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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자연환경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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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 지붕과 벽, 난방시설 등이 자연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나타낸다. 지붕의 경사나 처마가 나온 정도는 강수량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결정되고, 벽은 외기로부터 실내를 보호하기 위해 두께, 창문의 크기 등이 결정된다. 또한 난방시설은 추위에 견디기 위해 필수로 설치하는 것인데, 열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취사와 난방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화로와 난로, 벽난로 그리고 우리의 온돌 등과 같이 난방 방식에 따라 집의 구조가 결정된다.
■ 글 싣는 순서
1. 집, 문화로서 과거 이해하기
-과연 전통은 존재하는가
2. 집은 문화 유기체다
3. 자연환경과 집
4. 기술 발전과 집
5. 사회환경과 집
6. 생활과 집
7. 사고변화와 집
8. 사람과 집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기능적인 것을 해결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적인 내용은 줄어들고 대신 의미론적인 요소가 덧붙여졌다. 그 변화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과거의 유물을 기능적인 면은 도외시한 채 의미론적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연환경은 모든 문화의 출발점이다. 문화는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자연환경이 달라지면 문화의 발전 방향도 바뀐다. 바닷가에서 살던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얻기에 바다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산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낸다. 곰과 호랑이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곰과 호랑이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상어나 고래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상어나 고래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 그런가 하면 바다에서 배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은 일찍 바다를 이용해 다른 문화와 접촉했을 것이고, 육지의 사람들은 말이나 기타 운송 수단을 이용해 다른 문화와 접촉했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환경은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생활과 문화 환경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연환경과 경제가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먹을 것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급자족이 이루어졌기에 다른 종족과 교역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땅이 척박한 곳에서는 교역을 통해 물자를 조달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전쟁을 일으켜 다른 부족의 것을 취하거나 일찍부터 상업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비교만으로도 문화가 결국 자연환경에서 비롯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집 역시 문화를 이루는 한 갈래라고 보았을 때 자연환경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집은 자연환경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각 지역의 전통 가옥에서는 자연에 적응하는 모습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일본의 다다미를 보면 여름에 고온다습하고 겨울에 그리 춥지 않은 기후에 알맞은 구조라고 생각한다. 다다미 속에는 짚을 넣고 겉은 왕골 등으로 짠 돗자리로 감쌌다. 보온성이 뛰어나 그리 춥지 않은 곳에서는 다다미만 깔고도 지낼 만하다. 특히 여름에 습한 곳에서 좋은 촉감을 유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에는 바닥에 화문석 같은 깔개를 깔아 밑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눅눅함을 방지하고 있다. 따라서 다다미는 여름이 고온다습한 일본에 적당한 재료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한옥도 마찬가지다. 지역마다 집의 특징이 있는데, 철저하게 지역의 자연조건에 맞추어 발전했기 때문이다. 자연조건은 단순히 춥거나 더운 기후로 시작해 자연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자연으로 인한 재해를 어떻게 방어하는가의 문제까지를 포함한다.
한옥의 구석구석을 보면 자연에 어떻게 적응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에 적응한 대표적인 예는 기단, 기초, 온돌과 대청, 지붕과 처마, 굴뚝, 부엌 등이다. 자연에 적응하는 모습은 앞에 예로 든 집의 구성 요소들뿐만 아니라 건축 재료, 집의 형태, 평면 구조 등 집의 모든 요소에 골고루 나타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오히려 사회·문화적 요소가 더 강조된 것도 많다. 그러나 이런 부분도 출발점은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었으므로 먼저 자연환경의 요소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집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 지붕과 벽, 난방시설 등이 자연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나타낸다. 지붕의 경사나 처마가 나온 정도는 강수량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결정되고, 벽은 외기로부터 실내를 보호하기 위해 두께, 창문의 크기 등이 결정된다. 또한 난방시설은 추위에 견디기 위해 필수로 설치하는 것인데, 열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취사와 난방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화로와 난로, 벽난로 그리고 우리의 온돌 등과 같이 난방 방식에 따라 집의 구조가 결정된다.
자연을 품은 한옥
온돌, 한국 문화의 원류
온돌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한 단어다. 이미 여러 책에서도 상세하게 소개했기에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설명은 생략하고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언제부터 온돌이 완전하게 자리 잡았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난방의 효율에 대한 문제이고, 셋째는 온돌과 부엌 구조와의 상관관계다. 넷째는 온돌이 한옥의 2층 구조에 끼친 영향, 마지막으로 온돌이 우리 생활 문화와 정서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다.
우선 온돌이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난방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오해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온돌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우리보다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닥 난방만을 하는데 비해 로마 시대의 온돌은 벽에도 난방을 하고 있다. 이것은 집을 짓는 재료가 우리와 달랐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는 벽돌이나 돌로 집을 지어 벽을 이중으로 만들 수 있었기에 벽 사이로 열기를 보내 난방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난방 시스템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중세까지 명맥을 이어오다가 그 후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문화가 퇴보한 것이다. 문화란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에 쉽게 고유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무리다.
온돌의 전파 시기
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와서, 첫 번째로 언제부터 온돌이 우리의 대표적 난방 시스템이 되었는가를 살펴보자.
고구려의 쪽구들에서 시작된 온돌이 바닥 전체에 설치되는 것은 고려시대 중엽부터라고 한다. 학자에 따라 온돌의 전파시기에 대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영훈 씨의 견해로는 고려시대까지는 한강 이북까지 전파되었고,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는 문경새재까지 남하했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란을 전후해서 남부 해안 지방으로 전파됐다고 하며 제주도에는 17세기경에서야 전파됐다고 했다. 또한 온돌은 고구려에서 발달한 문화이므로 고구려의 영향이 강했던 영동 지방에서는 더 일찍 남하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어쨌든 온돌이 우리나라 전체에 완전히 정착하는 것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16세기에 이르러서다.
온돌의 전파시기에 대한 간접 증거는 사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 시설도 건축물이므로 당대의 생활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온돌의 전파는 생활이 좌식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조 1430년(세종 12년) 전라남도 강진에 세워진 무위사 극락전(국보 13호)을 보면 바닥 마감이 전(塼)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마루 바닥은 후대에 다시 설치한 것이다. 전으로 바닥을 마감했다는 것은 그 당시 전라남도 지역에서 좌식 생활이 일반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처럼 전으로 바닥을 마감한 것은 불교 의식상의 문제도 있지만 사찰 건축도 생활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15세기 초만 해도 전라남도 지방까지는 온돌이 일반화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새로운 변화가 온전하게 자리 잡으려면 오랫동안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주거 방식으로 완전하게 자리 잡은 아파트도 온돌이 바닥 난방으로 완전히 정착한 것은 1980년대 중반으로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초기의 아파트는 방만 바닥 난방이었고 기타의 부엌, 화장실 등은 라디에이터를 사용한 온수난방이었다. 이러한 혼합 난방 방식에서 전체를 온돌로 바꾸기까지는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하나의 새로운 체계가 정착하기에는 난관이 있어 우리의 것으로 삼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고유 전통으로 생각하는 온돌도 고구려시대로부터 전국에 보급되는 데 1000여 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
온돌의 난방 효율
두 번째로 난방의 효율 문제를 살펴보자. 사람들은 옛날 집은 춥고 불편하여 살기 힘들다고 한다. 한옥에서 살면서 추운 겨울 코가 찡하게 시려 오는 외풍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많은 사람은 불편한 것은 놔두고라도 너무 추워 집으로써 가치가 없다는 듯 말한다. 그러면 과연 우리나라의 집만 유독 추워서 집 구실을 못했다는 이야기인지 또는 현대의 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춥다는 것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다른 나라의 집과 비교할 때 한옥이 특별히 추웠는가 하는 점이다. 정확하게 과학적 수치까지를 들먹이며 비교 검토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해 보자.
집이 따뜻하려면 우선 단열 성능을 확보해야 하고 다음으로 난방 연료를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구 여러 나라도 이러한 점에 만족해했던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다. 더욱이 단열이라는 개념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을 넘어서 이야기다.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사람이 지금처럼 따뜻한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단열 성능을 높이자면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때 단열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단열재와 기밀성이다. 목재와 흙을 주재로 심벽구조(心壁構造)로 만들어진 한옥은 단열 성능은 우수하나 상대적으로 기밀성이 많이 떨어진다. 그것은 창문과 문의 틈새, 벽의 틈새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결정된다. 심벽구조라는 한옥의 특징은 기밀성에서 매우 취약한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거의 해결되고 있다. 최근에 지어지는 한옥은 현대적 기술을 응용해 단열 성능과 기밀성을 대부분 해결했기에 결코 춥지 않다. 집의 따뜻함은 난방 연료를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가와 단열 성능을 얼마만큼 높일 수 있는가의 문제다. 따라서 특정한 양식을 지닌 한옥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밀성이 사람들에게 무조건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기가 움직이지 않고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인가는 따져 볼 문제다. ‘움직임과 흐름이 없는 공기는 고인 물처럼 깨끗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주 환기를 시키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약간은 춥지만 늘 맑은 공기가 실내에 흐른다면 흐르는 물처럼 우리에게 쾌적하고 맑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화석 연료의 남용으로 공기는 이제 맑지가 않다. 결국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따뜻함을 얻은 대신 쾌적함을 잃었다.
온돌과 부엌의 관계
세 번째로 살펴볼 문제는 온돌과 부엌의 관계다. 가끔 여성들이 한옥은 여성들을 힘들게 하려고 만든 집인 양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한옥에서 여성이 움직이는 동선만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집이라는 것이 맞는 말로 생각된다. 그러나 집을 단순히 여성의 움직임만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부엌의 문제는 자연환경에 맞춰서 집 구조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달린 문제다. 온돌을 들이려면 그 구조에 적합한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온돌은 불을 때는 아궁이와 방바닥 면이 최소한 3∼4자(약 90∼120cm) 정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궁이가 있는 부엌과 방은 당연히 높이가 다르다. 또한 부엌이 방과 붙게 된 것은 연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난방과 취사를 같이 해결하려는 지혜에서 생겨난 구조다. 난방이 필요 없는 지역에서는 취사를 위한 장소가 생활하는 집과 별도로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이전의 부엌은 건물과 관계없이 반빗간(찬간; 饌間) 형식의 별도 구조로 독립돼 있었다. 당시의 생활은 온돌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않아 난방과 취사가 별도로 이뤄졌던 것이다. 또한 온돌의 원조인 쪽구들은 걸터앉도록 돼 있어 주로 생활하는 건물의 바닥은 외부와 높이 차이가 없다. 이러한 집이 연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난방과 취사를 같이 해결하는 구조로 발전하면서 부엌이 건물에 붙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온돌의 구조 문제로 부엌과 방 사이에 높이 차이가 생긴 것이다. 그 변화는 몇 달 가까이 난방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 연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취사와 난방의 겸용이라는 선택은 매우 합리적인 결정인 것이다.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우리의 자연환경에서 난방의 효율을 위해 불편을 선택했던 것뿐이다.
