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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멋과 현대의 편리함 조화된 36평 개량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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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어느 정도 경제생활에 안정을 찾은 현대인에게 있어서 최대관심사는 건강이다. 먹고사는 생계문제에서 벗어난 요즘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물질적 풍요 속에서 건강한 육체로 오랫동안 살수 있을까?’라는 문제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사의 변화는 집의 역할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과거 단순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공간으로써의 집은 이제 더 이상 현대인에게 매력이 없다.
이제 사람들은 집이라는 것에 생활, 휴식의 공간으로써의 역할뿐 아니라 건강을 유지, 치유해주는 역할까지 기대한다. 최근 일고있는 전원생활의 열풍과 흙집에 대한 선호는 이를 뒷받침해 준다.
경기도 광주의 전원에 흙집을 지어 살고 있는 최수호, 김숙씨 부부는 만성비염에서 오는 두통으로 고생하던 남편 때문에 맑은 공기의 전원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결론부터 말해 그는 두통에서 해방되었고 지금은 흙집 예찬론자가 돼 흙집이 만병통치약인양 열변을 토한다.
처음 이들 부부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부지가 작고 뒤편에는 묘지가 있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텃밭을 일구어 수확의 기쁨을 느끼며 정원을 가꾸는 등 어느 정도 전원생활을 누리고 싶었던 이들은 넓은 텃밭과 정원을 원했다.
하지만 이곳은 공동개발지로 일정부지를 쪼개어 분양됨으로 그들이 분양 받을 수 있는 부지는 넓지가 않았던 것이다. 건축을 하고 나면 남는 땅이 별로 없을 정도.
그러나 경치가 좋고 앞뒤의 땅에는 건물이 들어설 수 없어 자신의 것은 아니지만 텃밭을 만들 수 있겠다싶어 이곳 부지를 매입하고 집을 지었다.
작년 3월에 착공해 8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그해 11월에 완공된 최수호씨 부부의 집은 기와지붕에 흙벽돌로 벽을 쌓은 개량한옥이다.
하지만 집의 실내구조나 모양에 있어서 전통한옥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또 시공에 있어서도 현대식 공법이 많이 가미됐다.
사랑채, 뒷간, 행랑채 등 전통한옥에서는 각각 독립체이던 것들이 한 건물 안에 배치한 2층 건물의 서양식 구조를 보이지만, 지붕을 이루는 서까래, 들보, 도리 등의 통나무 구조체와 그 위에 얹어진 기와, 황토벽돌로 쌓은 벽면 등 우리전통가옥의 양식을 많이 따랐다.
한마디로 전통한옥의 장점과 현대건축물의 편리함이 접목된 색다른 모양과 형태라 할 수 있다.
청기와가 얹어진 지붕은 맞배(박공)지붕 형식으로 측면의 구조체가 완연히 드러나 구조미가 돋보인다.
또 지붕의 물매가 대체적으로 완만하고 처마는 길게 뻗쳐있는데, 이는 강우량이 적은 지역의 전통한옥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형식이다.
처마 밑으로는 툇마루 형식의 데크가 길게 건물을 두르고 있는데 난간을 처마 끝 부분과 맞닿은 기둥에 가로로 긴 통나무를 대어 만든 것이 특징적이다.
보통 전통한옥에서는 기초작업 후 흙이나 잔디 돌 벽돌 기와 등으로 기단을 쌓아 땅의 습기와 곤충 등으로부터 보호역할을 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 집의 경우 콘크리트 옹벽을 쌓아 기단을 대신했고 이 때문에 생겨난 지면과 본 건물사이에 공간은 다용도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출입구까지 오르는 계단은 목조구조물로 해 자연미를 살렸다. 또 현관문은 목구조의 쌍 여닫이문으로 만들어 한옥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렸으며,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서는 문은 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설치, 외풍을 차단했다.
내부로 들어서면, 먼저 1, 2층이 완전 개방된 거실 겸 주방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계단 및 난간, 천장구조체, 기둥 등이 목조구조물로 되어 있는데, 이들의 갈색 톤과 황토로 마감한 벽면의 색이 조명과 어우러져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보, 도리, 서까래 등 지붕의 구조체와 그사이를 메우고 있는 황토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은 이러한 분위기와 더불어 한옥의 구조미를 한층 고조시킨다.
계단을 통해 이층에 오르면, 한옥양식의 빗살완자창문이 달린 창을 통해 바깥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층거실이 있다. 일층의 공간과는 달리 천장이 낮아 아늑한 분위기이고 일층의 개방된 공간과는 목조로 된 난간을 설치, 구분했다.
이 건물에 사용된 목재는 국산 낙엽송이고 흙벽돌은 진천지역에서 나는 황토를 사용, 제작한 것이다.
건축주는 될 수 있으면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현대 건축에 사용되는 자재는 피했고, 다만 황토벽돌의 취약점인 물에 약하다는 것 때문에 물이 많이 닿는 곳인 욕실과 주방의 벽면은 시멘트벽돌에 시멘트와 황토를 혼합하여 마감했다.
이들 부부는 “처음에는 묘지라는 생각에 무섭고 께름칙했지만 지금은 뒤편의 잘 다듬어진 잔디와 아름드리 소나무로 가꾸어진 묘지가 훌륭한 정원 역할을 해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10평 남짓한 텃밭을 일구는데 부인이 하루종일 매달리고 남편 최씨가 조금씩 힘을 보태어도 그 일이 만만치 않은데 더 이상의 텃밭은 이제 부담스럽다고, 또 이 정도에서 얻어지는 수확물로도 자신의 가족이 충분히 먹고 남는단다.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경기 광주군 광주읍 목리
부지면적: 90평
구입년도: 1999년 3월
구입비용: 평당 80만원
건축면적: 36평 (1층 21평, 2층 15평)
실내구조: 1층-안방, 작은방, 거실 겸 주방, 욕실 2층-작은방, 거실, 화장실
건물형태: 2층 개량한옥
벽체구조: 흙벽돌, 통나무(낙엽송)
내벽마감: 황토미장
외벽마감: 황토미장
바닥재: 온돌마루
지붕마감: 청기와
난방형태: 전기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상수도 겸용
건축비: 평당 3백5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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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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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슈] 도시민 농지소유 900평까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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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 농지소유 900평까지 확대
-농림부, 농지제도 대폭 개선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우리나라 농촌이 초고령 사회 진입 직전 단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농촌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도시인의 농지 소유 상한을 현재 302.5평에서 약 900평까지 큰 폭으로 늘릴 계획이다. 또한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로 필지가 작거나 경사가 심한 곳은 다른 용도로 바꿀 때 면적 제한을 없애서 개발이 한층 쉽도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농지 전용을 허가받은 개발업자가 내야 하는 대체농지조성비의 부과기준도 조성원가에서 공시지가로 바꿔 부담을 줄여줄 계획이다. 농림부는 이 같은 규제 완화 방안을 금년 5월 말까지 확정한 뒤 연내 농지법 개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허상만 농림부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금년 중 지금까지 규제 위주로 운영해 오던 농지제도를 WTO/DDA, 쌀 재협상 등 여건 변화에 대응해 영농 규모화 등 농업 경쟁력 강화와 농촌의 활력 증진을 뒷받침하도록 대폭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금년 농지제도 개선에서는 국민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국토 환경 보전을 위해 우량 농지는 최대한 보전하면서, 영농 규모화를 촉진하기 위해 농지 소유 및 이용 제도를 혁신하고, 농촌 활력 증진을 위해 전용제도 및 농지조성비제도를 대폭 개편, 농지시장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농지 관리 기능을 확충하겠다”고 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량 농지는 농업진흥지역을 중심으로 최대한 보전한다.
적정 농지 면적은 농업진흥지역과 생산(보전)관리지역으로 지정 관리하고, 농업진흥지역의 농지 중 경지정리 등 생산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농지를 진흥지역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또한 진흥지역에서 제외된 농지와 진흥지역 밖 우량농지는 생산(보전)관리지역에 편입해 관리한다. 한편, 진흥지역 등 보전대상 농지에 대해서는 농업인의 소득과 편의가 증대되도록 농업에 필요한 시설 설치 범위를 확대하고 규제에 상응하는 지원을 강화한다.
농지의 소유 제한 완화
농지의 소유 제한도 최대한 완화하고 이용 제도를 혁신적으로 개선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주말·체험영농목적을 위한 비농업인의 소유 상한을 확대하는 등 농지 소유 제한은 경자유전의 원칙 범위 내에서 최대한 완화하게 된다.
아울러 임대차를 통한 영농 규모화가 가능하도록 자경 목적 소유농지의 임대차와 위탁 영농 허용도 추진된다.
기존 진흥지역 밖 농지의 전용제도를 대폭 개편해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전용시 면적 제한을 철폐하는 등 제한을 대폭 완화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진흥지역 밖 농지전용허가권한의 위임 범위도 대폭 확대된다.
다만, 농지전용 규제 혁신은 투기와 난개발 방지를 위해 국토계획법상의 관리지역 세분화, 즉 토지적성평가를 바탕으로 수도권 내 시·군과 광역시, 광역시와 인접한 시·군은 2005년 말, 그 밖의 시·군은 2007년 말까지 세분돼 있는 계획과 연계해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지역특구 내의 농지에 대해서는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전면 자유화하고, 전용제한도 대폭 완화해 지역특성에 맞는 개발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한다.
농지조성비제도 개선
농촌지역 투자가 활성화 되도록 농지조성비제도도 개선해, 농지조성비의 부과 기준을 기존의 농지조성원가 기준에서 공시지가 기준으로 변경하고 단가 수준을 인하한다.
