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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주택 교실] 지붕덮개와 지붕마감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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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슁글(Wood Shingles)
적삼목과 백삼목이 목재 슁글을 만드는 주요 수종이다. 부패에 강하며 수축이 적은 심재를 사용한다. 소나무와 옐로시더(Yellow Cedar)도 슁글의 재료가 된다. 슁글의 폭은 일정하지 않으며, 최대 폭은 14인치(350㎜)이고 최소 폭은 3인치(75㎜)다.
(그림 1)은 목재 슁글의 올바른 시공법을 보여준다. 아스팔트 슁글과 같이 일반적으로 목재 슁글에는 깔개(Underlay) 혹은 지붕용 펠트(Felt)가 필요하지 않지만, 지난 호에서 설명한 것처럼 처마를 보호하도록 시공해야 한다. 첫 단의 슁글은 밑에 붙인 슁글의 이음매가 덮이도록 두 겹으로 붙이고, 끝을 처마돌림(Fascia) 밖으로 약 1인치(25㎜) 정도 내민다. 이렇게 함으로써 물이 슁글 밑으로 역류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젖으면 팽창하는 것에 대비해 슁글 사이에 1/4인치(6㎜)의 간격을 둔다. 아래 단의 이음매 선과 바로 위에 덮는 단의 이음매 선 사이에는 최소한 1~9/16인치(40㎜) 이상의 간격을 두어야 한다. 다음 단은 이음매가 밑의 두 단 이음매와 일직선이 되지 않게 간격을 조정해서 붙인다.
슁글 한 장에는 못을 2개씩만 박는다. 못의 간격은 옆면에서 13/16인치(20㎜) 안쪽에 슁글의 하단에서 슁글의 노출 길이에 1~9/16인치(40㎜)를 더한 길이만큼 위에 못을 박는다. 예를 들어, 슁글의 노출 길이가 5인치(125㎜)일 경우에는 1~9/16인치(40㎜)를 더해서 슁글의 하단에서 6~9/16인치(165㎜)되는 지점에 못을 박는다. 폭이 8인치(200㎜)를 초과하는 판목면(Flat Grain) 슁글은 나비굽음(Cupping)과 뒤틀림(Warping)을 방지하려고 둘로 갈라서 사용한다.
수제 쉐이크(Handsplit Shakes)
삼나무 쉐이크는 길이가 18인치(450㎜) 이상, 폭이 4인치(100㎜)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폭이 13~3/4인치(350㎜)이상이면 안 되며, 두꺼운 쪽 끝의 두께는 3/8∼1-1/4인치(9∼32㎜)이어야 한다(그림 2).
쉐이크는 간격을 떼어서 붙인 지붕 덮개 혹은 지붕을 완전히 다 덮은 지붕 덮개 위에 부착한다. 간격을 뗀 지붕 덮개에 붙일 때는(도해 69A), 1×4인치(19×89㎜) 혹은 그보다 넓은 졸대(Strips)를 중심 간격이 쉐이크의 노출 길이와 같게 부착한다. 그러나 그 간격이 10인치(250㎜) 이상이면 안 된다. 눈바람이 거센 지역에서는 지붕을 지붕 덮개로 완전히 덮을 것을 권한다.
쉐이크는 적절한 노출 길이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길이가 18인치(450㎜) 쉐이크인 경우에는 7-1/2인치(190㎜), 24인치(600㎜) 쉐이크인 경우에는 10인치(250㎜)를 노출시킨다. 수제 쉐이크는 지붕 경사도가 최소한 1 : 3 이상인 곳에서 사용할 것을 권한다.
폭이 36인치(900㎜)인 No.15 지붕 펠트를 처마 선을 따라서 지붕 덮개 위에 붙여야 한다. 쉐이크의 시작 단은 두 겹으로 붙여야 한다. 지붕을 더 멋있게 보이려면, 세 겹으로 붙일 수도 있다. 맨 아래 단의 쉐이크에는 15인치(380㎜) 쉐이크는 이 용도로 특별히 만든 것이다.
쉐이크를 한 단 부착한 후에 No.15 지붕 펠트를 폭이 18인치(450㎜) 되도록 절단해서 쉐이크의 위 부분에서 지붕 덮개까지 덮는다. 쉐이크의 하단에서 노출 길이의 두 배 되는 곳에 펠트의 하단을 붙인다. 예를 들면, 24인치(600㎜) 쉐이크를 10인치(250㎜) 노출시키면 쉐이크의 하단에서 20인치(500㎜) 되는 곳에 펠트의 하단이 붙게 된다. 이 펠트는 쉐이크 위 부분을 4인치(100㎜) 그리고 지붕 덮개를 대략 15인치(350㎜) 덮게 된다(그림 2).
쉐이크는 1/4∼3/8인치(6∼9㎜) 간격으로 붙이며 아래와 윗단 쉐이크의 이음매 사이의 간격이 1-9/16인치(40㎜) 이상이어야 한다. 곧게 쪼갠 쉐이크를 사용할 때는 쉐이크용 도끼(Froe)로 쪼갠 나무의 윗부분(Froe-End)(비교적 더 매끈하다)이 지붕 마루로 향하도록 붙인다.
용마루와 지붕귀의 시공
(그림 3)은 가장 보편적인 시공법이다. 정사각형의 아스팔트 슁글(슁글 한 장의 1/3)로 마루 혹은 귀를 덮고, 숨은 못치기(Blind Nailed)로 부착한다. 지붕에서와 같이 노출되도록 하여 슁글을 하나씩 포개서 붙인다. 강한 바람으로부터 최대한 잘 보호하려면 용마루 뚜껑(Ridge Cap)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목재 슁글은 폭이 6인치(150㎜)인 것을 서로 교대로 포개서 숨은 못치기로 붙인다(그림 3). 목재 슁글을 붙이는 용마루 밑에는 비흘림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집성(Built-Up) 지붕
집성 지붕재의 시공은 집성 지붕 전문 회사가 한다. 이와 같은 종류의 지붕은 지붕용 펠트를 셋 혹은 그 이상 겹으로 덮는다. 매 겹마다 타르(Tar) 혹은 아스팔트를 발라서 붙인다. 맨 위의 표면에도 타르 혹은 아스팔트를 바르며, 표면에는 자갈을 깔아서 아스팔트나 타르에 박히게 만들거나, 마감 덮개(Cap Sheet)를 덮는다. 이와 같은 표면처리는 지붕을 자갈의 무게로 안정되게 하며, 햇빛의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한다. 콜타르(Coal Tar)와 아스팔트는 서로 결합되지 않으므로 함께 사용해서는 안 되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돌출된 지붕 처마선의 끝은 일반적으로 금속판 혹은 비흘림으로 마감한다. 지붕을 자갈로 덮을 경우, 처마의 비흘림과 만나는 곳에는 자갈막이(Gravel Stop) 혹은 삼각 졸대(Cant Strip)를 붙인다(그림 4). 집성 지붕재를 다른 벽(조적 치장벽은 제외)에 연결해서 시공하는 경우, 지붕재를 삼각 졸대를 지나서 벽체 위로 150밀리미터 이상 올라가게 붙인다. 그런 다음에 벽 덮개 종이와 사이딩을 벽에 붙인 집성 지붕재 위에 부착한다(그림 4).
집성 지붕이 조적 치장벽과 교차하는 곳에도 같은 방법으로 집성 지붕재를 조적벽 위로 올려붙인 다음, 비흘림 덮개(Counter-Flashing)를 설치한다. 이 비흘림 덮개는 몰탈 줄눈 안으로 최소한 1인치(25㎜) 묻히게 하고, 벽 아래쪽으로 약 6인치(150㎜) 내려서 비흘림과 4인치(100㎜) 이상 겹쳐지게 만든다.
홑겹 박막 제품을 평지붕에 사용할 수도 있다. 이 제품은 동결과 해빙의 반복과 오존 및 자외선의 풍화작용에 강한 다양한 합성물질로 만든다. 이 제품은 시공이 비교적 간단하지만, 일반 목조주택의 지붕과 같이 작은 지붕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금속판 지붕재
금속판 지붕재는 골의 단면에 따라서 폭을 30∼36인치(762∼914㎜)로, 길이는 사용자가 주문하는 규격으로 생산한다. 지붕마루, 골, 처마의 시작, 가장자리 등과 같이 지붕의 다양한 구조에 필요한 부속품도 함께 판매된다(도해 77). 금속판 지붕재의 일반적 시공법은 1×4인치(19×89㎜) 졸대를 서까래를 가로질러서 중심 간격을 16인치(400㎜) 이하로 부착한다.
