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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5)]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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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 황토집을 지으면서 여유 있는 터에 두 평이 되는 정자를 앉혔다. 정자 마루 하방에 흙돌담을 둘러쌓은 것은 황토집에 어울리는 맵시를 갖추기 위함도 있었지만 마루 아래를 창고로 쓰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집을 짓고 남은 자재와 연장들을 넣어 두기에 좋았다. 입구가 있는 반대편에 파이프로 공기통을 만들어 그물마개를 끼워 두었는데 그물마개는 땅에 떨어져 버렸고 나는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었다.뜰의 나뭇가지에 부쩍 늘어난 새들이 교태롭게 지저귀던 이른 봄, 새 한 마리가 그곳을 기웃거렸다. 포르르 자리를 옮겨가며 들여다보고 주위 살피기를 계속하더니 이튿날은 짝까지 데리고 와서 살폈다. 분명 둥지 터를 찾고 있었다.'그래, 어서 집을 지어라. 방해하지 않을 테니'서재 유리창으로 훤히 내다보며 새의 동작이 어찌나 귀여운지 마음이 무척 즐거웠다. 밖에서는 안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색유리라 새는 주위의 조용함에 안심하고 살피는 눈치였다. 배와 꼬리가 진한 황토 빛을 띠고 회색 날개에 흰점이 보이는 새를 나는 우리 황토집에 걸맞게 '황토새'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제비만한 크기에 날씬한 몸매가 아름다웠다.셋째 날, 혼자 찾아든 황토새는 한참을 기웃거리더니 파이프 안으로 날아들어 갔다. 지름이 불과 10센티미터인 둥근 공간에서 몸을 움츠리고 앉아 안을 살피고 밖을 내다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더니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그곳에 찾아들지 않았다. 땅 높이와 가까운 곳인데다 바람이 불면 비가 뿌려 칠 것을 염려했던 터라 더 안전한 곳을 택했을 거라는 생각에 서운했지만 안심을 하며 잊고 지냈다.그후 몇 날이나 지났을까. 안채 모퉁이 처마 아래 상인방 편편한 목재 위로 날아드는 황토새를 보았다. 지푸라기 새집이 보일 듯 말듯 은밀한 곳이다. 세상에, 새는 완벽하게 안전한 곳에 둥지를 튼 것이다.장마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어느 해보다 많은 강수량을 기록하며 인간을 위협한다. 폭염과 폭우로 해마다 이상기온이 계속되는 것은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들으며 엄청난 수해는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자업자득이 아닌가 돌아본다.산에서 내려오는 빗물이 우리집 도랑에서 넘쳐난다. 콸콸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꺾어 도는 정자 옆 감나무가 서 있는 언덕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마당을 덮친다. 언뜻 먼 태곳적 이야기 한 자락을 떠올리며 삽과 괭이를 들고 얼른 뒷밭으로 올랐다.중국 하왕조 때의 우禹임금은 아버지 곤이 실패한 치수공사를 성공시켜 임금이 되었다. 강의 하류에서 둑만 쌓아 장마가 질 때마다 홍수를 거듭하는 아버지의 실패를 보고 강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 물길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여 나라를 구했다. 그 업적으로 임금이 될 수 있었으니 물길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는 능히 나라를 다스릴 줄 앎이다.넘쳐나는 도랑의 둑을 손보지 않고 재빨리 뒷밭으로 오른 나도 물길을 갈라놓았다. 괭이와 삽으로 흙을 떠내어 둑을 만들어 놓은 물길을 따라 빗물이 갈라졌다. 언덕을 넘쳐흐르던 빗물은 순하게 도랑을 따라 흐르고 대신 대문 앞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많은 빗물이 흘러내렸다. 안전한 우리 집을 바라보며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으슥해지는 기분이다."이만하면 나도 주인 몫을 잘 한 거지!"내 말에 빙긋이 웃어주며 고마워하는 우리 집을 세밀히 보살핀다.산길이든 마을길이든 애초에 길은 대부분 물길을 따라 만들어진다. 비 내리는 날 산을 오르면 모든 등산로가 물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하나의 나무가 가지를 이루고 서 있는 형상이 산의 물길이다. 끊기거나 얽혀 있지 않은 질서를 이루고 있다. 계곡을 건너 다시 길이 이어지는 원리가 그런 연유에서이며 작은 골은 큰 계곡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계곡은 두 능선을 가른다.처음 집터를 보러왔을 때 뒷산의 지형을 살피며 마을 어른들에게 안전함을 물어보고 집 둘레의 물길을 둘러보며, 둥지를 짓기 위해 우리집을 찾아든 황토새의 살핌만큼이나 신경을 썼다. 본채를 앉힐 터의 뒤 언덕에 이중으로 돌을 쌓아 여유를 둔 것도 넓은 마당을 갖겠다는 욕심보다 안전을 염두에 두었다.집중호우로 산사태가 져 마을이 휩쓸리고, 사람이 실종되고, 언덕이 무너져 전원주택이 상하는 광경을 TV로 보며 저 일을 어찌하나 싶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앞으로 지구온난화는 더욱 심할 것이며 폭우로 인한 수해는 증가할 지도 모른다. 전망이 좋고 물이 좋은 산기슭이나 강가에 전원주택지를 택할 때 더욱 폭우에 대비한 안전에 유의해야 할 일이다.유난히 새가 많이 날아드는 우리 집 감나무엔 오늘 새벽에도 새들의 연주회가 이어졌다. 산골생활에서 누리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이른 아침에 듣는 새소리다. 각양각색의 새소리가 합주가 되어 잠을 깨운다. 요즘 가장 맑고 곱게 들리는 새소리는 분명 우리 집에 둥지를 튼 황토새 새끼들의 지저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것은 아름답다.田글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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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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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여덟 번째 이야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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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어느 시대에, 누가 만든 노랫말인지 삶의 지혜가 묻어 난다. 모든 것은 때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텐데 잘못 생각하면 한심하다 할 수도 있다.'젊고 힘이 있을 때 열심히 일해야지 젊어서 놀라니.' 그러나 살아갈수록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특히 전원주택에 살다 보니 이 노래의 참뜻이 더 이해될 때가 많다. 좋은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좋은 집에서 살거나… 좋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그때, 바로 그런 것을 해야 한다.사람의 감정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든지 좋다.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웃음이 나온다는데 나이 들어 갈수록 좋은 것이 별로 없다. 감정은 점점 메말라 가고, 온갖 걱정과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살아나던 감정도 달아난다. 그러므로 느낄 수 있을 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아무리 좋은 것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좋은 것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라이프사이클과 인생 살이아이들은 예쁘고 귀엽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한창 기를 나이에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다. 지치고 힘들면 아무리 귀엽고 예뻐도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 나이가 바로 그런 때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여유가 생길 때면 비로소 아이들이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아기를 기른다면, 정말 예쁘게 잘 기를 텐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야말로 인생에 있어 버스 떠나간 지 한참이 지나 버린 것이다.음악도 학창시절 듣던 느낌과 나이 들어 듣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같은 음악인데도 그 옛날 느낌이 아니다. 학창시절 특히 가을 녘 '솔베이지 송'이나 '히브류 노예들의 합창' 등을 듣던, 그때의 감흥은 대단했다. 그것도 어쩌다 라디오에서나 점심시간 학교 스피커에서 흘려 듣던 음악인데도……. 그런데 지금은 당시의 라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오디오로 듣지만 그때와 같은 감격은 없다.여행도 그렇다. 수학여행을 가던 시절. 수학여행비의 납부가 가능할지에서부터 출발하기까지의 여러 절차들이 참, 마음 졸이게 했다. 그 수학여행 가는 날은 어찌 그리도 더디 왔던가? 드디어 만원 버스와 완행열차를 갈아타고, 달리는 차안에서 바라보던 가을 들녘의 풍경과 단풍이 노랗게 물든 산사山寺, 맛도 없는 반찬에 허름하던 식당, 복잡하기 그지없던 여관 방 그래도 그 시절의 여행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돈 걱정은 말할 것도 없고 좋은 자가용차에 콘도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어 모든 것이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여유로운 여행이 왜 그때만 못하는가?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역시 다 '나이 탓'이다.이것이 인생이다사실은 아이들을 기를 그때, 나이 들어서처럼 넓은 집과 생활의 여유가 있었어야 했다. 그랬어야 아이들에게도 원 없이 잘 해주고, 예쁘게도 키웠을 것이고, 귀여움을 한껏 만끽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특수한 사람 외에 대부분의 신혼들은 전세를 살거나 내 집이 있어도 여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경우도 불안정하여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다. 사는 재미를 느끼는 면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때 모든 것이 더 여유로워야 했다.또 한창 감성이 풍부하던 그 학창시절에 좀더 여유로웠어야 했다. 마음껏 책도 사보고, 좋은 음향기구에도 빠져보고, 다양한 경험을 했어야 했다. 그런 기회가 많았다면 아마 모르는 소질도 개발되어 세계적인 음악가로 대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나이 때는 도저히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여행도 그렇다.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 시절에 여행을 많이 했어야 했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수학여행도 좋지만, 그런 것 이상의 자유 분방한 여행을 경험했다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청년 시절에 유럽을 여행하며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여행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보는 것뿐 아니라 홀가분하게 집과 가족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평상시와는 다른 많은 것을 스스로 보고 느낀다.이처럼 사람에게는 '때'가 중요하다. 기회가 됐을 때, 기회를 살리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바로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때 그러한 일을 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나다. 