농지조성비 단가 : 2만1900원/㎡(경지정리 + 용수개발), 1만300원/㎡(기타농지)
농촌투자와 공공투자에 대한 감면 폭도 확대하는 등 농지조성비 감면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해 경제자유구역, 제주자유도시 등 특정지구 내 공공개발 및 농촌지역 투자에 대한 감면 폭을 대폭 확대하게 된다.
농지 유동 정보화 지원 및 신탁 기능 도입
농지시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농지 관리 기능을 확충하기 위해, 우선 농지시장의 수급 조절을 위해 농지제도 개선과 병행해 농지 유동 정보화 지원 및 신탁 기능 등을 도입하게 된다.
신탁 기능은 농업인이 농지를 신탁할 때 농업기반공사가 농지 대금의 일정 부분(70%)을 우선 무이자로 지원하고, 농지를 전업농에게 매도 후 매도대금을 정산하는 제도다.
단기간 급격한 농지가격 하락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농지를 매입 후 전업농에게 매도·임대하는 농지매입 기능 도입도 검토할 예정이다.
금년부터 농어촌주택 세제 감면
1세대 1주택자 농어촌주택 취득 보유 후,
기존 주택 양도시 양도소득세 감면
양도세 비과세 농어촌주택 건평 45평까지 허용
금년부터 건물 면적이 45평까지인 농어촌주택을 구입해 1가구 2주택이 됐을 때, 도시지역 주택을 팔더라도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에 따라 농어촌주택을 구입해 펜션·민박 등의 용도로 활용하게 됐다.
1세대 1주택자가 농어촌주택 취득 후, 취득 전에 보유하던 다른 주택을 양도할 때 양도소득세 비과세 특례를 인정하는 ‘조세특례제한법 및 동법 시행령’(법 제99조의4, 영 제99조의4)이 국회를 통과해 금년부터 시행된다.
법 개정 전에는 1세대 1주택 3년 보유에 한해 비과세를 인정(소득세법 제89조, 시행령 제154조)함으로써 농어촌주택 취득에 따른 양도세 부담으로 농어촌주택 구입을 기피했다.
그러나 법이 개정됨으로써 도시민의 농어촌주택 취득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1세대 1주택자가 2003년 8월1일부터 2005년 12월31일까지 기간 중에 농어촌주택을 취득해 3년 이상 보유하고, 당해 농어촌주택 취득 전에 보유하던 일반주택을 양도할 경우에는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한다.
한편 농어촌주택과 일반주택이 행정구역상 동일한 읍·면, 또는 연접한 읍·면에 소재할 경우 감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농어촌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특례 범위는 다음의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첫째, 광역시 및 수도권 지역(접경지역 제외) 이외의 읍·면지역으로 도시지역, 허가구역, 지정지역, 관광단지를 제외한 농어촌주택.
※경기도 연천군, 인천광역시 옹진군, 그밖에 지역특성이 이와 유사한 지역으로 재정경제부령이 정하는 지역은 과세특례가 적용된다.
둘째, 대지 면적이 약 200평(660㎡) 이내.
셋째, 주택 연면적이 약 45.3평(150㎡ ; 공동주택의 경우 전용면적 116㎡) 이내.
넷째, 주택 및 이에 부수되는 토지 가액(기준시가)의 합계액이 당해 주택의 취득 당시에는 7000만 원이하, 일반주택의 양도 당시에는 1억 원 이하.
휴양 목적으로 취득한 농어촌주택
‘별장’으로 보지 않고 지방세 중과 배제
농어촌주택 추가 취득·보유에 따른 지방세 중과 배제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읍·면 소재 농어촌주택 취득 보유시 지방세(취득세, 재산세, 종합토지세) 중과 대상 별장에서 제외하는 ‘지방세법및동법시행령’(법 제112조제2항, 영 제84조의3제1항) 금년부터 시행됐다.
종전에는 지방세법상 상시 거주하지 않는 주택은 ‘별장’으로 간주해 주말주택 등으로 이용하는 농어촌주택은 지방세를 중과세했다.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는 5%(일반 농촌주택 세율은 통상 0.2∼0.5%), 취득세는 일반세율의 5배(10%)로 중과 (등록세는 일반세율과 같은 3%).
※별장이란, 주거용 건축물로 상시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휴양, 피서, 위락 등의 용도로 사용하는 건축물과 그 부속토지(지방세법 제112조).
그러나 ‘지방세법및동법시행령’이 개정됨으로써 농어촌주택은 사치성 별장과 차별화를 두어 선진국과 같이 제2의 주택(second house) 개념으로 도시민의 소유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일정조건을 충족하는 읍·면 소재 농어촌주택 및 그 부속토지는 취득세 등 지방세 중과대상 별장에서 제외
둘째, 농어촌주택의 지방세 중과 대상 별장에서 제외되는 다음의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함
-광역시 및 수도권 지역(접경지역과 자연보전권역 중 행정자치부령이 정하는 지역은 제외)을 제외한 읍·면지역으로 도시지역, 허가구역, 지정지역, 관광단지를 제외한 농어촌주택
-대지면적 약 200평(660㎡) 이내
-건물 연면적 약 45.4평(150㎡) 이내
-건물의 시가표준액 2500만 원 이내 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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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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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 두 배 즐기기] 내 맘에 쏙 드는 공간별 인테리어 소품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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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부터 전원주택 및 펜션 꾸미기의 일환으로 인테리어 소품을 소개한다. 어렵고 힘들게만 생각해 오던 집 꾸미기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이 달의 주제는 인테리어 소품을 이용한 공간별 구성 연출로, 모쪼록 누구나 쉽게 집 꾸미기를 할 수 있는 안내지침서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전원주택의 인테리어는 일반 상업공간디자인하고는 다른 점이 많다. 일반적으로 상업공간은 그 건물의 소유주가 누구이든지 사용자는 일반적인 대중이 된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객관에 의해 공간의 개념을 설정하고 디자인을 리드해 갈 수 있다. 반면에 전원주택의 경우 일반 대중으로 보편화시킬 수 없는 이들이 사는 곳이므로 디자이너의 객관성에만 의존할 수 없다. 하지만 간단한 소품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건축주의 다양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자 그럼 손쉬운 공간별 인테리어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들은 흔히 '거실'을 그 집의 얼굴이라고 표현한다. 손님이 방문했을 때, 가장 먼지 보여지는 부분이기 때문. 거실은 간접조명에 의한 빛의 연속성이 돋보이게 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가구를 배치하면 모던한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모던한 스타일의 장식이나 세련된 앤틱스타일 장식품 몇 가지만으로도 특별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1. 원목키 박스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어 더욱 고급스러운 앤틱스타일의 '원목키 박스'. 앞면에 사진을 끼울 수 있는 액자형으로 제작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의 사진을 끼워두시고 내부는 열쇠 등을 수납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된다.2. 원목 파티션'우리집 공간을 나누는 매력만점의 원목 파티션.'파티션은 실내를 장식하는 포인트도 되고 공간을 구분하는 가리개도 되기 때문에 젊은 층에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선호한다. 월넛색 나무프레임 세 개를 경첩으로 연결해 견고함을 더했고, 패브릭으로 되어 있어 멋스럽고 세탁도 가능하여 실용적이다. 원룸에선 침실과 거실, 거실과 주방으로 공간을 구분할 때 주로 이용하며 지저분한 부분을 가려주기도 한다. 3. 잡지꽂이 사각 바구니잡지나 우산 등을 꽂을 수 있는 등나무 바구니. 짜임이 견고하고 튼튼해서 잡지나 무거운 물건을 수납할 때 용이하다. 색상 또한 그린과 갈색이 믹스되어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한다.4. 앤틱새장다양한 분위기로 연출할 수 있는 새장 장식품. 안쪽에 초를 얹을 수 있는 받침이 있어 램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조그마한 화분을 넣어 화분 받침으로 쓸 수도 있고, 그냥 걸어만 놓아도 앤틱분위기를 연출해준다. 5. 클라라 대쿠션차분하고 어두운 컬러로 제작된 대쿠션 세트. 바닥은 양면모두 진한 커피색이며 등쿠션은 진한 커피색과 꽃무늬 패턴을 양면으로 제작한 디자인. 좌식소파로 이용되는 디자인으로 온돌에서의 장식이 돋보인다. 바닥은 커피색, 등쿠션은 플라워 패턴으로 연출할 수도 있다. 원목 컬러의 가구와 잘 어울린다. '주방'은 기존 일률적인 소재에서 탈피해 메탈릭 한 소재를 이용한 다양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부터 기능성과 세련미, 군더더기 없는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꾸며보자. 동선에 따른 인테리어 소품을 장식함으로써 안주인의 감각을 돋보이게 한다. 6. 라탄 정리함귀여운 레이스가 달려있는 미니 라탄 바구니. 세 칸으로 나누어져 있어 무엇이든 깔끔한 정리가 가능하다. 식탁 위의 수저통이나 거실의 리모콘 정리함으로도 손색이 없다. 또한 레이스가 앙증맞아서 화장대 위에 장식된 화장품 정리용으로도 잘 어울린다. 7. 미니주전자 포푸리깜찍한 주전자 모양의 포푸리. 단순한 장식만으로도 아기자기한 효과를 낼 수 있으며 포푸리나 커피알갱이를 담아 놓으면 향기를 더하는 장식이 된다. 8. 울타리선반수작업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핸드메이드 선반. 나무를 다듬어 꼼꼼히 칠을 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포인트를 준다. 나뭇잎 무늬를 스텐실로 새겨 넣어 정성이 가득 담긴 장식품으로 탄생했다. 내추럴 한 공간을 꿈꾸는 이에게 꼭 알맞은 필수 아이템. 상단선반에 작은 화분이나 소품들로 장식하고 하단 고리엔 주방장갑이나, 앞치마, 열쇠 등을 걸어 수납공간으로 활용한다. 9. 