부엌에 대한 다른 불만 가운데 하나는, 통풍이 너무 잘되어 겨울을 지나는 데 불편하다고 한다. 이 문제는 옛 살림을 맡아본 여인의 증언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겨울 추위보다는 음식이 쉬 상하는 여름나기가 더욱 힘들었다.”라고 한다. 여름에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통풍이 잘되는 부엌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부엌에서 불을 때기에 연기를 배출하려면 환기가 필수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로 부엌에 환기가 잘 되도록 한 것이다. 옛 한옥의 부엌을 현재도 사용하는 집에 가보면 창문을 대부분 유리 또는 비닐로 막아 놓고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있는 집은 취사 연료로 가스나 기름 등을 사용한다. 취사를 위한 연료와 도구가 바뀌면서 이제 아궁이의 활용도가 낮아져 예전과 같은 환기가 필요 없게 된 결과다. 결국 부엌의 구조 역시 생활 방식에 있어 자연환경의 조건에 따라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온돌은 2층 건물이 왜 없을까
네 번째로 온돌이 한옥의 2층 구조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자. 많은 사람은 한옥에는 왜 2층 건물이 없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옛 건물에 2층 이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로 누각의 건물과 성문 등이 2층 이상으로 구성돼 있다. 개인 집에서는 일반적으로는 2층 이상의 건물을 보기 힘들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2층 건물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살림집에 2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살림집으로 2층인 건물은 상주의 ‘양진당’(養眞堂), 경주의 ‘수봉정’(秀峯亭 ; 현재는 개조되어 단층임) 정도일 것이다. ‘화수루’(花樹樓 ; 경북 영덕)가 있지만 이곳은 살림집이 아니고 문중의 공부방으로 쓰인 재사(齋舍)다. 따라서 순수한 2층 건물은 양진당 정도가 맞을 것이다. 이렇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중층의 건물이 사라진 이유 중에 하나가 온돌의 보급이라고 생각한다.
온돌을 들인 상태에서 중층의 건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수루도 중층의 건물이고 2층에 온돌을 들였지만 온돌을 들인 아랫부분은 방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중층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2층에 온돌을 들이기 위해서는 1층의 층고가 높아야 하는데 온돌 자체가 돌과 흙으로 구성돼 있어 무게가 만만치 않아 목구조로 받치기에는 문제가 있다. 또한 불을 때는 것도 쉽지 않기에 2층 방을 온돌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온돌의 보급으로 2층 이상의 집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온돌이 우리네 생활에 끼친 영향
마지막으로 온돌이 우리의 생활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온돌의 선택은 우리의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입식 생활에서 좌식 생활로의 변화는 모든 면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생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이나 중국의 집을 보면 입식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집에서 생활하려면 갖가지 가구가 필요하다. 바닥에 앉을 수 없다 보니 의자가 필요하고 물건을 올려놓거나 손님을 대접할 그릇들을 놓기 위한 탁자도 있어야 한다. 또한 바닥에서는 잘 수 없으므로 침대를 들여놓는다. 이처럼 의자와 탁자, 침대 등은 입식 생활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구도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기에 이들에게는 이러한 가구들이 없다. 따라서 가구라는 것은 정착한 민족이 필요에 따라 만든 도구일 뿐이다.
집의 기능이 분화 발전함에 따라 그에 필요한 가구를 만들고, 가구가 어느 곳에 놓이는 가에 따라 방의 기능이 나뉜다. 손님을 맞이하는 곳에서는 탁자와 의자가 필요하고 잠을 자는 곳에서는 침대가 필요하다. 이렇기에 침대가 있는 곳은 잠을 자는 공간으로 인식해, 침실은 사람들에게 개인적 공간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부부 침실인 경우 그곳은 내실의 개념이 돼 함부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방의 기능 분화는 집의 규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구를 많이 들여놓는 경우 가구가 차지하는 면적과 그 주위로 사람들이 통행할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당연히 방이 커지게 된다.
이러한 생활에 비해 한옥에서는 침대가 비효율적이다. 바닥 전체를 난방하기 때문에 침대를 설치할 경우 설치되는 곳의 면적만큼 열이 낭비된다. 또한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바닥에 요만 깔고 자면 오히려 따뜻한 온기를 그대로 느끼게 되어 쾌적한 수면을 취할 수 있다. 온돌의 특성 때문에 열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잡다한 가구를 들이지 않는 구조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로 한옥에서는 가구보다는 벽장이 발전했다. 가구가 없는 한옥의 방은 보다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손님 접대, 식사, 취침, 오락 등 모든 생활에 필요한 기능이 한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서구의 방과는 전혀 다른 다목적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서양의 방은 그 목적에 따라 침실과 거실, 응접실, 식당, 서재 등으로 나뉘지만 한옥에서는 사용하는 사람 또는 위치에 따른 방의 명칭이 있을 따름이다. 사랑방과 안방, 건넌방, 문간방 윗방, 아랫방 등의 이름에서 보듯이 기능에 따른 구분은 없다.
온돌로 인해 일어나는 생활의 변화는 가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온돌에서는 예전과 같이 신을 신은 채 방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온돌이 설치된 방에서는 신을 신고 들어가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신을 신고 벗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이러한 불편이 하루에 수없이 일어나기에 신는 신발도 형태가 바뀌게 된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일상의 신은 발목까지 오는 장화와 같은 형태였다. 이러한 형태의 신은 기마 민족의 경우 거의 같다. 그러나 목이 긴 신발은 신고 벗는 데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을 타지 않는 경우 신발은 벗기 편한 형태로 변화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좌식 생활을 하면서 신발을 신고 벗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신발의 형태가 달라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습관은 일상의 예절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양에서는 아직도 실내에서 신을 벗는 것은 결례라고 한다. 이러한 예절이 생긴 것은 신을 자주 벗을 수 없어 신을 벗을 때 냄새가 심하게 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신을 벗는 것이 일상화되어 신고 있는 것을 오히려 불편하게 느낀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사무실에서도 별도의 실내화를 비치하고 근무하는 동안 신을 벗고 실내화를 신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온돌을 들인 뒤에 일어나는 변화의 극히 일부분이다. 온돌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 중 중요한 것은 정서의 변화다. 온돌 문화는 우리의 정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돌로 인한 가구와 같은 외형적 요소의 변화보다는 정서적 요소의 변화가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서의 변화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田
글 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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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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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에 대한 아름다움 앤틱 전문점 ‘킴스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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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틱은 ‘최소한 백 년 이상된 고(古)물건’을 뜻하며‘생활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활문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양질의 재질로 제작되고 디자인적 가치, 보존 상태 또한 좋고 희소가치가 있어야만 진정한 앤틱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킴스앤틱’ 대표 김병주 씨는 이십삼 년 간 앤틱 딜러 비즈니스로 쌓아 온 풍부한 경력과 예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앤틱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새롭게 발전하는 문화가 강할수록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깊어만 간다.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일명 ‘구제’라고 하는 헌 물건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낡고 헤진 운동화며 구멍난 청바지, 심지어는 색 바랜 가방까지도. 뿐만 아니라 가구, 인테리어 소품과 장식,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앤틱(Antique)은 어느새 우리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앤틱은 라틴어 ‘Antique’에서 유래된 최소한 ‘백 년 이상된 고(古)물건’을 뜻하며 ‘생활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활문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양질의 재질로 제작되고 디자인적 가치, 보존 상태 또한 좋고 희소가치가 있어야만 진정한 앤틱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킴스앤틱’ 대표 김병주 씨는 이십삼 년 간 앤틱 딜러 비즈니스로 쌓아 온 풍부한 경력과 예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앤틱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킴스앤틱은 동·서양의 앤틱가구와 고미술, 고석재, 특수 주문가구를 판매하고 있으며 데코까지 담당해 주고 있다.
앤틱은 크게 가구와 도자기, 은제품, 유리제품으로 구분한다. 세련된 곡선의 조화와 중후함이 돋보이는 유럽 앤틱 가구,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원색의 황실 스타일로 만인을 압도하는 중국 앤틱 가구,
적당히 절제하며 소박하게 표현하여 여유을 느끼게 하는 한국의 고가구 등 다양한 전시실도 마련돼 있다.
매장을 찾는 이들은 내국인이 60%, 외국인이 40%정도 된다. 100여 평의 전시실이 3개로 나뉘어 각각의 테마에 맞는 관람이 가능하다.
앤틱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일을 이해하는 것만도 쉽지 않다. 가구의 목재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져 오크시대, 윌넛 시대, 마호가니 시대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최근 전원주택과 펜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앤틱 문화를 선호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옛 것(Antique)을 사랑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머무름이 아니요, 미래로 향하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앤틱 사랑은 예술’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오래 사용할수록 고풍미를 더하는 앤틱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뀌어 마니아 층까지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의 정이 넘치는 펜션, 독특한 개성 창출의 생활공간을 위한 킴스앤틱의 노력이 더욱 빛나고 나아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완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田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전시장 : 서울 용산구 이태원 (02-796-8841, www.kimsantiq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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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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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고속철 천안아산역 배후 신도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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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교통부는 충남 아산시 배방면·탕정면 및 천안시 불당동 일원 107만 평에 공동주택 6933호, 단독주택 847호 등 모두 7780호의 주택을 건설해 인구 2만4천 명을 수용하는 고속철도 천안아산역 배후 신도시 1단계(아산배방지구) 택지개발계획을 승인했다.
아산배방지구는 천안시에서 3㎞, 아산시에서 5㎞권 내에 입지하며, 동측에는 경부고속도로 천안IC,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남천안IC와 연결되고, 남측에는 국도 21호선이 지구와 경계를 이루며, 서측에는 국도 43호선을 신설하고 있어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역과 장항선 장재역이 위치해, 2004년에는 천안까지 2006년에는 온양까지 수도권 전철이 운행돼 수도권과의 교통이 편리해질 전망이다. 특히 고속철도로 서울역에서 34분, 광명역에서 20분이 소요돼 접근성 등 입지 여건이 매우 뛰어나다.
따라서 건교부는 1단계로 고속철도 천안아산역 역세권 위주로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수도권 소재 일부 공공기관과 대학, 첨단산업시설 등이 이전을 추진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기존 선문대와 이전을 희망하는 대학 및 현재 조성 중인 탕정 테크노컴플렉스 등 첨단산업시설을 연계시켜 자족기능을 갖춘 첨단복합도시로 개발할 방침이다.
아산배방지구의 평균 용적률은 173%, 인구밀도는 헥타르당 68인, 공원녹지율은 25.9%이다. 건교부는 “임상이 양호한 지구 중앙의 산림과 장재천을 최대한 활용해 환경친화적인 전원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장재천변에 인공호수를 조성해 고속철도 역사 전면부에 설치되는 광장과 연계, 소규모 집회나 콘서트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하도록 할 예정이다.
2004년 12월까지 실시계획 승인을 거쳐 2005년 9월부터 주택분양을 시작해 2007년 9월에 최초 입주를 실시할 방침으로 있다. 특히 건교부는 1월 중 2·3단계를 포함한 전체 면적에 대하여 개발 기본구상 용역을 실시한다. 그 결과에 따라 1단계와 2·3단계의 유기적 연계 및 2단계 지역에 대한 조기 개발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 수원 이의동 337만 평 첨단 행정신도시 조성
건설교통부는 12월30일 경기도 수원 이의동 일대 337만 평을 ‘경기 첨단·행정 신도시’ 개발 예정지로 선정했다.
수원 구시가지에 산재한 경기도청 등 광역행정기능과 첨단 비즈니스를 한 곳으로 모으고, 주거 업무와 수변공원이 어우러진 친환경 비즈니스 파크로 개발할 예정이다.
또한 광교산 녹지 축을 보전하고, 원천유원지는 선진국형으로 재정비해 인구밀도가 헥타르당 54인, 녹지율이 45.5%인 쾌적한 도시, 충분한 자족기능도시로 조성된다. 특히 서울로의 출·퇴근 수요를 최대한 억제하고 순환경전철과 신분당선전철 연장, 연결도로 확충 등 새로 마련되는 신개념의 교통 대책도 처음으로 적용된다.
