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건축유형2 황토주택 건축 유형 10選(1)
-
-
■건축정보·위 치 : 충북 영동군 용산면 봉곡리(텃골)·부 지 면 적 : 700평·대 지 면 적 : 200평 ·건 축 면 적 : 42평(다락방 6평 포함)·건 축 형 태 : 통나무 황토주택·실 내 구 조 : 거실, 방 2, 욕실, 간이세면대, 주방·식당, 다용도실, 다락방·외벽마감재 : 황토벽돌 줄눈마감, 시더 베벨 사이딩·내벽마감재 : 한지벽지, 루바·지 붕 재 : 아스팔트 슁글·천 장 재 : 루바·바 닥 재 : 강화마루·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목창호·난 방 형 태 : 심야전기보일러, 벽난로·식 수 공 급 : 지하 암반수·시 공 기 간 : 2005년 10월 ~ 12월·건 축 비 용 : 평당 450만 원(조경비 별도)설계·시공 : (주)웰빙하우징 043-745-0004 www.wellbeingh.com ■건축정보·위 치 : 인천시 강화읍 대산리·부 지 면 적 : 576평·연 면 적 : 1층 35평, 2층 다락방 6평·건 축 형 태 : 목구조 황토주택·외벽마감재 : 황토모르타르·내벽마감재 : 순수 황토벽돌(300×180×160㎜) + 한지벽지·지 붕 재 : 아스팔트 슁글·천 장 재 : 루바 + 한지벽지·바 닥 재 : 강화마루·창 호 재 : 전통살창 무늬의 하이새시·난 방 형 태 : 심야전기보일러, 온돌, 벽난로·식 수 공 급 : 지하수·건 축 비 용 : 총 1억 3200만 원 정도설계·시공 : 일하는 사람들 032-937-7393 www.mogsoo.co.kr ■건축정보·위 치 :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1리·부 지 면 적 : 480평·대 지 면 적 : 270평·건 축 면 적 : 12.5평·건 축 형 태 : 단층 전통 목구조 황토집·평 면 구 조 : 현대식 일(一)자형·실 내 구 조 : 구들방 1, 거실 겸 서재, 주방, 욕실, 부엌, 현관·내·외마감 : 황토 맞벽 후 황토미장·벽 체 구 조 : 황토 이중 심벽치기·바 닥 재 : 황토, 운모, 백모래 혼합 황토·창 호 재 : 우드 컬러 하이 새시, 내부 목문(세살문)·난 방 형 태 : 전통 구들 및 기름보일러·식 수 공 급 : 지하수 ·정 화 조 : 5인용 오수정화조(혐기여상폭기식) ·시 공 기 간 : 2005년 1월 ~ 2월(2개월)·건 축 비 용 : 평당 300만 원별 체 : 목구조 전통 흙집 (5평, 평당 250만 원) 설계·기술지도 :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011-556-2007 www.koreachoga.co.kr ■건축정보·위 치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태흥리·부 지 면 적 : 362평·대 지 면 적 : 200평 ·건 축 면 적 : 30평·건 축 형 태 : 단층 목구조 흙집·내·외마감 : 황토 모르타르 + 통나무·지 붕 재 : 개량형 한식 기와·천 장 재 : 오량천장·바 닥 재 : 거실- 우물마루, 방-황토 모르타르·난 방 형 태 : 기름보일러·식 수 공 급 : 수도·시 공 기 간 : 2003년 4월 ~ 2004년 3월·건 축 비 용 : 평당 430만 원설계·시공 : 직영 ■건축정보·위 치 :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부 지 면 적 : 240평·대 지 면 적 : 37평·연 면 적 : 45평(1층 - 32평, 2층 - 13평)·건 축 형 태 : 목구조 한옥(납도리 뼈대, 겹처마)·외벽마감재 : 황토벽돌 줄눈마감·내벽마감재 : 황토벽돌 줄눈마감, 황토 모르타르 위 한지 벽지·지 붕 재 : 개량형 한식 기와·천 장 재 : 한지, 노출 서까래 루바(거실)·바 닥 재 : 한지 장판, 원목 쪽마루(거실)·창 호 재 : 전통 창호(띠살문에 한지 바름)·난 방 형 태 : 기름보일러·시 공 기 간 : 2004년 9월 ~ 12월설계·시공 : (주)행인흙건축 031-338-0983 www.hangin.co.kr
-
2006-06-29
-
-
건축유형1 살아숨쉬는 건강 전원주택, 목구조 황토집
-
-
주거 문화의 새로운 키워드는 건강이다. 자연이나 사람과 가장 친근한 건축 소재는 '나무'와 '흙'이다. 골조를 목재로, 바닥·지붕·벽체를 황토로 지은 목구조 흙집이야말로 가족의 건강을 생각한 건강 주택이다.본지 홈페이지(www.countryhome.co.kr)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예비 전원주택 건축주들 대부분이 목구조 흙집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건축을 목전에 두고 다른 구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목구조 흙집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여타 건축 구조에 비해 시공비가 비싸고 관리가 수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과연 그럴까? 관련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하는 사람들'의 유명성 대표는 "목구조 흙집 하면 팔작지붕에 기와를 올린 한옥만을 떠올리기에 건축이 까다롭고 자재나 품삯이 비싸다고 여긴다. 그런데 요즘은 전통 살림집 모양에다 현대 주택의 기능을 접목한 형태들이 많고, 가격이나 편리성 면에서 여타 구조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목구조 흙집의 특징
목구조 흙집은 나무와 흙이 지닌 장점들을 모두 안고 있다. 황토 1그램 속에는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이 2억 마리 정도 있다. 이것은 황토가 살아 숨쉬는 물질임을 증명한다.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황토도 살아서 숨을 쉰다. 황토는 탄산칼슘에 의해 쉽게 부서지지 않는 점력(粘力)을 지니고 있다. 석영, 장석, 운모, 방해석 등 다양한 광물 입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물질이 철분과 함께 산화 작용을 하면서 황색, 자색, 적색, 회색, 미녹색 등의 색깔로 나타난다.건축 자재로 황토의 큰 특징은 적외선보다 파장이 긴 비가시광선인 원적외선을 다량 발산한다는 점이다. 원적외선은 자외선이나 적외선 등의 다른 광선과 달리 인체 흡수가 잘 되고 열에너지 방사율이 높다. 이 원적외선은 현대 의학에서도 생리 작용을 활성화하고 각종 질병에 치유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병원에서도 이것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황토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 "혈색이 좋아졌고 잔병치레가 없다", "실내 공기가 쾌적해 마치 집 밖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황토가 갖고 있는 다른 장점은 높은 단열성이다. 황토는 여름철 뜨겁고, 겨울철 차가운 외기(外氣)를 효율적으로 차단하므로 자연스러운 냉난방 효과는 물론, 주택 내부의 습도 조절 기능까지 한다. 또한 미립자를 통한 통풍 작용으로 주택 내부에 쾌적한 공기 밀도를 유지시켜 준다.
좋은 목재와 황토를 선택해야
목구조 흙집의 수명과 효능을 맘껏 누리려면, 무엇보다 좋은 자재를 선택해야 한다. 목재(수종, 치수, 가구 방식)를 결정하는 일은 뼈대 공사의 핵심이다. 주변에서 벌목한 목재를 사용했던 옛 집과 달리, 현재는 수입 목재에 많이 의존하므로 공사비와 직결된다.원형 목재를 사용할지, 사각 목재를 사용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궁궐이나 사찰과 같은 큰 건축물인 경우에는 치수가 큰 원기둥을 사용했다. 반면 민가의 살림집에서는 주로 사모, 육모, 팔모 등의 각기둥을 사용했다. 산판(山坂)에서 벌목한 국산 소나무(육송) 가운데 춘양목을 선호하지만, 길이의 한계와 희소성으로 값이 비싸기에 대부분 수입 목재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뉴송(뉴질랜드 소나무)이나 미송(햄록이나 더글라스)을 사용하고, 특수한 경우에는 국내 낙엽송이나 잣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또한 흙집의 기능을 제대로 살리려면, 흙 자체의 자연 성분을 헤치지 않는 자재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순수 황토인지, 시멘트 등 첨가물을 혼합한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물론 순수 황토로 만든 흙벽돌이라도 압축 강도가 낮으면 안 된다. 물로 반죽해 만든 벽돌(압출 공법)이 생황토 벽돌(압축 공법)보다 내수성과 내구성이 우수하다. 만약 압축 공법으로 만든 벽돌인데도 내수성이 뛰어나다면 황토에 첨가물을 혼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목구조 흙집의 건축 유형
목구조 흙집의 유형으로는 목재로 뼈대를 짠 후 심벽치기나 흙벽돌로 벽체를 만든 집, 서구식 경량 목구조와 결합한 흙집, 통나무와 결합한 흙집 등이 있다.
심벽집(뼈대집)
나무로 기둥과 보를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흙으로 심벽치기를 해서 만든 집이다. 벽에 흙을 바르는 일을 '흙을 친다'고 하는데, 이 때는 세 번에 걸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통 지붕을 얹으면서 심벽치기를 하는데 욋가지로는 수수깡이나 싸리, 대나무 등을 사용한다. 심벽치기는 먼저 벽면에 '힘살'을 엮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욋가지를 칡넝쿨이나 새끼로 촘촘히 엮어 '외'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외에 흙을 발라 세 번에 걸쳐 심벽치기를 하는 것이다. 초벽치기는 진흙에 5센티미터 길이 정도의 볏짚을 썰어 넣어 쉽게 뭉치도록 해야 한다. 초벌치기 후 충분히 말린 다음 재벽치기를 하는데 이때 쓰는 흙에는 볏짚을 넣지 않는다. 그후 고은 흙 반죽을 벽에 바르는 새벽치기를 한다. 여기에는 모래, 강회 등을 섞기도 한다.
귀틀집
벌목해 다듬은 목재를 우물 정(井) 자로 쌓아 올려 구조벽(집의 무게를 지탱하는 벽)을 만들고, 그 틈새에 흙을 메우는 방식이다. 모서리나 교차 부분은 나무에 홈을 파서 물리고, 나무 사이의 틈은 흙을 발라 메운다. 귀틀집은 깊은 산간 오지에서 주변의 재료를 구해 집을 짓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통나무로 사방벽을 쌓은 하나의 공간이 방이다. 통나무를 사면으로 두 번 쌓아 방 2개를 만들고, 그 사이에 다시 통나무로 쌓아 막으면 3칸짜리 집이 된다. 그러므로 실내에서 기둥을 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목구조 흙벽돌집
황토로 찍은 벽돌로 벽체를 쌓아 올리면 흙벽돌집이고, 나무로 기둥과 보를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흙벽돌을 쌓아 올리면 목구조 흙벽돌집이 된다. 대개 흙벽돌과의 결합을 고려해 원형이 아닌 사각기둥을 쓰며 처마도리를 사용한다. 나무 기둥과 흙벽 이음매의 틈 발생을 감안해 주로 흙벽돌 이중 쌓기 등의 보완 작업을 거쳐 시공한다. 현재 가장 대중적인 흙집 유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목구조를 이용한 건물의 폭과 길이가 자유롭고 2층(복층) 형태도 가능하다.