큐티 플라워냅킨/매트비비드한 컬러의 플라워프린트가 돋보이는 큐티플라워 냅킨/ 매트 세트. 화이트 테이블보나 테이블보 없이 사용할 때 포인트로 장식이 가능하다. 톡톡 튀는 플라워 프린트의 컬러가 어느새 주방분위기를 사로잡아 버린다. 10. 핑크로즈 테이블보핑크 플라워 무늬가 주방 전체를 환하게 해줄 것 같은 테이블보. 핑크컬러의 프린트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화사함을 더한다. 어떤 스타일의 식탁하고도 잘 어울린다.'욕실'은 기존 모던공간에서도 주인만의 개성과 취미가 가장 돋보이는 독특한 공간이다. 백색공간 속에 앤틱 소품 및 도기가 돋보이도록 연출하는 것은 어떨까.11. 내츄럴선반수작업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핸드메이드 선반. 들꽃장식과 새 장식까지 섬세하고 귀여운 디자인이 돋보인다. 작은 공간도 넓은 들판을 연상시키는 공간연출이 가능하며, 작은 화분이나 액자 등을 올려 장식해 포인트를 줄 수 있다. 12. 히야신스 유리화분세트깜찍한 스타일의 히야신스 화분. 선명한 컬러의 히야신스와 미니유리화분이 시원한 느낌을 주며 생화 못지 않은 화사함을 표현해준다. 식탁이나 화장실 등 어느 곳에 놓아두어도 생기를 더해준다. 13. 벽걸이 화분바구니작은 화분을 담아서 벽이나 천장에 걸어놓을 수 있는 바구니. 입구가 타원형으로 비스듬하게 뚫려 있어 길게 자라는 화초나 작은 화분을 넣어두기에 좋다. 위 부분은 여러 개의 고리가 연결된 형태로 원하는 길이에 걸어두면 된다. 14. 스틸미니 양동이세트아기자기한 미니 양동이 세트. 나란히 자리한 3개의 양동이에 포푸리나 커피 알갱이를 담아서 방향제로 사용이 가능하다. 여러 가지 조화를 꽂아서 앙증맞은 화분으로 사용해도 좋다. 15. 캘리 장미바구니화사한 분위기를 쉽게 연출 할 수 있는 캘리 장미바구니. 자연스럽게 바구니에 한 두 다발을 꽂아 장식할 수 있고, 화이트 도기에 한 다발만 꽂아서 장식해도 아름다운 공간연출이 가능하다.'침실'은 아늑하고 편안함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건축주의 취향이 엿보인다. 최근에는 침실 장식으로 캐노피를 이용해서 동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공주님 방의 연출하는 장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도자기 액자나 비즈랜턴 등의 간단한 소품을 활용한 장식이 침실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16. 브라이드 액자단아한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연상케 하는 브라이드 액자. 레이스 장식이 얌전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신혼의 아름답고 달콤한 추억을 이 액자에 담아 장식하면 좋다.17. 핑크체크 바란스독특한 디자인과 꼼꼼한 바느질이 돋보이는 핑크체크 바란스. 화이트에 핑크체크 원단을 매치 해 깔끔하고 상단의 고리와 리본 장식으로 깜찍함을 더한 사랑스런 디자인. 바란스 사이즈를 창문의 두 배 정도로 해 자연스러운 주름이 생기도록 하면 더 예쁘다. 18. 플라워캐노피외국데코잡지나 고급인테리어매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벽장식 캐노피. 화사한 핑크장미 스웨그에 하늘거리는 쉬폰 소재원단을 결합시킨 디자인으로 신혼부부의 침실분위기를 로맨틱스타일로 바꿀 때 많이 사용한다. 침대 위나 화장대 위에 스웨그만 걸어 놓아도 센스 있는 코디가 된다. 플라워캐노피 하나 만으로도 실속 있고 달콤한 공간연출이 가능하다. 19. 앤틱원형 티슈커버원형 티슈를 넣어서 사용할 수 있는 티슈커버. 앤틱 레이스 자수 원단이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작은 소품으로도 안주인의 섬세함과 감각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20. 비즈랜턴벽에 걸거나 바닥에 내려놓고 사용할 수 있는 랜턴으로 밀납초와 함께 구성돼 있다. 자그마한 장식 소품이나 양초를 이용한 장식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한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는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는 다양한 점포들이 즐비해있다.좀 더 고급스러운 곳을 구경하려면 강남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소품집을 찾아다니면 된다.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활용하는 방법도 보편화 된 상태다. 지역에 제한을 받지 않고, 힘들게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 이번 주말엔 독특하면서도 여러모로 다양한 소품들로 집안 구석구석을 꾸며보는 건 어떨까. 田■ 정리 김혜영 기자■ 사진·자료협조 : 로맨틱데코 (02-511-4288, www.romanticde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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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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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정신적 중심성을 찾아서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황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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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람들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바락바락 애를 쓰니까 노자 같은 이가 무위(無爲)를 가르쳤다. 그는 유위(有爲)의 병에 걸린 인간들에게 무위라는 약을 처방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위에 안주한다면 그것 또한 큰 병이 아닐 수 없다. 유위와 무위를 나눈 것부터가 사실 잘못된 것이다. 우리 인간의 관념과 사고가 만들어 놓은 함정이다. 자연상태에서는 유위와 무위의 구별이 없다. 그저 그럴뿐이다.”
- 황명찬의 《무위(無爲)도 넘어서》 중에서
어린아이에게 하양 백지를 준다면 조만간에 본연의 색을 잃고 어떤 추상적인 선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 시간이 짧든 길든 간에 분명 그리될 것이다.
이는 아이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연륜이 쌓일수록 채워지는 선이 추상에서 구상으로 바뀐다는 차이를 보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빈 것’을 보면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어린시절에야 큰 억압이 안 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것은 일종의 강박으로 작용해 수시로 스스로를 억압한다. 빈 것을 채우되 가능하면 ‘잘’ 채울 것.
그러나 백지는 ‘하양’으로 이미 차있는 것일 수 있다. 물을 비워낸 컵은 ‘빈 컵’이 아니라 공기로 가득 찬 컵일 수 있고, ‘아무 것도 없음’은 그 ‘아무 것도 없음’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동양화에서의 여백이 주는 그 풍부한 느낌 역시 이와 같은 이치다. 여백의 미. 도시인에게는 좀체로 찾아보기 어려운 그것을 찾아내고 싶었다.
한 달 내내 마감과 사람들에 얽혀 너무 ‘꽉 찼다’고 생각할 즈음 사람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제법 규모있게 내린 눈이 세상살이로 과포화된 뇌를 식혀준다.
내면적인 혁명
“주위에서 전원생활을 한다니까 용기있다고 하데요.”
사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각박한 도시라지만 어느날 툴툴 털고 귀향할 수 없음은 그를 구체적으로 계획해 본 사람이 더욱 절실히 깨닫는 문제일 것이다.
전원생활이란 돈만 있으면 집을 구해서 들어가는 도시와 달리 터잡는 것부터 온 몸으로 부딪혀야 되는 수고로움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돌연 전원행을 택한 이들에게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명찬 선생은 그 용기를 좀 더 구체화시킨다. 일종의 ‘혁명’이라고 보는 것이다. 세계 유명 아이스크림회사 사장 아들이 상속권을 포기하고 전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미국의 잘 나가는 법률가들이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어떤 계기로 충격을 받고, 그에 대한 반성이 따르면서 내면적인 혁명이 발생해야 합니다.”
그에게도 이러한 변화가 있었다. 외국에서 수학하면서 오히려 동양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깨달음이 생겼고, 동양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물질적인 것, 양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던 것에서 정신적이고, 질적인 것으로의 전환. 그것은 일종의 수련이 되어 그의 마음은 서서히 변화했다.
치유의 집
몇 년 전 병이 있는 사람이 들어가면 누구나 곧 낫게 된다는 ‘치유의 사원(Healing temple)’이야기를 보고 감명받은 선생은 집과 가족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관계자들이 ‘사랑, 평화, 자비, 조화’라는 공통의 염원으로 건설해 그러한 정신과 기운으로 몸의 병까지 치유된다는 그 곳처럼 집도 가족도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 이것이 전원으로 오면서 ‘집’ 자체에도 신경을 쓰게 된 동기다.
설계와 시공은 건축가 조병수에게 의뢰했다. 세월리에서 본 그의 주택이 좋았던 탓이다. 요구사항은 ‘편해서 들어가면 나오기 싫은 집’일 것. 편하고, 따뜻한 집,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다.
집도 편안함으로 가족을 불러들이고, 가족 역시 그러한 기운 속에서 서로를 사랑으로 대해야 모두가 건강하다는 생각이다.
전원주택으로 흔히 볼 수 없는 박스 형태의 집이 지어졌다. 외부로는 절제와 정돈을, 내부로는 가변성과 시각적 자유를 준 디자인이다.
주변의 풍광은 창문을 투과하면서 크고 작은 그림이 되고, 창문들은 제 구실을 다해 모자람 없이 햇빛을 전달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내부는 최소의 가구만이 놓여져 그 주인의 성품을 대변한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
부부 모두 시골출신이라 전원생활에 거부감이 없었고, 워낙 호흡기가 민감해 서울서 살 적에도 공기 좋은 곳만 찾아다녔다.
