우고자 하는 분들은 언제나 공사 현장에 참여해 무료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환영의 뜻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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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전원주택라이프] 전원주택_양평 통나무주택_목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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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전원주택라이프] 전원주택_양평 통나무주택_목지가
- 월간전원주택라이프 http://www.countryhome.co.kr 남한강 모던 & 컨츄리 스타일 양평 통나무주택 마을 앞의 냇물이 너무 맑아서 달이 그냥 지나지 못하고 몸을 씻고 간다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洗月里. 이곳 남한강행복마을 전원주택단지 최상단에 앉혀진 주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강과 산줄기를 굽어보고 있다. 건축주 부부가 예전 주말주택 건축 경험을 바탕으로 지은 통나무 기둥 & 보 공법 상주용 전원주택이다. 세라믹 사이딩과 징크로 마감한 모던하고 심플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구조재인 통나무 기둥과 보, 도리를 그대로 노출해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살린 컨츄리 스타일이다. 글 최은지 기자 | 사진 윤홍로 기자 | 취재협조 통나무건축 목지가 HOUSE NOTE DATA 위치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건축구조 통나무 Post & Beam(캐나다 방식) 대지면적 1,157.03㎡(350.00평) 건축면적 109.09㎡(33.00평) 건폐율 9.42% 연면적 161.98㎡(49.00평) 1층 109.09㎡(33.00평) 2층 52.89㎡(16.00평) 다락 56.19㎡(17.00평) 용적률 14.00% 설계기간 3개월 공사기간 3개월 건축비용 3.3㎡당 600만 원 설계 및 시공 통나무건축 목지가 010-7599-6332 blog.naver.com/howtolog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징크 벽 - T18 세라믹 사이딩(고노시마) 데크 - 캔퍼스(하드우드) 내부마감 천장 - 도배, 레프파인 벽 - 도배 바닥 - 강화마루, 레프파인 계단 디딤판 - 레드파인 집성목 단열재 지붕 - 글라스울 R30 내단열 - 글라스울 R21 외단열 - 글라스울 R30 창호 독일식 시스템창호 주방기구 한샘 위생기구 대림 난방기구 기름보일러(경동), 벽난로, 필름난방 지형지세를 활용한 주택 배치 부부는 2005년에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 주말용으로 통나무 원형圓形 기둥·보 구조에다 2″×6″경량 목구조를 가미한 하이브리드 주택을 지은 바 있다. 그리고 10여 년간 주말마다 그곳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다가 최근 남편의 은퇴 시점에 맞춰 이곳에 상주용 전원주택을 지은 것이다. 부부는 세월리 남한강행복마을의 어떤 매력에 빠져 정착한 것일까. “분양 소식을 접하고 처음 찾았을 때 남한강을 끼고 단지로 들어오는 길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또 멀리서 휘감아 들어온 남한강 물줄기가 단지 앞에서 머물다가 빠져나가는 형국이기에 풍수적으로 좋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산과 강이 모두 바라보이고 햇살이 잘 들며 전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에 주택을 짓고 싶었는데, 이 마을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했어요.” 부부가 매입한 대지는 서쪽의 양자산과 동쪽의 남한강 사이에서 있는 서고동저西高東低 지세로, 대지에서 바라보면 개군산, 남한강, 주봉산, 양자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지의 서쪽과 남쪽은 주택이 들어선 필지에 접하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푸른 숲이 감싸며, 단지 내 진입로는 동쪽으로 나 있다. 주택은 조망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산 비탈면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북쪽으로 최대한 붙여서 배치했다. 레벨 차가 나는 전면 마당과 집터 간 경계는 조경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언덕 정원으로 꾸몄다. 이로써 푸른 언덕 위의 주택에선 가까이는 마당의 조경을, 멀리는 주변의 산과 강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고정관념을 깬 통나무주택의 변신 주택을 짓기 전 부부는 건축 구조에 대해 고민했다. 예전 주말주택은 통나무 기둥이 굵은 원형이라 중후한 느낌은 좋았지만, 외관이 다소 투박한 데다 실내 공간 활용 면에서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다. 부부는 그런데도 이번에 또 통나무주택을 지은 것이다. “3년간 다양한 구조를 알아봤는데, 그래도 오래 생활해온 통나무주택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쉬웠던 통나무 기둥이 최근 얇아지고 모양도 사각으로 가공하기에 원하는 스타일의 주택을 지을 수 있겠더라고요.” 부부는 주말주택 건축과 리모델링으로 인연을 맺은 목지가에 설계·시공을 맡겼다. 한 업체에 연이어 주택을 맡기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 집에서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고, 목지가는 무엇보다 저희가 원하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어요. 이번 집도 디자인이 잘 나왔는데, 특히 냉·난방비가 전보다 훨씬 적게 나와서 좋아요. 지난겨울 월평균 기름값 10만 원, 난로용 펠릿값 5~6만 원으로 실내 온도를 24℃로 유지하고 지냈으니까요.” 