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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거문화의 백미, 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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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중 구들은 독특하고 과학적인 유산이다. 지붕 없는 집이 없듯이 예전에는 구들 없는 집이 없었다. 움집이 아니라면 당연 구들이 존재했다. 불과 함께 발전한 인류 역사에서 불을 깔고 살게 만들어 준 구들의 과학적이고 독특한 감각은 발효식품의 개발과 고려청자로 대표되는 도자기 문화 그리고 금속공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에밀레종처럼 지금의 제철산업으로 이어져 왔다.
구들이란 방 안이나 밖에 있는 아궁이를 통해 데워진 연기와 불기운이 구들장이라는 방바닥 밑을 지나 바닥을 달군 후 굴뚝을 통해 빠져나가는 천연 바닥 난방 설비를 말한다. 이 구들은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의 문화 유산이지만 서양식 주택 구조가 밀물처럼 몰려들면서 차차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구들 난방의 경우 실내 공기가 건조해지기 쉽고 과열로 인한 아궁이 화재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 잘못 시공하면 보수가 만만치 않을뿐더러 관리 소홀로 구들이 막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여기에 습기를 먹으면 금이 가기 쉬운 흙의 특성상 연기가 새어 나와 가스 중독 사고를 일으킬 염려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구들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양식 주택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종 유해 물질로부터의 해방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 자연스레 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강원도 화천에 목구조 황토집을 주말주택으로 마련한 강계순(62) 씨. 경기도 부천 아파트에 살던 강 씨는 황토집에 구들을 놓은 이후로 오히려 화천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는 특별한 일이 생겨야 부천에 돌아갈 정도라고. "초저녁 장작 한 번 때면 이튿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뜨끈뜨끈해 찜질방이 따로 없다"는 그는 구들방을 드린 이후로 몸도 가벼워지고 잔병치레도 없어졌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구들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건강적인 측면 외에 외국에서 수입한 온돌마루판이 바닥 난방 종주국인 우리나라 제품보다 더 인정받는 현실은 자칫 우리의 전통 난방 과학인 구들이 흔적만 남기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인식을 낳은 데에도 한몫 했다. 또한 건축 기술의 발달로 예전처럼 잘못된 기초 공사로 인한 사고 염려가 크게 줄어든 것도 이유다.
구들문화원 오홍식 원장은 "언제부터인지 집을 수리한다 싶으면, 구들장부터 들어내고 시멘트 반죽 속에 파이프를 감아 돌려 아궁이 대신 보일러를 들이 대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경제적이고도 건강에 좋은 설비를 버리고 시멘트 독가스가 뿜어지는 바닥에 기름값, 전기료를 물고 있는 현실을 이제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덧붙여 그는 "방 하나 정도는 파이프를 걷어내고 구들을 놓아 건강도 지키고 경비도 줄이며 사는 지혜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 과학으로 재조명하는 구들의 원리
구들은 함실 아궁이, 고래, 개자리, 굴뚝으로 구성된다. 함실 아궁이에서 생성된 불은 온도와 기압 차에 의해 자연적으로 굴뚝까지 이어진다. 함실 아궁이의 내부 모양은 항아리를 눕혀 놓은 형상인데 불의 시작점이자 불의 힘을 모으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를 만들 때는 구들 밑으로 불을 때도록 방의 어느 한쪽을 다른 곳보다 깊이 파고 구들장은 다른 데보다 두껍게 놓는다. 이렇게 하면 구들장 밑으로 불길이 직접 들어가므로 방을 비교적 빨리 데울 수 있다.
함실 아궁이에서 힘을 받은 열기는 부넘기를 통해 구들 끝까지 열기를 전달한다. 방고래가 시작되는 어귀에 조금 높게 쌓아 불길이 아궁이로부터 골고루 방고래로 넘어가게 만든 언덕인 부넘기는 온돌을 빨리 데우고 재를 가라앉히는 턱이 되고 함실 아궁이에서 만들어진 불의 힘을 작은 구멍으로 밀어 구들 끝까지 열기를 밀어 주는 구들의 엔진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부넘기를 통과한 공기는 좁은 꼬리 부분의 고래를 통과해 넓은 공간의 고래개자리로 넘어가면서 이동 속력이 줄어든다. 여기서 여러 개의 각 고래에서 나오는 다른 온도의 공기가 한데 모여 고루 섞인다.온도의 고저에 따라 공기는 위아래로 분포하는데, 이때 남아 있던 열기가 고래개자리 위 부분의 구들장을 가열 서서히 실외 굴뚝개자리로 흘러가 굴뚝을 통해 대기로 방출된다.
구들과 건강
구들은 오래 전부터 질병 치료의 효과를 인정 받아왔다. 조선시대 광해군은 대궐 안의 황토방에서 종기를 치료했다고 하며, 세종 때 간행된 《구황촬요救荒撮要》에는 "뜨끈한 구들방은 병을 치료하는데 아주 요긴한 시설"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12년 6월, 왕이 경상감사에 전지를 내려 이씨 형제가 수분할 때 병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온돌에 기거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의보감》에도 "온돌이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된 이상적인 난방법임을 알 수 있다.
구들방은 엉덩이, 허벅지, 장단지, 발가락 등의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면서 심리적으로도 쾌적함을 느끼게 하여 신경 및 내분비 호르몬 계통에도 영향을 줌으로써 생체세포의 활성화와 면역력 증대 등 직접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 또 앉은 상태로 아궁이에 불을 피울 때에는 아랫도리에 원적외선이 쪼여져 부인병 예방이나 치료에 좋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될 정도다.
구들은 또한 실내에서 재나 먼지 등이 발생되지 않아 폐기관의 건강에 문제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으며 최근 유럽의 몇몇 병원에서는 중환자실에 구들을 응용해 사용할 만큼 그 효염을 인정받고 있다.田
글 홍정기 기자도움말 (사)한국구들문화보전협회(033-732-4381, www.gudle.org), 구들문화원(033-732-4381, www.gudl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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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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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겸비한 황토제품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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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는 자연 건조된 추재秋材를 쓴다. 소나무를 주로 사용하는데 국내산과 수입산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는 육송陸松은 나무겉은 거칠고 가벼우며 솔 향이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 깎아서 가공하기 편하고 수분이나 습기에 대한 저항력이 크고 건조 속도도 빠르다. 남서부 해안지방에서 생산되는 해송海松은 육송과 비슷하지만 약간 노란빛을 띤다는 점이 다르다. 이외에도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솔송率松이 있는데 조선시대 궁궐을 짓는 목재로 사용했을 만큼 강한 내구성과 가공, 건조, 도장성이 훌륭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나무는 길이의 한계와 희소성으로 값이 수입산에 비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뉴송(뉴질랜드 소나무)이나 미송(햄록이나 더글라스) 등 수입 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접착성이 뛰어나 집성재로 사용하기 쉬운 뉴송은 부패나 좀벌레에 강하며 내부 결점이 없다. 한편 흔히 햄록이라 불리는 미국 솔송은 줄기의 곧은 정도를 나타내는 통직성이 우수하고 가공하기 편리하다. 더글라스는 조직이 곧고 견고하며 내구성이 강한 반면 도장성이 떨어진다.
목재를 고르는 일에는 목재의 흠과 벌목 시기를 잘 파악해야 건축물의 하자를 줄일 수 있다. 목재는 봄(春材)에 벌목한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여름보다 가을(秋材)과 겨울(冬材)에 벌목한 나무를 선택해야 하며, 벌목 후 최소 1년 이상 자연 건조된 나무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옹이가 많은 나무와 썩음(썩정이), 갈라짐(갈램), 껍질박이(入皮), 송진구멍, 벌레구멍이 많은 나무는 목재의 흠으로써 강도를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므로 피해야 한다.
목재를 선택했으면 원형 또는 사각, 어떤 형태로 사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대개 궁궐이나 사찰 같은 큰 건축물에는 치수가 큰 원기둥을, 반면 민가의 살림집은 주로 사모, 육모, 팔모 등의 각기둥을 사용한다.
살아있는 생명체 황토
황토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60여 종의 흙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자가 곱고 산소를 다량 함유하며 기름을 흡수하는 성질이 강하다. 가열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반 흙과 비슷하나 섭씨 6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원적외선 방사율이 9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건강성을 자랑한다.
황토 1그램 속에는 약 2억 마리의 각종 미생물이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미생물들은 50여 종의 다양한 효소들과 복합적으로 순환작용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흔히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축 자재로 황토가 갖는 장점은 높은 단열성이다. 황토는 바깥 공기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효율적으로 차단하기에 자연스러운 냉·난방 효과는 물론 주택 내부의 습도 조절 기능을 한다. 그리고 미립자를 통한 통풍 작용으로 주택 내부에 쾌적한 공기 밀도를 유지시켜 준다.
따라서 흙집의 기능을 제대로 살리려면 흙 자체의 자연 성분을 해치지 않는 자재를 선택해야 한다. 즉 순수 황토인지 아니면 시멘트 등 첨가물을 혼합한 것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순수 황토로 만든 흙벽돌은 압축 강도가 낮으면 안 된다. 물로 반죽해 만든 벽돌(압출공법)이 생生 황토벽돌(압축공법)에 비해 내수성과 내구성에서 우수하다. 만약 압축공법으로 만든 벽돌이 내수성이 뛰어나다면 황토에 첨가물을 혼합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날로 진화하는 황토 제품
웰빙 바람을 타고 황토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황토를 이용한 각종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벽돌, 모르타르에 한정되던 황토 응용 분야가 타일, 대리석, 벽지 등으로까지 번지면서 우리의 눈과 몸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재래식 벽돌(손 벽돌)
야산 등에서 겉흙을 걷어낸 찰진 흙(진흙)에다 논흙과 짚을 썰어 넣고 반죽한 다음 틀에다 넣어 다진 후 그늘에서 20일 정도 말려 생산한다. 논흙을 섞으면 반죽 시 접착 기능과 강도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짚은 흙의 갈라짐과 터짐을 잡아준다. 논흙을 넣지 않을 경우, 흙에 짚을 썰어 넣고 반죽한 다음 사흘 정도 숙성시켜야 한다. 손벽돌은 내구성과 내수성이 좋고, 건조 후에도 벽돌의 크기에 변화가 없다. 반면 모양이 투박하고 벽돌을 찍어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계식 벽돌
기계 압(15∼35톤 하중)으로 찍는 흙벽돌이다. 최근 100톤 하중으로 찍어 컨베이어벨트로 이동시켜 야적하는 자동화 단계에 이르렀다. 비에 약한 흙벽돌의 단점을 보강하고자 인체에 무해한 약품(무기 바인다 등 혼화제)을 섞기도 하고 황토를 굽기도 한다. 예전에는 좋은 흙을 채취(황토나 적토)해 5퍼센트 미만의 시멘트나 회를 섞어 생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황토에 시멘트나 회대신 흙 운모(게르마늄) 등 돌가루를 혼합해 인체에 해를 미치지 않고 흙벽돌 기능을 더욱 살리면서도 강도를 높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황토 모르타르
순수 황토로만 내벽을 바를 경우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 실금으로 터지고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는 황토에 맥반석 가루나 흑운모(게르마늄) 등 돌가루 성분을 첨가하면 황토 성질을 해치지 않고 강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약돌이 갖는 좋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직접 황토 모르타르를 만들어 시공하려면, 황토를 곱게 쳐서 가루를 만들고 채로 친 고운 모래와 5 : 5 정도의 비율로 배합한다. 그리고 물을 부어 질지도 되지도 않은 정도로 반죽하면 된다. 이 때 숯가루 또는 목초액, 쑥물 등을 함께 사용하면 더 좋다.시중에 판매되는 황토 모르타르마다 물과의 배합 방식이나 시공법이 다르기에 잘 살펴보고 선택해야 한다. 불에 구운 황토를 곱게 쳐서 무기 바인다와 혼합한 제품도 있고, 미세한 황토 분에 백회 또는 시멘트를 혼합한 것도 있다. 또 혼화제라고 하는 경화제를 섞은 제품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갈라짐과 터짐은 방지할 수 있으나 흙의 본래 성질을 살리기는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황토 타일
초창기 황토 관련 제품은 친환경적인 특징을 들어 고객들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지만 획일화된 제품, 투박한 디자인 등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고전미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함께 하는 각종 제품이 출시되면서 건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효과까지 얻게 됐는데 그 중심에 황토를 재료로 한 타일이 있다. 특히 타일을 이용한 아트월은 많은 이들이 흙(황토)집은 단순하고 인테리어가 단조롭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집을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문양을 새긴 제품이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갖춘 제품도 만나볼 수 있다.
