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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2] 똥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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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의 ㅗ를 ㄸ 앞에 돌려 앉히니 '땅'이 되었다. 말의 소리와 글의 모양이 친근하게 닮았다. 똥이 땅으로 돌아가는 순리다.생태 순환계에서 인간 영양분 순환계는 단절이 없는 완전 순환계로 보았다. 곡식이 자라고, 먹거리가 되고, 배설을 하고, 그 배설은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는 어김없는 이치다.천연적이고 유익한 유기물의 대표적인 예가 동물들의 소화 작용을 거친 뒤 배설되는 분뇨라고 했다. 사람의 분뇨가 버려질 때, 그것은 위험한 환경 오염 물질이 되어 질병을 전염시키지만, 재활용하면 토양 영양분이 풍부하게 함유된 가치 있는 유기물 자원이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이치를 거스르며 산다.똥을 물로 버리며 물을 오염시키고 고갈시킨다. 오염된 물로부터 감염되는 질병에 시달린다. 토양 영양분을 변기 속에 버리고 나면 우리에겐 화학 비료가 필요해진다. 과잉으로 사용된 비료는 땅을 얼마나 훼손시키고 있는가.산골에 황토집을 지어 나도 집 안에 화장실을 만들었다. 한 평 정도의 넓이를 변소가 아닌 화장실로 아름답게 꾸몄다. 바닥과 중인방까지의 벽엔 마음에 드는 타일을 붙이고 상인방까지의 벽과 천장은 미장 황토로 마감하여 화장실에서도 서까래를 바라볼 수 있는 멋을 부렸다. 예쁜 용기의 화장품만 거울 앞에 놓고, 집 안에서 가장 예쁜 소품도 화장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만하면 쾌적하게 볼일을 볼 만한데 영 기분이 편하지가 않다. 부산의 아파트에서는 편하게 보던 볼일이 산골에서는 불편하다.변기에 앉아서 올려다보는 서까래에서도 강물이 흐르고, 내려보는 바닥의 타일 위로도 강물이 흐른다. 푸른 산 그림자를 담아 맑게 흐르는 우리 마을 앞 동창강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다슬기가 자라는 강. 청둥오리 떼가 귀엽게 물살을 가르고, 때로는 백로가 짝을 지어 새벽 어둠을 털어 내며 물 위를 날아오르는, 고기잡이하는 마을 아저씨가 물개를 보았다는 강이다.내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도, 우리 집에 들르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감동을 하는 것도 저 강이 맑은 물빛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이면 은빛으로, 아침이면 황금빛으로, 오후 녘이면 산 빛으로 흐르는 강은 때로는 자욱한 안개로 나를 심산유곡으로 데려다 놓는다.아무리 좋은 정화조를 설치했다지만 정화조의 기능은 한계가 있는 법, 어찌 저 강을 오염시키지 않을 것인가. 그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그러고도 몇 달 후에야(참 바쁜 이유로), 나는 몇 해 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뒷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집을 지을 때 목재와 함께 운반되어 온 땔감 판자로 얼기설기 삼면의 울타리를 만들었다. 아래 밭 한쪽에 그것들을 ㄷ으로 세워 놓고, 비워진 오일 스테인 통을 바닥에 단단히 놓아 이사 올 때 준비해 온 변기 뚜껑을 위에 얹었다. 집의 재목을 대패질할 때 모아 두었던 톱밥을 자루에 담아 옆에 두었다. 야외 변소 준비 완료다. 엉성한 솜씨지만(시간이 나면 더 잘 만들어 볼 생각이다) 강을 내려보며 미안하지 않게 편히 볼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톱밥을 덮어 두면 냄새도 나지 않으며, 통이 차면 한 곳에 모아 일 년 동안 숙성시키면 좋은 퇴비가 된다.여러 책 중에서 조셉 젠킨스의 《인분 핸드북》을 몇 해 전 대학 레포트 제목으로 택한 것은 나의 전원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인분을 퇴비화한 내용 속에는 들통 퇴비화 변기를 간편하게 만드는 법이 잘 설명되어 있었다. 톱밥이나 왕겨를 즉시 덮어 두면 실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오늘날 인간의 생활 행태가 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생물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내용은 참으로 사실적이다. 인간을 미생물로 생각하는 차세대 양자 역학적 시각으로 볼 때, 사람은 지구에게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지구의 건강과 안녕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원을 소비하고 해로운 폐기물을 방출해대는 행태. 경제 성장, 소비 정가, 물질적 풍요, 물질적 이익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오늘날 인간의 작태는 기주寄主 생물을 죽이고 끝없이 증식하는 병원 생물과 너무나도 비슷하여 소름이 끼친다는 것이다.그의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들 아버지가 그리도 부지런히 퇴비를 마련하던 때를 떠올렸다. 헛간의 퇴비 무더기로 땅 넓이를 가늠했다. 가진 땅에 비해 퇴비 무더기가 적을 때면 이웃에게 부끄럽게 여기던 어른들이었다. 인분과 건초의 적절한 배합으로 일 년을 숙성시켜 검은 빛깔의 좋은 퇴비를 마련하여 논과 밭을 기름지게 하던 아버지의 노동이 선연히 떠올랐다.서양 세계의 농토가 수세기 동안에 황폐화한데 비해,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의 농토는 수천 년을 비옥토로 유지해 오며 식량을 생산해 온 것은 인분을 재순환시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게 해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시골 같지 않게 잘 지은 양옥에 수세식 화장실이 갖추어 있고, 좋은 거름이 되는 똥은 냇물과 강을 오염시키며 넓은 세상 바다로 가고 있다. 대신 들에도 과수원에도 비료가 많이 뿌려진다. 과일과 여러 먹을거리들이 옛날처럼 맛이 없다는 것은 비단 입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맑은 공기와 오염되지 않은 좋은 물을 먹고 정원이 아름다운 집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자연을 보호하고 땅을 살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것이다. 시골집을 마련해 놓고 수세식 화장실이 없으면 아이들이 들르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뒷간을 모르는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내가 만들어 놓은 뒷간 앞에서 나는 우리 아이들을 설득시킬 말에 골몰한다. "인분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비료라는 것을 과학은 알고 있다. 이 퇴비 더미가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꽃들이 만발한 화단이며, 녹색 풀밭이며, 박하 백리향 세이지 같은 향신료이며, 밀이며, 식탁 위의 빵이며 우리 몸 속을 돌고 있는 따뜻한 혈액인 것이다."빅토르 위고의 말을 아이들에게 들려줄까. 그 말이 엄마의 마음이라고. 그리고 저 강을 가리키며 아름다운 강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이것부터 실행해야 한다고 이를 것이다. 내 아이의 아이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단단히 가르칠 생각이다.田글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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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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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 전원주택과 닭-닭과 병아리를 기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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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기르는 작은 즐거움나는 어려서부터 새와 물고기, 애완견, 닭 등 동물 기르기를 좋아했다. 화사한 봄날에 어미 닭을 따라다니는 귀여운 병아리 모습을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내가 단독주택에 살고 싶었던 주된 요인 중의 하나도 바로 동물을 기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편하고 살기에 좋지만 어떻게 귀여운 병아리들을 기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랴? 그래서 탈아파트를 하여 내 집을 짓고 맨 처음 한 것이 닭장을 짓는 일이다. 지금은 처음 입양했던 놈들과 그 2세들을 기르고 있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닭을 기르거나 동물을 기르는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 그런데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가 탄생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살림에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괜히 마음이 풍성하고 즐겁다.서울이라는 데서 닭을 기른다?나는 매일 아침 '꼬끼오∼' 하고 울어대는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복잡한 도시에서, 그것도 요즘과 같은 시대에 서울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생경하기도 하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시골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아득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닭들도 경쟁을 일삼는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첫 울음 소리가 울리면 여기저기서 서로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마치 "야! 나도 일어났다∼. 모두, 일어들 나거라"는 듯이 목청을 높여 울어댄다.하여간에 닭이라는 놈들은 부지런하다. 어떤 때는 새벽 4시경에도 울기 시작하여 주위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놈들은 전형적인 '아침형 동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저녁에는 7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잠자리에 찾아들고 새벽 5시경이면 어김없이 깨어난다.그러니 놈들을 돌보고(모이와 물 주기) 간단하게 청소해 주려면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놈들의 노는 모습을 즐기기 위하여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일찍 일어나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놈들을 돌보다 보면 마냥 즐겁다.닭에 관한 추억아주 어렸을 때 넓지 않은 우리 집에서 닭을 기른 적이 있다. 지금처럼 닭이나 달걀이 흔하지 않던 그 시절에는 달걀은 소풍 등 특별한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 달걀을 어느 날인가 "이것은 엄마를 주어야 한다"며 막 낳은 달걀을 들고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막내동생이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오던 생각이 난다. 어머니를 생각했던 그 어린동생이 갸륵하다고 지금도 이야기하곤 한다. 어린 마음에도 평소 가족이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던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또 닭을 보면 내가 어렸을 적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도 떠오르곤 한다. 달걀도 귀한 음식이었는데 닭이야 오죽했으랴. 당시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위하여 닭을 잡았는데 오랜만에 고기 냄새를 맡게 된 온 가족과 특히 허기진 아버지가 부엌을 기웃기웃하시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아프다. 지금이야 닭을 언제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시절이지만…….