더 단단하게 부착하고, 못을 잘 박으려면, 2×4인치(38×89㎜) 중도리(Purlins)를 사용해도 된다. 금속판 지붕재의 모든 이음매 밑에는 못받이 졸대를 반드시 붙여야 한다(그림 5). 금속판의 두께는 강철 혹은 알루미늄을 막론하고, 그 지역의 적설하중에 따라서 결정되지만, 도금철판인 경우에 두께가 0.013인치(0.33㎜), 동이나 아연판은 0.018인치(0.46㎜), 알루미늄판은 0.019인치(0.48㎜) 이상 되어야 한다.田
자료협조 캐나다주택 공사(CMHC), 유재완
031-531-9850, www.logbuilder.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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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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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제 3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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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나는 같은 업계에 있는 'H'교수(건축디자이너 겸 건설회사 대표)와 함께 방송 녹화 차 출장을 가면서 그로부터 한 권의 책을 추천 받았다. 언제나 느린 걸음으로 움직이며 연구나 독서에 상당히 게으른 나의 눈에 그 책은 제목만큼이나 신선한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연초에 8월쯤 해서 책의 중요한 내용을 독자에게 알리기로 마음을 먹고 목차에 넣었다.책의 제목은 《제 3의 공간》으로 저자는 세계적인 '무드매니지먼트'인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이다. -최기철/박성신 공역, 도서출판 미래의 창(www.miraebook.co.kr)- 이번 호에는 지면상 이 책의 많은 내용보다는 전원주택이나 전원주택단지와 관련 있는 부분만을 언급하고자 한다.집이 아닌 곳에서 내 집 분위기를 느낀다우리는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많은 대화들 속에서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특히 나처럼 건축 설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객과의 컨설팅 과정이나 기획 단계에서 고려를 많이 하는 것이, 앞으로 만들어질 집에 살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이다.나는 종종 주택을 설계하면서 고객에게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항상 판에 박은 듯한 외형의 아파트에 들어서면 고객의 취향과 삶의 냄새가 내 후각과 시각을 자극하고, 그 짧은 견학이 앞으로 내가 고객과 함께 해야 할 많은 이야기들을 대신해 준다. 이는 내가 고객의 집을 설계할 때 갖는 지론인'답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건축주가 이미 가지고 있다. 문제는 건축주가 나에게 그 답을 쉽게 전달하거나 나보다 각색하는 건축적 능력이 조금 적을 뿐이며, 건축가는 건축주로부터 얼마나 빠른 시간에 정확히 그 답을 찾아내어 각색하고 프로그램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책의 저자인 미쿤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제 1의 공간>, <제 2의 공간>, <제 3의 공간>으로 구분했다.<제 1의 공간>이란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 즉 그 사람의 집을 말한다. 이 공간에서 집의 미학적 가치는, 그 집의 주인인 사람의 가치로 이해되는 아주 특별하고 편안하게 연출된 공간을 일컫는다. 그 이야기는 반대로 그저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자식을 키우며 삶의 무게를 지탱해 오던 그런 집이나,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린 우리의 아파트까지 여기에 포함시키기엔 곤란하다는 의미도 포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 2의 공간〉은 집이 아닌 사무실, 즉 일터의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다.《제 3의 공간》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미국인들이 미학적 아름다움을 가미한 작업 환경이 근로 의욕을 북돋운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제 2의 공간〉에 대한 건축적 사회적 개념이 등장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층을 여러 개의 작은 방들이나 개인 공간으로 나누어 놓은 벽이나 칸막이를 없애서 전체가 하나로 탁 트인 사무실이 되게 하고, 풍부한 채광과 조명으로 분위기를 밝게 하고, 관상용 식물이나 화분 등을 들여놓고, 통풍이 잘 되게 하는가 하면, 공장의 작업장에까지 보기 좋은 페인트를 칠하는 것 등 일터에 <제 2의 공간-the second place> 개념을 도입하자, 직원들이 결근하거나 병에 걸리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고 직장에 애착심을 갖고 의욕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이제 일터는 어느 수준까지는 '연출된 주거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책 pp14∼15발췌여기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제 1의 공간>과 <제 2의 공간>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하면 〈제 1의 공간〉이란 라이프 스타일을 잘 반영한 주거공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제 2의 공간〉이란 이러한 주거공간의 세련미와 안락함 등을 확장하여 연출한 일터 공간(사무실 공간)을 의미한다. 〈제 3의 공간〉 개념은 어떤 공간에서 "본연의 기능을 가진 공간과 본연의 기능이 아닌 어찌 보면 부수적인 공간에 내 집 같은 안락함을 부여하여 본연의 기능 공간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만들거나 그 이상으로 꾸며서 본연의 기능을 부각시키는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다.예를 들어 박물관을 꾸밀 때, 고갱이나 고흐 등 대가의 작품을 관람하는 공간 못지 않게 부수적으로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편의점 또는 기념품 가게 그리고 산책로 등을 끼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관람 문화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또는 비즈니스 만남이나 연인들과의 만남 때로는 명사들처럼 같은 부류 사람들의 사교 장소로 제공함으로써 그 기능을 한층 배가시킬 수 있다.개인 주택에도 〈제 3의 공간〉을 만들자요즘 우리나라에서 전원주택이나 전원주택단지 붐이 일면서 이곳 저곳에 많은 산허리가 잘리고 그 위에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전원주택단지는 분양이 잘 되지 않아 잡초가 뒤덮인 채 을씨년스런 '분양 플래카드'만 나부끼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이런 단지들을 위하여 〈제 3의 공간〉 개념을 도입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전원주택단지 내에 내 집은 아니지만 내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안락함이나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공적공간들이 있어야 하는데 실상 쉬운 일은 아니다. '동네에 들어서는 〈제 3의 공간〉은 과연 어떤 것이 될까?' 라는 의문을 던져 놓고 보면 답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네 어귀의 이발소나 미용실 그리고 공동시설인 마을회관, 잘 가꾸어진 느티나무 아래의 정자와 연접하여 아이들의 소리가 가득한 놀이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설들을 조금 폭넓게 해석하면 개인 주택에도 필요하다.우리가 늘 만들어 오는 주거공간의 기능을 보면 커다란 창이 달린 거실과 세련된 주방가구와 식탁이 있는 주방 및 식당, 주인침실, 손님방 그리고 좀더 규모가 있다면 서재 등으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서양의 주택 평면은 우리의 거실에 해당하는 리빙 룸(Living Room)이 조금 작은 규모로 레이아웃(배치)되어 있으며, 그 크기에 못지 않게 패밀리 룸(Family Room)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우리의 주택 구조는 지극히 개방적이어서 이웃이 찾아왔을 때, 내 삶의 공간 중 침실만 제외하면 모두 공개되는 공용공간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결국 동네 주민과 폐쇄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고 만다.이럴 때 내 집에 〈제 3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 우리 가족만이 공유하는 공간들 외에 좀더 개방적이고 아늑한 곳에 다실(Tea Room) 같은 것을 마련하면, 이웃을 초대해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친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우리네의 '사랑방'처럼 말이다. 이런 공간을 준비할 때는 집주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할 수밖에 없지만, 손님에게도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그곳에서 자녀 양육이나 동네 문제 등 많은 이야기를 쉽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현대의 우리네 주거문화는, 내 집에 손님을 들이기보다는 마을회관과 같이 조금은 공공성이 있는 곳에서 만나기를 원하고 있다. 그만큼 폐쇄적인 이웃관계로 변하고 있다. 그 만남이라는 것도 그저 서로에게 최소한의 간섭을 통한 공통 관심사 해결 같은 지극히 '반상회'적이다 보니 '우리 동네'란 이미지가 약해지고, 결국 단지 활성화의 어려움 내지는 쇠락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요즘 필자는 전원주택을 설계하면서 몇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땅이 허락하는 한 이층집을 고집하지 말고 단층집으로 설계하는 것을 한번쯤은 고려해 볼 것과, 집의 평면 구조에서 '사랑방'처럼 거실이나 메인 현관을 통하지 않고 덱 등으로 연결된 주택의 평면도 고려해 보라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설계를 해서 완공한 집에서 사는 건축주들로부터 적지 않은 칭찬을 들어 왔다. 그렇게 분리된 주택의 〈제 3의 공간〉에 해당하는 사랑방(게스트 룸, 다실 등의 기능으로 명칭 부여)이 있음으로써 장성하여 출가한 자녀들도 더 자주 찾아오고 절친한 동창 부부의 편안한 방문을 유도하기도 한다고 들었다.《제 3의 공간》 저자 크리스티안 미쿤다는 1980년대 들어 감각적 체험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대중이 이용하는 상점이나 식당을 '연출'하고 미술관을 '개조'하고 난생 처음 '체험'이라는 호텔을 세웠다. 이런 곳들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짜릿함에다 내 집 같은 편안함, 즉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 시설들을 개인의 공간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제 3의 공간-The Third Place〉 개념이 등장했고, 그렇게 '연출된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활력소가 됐다. 이제 사람들은 예전처럼 당구장, 축구장, 볼링장 같은 곳에서만 여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오락 시설이나 쇼핑몰, 이벤트 장, 색다른 레스토랑(Restaurant)이나 바(Bar) 등이 새로운 여가 공간으로 등장한 것이다-책 p15-라고 표현하고 있다.이방인으로 넘쳐나는 아파트는 이제 그만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전원주택은 자연 환경(물, 공기, 경치 등)은 뛰어나지만 교통, 의료 특히 사회 공동체가 공유하는 공원이나 쇼핑몰, 자녀 교육 등 사회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전원주택을 둘러싼 공간적 가치의 증대가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해야만 현재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만족도나 공동체 의식이 높아질 것이다. 이는 곧 마을이라는 집단적 소속감과 그 마을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적 상승(Culture Promotion or Evaluation)을 가져옴으로써 지속 발전이 가능해질 것이다.사실 주거환경에서 〈제 3의 공간〉 기능은 집단 아파트 단지가 훨씬 뛰어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이 탈아파트 생활을 끊임없이 꿈꾸고 실행에 옮기는 것일까? 아무래도 아파트 생활은 동네 사랑방이나 그 예전의 이발소나 다방 같은 기능들을 소화시키기엔 너무나도 폐쇄적이다. 동시에 아파트 단지를 구성하는 개체수가 많다 보니 그 모두를 하나의 공동체 의식을 갖는 단체로 정의하고 발전시키기에는 너무 벅차기 때문이 아닐까?일례로 500세대의 한 아파트를 한 동네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500세대 정도면 적어도 1500∼2000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인데, 기껏해야 그 도시를 구성하는 〈제 3의 공간〉은 그 아파트에 딸린 500∼600평의 단지 내 상가나 연접해 있는 집단 상가시설이 고작이다. 크리스티안 미쿤다의 정의처럼 내 집 같은 느낌을 가지기엔 너무도 상업적 공간들이다.그러다 보니 그 단지 속에서 5분 이내만 걸어도 우리 생활을 지탱해 주는 상점, 이발소, 음식점, 술집, 오락실 등 모든 것이 있지만 불과 반경이 5분 10분에 지나지 않는 장소적 공간 속에서 하루 저녁 내내 술을 마시고 2차 3차 돌아다녀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어쩔 수 없이 내가 소속한 아파트에 살지만 나나 이웃이나 모두가 10분도 채 안 걸리는 지리적 공간 속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비록 나는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정작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기에 서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내 집에 들어서면 마누라와 아이들 모두가 나와 살을 부대끼고 내가 번 돈을 함께 쓰며 아내가 요리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살아가는 비로소 공동체라는 아주 작은 개체 단위가 내 주변에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아직도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아파트 건설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다. 이런 곳에서 만들어진 문화적 동질감의 결여 등은 사회의 거친 면과 배타적 생활습관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내 생각으로는 월드컵 문화를 새로이 만들어 낸 '붉은 악마'의 거리응원 문화는 그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한다. 공동체적 의식의 부족함 속에 성장해 온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문화적 동질감의 배고픔에 대한 갈증 해소적 요구가 더욱더 강한 결속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월드컵 응원이 아니면 이웃사람들과 거의 맥주 한 잔 마시지 않고 이해관계가 없으면 만날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전원주택단지처럼 50∼100호 정도가 함께 사는 마을은 눈만 뜨면 서로 만나 부대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전원주택단지에 공동체라는 옷을 입히자우리나라의 전통 마을과 전원주택단지의 큰 차이점은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그늘이나 성황당, 사랑방 같이 언제나 편안함을 주는 〈제 3의 공간〉적 요소의 존재 여부에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전통 마을들이 현재 쇠락의 길에 놓여 있는 반면, 전원주택단지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곳에서 새로이 건설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그렇지만 이러한 형태로 개발되는 전원주택단지의 생명력은 얼마나 될까? 우리의 전통 마을들은 적어도 몇 백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산업화 속에서, 돈벌이를 위하여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남아 있는 젊은 층 자녀들의 교육 환경의 빈곤화를 부채질하면서 급속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반면 전원주택단지의 경우 멋있고 나름대로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여 지어진 깨끗한 집들이 예쁜 꽃들과 잘 가꾸어진 정원에 둘러싸여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곳 대부분의 구성원이 50대 이상 60∼70대의 실버 세대들이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약 20여 년 후에도 과연 이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고 지속적 구성원의 증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전통 마을의 쇠락이라는 안타까움 속에서 그나마 전원주택단지라는 새로운 개념의 마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희망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마을이라는 공동체적 가치 부여와 함께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제 3의 공간〉적 요소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전원주택단지도 머지않아 전통 마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전원주택단지 내에는 라이프 스타일을 잘 반영한 주택 〈제 1의 주거공간〉과 함께 내 이웃이 자기 집 현관문을 나섰을 때도 내 집처럼 잘 연출된 공간이 마을 어귀나 이웃집에 다실이나 사랑방 형태처럼 자리한다면, 〈제 1의 공간〉과 함께 〈제 3의 공간〉이 공존하는 좋은 마을이 될 것이다.田글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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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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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 시대가 불안하면 닫힌 집 지어, 부안 김상만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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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 집을 짓는다. 그러나 집 역시 사람이 짓기에 사회적 상황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집을 짓는 사람의 경제적 형편과 신분에 따라 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사회적 상황에 따라 집의 구조가 변화한다. 사회가 불안정하면 집의 구조는 매우 폐쇄적으로 변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부안 김상만 가옥(중요민속자료 150호)은 시대 상황에 따라 집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김상만 가옥은 1907년부터 인촌 김성수(1895∼1955)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초가다. 원래 초가였는지 또는 억새를 이은 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와집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가옥은 1895년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를 짓고 1903년 안사랑채와 곳간채를 추가했다. 문간채는 1984년에 중건했다.