정리 박창배 기자
-->
-
2006-06-28
-
-
[목조주택 교실] 천장과 지붕의 골조시공(2)
-
-
박공벽과 돌출 부분의 시공
지붕 구조체를 시공한 후, 박공벽의 샛기둥을 높이에 맞게 절단하여 정해진 위치에 못으로 부착한다. 다락을 마감하지 않는다면, 샛기둥의 넓은 면을 벽체와 평행이 되도록 부착한다. 샛기둥의 끝을 서까래 각도에 맞게 절단한 후, 경사 못치기로 벽깔도리와 서까래 아래에 양쪽 끝을 2∼1/2인치(63㎜) 못 4개를 각각 박아서 부착한다(그림 1).
(그림 1과 2)는 박공벽에서 돌출되는 지붕의 일반적인 시공법이다. 돌출된 처마 밑에 사포질을 한 1/4인치(6㎜) 합판이나 알루미늄, 비닐판 등을 붙이고, 처마돌림 판자(Fascia)를 외부 구조재에 붙인다.
박공벽 밖으로 12인치(300㎜) 미만 돌출된 지붕의 끝은 ‘처마 서까래(Rake Rafter)’라고 부르는 부재로 끝맺음한다(그림 2). 1인치(19㎜) 목재를 못받이 띠장으로 박공벽 위에 있는 서까래에 부착한다. 가로막이는 중심 간격을 24인치(600㎜)로 부착하여 처마밑 덮개를 붙이는 데에 사용한다. 이 가로막이는 못받이 띠장에 경사 못치기로 부착하고 처마 서까래에는 마구리 못치기로 부착한다. 그런 다음에 처마밑 덮개를 이들 못받이에 못으로 부착하고 처마돌림 판자를 붙인다.
박공벽 밖으로 12인치(300㎜) 이상 지붕이 돌출되는 경우, 그 부분을 처마장선(Lookouts)(그림 1)이라고 부르는 구조 부재로 지지한다. 박공벽의 샛기둥은 좁은 면이 벽덮개와 평행하도록 설치하고, 그 위에 위깔도리를 붙인다. 처마장선 부재는 일반적으로 서까래와 같은 규격의 목재를 사용하며, 중심 간격을 24인치(600㎜)로 한다. 처마장선의 한쪽 끝은 첫째 번 서까래에, 다른 쪽 끝은 끝막이보에 마구리 못치기로 부착하고, 벽깔도리 위에는 경사 못치기로 부착한다. 그렇게 한 다음, 지붕덮개와 처마 밑덮개의 안쪽 끝을 붙이기 위해서 벽 선 위의 처마장선들 사이에 가로막이를 부착한다. 처마 밑 덮개는 이 가로막이에 못으로 붙이며, 처마돌림 판재를 부착한다. 처마장선의 길이는 처마 폭의 대략 두 배가 돼야 한다. 처마장선의 길이가 서까래 간격의 1∼1/2 이상인 경우에는 처마장선의 안쪽 끝이 붙는 서까래를 두 겹으로 만든다.
평지붕
일반적으로 평지붕은 경사지붕보다 비실용적이며, 특히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서는 내구성이 낮다. 때로는 평지붕을 부속 건물의 지붕, 혹은 위층의 덱(Decks) 바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간이 차고(Carports)나 차고(Garages)는 평지붕으로 흔히 덮는다.
평지붕 구조에서 서까래가 천장장선 역할도 같이 하면, ‘지붕장선(Roof Joist)’이라고 부른다. 지붕장선의 규격은 지붕과 천장의 하중에 따라서 결정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는 적절한 규격의 서까래를 골랐어도 단열재의 부착과 환기에 필요한 공간이 모자랄 수 있다. 이 때는 더 넓은 목재나 공학목재(EWPs)를 사용해야 한다.
지붕장선은 일반적으로 수평으로 설치하여, 그 위에 지붕덮개와 마감재를 덮는다. 지붕장선의 밑 부분은 천장을 지지하는 데에 사용된다. 내력벽체 위에 얹힌 장선 밑에 장선받이 띠장(Ledger Strip)을 붙이거나, 장선 위에 경사지게 목재 띠장을 붙여서 지붕 경사도를 최소한 1 : 50 이상으로 만들어서 배수가 되도록 한다. 지붕이 벽 밖으로 돌출되거나 지붕 위에 난간벽(Parapet)을 설치한 집을 짓는 경우에, 단열재를 천장 바로 위에 붙여도 된다. 이 경우에는 겨울에 결로를 방지하고, 여름에 더운 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단열재 위의 공간으로 환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경질 단열재를 지붕덮개 위에 붙이고, 그 위에 지붕 마감재를 부착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천장 위의 공간을 환기가 되도록 만들 필요가 없다. (그림 3A)는 지붕장선의 바닥이 수평이며 별도의 천장장선이 필요 없는 단순한 평지붕이다. 집 둘레에 처마가 있어야 하며, 처마 서까래(Lookout Rafters)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그림 4). 처마 서까래의 길이는 처마 길이의 두 배 정도로 하며, 벽깔도리 위에서는 경사 못치기로, 첫째 번 서까래의 길이가 장선 간격의 1∼1/2 이상이 되면, 지붕장선을 두 개를 못을 박아 결합해서 끝막이보(Header)로 사용한다. 그리고 서까래 끝막이보(Rafter Header)는 처마 서까래와 지붕장선에 마구리 못치기로 부착한다.
서까래 끝막이보는 지붕덮개, 처마돌림 판자와 처마 밑 덮개를 부착하는 못받이의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처마의 길이는 일반적으로 16∼24인치(400∼600㎜)이며, 4피트(1.2m)를 초과하지 않는다. (그림 3B)와 같은 경사도를 갖게 만들면 ‘경사천장(Cathedral Ceiling)’이 된다. 이 경우 지붕장선은 마루보(Ridge Beam)에 의해서 지지된다.
단열재는 일반적으로 지붕과 천장장선 사이에 부착한다. 단열재 윗면과 지붕덮개 사이에는 환기에 필요한 공간을 최소한 63밀리미터 이상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2×2인치(38×38㎜) 도리(Purlins)를 지붕과 천장 장선 위에 직각으로 교차되도록 부착하면 된다. 쐐기를 2×2인치(38×38㎜) 부재 밑에 끼워서 지붕을 적절히 경사지게 만들어도 된다.
지붕 속의 환기
경사지붕이나 평지붕을 불문하고, 단열재 위의 지붕 밑 공간은 적절히 환기가 되어야 한다. 공기/증기막(Air and Vapour Barriers)을 사용해도, 약간의 습기는 파이프 주위와 그 밖의 구멍 그리고 증기막 자체를 통해서 침투한다. 만일에 수증기가 다락 공간 내와 평지붕 아래에 누적되고, 겨울철에 날씨가 추워지면 온도가 낮은 지점에 많은 양의 결로가 생겨서 피해를 입게 된다. 모든 종류의 증기막은 증기를 거의 투과시키지 않으므로 지붕 속으로 들어온 수증기를 제거하는 가장 실제적 방법은 환기를 하는 것이다.
날씨가 추운 동안, 햇볕과 함께 천장 단열재를 통해서 나오는 열로 인해서 지붕 위의 눈이 녹는데, 이때 처마 위에서 녹으면 안 된다. 눈 녹은 물이 처마 물받이나 처마 위의 지붕에 얼어붙으면 얼음 둔덕(Ice Dams)이 생겨서, 처마에서 물이 역류하며, 벽체와 천장으로 물이 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둔덕은 지붕 골에도 생길 수 있다. 지붕의 단열과 환기가 잘 되면, 다락의 온도가 낮게 유지되어서 지붕 위의 눈이 녹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처마에 적절한 보호 장치와 골 비흘림(Valley Flashings)을 설치하면 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환기를 하는 보편적 방법은 박공지붕과 모임지붕의 처마 밑면에 비늘널(Louvered)을 붙인 개구부나 방충망을 부착한 가늘고 긴 구멍(Slots)을 설치하는 것이다(그림 5). 이와 같은 개구부를 통한 환기는 주로 바람에 의존한다. 지붕 위에 높게 설치하는 용마루 환기구(Ridge Vents) (그림 6A) 혹은 박공벽 환기구(그림 6)와 처마밑 환기를 함께 설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단열재 위에 공간이 없거나, 장선 사이의 공간들이 서로 연결돼서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지붕장선 사이에 단열재를 부착한 평지붕은 환기가 안 된다. 미세한 눈이 바람에 날려 환기구를 통해서 지붕 단열재 위에 쌓이는 지역에서는 앞에서와 같은 환기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그 지역의 시공법을 따라야 한다.
환기구의 크기
지붕 환기구의 크기는 지붕의 경사도와 환기할 지붕 구조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 크기를 환기 개구부의 순면적(Net Area) 혹은 자유면적(Free Area)으로 표시한다.
지붕의 경사도가 1 : 6 이상으로 더 가파른 경우에는, 다락 지붕 공간에 대한 환기구의 최소 순면적은 단열한 지붕 면적의 1/300이다. 예를 들어, 천장 면적이 100제곱미터이면 환기구는 0.33제곱미터의 순면적이 필요하다. 비늘널, 철망 혹은 방충망과 같이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부착하려면, 그 면적을 더 크게 해야 한다.
경사도가 1 : 6 미만이며, 지붕장선으로 구성된(평지붕과 경사천장 등과 같은) 천장의 최소 자유면적은 단열한 천장 면적의 1/150이다. 평평한 천장, 경사도가 낮은 천장 그리고 경사천장은 밑에 다락이 있으며 경사가 더 가파른 지붕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의 지붕 환기 면적이 필요하다.
모든 지붕의 환기구는 건물 지붕의 양쪽에 균일하게 배치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환기 개구부의 최소한 25퍼센트는 환기하려는 공간의 꼭대기에 그리고 최소한 25퍼센트는 환기하려는 공간의 바닥에 배치해야 한다.