그런데도 뭔가가 필요한 그 시기에는 모든 것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아쉽게도 그러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나이 들어 아쉬워만 할 뿐이다.'이것이 인생이다.'살어리 살어리 주택에서 살어리랏다!집도 그렇다. 아파트에서 사는 많은 사람도 언젠가는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한가하게 살고 싶어한다. 그런 집에서 꽃도 기르고, 애완견과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자녀 문제, 교육 문제, 직장 문제, 생활의 편리성. 자금 문제, 가족의 반대, 부동산적 가치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유 때문에 하고는 싶지만 그저 마음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은 단 한번 뿐으로 이 시간이 지나면 그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는데…….물론 자녀와 가족, 부동산 등이 중요하긴 하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나', 바로 내가 더 중요하다. 내가 있어야 자녀도 있고 가족도 있다. 그런 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는 싶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로 실행하지 못 하다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나이 들어 은퇴 후에나 가능성이 보인다. 이렇게 은퇴 후에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누리는 축복일 뿐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마저도 불가능하다.최근 주5일제, 환경과 건강 문제 등으로 분위기는 좋다. 그러나 분위기는 성숙되어도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고 있어 포기한 채 살아간다.그런데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단 한번 사는 인생인데 아이들 때문에? 가족 때문에? 그렇다고 자녀나 가족, 뭐 그런 것들을 아예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중요한 것들도 적당히(?) 해결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몇 가지는 포기하고 용기도 내 보자. 포기하지 않거나 용기를 내지 않으면 끝내 못한다.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황금기?누구에게나 문제는 있다. 그러나 어차피 모든 것을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 어떻게 자녀 문제에서부터 부동산적인 문제까지 모두 해결할 것인가. 당연히 어렵다.그래서 극히 중요한 문제-아이들의 대학진학-만 해결된 후 용단(?)을 내렸다. 많은 생각과 준비 끝에 드디어 탈脫아파트를 결행한 것이다. 사실 아파트를 떠나기까지 실로 오랜 세월이 걸렸고 수많은 노력을 하였다.이곳은 양평이나 용인 등과 같이 먼 곳이 아니라 서울의 개발제한구역에 있는 취락마을이다. 그래서 출퇴근이나 아이들의 통학 그리고 생활 여건 등에 문제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강이 가깝고 야산과 밭으로 둘러싸여 공기도 맑고 한가하다. 무엇보다도 넓은 마당이 있어 갖가지 취미 생활이 가능하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텃밭과 꽃밭 등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연못과 닭장, 토끼장, 새장과 진돗개네 집 심지어 정자까지도 직접 만들었다. 여기에 금붕어와 잉어, 꽃 닭과 병아리, 새와 토끼까지 기르니 평생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사실 이런 생활이 우리들이 어린 시절 살던 모습으로 그 동안 우리는 아파트라는 곳에 너무 빠져 있었다. 그 놈의 돈이 뭔지, 자식들이 뭔지, 부동산이다 교육 등을 생각하다 보니 그 동안 '나는 없었다'. 몇 년째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 망설였던 가족이나 아이들도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것을 반대한다. 이런 생활이 더 좋고 행복한 것은 오랜 아파트생활 탓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늘 하는 일이라는 것이 TV를 보는 등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런 답답한 생활을 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생활을 하니 이게 바로 '내 생애 최고의 황금기'가 아닌가 생각된다.이곳에서의 생활은 얼마나 다양하고 흥미 있는 일이 많은지 알 수 없다. 바로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이다.이곳에서의 생활은 할 일이 많다. 아니 일하는 재미로 일부러 일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재미있는 일을 할 시간이 없다. 아침시간이 너무 아까워 일찍 일어나지만 금방 시간이 지나간다.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출근하기 싫을 때도 있다. 주말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여유로운 날이다.이 같은 생활에 빠져 있다 보니 아쉬움이 있다. 바로 안타까움이다. 좀더 일찍 이런 생활을 했더라면……. 나이가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부터 이런 생활을 했어야 하는 아쉬움 말이다. 그 누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한심하다고 하는가?즐겨 보세, 즐겨 보세, 젊어서 즐겨 보세!가끔은 봄이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과연, 이렇게 좋은 봄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사실 이제는 그럴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생각은 우리를 정말 슬프게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이 마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상태로 그 좋은 봄을 느낄 수 있을 때는 몇 번 되지 않는다. 얼마나 안타깝고 아까운 인생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봄을 생각하면 그 봄 가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보통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그런지 아니면 평생 언제까지나 이런 봄을 맞을 것처럼 생각들을 하는지, 천만의 말씀이다.그러니 이 봄도 아까워하며 봄을 즐길 수 있을 그때 그 봄을 즐겨야 한다.나이가 들수록 도시에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자녀들을 길러야 하는 젊은 시절 빼고, 힘이 빠진 나이인 때를 빼고 나면 이렇게 하고 싶은 생활을 할 때는 뻔하다. 바로 지금이 그대가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 그 때다.이렇게 사는 나를 보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재미있는 생활을 하느냐?'고 엄청나게들 부러워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참 안타깝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왜, 그렇게 부러워하면서도 이렇게 살지 못하느냐?'고.그들이나 나나 비슷한 나이에 대부분의 조건도 비슷하다. 그들, 아니 이 글을 읽는 웬만한 사람들도 물론 그렇다. 특히 버블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값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과연 그 비싼 아파트에서 얼마나 '사는 맛'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꼭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만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곳에서의 답답하고 재미없는 생활이 '진정한 삶'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병문안이나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면 흔히들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앞으로 이렇게 살지 말자,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그렇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그 동안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우리의 자녀와, 가족들과,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살았다. 주말이 즐거운 것은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일주일 내내 무위도식한 사람은 평일이나 주말이나 다를 것이 없으므로 주말이라는 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자신을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있다.이제는 우리도 남은 인생을 충분히 즐길 때도 되었다.田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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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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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집과 가든을 겸한 김해 87평 복층 RC +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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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대동면 주중리에 자리한 87평 복층 RC+목구조 주택. 외관에서는 수직선과 사선이 안정감 있게 교차하고, 흰색과 갈색 그리고 연초록색이 한데 어우러져 부피감이 느껴진다. 주거 전용 전원주택이라 하기엔 다소 화려해 보이는데 아닌게아니라 1층은 가든, 2층은 주택이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자 외관에 신경을 썼다고. 건축주 이태록·장미숙 부부는 노후에 전원생활을 하고자 1989년 이곳에 부지를 마련했다. 당시만 해도 가든 식당은 생각지 않았으나 전원생활 계획이 10년 앞당겨지면서 가든을 하게 됐다고. 도시에서 생활할 때보다 몸은 더 고되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편할 수 없다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경남 김해시 대동면 주중리
·부지면적 : 370평
·대지면적 : 217평
·연 면 적 : 87평(1층 53평, 2층 34평)
·건축형태 : 1층 철근콘크리트 구조,
2층 경량 목구조+대들보, 서까래 구조
·외벽마감 : 본타일 + 시멘트사이딩 + 시다 베벨사이딩
·내벽마감 : 원목 루바, 실크벽지, 인조석, 천연대리석, 원목 몰딩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천 장 재 : 홍송 서까래 노출 + 원목 루바, 실크벽지
·지 붕 재 : 이중그림자 아스팔트 슁글
·바 닥 재 : 강화 온돌마루, 데코타일
·창 호 재 : 시스템 창호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 경유 보일러
·시공기간 : 2006년 2월∼6월
설계 및 시공 : 상림건축사사무소 / 상림건설(주) (055)324-0488(代)
www.sanglimh.com
전원생활자들의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전원생활=노후생활’이란 등식이 깨진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전원에 거주하면서 인근 모도시母都市로 출퇴근하거나, 전원에다 생계生計를 위해 펜션이나 카페, 가든 식당 등을 겸한 분위기 있는 주택을 짓는 사람이 늘어났다. 전원생활자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나이가 많든 적든,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어디에서 하든 공통점은 도시생활에 대한 염증이다. 이곳에 가든을 겸한 주택을 지은 이태록(52)·장미숙(49) 부부도 예외는 아니다.
