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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생활의 공간, 용인 지산빌리지 58평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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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훈 씨 부부와 어린 자녀 둘, 가족 네 명이 지난해 11월부터 입주해 살고 있는 용인시 원삼면 맹리 ‘지산빌리지’ 안의 목조주택을 찾았다.
예전부터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은 꿈을 가졌던 건축자재 영업직원인 건축주 박 씨는 업무상 여러 곳의 전원주택단지를 다녀보던 중 자연 경관 수려한 건지산자락에 위치한 지산빌리지를 방문하게 됐다.
그리고 토목작업의 질이나 주위 전경 그리고 주변 환경이 맘에 들어서 이곳 땅 190평을 평당 70만 원에 구입했다. 막상 땅을 사놓게 되니 주위 사람들이 빨리 집을 지으라고 부추겼다.
그런 부추김에 시달리던 박 씨는 미국 출장 중에 들른 지인의 집을 보고 “그래 이런 집을 지어야지”라고 건축을 최종 결정했다.
난관 끝에 지은 집
박 씨가 짓고자 하는 집은 가족이 화목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집이다.
이런 집을 짓기 위해 미국식 주택형태를 취했다. 미국식 주택은 요즘 한국식 주택에서 많이 나타나는 프라이버시를 강조한 일자형 형태가 아니라 가족간 대화의 장을 중심으로 한 모임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하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다. 우선 설계도가 문제였다. 미국식 주택을 짓는다고 현지 설계도를 그대로 가져오는 건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에 미국 도면을 참조하고 건축주가 원하는 형태로 새롭게 그렸다.
이 작업은 평소에 업무상 알고 지내던 한국주택산업 이진우 사장에게 부탁해 설계도를 얻어냈다.
막상 설계도가 나오니 이제는 시공이 문제였다. 박영훈 씨가 원하는 대로 집을 설계하다 보니 설계 자체가 굉장히 난해해졌기 때문에 국내 목조기술력으로는 설계도대로 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기에 많은 목수들이 작업을 맡지 않으려 했다. 결국 미국 Greast East 사 박근진 이사의 도움으로 설계에 대한 감리와 시공을 마칠 수 있었다.
외관보다는 실리중시
우리나라의 많은 주택이 공간의 활용도보다는 주택의 외관에만 신경을 써 덱을 집의 정면에만 배치하고, 내부구조는 별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박영훈 씨의 주택은 보여주는 외관보다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단적인 예가 덱의 배치다. 우선 박 씨 집은 산으로 이어진 후면 덱을 넓게 잡아 가족들이 방해받지 않고 편히 쉬도록 했다.
또한 특별히 돈을 들여 정원을 꾸미기보다는 집이 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살려 후면 덱 한편에 파고라를 놓았다. 여름에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편안히 쉬도록 만든 것이다.
독특한 공간배치
박영훈 씨 가족의 목조주택은 구조, 사용자재 등에서 독특함이 묻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엌을 중심으로 한 1층 공간이다.
보통의 부엌을 주택의 한쪽 끝에 위치시킨 것에서 탈피하여‘ㄱ’자 형태를 변형한 Round Type으로 1층 공간의 중심에 놓도록 만들었다. 이는 주방 일이 많은 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다.
또 다른 1층 공간의 특징은 2개의 거실이다. 건축주는 손님이 방문했을 때도 가족들만의 공간이 방해받지 않게 거실을 두 개로 만들었다.
현관 입구 왼쪽에 위치한 손님용 거실에는 탁자, 쇼파, TV를 두어 손님과 가족이 편안히 대화를 나누도록 했고 가족용 거실은 평상시에는 편안하게 음악감상을 즐길 수 있도록 안락의자와 특별한 무늬가 없는 나무탁자를 두었다.
그러나 벽난로는 아이들의 안전문제로 매립형 벽난로를 사용하고 고급스러움을 배가시키기 위해 주변 맨틀을 수작업 도기로 시공하였다.
아이들 방으로 설계한 2층의 방 2개는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에 특별한 장식을 하진 않았지만 경사진 천장 구조를 그대로 살리고 원목 루바로 처리해 동화 속 집 같은 분위기를 내 방에 따로 베란다를 두어 공간활용을 극대화했다. 田
■ 글·사진 양희석 기자
※ 지산빌리지는 자연 경관 수려한 건지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지산빌리지는 우측으로는 건지산에서 발원한 실개천이 흐르고 앞으로는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원주택단지다.
우뚝 솟은 건지산을 휘감는 운해(雲海)가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하는 곳으로, 지산C.C-건지산-수정산-도실로 이어지는 천연수목림의 등산로가 있다.
영동고속도로 양지I.C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강남까지 30, 40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할 정도로 교통 여건이 뛰어나고 2006년 경전철(분당선)이 용인시까지 개통될 예정이라 더욱 편리해질 전망이다.
또한 단지에서 10~15분 거리에 원삼초, 백암초·중학교 용인대학교, 명지대학교, 경희대학교, 강남대학교 등의 교육 환경이 조성돼 있고 의료시설로는 5분 거리에 삼성병원이 있고, 15분 거리에 용인시에 위치한 세브란스병원이 있어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입지여건(교통, 편의시설 유무)이 무척 훌륭한 편이다.
■ 건축주 인터뷰(박영훈씨)
창호가 아주 다양하고 특이한데 어떤 창호를 사용했는지?
집의 구조상 각각의 공간에 각기 다른 모양이나 색상의 창을 써도 무방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사실은 제가 자재를 팔다보니 세계적인 창호들에 대한 직접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강해서) 총 들어간 창호의 종류는 5가지 회사입니다. 우선 Al-wood(공학목재인 LVL을 채용 목재위의 클래딩재료를 1.4mm 두께의 압축알루미늄을 사용) 창호로는 Eagle과 Pella를 사용했습니다. 각각의 창호는 3중 유리로 되어있고 마지막 유리는 탈부착이 가능한 창호로 그 내부에 블라인드를 넣었으며 주로 Casement, Awning Type을 사용했습니다.
큰 창들은 대부분 국내에서는 Slideing Type을 사용하는데 반해 저는 주로 French Door를 사용했습니다. 손님용 거실의 경우에는 Traco 사의 제품을 사용했는데 이는 Folding door 라는 것으로 기존 창들이 문을 모두 열었을때도 그 전체 크기에 비해 환기 면적은 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고려하여 완전히 접혀서 열립니다. 이 창은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자유의 여신상에 들어가는 창입니다.
보통 덱자재는 방부목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집 덱은 다른 것 같다. 어떤 자재를 사용했는지?
☞ 금년부터 미국에서는 환경에 대한 우려 때문에 CCA 방부목 생산을 전면 중단하게 됩니다. 물론 많은 곳에서 CCA 방부목에 대한 안정도 평가를 했지만 그 자체가 크롬, 비소, 구리 등으로 이루어진 유해성 물질이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미국에서도 다른 성분의 방부목을 사용합니다. 이에 몇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유행중인 천연섬유질과 폐고무를 응용한 자재를 사용할까 생각하다가 주위의 권유로“말라스”라는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 건축정보
·주 소 : 용인시 원삼면 맹리
·건축형태 : 2˝×6˝ 미국식 목조주택
·대지면적 : 190평
·건축면적 : 58평
·외부마감 : 시다 베벨, 로그사이딩
·내부마감 : 미국산 석고보드 위 루바, 실크벽지
·지붕마감 : 아스팔트 슁글
·창 호 재 : Pella, Eagle, Traco, Milgard, Hy-Lite
·건축비용 : 평당 530만 원
■ 설계 : 한국주택산업 (031-653-3200)
■ 시공 : Great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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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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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세시기] 새 생명이 움트는 정월, 자신만의 한 해 농사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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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 거야. 하긴 아무 것도 눈에 뵈는 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 걸 죽어 있다고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거지. 적당한 햇빛과 온도만 주어지면 그 죽어빠져 있는 듯한 땅에서 온갖 식물들이 함성처럼 솟아 나온다 이 말이네.”-김영현의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중에서
겨울철 들판의 모습은 언뜻 보면 김영현의 글처럼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죽은 땅이라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음력 정월부터는 달라진다.