1895년 안채를 지은 해 이미 김씨 집안은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다. 인촌이 태어난 고창의 생가는 기와집이고, 또한 인촌의 부친 대에 수만 석을 한 거부 집안에서 초가를 지었다는 사실이 가세와 어울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곳에 살림집을 짓지 않은 것 같다. 초기에 줄포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며 임시 거처 겸 사무실 용도로 지은 것이 아닌가 한다.
가세를 숨기려 초가 지어
김씨 집안은 1907년 이 집으로 이사했다. 고창 집에서 자꾸 도깨비불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집을 옮긴 이유가 도깨비불 때문일까. 당시 조선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후 일제에 반 예속된 상태에 있던 터라 치안이 매우 불안했다. 신분 질서의 급속한 와해와 민심 이반離反 그리고 가난으로 화적들이 들끓었다. 부자들이 보다 치안이 안정된 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당연한 사회적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인촌 가문이 줄포로 이사할 때 먼저 사람만 빠져나오고 가산을 후에 옮겼다고 하니 상황이 매우 급박했던 것 같다. 줄포는 당시 영광의 법성포와 함께 서남해안에서 손꼽히는 항구였다. 일본인이 일찍부터 거주했으며 일본 헌병대도 주둔했다. 줄포의 사회 경제적 가치 때문에 일제는 적극적으로 치안을 유지했다. 결국 안정된 치안 때문에 이곳으로 살림을 이전했다고 본다.
어쨌든 1895년에도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세를 고려해 집을 짓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지만 누가 대놓고 기와집을 지어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도적의 표적이 되기를 바라겠는가. 관리인의 말에 의하면, 이 집은 기와집을 사서 해체하여 지었다고 한다. 당시 집을 짓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집을 헐고 한꺼번에 부재를 옮겨 지으면 남의 눈에 띄기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밤에 인력人力으로 부재를 하나하나 옮기다 보니 늦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만큼 당시의 사회상이 집을 짓는 것도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할 정도로 불안했음을 보여준다.
김상만 가옥은 초가이긴 하지만 집의 부재는 매우 고급스럽다. 안채와 사랑채는 요새 시쳇말로 무늬만 초가다. 지붕에 기와만 올리면 품격을 갖춘 기와집이 된다. 김상만 가옥의 지붕은 현재 볏짚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사진을 보면 예전엔 억새로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 재료는 어떤 분이 일본집 같다고 지적해 고쳤다고 한다. 억새로 지은 집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 아닌데 어떤 근거로 일본 집 같다고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지붕의 볏짚은 매년 갈아야 하지만 억새는 내구성이 좋아 10년 정도는 갈지 않아도 되는 재료다. 관리인의 말로는 지붕의 볏짚을 매년 갈지 않고 삼 년마다 한 번 갈이 주기에 곳곳에서 비가 샌다고 한다.
복잡한 평면 구조를 한 전후퇴집
김상만 가옥의 안채는 배산背山하는 형국을 좇아 북서향했다. 안채는 6칸 반 一자형 집으로 남쪽에서 흔히 보는 형태다. 방은 우측에서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순서로 배치했다. 안채는 ‘전후퇴집’이다. 이러한 형식은 단칸방이 일렬로 배열된 홑집이 조선 후기 들어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기 위해 새로 등장한 구조다. 외견상으로 단순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전후퇴집과 양통집은 측면이 같은 두 칸 규모다. 방이 단순히 두 줄로 배열된 양통집과 달리 전후퇴집은 방의 앞뒤에 반 칸씩 마련된 전·후퇴를 이용해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을 지닌 평면을 만들어 낸다.
이 가옥 역시 전퇴와 후퇴를 이용해 다양한 평면을 만들어 내면서 또한 다른 집과 달리 다양한 수장공간을 갖추고 있다. 수장공간을 안채, 사랑채 할 것 없이 구석구석 공간이 나오는 모든 곳에 만들어 놓았다. 안에 들어가 보면 아기자기 하다고 할 만큼 수장공간이 다양하다. 안사랑채의 전면에도 조그맣고 다양한 수장공간을 위아래에 설치했다. 이렇게 수장공간이 다양한 것은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한 경제활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채 대청은 전면 한 칸 규모로, 다른 부잣집의 대청에 비해 형편없이 작다. 처음부터 살림집으로 계획하지 않았기에 대청의 규모가 작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한 흔적은 위패를 모시기 위한 대청의 벽장에서도 볼 수 있다. 살림집으로 지었다면 사당을 만들거나 또는 대청의 벽에 벽감壁龕을 만들어 위패를 모셨을 것이다. 나중에 살림집으로 바뀌면서 위패를 모실 자리를 마련하기 어렵자 벽장을 짜 걸어 놓았을 것이다.
사랑채는 안사랑채와 바깥사랑채로 나뉜다. 먼저 바깥사랑채를 짓고 안사랑채를 나중에 지었다. 관리인의 말로는 바깥사랑채는 사무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바깥사랑채도 전후퇴집의 특징을 잘 활용해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바깥사랑채에도 안채와 같이 머릿방을 드렸다. 조용하게 쉬거나 은밀한 이야기가 필요할 때 이용했을 것이다.
안사랑채는 인촌이 주로 기거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육영사업에 대한 뜻을 세웠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단식했던 곳이라고 한다. 안사랑채는 전면 3칸의 크지 않은 규모다.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전후퇴집으로 좌측 끝 방은 마루로 꾸며져 있다.
현재 이 집은 다른 집과 달리 관리인을 두고 있다. 집안이 집안인지라 자신의 근거를 보존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주인이 살지 않을 경우 관리인을 두는 예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침 장마철이라 아궁이에 불을 땠는가 물어보았다. 관리비가 너무 적어 불을 땔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관리비만으로는 자신의 생활비는커녕 가끔 불을 때는 비용조차 대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궁이를 막아 버렸다고 한다. 인촌 가문의 재력에 비하여 자신의 터전을 보전하고 가꾸려는 노력이 너무 미약해 보인다.