주중리는 전형적인 농촌으로 서북쪽은 예전에 중국 항공기가 떨어진 돗대산과 성리학자인 남명 조 식 선생이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양성했던 산해정山海亭이 있는 신어산에 둘러싸여 아늑한 데다, 동남쪽은 훤히 트여 밝고 따듯한 기운이 감돈다. 마을 어귀 뾰족하게 솟은 교회당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주택은 70, 80년대의 전형인 아담한 슬래브집 일색이다. 그렇다 보니 현대 감각의 연면적 87평 복층 RC+경량 목조주택은 규모나 외관에서 마을의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들 부부는 30대인 1989년 부지를 마련한 이후 17년 만에 집을 지었다. 부산 구포의 아파트에 살던 이들 부부는 30대에 일찌감치 노후를 염두에 두고 이곳 땅 370평을 마련했다고.
“업무상 받은 스트레스가 한적한 교외로 드라이브하면서 말끔히 풀렸지요. 그때 주말마다 교외 이곳 저곳을 맴돌게 아니라 어느 한 곳을 정해 농사짓다가 은퇴 후 집을 지어 눌러 앉자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부지를 마련하려고 집에서 가까운 10여 군데를 둘러보다가 부동산 소개로 이곳을 알았고요. 부산에서 20분 거리라 접근성도 좋았으며 그린벨트에 묶여 발전 가능성도 없었고 무엇보다 동네가 조용한 게 참하고 좋았지요.”
당시 주민들은 도시에서 온 젊은 부부가 땅을 샀다고 하자, 땅 투기다 하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전원생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때라 그럴 만도 했다고.
“투기가 목적이었다면 그린벨트에 꽁꽁 묶인 자투리땅을 사지도 않았을 거예요. 우리 부부는 방갈로를 짓고 주말마다 내려와 서툰 솜씨로 배추며 상추, 고추 등 각종 채소를 가꾸면서 기회 닿는 대로 주민들에게 식사 및 술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렇게 몇 해를 지내다 보니 주민들이 지나다가 때맞춰 심어야 할 채소며, 그것을 어떻게 심고 가꿔야 하는지를 귀띔해 주더군요. 그때서야 이방인異邦人이란 굴레를 벗고 주민의 일원이 됐구나 싶었지요.”
집은 아름답고 튼튼하며 편리해야
이태록 씨는 쉰을 넘기면서 10년 앞당겨 터전을 아예 전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은퇴 후에는 기력이 딸려 집 짓기에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라고.
“부산에서 가까운 데다 교통 여건도 나아졌고 집사람도 운전을 하기에 굳이 도시의 아파트에서 갇혀 지낼 이유가 없었어요. 기왕 전원생활을 하기로 맘먹은 거 앞당겨 하는 게 여러 모로 낫겠다 싶었죠. 나이 들어서는 기존 주택을 사면 몰라도 새 집은 설계다 시공이다 해서 힘들잖아요. 처음엔 1층을 계획했다가 한 번 지으면 다시는 못 지을 거 같아 2층으로 지은 것도 그런 이유지요.”
2층으로 계획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려 했으나 집을 짓고 나면 농토가 부족해 그럴 형편도 못 됐다고.
“대지를 제외한 160여 평에다 주민들처럼 정구지(부추) 농사를 지을 순 없잖아요. 그러자 집사람이 15년 전 갈비집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서 1층에 가든을 내자고 하더군요. 가든을 하려면 목이 좋아야 하는데 이곳은 평범한 작은 농촌이라 고민을 많이 했지요. 그런데 마을 어귀에 자리한 식당들을 보니 차들로 가득한 거예요. 생각해 보니 우리도 주말에는 교외로 나가서 식사하곤 했거든요. 메뉴를 차별화하고 집을 눈에 띄게 짓고 주차장을 넓히면 될 거 같았지요.”
이태록·장미숙 부부는 집의 용도가 정해지자 전원주택 관련 전문지와 홈페이지를 통해 설계·시공사를 찾았다. 외관이 아름답고 튼튼하며 편리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하고.
“가족이 비염과 기관지염을 앓기에 2층 살림집은 공기 순환이 좋은 목구조로, 1층 가든은 물과 불을 많이 사용하므로 튼튼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RC조로 정하고 시공업체를 찾았지요. 그런데 집이 맘에 든다 싶으면 수도권에 위치한 업체였어요. 집을 짓고 만에 하나 하자라도 발생하면 사후관리가 어렵다 싶어 인근 업체를 찾았는데… 그러다 상림건설(주)을 알았는데 여기서 20분 안쪽에 시공한 집이 여러 채 있어 찾아가 보니 건축주 모두 흡족해 하더군요. 경상권에서 주택을 많이 시공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어 맡겼죠.”
각 실마다 마감재를 달리해
상림건설(주)에서는 현장을 방문해 부지 현황을 살피고 설계도면을 제시했다. 가든을 겸한 주택이기에 좌측 도로에서 진입과 주차가 편리하게끔 하고 우측에 여유 공간을 확보해 연못을 갖춘 정원을 배치했다. 입면은 벽면과 지붕선에 변화를 주고 마감재며 색상을 달리하고 높이를 높여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게끔 했다.
그러한 배치로 마을 한가운데 자리했으면서도 일단 마당에 들어서면 전원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더욱이 진입로에서의 시선을 주택이 차단하는 데다 뒤쪽에는 조경수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고 우측에는 개울이 흐르고 전면에는 밭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2층 살림집의 출입구는 목재로 발판을 만든 좌측 계단으로 1층 가든과 철저히 독립시켰다. 실내 평면 구조는 현관을 기준으로 전면에 손님방·거실·안방을, 후면에 가족실·파우더-룸이 딸린 욕실·주방 겸 식당, 다용도실을 배치했다. 그리고 안방 지붕 밑 7평 공간엔 다락방을 냈다.
드레스-룸이 딸린 안방은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자 출입구에서 떨어뜨려 동쪽에 배치했다. 창문을 남동쪽에 내 분위기가 밝고 화사하며 벽면과 달리 원목 루바로 마감한 천장이 이채롭다. 특징은 안방에서 여닫이문을 열면 먼 산이 바라보이는 발코니를 통해 다용도실로 통한다는 점이다. 이 발코니는 동선을 단축함과 동시에 유사시 출입문에서 외진 안방의 비상구 역할을 겸한다.
1층과 철저히 분리됐으면서도 2층 거실은 하이실링으로 처리한 여느 복층 주택처럼 천장고가 높아 시원스럽다. 이들 부부는 아파트에 살 때 천장이 낮아 답답했는데 이 집도 1층과 분리됐기에 천장이 낮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단다. 그런데 천장이 높은 데다 대들보와 서까래까지 노출돼 있어 목조주택의 멋이 한껏 묻어난다고.
맞춤형 가구를 들여놓은 주방의 경우 천장은 루바로, 벽면은 인조석과 천연대리석·실크벽지로 부분마다 마감을 달리함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장미숙 씨의 아이디어인데 이태록 씨는 여러 가지 마감재를 사용하면 복잡해 금방 싫증을 느끼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볼 때마다 색다른 멋이 느껴진단다. 한편 안방과 같은 선상으로 길게 뽑은 다용도실은 보조주방과 세탁실로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다.
당초 설계안에서 추가된 부분이 7평 다락방이다. 안방 천장을 반자처리하면서 사라지는 지붕 밑 공간을 활용했다고.
“안방 지붕 밑 공간이 자투리라 하기에는 너무 넓어 창고로 사용할까 하다가 다락방으로 꾸민 거예요. 앞에다 반원형 창을 내고 동쪽에 뻐꾸기창을 내어 루바로 마감했더니 중학생인 막내아들 동국이가 자기 방으로 한다기에 붙박이장을 짜줬어요. 예상치 않던 돈이 들었지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잘했다 싶어요.”
공간이 하나 늘어나면서 아들방을 가족실로 꾸미고, 경기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아들방은 손님방을 겸하게 됐다.