<농가월령가>에서도 “정월은 맹춘(孟春)이라 입춘(立春) 우수(雨水) 절기로다. 산중 간학(澗壑)에 빙설은 남았으나 평교 광야에 운물(雲物)이 변하도다.” 라고 노래했듯 산골짜기에 남아있는 눈과 얼음이 겨울을 붙잡고 있으나 들판의 모습은 조금씩 생명을 잉태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
들판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하는 이 시기엔 농부들도 그 생명을 잘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해충을 없애기 위해 들판에 있는 풀을 태우고 1년 내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원도 한다. 이런 것들은 풍습으로 발전되었다.
바로 정월 대보름에 하는 여러 가지 놀이와 행사들이 그것이다. 이런 행사들에 대해 <농가월령가>는“보름날 약밥 제도 신라적 풍속이라.
묵은 산채 삶아 내니 육미(肉味)와 바꿀소냐. 귀밝히는 약술이며 부스럼 삭는 생밤이라. 먼저 불러 더위팔기 달맞이 횃불 켜기 흘러 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라고 노래한다.
자연이 새롭게 움트는 음력 정월, 옛 사람들이 자연의 흐름에 맞춰 몸을 가다듬고 농사를 준비했듯이 이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벼려 자신만의 한 해 농사를 새롭게 준비해 보자 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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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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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산책] 겨울에도 면역력 강한 아이로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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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하다 보면 감기와 같은 잔병치레를 하는 아이들을 흔히 접한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핵가족화와 자녀 수의 감소로 아이에 대한 보호가 지나쳐 각종 병원균을 비롯한 환경조건에 대한 내성(耐性)이 약해진 데서 찾을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아이를 너무 따뜻하고 안락하게 하며 많이 먹이려는 태도는 잘못된 양육방법”이라면서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는 방법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다음은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열 가지 방법(養子十法)과 아이에게 올바른 환경과 교육이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열 가지 방법
하나, 등을 따뜻하게 한다.
이것은 감기와 같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나쁜 기운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옛 사람들은 등에 폐를 담당하는 부위(肺兪)가 있어 이곳을 통해 외부의 나쁜 기운이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등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은 감기를 예방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둘, 배(복부 전체)를 따뜻하게 한다.
복부를 차게 하면 설사와 같은 소화기 질환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셋, 발을 따뜻하게 한다.
발은 한의학 이론상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이 관리하는 곳이므로 발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위의 소화기능을 돕기 때문이다.
넷, 머리를 서늘하게 한다.
머리는 인체의 모든 양기(陽氣)가 모이는 곳(諸陽之會)이므로 열의 발산을 돕는다는 의미에서 평소 서늘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한의학 이론상 심장은 인체에서 불(火)의 기운에 해당한다. 만약 외부에서 열이 들어왔을 때 내부에 있는 심장의 열과 결합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혀가 마르며 심한 경우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평소 심장이 있는 가슴을 서늘하게 해야 한다.
여섯, 낯선 사람이나 이상한 물건을 보지 않게 한다.
소아들은 뇌의 발육이 미숙하므로 갑자기 이상한 물건이나 낯선 사람을 보면, 정신과 질환을 비롯한 여러 가지 증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 위를 따뜻하게 하지 않으면 소화기 장애와 전신에 부조화가 나타난다.
얼음이나 아이스크림과 같은 찬 음식을 많이 먹으면 구토나 설사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간질과 유사한 발작증세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덟, 영아가 울 때는 젖을 물리지 마라.
아기가 울 때 젖을 먹이면 울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울 때마다 젖을 먹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잘못하면 젖이 호흡기로 넘어가 질식할 우려가 있다.
아홉, 경분(염화 제일수은)이나 주사와 같은 약을 함부로 복용시키지 마라.
예전에는 이런 중금속을 정신을 안정시키는 약물로 사용하곤 했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이런 약물(?)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에는 맞지 않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아이에게는 독한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열, 목욕을 너무 자주 시키지 마라.
소아들은 피부가 연약하여 잦은 목욕으로 인한 외부감염을 피하기 위함이다.
아이의 성장을 돕는 법
하나, 수면을 충분히 취하도록 해 준다.
하루 중 밤 9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대부분의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러므로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거나 깊은 잠을 못 자고 자주 깨거나 악몽에 시달리며 놀라서 우는 아이들은 잘 크기가 어렵다. 특히 잠이 든 후, 한두 시간 정도에 가장 많은 양의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므로 깊이 잠든 아이를 자주 깨서 수면 리듬을 흔들어 놓는 것은 좋지 않다.
둘, 영양 공급을 충분히 해 주어야 한다.
충분한 영양은 후천적인 성장 요인이 된다. 일정한 시기에 충분한 양의 음식을 먹도록 돕고 편식하는 습관을 고쳐 주어야 잘 자란다. 또한 먹는 만큼 소화 흡수가 잘 돼야 하는데, 만약 만성적인 위장경련으로 복통을 호소하거나 설사와 변비 같은 배변에 문제가 있다면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에 지장을 주어 성장을 지연시키는 원인이 된다. 식욕과 소화 흡수작용은 아이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셋, 면역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아이가 오랜 병치레로 한동안 키와 몸무게가 늘지 않는다면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한약을 통해서 몸을 보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체력이 좋아지면 면역력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넷, 스트레스를 풀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단순하고 어려서 작은 일에도 어른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밤에 오줌을 싼다든지, 무서운 꿈을 꾼 뒤 잠에서 깨어 우는 등 육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체의 일부를 움직여 씰룩거리는 것도 긴장의 한 표현이며, 심리적으로 억압될수록 호르몬 분비도 줄어들게 되어 성장에 지장을 준다. 그러므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윽박지르지 말고 맘껏 울게 하고, 맘껏 뛰놀게 하여 스스로 풀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다섯, 지나치게 살이 찌지 않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성장의 가장 큰 적은 비만이며, 아이가 살찌면 골연령이 빨라지고 사춘기가 빨리 시작된다. 특히 여자아이의 경우, 초경이 조기에 시작되면 성장기간이 짧아진다.
이때 우울증과 열등감이 일어나기 쉽고 다른 아이와 다른 자신의 모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적당한 식이요법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적정한 체중을 유지하도록 해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부모의 의무가 아닌가 한다. 건강한 육체뿐 아니라 건강한 정신을 갖도록 항상 보살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田
■ 글·김보균(한의학박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동대학원 석사 박사 수료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전문 수련의 수료,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현 상지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본플러스한의원 원장
■ 본플러스한의원
(02-3391-3330, www.von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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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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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울퉁불퉁 메주로 장 담그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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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도시에서 정착하게 된 사람이 있다.
그는 어릴 때 겪었던 사건과 추억들을 회상해 감칠맛 나고 구수한 이야기들을 참 잘 써낸다. 지금 30대 후반 나이까지는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 가슴 따뜻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나의 경우, 그런 감성을 동경하다가 서른이 넘어서 시골로 귀향해 이제야 그런 감성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내가 처음 만난 시골은 순박하지만 거칠어서 그 속살에 살갗을 베일 것 같은 연인과 사귀는 느낌이었다.