현재 서울의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두루 살았지만, 집값이 오르기 직전 이사를 나오곤 해, 아들은 “돈 피해 다니시냐”며 놀린단다. 이런 사정이야 남들이 보기에는 참 아깝고 답답하겠지만 정작 그들 부부는 태연하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앞으로 할 것도 남아있으니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태극권과 태극검으로 하루를 열고, 책을 읽거나 주변에 산책을 나가 사색에 잠기며, 아내와 함께 맛있는 식당으로 마실을 간다.
어찌보면 심심할 수 있는 일상.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면 도시인과는 다른 무엇으로 꽉 차있어 풍요로운 모습이다.
현재 이들 부부에게 소망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티벳으로의 여행이다. 그 중에서도 ‘카일라스 산’. 4대 종교의 성지라 알려진 성산이다. 사진과 지도를 펼치며 설명하는 황명찬 선생의 마음은 이미 티벳에 있다. 선생의 목소리를 따라 함께 티벳의 고원을 달린다. 田
■ 글·사진 이민선 기자
■ 프로필
황명찬. 1936년 생. 전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강원도 간성의 시골마을에서 출생해 그 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69년부터 약 4년 간 도미, 씨라큐스대학에서 사회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원장, 대학원 원장, 충주캠퍼스 부총장 등을 역임하고, 환태평양지역 지역학회(PRESCO) 회장, 한국환경정책학회 회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고문, 한국 지역학회 고문, 한국 주택정책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2년 전부터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부인 이명숙 씨와 함께 야생화를 키우며 자연생활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지역개발론》, 《한국의 토지와 주택》 등의 전문 서적과 수필집 《한 손으로 치는 손뻑소리》, 수상집(隨想集) 《무위(無爲)도 넘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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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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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꼭 맞는 집짓기] 한국형 전원주택 설계도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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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을 짓고자 맘먹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도면을 입수한다. 하지만 건축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다 보니 설계도의 장단점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다 보니 심지어는 아마추어가 설계한 도면을 모델로 삼아 집을 지어 피해를 보는 일이 다반사다. 평생에 한번 짓는 집, 어떻게 하면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 이에 본지에서는 잘못된 설계도면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고자 ‘몸에 꼭 맞는 집짓기’ 코너를 마련했다. 우리의 현실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30, 40, 50, 60평형대 주택을 모델로 하여 한국형 전원주택 설계도면을 연재한다. 주로 평면과 기능 위주의 디자인 의도를 이해하기 쉽게 밝혔으니, 모쪼록 예비 전원주택 건축주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30평형 단층 3실
■ 디자인 의도
- 두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생활하도록 계획한 경제적인 주택이다.
- 거실과 주방의 축을 중앙부에 일렬로 배치함으로써 동선을 최소화해 각 실의 전용면적을 최대한 확보했다.
- 안방을 자녀방하고 분리하여 배치함으로써 독립성을 높였다.
- 식당과 주방을 일체화하여 시각적으로 넓어 보이게 했으며 주방과 다용도실을 근접 배치하여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였다.
- 외벽 면적이 최소화된 디자인으로 유지 및 건축비용을 줄인 경제적인 주택이다.
■ 면적표
현 관 : 0.9평
거 실 : 7.4평
안 방 : 4.4평
방 1 : 3.3평
방 2 : 3.5평
주 방 : 4.9평
욕 실 : 1.3평
안방욕실 : 1.2평
다용도실 : 1.2평
40평형 복층 4실
■ 디자인 의도
- 서너 명의 가족 구성원이 생활하도록 계획한 외관이 아름다운 전원주택이다.
- 전면을 폭이 좁게 계획함으로써 가로 폭이 좁은 대지에 배치할 수 있다.
- 1층을 부부, 2층을 자녀 영역으로 구분한 독립적인 구조다.
- 전후면의 외관이 아름다워 여러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대지에 잘 어울린다.
- 2층에 가족실을 배치하여 2세대 동거형의 거주가 가능한 구조다.
■ 면적표
현 관 : 1.2평
거 실 : 6.9평
안 방 : 4.1평
방 1 : 3.6평
방 2 : 4.8평
방 3 : 4.1평
가 족 실 : 3.7평
주 방 : 6.1평
손님욕실 : 0.9평
안방욕실 : 1.3평
2층 욕실 : 1.3평
드레스실 : 1.4평
다용도실 : 1.6평
50평형 복층 4실
■ 디자인 의도
- 서너 명의 가족 구성원이 생활하도록 계획한 전원주택으로 각 방의 채광이 밝고 전망이 우수하다.
- 여러 가지 방들을 전면에 집중 배치함으로써 전면에서의 디자인이 같은 평형대의 디자인보다 넓어 보인다.
- 1층 거실과 2층 가족실을 오픈하고 주방과도 일치하는 배치로 실내의 개방감을 확보했다.
- 현관에 신발룸을 설치하여 수납성을 높이고,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면에 펼쳐지는 탁 트인 공간은
이 집의 이미지를 잘 전달해 준다.
- 거실과 주방을 한쪽으로 배치함으로써 조망과 채광 효과를 높였다.
■ 면적표
현 관 : 1.0평
거 실 : 8.6평
안 방 : 5.6평
방 1 : 4.4평
방 2 : 3.6평
방 3 : 4.8평
가 족 실 : 4.7평
주 방 : 6.2평
손 님 욕 실 : 0.9평
안방욕실 : 2.1평
2층욕실 : 1.4평
드레스실 : 1.2평
다용도실 : 1.3평
보일러실 : 1.0평
60평형 복층 4실
■ 디자인 의도
- 서너 명의 가족 구성원이 생활하도록 계획한 전원주택으로, 거실 전면창의 개방감과
2층을 1/2층으로 계획하고 자녀방에 도머(Dormer ; 지붕에 설치된 출창)를 설치
하여 전원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 가파른 경사 지붕의 외관으로 산중 분위기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계획했다.
- 외관 재료는 로그사이딩이나 천연 목질감의 사이딩들이 잘 어울린다.
- 2층 가족실에는 홈바를 배치했다.
- 2층 자녀방의 면적을 충분히 배려했다.
- 1층 욕실에 월풀을 배치하여 공동 이용성을 강조했다.
- 다용도실의 면적을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수납 및 보조주방의 기능까지도 확보했다.
■ 면적표
현 관 : 1.2평
거 실 : 9.2평
안 방 : 5.6평
방 1 : 4.7평
방 2 : 6.5평
방 3 : 6.5평
가 족 실 : 6.3평
주 방 : 6.8평
손님욕실 : 1.8평
안방욕실 : 1.4평
2층욕실 : 1.3평
드레스실 : 2.9평
다용도실 : 2.3평
■ 자료제공 : 김낭현(에이치프랜 설계실장)
∴ 설계자 김낭현은 에이치프랜의 설계실장이다. 국내 목조주택 도입 초기부터 쌓아온 주택 및 단지설계의 풍부한 경험과 기술로, 국내 최초 회원제 주택 설계 시스템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형 전원주택의 설계도면 보급에 힘쓰고 있다.
(011-9765-1573, www.hpl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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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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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만들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정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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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의 완성을 정원이라고 한다. 정원이 주는 미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전원주택의 형상을 아름답게 세워주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거실이나 방에서 내다보는 정원 풍경, 이것이 주위의 자연과 어울려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집 주위의 자투리땅을 볼품없이 내버려 두지 말고 주거 문화의 중심 공간으로 꾸며보자.
아름다운 전원주택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름다운 정원은 여전히 찾기 힘들다. 예산이 부족해서라고 말하지만 예산보다 부족한 건 아이디어와 약간의 지식뿐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전원주택을 고대하는 것이 전원주택을 위한 정원만들기 시리즈의 소망이다.
전원주택을 위한 정원만들기 시리즈
정원 만드는 일을 즐겁게 직접 할 수는 없을까?
정원을 만드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정원 관리를 쉽게 할 수는 없을까?
정원을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많은 독자를 위해 새로운 기획을 마련하였다. 푸른 삶이 가득한 전원 라이프 스타일을 설계하는 기획 시리즈는 요즘 한창 인기를 모으는 영국식 D.I.Y. 가드닝을 본격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한 그루에 천만 원이 넘어가는 정원석재와 정원수는 보기에 좋을지 모르나 관리를 하기에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잘 가꾸어진 정원들의 특징은 대게 돈을 많이 들이기보다는 손수 관리를 하도록 꾸며져 있다. 직접 나무를 사서 심고, 잔디는 스스로 깎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고, 텃밭 하나쯤 두어 채소를 기르는 재미와 수확을 해 먹는 기쁨을 동시에 가진다.
이에 본지에서는 정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정원을 만드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하여 자세하고 알기 쉬운 정보를 제공하자 한다.
이 기획은 요즘 인터넷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우리시대 정원이야기’(http://www.flower-wolf.com)의 운영자이며 (주)네이처조경디자인/대표 이진규 씨가 함께 한다. 1년 간의 연재를 통해 직접 정원일을 해볼 수 있도록 자세한 방법과 실제 들어간 비용을 알 수 있도록 꾸밀 예정이다. 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스스로 만들어보는 정원이야기 ·정원만들기 준비하기 ·진입로 만들기
·목재덱(Deck) 만들기 ·목재 휀스 만들기 ·연못 만들기 ·장미정원 만들기
·바위정원 만들기 ·정원만들기의 수확 ·겨울정원 만들기 ·어린이를 위한 정원 만들기 ·정원예산 짜기
아름답고 실용적인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책과 사색이 필요하다. 먼저 동네 주변부터 찬찬히 돌아보면서 우리 동네에는 어떤 종류의 나무가 심겨져 있는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잘 살펴보자.