1층 가든은 지역적인 특색을 살려 ‘낙동강오리알’이라는 오리고기 전문 체인점으로 꾸몄다. 구조는 RC지만 실내를 목재로 마감해 분위기가 언뜻 2층과 마찬가지로 목구조처럼 느껴진다. 가든을 오픈한 지 한 달여 됐는데 사람들이 집이 아름답다며 들렀다가 오리고기 맛을 보곤 그 맛에 매료돼 다시 찾곤 한다고. 알음알음 입 소문이 나면서 단체손님이 늘어나 도시에서 생활할 때보다 몸이 더 고되다는 건축주 부부. 그러나 주변 공기가 맑고 집 안이 상쾌해 숙면을 취하다 보니 이튿날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개운하다고.田
글·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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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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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의 세심함이 곳곳에 묻어 나는 횡성 43평 경량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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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로 유난히 많은 비를 뿌렸던 여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산이 쓸려 내려오고 도로가 유실되고 하천이 범람했다. 엄청난 양의 비를 동반한 강한 바람은 평생을 살아온 집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전원주택은 이로부터 안전한가. 많은 수의 전원주택이 산과 물이 가까운 곳에 지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건축정보
·위 치 :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대지면적 : 200평
·연면적 : 43평(1층 30평, 2층 13평)
·건축형태 : 경량 목조주택(2″×6″)
·외벽마감재 : 이미지 스톤 + 시멘트 사이딩
·내벽마감재 : 벽지 + 보드(패널)
·천정마감재 : 벽지 + 노출서까래(루바)
·지붕재 : 이중그림자 아스팔트 슁글
·바닥재 : 강화마루
·창호재 : 시스템 창호
·난방형태 : 심야전기 보일러 + 벽난로
·식수공급 : 지하수
설계.시공 : KS하우징 (02)522-7990 www.kshousing.co.kr
강원도 횡성군 유현리에 위치한 43평 복층 경량 목조주택. 설계와 시공을 맡은 KS하우징 장길완 대표의 말처럼 이 주택은 외관이나 인테리어보다는 골조공사에 더 많은 노력을 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것이다.
외관은 물이나 염분 그리고 태풍에도 매우 강한 시멘트 사이딩으로 마감하고 이미지 스톤을 더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포틀랜드 시멘트에 모래와 세룰로즈 화이바를 섞고 첨가제를 넣은 시멘트 사이딩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물과 바람에 강할 뿐만 아니라 충격과 저항력 등에도 고강도 내구성(50년 이상)을 자랑하는 것이 강점이다. 자연스런 나뭇결 무늬에 기후 변화에도 부식되지 않아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되는 마감재로 유지비는 적게 들면서 깨지거나 뒤틀림이 없어 경제성도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대한 기본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는 골조공사도 마찬가지. 비용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골조에 기존 목조주택보다 더 많은 양의 자재를 들였고 2층 바닥은 16인치 더블로 마감해 안정감을 더했다. 이를 통해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과도한 변형을 방지하고 외부에서 전달되는 충격을 흡수하게 했다.
더불어 진입로에서 집을 왼편에 배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프라이버시를 확보한 점도 눈에 띈다. 뒤로는 자연과 어우러진 논이 아우러져 있고 빼어난 산세가 보기 좋은 전망을 자랑한다.
‘一’자 형 덱이 감싸고 있는 현관을 열면 오른편으로는 거실과 주방이 왼편으로는 침실이 자리한다. 거실은 창문을 대칭형으로 배치해 미적인 효과를 연출했으며 2층까지 튼 높은 천장은 원목 무늬를 그대로 표출시켜 자연미를 살렸다. 루바의 멋스러운 생동감이 바닥까지 치고 내려오는 거실은 시원스레 전면으로 펼쳐진 자연 경관과 함께 전원의 쾌적한 맛을 내고 있다.
거실 왼편에 노출형 벽난로를 두어 단조롭기 쉬운 거실 벽면에 포인트를 주었고 그 주변을 파벽돌로 마감해 색다른 멋을 연출했다. 거실과 연결된 주방에는 외부 덱으로 향하는 문을 내 밖에서 조리할 때의 편의성을 보장했다.
돋보이는 건축주를 위한 배려
현관에서 마주 보이는 계단을 따라 2층을 올라서면 오른편으로 황토방이, 왼편으로는 침실이 자리한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공간을 터 거실을 바라보도록 했고 각 방에 설치한 창문도 그 수를 줄이고 크기를 작게 했다.
서울 생활에 찌든 건축주는 점점 약해져 가는 몸을 달래고자 전원주택을 짓고 이곳을 통해 심신의 피로를 풀 요량이라고 한다.
이러한 건축주를 위해 KS하우징은 2층 방 하나를 황토방으로 드렸다. 황토대리석을 압착시멘트로 붙인 후 황토로 미장하고 심야보일러를 사용해 열을 전달시켜 언제든지 찜질 효과를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하수 냄새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을 지붕으로 뽑아 올린 것도 특징. 장길완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거실, 욕실, 화장실 등의 배관을 중간 지점에서 하나로 묶어 지붕으로 올림으로써 갖가지 좋지 않은 냄새가 집 바닥에 머물지 않고 자연스레 배출되도록 한 것이다.
덱에서도 건축주에 대한 또 다른 배려가 묻어난다. 건축주와 몇 번 만나 대화를 하다 보니 자주 찾는 인척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장 대표. 그는 덱에 하나뿐이던 테이블을 두 개로 늘리고 여러 사람이 앉도록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 보이던데 삼겹살이라도 구워 들려면 테이블 하나로는 부족하겠다 싶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집을 튼튼하게 지었다는 것은 외형적인 견고함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세심한 주의가 더해져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어긋난 홈 하나가 집 전체의 안전을 좌우하기도 하고 이는 시공업체에서 건축주를 얼마나 많이 배려했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견고함과 보이지 않는 배려, 횡성 43평 목조주택을 어떠한 충격에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田
글 홍정기 기자 / 사진 최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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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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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미려한 양평 38평 복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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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풀려 토지 거래가 수월해진 데다, 중앙선 경전철이 가시화되어 교통이 더욱 편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양평. 그 중에서도 용문은 수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하면서도 양평지역에서 저평가 받는 곳이다. 4차선 6번 국도 개통, 경전철 소식이 전해지면서 최근 용문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건축정보 A 필지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대 지 : 150평
·건축면적 : 38평
·건축형태 : 복층 목조주택
·외벽마감 : 시멘트 사이딩
·내벽마감 : 석고보드
·지 붕 재 : 아스팔트 슁글
·천 장 재 : 석고보드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보 일 러 : 심야보일러
설계 및 시공 : (주)NH건설, 031-555-7020
www.namyanghousing.co.kr
용문 내에서도 특히 연수리는 물이 맑고 자연 경관이 빼어나 펜션이나 전원주택 부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이미 상당수의 주택과 펜션이 용문산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줄기를 따라 자태를 뽐내고, 공사가 한창인 곳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울창한 숲을 간직한 용문산이 동네를 아우르고 자연휴양림, 관광단지, 리조트 등이 제공하는 천혜의 자연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모으고 있는 것이다.
용문산에서 시원하게 내리 뻗은 계곡 물을 아래에 두고 38평 복층 목조주택이 들어섰다. 무릎까지 오는 작은 울타리로 경계를 나누고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길에 놓인 디딤돌은 방문객의 발길을 이끈다.
디딤돌을 따라 바라본 이 집은 흰색과 오크 색의 시멘트 사이딩이 화려한 멋을 풍기는 현대식 전원주택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전면 창을 둘러싸고 있는 오크 색은 집과 덱과의 조화를 한결 자연스럽게 연출하고 거실 전면 창과 현관 문, 주방 전면 창 높이를 모두 같이 해 시각적인 안정감을 세련스럽게 더했다. 디딤돌 끝에 다다르자 덱과 연결된 계단이 현관이 앞에 있음을 알린다. 전면과 주택의 좌측까지 이어진 덱 역시 외부에 설치된 울타리와 같은 색으로 연출하고 낮은 난간을 둬 일체감까지 더했다.
현관문을 열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주하고 그 오른편으로 거실과 침실이 왼편으로는 주방이 자리한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집답게 거실 전면에 시원스레 창을 내 풍부한 햇살을 한껏 끌어들였다. 2층까지 개방한 천장은 원목색을 그대로 드러내 목조주택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집의 내화 성능과 차음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석고에 목재 섬유를 혼합한 석고보드로 천장과 내벽을 마감하고 거실 왼편 벽을 아트월로 꾸며 단순해지기 쉬운 벽면 인테리어를 보완했다.
오크색 활용한 인테리어
거실 전면 창과 마주하는 침실에는 바닥재와 동일한 색상의 붙박이장을 설치하고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위해 창을 최소한으로 냈다. 침실을 나와 오른편에 위치한 욕실을 지나면 주방이 보인다. 현대 감각이 돋보이는 주방 역시 전면으로 여러 개의 큰 창을 낸 것이 특징. 주방에서 덱을 드나들도록 해 이동의 편의성을 도모했고 천장고를 높여 환기성도 높였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창을 내고 그 앞으로 덱을 설치했다. 햇살 좋은 날 하늘 보기에 딱 좋을 만큼의 공간을 2층 덱으로 활용한 것이다. 왼편으로 거실과 욕실이 자리하고 2층 통로에는 거실을 내다보도록 성인 키 높이만을 개방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이 주택의 내부는 원목색과 오크색의 조화가 일품이다. 거실 천장의 원목색 루바 사방을 오크 몰딩으로 마감하고 직선으로 바닥까지 뻗어 내려오게 했는데 집 내부 전체가 이와 같은 형식의 색 조화를 보인다.