관리인을 두었지만 관리하려는 개념이 잘못됐다. 도둑을 지키는 것만이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의 경우 일차적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결국 집주인에게 관리 책임이 남는 것이다. 그나마 집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것일까. 마당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자신 집안 사람의 동상을 만들어 놓은 정성에 1/10이라도 집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田
글 최성호 /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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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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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풍수 인테리어] 행운을 부르는 풍수 인테리어의 기본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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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본명궁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그 사람 고유의 주거 공간 선택에 관한 풍수적인 기운을 타고난다. 《양택삼요陽宅三要》에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사람이 태어난 해, 즉 상원, 중원, 하원, 갑자에 따라 그 기운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본명궁本命宮'이라고 하는데 양택풍수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즉 본명궁에 따라 모든 풍수적 길흉을 판단하며, 어떤 기운에 대한 반응이나 대처 방법도 달라지므로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그 집에 살아도 별 탈이 없는데 어떤 사람은 그 집에 살면 쫄딱 망하거나 화를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본명궁에 따른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래서 풍수 인테리어의 출발은 본명궁 찾기에서 출발한다. 《양택삼요》에서는 상당히 길게 설명해 놓은 것을 아래와 같이 일반인이 알아보기 쉽게 계산식을 만들었다.●남자 본명궁·자신의 음력 출생연도의 숫자를 모두 합한다. (예; 1999년생 남자의 경우 1+9+ 9+9=28)·합한 숫자가 10이하가 될 때까지 합한다. (예; 1999년생 남자의 경우 1+9+9+ 9=28 ⇒ 2+8=10)·고유의 숫자 11에서, 산출된 한 자리 수를 뺀다. (예; 1999년생 남자의 경우 1+9+9+9=28 ⇒ 2+8=10 ⇒ 11-10=1)·빼고 남은 수가 자신의 본명궁 숫자다. (예; 1999년생 남자의 본명궁 숫자는 1)·본명궁 숫자로 자신의 본명궁을 찾는다. (예; 1999년생 남자의 경우는 본명궁 표에서 찾아보면 '감坎')●여자 본명궁·자신의 음력 출생연도의 숫자를 모두 합한다. (예; 1996년생 여자의 경우 1+9+9+6= 25)·합한 숫자가 한 자리 수가 될 때까지 합한다. (예; 1996년생 여자의 경우 1+9+9+6=25 ⇒ 2+5=7, 1945년생 여자의 경우 1+9+4+5=19 ⇒ 1+9=10 ⇒ 1+0=1)·고유의 숫자 4에다, 산출된 한 자리 수를 더한다. (예; 1996년생 여자의 경우 1+9+9+6=25 ⇒ 2+5=7 ⇒ 4+7=11, 1945년생 여자의 경우 1+9+4+5=19 ⇒ 1+9=10 ⇒ 1+0=1 ⇒ 4+1=5)·더하여 나온 한 자리 수가 자신의 본명궁 숫자다. 더하여 두 자리 수가 되면 다시 더한다. (예; 1996년생 여자의 본명궁 숫자는 1+9+9+6=25 ⇒ 2+5=7 ⇒ 4+7=11 ⇒ 1+1=2, 1945년생 여자의 본명궁 숫자는 5)·본명궁 숫자로 자신의 본명궁을 찾는다. (예; 1996년생 여자의 경우는 본명궁 숫자가 2이고 표에서 찾아보면 '곤坤'이다. 1945년생 여자의 경우는 본명궁 숫자가 5이고 표에서 찾아보면 '간艮'이다.)[본명궁표]1= 감坎, 2= 곤坤, 3= 진震, 4= 손巽, 6= 건乾, 7= 태兌, 8= 간艮, 9= 리離.※5일 경우 남자= 곤坤, 여자= 간艮자신의 머리를 둘 수 없는 방향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그 사람 고유의 머리를 둘 수 없는 방위를 타고난다. 이를 '회두극좌回頭剋坐'라고 한다. 이것은 남녀의 구별이 없으며 살아 생전에는 잠잘 때 그 방향으로 머리를 둘 수 없고, 죽어서 땅에 묻힐 때도 이 방향으로 머리를 두는 좌향을 놓지 못하여 이때 보통 말하기를 '땅이 그 사람을 거부한다'고 한다. 죽어서 무덤 자리의 머리 방향은 그 땅이 생긴 형세에 따라 결정된다. 그 방향으로 머리를 두어야 할 자리인데 그 사람의 회두극좌가 그 방향에 해당하면 차선의 좌향을 찾아서 쓰지만 없을 경우에는 묏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 잡아야 한다.양택풍수에서는 그 사람의 회두극좌 방위를 반드시 숙지하여 침대머리 방향이나, 잠 잘 때 머리를 이 방향으로 두지 않게 하여야 하나, 앉아서 바라보는 방위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책상의 좌향을 정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팔괘八卦와 음양오행●팔괘의 성질자신의 본명궁을 찾았으면 그것의 특성을 알아보기로 한다. 본명궁은 팔괘에서 차용해 왔으므로 팔괘의 성질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본명궁이 '곤坤'이라면 팔괘 중에 곤坤의 특성과 같은데, 이것을 가족 구성원으로 말한다면 노모老母에 해당하고, 음양陰陽으로는 음陰이며, 오행五行으로는 토土에 해당하고 방위로는 남서쪽에 해당하며 자연을 말할 때는 땅을 뜻한다. 이렇듯 여러 가지를 뜻하는 내용은 다음 곳곳에서 긴요하게 쓰이므로 잘 알아 두어야 한다.팔괘 중에는 서로 어울려 좋은 기운을 만들어 내는 것들과, 서로 어울리면 나쁜 기운을 만들어 내는 것들이 있는데 크게는 두 편으로 나누어진다. '건곤간태乾坤艮兌'가 한편이고 '감리진손坎離震巽'이 다른 한편이다.건곤간태는 방위로 말할 때는 서사택의 4방위를 말하고 본명궁을 말할 때는 서사택西四宅 방위에 속하는 4가지 본명궁이라고 해서 서사명西四命이라 한다.감리진손은 방위로 말할 때는 동사택 4방위를 말하고, 본명궁을 말 할 때는 동사택東四宅 방위에 속하는 4가지 본명궁이라고 해서 동사명東四命이라 한다.서사택 4방위끼리와 서사명끼리, 혹은 서사택 방위와 서사명이 어울려야 좋은 기운을 만들어 내며, 동사택 4방위끼리와 동사명끼리, 혹은 동사택 방위와 동사명이 어울려야 좋은 기운을 만들어 낸다. 동사택 방위와 동사명에 서사택 방위나 서사명이 섞이거나, 서사택 방위와 서사명에 동사택 방위나 동사명이 섞이면 나쁜 기운을 만들어 내어 흉한 일이 생긴다.그러므로 각 팔괘들의 성질을 잘 알아서 배치하고 조화를 이루어 힘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풍수 인테리어의 목적이다. 이 팔괘의 조합을 정리한 것이 주역 64괘이며, 풍수에서는 8방위를 말할 때도 팔괘의 이름을 그대로 써서 건방乾方, 손방巽方, 감방坎方 등으로 말한다.●음양陰陽음양은 서로 짝이 되는 것을 좋아하며 음과 음, 양과 양처럼 같은 기운끼리 모이는 것은 싫어하여 흉한 일이 생긴다. 이것은 남자와 남자가 만나고 여자와 여자가 만나는 격이 되어 새 개체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어 그렇다. 그러므로 음양은 음과 양이 만나야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고 새로운 기운이 생긴다. 그러나 음양이 서로 만났다고 해도 앞부분에서 설명한 팔괘끼리의 같은 편이 아님에서 오는 흉함은 극복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건乾'과 '손巽'이 만나면 건은 양이요 손은 음으로 음양은 잘 맞는 것 같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편, 즉 건은 서사택 방위 혹은 서사명에 속하고 손은 동사택 방위 혹은 동사명에 속하므로 남의 남자와 남의 여자가 만나 불륜이 되는 것과 같이 좋지 않은 기운을 생성하여 흉한 일이 생긴다.●오행五行음양이 사물의 개체 생성을 주도하는 것이라면 오행은 개체의 변화를 주도한다. 그러므로 오행은 같은 오행이라도 음과 양이 공존하며, 서로의 기운끼리 서로 도와주고 제압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요일이 있는데, 이 요일의 이름은 오행에서 차용해 온 것이다. 이 오행은 서로 다른 기운끼리 만나면 서로 도와주거나 제압하는 성질이 있다. 먼저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는 서로 도와주는 성질을 말한다. 불은 타고나서 재가 남아 흙을 살려주고, 흙 속에 쇠가 있어, 즉 흙이 쇠를 살리며, 쇠의 차가운 표면에 아침에 이슬이 생기듯이 쇠는 물을 살리며, 물이 있어야 나무가 자라므로 물이 나무를 살려주고, 나무가 있어야 불이 타므로 나무가 불을 살리며 서로 상생을 한다.반면에 화극금火剋金, 금극목金剋木, 목극토木剋土, 토극수土剋水, 수극화水剋火가 되어 서로 제압을 하는데, 쇠는 불에 녹으므로 불이 쉽게 쇠를 이기며, 쇠는 단단하여 나무를 자르므로 쇠는 쉽게 나무를 이기고, 나무는 흙 속에 뿌리를 내려 파고들므로 나무는 쉽게 흙을 이기며, 흙으로 제방을 막아 물을 가두므로 흙은 쉽게 물을 이기고, 불을 끌 때는 물로 끄므로 물은 쉽게 불을 이겨 서로 상극하는 것이다.이렇게 오행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서로 제압하기도 하면서 변화를 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오행의 성질은, 상생의 관계는 제일 좋고, 같은 오행끼리 만나는 것을 비화라고 하여 그 다음으로 좋으며 상극 관계는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그러나 이 오행의 상생이나 상극도 팔괘끼리의 같은 편이냐 아니냐에 따른 길흉을 극복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감坎'과 '리離'는 오행으로 보면 감은 수水이고 리는 화火로 서로 제압하는 관계라서 흉할 것 같으나 팔괘끼리 같은 편인 동사택 방위나 동사명에 속하여 아주 좋은 기운을 발한다. '리離'와 '간艮'은 오행으로 보면 리는 화이고 간은 토이므로 화생토가 되어 아주 좋을 것 같으나, 팔괘끼리의 편을 보면 리는 동사택 방위나 동사명에 속하고 간은 서사택 방위나 서사명에 속하여 서로 다른 편이라서 아주 흉한 기운을 발한다.팔괘에 대응하는 각 팔괘의 길흉과 8가지 기운●유년도팔괘는 그 자체의 성질도 여러 가지로 분류되지만 이것이 다른 것들과 배합될 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아래의 표에서 보듯이 궁宮 칸의 감坎이 성星 칸의 건乾과 만나면 육살이 되고, 감坎과 감坎이 만나면 복위, 감坎과 간艮이 만나면 오귀, 감坎과 진震이 만나면 천을 등 8가지의 각각 다른 변화가 생긴다.이러한 변화 조견표를 《양택삼요》에서는 유년도遊年圖라고 말하고 있다. 유년도는 풍수 인테리어를 하면서 자주 보아야 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윗줄의 8개의 궁宮과 좌측 아래로 있는 8개의 성星은 경우에 따라 달리 호칭된다. 같은 글자를 가지고 윗줄의 글자는 궁宮이라고 하고 좌측의 글자는 성星이라고 하는 것은 《양택삼요》는 한자로 씌어진 책이고, 한자로 표시할 때 기준이 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궁宮이라고 했고, 그 궁에 돌아가면서 대응하는 것을 성星이라고 표시 한데서 기인한다.유년도를 볼 때는 궁宮은 항상 기준이 되는 것이고, 성星은 그기에 대응하는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예를 들어 대문이 건방에 있고 안방이 곤방에 있으면 유년도에서 찾을 때는 궁 칸에서 건을 찾고 성 칸에서 곤을 찾는데 연년이라고 되어 있다. 이때는 연년의 뒤에 주인 주자主字를 붙여 '연년주'라고도 하고 집 택자宅字를 붙여 '연년택'이라고도 한다.대문이 곤방에 있고 부엌이 간방에 있으면 궁 칸에서 곤을 찾고 성 칸에서 간을 찾아보면 생기라고 되어 있고, 안방이 진방이고 부엌이 리방일 경우에도 궁칸에서 진을 찾고 성 칸에서 리를 찾아보면 생기라고 되어 있다. 이때는 생기의 뒤에 부엌 조자를 붙여 '생기조'라고 한다. 나의 본명궁이 곤인데 태방향의 길흉을 볼 때는, 궁 칸에서 곤을 찾고 성 칸에서 태를 찾으면 천을이라고 되어 있어 이때는 방위 방자方字를 붙여 '천을방'이라고 한다. 이처럼 같은 이름이라도 경우에 따라 부르는 용도가 달라지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8가지 기운의 특성유년도에 나오는 8가지의 각 기운에 대한 특성을 알고 이를 운용해야 한다. 크게는 좋은 기운과 흉한 기운으로 나눌 수 있다. 좋은 기운은 생기, 연년, 천을, 복위가 되고, 흉한 기운은 육살, 오귀, 화해, 절명이 된다. 그러나 흉한 기운이라고 해서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니라 흉한 방위에 들어가야 할 공간이 있으므로 흉한 기운도 알아두어야 하고 좋은 기운은 좋게 이용해야 하므로 다 같이 알아두어야 한다.·생기生氣 ; 생기는 살아 숨쉬는 기운을 말하며 어떤 일의 성사를 돕고 힘과 재물을 가져다주고 관록을 더하며 명예를 높인다. 5명의 아들을 갖게 해 주는 기운이며, 감리진손坎離震巽 방위에 있을 때 제자리를 잡아서 더욱 힘이 왕성하다.·연년延年 ; 좋고 기쁜 일을 불러오는 기운으로 자손 번창과 장수, 지속적인 복을 주고 화목과 평화를 가져오며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좋은 기운이 퍼지는 애정과 사랑의 기운이다. 건곤간태乾坤艮兌의 방위에 있을 때 제 자리를 잡아서 더욱 힘이 왕성하다.·천을天乙 ; 천을은 천의天醫라고도 하며 같은 이름이다. 이는 하늘의 의사를 뜻하여 질병의 쾌유와 병이 생기지 않게 하는 기운이고 재물이 마을에 으뜸이며 3명의 아들을 갖게 해준다. 건태간곤리乾兌艮坤離 방위에 있을 때 제 자리를 잡아서 더욱 힘이 왕성하다.·복위伏位 ; 무난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운으로 작은 부자富者에 아들보다 딸이 많지만, 흉한 일이나 재앙이 없어 만사가 길吉하며 열심히 일하여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게 해주는 기운이다.·화해禍害 ; 화禍와 해害를 불러오는 기운으로 사고와 재난을 가져다주는 기운이고 자식이 없이 외로운 과부가 집을 지키며 각종 구설수에 휘말린다. 자식 중에 소경이 나오고 소송에서 지게 하는 기운이다.·오귀五鬼 ; 자식이 불한당이 되고, 이웃들로부터 멀어지며, 화재나 도난을 당한다. 가족이 불화하는 기운이며 남들과 잘 다투게 하는 기운이다.·육살六煞 ; 가축들이 놀라서 잘 자라지 않고 부녀자들이 음란하거나 사악해지며 가족에게 슬픈 일들이 많이 생기고 병이 많다. 사업을 망하게 하는 기운이다. ·절명 絶命 ; 사람이 다치거나 죽거나 불량해지며, 재앙이 연이어 발생하여 남아 있는 후손이 없고, 부와 명예도 잃는다. 관청과 시비가 많고 건강도 잃게 하는 기운이다.田글 김경훈 <(사)행운풍수지리학회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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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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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전원주택] 외국인을 안아준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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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업무 차 충남 태안에 간 일이 있다. 초행길, 서산까지는 도로 표시판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갈 수가 있었지만 문제는 서산을 벗어나면서 부터였다. 차를 세우고 도로 지도 책자를 통해 목적지를 확인하고 책을 덮는 순간 뇌리에 남아 있던 기억의 한 장소가 되살아 났다.