황토 대리석
천연 황토가 오랜 시간 퇴적과 압력을 거듭해 돌에 가깝게 굳어진 형태를 판재 형식으로 재단한 것이 황토 대리석이다. 바닥이나 벽면에 주로 사용되는 황토 대리석은 맥반석이나 수입 화강암, 옥 등 기존 석재보다 월등히 높은 원적외선 방출량을 자랑하고, 인체 생리작용 활성화와 다양한 약성 원소를 통한 해독, 항균작용과 방음, 방습, 탈취기능 등 고 기능성 마감재로 각광받고 있다.
황토 벽지
황토 벽지는 일반 벽지에 비해 고가지만 얇다. 황토집의 기능을 극대화시킬 뿐 아니라 황토집의 분위기에 걸맞게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음이온을 발산해 자고 일어났을 때 가뿐한 느낌을 선사한다. 특히 피부 및 여드름에 좋고 실내의 음식, 담배 냄새 등을 제거하는 탈취 효과도 높다.田
정리 홍정기 기자자료제공 / 동남주택건설, 02-3486-4007, www.dongnamhousing.co.kr 대보황토할배, 031-885-6519, www.wadang.biz 미진교역, 031-763-6688, www.mijin.net 청석웰빙황토(주), 02-324-4984, www.silvercs.co.kr 초원황토, 031-987-7322, www.cwhouse.co.kr 참고서적 / 윤원태 저 《황토집따라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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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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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친환경 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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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스(LOHAS :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주택에서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건강(Health)'과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ility) = 친환경'이다. 건축주(주택 소비자)의 개인주의적 가치인 '건강'과 건축주를 둘러싼 사회 공동체적 가치인 '지속 발전 가능한'의 조화로운 추구가 바로 로하스 주택이다. 이 지속 가능한 친환경 건축은 강력한 현장 시공 기술력으로 뒷받침한다. 이것으로 로하스 주택이 추구하는 건강과 환경을 모두 고려하는 주택을 제공함으로써 건축주와 시공자 그리고 자연이 공생共生하는 조화로운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로하스 주택 의 화두話頭는 에너지 절약이다 주요 관점은 주택에서 생활할 때뿐만 아니라 주택을 지을 때도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것이다.
건축재로 많이 쓰이는 알루미늄 제련製鍊 과정뿐만 아니라 구조재인 콘크리트, 내·외장재인 타일, 주택 설비 부품인 시스템 키친 등의 생산에도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반면 목재 같은 자연 재료는 가공이나 수송 등에 있어 비교적 소량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따라서 건축재를 선택할 때는 생산 과정에서의 에너지 소비량과 내용〔耐久〕 연수, 리사이클(Recycle) 가능성 그리고 리사이클에 필요한 에너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건물의 건축과 사용, 폐기 과정은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 오염 물질과 폐기물의 발생 등 환경 부하 및 오염 요인이 크다. 건축물은 에너지 소비의 1/3, 자원 소비의 40퍼센트, 이산화탄소 배출의 50퍼센트, 폐기물 배출의 20∼30퍼센트를 차지한다. 건축 분야는 철강 등 기초 소재, 수도·단열재 등 기자재, 전기·기계 설비, 조경 등 연관 산업에 대한 파급 효과가 크다. 따라서 건축물의 자재 생산, 설계, 건축, 유지 관리, 폐기 등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 및 자원의 절약, 오염 물질의 배출 감소, 쾌적성, 주변과의 조화 등 자연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최소화함으로써 건축물의 친환경적 요소를 늘려야 한다.
이렇듯 로하스 주택은 '미래 세대의 필요 충족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인류 및 동·식물의 생존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범위 내의 환경 상태, 즉 인간을 둘러싼 자연 환경에 이롭거나 적어도 해를 끼치지 않는 개발로 인간 활동과 환경의 조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주거 환경과 생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집 실내 환경 과연 안전한가
주택의 건축 자재 등에서 내뿜는 휘발성유기화학물질에 오염된 공기를 흡입했을 때 몸은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이것이 새집증후군(Sick House Syndrome)으로, 오염에 짧은 기간 노출되면 두통, 눈·코·목의 자극, 기침, 가려움증, 현기증, 피로감,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노출되면 호흡기질환, 심장병, 암 등의 질병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그 증상은 급작스럽게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마다 오염에 대한 '허용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집에 살면서도 증상을 느끼는 시기와 정도에 차이가 난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도 조금씩, 서서히, 확실히 체내에 축적되면서 몸은 여러 가지 증상을 나타낸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무서운 '화학물질과민증'으로 발전한다. 새집증후군은 바로 '화학물질과민증'의 전 단계다.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은 고기밀, 고단열, 집먼지, 화학 건축자재, 비닐류, 방충제 등이다. 즉 대부분이 접착제에 포함된 화학본드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인테리어 및 가구 자재들은 대부분 중밀도섬유판(M.D.F. : Medium Density Fiberboard)으로 제작해 화학 성분의 도료나 필름으로 마감하고 있다. 이러한 자재들은 실내 공기 오염의 주범인 포름알데히드란 독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건강하고 쾌적한 로하스 주택 자재
그러면 화학 본드를 쓰지 않고 건축할 수는 없을까? 물론 가능하다.건축물의 주요 구조는 나무를 이용한 포스트 앤 빔(Post & Beam : 수공식 기둥과 보 방식)으로 하고 벽은 황토벽돌 조적과 황토칠을, 내벽은 화학 물질 등의 첨가물을 일절 가하지 않은 황토반죽으로 마감한다. 천장은 원목 판재로 마감한다. 마감재를 시공할 때에는 화학 본드 대신 쌀로 만든 풀이나 동물의 뼈나 껍질, 가죽으로 만든 아교阿膠를 사용한다. 또한 문제 많은 내장재인 비닐류 대신 황토반죽과 회반죽을 사용한다. 이렇듯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은 소재와 공법으로 건축하면 된다.
그러나 천연 자재라고 해서 모두 안전하지만은 않다. 수명이 길고 크게 성장하는 삼목杉木이나 노송나무〔老松扁柏〕 등은 스스로 벌레나 목재부후균木材腐朽菌 등의 침범에 대비해 화학 물질을 내뿜는다. 그 양이 많으면 화학물질과민증이 있는 사람은 기분이 나빠진다. 이러한 목재는 흰개미나 목재부후균에 침범 당하기 쉬운 집의 토대土臺(목조 건축에서 기초 위에 가로 대어 기둥을 고정하는 목조 부재)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안전한 단열재로 천연 소재의 탄화 코르크(코르크가 탄화할 때 목재 수지가 나와서 덩어리가 되는데 그것을 얇게 저민 것)를 쓰면 공기의 중화나 습기 방지에 효과적이다.건물의 외벽이나 내벽은 일체의 화학 첨가물이 없는 황토벽돌로 시공하고, 마감은 황토반죽이나 회반죽을 칠한다. 황토칠은 시공 후에도 묻거나 일어나지 않으므로 벽지를 바르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하다. 외벽은 습기에 강하고, 내벽과 천장은 습기를 빨아들이거나 방지하는 효과가 뛰어나 집 안의 공기를 정화한다. 기타 내장 마감재로 돌, 감즙 천연 염색 한지 멍석 등을 사용하면 섬세하고 독특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건강한 주거생활을 자연 건축 소재로 실현시키는 것이다.
로하스 주택의 특성
로하스 주택은 벽을 불연성 황토벽돌 등으로 조적하기에 화재에도 안전하다. 또한 수명이 길다. 우리나라에는 700년 된 고려시대 목조건물이 지금도 건재하다. 이는 고려시대의 목수들이 원목 통나무를 수공으로 가공해 식용 가능한 기름을 끓여 여러 차례 발라 주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보다 우수한 건축 도료와 자재가 현재는 많으므로 로하스 주택의 주요 구조재 수명은 700년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로하스 주택은 단열과 통기성이 좋아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 냉·난방비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새집증후군 물질도 없다. 황토집은 황토벽돌과 원목 통나무 등 천연 무첨가 건축 자재로 짓기에 항상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건강상의 하자가 없다. 어느 정도 표준화 규격화됐기에 구조적 하자 없이 고른 품질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건강상의 하자 여부는 건축 방식에 따라 문제가 많다. 본드와 시멘트 그리고 벽지와 합판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이 우리의 실내 환경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로하스 주택의 자재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사용한 원목 구조재는 해체 후 고재로 다시 쓸 수 있으므로 철거 시 건축 폐기물이 없고, 황토벽돌은 밭으로 돌려보내 흙으로 남는 환경 친화적인 주택이다. 또한 원목을 사용한 건축물은 축적되어 다음 세대에 재활용될 귀중한 자원이 된다. 재활용이 가능해 재수거에 따른 노력 및 비용이 절감된다. 물론 건설 현장 내 건축 폐기물이 거의 없고 시멘트나 골재 채취에 따른 자연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어 환경 친화적이다.