이랬던 내가 당시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어 직접 닭을 기르고 있다. 그것도 사치스럽게 잡아먹으려 하거나 돈벌이 목적이 아닌 취미로 말이다.엄마 닭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엄마 닭이 병아리를 낳기 위하여 알을 품는 모습은 가히 놀랄 만하다. 닭은 20일 동안 알을 품는데 그 동안 지극히 헌신적이다. 알을 까기 위하여 20일 동안을 거의 먹지도 않은 채로 꼼짝하지 않고 둥우리에 앉아 알을 품는다. 옆에서 다른 닭이 무엇을 하든지 심지어는 적이 나타나도 알을 품는 데 소홀함이 없다.아침과 저녁으로 두세 번 자리에서 나와 식사를 하고 용변을 본 다음 온 종일 꿈쩍도 않고 알을 정성스럽게 품는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텐데 균등하게 온기를 전달하기 위하여 규칙적으로 방향을 돌려가며 품는다. 혹시 적이 접근하는 기미가 보이면 나름대로 무서운 자세를 취하고 앙칼진 소리도 지른다.그렇게 20일을 정성스럽게 품으면 병아리가 한 마리씩 알을 깨고 나오는데, 그 나오는 모습 또한 경이롭다. 갓 태어난 병아리는 한 동안 자세를 잡지 못하다가 곧 일어나 엄마 품을 찾아간다. 엄마 닭은 병아리들을 아주 정성스럽게 돌본다. 이리저리 뒤적이며 모이를 찾아 엄마 특유의 소리를 내면 어느새 여러 병아리들이 엄마 주위로 몰려든다. 날씨가 차갑거나 적이 나타나면 얼른 날개 속에 병아리 자식들을 감추고 보호하는 모성 본능이 놀랍다.닭네 집 건축하기내가 집을 건축하고 처음 맞은 봄에 한 일이 닭장을 짓는 일이다. 닭장을 지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고 하루 속히 날씨가 풀리기만을 기다려 아들과 함께 닭네 집을 건축하였다. 거창한 설계까지는 아니어도 세 칸의 닭네 집을 만들었다. 101호에는 백자보, 102호에는 적자보, 103호에는 토종닭 그리고 202호에는 잉꼬네 집, 203호에는 토끼네 집이다.어린 시절 좁은 마당 구석에 자재도 풍부하지 못하여 엉성하게 지었던 닭장에 비하면 초 호화판 닭 맨션이다. 종자가 다른 것들끼리 모두가 한 방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식구들끼리만 살 수 있도록 독립된 집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야 쾌적하기도 하고 혼혈을 방지할 수 있다. 위치도 거실에서 가장 잘 바라보이는 곳을 택하여 집에서 보기도 좋게 배려하였다.빨리 닭 네 집을 지어 예쁜 닭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일과 목재와 철망 등을 준비하는 것은 여간 즐거움이 아니었다.닭 관리닭은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닭을 관리하는 것도 재미있다.내가 기르는 닭은 30, 40마리였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백자보, 적자보 한 쌍씩과 금계가 있고 이번에 태어난 병아리가 10여 마리 있다.숫자를 늘리려는 것은 아닌데 병아리를 낳으면 갑자기 가족이 늘어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잘도 자란다. 1년도 안 되어 알을 낳기도 하고 또 병아리를 까기도 한다.닭은 종류가 다양하다. 흔히 취미로 기르는 닭들은 꽃닭이라 불리는 백자보, 적자보, 검은 꼬리자보 그리고 긴꼬리 닭, 동천홍, 백천홍 등 토종닭이 있고 꿩과의 금계ㆍ은계, 황금계, 백한 등이다.특히 요즘에는 인터넷에 닭에 관한 카페와 동호인들이 많다. 그런 곳에 가입하여 활동하면 닭에 관한 질병, 관리 요령 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닭이나 병아리들을 교환하거나 분양도 받을 수 있어 초보자들도 쉽게 닭을 기를 수 있다.닭을 기르는 일은 양계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관리하는 데 그렇게 힘들지 않다. 아침에 놈들의 모이와 물을 챙겨 주고 간단한 청소를 해 주는 일은 오히려 즐거움이다. 놈들을 관리하다 보면 배우는 것도 있다.엄마의 자식 사랑과 자기 영역 지키기 그리고 식구 사랑이다. 아버지 닭은 먹을 것이 있으면 절대 먼저 먹지 않고 자기 아내나 아이들부터 먹게 한다. 특히 자기 아내를 다른 수컷이 잘못 건드렸다가는 난리가 날 정도로 혼내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사무실에 근무하다가도 가끔 놈들 생각이 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처럼 닭이 병아리를 낳을 때는 더욱 놈들이 보고 싶어진다. 어떤 때는 일부러 놈들을 보기 위하여 일찍 퇴근하기도 하는데 놈들을 생각하면 절로 흐뭇해진다. 때로는 아침에 놈들을 돌보고 바라보다가 출근시간이 늦기도 하고 놈들을 보지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것이 여간 아쉽지 않다.놈들은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절로 웃음이 나온다. 특히 갓 태어난 병아리들의 모습을 보면 더욱 더 우습다. 놈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노란 테니스공이 굴러다니는 것 같다. 놈들은 항상 바쁘고 그냥 걷는 법이 없다. 무슨 일이 있는지 이리저리 쉴 새 없이 뛰어 다닌다.그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도 엄마가 부르면 쏜살같이 엄마 곁으로 다가온다. 엄마는 철없는 놈들을 돌보고 먹이를 찾아 주느라 쉬지를 못한다.어린 병아리들은 걷다가도 눈을 감고 졸기도 한다. 날씨가 춥거나 어두워지면 엄마 품 속을 서로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다가도 바깥이 궁금한지 조그만 머리를 내밀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라니…….또 엄마 등 뒤에 올라가 장난치기도 하고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잠깐 잃기도 한다. 놈들은 겁도 없어서 내가 가까이 가도 도망치지도 않고 내 발등 위에 올라앉기도 한다. 놈들은 점점 자라면서 엉덩이에서 꽁지가 나오는데 이때부터는 귀여운 모습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꽁지 빠진 닭이라거나 미운 일곱 살이라고 놈들도 이때부터는 제 멋대로이고 엄마도 차차 마음을 놓는다. 역시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렸을 때가 제일 귀엽고 예쁘다. 이때부터는 서로 힘을 겨루려고 팔짝팔짝 뛰면서 싸움을 걸다가 갑자기 도망친다.이렇게 놈들의 자라는 모습이나 노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이 세상의 어떤 즐거움보다 더 신비롭고 즐겁다. 그래서 아파트를 떠나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田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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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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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정보] 입체 컬러의 유혹 비오파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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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누구나 쉽게 '스페셜 페인팅'으로 집 안 분위기를 확 바꾸게 됐다. 비오파코리아(주)가 독일 Meffert 그룹으로부터 수입 판매하는 '이펙트 디자인(Effckt Design)'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유리진주구슬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인테리어 페인트로, 일반인도 쉽게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효과를 연출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서울시 구로구의 한 빌라에 사는 김 모씨는 미루고 미루다가 올봄에 집 안을 단장했다. 그는 가장 큰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벽지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 지물포를 찾았다. 하지만 들어서기 무섭게 지물포를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벽지의 종류가 워낙 많아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주인과 몇 마디 건네면서 벽지 가격뿐만 아니라 도배사의 품삯도 만만치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집 단장을 못하는 걸까…' 며칠 동안 망설이다가 건축박람회에서 눈에 띄는 제품을 찾아냈다. 일반인도 전문가처럼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페인트 '이펙트 디자인(Effekt Design)'이다. 더욱이 천연 소재로 만들어 여느 페인트처럼 악취도 안 났다. 그는 이 페인트로 반나절에 집 안 분위기를 확 바꿨음은 물론, 아내와 아이들에게 '우리 아빠 최고!'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펙트 디자인'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집 안 분위기 '확' 바꿔볼까친환경 건축자재 공급회사 '비오파코리아(주)'에서 수입·판매하는 '이펙트 디자인'은, 누구나 쉽게 유럽풍 지중해 스타일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데코레이션용 천연 소재 페인트다. 이 제품은 특유의 질감뿐만 아니라, 유리진주구슬이 들어 있어 빛의 각도에 따라 컬러가 변하는 3차원 페인트라는 평을 받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스페셜 페인팅(전문가가 연출하는 고난이도의 페인팅)이 가능해 독특한 기법의 예술적 인테리어 효과를 연출한다는 것이다.인테리어에서 색상은 매우 중요하다. 비오파코리아(주)의 '이펙트 디자인'은 화려하면서도 편안한 유럽풍의 컬러를 적용, 이와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비오파코리아(주)는 2005년부터 독일 Meffert 그룹의 '이펙트 디자인'을 단독 수입·판매하고 있다. 제품은 유럽풍의 색채를 연출하는 '이펙트 디자인 파스텔글레이즈(Wandlasur Classic)', 여기에 유리 진주 구슬 테크놀러지를 결합한 '이펙트디자인 3차원 컬러(3-D -Brillant-Effekt)' 두 가지다. 특히 이펙트 디자인 3차원 컬러는 빛의 각도에 따라 색상이 입체적으로 바뀌므로 인기가 높다. 이들 제품을 사용하기 전 하도제로 '모래 분말 형태의 텍스쳐 페인트(Wisch-Strukturputz, 이하 텍스쳐 페인트)'를 사용하면 보다 높은 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텍스쳐 페인트는 백색 무광의 수성 페인트로 아트-월이나 천장 등 독창적인 질감을 연출하려는 곳에 붓이나 롤러로 간편하게 도장하면 된다.이들 제품은 모두 휘발성유기화합물 테스트를 통과했고, 미세한 알갱이로 재질감이 느껴지면서 쉽게 떨어지지 않으며, 수성이라 화재에도 강하다. 이들 제품은 전원주택의 아트-월뿐만 아니라 유아원, 전시장 등 예술적 감각의 벽면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하면 좋다. 또한 투명한 컬러이므로 여러 가지 색상을 혼합해 개성 있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비오파코리아(주) 홈페이지나 직영 매장을 통해 구입이 가능하며, 연출 방법에 대한 교육도 받을 수 있다. 가격은 '텍스쳐 페인트'(5리터) 5만 원, '이펙트 디자인 파스텔글레이즈'(1.5리터) 3만 5000원, '이펙트디자인 3차원 컬러'(1.5리터) 5만 원선이다. 하도제인 '텍스쳐 페인트'와 상도제인 '이펙트 디자인 파스텔 글레이즈' 또는 '이펙트디자인 3차원 컬러'를 합해 평당 2만 2000원 정도면 집 안 분위기를 고급스런 유럽풍으로 바꿀 수 있다.田글·사진 김항룡 기자문의 비오파코리아(주) (02)2025-4989, www.biopain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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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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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탐방] 스틸하우스의 모든 것을 '한눈에' 금호스틸하우스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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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하우스란, ‘KS D 3854’의 스틸 스터드(Steel Stud)라고 부르는 냉간 성형 강재로 집의 뼈대인 기둥과 보, 바닥, 벽체, 지붕 등을 구성하는 공법을 말한다. 뼈대를 만든 다음에는 스틸 스터드 부재들을 하나하나 스크루(Screw)로 접합하고, 건축주의 취향에 따라서 내·외부를 마감한다.