이에 따라 수원 이의동 일대 신도시 27만 평에는 IT 등 첨단산업이 유치돼 주변 경기대와 아주대, 삼성전자 등과 함께 산·학·연 벨트로 구축된다. 7만2000평 규모의 공공시설용지에는 도청과 도의회가 입주하고, 법원과 검찰청, 중부국세청 등 이 지역 행정기관 10여 개가 입주할 예정이다.
아울러 76만5000평의 주택단지에는 임대주택 7000가구를 포함해 2만 가구의 주택이 들어서 인구밀도는 판교(98명), 분당(198명), 김포(132명)보다 낮은 헥타르당 54인, 녹지율은 45.5%(판교 35%·분당 20%)로 쾌적하게 조성된다.
건교부는 “향후 지구지정과 개발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전문가와 환경·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 시민이 공감하는 도시로 개발하는 한편 상반기 중 이 지역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한 뒤 2006년 하반기까지 실시계획을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입주는 2010년 12월 예정이다.
■ 그린벨트 내 20가구 이상 취락지 전원주택지로
건설교통부는 “투자 활성화와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토지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상반기 중 ‘토지규제개혁 로드맵’을 마련, 토지 관련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한편, 모든 토지 규제를 국토계획법체계로 일원화할 예정이다. 다만 무분별한 난개발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선 계획 후 개발’ 원칙을 준수하기로 했다.
또한 대도시권 그린벨트 중 보전이 필요 없는 지역은 조속히 해제할 방침이다. 다만 10만㎡(약 3만 평) 이상 조정 가능지는 국민임대주택용지 등 서민용 주택사업과 첨단산업 용지로, 20가구 이상 집단취락지는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전원주택 단지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남양주, 그린벨트 95개소 해제
경기도 남양주시 개발제한구역 95개소 175만 평(95개소)이 6월부터 내년 6월 말까지 해제될 예정이다.
금곡동 493일원, 별내면 화접리 653-5일원, 삼패동 365-2 일원, 와부읍 월문리 156일원 등 48개소 83만1000평의 자연녹지지역(그린벨트)이 제1종 일반주거지역 또는 제1종 전용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된다.
또한 별내면 광전리 301-2일원, 이패동 230일원, 일패동 104일원, 와부읍 덕소리 313-1일원, 조안면 능내리 607일원 등 33개소 30만3000평의 자연녹지지역은 용도 변경 없이 신축이 가능하도록 그린벨트만 해제된다.
별내면 광전리 647일원, 가운동 377일원, 일패동 346일원, 진건읍 사능리 240일원, 진접읍 내곡리 196일원 등 14개소 61만6000평의 자연녹지역은 그린벨트에서 해제되면서 시에서 체계적 개발을 위해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된다.
또 금곡동 130일원, 별내면 광전리 80일원, 삼패동 233일원, 일패동 661일원, 와부읍 도곡리 767-6일원 등 51개소 31만7000평은 그린벨트지역으로 존치하면서 이축이 가능하도록 집단취락지구로 지정된다.
군포, 그린벨트해제 10개 지역
20가구 이상 중규모 취락지구 10곳(면적 약 17만 평)이 그린벨트에서 해제된다. 군포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그린벨트 일부 해제 등의 내용이 담긴 ‘군포시도시관리계획변경안’을 심의, 조건부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군포시가 조건 이행을 위해 계획일부를 조만간 수정, 보완 제출할 경우 검토작업을 거쳐 해당지역 그린벨트 해제를 최종 고시하게 된다. 해제 대상지역은 앞으로 확정될 시의 지구단위계획 등에 따라 본격 개발 된다.
해제 지역은 납다골(속달동 357번지 일원, 약 1만3500평) △덕고개(속달동 233번지 일원, 약 8700평) △속달(속달동 35번지 일원, 약 1270평) △둔터(둔대동 423의 11번지 일원, 약 2만600평) △대감(둔대동 194의 1번지 일원, 약 2만2000평) △신기(당동 574의 1번지 일원, 약 1만7600평) △삼성마을(부곡동 139번지 일원, 약 3만7000평) △고랑치기(부곡동 520의 5번지 일원, 약 9900평) △큰말(도마교동 184번지 일원, 약 2만1150평) △송정(도마교동 85번지 일원, 약 7200평) 등이다. 집단취락지구는 새골마을(도마교동 11번지 일원, 약 4680평) 등이다.
고양, 그린벨트 해제 6개 지역
경기도 고양시는 그린벨트 내 300가구 이상 집단취락지역 6곳, 약 166만7000평을 2005년 초까지 해제할 계획이다. 시는 이 같은 내용의 집단취락지역을 개발제한구역에서 풀기 위한 개발제한구역 해제 및 지구단위계획 구역 결정 안을 마련했다.
대상 면적 가운데 39.4%인 주택 밀집지역 77만7000여 평은 해제 후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나머지는 모두 자연녹지지역으로 각각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서는 건폐율 60%, 용적률 190% 적용받으며 4층(15m) 이하 고도제한을 받게 돼 일정 규모의 개발이 가능하다. 반면 녹지지역은 건폐율 20%, 용적률 100%에 4층 이하 고도제한으로 사실상 개발이 어려워진다.
해제 지역은 △신원·오금(덕양구 신원동 64의 10, 오금동 342의 3 일대, 약 15만6000평) △삼송(덕양구 삼송동 27의 1 일대, 약 38만4000평) △동산(덕양구 동산동 76의 41 일대, 약 24만7000평), △지축(덕양구 지축동 675의 2 일대, 약 22만6000평) △화전(덕양구 화전동 563의 21 일대, 약 33만9000평), △향동(덕양구 향동동 83의 1 일대, 31만5000평) 등이다. 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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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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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하우스의 개념과 사용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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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1. 스틸하우스란 ?
1) 스틸하우스에 대한 간략한 소개
개념, 자재, 장점
2) 스틸하우스 건축설계
(평면, 주택성능, 외관)
3) 스틸하우스 구조설계
(벽, 슬래브, 지붕)
2. 스틸하우스의 시공
1) 스틸하우스 골조자재
(스터드, 트렉, 조이스트, 접합철물)
2) 스틸하우스 외장 마감재
드라이비트, 사이딩, 창호, 지붕재,
덱deck, 악세사리(물받이, 물 홈통,
덛 문, 각종 알미늄, 동판 )
3) 스틸하우스 내장마감재
(방문, 계단, 도배, 온돌마루, 강화마루,
주방가구, 위생기기, 조명기기
4) 스틸하우스 사용 요령 / 조경
(계절별 관리, 각종 기기사용, 조경공사요령)
5) 스틸하우스의 시공비용(내역서)
(설계+시공 +부가세 + 사후관리비용)
스틸하우스는 2"×4" 목재(2×4인치의 각목) 대신 두께 1.0㎜내외의 아연도금강판을 사용하여 목재와 유사한 치수의 스틸스터드 (경량 형강 c채널)을 제작하여 이 자재를 구조재로 하여 패널을 제작하여 패널을 현장에서 세워 조립하는 주택이다.
즉, 스틸하우스는 시공성이 좋은 목재의 장점을 살리면서 구조부재로서 강재의 장점을 더불어 가지고 있는 우수한 골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틸하우스는 일반주택에 비해 내구성이 탁월하며 다양한 내·외장재로 마감이 가능하므로 외관이 매우 아름답고 기능성 역시 월등하다.
이렇게 뛰어난 기능성과 예술성 때문에 최근 미국, 호주, 일본 등지에는 21세기형 새로운 주택으로 각광받고 있고, 건식 공법으로 시공이 간편해 전원주택으로 인기가 높은 구조 형태다.
이런 스틸하우스는 2"×4" 목재(2×4인치 각목) 대신 두께 1.0㎜내외의 아연도금강판을 사용해 목재와 유사한 치수의 스틸스터드(경량 형강 C채널)을 제작한다.
이 자재를 구조재로 하여 패널을 제작해 현장에서 세워 조립하는 주택이다. 접합부도 기존 강 구조물에서 주로 상용하는 용접대신 전동 스크류 건을 사용하여 나사 접합을 한다.
이는 강재를 이용한 구조물이지만 시공 형태상 목재 시공방법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스틸하우스는 시공성이 좋은 목재의 장점을 살리면서 구조부재로서 강재의 장점을 더불어 가지고 있는 우수한 골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틸하우스에 사용되는 자재
이런 스틸하우스에 사용되는 ㄷ 자형 구조재를 통칭하여 스틸스터드라 하며 스틸스터드는 ‘아연도금된 구조용 냉간 성형강’으로 한국산업규격에 등록돼 있다.
먼저 ‘아연 도금된 구조용 냉간 성형강’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자. 여기서 구조용 자재란 건물을 지탱하도록 힘을 받는 자재를 의미하며 스틸하우스에서는 강도가 400kgf/c㎡인 강재를 사용하해야 한다.
또한 아연도금은 강재를 생산할 때부터 강재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강재 표면에 아연을 도금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연도금이 된 강판은 표면에 흠집이 생기더라도 흠집 주변의 아연이 철보다 먼저 부식이 되면서 도막이 형성된다.
때문에 철까지는 부식이 진행되지 않으므로 아연도금 강판을 사용하는 스틸하우스는 수명이 거의 반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냉간성형강’이란 열을 가하지 않고 상온에서 성형되어진 강재를 의미하는데 스틸하우스에 사용되는 자재는 아연도금 강판을 롤포밍기로 냉간 성형해 제작한다.
스틸하우스의 장점
단열 : 스틸하우스 외벽에 들어가는 단열재는 벽체(스터드) 두께 140㎜의 단열재 +OSB합판11.1㎜ +드라이비트50㎜ + 석고보드20㎜을 합하면 220㎜이상이다 물론 공법에 따라 두께는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이는 건교부 권장 단열 두께의 3배 이상 되기에 스틸하우스는 기본적으로 단열과 보온 성능이 우수하다.
보온 : 겨울에는 내부의 따뜻한 열기를 외부로 빼앗기지 않도록 하고 여름에는 뜨거운 외부의 열기가 실내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단열성능이라고 한다.
단열 성능이 좋은 집이어야만 쾌적한 내부 환경을 유지할 수 있으며 난방비와 냉방비가 적게 든다. 스틸하우스는 벽체와 지붕, 기초에 단열설계를 충실히 하여 우수한 단열성능을 확보하고 있다.
차음 : 원하지 않는 소리는 크기와 관계없이 거주자에게 불쾌감을 유발시킨다. 집의 외부에서 발생하는 차량의 소음이나 집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음(아이들에 의한 소음이나 세탁기나 청소기 등을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소음) 등이 다른 방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스틸하우스에서는 바닥과 벽체를 설계할 때 차음재나 보조재를 사용해 차음 성능을 확보하고 있으며, 창이나 문과 같은 개구부를 기밀하게 시공하여 조용한 주거환경을 확보할 수 있다.
공사기간의 단축 : 어떤 건축물의 시공기간은 건축현장의 작업 여건, 기상 상태, 현장 소장의 능력, 건축도면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은 건축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알 수 있다.
다만 똑같은 조건에서 조적이나 콘크리트에 비해 공사기간이 단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보통 60평 규모의 스틸하우스는 2~3개 월 정도 소요된다. 田
■ 글·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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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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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집 따라짓기] 전통방식 목구조 황토집 짓는 순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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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까래 걸기 및 앙토(알매)덮기
상량식(종도리 걸기)이 끝나면 곧바로 서까래를 걸치게 된다. 삼량집(우진각지붕 또는 맞배지붕)과 오량집(합각지붕)의 서까래 걸기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도면에 따라서 목재를 구입할 때 서까래를 선별하여 구입해야 한다.