사랑하지만, 손을 잡고 포옹이라도 하려면 생채기를 감수해야 할 위험한 연인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계속 사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정이 들어서 발목이 잡혀버린 시골생활에서 우리가 처음 한 일은 장 담그는 일이었다.
콩대를 베는 일보다 보랏빛 쑥부쟁이가 살랑살랑 허리를 흔드는 밭둑에 더 자주 눈길을 주면서 서툰 손길로 수확한 콩으로 처음 메주를 만들었던 것이 벌써 5년 전이었던가.
그렇게 흐르는 세월 속에 이제는 쑥부쟁이 따위에 눈길을 빼앗기기보다 마른 콩깍지에서 튀어나가는 콩알에 더 신경이 쓰이는 시골아낙으로 변신을 했다.
계란말이와 소시지를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먹던 세대였기에 된장찌개를 먹으며 성장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던 내게 장 담그는 일은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장 담글 줄 모르는 요즘 여자들에 속했던 내가 장맛의 오덕(五德)을 읊을 정도가 된 이야기를 해 보겠다.
가마솥에 콩을 씻어 안치고 장작불을 때는 일은 지금도 재미있다. 남편과 나는 찬물에 콩을 씻는 일은 서로 미루면서도 불을 지피는 아궁이 앞에서는 주도권을 잡으려고 부지깽이부터 들고 설친다. “잠자리에 오줌을 싼다”는 어른들의 핀잔을 듣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불장난의 매력은 나이를 초월하는 모양이다.
마른 나무가 타면서 나오는 그을음내가 살짝 배서 구수한 냄새를 내며 콩이 다 삶아지면 나무절구에 콩콩 찧는다. 이 일은 재미있어 보이지만 힘을 쓰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주로 남편이 절구질을 하면 찧어진 콩으로 네모난 메주로 만드는 일은 내 몫이다.
흔히 메주는 ‘못 생긴 것’의 대명사로 일컫는데 한 번도 메주를 만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비유를 쓸 자격이 없다.
내가 메주를 만들어 보니 메주는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만드는 데에 그 기술의 핵심이 있었다.
모양이야 대충 직육면체를 유지하면 되지만 단단하게 꼭꼭 뭉치지 않으면 짚으로 엮어서 말리는 과정에서 부서지고 갈라지기 때문에 자꾸 다지다 보니 일정하지 않은 들쑥날쑥한 모양이 되어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았다.
그렇게 만든 메주는 그늘에서 표면이 꾸덕꾸덕해지게 이틀 정도 말린 후에는 짚으로 엮어서 눈과 비에 맞지 않게 처마 밑에 매달아서 햇볕과 바람에 벽돌처럼 단단해질 때까지 말린다. 이 과정이 보통 40일 정도 걸린다. 그 다음에는 메주를 ‘띄운다’고 하는데 이 과정이야말로 장맛을 좌우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 음식 문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발효 과학의 기술이 바로 이 ‘띄우기’에 집약되어 있다. 코끝을 자극하는 청국장이 바로 이 띄우기의 기술을 적용해 햇콩 맛을 볼 수 있게 만든 인스턴트 장이다.
흔히 백태라고 하는 메주콩은 밥에 넣어 먹거나 요리에 응용해도 그 자체로는 별 맛이 없지만 이렇게 띄워서 청국장을 만들거나 된장을 담가야 그 깊은 속 맛을 보여준다.
잘 마른 메주는 따뜻한 온돌방에서 짚을 깔고 켜켜이 쌓아 놓은 다음에 이불을 덮어서 놔두면 구수한 냄새가 나면서 하얀 곰팡이가 메주의 표면을 감싸게 되고 메주 속이 고약처럼 찐득하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이 때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지 못해서 띄우기가 잘못되면 장맛이 없고 역하고 쿰쿰한 냄새가 난다. 된장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잘못 띄운 메주로 담근 장을 먹으면서 생긴 냄새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메주야말로 정말 메주다. 조금씩 갈라지고 거친 피부에 거뭇한 곰팡이까지 핀, 간신히 직육면체의 형태를 유지한 메주의 모습은 파란만장한 한 세월을 이겨낸 팔자 드센 여인을 닮았다고나 할까? 메주를 못생겼다고 타박하기 이전에 곰삭은 생의 뒷 힘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장맛을 논할 수 있으리…….
이렇게 완성품 메주가 되기까지 약 70일 정도 걸리는 동안 비바람에 묻어 온 먼지와 짚에서 붙은 검불들을 물로 싹싹 씻어내고 나면 비교적 우아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여기까지의 과정이 농경사회에서는 한 해 농사의 끝이었다. 다시 새해가 돌아와 설을 쇠고 나면 여자들은 겨우내 말리고 띄운 메주로 장을 담을 준비에 들어간다. 말(午)날이나 양(未)날로 날을 잡아 소금을 준비해 놓는다.
정월 첫 말날을 장 담그는 날로 정한 우리는 설을 지내는 것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우리 집 장 담그기에는 전통 방법을 준수하면서도 특별한 비법이 있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먼저 굵은 대나무를 잘라다가 가마솥에 물을 붓고 끊인 물에 죽염을 풀어서 가라앉힌 물을 장 담그는 물로 사용한다. 손이 많이 가지만 대나무의 유효 성분이 잡균의 번식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우리는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는 24절기를 상징하는 24가지 한약재를 사다가 분말로 만들어 놓은 것을 면주머니에 담아놓아야 한다. 24절기의 기운이 들어간 약재들은 장이 익는 한 해 동안 그 효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더 나은 장맛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장을 담가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떠돌이 스님의 믿거나 말거나 한 말을 새겨들은 실험 정신이 강한 남편의 밀어붙이기가 우리 집 장맛의 비밀이 된 지 벌써 여러 해를 나고 있다.
‘왜 시골에 사느냐?’ 고 물으면 그냥 웃을 수 있는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제 시골에 사는 재미의 한 가지에는 울퉁불퉁 못생기고 곰삭은 메주로 장을 담가 친구들을 불러들여 끓여 먹인 후에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옆구리 찔려서 아부하는 말을 듣는 재미도 추가된다. 田
■ 글·오수향(주부)
글쓴이 오수향은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 살면서 글쓰기의 꿈을 쫓아가고 있는 주부입니다. 공주 KBS,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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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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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슈] 주택 3채 이상 양도세 60% 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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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수도권을 비롯한 광역시 등 대도시 지역에 1가구가 3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면 양도소득세가 중과된다.
■ 1세대가 서울과 수도권(경기, 인천 포함),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 등의 대도시에 3채 이상의 주택을 갖고 있다가 팔 경우 60%의 양도소득세를 물게 된다.
■ 또한 이들 대도시 외 지역에 3억 원 이상 고가주택을 3채 이상 보유한 경우에도 1가구 3주택자로 분류돼 60%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1세대 3주택의 판정기준은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광역시 소재 주택과 3억 원(국세청 기준시가)을 초과하는 기타 지역 주택이다. 한편 수도권과 광역시 가운데 군지역과 도·농 복합시의 읍면지역 3주택은 분류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또한 경기도 가평, 양평, 여주, 연천군, 평택시 포승면, 인천시 강화 옹진군, 부산 기장군, 대구 달성군, 울산 울주군 등이 3주택 판정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올해부터 1세대 3주택 이상 요건에 해당하면 60%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특히 투기지역에 2주택 이상 소유하면 기본 세율 60%, 탄력세율 15%, 주민세율 7.5% 등을 합해 최고 82.5%의 세율이 적용된다. 또한 3년 이상을 보유해도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2003년 12월31일 현재 1세대 3주택 이상인 자가 2004년 12월31일 이전에 기존 주택을 양도하면 중과되지 않는다. 또한 1년 간 유예돼 일반세율을 적용 받는다. 일반세율은 기존 3주택일 때 1년 이내 양도하면 50%, 1∼2년 사이 40%, 2년 이상은 9∼36%의 양도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반면 올해 주택을 새로 취득하면 60%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따라서 유예기간 중 주택을 새로 취득하면, 유예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중과된다.