그 이유는 실제로 정원 작업을 할 때 어떤 나무(향토수종이라고 한다)가 잘 자라고 관리가 쉬운지에 대한 정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범위를 넓혀 가면서 뒷동산까지 여러번 산책을 하다 보면 나무뿐만 아니라 길가의 하찮았던 돌멩이, 야생초까지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일단 보이기 시작하면 애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봇물처럼 솟아나는 애정을 갖게 되면 정원을 만드는 준비는 마친 셈이다.
정원을 만드는 마음의 준비
다음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풍경이나 느낌을 음미해 보자. 어릴 적 추억이나 여행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을 모아서 스크랩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앨범을 뒤져 풍경이 있는 가족사진들을 모으고 일부는 잡지책의 사진들을 오려서 이미지 정원사진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햇빛, 흙냄새, 풀냄새,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노랑나비, 쏟아지는 별빛, 어린왕자의 별 B612, 늑대 한 마리, 시베리안 허스키, 백장미, 백라일락, 살구·자두, 계수나무등 그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을 모아 가면서 정원은 아름답게 채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 정원에서는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잔잔한 울림이 있는 여백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이제부터 당신의 전원주택 정원에는 색다른 것들로 가득찰 것이다.
값비싼 정원수나 묘지를 지키던 석물로 채워진 죽은 정원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으로 가득 찬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연의 정원사다. 직접 정원사가 되어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채소를 기르고 하는 일은 자연의 가치를 몸으로 이해하는 가장 좋은 일이다.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정원은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면서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담고 있는 정교한 장치다.
한 번에 세련스럽고 높은 정원문화를 소유하려는 과도한 욕심을 버린다면 정원은 그리 어려운 것도 돈이 많이 드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당신이 조선백자와 고려청자를 구별할 줄 알고 산꼭대기에서 독야청청한 소나무를 본 적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정원에 대한 본능을 일깨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름다운 전원주택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름다운 정원은 여전히 찾기 힘들다. 예산이 부족해서라고 말하지만 예산보다 부족한 건 아이디어와 약간의 지식뿐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전원주택을 고대하는 것이 전원주택을 위한 정원만들기 시리즈의 소망이다.
전원주택을 위한 정원은 돈을 많이 들인 깔끔한 정원보다 자연을 가깝게 끌어들인 자연스런 정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전원주택의 정원에는 공을 들여 가꾼 잔디밭이나 고급스러운 정원수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정원을 만드는 일은 시간과 함께 일해야 하는 작업이다. 큰 나무를 옮겨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 수도 있지만 나무가 커나가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좋은 정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 정원만들기 시작은……
그럼 전원주택을 위한 정원 만들기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하나, 키가 크게 자라는 교목류보다는 꽃피는 화목류와 키작은 화목류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교목류는 가격도 비쌀 뿐만 아니라 옮기고 심는 데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수꽃다리(라일락)와 같은 화목류는 키도 교목이나 관목의 중간 정도여서 승용차로 옮길 수도 있고 대부분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둘, 나무와 꽃을 고를 때는 가족과 함께 식물원이나 수목원을 찾아 가서 직접 관찰하고 일일이 이름을 구별하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학명이나 품종명까지 알아둔다면 더 좋다. 그리고 나무를 심고 나서도 이름표를 달아 준다면 식물의 이름을 일일이 구분하게 되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정원 만들기를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방법일 것이다.
셋, 지피류와 초화류를 많이 사용해 보자. 가능하면 자생화를 사용하면 좋다. 그리고 신품종의 초화류에도 관심을 가져 봄 직하다.
사실 교목이나 관목보다 지피류와 초화류는 종류가 엄청 많아서 꽃의 색이나 전체의 질감을 잘 섞어서 심는 것은 정원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얀 꽃만을 심어서 하얀정원을 만들어도 좋다.
넷,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정자목이라고 해서 마을의 어귀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멋진 나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자목으로 사용하는 나무는 수명이 긴 나무를 쓰는 것이 요령이다. 가족과 가문의 역사를 기억하는 정자목을 정원 한쪽 구석에 구상해 보는 것도 좋다.
그 밑에는 책을 읽거나 바비큐 그릴을 위한 장소를 만드는 것 또한 좋은 생각이다. 심을 때는 서향의 빛을 가리기 위해 가능한 서쪽에 심는다는 것 잊으면 안 된다. (풍수를 고려한다면 남향집에는 동쪽에 대문을, 남쪽에는 오동(벽오동)을 북쪽에는 대나무를 심는 것이 좋다.)
다섯, 나무마다 가족들의 이름을 붙여서 관리를 해주면 어떨까? 그렇게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고 관심을 가져 줄 때 정원은 아름다워질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집 앞에서 현관까지는 아빠가 관리하는 공간, 이 부분을 전정이라고 한다.
거실에서 보이는 정원은 중정이라고 한다. 그곳은 아이들과 엄마가 관리하는 공간으로 꾸민다면 어떨까? 집 뒤 부엌과 가까운 곳에는 후정을 만들어 그곳에는 온 식구가 정성껏 가꾸는 텃밭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혹 강화도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순무를 심어 보면 어떨까?
여섯, 어쩌면 가장 중요한 정원만들기의 핵심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끌어들이는 것에 있다. 전문용어로는 차경(借景)이라고 하는데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는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다.
세심한 건축가는 집을 지을 때 땅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땅 위에 있던 돌과 나무를 주의 깊게 살핀다. 돌 하나 바위하나도 그냥 내다 버리지 않는다. 그건 땅과 밀접한 집을 짓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곱, 새와 나비를 정원에 자연스럽게 끌어 들이고 모기나 뱀을 자연친화적으로 쫓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아름다운 전원주택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독자들은 잘 알고 있으라 본다. 田
■ 글·이진규(네이처조경디자인(주)대표)
■ 정리·박 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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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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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사회 환경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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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이 자연환경에 적응한 결과의 산물이다. 집이 자연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면 이번에는 사회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집은 그렇게 발전하면서 기능에 따라 분화한다. 남은 곡식을 저장하려고 창고를 짓고,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측간을 만든다. 또한 수확이 많은 집과 수확이 적은 집은 다른 규모의 창고가 필요하다. 가족이 많은 집에서는 방이 늘어난다. 사회적으로 부와 권력이 있는 사람의 집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집보다 커진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집을 찾아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글 싣는 순서
1. 집, 문화로서 과거 이해하기
-과연 전통은 존재하는가
2. 집은 문화 유기체다
3. 자연환경과 집
4. 기술 발전과 집
5. 사회환경과 집
6. 생활과 집
7. 사고변화와 집
8. 사람과 집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사회 환경 때문에 만들어지는 집은 우리가 먹고 자는 주거 이외의 모든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 시설, 궁궐, 관공서, 시장, 공연장, 전시장, 운동 경기장 등 가족이 생활하는 집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지어진 집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영역이 개발되면 거기에 맞는 집을 짓게 된다. 사회 환경의 변화를 관찰하면 이제까지 하고 다른 건물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개발업자(Developer)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찾는 직업이다.
우리들이 사는 집도 사회 환경에 따라 변한다. 어떠한 경제 기반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상업기반 사회와 농업기반 사회는 집 구조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
집의 구조가 다른 것은 그들이 종사하는 직업에 따라 생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농업 사회는 소나 말 같은 가축과 쟁기, 호미 등 농사에 필요한 도구가 있어야 한다. 가축과 도구를 관리하려면 마구간과 가축 사료를 저장하는 창고 그리고 농기구를 보관하고 벼리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
자연히 농사를 짓는 집은 규모가 크고 대지 면적도 넓다. 상업 사회에서는 농업 사회처럼 가축이나 농기구가 필요하지 않다.
상업 사회에서는 책상과 서류를 보관할 서류함 그리고 물건을 팔기 위한 진열대와 쌓아 둘 창고가 필요하다. 생활하는 집에 붙어 있다면 가게와 사무실이 필요할 뿐이다. 이처럼 살아가는 직업의 차이는 집의 구조를 바꾼다.
또한 주변 환경의 안정성도 집의 구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치안이 안정된 곳의 집과 그렇지 않은 곳의 집은 다른 모습이다.
육칠십 년대 도시에 지은 집을 보면, 담에는 유리병 조각을 꽂아 놓거나 철조망을 설치했다. 그러나 시골에는 담이 없다. 이것은 바로 불안감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따라 변하는 집의 모습을 살펴보겠다.
사회가 불안하면 닫힌 집을 지어
일반적으로 기와집은 부잣집, 초가집은 가난한 사람의 집으로 생각한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부안의 김상만 가옥을 보면 기와집이 곧 부잣집이라는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수 있다.
집 구조에 나타난 방어 현상
김상만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50호)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당대에 손꼽히는 거상의 집이지만 전통적인 초가집이다. 이렇게 지은 것은 시대상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김상만의 선친은 고창군 부안면 봉암 인근에서 살다가 도적을 피해 줄포리로 이사했다. 고창 집은 줄포 집과는 달리 기와집이었다. 당시는 도적이 날뛰던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김상만의 선친은 줄포리로 이사 와서 집을 지을 때 부자라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초가로 지었다. 이처럼 사회가 불안하면 어떠한 형태로든 집에 방어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집의 구조 중에서 불안한 사회상을 잘 반영하는 것은 담과 폐쇄성이다. 담은 집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구조다.
사회불안이 가중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높아지는 담이고, 그 다음은 집 구조가 폐쇄적으로 변한다. 담장과 집 형태를 보면 그 지역의 치안 상태를 알 수 있다.