효과적인 보온공사가 가능해 실내 온도 변화가 적어 에너지 소비량을 줄일 수 있다. 다양한 단열재 및 마감재를 사용하면 주거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특히 단열, 차음, 결로 방지 성능은 정확한 실험값에 의하여 설계되므로, 이에 대한 성능 확보가 용이하다.田
글 정성근<황토건축 기둥과 보 대표. 한국생태건축연구원장>031-881-6335, cafe.daum.net/ref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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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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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 환경의 역습! 건강 전원주택으로 막는다2]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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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은 원시 주거인 움집(竪穴住居)에서 출발하여 70년대 말 시골에서 흔히 보았던 초가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전통 주거 문화의 표상表象이다. 이러한 흙집은 1970년대 불어닥친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주택 개량 사업으로 모두 헐리고 철골과 시멘트로 탈바꿈한 현대 가옥들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흙집 주거의 역사를 단절시킨 주거 문화의 최대 실패작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도 지금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회귀 본능과 함께 자연 친화적인 현상이 발동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살아 온 시멘트 집이 유해성 물질을 내뿜으며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시멘트 집에 대한 거부 반응과 함께 흙이 인체에 이롭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면서 흙집을 선호하는 경향이 차츰 늘고 있다. 이렇듯 지금은 도시인이 흙집을 짓고 살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시기다.
수천 년을 이어내려 온 우리 선조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서민 주거인 흙집이 사라진 주 요인은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주거 생활의 불편함을 초래했다는 시각에서 접근해 보았다. 하여 21세기 흙집은, 과거 흙집의 불편함을 현대화된 건축 기술로 풀어냄으로써 현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전통 흙집과 현대 흙집의 차이점
전통 흙집이란 70년대 이전의 주거 건축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전통 건축 기술인 목구조로 뼈대를 결구結構하여 내력벽과 비내력벽을 힘살대(직경이 20㎜ 정도의 가는 나무를 인방과 인방 사이에 세로로 약 40㎝ 간격으로 고정시킨 벽체의 뼈대)를 박아 대나무 등으로 외를 엮어 거섶(볏짚을 약 6㎝ 정도 되도록 짧게 썰어 넣는 것을 말함) 등을 넣어 반죽한 흙으로 맞벽을 쳐 만든 토벽집을 전통 흙집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전통 흙집은 지붕의 소재에 따라 기와집, 초가집, 굴피집이라 부르는데 상류 주택에서는 기와집을 선호했으며, 서민 가옥은 대부분 초가였다. 당시의 와가瓦家나 초가 모두 평면 칸잡이가 ‘一’자형 또는 ‘ㄱ’자형, ‘田’자형 서너 칸으로 부엌과 큰방, 작은방, 대청과 툇마루로 구성됐다. 방과 부엌과의 동선動線이 분리되어 툇마루를 방과 부엌 사이를 오르내리는 접속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주거 생활의 불편함을 초래한 평면 구조다.
구조재로 12센티미터 굵기의 나무를 사용하여 벽체 두께가 8∼10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 흙벽의 주요 성질인 축열 효과(흙집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말로 외부 온도 차이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 것을 말함)를 얻지 못함으로써 단열재의 역할 저하로 외풍外風이 심했다. 또한 목재와 흙의 친화성이 떨어져 틈 벌어짐을 해결하지 못한 것도 전통 흙집의 역사를 단절시킨 주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 현대 흙집은 전통 흙집에서 표출된 평면 구조와 단열성 등 많은 단점들을 보완해야만 아파트 문화에 물든 현대인이 쉽게 찾을 것이다. 현대식 흙집의 몇 가지 기본 구성을 살펴보자.
첫째, 평면이 침실과 주방·거실 등으로 실내 공간이 일체성을 보여야 한다.
둘째, 흙벽의 두께를 두껍게 하여 단열 효과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흙벽의 두께가 최소 14센티미터 이상이라야 축열 효과가 나타난다. 벽 두께를 두껍게 하려면 이중二重 심벽치기 기술이 필요하다.
셋째, 기둥과 흙벽 사이의 틈 벌어짐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넷째, 지붕재는 자연과 가장 친화적인 기와나 너와·피죽 등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사정에 따라 흙집과 잘 어울리는 아스팔트 슁글 등의 소재 사용도 생각할 만하다.
흙집의 현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해결책
흙집은 시공비가 많이 든다
흙집하면 누구나 시공비가 많이 들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물론 전통 건축 공법인 사개맞춤식 한옥(기와집)은 목구조의 결구 방법에 따라 평당 500만∼800만 원이 든다. 하지만 현대식 평면 구조로 된 목구조 흙집은 건축 자재의 등급에 따라 다소 가격 변동은 있지만, 보편적으로 평당 300만∼400만 원이면 훌륭하게 지을 수 있다.
일례로 30평형대 흙집의 예상 건축비를 살펴보자( 참조). 앞의 에서 보았듯이 평당 3,000,000원대면 같은 평면 구조인 스틸하우스, 2″×6″ 경량 목조주택, 통나무주택, 콘크리트주택 등과 비교할 때 건축비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흙집은 관리하기 어렵다
흙집은 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목재의 방수, 방부, 방충재로 사용하는 오일스테인(Oil Stain)과 우드 키퍼(Wood Keeper) 등 좋은 제품이 시중에 많이 있어 관리 요령만 숙지하면 항상 새 집처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황토는 빗물에 약하다. 그렇다고 황토에 시멘트나 기타 화학 접착 물질을 혼합한 모르타르 등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흙집 바람을 타고 황토 관련 업체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물론 좋은 제품과 양심적인 업체도 있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에서 상술적인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불신을 사고 있다.
사람들은 순수 황토 그 자체만으로 흙집을 짓기 원한다. 그러나 순수 황토로 흙집을 지을 경우 먼저 하자 발생을 생각한다. 그것은 흙벽의 갈라짐(Crack)과 빗물에 의한 깎임 등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들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갈라짐은 마감 미장 기술에서 다소 보완이 가능하다. 황토를 지장수 만드는 방법으로 앙금(물에 가라앉은 보드라운 진흙)을 만들어 부드러운 붓으로 벽면에 덧바르면 언제든지 흙벽의 하자를 보수할 수 있어 늘 새 집처럼 관리할 수 있다.
흙벽돌 무엇이 문제인가
흙집을 짓는 사람들은 주로 황토벽돌을 사용한다. 황토벽돌은 토련기(흙을 이는 기계) 공법으로 만들어낸 벽돌과 프레스 공법으로 찍어낸 벽돌이 있는데 두 제품은 차이가 많다. 순수 황토로 만든 토련기 공법은 압축 강도에 약한 것이 단점이며, 프레스 공법은 수분水分에 약한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시중에는 이를 보완하고자 시멘트 등의 혼합 물질을 첨가하여 만든 황토벽돌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600도씨 이상에서 소성한 황토벽돌도 있다. 이러한 흙벽돌은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의 서식과 원적외선 방출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예를 들면 자연 광물질인 흙(황토) 속에는 인체에 유익한 효소 작용을 하는 카탈라아제(노화 현상 방지 효소), 프로테아제(정화 및 분해 작용 효소), 디페놀옥시다아제(산화 환원 효소), 사카라아제(영양 효소) 등과 같은 미생물이 무수히 서식한다. 그리고 60도씨 이상 가열할 때 최대로 방출되는 원적외선은 인체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신진대사 촉진으로 피로를 풀어 주는 역할을 돕는 건강 광선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과 원적외선은 순수한 흙벽(거섶을 넣고 황토를 반죽하여 맞벽치기한 벽) 속에서 많은 양을 얻는 것이지 혼합 물질(시멘트나 수지)을 첨가한 제품에서는 미생물 서식은 기대하기 어렵고 원적외선 방출량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목구조 흙집 자재 및 시공 전문가를 구하기 힘들다
전원에서 황토집을 짓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대부분은 목구조 흙집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성 부족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자재 수급에서부터 기술력 확보 등 목구조 흙집에 대한 노하우 부재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목구조 흙집은 우리의 전통 건축 기술임에 틀림이 없다. 하여 건축 기술자(목수)의 선택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다만 시공사를 선택할 때에는 건축주가 원하는 흙집을 지을 수 있는지, 그 능력을 확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흙집을 지은 실적과 건축 기술, 재정 능력, 축적된 노하우 등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목구조 흙집에는 먼저 질 좋은 소나무를 확보해야 한다. 소나무는 국산 육송이 제일이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절대 부족하기에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다. 그러나 캐나다 등지에서 생산되는 미송美松이 국내에 많이 수입되기에 목재(가재목) 구입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흙집의 최고 자재인 황토는 국내 매장량과 공급량이 충분하다. 다만 황토의 생산지가 지방마다 일부 한정되어 있어 구입 시 운반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다. 필자는 황토 조달은 건축주가 토목공사를 할 때 자기 땅에서 나오는 흙을 분석하여 잡석雜石과 철분이 많이 혼합된 흙이 아니면 그 흙을 사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만약 현장에서 확보된 흙이 점토질을 많이 함유한 흙일 경우 세사(가는 모래)를 일정량 혼합해서 사용할 수 있으며, 반대로 마사와 모래 성분이 많은 흙은 소석회를 일부 첨가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 건축주를 위한 제언
필자의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는 많은 사람이 흙집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데 십중팔구 첫마디가 ‘평당 얼마에 지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문의한다. 건축에 문외한門外漢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자주 쓰는 비유법이 있다. ‘자동차를 살 때도 무턱대고 한 대에 얼마 하느냐고 묻습니까?’ 똑같은 질문이다. 자동차는 차종에 따라 그리고 같은 차종이라도 배기량 및 옵션에 따라 가격이 각기 다르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제력에 따라 차종을 선택하여 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주는 경제력에 맞추어 맞춤식 건축을 해야 한다. 건축비는 대지 구입비와 건축비, 조경 공사비를 분리하여 순수 건축비를 산정해야 한다. 그리고 건축 후 추가로 드는 여윳돈도 계획해 놓아야 한다.