이러한 스틸하우스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안성시 신건지동에 자리한 금호스틸하우스 전시장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두 채의 주택과 스틸하우스 구조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스틸하우스에 대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주고 싶었다는 금호스틸하우스 김운근 대표.
“처음엔 스틸하우스 골조 구조체만 세워 놨는데, 소비자들은 내부를 더 보고 싶어하더군요. 소비자들에게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 회사에서 시공한 집들을 방문하다 보니, 매번 건축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서 스틸하우스 체험 공간을 만든 겁니다.”
아하∼ 스틸하우스가 이런 거구나
스틸하우스 전시장은 500평 규모로 종합전시관과 스틸 모델하우스, 골조 구조체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전시관은 연면적 55평(1층 30평, 2층 25평)으로 외벽은 시멘트 사이딩, 물매 가파른 박공지붕은 아스팔트 슁글로 마감했다. 현관에는 다양한 종류의 스틸하우스 자재를, 1층에는 인테리어 자재를 전시해 놓아 실제 거주하는 전원주택에 들어선 듯하다. 2층엔 금호스틸하우스에서 시공한 갖가지 형태의 전원주택 사진과 스터드와 스크루, 접합철물 등의 스틸 자재와 몰딩재, 지붕재 등이 자리한다.
실제 전원주택처럼 꾸며 놓은 스틸 모델하우스는 연면적 60평(1층 35평, 2층 25평) 규모로, 골조 구조체와 다양한 종류의 자재 그리고 여러 가지 형태의 스틸하우스 사진이 전시돼 있다. 다양한 소재로 외벽 마감이 가능함을 보여 주기 위해 시멘트 사이딩에다 치장벽돌과 시더 사이딩으로 포인트를 주었으며, 박공지붕에는 금속기와를 얹었다. 잔디와 조경수로 정갈하게 꾸며 놓은 정원하며, 현관에서 우측면까지 낸 덱에는 테이블을 놓아 전원주택의 운치를 한껏 살렸다. 1층은 거실, 주방 겸 식당, 부부침실, 자녀방으로, 2층은 객실과 작업실로 공간을 구성했다. 인테리어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화사한 색상의 벽지로 중후하면서 세련되게 연출했다. 그리고 공간 활용도를 가늠하도록 침대와 냉장고, TV, 싱크대, 가스레인지, 식탁을 비롯해 소소한 가정용품까지 비치해 놓았다.
골조 구조체는 연면적 15평(1층 10평, 2층 5평) 규모로, 각 부분마다 명칭과 기능을 적어 놓아 보는 것만으로도 스틸하우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시장을 오픈한 후, 김운근 대표는 휴일에도 쉬어본 적이 없다고. 그곳에 가면 스틸하우스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방문객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진실을 모토로 ‘고객 제일주의’ 지향
금호스틸하우스는 12년 전통의 스틸하우스 전문 시공업체이다. 김운근 대표는 스틸하우스를 알고부터 그 매력에 푹 빠져 여태껏 스틸하우스만을 고집해 왔다고.
“스틸하우스는 건식공법이므로 겨울철에도 공사가 쉽고 공사기간도 짧습니다. 또한 여러 구조의 건축물에 같은 단열·방음 성능을 가진 벽체를 형성한다고 할 때, 스틸하우스 벽체가 더 얇기에 보다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개축공사도 수월합니다. 마감재의 선택도 다양하게 할 수 있어 건축주나 설계자의 의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틸하우스의 매력을 알고부터는 스틸하우스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스틸하우스 전문 업체로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면서…….”
금호스틸하우스의 경영 전략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을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다. 고객과 상담할 때, 수주를 위해 시공비를 낮춰 부르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설명한다고. 그리고 한 채를 짓더라도 제대로 시공한단다.
“집은 제대로 시공하는 게 이득입니다. 하자가 발생해서 보수할 경우 시간적·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니까요. 그리고 고객은 최고의 영업 사원이기도 합니다. 고객이 만족하면 또 다른 고객을 불러오니까요. 결국 고객을 진실하게 대하고 고객을 만족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田
글·사진 박창배 기자
문의 031-675-8110, www.kumhoste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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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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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하우스 디자인 따라잡기 4] 개성이 톡톡 넘치는 아름다운 스틸하우스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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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문턱을 넘어서는가 싶더니, 어느새 산이며 들이며 온통 꽃들로 만발해 있다. 이 무렵이 전원주택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한 때이다. 6월 우기(雨期)가 닥치기 전에 정확하고도 빠르게 건축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창 바쁜 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꽃구경 가자’는 소리는, 산더미처럼 쌓인 설계 일정을 뒤로한 채 홀연히 떠나고픈 심적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봄나들이는 삶을 재충전하는 좋은 여가(餘暇)로, 또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회로 다가온다. 건축주들하고 상담을 하다 보면 나들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가면서 마음에 드는 전원주택을 보고 마치 내 집인 듯 싶어 서슴지 않고 카메라에 ‘찰칵찰칵’ 담아 왔다면서 외관은 사진 속의 스타일로, 평면 설계는 아파트처럼 해 달라며 디자인을 요청한다. 그럴 때마다 난감하여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다. 그러한 일들을 접하면서 우리나라 특유의 아파트 문화가 전원주택에까지 영향을 미친 게 아닌지 반문하기도 한다. 이 달에는 그러한 국내 실정을 반영한 4개의 모델을 소개하고자 한다. 소박하며 심플한 주택과 적은 평수로 2층을 만들어 웅장하게 표현한 주택 그리고 파티오(Patio : 중정)의 넓은 면적을 가진 펜션형, 마지막으로 아파트 평면을 기본으로 시작하여 최종 전원주택으로 승화시킨 샘플을 만나보자.
소박하고 심플한, 30평 농가주택
정사각형의 평면 설계로 공간이 짜임새 있는 농가주택이다. 전체적인 외관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같은 평형대에 비하여 공간 활용도 높고 건축비도 저렴한 사례다. 전면의 캘리포니아 지붕은 트러스 내부의 벤틸레이션(Ventilation : 통풍) 역할을 하면서 지붕의 단조로움을 상쇄해 준다. 거실 전면에 위치한 파티오 도어를 열고 나가면, 잘 손질된 잔디밭 위에 덱을 놓아 전원생활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실내는 거실과 주방을 오픈하고, 거실 전면창으로 자연 채광을 깊게 끌어들였다.
거실 천장이 높아 웅장한, 30평 전원주택
세로감 있는 직선형 디자인으로 전망을 극대화한 모델이다. 박공형 지붕은 경사도를 높여 웅장해 보이며, 외부 지붕의 처마와 창문 몰딩을 목재로 제작·마감해 전체적인 통일감을 살렸다.
실내 공간은 거실 상부를 오픈해 개방감을 충분히 주고, 계단 역시 별도의 계단실을 두지 않고 열린 공간으로 설계해 하나의 인테리어 조형물로 자리매김했다. 2층 홀에서는 1층 거실과 창 밖의 야외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상대적으로 넓다는 것을 인지하게끔 설계했다.
취사 가능한, 40평 원룸형 펜션
거실 전면에 넓은 파티오를 연결해 실내 공간을 외부로 연장했다. 펜션형 민박으로 1층에는 주인 부부가 생활하는 공간과 2개의 객실, 2층에는 단체손님을 위한 거실과 객실을 배치했다. 작은 대지 위에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박스 형태의 평면으로 설계했다.
이 때문에 외형이 단조로워 보일 수 있으나, 1층에서부터 이어지는 2층 주 출입구에 목구조 덱을 설치해 이를 보완한 동시에 전원주택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주방과 트인 거실에는 벽난로를 설치해 펜션을 방문객들에게 전원생활의 운치를 제공해 준다.
넓은 거실과 다락방을 갖춘, 50평 전원주택
넓은 면적으로 1층 규모의 다락방을 설치했다. 단층주택임을 감안해 거실 상부를 트러스 형태로 들어올려 서까래로 시공했다. 건물 좌측면은 부부침실 공간으로, 우측면은 대학생인 세 자녀의 생활공간으로 구획했다. 자녀방 위에는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다락방을 추가로 앉혔다. 주택의 외부는 스프레이 스타코로 고급스럽게 마감하고, 지붕은 라파즈 점토 기와를 사용했다. 현관 출입구에는 고대 건축 양식에서 많이 보이는 FRP(Fiber Glass Reinforced Plastic : 유리 섬유 강화 플라스틱)기둥을 설치해 화려하게 연출했다. 아파트의 평면을 기초로 설계한 대표적인 전원주택 사례이기도 하다.
이상 네 가지 모델에서 보듯이 스틸하우스의 매력은 구조적 안전성과, 시공의 편리성, 디자인의 화려함과 심플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과 같은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자는 설계 시 차별화 가능한 스틸하우스를 권한다. 같은 평면이라도 외관은 완전히 다른 모델이 나오기 마련이고, 여러 형태의 디자인을 보여줌으로써 건축주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으로 선호하는 집! 웰빙 하우스로 다시 시작하는 스틸하우스가 새로운 주거 문화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다 다양한 평면과 차별화된 외관을 만나보고 싶다면 스틸하우스의 문을 두드려 보자.田
글 원완연(에스에프시스템 설계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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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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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하우스의 세계로] 구조체의 특징을 살린 효율적인 내부 공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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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하우스가 국내에 보급된 지도 어느덧 10여 년이 지났다. 90년대 초반부터 신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미국식 경량 목조주택 시장을 고려하여, 90년대 중반 이후 모습을 드러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스틸하우스란 용어부터 생소했으나, 지금은 주택 구조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까지에는 한국철강협회뿐만 아니라 매년 열리는 주택 및 자재 관련 전시회 그리고 언론 매체 등이 한몫을 했다. 그 덕으로 ‘스틸하우스는 어떤 재료를 사용하여 어떻게 짓는다’, ‘스틸하우스는 여타 구조 방식(예를 들어 철근콘크리트조나 조적조)에 비해 이러한 장단점이 있다’는 등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 단열 성능이 좋고, 다양한 내·외부 마감이 가능하고, 단열 효과 및 차음 성능이 우수하다는 등등.
여기에서는 익히 알려진 내용이 아닌, 스틸하우스가 내부 공간 활용 면에서 어떠한 특징 및 장점을 갖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스틸하우스를 20여 채 이상 설계하고, 그 주택의 공사 내용을 감리하면서 확인했던 특징들을 철근콘크리트(RC)조와 비교함으로써 이해를 돕고자 한다.