삼량집의 경우에는 종도리와 처마도리에 긴 서까래(장연)를 뿌리 쪽이 처마도리에 걸쳐지도록 하여 결구(못질)하면 된다.
그리고 오량집의 서까래 걸기는 긴 서까래와 짧은 서까래(단연)를 사용한다. 먼저 중도리와 처마도리를 아래위로 하여 긴 서까래를 먼저 건 다음에 종도리와 중도리를 아래위로 하여 짧은 서까래를 결구한다.
이때 삼량집과 오량집 역시 서까래의 간격은 나무의 굵기에 따라 그 중심에서 1자(30㎝)에서 1자3치(약 40㎝) 간격으로 걸친다. 그러나 특별한 기준이 없으므로 목재의 여유에 따라 목수의 안목으로 사용하면 된다.
따라서 서까래의 내밀기(처마도리에서 처마 끝까지의 길이)는 3자∼4자(3칸 미만의 집일 경우에는 3자, 그 이상의 집일 경우에는 4자)가량 내빼면 된다.
또한 서까래 굵기는 대개 집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뿌리 쪽이 3치(9㎝)∼4치(12㎝)사이의 목재를 사용하며, 귀 서까래(추녀)는 이보다 굵은 4치∼5치정도의 목재를 사용한다.
서까래 걸기에서는 추녀 부분 좌우 서까래 걸기가 가장 어렵다. 이 부분의 서까래 걸기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먼저 규모가 큰 전통건축기법으로 짓는 기와집일 경우에는 귀 서까래 좌우에 걸쳐지는 모서리 서까래를 하나하나 자로 재어 정교하게 다듬어서 걸치는 ‘선자’(부채 살 모양) 방식이 있다.
하지만 선자 서까래 걸기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므로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 목수가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다.
다음으로 평범한 주택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마족’(추녀의 각도를 따라 서까래 끝을 빗어 맞붙이는 방식)방식과 작은 규모의 주택에 사용하는 ‘막걸이’(처마 끝 간격과 귀 서까래에 붙이는 간격이 일치하게 붙이는 방식)방식이 있다.
아울러 서까래 걸기에서 서까래가 곧은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휘어진 서까래는 처마 끝 부분을 가지런하게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반드시 평고대(사방의 추녀와 서까래 끝 부분 위로 이어지는 가로로 길게 건너지른 부재)를 먼저 설치하고 그 밑에 서까래 끝의 윗부분이 서로 일치하게 가지런히 놓이도록 해야 한다.
작은 규모의 집이라면 추녀와 추녀 끝에 실을 묶어 탱탱하게 잡아당겨 그 높이를 조정해도 된다.
또한 종도리 위에 걸치는 서까래 끝 부분이 서로 어긋나게 거는 엇걸기 방식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서까래 끝이 서로 맞물리게 거는 방식은 지붕의 물매(경사도)에 맞춰 끝을 짤라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어려운 추녀의 좌우 모서리 서까래를 건 다음에는 종도리의 간격과 처마도리의 간격이 일치하도록 정해진 간격대로 서까래를 붙여 나가면 서까래 걸기가 모두 끝난다.
서까래 걸기가 끝나면 알매(짚을 썰어 넣어 반죽한 흙)를 올린다. 알매를 올리는 집에서는 산자(가는 나뭇가지나 쪼갠 대나무 등)를 촘촘히 엮어 앙토(알매)를 20cm∼25cm 두께로 고르게 펴서 바른다.
알매는 먼저 돌멩이와 불순물을 제거한 황토에다 짚을 5㎝∼7cm 되게 썰어 만든 거섶을 섞어서 차지게 반죽한다.
그리고 작은 호박 크기의 흙덩이를 만들어 지붕 위로 던져 올려 용마루 위치에서부터 아래로 사면을 고르게 덮어 내려와야 한다.
이때 흙이 산자 사이사이로 삐져서 내려가도록 차곡차곡 단단하게 바른 뒤, 흙손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마감을 해야 지붕에 굴곡이 생기지 않는다.
알매 덮기가 끝나면 2, 3일 건조시킨 뒤에 지붕이기를 한 다음 내부 천장 바르기를 한다.
천장 바르기는 반죽해 놓은 황토를 흙칼(흙손)로 처바르는데 이것을 천벽 붙인다고 한다.
이 역시 벽과 같이 두 번에 걸쳐 바르는데 첫 번째를 왕새(초벌) 바르기라고 하고, 두 번째 마감 바르기를 재새 바르기라고 한다.
재새 바르기를 하는 황토는 채에 친 보드라운 황토를 짚을 섞지 않고 사용해야 한다.
방수처리 및 지붕이기
전통방식에서는 알매를 얹고 그 위에 곧바로 볏짚이엉이나 흙기와를 이어도 빗물이 스며드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옛 건물에 비해 내부 평면이 좀 더 복잡해진 현대 황토집에서는 만약을 대비해 방수처리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
방수처리 방법은 지붕에 얹은 알매가 마르면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방수 시트를 구입해 지붕 전체를 빈틈이 없이 덮어야 한다.
방수 시트는 결로 방지 기능이 탁월한 특수 방습, 투습지로 지붕 전용재를 구입해야 한다. 방수 시트 깔기가 끝나면 지붕재를 올리는데, 이때 아스팔트 슁글이나 적삼목을 마감재로 선택했다면 방수 시트 위에 곧바로 시공할 수 있다.
하지만 토기와나 볏짚 등을 소재로 선택했다면 다시 황토 알매를 올려야만 마감재 시공이 가능하다.
방수 시트 작업이 끝나면 지붕이기를 해야 한다. 지붕의 소재는 전통방식의 목조 황토집에는 토기와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 다음으로는 너와나 적삼목, 아스팔트 슁글 등이 황토집과 어울리는 지붕소재다. 만약 초가(볏짚 또는 샛짚)를 이을 경우에는 새끼줄을 고정시키기 위해 처마 끝에 가로로 걸치는 평고자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토기와를 이을 경우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황토를 반죽한 알매를 다시 얻어야 기와이기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붕 소재별(토기와, 너와 또는 적삼목, 볏짚이엉)로 지붕이는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토기와 이는 방법
황토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지붕소재로는 기와를 꼽을 수 있다. 기와는 진흙 등을 이겨 800℃∼1000℃로 구워서 만들어낸 전통 토기와를 사용해야 한다.
토기와는 외관상의 아름다움과 함께 내수성과 내화성, 단열성, 내구성이 뛰어나다. 또한 한번 이어 놓으면 반영구적인 지붕이 된다.
다만 중량이 무겁기 때문에 내진성이 없으며, 충격이나 동해(凍害)로 파손되기 쉬운 것이 작은 단점이다.
그럼 지금부터 토기와를 만드는 기술에서부터 지붕이는 기술 등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토기와는 논밭 등의 하층에서 캐내는 진흙을 원료로 사용하는데, 이때 진흙은 조사(粗砂)나 유기물, 가용성 알칼리분 등이 적은 것이 좋다.
진흙은 보통 2종류 이상의 흙을 혼합해서 쓰기도 하며, 원토만을 사용할 때는 장기간 잠을 재워서 쓴다. 따라서 토기와를 만드는 공정은 원토를 채취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혼합기에 넣어 반죽(혼련)하여 성형기로 찍어내어 끝손질을 한다.
그 다음에 그늘에서 건조시킨 후 가마에 넣어 1000℃로 구운(소성) 후 냉각시키면 품질 좋은 토기와가 만들어진다.
소성 방법에 따라서 초벌구이 기와는 색깔이 붉은빛이나 갈색을 띠며, 솔잎이나 톱밥을 태워서 표면에 탄소를 정착시켜 만든 그슬림 기와는 검은색이나 회색을 띤다.
이 밖에 연소실에 식염을 던져 넣음으로써 그 증기로 표면에 유리질을 만들어낸 소금구이기와(붉은기와)와 여러 가지 색상의 유약을 발라 구운 유약기와 등이 있다. 하지만 황토집에는 그슬림기와(검은색)나 초벌구이 기와(적색)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리고 토기와의 종류는 용도에 다라 암키와, 수키와, 내림새, 수막새, 암막새, 착고, 부고, 마룻장 등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토기와 지붕은 기둥을 튼튼히 세운 뼈대집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참고해야 한다.
직경이 최소한 30㎝ 이상 되는 나무기둥을 세워 앙토(알매) 덮기가 끝난 지붕 위에 추녀 끝자락에서부터 사방으로 한 줄 암막새와 수막새를 먼저 얹은 다음에 암키와와 수키와(일명 평기와와 골기와라고도 함)로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지붕을 덮은 다음 용마루를 만들고 용마루 끝에 와당(귀면기와)을 붙이면 기와지붕이기가 끝이 난다.
기와지붕이기는 전문 와공(기와이는 기술자)이 아니면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와공을 불러다 지붕을 이어야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기와 지붕이기는 자재비, 인건비를 포함해 평당 17만∼20만 원 정도 예산을 잡아야 된다(단, 지붕 평수로 계산해야 함. 지붕평수는 처마의 길이에 따라 평면 평수의 약 1.8∼2배임).
너와 또는 적삼목 이는 방법
먼저 너와지붕이란 지붕에 기와나 이엉대신에 얇은 나무판을 올린 것을 말한다. 너와는 질이 좋은 소나무나 참나무를 도끼 등으로 길이 60cm, 너비30cm, 두께3cm 정도 크기로 쪼개서 만든 작은 널판이다.
이것을 방수 시트 위에 기와를 이는 방법과 같이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고기 비늘처럼 고정 핀을 박아가면서 덮어 올라가면 된다.
적삼목은 너와보다는 얇고 정교하게 가공된 패션 널판을 말하며, 시공 방법은 너와시공법과 동일하나 접착제를 사용해 덮는다. 시공비용은 너와지붕이 자재비와 인건비를 합쳐 평당 13만∼15만 원이며, 적삼목은 평당 10만∼12만 원 미만이면 시공이 가능하다.
아스팔트 슁글 이는 방법
자연친화적인 소재만으로 황토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소재다. 그러나 황토색이 나는 아스팔트 슁글로 지붕을 이으면, 우선 자연스러우면서 지붕의 모양이 깔끔하게 처리되기 때문에 시공할 만하다.
아스팔트 슁글 지붕을 시공할 때는 한 장 한 장 정성을 기울여 붙여야 한다. 잘못하면 하자가 발생해 붙여 놓은 슁글이 들고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슁글의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가장 고급품인 그림자 슁글이 자재비와 인건비를 합쳐서 평당 6만∼7만 원이며, 중급 제품이 5만 원선이면 시공이 가능하다고 본다.
초가 이는 방법
초가지붕을 이는 방법에는 비늘이엉법과 사슬이엉법의 두 종류가 있다. 비늘이엉법은 그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맞배집 등에 주로 사용된다.
비늘이엉은 볏짚보다 대개 억새풀을 베어다가 뿌리 쪽을 한 뼘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으로, 길게 엮은 이엉을 뿌리 쪽이 밑으로 가게 하여 추녀 끝에서부터 지붕 앞뒤를 덮는다.
그러나 물매가 싸지 않으면 빗물이 잘 흐르지 않는 단점과 한번 이으면 수명이 10년 정도 유지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볏짚을 사용한 사슬이엉은 짚 뿌리 쪽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덮는 방법이다. 볏짚을 일정한 양(量)으로 엮은 수십 장의 마름(둥글게 말아 놓은 이엉)을 지붕 위로 올린 뒤, 멍석을 펴듯이 펴나가면서 덮는다.