건축주들은 공통적으로 건축비는 저렴하게 잡고 집은 최대한 고급스럽게 지으려는 욕심을 부린다. 예를 들면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수십 번을 고쳐 그려 완성한 도면을 공사 중에 또 고치려고 한다. 물론 평생에 두세 번 지을 수 없는 집이고 보면 그렇게 욕심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한 욕심은 건축비와 비례하기에 조금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공사에다 견적을 의뢰하여 건축을 결정할 때 이것만은 참고하기 바란다. A사, B사, C사에서 받은 견적이 예를 들어 평당 250만 원과 300만 원, 350만 원으로 각각 다를 경우 건축주들 대부분은 가장 저렴한 회사와 계약을 맺는다. 이때 계약서에는 공사 범위를 명확히 명기하고 별도의 시방서를 작성하여 어떤 메이커의 자재를 사용할 것인지, 또 공정은 어디까지 마무리할 것인지를 기입해야 공사 후 상호 분쟁을 막을 수 있다. 시방서 없이 250만 원에 공사하겠다는 업체에 의뢰하여 건축한다면 업자는 250만 원에 준한 집을 지을 것이고, 건축주는 300만 원에 상당한 집을 지어 주길 원하므로 집이 완성되기 전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田
글 윤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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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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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죽임집, 흙집은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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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아파트로 난리다. 하룻밤 자고 나면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수천만 원 뛰는 세상이다. 모 지역 아파트는 한 달에 1억이 올랐다고 한다. 서민들은 허탈하다. 집 장만하기도 어렵고 평생 저축해도 모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 한 달 만에 오르는 기형적 사회 분위기에 일할 맛이 싹 사라진다. 출근 길 두 무릎에 힘이 빠진다. 아파트 평당 가격이 수천만 원을 웃돌아도 서로 분양 받으려고 밤을 새우며 줄을 서는 기나긴 대열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곳곳에 산을 깎고 세워지는 것도 아파트요, 시골의 논밭을 짓뭉개고 들어서는 것도 아파트 단지다. 한마디로 이 시대는 아파트 만연 시대요, 아파트 중독 시대요, 아파트 투기 시대요, 아파트 추종 시대요, 아파트 찬미 시대다.
이처럼 광적인 아파트 예찬 시대의 한 복판에서 흙집을 예찬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어느 한 정신병자의 미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신병자로 취급받더라도 부르짖어야겠다. 이대로 계속 되다가는 얼마 안 가서 아파트로 인한 자연적 재앙이 도래하며 개인적 질병이 창궐하고 그 비싼 아파트 문서가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리는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혼란이 일어날 것이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개발로 인한 자연적 재앙은 그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고 시멘트를 만들려면 석회석을 구해야 한다. 결국 산을 파헤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점점 산을 보기 힘든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논과 밭을 죽이고 있다. 수천 년 수만 년 자연의 역사를 흔적도 없이 말살하고 있다.
한마디로 아파트 개발은 자연에 대한 공격이요, 착취다. 자연의 수많은 생명체를 죽이는 살생 행위다. '자연이 행복 해야 인간의 삶도 행복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미개하고 천박한 인간 문화의 현주소다. 이러한 인간의 폭력이 중단되지 않는 한, 이제 자연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자연이 불행하면 인간도 불행해진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그 불행을 뼈 속 깊이 체험할 날들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아파트 살림집이 아닌 죽임집
심각한 문제는 아파트는 지은 지 삼사십 년 후에는 수명이 다해 폐기처분된다는 사실이다. 전국 수많은 아파트의 어마어마한 건축 폐기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정도가 엄청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결국 그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자연적 재앙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먹는 물이 오염되고 공기가 탁해지고 삶의 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황으로 내 몰릴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더구나 세계적 식량 부족 현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터인데, 수많은 논과 밭이 야금야금 아파트단지로 탈바꿈된다면 곧 다가올 식량 대란 시대에 과연 아파트를 뜯어먹고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때에는 돈이 있어도 식량을 마음대로 수입할 수도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과학적 데이터로 예측할 수 있다. 참으로 미래가 암울하다.
더구나 아파트 생활로 인한 질병의 창궐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늘어나는 것은 환자요, 병원이요, 약국이다. 아토피성피부염을 비롯한 각종 질병은 그 원인이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잘못된 주거 생활이 큰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루 8시간 이상 쉬거나 생활하고 잠자는 공간이 사방에서 독가스를 뿜어내는 집이라면 병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건강은 생기를 잃고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가족의 살림집을 한 채 장만하기 위해 오랜 세월 얼마나 노력하는가. 먹을 것 입을 것 아껴서 결국 마련한 집이 사방에서 콘크리트 독과 각종 화학가스를 뿜어내는 아파트라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힘들게 번 돈으로 생명을 시들게 하는 일종의 가스실을 사서 그 속에서 거주한다는 것이야말로 원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일본 학자가 여러 가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쓴 《콘크리트 집에서 살면 9년 일찍 죽는다》라는 책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아파트는 생명을 살리는 주거 공간이라기보다는 생명을 서서히 죽이는 집이다.
휴지조각으로 변할 고가 고층 아파트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간 중심적 생명관을 가진 인간의 교만한 자기 규정 이외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보다 똑똑하고 우등한 존재라고 여기나 사실은 그 반대다. 인간이 아주 우매하고 바보스런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그 하나가 바로 현대인의 주거 문화다.
길을 걷다 보면 시멘트 보도블록을 만난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멘트 보도블록 위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 그런데 보도블록과 보도블록 사이의 불과 이삼 밀리미터 비좁은 틈바구니에 이름 모를 씨앗이 떨어져 풀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뿌리가 흙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실만 제대로 깨달아도 우리가 어떤 집에서 살아야할지 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파트를 사지 못해 그렇게 온통 난리법석을 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우주의 생명체 중에서 시멘트집에 사는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한 종일 것이다. 그 어떤 생명체도 시멘트 공간을 보금자리로 선택하지 않는다. 살림의 공간이 아니라 죽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천루 고층 아파트가 전국 곳곳 시골지역까지 우후죽순 침투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면서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곧 다가올 사회적 경제적 대혼란이다. 지금은 평당 수천만 원 가는 아파트지만 그 고가의 아파트 문서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날이 곧 다가 오기 때문이다. 아파트 수명은 평균 삼사십 년, 길어야 오육십 년이다. 결국 재건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삼십 년 전에 지은 아파트들은 대부분 사오 층 아파트들이다. 그러기에 입주자들과 개발업자들의 이해가 서로 맞아 아파트 재건축이 가능한 것이다. 양자 모두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층으로 지은 아파트들은 재건축이 쉽지 않기에 개발 업자가 달려들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은 아파트 수명이 다하는 삼사십 년 후에 재건축을 하려면 본인이 전액 건축비를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결국 아파트는 수명이 다함으로써 그 가치는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오래 전에 지은 강남 지역의 모 고층 아파트에서 이미 이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대파장을 야기할 것이다. 재건축을 못한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슬럼화되어 전국 곳곳에 사회적 공해덩어리, 골칫덩어리로 난무하게 될 것이다. 재건축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아파트 입주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수도 있다. 참으로 큰일이다. 시급히 국가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생태 건축
앞으로 짓는 건축물은 앞에서 언급한 자연적 재앙과 질병의 창궐과 사회적 경제적 대혼란을 막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생태적 지침에 따라야 한다.
첫째, 수명이 오래 가는 건축물로 지어야 한다.
몇십 년이 아니라 몇백 년 이상 건재하는 집을 지어야 한다. 집의 수명이 짧으면 건축 폐기물로 인한 자연 오염을 야기한다. 재건축으로 수많은 자연이 훼손되고 착취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태 건축의 제일 조건은 수명이다. 아무리 자연 소재로 건축했다고 하더라도 수명이 짧으면 생태 건축이 아니다. 재건축이란 미명 아래 수많은 자연 생태계를 파괴 착취하기 때문이다. 수명이 오래 가는 집을 지으려면 공법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에 맞는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수명이 기껏해야 오육십 년인 콘크리트를 사용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그래서 흙, 돌, 나무를 사용해야 한다. 이들 자연 소재는 물과 습기만 차단하면 수백 년 이상 건재하다.
둘째, 자연 소재로 집을 지어야 한다
흙, 돌, 나무 등의 자연 소재로 집을 지으면 좋은 생명 에너지가 충만하므로 각종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히려 건강을 회복하는 살림집이 된다. 아파트도 H-빔으로 골조를 세우고 벽체를 흙벽돌로 조적하되 빗물에도 손상되지 않는 공법을 연구해 보자. 흙집 아파트를 짓는다면 수명도 오래 가고, 그 수명이 다해도 건축 폐기물을 양산하지 않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흙집 아파트를 지으려면 흙과 나무 등 수많은 자연 생명체들의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수명이 오래고 그 수명이 다해도 재활용이 가능하기에 피해는 콘크리트 아파트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다. 그리고 건축 소재로 사용된 나무의 경우, 사용한 양의 두 배 정도 나무를 의무적으로 심도록 하는 생태 순환적인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의 건축 문화가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대안적 노력과 법적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셋째, 대안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이제 십 년도 채 못 가서 석유 정점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석유 생산 감소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대란을 경험할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이 치솟는 난방비와 공급되지 않는 석유와 가스로 아파트, 단독주택, 사무실, 공장, 운송 등 삶의 거의 모든 분야가 마비 상태에 이를 것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석유는 사십팔 년, 석탄과 천연가스는 오육십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태양열이나 지열 등 대안 에너지를 개발 사용하지 않으면 인류는 에너지 문제로 상상을 초월하는 시스템 마비와 혼란을 겪는다. 그러므로 새로 짓는 건축물은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태양열, 태양광, 지열 등의 대안 에너지를 사용하는 설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안 에너지 시설 연구 개발과 보급에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한다.
흙집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다
흙집은 생명체다. 흙집은 주로 흙을 소재로 지은 집이다. 바닥, 벽체, 천장 등 사방이 흙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나무와 돌을 사용한다. 흙집은 단순한 물질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생명체다. 흙집의 주 재료인 흙은 수많은 생명을 양육하는 생명의 어머니요, 아버지다. 즉 생명의 원천이다. 흙 자체가 생명의 좋은 에너지를 담은 생명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흙은 바람과 햇빛과 물과 수많은 미생물과 더불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생명의 존재 방식이다. 움직이기에 살아 있으며 살아 있기에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 움직이는 흙으로 지은 흙집은 단순한 물질이 아닌 생명체다.
흙집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기에 숨을 쉰다. 인간처럼 폐로 호흡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숨을 쉰다. 즉 생명의 에너지가 고립 단절된 것이 아니라 소통한다. 타 생명체와 상호 소통하고 에너지 교환이 이루어진다. 집 안팎이 소통하고 집 안에 거주하는 사람과도 끊임없이 에너지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흙집은 살아 숨쉬는 집이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집이다.
흙집은 어머니 품속처럼 편안하다. 흙집에는 좋은 생명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섬뜩한 느낌이 들고, 또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그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의 내용 차이 때문이다. 시멘트 콘크리트와 각종 화학약품 처리된 자재로 지은 공간에서의 느낌과 흙집에서의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흙집에 살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생명 에너지가 충만한 집이요, 숨쉬는 집이요, 어머니 품처럼 편안한 집이기 때문이다. 흙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아토피성피부염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치유되거나 호전된다. 한 예로 우리 흙집학교 수료생 중에 아토피성피부염 환자가 있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 때, 매일 몸이 가려워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그런데 일주일간 흙집학교 강좌에 참여해 흙집에서 자는 동안 가려움증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몸소 흙집의 효능을 체험하고 나서 지금은 흙집을 짓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이 밖에도 치유의 사례는 많다. 이처럼 흙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훌륭한 자연의 의사를 모시고 사는 것과 같다.