전체 내용을 △구조체의 특징을 살린 효율적인 내부 공간 활용 △지붕 공간의 특성과 활용 방안 △스틸하우스 선택 시 참고 사항 등을 3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건축주가 여러 건축 방식 중에서 스틸하우스를 선택하는 이유를 확인해 보겠다.
스틸하우스는 공간(중공) 구조체
스틸하우스는 RC조나 조적조에 비해 벽체 두께가 얇아 실사용 면적이 넓어지고, 내부 공간 사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은, 스틸하우스의 장점을 언급할 때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항목이다.
RC조나 조적조에 비해 벽체 두께가 얇다는 것은 동등한 단열 기준과 내부 마감 기준을 적용했을 때 더욱 확연해진다(그림 1). 그렇기 때문에 내부 각각의 실(방, 거실, 주방 등)에서 추가로 확보한 면적을 합하면, (그림2)에서 제시한 주택 전체 면적보다 넓어진다.
그만큼 RC조는 벽이 차지하는 면적이 스틸하우스보다 크기에 내벽이 많을 수록 실사용 면적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더구나 시각적으로 느끼는 공간감은 수치상의 면적 차이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이처럼 벽체 두께에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스틸하우스 구조가 벽체 내부 공간에 단열재 매입이 가능한 공간(중공) 구조체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상부의 하중을 고려치 않는 비내력벽이라고 하더라도 동등한 마감 기준을 적용한다면 내부 폭에서 10센티미터 정도의 차이를 나타낸다(그림3). 그러므로 수납공간이 작을수록 내부 공간의 폭과 길이를 확보하기 어려워 두꺼운 벽으로 만들기에는 용이치 않다.
RC조의 경우, 길이가 짧은 벽을 좁은 공간에서 여러 번 꺾이는 형태로 계획하면 거푸집 설치와 철근 배근에서부터 어려움이 따르기에 결국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림4)에서 보듯이 각 실마다 기능과 용도에 부합하는 수납공간을 구석구석 확보하면, 생활 자체가 편해지는 건축 공간이 바로 주택이다.
⊙스틸하우스는 얇은 벽체와 시공의 편의성으로 작은 수납공간 확보가 용이하다.
⊙벽 내부 공간을 이용한 장식 선반이나 수납장 계획이 용이하다.
방과 방 사이에 세워지는 내벽의 경우, 내부 단열재를 채워 차음 성능을 높이도록 한다. 단열재를 고려치 않을 경우에는 그 공간을 활용해서 인테리어 장이나 선반 등을 계획할 수 있다.
⊙벽 내부 공간을 이용한 설비 배관 공간(P.D) 계획이 용이하다.
배수관이나 오수관은 관경이 크기 때문에 RC조의 주택에서는 별도의 배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반면(그림5), 스틸하우스에서는 외벽이 아닌 내벽 중 소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위치에 쉽게 설비 배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비 배관 공간(P.D)으로 제공할 면적조차도 실사용 면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田
글 현상일(구도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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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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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주택 교실] 골조공사III 천장과 지붕의 골조시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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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의 형태는 크게 경사지붕과 평지붕으로 구분하는데, 여기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이 이루어진다.
지붕의 경사도(물매)는 ‘수직 부재의 수직 높이 : 수평 길이의 비례’로 나타내는데, 항상 수직 높이를 앞에 쓴다. 경사도 표시 방법은 영국 단위 방식과 미터법 방식의 두 가지가 있다.
영국 단위 방식은 골조용 직각자(Framing Square)를 사용하여 수평 길이는 12인치를 기준으로 하므로 항상 ‘12’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45도 경사 지붕의 경사도(Pitch)는 12/12로 표시한다. 경사도 4/12는 수평 길이가 매 12인치일 때, 수직 높이가 4인치인 지붕이다.
미터법 방식은 45도 이하의 경사도에서 첫 번째 숫자를 항상 ‘1’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1 : 5는 수평으로 5밀리미터 가면 수직으로 1밀리미터, 혹은 수평으로 5미터마다 수직으로 1미터씩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경사도가 45도를 초과하면, 이해하기 편하도록 수평 치수를 나타내는 두 번째 숫자를 1로 한다. 반면에 경사도 5 : 1은 수평거리가 1밀리미터일 때 수직 높이가 5밀리미터, 혹은 수평거리 1미터일 때 수직높이 5미터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 때는 10m : 1㎜처럼 단위를 혼용해서는 안 된다. 비례로 표시할 때, 4 : 12(혹은 400㎜ : 1200㎜)의 기본 경사도는 1 : 3이다. 같은 방법으로 3 : 12는 1 : 4가 된다. 특별히 정밀한 각도를 나타낼 경우에는 경사를 각도로 표시할 수도 있다.
평지붕이란 경사도가 1 : 6 이하인 지붕을 말한다. 경사지붕의 경사도는 지붕덮개와 다락 공간의 용도에 따라서 1 : 6에서 1 : 1 혹은(예를 들면 2 : 1과 같이)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경사지붕
지붕의 트러스는 현장에서도 제작하지만, 대부분은 공장에서 생산한 것을 사용한다. 작업에 시간이 걸리지만, 경사지붕은 현장에서 짜 맞추기도 한다. 경사지붕 가운데 박공지붕(Gable Roof)은 시공이 간단한데, 특히 경량 지붕 트러스를 사용하면 더욱 간편하다.
모임지붕(Hip Roof)이나 L자형 지붕, 그 밖의 지붕 형태는 비록 복잡하지만, 트러스에 연결해서 지붕틀을 만들 수 있다.
조립식 지붕 트러스
조립식 지붕 트러스는 자재를 절약하고, 집의 차폐(遮蔽) 작업을 빠르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지붕덮개를 붙일 면과 천장 마감재를 붙일 면 그리고 단열재를 설치할 공간이 동시에 생긴다. 다락의 환기는 처마 밑이나 박공 혹은 양쪽 모두에서 그리고 용마루 위나 용마루를 따라서 쉽게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트러스는 외부 벽체와 외부 벽체 사이의 지지 간격(Span) 중간에서 내력벽이 지지하지 않아도 지붕 하중을 견디도록 제작한다. 따라서 공사기간 중에 집 전체를 하나의 큰 작업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구조적 제한 없이 칸막이 벽을 설치할 수 있기에 집의 내부 설계도 자유롭다.
공사에 융통성과 신속성을 갖게 하는 차고 지붕 트러스, 포치(Porch) 지붕, 모조 맨사드(Simulated Mansards), 창문의 차양(Canopies) 등과 같은 제품화된 부분품이나 부가 품목들은 트러스 제조업체에서 구입할 수 있다. 금속판으로 연결해서 만든 트러스가 현장에 도착하면 평평하고 깨끗한 곳에 보관한다.
지지 간격이 6미터 미만인 트러스는 대개 손으로 부착하고, 6미터를 초과하는 트러스는 들어올릴 때 손상을 방지를 위한 특수 기술이 필요하다. 트러스는 지나치게 옆으로 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서 제 위치에 부착한다. 박공 트러스를 제일 먼저 부착하고, 바닥과 벽체에 가새로 고정한다. 그 밖의 트러스는 일반적으로 중심 간격을 24인치(600㎜)로 하여 정해진 위치에 올려놓고, 위깔도리에 경사 못치기(Toe Nailed)로 부착하여 임시 가새를 설치한다. 모든 트러스가 수직으로 세워지고, 제 위치에 정확하게 부착되면, 가새를 영구적으로 설치한다. 지붕덮개를 부착하면 지붕이 튼튼해진다.
경사지붕의 현장 시공
여러 형태의 지붕 가운데 현장에서 시공하기에 가장 간단한 것은 박공지붕이다. 모든 서까래를 본(Pattern)에 맞추어 같은 길이로 절단하면 시공이 간단하다. 박공지붕의 변형체 중에는 채광, 천장 높이기, 환기 목적의 지붕창(Dormers) 등이 있다.
그러나 열 수 있는 창문과 열 수 없는 천창(Skylight)을 서까래 사이의 경사면에 부착하면, 구조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지붕창을 설치하지 않아도 채광과 환기를 할 수 있다. 처럼 짧은 서까래(Jack Rafter)를 마룻대(Ridge Board)에 부착하며, 짧은 서까래는 귀서까래(Hip Rafters)에 부착한다.
천장장선은 천장 마감재를 붙이는 데에 사용한다. 여기에 외부 벽체를 서로 결속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편의 서까래도 결속한다. 천장장선에 가해지는 지붕 하중은 서까래 중간을 지지하는 꼬마벽(Dwarf Walls, 혹은 Knee Walls)으로 지지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장선의 규격을 적절히 해야 한다. 천장장선이 바닥 하중을 지지할 때에는, 그 규격은 바닥 장선 규격에 근거해서 정한다.
경사지붕의 골조공사에서, 서까래는 외부 벽체를 밖으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외부와 내부의 벽 덮개 공사를 끝낸 후, 서까래를 올리기 전에 천장장선을 제 위치에 못으로 부착한다. 천장장선은 일반적으로 경사도가 1 : 3, 혹은 그 이상인 경사지붕에서는 한쪽 서까래의 아래 끝과 반대쪽 서까래의 아래 끝을 서로 결속하는 데에 사용한다.
서까래의 끝이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려면, 천장장선을 양쪽 서까래 끝의 옆면에 못으로 부착한다. 장선은 겹쳐서 못을 박아 연결하거나, 중심 내력벽 위에서 연결해 반대편 서까래와의 결속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한다. 연결에 사용하는 못의 개수는 지붕의 경사도, 서까래의 간격, 적설 하중과 집의 폭에 따라서 다르다.
천장장선의 규격은 그와 직각을 이루는 꼬마벽(Dwarf Walls) 으로 인해서 추가로 가해지는 지붕 하중을 고려해서 정한다.
귀서까래는 보통 서까래(Common Rafters) 혹은 짧은 서까래보다 약 2인치(51㎜) 정도 넓다. 그러므로 경사도가 낮은 지붕에서는 끝 벽(End Walls) 쪽에 정상적인 간격으로 외부 천장장선을 붙일 수 없을 만큼 공간이 줄어든다. 이 때는 두 겹 장선을 적절한 위치에 부착한다 .