주방 천장도 마찬가지. 깔대기를 뒤집은 모양을 한 거실 천장 주위를 오크색 몰딩이 보호하고 흰 창문 네 모퉁이 역시 오크 몰딩이 감싸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 공간의 통일감과 조화미가 일품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건축주는 이 집을 주말주택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눈에 띄는 가구나 살림살이가 적은 것도 그 이유다. 그래서 방의 개수도 최소한으로 하고 공간을 넓게 활용해 편안함을 강조했다.田
글 홍정기 기자 /사진 최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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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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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꿈에 그리던 집을 남한강에 양평 59평 복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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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좋아하는 남편 윤근수(60) 씨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아내 한기자(56) 씨에게 결혼 30주년 선물을 준비했다. 신혼 때부터 부부가 꿈꿔 오던 전원주택을 마련한 것이다.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남한강변에 석축을 쌓아 목조주택을 앉히고 내부는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연출해 전망과 함께 멋스러움을 살렸다. 앞쪽으로는 강변의 여유로움을, 뒤쪽으로는 비닐하우스와 함께 시골 정취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강하면 운심리
·부지면적 : 800평
·대지면적 : 160평
·연 면 적 : 59평(1층 36평, 2층 23평)
·건축형태 : 경량목구조(내·외벽 2″×6″)
·외벽마감 : 방부목 사이딩, 드라이비트
·내벽마감 : 적삼목, 핸드코트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드라이비트 이중단열
·천 장 재 : 핸드코트
·지 붕 재 : 이중그림자 아스팔트 슁글
·바 닥 재 : 강화마루
·창 호 재 : 시스템 창호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벽 난 로 : 30평형 노출형 벽난로
·정 화 조 : 10인용 오수 정화조
·식수공급 : 지하수(150m)
·시공기간 : 2005년 4월∼7월
·건축비용 : 평당 450만 원
설계 신영건축사사무소 02-592-0494
www.syhiland.com
시공 하우징센스 간옥자 011-9515-4257
남한강변에 인접한 경사지를 활용한 곳. 알고 보니 홍수 등의 피해로 석축을 안 쌓으면 허가가 나지 않는 곳이다. 나지막한 경사로를 따라 오르는 진입로에서는 손님을 반기 듯 야생화가 바람에 은은한 향을 뽐낸다. 좌측으로 향하는 입구를 안으로 들이고 드라이비트로 깔끔하게 마감한 외벽은 덩굴 문양의 철제 난간으로 장식했으며 외벽을 따라 야생화를 심어 정원과 집이 어우러진다. 푸른 잔디밭에는 입구 우측으로 디딤돌을 놓아 발길을 자연스럽게 강가로 이끈다. 지대를 높인 탓에 강에서부터 급한 경사면이 생겼지만 대신 집에서는 강 너머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강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정자를 앉혀 주거와 휴식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했다. 가정을 꾸린 지 30년, 신혼 초의 꿈을 이룬 부부가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을 들어보자.
결혼과 동시에 전원을 꿈꿔 온 30년
결혼하면서부터 전원에서 살자며 서로의 믿음을 확인한 부부. 40년 전, 사춘기 때 방과 후면 집안일을 도와 농사를 지었던 남편과 도시에서만 자라 전원에 대한 꿈을 키워 온 아내. 자란 환경은 서로 달랐지만 최종 목표는 하나로 뭉쳐져 전원에 대한 동경을 담아 왔다.
성남에서 장사를 함께 하며 인근 주택가 단독주택에서 살 때부터 철근콘크리트가 싫어 아파트는 거저 준다 해도 싫다고 거절했을 거라고 확신하는 부부.
“애들이 크고 나니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전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했지요. 오죽하면 집 짓는 꿈까지 꿨을까 싶어요. 그래서 땅이라도 한번 알아볼까 생각했죠.”
입을 모아 부부가 말하는 것을 보니 처음부터 전원행을 꿈꿔 왔다던 말이 빈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장사를 함께 하지만 아직 일을 놓고 싶지 않다는 부부. 그래서 일터와 가까우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강가 부지를 찾아 나섰다고. 주로 보러 다닌 곳이 남한강변 일대인데 양평군 운심리에 들어서면서 마주한 이 땅은 강과 접하면서 도로에서 5분 거리라 접근성도 좋고 사람도 많이 살지 않아 첫눈에 반해 버렸다고. 그렇게 2001년 800평의 땅을 구입했다.
하루는 딸아이가 고등학생 때부터 학부모 모임에서 알고 지낸 사람 집에 놀러갔다가 집이 예뻐서 첫 눈에 반했다고. 그 집을 보고 ‘우리도 한번 지어볼까’하는 용기가 생겼지만 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때를 기다리자고 입을 모았단다.
“땅을 사고는 통학하는 아들 때문에 집 짓기는 미루기로 했는데 못 참겠더라고요. 졸업을 앞둔 아들에게 양해를 구해 집을 짓자고 합의를 봤어요.”
그렇게 집을 짓기로 하고 허가를 받고자 2004년 4월부터 두 달간 흙을 실어와 부었단다. 집을 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상황은 만들어 놔야 하지 않느냐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부부의 모습이 그 시절로 되돌아 간 듯했다.
일전에 방문한 집의 건축주는 다름 아닌 딸아이 친구의 어머니인 간옥자 씨였다. 직접 전원주택을 짓고 실력을 인정 받아 시공과 인테리어를 도맡아서 하는 하우징센스 대표이기도 하다. 이미 알고 지낸 터라 무엇이든 물어보기가 한결 편했다는 부부. 간옥자 씨의 소개로 신영건축사사무소 최길찬 건축사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2005년 2월 준공검사를 받은 후 4월부터 3개월간 집을 지었다.
남한강변 정기 살려 프로방스 풍의 집을 짓다
“먼저 정취 좋은 남한강변의 전망을 살려 달라고 했지요. 전원행을 택한 가장 큰 이유니까요. 그리고 방은 꼭 4개여야 한다고 강조했죠. 어머님을 모시기에 노모방과 안방 그리고 아이들 방이 필요했거든요.”
2004년 6월 설계를 맡길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부부에게선 그간 착실히 꿈을 키워온 때문인지 집을 짓는 이유와 살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 외에는 건축 전문가인 최길찬 건축사와 간옥자 씨에게 믿고 맡겼다고.
1층에는 강가 쪽으로는 식당과 거실, 안방을 배치하고 외부에는 거실과 식당을 잇는 덱을 연결해 전망을 살렸다. 식당 뒤로는 주방과 드레스-룸을, 거실 뒤에는 화장실을, 안방 뒤에는 노모방을 배치했다. 거실과 노모방 사이에 2층으로 향하는 계단실을 두었다. 거실 2층 부분은 개방시켜 시원하게 연결시키고 식당 위에는 아들방을, 안방 2층에 딸방을 배치했다. 강 쪽으로 창을 내 잔잔히 흐르는 강과 건너편 전경이 펼쳐진다. 2층 홀에서 강변을 바라보는 곳에 창을 내 그림처럼 걸린 남한강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시공을 맡은 간옥자 씨는 내부를 흔한 실크벽지 대신에 핸드코트를 활용해 벽면의 질감을 살리고 적삼목을 부분적으로 사용해 포인트를 주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아르데코 풍의 철제 난간을 설치해 1층과 2층에서 그 사이로 계단에 쌓아둔 장식품을 볼 수 있게 했다.
보라색을 활용한 거실 커튼을 비롯한 소품 등에서는 부인 한 씨의 감각이 돋보인다. 외부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전원풍이라면 내부는 신비스러움을 살린 세련미가 넘치는 주거공간으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자연에서 키우고 자연에서 거두다
성남의 중심가에서 살았는데 당시 유학 간 딸방을 가끔 청소하러 들어가면 창문에서 새까만 먼지가 묻어났다며 혀를 내두르는 아내 한 씨. 이곳에서는 딸방을 청소하려고 해도 할 것이 없다며 싱긋 웃음을 짓는다.
“아파트는 거저 준다 해도 싫었어요. 철근콘크리트 주택에서 사는 게 답답해서 싫은데 누가 반기겠어요. 그래서 도시의 단독주택에서 곧장 전원으로 오게 된 거지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중 맘껏 숨을 들이쉬는 공기가 제일이라는 부부. 이들에게서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위안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밭에다 고추, 파, 오이, 가지, 옥수수 등 먹을거리를 전부 심었더니 찬거리 걱정은 전혀 없어요. 작년에는 호박농사가 잘 돼서 60통도 넘게 주웠어요. 힘들긴 했지만 너무 좋아서 디카로 사진까지 찍어 놨지요.”