흙집의 수명은 몇백 년 이상 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흙집은 물과 습기만 차단하면 수명이 몇백 년 이상 간다. 길어야 오육십 년 밖에 지속하지 못하는 콘크리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수명이 다해도 자연과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집이다. 따라서 흙집은 개인적 국가적으로 매우 경제적이며, 지구적 우주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한 생태적 건축이다.田
글 고제순<흙집학교 흙처럼아쉬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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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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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집안의 천덕꾸러기가 박사 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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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녀석이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을 책 한 자 안 보고 게임만 하다가 가더라. 그러니 무슨 시험을 잘 보겠어. 그냥 점수 나온 대로 맞춰서 보내야지.”
7년 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옆 동네로 귀농歸農한 남편의 대학 동창 아들이 벌써 수학능력시험을 보았단다. 수시 모집 기회도 놓치고 도시로 유학을 보내 놓은 터라 농어촌특별전형의 혜택도 못 받은 그 아이는 순수하게 수학능력시험 평가 점수만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힘들게 농사지어서 공부시키는 줄 알면 등록금 덜 드는 학교로 갈 수 있게 공부를 했어야지. 요즘 아이들은 도대체 인생의 목표가 없어…….”
이렇게 말꼬리를 흐리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8년 전 우리 집안에도 이런 고민을 안겨준 막내 동생 녀석이 떠오른다.
딸만 셋이던 집안에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첫째인 내가 12살 때 막내로 태어난 남동생은 한 마디로 ‘별종’이었다. 공부에 뜻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의 산만한 성격에 집에 있는 시간보다 동네 오락실에 있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게임광이어서 부모님의 속을 무던하게도 썩이던 아이였다. 오죽했으면 우리 세 자매는 학교에 다녀와서 남동생 녀석이 집에 없으면 온 동네 오락실을 찾아다니며 아버지께서 퇴근하셔서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녀석을 찾아서 저녁 밥상머리에 앉혀 놓는 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중고교 시절에도 녀석은 우리 자매들에게는 시켜주지 않던 과외까지 시켜가며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를 기대했지만 성적은 언제나 식구들을 실망시키곤 했다.
그 녀석에게 대학으로 가는 문이 좁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어서 4년제 대학에 원서를 넣었지만 합격통지서는 한 군데서도 오지 않았다. 4년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온 집안 식구들이 2년제 대학을 보낼지, 재수를 시킬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녀석이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4년제 지방 국립대에서 등록 포기로 생기는 정원 미달 시 합격시키는 대기자 명단에 있으니 등록금을 준비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턱걸이로 아슬아슬하게 녀석은 지방 국립대의 공대생이 되었다. 하지만 공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방황을 하는 것 같았다. 낙천적이고 자유분방하고 끼가 있는 녀석은 고교 시절에는 ‘오락 부장’을 도맡아 하며 한때 ‘개그 작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 녀석에게 이지적이고 정적인 공대생이라는 옷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동생은 1학년을 간신히 버티다가 도피성 입대를 해버렸다.
강원도 최전방에 가서 죽도록 고생을 해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는 아버지의 성화를 뒤로하며 자발적으로 현역으로 입대한 동생은 특수 부대에 배치되었다. 머리를 쓰는 일보다는 몸을 쓰는 일이 더 적성에 맞는다며 동생은 대학 생활보다 군대에 더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았다. 2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눈빛이 한층 깊어진 모습으로 돌아 온 녀석은 복학을 했다.
하지만 녀석은 더 이상 예전의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 군대가 녀석의 인생관을 바꿔 놓았는지 대학 생활에 열심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을 살려 학회장을 맡기까지 했다. 4학년에 올라가더니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녀석이 정말 대학원에 진학해서 하얀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 들어앉아 첨단 공학을 연구하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더 이상 식구들 가슴 졸이게 하지 않고 대학교만이라도 무사히 졸업해서 건실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주기만을 바랄뿐이었다.
내 기억 속에 남동생은 요란한 기계음이 가득한 동네 오락실에서 현란한 손놀림으로 전자 오락기 속의 비행기들을 폭격하고 있을 때는 눈빛이 반짝였지만 책상머리에선 항상 졸거나 10분을 집중해서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녀석이 치열한 두뇌 싸움과 연속되는 실험과 데이터 분석 등으로 점철되는 학문인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하고 박사 과정까지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을 때는 녀석의 성장 과정을 꿰고 있는 누나인 나로서는 격려를 아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화려한 빈말(?)이었을 뿐 내심으로 나는 녀석을 믿지 못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은 용감하게도 서울의 이공계 학과로 유명한 사립대 대학원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하더니 무사히 첫 관문을 통과하고 박사 과정까지 너무나 매끄럽게 안착을 하는 것이었다.
“너 정말 실험실에 하루 종일 앉아서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 하는 거 맞니? 어릴 때는 너 책상머리에서 제대로 공부하는 꼴을 못 봤는데.”
석사 논문 통과하고 박사 과정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동생이 전해왔을 때 축하의 말 대신 이렇게 미심쩍어 했을 정도였다.
“누나는 옛날 얘기를 하고 그래. 소시 적에는 그럴 수도 있지.”
사실 천덕꾸러기 남동생을 이렇게 만든 숨은 공신은 우리 아버지였다. 눈만 한번 크게 뜨면 말 잘 듣던 딸만 내리 셋을 키우다가 난생 처음 얻은 아들은 유전자 구조부터 달라서인지 아버지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지 도대체 적응이 안 되었다고 했다.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우리 세 자매가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인 구조로 성장해 아버지를 교육비에 대한 부담으로 짓누를 때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남동생은 집안에서는 나이 차가 많아서 대화 상대도 안 되는 누나들 틈에서 어리지만 은근히 장남이라는 압박만 받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락실을 찾게 되고 공부만 하라는 부모님의 성화도 피부에 와 닿지 않아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세 자매의 공부를 끝내고 시집까지 보내고 나서야 그런 녀석의 부담과 고민을 깨달으셨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아들을 찬찬히 살펴보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녀석이 군대에 간 동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기다리며 한문 공부를 다시 시작하셨고 살아오신 인생을 기록하기로 작정하셨다.
녀석이 제대를 하고 복학을 준비하는 동안 아버지께서는 전과는 달리 아들과 대화를 많이 시도하시며 배우고 익히는 학문에 대한 즐거움을 논하며 공부에 매진할 것을 독려하시는 동시에 몸소 동생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 간의 직분에 맞지 않은 일도 가리지 않고 하셨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신 아버지께서는 택시 운전을 하시고 틈틈이 감자와 고추 농사를 지으시며 버신 돈은 오로지 동생의 등록금으로만 쓰셨다. 한자능력검정시험에 쉬지 않고 응시해 2급 검정시험까지 합격하신 뜻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손수 모범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런 깊은 부정父情이 말썽꾸러기 녀석을 학문의 즐거움을 깨우쳐 학문의 첨단인 박사 과정까지 도전하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앞으로도 녀석이 넘어야 할 관문이 많겠지만 아들을 박사 과정을 위해 맹자의 어머니처럼 지방에서 서울의 학교 근처로 이사까지 감행한 우리 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동생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해마다 대학 입시를 전쟁처럼 치르고 명문대 입학만이 오로지 살길인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토 속에서 학부모와 학생 모두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풍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입시 제도를 탓하며 일찌감치 자녀들을 유학을 보내거나 사교육에 맡기기보다는 우리 아버지처럼 부모가 먼저 자녀에 대해서 깨닫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오수향(ocho02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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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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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 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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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핀다. 며칠 동안 집을 떠났다 돌아오면 맨 먼저 아궁이에 불부터 지핀다. 한 개비 성냥불은 구겨진 신문지를 태우며 잔가지에 옮겨 붙고 이어 장작에 옮겨 붙은 불은 아궁이를 달구며 순하게 구들로 빨려 들어간다. 부넘기를 타올라 구들장을 떠받친 굄돌 사이를 거쳐 고래로 빠져나가는 맹렬한 불길로 달궈진 구들장은 두어 시간 후면 뜨끈뜨끈한 온돌방으로 나를 쉬게 한다.한 아궁이 땔감을 밀어 넣고 집을 살핀다. 하얀 눈길에 발자국이 찍힐 때 환하게 생기를 되찾는 집의 기운을 느낀다. 굴뚝은 뭉글뭉글 신나게 연기를 피워 올리며 주인이 돌아왔음을 마을에 알린다.사람에게만 기다림이 있는 것이 아님을 집을 짓고부터 알았다. 집을 비우면 집은 주인을 기다린다는 것을. 둘레의 나무들도, 마당에 놓인 바윗돌까지도 모두 함께 주인이 어서 돌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산골에 우리 집을 짓고부터 알았다.그럼에도 나는 이따금 집을 떠난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이 보고 싶은 이유 속엔 기실 산골생활의 적적함이 큰 몫을 한다. 그것은 전원에 대한 감동의 척도가 낮아진 때문이며 집을 나섬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내 나름의 방편이기도 하다. 마당을 나설 때부터 우리 집과 이곳이 그리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쁨이 보태진다.강을 품어 안고 어깨 두른 산자락이 다시 신비가 되고, 적요하던 산골 마을이 사람이 살 곳으로 아늑해 보이는 것도 먼 길을 한 바퀴 돌아왔을 때이다.