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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목조건축협회, 제9회 한국목조건축학교 수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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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평 2층 목조주택, 10일 만에 뚝딱!
(사)한국목조건축협회(회장 이정복)는 7월 9일 경기도 평택대학교에서 ‘제9회 한국목조건축학교 수료식’을 개최했다. 목건협은 1996년 3월, 목조건축업의 건전한 발전과 건축업자의 권익 옹호를 위하여 창립했다. 1996년부터 부실 공사 방지와 시공 기술 보급을 위하여 매년 6∼7월 중에 2주간의 일정으로, 이론과 실기를 배우는 ‘목조건축학교’를 개설해 왔다.
올해에는 마스터 빌더를 꿈꾸는 39명의 교육생들이 참가하여 6월 27일부터 7월 9일까지 2주간의 일정으로 경기도 안성에서 이론과 실기 교육을 마쳤다. 교육은 매일 08시 30분부터 18시까지 60평 2층 경량 목조주택 현장 실습 과정과 19시부터 21시까지 이론 과정으로 빡빡하게 진행됐다. 강사진은 장상식 교수(충남대학교 임산공학과)를 비롯하여 김양수(한솔목조 대표), 김진수((주)융기 이사), 정태욱(건축사), 조성연(라파즈석고 기술 센터 소장), 최현기(마스터 빌더) 등이다.
39명의 교육생들은 현장 실습 10일 만에, 놀랍게도 60평 2층 경량 목조주택의 벽체와 바닥, 외장, 지붕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실습 건물은 안성시 평안 밀알장애인선교단체에 복지-홈으로 기증하여, 수료식 참석자들에게서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이 건물은 장애인 복지-홈으로 1층은 남자와 여자 숙소로 크게 나누고, 가운데 미닫이문을 달아 필요 시 개방하여 넓게 사용하도록 했다. 2층은 모임을 갖는 거실과 관리자 숙소이다. 한편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도록 출입구마다 경사로를 만들고, 2층에는 리프트를 설치할 예정이다.
실습 건물은 경량목조주택(2″×6″)으로, 샛기둥 사이에 단열재인 인슐레이션을 충진하고, 구조용 판재인 OSB를 안팎으로 댄 후 외벽은 시멘트 사이딩, 내벽은 석고보드로 마감했다. 그리고 트러스는 2″×8″, 장선은 I-조이스트를 사용했다. 실습 자재는 경민산업(주), (주)나무와 삶, 대화, 라파즈석고, 영림목재(주), (주)융기, (주)케이원통상, 태건목조주택, 한국기업, 한솔목조주택 등에서 협찬했다.
수료식에서 이정복 회장은 “수료생 모두 장인 정신을 갖고 품질 위주로 목조주택을 짓는다면 빌더로서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임산물협회 안경호 소장은 “60평 2층 목조주택이 10일 만에 지어졌다는 것은 놀랍다. 수료생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교육에 열심히 임하여 좋은 성과를 거둔 걸 축하한다”고 했다. 수료생을 대표하여 오일배 씨는 “타이트 한 교육 과정 속에서 많은 걸 배웠다. 사회에 나가서 훌륭한 빌더가 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시상에서는 김진권 씨가 우등상을, 고인재 씨가 봉사상을, 오일배 씨가 모범상을 받았다.
이제 수료생들의 어깨 위에는 빌더로서 한국 목조주택의 발전이라는 책무가 얹어졌다. 경량 목조주택이 국내에 도입된 지 올해로 18년째로, 매년 3000채 이상이 지어지고 있다. 초창기 설계, 자재, 시공 인력까지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보았다. 그러나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현재까지도 목조주택의 부실 시공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장상식 교수는 그 원인을 기술력과 시공력, 자본력이 부족한 일부 업체에서 찾았다.
“경량 목조주택을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집 한두 채 짓고, 자신이 최고인양 독립하여 쉽게 사업체를 꾸렸다가 문을 닫아요. 기술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격으로만 승부(덤핑)를 걸다 보니 정품 자재를 정량 사용하지 못하여 부실 시공을 초래하지요. 끝내는 건축주와 마찰을 빚고 건축비를 제때 받지 못하여 문을 닫고 맙니다. 이렇듯 목조주택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부 업체들로 인하여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실 시공을 하는 업체들까지 혹평을 받는 현실이 안타깝지요.”
그러면 그 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끊는 방법은 없을까? 목조주택업계에서는, 산림청에서 시행하는 목구조기술자격증의 공인력을 높여 권위를 부여하는 것과, 건교부 전문 건설업종에 목구조건축업을 포함시키는 것을 꼽았다. 건식보다는 습식공법을 선호하고 있고, 다층 목조주택 건축이 가능해진 지금, 목조주택 발전을 위하여 빌더들과 관련 단체에서 한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해 본다. 田
(사)한국목조건축협회 02-518-0613, www.kwca.co.kr
글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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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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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D.I.Y-공간박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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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박스 만들기
Do It Yourself! D.I.Y, 당신도 할 수 있다. D.I.Y란 꼭 복잡하고 모양이 예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가령 벽에 못박기, 고장난 의자 다리 고치기, 페인트칠하기 등등. 집에서 할 수 있는 D.I.Y는 무수히 많다. 우선 필요한 것은 관심이다. 집 안 구석구석 손봐야 할 것이 없는지 눈여겨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실천이다. 눈에 띄면 바로 행동에 들어가는 것이다. 집도 고치고, 가족들로부터 점수도 따도, 스스로 보람도 느끼고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재미를 붙이다보면 어느새 D.I.Y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자, 그럼 지금 이 순간부터 빠져보도록 하자. D.I.Y의 세계로… 출발!
1 재단기를 이용하여 원목을 치수에 맞게 자른다. 상판 하단부분(가로×넓이 : 356㎜×230㎜) 2장, 양쪽 측면판(가로×세로 : 320㎜×330㎜) 2장, 합판(가로×세로 : 330㎜×230㎜) 1장을 각각 재단한다.
2 재단한 후 모습.
3 재단기를 이용하여 홈파기를 한다. 홈의 깊이는 8㎜ 넓이는 5㎜로 하여 홈따기를 한다. 홈파기를 할 때 원목에서 5㎜정도 들어가서 홈파기를 해야 한다. 홈따기를 할 때 합판이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을 하면서 홈따기를 해야 한다.
4 홈파기 한 후 모습.
5 홈파기를 한 후 합판 끼워 보기.
6 7 벨트샌딩기와 진동샌딩기를 이용하여 사포번호 80번 150번 320번 순으로 샌딩작업을 한다.