1세대 3주택은 주택 양도일을 기준으로, 당해 양도주택을 포함해 1세대 3주택 이상인지 여부로 판정한다. 예를 들어 올해 주택 1채가 완공돼 3주택이 되면 보유주택 양도 시 중과된다. 오피스텔도 주거 목적이라면 주택 수 계산에 포함된다.
한편 동일한 날, 2주택 이상을 양도하면 세금이 적게 나오는 방법을 택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1세대 3주택자가 동일한 날에 2채의 주택을 양도할 경우, 먼저 양도한 것은 60%의 세율이, 후에 양도한 것은 일반세율이 적용된다.
예1 : 1세대 3주택자가 동일한 날에 2채(甲, 乙) 주택을 양도한 경우
·甲주택 : 양도차익 1억 원 → 먼저 양도한 것으로 처리
(3주택 60%세율 적용)
·乙주택 : 양도차익 2억 원 → 후에 양도한 것으로 처리
(2주택 일반세율 적용)
예2 : 1세대 3주택자가 동일한 날에 2채(甲, 乙) 주택을 양도한 경우
·甲주택 : 양도차익 2억 원,
양도세 감면대상 → 먼저 양도한 것으로 처리(양도세 감면)
·乙주택 : 양도차익 1억 원,
감면 대상 아님 → 후에 양도한 것으로 처리(일반세율 적용)
수도권과 광역시는 주택가격에 관계없이 모두 해당된다. 대부분 주택보급률이 100% 이하이고 주택가격이 높은 점을 감안해 주택가격에 관계없이 1세대 3주택 계산 시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수도권과 광역시 중 군지역이나 도농 복합시의 읍면지역은 1세대 3주택에서 제외했다. 수도권 중 주택보급률, 주택가격 및 그 동향을 감안해 규칙(재정경제부령)으로 정하는 지역도 제외할 방침이다. 특히 이들 지역은 지방과 같이 3억 원(국세청 기준시가)을 초과하면 1세대 3주택 계산에 포함된다.
그러면 수도권 및 광역시에 2주택, 지방에 1주택을 소유해도 1세대 3주택에 해당될까. 지방 소재 주택의 가격이 국세청 기준시가 3억 원 이하이면 1세대 3주택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세청 기준시가 3억 원 을 넘으면 1세대 3주택에 해당된다.
■ 3년 이상 보유 2년 이상 거주해야
1세대 1주택 비과세 가능 지역
1세대가 1주택을 3년 이상 보유하고 양도하는 경우, 고가주택을 제외하고 1세대 1주택 비과세 대상에 해당한다.
고가주택이란 주택 및 이에 부수되는 토지의 양도 당시 실거래가액의 합계가 6억 원을 초과하는 것을 말한다. 주택과 주택 외의 부분으로 구성된 복합주택의 1세대 1주택 비과세 대상 판정에 있어서 주택의 면적이 주택 외의 면적보다 커서 전체를 주택으로 보는 경우에는 주택 외의 부분까지 포함한 전체 실거래가액을 가지고 고가주택 여부를 판정한다.
고가주택을 양도하면 1세대 1주택으로 비과세 요건을 갖춰도 양도 실거래가액이 6억 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과세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1년 이상 보유한 부동산을 양도하면 원칙적으로 기준시가에 의해 양도소득세를 계산하지만, 고가주택을 양도할 경우에는 실지거래가액에 의해 양도소득세를 계산한다.
1세대 1주택인 고가주택의 양도소득 계산
양도가액 - 취득가액 - 기타 필요경비 = 양도차익
·고가주택 해당 부분 양도차익(A)
양도가액 - 6억 원
= 총 양도차익 × ─────────
양도가액
양도차익 - 장기보유특별공제 = 양도소득금액
·고가주택 해당부분 장기보유특별공제액(B)
양도가액-6억원
= 총 장기보유특별공제액 × ─────────
양도가액
※ 간편식 : (B) = (A) ×장기보유특별공제율
그러나 서울특별시, 과천시 및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 고시된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신도시지역에서 올해부터 양도하는 주택은 보유기간이 3년 이상이고 그 보유기간 중 2년 이상 거주해야 1세대 1주택 비과세 적용을 받는다.
다만 △시행일 현재 대체주택을 취득해 일시적으로 1세대 2주택을 보유한 경우 △혼인 및 노부모 봉양을 위해 합가해 일시적으로 1세대 2주택을 보유한 경우에는 종전 규정(3년 이상 보유, 1년 이상 거주)을 적용한다.
대체취득을 위한 일시적인 1세대 2주택 : 1주택을 소유한 1세대가 그 주택을 양도하기 전 다른 주택을 취득해 일시적으로 2주택이 된 경우, 다른 주택을 취득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종전의 주택(비과세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함)을 양도하면 이를 1세대 1주택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한다.
혼인을 위한 일시적인 1세대 2주택 : 1주택을 보유한 자가 1주택을 보유한 자와 혼인함으로써 일시적으로 1세대 2주택을 보유하면 혼인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먼저 양도하는 주택(비과세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함)은 이를 1세대 1주택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한다.
동거봉양을 위한 일시적인 1세대 2주택 : 1주택을 보유한 1세대가 1주택을 보유한 직계존속(60세 이상, 여자 55세 이상)을 동거봉양하기 위해 세대를 합침으로써 일시적으로 1세대 2주택을 보유한 경우에는 합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먼저 양도하는 주택(비과세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함)은 이를 1세대 1주택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한다.
올해 1월1일 이전에 대체취득·혼인·동거봉양을 위한 일시적인 1세대 2주택이 된 경우 : 3년 이상 보유, 1년 이상 거주(서울, 과천, 5대신도시)해야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된다. 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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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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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의 안분(安分)생활 -정부정책평가위원회 위원장 조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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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햇살은 따사롭고 포근하다. 손바닥만한 내 정원의 잔디밭에서 파릇파릇 돋아난 잡초를 뽑고 있노라니 발밑에서 새 잔디가 움트는 봄기운이 느껴진다. 이제 나는 서울의 관가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즐기고 대학에서 강의하며 지내련다. 부산에 있는 대학도 좋고 강원도나 목포의 어떤 대학도 좋다. 이제 마음공부도 제대로 해서 이 ‘무애(無碍)의 자유로움’을 뛰어넘어 마음의 자유와 해탈의 경지도 맛보고 싶다.”
- 조정제 선생의 중에서 -
장관’이라는 직함이 주는 권위에 눌려 꾹꾹 힘주어 누른 전화 너머로 적당한 여백과 편안함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순간, 긴장이 풀려버려 녹음기도 여유분의 필름도 챙기지 못한 채 서둘러 길을 나섰다.
성남과 광주의 경계, 그 곳에서 우리는 첫 대면을 했다. 서울서 찾아오는 객이 행여나 길을 잃을까 넓은 길까지만 일러주고 직접 마중나온 것이다. 목소리만큼이나 넉넉한 웃음.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겨울의 나른한 태양 속에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안팎의 경계가 무너진다.
부부, 함께 사는 즐거움
작은 산 중턱에 집 한 채 외로이 서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전원주택지로 조성된 단지, 그 최정상에 자리했다. 경사지를 집터로 닦아낸 탓에 집으로 향하는 길은 아슬아슬했고 전날 내린 눈으로 그의 ‘누비라’는 사력을 다하고 있건만, 정작 그는 태연했다.