농사는 경험 있는 남편이 짓고 아내는 즐거이 거둔다는 부부. 성남으로 출퇴근하랴, 농사에 청소까지 하느라 몸이 바빠졌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전원으로 터를 옮긴 지 2년, 그동안 도시와 전원생활을 적절히 섞어 누릴 것은 누리고 버릴 것은 버리고 있는 모습이 강물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빛나 보였다.田
글·사진 최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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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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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한 포항 31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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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복고復古 열풍 중! 70, 80세대와 함께 했던 한물간 것들이 되살아나면서 기업들이 한창 복고풍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혹자는 그 원인을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 상황이니, 급변하는 사회상에 대한 저항이니 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주거에서는 여기에 향수鄕愁와 참살이까지 더해져 시멘트에 밀려났던 흙집이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홍석모(49)·김상순(45) 부부는 어릴 적 한옥에 살던 때의 향수를 떠올리며 포항시 북구 양덕동 나지막한 산자락에 목구조 흙집(심벽치기)을 지었다. 홍석모 씨는 한국전통초가연구소(소장 윤원태)의 설계 및 기술 지도를 받아 이 집을 직영으로 지으면서 어릴 적 서울 종로구 충신동에서 ‘ㅁ’자형 한옥에 살던 때의 추억을 되살렸다고. 이 집의 특징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흙과 나무 등 기본 자재는 변함이 없으면서 불편했던 실내 공간 배치나 냉·난방 시설 그리고 내·외장 마감재 등을 현 상황에 맞게 바꿨다는 점이다.
건축정보
·위 치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양덕동
·건축형태 : 단층 목구조 황토집
·대지면적 : 160평
·건축면적 : 31평
·평면구조 : 현대식 일자형 겹집
·벽체구조 : 황토 이중 심벽치기(벽두께 20㎝)
·벽체마감 : 황토맞벽 후 내·외벽 순수 황토미장
·실내구조 : 안방, 아들 방, 딸 방, 거실, 주방, 욕실, 현관, 다용도실, 보일러실
·창 호 재 : 외부 우드컬러 하이새시, 내부 목창·문(세살문)
·바 닥 재 : 황토+운모+백모래 혼합 황토
·벽 지 : 닥종이(한지)
·지붕마감 : 아스팔트 슁글
·난방시설 : 심야전기 보일러
·정 화 조 : 10인용 오수정화조 설치(혐기여상폭기방법)
별채
·건축형태 : 목구조 황토집 4.7평
·실내구조 : 구들방, 주방, 욕실, 툇마루
·난방시설 : 장작 아궁이 시설
·바 닥 재 : 구들장 위에 황토+운모+백모래 혼합 황토로 마감 미장
·지붕마감 : 아스팔트 슁글
·건축비용 : 평당 250만 원
설계 및 기술지도 :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011-556-2007
홈페이지 : www.koreachoga.co.kr
포항공대 가속기연구소에 근무하는 홍석모 씨가 목구조 흙집을 짓겠다 맘먹은 것은 1992년 직장을 따라 부산에서 포항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옛 한옥을 개조해서 살려고 했을 정도다. 한옥의 매력에 불을 지핀 것은 부산 일광의 연립주택에서 고택古宅인 최 부잣집을 바라보며 살면서부터라고.
“연립 2층에 살 때 베란다에 최 부잣집의 감나무 가지가 천연덕스럽게 담을 넘어와 걸쳤지요. 대청이며 툇마루,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지붕선이 아름다운 그 집을 볼 때마다 서울 충신동의 ‘ㅁ’자형 옛집이 떠오르곤 했어요. 그 집이 불편해서 중학교 때 양옥으로 이사하면서 좋아했는데… 양옥에서 아파트로 이사할 때는 또 어땠고요. 그런데 대학에 다니면서 아파트의 편리함은 잠깐이고 답답해서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그때부터 한옥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포항으로 이주하면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한 그런 한옥을 짓겠다며 집사람하고 전국의 유명 고택들을 답사했지요. 집사람이 부업으로 도서대여점을 열면서 잊고 지냈지만…….”
이들 부부는 인근 아파트에서 10여 년간 살았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큰 집이 필요했다. 그런데 40평형대 아파트는 2억 원이 훌쩍 넘자, 그 돈이면 한옥을 한 채 짓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생활정보지를 통해 낯익은 부지를 마련했다고.
“이곳은 내 조깅 코스인데 마침 매물로 나온 부지가 있어 평당 40만 원에 160평을 매입했어요. 개발업자가 임야를 전원주택단지로 개발해 필지를 300평씩 나눈 땅인데 중간에 개발을 포기했다더군요. 먼저 이주한 아랫집에서 구입한 땅의 절반만 필요했기에 나머지를 팔려고 내놨던 것이죠.”
자녀들이 고입과 대입을 앞둔 시점이라 반대가 많았을 법한데… 알고 보니 홍석모 씨는 전원에 집을 지으면 마당에 농구대를 설치해 주겠다는 서약서까지 썼다고.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서울 상계동에 사시는 어머니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어요. 내가 한옥을 좋아했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우리는 사촌이나 친구들끼리 만나면 술잔을 나누면서 옛날에 살던 집이며 그를 둘러싼 주변 얘기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판에 박은 듯한 아파트에서 살면 그런 얘기를 못해요.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조차 없잖아요.”
저예산 직영으로 집을 지어
부지를 쉽게 마련한 이들 부부는 연면적 40평 복층 목구조 흙집 건축비로 1억 2000만 원의 예산을 잡고 시공업체를 찾았다. 그런데 흙집 시공업체가 드물 뿐만 아니라 그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 자리한 경성대학교 부설 전통초가연구소(소장 윤원태)를 알게 됐다. 전통 목구조 흙집 기능인들을 양성하면서 일반인에게는 설계와 기술지도를 하는 곳이다.
“작년 9월 전통초가연구소를 찾아가 윤 교수에게 건축 예산을 밝히고 목구조 흙집을 40평 2층으로 짓고 싶다고 밝혔지요. 그러자 자재비와 시공비 등을 뽑더니 그 예산이면 직영으로 30평 단층집밖에 못 짓는다고 하더군요. 평당 300만 원, 직영이지만 그동안 상담한 시공업체들이 평당 400만∼500만 원을 요구했기에 설계 및 기술 자문을 의뢰했지요.”
주택은 부지 형태가 옆으로 긴 데다 앞에 집 한 채가 자리해 있어 전망을 고려해 진입로 쪽으로 길게 배치하고, 반대편 제법 널찍한 마당 앞에는 별채를 앉혔다. 평면은 현관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거실과 두 개의 자녀방을, 우측에는 안방과 욕실·주방 겸 식당을 배치했다. 특징은 마당과 접한 우측 지붕선을 길게 뽑아 다용도실과 창고를 냈다는 점이다.
31평 본채와 4.7평 별채는 목구조 흙집으로, 건축주가 윤 교수의 자문을 받으며 직영으로 시공했다. 작년 11월 중순 목구조 공사를 시작해 12월 말에, 황토 미장과 창호 및 마감 공사는 이듬해 3월부터 4월에 마쳤다. 겨울철 공사를 중단한 이유는 뼈대가 일정 기간 수축과 뒤틀림이 진행된 후 이른 봄 황토 미장공사를 함으로써 목구조 흙집의 단점인 목재와 황토벽의 틈 벌어짐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본채 바닥은 건강성 주거를 위해 하방下枋 밑으로 황토(40㎝), 마사(15㎝), 참숯(8㎝), 마사(5㎝), 황토(10㎝)를 깔고 엑셀파이프를 설치한 후 다시 굵은 마사(3㎝), 황토 마감재(6㎝), 황토 대리석 순으로 시공했다. 전통 구들방을 드린 별채는 구들장 위에 황토, 운모 그리고 백모래를 혼합한 황토로 마감 미장을 했다. 두께 20센티미터 벽체는 외를 엮어 황토 이중 심벽치기 후 황토 모르타르로 마감했다.
앞을 내다보고 공간 활용성 높여
이 주택의 특징은 거실과 두 개의 자녀 방을 일체화한 점이다. 홍석모 씨는 대청처럼 넓게 활용하고자 했다고.
“네 가족인데 땅의 모양과 목구조의 한계로 원하는 크기의 방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거실과 접한 아이들 방을 연계시킨 거예요. 딸(고3, 경진)과 아들(중3, 성권) 방의 문을 여닫이 대신에 미닫이로 거실 전면창하고 크기와 위치를 같이해서 달았죠. 또 두 방을 벽체 대신에 미닫이문으로 분리했고요. 딸이나 아들 모두 대학에 진학하면 방이 빌 테니 그때 미닫이문을 떼 내어 세 개의 공간을 하나로 묶어 앞뒤로 트인 대청마루처럼 넓게 쓸 수 있도록 말이죠.”