지붕 환기구를 설계할 때, 단열재와 지붕덮개 사이의 간격을 최소한 2∼1/2인치(63㎜) 이상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기구와 천장 단열재가 지붕 속의 공기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환기구는 비와 눈, 벌레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환기구와 개구부의 방충망은 부식이 안 되는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락이나 지붕 밑 공간의 출입구에는 단열과 밀폐가 잘 되는 문 혹은 덮개를 부착해야 한다. 특히 집의 난방이 된 실내의 출입구는 더욱 그러하다. 벽장 천장에 출입구를 설치하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에 건물 외부에 박공벽 환기구로도 사용할 수 있는 출입구를 만드는 것이 대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田
자료협조 유재완
031-531-9850, www.logbuilder.co.kr
-
2006-06-28
-
-
[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전원주택의 본질
-
-
이 달에는 '전원주택이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는 전원주택을 쉬운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즐겨 사용하고 있다. 혹, 다 아는 내용을 갖고, 왜 아까운 지면을 할애해 '전원주택의 본질'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떠드는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그렇지만 많은 사람에게 '전원주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는 내용은 잘 알면서도 말로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머뭇거리기 일쑤다."어, 전원주택하면 다 알 것 같았는데 설명하기가 좀 껄끄럽구먼."우리나라에서 전원주택이란 용어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한 폭발적인 경제 성장기와 맞물려 생겨났다고 본다.전원주택은 국어사전에 기재된 '사전적 용어'도, 건축법규나 행정청 등에서 사용되는 '행정적 용어'도 아니다. 즉, 건축 허가나 신고 시 전원주택이란 용어로 인허가를 받지 못한다. 전원주택은 그 발생 동기에서 보듯이 사회 통념적으로 이해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상당 수 사용함으로써 의미나 뜻의 전달이 확립된 '사회적 용어'라고 볼 수 있다.전원주택이라는 용어를 NAVER지식검색 - 사전 - 전원주택에서 찾아보자."대도시(大都市) 근교에 자연(自然)과 접하면서 전원(田園)생활을 맛볼 수 있도록 지은 단독주택(單獨住宅)"영어사전에서는 전원주택이란 용어를 찾기 힘들고, 단지 전원(田園)이라는 용어를 'Farms ; Fields and Gardens' 정도로 표현해 놓았다. 이것도 명쾌하게 정립된 '사전적 용어'가 아니라, 그저 한자 용어를 직역해 풀이해 놓은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문제는 '대도시 근교에∼' 라는 상당히 자의적으로 위치적인 뜻까지 첨부해 설명한 것이다.그런데 이와 비슷한 용어를 보면 한국어에서 '시골' 내지는 '교외'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한글 풀이야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전적으로 시골은 'The Country' 혹은 'Rural District' 그리고 교외는 'Suburbs' 정도로 쉽게 해석된다.필자가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공통점을 찾으려는 것은, 전원주택의 본질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전원주택시장에 종사하는 동료들이나, 예비 건축주들에게 화두(話頭) 정도로 던져 보고자 하는 것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우리가 소위 전원주택이나 단독주택에 대해 흔히 사용하는 용어들은 ①단독주택 ②전원주택 ③농가주택 ④주말주택 정도다. 이 가운데 단독주택이라는 행정적 용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도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필자의 친구들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데, 어떤 친구는 부모님 대부터 물려받은 집 툇마루에 새시를 끼우고 부인을 위해 내부에 화장실을 드려서 제법 그럴싸하게 갖춰 놓고 살고, 어떤 친구는 물려받은 집을 아예 싹 헐고 예쁜 벽돌집을 지어 살고, 어떤 친구는 조립식 패널을 기본으로 외부에 전원주택의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하얀색 사이딩을 둘러놓고 살고 있다.그 친구들의 입장에서 그 집을 바라보면 절대 '전원주택'이 아니다. 한편 농사를 겸하니 '농가주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시골에 터를 잡고 사는 친구들은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내 집'이고 '주택'일뿐, 단독주택이란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다.그럼에도 농림부에서 행정적으로 농가주택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치 전원주택과 유사한 농가주택이니 주말주택이니 하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상당히 정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을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놓고 본다면, 다분히 도시민들만 사용하는 용어임을 쉽게 알 수 있다.마찬가지로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하여 지은 집이나, 아예 퇴직하고 시골에서 노후를 보낼 요량으로 지은 집을 포함해 주말주택 등을 모두 전원주택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기존 시골집을 개조했거나 한옥 형태로 지은 집은 전원주택이라고 하지 않는다.이렇듯 사회적 통념 속에서 만들어진 용어인 전원주택을 명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조그만 한 분야가 아닌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용어로 등장했다는 점에는 쉽게 동감할 수 있다.지금부터 필자의 입장에서 주택 관련 용어에 대해 개념을 분류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앞으로 전원주택시장의 활성화나, 학술적 고찰과 관련한 수준 높은 토론회 등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분류 기준은 사회 통념적 방법으로 잡았다. 행정적·사전적 의미나 도심지의 다가구주택·다세대주택도 본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주택의 종류는 크게 도시형 주택, 전원주택, 농가주택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주말주택과 세컨드하우스 등을 전원주택의 범주에 넣었다.도시형 주택대도시의 주택이나 수도권 신도시 같은 택지개발지구 내의 전용주거용지에 지은 주택을 가리킨다.예를 들어 일산신도시 정발산공원 주변 전용주거용지에 지은 주택을 보자. 외관이나 구조 형식에 목조주택이나 스틸하우스 등이 많기에 주로 전원주택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 대부분은 땅의 크기가 100평 안팎으로, 주택을 짓고 정원을 꾸미고 나면 텃밭을 만들 만한 여유조차 없다. 생활자들은 대도시의 편리한 교통, 의료 서비스, 쇼핑 및 자녀를 위한 학원 등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기에 전원주택이라기보다는 도시형 주택으로 분류하고 싶다.마찬가지로 남양주시 평내지구에 몇 년 전에 조성된 드림사이트코리아의 전원주택단지도 도시형 단독주택 단지에 포함시키고 싶다.전원주택전원주택은 대부분 대지 평수가 100여 평이 넘거나 주변에 텃밭 혹은 농토가 있어야 하고, 도시형 단독주택에 비해 사회적 환경이 열악하지만 자연적 환경이 뛰어난 곳에 위치해야 하고, 건축물을 신축한 시기가 현재 시점으로 20여 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로 한정하고 싶다.그 이유는 전원주택이란 용어를 사용한 88서울올림픽 이전의 집들은, 그 용도가 시골이나 전원에 있더라도 대부분 농어업인의 생계형 주택이거나, 도시의 부유층이 지은 별장이나 세컨하우스 등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주택들은, 사실 전원주택이라는 사회 통념적 개념의 주거 문화를 수용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마찬가지로 현재의 전원주택은 순수하게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한 경우에는, 대부분 그 마을의 세대수가 50호를 넘지 않고 10여 가구나 그 이하다. 대체로 교통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곳이나, 교통 여건이 좋더라도 마을버스의 운행 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지 평수도 150평 이상이 대부분이어서 마당 한 쪽에 바둑이도 키우고 4∼5평의 텃밭도 만든다.전원주택의 위치는 비록 시골이 아닌 도시 근교에 위치했더라도 대부분이 건축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물론 그린벨트 내에 위치했거나, 경기도 의왕시·성남시·광주시의 남한산성 일대 및 용인시 고기동의 경우에는 대부분 전원주택이라고 명쾌하게 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계획상 도시지역에 편입이 되어 건축법의 적용을 받는다.세컨드하우스는 용도상 전원주택으로 분류하기에 좀 모호한 점이 있다. 그렇지만 위치나 건축물의 양식·형태 등이 전원주택 풍이고, 건축주가 퇴직이나 일정 기간 후에는 그곳에서 노후를 보낼 생각이므로 결과적으로 전원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다만 여름 휴가철이나 스키 시즌 등 한 계절에만 이용하는 별장은 전원주택의 범주에 넣지 않았으면 한다. 그 이유는 상시 거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시 거주를 목적으로 한 주택과는 평면 계획 등에서부터 접근 프로세스 내지는 방법 및 유지 관리 측면에서 차이가 많다.물론 주말주택과 별장은 그 경계선이 모호하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월이 지나도 주말주택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짓는 경우에는 전원주택이라고 볼 수 없다. 즉, 현재는 주말주택이더라도 종국에는 상시 거주를 목적으로 해야만 전원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논리로 펜션에 대해 접근해 보자.최근 객실 동의 규모를 주인 거주 면적을 포함해 45평 이하로 제한한 되먹지 못한 악법이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인 거주 공간과 콧구멍 만한 방 하나에 싱크대를 함께 들여놓아야 한다. 거기에 심야전기보일러까지 넣으면 대실 면적이 나올 수 없다. 참으로 답답한 행정 편의적 발상 내지는 행정가의 황제 같은 발상이다. 이 법의 사이드 이펙트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지만, 이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지은 펜션의 상당수는, 그 건축주가 '귀거래사'적 생각으로 설계해 지은 것이다.이러한 펜션은 전원에서 소일거리와 생활비 해결을 위한 방편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건축주 자신이 전원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주인이 기거하는 본채 규모가 30∼40평이고, 별채나 2층에 짓는 객실동이 20∼30평(객실 수 4개 이하)으로 지어졌다. 마당에 딸린 텃밭이나 별도의 농지에다 채소를 가꾸며 전원생활을 즐기는 목적이 컸다. 비록 건축물의 간판은 ○○펜션이라 붙였지만, 전원에서 상시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전원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농가주택농가주택도 필자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닐 때까지 쉽게 들어본 용어는 아니다. 행정부에서 도시민이 농지를 취득할 때, 땅을 사서 그곳에서 1년 이상 농사를 짓고 농업인임을 증명해야 농가주택을 짓도록 한 규정 등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행정 편의적 용어다.