“겨울이 되면 스노우체인을 맸다 풀었다 하는 것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예요. 아내가 보통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는데, 겨울이 되면 위험하기도 하고 해서, 요 앞까지만 나오게 해요.”
그 말을 증명이나 하듯 대문을 코앞에 두고 누비라 바퀴가 공회전 한다. 다소 소란스러운 차 소리에 문이 열리고 그의 아내가 말간 얼굴을 내민다. 차분한 목소리와 환한 웃음. 30여년을 함께 보낸 노부부의 모습이 닮은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건만, 뭔가 경건해지는 마음이다.
현관을 열자 집안의 온기와 함께 부드러운 태양광이 머리 위로 몰려든다. 그들만의 내밀한 세계가 시작됐다.
집, 아들의 사랑
애초 전원생활은 조정제 선생만의 바람이었다. 늘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적절한 위치의 빈 땅을 보면 마음 설레었다. 그러나 도시생활에 익숙해진데다가 대개 전원생활이란 안주인의 잔손이 많이 필요하므로 아내는 남편의 바람에 부응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 서울의 자택에서 텃밭을 가꾸며 아내는 비로소 ‘흙 맛’을 알게 되고, 선생의 오랜 공직생활이 일단락되면서 전원생활은 구체화됐다.
3년 전 이 곳에 왔을 때 선생은 주변 산세와 풍광에 매료됐으나, 아내는 그 공허로움이 버거웠는지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선생 역시 280평으로 분양된 대지면적이 부담스러워 늘 갈망했던 전원생활은 다시 안개 속에 묻히는 듯했다. 그런데 운명일까. 마침 누군가가 그 땅의 반을 나누어 매입했고, 아내는 땅에 관한 길몽을 꾸었다.
일단 마음이 정해지니 일은 착착 진행됐다. 집은 시카고에서 건축설계를 하는 큰아들이 직접 설계했다. 풍수지리를 설계 컨셉으로 아버지의 사주(四柱)에 수(水)가 없는 것을 고려, 현관을 북쪽으로 내고 마당으로 이어지는 축의 종결지에 작은 연못을 두었다.
벽돌로 둥글게 쌓아 올려 수직성을 강조한 현관부는 복도로 나뉜 매스(mass)를 연결하면서 수직·수평의 동선이 모이고, 하늘의 기를 받아들이는 인상적인 공간이다. 이어진 복도를 따라가면 안마당을 마주보고 아일랜드식 주방이 자리하는데, 이는 주방에서 장시간을 보낼 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세심한 배려다.
이렇듯 아들이 성심(誠心)으로 설계한 집이라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집을 대하는 부부의 마음은 더욱 애틋하다. 어느 한 구석도 의미가 없는 곳이 없고,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행복, 일상의 여유
기도로 시작하는 아침. 조급할 것도 소란할 것도 없는 여유로운 아침 풍경은 이제 이들에게 일상이 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뜨면 각자 기도를 드리고, 간단한 아침식사 후 아내와 남편은 길을 나선다. 대개는 서울시립대의 연구실로 향하지만, 정부종합청사나 종로로 향할 때도 있다.
어디를 가던 인근 서현역이나 버스정류장까지만 가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으니 좋다. ‘키스 앤 라이드(kiss and ride)’. 인근 지하철역에서 이들은 따뜻한 미소로 키스를 대신하고 안타까운(?) 이별을 한다. ‘반 백수’라 자칭하지만 거의 매일, 그것도 꽤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도 선생은 굳이 대중교통을 고집한다.
“시립대에 갈 적에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데, 그 동안 무조건 자요. 아주 편하고 좋지요. 그러고 학교엘 가면 학생들이 노는 모습이 예뻐서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또 교수식당의 밥이 2,200원이고, 커피가 한잔에 100원인데……. 요즘 너무 행복해요.”
집에서도 팩스로 정부정책평가위원회의 보고서들을 처리하는 걸 보면 말처럼 여유로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고, 100원 짜리 커피에 행복을 찾는 그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여유를 즐기는 것에 익숙해야 하는데, 아직은 초조함이 좀 남아있어요. 마음을 비워야 되는데, 놓을 것이 많은데, 아직은 멀었어요. 원불교에 ‘유(有)와 무(無)는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말이 있어요.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입니다.”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진정한 공(空)에 이르고, 그것이 곧 묘유(妙有), 평안으로 채워진 만족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비우면 오히려 가득 차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 명료한 가르침에 순종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그러나 선생은 기꺼이 그 가르침을 따르려 한다. 솔직하게 자신의 미숙(未熟)을 밝히고 그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에 묘유(妙有)가 스민다.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삶이 보인다. 田
■ 글·사진 이민선 기자
■ 프로필
조정제. 1939년생. 전 해양수산부 장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캔사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기획원, 국토개발연구원,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 해양수산개발원장 등 이 나라 땅과 바다에 얽힌 그의 이력은 A4 두 장을 족히 채운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행정학과 초빙교수와 정부정책평가위원회 위원장, 아프리카 어린이 돕는 모임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3년 전 경기도 광주 불곡산 중산간에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아내와 둘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등의 전문 서적 이외에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소재와 깊이있는 주제로 국토·도시·해양에 대해 이야기한 , 생활에서 느낀 이야기를 엮은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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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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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행복한 울타리 ‘민들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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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군 광릉 숲 인근에 자리잡은 전원카페 ‘민들레울’은 서울에 있는 전통 한옥을 옮겨와 그대로 재현했다. 본채와 별채를 합쳐 70평인 한옥 2동과 20평 남짓한 초가집으로 구성됐다. 본래 방씨 문중 산이었던 4천여 평의 부지 일부에 돌을 쌓고 성토(盛土)하여 한옥을 얹혔다. 한옥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혹은 나무못을 사용하거나 조립으로 건축을 완성하기 때문에 흙을 털어 내고 골조를 분리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
43번 국도를 따라오다 포천에 이르면 축석 검문소에서 우회전하세요. 이 길을 따라가면 광릉수목원을 만나게 되는데 울창한 침엽수림 사잇길로 10분 정도 더 달리다 보면 직동리라는 마을이 있어요. 마을 앞, 슈퍼에서 기다리시면 곧 나갈게요.”
자연을 닮은 공간 민들레울로 가는 길, 직동리에서 카페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본래 이곳은 포천군 외소면 지역에 포함된 곧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고든골, 또는 직골이가 직동으로 불리게 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배나무골, 비득재, 새말, 안말을 병합하여 직동리라 하고 소흘읍에 편입시켰다.
광릉 숲 인근에 위치한 카페 ‘민들레울’은 7년 전, 서울에 있는 전통 한옥을 옮겨와 그대로 재현했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토속음식과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두 달 남짓 카페 운영을 맡아온 새내기 카페지기 방인모 씨가 온화한 미소로 객을 맞는다.
직동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던 방 씨는 8대째 이곳에 뿌리내리고 생활하는 전통가족의 일원이다. 갓 서른을 넘긴 젊은 나이기에 전원생활의 계기를 묻자, 그는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15년 정도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카페는 본채와 별채를 합쳐 70평인 한옥 2동과 20평 남짓 초가집으로 구성됐다. 본래 방씨 문중 산이었던 4천여 평의 부지 일부에 축석을 쌓고 성토하여 한옥을 얹혔다. 한옥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혹은 나무못을 사용하거나 조립으로 건축을 완성하기 때문에 흙을 털어 내고 골조를 분리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
민들레울은 기존의 대청을 늘리면서 고주를 하나 없애고 대들보를 하나 더 들였다. 문설주가 있는 것은 문틀과 함께 그대로 사용했고 벽은 황토를 바른 뒤, 한지로 마감해 전통이 묻어나는 집으로 재탄생 시켰다.