꼬리장선(Tail Joists)은 경사 못치기로 외부 벽체의 위깔도리에 부착하고, 두 겹 장선에는 마구리 못치기(End Nailed)로 연결한다. 일반적으로 꼬리장선의 간격은 천장장선의 간격과 같다.
서까래는 길이에 맞게 절단하고, 용마루와 처마 부분은 각도에 맞게 절단하며, 벽체 혹은 서까래깔도리(Rafter Plates)에 맞도록 걸침 턱(Bird mouths)을 잘라낸다. 서까래의 지지점(Heel)이나 아랫부분은 외부 벽체 위에 직접 부착돼야 한다.
지붕의 설계와 외벽의 형태에 따라서 서까래를 벽깔도리 위에 직접 부착하거나 천장장선 위에 못으로 부착한 서까래깔도리 위 , 혹은 외부 벽체깔도리에 의해서 지지되는 내력 벽체 위에 부착한다.
마지막 방법은 벽체의 일부가 안쪽으로 후퇴했을 때 사용한다. 이 경우에는 천장장선이 외부 벽체 밖으로 돌출되므로 서까래 옆면에 못으로 부착한다. 이렇게 하면, 내력 벽체를 측면에서 지지하고, 서까래 끝이 바깥쪽과 아래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방지한다.
마룻대 혹은 마룻보 는 지붕 마루선이 수평을 이루게 하며, 서까래를 올려놓고 일직선으로 맞추기 쉽게 만든다. 서까래는 마룻대 혹은 마룻보에 짝 지어서 못으로 부착한다. 서까래의 아래쪽 끝은 벽깔도리에 경사 못치기로 부착한다. 한 쌍의 서까래는 일반적으로 서로 마주 보게 붙인다. 서까래는 그 두께만큼 용마루에서 서로 어긋나게 부착하기도 한다. 중심 내력 벽체에서(마구리끼리 마주 잇대서 연결하지 않고) 서로 겹쳐 연결한 천장장선에 서까래 끝을 결속하려면, 서까래를 어긋나게 부착해야 천장장선과 수직으로 일직선을 이룬다. .
경사도가 1 : 3 미만인 지붕 꼭대기는 수직으로 지지돼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2×6인치(38×140㎜) 마룻보를 4피트(1.2m) 간격으로 2×4인치(38×89㎜) 지주(Struts)를 수직으로 세워서 지지한다. 마룻보대신에 내력벽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지지 방법들은 지붕이 밖으로 밀쳐 내는 힘을 감소시키므로, 반대편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를 연속적으로 결속할 필요가 없다. 밖으로 밀어내는 힘을 막으려고 서까래의 바깥 끝끼리 서로 결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경사도가 더 큰 경사지붕에도 마룻보가 필요하다.
서까래의 중간 지지체
서까래의 중간 지지체는 일반적으로 서까래의 지지 간격을 줄이기 위해 지붕 마루와 외부 벽체 사이에 설치한다. 그렇게 하면 지지 간격이 중간 지지 점에서 지붕 마루까지와 추녀의 지지 점까지로 나뉘므로 서까래의 규격을 줄일 수 있다.
서까래의 경사도가 1 : 3 이상이면, 일반적으로 한쪽 서까래와 반대쪽 서까래 사이를 2×4인치 종보 가새(Collar Brace)로 연결해서 중간 지점을 지지한다. 이 가새는 압축이 발생하여 뒤틀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길이가 8피트(2.4m) 이상 되는 경우에는 옆으로 휘는 것을 방지하는 보강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1×4인치(19×89㎜) 부재를 종보의 중심 가까운 곳에 연속적으로 잇대서, 3인치(76㎜) 못을 양끝에 박아서 부착한다 .
지붕의 경사도가 1 : 3 미만이면, 일반적으로 중간 지지를 꼬마 내력벽으로 하는데 , 샛기둥에 서까래가 직접 붙는 경우에 위깔도리를 홑겹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력벽의 시공법과 같다.
경사지붕에는 지주를 중간 지지체로 사용할 수도 있다. 2×4인치(38×89㎜) 지주를 내력 칸막이 벽 위에 세우고, 서까래 옆면에 못으로 부착해서 지지한다. 지주가 수평과 이루는 각도는 45도 이상이어야 한다.
천장장선과 직각을 이루는 서까래는, 천장장선 사이에 놓인 보 위에 꼬마벽을 설치해서 중간을 지지해도 된다. 외부 벽체와 중앙 내력 칸막이 벽 위에 얹힌 보 끝 밑에 나무토막을 끼워서 보를 천장 마감보다 최소한 25밀리미터 이상 높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붕 하중에 의해서 보의 중심이 쳐져서 천장 마감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귀서까래와 골서까래에 유사한 방법으로 보를 설치해서 중간 지지체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지붕 지주가 귀서까래, 혹은 골서까래의 하중을 보로 전달한다.
모임지붕 끝 부분에 있는 몇 개의 서까래를 중간에서 지지하려면, 스트롱백( Strongback)이라고 부르는 보를 설치해서 간단하게 지지할 수 있다. 이 보는 두 개의 2×4인치 부재를 못으로 결합한 후, 옆면을 위로 향하게 하여 서까래 밑에 못으로 부착한다. 이 보는 중심 내력벽 위의 공통 지지 점에서 방사상으로 뻗은 2×4인치 지주들에 의해서 보의 길이 방향으로 순서대로 지지된다. 이 때 모든 지주가 수평과 이루는 각도는 45도 이상이어야 하며, 각도에 맞게 끝을 절단해서 못으로 단단하게 부착한다.
귀서까래와 골서까래는 보통 서까래보다 폭이 약 2인치(50㎜) 가량 더 넓어야 한다 .
폭을 넓힌 짧은 서까래는 각도에 맞게 절단하면 그 끝이 귀서까래나 골서까래의 면에 완전히 붙는다. 모임지붕에서는 짧은 서까래를 귀서까래와 벽깔도리에 각각 못으로 부착한다. 지붕골에서는 짧은 서까래를 골서까래와 지붕 마루에 각각 못으로 부착한다.
작은 박공 지붕창(Gable Dormers)과 같은 지붕창은 옆 샛기둥(Side Studs)과 골서까래를 지지하기 위해서 양쪽 끝의 서까래를 두 겹으로 만든다. 골서까래의 맨 위는 끝막이 보(Header)로 지지한다 .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공법은 지붕창의 골조를 만들기 전에 지붕덮개를 부착하고, 개구부 주위의 구조 부재와 일치하게 지붕덮개를 톱으로 절단하는 것이다. 지붕덮개 위에 붙이는 아래깔도리는 지붕창의 옆 샛기둥을 지지하며, 벽 덮개를 부착하는 못받이의 역할도 한다.
만일 앞으로 증축을 계획하거나, 다락에 방을 만들려고 한다면, 집을 지으면서 지붕골조를 시공할 때 지붕창의 설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田
자료협조 유재완
031-531-9850, www.logbuil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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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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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건축!-그러나 누구나 건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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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를 처음 만나서 주택 설계나 공사 의뢰를 받을 때마다 듣는 몇 가지 공통된 이야기가 있다."이 집은 설계를 맡은 건축사님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멋지게 좀 부탁을 드립니다."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우리 집을 모델하우스라고 생각하고 잘 지어 주세요. 강원도 설악산 쪽에, 또 충청도 서해안 쪽에 땅을 가진 친구들을 많이 아는데, 다들 내년쯤 집 짓을 계획을 갖고 있으니 … 많이 소개해 드릴게요. "물론 '주변에 건축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처남도 지금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 현장소장으로 있어요. 제가 집을 짓겠다고 하자, 목수를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보낸 목수를 필두로 하여 업자를 데리고 직접 공사를 하면, 자신의 얼굴을 봐서라도 아주 싸게 좋은 품질로 집을 짓을 수 있다'고 하면서요. 이것을 뿌리치고 귀사에 건축을 의뢰한 거예요."그리고 습관처럼 이런 말도 한다."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니 정말로 알아서 잘해 주세요. 우리는 주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말이죠."그러나 막상 설계나 건축공사에 들어가면 건축주는 주변의 소위 건축 전문가(그 중에는 토목과 교수, 조적공, 방수공… 심지어 동네 철물점 사장까지)의 의견이나, 때론 집을 지은 바 있는 경험자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것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의뢰한 건축사나 시공사에다 이렇게 전한다."저∼ 말이지요. 몰라서 그러는데 주변에 목수 일을 30년간 했고, 전원주택도 시공한 김 목수라는 분에게 우리 집 도면을 보여 주며 검토를 부탁 드렸는데요. 그 분이 '아무래도 이 집의 평면 구성은 내부가 너무 오밀조밀하고, 창들도 크기가 좀 작다'고 하더군요.""어제 교회에 갔더니 교우(敎友)인 아주 유명한 토목과 교수님이, '건축은 건축전문가에게 맡기면 되지만, 기초는 튼튼하게 하라'고 하던데요. 그리고 '강원도 땅은 겨울에 얼었다가 봄에 녹으면서 지반이 들어올려졌다가 내려앉으니, 기초는 반드시 '동결심도' 이하로 약 1미터 이상 깊게 묻어서 시공해야 한다'고도 했고요. 사실 우리 생각에도 기초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봐요."사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건축주의 집에 사는 연세 많은 할머니부터 가끔은 파출부 아주머니까지 건축공사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런 경우를 많이 겪으면서, 그 이유를 '건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우리나라 산업 인구 비율상 많은 사람이 목수나 미장은 아니더라도, 철물점이나 타일 또는 건축 자재 판매·인테리어·도배 등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 중 많은 사람이 소주 한 잔 걸치면 '노가다'는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자신의 업을 그냥 건축에 포함시킨다. 실제는 집 짓는 곳에서 벽돌 일을 했어도 '평창동 ○○ 회장님 댁 공사를 내가 했지'하면서 영웅담을 늘어놓기도 한다.그들의 주장은 틀림이 없으며, 자신의 업종에서 영업력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도 그런 범주의 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주택을 지으려는 건축주인 경우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좀 더 깊이 하는 것이 좋다.주택, 전시장에 진열된 작품인가건축주는 주택을 작품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주택의 기능 가운데 하나는, 그 안에다 건축주를 포함해 그 가족의 삶을 행복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보다는 작품적 성격만 강할 경우, 거대하고 강한 기에 눌려 삶 자체가 추울 뿐만 아니라 남편이 출근한 빈자리에 써∼얼렁한 기운만 감돌지 않을까? 그런 미술품 같은 집이 가져다 주는 값어치는 얼마일까?건축설계를 오랫동안 했더라도 막상 주택 설계 의뢰를 받으면 답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가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택의 기능을 엮기 위한 노력이다. 때론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주택을 설계하고도, 정작 만들어진 주택의 모습은 노출 콘크리트에 많은 유리의 커튼-월을 사용한 갤러리 풍인 경우를 보아 왔다. 물론 그런 양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타입만이 건축가의 작품인 것처럼 건축가들끼리 자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그런 부류의 회원이 될 자격이 없음을 느끼곤 한다.