그러다 보니 그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농업인이 굳이 자신의 집을 농가주택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기왕 사는 집을 그렇지 않아도 돈벌이도 시원찮고,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어려운데, 집까지 농가주택이란 말로 표현할 리 없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도시로 나간 자녀들에게서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에게 집을 지어 드리겠다는 상담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굳이 농가주택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외국의 경우에도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의 집을 'Farmer's House' 등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농가주택은 뭔가 왜소해 보이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움츠려 들게 만드는 행정 편의적 발상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치부하고 싶다.예를 들어 농사를 크게 짓는 사람이 100여 평의 크고 멋진 집을 짓고 산다고 하자. 분명 그 사람은 농부이지만, 이를 두고 농가주택이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필자의 경우 국문학 전공자나 행정가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에게 내 뜻과 주장을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용어 선정 능력이 부족해 말을 많이 늘어놓는다. 그러나 행정가들은 그렇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어쩌면 사회 통념적 입장에서 농가주택이라는 용어도 점진적으로는 전원주택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의 직업이 농부일수도, 또 대학 교수일 수도 있다. 물론 전원주택은 규모와 위치·주거 형태도 중요하지만, 건축물의 품격도 함께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시골주택과는 달리할 수 있을 것이다.예를 들어 온전한 시골집을 헐고, 평당 공사비 약 300여만 원 이상을 들여서 스틸하우스나 목조주택을 짓고 정원도 가꾸고 산다고 하자. 그 사람의 직업이 집을 새로 짓기 전이나 그후나 직업은 똑같이 농부지만, 이는 농가주택이 아닌 전원주택이라고 온전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필자는 올해 초에 연재 글의 목차를 정할 때만 해도, 이 내용의 글을 써야 하는 시점까지 몇 달이 남았으니 전원주택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과 자료를 긁어모을 수 있으리라 보았다. 게으른 본성과 닥쳐야 하는 한국인 특유의 똥배짱으로 세월만 까먹고, 이제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으니 머리가 꽉 막힌 느낌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누군가 '전원주택의 사전적 정의 내지 본질'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시작했다. 이로 인한 문제 제기가 없었으면 하는 자조적 생각을 하면서…….田글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
2006-06-28
-
-
[역사속의 전원주택] 백두산 기슭의 한민족형 통나무집
-
-
우리 민족에게 역사 속의 통나무집이라 하면, 엉클 톰스 캐빈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전기에서나 보는 이국적이고 생소한 주거 형태다. 그런데 미국 개척 시대에나 있음직한 통나무집 촌(村)을 국경 건너 백두산 북쪽에서 발견했다.백두산, 중국 이름 장백산 기슭 '이도백하'라는 곳에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통나무집으로 이루어진 우리 민족 집단촌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백두산 깊숙이 자리 잡은 내두산촌에 사는 왕년의 명포수 최석도 씨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마을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여느 한국 산촌처럼 무질서하고 빈곤한 느낌의 마을이겠거니 했는데 영 딴판이었다. 비포장이지만 잘 다듬어진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은 집들이 주는 정돈된 인상은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조금도 해치지 않는 깔끔함 그 자체였다.내두산촌은 해발 800미터 고원에 자리한다. 백두산에서 내려오다 보면 만나는 사람 사는 첫 동네라고 해서 오래 전부터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도 부른다. 한국 이곳저곳 산간 마을에 가 보면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별칭이 있는데, 이 동네가 원조일 것 같다. 이국(?) 땅 오지 마을이지만,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고 언론에도 자주 소개된 바 있다.이 산촌은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1930년대 김일성 부대 토벌에 골머리를 앓던 일제의 기획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일제는 밀림을 제 집처럼 헤집고 다니는 김일성 부대의 활동을 제약하고자,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밀림 오지 곳곳에 이런 마을을 세웠다.당시 일제는 인근 이도백하에서 신체 강건한 젊은 사람을 지원 받아 그 가운데 40명의 사람을 뽑아 군사훈련을 시킨 뒤, 소 한 마리와 기본 살림 도구를 주어서 밀림 한복판인 이곳에 마을을 이루어 살게 했다. 김일성 부대를 감시 소탕하면서 농사를 짓게 한 것이다.이 전략 계획은 나중에 영국군이 말레이시아 공산 반군 소탕 때도 사용했고, 월남전에서도 미군에 널리 채택했던 전략촌 개념과도 비슷하다. 촌민들은 생업을 이루다가도 상황이 발생하면 김일성 부대 토벌에 동원됐다. 지금도 마을 뒷산에는 그때 파 놓은 감시 초소용 참호의 흔적이 보인다.나는 이 동네에서 왕년에 호랑이 잡던 명포수 최석도 씨를 만났다. 그의 집에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지내고 막내아들 최광석 씨의 안내로 마을을 둘러보았다.그런데 여기저기에 통나무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초기 이주민들이 힘들게 지은 살림집은 대부분 통나무집이었으나, 근래에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훨씬 크고 넓은 시멘트 집으로 바뀌었단다. 그러나 상당수의 집들이 옛 통나무집을 창고나 외야간으로 사용했다. 최석도 씨 집에도 통나무집이 남아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이들 한민족(韓民族)형 통나무집은 미국형 통나무집에 비해 몇 가지 고유한 특징이 있다. 내두산촌은 고원지대라 그런지 건축 자재로 쓸 만한 굵고 곧은 나무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악조건에서 이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재로 부적합한 가늘고 굽은, 크기도 제 각각인 나무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에 뜬 공간이 많아 다량의 진흙으로 막아 놓았다. 미국의 통나무집이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를 숲에서 풍부하게 채취할 수 있었던 이끼로 막은 것과는 대조적이다.지붕에는 너와라는 판자 기와를 올렸다. 통나무를 조각조각 두꺼운 판재로 켜서 이것을 기와처럼 지붕에 이은 것이다. 이런 형태의 집은 강원도 삼척에서는 굴피집, 울릉도 나리지역에서는 너와집이란 이름으로 관광객을 부른다. 강원도는 방언이나 풍습이 여러 가지로 함경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이것으로 보아 이런 집은 아마도 함경도의 독특한 주거문화인 듯 싶다. 그 영향이 남쪽으로는 강원도, 북쪽으로는 국경 넘어 만주지역까지 흘러 들어간 게 아닐까.동네를 둘러보다가 다른 형태의 민족형 통나무집을 발견했다. 통나무 외벽에 흰 회칠을 한 집이었다. 중국 동북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농촌주택의 한 현상이 눈에 띈다. 즉 벽돌집에는 거의 중국사람인 한족이 살았고, 벽에 흰 회칠을 한 집에는 동포들이 살았다. 반만 년 백의 민족사에 유전인자에 강하게 각인된 백색 선호 본능은 이국 땅 변방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끈질기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내두산촌의 동포들도 이 유전인자가 시키는 본능을 거부하기가 어려웠던 듯했다.동네 한 통나무집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백엽수, 즉 자작나무라는 북국의 나무 껍질로 만든 물받이 홈통이다. 이 북국의 나무는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다. 봄이면 고로쇠나무처럼 수액을 얻지만, 목재가 단단해서 피아노를 만드는 재료로도 쓰인다. 특히 껍질은 매우 견고하고 질겨서 현대의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역할을 한다.내두산촌으로 들어오는 길에 하얀 자작나무들을 하도 많이 봐서, 과연 현지민들이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나 궁금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많은 용도 가운데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지붕의 빗물을 받는 백엽수는 설치한 지 오래됐을 텐데 조금도 변색되지 않아 그 강인함을 실감하게 했다.사흘 밤을 지낸 최석도 씨의 집은 시멘트로 크게 지은 것이지만, 그 형태는 옛 통나무집의 형태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우선 남쪽의 집처럼 큰 방 작은 방, 대청, 마루 등으로 세분되지 않고, 방 하나로 덩그렇게 터 있는 일옥 일실형이다.그 안에 부엌을 드린 것은 이해가 갔지만 아궁이까지 있었다. 저녁을 짓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온기와 함께 향긋한 참나무 연기가 집 안에 은은하게 전해졌다. 어떤 집에는 소를 키우는 외양간까지도 집 안에 있단다. 춥디추운 북쪽 기후에 적응하다 보니 이런 형태의 독특한 주거 형태가 나온 듯하다. 그 덕분인지 영하 25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였는데, 그 집에 머무는 동안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이곳 내두산촌은 독특한 주거 형태로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한국의 역사를 뒤바꿔 놓았을지도 모를 큰 사건이 벌어질 뻔한 사연도 간직하고 있다.1940년대 초 공산계 항일 유격대에 골머리를 앓던 만주국의 일제는 이들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을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전개했다. 노조에[野副] 작전이라 명명한 대 소탕 작전에 만주 일대의 공산계 항일 유격대는 거의 소멸되고 김일성 부대도 소련으로 도주해야 했다.이 작전의 주요 무대 언저리였던 내두산촌의 뒷산 감시병은 멀리 밀림 한가운데에서 모닥불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모닥불 연기는 연달아 이틀 꺼지지 않았다. 무인지대의 밀림 속에서 계속 연기가 오르는 것은, 그 곳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확인한 마을의 무장 민병대는 토벌하기 위해 출동했다. 이들이 무장을 갖추고 출발한 지 불과 몇백 미터를 가지 않아 밀림지대로 들어서는 작은 강을 건널 때였다. 사령관인 한 대장이라는 사람이 짐짓 실수하는 체 하면서 강에 풍덩 빠졌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한 대장은 한참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내가 어젯밤에 아주 흉한 꿈을 꾸었는데, 이제 물에 빠지는 사고까지 만났다. 영 예감이 안 좋다. 우리가 대 참변을 겪을지도 모르는 불길한 징조이다. 우리 모두 처자식이 있는데 오늘 출동은 취소하자."뻔한 일이지만 이심전심이라고 내키지 않은 출동에 동원돼 불안해하던 대원들은 대찬성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닥불 연기는 토벌 작전에 쫓기다 못해 소련으로 도주 길에 올랐던 김일성 부대가 며칠 간 야영하면서 피운 것이었다. 이때 오합지졸 같은 민병대가 아니라 잘 훈련된 정규 부대가 급습했더라면 밤낮 모닥불을 피울 정도로 경계가 느슨했던 김일성 부대는 전멸을 했을지도 모르고, 김일성도 이곳에서 최후를 맞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랬다면 한국 역사는 지금과 크게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내두산촌은 관광지로도 한 번 방문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마을 앞에 끝이 안 보이게 펼쳐진 밀림은 장거리 트랙킹에도 적합하고, 마을 근처에 빠르게 흐르는 강은 계류낚시나 래프팅에도 좋을 듯하다. 마을 근처에 있는 최석도 씨가 발견한 옛 항일 유격대 밀영도 볼거리다. 택시를 타고 옛날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젊은 나이에 죽어 묻혔던 이도백하 부근 소사허 무수촌도 가볼 만하다.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내두산촌 금가루를 가득 뿌린 것 같은 밤하늘의 야경이다. 오염되지 않은 대기가 가득한 고원지대이기에 가능하다.최석도 씨 집에서 민박하면 그 분의 흥미진진한 호랑이 사냥 이야기도 밤새 즐길 수 있다(연락처는 86[중국 국가 번호]-433-572-7555). 농사일에 바쁜 집이므로 밤에 하는 것이 좋다. 막내아들 최광석 씨와 며느리의 친절함과 집에서 만든 두부 맛이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田글 김창원글쓴이 김창원 님은 공인중개사로서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에서 강, 바다, 호수 경관 전문 부동산 '물빛뜨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의 : 02)749-0396. www.waterview.co.kr