8 9 피스 박을 자리 표시하기. 자를 이용하여 원목 끝에서 10㎜정도 들어간 곳에 피스 박을 자리에 눈금 표시를 하고, 표시가 끝나면 자를 이용하여 줄을 긋는다.
10 드릴프레스를 이용하여 드릴링. 드릴프레스는 많은 양을 할 경우에는 편리하고, 일정하게 드릴링되기 때문에 드릴링 자리가 깔끔하다.
11 충전드릴로 피스 박는다.
12 피스 박은 자리에 나무못을 박는다.
13 나무못 박기가 끝나면 나무못의 튀어 나온 부분을 깔끔하게 처리한다.
14 마지막 샌딩. 벨트샌딩기 → 진동샌더기 → 손사포 순으로 작업한다.
15 천연페인트를 이용하여 페인트칠을 한다.
16 완성 후 세팅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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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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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부자 되는 야생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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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했던 장마가 끝난 후, 초록의 잎들이 더욱 싱그러운 빛을 발하는 계절이다. 산과 들에서 산들산들 이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부끄러운 듯 발그스레한 얼굴빛을 한 야생화를 만나는 것은 어떨까. ‘자연을 알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부자’라는 푸르네의 이성현 대표. 그가 말하는 야생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자연의 숨결을 머금은 야생화 정원을 꾸며보자.
정 원의 화려한 꽃들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계절이다. 정원 한쪽에는 소박한 웃음으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이끄는 꽃이 있다. 바로 야생화들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노라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그 모습에 그만 마음을 빼앗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어디에서 지내다 왔는지, 이른봄이면 저마다 고개를 들고 우리를 정원으로 이끌어 낸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낸 만큼 굳은 땅을 헤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에너지에 감싸이곤 한다.
종종 이런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함께 생각하는 사람들을 접하곤 한다. ‘나의 삶, 나의 원예’라는 말을 적어가며, 자연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더욱 귀하게 여기는 마음……. ‘바로 이것이 자연과 야생화를 느끼면서 갖는 부자구나’라고 생각한다.
어찌 부와 명예만 지녔다고 해서, 진정한 부를 가졌다고 하겠는가? 자연을 알고 느끼면서, 그 안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발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그러려면 자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과 마음이 필요하다. 야생화 정원은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를 자연으로 초대한다. 비록 작은 공간의 야생화와 자연일지라도, 그것들로부터 초대받기를 바란다.
작은 꽃이 주는 큰 행복
본지 7월호 기사의 한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큰 기쁨을 얻었다. 자연을 대하는 우리에게 정말 큰 열매를 안겨준 말, 바로 ‘꿈’, ‘행복’, ‘건강’이란 단어를 봤기 때문이다.
자연 안에서 그리고 작지만 소박하게 다가오는 야생화들을 보고 느끼면서, 커다란 행복과 만나기를 기대한다. 꿈과 행복과 건강을 만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연의 선물이다. 하지만 각자 그 선물을 느끼는 방법이 다양하기에, 그 크기 또한 다르다. 우리는 느낀 만큼 자연 앞에서 또다시 부자가 될 것이다.
꿈을 안고 싹을 틔우는 야생화는 곧 만발한 꽃으로, 우리를 행복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나아가 우리 가족과 사회를 건강하게 이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을 알고 느끼는 만큼, 꿈과 행복과 건강을 일구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 단순한 멋과 색깔과 형태만으로 정원을 바라보기보다는, 더 큰 자연의 세상을 발견하는 ‘정원 문화’가 쓰여지기를 기대한다.
자연을 나누는 부자
우리나라 산과 들판에는 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자라고, 또한 그들만의 멋을 한껏 보이며 번식해 나가고 있다. 자기들의 종자를 번식시키고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삶……. 우리는 자연을 함께 누리는 것에 감사하고, 자신만의 뜰을 넘어 이웃과 함께 나누는 부자가 되었으면 한다.
야생화들은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양하고, 향기 또한 넓은 뜰에 앉아 있는 우리를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유혹은 한 계절에만 끝나지 않고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기에, 우리는 더 풍성한 부자가 된다. 또한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되면, 지난해보다 더 많은 식구들이 우리 마당을 차지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야생화는 종자로 번식하거나 가을철에 포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이른봄에 야생화 싹이 나오는 것을 보며, 이웃에게 한 포기씩 나누어주자. 식물을 통해 이웃과 더불어 건강한 부자가 되는 방법이다. 아마 내년에는 자신의 마당에 있던 야생화를 옆집 마당에서도 환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을에 익은 종자를 채취하여 이른봄 이웃에게 나누는 일도 크나 큰 즐거움이다.
야생화의 특성을 잘 알아야
야생화를 정원에 심을 때, 다음 몇 가지에 주의하면 더 멋진 야생화 정원을 만들 수 있다.
야생화가 아무리 예쁘더라도, 정원 여기저기에 심는 것은 피하자.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무질서하게 핀 것보다, 질서 있는 모습이 야생화 정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 주부는 조금씩 사들인 야생화를 정원 여기저기에 심었다가, 결국 정원을 크게 손본 적이 있다. 정원을 다시 만들려면 인건비도 그렇지만, 애써 만든 정원이 흐트러지므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종류별로 모아 심기만 한다고 해서, 만족스런 야생화 정원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 자란 뒤의 모습과 크기 등을 생각하며 계획을 주의 깊게 세운 다음에 심어야 한다. 앞에 키 큰 금낭화가 피고, 그 뒤에서 키 작은 꽃이 핀다면, 이 또한 각각의 멋을 살리지 못한 경우다. 그러므로 야생화의 크기를 꼭 생각하면서 식재해야 한다. 이러한 실수는 낯선 야생화가 정원으로 들어올 때 일어나곤 한다. 때문에 사전에 야생화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계절에 맞게 정원에 야생화의 색깔이 골고루 보여지도록 식재하는 것이 좋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식재보다는, 진한 꽃은 멀리 그리고 흰색이나 흐린색은 가까이에 심는 것이 좋은 식재 방법이다. 또한 일년생 초화를 다루듯이 야생화를 키워서는 안 된다. 야생동물이 사람의 손에 익숙해지면 야생 능력을 잃듯이, 지나친 관심은 자칫 키만 웃자라게 하거나, 잎만 무성하게 한다.