이엉은 처마 끝 부분에만 뿌리 쪽이 밑으로 가도록 깔고 그 다음부터는 이와 반대로 하여 사방으로 덮어 올라가면 된다. 이엉 덮기를 마치면 끝으로 용마름을 올려야 한다.
용마름을 올린 뒤에는 이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새끼줄로 지붕을 매는데 이것을 고삿맨다고 한다. 고삿매기를 할 때 이엉 밑으로 들어가는 고삿을 속고삿이라고 하고 밖으로 드러나는 곳삿을 겉고삿이라고 부른다.
고삿매기는 지방에 따라 조금씩 묶는 방법이 다르지만 보통 가로로 여러 가닥의 새끼를 매고, 세로로 몇 가닥만 묶는 긴 네모꼴이 가장 많이 쓰인다.
전국적으로 가장 흔히 사용하는 고삿매기는 우선 지붕의 가로(긴 쪽)로 여러 가닥의 새끼줄을 치는데 이것을 장매(누른새끼)라고 한다.
장매를 치고 나면 세로(짧은 쪽)로 3∼5가닥의 자른 매를 쳐서 장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얽어 묶는다. 새끼 끝 부분은 서까래(연목)에 단단히 잡아당겨 묶는다.
이때 처마 끝 부분의 이엉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긴 눌림대(장대)를 올리고 지붕을 뚫어 새끼를 끼워 넣어 서까래에 고정시켜 묶어야 한다.
그리고 처마 끝 부분으로 내려 온 이엉 끝자락을 가지런하게 짤라내면 지붕이기가 모두 끝이 난다. 田
■ 글 윤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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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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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주택 이야기]통나무주택의 창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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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는 세레나데를 부르며 연인이 문을 열고 내다보기를 기다리는 낭만적인 공간이다. 반면 타인이 사생활을 엿볼 것 같은 불안한 공간이기도 하다. 전원주택을 지을 때 염려하는 부분 중 하나가 '보안'이다. 창호를 선택할 때는 집에 어울리는 모양 못지 않게 보안 기능까지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잘 지은 집의 창문에 쇠창살을 붙여 미관을 해친 경우를 종종 본다. 요즈음에는 보안 기능을 갖춘 우수한 창호들이 개발되면서 이것을 사용한 주택들이 늘고 있다.■ 글 싣는 순서·통나무주택의 욕실과 화장실·통나무주택의 주방과 구성·펜션, 카페, 전원주택·통나무주택의 창호 선택·통나무주택의 계단·통나무주택 2층의 특징·통나무주택의 가치·통나무주택과 사우나·통나무주택의 벽난로·통나무주택의 인테리어·통나무주택의 전기와 설비사랑의 집짓기 행사와 평양 방문 등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통나무집에서 살고 있다. 집은 우리가 입는 옷과 같아서 그 사람의 취향과 인격을 담고 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들여서 각자 개성에 맞춰 인테리어를 하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또한 집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생활 환경에도 영향을 끼친다. 같은 사람임에도 제복과 정장 혹은 자유로운 옷을 입었을 때의 행동이 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집도 가족 구성원의 정서와 인격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어떤 소재로 어떻게 집을 짓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요즈음 황토집이나 통나무집이 새롭게 인식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 집의 기본 소재에 따라 부자재나 여타 구성 요소들까지 한데 어우러지면서 전체적인 조화로움과 일체감을 갖는다. 통나무집에서 창호 선택도 마찬가지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때문에 영국인들은 장중하고 멋진 창호를 갖추는 것을 건축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창호를 선택할 때 크게 '외관'과 '기능성'을 살핀다. 필자는 이 두 가지를 고루 갖춘 원목창호를 추천한다. 값이 비싼 게 흠이지만 고전적인 멋스러움과 해를 거듭하면서 깊이를 더하는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원목창호는 목재 선정과 정밀한 건조 공정을 거친 것이라야 뒤틀림이 없다. 그리고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려면 세심한 연귀 작업(Oblique Plan : 두 재를 맞추기 위해 나무 마무리가 보이지 않게 귀를 45도로 비스듬히 잘라 맞춘 곳)과 접착이 선행돼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온다. 원목창호를 선택할 때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원목창호는 이처럼 까다롭기에 이를 대신해 무늬목을 입힌 나무문이나 플라스틱에 무늬를 전사한 제품도 많이 나온다. 이러한 제품들은 실용적이고 저렴하지만,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맛은 떨어지니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창호의 기능창가는 세레나데를 부르며 연인이 문을 열고 내다보기를 기다리는 낭만적인 공간이다. 반면 타인이 사생활을 엿볼 것 같은 불안한 공간이기도 하다. 전원주택을 지을 때 염려하는 부분 중 하나가 '보안'이다. 창호를 선택할 때는 집에 어울리는 모양 못지 않게 보안 기능까지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잘 지은 집의 창문에 쇠창살을 붙여 미관을 해친 경우를 종종 본다. 요즈음에는 보안 기능을 갖춘 우수한 창호들이 개발되면서 이것을 사용한 주택들이 늘고 있다.창호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건축비에서 창호가 차지하는 비율은 10∼30% 정도로 만만찮다. 창호는 실내를 필요에 따라 열린공간과 닫힌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그렇기에 기능상 개방성과 폐쇄성을 모두 갖춰야만 이 두 가지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다. 즉 창호의 수준은 방음과 기밀성, 단열, 방범이라는 조건을 얼마나 잘 갖췄는가에 달려 있다. 더불어 '어떤 재료를 선택했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 숙달된 기술로 아름다움과 견고함을 고루 갖춘 창호를 제작했는가'도 그 가치를 결정한다.잘 만든 창호는 거의 완벽한 방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단열 기능도 뛰어나다. 에너지 손실의 약 30% 이상이 창문을 통해서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유가(高油價)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겉보기에는 별반 다를 게 없는 창호지만 기능적으로는 이처럼 큰 차이가 있다.창호의 설치문이 끼어 잘 열리지 않거나 덜컹거려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통나무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원인은 대개 창호 제작이나 시공을 잘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통나무집의 가장 큰 장점은 주위의 온도와 습도 변화에 따라 숨을 쉰다는 것이다. 흔히 통나무집은 일반주택보다 빨리 썩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수명이 수백 년 간다. 통나무집이 숨을 쉬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실내 공기를 정화시키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몸에 이로운 물질을 뿜어내므로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통나무집이 숨을 쉰다는 것은 항상 약간의 변화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창호를 설치할 때는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건조한 겨울철 문이 덜컹거리고 여름 장마철에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은 대부분 통나무집의 구조적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공했기 때문이다.수리 의뢰를 받아 가서 보면, 계절 변화에 대한 기술적인 미흡함을 보완하지 않은 채 엉뚱하게도 굵은 나무로 수직 방향의 문틀을 설치한 경우가 종종 있다.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장소를 불문하고 세로 방향의 나무가 가로로 쌓은 통나무 벽체와 결합해서는 안 된다.통나무집은 어떤 목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건조 방법이 다르고, 회사마다 가공 기술이 다르다. 통나무집은 시공 후 수년 간 약 5㎝∼20㎝씩 수축하면서 안정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병행한다면, 치명적인 걸림돌이 돼 틈이 벌어지고 뒤틀린다. 창틀은 이러한 본체 벽에 고정되므로 그 변화를 감당해야 한다. 본사에서는 활대(Slider Bar)를 사용하는데 활대와 창문 둘레(Window Opening)가 서로 결합해 홈 속에서 움직이게 설계한 것이다. 이 활대는 통나무집의 수축과 팽창 변화를 감당할 뿐만 아니라 창문의 변형을 막고 벽체의 뒤틀림과 휘어짐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창문틀은 통나무집의 변화를 감당해야현재라는 눈 높이에서만 바라보면 기본의 중요함을 잊기 쉽다. 우리나라는 공업화 초기, 많은 부분에서 싸고 좋다는 이유로 일본의 기술과 자본재를 이용해 산업국가의 틀을 짰다. 그 결과 지금까지 일본의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세계적인 선도기술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 비결을 높은 교육열에서 찾았다. 여기에는 '기초학문'이라는 의미가 깊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초학문 분야의 교수들이 홀대를 항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회 각 분야의 체제는 물론 도덕과 윤리까지 흔들리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교육의 모든 영역 즉, 기술과 인간, 경영, 노동, 과학 등에서 기초와 본질 그리고 원리에 대한 부분의 연구와 교육을 소홀히 여겼기 때문이다.어떤 일이든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 기본적인 요소를 소홀히 하면 뒤탈이 날 수밖에 없고, 손질도 땜질밖에 할 수 없다. 내 집을 짓거나 살 때도 예쁜 조명이나 도배 같은 마감재보다는, 그보다 더 중요한 본질적인 구조나 각 부분의 기본 자재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통나무집에서 창호의 설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국내에 지어진 통나무집에서 문제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게 창호이기 때문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창호를 설치할 때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이 더 중요하다.통나무집에서 창호를 설치할 자리는 좌우로 1㎝∼2cm, 창틀의 위쪽으로 창의 크기에 따라 2㎝∼4㎝의 여유가 필요하다. 좌우 공간은 설치하려면 약간의 여유를 둬야 하며, 통나무집의 수축을 고려해 위쪽에 2∼4%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창호 자리 좌우에는 활대를 설치하는데, 그 크기는 통나무집 벽체의 굵기와 같아야 한다. 벽체는 요(凹)자 모양으로 홈통을 따는데 그 크기는 통나무 굵기의 1/3이 적당하다. 또한 철(凸)자 모양의 활대와 편차가 없는 1:1의 크기가 유지돼야 한다. 벽체의 휨과 뒤틀림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기술 집약의 결정체, 시스템 창호예전에는 윈도우하면 으레 창문을 생각했지만, 요즈음에는 마이크로 소프트(Micro Soft)사의 컴퓨터 운용 프로그램인 윈도우즈(Windows)를 먼저 떠올린다. 윈도우즈의 확산과 함께 컴퓨터 프로그램의 발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현실 속의 창문도 그 옛날 침 발라 구멍을 내 신방을 엿보던 낭만시대는 이미 아니다. 단열과 방음, 방범의 기능을 모두 갖춘 창호는 그 자체가 기술의 집합체다. 창문은 설계와 구조에 따라 기밀성(氣密性)이 달라진다. 문틀의 기밀성과 더불어 요즈음 대중화된 '이중유리(Pair Glass)' 자체의 기밀성도 중요하다. 이중유리 안쪽이 뿌옇게 돼도 닦지 못하고 속상해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자체의 기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우리가 많이 쓰는 미닫이문은 구조적으로 롤러가 타고 가는 홈통을 비롯해 창문과 창틀 사이에 틈이 많아 기밀성을 높이기 어렵다. 기밀성은 방음과 단열에서 가장 큰 변수인데, 이 문제를 해결해 구조적 혁신을 이룬 것이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시스템 창호(System Window)'다. 환기(Tilt)와 열림(Turn) 그리고 대형창의 경우 미닫이 기능(Sliding)까지 갖춰 매우 편리하다.이중유리는 방음과 단열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각 지역의 고도와 기후에 맞춰 유리와 유리 사이에 아르곤(Ar)이나 질소(N) 가스 등을 넣는다. 그 사이에 아주 미세한 구멍만 생겨도 단열 효과는 크게 떨어지고 뿌옇게 되므로 완성도 높은 기술을 요구한다. 값이 비싼 실내 가구의 변색 방지를 위해 자외선 차단 유리를 사용하거나, 쉽게 깨지지 않는 고강도 유리와 뒤틀림 방지 기술로 제작된 원목창호라면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田■ 글 정인화<발미스코리아 통나무주택 대표 054-975-1240> www.valmiskorea.com∴ 글쓴이 정인화는 발미스사의 한국 대표로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수년간 쌓아온 통나무집 건축이론 교육과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대규모 통나무주택 단지를 성공적으로 개발하는 등 개인 주문주택뿐 아니라 제주도 등지에서 기업형 통나무 펜션단지의 개발지원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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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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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지은 꿈과 희망의 집 ‘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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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카페 ‘산속’은 깊이 막힌 산으로 둘러싸여 사람의 왕래도 적고 조용한 곳이다. 사장 이희남 씨는 2년여에 걸쳐 건물을 직접 지었다. 50여 평의 카페를 운영하며 객이 찾아와 전원을 즐기다 보면 어두운 산길을 내려보내기가 걱정돼 재워 보내던 것을 계기로 민박도 함께 운영 중이다. 본관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2개의 객실과 부부의 생활공간이, 3층에는 다락방 겸 침실이 있다. 사계절 독특한 특징을 지닌 이곳은 철마다 풍경을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외로움이나 적적함을 느낄 겨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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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가 특이하고 정취가 뛰어난 소요산, 아담한 산세로 초겨울 가족 산행지로 알맞은 왕방산은 동두천에서도 잘 알려진 등산코스다.