-
2006-06-28
-
-
[오행풍수 인테리어] 자연주의적 삶의 보고, 풍수
-
-
집터나 묏자리와 달리 마을이나 도읍이 들어설 터가 생기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쉽게 떠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비보(裨補)의 지혜를 기울여 살기 좋은 명당으로 바꾸어 살고자 했다. 새롭게 길지(吉地)를 구하지 않은 채 마을의 지리적 결함을 치유하고, 지기(地氣)를 바꾸어 지력(地力)을 회복시켰다. 비보 풍수(裨補 風水)란, 병든 땅이 있으면 풍수적 지혜를 기울여 다시 살기 좋은 터로 바꾸는 행위나 그 산물을 말한다. '동수 비보'는 마을로 불어오는 바람을 숲을 조성해 막거나 송림을 가꾸어 홍수와 방풍에 이용하고, '화기 비보'는 앞산이 불꽃 모양의 화산인 경우 화재를 염승하는 연못이나 해태상을 설치하고, '산천 비보'는 국가 왕업의 중흥을 위해 절·불상·탑을 세우고, '지명 비보'는 지명을 조화롭게 이름지어 좋은 기운을 붙잡아 두려고 했다. '수구 비보'는 마을의 지기가 흘러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풍수 시설물을 설치했다.동수 비보마을이 강과 바닷가에 자리잡아 세찬 바람이 불어오거나, 마을을 에워싼 지세 중 북서방이 낮고 허하여 겨울철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입구 쪽에 바람을 막는 방풍림을 조성했다. 이것을 마을 숲[洞藪]이라고 한다.조선 초기에 맹사성이 안동 부사로 부임했더니, 그곳에는 젊은 남자들이 요절해 과부들이 많았다. 풍수지리에 뛰어난 맹사성은 낙동강의 물 기운이 발해서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보고, 곳곳에 나무숲을 조성해 장수의 발복을 일으켰다.해안에 조성한 숲은 해일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늘이 생겨 고기들이 모여드는 기능도 한다. 마을과 도읍의 중심에 천(川)이 통과해 여름에 홍수로 범람할 위험이 있다면, 흙둑을 쌓고 비탈면에 나무를 심어 사태를 막았다. 둑을 따라 조성한 나무숲이 자연스럽게 동수가 된 경우다.화기 비보산에 암반이 드러나 험준한 모양이거나,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형상이면 화산(火山)이라 부른다. 이런 산은 문장가를 배출하는 효험이 있다. 또한 화산은 산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어 마을과 도읍에 그런 모양의 산이 보인다면 화재의 위험이 크다.풍수에서는 "보이는 살(殺)은 해롭고, 보이지 않는 살은 해롭지 않다." 라고 했다. 한눈에 조망하는 국세라면 아무리 멀다 해도 화기가 미친다고 보았다. 따라서 방어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화산의 규모가 크면, 그 산을 차단하고 은폐시킬 대규모 설비를 구축하기 어렵다. 그래서 화산의 영향을 극복할 방법을 다각도로 강구했다. 마을 앞쪽에 연못을 조성해 화기를 수기(水氣)로 제압하거나, 물의 신인 거북과 해태를 화산을 향해 배치함으로써 살기를 소멸시키거나, 또는 나무숲을 조성해 살기를 차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산천 비보풍수지리는 땅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땅도 사람과 같이 생로병사로 기운이 순환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땅에 문제가 생긴다면, 마치 병자를 치료해 건강한 사람이 되듯이 고쳐 쓸 수 있다.풍수의 생기는 산을 따라 흐르다 물을 만나면 전진을 멈추고 기를 응집하는데, 혈에 간직된 기는 바람을 맞으면 흩어져 버린다. 따라서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치는 생기와 감응을 키우거나, 장풍이 되지 못해 생기가 누수되거나, 쇠약한 상황이라면 풍수적 지혜를 기울여 지덕을 발동시켰다. 마을의 입지가 행주형(行舟形)에 해당된다면, 먼 항해를 위해 돛대를 상징하는 당간을 세웠다. 또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 우물을 파지 않았다.또한 생기는 흙을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문다. 고개 마루는 양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흙이 유실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흙의 유실을 막기 위해 고개 마루에 돌을 쌓아 놓은 뒤 '돌을 훼손하면 재앙을 입는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마을의 성황당은 풍수적 비보물이 민간적 신앙물로 자리잡아 보호를 받는다.지명 비보지명 비보는 비보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비보 형태다. 대개 실제적인 비보의 형태를 시행한 후, 그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부가하는 경우가 많다. 독자적인 기능을 할 때는 지세를 진압(鎭壓)하거나, 형국 보완의 기능을 하는 예가 많다.특히 고을 비보 지명의 경우에는 봉항 형국과 관련한 비보명이 영천, 선산, 진주 등지에 유사한 구조로 나타난다. 또 비봉형(飛鳳形), 무학형(舞鶴形)은 모두 신비스러운 새이므로 성인군자가 나오고, 매우 축하할 때가 아니면 춤추지 않는다. 이런 모양의 마을이 있다면, 그 모양에 상응하는 훌륭한 인물이 나올 운명이라고 본다. 그러나 새는 날아가기 쉽게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영구히 날아가지 못하도록 서식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이와 같이 땅이 사람에게 미치는 힘은 유형이 갖는 영력(靈力)과 동일시된다. 행복을 가져올 운명을 영구히 누리려면, 그것이 힘을 발휘하도록 염승을 해야 한다.경북 영천에는 비봉산이 있고, 봉황을 붙들어 두기 위해 봉이 좋아하는 대나무의 이름을 따 조산을 '죽방산(竹防山)'이라 부른다. 태안의 안흥량(安興粱)은 본래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리었는데, 전라도에서 생산된 곡식을 한양으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이곳에서 자주 파손되어 손실이 컸다. 그래서 이름을 '안흥량'으로 고쳐 불렀더니 뱃길이 편안해졌다. 충주시의 계명산(鷄鳴山)은 진산으로 이 산에 지네가 많이 살아 주민의 피해가 컸다. 그러자 어떤 도사가 지네와 닭은 앙숙이니 산의 이름을 '계족산(鷄足山)'으로 바꾸라고 했다. 그대로 따랐더니 지네는 없어졌으나 충주에서 큰 부자나 큰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종전의 이름인 계명산으로 불렀다고 한다.수구 비보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어찌하여 지리를 논하는가?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다음은 들의 형세를 본다. 다음에는 산의 모양을, 다음은 흙의 빛깔을, 다음은 조산(朝山)과 조수(潮水)를 본다. 무릇 수구가 엉성하고 널따랗기만 한 곳은 비록 좋은 밭이 만 이랑이고, 천 칸의 집일지라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패가한다.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보아서 구할 것이다." 라고 했다.전통적으로 마을의 입지를 정할 때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배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수구라면 지리적으로 우수한 곳이다. 따라서 마을 입구 넓은 곳은 지기의 누수를 막기 위해 여러 비보책을 강구했다. 조산 숲은 마을을 에워싼 청룡과 백호의 기세가 약하면 인위적으로 흙 동산을 쌓고 나무숲을 조성했다. 마을 진입로의 경사가 급해 기가 누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구 부에 돌탑을 조성하기도 했다. 또한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같은 정자나무를 심거나 경제력이 약한 마을은 풍수지리와 민간 신앙을 결합한 형태로 조산과 돌무더기 대신에 솟대, 선돌, 장승 등을 세웠다.지금까지 열두 번에 걸쳐 풍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동양의 전통 학문은 서구의 과학 중심의 학문에 가려져,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면이 있었다. 최근 들어서야 산업 문명이 낳은 인구 폭발, 환경 오염, 자원 고갈이란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하자, 그 대안으로 오히려 서구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즉, 동양의 정신 문화가 서구 기술 문명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나아가 인류의 번영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 선두 중에 하나가 풍수다. 그것은 풍수가 가진 자연 친화적인 측면 때문이다.풍수는 자연이 가진 내재 가치와 고유한 질서를 존중하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어울려 가며 함께 사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연 생태계 전체와 유기적 조화를 이룰 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중국 천진대의 샹 쿠오(Shang Kuo)교수도 "풍수는 역사적인 진리를 가득 담고 있으며, 현대의 조경학과 생태 건축학의 기본 방향 및 원칙과 부합되는 내용이 풍부하여 21세기 인류에게 공헌할 바가 많다." 라고 했다.물질적 풍수만이 사회적 성공의 판단 기준이 된 오늘, 우리들에게 풍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다시 자연친화적인 삶을 찾아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고,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양육하며, 땅의 가치를 재인식하며, 국토 개발에 앞서 자연 생태계와의 조화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 되새겨볼 가치관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보며 글을 맺는다.田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고제희 님의 오행 풍수 인테리어는 이 달로 연재를 마침니다. 일 년간 귀한 글을 연재해 주신 고제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
2006-06-28
-
-
[고택을 찾아서] 조선 말 격동기, 시대상을 반영한 집 보은 선병국 가옥
-
-
보은 선병국(宣炳國) 가옥은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한국전쟁과 수해로 규모가 많이 축소됐지만, 아직도 그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선씨 가문은 전라도 고흥군 금산면이 본향(本鄕)이다. 전라도 토박이로 지금도 보성에는 선씨 가문 출신 충신의 위패를 모시는 오충사(五忠祠)가 있다. 고흥에서 가문을 거부(巨富)로 만든 사람은 현 종손의 증조부인 선영홍(宣永鴻) 공이다. 종부는 당시 소작료로만 벼 만 석을 거두어들일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거부가 집을 지었으니 당당하고 거대한 장원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솟을대문 밖에 있는 군부대도 이 집의 소유이고, 현재 담으로 둘러진 곳만도 3000여 평이 된다니, 예전의 집 규모를 감히 어림잡기조차 힘들다.
선씨 가문은 단지 돈을 버는 데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증조부나 조부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남달랐다. 종부의 말로는 증조부가 이곳에 자리 잡은 후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다고 한다. 집 앞에 관선정(觀善亭)이라는 건물을 짓고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숙식을 제공하며 가르쳤단다. 그러한 교육에 대한 열의는 해방 후까지 이어졌다. 한학자로 유명한 임창순(任昌淳 1914∼1999)도 여기 출신이다. 그렇다고 선씨 가문에서는 인재들을 모아 가르치면서 후에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동량지재(棟梁之材)로 크기만을 바라면서 공부시킨 것이다. 과연 현재의 부자들 중에서 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연화부수형 터에 ‘工’자형으로 앉혀
집터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 하는 명당으로, 증조부인 영흥 공이 터를 잡아 이주했다. 집은 1919년에서 1921년에 걸쳐 당대 최고의 목수를 초빙해 지었다.