야생화 정원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자연 안에 들어가기 어렵다. 더운 날씨지만, 모자를 쓰고 연장을 들고 무릎을 꿇고 눈과 코와 귀를 식물 가까이 대보자. 어느덧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연의 야생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함께 참여하고, 느끼며, 보아야만 자신만의 야생화 정원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과 사회를 부자가 되게 만드는 정원이다. 알면 부자가 되는 야생화 정원, 이제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체험해 보자. 田
글 이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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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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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사회변화가 집에 미친 영향은 윤보선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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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화가 집에 미친 영향은
윤보선(尹潽善) 생가
외세의 압력에 의해 나라를 개방한 이래로 우리의 생활에는 변화가 많았다. 사회 신분 질서에 변화가 왔고, 새로운 기술과 공법이 도입됐다. 사회 변화는 집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 집 구조의 변화는 사회 변화와 관련이 깊으며, 재료의 변화는 공업과 경제 환경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집의 형태와 느낌도 재료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를 찾아볼 수 있는 예가 전국에 몇 곳 있다. 서울에는 예가 꽤 있지만, 지방에는 그리 많지 않다. 경남 함양의 허삼둘 가옥, 충북 음성 팔성리 고가 등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예가 윤보선 전대통령의 생가이다.
조선 사회 해체로 일반 사가에서
왕족만의 화려한 호사를 누려
윤보선 생가(중요민속자료 196호) 솟을대문 앞에 서면, 다른 집하고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전에 보던 한옥과 느낌이 다른 이유는 바로 재료에 있다. 20세기 이전에 지어진 한옥에서는 방화장-행랑과 행랑 사이에 담을 높이 쌓아 화재의 연소를 방지하는 시설-에 돌을 사용한다. 그러나 윤보선 생가에서는 벽돌이 사용됐다. 붉은 벽돌로 쌓은 벽이 우리의 눈을 낯설게 한다.
이 집은 윤보선 대통령의 아버지가 1907년에 지은 것이나, 사랑채는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시대만큼이나 건물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안채는 기존 기법을 그대로 살려 지었으나, 사랑채는 화려함이 돋보이고 파격이 많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따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사랑채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일반 집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왕족의 집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물익공-익공의 끝 모양이 새 날개와 같이 뾰족하지 않고 둥그렇게 조각한 것-양식이다. 아름다운 초각까지 했으니 사치를 할 대로 하였다. 그리고 기단을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쌓았으니 상당한 파격이다.
모든 외부와 내부의 창호는 대부분 유리문을 사용했다. 특히 대청과 외부에 노출되는 모든 창호를 유리문으로 설치하여, 마치 근세에 새로 지은 한옥을 보는 듯하다. 내부의 마루는 전통 방식인 우물마루가 아니라 쪽널을 사용한 장마루를 설치하여 당시의 유행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와는 전혀 다른 감각의 집이다. 한마디로 20세기에 들어 조선사회가 해체되고 일제 치하에 들어가면서 일반 사가에서도 왕족이 누렸던 호사를 누리게 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앞서 말한 물익공 양식은 과거에는 왕족만이 했던 것이다. 돈이 있다고 초각을 한 익공집을 짓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못했다.
장인정신은 어데 가고
눈 가리고 아옹만 남아
충남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충남유형문화재 43) 주변에는 김정희의 묘 외에 묘가 둘 있는데 하나는 추사의 고조부 김흥경의 묘이고, 또 하나는 추사 증조부인 김한신의 묘이다. 추사 고조부는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무덤은 달랑 봉분 하나와 비석뿐이다. 그러나 아들의 묘소는 곡장(曲墻)에 호석까지 갖추었다. 이것은 추사의 증조부가 영조의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했기 때문에 왕가의 예법으로 묘를 모셨기 때문이다. 이만큼 조선시대의 위계는 함부로 깨뜨릴 수 없었다. 이러한 위계가 조선시대 말 이후 와해되면서 건물에서도 위계의 파괴가 발생한 것이다.
윤보선 생가의 사랑채를 지은 목수는 매우 솜씨가 좋은 사람이었다. 초각을 한 수준과 겹처마에서 보이는 서까래 다듬은 솜씨는 가히 신기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미 이 목수도 장인정신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윤보선 대통령의 아들은, 이 사랑채를 ‘집장사 집’이라고 폄하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화려한 집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그러한 말을 들을 만한 구석이 많이 보인다.
기본 구조재는 매우 튼실하게 잘 짜여져 있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내부 구조는 대충 처리하고 말았다. 겉으로는 그렇게 가지런한 서까래도 보이지 않는 안쪽은 그렇지 않다. 선자(扇子)서까래-편 부챗살 모양으로 배치한 서까래-도 선자의 흉내만 내고 엇선자로 걸었으며, 장마루도 튼실한 재료를 쓰지 않아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또한 합각이 걸려 천장으로 가려야 하는 부분도 우물천장으로 하지 않고 얇은 판으로만 가리고 말았다. 벽체의 두께도 얇고 또한 창문도 매우 부실하게 짜여졌다. 시대가 흘러 이제 자본주의의 개념이 들어오면서 장인들도 돈을 중요시하다 보니, 눈 가리고 아옹하는 그러한 집이 되고 말았다.
윤보선 생가의 안채는 ‘ㄱ’자 배치 형태이다. 중문간채가 ‘ㄴ’자 형태로 배치되어 안채의 배치는 튼 ‘ㅁ’자 배치가 됐다. 사랑채에 비하여 안채는 매우 소박하다. 대청도 두 칸의 크기이고, 안채의 전체 크기도 다른 부잣집보다는 작은 편이다. 다만 안방이 세 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라는 데 특색이 있을 뿐이다. 윤보선 대통령의 부친이 크게 재산을 모아 사랑채를 짓고 서울로 진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채에서 눈여겨볼 것은 안방에 있는 금고이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육중하게 생긴 금고가 아직 안방 한쪽에 놓여 있다. 윤보선 생가에서 서울로 가져가고 싶어했지만, 워낙 무게가 나가는 것이라 옮기지 못하여 지금까지 그 위치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금고도 당시에는 대형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보아도 이렇게 금고를 집 안에 들여놓은 집은 보지 못했다. 한참 때 이 집 안의 가세를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한 솟을대문에 가옥 세 채가
윤씨 집성촌의 위풍과 효율성
윤보선 생가가 있는 충남 아산 둔포면 신항리는 윤씨 집성촌이다. 그러므로 주변에는 같은 윤씨 집안의 집이 몇 채 더 있다. 이 집들도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지어진 집이니 윤보선 생가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집들은 윤보선 생가에서 동쪽으로 조금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기와집 세 채(충남민속자료 12호 윤일선가옥 / 충남민속자료 13호 윤재형가옥/충남민속자료 15호 윤승구가옥)가 나란히 서있는데 고조부가 같다고 하니 6촌지간의 집 네 채가 지호지간(指呼之間)에 있는 셈이다.