곳곳에는 예스러운 물건들이 눈길을 끈다. 아궁이와 망태, ‘뒷간’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만나는 전통 화장실이 그것들이다. 현재 방 씨가 거주하고 있는 별관은 구들을 들인 맞배집 양식의 작은 기와집이다.
초저녁이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불을 지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온돌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정신을 깨우는 것만이 밥이다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자신이 직접 염색한 옷을 가지런히 걸치고 바쁜 걸음을 여유롭게 재촉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가온 박범남 씨다.
방 씨와 함께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카페의 운영을 맡아온 가온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도시의 일상이 싫어 산으로, 숲으로, 계곡으로 보금자리를 옮겨다니다 몇 해전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그는 “정신을 깨우는 것만이 밥이다”라며 민들레울의 밥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설명했다.
민들레울에서는 올바른 먹거리 문화를 위해 자연식을 선도하며 가공원료, 인공 조미료, 화학 식품 첨가물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 친화적인 삶을 실천하며 국내 자연산으로 강원도 현지에서 채취한 산채와 버섯을 밥상에 올린다.
또한 음식 하나하나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조리됐는지의 설명도 함께 곁들여 내놓는다. 산마늘, 고비나물, 곰취, 더덕취, 단풍취 등 이름조차 흔치 않은 고소한 나물과 귀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향긋한 솔잎 차로 소화를 도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택견, 무예 등을 배울 수 있는 밝달 무예원과 생태체험,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민들레 자연학교를 추진·운영 중이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자연의 선물
해발 300미터의 그곳에는 밤이 일찍 찾아온다. “조금만 기다리면 앞산에서 보름달이 뜬다”며 설레어 하는 주인은 망원경까지 손에 쥐어준다.
부드러운 능선의 죽엽산을 마주하고 있는 카페에서 문을 열고 기다리니 산등성이를 타고 달이 뜨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구름 속에 수줍게 얼굴을 내민 밝고 둥근 달을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띄우고 이웃집 개도 거들며 꼬리를 흔든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자연이 선물하는 끊임없는 혜택. 가온은 “자연은 남아있는 가장 훌륭한 교과서”라고 설명한다.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얻고 항상 감사하는 자세만이 마음과 정신을 살찌우게 한단다.
일곱 시간 가까이 그곳에 머물며 닮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바로 이것이다. 전원으로의 결심과 실천, 즐길 수 있는 자세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구운 은행을 손에 쥐어주는 친절까지 차곡차곡 접어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는데 매서운 칼바람쯤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 아마도 정신을 깨우는 밥을 선물 받고 자연의 가르침을 배운 까닭이리라.
자연을 가장 큰 스승이라 믿는 이들의 마음과 함께 바람에 몸을 싣고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민들레울’이 사랑 가득한 전통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田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
·건축형태 : 전통 한옥
·부지면적 : 4000평
·건축면적 : 70평(본관+별관), 20평(사랑채)
·외벽마감 : 황토
·내벽마감 : 황토, 한지
·지붕마감 : 돌기와
·바닥마감 : 온돌마루
■ 홈페이지 www.민들레울.com, (031-543-0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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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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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경관 주택 우수작 지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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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반공사는 2003년 8월10일부터 9월19일까지 현상 공모한 농촌경관주택 표준설계도 입상작을 발표했다. 서울시립대 최찬환 교수 등 10여 명이 심사해 최종 결정한 입상작은 우수상에 WITH 건축사 사무소 이기원 외 2인의 '회복'등 3작품, 입선에 '강산애'등 3작품, 장려상 1점으로 총 7작품이다. 심사를 맡았던 최찬환 교수는 "이번에 우수상에 채택된 작품들은 대부분 농촌지역의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며, 특히 "작품 '회복'의 경우 한국의 전통적인 공간구성을 적절하게 현대적으로 도입한 부분이 돋보이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 우수상으로 채택했다"고 심사의견을 밝혔다. 농업기반공사는 전원주택을 짓고자 하는 사람이 손쉽게 설계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이 수상작들을 바탕으로 올 5월 농촌경관주택 표준설계도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다. 본지에는 7작품 중 우수상을 받은 3작품을 싣는다.'켜'의 회복을 위한 'T' 형 주거의 제안 回회復복이기원, 오영호, 권대원 (WITH 건축사 사무소)■ 설계개요대지위치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246,246-1대지면적 : 2,354 ㎡ (농지전용면적 : 488 ㎡ (148평))용 도 : 단 독 주 택건축면적 : 135.33㎡ (40.94평)연 면 적 : 135.33㎡ (40.94평)건 폐 율 : 27.73%용 적 율 : 27.73%규 모 : 지상 1층주요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목조주차대수 : 2대 (법정 1대)최고높이 : 3.9m■ 설계컨셉 - 자연경관과 삶의 접목70년대 농촌 근대화 과정 속에서 대량 생산된 새마을주택은 현재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관이 되었다. 외부적 접근과 개발의 결과로, 우리는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꼭 그것은 아닌, 우리에게는 생소한 마을의 경관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에서 그 이전에 있었을 마을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며 과거 농가와 연결되는 그 무엇을 느끼지 못한다. 회복 - '켜'는 이러한 어색함을 바로 잡아 우리의 농촌 경관을 살리자는 데에서 나왔다. 전통가옥 이미지를 가져와 자연경관과 삶이 접목되어 있는 우리 본연의 경관의 의미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농촌 그리고 생활, 아름다움박상현, 이창호, 김미희 (선원대 건축학과)■ 설계개요대지면적 : 126.5평건축면적 : 42.75평본채 건축면적 : 37.77평부속채 건축면적 : 부속채 1 - 2.41평, 부속채 2 - 2.57평구 조 : 경량기포콘크리트블럭(ALC) 조적조, 목조규 모 : 지상 1층주차대수 : 1대가족유형 : 60대 부부 한쌍, 30대 부부 한쌍, 자녀 2명■ 설계컨셉 - 전통과 현대공간의 조화현대적이고 개성적인 Life Style을 담아내는 주거 형태가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농촌주택은 농촌주택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필연적이고 기본적인 특성을 무시한 채 쾌적성 위주의 도시형 주택을 모방하고 있다. 농촌마을이 사회를 반영하듯이 농촌주택은 농촌주민의 생활을 반영하는 삶의 공간이자 그릇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통적 공간 및 현대적 공간을 조화시켜 농촌생활 및 자연환경에 합당하고, 경제적인 공간을 창출하여 농촌이 지니고 있는 지형적이고 환경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가족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농촌주택을 제안해 본다. 마실 가는 길 신용호, 정병문, 이주석 (경북대 건축학부)■ 설계개요대 지 : 통과 도로 4m 임의로 도로를 중심으로 건물군 배치대지면적 : 399㎡ (121평)건축면적 : 126㎡ (38.1평)건 폐 율 : 31.5%건물용도 : 주거동 1동, 부속채 1동구 조 : 주거동 (조적조), 부속채 (철골구조)■ 설계컨셉 - 열려있는 농촌마을농촌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웃간의 Community와 상부상조 정신일 것이다. 이런 농촌 생활의 기능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주거간의 연결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길을 시작으로 각 주거의 개인공간까지 원활한 소통, 즉 열려있는 주거공간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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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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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기술발전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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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옥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 가옥이 있는 전원의 풍경은 그 지역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신토불이 재료를 사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운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 글 싣는 순서
1. 집, 문화로서 과거 이해하기
-과연 전통은 존재하는가
2. 집은 문화 유기체다
3. 자연환경과 집
4. 기술 발전과 집
5. 사회환경과 집
6. 생활과 집
7. 사고변화와 집
8. 사람과 집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떠한 색으로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地平)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색상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지금의 건축 환경은 과거하고 전혀 다르다.