서울 근교의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고자 하는 이의 발길은 오늘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이 지친 다리를 풀고 휴식을 갖기에 충분한 카페가 있다. 바로 꿈과 희망의 집 ‘산속’이다.
동두천시 광암동에 진입하는 길, 자그마한 시골길과 미군훈련장을 지나 산골로 접어들면 쇠목길이 나온다.
전원카페 ‘산속’은 “계곡의 큰 폭풍과 작은 폭포에 살았던 용이 농부의 하나밖에 없는 소를 잡아먹고 승천하였다”하여 이름 붙여진 쇠목계곡에 위치한다.
외진 곳이라 이 길이 아닌가 싶어 되돌아가던 일을 반복해 좀 더 아늑한 곳에 위치한 카페에 도착했다.
나무 울타리로 꾸며진 카페 입구에 들어서자 덩치가 산만한 개가 안기고 짖는다. 평소 강아지도 무서워하던 터라 주인이 나와 어찌해주기를 바랐으나, 모자를 눌러 쓴 바깥주인은 인사만 건넨 뒤 유유히 사라진다.
잠시 후 돌아온 그는 들어오려면 들어오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가던지 알아서 하란다. 잠시 망설이다 하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카페 현관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그 호통의 주인공은 바로 이희남(43) 씨다. 부인 윤은경(36) 씨와 함께 이곳에서 전원생활를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째다.
1998년 동두천 수해로 가옥이 침수됐고 형과 동업하던 앨범공장마저도 연이은 수해로 두 번이나 침수되자 재기불능의 상태가 됐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련은 곧 또 다른 기회가 됐다.
동생의 도움으로 1999년 당시 전(田) 형태인 토지 350평을 평당 28만 원에 매입할 수 있었고 미군부대(보급창고)에서 나오는 각재와 나무를 구입해 집짓기를 시작했다.
사업을 하며 전원생활을 결심하고 2년 동안 공장 한켠에 모아온 나무도 5톤 차로 열대 분량이나 됐다.
건물은 용마루로 얹는 나무를 이용해 6″×12″ 기둥을 세우고 각재를 우물 정(井)자로 엮어 평면 보를 만들었다. 2달 동안 재활용 목재에서 못 빼는 작업이 이어졌고 그 분량만 해도 드럼통으로 가득했다고 하니 작업의 고단함을 헤아릴 만하다.
공사기간은 2000년 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이어졌고 그 달 30일 카페를 열 수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진행되는 야무진 집짓기 작업은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어느 날인가 절 데리고 이곳으로 오더니 황무지에 집을 짓겠다고 하더군요. 집에 돌아와서는 며칠을 울었어요.” 라고 말하는 부인의 눈가엔 그간 고생이 떠올랐는지 투명한 보석 같은 무언가가 맺힌다.
벽체는 나무 골조로, 스티로폼을 이중으로 사용해 단열에 신경 썼고, 그 사이를 또 벽돌을 이중으로 쌓아 완성했다.
내벽은 핸디코트로 마감하고 사포로 갈아내 고풍미를 더했고 외벽은 나무로 마감해 목조주택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견고함을 더하기 위해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으며 대못을 박아 균열을 방지하고 하중을 잘 지탱하도록 했다.
본관 1층은 카페 50평, 2층은 2개의 객실과 부부의 생활공간, 3층은 다락방 겸 침실로 공간 구성을 했다.
공사 당시 임시숙소로 이용하던 별도의 건물은 지난해 리모델링을 했다. 별관 1층은 공구 창고와 9평 객실로, 2층은 7평 객실 2개로 구성돼 있다. 유럽(서구식) 분위기로 완성한 집은 골조, 벽체, 문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재활용으로 완성됐으나 효과적인 단열을 위해 창문만은 신용(新用)이다.
전원카페 ‘산속’은 산으로 둘러싸여 사람의 왕래도 많지 않은 조용한 곳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김장김치와 바비큐 맛을 잊지 못해 반드시 단골이 된다.
동두천터미널에서 광암동 버스를 이용, 종착역에서 하차한 뒤 전화하면 주인은 어김없이 마중을 나온다.
객이 찾아와 전원을 즐기다가 어두운 산길을 내려가는 게 걱정돼 재워보내던 것을 계기로 현재는 민박도 함께 운영 중이다. 특히 넓게 천창(Top-Light)이 뚫린 방은 손님들로부터 인기가 많다.
이 사장은 매년 번 돈을 집 짓는 데 투자하고 있다. 하기에 정성으로 치자면 10억 원 정도의 가치를 훨씬 넘긴단다.
여름에는 집 앞 계곡에 물놀이 오는 사람들이 많고 겨울엔 산속의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외로움이나 적적함은 느낄 시간이 없다.
오전 9시에 기상, 애완견과 함께 조깅하고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손님의 예약전화는 부인 담당이고, 건축주는 또다시 집짓기와 보수에 들어간다.
이날은 부인을 위한 세탁실을 설치하는데 손이 바쁘다. 카페의 문을 닫아놓는 일은 절대 없다. 산 깊은 외진 곳까지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서다.
인근에는 8가구의 주민들이 함께 생활한다. 난시청지역으로 디지털 위성방송을 보고 인터넷 전용선이 안 들어와 모뎀을 사용하며, 9·11테러 소식을 이틀이 지난 뒤 접했지만, 이곳은 분명 꿈이 있고 행복이 함께 하는 곳이다.
카페 ‘산속’이 위치한 곳은 계곡보전지역이며 산촌개발마을이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마을 전체를 잇는 정화조를 이용한다.
지하수는 천연 암반 1급수이고, 전기요금은 월 30만 원정도다. 월 매출액은 주인 내외가 ‘먹고 살 만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얼마전 커다란 평면 TV를 장만했다고 하니 그것은 상상에 맡긴다.
이 사장은 “전원생활을 결심하고 있다면 40대 초반에 시작할 것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원생활을 그리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돌아오는 생활을 지루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농부들이 매년 밭갈이를 하면서 기대와 희망으로 즐거워하는 마음과 같죠. 그보다 앞서 중요한 것은 배우자와 가족들도 좋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라며 충고도 잊지 않았다.
카페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페치카에서 군고구마가 따끈하게 구워질 때면 그리움을 씻지 못한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버려진 테이블이며 의자를 닦고, 수리하고, 칠해서 재활용으로 완성된 카페 내부는 그래서 오합지졸(烏合之卒)이지만, 그 어느 곳의 새것보다 더 빛나고 아름답기만 하다. 田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
·건축형태 : 목구조 혼합(조적)
·부지면적 : 350평
·건축면적 : 100평(1층 50평, 2층 54평) + 별관 30평
·실내구조 : 1층 - 카페, 주방, 화장실, 세미나룸
2층 - 거실, 객실2, 발코니
3층 - 침실 겸 다락방
·외벽마감 : 목조사이딩
·내벽마감 : 핸디코드
·천정마감 : 목조노출
·지붕마감 : 나무
·난방형태 : 기름보일러, 전기패널
·식수공급 : 지하수
■ 홈페이지 : www.sansok.net (031-867-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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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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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작지붕에 처마 끝 들어올린 남양주 53평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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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동북부에 자리한 도농복합도시인 남양주시. 서울 노원구 공릉동과 경계를 이루는데 태릉선수촌에서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남양주시 별내면이다.
키 재기를 하듯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콘크리트 숲 옆에 고즈넉하게 전원(田園)이 펼쳐진다.
남양주시는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특별대책지역, 상수원보호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에 묶여 전체 면적의 80%가 토지이용규제를 받고 있다. 콘크리트 숲에 잠식되지 않은 채 전원을 간직한 이유이기도 하다.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불암산자락에 팔작지붕을 인 한옥이 한가로이 번잡한 도심을 굽어보고 있다. 비로부터 벽체를 보호하고 햇빛을 피하는 그늘을 만들려고 처마를 길게 뽑았다.
며느리서까래라고도 하는 부연(附椽)을 덧달아 처마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기품을 높였다. 또한 기단(基壇)이 제법 높은 편인데, 돌 대신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대리석을 덧붙였다.
특이하게도 한옥을 지어 입주한 건축주 구자현(60세) 씨는 빌라를 전문으로 시공하는 건축업자다.
현대건축업자 한옥을 짓다
건축주와 행인흙건축 이동일 사장과의 만남은 작년 봄,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소개를 받아 전화했으니 카탈로그 좀 보내 주세요.”
“그보다는 현장을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며칠 후, 4월 중순 건축주는 여주 하품리 공사 현장을 찾아 이 사장과 첫 대면을 했다.
“나도 업잔데, 콘크리트집만 수십 년을 졌어요. 내가 살 집은 건강에 좋다는 흙집으로 지으려고요. 한옥으론 안 지어 봐서……. 평당 얼마면 짓죠.”
기초 상담이 끝나자마자 이 사장이 현장 답사를 한 곳은 서울 외곽 천연의 전원주택지였다.
“그린벨트지역이라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니, 설계 초안을 작성해서 건축설계사무소에 보내줘요. 콘크리트집 전문가인 내가 지하실을 둔 기초공사는 할 테니 뼈대만 세워 줘요. 나무도 좋은 놈으로 하고, 서까래도 육송으로 해서 부연도 달고, 기와도 좋은 놈으로 쓰고……. 흙벽돌은 큰 거 작은 거 두 장을 덧대서 잘 좀 해 줘요.”
이 사장은 서울이나 다름없는 곳에 한옥형 흙집이 진출한다는 설레임으로 시공을 시작했다. 한편으론 ‘건축업자라, 뭔가 까다롭고 끝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하는 우려도 했다.
노원구 중계동 상가주택에 살던 건축주는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그린벨트에 묶인 불암산자락 610평의 부지를 8년 전 평당 40만 원에 매입했다. 그리고 천혜의 전원주택지를 구했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가 이웃하며 살자고 해서 300평을 넘겼다.
그린벨트에서 허가를 받아 건축할 수 있는 권리인 이축권(移築權)을 사들이면서 건축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용인이 고향인 건축주는 한옥에서 나고 자랐다. 콘크리트집을 전문으로 시공하면서도 늘 나무와 흙만으로 지은 푸근한 고향집을 떠올렸다. 일에 짓눌린 심신도 고향집에서 하루 이틀 묵고 온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개운했다. 건축주가 한옥을 지을 요량으로 행인흙건축을 찾은 이유다.