종부는 증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해 잠시 기거할 집을 주변에 마련해 놓고 한꺼번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나무 중에는 멀리 춘양에서 가져온 것도 있다. 춘양목(春陽木)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의 높은 산 지대에서 자라는 소나무로, 그 속이 붉고 단단하며 껍질이 얇아 건축재나 가구재로 많이 쓰인다. 이렇게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선씨 가문이 지금의 삼성가에 비견될 만큼 거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병국 가옥의 구조는 매우 특이하다. 사랑채, 안채, 사당채가 각각 담으로 둘러진 독립된 영역인 데다, 다시 집 전체를 담으로 둘러놓았다. 아마도 외부로부터 집을 보전하고자 이중으로 담을 두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채와 사랑채가 완벽하게 독립된 구성을 한 것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외부 담만 없다면 두 채의 서로 다른 집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이러한 구성은 안채와 사랑채 간의 연결은 철저히 하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좌향을 남향으로 튼 사랑채와 서향으로 튼 안채의 평면은 모두 ‘工’자 형태이다. 이러한 평면 형태는 집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工’자 형태는 불길하다 하여 금기시하는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아산의 맹씨행단이 이러한 형태의 평면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工’자 형태의 평면 형식은 대칭성을 보여 주어 강한 권위를 드러낸다.
사랑채는 남향을, 안채는 서향을 한 이유가 명확치 않다. 사랑채의 남향은 당연하겠지만, 안채의 서향은 여러모로 불편하기에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전체 배치를 보면 사랑채와의 연계를 생각한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집의 권위를 한껏 높여
선병국 가옥은 일제시대에 지어졌다. 집을 지을 즈음에는 와해되기 시작한 조선시대의 규범과 신규범들이 혼재돼 새로운 사회 구조를 형성해 나가던 시대였다. 건축에서도 평면의 구성, 공법, 재료, 규모 등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에 보여 주었던 건축 규제가 흐트러지고, 새롭게 등장한 공업화된 재료를 사용한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건물의 규모를 규제했다. 그 방법은 칸수와 기둥 높이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분 사회가 와해되면서 규제는 무의미해졌다. 경제력만 있으면 크고 좋은 집을 짓게 된 것이다.
선병국 가옥에도 그러한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기단과 초석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했고, 당당하게 원기둥을 높이 세워 집의 권위를 한껏 높였다. 이렇듯 과거의 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났지만, 그 나름대로 자제를 하려는 노력이었는지 처마만은 홑처마로 처리했다.
선병국 가옥이 이전의 집과 다른 점은 격식보다는 실용적인 부분에 보다 많은 배려를 했다는 것이다. 안채와 사랑채에 사용상의 편의를 위해 툇마루를 앞뒤로 다 깔았다. 전면과 측면은 퇴칸으로 툇마루를 처리했고,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뒷부분은 쪽마루를 깔았다. 그 때문에 안채나 사랑채 어느 곳이든 편하게 통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집을 실용적으로 꾸민 모습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안채의 대청이 안채 전체 규모에 비해 작다. 안방도 집의 규모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반면 방을 많이 드렸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집을 다양하게 쓰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다락을 많이 드려 수납공간을 충분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실용성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적 가치가 공고해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가 별채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안채로 가려면 대문에서 돌아서 들어가야만 한다. 안채 입구에는 별도로 중문을 설치했다. 중문에서 안채로 들어가려면 다시 내외담을 돌아 들어가야 하기에 대문에서 안채까지의 여정은 지그재그의 궤적을 그린다. 그만큼 내외의 성격이 더 깊어졌다. 구조를 보면 20세기 초 지방의 상류층에서는 남녀유별에 대한 의식이 사회의 일반적인 추세와 달리 오히려 더 깊어졌던 것은 아닌가 싶다.
집은 사람이 살아야 빛이나
선병국 가옥의 여러 곳에서 솜씨 좋은 목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안채 대들보는 자연적으로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려 사용했다. 이렇게 휘어진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그리 흔치 않다. 문짝을 보면 어느 한 곳도 소홀함이 없다. 안채의 곳간이나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 곳간의 광창(光窓)까지 비례가 잘 맞게 짜여졌다. 곳간 광창은 팔각형으로, 이러한 형식의 창문은 다른 집에서는 안채의 중요한 방에만 설치하지만 다락의 창문으로도 사용했다. 무엇보다 선병국 가옥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 규모에 있다. 사랑채나 안채의 규모가 너무 커 집의 구조가 한눈에 읽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채 마당이 웬만한 집의 부지 전체 크기다. 너무 넓어 축구장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안채 대청에서 마당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사랑채도 마찬가지다. 워낙 대지가 넓어 집 주변을 돌아보는 데만도 한참 걸린다.
지금은 소나무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운치가 있었다고. 이 집을 지은 증조부도 소나무에 애착이 많아서 큰 소나무에는 소나무마다 관리인을 두어 관리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이 집의 사랑채에서는 전통 찻집을, 안채에서는 고시원을 운영하고 있다. 고시원은 16년 전 이 근처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던 사람의 권유로 시작했다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대기하는 사람이 줄을 섰단다. 개인적으로는 문화재로 지정 받은 고택은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전면 개조하지 않으면서도 찻집이나 고시원으로 고택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안주인의 말로는 고시원을 하기 전에는 저녁 때 집에 들어오는 것이 매우 싫었다고. 깊은 밤 불꺼진 집에 들어올 때는 섬뜩하기까지 했단다. 이제는 늘 사람들이 있어 그러한 느낌은 없다고 한다.
집은 사람이 살아야 빛이 난다. 예전에는 하인들이 있어 주인이 집을 비워도 사람 사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 하인들도 없는 집에 단 두 내외가 산다고 하면 적막하고 쓸쓸하기가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선병국 가옥도 너무 넓어서 관리가 하기 힘든 집이다. 만일 이렇게 활용하지 않았다면 마당에는 잡초 우거지고, 불을 때지 않는 구들은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마루와 나무는 갈라지고 터져서 그야말로 흉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종부의 말에 의하면 대청에 아무리 기름칠을 해도 사람이 밟고 지나지 않으면 윤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의 손길이 집을 만드는 것이다.田
글 최성호 / 사진 윤홍로 기자
-
2006-06-28
-
-
어릴 적 꿈을 실현한 강화도 펜션 '거꾸로 된 집'
-
-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생각과 가치를 좋아한다. 변화가 없어도 나름대로 평안과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두고, 우리는 ‘고정 관념에 사로 잡혀 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이 차단된 감옥이 되기도 하고, 더 많은 기회를 상실하게 하고, 공연한 고집과 억지로 자신을 낙후시키기도 한다.
펜션은 이 시대의 획기적인 숙박 개념으로 민박 혹은 콘도라는 정형화된 고정 관념을 깨뜨려 왔다. 젊은이들을 매혹하는 여가 방법을 제시했고, 그들에게 색다른 테마로 신선한 충격을 제공했다. 주인 중심의 숙박 패턴에서 고객 중심의 가치 발견을 가능하게 했고, 다양한 즐거움으로 상당한 고객 만족을 창출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펜션 개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인 펜션이 있다. 그렇다! 건축, 숙박시설 그리고 서비스에 대해 펜션은 우리의 고정 관념을 도대체 얼마나 더 깨뜨릴 것인가?
김포와 강화도를 잇는 초지대교를 건너 가천의과대학 방면으로 조금 진행하다 보면 정말 이상한 집이 한 채 보인다. 지붕을 땅에 처박고, 하늘을 향해 물구나무선 집. 지나가던 차들이 멈추고, 되돌아와 기웃거리는 집. 바로 펜션 ‘거꾸로 된 집’이다.
건축정보
·위 치 :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건 축 면 적 : 37평
·건 축 형 태 : 복층 철근 콘크리트주택
·외벽마감재 : 인조 벽돌
·내벽마감재 : 도배
·천 장 재 : 벽지
·지 붕 재 : 아스팔트 슁글
·바 닥 재 : 데코타일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난 방 형 태 : 기름 겸용 보일러
·식 수 공 급 : 상수도
·건 축 비 용 : 평당 300만 원
설계·시공 : 직영
취재진이 방문한 날, 유감스럽게도 펜션 앞마당에 조성 중이던 연못 일부가 지난 폭우에 무너져 내려 ‘거꾸로 된 집’의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해 보였다. 펜션지기 전용선 씨(46세)가 다급히 일행을 맞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뜯다만 원두막형 개집, 철거를 앞두고 문을 닫은 연탄구이 식당, 비바람에 빛바랜 두 남녀의 허수아비…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낯설고 혼란스럽다. 이러한 환경과 달리 ‘거꾸로 된 집’은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나날이 명성을 더해 가고 있다. 마치 아방가르(avant-garde) 영화 속의 한 장면과 같은 황폐함의 미학이라고 할까? 비호감을 호감으로 선호하는 새로운 삶의 표현이라고 할까? 기존의 제도와 사고 방식을 깨고 싶어하는 이단아적인 욕구라고 할까?
인생 역전을 꿈꾸며
‘거꾸로 된 집’은 펜션지기 전용선 씨의 어릴 적 마음 속에서 태어나,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현실로 튀어나온 건물이다. 마치 만화 같기도 하고 요술 같기도 한 집이다.
전용선 씨는 강화도가 고향이다. 그는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나 어지간히 부모 속을 태우며 공부와는 담을 쌓고 학교라는 제도에 적응하기를 싫어했다고. 자기만의 강렬한 세계를 꿈꾸었기에 일정한 틀에 갇히기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일찌감치 여러 분야의 유통업을 배우기 시작해 최근까지 의류 유통업 전문가로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인터넷 유통의 성장과 함께 매장 유통이 사양길로 접어들 무렵, 양친이 건강하게 사는 고향 강화도에 700여 평의 땅을 매입하고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다. 인생 역전을 꿈꾸며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은 최근까지 운영한 연탄 구이 식당으로 제법 재미를 보았다.
그러나 식당은 전용선 씨의 욕구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어릴 적부터 마음 속에 감춰져 있던 강렬한 욕구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나타났다. 바로 펜션 사업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펜션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경기도 안성에 거꾸로 지은 집 ‘아트센터-마노’를 보고, ‘내가 짓고 싶어 한 건물이 바로 저 건데, 그만 뺏기고 말았구나’하는 억울한 심정을 가졌다. 다음 날 바로 안성으로 달려가서 그 건물을 살펴보고, ‘아, 이것이 어릴 적부터 내가 짓고 싶어하던 집’이라는 내면의 욕구를 깨달았다.