‘가로림만.’ 천리포, 만리포를 따라 해안을 이룬 선이 가는 반도로 변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육지와 함께 만을 이룬 곳. 마치 외국 지형 이름처럼 들리는 이곳은 예전부터 조력 발전소나 대규모 산업항 후보지로 여러 번 언론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만灣이다. 그런데 지도 속에 펼쳐진, 가로림만이 위치한 태안반도 주변의 지형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래, 어디선가 분명 본 기억이 있다. 내 기억 어딘가에서도 기다란 태안반도 끝자락에 ‘석포’라는 어촌이 있음을 반복해 외치고 있었다. 석포라…. 아른 거리는 기억의 끈을 붙잡기 시작했다.
어느 해인가, 해외 업무 부서에서 근무했던 나는 사장의 지시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를 만날 요량으로 LA로 향했다. 학기말 고사라 눈코 뜰 새 없었던 친구를 대신해 준 것은 대학도서관. 지역이 지역인지라 그곳에는 한국 간행물도 적지 않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것저것 뒤적이다 우리나라 관련 영문도서에까지 손이 가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사회학과 브란트 교수가 쓴 ‘Korean Village[한국의 마을]’라는 책이 눈길을 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서해안 한 어촌에 2년간 기거하면서 촌락 사회의 여러 부문을 조사하고 검토해 만든 일종의 리포트로, 나는 내용의 자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촌민들의 연령이나 직업, 풍습, 생산품, 수입 등의 자세한 해설은 물론이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러 재미있는 사소한 일상사까지도 자세히 기술해 놓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걸핏하면 부부싸움질로 동네를 시끄럽게 하는 집안을 주위 사람들이 ‘Ssaum Gongjang(싸움공장)’이라고 부른다는 대목은 아직도 내 머리에 명료하게 남아 있다.
능숙하지 못한 영어로 그 책을 더듬더듬 읽어 나갔다. 한국의 옹색한 시골구석에 미국 최고 명문대학의 교수가 찾아와 가난에 시달리는 촌민들과 같이 지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책은 나에게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꼭 한번 그곳을 찾아가보리라 다짐하곤 어촌의 위치를 밝힌 지도를 머리에 새겨 놓고 책을 닫았다. 당시 브란트 교수가 머물렀던, 옹색하기 그지없던 어촌이 바로 ‘석포’였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집에 있는 지도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시 책에 언급된 비슷한 지역은 찾았지만 아무리 훑어도 ‘석포’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석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의항’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확인해 보니 석포는 가명이었다. 오래된 그 시절 부족했던 내 영어실력을 탓할 수밖에. 하여간 이후 나는 몇 번이고 석포, 아니 의항에 가보리라 단단히 벼르고 별렀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쫓겨 끝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고 굳게 벼르던 마음도 점점 약해졌다. 하버드대 교수가 지냈다던 태안반도의 한 마을은 내 기억 속에서 그렇게 잊혀져만 갔다.
그랬던 것이 태안 출장을 계기로 나의 감각 안에서 불쑥 다시 튀어 올라온 것이다. 관심과 흥미가 불끈 솟구친다. 이번에도 놓치면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듯 싶어 서둘러 일을 끝내고 기억속의 어촌을 찾아 나섰다. 바다가 양쪽에 보이는 반도의 좁은 도로를 타고 끝까지 차를 모니 정말 의항이라는 동네가 나왔다. 책의 빛바랜 사진들에 있었던 40년 전의 가난하고 초라했던 마을은 오간데 없고, 여러 현대식 건물과 널찍하게 포장된 도로가 마을을 점령한 상태였다. 오로지 마을 앞 ‘가로림만’의 넘실대는 파도만이 변하지 않은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마을 중앙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버티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곤, 짐작만 하고 있는 이곳이 과연 브란트 교수가 살던 마을이 맞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차를 세우고 그에게 브란트 교수라는 미국인이 이 마을에 살다가 갔는지를 물었다. 그는 심심하던 차에 대화상대가 생겼다는 듯이 청산유수로 대답을 엮어 나갔다.
“여기 살았었죠. 부부하고 아기가 동네에 들어와서 집까지 짓고 한 이년 살다 갔어요.”
아기를 포함한 전 가족이 살다 갔다니.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다시 물었다.
“그가 무엇을 조사했어요?”
“별별 것을 다 물어봅디다. 얼마나 버냐? 어디다 쓰냐? 저축은 하냐? 우리도 외국인이 이런 시골까지 들어와 같이 살아주는 것이 고마워서 성의껏 협조해 주었지요.”
그는 말을 이었다.
“그가 여기에 있으면서 좋은 일도 많이 했어요. 마을에 배도 한척 기부했었고 아픈 사람들 병원비도 내줬고…. 여러 가지로 고마운 일을 많이 해서 우리는 그가 떠날 때 송덕비까지 세워줬어요. 마을 사람 중에 그를 따라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까지 있었으니까요.”
브란트 교수와 그 가족은 이런 벽촌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그가 이런 벽촌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집이 아직 남아 있나요? 어디에 있어요?”
“저 언덕 위를 보세요. 저기 꽃으로 싸인 집이 그들이 직접 지은 집이요. 거기서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과 같이 가족들이 살았어요. 떠날 때 동네주민에게 그 집을 그냥 기증했는데 새 주인이 나중에 다시 개축했다고 합디다.”
나는 노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 곳으로 향했다. 언덕위로 난 길을 오르면서 브란트 교수의 선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햇살을 듬뿍 받는 언덕의 남쪽 사면에 집이 위치한다. 뒤로 솟은 언덕이 북쪽의 외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해풍을 막아 주고, 앞으로는 가로림만이 다소곳하게 자리 잡아 집의 경관 가치를 한층 높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집은 개축하면서 원래의 특성이 많이 없어졌는지 집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특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여느 평범한 농가의 한 형태를 가지고 있을 뿐.
나는 집둘레에 심어진 꽃들이 뿜는 향기를 취하게 맡으면서 옛날 여기에 살던 브란트 씨를 떠올렸다. 하고많은 세계의 국가 중 우리나라를 택한 것도, 그리고 이곳 서해안의 외진 어촌을 찾아온 것도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의항의 아래 있는 천리포 수목원 설립자 미국인 칼 밀러 씨와 인연이 있지 않았을까.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군복무를 하다 한국은행에 취직해 오랫동안 그곳에서 근무했던 밀러 씨는 민병갈이라는 한국이름과 한국 국적까지 취득한 사람이었다. 밀러 씨는 1950년대 휴가차 천리포에 한번 와보고 경치에 반해 인근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세계 각국의 식물을 들여다 수목원을 만들었다. 그는 타계했지만 그가 남긴 수목원은 현재까지 운영되고 사람들의 발길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브란트 교수와 밀러 씨는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이곳을 소개 받은 듯하다. 그랬다 해도 60년대 빈곤이 찌든 이 어촌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어떻게 2년 넘게 살 수 있었을까? 사실 그 것은 그 무렵 미국의 도시민에게 한국의 시골은 지금의 콩고나 뉴기니아 같은 미지의 불안한 빈민국과 비교해 나을 바 없어 그런 곳에 가족을 데리고 가서 긴 세월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은 이해하기 힘든 노릇이었다. 선교를 나온 성직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의 추리는 여기서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수준까지 뻗어 나갔다. 우선 동네의 인심이 그를 안심하고 가족까지 데리고 와서 살만한 편안함을 주었을 것이고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후진국 같지 않게 그 무렵 한국의 안정된 치안도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곳에서 이국의 삶을 즐길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판단함에 전원인의 시각을 배제할 수가 없을 듯하다. 그는 교수라는 직업의 지식 노동자였다. 오는 날 상당수의 전원 생활자 또는 전원생활 동경자 가운데 현대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사 변호사 또는 교수같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지식 노동자가 많음을 필자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 역시 상아탑의 황량한 정신노동 세계에 지칠 대로 지친 전원생활 동경자로서 연구를 핑계 삼아 각박한 미국의 도시에서 탈출, 먼 이국의 시골 어촌으로 잠시 피해 나와 일종의 정신적 피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연구가 목적이라지만 이런 이국의 벽촌에 와서 긴 세월을 보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쩌면 브란트 교수에게 있어 이국의 이 풍광명미風光明媚한 어촌이 그에게는 최고의 휴가지였는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귀국 후 그는 자주 대학 연구실에서 지친 머리를 쉬면서 한국에 두고 온 가로림만의 그림 같은 바다경치를 떠올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했을 것이다.