이 집들도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벽돌로 벽을 쌓고 위에 기와지붕을 얹은 창고도 있고 담도 벽돌로 쌓았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세 집이 한 솟을대문을 쓴다는 것이다. 커다란 솟을대문이 세 집의 입구에 서 있고 솟을대문 바로 붙어 윤일선 가옥이 있고, 다음에 윤승구 가옥 그리고 제일 안쪽에 윤제형 가옥이 있다. 이러한 배치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이러한 배치가 되다 보니 윤승구 가옥과 윤제형 가옥은 사랑채가 한길에 노출된 듯한 느낌을 준다.
지금의 상태가 허전할 수 있지만 좋은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예전에는 이 집 앞으로 아무나 쉽게 지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오려면 솟을대문에 있는 청지기에게 고하고 나서야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청지기 하나로 세 집을 관리할 수 있으니 매우 효율적인 배치이다. 田
글 최성호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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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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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까페] 눈부신 햇살과 붉은 노을에 잠긴 UNA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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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햇살과 붉은 노을에 잠긴 UNA Gallery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생태·환경 주거지로써 기능을 하는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아트밸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2002년부터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여러 곳에서 건축이 진행 중이다. 그중 ‘유나 갤러리(UNA Gallery)’는 Unique New Art의 영문 이니셜로 ‘박유나’라는 건축주의 이름과 똑같아 재미를 더한다.
이곳은 각종 생활 도예품을 만드는 작업실과 전시장, 헤이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 건축주의 주거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도네시아에서 들여 온 대문 장식이 눈에 띄는 카페와 건물 후면의 작은 정원, 건물 입구와 계단 사이사이에 놓인 그의 작품 등 ‘유나(UNA)’의 다양한 공간들을 담아보았다.
도예를 전공한 박유나 씨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때마침 지인(知人)의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되면서 자연에 흠뻑 빠져 살게 됐다. 이전 지하층 작업실의 갑갑함을 날려 버리기 위해, 건물의 전면은 유리와 무석면 섬유강화 시멘트 판(CRC Board : Cellulose fiber Reinforced Cement Board)으로 꾸며, 풍부한 햇살을 실내 곳곳으로 끌어들였다. 온도 변화에 따른 변화가 적고, 내수성·차음성이 우수한 친환경 건축자재를 사용해 주변의 자연 환경과도 어울리게 했다. 또한 도예 수업을 진행하는 작업실은, 전기 가마와 가스 가마를 모두 갖추도록 공간을 넓게 할애했다. 그 후면은 정원을 아담하게 꾸며 콘크리트의 차가운 느낌을 덜었다.
아트밸리의 자연에 반해
“아파트에 살다 보니, 지하 작업실을 따로 얻어 사용했어요. 하지만 그릇을 굽는 가마를 놓기에는 너무 비좁았고, 지하층을 사용하다 보니 갑갑했죠. 왜, 지하층의 습한 기운도 그렇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어둠침침한 분위기 있잖아요. 우연한 기회에 아는 분의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됐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작업실과 주거 공간을 함께 지을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꼈죠. 맑은 공기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요.”
해질 녘 붉게 타오르는 풍경을 감상할 때면, 정말 자연 깊숙이 들어온 것 같아 뿌듯해한다. 특히 자유로를 타고 서울로 이동할 때면, 자연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비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해질 녘은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면서 기쁨에 겨워 이곳으로 이주하길 잘 했구나 하고 생각한단다.
헤이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역시 ‘노을’ 이라고 답한다. ‘노을?’이라는 대답에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자, 설명이 금방 이어진다.
“이곳 파주의 공기가 서울과 달리 맑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한 점 티 없이 붉게 물들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헤이리 아트밸리의 여러 기능 가운데 하나가,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생태·환경의 주거지’인데, 그는 이곳에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창작활동에 도움을 받고 있어 마을 주민으로서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초록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박유나 씨는 1층 개인작업실에서 매주 목요일 도예공예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스 가마와 전기 가마를 갖추고 있어 도예의 기초부터 직접 만드는 과정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만든 작품들은 왼편의 유나숍에 전시·판매도 한다.
도예뿐만 아니라, 입던 옷을 새롭게 리폼(Reform)하고, 평범한 모자에 꽃을 달거나 장식을 덧붙여 전혀 다른 제품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작업에도 능숙하다. 톡톡 튀는 장신구들과 생활 도예품들을 보기 위한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주말이면 매장 안을 가득 채운다.
1층 작업실과 숍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 2층에는 헤이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가 있다. 친환경 주거단지를 모토로 한 아트밸리에 유난히 초록색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당연한 일. 실내 카페는 물론 야외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도 초록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카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벽이다. 얼핏보면 나무 벽을 직접 깎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구입한 대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왕족이나 귀족 등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집 대문에 사용하는 것을 몇 년 전 구입해 놓은 것이다.
“집을 지으면서 꼭 이것을 대문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설계를 담당한 임재용 씨의 컨셉과 맞지 않아 사용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죠. 2층에 카페를 오픈하고, 한쪽 벽이 너무 허전해 이 문을 생각했는데, 원래 이 대문 자리가 있었나 봐요. 크기를 맞추기라도 한 듯 딱 맞는 거예요.”
일일이 나무 문양을 깎고 다듬은 정성이 가득한 이 문은 방문객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으면서, 카페의 포인트가 되고 있다. 그러한 설명을 듣고 대문 옆에 앉아 헤이리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인도네시아 귀족이나 왕족의 기품 있는 행동을 따라 좀더 천천히 움직이며 한 박자 쉬어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계절별로 실내 분위기 바꿔
박유나 씨는 계절별로 카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소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의자와 테이블은 주문 제작하고, 쿠션이나 방석 등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난 작품들이다. 봄에는 연초록의 기운을, 한 여름에는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지는 소재 등을 사용해 계절별 특성을 실내 곳곳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평범한 모자 하나에 꽃으로 포인트를 주고, 몇 가지 장식을 새로 해 전혀 다른 옷을 만들어 내는 그녀의 손놀림만큼이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카페를 장식하고 있다. 저녁이면 테이블 위의 작은 초들이 빛을 발하며 로맨틱한 분위기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田
글·사진 조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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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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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례를 통한 한국형 주거단지의 모델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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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례를 통한 한국형 주거단지의 모델 개발
주거단지는 그 개발 방식에 있어서, 이미 생활과 공간의 공유를 전제로 하는 주거 형태이다. 즉 거주민이 함께 모여 산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단순한 주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생활공간을 만든다. 또한 그것을 통하여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나아가 문화를 형성한다. 그럼으로써 단지가 갖는 중요한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주거단지는 지금까지 커뮤니티(Community) 시설에 대한 내용을 전혀 실현하지 않고 않다. 그 원인은 토지의 효율성과 경제성에 우선한 공급자 위주의 개발에서 찾을 수 있다.