이 사장은 지대가 높은 동남향 터에 뒷산의 산세까지를 고려한 ‘ㄱ’자 형태의 설계안을 설계사무소에 보냈다. 얼마 후 ‘지하층을 포함한 설계안이 확정됐고, 건축허가 절차에 착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로부터 석 달 뒤, 건축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견적서 안 보내요. 웬 장마가 이렇게 긴지. 10월 중순에 입주해야 돼요. 지하층 공사 끝나면 바로 일 시작할 테니 어서 올라와요.”
그렇게 해서 지루한 장마가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려 건축주는 손수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빨리 서둘러요. 내가 안 할 줄 알았나 보지. 이 놈의 장마 땜에 일이 많이 늦어졌어…….”
그런데 그 뒤에 한 차례 강풍이 몰아쳤다. 건축주는 뒷산의 흙이 무너져 내려 지하층 한 벽을 밀어냈지만 눈 하나 까딱 않고 10여 일 후 지하층을 벙커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흙물이 동네로 흘러 내려 민원이 만만찮았는데 그 모두를 거침없이 헤쳐나갔다.
콘크리트 기초가 끝난 후, 목재가 도착하고 본격적인 목수작업이 시작됐다. 주 목재는 북미산 햄록(Hemlock)을 사용했는데, 서까래만큼은 강화산 육송을 사용했다.
건축주는 낙엽송도 생각했지만 왠지 기계로 뽑아 낸 것 같아 자연미가 배어 나오는 육송을 고집한 것이다.
“나는 콘크리트집 전문가지 흙집은 몰라요. 이 사장, 모든 걸 믿고 맡길 테니 잘만 지어 줘요.”
목수작업 전 건축주가 건넨 말이다. 업자 대 업자로서 이 사장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목수작업에 일체 간여치 않는 건축주의 배포에 놀랐을 정도다.
장마와 전투 끝에 완공한 집
한옥의 기본은 목수에게 달렸다는 이동일 사장.
“집을 구성하는 뼈대와 지붕의 모양이 집 전체의 느낌을 좌우합니다. 그만큼 목수일이 중요하죠. 나이 많은 목수들은 시간에 개의치 않고 집을 짜는데, 시간을 다투는 이 집은 다행히도 젊은 목수들이 시공을 담당해 진척이 빨랐습니다.”
목수작업을 한 처음 일주일은 화창한 날씨 덕에 거침이 없이 진행됐다. 기둥과 처마도리, 보의 홈 따기 기계를 도입해 속도가 빨랐다.
젊은 시공팀은 기둥과 뼈대 세우기 열흘, 지붕이기 열흘, 이렇게 이십 일 만에 끝내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억수로 퍼붓는 빗줄기는 작업을 가로막았다. 시공팀은 비가 그치면 목수작업에 투입됐다가 비가 퍼부으면 빠지는 ‘5분 대기조’와 같았다.
비상대기가 길어지자 효율이 떨어지고 시공팀도 지쳐갔다. 하지만 젊은 시공팀답게 상황을 반전하는 저력을 나타냈다.
“새벽 6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강행군이 이어졌고, 비가 올 걸 대비해 야간작업도 병행했습니다. 시공 이사가 그러더군요. ‘저 친구들은 지금 노가다를 하는 게 아냐. 전투야! 전투를 치르는 중이라고.’ 시쳇말로 하루 품을 파는 게 아닌 온 몸을 다해 목수작업 그 자체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모습이 닮은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이 사장뿐만 아니라 이를 묵묵히 지켜 본 건축주도 “젊은 사람들이 한옥을 짓는 것도 놀라웠는데 일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해요. 집이 아닌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거 같았으니까요”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게 악전고투(惡戰苦鬪)를 치른 후에야 서까래와 평고대(平高臺 : 처마 끝에 가로로 놓은 오리목)와 개판(蓋板 : 서까래와 부연, 목반자 따위 위에 까는 널)이 얹어지고, 부연(附椽 )이 달렸다. 추녀 끝에서 휘어져들어 간 서까래와 부연은 한옥 지붕선의 맛을 그대로 살려냈다.
돌출된 현관 지붕과 거실 그리고 집의 양쪽 지붕에 목기연(박공 머리의 박공널에 직각으로 거는 짧은 서까래)을 단 박공이 팔작지붕의 전통미를 더한다. 그 이음매를 지네철(박공의 두 쪽이 마주 닿는 이음매에 걸쳐 박는 지네 모양의 쇳조각)과 장식으로 마감했다.
그리고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가 선을 잡고 추녀기와 얹는 자리에 연함(기와 받침 부재)까지……. 그때 이 사장은 전통과 현대한옥이 만나는 과정에서 고민을 했다고.
“장연과 단연으로 이뤄지는 전통 오량집(다섯 개의 도리로 구성된 지붕틀의 꾸밈새)으로 지붕선은 살리되 구조는 안정적인 트러스 방식으로 대체하고 그 위에 O.S.B 방수합판으로 마감했습니다. 한편 거실에만 별도의 오량 천장을 낸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으나, 이 또한 한옥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기와집하면 으레 지붕에 기와를 이을 때, 산자(지붕 서까래 위나 고미 위에 흙을 받쳐 기와를 이기 위해 가는 나무오리나 싸리나무 따위로 엮은 것) 위에 황토를 이겨서 깐다.
이를 ‘알매’라고 하는데 요즘처럼 지붕과 천장을 단열하고, 방수 시트에 못으로 고정하는 현대기와 시공에서 흙은 지붕의 하중만 얹을 뿐이라고. 건축주는 조선기와를 닮은 현대기와를 선택했다.
“조선기와는 해가 지나면 겉이 터서 벗겨지고 풀이 자라요. 반면 모양이 똑같은 조선기와는 3년에 한 번 칠만 하면 30년 이상 갑니다. 물론 동기와를 얹을까 생각도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죠.”
벽체는 황토벽돌 30㎝짜리를 눕혀 쌓은 후 작은 것으로 감쌌다. 외벽은 줄눈마감을, 내벽은 황토를 바른 후 벽지마감을 했다. 방에는 황토를 발라 마감한 후 장판지를 깔았으나 거실과 복도, 주방 등은 황토와 시멘트를 혼합해 바른 후 원목마루를 깔았다.
지루한 장마 속에 별내면 한옥이 제 모습을 갖춘 11월 건축주는 이주를 했다. 시간은 두 달여 걸렸는데 실지로 일을 한 시간은 한 달이 채 못됐다. 이십 일 만에 끝내겠다는 장담은 무색해졌지만, 불암산자락에 덩그렇게 자리잡은 한옥에서 시공팀이나 건축주 모두 맑은 가을 하늘을 보았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살 맛 나는 집
건축주 부인 김춘남(56세) 씨는 금년 봄 울밑에 호박을, 텃밭에 푸성귀를 심는 꿈에 부풀어 있다. 개운하게 맞이하는 아침마다 뒷산을 거닐며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킨다.
서울에서 불과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기 층이 다르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53평이라 청소하기가 다소 버겁지만 남편이 6남매 중 맏이라 집안 대소사를 치르려면 넓은 평수는 아니라고 한다. 금년 서른한 살인 아들이 장가를 가고 하나둘 식구가 늘 것까지 생각해 지은 집이기도 하다.
현관에 들어서면 다소 긴 복도 우측 끝에는 거실이 좌측에는 주방과 두 개의 자녀방이 나온다. 복도를 통해 자녀방으로 직접 들어가도록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 건축주의 배려다.
유독 동물을 좋아하는 건축주는 상가주택에 살 때 옥상에서 동물들을 키웠다. 옥상에 갇혀 지내는 녀석들을 보면 안쓰러웠는데, 이제 넓은 마당을 맘껏 뛰노는 열한 마리의 개를 보면서 매우 흡족해 한다.
요즈음에는 부인만큼이나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240여 평의 마당에 텃밭을 만들고 잔디와 과수나무도 심으려고……. 田
■ 글·사진 윤홍로 기자
■ 콘크리트건축업자 대 흙집업자의 만남
“일이 훨씬 편해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요’하면 금방 이해를 해요. 주변 정리 건 청소 건 다 알아서 할 테니 일에만 집중하라고 하니 다른 신경 쓸 일도 없고…….”
건축주는 그랬다. 같은 업을 하는 사람이기에 까다로울 줄 알고 미리 겁먹었으나 현장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기에 믿고 맡긴 일에 대해선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잔정(情)은 없어요.”
그건 또 그랬다. 현장에서 이골나게 일을 시켜 온 이력으로 볼 때 가족처럼 일하는 우리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더운데 고생한다며 음료수 하나 들고 올 만한데도 일체 잔정 표현이 없었다. 프로의 세계와 아마추어의 세계가 다르듯…….
우리는 그동안 조그만 일에도 얼굴을 찌푸리며 조바심을 내는 건축주와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다니며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우왕좌왕하는 건축주들의 모습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런 건축주들하고는 판이하게 달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잔정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보다 중요한 건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신뢰였다. - 행인흙건축 대표 이동일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건축형태 : 단층 목구조 흙집
·부지면적 : 308평
·건축면적 : 53평(지하 6평 별도)
·평면구조 : ‘ㄱ’자 형
·실내구조 : 방3, 거실, 주방, 다용도실, 욕실2, 보일러실
·외부마감 : 황토벽돌 줄눈마감
·내부마감 : 황토미장 후 벽지
·지붕마감 : 현대식 기와
·창 호 재 : 하이섀시
·바 닥 재 : 방-황토 미장 후 장판,
거실 복도 주방 - 원목마루
·난방시설 : 심야전기보일러
·건축비용 : 평당 550만 원
■ 설계·시공 : 행인흙건축(031-335-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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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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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배려, 예산 50평 2층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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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은 차령산맥과 가야산맥, 삽교천과 무한천이라는 굵직한 자연지형들로 형성된 곳이다.
이런 자연지형들이 흐르고 펼쳐지며 예당평야와 삽교평야를 이뤄 예산을 ‘풍요의 땅’으로 만들어 주었다. 특히 삽교, 오가, 신암, 고덕면은 대개 50미터 이하의 구릉지대이기 때문에 사과산지로 발전했다.
올해 초,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모태로 50여 년 간 자신의 삶을 가꿔 온 이의 아름다운 집이 완성됐다.
어머니의 땅
쌀과 사과로 유명한 예산은 예부터 내포(內浦)지방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자연이 내린 풍요의 땅. 건축주 배규희 씨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몇 년간 떠나있기도 했지만, 졸업 후 귀향해 1974년부터 과수농사를 시작했으니 줄곧 이곳에서 살아 온 셈이다.
50여 년을 살아 온 이 땅에서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았다. 그러나 땅은 어머니와도 같이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초기에 정부에서 토종 사과품종이었던 국광을 후지(부사)로 교체할 것을 장려해 노목을 없애고 유목을 심어야 했던 때도, 그래서 그 생산품이 나올 때까지 2년여를 하릴없이 기다려야 했던 때도, 1993년에 우박이 쏟아져 한창 수확기였던 살구가 상하고, 사과나무가 피해를 입었을 때도.
지금 배규희 씨는 지역 특산품으로 지정된 과일잼을 생산하는 예산농산영농조합의 대표다. 우박의 피해로 망연자실했을 무렵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살구를 이용해 잼 가공을 시작했고, 쉽지만은 않았지만 차근차근 노하우를 쌓아 안정 궤도에 올랐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먹고 살자’고 해온 일이지만, 그것이 곧 땅·지역을 위하는 일이 됐고, 그것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선순환을 이루었다.