브란트 교수의 송덕비 앞에서 양식 어구를 손질하는 아주머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자, “그가 12년 전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아직 그분 생존해 계시냐”며 반문하는 것을 보면, 교수직에서 은퇴한 브란트 교수가 가로림만과 의항을 잊지 못해 그 어느 날 다시 찾은 게 분명했다. 田
글 김창원
글쓴이 김창원 님은 공인중개사로서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에서 강, 바다, 호수 경관 전문 부동산 ‘물빛뜨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의 : 02)749-0396. www.water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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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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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바캉스 특선] 무더위여 안녕! GO P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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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랑 펜션
대천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이는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한 지중해 스타일의 통나무 펜션. 기존 레스토랑을 2층 복도는 바다 느낌을, 3층은 지중해 스타일로 리모델링을 해 펜션과 카페로 재탄생시킨 곳. 펜션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휴식과 커피를 대접하는 펜션지기의 넉넉한 마음을 기대할 수 있다.
건축정보
·위 치 : 충청남도 보령시 신흑동 946-4
·건 축 형 태 : 통나무주택
·설계·감리 : 설계사무실 좋은집
·리모델링 인테리어 : 디자인 아키부
·특 징 : 사랑과 정이 가득한 유명산 계곡 인근 휴양림
·실 내 구 조 : 9평(7실), 11평(5실), 13평(1실)
·객 실 요 금 : 4만 ∼ 8만 원
·문 의 : 041-932-8555, www.sealover.co.kr
그라찌아 하우스
열목어가 서식하는 흥정계곡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산림욕을 할 수 있는 펜션. 첩첩산중에서 보물을 찾은 듯 숲 속을 헤쳐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하얀 별장을 만날 수 있다. 원시림과 함께 여유 있는 휴식을 즐기며 메밀꽃 축제로도 유명한 봉평면에서 한여름 추억거리를 만들어 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 90
·건 축 형 태 : 철근콘크리트
·설계·시공 : 직영
·실내구조 : 스위트룸 - 50평, 럭셔리룸 - 20평, 클래식룸 - 20평, 내츄럴룸 - 13평, 모던룸 - 10평, 캐쥬얼룸 - 10평, 모던룸2 - 8평, 럭셔리2 - 20평, 클래식2 - 20평, 내츄럴2 - 20평, 엘레강스 - 25평
·객 실 요 금 : 6만 ∼ 30만 원
·문 의 : 033-335-8887, 011-896-2237, www.graziahouse.com
미루 펜션
언제나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친 우리를 말없이 어루만져 주는 건 자연이라고 말하는 펜션지기. ‘자연 속의 아름다운 서정을 담은 높다란 누각’이라는 의미의 미루의 이미지처럼 진정한 자연으로 놀러와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자연에서의 삶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 속으로 미지의 여행을 떠나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259
·건 축 형 태 : 스틸하우스
·설계·시공 : 종합건축사사무소성우건축(임태종 대표) 011-737-7750
·실 내 구 조 : 별채1 - 14평, 별채2 - 14평, 별채3 - 17평, 사랑채 - 20평
·객 실 요 금 : 17만 ~ 30만 원
·문 의 : 016-263-5875, www.mymiroo.com
펜션 세레나데
저녁 때 연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는 노래, 세레나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이런 충동을 느낄 수 있다며 미리 한 곡 준비해 오라는 곳.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솔바람 소리는 신혼의 달콤함 뿐 아니라 커플에게 조용하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머무는 행복한 공간에 동참하고픈 커플은 이곳에서 사랑을 싹틔워 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도장리 94-3
·건 축 형 태 : 목조주택
·설계·시공 : 직영
·실 내 구 조 : 로망스 - 15평, 앙상블 - 15평, 하모니 - 10평
·객 실 요 금 : 6만 ~ 12만 원
·문 의 : 031-775-3367, 017-205-3360, www.pserenade.co.kr
펜션 써니데이 제주
제주 쪽빛 남쪽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나지막한 둔덕 위에 자리한 기품 있는 통나무 펜션. 중문관광단지를 비롯해 지삿개 해안 주상절리, 여미지식물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한라산의 위풍당당함을 그대로 빼닮은 곳. 생의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고 섬을 찾아온 여행객에게 최고로 편안한 휴식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하는 펜션지기가 반갑게 맞이한다.
건축정보
·위 치 : 제주도 서귀포시 대포동 1931
·건 축 형 태 : 통나무주택
·설계·시공 : 발미스코리아 054-975-1240, www.valmiskorea.com
·실 내 구 조 : A타입 - 16평, B타입 - 16평, C타입 - 18평, D타입 - 20평
·객 실 요 금 : 12 ~ 20만 원
·문 의 : 064-738-1999, www.sunnydayjj.com
굿하우스
제주 바다에 뜬 육지 성산일출봉을 끌어안고 아담한 단지처럼 펼쳐진 펜션. 현무암 디딤돌로 연결한 각 실은 서로 독립적이면서 포근한 분위기를 낸다. 펜션 내에는 자전거를 비롯해 낚싯배, 귤체험 농장, 골프퍼팅장 등을 구비해 편안함과 즐거움을 준다. 바다 향기를 맡으며 밤하늘의 별을 감상하기 좋은 제주에서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떠날 준비를 해보자.
건축정보
·위 치 :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고성리 1622-4
·건 축 형 태 : 목조주택
·설계·시공 : (주)풍산우드홈 (주)마이펜션하우징 02-1544-1246, 031-769-1246, www.mypension.co.kr
·실 내 구 조 : 커플룸A, 커플루뮤, 패밀리룸A, 패밀리룸B
·객 실 요 금 : 8만 ∼ 15만 원
·문 의 : 064-782-9972, www.go-jeju.com
파인빌 펜션
가평의 계관산 중턱에 핀란드산 홍송으로 가족의 의미와 기쁨을 되찾아 주고자 지은 펜션. 자연계곡과 산책로뿐 아니라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하이킹도로, 족구장, 가든파티장 등을 갖춘 웰빙 레포츠형 휴식공간이다. 가족과 함께 테라스에서 밤별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리
·건 축 형 태 : 통나무주택
·설계·시공 : (주)핀우드 031-967-0906, www.finwood.co.kr
·실 내 구 조 : 사랑채 - 60평(복층), 하늘채 - 35평(복층), 별채 - 40평(단층)
·객 실 요 금 : 20만 ∼ 35만 원
·문 의 : 031-582-7053, http://pinevil.com
펜션 황토향기
청정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 반딧불. 강원도 홍천군 금학산 기슭에선 여름밤이면 황홀한 반딧불 축제가 열린다. 이런 금학산 중턱에 황토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지는 황토집을 지어 사람을 맞이하는 펜션이 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할 뿐 아니라 흙을 밟고 흙냄새를 맡고 살면 건강해진다며 건강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한다.
건축정보
·위 치 :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 914
·건 축 형 태 : 목구조 황토벽돌집
·설계·시공 : (주)충일건업 02-477-5088~9
·실내구조 : 반딧불방-23평, 산비둘기방-23평, 사랑방-14평
·객 실 요 금 : 10만 ∼ 16만 원
·문 의 : 033-434-8780, 017-403-1207, www.banditown.com
올리브그린 펜션
바위와 계곡이 어우러지며 절경을 연출하는 곳, 주천강 상류에 신라 고찰 법흥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법흥천을 끼고 유럽풍 외관의 펜션이 보인다. 알프스 언덕을 상상케 하는 이곳에서는 산새소리가 화음을 만들고 은하수와 반딧불이가 여행자의 길을 인도하며 휴식을 돕는다. 숲 속에선 다람쥐와 계곡에선 물고기들과 놀 수 있는 곳으로 떠나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598
·건 축 형 태 : 경량철근콘크리트
·실 내 구 조 : 커플룸(8평) - 민트향, 라임향, 가족룸(10평) - 올리브향, 그린향, 스위트룸(15평) - 라벤다향
·객 실 요 금 : 7만 ∼ 15만 원
·문 의 : 033-374-0567, www.olivegreen-pension.com
곰 사냥을 떠나자
가평의 연인산 줄기 끝자락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 구나무골의 중턱에 위치한 펜션. 천연소재 황토와 목재를 이용해 지은 한옥형의 건물로 창문을 열면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들을 수 있다.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연인산에서 열리는 축제와 유럽까지 잘 알려진 남이섬 관광 및 명지산 참숯가마찜질 등을 즐길 수 있다. 계곡물놀이에서 캠프파이어까지 풀코스로 휴가를 떠나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가평 북면 백둔리 88-3
·건 축 형 태 : 목구조황토
·시 공 : 정기호 031-581-8945
·실 내 구 조 : 25평형 독채 - 1동(3실), 2·3동(객실3, 루)
·객 실 요 금 : 6만 ∼ 17만 원
·문 의 : 017-252-4902, 016-394-4902, www.bearhu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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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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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D.I.Y] 야외용 테이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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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을 맞아 가족, 친지, 친구들과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야외용 테이블을 만들어 보자. 지난 호에 만들었던 '정원용 의자'와 잘 어울리는 테이블로 야외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해 보자.글 한태성1998년부터 D.I.Y공방인 '만드는세상'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대 미대 졸업, 분당에 있는 이우학교에 목공강사로 출강 중입니다. '만세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학교 졸업생이 회원자격으로 자유로운 D.I.Y작업을 하는 작업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만드는세상에서는 고집스럽게 통 원목을 주로 사용하는데, 원목은 곧 자연이며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손때 묻은 원목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세학교 분교로는 현재 경북만세, 서산만세, 수원만세, 분당만세, 양지만세가 있으며, 전남 광주만세, 경기 산본만세, 강원 평창만세, 충북 단양만세를 오픈했습니다.만드는세상 031-765-4404, www.makeworld.co.kr1 디자인 : 이번에 만들 테이블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점을 둘 핵심 포인트는 다리의 사선 각도인데 다분히 개인의 주관적인 디자인에 해당하므로 원하는 각도를 반영시키면 되지만, 사선 각도에 따라서 테이블의 높이가 바뀌므로 주의하자. 2 하체 구조용 원목 재단 : 하체(다리 및 프레임)는 2×4인치(두께 36 × 폭 90 × 길이 3600㎜)의 원목, 테이블 상판은 2×8인치(36 × 180 × 3600㎜)를 사용하기로 한다. 이미 디자인할 때 정해 놓은 치수대로 원목을 재단한다. 3 대패질 : 야외용 테이블 크기를 길이 140센티미터, 폭 70센티미터 정도로 디자인하다 보니 원목이 너무 두꺼운 듯하여 자동대패를 이용 5∼6밀리미터 정도 줄였다. 자동대패는 원목의 길이가 너무 짧으면 대패에 집어넣기가 곤란하므로 적당한 길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4 원목 켜기. 5 원목의 수량 확인 : 언제나 그렇듯이 수량을 확인한다. 다리용 원목이 4개, 다리용 프레임이 4개(각 2개씩), 긴 프레임이 2개 그리고 상판을 조립할 때 사용할 중간 보강재를 2개 확보했다. 중간 보강재는 나중에 길이의 변화가 예상되므로 약 10센티미터 정도 길게 재단했다. 그래서 이번에 사용할 하체 부분의 원목은 12개다. 상판용 원목은 하체조립 후에 재단 및 가공할 예정이다. 6 다리 사선 재단 : 재단기(Table Saw) 슬라이딩의 각도 조절 기능을 이용해 원하는 각도로 재단한다. 처음 재단할 때 약간의 여유를 두었기 때문에 원하는 높이를 감안하여 사선 자르기를 한다.