공급자의 견해로 비추어 보면, 커뮤니티 시설이라는 것은 무척 까다로운 존재이다. 먼저 공용 시설물로써 각 세대의 분양가 상승의 요인이 된다. 또한 실현 후에도 시설에 대한 관리 운영이나 끊임없는 프로그램 운영 등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커뮤니티 시설의 실현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들의 요구와 주체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수요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높은 분양가와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관리비가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가치나 단지의 재산적 가치로 볼 때, 커뮤니티 시설에 대한 투자는 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집에 5000만 원을 투자하면 집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거단지를 위하여 모든 세대가 각각 5000만 원을 투자한다면, 그 단지가 지닌 가치는 극대화될 것이다.
주거단지의 가치 상승은 개별 주택의 가치 상승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 단지만의 특별한 멤버-십(Membership)을 형성하여, 그 시세는 주변과 다른 기준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 이야기는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의 주거단지 시장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우리의 아파트 시장도 그러한 결과를 대변하고 있다.
Trilogy도 마찬가지다. 미국 레드몬드에 위치한 주거단지로 한 필지는 대지 6000스퀘어 피트(약 170평)에 건평 1436스퀘어 피트(약 40평) 정도로, 약 3억 6000만 원선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 약 5억 원에 매매될 만큼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었다.
그러면 주택 가격이 오른 것일까? 지가가 상승한 것일까? 둘 다 아니다. 주거단지의 가치, 즉 멤버-십의 가치가 오른 것이다. 가치가 오르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희소성이 생긴다는 기본적인 경제 논리이다.
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 집에 인테리어를 잘해 놓았다고 가격이 오르는가? 물론 투자한 만큼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주변 시세와 더불어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주변 시세 자체가 올라가려면, 무엇보다 단지의 가치가 올라야 한다.
잘 꾸며 놓은 주상복합이 아파트보다 낮은 금액으로 거래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시설의 문제가 아닌, 삶의 환경의 문제 때문이다. 즉 삶의 가치를 올려야 만이 단지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 바로 커뮤니티 시설이 그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Community
이곳 Trilogy의 큰 테마는 꿈, 행복, 건강이다. 테마는 이 단지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사업 목표이고, 커뮤니티 시설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Trilogy에서는 ‘꿈’이라는 테마를 실현하기 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사나 매니저를 통한 수영, 승마, 헬스, 골프… 등의 육체적 건강 프로그램과 음악, 요가, 명상… 등 정신적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이웃 간의 만남과 개인적인 여유로움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러한 무형의 테마를 유형화한 것이 바로 프로그램으로, 커뮤니티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주거단지의 테마를 보자. 전에도 얘기했듯이 ‘맑은 공기’ ‘맑은 물’ ‘초목의 녹음’… 등 ‘환경’에 치중되어 있다. 왜, 우리 주거단지의 테마는 환경일까?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이다.
환경이라는 자연적 요소는, 그 단지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테마를 추측할 수 있다. 자연 우리나라 주거단지의 커뮤니티 시설은 모두 똑같을 수밖에 없다. 정자, 산책로, 수공간 … 등등.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주거단지 내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의 모델 개발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춤을 좋아하고, 이웃 간의 여흥을 즐겨왔다. 반면 미국인은 개인적인 삶, 즉 프라이버시(Privacy)를 중시하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단지는 커뮤니티를 중시하고, 우리의 단지는 개별 주택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현상에 대 한 이유를 여러분께 그리고 필자 본인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田
글·사진 임송일
02-3463-7130, www.mp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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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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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산의 초록바람이 집안 가득 용인 노블힐스 단지 내, RC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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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읍에 자리한 ‘노블힐스’는 총 28세대로 구성된 전원주택 단지이다. 이곳에는 ‘100년을 살아도 안전하고, 구조적 문제가 없는 좋은 집을 건축하자’는 모토로 내구성이 강한 집을 짓는 ‘보보스 디앤시’가 설계·시공한 70평에서 200평형대의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단지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선큰(Sunken)층, 지상 2층의 철근콘크리트 주택이 있다. 삼대가 함께 사는 이준호 씨 주택이다. 집 오른편의 울창한 밤나무 숲이 자연 담장 역할을 하고, 각 층마다 청명산의 다른 풍경을 감상하게끔 넓은 창을 냈다. 선큰층은 건축주가 사용하는 공간으로, 1∼2층은 부모님과 자녀를 위한 공간으로, 각 층마다 독립생활을 하도록 계획했다. 외관은 단지 안에 있는 주택들과의 조화를 위해 산호색 벽돌로 고급스럽게 마감했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하갈리 ‘노블힐스’
·대 지 면 적 : 164평
·건 축 면 적 : 33평
·연 면 적 : 144평(1층-33평, 2층-31평, 선큰층-81평)
·건 축 형 태 : 철근콘크리트
·외벽마감재 : 벽돌, 드라이비트
·내벽마감재 : 실크벽지
·지 붕 재 : 아스팔트 슁글
·천 장 재 : 실크벽지
·바 닥 재 : 온돌마루
·창 호 재 : 수입 시스템창호(AL + WOOD)
·난 방 형 태 : 도시가스보일러
·시 공 기 간 : 2004년 4월~ 2005년 3월
설계·시공 : (주)보보스 디앤시 031-281-0400 www.bobosdnc.com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았거든요. 그때가 그리워, 전원에다 마당 넓은 집을 다시 지어야지 하며 지냈죠. 이곳으로 이주해서는 정원 곳곳을 가꾸고, 텃밭도 처음 일구고…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죠.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며 운동 삼아 몸을 움직이는 게 크나큰 즐거움이죠.”
지난 3월, 공사 1년 만에 새 집에 입주한 김정순(59세) 씨. 수원시 영통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그는, 사업을 하는 아들 이준호 씨 내외, 손녀와 함께 오랜 바람이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삼대가 새로운 둥지에서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 지 4개월째. 하지만 이러한 생활을 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은 짧지만은 않았다.