처음엔 카페와 갤러리를 꿈꾸었다. 그가 좋아하는 추상화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이 거기까지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강화도에서 가장 잘 되는 사업인 펜션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갤러리 거꾸로 된 집’이 ‘펜션 거꾸로 된 집’으로 바뀐 것이다.
기발한 발상으로 고객 호기심 자극
그는 모두 다섯 채의 이상한(?) 집을 계획하여 짓고 있다. ‘거꾸로 된 집’, ‘누워 있는 집’, ‘일어서는 집’, ‘공중에 뜬 집’ 그리고 ‘갇혀 있는 집’이 그것이다. ‘거꾸로 된 집’은 2004년 4월에 건축을 시작하여 장장 7개월 만에 완공했다. 모두 37평에 5개의 룸을 드린 아담한 집이지만, 혼자서 설계하고 인부를 부리며 감독 시공해야 했기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집을 맡길 만한 전문가를 만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커플 룸으로 황금방·공주방, 가족 룸으로 대박방, 단체 룸으로 사랑방·화합방을 꾸몄다. 각 방의 명패도 거꾸로 붙였음은 물론이다.
‘거꾸로 된 집’은 미완성 상태다. 지하주차장을 만들어야 한단다. 아니, 집을 다 지어 놓고 지하주차장이라니? 다름 아니라 바로 펜션의 옥상을 말한다. 그래서 승용차 한 대, 지프 한 대를 거꾸로 주차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아마도 멀리서도 잘 보이는 명물이 될 듯하다.
그리고 보일러실을 ‘누워 있는 집’으로 만들었다. 작지만 옆으로 달린 문을 열 수 있도록 하여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갇혀 있는 집’은 현재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종의 구치소 형태의 원룸이라고 한다. 철창이 있고 쇠 침대에 면회 장소까지 있다고 하니, 고객들이 이색적인 체험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일어서는 집’과 ‘공중에 뜬 집’은 건축 전이다. 현재의 연탄 구이 식당을 부수고 5월부터 3개월에 걸쳐 고급 레스토랑인 ‘일어서는 집’을 지을 계획이다. ‘공중에 뜬 집’은 현재의 연못 위에 건축할 예정이다. 어떤 기술로 어떤 모양의 집이 될지는 그만이 아는 비밀이다.
세계 민속 박물관을 향하여
펜션 ‘거꾸로 된 집’의 진면목은 야경에 있다. ‘거꾸로 된 집’의 하늘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한 끝에 연못을 파고 집이 바르게 비춰진 물 위의 경치를 연출했다. 그래서 연못을 두고 하늘이라고 한다. 이 연못에는 온통 블루 컬러의 조명을 설치했다. 그리고 깜깜한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의 조명을 바닥에 깔아 둔 거대한 정원이 된다. 그래서 고객들은 이 놀라운 야경에 그만 취하고 만다. 나지막한 언덕에 오픈 카페를 마련했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거꾸로 된 집’의 진면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펜션지기 전용선 씨는 아직은 펜션의 질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예산이 부족하여 자신의 꿈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아 죄송하다고. 어쩌면 어설프고 성숙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촌스럽거나 경박한 느낌도 인정한단다. 그러나 젊은 고객들이 그래도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멀리 경상도에서도 달려오는 고객들을 바라보며 ‘아무쪼록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그는 펜션지기로서 간절한 마음을 전한다.
그는 미래에 건설할 ‘세계 민속생활 박물관’에 대한 큰 꿈을 갖고 있다. 이 역시 어릴 적 그의 비전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그는 ‘거꾸로 된 집’에 더 큰 열정을 쏟을 생각이다. ‘거꾸로 된 집’을 통하여 거꾸로 역전된 성공 인생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한다. 그에게 있어 어릴 적 꿈은 미래를 실현해 가는 현실인 셈이다.田
글 김창범 / 사진 윤홍로 기자
-
2006-06-28
-
-
제주 푸른 바다를 끌어안은 펜션 Ocean Vill
-
-
제주공항에서 북제주군 방향 12번 국도에서 용두암을 700미터 남겨 둔 우측으로 경사지를 살려 앉힌 아담한 펜션 ‘오션빌’이 자리한다. 북서향의 바닷가에서 동남으로 길게 뻗은 완만한 경사지에 맞춰 장방형으로 설계한 스틸하우스다. 영롱한 빛을 간직한 바다를 전경으로 연한 파란색의 시멘트 사이딩이 시원함을 더하고, 붉은색 지붕은 햇빛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오션빌’은 휴양 펜션으로 운영한 지 2년 7개월째를 맞아 가족 휴양 호텔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관광 제주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바다와 함께 충분한 휴식 공간을 갖춘 오션빌로 날아가 보자.
건축정보
·위 치 : 제주시 용담3동 1020-4번지
·대 지 면 적 : 1300평
·건 축 면 적 : 173.3평
·연 면 적 : 302.8평(1층 155.3평, 2층 147.5평)
·건 축 형 태 : 스틸하우스
·외벽마감재 : 시멘트사이딩
·내벽마감재 : 방염실크벽지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천 장 재 : 방염실크벽지
·지 붕 재 : 금속기와
·바 닥 재 : PVC타일(아트타일)
·식 수 공 급 : 상수도
·시 공 기 간 : 2003년 8월∼2003년 11월
·건 축 비 용 : 평당 380만 원(조경비 별도)
설 계 : 터 건축사사무소 064-726-7761
시 공 : 제주스틸하우스 064-702-5923 www.jejusteelhouse.com
바다가 펼쳐진 북쪽으로 낮아지는 완만한 경사지를 따라 집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선은 바다에 닿게 앉혀진 곳.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집 앞에는 야자수를 비롯해 나무와 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그 사이사이에는 연못과 그네, 조명기구 등을 설치해 정원을 통해 진입하는 동안 재미를 더해 준다. 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해 하나의 이미지를 추구했다는 제주스틸하우스 장 민 대표. 그는 평소 바닷가 가까운 북제주군에 관심을 두었다고. 노후 소일거리로 펜션을 계획하면서…….
“공항에서 1.2킬로미터 거리인 용두암 관광지는 접근성이 좋고, 시내 중앙로도 차로 10분이면 닿지요. 또한 제주에서 가장 큰 용담해수사우나가 인근에 있기에, 이곳은 휴양지로 안성맞춤이라 보았지요.”
계단 모양의 단이 있던 터는 자연 지형을 살리려고 흙을 메워 경사지로 만들었다. 토목공사를 하면서 틈틈이 가꾼 정원에는 야자나무 20그루와 소나무 450그루를 건물 방향으로 조화롭게 배치했다. 활엽수와 침엽수 그리고 계절별 야생화를 곳곳에 심어 정원이 한층 풍성해 보인다.
펜션에는 10개 객실과 홀 그리고 당구대와 매점이 있는 휴게실, 무료로 사용하는 인터넷과 음식점 등의 부대시설을 배치했다. 객실은 11∼14인의 대가족이 머무를 수 있는 30평형의 가족실 2개와 15∼17평형의 허니문 룸 8개를 갖췄다.
낮에는 시원한 바다로, 밤에는 총총히 박힌 별을 보며
설계 도면을 대지 상황에 맞춰보며 감각을 살리도록 노력했다는 장 대표.
“위치에 따라 전망 좋은 곳에는 발코니를 내고 시원함이 느껴지도록 창을 넓게 드렸지요. 허니문 스위트 룸에는 천창을 내 이용객들이 영롱한 별을 감상하면서 잠자리에 들게 했지요. 1층에는 일반실 격인 디럭스 룸, 2층에는 좋은 경치를 감상하는 허니문 룸을 배치했고요.”
건물을 각 동마다 일체형으로 설계하고 바닷가 방향으로는 발코니를 설치해 방에서도 바다를 한아름 끌어안았다. 입면은 외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포인트를 주기 위해 기둥마다 드라이비트로 마감하고 상부에 등을 달았다. 기둥과 기둥 사이와 처마는 시선이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아치형으로 만들었다. 시멘트 사이딩으로 마감한 외벽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기 위해 흰색에 파란색을 섞은 페인트를 칠했다.
“건물이 복잡하면 보는 사람의 시선이 어지러워지고 피로도 금방 쌓이지요. 제주까지 쉬러 왔는데 피곤하게 만들 순 없잖아요.”
펜션의 전체 분위기를 결정하는 기본 개념을 이야기하는 장 대표. 그래서 나무는 핸드레일 톤으로 방부목과 비슷한 계열로 맞추고, 지붕도 눈에 안정감을 주는 붉은 계열로 택했다. 보름달 모양의 전구와 커버는 방부목과 이질적인 색이 아닌 같은 색인 동(銅)으로 골랐는데, 반구에서 빛나는 불은 마치 반딧불이가 달린 듯하다. 정원에서 현관에 이르는 진입로에는 현무암 절편으로 디딤돌을 깔아 동선을 부드럽게 연결시켰다.
재방문율 높은 성공 휴양 펜션
바닷가라 바람이나 먼지가 잘 쌓여 2주에 한 번은 물청소를 해 항상 새 집처럼 유지하며 24시간 연중 무휴로 오픈을 한다. 지금까지 초기 투자 건축비는 70퍼센트 회수했다.
드넓은 정원 뒤쪽에는 어린이 놀이터를 설치하고, 그 앞쪽에는 두 개의 퍼걸러에 바비큐장을 마련했다. 펜션 외부에 연인이나 가족끼리 즐기도록 설치한 200인치 대형 스크린은 자동차 극장이 부럽지 않다. 바로 옆 건물에는 세미나실과 웨딩홀로 꾸몄다. 현재 뒤편의 땅을 매입해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펜션 홍보는 문을 열 때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신문에 꾸준히 하고 있다. 초창기엔 여행사와 연계해서 홍보를 6개월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어 현재는 하지 않는다고. 대개 스폰서 링크를 통한 인터넷 예매가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이 10퍼센트 정도 된다. 현재 비·성수기를 합해 가동률은 8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중 주중 40퍼센트, 주말 60퍼센트 정도 비율인데 대개 한 번 다녀간 손님이 계속해서 찾는다고. 그 중 허니문을 찾는 손님이 가장 많다고 귀띔한다.