올해로 53세. ‘하늘의 명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그는 인생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 그동안 자신의 뿌리를 감싸준 이 곳에 더욱 견고한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가족을 위한 욕심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내 집’. 그 전에 있던 집도 살 만한 집이긴 했다. 그러나 연로하신 어머니와 안팎으로 자신을 돕는 부인을 생각하니 이제 좀 더 욕심을 내어도 될 듯했다.
“어머니가 살면 얼마나 사실까 하는 생각에 집을 짓기로 했고요. 아내가 공장일을 돕는데, 그게 참 피곤하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하루의 피로를 모두 풀 수 있는 집’으로 지어달라고 했지요.”
‘편안한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인근 건축사무소에 가서 상담을 요청했다. 콘크리트 건물은 균열이 생기고, 모양도 썩 좋지 않아 막연하게 목조 스타일을 생각하고 있던 그였다.
그의 사정과 바람을 들은 건축사무소에서는 “전원주택은 전문업체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며 본지를 건넸고, 거기서 인연이 닿은 것이 ‘남양하우징’이다.
10여 년간 전원주택에서 노하우를 닦아 온 남양하우징은 이번 공사에서 C형강을 사용하는 일반 스틸하우스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H형강을 사용하고, 스터드(Stud)는 목재로 구성해 결로 방지와 난방, 층간소음 문제 등을 해결했다.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단열 등 기능적으로 완벽한 주택을 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양하우징이지만, 꼼꼼한 사업가 기질을 갖고 있는 배규희 씨는 계획부터 시공, 조경까지 모든 부분에서 직접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공사가 진행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타인에 대한 본능적인 의심은 점점 신뢰로 바뀌어 갔다. 공사기간 중에 비가 많이 와 작업이 지연되길 몇 차례, 공기는 예상보다 길어졌지만,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와서 함께 해결책을 찾는 남양하우징 측의 모습에 마음이 열린 것이다.
사람에게 ‘집’이 주는 특별함을 이해하는 남양하우징은 모든 공종을 건축주의 O.K 사인 후 진행했고, 덕분에 연면적 50평의 2층 스틸하우스는 건축주에게나 시공자에게나 만족스런 집으로 탄생했다.
말이 쉽지 그 모든 과정에서 건축주 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치는 일이겠는가. 덕분에 공사 ‘작업반장님’은 살이 3㎏이나 빠지고, 그에 대해 배규희 씨는 ‘참 탐나는 일꾼’들이라 표현한다.
함께 사는 세상, 열린 집을 위해
이 집은 신축이 결정되고, 기초를 다질 때부터 온 동네의 이슈가 됐다. 오랜 시간 알고지낸 이웃의 경사이기도 하고, 새로울 것 없는 동네에 잔치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고, 그 중 서너 명은 ‘예쁜 집’ 짓는 것을 배우겠다며 기초부터 완공까지 끈기 있게 지켜보았다.
집을 짓기로 하면서부터 부딪쳤던 난관들을 알고 있는 건축주는 그런 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오픈했다.
그리고 전원주택을 계획 중인 사람들이 참고할 자료들이 많이 부족하다며 본지에 좋은 집을 많이 소개해달라는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렇듯 여러 사람의 관심 속에 지어졌기 때문인지 배규희 씨 댁은 튼튼하고 아름답게 완공됐다. 특히 이 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어머니를 위하는 아들의 마음이다.
볕 잘 드는 1층에 위치한 어머니 방은 면적 면에서나 위치 면에서나 큰 비중을 둔 공간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배규희 씨의 마음을 반영한 곳이다.
요즘 사회문제시 되는 것처럼 노인을 공간적·사회적으로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널찍한 방에서 쉬다가 바로 연결된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도 보고, 항상 가족의 중심에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실상 집을 짓게 된 것도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오던 것이었으나, 일에 밀려 추진하지 못하다가 어머니 생전에 예쁘고 편한 집을 지어드리고 싶어 해를 넘기지 말자고 추진한 것이다.
가족을 위하고, 나아가 이웃을 위하는 건축주의 마음이 담뿍 담긴 집. 현재는 공장과 함께 위치해 다소 산만한 외부지만, 몇 개월 후에는 푸른 잔디가 자라나 포근함을 줄 것이고, 듬직한 소나무가 집을 지킬 것이다.
또 굳게 걸어 잠근 도시의 집들과 달리 야트막한 미관 담장만으로 구획을 해 놓아 공장직원들이나 지나가던 과객에게도 항상 열려있을 것이다. 田
■ 글·사진 이민선 기자
■ 건축정보
·위 치 : 충남 예산군 삽교읍 효림리
·건축형태 : 철골+2″×4″목구조
·부지면적 : 200평
·건축면적 : 50평(1층 30평, 2층 20평)
·실내구조 : 침실 4, 거실 1, 식당 1, 주방 1, 욕실 3
·외벽마감 : 시멘트 사이딩
·내벽마감 : 석고보드, 실크벽지
·지붕마감 : 아스팔트 슁글
·바닥마감 : 온돌 마루
·창 호 재 : 시스템 창호
·난방형태 : 심야전기
·식수공급 : 지하수
■ 설계·시공 : 남양하우징(031-555-7020~1,
www.namyanghous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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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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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건축의 결정체, 공주 45평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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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는 금남정맥(錦南正脈)의 중심에 계룡산이 있고 이 산자락을 감싸고 흐르는 금강이 있어 풍광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역사상 아주 중요한 역사무대가 되곤 했다.
공주는 문주왕 원년(475)에 하남 위례성에서 천도하여 64년 간 백제의 도읍지였다. 지금도 무령왕릉과 공산성 같은 상징적인 백제유적이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또한 여러 개의 박물관과 4만여 명의 학생들이 면학에 열중하는 문화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2시간, 천안에서 좀 더 내려가면 천안-논산 간 민자고속도로가 나온다. 정안 I.C를 빠져나와 논밭길을 달리다 보면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문화마을에 이른다.
공주에서 처음으로 목조주택 시공을 하며 친환경적인 주택사업을 시도한 드림우드의 이용택 사장을 만났다. 우성문화마을단지 내에 자리잡고 있는 새하얀 목조주택은 그와 그의 부인 홍양래 씨 그리고 두 아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다.
분양 관련 업무를 해왔던 이 사장이 집짓는 일을 결심한 것은 (주)나무와 삶의 최원화 실장과의 인연에서 비롯했다.
‘목구조주택을 제대로 짓는 방법을 널리 알리자’는 이념을 가지고 목조주택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그에 대한 신뢰가 건축의 세심한 부분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100년 살 집을 짓기 위한 노력
이 사장은 1999년 평당 23만 원에 대지 151평을 구입했고 ‘내 손으로 완성한 첫 작품’을 위해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공사는 같은 해 8월에 시작해 4개월 동안 진행했다. 기초배관공사 후, H빔과 2″×4″경량목구조를 이용해 기초공사가 완료됐다.
설계는 복층 개념의 실속 있는 건축에 중점을 뒀다. 단열재와 석고보드를 이용한 벽체작업을 진행했고 가세작업도 완료했다.
이후 2층 장선 설치 및 더글러스보 작업과 1, 2층 벽체의 작업을 끝냈다. 방수 시트 설치 및 창문설치와 벽난로 시공으로 건축을 마무리했다.
1층은 거실과 주방, 부부침실과 자녀방, 드레스룸이 있는 화장실로 구성했으며, 2층엔 보조거실과 자녀 방이 있다. 내부는 실크벽지와 루바로 마감했고, 거실바닥엔 강화마루를 깔아 목조주택의 분위기를 더했다.
시스템 창호를 이용해 단열에 신경을 썼고, 섬세한 몰딩을 이용해 꼼꼼히 마감했다. 계단 아래 통로에 문을 내 다용도실을 만들었다.
집안 구석구석의 인테리어는 부인 홍 씨의 솜씨다. 하디사이딩으로 마감한 새하얀 외관에 진갈색 창틀로 포인트를 줬고, 현관 옆으로 넓게 자리한 덱(Deck)은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있던 이들에게 전원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만은 않았다. 부녀회 및 마을활동에도 참여해야 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라도 그러하듯 원주민하고의 마찰도 있었기 때문.
하기에 “무엇보다 동네 인심이나, 성격을 파악하고 조화롭게 동화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안주인은 조심스레 충고한다.
집을 짓다 보니 집 앞으로 자재가 쌓여 있고, 수시로 작업차량이 들고나서 정원을 가꿀 겨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촬영차 앞마당을 정리했으니, 새 봄이 되면 나무도 심고 꽃도 가꾸며 예쁜 정원을 꾸밀 계획이라고 한다.
목조주택이 건강회복에 한 몫
환경친화적인 목조주택의 시공을 가장 만족해 하는 사람은 부인 홍 씨다.
위암수술을 받으며 병마와 싸워 온 그는 이곳으로 이사온 후, 만성두통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고 설명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며, 나무향내가 나는 쾌적한 환경은 건강회복에 큰 도움을 줬다.
규격화된 자재를 이용하는 목구조주택은 공사기간이 짧아 경제적이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무엇보다 평균 내구 연수가 100년 이상을 자랑한다. 목재 자체로 단열 및 보온 성능이 우수해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며, 자동적인 습도 조절로 쾌적한 실내 공기를 유지한다.
이는 수십 년 동안 북미지역에서 주택 건축의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으로 채용되어 보편화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앞으로 주거문화를 선도하는 주택형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곳 사람들에게 목조주택에 대한 인식은 미흡한 게 사실이다.
“처음 집을 지을 때, 어떻게 집이 올라가는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더군요. 게다가 저렴한 시공이 가능한 조립식 주택이나 조적조 건축형태가 보편화 돼 있는 이유도 한몫 하죠.
황무지를 개척해서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라며 이 사장은 굳은 의지를 내비친다.
그가 목조주택에 대한 인식의 체계적인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정직한 건축을 위한 집짓기에 앞장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오랜만에 마당을 하얗게 덮은 함박눈을 반가이 여기는 이들 부부의 웃음 속에서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했다. 田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주 인터뷰(부인 홍 씨)
조금 야위어 보이는데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 큰아들이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가게 됐던 때가 있었어요. 저도 평소 소화가 잘 안되었던 터라 검사를 받아봤죠.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권유와 함께 위암이라는 판명을 받았어요.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로 완치될 수 있었죠.
아무래도 몸이 아프면 가족들에게 소홀했을 텐데…
- 저는 평소 몸이 약해서인지 만성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죠. 나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신경질도 많이 내고 가정일도 힘들 때가 많았어요. 신기하게도 이곳으로 이사와 진통제를 끊을 수 있었어요. 이젠 웃는 엄마가 되어 있죠. 수술 회복도 빨라졌고, 건강이 훨씬 좋아졌으니까요. 저희가 집짓는 일을 하니까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목조주택의 우수성을 직접 체험한 저로서는 과히 놀라울 정도였어요.
다시 아파트 생활을 권유한다면?
- 다시 아파트에 들어가 살라면 전 손사래를 칠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 크게 듣고, 가끔은 아이들을 키우며 언성을 높일 수 있는 이곳이 사람 사는 곳 같으니까요.(웃음)
■ 건축정보
·위 치 : 충남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건축형태 : H빔 + 2″×4″ 경량목구조
·부지면적 : 151평
·건축면적 : 45평
·실내구조 : 1층 - 부부침실, 거실, 주방, 화장실, 방1
2층 - 거실, 방2, 발코니
·외벽마감 : 시멘트사이딩
·내벽마감 : 실크벽지, 루바
·천정마감 : 목조노출, 루바
·지붕마감 : 아스팔트 슁글
·난방형태 : 기름보일러
·건축비용 : 320만 원
■ 설계·시공 : 드림우드
(041-855-3144, www.dreamwoo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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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