건축주는 전원으로 이주를 결정한 후부터 용인의 고기리 계곡을 비롯하여 많은 부지와 주택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어느 한 군데도 탐탁지 않아 ‘전원생활?’ 하며, 마음에 동요가 일 무렵 ‘노블힐스’를 알게 됐다. 단지 자체가 맘에 포근히 와 닿은 데다, ‘보보스 디앤시’에서 건축주가 원하는 설계와 시공으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집을 짓는 것에 반했다고. 그 때문에 1년여의 공사 기간도 더디게 느껴지지 않았단다.
“여기에서 영통까지는 3분밖에 걸리지 않고요. 서울도 승용차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으니, 이만한 입지 조건이 어디 흔합니까. 전원주택도 너무 외지다 보면 안전에 문제가 있잖아요. 이곳은 단지라 여러 집이 모인 데다 방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마음이 편해요. 설계와 시공을 담당한 보보스 디앤시의 집 짓는 공정도 꼼꼼했고요. 얼마 전에는 정원에 심은 나무 두 그루가 시들시들하다 죽었는데, 새 나무로 심어준다고 하잖아요. 이 정도면 사후 관리도 최상인 거죠.”
좀더 여유가 있다면, 한 필지를 더 구입해 놓고 싶다는 김정순 씨. 그는 이곳에서 전원생활을 여유 있고 편리하게 한다며 만족스러워한다.
채광 효과 높은 마스터-존
선큰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진 이 집에는 두 개의 출입구를 냈다. 대문을 열고 1층 거실로 들어서는 현관과, 지하주차장에서 주방과 거실로 들어오는 출입구가 그것이다. 세컨드 엔트리(Second Entry)라고 하는 주차장 출입구 한 편에는 독립된 세탁 공간을 드렸다. 지하 1층의 여유 면적을 활용한 공간으로 세탁은 물론, 다림질까지 편안히 해결할 수 있다.
건축주가 주로 사용하는 공간(Master-Zone)은 대부분 1층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주택의 경우 마스터-존인 선큰층은 아들 내외 공간으로, 1층은 부모님을 위한 공간으로, 2층은 자녀 공간으로 각각 배치했다.
마스터-존 거실은 손님을 맞이하고 온 가족이 모이는 공간인데, 천장 높이가 약 3미터에 이른다. 지하라는 답답한 느낌을 덜기 위해 천장을 높여 정원의 햇살을 최대한 끌어들인 것이다. 서재에도 거실과 같은 대형창을 설치해 쉽게 정원으로 드나들 수 있다. 거실창과 마주하는 벽면에는 인조석으로 마감한 전기벽난로를 설치해 한겨울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천장에 설치한 매립형 에어컨이 눈에 띈다. 스탠드형 에어컨과 달리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이점과 시각적으로 한결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마스터-존 안방의 가로 길이는 7미터에 이른다. 그 길이를 살려 중앙에 아치를 설치해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침대를 놓은 쪽은 침실 공간으로, 한 쪽은 책상과 책꽂이를 두고 서재로 사용하고 있다.
세대별 특징을 담은 욕실
마스터-존의 안방에는 욕실뿐만 아니라 드레스-룸, 화장실, 파우더-룸 등을 한 공간에 묶었다. 욕실 내부 벽면은 허리선까지 유리로 마감해 시원스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쁜 시간에는 건축주와 부인이 따로 사용하도록 파우더-룸을 두 곳으로 분산시키고, 샤워 부스와 월풀 욕조를 설치했다. 또한 욕실 옆에 화장실을 따로 두어 실용성을 주었다. 이러한 구조는 1, 2층 모두 동일하게 적용했다. 대신에 1층 욕실은 나이 드신 부모님이 사용하므로 높이가 낮은 욕조를 설치하고, 2층 욕실은 자녀의 키에 맞추어 욕조에 단을 설치해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또한 욕조를 설치한 벽면 일부분에는 유리 블록을 사용해 채광 효과는 물론, 시각적으로 시원하고 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텃밭 가꾸는 재미에 빠져
메인 현관으로 들어서면 유리로 마감한 천장이 눈에 띈다. 늘 풍부한 햇살이 비치기에 집 안 전체가 밝은 느낌이다. 산뜻한 분위기로 손님을 맞는 현관을 지나면 아늑한 거실로 이어진다. 천장 높이가 2.5미터로 낮은 느낌이 들지만 마스터-존의 거실과는 다른 포근함이 느껴진다. 1층 거실에도 역시 매립형 에어컨을 설치하고, 중앙 벽면에는 넉넉한 수납장을 설치하여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거실창을 열면 정원으로 이어지는 덱은 15평으로 여유 있다. 덱을 돌아서면 나오는 텃밭은 김정순 씨가 이주 후 직접 가꾼 것이다. 올해 처음 밭농사를 지어 본다면서 고추와 토마토 등 각종 채소가 자란 것을 가리키는 그의 손길이 바쁘다. 텃밭 외에도 정원에는 도라지, 해바라기를 비롯해 대추나무, 소나무를 감싸고 있는 담쟁이 넝쿨 등이 있다.
청명산의 자연을 선물해
자녀를 위한 2층은 청명산 전경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조망이 좋은 곳인 만큼 거실창에 커튼을 일부러 달지 않았다. 채광용 하프 라운드형 고창을 낸 거실은 물론, 공부방으로 사용하는 곳에도 세 개의 창을 냈다.
자녀의 휴식을 위해 공부방에 연결한 테라스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다.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애정이 느껴진다. 중학교 3학년인 손녀도 아파트에 살 때보다 이곳을 더 좋아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까지 열기도 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부의 높이 2.4미터 대형 창이 눈에 띈다. 채광 효과는 물론, 전면 거실창과 맞바람이 불어 자연 바람을 집 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각 층마다 거실창과 마주한 면(집 후면)에는 창을 여러 개 내, 실내 공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했다. 이들 창호는 모두 단열 효과가 높은 미국의 MARVIN 시스템 창호를 사용했다.
주말마다 손자손녀들의 놀이터로
“이곳에 입주한 지 4개월째 접어드는데, 그동안 주말에 외출한 횟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예요. 꽃이며 나무를 가꾸다 보니 바깥에 나갈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김정순 씨는 정원에 수놓은 꽃을 가꾸고, 앙상했던 포도나무에서 싹이 돋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라한다. 정원 여기저기 손을 보고, 각 층을 오르내리며 집 안 정리를 하다 보면 몸은 지치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피로를 풀 수 있어 뿌듯하다고. 이곳에서 봄여름 두 계절을 보냈는데, 가을겨울에는 또 어떤 자연의 모습이 펼쳐질까 설레는 모습이다.