또 다른 특징은 마당과 접한 우측 처마를 길게 뽑음으로써 활용도를 높인 점이다. 이 공간은 다용도실과 창고로 사용 중인데 홍석모 씨는 욕심이 나는 곳이라 살면서 개조하고 싶다고.
“삼면으로 트인 마당과 접한 다용도실에 누마루를 앉히고 그 밑을 창고로 활용했으면 해요. 안팎이 교류하는 6평 남짓한 공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또 본채 처마를 1미터 정도 덧대 그 밑에 쪽마루도 만들 거예요. 어머님이나 장모님이 묵으시도록 지은 별채 쪽마루에 누워 있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 없거든요.”
마당에는 우리나라 고유 정원처럼 잔디를 깔지 않았는데 올 여름 폭우 때 흙이 자꾸 쓸려 내려서 잔디를 깔까 고민 중이라고. 한편 이들 부부는 예산이 좀더 넉넉했으면 아스팔트 슁글 대신에 너와를 얹어 외관을 고풍스럽게 꾸몄을 걸 하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홍석모 씨는 집을 직영으로 지으면서 느낀 점을 이렇게 전한다.
“직영으로 한다니까, 사람들이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하더군요. 집 한 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하는데 나는 재밌었거든요. 서울 출장 중에 현장으로 급히 포크레인을 부른 것 말고는… 한옥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여러 곳을 답사했는데 이론과 실전은 다르더라고요. 이번에 상·하수도니 전기 배선이니 하는 설비를 알았어요. 정년퇴직 후에는 한옥학교도 다니고 연고지인 중부권에다 제대로 된 한옥을 내 손으로 직접 지을 거예요. 한 가지 덧붙인다면 전통도 좋지만 집은 그 시대 생활상에 맞게 변하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평면 구조며 인테리어 자재도 옛것만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소재도 사용했으면 해요. 사람의 키가 커졌기에 칸도 넓혀야 하고…….”田
글·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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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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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이 있는 와불臥佛 보러 오세요-가을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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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살짝 다녀간 소나기 한 자락에도 그 동안 더위에 단련된 대지는 식을 줄을 모르는데 그래도 입추가 지난 시골마을에는 어제와는 다른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 바람에 벼에 이삭이 고개를 내밀고 시골 농부의 용돈이 될 고추들이 붉게 익어가고 있다.
가을이 묻어나는 바람을 맞으며 ‘쌀바위 전설’로 유명한 미암사米岩寺를 찾아갔다. 부여에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고란사, 무량사 등의 유명한 사찰이 많다. 그런 사찰들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역사적인 유물과 오랜 전통으로 이름을 얻고 있지만 미암사는 자연적으로 우뚝 서 있는 바위와 최근 새로 조성한 흔히 ‘와불’로 알려진 석가모니 열반상으로 부여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사찰이다.
미암사에 이르자, 실내에 고이 모셔진 불상이 아닌 노천에서 모로 누워 세상을 달관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와불상부터 눈에 들어왔다. 흔히 사찰에는 사람을 압도하며 경외심을 강요하는 거대한 조형물들부터 만나기 마련인데 미암사의 와불은 학교에서 돌아온 자식을 낮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로 맞이하는 엄마의 익숙한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누워있는 부처님에 앞에 서니 금방이라도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응, 너 왔구나’ 하며 일어나 앉으며 ‘밥은 먹었니?’ 해줄 것 같은 일상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부처님 모습이었다.
미암사를 돌아보는 동안 내 귀에는 ‘어라, 부처님이 주무시고 있네, 그 부처님 참 거시기하게도 누워있네’ 하는 소리도 들렸다. 휴가의 막바지를 즐기러 온 것 같은 한 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부처님한테 섹시하다고 하면 실례이겠지’ 하며 웃는 소리도 들려왔다. 쌀바위를 지긋하게 올려다보며 누워있는 와불상이 있는 미암사는 신선한 상상이 있는 절집인 것 같다. 더구나 미암사에는 따로 대웅전이 없고 눕혀 놓은 부처님의 몸속을 개방하여 법당을 모셔놓았다. 얌전하게 포개진 부처의 발바닥 쪽으로 돌아서면 바로 와불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몸속에는 일반 사찰과 다르지 않은 법당이 있어서 비로소 종교적인 신성성이 느껴졌다.
누워 있는 부처님을 보고 나오면 눈앞에는 ‘미암사’가 유래한 거대한 하얀 바위가 우뚝 서있다. 과연 막 바심(타작)을 해서 껍질을 벗겨 놓은 하얀 쌀알 모양의 바위는 전설이 깃들지 않을 수 없는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전설의 내용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쌀 바위 전설과 다르지 않음은 아쉬운 점이다.
우리 나라의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들은 주인공이 한결같이 바위나 굴속에서 불공을 열심히 드렸더니 하루 먹을 양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욕심을 부려서 쌀이 나오는 바위틈이나 굴속을 파냈더니 피가 흘렀고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유형이다. 미암사 쌀 바위 전설의 주인공인 유씨 할머니만큼은 비슷한 유형의 전설의 내용에서 예외적으로 하루치만 나오는 쌀의 양에 만족하고 감사히 소박하게 살았더니 자자손손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이었다면 하는 역발상을 해보았다. 그랬더라면 지금도 미암사의 쌀바위 어느 틈에서 쌀이 나오고 있지 않을까?
지금에야 쌀에 대한 포한이 풀려서 쌀이 남아도는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 민족에게 쌀은 종교였다. 미암사만 해도 쌀알처럼 생긴 바위가 산중턱에 있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유감 주술類減呪術로 공을 들이고 소원을 비는 신성한 장소에 부처님은 나중에 모신 경우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서려있는 쌀바위가 있어서인지 미암사가 위치한 내산면은 구룡 평야에서 생산되는 맛좋은 쌀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요즘 미암사는 토속 신앙의 소박함과 정통 불교의 맥을 이어 불자들에게 의욕적으로 불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불사가 한창이다. 미암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점심 국수 공양도 제공하고 있다. 이왕이면 쌀바위의 전설에 따라 하얀 쌀밥 공양을 제공하려고도 했지만 쌀밥에 따르는 반찬들을 준비해줄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절집이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서 환경오염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어서 간단하게 잔치 국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여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 유적과 잘 알려진 관광지가 많은 곳이다. 뛰어난 예술가의 솜씨가 느껴지는 불상들도 많은 곳이다. 하지만 때로는 권위적인 신성성에서 벗어나 장독대에서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비손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질 때는 미암사의 누워있는 부처님과 쌀바위에 서린 염원을 찾아오시길.田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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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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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집으로 신바람 나는 농촌을... 장성 한마음공동체 남상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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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 도회의 늪에서 고향을 잊고 살던 사람들이 모여 누에고치 실크와 천연 염색 입을거리〔依〕, 우리 땅 유기농 먹을거리〔食〕, 친환경 황토집 짓기〔住〕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참사랑 대안교육까지……. 전남 장성군 남면 마령리에 위치한 한마음공동체(대표 남상도 목사)다. 이 공동체는 80년대 현지 백운교회 남상도 목사와 성도聖徒들 그리고 장성농민회를 중심으로 현실 사회와 농업 농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 투쟁을 전개했으나, 그 한계와 제도적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느끼고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고자 정의 생명 민족공동체에 근거한 생산 유통 소비가 함께 어우러진 생활 속에서 농민운동을 실천하고자 1990년 3월 설립됐다. 6년 전부터는 황토로 벽체를 쌓은 황토집을 개발 보급 중인데 주거 문화를 통해 도시의 인구와 자본을 농촌으로 끌어들여 농촌을 살리자는 취지에서다.