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다 돌아간 멧돼지 가족의 선명한 발자국이 반가운 것도, 대숲을 스치던 스산한 바람 소리가 청아한 음률이 되고, 겨울나무 빈 가지 앞에서 마음을 여미게 되는 것도 집을 떠났다 돌아왔을 때이다.그렇다. 떠남은 돌아오기 위함이며 새로운 모색이 시작되는 걸음이다. 희망을 찾는 출발이 되고 가슴 떨리는 그리움을 만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새해에 더욱 길을 떠난다. 해맞이, 그 벅찬 희망을 만나기 위하여. 느슨해진 삶이 탱탱하게 조율되어 모든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 위하여.오래전, 그 해의 첫 해오름을 나는 동해 바닷가에서 맞이했다. 아파트 거실에서 편안히 볼 수 있는, 해운대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를 두고 어둠 속을 두 시간쯤 달린 그곳은 울산시를 벗어나 솔숲이 아름다운 작은 갯마을 앞이었다. 파도에 밀려 자갈이 긴 둔덕을 이루고 있는 바닷가에 닿았을 때 고요한 새벽인데도 자갈 구르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차르르차르르차르르르… 거세게 뭍을 할퀴던 바다의 포효. 해를 낳기 위한 바다의 요동. 그 거센 진통 앞에서 나는 전신을 떨었다. 이윽고 동녘 하늘 가득 모래집물을 붉게 터뜨리며 둥근 얼굴 하나 솟게 하고 기진해 눕던 바다. 어디에서 새벽을 기다렸는지 갈매기들의 비상이 시작되었다. 남아 있던 어둠이 갈매기의 날갯짓에 털려 흩어질 때쯤 바다는 서서히 환희의 출렁임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천지 창조의 첫날이 그러했을 듯 수평선 너머 온 하늘이 새벽 노을의 장관으로 숨을 멎게 하던 그때, 나의 환호는 노을이 아름다운 동녘 하늘로 달려가고 그 기운은 다시 새 즈믄 해 새벽 백두대간 능선에 나를 서게 했다.해보다 먼저 산이 솟아올랐다. 힘찬 맥박을 뿜어내며 서서히 서서히 솟구쳐 오르던 검은 숲. 건장한 나신을 드러내던 나무들 너머로 심해의 물빛 같은 새벽 하늘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신비롭던 하늘빛. 산정에 도착하여 바라보았던 광활한 우주의 새벽은 나를 무중력의 우주인이 되게 했다. 그 황홀한 유영. 이윽고 검푸른 하늘에 진홍빛 양수를 질펀하게 터뜨리며 해를 낳던 산의 요동. 붉은 햇덩이 하나 솟구쳐 올리고 비로소 산은 제자리를 잡았다. 떠오른 해는 세상의 순리를 내려다보고 산은 엄숙한 위엄으로 땅의 질서를 다스린다는 것을 그 겨울 새벽 백두대간 진부령 능선에서 알 수 있었다.그런 해맞이를 맞이한 이후, 내 삶은 그때 겪고 있던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원고를 새벽에 시작하고 새벽에 마무리하는 버릇을 들였다. 잠자리에 들 때부터 새벽을 기다리는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장작불이 사그라진 아궁이를 닫고 뜨끈해진 아랫목에 먼 길을 돌아온 몸을 누인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산골의 밤은 태고인 듯 고요하다. 오늘밤 켜놓은 촛불이 천장의 서까래를 돋보이게 하며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이 신비로운 안식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꿈인 듯 몽롱하다.새해의 새벽을 기다린다. 아직도 불꽃처럼 발갛게 감이 달린 우리집 마당 감나무 앞에서 우러러 해맞이를 할 것이다. 내 아이들과 함께 강 건너 앞 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힘차게 당겨 안을 것이다.田글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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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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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에세이/열두 번째 이야기] 전원에서 겨울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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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쓸쓸하다. 날씨는 춥고 을씨년스럽다. 새싹은 말할 것도 없고 나뭇잎도, 꽃도, 열매도 없다. 나무들은 앙상하고 산과 들은 휑하다. 겨울은 그야말로 삭막하기 그지없다.그래도 겨울은 그 나름의 멋이 있다. 특히 전원 속의 겨울은 어린 시절과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일이 많다. 어린 시절에는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에서, 복잡하고 화려한 도시보다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전원에서 살았다. 마당 있는 집을 나서면 보이는 것은 산이고 들이었다. 그 시절 겨울은 춥고 힘들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이어서인지 그 겨울의 추억이 좋다.한동안 이런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산 적이 있다.계절의 변화가 없는 열사의 나라였다. 그 사막에도 겨울이 있기는 하다. 엄청나게 덥기만 하던 사막에도 12월경 살얼음이 두세 번 얼다가 겨울이 맥없이 지나간다. 그곳에는 눈도, 산과 들도 없어서 겨울의 멋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런 생활을 한 탓인지 우리나라의 겨울이 좋다.무엇보다 하얀 눈과 산이 있어서 좋다. 또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있어서 마음을 설레게도 한다. 이런 눈과 크리스마스도 도시보다 전원이라야 더 좋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전원이야 언제나 좋지만 겨울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원 속의 겨울은 도시나 아파트에서의 겨울하고 확실히 다르다.포근하고 재밌는 월동 준비겨울을 나려고 월동 준비를 한다. 아파트에서야 필요 없지만 전원주택에서는 겨울을 준비할 일이 많다. 김장, 동물, 분재, 꽃밭, 정원 등의 월동준비…….전원주택에서는 우선 김장이 다르다. 아파트에서는 절여주기까지 하는 배추 몇 포기 사다가 욕실과 좁은 주방에서 재미없게 한다. 전원주택에서는 온 가족이 텃밭에 나와 그동안 정성스럽게 기른 배추를 뽑고 다듬는다. 널다란 정원과 정자에서 여유롭게 배추를 절여 마당의 수돗가에서 김장을 담근다. 그러니 협소한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하고 재밌을 뿐만 아니라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예전에는 김장 담그는 일은 집안 대사였다. 어머니 지휘 아래 아버지, 누나, 형, 동생들까지 온 식구가 다 동원된 가운데 배추밭과 동네 우물을 오가며 이삼 일간 일을 치렀다.또 군대에서의 월동 준비도 생각난다. 막사의 방풍 작업, 난로 설치, 주변 산에서 땔감을 준비하는 일. 특히 김장 담그기는 대단히 큰 행사다. 김장 비용을 마련하려고 여름부터 부식비를 줄였으므로 김장 담그기 전까지는 매일 미역국만 지겹도록 먹었다. 김장 담그는 날은 부근 부녀회와 여고생들까지 평소 보기 어렵던 사람(여자)들이 부대로 찾아왔다. 이들로 말미암아 부대 분위기는 밝아지고 위문품에 맛있는 김치까지 완전히 잔칫날이었다. 당시 처음 나온 전기밥솥에 지은 쫄깃쫄깃하던 흰쌀밥에 김장김치까지 평소 군대 짠밥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이렇게 어린 시절과 군대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온 가족이 텃밭과 정원에 나와 김장을 담근다. 김치냉장고가 있지만 정자 옆에 김칫독도 묻고 시래기도 엮었다. 어디 이런 일들을 아파트나 도시에서 상상이나 하겠는가.다른 월동 준비도 많다. 그동안 가을 정원을 아름답게 꾸민 국화와 분재들을 온실로 옮기고 나무들 보온도 한다. 백합, 다알리아, 수선화 같은 구근류는 얼지 않도록 낙엽으로 덮는다. 닭들도 추운 겨울을 나도록 준비해 준다. 닭장 바닥에는 발이 얼지 않도록 볏짚을 깔고 잠자는 곳도 바람막이를 해 아늑하게 한다. 집을 든든히 지키는 진이(진돗개)네 집도 바닥을 만들고 바람구멍도 막아야 한다. 연못도 깊은 곳까지 얼지 않도록 덮개를 만들어 보온한다. 이같이 집안 식구들을 위한 겨울준비, 이런 일들은 힘들고 귀찮기보다는 놈들을 생각해서 하는 일이므로 마음이 포근하고 재미있다.하여간 이런 시대에, 이 나이에, 그것도 서울에 살면서, 옛날과 고향집을 생각하며 월동 준비를 하는 일은 아무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다.목욕, 임금님 부럽지 않은 호사(?)나는 집에서 하는 목욕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추운 겨울날이면 너무나 행복하다. 비록 사우나보다 협소하고 불편하지만 행복감을 느끼려고 일부러 집에서 목욕한다. 뜨거운 물 속에 잠겨 고향집이나 어린 시절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하면서 목욕을 즐기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밖은 엄청나게 추운데 그것도 내 집의 욕탕에서, 나 홀로, 조용히, 뜨거운 물 속에 앉아 있다는 게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가. 그 옛날 임금님도 누리지 못한 일일 텐데…….이 사소한 일(?)을 이토록 행복하고 신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건축을 하는 것과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이다. 더욱이 복잡하고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에서 하는 목욕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사람들은 집에서 목욕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웬만한 아파트나 집에는 다 보일러가 있고 온수 꼭지만 틀면 따뜻한 물이 쏟아져 나오니까. 그러나 건축적으로 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학창 시절에 건축을 공부한 탓으로 난방과 욕실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난방은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가정에서의 급탕은 상상하기 힘들었다.작은 단독주택에도 반드시 별도의 보일러실이 있어야 할 정도로 보일러는 크고 복잡했다. 그러니 그런 보일러를 아무나 설치할 수도 없고 순간적으로 온수가 나오지도 않았다. 거기다 기름 값이 얼마나 비싼 시절인데 집에서 목욕을 하다니… 아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또 집에서 하는 목욕이 행복한 것은 어린 시절 추억 탓이다.요즘은 목욕탕이 흔하다. 어딜 가나 사우나와 온천이 있어 시도 때도 없이 할 수 있다. 그것도 때를 벗기러 목욕을 가는 것이 아니라 피로를 풀거나 즐기러 간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명절 때나 목욕탕에 갔다. 그것도 추운 바람이 쌩쌩 불던 논밭을 지나 멀리 시내에 있는 목욕탕까지… 그 때는 정말 목욕탕에 가는 것이 싫었다.당시 목욕탕은 만원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엉덩이가 서로 부딪히는 것은 물론 욕탕에는 아예 들어갈 수도 없었다. 실내는 수증기로 어두컴컴하여 옆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당시 우리들의 손과 발은 때가 많아 트고 갈라져 피가 나지 않는 아이들이 없었다. 심지어 동상을 입은 적도 있다. 날씨는 추운데 옷을 제대로 입기를 했나, 먹을 것이 풍족하기를 했나, 제대로 씻기를 했나, 거기다 매일같이 밖에서 팽이 치고, 땅 따먹기 놀이, 연날리기, 산과 들에서 전쟁놀이나 하고 놀았으니… 그런 몸으로 오랜만에 목욕을 한다.일 년에 한두 번 하는 목욕이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 아버지의 힘센 팔로 껍질이 벗겨지도록 때를 미니 보통 아픈 게 아니다. 이리 저리 몸을 빼다 마침내 그 힘든 과정을 마칠 때의 홀가분함과 새 내복으로 갈아입었을 때의 그 안온한 느낌. 그리고 싸한 바람으로 상쾌하게 목욕탕을 나올 때는 어느덧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또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걸어서 멀리 집으로 오곤 했다.지금은 추운 바람을 맞으며 먼 길을 걸어 집으로 갈 필요도 없다. 엉덩이를 부딪히지도 않는다. 그렇게 아프도록 때를 벗기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 매서운 추위에 한가로이 따스한 물에 잠겨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며 목욕하자니 얼마나 행복하고 신기한가. 그것도 '내 집에서 나 홀로 여유 자작하며 하는 목욕이…' 생각할수록 신통방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래서 이 집을 지으면서 욕실에 신경을 꽤 많이 썼다. 비록 화장실과 겸한 욕실이지만 기능을 분리했다. 공간은 최대한 넓히고 바닥에도 난방했다. 특히 옷을 갈아입는 곳도 별도로 만들었다. 다음에 또 집 지을 기회가 있다면 더 좋고 화려한(?) 욕실을 만들고 싶다.눈 내린 날의 풍경화"고향집 싸리울에∼ 함박눈이 내리네∼"가곡의 한 소절이다. 이 음악은 곡도 아름답지만 노랫말이 정겹다. 어린 시절 고향집과 시골 풍경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이렇게 추운 겨울 밤, 고향집 싸리 울타리에 함박눈이 소리도 없이 펑펑 내린다. 정말 아름답고 아득한 풍경이다. 