가까운 용인시내에 사는 손자손녀들이 주말이면 이곳을 찾아 맨발로 뛰놀기에 바쁘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밤나무 사이로 들리고, 종종 단지 내 길을 지나는 꿩을 보는 날에는 자연 속 깊은 곳에 들어와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따가운 여름 햇살이 정원의 초록 잔디를 더 짙푸르게 하고, 집들이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잔디깎기를 직접 돌리는 김정순씨의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田
글 사진 조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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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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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코발트빛 바다를 품에 안은 안성 50평 복층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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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도 사연이 있을까? 물론 집도 사연을 가진다. 달리 말하면 집은 사연이 있기에 지어지는 것이다. 크고 작고, 세련되고 촌스럽고 하는 것을 떠나, 집은 늘 진솔한 삶의 표현이다. 고향마을의 이웃집 동무로 지내다 신랑각시의 연을 맺은 김경석·허현미 부부는 연애시절 길에서 마주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집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결혼해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꼭 저 같은 예쁜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자고. 그리고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바뀌었을 때, 부부는 지중해의 풍경 속에 들어앉아 있을 법한 아름답고 이국적인 집을 지었다. 금광저수지의 물빛이 아련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사흥리 동막마을의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50평 복층 스틸하우스. 부부가 서로에게 약속한 꿈 속 어여쁜 보금자리다.
■건축정보
·위 치 : 안성시 금광면 사흥리
·부 지 면 적 : 1360평(대지 330평, 농지 370평, 임야 660평)
·건 축 면 적 : 27평
·연 면 적 : 50평(1층 27평, 2층 23평)
·건 축 형 태 : 2층 스틸하우스
·외벽마감재 : 드라이비트
·내벽마감재 : 핸디코트, 실크벽지(어른방 - 황토 모르타르)
·지 붕 재 : 샌드위치 패널
·천 장 재 : 핸디코트, 실크벽지
·바 닥 재 : 강화마루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난 방 형 태 : 기름보일러 + 태양열
·식 수 공 급 : 지하수
·시 공 기 간 : 2005년 4월~6월
·건 축 비 : 1억 5000만 원(토목비 1000만 원 별도)
설계·시공 : 현건축 031-673-4791
금광저수지를 아늑하게 휘감은 산자락 품에 깃들어 있는 동막마을. 김경석(36세)·허현미(37세) 부부의 집은 길이 끝나 가는 산기슭의 좀 높은 자리, 비탈진 중턱 위에 자리하고 있다. 야트막한 산줄기에 둘러싸였으면서도 전면이 시원스레 트여 있어 굽어보는 산세의 풍광이 일품이다.
집의 입면은 장방형의 밋밋한 몸체와 평지붕으로 일면 단조롭게 보이지만, 우윳빛 드라이비트로 마감한 화사한 벽면에다 2층 발코니 난간과 캐노피를 밝은 코발트빛으로 처리, 색의 대비를 통한 시각 효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가족을 위한 꿈의 궁전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눈에 익다 싶어 이들 부부에게 물어 보니 지중해를 배경으로 촬영한 모 이온음료의 TV광고 속 이미지를 컨셉으로 해서 지은 집이란다. 하얀 바탕에 파란색이 어우러진 맑고 순수한 이미지. 사람들이 보통 재산 목록 1호인 집을 중후하고 기품 있게 꾸미는데 반해, 이들 부부는 평소 좋아하는 이미지를 집 안팎 곳곳에 심어 놓고, 그들만의 아기자기한 궁전으로 형상화했다.
“좋은 집이란 집주인의 사랑을 받는 집이지, 남들 보기에 좋은 집은 아닐 겁니다. 아내는 평소 입버릇처럼 하얀 바탕에 파란색으로 장식한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죠. 이 집은 아내가 평소 상상해 온 머릿속 집 그림을 현실에다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가족들만을 위한 꿈의 궁전이라고 할까요.”
이들 부부는 결혼 15년째를 맞는 금년 6월에 집을 완성했다.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게 올해 1월이었으니, 불과 5개월 만에 집 한 채를 완성한 셈이다. 통상 집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부지 물색부터 준공까지 평균 1~2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들 부부는 흔히 일컫는 ‘단기 속성 코스’를 밟은 셈이다. 건축 관련 지식도 경험도 없는 초짜 건축주인 이들 부부에게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부부는 ‘인연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원래 경기도 이천시의 34평 아파트에 살았는데 다니던 회사가 평택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집을 회사 근처로 옮겨야 할 상황에 처했어요. 아내와 고민하던 중 집을 사느니 차라리 이참에 집을 짓자고 합의를 봤죠. 결정 후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던 차에 퇴근길 도로변에 내 걸린 현건축의 현수막을 봤어요. 무작정 들어가서 ‘집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본인을 사장이라고 소개한 이가 ‘가진 게 얼마요?’ 하고 묻더군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현건축 권 사장과의 인연은.”
인연으로 엮인 집
회사생활을 통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접해 봤던 건축주는 단 한 차례의 만남을 통해 현건축 권진옥 사장의 진가를 알아봤다고. 건축에 문외한이라 권 사장의 말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성품에 맘이 이끌렸다. 건축주는 아내와 의논을 한 끝에 만남이 있은 바로 다음날 시공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권 사장의 소개로 현재의 집터를 만났다
부지를 처음 본 날 건축주는 ‘땅이 주인을 부른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한다. 구릉 위에 위치한 볼품 없는 땅이었지만, 이곳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산자락에 둘러싸였으면서도 막히지 않은 전망 좋은 부지였다. 여기에 대지까지의 진입로가 지적도상 도로여서 별도의 사용승낙을 받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었다. 좌향이 북동향인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남으로 창을 많이 내면 충분히 채광을 도모할 수 있다는 권 사장의 의견을 따랐다.
애초 건축주가 원했던 부지 면적은 100평~200평 정도. 하지만 매매 협상에 나선 지주는 자신의 필지와 맞닿아 있는 친인척 소유의 필지까지 함께 구입할 것을 요구했다. 1300여 평에 이르는 막대한 토지 매입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건축주는 매입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권 사장이다. 가족의 삶터를 회사가 위치한 안성으로 옮길 맘이 있었던 권 사장은 건축주에게 부지를 함께 매입할 것을 제안했고, 자금 마련에 고심하던 건축주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시공자와 건축주가 이웃사촌 사이로 맺어지게 될 터였다.