태백산과 경상도 산간 지역의 집이 폐쇄적 구조인 ‘ㅁ’ 자 구조를 한 것은 이 지역이 자연적이든 사회적이든 간에 불안한 사회구조에 놓였음을 반영한 것이다.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에 따르면 조선조 중기(1571년)까지만 해도 서울 근교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미암의 고향인 해남에서도 노비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한다. 해남에서조차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면 경상도 지역의 산간은 산짐승의 피해가 심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경상도 지역의 폐쇄적인 집 구조와 충청도나 전라도 지역의 개방적인 집 구조를 성리학의 학문적 계열에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너무도 자의적인 해석이다. 이 황의 제자 계열의 집 구조가 폐쇄적이긴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많이 살았기에 나타난 현상이고, 근본적으로는 자연적인 요소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폐쇄적 구조의 사합원, 객가, 탑상주택
사회의 불안 때문에 집의 구조가 폐쇄된 예를 외국에서 찾아보자.
먼저 중국의 집을 살펴보면 매우 폐쇄적인 구조로 돼 있다. 필자도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모든 집에 외부로 난 창문이 없고 담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중국의 집 구조는 상류층일수록 더욱 심하다.
사합원(四合院)이라는 중국의 상류주택을 보면 높은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구조가 이렇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한 나라 때 만들어진 토기를 보면, 이때 사합원의 원형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합원의 조성 배경을 리원허는 《중국 고전 건축의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의 역사는 오랫동안 불안하고 동요된 상황에 처해 있었으므로 건물을 설계할 때 방위성을 한층 강조했다.
문과 창문 역시 주변의 담에 달아서 임의로 열 수 없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라는 사회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불안한 사회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합원이 가족 단위로 위험에 대처하려고 한 경우라면, 집단으로 위협에 대처한 사례는 중국 남부 푸젠성[福建省]에 있는 객가(客家)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집단 주거지는 커다란 원형 성채인데, 그 안에 수백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이러한 마을이 형성되는 것은 그 집단이 매우 특이한 조직이어서 자폐적 구조를 가졌거나 외부의 위험에 집단적으로 방어하기 위함이다.
비슷한 예를 유럽에서 찾아보자. 11∼12세기 이탈리아의 도시를 보면 탑상주택이 매우 많다.
탑상주택은 도시에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봉건귀족과 신흥 상공귀족 간의 극심한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공격과 방어를 위해 지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가문의 알력 사이에서 일어난 사랑을 다루었을 만큼 당시는 가문 사이의 충돌이 극심한 상황이었다.
다른 가문의 집을 감시하려고 남보다 더 높은 탑을 쌓다 보니 점점 규모가 커져 수십 미터 높이에 이르는 건물이 생겨난 것이다.
같은 책에 따르면 이러한 탑상주택은 이곳 외에도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반도와 코카서스(Kavkaz) 지방에서도 발견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을이 이민족의 이동 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생존의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일제가 조작한 식민사관에 따르면 우리의 역사는 수많은 침략으로 얼룩졌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나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집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집은 전쟁이나 외부의 침입에 대해 완전히 무방비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집의 구조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정된 사회였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천여 차례의 침략에 허덕였다는 이야기는 전혀 허구란 것을 알 수 있다.
안정된 사회는 담이 낮아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살펴보자. 담은 영역을 구분하고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다.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 이해하기보다는 담을 통해 사회현상을 상상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담 높이를 보면 도시하고 지방이 다르다. 같은 지역에서도 높이가 다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담의 역할이 사회 환경에 따라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던 필자로서는 시골의 담이 왜 낮은지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직 집에서 담이 차지하는 의미를 알지 못했던 시절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의문은 양동마을의 관가정(觀稼亭)을 답사하고 완전히 해소됐다.
관가정의 담은 매우 낮다. 특히 앞쪽에 있는 담은 1980년대 보수하면서 관리를 위해 만든 것이다.
이렇게 담이 없거나 낮은 이유는 그야말로 당호(집에 붙인 이름)인 관가처럼, 농사를 짓는 것을 내다보기 위함이다.
언덕 위에 위치한 관가정에서 보는 주변 경관은 이곳 경상북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시원한 맛이 있다. 이러한 경관을 즐기기 위해 담을 낮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안정되지 않으면,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편하게 앉아서 경관을 즐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불안한 사회였다면 관가정은 높은 담 위에 올려져 있는 전망대 같은 모습으로 지었을 것이다. 또한 망루의 높이는 화살이나 총의 사거리를 반영해 꽤 높게 설치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번(蕃) 사이에 알력이 심했던 일본의 성은 높직하고 외부에서 알아보기 어렵게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가정뿐만 아니라 전국을 둘러보아도 그러한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이처럼 방어적인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치안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매우 안정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생활했던 외국인의 여행기에도 나타난다.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미국, 1855∼1916)이 쓴 여행기에는 “조선에서는 큰 도둑질이 드물다” 라고 하면서 “조선에 있는 동안 주머니칼 이외에는 물건을 도난당한 적이 없다……자신의 물건이 호기심의 대상이었으나 하찮은 것도 도난을 당한 적이 없다” 라고 했다.
또한 “극동에서는 살인이 매우 드물다……서양인에 비하여 극동인은 그다지 거칠지 않은 편이다” 라고 했다. 조선 땅에서 오래 살아보지 않은 외국인의 눈에조차 치안이 안전하다고 느낄 만큼 조선조는 매우 안정된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처럼 조선 사회가 안정된 구조를 유지했기 때문에 담을 높일 필요가 없었다. 담의 높이는 같은 지역이라도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안전이고, 두 번째는 권위의 표현이다. 안동의 하회마을에는 충효당, 양진당, 북촌댁이 있는데 그 중 북촌댁의 담과 솟을대문이 가장 높게 느껴진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북촌댁이 자신의 권위를 내보이려고 담을 높게 쌓은 것이다. 어쩌면 같은 문중에서 상대적으로 위세가 덜한 것에 대한 열등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지방보다 도시의 담이 높다. 이것은 도시의 치안 상태가 지방보다 불안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도 도시 지역의 담이 지방보다 높고 견고한 것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시가 시끄럽고 불안한 것은 매한가지였나 보다.
지방의 담이 낮은 다른 이유는 ‘집단 감시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이웃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낸다.
예전에는 더 그랬을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시골에서는 애들이 놀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자기 아이, 남의 아이라고 가릴 것 없이 같이 먹였다.
동네 강아지조차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짖지 않고 외지인이 들어올 때만 짖을 정도로 마을은 가족 공동체만큼이나 유대가 돈독했다.
다른 사람이 마을에 나타나는 경우 서로가 감시할 수 있어 마음 놓고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을의 정신적 향도(嚮導:길잡이) 역할을 한 명문가가 마을 사람의 인심을 얻을 경우, 마을 사람들이 명문가를 지켜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함양의 정여창 고택 종부의 증언에 따르면, “조상이 주변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난리판(한국전쟁)에도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집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권위를 유지하려는 양반의 노력은 구례의 운조루에서도 볼 수 있다. 운조루의 중문(中門)에는 큰 뒤주를 두어 가난한 사람이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의 식량을 가져가도록 했다. 이렇듯 배려했기에 명문가들은 마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담이 높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담을 낮추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하다. 담이 높으면 마을 주변에 있는 자신의 전답을 관리하는 데 불편할 뿐이다.
조선 효종 때의 학자 이유태가 지은 《초려집》에 담의 높이에 대해 적은 대목이 있다. “담장의 높이는 방이나 툇마루에 앉아 말 등이 보이고 목노의 행동거지를 살필 수 있을 만하면 된다” 라고 기술해 놓았다.
담의 높이는 주변을 살필 만한 정도가 적당함을 지적한 것이다. 담이 높으면 사랑채에 앉아서 밖을 내다 볼 수 없다. 따라서 담 너머를 내다보도록 사랑채를 높여 지은 경우도 있다.
영천 만취당의 새 사랑채는 담을 낮게 하지 않고 사랑채를 높여 밖을 내다보도록 했다. 田
■ 글·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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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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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이야기] 기술발전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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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옥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 가옥이 있는 전원의 풍경은 그 지역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신토불이 재료를 사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운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 글 싣는 순서
1. 집, 문화로서 과거 이해하기
-과연 전통은 존재하는가
2. 집은 문화 유기체다
3. 자연환경과 집
4. 기술 발전과 집
5. 사회환경과 집
6. 생활과 집
7. 사고변화와 집
8. 사람과 집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떠한 색으로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地平)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색상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지금의 건축 환경은 과거하고 전혀 다르다.
옛날의 집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색상에서도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으로 지역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건축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옥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 가옥이 있는 전원(田園)의 풍경은 그 지역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재료를 사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운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尺度)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건축에서 기술의 발전이란 새로운 가능성의 창출을 뜻한다. 현대건축의 다양함은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역사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이 다양함을 만끽하게 됐고, 집에도 숱한 변화가 있었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새로이 나타난 현상은 대량생산에 의한 대단위 주거 단지의 개발, 집 형태의 다양화, 보온재 및 냉난방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내 환경의 변화 등 건축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건축에 미친 영향을 분야 별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재료를 만들려면 먼저 관련된 분야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새로운 재료가 개발됐다는 것은 주변의 상황이 이미 성숙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건축에서 어떠한 현상이 부각됐을 때는 그에 연관된 분야가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다.
하지만 그 같은 유기적 관계를 모두 언급하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상황을 단순화시켜 재료와 구조 역학(構造力學), 공법 및 도구, 설비 기술, 기술과 의식 변화 등의 분야로 나누어 그 변화가 집의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변화했는지 살펴보자.
집은 재료와 구조에 따라 변한다
기술의 발전 중에서 집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구조(역학)의 발전이다. 현대 건축에서 중요한 발명을 세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 엘리베이터다. 이 세 가지 발명은 현대 건축의 흐름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았다.