그런 집에 어여쁜 소녀가 아름다운 캐롤을 들으며 창 밖의 눈을 바라보거나 백열등이 켜진 아늑한 방 아랫목에 누워 책을 본다면 더 아득한 눈 내리는 겨울밤이겠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는 것도 전원주택에 사는 덕이다.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도시에 내리는 눈도 멋있다. 그러나 고향집 같은 집 그리고 산과 들이 보이는 이런 전원에 내리는 눈은 너무나 정겹고 아득하다. 겨울은 이런 눈이 있어서 좋다.전원주택에서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정원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나뭇가지에 하얀 눈이 그대로 쌓여 하얀 나무로 만들었다. 하얀 눈은 특히 잔디 위에 잘 앉는다. 마치 마당에 하얀 솜이불을 깔아 놓은 것 같다.진돗개도 하얀 눈 내리는 것이 신기한지 하염없이 눈을 바라본다. 닭들은 자기 집 앞에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평화롭게 바라보고…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 동네 참새들은 모두 우리 집 닭장으로 몰려온다. 평소에도 동네 참새들은 내가 다 기르는데 온통 눈으로 덮어 버렸으니 새들은 먹을 것이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조그맣고 귀여운 새가 바로 내 옆 창 밖의 눈 덮인 포도 나뭇가지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전원주택에서는 눈을 쓰는 것도 재밌다. 멀리서 들려오는 눈 쓰는 소리에 서둘러 대문 밖에 나가면 벌써 발자국이 나 있다. 누군가 새벽길을 떠나 것이다."하아∼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기∼이일에 구두 발자국∼"콧노래와 함께 집 앞을 쓰는 즐거움 이 또한 전원주택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집 앞 눈은 집 주인이 의무적으로 치워야 한다는 법까지 만들었다. 아마도 복잡한 도시의 이야기일 테고 전원주택에서는 오히려 집 앞 눈을 쓰는 즐거움도 보통이 아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바로 내 집인데 예전에는 늘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또 전원마을에 내린 눈은 너무 아름답다. 어젯밤 서울에 10센티미터가 넘는 눈이 내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눈, 눈이 왔어요, 지붕 위에도 하얗고, 장독 위에도 하얗고…"그 옛날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하얀 눈이 내린 마을 그림과 함께 '눈'에 관한 글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하얀 눈이 내린 전원주택은 그런 교과서의 글과 같은 풍경이다. 그야말로 지붕 위에도, 장독 위에도, 마당에도, 정자에도, 꽃밭에도, 온 천지가 다 하얗다. 그 시절 겨울방학책의 표지 그림 같다.바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는 곳도 복잡한 도시나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에서다.전원에 울려 퍼지는 캐롤겨울은 삭막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있어서 좋다. 특히 도시의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보다 전원의 크리스마스는 더 정겹다."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산골과 전원의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 노랫말 같은 풍경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사인장과 크리스마스 씰 그리고 크리스마스 카드가 생각난다. 지금이야 흔치 않지만 학창시절에는 이런 것들을 직접 만들었다. 하얀 눈이 덮인 한적한 시골마을에 초가집이나 십자가 달린 조그만 교회를 그렸다. 바로 전원마을 풍경이다. 금모래까지 붙여 반짝거리는 전원 풍경을 담은 크리스마스 카드는 이맘 때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또 마을 교회 성가대의 캐롤송 순례도 잊을 수 없다. 촛불을 들고 마을 곳곳을 돌며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려주던 그런 풍경도 도시나 아파트보다는 전원마을이 어울린다. 이밖에도 추운 겨울 멀리서 들려오는 찹쌀떡 장수의 구성진 목소리와 부엉이 우는 소리 등은 오래 전 고향 마을의 겨울 풍경이다.크리스마스 추억 가운데 사막에서 보낸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젊은 날 몇 년 동안 중동에서 근무했다. 한창 젊고 감성도 풍부하던 때라 그 시절 사막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는 오래 전 일인데도 너무나 애 닳도록 그립다. 사막의 크리스마스는 분위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날짜에 의한 것이다. 하얀 눈은 상상할 수 없고 그저 12월 25일이니 크리스마스다.그런 사막에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만들었다. 그 삭막하기만 한 사막 현장 입구에 썰매 타고 선물 보따리를 메고 오는 커다란 산타할아버지를 만들었다. 사막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지금 생각해도 생뚱맞은 풍경이다.비록 삭막한 사막이지만 크리스마스를 만들고 싶고 기억하고 싶던 나이였다.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하고 방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들며 캐롤을 들었다. 지금도 어느 캐롤을 들으면 그 시절과 그곳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 듣던 갖가지 캐롤 가운데 클래식기타로 연주한 캐롤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또 같이 근무했던 '모리 영감님' 생각이 난다. 아일랜드 사람으로 전형적인 영국 신사였다. 험상궂은 외국인과는 다르게 늘 인자한 미소로 나이 어린 우리들을 친구처럼 대하던 할아버지 엔지니어였다. 그런 모리 영감님이 크리스마스 때면 같이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이름을 쓴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어 감동시켰다.그러한 추억을 생각하여 지금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직원들 모두에게 카드를 주곤 한다.매섭게 추운 눈 내리는 날, 어린 시절과 옛날 그리고 사막의 크리스마스 등을 생각하니 아득하다. 더욱이 이런 전원에서 TV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더 아득하기만 하다. 지금도 흰 눈은 정원과 연못 그리고 닭장 위에 소복이 쌓여 있다. 특별히 크리스마스를 생각하여 심어 놓은 전나무에 만든 진짜 크리스마스트리가 너무 아름답다. 바로 이런 광경은 전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렇게 한가하고 여유로운 전원에서 옛날의 추억들과 함께 정원에 쌓인 하얀 눈을 보니 더 좋다. 역시 전원에서의 겨울과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좋다.田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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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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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감을 살려 실평수보다 큰 화성 48평 복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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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실마다 지붕 높이를 달리함으로써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목조주택이다. 적삼목의 거친 표면이 목조주택의 풍미를 한껏 높이고 적갈색의 재질은 지붕을 두르는 흰색과 맞물려 외관이 수려하다. 나란히 한 거실과 주방뿐만 아니라 계단실의 천장도 박공형으로 높임으로써 수평과 수직으로 개방감을 살렸다. 요즘 새로운 전원주택지로 떠오르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의 48평 복층 목조주택으로 들어가 보자.
건축정보
위치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
건축형태 : 경량목구조
대지면적 : 240평
건축면적 : 48평
외벽마감 : 시더 베벨 사이딩
내벽마감 : NF 불연석고보드, 실크벽지
바닥재 : 강화마루
창호재 : 시스템 창호
지붕재 : 아스팔트 슁글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 지하수
설계·시공 : (주)더존목조하우징 031-297-2063
www.shwh.kr
수원에서 화성을 잇는 43번 국도를 타고 장안대학을 거쳐 왕림휴게소를 지나자마자 우회전, 그 길을 따라 5분여를 안으로 달리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토실토실한 붕어로 낚시꾼들의 사랑을 받는 봉담저수지와 기천저수지가 위치하고 나지막한 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논과 밭이 대부분이고 돌담집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니 43번 국도에서 느꼈던 풍경은 오간 데 없다. 어느 시골 못지않은 한갓진 풍경이 서두러던 운전대를 늦추게 한다. 수도권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수려한 조망과 미려한 집의 조화
화성이 서울 인근에 위치하면서도 전원주택지로 이름을 날리지 못한 이유는 곳곳에 각종 제약 공장이나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많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공포의 지하수 사건으로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화성은 전원주택부지로는 늘 낮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이곳 팔탄면 기천리를 중심으로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화성을 찾는 예비 전원생활자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여기에 소개하는 48평 복층 경량목조주택도 같은 경우다. 다른 지연에서 전원생활을 했던 건축주는 이곳에 주말주택을 짓고 제2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주)더존목조하우징 이종만 이사는 기천리가 최근 전원주택부지로 떠오른 이유에 대해 “화성시의 다른 곳과는 달리 상수도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공장이나 음식점이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건축주 역시 그 점을 잘 알기에 기천리를 택했고 몇 분 안되는 거리에 제약회사 회장 집이 들어선 것도 같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실내엔 은은한 목향木香 가득하고
이 주택의 특징은 각 실마다 천장 높이를 달리해 박공으로 디자인한 지붕의 빼어난 조형미다. 여기서 발산하는 입체감은 단조롭기 쉬운 외관을 훌륭히 보완하고 있다. 지붕을 높이고 고를 달리함으로써 실제보다 집이 커 보이는 효과를 냈다고 이종만 이사는 설명한다.
그는 “대부분의 전원주택은 지붕을 단순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지붕은 외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지나가다 이 집을 보고 공사를 의뢰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지붕 하나에 집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입구에서부터 에돌아 낸 디딤돌을 따라 현관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계단실이 자리하고, 그 오른편으로 안방과 작은방이 왼편으로는 거실과 주방이 놓여 있다. 각 방 천장마다 원목 루바로 마감한 것이 이채롭다. 거실이 아닌 방 천장을 루바로 꾸민 곳은 흔치 않다.
집 내부 전체에서 보이는 특징은 시선이 흐르는 곳을 따라 한쪽 벽면을 벽지를 활용해 단조로움을 피한 것이다. 이는 동일한 내벽 처리로 흐트러지기 쉬운 시선을 잡아끌고 집 내부를 보다 아름답게 표현해 준다. 복도를 따라 왼편에 위치한 화장실을 지나면 거실이 펼쳐진다. 지붕 선을 타고 흐르는 루바 천장이 높이를 자랑하고 넓게 낸 전면창 옆으로는 벽난로가 놓일 자리임을 알리는 파벽돌 장식이 있다.
거실 맞은편 주방은 개방감을 살리기 위해 어떤 가림막도 두지 않았다. 거실은 작은 창이 주위를 감싸며 현대식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믿음으로 지은 집
계단실 역시 높은천장이 일품이다. 거실과 마찬가지로 원목 루바로 마감한 계단을 오르면 좁지만 전면창이 놓인 공용공간이 시선을 맞이한다. 왼편으로 방이 위치하고 전면창 맞은 펴으로 화장실이 높여 있다. 2층 큰 방 밖으로는 발코니를 둬 훌륭한 조망을 감상케 했다.
건축주는 자재 하나까지 시공사에 모든 것을 믿고 맡겼다고 한다. 시공사는 건축주에 대한 보답(?)을 고민하다 친환경 내벽 마감재를 골랐다.