호남고속도로 장성 나들목으로 나와 광주 방면으로 10분쯤 접어들면 우측으로 ‘한마음공동체’라고 적힌 푯말이 나온다. 그것을 따라 농로로 20분 남짓 들어서면 수초 짙게 드리운 거수지 너머로 길게 늘어선 황토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마음공동체 초입에 자리한 한마음생태유치원(체험실, 사랑채, 본채)으로 116평 대형 황토집이라는 점에서, 자유 분방한 해학성에서 그리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성에서 발길을 멈칫하게 만든다. 이곳이 다소 정적靜的이라면 폭염을 가르는 기계음 요란한 마당은 동적動的이다. 가만히 있어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뜨끈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황토 야적장에서는 황토벽돌을 찍어내느라, 신축 중인 황토집 현장에서는 천장에 개판蓋板이며 황토를 얹느라 그리고 체험장에서는 천연 염색에다 도자기를 빚느라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황토집 짓기에 여념이 없는 남상도 목사. 그는 6년째 황토 벽체만으로 하중을 받치는 전통 황토집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온몸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그에게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사회학 생태학의 고전인 《오래된 미래》를 떠올렸다. 과거를 유추하고 있는 모습에서… 황토집은 가장 오래된 집이자, 미래에 가장 각광 받을 집이다. 남상도 목사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황토집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개발 보급하는 황토집은 천장에 흙이 40센티미터 이상 올라가 비막이 역할을 하며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듯해요. 벽체는 기본이 45센티미터라 하중을 견디면서 기본 성능을 갖췄고요. 집은 구조에 따라 그 수명이 시멘트는 50년, R.C는 100년, 목조는 관리만 잘 하면 300∼400년 그리고 황토집은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천 년 만 년 간다고 하잖아요. 흙은 썩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그토록 우수한 황토집이 오늘날 대중화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시멘트에 밀려났던 목구조 황토집도 되살아나고 있는데… 남상도 목사는 그 이유를 역사 속에서 찾아냈다. 그리곤 황토집을 지을 때는 황토의 성질, 집의 구조, 지역 특성을 살펴야 한다고.
“과거 권력을 움켜줬던 양반 지주地主들은 평야지대에 살면서 드넓은 땅을 지배했지요. 그런데 평야에 지은 황토집은 홍수가 나면 그 날로 다 무너지기에 목구조 황토집으로 바뀌었어요. 결국 황토집은 평야가 아닌 산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서민들의 주거 형태 였지요. 즉 황토집을 지으려면 지리적 특성을 잘 살펴야 해요. 몇 백 년에 한 번이라도 홍수가 지는 지역에서 항토집을 짓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니까요. 들이치는 비는 괜찮은데 올라오는 물에는 속수무책이지요.”
황토집으로 도시민 불러모아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은 농사지어 실패해도 농촌을 떠나고, 돈을 벌어도 더 이상 고생하지 않겠다며 농촌을 떠나는 실정이다. 남상도 목사는 농촌에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에게 있어 황토집 짓기는 일종의 농촌 살리기 운동인 셈이다.
“농산물만으로는 농촌이 도시를 따라갈 수 없어요. 사람, 돈,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농촌은 도시보다 열악하잖아요. 그렇다면 농촌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6년 전 농촌이 유일하게 도시를 이길 수 있는 게 자연이라는 경관 문화라고 생각했어요. 이 문화에 부가가치를 높이자, 그것이 바로 황토집이죠. 이제는 교통 여건이 발달했기에 많은 도시인이 농촌에 거주하면서 모도시母都市로 출퇴근하기를 바라잖아요. 농촌에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젊은이들이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해요. 그래야만 농촌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그들이 주변 농산물에 애정을 갖다 보면 수입 농산물 개방에도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남상도 목사는 덧붙여 농민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농촌을 농사짓는 농민만의 생활 공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농촌은 직업이 다르더라도 농민과 자연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도시민이 와서 함께 사는 곳으로 생각해야지요. 그래야만 도시의 인구와 자본이 유입돼 농촌이 살아요.”
황토집에 안전성, 편리성, 예술성을
남상도 목사의 황토집 짓기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 첫째 지형이 황토집 짓기에 적합한지 풍수지리에 따라 세심하게 확인한다. 둘째 황토집에서 살 사람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면 정성껏 시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양한다. 셋째 주변 경관과 어떤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깊이 묵상한다. 건축은 그저 서 있는 구조물을 뛰어넘어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 집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 것인지 확인하고 그 목적에 맞는 설계와 시공을 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 안전성, 편리성, 예술성을 극대화시킨다. 황토집의 안전성은 2003년 중국 복건성 영정에 있는 ‘토루’를 방문하면서 확신을 가졌다고. 800여 명이 동시에 살았던 대형 흙집이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상없이 건재한 원리를 체험하고 지금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음공동체 내에 국내 단일 황토집으로는 가장 큰 160평 복층 황토집이 그 산물이다.
나주에 지은 항토집에서는 스위스인이 1년간 살고 있는데 그동안 잔병치레 한번 안 했다며 스위스에 집을 가져가고 싶다고 극찬할 정도다. 여기에 힘을 얻어 남상도 목사는 지금 장성에 황토집 100채를 짓는 꿈에 부풀어 있다. 장성군에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호텔 대신 황토집 100채를 짓자고 건의했다고.
“20만 평 뽕밭을 조성해 잃어버린 우리의 실크를 회복하고, 그 경관을 이용해 산책로도 만들 예정이지요. 그곳에 원룸형 황토집 100채도 짓고요.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에 가면 그곳에서 하룻밤 묵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16년간 유기농업 한마음공동체를 뒷바라지하면서 누에고치 실크 접근과 황토집을 지으며 새로운 농촌문화의 대안을 실천하는 남상도 목사.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황토집을 통해 농촌 문화의 꽃이 만발하기를 기다려 본다.田
한마음공동체 061-393-0649, www.yuginong.co.kr
글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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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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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를 찾아서] 완벽한 자연, 교통, 생활, 건강주택단지 'Noble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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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판교’라 불리면서 많은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용인시 수지 신봉동. 광교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인근에 각종 생활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어 주거 환경도 나무랄 데가 없지만 그간 만성적인 교통난이 악재로 작용해 왔던 것이 사실. 그러나 서울-용인 고속화도로, 분당-수서 고속화도로, 국지도 23호선을 잇는 도로 등 6개 도로의 신설·확장 계획이 알려지자, 신봉동은 최근 ‘포스트 판교’라는 이름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 신봉동 택지개발지구 선정은 또 다른 호재가 되고 있다.
친환경 도심형 고급주택
신봉동 입구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10여 분을 들어가 오른쪽을 바라보면 광교산 기슭에 (주)좋은집의 전원주택단지 ‘노블랜드(Noble Land)’가 위치해 있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광교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신봉천이 흐르니 ‘배산임수’, 그야말로 명당자리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도록 모든 필지를 남향에 계단형으로 앉혔다.
‘국내 최초 건강주택단지’를 표방하는 ‘노블랜드’는 산림을 훼손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올려놓은 것이 일품이다. 또한 모든 주택에는 친환경 소재를 고집해 환기성이 우수한 창호, 건강 자재, 숯 벽지, 황토방과 더불어 모든 마감재에도 친환경 접착제만을 사용했다.
(주)좋은집 이은정 과장은 “자연과 호흡하고 느끼며 조망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 설계 과정에서부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노블랜드라는 이름에 맞게 중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웰빙까지 더했다”고 한다.
설계에서 시공, 완공, 분양, 입주까지 책임지는 ‘토털 시스템(Total Service)’을 제공, 입주자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점도 노블랜드만의 특징. 한국주거문화연구소(KOREA HOUSING FORUM) 해외 건축가들과 손잡고 설계한 고품격 디자인에 (주)좋은집의 풍부한 노하우와 기술력이 어우러져 근래 보기 드문 전원주택단지를 탄생시킨 것이다.
노블랜드가 각광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주거 환경뿐만 아니라 투자 가치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현재 신봉동, 성복동 60평대 아파트 매물이 8억 원대를 형성하고 있고, 분당지역 60평형대 아파트는 12억 원 정도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반해 대지 면적 150평, 건축 면적 50∼70평형이 7억 원대에 분양되고 있어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
호재 겹쳐 투자가치도 높아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인해 생활편의시설이 이미 갖추어져 있고 택지개발지구 선정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문의가 많은 지역”이라며 “기존 판교 후광 효과까지 고려하면 신봉동은 투자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라고 귀띔했다.
여기에 용인-서울 고속도로와 신분당선 연장구간 건설로 판교 10분, 강남 20분대 진입이 가능한 교통 여건, 편리한 신도시 생활권 확보, 판교신도시와 광교신도시 인접 등 향후 투자 호재가 즐비한 지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은정 과장은 “수도권 인접 지역에서 이만한 입지조건, 기반시설, 자연환경을 갖춘 전원주택단지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꾸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 8월 말이면 마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총 분양면적 8천 평, 총 세대수 36
세대 중 70∼80퍼센트가 분양을 마친 ‘노블랜드’는 세대 당 150∼240평 규모다. 회사에서 설계, 시공한 진달래언덕(건축면적 71.6평-3세대), 가재마을(69.6평-3세대)과 설계 과정에서부터 입주자가 관여할 수 있는 주문형 주택(50∼95평-10세대) 등 총 16세대가 현재 2차 분양 중에 있다.田
문의 (주)좋은집 031-726-0400, www.joenzib.co.kr
글·사진 홍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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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