건축의 3대 발명품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고층건물이나 기둥 간격이 넓은 건물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1880년 독일의 지멘스사가 발명한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현재의 고층 빌딩은 존재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나라 주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주거 양식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집의 내부 구조도 변화시켰다. 집에서 방의 크기는 기둥 사이의 거리에 따라 결정되고, 그 거리에 따라 기둥, 보 등의 크기가 달라진다. 기둥 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보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커지기 때문에, 기둥 사이의 거리를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목재는 철근콘크리트보다 힘에 견디는 능력이 약하므로 기둥 사이의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매우 굵은 목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한꺼번에 해소해 주었다. 목재보다 하중에 견디는 힘이 강하므로 보의 크기가 작아도 기둥 사이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 같으면 궁궐이나 절 같은 특별한 건물에서나 가능했던 넓은 집을 일반인들도 쉽게 지을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단순히 재료의 개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료와 함께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역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구조역학이 발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압축력에 강함)와 철(인장력에 강함)의 장점(콘크리트와 철근의 열팽창계수는 거의 같음)을 살려서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발명했다. 철근콘크리트가 개발된 뒤에는 구조역학의 도움을 받아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켰다. 30년 전만 해도 철근콘크리트의 기둥 사이 거리는 6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최근에는 콘크리트 및 철근의 강도를 늘려서 기둥 사이 거리를 12미터 이상으로 늘렸고, 특수 공법을 활용하면 그 이상의 거리도 가능하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사고를 확장시켜 새로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여 대규모의 건물이 속속 들어서게 됐다.
콘크리트가 만들어 낸 회색 도시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발전은 기술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예전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미감도 만들어 냈다.
우리는 ‘회색 도시’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듣는다. 이러한 신조어(新造語)가 나온 것은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켜 집을 지음으로써 도시 전체가 회색빛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회색 도시’는 콘크리트의 발명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단어다.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경이감은 그 색상에도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근대 건축가들은 구조재로 개발한 콘크리트의 구조적 특성뿐만 아니라 감각적 특성까지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콘크리트가 외부로 노출되도록 설계한 건물이 많이 나타났다.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로 도시의 색깔이 변해 회색빛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러한 회색 이미지는 도시가 안고 있는 모순과 중첩돼 ‘회색 도시’라는 신조어로 정착됐다. 부정적으로 비치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콘크리트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형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소성(可塑性)과 특유의 냉랭하고 우울한(Melancholy) 분위기 때문에 지금도 콘크리트에 매료된 건축가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창의 개념을 바꾼 유리
기술의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집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유리 제조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서 창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전에는 창이 일정 크기 이상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유리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의 크기를 무한으로 확장시켜 놓았다. 나아가 유리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유리의 발전은 채광 문제에서 과거하고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예전의 집은 채광 면적의 한계 때문에 어두웠다. 그러나 유리 제조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어두운 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과거에 창을 크게 내지 못한 것은 단지 유리 제조 기술상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유리는 열전도율(熱傳導率)이 매우 높은 반면 창문의 기밀성이 낮아, 창의 면적을 넓게 할수록 추위에 견디기 힘들다. 이러한 문제도 단열 성능이 높은 복층유리의 개발과 창틀의 단열성과 기밀성을 높여서 대부분 해결했다.
이렇게 발전한 유리는 실내를 밝게 하고 조망권 확보를 위해 창문을 점점 크게 하는 방향으로 집을 변화시켰다. 창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외관(外觀)의 변화를 뜻하며, 결국은 집 전체의 이미지를 바꾼다. 현재 개념의 창으로는 과거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비례를 찾기 힘들다. 이처럼 달라지는 재료는 집의 개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색상의 혁명
구조적인 재료의 개발과 성격을 달리하지만 도료(途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료의 발달은 색상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집에 갖가지 색을 입혔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절, 관아 등 공적인 건물과 사가(私家)의 사당에서만 단청(丹靑)이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단청을 입히지 못하게 규제한 것은 근검 생활을 장려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재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화백자에서 청색을 내는 데 사용하는 코발트(Cobalt)는 수입해 썼는데 가격이 금보다 비쌌다고 한다.
그리고 단청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하지 못했다. 어쨌든 예전에는 집에 색을 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 가운데 경제적인 문제는 기술 개발로 쉽게 해결됐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떠한 색으로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地平)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색상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지금의 건축 환경은 과거하고 전혀 다르다. 옛날의 집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색상에서도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으로 지역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건축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망권을 가져다 준 펌프와 엘리베이터
설비 기술의 발전이 집에 미친 영향 가운데서 한 가지만 살펴보자.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주인은 대부분 2층에 거주하고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높은 곳에서 살았다.
아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급수 설비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펌프(Pump)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래층에서 물을 날라다 썼다. 목욕을 할 때도 물을 욕조에 부어 사용하고, 끝난 뒤에는 일일이 날라다 버렸다. 따라서 오르내리기 힘든 높은 곳에 산다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도로하고 바로 접하지 않으면서도 생활의 불편이 덜한 2층에서 거주하는 것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펌프와 엘리베이터가 발명됨으로써 그때까지의 불편은 사라졌고, 전망 확보와 프라이버시(Privacy) 보호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 부자들은 보다 높은 곳에 살게 된 것이다. 요즈음 서울에 많이 지어지는 고층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그러한 예이다. 田
■ 글·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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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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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집은 문화 유기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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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여러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로 인해 다른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러 문화 요소 중 하나만 가지고 집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방법이다. 집이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요소만이 아닌 모든 문화 요소가 어우러져 나타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담고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삶의 다양함만큼이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기능적인 것을 해결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적인 내용은 줄어들고 대신 의미론적인 요소가 덧붙여졌다. 그 변화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과거의 유물을 기능적인 면은 도외시한 채 의미론적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구가 만들어진 기본 목적은 기능이므로 의미론으로만 이야기한다면 기본을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집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지어졌다. 그후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자, 자연이 아닌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른 목적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궁궐의 예를 들어보자. 궁궐은 단순히 자연환경으로부터 왕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것만은 아니다. 왕이 먹고 자는 생활공간을 마련하고자 지은 집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러한 기본 목적 외에 사회적인 목적도 지닌다. 왕이라는 존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이 궁궐을 짓는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므로 당시 사회 구조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왕의 권위를 한껏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했다. 이것도 넓은 범위에서 본다면 집을 짓는 목적이 된다. 여기에 이르면 집을 짓는 행위나 형태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통치를 하는 왕의 행위에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하려고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집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기능성이 덧붙여진다.
건축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힌 기술 발전
콘크리트와 철골구조가 발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만드는 집의 구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방의 넓이를 결정하는 경간(徑間: Span-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고대 이집트 신전이나 궁전 그리고 페르시아 궁전의 유적을 보면 기둥이 많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면을 보면, 그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았을까 할 정도로 기둥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러한 평면에서는 임의대로 집에 기능을 덧붙일 수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치(Arch)나 볼트(Vault) 구조다. 볼트 구조를 우리나라에서는 홍예(虹霓)라고 한다. 이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의 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넓으면 넓을수록 재료와 인력, 장비 문제라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후 아치나 볼트 구조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세기 들어 발명된 재료인 철골과 콘크리트다. 이러한 재료의 발명과 함께 역학이론이 뒷받침되면서 건축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미래 건축물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힌 것이다.
철골과 콘크리트의 역학이론을 바탕으로 근대건축사에서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르꼬르뷔지에라는 건축가는 1914년 근대 건축의 본보기가 된 도미노(Domino)시스템을 발표했다. 이 시스템은 외벽의 독립, 자유로운 실내공간의 구성, 무한한 적층(積層)구조를 핵심으로 한다. 당대에 개발된 재료와 기술로 가능한 건축을 간단한 그림으로 함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의 완성은 재료와 기술의 발전 없이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건축 기술 발전과 집의 대량 생산
이처럼 기술은 집을 다양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기술 발전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넓게 열어 놓았다. 요즈음 지어지는 집들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많은 부분 기술의 발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앞에서 말한 구조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종 재료의 발전은 집의 여러 부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과거의 집과 현재의 집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20세기 이전의 집은 대부분 현장에서 기능인에 의해 지어졌으므로 집이 잘되고 못되고는 그의 솜씨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 그러나 현재의 집은 재료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생산하므로 현장 기능인의 솜씨는 과거보다는 중요성이 덜하다.
전통한옥의 경우, 엄밀한 의미로 공장에서 생산한 것은 기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재료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가공해 시공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지어지는 집을 보면 현장에서 가공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이 현장에서 제작 조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대형 건물뿐만 아니라 소형 건물까지도 공장에서 제작된 거푸집을 조립하는 정도의 작업만을 하고 있다.
근․현대에 와서 공장에서 생산된 재료가 주로 사용되는 이유 중 하나는 집의 대량 생산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구의 도시 집중과 1,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파괴된 집을 단시일 내에 공급하기 위해 건물의 대량 생산은 필수적이었다. 그에 따라 과거와 같은 수공업적 방법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에, 결국 공장 생산을 통한 대량화가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 역시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건축 시스템을 촉발했다. 설계와 시공이 점점 세밀하게 분리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한옥에서 설계 부분의 발전이 거의 없었던 것은 삶의 형태가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집을 만들려는 요구가 없다 보니 집을 짓는 데 있어 재료와 공법이 거의 결정되다시피 했으며, 자연 현장 기능인의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시됐던 것이다.
집의 대량생산과 미감의 변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회적 요구에 의해 주거가 대량 생산됐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건축문화환경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
공장제 재료의 적극적인 활용은 결국 미감(美感)의 변화까지도 이뤄 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자재는 효율성 때문에 모듈화를 요구했고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직선을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직선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직선이 눈에 익음에 따라 그것이 새로운 미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에 따라 과거처럼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차가운 직선이 새로운 미감으로 대두됐다.