컴퓨터를 만들려면 반도체, LCD액정, 프로그램 등 수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LCD액정 전문가 혼자서 컴퓨터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이것을 그림에 비유해 보자.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도화지에 수많은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다.여기에 비하면 주택 한 채도 제대로 지어 보지 못한, 주택공사의 일부분인 목조주택이나 스틸하우스 프레밍, 주택 전기 설비 공사, 벽돌 공사, 도배 공사, 특히 철근 콘크리트 공사 등의 업에 종사한 사람들 대부분이 '주택 전문가는 아니어도 주택 건축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정말 그런 경지에 올라선 것처럼 느끼는 일종의 마취 효과까지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집을 짓고자 하는 주변의 친구나 친척 등에게 자문 역을 자처하고 나서거나, 아예 계약까지 하고 착공에 들어간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주택 건축을 시작하면서 때로는 '정말 좋은 주택이다, 그냥 저냥 보아 넘길 만한 주택이다' 하면서 스스로를 주택 전문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정작 건축주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주택이 없기에 그것이 진짜 잘 지은 주택인지, 아니면 그럭저럭 보아 넘겨야 할 주택인지를 판단하기조차 모호하게 만든다.누구나 주택 건축을 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80세 할머니도 값싼 데다 도면을 맡기고, 자기 명의로 직영공사 형태를 취해 목수반장 한 명을 앞세워 시공해도 가능한 것이 주택 건축이다. 그렇게 평당 공사비 200만 원도 안 들여 지은 집을 허접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80세 할머니의 경제력이나 안목 그리고 여생 동안에 등 따습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80세 할머니에게는 손색이 없는 훌륭한 주택이다.건축의 시작과 끝, 주택전원주택이란 이름의 꽤 괜찮은 단독주택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주택 전문 건축사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은 생각보다 많다. 그것은 건축학도들이 "건축의 시작도 주택이지만, 건축의 최종 완성도 주택 작품에서 나온다." 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것을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적어도 주택 건축과 관련 '스틸하우스 프레밍' 작업을 비롯해 각종 공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앞으로 주택 건축을 업으로 하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도면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바란다. 혹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아니! 내가 목수 생활만 벌써 30년인데 도면을 읽고 이해할 능력을 키우라니?""건축사가 그려 놓은 도면을 보고 그대로 시공만 하면 되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건축공사에서 도면은 건축주나 설계자의 뜻을 명확히 전달하는, 기능적 측면에서는 '글'과 같은 것이다. 글을 더듬더듬 읽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2, 3학년이 되면 대체로 무리 없이 빠른 속도로 읽는 능력이 생기는 것처럼, 목수생활 몇 년이면 도면을 정확히 읽어 내어 공사를 아주 멋지게 수행하는 것을 본다.여기서 잠시 아이들이 읽는 교과서나 동화책과 건축 도면의 성격을 비교해 보자. 아이들의 책은 그 자체가 완성품이다. 그러나 주택 건축용 도면은 소위 전문가 중의 전문가인 설계자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완벽한 의사 전달 매체가 될 수는 없다. 즉 건축주의 예산을 완벽하게 반영한 최적의 주택, 또는 건축주의 의견과 설계자의 디자인 성을 반영하여 완벽한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판독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종종 주택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진 건축주와 합작으로 만든 모순 투성이 전달 매체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면, 초등학생이 고학년이 되어 글을 완벽하게 읽고 쓰는 능력을 구사한다고 해도 단테의 《신곡》 같은 난해한 글을 읽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1000세대 이상의 아파트 공사나 초고층 빌딩 공사 그리고 상가주택 공사에 있어 목수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도면 이해 능력과 경험만 많으면 아무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다. 그러한 건축 공사용 도면은 글을 읽는 능력만 되면 판독 가능하게 만들지, 어떤 경우도 단테의 《신곡》이나 함축된 언어의 미학인 '시'처럼 만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 읽어서 달리 해석 없이 공사를 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목수가 될 수밖에 없다. 괜히 아는 척해서 달리 해석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불행의 싹이 되기도 한다.가시밭길에서 만난 주택 건축 전문가그렇지만 주택은 어떠한가? 막상 설계 도면을 갖고 착공에 들어가 보자. 기초공사 때부터 건축주는 이순신 장군께서 긴 칼을 옆에 차고 망루를 내려다보며 왜군의 기를 감시하는 듯한 눈초리로 현장을 지휘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이 창문 때문에 안방에 가구 하나 들여놓을 수가 없으니, 이쪽 창문을 없애고 저쪽 창문을 키워 주시오!"외장재의 색깔은 물론 자재도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가는 그저 이런 저런 색상의 견본품만 제시하고, 공사 시작 전 '전문가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기겠다던 건축주는 부지불식간에 전장을 장악하고, 심지어 군사들에게 각각 전투의 임무를 주는 경우도 있다.그런 일들이 왜 생길까? 그 이유는 첫째 일반 건축물과 달리 주택은 규모는 작지만 설계 변경 없이 완성된 도면을 만들어 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프로젝트이고, 둘째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진정한 전문가가 별로 없다는 것 때문이다.국내 설계 용역 시장의 환경상, 주택 전문 건축가가 되면 바로 밥 굶기에 딱 맞다. 그렇다 보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주택 설계는 가끔 취미 삼아, 건축주를 재물 삼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고자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주택 전문가가 되려면 비록 종사하는 분야가 스틸 스터드를 짜는 프레이머거나 목수이거나를 막론하고 한국에서의 '주거학'이라는 거창한 용어는 붙이지 못하더라도, '주택 도면에 대한 이해'와 '대부분의 주택 도면은 미완성의 전달 매체'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공을 다해 놓고 건축주의 심경 변화에 의하여 뜯고, 재시공하고를 반복하는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주택 건축이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모두 주택 전문가는 아니다. 주택 전문가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가득한 가시밭 속을 걷는 것과 같다.◆이윤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작품이라는 장인정신이 요구되는 반면, 많은 경험과 영속을 위해 이윤을 최대한 많이 남기거나 아껴 써야 하는 현실.◆최고 전문가로서 컨설팅부터 진행을 해야 하지만, 정작 모든 결정을 고객에게 맡겨야 하는 일의 진행 방법.◆건축주의 건강한 삶을 위해 가장 친환경적 자재를 엄선해야 하지만, 본드나 석유화학 제품 및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현실.◆'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주택 시공을 의뢰 받아 공사를 할 경우에 '일반건설업 면허'가 없는 사람은 건축주/시공자 모두 형사 고발 대상임에도, 거의 90퍼센트 이상이 일반 개인 또는 무자격자가 건축주 직영의 형식을 빌어 공사를 시행할 수밖에 없는 법적 현실.◆주택 전문 건축가가 되는 것은 건축에서 가장 어렵지만, 주변에 무수히 많은 주택전문 건축가.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필자도 주택 전문 건축사로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 그저 이런 냉탕과 온탕을 적절히 오갈 수 있다는 능력 정도만 가지고 있을 뿐임에도 말이다..田글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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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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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마을과 도읍의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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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왕성한 곳에다 묘지를 잡는 방법과 과정을 산, 물, 방향, 사람 등에 맞추어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음택(陰宅) 풍수론'이다. 그리고 주택의 구성 요소 중 사람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대문, 안방, 부엌의 방위별 배치를 조합해 주택 내에 생기가 극대화되도록 이론화시킨 것이 '양택(陽宅) 풍수론'이다. 그리고 마을과 도시의 부지를 선택하는 '양기(陽基) 풍수론'은 주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를 찾되, 가급적이면 외부와 차단되면서 내부 공간이 넓은 곳을 선호했다.주택 역시 땅에 기반을 두고 짓는데, 터와 주위 환경이 사람 살기에 조화로워야 집 안에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보았다. 특히 안방과 대문 그리고 부엌의 위치가 방위적으로 서로 상생(相生)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풍수지리학은 사람이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지리적 지혜를 바탕으로 좋은 거주 환경(주택, 묘지)을 선택하자는 실용 학문이지, 결코 발복(發福 : 운이 틔어서 복이 닥침)만을 기대하는 사상이 전부는 아니다.우리 조상들은 사는 터의 기가 허하거나 결함이 있으면 풍수적 비보(裨補 :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를 기울여 살기 좋은 터로 만들었다.동수비보(洞藪裨補) : 송림을 가꾸어 홍수와 바람을 막음.화기비보(火氣裨補) : 앞산의 강한 화기를 누르기 위해 연못이나 해태상을 설치함.