건축주의 믿음과 시공사의 배려가 보기 드문 탄탄하면서도 미려한 집을 탄생시킨 것이다. 田
글 홍정기 기자·사진 정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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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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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흙집 짓는 철학박사 흙처럼 아쉬람 여토如土 고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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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순 님은 195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귀국해서 대학에 출강하던 어느 날 자신의 삶에 강한 회의를 느끼고, 원주 회촌마을에서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재야 생명 철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생태적 삶은, 삶의 근본 토대라 할 수 있는 식食·주住·의醫의 생태적 자립으로부터 가능한 것으로 보고 오래 전부터 자연 농업, 자연 건축, 자연 의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일주일 만에 흙집 짓기》가 있습니다.
여토如土 고제순(47세) 박사를 만나고자 박경리 선생의 ‘토지박물관’으로 유명한 원주시 흥업면 회촌마을로 접어드는 길섶이 간밤에 내린 눈으로 뽀얗다. 좌우로 굽은 농로를 따라 900여 미터 들어섰을까. 높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중턱에 여러 채의 흙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재야 생명 철학자인 그가 거처하는 ‘흙처럼 아쉬람’이다. 그는 이 산골에서 7년째 ‘종이 한 장이 입증하는 박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박사가 아니다’라는 자성自省으로 살고 있다.
오디차를 사이에 두고 삶의 방향을 전환한 그에게 넌지시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우문愚問을 건넸다. 순탄했을 대학 강단을 떠나 이 산골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뜻으로… 돌아온 답은 간단명료했다.
“행복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다시 우문을 던져 본다. ‘그 행복의 실체實體는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행복을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평화롭고 영혼이 기뻐하는 상태라고 생각하지요. 과거 정신 노동만 할 때는 무미건조하고 앎과 행위가 따로 노는 기형적인 삶을 살았지요. 이곳에서는 하루에 잠자는 6시간, 세끼 식사하는 3시간을 빼면 15시간 남는데, 이것을 5시간씩 셋으로 쪼개서 흙집을 짓는 육체 노동과 글을 읽거나 쓰는 정신 노동 그리고 경전을 읽거나 기도하는 영성 활동으로 보내지요. 이렇듯 몸과 마음과 영혼이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면서요.”
그는 정신 노동에만 치우치다 보니 부실해진 삶의 기초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산골을 찾았단다. 하지만 경험이 전혀 없는 더욱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길이기에 그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법하다. 또한 가족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 늘 부인에게 고마워한다고.
“수십 년을 제도권 교육에서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손에 쥐고도 삶의 근본 토대인 식食·주住·의醫, 이 세 가지 분야에서 홀로 서기를 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지요. 그래서 이 세 가지 분야에서 자립적인 삶을 살고자 자연을 찾기로 했지요. 물론 양가 부모의 걱정과 만류 그리고 형제들의 따가운 충고를 많이 들었지요. 다행히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던 집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믿어주었지요. 그 신뢰가 새로운 길을 걷는데 용기와 격려와 힘이 됐지요.”
생명 에너지 가득한 흙집 짓기
고제순 박사는 무릇 살림집은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고 안온한 느낌이 들어야 한단다. 그가 우리 전통 가옥인 흙집, 즉 자연을 닮은 집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기와집, 초가집, 너와집 등은 모두 흙집이라는 사실이지요. 흙과 돌과 나무로 지은 집은 수명이 다해도 환경 오염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지요. 또한 흙은 수많은 생명체를 먹여 살리고 양육하는 생명의 어머니이지요. 그래서 흙으로 지은 집에는 좋은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하겠다 싶어 흙집 공부를 시작했지요.”
그는 자신이 살 집은 가능한 손수 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이 지어 놓은 집에 사는 것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표현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사는 거와 같다’고.
“나는 건축가 없는 건축, 즉 민중 건축을 지향하지요. 우리 조상들이 집을 품앗이로 지었듯이… 나처럼 못도 제대로 박지 못하던 사람이 이렇게 살림집을 짓지 않았습니까? 집은 몸만으로 짓는 것이 아니지요. 가족을 위해 어떤 형태로, 어떤 철학을 담아 지을까 끊임없이 생각해야지요. 그런 생각을 따라 손발이 움직여서 집을 짓는데, 그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기에 하나의 예술 활동이지요. 가족이 살 보금자리를 나의 땀과 정성 그리고 철학을 담아 짓고 나니 정말 굉장히 뿌듯하고 대견스러웠지요.”
그는 생태 건축의 첫째 조건으로 긴 수명을 꼽는다. 자연 생명체의 집인 새의 둥지도 인간의 눈에는 허술해 보이지만 여러 가지 자연 조건을 고려해 견고하게 지은 집이라고. 사람이 건드려 파괴하지 않는 한… 바로 이 집에 담긴 생명 철학이다.
“나는 우리 집을 지을 때, 돌과 나무와 흙으로 500년 이상 가게끔 짓자고 했지요. 비록 앞으로 50년도 못살 인생이지만 그러나 누가 들어와서 살든 수명이 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요. 생태 건축의 조건은 여러 가지지만, 그 가운데 제일은 수명이니까요. 아무리 좋은 자연 재료를 쓰고 에너지 절약형 집을 지어도 수명이 짧다면, 나는 그것을 생태 건축으로 보지 않아요. 그 집을 부수고 다시 짓기 위해 자연에서 나무를 베고 황토며 돌을 캐야 하므로 생태 건축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이 흙집은 38평으로 2000년 5월 짓기 시작해서 그해 11월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손수 집을 지을 때 빗소리에 놀라 새벽잠에서 깨어 혼자 차를 몰고 와서 골조를 덮었던 일, 작은 유압기를 장만해 흙벽돌을 찍던 일, 지붕에 너와를 이느라 못을 3박스 박고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팔이 아파 고생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럼 이 생태적 보금자리의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 구성에 생태적 마인드가 담겼는데, 우선 철근콘크리트 기초가 아닌 전통 줄기초 방식이지요. 자갈과 모래를 넣어 물다짐 후 자연석 주추를 놓고 기둥을 세웠지요. 거실과 서재, 아이들 방에는 중앙에 1미터 깊이의 웅덩이를 파서 숯을 채우고, 그 위에 황토와 숯, 맥반석, 자갈, 황토 미장을 했지요. 거실은 좋은 기운이 모인다는 피라미드 원두막 구조지요. 가장 특이한 점은 거실에 놓인 벽난로의 열기가 안방 구들 침대 밑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지요. 연통으로 열기가 빠져나가는 게 너무 아까워서 착안한 일종의 구들 침대라고 할까요.”
살아 숨쉬는 건강한 집
집은 물질 공간으로써 미관성과 편리성, 기능성을 갖춰야 한다. 이것이 현시대 주거 문화의 요체다. 고제순 박사는 그러한 주거관은 사람의 생명을 시들게 할 뿐이라고. 즉 집을 물질 공간 이상의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체로써 집은 무엇일까?
“우주적 관점에서 생명이란 진리는 간단해야 하지요. 오히려 복잡하고 이론화되고 난해할수록 진리로부터 멀어지니까요. 《주역》 〈계사상전〉에도 ‘알기 쉽고 간단한 것이 천하의 이치(易簡而天下之理)’라고 했잖아요. 내 몸은 60조∼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됐는데, 그 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나라는 한 생명을 이루지요. 그런데 사실은 한 생명은 아니지요. 수많은 생명체가 네트워킹으로 나라는 한 생명체를 이루니까요. 집도 마찬가지로 지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 중 하나라고 보아야지요. 이렇게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건강해야 내가 건강해지는 것처럼 지구를 구성하는 흙과 나무, 돌 그리고 집 등이 각각 건강해야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집들은 독을 내뿜으며 지구를 병들게 하지요. 그 안에 거주하는 가족의 생명을 시들게 하고 밖으로는 미생물과 동식물을 죽게 만들면서… 집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지요. 문제는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생명체냐, 나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생명체냐는 것이지요. 이 차이를 논하고 분별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생명 담론이 아닐까요?”
요즘 신도시나 뉴타운에 분양하는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1700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고제순 박사는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그 속에 들어가서 살면 생명을 단축하는 것밖에 더 되겠냐며 반문한다.
“일본 시마네 대학의 나카오 교수도 〈콘크리트 집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라는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한 바 있지요. 시멘트 보도 블록만 보아도 그 판에서는 생명체가 살지 못하지만 그 틈에서는 풀이 자라지요. 이 단순한 사실만 깨달아도 집을 함부로 지을 수 없지요. 집 짓기는 생명체를 잉태하는 것하고 같으니까요. 여성이 한 아이를 임신했을 때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입니까? 마찬가지로 집이라는 한 생명체를 탄생시킬 때도 함부로 지으면 안 되지요. 좋은 기운을 내뿜는 자재를 사용해 좋은 기운이 모이는 공간 구조로 만들어야지요.”
철학박사에서 흙집 학교 교장으로
고제순 박사는 아파트에서 살 때는 늘 몸이 찌뿌드드했는데 2000년부터 흙집을 짓고 살면서 달라졌다고. 잠을 아무리 적게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정신이 맑고 몸이 개운하다는 것. 그런 경험을 살려 2004년 여름 생명을 살리는 생태주택을 보급하고자 흙집 학교를 시작했다. 콘크리트 일색인 우리의 건축 문화를 보면서…….
“우리의 주거문화는 생명을 살리기보다는 생명을 시들게 하고 병들게 하지요. 그러니 늘어나는 것이 환자요, 병원이요, 약국 아닙니까? ‘과연 이대로 가야 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안 되겠다. 비록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고 건축 경험도 많지 않지만 흙집 학교를 열어야겠다.’ 그렇게 맘먹었지요. 잘못된 주거 문화를 바로잡는,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생태 건축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죠. 일종의 대안 건축 운동이라고 할까요.”
전원하면 많은 사람이 막연하게 좋은 공기와 물 그리고 경치를 떠올린다. 실제 그런 생각으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가 한두 해 지나 견디기 힘들 정도의 무료함을 느낀 나머지 도시로 되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는 그 원인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 생명에 대한 이해 부족을 꼽았다.
“전원행을 택하기에 앞서 도시의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은 버려야지요. 생각과 습성은 도시의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에 푹 젖은 채 몸뚱이만 전원에 들여놓아서야 되겠습니까? 또한 생명 세계와 자연 세계에 대해 공부해야지요. 자연과 친해지려면 그것을 이해하려는 안목과 심성을 길러야 하니까요. 자연을 닮은 사람이라야 전원생활을 더 행복하게 누릴 수 있지요.”
흙집 짓기는 오랫동안 정신 노동에만 치우쳐 살아온 자신에게는 일종의 자기 수행의 도장道場이라는 고제순 박사. 그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무척이나 다양한 거 같다.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고 영혼이 조화롭게 움직이기에 흙집을 지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처럼… … .田
흙처럼 아쉬람 흙집 학교 033-766-7755. www.mudashram.com
글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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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