또한 기계류의 발전은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 문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실내․외의 환경이 인공적으로 조성되면서, 집 발생의 기본적 명제인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이라는 문제가 집의 구조를 결정하는 우선 순위에서 뒤쳐졌다.
이러한 변화는 건축을 보는 눈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키는 모태가 된다. 즉, 근대건축에서 국제주의양식(國際主義樣式: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전제 하에 공통 분모의 미감과 삶의 방식을 찾아내 어느 곳에나 적용하려는 형태를 설계하려는 사조)의 탄생을 촉발했다.
문화 요인의 복합체, 집
최근 건축이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모으면서 그것을 건축가의 창작물로 이해하려는 성향이 짙다. 또한 같은 관점으로 과거의 건축물까지도 해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건축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잘못됐다고 볼 수만은 없다.
지금은 디자인하는 데 아무런 제약 조건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의 상상력이 디자인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러나 그 배경을 따져보면 기술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 발전이 없었다면 건축가들이 지금처럼 자유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자유는 최근에야 우리에게 부여된 것이지 과거에도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건축가의 역할이 다른 상황에서 과거의 건축물을 지금의 잣대로 파악하려는 것은 문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집이란 여러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로 인하여 다른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러 문화 요소 중 하나만 가지고 집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방법이다. 집이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요소만이 아닌 모든 문화 요소가 어우러져 나타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담고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삶의 다양함만큼이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과거의 한옥이 현재의 집만큼 다양한 형태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그 시대의 삶이 지금보다는 단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현재의 집이 다양한 형태와 내용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집은 문화의 여러 속성들의 서로 영향을 주며 변화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다음 호에서는 집을 결정하는 요소들을 분류하여 어떻게 집에 반영됐는지를 한옥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田
■ 글 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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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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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자연환경과 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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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구석구석을 보면 자연에 어떻게 적응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에 적응한 대표적인 예는 기단, 기초, 온돌과 대청, 지붕과 처마, 굴뚝, 부엌 등이다. 자연에 적응하는 모습은 앞에 예로 든 집의 구성 요소들 뿐만 아니라 건축 재료, 집의 형태, 평면 구조 등 집의 모든 요소에 골고루 나타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오히려 사회·문화적 요소가 더 강조된 것도 많다. 그러나 이런 부분도 출발점은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었으므로 먼저 자연환경의 요소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집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 지붕과 벽, 난방시설 등이 자연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나타낸다. 지붕의 경사나 처마가 나온 정도는 강수량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결정되고, 벽은 외기로부터 실내를 보호하기 위해 두께, 창문의 크기 등이 결정된다. 또한 난방시설은 추위에 견디기 위해 필수로 설치하는 것인데, 열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취사와 난방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화로와 난로, 벽난로 그리고 우리의 온돌 등과 같이 난방 방식에 따라 집의 구조가 결정된다.
굴뚝의 다양한 기능
굴뚝이 필요한 것은 집안에서 불을 때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불을 때지 않으면 굴뚝이 필요 없다. 유럽의 건물도 취사와 난방을 위해 건물 안에서 불을 땠기 때문에 굴뚝이 있다. 유럽의 건물에서 굴뚝의 개수를 보면 살고 있는 가구 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지금도 오스트리아에는 아직도 굴뚝 청소부가 있을 정도로 취사나 난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굴뚝은 불을 때는 곳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굴뚝의 기능은 연기를 빨아들여 불길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잘 이용한 것이 구들이다. 그러므로 굴뚝의 설치는 구들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간단한 원리를 실생활에 응용한 것이 굴뚝이다. 굴뚝이 높으면 연기가 잘 빠져나가 불이 잘 들지만 무작정 높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연기가 올라가다 식으면 역류(逆流)하기 때문에, 오히려 연기가 배출되는 것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굴뚝의 모습은 지역마다 다르다. 굴뚝의 높낮이나 보온 처리 여부는 그 지역의 기후 특성에 따라 정해진다.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너무 추운 곳에서는 굴뚝이 식는 것을 방지하려고 짚으로 싸서 보온했다. 바람이 세찬 곳이 아니라도 굴뚝이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면 보온이 필요하다. 굴뚝에 보온 재료를 두르면 덩치가 커진다.
기능만을 생각해 굴뚝을 둔중한 모습으로 놓아두는 것보다는 예쁘게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것을 알았는지 한옥의 굴뚝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과 경복궁 아미산 굴뚝(보물 제811호)은 장식이 너무 아름다워 보물로 지정됐을 정도다. 이 굴뚝들은 보온을 한 후 궁궐의 격식에 맞추어 아름답게 장식했다.
날씨가 별로 춥지 않아 불이 잘 들지 않아도 그런 대로 지낼 만한 곳에서는, 굴뚝과 연기를 다른 용도로 이용했다. 시골 생활을 경험한 분이라면 마당에 피워 놓던 모깃불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 굴뚝 연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암리 마을의 영암군수 댁 사랑채와 곡성의 군지촌정사의 안채에는 굴뚝이 없다. 기단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이 바로 굴뚝이다.
이곳에서 나온 연기는 곧장 위로 올라가지 않고 바닥에 깔리게 된다. 굴뚝의 연기를 그대로 날려 버리지 않고 해충을 없애는 데 사용했다. 이곳의 날씨는 불이 잘 들지 않아도 견딜 만하기 때문에, 일부러 연기가 잘 빠지지 않도록 하여 해충 구제(驅除)에 활용했다.
불을 때는 재료가 나무나 짚이므로 연기 냄새도 향긋하고, 사람들에게 그리 해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각종 페인트 또는 방충제(防蟲劑)로 범벅이 된 나무는, 연기도 냄새도 고약하고 사람들에게 해가 되어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다.
사계절과 창호
우리나라의 집 구조는 출입문을 제외하면 방에 설치되는 창과 문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좌식 생활을 하다 보니 순수하게 채광(採光) 또는 통풍을 위한 목적으로 창을 만든 경우를 제외하면 창대를 높일 수 없었기에 창과 문의 구별이 애매해진 것이다.
창과 문은 대문이나 부엌 출입문과 같은 판문(板門:널빤지로 만든 문)을 제외하고는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집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차이가 많은 것이다. 자연환경을 파악해 특별한 기능에 적합하도록 만든 대표적인 창은 해인사(海印寺) 장경판전(藏經板殿:국보 제52호)에 있다. 이 창문은 바람길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해 수백 년이 지나도 대장경판(국보 제32호) 보존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창문의 중요한 기능은 첫 번째로 환기와 적절한 일조량의 조절이고, 두 번째는 기후 변화(추위와 더위)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겨울은 춥고 건조하다. 일 년을 보면 제일 더운 날은 30도가 넘고 추운 날은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일 년 동안의 기온 편차가 50도를 넘는다. 이 같은 기후에서는 추위와 더위를 다스리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는 분합문(分閤門)인데, 여닫으면서도 들어 열 수 있는 특별한 문이다. 들어 올려 열거나, 여닫는 창은 다른 나라에서도 모두 사용하는 개폐(開閉) 방법이다. 그러나 여닫으면서 들어 열 수 있는 장치가 된 문은 없는 것 같다. 들어 열도록 되어 있는 장치는 보통 대청과 방 또는 대청과 밖을 구분하는 곳에 설치했다.
분합문은 두 짝 단위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평소에는 한 짝만을 여닫이로 쓰다가, 필요할 때 열린 상태로 들어 올려 상부에 설치된 걸이(‘등자’라고 한다)에 얹어 놓는다. 이러한 들어열개 구조는 단순히 더울 때만 사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한옥은 칸으로 구성돼 있어 필요에 따라 방의 넓이를 조정할 수 있다. 들어열개의 문이 대청과 방 사이 그리고 대청과 마당 사이에 설치된 것도 필요에 따라 넓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즉 기능적인 목적과 자연환경에 적응하려는 목적이 맞물려 개발된 문이다.
한옥에서 외부로 통하는 창은 추위와 더위뿐만 아니라 일조량을 조절하기 위해 다중 구조로 되어 있다. 대갓집의 경우 외부의 창은 우리가 자주 보아 온 창호지 문(덧창), 다음에 사창’(紗窓), 그 안쪽에 별도의 미서기창 그리고 안쪽에 갑창(甲窓)을 설치하고, 문을 넣어 두는 두껍닫이를 설치한 4중 구조로 되어 있다. 3중 구조로 할 경우에는 사창을 빼기도 하는데 여름에는 미서기창을 사창으로 갈아 끼워 통풍을 조절한다. 대부분의 집에서는 이렇게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보통 이중창에 두껍닫이 정도는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중 구조로 만든 것은 바람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지금도 많은 집에서 이중창을 설치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리의 단열 효과와 창틀의 기밀성 그리고 벽체의 단열 성능이 높아져 창문을 하나만 설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이중창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원리는 과거의 한옥에도 있었는데, 4중 구조에 갑창을 설치한 것은 햇볕을 차단하고 찬 기운을 막기 위함이다. 낮에는 햇볕이 많은 것이 좋지만, 저녁이나 아침에는 그리 반갑지 않다. 더욱이 아침의 숙면을 위해서는 빛을 가리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리고 한 겹의 창호지만으로는 찬 기운을 막기 어려우므로, 앞뒤로 두껍게 종이를 발라 보온 효과를 높인 것이다. 사창은 순수하게 여름을 위한 창이다. 여름에 바람이 통하게 하려고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벌레가 날아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기게 짠 비단을 문에 발라서 통풍을 조절하고 방충창(防蟲窓) 기능을 하도록 했다. 또한 두껍닫이를 설치한 것은 창문과 창문이 설치된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처럼 창문 하나에도 자연에 적응하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田
■ 글 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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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