이 주택은 통나무 사각 기둥 사이에 경량 목구조재를 넣고, 그 사이 중공층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단열재를 충진했다. 여기에 단열과 기밀성이 좋은 독일식 시스템창을 적용했기에 자연 에너지 효율성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외관을 모던하고 세련되게 디자인하고 요즘 유행하는 징크와 세라믹 사이딩으로 마감했기에 외부에선 통나무주택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그 구조를 짐작할 수 없다. 서재를 활용한 공간 분리 이 주택은 수납공간 확보와 실별 공간 분리가 눈에 띈다. 복도를 기준으로 현관, 공용 화장실, 수납공간, 계단을 후면에, 주요 공간인 거실, 주방/식당, 서재를 전면에 배치한 구조다. 주차 공간이 있는 주택 후면 중간 부분의 현관으로 들어서 중문을 열면 먼저 복도와 마주한다. 복도 우측이 주방/식당, 수납공간이고, 좌측이 거실과 안방이다. 그리고 현관 앞에 내벽을 통해 복도를 만들어준 서재가 거실과 주방/식당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한다. 주택의 메인 공간인 거실에 마당과 주변 풍광을 한눈에 담아낸 큰 창호가 있다. 거실과 주방/식당은 복도를 통해서, 또 서재에 대각선으로 낸 개구부를 통해서 연결된다. 아내는 “거실은 쉬는 공간이라 주방의 물소리나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소음이 될 수 있어 주방과 떨어뜨리고 서재를 가운데에 넣었다”며 “남편이 공부하거나 책을 보다가 두 공간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2층은 출가해 가정을 이룬 두 아들네 가족이 오면 머무르도록 계획한 공간이다. 1층 현관 옆 포겟도어를 열면 나오는 계단을 오르면 좌우로 고풍스럽게 꾸민 방과 미니 주방이 있다. 또, 마당을 바라보며 안쪽으로 들어서면 통나무주택의 매력을 발산하는 거실이 나온다. 천장을 박공구조에 맞춰 높이고 창을 크게 내 개방감이 들고 조망은 절정에 이른다. 그 한쪽에 터널 형태로 비밀의 공간처럼 디자인한 다락이 있다. 건축주는 앞마당을 넓게 계획해 조경을 갖추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제가 정원에 관심이 많아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땄어요. 이 기회를 통해 알게 된 지식으로 거실 앞을 데크, 꽃밭, 잔디 정원으로 구분하고, 정원에 소나무, 반송, 철쭉, 삼색 조팝, 등을 심고, 사초 정원도 만들고 싶어 핑크뮬리 같은 식물도 심었어요.” “금요일이면 유치원을 마치자마자 손주가 이곳에 와서 정원을 맘껏 뛰놀고, 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개울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주말을 보내다 간다”는 부부. 지금 풍광 좋은 곳에 들어선 마당 예쁜 통나무주택에선 도심의 아파트에서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추억이란 이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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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전원주택라이프] 전원주택_양평 통나무주택_목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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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통나무주택] 남한강 모던 & 컨츄리 스타일
- 남한강 모던 & 컨츄리 스타일 통나무주택 마을 앞의 냇물이 너무 맑아서 달이 그냥 지나지 못하고 몸을 씻고 간다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洗月里. 이곳 남한강행복마을 전원주택단지 최상단에 앉혀진 주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강과 산줄기를 굽어보고 있다. 건축주 부부가 예전 주말주택 건축 경험을 바탕으로 지은 통나무 기둥 & 보 공법 상주용 전원주택이다. 스타코플렉스와 징크로 마감한 모던하고 심플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구조재인 통나무 기둥과 보, 도리를 그대로 노출해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살린 컨츄리 스타일이다. 글 최은지 기자 사진 윤홍로 기자 취재협조 통나무건축 목지가 <기사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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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통나무주택] 남한강 모던 & 컨츄리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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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전원주택라이프] 전원주택, 양평 목조주택_목지가
- 월간전원주택라이프 http://www.countryhome.co.kr 양평 통나무주택 통나무에 담아낸 가족 사랑 동갑내기(57)인 이종완·이명희 부부는 인터뷰 내내 신혼부부처럼 깨소금이 쏟아졌다. 남편은 부부 동반 모임에서 통나무주택을 배경으로, 원목 데크 위를 무대 삼아 멋들어진 노래 한 곡을 뽑아냈다. 사방이 탁 트인 대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며 부르니 흥이 절로 났다. 부부는 올해 입주했지만, 마치 몇십 년은 살고 있었던 듯 이 주택의 포근함에 푹 빠져 있었다. 