산천비보(山川裨補) : 국가 왕업의 중흥을 위해 절, 불상, 탑을 세움.지명비보(地名裨補) : 지명을 조화롭게 이름지어 좋은 기운을 붙잡아 둠.그 예로 예천에는 금당 숲을 조성하고, 관악산의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우고, 화순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영천의 비봉산은 봉황을 붙들어 두기 위해 봉황이 좋아하는 대나무의 이름을 따서 조산을 조방산(竹防山)이라고 불렀다. 또한 길을 내고, 문을 만들고, 때론 길을 막기 위하여 소나무를 심었다. 그 외에도 궁성 내에 연못을 파고, 심지어 담을 쌓을 때도 풍수학에 따라 좋음을 따랐다.이렇듯 풍수학은 역사적으로 실생활에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또한 생활 규범으로 자리잡았으니, 우리 조상들이 오늘의 과학만큼이나 믿고 따른 사상임이 분명하다.살기 편한 마을 선택의 기준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선택할 때도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가졌다.먼저 일반적인 조건으로 그 첫째가 입향시조(入鄕始祖)다. 마을은 부락민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으로, 가족을 포함한 친족이나 이웃사람이 지연(地緣)을 함께 하는 생활 공동체다. 그 마을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고 산 사람이나 동성 집단을 일컬어 '입향조(入鄕祖)'라고 부른다.마을을 선택할 때는, 먼저 가까이 있는 산을 살펴서 대를 이어 사람이 살기에 편안한 제반 조건을 두루 갖췄는지를 생각했다. 집이 있어 조상의 묘를 두고 돌보기가 수월하되, 풍수적으로 명당을 선호했다.둘째로 농사짓고 살기에 편리한 곳을 찾았다. 산이 병풍을 두르듯 마을을 감싸고, 문전옥답(門前沃畓)이 넓게 펼쳐져 있고, 농사철에는 두레와 품앗이로 일손을 구하기 쉽고, 또한 자식을 낳아 기르고 가르치기에 용이한 곳을 선택했다.셋째로 사람이 훌륭하려면 태어나 자란 산천의 기운이 순조로워야 한다는 '인걸지령(人傑地靈)'이란 사상도 따랐다. 풍수 경전인 《설심부》에는 "인걸은 산천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데, 산천이 생기롭고 모양이 좋으면 훌륭한 인재가 배출된다. 산이 수려하면 귀인이 나고, 물이 좋으면 부자가 난다." 라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선택하여 사는 데에 신중을 기했다.다음으로는 배산임수의 기준을 가졌다. 마을이 입지할 터는 산과 평지 사이의 수계가 있는 완만한 경사지, 즉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선호했다.배산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을 막아 주면서 땔감을 구하기 편리하다. 조양(朝陽)은 전망과 일조량을 좋게 하고, 완만한 경사도는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으며, 숲은 물과 흙을 보호하여 미기후를 조절해 준다.임수(臨水)는 여름에 남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고, 근수(近水)는 수운 교통과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 주며, 관개 용수뿐만 아니라 수중 양식도 얻을 수 있다. 또한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넓은 사적 공간을 보장받는 외부 공간의 창출 그리고 남향 배치에 의한 일조와 통풍을 합리적으로 모색하도록 배려했다. 과수와 경제림은 소득과 연료림(練料林 : 땔감을 산출하는 숲)을 제공해 요컨대 좋은 마을 부지는 농업, 임업, 목축업, 어업 등의 산업에 있어서 양호한 생태 순환과 자연을 취할 수 있는 곳이었다.마지막으로 마을의 입지로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진산(鎭山)의 유무이다.우리 조상들은 마을이 들어서려면 마을을 수호하고, 지덕(地德)을 발동시키는 산이 있어야 하며, 그 산의 정기가 흘러드는 곳에 마을이 위치해야 동네가 편안하고 사람도 행복하다고 믿었다. 이 산을 '양기(陽氣)를 보호하는 산'이란 뜻에서 진산이라 부른다.진산이 없는 평야나, 진산이 멀리 떨어진 마을이라면 큰 나무를 당산목으로 삼아 하늘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따라서 진산은 마을 사람들과 집에 지기를 공급하는 '생기 탱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데, 권위와 위엄을 갖춘 채 마을 뒤쪽에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길하다. 그리고 진산은 혼자가 아니라 좌청룡·우백호 등 사신사(四神砂)에 의해 보호받는 형세를 갖추어야 그 위상이 정립되고 품위도 갖추게 된다.그 결과 진산은 마을의 입지 선택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했고, 또한 마을 설계에서 중심 축 역할을 담당했다.거주할 곳의 선택 기준마을 부지는 묘가 들어서는 산골짜기의 소규모 땅이 아니라, 토지가 상당히 넓어야 하며 생활에 필요한 여러 용품을 공급받기에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형세라도 풍수의 원칙인 장풍득수(藏風得水)와 양래음수(陽來陰受) 같은 생기가 충만하지 못하다면, 그곳은 풍수적으로 결함을 지닌 곳이다.예로부터 마을과 도읍의 입지를 선택할 때, 《택리지》에 나타난 복거지(卜居地)의 선정 기준을 가장 권위 있게 보았다. 《택리지》는, "거주할 곳을 선택할 때에는 우선 지리(地理)를 살피고, 그 다음에는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를 관찰했는데, 네 가지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낙토가 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생리가 모자라면 오래 살 곳이 못되고, 생리가 비록 좋아도 지리가 나쁘면 또한 오래 살 곳이 못되며, 지리와 생리가 함께 좋아도 만약 인심이 착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따라서 인심이 나쁘면 살 곳으로 꺼리고, 또한 가까운 곳에 마음의 번잡함을 씻어낼 산수 좋은 곳이 있어야 살 만한 곳이라고 보았다.●《택리지》의 네 가지 복거 조건먼저 수구(水口)를 꼽았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인 수구가 거칠게 이지러지고 넓게 비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논이 많고 큰 집이라도 다음 세대까지 전하지 못하며 패가(敗家)한다. 그러므로 백가천가(百家千家) 모여 살 마을로 삼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들판이 넓게 펼쳐진 곳을 구해야 한다. 산 속은 수구가 관쇄(關鎖)된 부지를 얻기 쉬우나, 넓은 들판이라면 수구가 관쇄된 입지를 선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거꾸로 흐르는 역수(逆水)를 귀하게 보고, 수구 지점에 물을 가두어 놓으면 생기도 함께 머물러서 길하다고 본 것이다.다음으로 야세(野勢)를 보았다. 사람은 양기를 받아야 살고, 양명한 빛은 하늘에서 비추니 만약 하늘이 잘 보이지 않으면 살 곳이 못 된다. 들은 넓어야 터가 좋고, 햇빛과 달빛 그리고 비바람을 잘 받는 곳이라야 훌륭한 인물이 나오며 질병이 적다. 특히 산이 사방에 높이 솟아 해뜨는 것을 보기 어렵고, 해가 늦게 뜬 후 일찍 지며, 밤에도 북두칠성을 보기 어려운 곳은 사람에게 병이 많다. 그러므로 사신사의 국세는 갖추되 부지가 협착하지 말아야 한다.토색(土色)도 중요한 마을의 입지 기준으로 보았다. 땅의 색깔이 길하지 않으면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 산이나 물가를 가리지 않고 땅 색이 좋으며 샘이 깨끗하면 살만한 곳이다. 만약 흙이 누렇고 질면 사토(死土)로 물도 깨끗하지 못하다. 이러한 곳은 살 곳이 못된다.마지막으로 거론한 것은 조산조수(朝山朝水)이다. 마을이 입지하려면 물이 있어야 식수로 이용할 수 있다. 풍수학에서 물은 재물을 뜻하고, 물가에는 부자가 많고, 산 속이라도 물이 있으면 살 수 있다. 조산에 석봉(石峯)이 있고 떨어지는 형태나 엿보는 모습이며 장곡충사(長谷沖砂)가 보이면 살 곳이 못 된다. 조산이 멀리 보이면 맑고 가까이 보이며 밝은 산이면 길하다. 조수(潮水)는 물 밖의 물이니, 작은 시내나 강은 역조(逆潮)하면 좋고, 큰 강에 이르러서는 역수(逆水)하지 말아야 한다. 또 물은 용맥을 만나 음양이 합해야 하고, 구불구불 다가오면 좋으나 일직선으로 쏘는 듯 다가오면 흉하다.●《산림경제》의 살 만한 곳먼저 이웃이 좋은 곳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거주지를 정할 때는 먼저 이웃을 잘 골라야 한다. 무슨 사고가 당장 일어나지는 않아도, 그런 곳을 멀리해 후환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웃을 보아 살 곳이 못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고 예를 들었다.·사찰이나 사당, 신당, 불당이 있는 근처·고관대작이나 큰 부자가 사는 근처·앞뒤로 큰 강이 가까운 곳·초가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불량한 무리들의 소굴이 되어 있는 곳·광대들이 섞여 사는 사이·젊은 과부나 건달들이 사는 근처미풍양속이 깃들인 마을을 찾아 살면 이웃이 덕이 있다. 이런 곳은 어질고 후한 인심을 지닌 마을이라는 말을 듣는 것 이외에 자신도 안락한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다음으로 꼽은 것은 집의 구조와 꾸밈이 길해야 한다고 했다. 집을 지을 때는 곳곳마다 밝고 환하게 할 것이고, 너무 깊숙하거나 그늘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정원에는 나무가 너무 넓은 지역을 차지하거나 빼곡이 심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뒷문은 절대로 열지 말고, 다만 앞쪽의 문 하나를 열어둠으로써 사람들이 드나들 때 반드시 외청(外廳) 앞을 거쳐가도록 해야 간사한 무리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며 환란도 미연에 방지한다고 하였다. 살다가 담이 무너진 곳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 쌓아야 하고, 도둑 등을 경계하기 위해 담 가까이에 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담을 넘나들 때에 사다리 역할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위와 같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 속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생활 속의 지침을 얻을 수 있다.田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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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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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전원주택] 낙도 움섬의 기와집 을사오적 권중현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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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지금의 시화간척지가 서해의 검은 물이 넘실대는 바다였을 때, 그곳에 움섬이 있었다. 서해의 여느 섬들처럼 가파른 해변 언덕 아래에 수십 채의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어촌이 매달리듯 붙은 작은 섬이었다. 밀물 때는 바닷물로 둘러싸인 낙도(落島)지만, 썰물 때는 갯벌로 이어져 완전히 고립된 섬은 아니었다.