7 사선 재단이 완료된 상태 : 같은 요령으로 긴 프레임도 사선자르기를 했다. (다리용 원목 4개, 긴 프레임 2개) 8 간단히 가조립해 본다 : 이때 원하는 모양(높이)이 나왔는지 확인하며, 만약에 이상이 있다면 다시 조정을 해야 한다. 9 손대패 이용 모서리 둥글리기 :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게 둥글려 준다. 둥글리는 공구는 많이 있지만 이번에는 손맛을 보기 위하여 작은 손대패를 사용했다.
10 벨트 샌더로 1차 샌딩 : 원목을 자동대패로 깎아 낸 상태이므로 표면의 상태가 거칠 수 있다. 그래서 강력한 벨트 샌더로 1차 샌딩을 한다. 11 진동 샌더로 더욱 부드럽게 샌딩.
12 피스못 조립을 위한 드릴링. 13 측면 다리 조립 : 목공 본드를 칠한 후, 이미 드릴링을 한 곳에 피스못을 이용하여 조립한다. 양 측면 다리 2세트가 조립되었다. 14 상판 연결용 긴 프레임 조립 : 모양이 갖춰간다.
15 중간 보강재용 원목 조립 : 약 140센티미터 길이의 상판을 올릴 계획이기 때문에 중간에 보강재가 없다면 가운데 부분이 주저앉을 수 있어 꼭 중간 보강재를 넣어 주어야 한다. 16 발걸이 조립 : 이 발걸이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17 드릴 구멍 가리기 : 나무못에 목공용 본드를 바른 후 드릴링 구멍에 작은 망치로 박아 넣는다. 그리고 작은 톱(쥐꼬리 톱)을 사용하여 튀어나온 나무못을 잘라 낸 후 샌더로 마무리한다.
18 하체 부분 완성: 이제 상판만 올리면 야외용 테이블이 완성된다. 19 테이블 상판 원목 재단 : 테이블용 상판도 앞의 과정과 동일하게 가공하여 프레임에 올려 조립한다. 이 경우 야외용 테이블이기 때문에 약 1센티미터 정도의 간격을 주었다. 20 완성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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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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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감각적인 우리 집 인테리어, 욕실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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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밋밋했던 욕실 공간. 그곳에 신선한 감각을 더해 생기를 불어 넣어보자. 깔끔하고 단조롭기만 했던 공간은 이제 신비로움을 간직한 새로운 곳으로 재탄생한다. 욕실의 바닥과 벽을 마감하는 타일의 색상과 패턴으로 우리 집 인테리어에 감각을 더해보자.
글 최선희 기자자료 제공 (주)상아타일 02-3442-1250,www.sangahtile.co.kr
Vivid Summer
명도의 차이로 패턴을 만든 강렬한 원색은 화이트의 심플함과 더불어 상큼하게 펼쳐진다. 시야를 확실하게 처리해 주는 선명함에 욕실에 들어서는 순간 유쾌한 웃음이 쏟아진다. 열정적인 레드가 돋보이는 욕조와 산호초 가득한 바다의 향기를 담은 세면대에서 여름의 더위를 식혀보자.
Mini & Max
한 가지 색상으로 통일하더라도 사이즈를 달리하면 포인트를 줄 수 있다. 크고 작은 타일을 활용해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 바다 향기가 솔솔 밀려오는 듯한 블루스카이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녹이고 싶은 오렌지레드 빛의 욕실로 시원함과 따뜻함을 느껴주는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넝쿨식물이 곧 뒤덮을 것만 같은 느낌의 포인트 타일을 활용해 순백색의 욕실에서 탈출하거나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그린 계열의 타일로 자연 속으로 빠져 보자. 다른 한편에서는 초콜릿의 달콤함이 느껴지는 브라운과 오렌지색을 매치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Colored Match
퍼즐을 즐기듯 다양한 색상의 타일로 벽면을 장식해 추상적인 구성을 만들거나 일련의 흐름이 있는 무늬를 만들어 욕실에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뜨거움과 시원함이 느껴지는 타일로 욕실의 특성을 살린 인테리어에 빠져본다.
Mystic Tile
신비로움과 차가움을 함께 주는 메탈을 표방한 타일은 내부 공간을 신비롭게 만들고 메탈과 어우러진 파란색의 조화는 시원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선사한다. 펜스를 두르듯 격자로 사선을 강조한 벽면은 질감과 색상으로 한층 우아한 분위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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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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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가자! 은퇴자를 위한 전원마을로... Let's Go to the Senior 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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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한국농촌공사 주최 ‘2006 전원마을 페스티벌’이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의 일정으로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열린다. 기간 중에는전원마을을 조성할 계획으로 있는 35개 시군이 도시은퇴(예정)자들의 참살이 생활(Wellbing-Life)이 가능한 ‘전원마을’ 모델을 제시하고 농촌 이주에 관심이 있는 도시민의 입주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행사의 목적은 은퇴자의 농촌 이주 수요와 농촌의 도시 인구 유입 수요 연결에 있다.
베이비붐 세대 50% 이상 은퇴 후 농촌으로
현재 만 43∼51세 사이인 베이비붐세대 도시민 중 절반 이상은 은퇴 후 농촌지역으로 이주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림부와 국정홍보처가 6월에 서울과 6대 광역시에 살고 있는 베이비붐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3퍼센트가 은퇴 후 농촌으로 이주하겠다고 답했다. 농촌으로 떠나는 이유로는 가족의 건강이 37.3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여가 생활(32.6%), 고향에 대한 향수(11.4%) 순으로 나타났다.
200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세대는 714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도시에 83.4퍼센트(597만 명)가 살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1955∼1959년 사이에 태어난 응답자의 19.5퍼센트가 앞으로 5년 안에 은퇴할 것이라고 답해 2010년쯤 베이비세대의 상당수가 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은퇴 후 농촌 이주 및 정착지역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는 편리한 주거 공간(화장실, 세면대 등)이었고 다음이 복지의료서비스, 전원적인 분위기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문화시설(공연장, 전시관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다.
또 응답자의 61.1퍼센트가 가족이나 친지 등 연고가 있는 농촌지역으로 이주하겠다고 답했다. 농촌으로 이주한 뒤에는 교류를 많이 할 것(49.4%)이라는 답변과 불편을 주지 않으며 알고 지낸다(50.0%)는 답변이 반반이었다. 특히 응답자의 81.8퍼센트는 농촌으로 이주하면서 주택토지 구입비 등으로 2억 원 미만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 소요 비용은 1억 원 미만(40.9%), 1억∼2억 원(40.9%), 2억∼3억 원(10.9%), 3억 원 이상(7.2%) 등으로 조사됐다.
은퇴 후 월평균 지출액으로는 100만∼199만 원이 47.9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200만∼299만 원(31.6%), 100만 원 미만(13.0%), 300만 원 이상(7.4%) 등이었다.
※이번 조사는 은퇴 도시민을 위한 전원마을 조성 정책 추진을 위한 기초자료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표본오차는 신뢰구간 95퍼센트에 표준편차는 ±3.1퍼센트포인트라고 밝혔다.
2006 은퇴자를 위한 전원마을 페스티벌 개최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갈수록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이들 중 상당수가 농촌 이주를 희망함에 따라 농림부는 지난해부터 도시민 농촌 유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농림부,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한국농촌공사는 2006 전원마을 페스티벌을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의 일정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코엑스(COEX) 대서양홀에서 개최한다. 기간 중에는 도시 은퇴(예정)자들의 참살이 생활이 가능한 은퇴자를 위한 ‘전원마을’ 모델을 제시하고 농촌 이주에 관심이 있는 도시민의 입주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페스티벌 취지가 지역 균형 발전과 농촌 공동화를 개선하자는 것이므로 인구의 집중화과밀화가 심각한 수도권지역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농림부 관계자는 2006 전원마을 페스티벌은 최근 조기 은퇴와 평균 수명의 연장에 따라 건강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은퇴 도시민이 보람을 느끼고 농촌에서 제2의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반면, 농촌에서는 인구 감소 및 젊은 층의 이탈로 농촌의 기초 생활환경 기반 유지가 어려운 곳이 생겨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어 도시와 농촌의 필요성을 연결하여 상생相生하자는 취지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은퇴자 마을의 기본 개념은 은퇴자들이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도시적인 편리함과 쾌적한 환경 및 커뮤니티 운영 프로그램을 갖춘 미래형 농촌생활공간이다. 입지는 의료복지문화 등 서비스 시설을 갖춘 읍면 및 거점 도시와의 접근성이 양호한 지역으로, 이곳에서 도시 은퇴자들이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거나 생태계 복원 등 소일거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한편 은퇴자 마을은 기존 농림부에서 농촌공간조성사업으로 추진하는 전원마을조성사업과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등을 토대로 추진된다. 전원마을조성사업은 도시민이 농촌에 이주하여 거주할 주거 단지 조성 시에 관련 상하수도 및 사회간접자본(SOC)을 지원하고 있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소권역(3∼5개 마을) 단위로 바람직한 농촌 정주 공간 조성을 위해서 필요한 기초 생활환경 정비와 경관 개선 등을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35개 시군은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기존 사업을 추진 또는 희망하거나, 자체적으로 도시민을 유치하기 위해 마을 조성을 추진 또는 희망하는 곳들이다.