글 김경한 사진 최은지 취재협조 목지가 http://blog.naver.com/howtolog * 건축 정보 DATA · 위치 :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 대지면적 : 429.00㎡(30.00평) · 건축면적 : 72.60㎡(22.00평) · 연면적 : 112.20㎡(34.00평) 1층 72.60㎡(22.00평) 2층 39.60㎡(12.00평) · 건폐율 : 16.92% · 용적률 : 26.15% · 건축구조 : 통나무 포스트, 빔 목조 · 용도 : 수변구역 · 설계기간 : 2015년 10월 ~ 2015년 11월 · 공사기간 : 2015년 11월 ~ 2016년 2월 · 공사비용 : 1억 8천7백만 원(3.3㎡당 550만 원) MATERIAL · 외부마감 : 지붕 - 이중 그림자 슁글 외벽 - 시다 사이딩, 징크 · 내부마감 : 벽 - 레드파인 루버, 편백 루버, 파벽돌 천장 - 레드파인 루버, 편백 루버 바닥 - 강화마루 창호 - 미국식 시스템 창호 · 단열재 : 지붕 - 인슐레이션 R30 외벽 - 인술레이션 R19 설계 및 시공 목지가 010-7599-6332 http://blog.naver.com/howtolog 두터운 신뢰 위에 쌓은 집 “부부 사이가 워낙 좋다 보니 여기 올 때마다 새로운 활력을 얻고 가는 기분이에요. 사모님이 차려주신 밥상엔 부부가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고들빼기며, 고춧잎, 들깻잎이 올려지는데, 그 쌉싸름한 자연의 맛이 웬만해선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자꾸 찾아오게 되더라고요.” 건축주에게 설계 시에 특별히 무엇을 요구했는지 묻자, 목지가 김종근 대표는 부부를 칭찬만 하다 근처 현장으로 서둘러 떠났다. 부부에게 물어봐도 답변은 김종근 대표와 비슷했다. 자신들은 김 대표를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크게 요구한 사항은 없었다는 답변뿐이다. 김종근 대표조차 얼마나 답답했던지 “집이 지어지는 모습이 궁금하지도 않냐”며 제발 현장에 와보라고 다그쳤을 정도다. 물론 김종근 대표는 부부에게 시공 과정을 시기마다 휴대폰 사진으로 전송해주긴 했다. 또한, 부부 입장에서도 목지가에 공사를 맡기기 전에 이미 사전조사를 철저히 마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부는 목지가를 시공업체로 선정하기 전, 김종근 대표가 일본 유학 후 처음 지었던 집부터 최근에 지은 집까지 두루 다니며 집주인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평균 4~5년을 살아온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살아보니 정말 좋다는 것이었다. 사전 데이터를 충분히 수집한 부부는 바로 목지가와 시공 계약을 맺었다. 가족이 함께 만족하는 공간 부부에게 요구사항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설계 단계에서 자신들의 취향과 바람을 살짝 내비쳤다. 집이 들어설 부지가 전망이 좋으므로 최대한 이점을 살려주고, 안방은 몸이 안 좋은 아내를 위해 친환경적으로 시공하기를 원했다. 김종근 대표는 전망을 살리기 위해 사방으로 창을 크게 냈다. 그 덕분에, 부부는 왼편으로 은은하게 흐르는 남한강과 오른편으로 멋스럽게 뻗어있는 양자산 줄기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밤이 되면 남한강 줄기를 따라 뻗은 도로의 가로등이 멋진 야경을 선사한다. 이사 첫날에 안주인은 확 트인 창문 사이로 쏟아져 내린 밤하늘의 별빛에 마음을 빼앗겨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대학 공부 때문에 시화신도시 아파트에 머무는 자녀들이 친구들을 데려와 별장처럼 쓰고 갈 정도다. 자녀들이 친구를 데려올 때마다 마치 교대하듯 시화신도시로 떠밀려 가는 부부지만, 그래도 자녀들이 즐거워하니 그걸로 크게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양평 주택은 통나무로 지었으므로, 전체적으로 친환경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집이다. 아내 사랑이 각별한 남편은 추가로 아내를 위한 선물을 했다. 몸이 안 좋은 아내가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안방 전체를 편백나무로 마감 처리한 것이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가 다른 나무에 비해 5배나 많이 방출하고, 항균작용이 뛰어나 진드기 번식을 막아주며, 면역력을 증가시켜 감기 예방에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골 인심이 그리워 찾은 곳 집을 소개하던 부부는 서로를 다그치는 듯하면서도 은근히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그런 부부가 양평 세월리에 위치한 전원주택 단지에 집을 장만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50세대를 분양 중인 이 단지 내에는 현재 10여 세대가 들어서 있다. “비록 아직 지역 커뮤니티를 구성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향후에 주민이 더 들어오면 지금보다 활기찬 마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10여 세대의 주민들은 일주일에 한번 씩은 돌아가면서 고기 파티도 하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나누며 시골 인심을 나누고 있어요.” 사랑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부부가 퇴직할 때 자녀들이 감사패를 직접 만들어서 전달했을 정도로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사랑이 넘친다. 자녀들은 집을 완성하고 난 후에 부부에게 한 번 더 고마움을 표시했었다. 자신들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이처럼 멋진 집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다는 게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뿌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눈이 쌓인 장독대가 보고 싶어 장독대를 손수 만들고 있다는 건축주. 중년의 고개를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그이지만, 여전히 순수한 감성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장독대 사랑은 요리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하는 은근한 마음도 배어 있음을 부부의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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