옛날의 집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색상에서도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으로 지역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건축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옥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 가옥이 있는 전원(田園)의 풍경은 그 지역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재료를 사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운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尺度)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건축에서 기술의 발전이란 새로운 가능성의 창출을 뜻한다. 현대건축의 다양함은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역사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이 다양함을 만끽하게 됐고, 집에도 숱한 변화가 있었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새로이 나타난 현상은 대량생산에 의한 대단위 주거 단지의 개발, 집 형태의 다양화, 보온재 및 냉난방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내 환경의 변화 등 건축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건축에 미친 영향을 분야 별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재료를 만들려면 먼저 관련된 분야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새로운 재료가 개발됐다는 것은 주변의 상황이 이미 성숙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건축에서 어떠한 현상이 부각됐을 때는 그에 연관된 분야가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다.
하지만 그 같은 유기적 관계를 모두 언급하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상황을 단순화시켜 재료와 구조 역학(構造力學), 공법 및 도구, 설비 기술, 기술과 의식 변화 등의 분야로 나누어 그 변화가 집의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변화했는지 살펴보자.
집은 재료와 구조에 따라 변한다
기술의 발전 중에서 집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구조(역학)의 발전이다. 현대 건축에서 중요한 발명을 세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 엘리베이터다. 이 세 가지 발명은 현대 건축의 흐름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았다.
건축의 3대 발명품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고층건물이나 기둥 간격이 넓은 건물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1880년 독일의 지멘스사가 발명한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현재의 고층 빌딩은 존재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나라 주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주거 양식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집의 내부 구조도 변화시켰다. 집에서 방의 크기는 기둥 사이의 거리에 따라 결정되고, 그 거리에 따라 기둥, 보 등의 크기가 달라진다. 기둥 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보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커지기 때문에, 기둥 사이의 거리를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목재는 철근콘크리트보다 힘에 견디는 능력이 약하므로 기둥 사이의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매우 굵은 목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한꺼번에 해소해 주었다. 목재보다 하중에 견디는 힘이 강하므로 보의 크기가 작아도 기둥 사이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 같으면 궁궐이나 절 같은 특별한 건물에서나 가능했던 넓은 집을 일반인들도 쉽게 지을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단순히 재료의 개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료와 함께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역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구조역학이 발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압축력에 강함)와 철(인장력에 강함)의 장점(콘크리트와 철근의 열팽창계수는 거의 같음)을 살려서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발명했다. 철근콘크리트가 개발된 뒤에는 구조역학의 도움을 받아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켰다. 30년 전만 해도 철근콘크리트의 기둥 사이 거리는 6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최근에는 콘크리트 및 철근의 강도를 늘려서 기둥 사이 거리를 12미터 이상으로 늘렸고, 특수 공법을 활용하면 그 이상의 거리도 가능하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사고를 확장시켜 새로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여 대규모의 건물이 속속 들어서게 됐다.
콘크리트가 만들어 낸 회색 도시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발전은 기술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예전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미감도 만들어 냈다.
우리는 ‘회색 도시’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듣는다. 이러한 신조어(新造語)가 나온 것은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켜 집을 지음으로써 도시 전체가 회색빛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회색 도시’는 콘크리트의 발명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단어다.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경이감은 그 색상에도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근대 건축가들은 구조재로 개발한 콘크리트의 구조적 특성뿐만 아니라 감각적 특성까지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콘크리트가 외부로 노출되도록 설계한 건물이 많이 나타났다.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로 도시의 색깔이 변해 회색빛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러한 회색 이미지는 도시가 안고 있는 모순과 중첩돼 ‘회색 도시’라는 신조어로 정착됐다. 부정적으로 비치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콘크리트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형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소성(可塑性)과 특유의 냉랭하고 우울한(Melancholy) 분위기 때문에 지금도 콘크리트에 매료된 건축가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창의 개념을 바꾼 유리
기술의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집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유리 제조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서 창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전에는 창이 일정 크기 이상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유리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의 크기를 무한으로 확장시켜 놓았다. 나아가 유리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유리의 발전은 채광 문제에서 과거하고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예전의 집은 채광 면적의 한계 때문에 어두웠다. 그러나 유리 제조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어두운 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과거에 창을 크게 내지 못한 것은 단지 유리 제조 기술상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유리는 열전도율(熱傳導率)이 매우 높은 반면 창문의 기밀성이 낮아, 창의 면적을 넓게 할수록 추위에 견디기 힘들다. 이러한 문제도 단열 성능이 높은 복층유리의 개발과 창틀의 단열성과 기밀성을 높여서 대부분 해결했다.
이렇게 발전한 유리는 실내를 밝게 하고 조망권 확보를 위해 창문을 점점 크게 하는 방향으로 집을 변화시켰다. 창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외관(外觀)의 변화를 뜻하며, 결국은 집 전체의 이미지를 바꾼다. 현재 개념의 창으로는 과거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비례를 찾기 힘들다. 이처럼 달라지는 재료는 집의 개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색상의 혁명
구조적인 재료의 개발과 성격을 달리하지만 도료(途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료의 발달은 색상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집에 갖가지 색을 입혔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절, 관아 등 공적인 건물과 사가(私家)의 사당에서만 단청(丹靑)이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단청을 입히지 못하게 규제한 것은 근검 생활을 장려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재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화백자에서 청색을 내는 데 사용하는 코발트(Cobalt)는 수입해 썼는데 가격이 금보다 비쌌다고 한다.
그리고 단청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하지 못했다. 어쨌든 예전에는 집에 색을 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 가운데 경제적인 문제는 기술 개발로 쉽게 해결됐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떠한 색으로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地平)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색상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지금의 건축 환경은 과거하고 전혀 다르다. 옛날의 집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색상에서도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으로 지역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건축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망권을 가져다 준 펌프와 엘리베이터
설비 기술의 발전이 집에 미친 영향 가운데서 한 가지만 살펴보자.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주인은 대부분 2층에 거주하고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높은 곳에서 살았다.
아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급수 설비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펌프(Pump)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래층에서 물을 날라다 썼다. 목욕을 할 때도 물을 욕조에 부어 사용하고, 끝난 뒤에는 일일이 날라다 버렸다. 따라서 오르내리기 힘든 높은 곳에 산다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도로하고 바로 접하지 않으면서도 생활의 불편이 덜한 2층에서 거주하는 것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펌프와 엘리베이터가 발명됨으로써 그때까지의 불편은 사라졌고, 전망 확보와 프라이버시(Privacy) 보호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 부자들은 보다 높은 곳에 살게 된 것이다. 요즈음 서울에 많이 지어지는 고층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그러한 예이다. 田
■ 글·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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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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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방식 목구조 황토집 짓는 순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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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우리의 전통 주거인 흙집을 널리 보급하는 일에 매진해 왔다. 여기에서는 전통방식을 접목시킨 목구조 황토집과 현대식주거 모양을 접목시켜 만든 목구조 황토집을 건축주가 손수 따라 지을 수 있도록 그 순서와 방법을 소개했다. 실제 도목수가 집을 짓는 전과정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으니 잘 따라 짓기 바란다.