은퇴자 마을이 기존 사업과 다른 점은 주거 시설 등 기초 생활환경 분야 외에도 사회봉사 프로그램, 복지문화 서비스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됐다는 점이다. 조성 방식은 신규 주거단지 조성 및 기존 농촌마을 내 주거지 조성 등으로 다양하다. 은퇴자 마을당 도시민 이주 규모는 20가구 이상이다. 2006 전원마을 페스티벌에서는 35개 시군에서 은퇴 도시민을 유치하기 위해 개발한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선보인다. 마을의 입지 여건, 전원마을 조성 계획, 입주자의 지역사회 봉사활동 지원 프로그램, 읍면 거점 도시의 의료복지문화 등 서비스 연계 지원 계획, 은퇴 도시민 농촌 유치에 관한 포털 서비스 시연, 은퇴 도시민 유치 관련 정책 등이다. 한편 페스티벌 현장에서는 수요자 대상으로 입주 신청서 접수 및 마을 현장 안내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으로 있다.
은퇴자 마을은 이웃 및 친지들과 어울려 살던 생활 습관을 유지할 수 있고, 생활 및 사회적 수준이 비슷한 이웃과의 교류가 가능하다. 또한 나 홀로 전원주택과 달리 방범이나 편의시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전원에서 노후를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田
출처 : 농림부 보도자료(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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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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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품에 안은 외국인 주택단지 아산 ALC구조 'Vista 6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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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2만 개 가까운 저수지가 산재해 있다. 제천 의림제,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처럼 대부분의 저수지는 삼국시대부터 농업용수를 확보하고자 축조됐다. 하지만 요즘에는 저수지 주변의 농지가 사라지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곳이 많다. 그 대부분이 국가 소유로 농림부 산하 농어촌공사에서는 그러한 저수지 주변을 어떻게 개발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산간 계곡지나 산과 평야가 만나는 곳에 자리한 준계곡지는 경관이 수려한 곳이 많아 단지 개발자들이나 전원주택 거주 희망자들이 시쳇말로 군침을 흘리기까지 한다. 문제는 자연 환경 보전과 개발이라는 상충 관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충남 아산군 둔포면 봉재리 13만8000평의 봉재지에 자리한 외국인 주택단지 ‘Vista 6 House’는 눈길을 끌 만하다. 그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1300평의 넓은 부지에 전망 좋은 50여 평의 ALC 주택이 여섯 채만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산과 호수에 접한 부지라면 으레 땅값을 고려해 필지를 쪼개고 쪼개서 건폐율과 용적률을 최대한 높여 집을 짓기 마련인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 빼어난 전망에다 넓은 후정後庭을 갖춘 ‘Vista 6 House’의 매력에 빠져보자.
건축정보
·위 치 : 충남 아산군 둔포면 봉재리
·부 지 면 적 : 1300평
·연 면 적 : 각 53평
·건 축 형 태 : ALC 복층 주택
·외벽마감재 : 스타코
·내벽마감재 : 스타코
·천 장 재 : 스타코
·지 붕 재 : 오지기와
·바 닥 재 : 우드 피타일
·창 호 재 : 시스템 창호
·난 방 형 태 : 가스 + 기름보일러
·식 수 공 급 : 상수도
·시 공 기 간 : 2005년 10월 ∼ 2006년 5월 (조경 포함, 동절기 2달 쉼)
설계 기타 시공 : 직영(문의 016-261-1374)
인테리어 : 미건플랜 031-701-3036
골조시공 : 대림ALC 053-811-4460 www.alcdl.com
아산 봉재지하면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명당 터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이곳에 최근 꾼들의 손맛을 자극하는 물고기 외에도 일반인의 눈을 즐겁게 하는 명물이 들어섰다.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인 호수 경관하고 잘 어울리게 ALC(경량 기포 콘크리트) 구조로 지은 서구풍의 여섯 채 주택이 자리한 ‘Vista 6 House’이다. 전망, 즉 길게 내다보이는 경치를 뜻하는 비스타란 말에 걸맞게 여섯 채의 집에서는 새들이 수면 위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넓은 호수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Vista 6 House’ 개발자 김광년 씨는 부지 마련에서부터 단지 구상, 건축에 이르기까지 4년 6개월간 공을 들였다. 부지를 마련할 때는 너무 맘에 들어 용도도 안 보고 매입했다고.
“결혼 전 아내와 데이트하면서 이곳을 눈여겨보았어요. 나는 평택에서 사업체를 운영했고 미술교사인 아내는 아산이 집이라, 이곳은 데이트 후 데려다 주는 중간지점이지요. 당시 호수가 너무 아름다워 나중에 이곳에다 예쁜 집을 지어 살고 싶다 했는데 그 꿈을 이룬 거예요. 결혼 후 부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차에 4년 6개월 전쯤 매물이 나오기 무섭게 앞뒤 가리지 않고 1300평을 매입했지요. 호숫가 주변 땅은 대부분 영농조합(현 한국농어촌공사) 거라 개인 매물이 나오기란 쉽지 않거든요.”
전망 좋은 외국인 전용 주택단지
1300평 부지는 국도와 군도郡道 그리고 호숫가에 걸쳐 길게 펼쳐져 있다. 김광년 씨는 부지 매입 후, 호숫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차근차근 단지 개발 계획을 세웠다. 컨셉은 외국인 전용 주택단지로 잡았는데 평택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아산에는 유럽 기술자가 많이 근무하는 반도체 회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지 한복판으로 차량 소통이 뜸한 왕복 2차선 군도가 지나기에 자연스럽게 외국의 주택단지처럼 주차장 등 서비스 공간으로 꾸밀 수 있겠다 싶었지요. 1차로 호숫가에다 전망을 살린 주택단지를 계획했는데 앞쪽부터 바람을 잡았다고나 할까요. 그래야만 국도와 군도 사이에 있는 부지에 2차로 계획한 4층짜리 빌라와 테이크아웃(Takeout) 같은 근생시설에서도 호수를 조망할 수 있으니까요. 여섯 채 중 가장자리 한 채만 단을 낮춘 것도 그 때문이고요.”
김광년 씨는 외국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보아두었던 그곳 주택단지의 장점을 취합해 단지 개념을 잡아서 설계사인 친구(정림건축 임진우 이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구에게 단지 모양을 그려 보이면서 전망과 높이 그리고 외부 간섭 등 기술적으로 하자가 없는지를.
“주택을 짓기 전 땅이 푹 꺼진 상태에서 설계사인 친구가 한 번 와서 봤지요. 그리고 주택을 짓고 며칠 전 가족과 함께 와서는 생각보다 잘했다며 아예 업자로 나서라고 하더군요.”
왜, 김광년 씨는 넓은 1차 개발지에다 빌라처럼 용적률을 높여 짓지 않고 50평짜리 주택 6채만 지은 것일까? 2차 개발지의 호수 조망권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부지를 높여 조성하면 됐는데…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곳의 가치 상승 요인은 호수이기에 그 경관을 해치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를 보기 때문이지요.”
ALC 구조의 장점을 살린 주택 배치
김광년 씨는 도로 쪽으로 완만하게 성토盛土한 후 1년간 눈비를 맞히며 지반이 안정되기를 기다렸다. 그후 건축 구조는 성토 지반이기에 하중 문제를 고려하고 지중해풍의 회벽 느낌을 주고자 ALC를 선택했다고.
“어떤 구조로 짓든지 습기 때문에 지하를 파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단을 낮춘 집도 습기를 차단하고자 옹벽에서 멀리 떨어뜨려 앉힌 거예요. 지하 없이 철근콘크리트로 짓자니 성토 지반이라 문제가 있을 거 같아 하중이 적으면서 내구성이 강한 ALC 구조를 선택했지요. ALC 블록 벽체는 안팎 모두 석고보드를 대지 않고도 스타코로 회벽 느낌을 낼 수 있으니까요. 석고보드를 대면 돈은 돈대로 들면서 덩덩거려 왠지 가짜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외국인 주택이라 기능성과 경제성도 염두에 뒀는데 차음과 단열에 있어 ALC만한 게 없더군요.”
김광년 씨는 서울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형의 도움을 받아 건축 공사를 직영으로 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닥공사 시 철근공들에게 무슨 벙커를 짓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21밀리미터 철근을 두 배로 사용했다.
ALC 골조공사는 현장에서 10분 거리인 쌍용ALC 공장에다 원하는 사이즈를 주문하면 곧바로 재단해서 가져왔기에 한결 수월했다. 골조공사는 주위의 추천으로 ALC 주택 설계 시공 경험이 풍부하고 전문 기술 인력이 많은 경산의 대림ALC에다 맡겼다.
커뮤니티 공간을 확보한 서구식 설계
‘Vista 6 House’의 주택은 현관 부만 전면으로 돌출시킨 박스형 구조에다 외벽을 회색 스타코로 마감하고 지붕에는 오지기와를 얹었다. 이렇듯 일체감을 주었음에도 단조로움보다는 세련된 멋을 풍긴다. 군도를 따라 간섭을 피해 주택을 배치하고 호숫가하고 맞붙은 잔디 깔린 넓은 후정이 단조로움을 상쇄시키기 때문이다.
실내 구조는 주택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1층은 공용공간으로 2층은 독립공간으로 배치한 게 공통점이다. 1호 집의 경우, 1층은 현관에서 각 실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주방과 다용도실, 보일러실, 계단실 그리고 단을 낮추어 거실과 게스트-룸, 화장실, 수납실을 배치했다. 2층에는 월풀 욕조가 딸린 안방과 두 개의 작은 방, 화장실을 배치했다.
실내 마감재는 색채에 변화를 주어 내벽은 스타코로, 마루는 우드 피타일로 그리고 천장은 미송 이미지 서까래로 꾸몄다. 거실과 주방은 단차와 인조벽돌을 이용해 공간을 구분했으며, 주방 벽면에는 여러 가지 색상의 이미지 타일로 마감했다. 각 실마다 수납 공간을 많이 만들고, 각종 가전 제품에 이르기까지 시설을 주거형 호텔처럼 꾸며 놓아 개인 용품 외에 별도의 준비 없이도 바로 입주가 가능하다.
전원주택단지의 취약점으로, 많은 사람이 자연 환경 무시는 내버려두더라도 구성원들 간의 동질감을 자아내는 커뮤니티 공간의 부재를 꼽는다. 용적률을 높이고자 필지를 다닥다닥 분할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Vista 6 House’는 전원주택단지를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田
글·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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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