지금까지는 휴양펜션으로 운영했는데 객실 수가 부족하고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아 가족 호텔로 변경하려고 7개월 전부터 준비중이라고. 가족이 찾아올 때 부족함이 없도록 부대시설 등도 점검하고 있다.田
글·사진 최선희기자
문의 064-742-2080, www.oceanvill.com
-
2006-06-28
-
-
[동호인 단지를 찾아서] 자연을 벗삼으니 생명력이 샘솟아 광주 '봄마을' 동호인 단지
-
-
여건이 서로 비슷한 사람이 모여서 전원에 택지를 구입해 공동으로 측량에서부터 토목, 설계, 시공 등을 진행하는 것을 ‘전원주택 동호인 단지’라고 한다. 그 구성원을 보면 마음이 맞는 친구들에서부터 학교 동창이나 동문들, 직업이나 직장이 같은 사람들, 형제자매들, 친목회원들, 취미가 맞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이웃에서 같이 살지만 전원에 가서까지도 함께 살자고 모인 이웃들이 주류를 이룬다. 어찌보면 개발 업체에서 분양하는 단지에 비해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호인 단지는 그 수가 매우 적어 찾아 나서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이유는 택지 구입 단계부터 전용 허가, 토목, 주택 설계·시공, 이전 등기, 제세공과금 납부 등 일련의 절차에 관해 전문 능력을 갖춘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설령 능력자가 있다 하더라도 생업 때문에 나서지도 않는다. 혹, 능력자가 총대를 매고 일을 진행한다 해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잡음이 끊이지 않아 나 몰라라 하며 이내 뒤로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필지 분할에 이르러서는 터가 좋으니 나쁘니 하여 의가 상하기 일쑤다. 그러한 상태에서 담 하나 사이에 두고 어떻게 같이 살겠는가. 결국 시작은 좋았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십중팔구 중도 포기하고 만다.
그런 면에서 광주시 목현리에 자리한 ‘봄마을’은 보기 드물게 성공한 동호인 단지라고 할 수 있다. 서울 강남의 도곡동에서 20, 30년간 이웃사촌하며 지낸 주민들이 조성한 단지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광주와 용인을 잇는 43번 국도 벌원교차로에서 충현동산 쪽으로 10여 분 거리인 목현천 중상류 협곡에 자리한 ‘봄마을’을 찾았다.
봄마을’ 동호인 단지는 10년 전에 계획됐지만, 2001년부터 서서히 마을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지 내에 집을 여러 채 설계한 ‘신영건축사사무소’ 최길찬 건축사는 ‘봄마을’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호인 단지의 특징인 주민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시선 간섭이 적절히 일어나면서, 프라이버시 공간인 거실과 침실 위치 등에 대한 시선은 철저히 차단 배치되어 있지요. 또한 외장재의 통일과 지붕 선의 유사성으로 마을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요. 마치 70년대 초반 새마을사업 때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마을 모습이 동일하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철근콘크리트 건물에 외벽을 황토색 벽돌로 마감하고, 지붕에 아스팔트 슁글을 올린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아담한 마을이다. 산 중턱에 자리한 데다 집집마다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아 마치 ‘하늘 정원’에 들어선 듯하다.
전원에서 제2의 청춘을…
‘봄마을’ 단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마을 왕언니 댁의 설명이다.
“주민은 강남 도곡동 단독주택에서 오랫동안 형제 이상으로 의좋게 지내던 이웃사촌들로, 10여 년 전에 나이 들어서도 한갓진 전원에서 같이 살자고 뜻을 모았지요. 이곳에 부지를 마련하고 터를 닦은 후 5년 전부터 한 집 한 집씩 옮겨오면서 이렇게 작은 마을을 이루었고요.”
부지를 마련할 때는 ‘너무 멀지 않고,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교통 체증이 없는 곳이라야 주말이면 자녀나 형제들이 부담 없이 찾아온다는 이유에서였다. 아파트와 고층 빌딩 숲에 갇혀 지내다 보니 자연물의 상징 격인 산과 물을 그리워했는데, 이는 황폐한 도시 생활에서의 삶에 대한 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부지는 수도권 일대를 샅샅이 훑고 다닌 끝에 지인(知人)의 소개로 알게 됐다. 장마철 처음 찾았을 때는 진입로가 좁아 승용차 교차 운행은커녕 나뭇가지에 차창이 부딪칠 정도였다. 이런 곳에서 과연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속에 막상 부지에 발을 딛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고.
“산으로 둘러싸인 부지에서 바라본 물안개 짙게 깔린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였지요. 부지 앞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도롱뇽이 살고, 제때를 만난 메뚜기들이 사방에서 뛰고, 간간이 꿩이며 산토끼들이 눈에 띄었지요. 이곳이 전원이구나 하는 생각에 전답(田畓) 1900평을 평당 30만 원에 구입했지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산비탈이라 토목 공사비로 평당 25만 원이 들었지만…….”
부지는 1필지당 200평이 안 되게 11필지로 분할했는데, 나누는 과정에서 불만 요인을 없애기 위해 사다리 타기를 했다. 한 세대가 두 필지를 마련했고 현재 8세대가 집을 지어 이주했으니, 두 세대만 더 들어오면 하나의 작은 마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8채 중에는 상시 거주주택이 6채, 하프 앤 하프 주택이 2채다. 토목 공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진입로 확장과 포장 후 이름을 ‘봄마을’이라 지었다고.
“이곳은 용샘골, 용생골, 용산골이라 하는데, 옛날 마을 아래 샘에서 용이 나와 하늘로 승천했다는 데서 유래했지요. 그 지명을 붙일까 하다가 노후의 삶이지만 새 삶을 영위하는 곳이기에 생명이 샘솟는다, 젊고 희망적으로 살자는 뜻에서 ‘봄마을’이라 이름을 붙였지요.” 봄이 지닌 상징성을 전원에서의 삶에 끌어들이려고 한 것이죠.
건축 설계와 시공은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각자 의지대로 했다. 그런데 첫 번째로 들어선 왕언니 집이 신영건축사사무소 최길찬 건축사에게 설계를 의뢰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다 외벽을 벽돌로 마감하고 지붕에 아스팔트 슁글을 올리자, 그것이 하나의 전형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 때문인지 토목에서 설계, 시공에 이르기까지 잘 짜여진 마을처럼 보인다.
마을에서 ‘해피네’로 통하는 아주머니는, 주민들은 저녁 무렵이면 밭일을 하면서, 주말 오후면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다고.
“집을 서로 봐 주는 것은 물론 귀한 씨앗을 구하면 세대수에 맞추어 나누지요. 해 질 녘 텃밭에 모여 풀을 뽑는 모습들이 고대 수도사 같아요. 잡초와 함께 잡다한 생각들까지 뽑아 버리면서 희열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조카네-현대판 효녀 심청전
봄마을에서 ‘조카네’로 통하는 이 집은 대지 140평에 연면적 56평(1층-35평, 2층-21평) 복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다. 도곡동에서 살지 않았는데도 숙모인 해피네 덕에 1년 전 무임 승차했단다. 시집 간 두 딸이 치매를 앓는 아버지(85세)를 위한 휴식 공간으로 집을 지었기에 ‘심청이네’로도 통한다. 한 번은 큰딸이, 한 번은 작은딸이 아버지를 모시고 번갈아 가며 노원구 중계동에서 이곳까지 오간다. 이곳에 오면 아버지가 정신이 맑아지고 혈색이 돌면서 걸음걸이도 한결 편안해진다고.
최길찬 건축사는 설계 시 주택 우측 편에 있는 덱에 앉아 있으면 산의 정기를 한 번에 다 받도록 중점을 뒀다. 또한 주방과 거실에서 북쪽 위치한 대지의 정원을 마음껏 감상하도록 시선을 연결하고, 북쪽 집의 프라이버시 공간에 대한 시선은 차단했다.
왕언니네-마당 가득 자연을 담아
김성균(70세) 씨 댁은 ‘왕언니네’로 통하며, 봄마을에 일찍부터 들어와 생활하면서 터주대감 역할을 하는 토박이 집이다. 마을로 진입해 남측으로 내려와 4미터 도로가 끝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대지 150평에 연면적 51평(1층 - 31평, 2층 - 20평) 복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다.
허허벌판에 처음 이주했기에 울타리에 잣나무와 전나무를 심어 숲 속에 둘러싸인 집처럼 느껴진다. 최길찬 건축사는 대문에서 집을 멀찍이 떨어뜨려 앉힘으로써 집 우측 편 넓은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노부부는 봉사 활동 차 매일 서울로 볼일을 보러 다니는데, 차를 타려면 1.7킬로미터 30분을 걸어야하지만 불편함을 못 느낀단다. 그 자체가 운동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한숨 자야지 하면서도 텃밭으로 나간다고. 고추며, 가지, 오이, 고구마 등을 일궈 먹는 재미에… 첫해는 네댓 평 텃밭을 일궜는데 밭일이 손에 익다 보니 10평으로 커졌단다.
해피네-참나를 찾아 떠나는, 전원생활
강아지 이름을 따 ‘해피네’로 통하는 이 집은 140평 대지에 연면적 49평(1층 - 32평, 2층 -17평) 복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다. 마을 초입 좌·우측에도 집들이 자리하지만, 4미터 도로를 통해 길이 갈리는 지점에 위치하기에 마을에서 첫 번째 집이란 느낌이 든다.
최길찬 건축사는 뒤쪽에 있는 높은 옹벽을 해결하는 것이 설계 작업 시 관건이었다고. 대지 면적이 아담한 데다 옹벽이 높기에 건물을 뒤쪽에다 바짝 붙이고 보일러실을 위치시켰다. 2층에서는 옹벽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식당과 거실에 앉아서 길을 보게끔 시선을 모아서인지 마을 관리사무실 같은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도곡동과 이곳을 오가며 하프 앤 하프형 전원생활을 즐기는데 공기가 맑아서인지 이곳에서는 숙면을 취하고, 바닥을 닦아도 걸레가 깨끗하단다. 봄부터 가을까지 텃밭과 산에 두릅, 취나물, 쑥, 도라지, 더덕 등 먹을 게 지천이라 고기만 사오면 모든 걸 해결한다고.
“텃밭에다 목초액과 감식초를 뿌려서 유기농 채소를 가꾸고 있지요.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텃밭 두세 고랑에 배추 50∼60포기씩 심어 김장거리도 자급자족하지요. 정원에는 영산홍, 백일홍, 장미, 펜지, 한련화, 국화를 심었는데, 겨울에 눈꽃까지 더해져 사계절 꽃 속에 파묻혀 살지요.”田
글·사진 윤홍로 기자
설계 및 자료협조 신영건축사사무소(02-592-0494, 다음카페 ‘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
2006-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