70년대부터 이곳이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곧 육지가 된다는 은밀한 예측성 정보가 투자자 사이에 나돌았다. 내가 아는 모 사장은 이런 정보에 항상 발 빠르게 움직였는데, 움섬의 많은 땅을 사들여 목장으로 만들었다(이 투자로 그는 지금 엄청난 부동산 부자가 됐다). 움섬 목장에 소를 수십 마리 사 넣고 휴식과 점검을 겸해 자주 찾았다. 덕분에 나도 그를 따라서 움섬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움섬을 처음 찾을 때, 밀물 때라 서신이라는 포구에서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리던 10여 명의 섬사람들과 함께 어선을 타고 들어갔다. 하룻밤을 농장 숙소 격인 집에서 자고, 이른 새벽 상쾌한 바다 공기 내에 저절로 눈을 떴다. 아침을 먹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마을 주변을 산보 삼아 둘러보기로 했다. 해변에 면한 급경사지 여기저기에 낡은 집들이 모인 섬마을을 둘러보고는 뒤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섬 건너에 넓게 펼쳐져 있을 바다를 보고 싶어서였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숲 길을 조금 올라가다가, 나는 생각지 않은 광경에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곳에는 대숲에 가려진 낡은 기와집 한 채가 있었다. 서울 근교에서 볼 수 없던 대나무 숲도 신기했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낡고 찌그러진 집들만 있는 낙도에서는 상상도 못할 품위 있는 기와집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기와집에 어쩐지 슬픈 적막감이 감돌았다. 행여 시골 동네에서 흔한 제각(祭閣)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엄연히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방과 부엌까지 갖춘 가옥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된 터라 집은 퇴락(頹落)했고 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나는 뜨락에 들어서서 기와집을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서투른 동네 목수가 근처에서 베어 온 구부러진 잡목으로 엉성하게 지은 그런 시골형 기와집이 아니었다. 기둥과 서까래를 보니, 굵고 반듯반듯한 게 외지에서 제대로 고른 목재를 들여왔음이 확실했다. 게다가 나무 이음새나 마무리가 깎은 듯이 정확했다. 목수 역시 큰 도시에서 불러온 전문가인 듯했다.
가난한 섬마을에서 살림집을 고급스럽게 지은 사람에게는 필경 곡절이 있어 보였다. 외지에서 들여온 수준 높은 재료와 기술로 지은 기와집. 움섬의 다른 집들과 격이 확연히 다른 기와집을 짓고 산 사람이라면, 타지에서 들어온 재력가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 사람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을까? 보길도에 자리 잡고 산 고산 윤선도가 생각났다. 그러나 움섬은 보길도처럼 낭만 있는 낙향 생활을 즐길 만큼 풍광이 명미(明媚)한 섬은 아니었다. 나는 가슴속에 뭉게구름처럼 일어나는 궁금증을 달래며 아침 산보를 마치고 돌아왔다.
아침 밥상에서 나는 목장 관리인에게 그 미스터리 기와집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 기와집요? 뭐 구한말에 대감했던 사람이 숨어살던 곳이라고 하더군요.”
“누구였는지 이름은 모르십니까?”
“글쎄, 기억이 안 나네요. 하지만 그 후손되는 남매가 이 섬에 살고 있어요.”
나는 그들을 만나서 염치불구하고 내력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점심때부터 술을 좋아하는 모 사장이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들로 한상을 차려 놓고 술판을 벌이는 바람에 거기에 휩쓸려 그럴 여유도 갖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 취기가 가시지 않은 기분으로 움섬을 빠져나왔다.
움섬에 다녀온 뒤 회사에 나가면서도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서너 달이 지나고 이틀 쉴 기회가 왔다. 나는 열흘 전부터 모 사장에게 연휴에 그 섬에 가자고 졸라댔다. 연휴 때 골프를 쳐야 한다고 난색을 표하던 그도 나의 끈질긴 부탁에 굴복하고 말았다.
점심에 송산면 서신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배로 일렁이는 파도를 가르며 움섬에 들어갔다. 도착해서 짐 정리를 끝내고 목장에서 일하는 현지인을 소개받았다. 환갑을 넘은 노인이라 동네의 내력을 잘 알듯했다. 나의 질문에 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서울 대감 이름은 잊어 먹었어요. 동네에 아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네…….”
나는 그 대감의 자손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여기엔 손녀만 살지요. 오빠는 서울의 유명한 모 건설회사에 다닌다고 합디다.”
나는 눈치 없이 물었다.
“그 손녀를 만날 수 있을까요?”
노인이 주저하며 말했다.
“어제 남편하고 육지로 나가던데… 개인 생활을 물으면 별로 안 좋아할 텐데요.”
나는 무안한 기분이 들었다. 대신 노인이 설명을 했다.
“대감이 여기에 올 때 수발을 드는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대감과 한 몸이 되어 딸을 낳았지요. 대감이 죽고 모녀는 그 집에 살았는데, 그 딸도 결혼해서 아까 이야기한 두 남매를 낳았지요. 남매의 어머니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았는데, 자존심이 대단히 세서 섬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지요. 항상 대감 댁의 혈통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난했지만 자식 교육도 잘 시켜서 아들은 대학을 마치고 지금 서울에서 유명한 모 건설회사 과장으로 있어요.”
집안 내력을 듣고 보니, 그 손녀뻘 되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사생활을 묻는 것은 실례가 될 듯했다. 나의 궁리하는 듯한 표정을 보자, 같이 온 모 사장 회사의 김 과장이 거들었다. 그는 목장을 열 때 이곳에서 서너 달을 지냈기에 동네 사정을 잘 알았다.
“아, 몇 달 전 섬에 들어올 때 배 안에서 사장님과 말을 나누던 부부 생각나세요? 사우디에 같다왔는데 아직 직장을 못 잡고 있다던 사람 말입니다. 그 부인이 대감님 손녑니다.”
나는 금방 그 여자의 기억이 생생이 떠올랐다. 뱃머리에 앉아서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던 여자였다. 미인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이목구비가 시골 여자 같지 않은 품위가 있어 보여서 기억에 남았다.
나는 그 날 대감에 대해서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단지 늙은 동네 어부 한 사람이 두어 가지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감이 이곳에 자리잡고 어장을 열었는데, 직접 나와서 확인을 안 하니까 아래 것들이 모두 도둑질을 해먹어서 실패를 봤지요. 그리고 해방 전에는 저 기와집에 골통품도 많았는데 도둑들이 들락거리며 모두 훔쳐 같지요.”
나는 그 이튿날 아침 언덕에 올라가서 기와집을 보았다. 비록 퇴락했지만 건축물은 사대부가의 별당처럼 기품이 있었다. 새 집이었다면 금방이라도 예쁜 규수가 문을 열고 내다볼 것 같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외로운 낙도에서 어울리지 않은 기품을 가지고 태어나 쓸쓸히 사그라져 가는 그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연민의 슬픔이 느껴졌다. 나는 사극의 쓸쓸한 피날레의 무드를 느끼며 그 곳을 내려왔다.
목장으로 내려 왔을 때, 사장이 나를 불렀다.
“이봐 자네 그 기와집을 지은 주인 이름 알고 싶다고 했지?”
“혹시 아십니까?”
“내가 알아냈지. 저기에 학교 있지? 거기 선생을 만났는데, 그가 알고 있더군.”
불과 수십 가호의 작은 섬마을이었지만 열 명 미만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하나 있었다. 선생님 한 명이 전 학년을 담당하는 작은 학교였다. 나는 반가운 생각에 사장을 다그치듯 물었다.
“누구랍디까?”
“구한말에 농상공부 대신을 역임한 권중현이라는 사람이더군. 유감스럽게도 그는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이래요.”
“을사오적이라…….”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나는 외딴 섬의 기와집과 역사 속의 인물인 그와의 사이에서 가능한 여러 소설적인 연관 관계를 떠올리며 어떤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서울로 올라오자 말자 권중현이라는 사람의 인적 사항을 조사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없던 세상이라 큰 도서관 두 곳을 방문해야 했다. 드디어 개략적이지만 그의 신상을 알아낼 수 있었다.
농상공부 대신 권중현. 고종 때인 1854년 태어나서 1934년에 세상을 마감했다. 충북 영동 출생.
그는 일찍이 일본어를 배워 친일의 길을 내내 걸었다. 비록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힌 인물이지만 경력은 화려(?)했다. 일본공사와 농상공부대신·군부대신을 지냈고, 합방 뒤에도 일본으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았고, 중추원 고문과 조선사편찬위원회의 벼슬을 얻었다.
그의 경력이 움섬의 기와집을 세련스럽게 지을 만한 지적인 수준이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움섬의 기와집과 연결된 그의 경력에는 특이한 것이 있었다.
그는 망국적인 을사조약에 날인을 하고 암살단의 습격을 받았다. 을사오적 암살단 단원 이홍래, 나인영, 오기호 등의 총격을 받았으나, 악운이 세서인지 살아 남았다. 그는 이 암살 미수 사건 뒤에 합방이 되고 벼슬도 내놓게 되자, 식솔을 이끌고 고향인 영동의 추풍령 아래로 숨어들 듯 피신해서 숨죽이고 살았다. 그후 세상이 조용해지자,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지내다가 세상을 떴다.
짐작해 보건댄 그는 서울로 이사 온 뒤인 말년에 이 움섬에 자리를 잡은 듯했다. 경력을 보니 그의 움섬 이주에 짐작이 가는 바 있었다. 을사오적으로서 그가 세인들로 받은 비방과 증오는 대단했을 듯싶다. 사실 역사가 매질을 해댄 매국노 친일파 중에는 나중에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거나 심한 죄의식에 시달린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을사오적의 수괴 이완용도 그랬고 일진회 두목 이용구도 그런 후회의 행적을 남겼다.
모르긴 몰라도 권중현도 내내 그런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더구나 자신의 매국 행위에 대한 대가를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협도 받지 않았던가 말이다. 세상의 비난과 양심의 괴로움 그리고 생명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에서 그가 피난처로 찾아 스며든 곳이 이 움섬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추측해 본다.
그의 불안한 심정은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심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암살의 위협을 받고 한때나마 모든 식구를 인솔하고 고향 땅으로 피신했던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어느 을사오적도 그와 같이 이렇게 외진 낙도를 피난처로 삼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어쩐지 쓸쓸히 낡아 가는 이 낙도의 기와집과 그 주인의 인생을 알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대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돌아가리라. / 전원이 더욱 거칠어 가니 / 내 어찌 아니 돌아가리오. // 이미 내 마음속 한 자락은 무거운 형벌되어 서서히 짓누르니 / 어찌 혼자 슬픔에만 젖으란 말인가. // 지난날 잘못이야 돌이킬 수 없는 일 / 닦아 오는 세월이야 잘해 보리라. // 아직 깊은 수렁에 빠진 게 아닐지니 어제의 잘못된 길 이제야 알았노라
권중현은 세상의 질타와 위협에서 자신을 숨겨 주고 감싸 준 이 외딴 섬의 기와집에서 자신의 한때 잘못 생각해 저질렀던 과오에 대한 반성하며 파고드는 마음의 외로움을 달래지 않았을까?田
글 김창원
글쓴이 김창원 님은 공인중개사로서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에서 강,
바다, 호수 경관 전문 부동산 ‘물빛뜨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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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