■ 글 싣는 순서
1. 집짓기 전에
2. 황토집 짓는 순서
3. 사진과 함께 보는 황토집 짓기 기술
3) 전통방식 목구조 황토집 짓는 순서
- 터잡기 및 가재목 준비, 터닦기
- 정화조공사 및 지하수 개발
- 주초 놓기 및 기둥 세우기
- 기둥머리 짜 맞추기 및 보와 도리 걸치기
- 상량 및 지붕틀 만들기
- 서까래 걸기 및 앙토(알매) 덮기
- 방수처리 및 지붕이기
- 벽쌓기(심벽치기 및 황토벽돌 조적)
- 설비공사 및 난방공사
- 창호공사
- 부엌 및 욕실 공사
- 장판 및 벽지 바르기
- 축담 및 담장(울타리) 쌓기
- 대문 달기 및 방범시설
- 텃밭만들기
기둥머리 짜 맞추기 및 보와 도리 걸치기
기둥머리에는 지붕의 하중을 담당하는 대들보와 서까래를 떠받치는 보와 도리가 얹혀진다. 이들이 서로 강하게 맞물려 맞춰져야만 집이 비바람에 쏠리거나 뒤틀리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둥머리 맞춤 기술은 목수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기둥머리 짜 맞춤 기술 가운데 일반적이면서도 고급기술은 지난달에 언급한 사개맞춤이다. 사개맞춤은 기둥머리에 네 개의 화살가지(【그림】 참조)를 만들어 보와 도리가 걸쳐지도록 파내는 기술을 말한다. 이때 보아지가 들어가는 기둥의 높이는 보아지 높이까지 포함하여 계산한다.
보아지는 보와 도리의 하중을 분산시키며 기둥의 안정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 넣는 부장품이다. 보 머리보다 5∼10㎝가량 짧아야 모양이 난다. 만들어 넣을 때는 반드시 화살가지 길이가 보아지가 끼워지는 높이에서 보와 도리의 두께만큼 더 길어져야 한다.
물론 전통 한옥방식에서 주두(柱枓 : 대접받침, 기둥 위를 장식하며 공포를 받치는 넓적하고 네모진 나무)를 만들어 올리는 기둥머리는 화살가지를 길게 할 필요가 없다. 또한 현대식 평면을 접목시킨 한옥방식에서는 반드시 주두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리고 보아지 위에 올려지는 도리 중 양쪽으로 걸쳐지는 도리는 주먹장(주먹처럼 끝이 넓고 안으로 갈수록 좁게 된 장부)을 만들어 끼워 넣어야 한다. 그러므로 안 기둥의 화살가지를 만들 때는 도리의 주먹장 모양으로 각을 주어 켜내야 하며, 갓 기둥 위에 올려지는 보와 도리는 반턱으로 맞물리도록 화살가지를 일자 모양으로 켜내야 한다.
한편 화살가지의 굵기는 보통 기둥 직경의 4분의 1 크기로 만든다. 과거에는 일일이 끌질을 하여 만들었지만 요즘에는 전기 원형 톱과 드릴 등의 전동공구를 사용해 쉽게 만든다. 물론 10년 이상 숙련된 목수라면 전기 체인 톱이나 엔진 톱을 사용하면 기둥에 먹 메김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루에 기둥머리 20개 이상을 다듬을 수도 있다.
보와 도리를 다듬을 때는 먼저 보는 기둥보다 1.5배 가량 더 굵은 것을 사용하고, 도리는 기둥의 굵기와 같은 규격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보 머리는 기둥머리 바깥 면에서 15∼20㎝정도 빼내고, 반드시 나무 밑동 쪽을 사용한다. 갓 기둥에 도리와 결합되는 보는 도리와 반턱으로 짜 맞추어야 한다.
가운데 기둥 위에 올려지는 보는 기둥머리 위에 일자로 그 머리만 빼내면 된다. 이때 보가 내민 부분이 화살가지 속으로 들어가도록 파낸 홈을 ‘숭어 턱’이라고 부른다.
보를 먼저 건 다음에는 도리를 짜 맞춘다. 이때도 갓 기둥 위에 올려지는 도리는 보 머리와 같이 15∼20㎝정도 도리 머리를 만들어 보와 반턱(+자 모양)으로 짜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기둥 양쪽으로 걸쳐지는 도리는 주먹 모양으로 된 촉을 만들어 기둥머리(화살가지)의 주먹장부에 끼워 넣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먹장의 목 부분은 기둥 직경의 4분의 2 크기로 만드는 것이 적당하다.
※목구조 공사 시 뼈대 짜 맞추기 순서는 기둥 세우기, 보와 도리 걸치기, 동자주 세우기, 중도리 또는 종도리(상량) 올리기, 추녀(귀 서까래) 및 서까래 걸기, 인방 및 문설주 설치하기 순으로 조립한다.
상량 및 지붕틀 만들기
기둥 세우기와 보와 도리 걸기를 마치면 동자주를 세우고 종도리를 올리게 된다. 이날을 상량식(새 집의 가신(家神) 중 수장신인 성주신(聖主神)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이라 하여 건축주는 손 없는 좋은 날과 시(時)를 받아 음식(돼지머리, 백설기 시루떡, 과일, 돈, 팥, 쌀, 소금, 마른명태, 막걸리, 흰 타래실, 광목, 양초, 향 등)을 장만해 고사를 지낸다.
이날의 고사는 건축주가 깨끗한 옷차림으로 엄숙한 자세를 가다듬고 직접 종도리에 상량문(예: 龍 ○年○月○日○時 立柱上樑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龜)을 쓴 뒤 집 중앙(종도리가 올라갈 위치)에 종도리를 모셔다 놓고 그 앞에 준비한 음식을 차리고 2배 또는 3배를 한다(지방에 따라 절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이때 성주신께 새 집을 짓고 자손 대대로 가문의 부귀와 안녕을 염원한다. 다음으로 아들 손자 등 가족친지들이 차례로 절을 하고 음복을 마치면 잔술과 팥, 소금을 집 주변(四方)의 잡신들에게 선고하면 상량의식이 끝이 난다. 상량식이 모두 끝나고 나면 돈과 광목, 명태, 실, 쌀(쌀은 종이봉지나 광목으로 만든 작은 자루에 넣음)을 광목으로 종도리에 메달아 정해진 시간에 종도리를 올리게 된다.
종도리는 서까래를 걸치기 전, 지붕의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공정이다. 먼저 지붕의 모양은 초가집에서 흔히 지어진 우진각 지붕과 기와집에서 지어진 합각 지붕 또는 맞배지붕이 있는데 황토집에는 아무래도 우진각 지붕이 잘 어울릴 것이다.
지붕의 모양에 앞서 그 형태를 보면 맞걸이 삼량집과 사량집, 긴보 오량집의 형태가 있다. 따라서 일자 홑 집일 때는 삼량집이 어울리지만, 겹집일 때는 아무래도 평사량집과 오량집이 더 잘 어울린다. 특히 육송의 긴 서까래 구입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사량집과 오량집의 지붕 형태가 서까래 걸치기에 편리하다.
삼량집과 오량집의 지붕틀 만들기 기술을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먼저 오량집의 처마도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걸쳐서 전후 측면 네 변을 다 돌리지만 중도리와 종도리는 측면으로 걸치지 않고 대들보의 양쪽을 각각 4등분해 전후로 동자주를 세워 중도리를 얹는다. 그리고 그 위에 보를 걸쳐 중앙에 대공을 세워 종도리(마룻대)를 걸치면 오량집의 지붕틀이 만들어진다. 삼량집은 중도리를 걸치지 않고 대들보 중앙에 곧바로 동자주를 세워 종도리(마룻대)를 걸치면 된다.
동자주의 높이(3자∼4자)에 따라 지붕의 물매(경사도)가 정해지는데, 물매가 뜨면(완경사) 처마 끝이 들리므로 방안이 밝아지고 물매가 싸면(급경사) 처마 끝이 숙여지므로 방이 어두워지므로 동자주의 높이 조절을 잘해야 한다. 田
■ 글 윤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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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