“조만간 권 사장의 집도 앉혀질 텐데 제가 농담으로 그랬어요. 우리 집보다 잘 지으면 가만히 안 있겠다고요. 그랬더니 권 사장이 그러더군요. 평생 AS는 보장해 줄 테니 눈감아 달라고. 시공자와 이웃사촌이 되는 일은 유쾌한 일입니다. 권 사장도 저를 친동생같이 생각하고, 저 또한 권 사장을 형님같이 여기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죠.”
밖으로 향하는 안, 실내 덱
집은 연면적 50평의 복층 스틸하우스 구조로 지어졌다. 코발트빛으로 도장한 현관문을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게 중실에 놓인 간이세면대다. 이사 온 뒤로 인근 개울과 야산이 주 놀이터가 된 개구쟁이 명진(12세)이와 효진(9세)이가 자주 손을 씻도록 설치한 것이다. 투명한 유리로 된 중문을 들어서면 시원스레 뻗은 복도실이 나온다. 1층은 복도실을 가운데 두고 좌측으로 운동실과 욕실이, 우측으로 아이방과 어른방이 나란히 앉혀졌다.
1층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가장 특이한 공간은 바로 실내 덱이다. 아이방과 어른방 사이에 3평 남짓 규모로 앉혀진 이곳은, 탁 트인 전면으로 바깥 조망이 가능한 야외 덱이자, 2층 바닥이 포치 역할을 하는 외부 출입구면서, 삼면이 내벽에 둘러싸인 아늑한 가족실 역할까지 겸하는 매우 독특한 공간이다.
실내 덱과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곳에는 뒷마당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자리한다. 실내 덱의 파티오 도어(Patio Door)와 후문을 함께 열어 두면 산 능선을 타고 이는 시원한 바람이 온 집 안을 휘저어 삼복 더위에도 봄가을의 청량한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2층은 공용공간과 부부 전용공간으로 꾸몄다. 주방과 식당, 거실, 서재가 일자형 동선으로 연결돼 있는데, 거실과 서재 사이에 월넛과 알루미늄으로 짠 파티션을 설치, 공간을 분리했다. 서재에 놓인 파티션과 책장, 책상의 가구가 이채로운데, 이는 모두 전직 가구 디자이너였던 권 사장이 건축주를 위해 직접 짠 것이다. 이뿐 아니라 각 실의 붙박이장과 주방가구 등도 모두 권 사장의 손길을 거쳐 완성됐다.
거실 전면에 앉혀진 2층 발코니는 코발트빛 도장을 한 스틸 난간을 설치하고, 역시 같은 계통의 청색 강화유리로 제작한 캐노피를 얹어 개성 있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새벽녘 금광저수지의 물안개가 능선을 타고 밀려올 때면 마치 지리산 자락의 콘도에 와 있는 듯한 신비함과 황홀함을 만끽할 수 있다.
“애초 원했던 사항들이 모두 설계에 반영되었습니다. 입원 치료 중인 장인어른이 퇴원하시면 우리가 모셔야 하니 어른방이 필요했고, 운동과 영화감상을 할 수 있는 여가공간이 있으면 했죠. 각 세대가 독립된 생활이 가능하게끔 해달라고도 요구했고요. 실은 구체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알아서 해달라고 한 게 더 많아 시공하는 입장에선 애로점이 많았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 생각을 어떻게 읽었는지 집 안 구석구석 한 군데도 버릴 데 없이 시공돼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새 집으로 이사한 지, 이제 한달 남짓. 아직은 낯설고 신기한 게 더 많은 생활이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한참 부산할 때다. 집 전면에 주차장을 앉히는 큰 공사가 남아 있고, 남은 농지와 임야를 어떤 방도로 활용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도 부부는 요즘 두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이곳으로 이사한 일이 얼마나 잘한 결정인지 새삼 깨닫곤 한다.
“아파트에서는 집에서 뛰지 말라고 회초리를 들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곳에선 그럴 일이 없죠. 집 안에서 우당탕 뛰며 숨바꼭질을 하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는다고 옷을 몽땅 적셔 와도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얼마 전에는 자전거를 사줬더니 이제는 숫제 저녁 먹을 때가 아니면 집에 들어오지 않아요. 컴퓨터를 껴안고 지내는 모습만 보다 자연 속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마음이 흡족한지 몰라요."
부부는 그 옛날 그림 같은 집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할 때만 해도 자신들의 소원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지는 몰랐다고 한다. 옆집 살던 동무끼리 부부의 연을 맺고, 한눈팔지 않고 착실하게 일한 결과로 마련한 가족들의 소중한 둥지, 부부의 약속대로 이제는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을 터이다. 田
글 송희정 기자 / 사진 조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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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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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집 그리고 정원이 조화로운 마산 59.7평 단층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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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시멘트 사이딩에다 아스팔트 슁글로 마감한 주택이 논 한복판에 다소곳하게 앉혀진 모습이 이채롭다. 터가 계단식 논자리라 연약지반과 장마철 물 넘침에 역점을 두고, 기초를 지면보다 60센티미터 정도 올렸다. 터가 평지다 보니 집이 높으면 부자연스럽고, 나이 들면 오르내리기 불편하다는 생각에 단층으로 앉혔다. 채광과 전망을 고려하여 서재 외에 세 개의 방을 동쪽과 남쪽으로 배치했고, 프라이버시를 강조하여 공용공간인 거실에서 각 방의 문이 보이지 않도록 엇갈리게 배치했다. 정원에는 잔디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나무와 꽃을 심어 볼거리가 많다. 전원과 집 그리고 정원이 함께 어우러져 쾌적함과 편리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흐른다.
■건축정보
·위 치 : 경상남도 마산시 진북면 인곡리
·부 지 면 적 : 516평
·대 지 면 적 : 216평
·연 면 적 : 59.7평
·건 축 구 조 : 단층 스틸하우스
·실 내 구 조 : 방 3, 서재, 거실, 주방, 다용도실, 보일러실, 차고
·외벽마감재 : 시멘트 사이딩
·내벽마감재 : 실크벽지
·지 붕 재 : 아스팔트 슁글(이중그림자)
·천 장 재 : 실크벽지
·바 닥 재 : 강화마루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난 방 형 태 : 심야전기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시 공 기 간 : 2004년 8월 ~ 2005년 1월
·건 축 비 : 평당 400만 원
설계·시공 : 예진스틸하우스 055-746-4959 www.yejinhouse.com
신태기(59세)·조정애(55세) 부부는 2004년 6월 초, 경남 마산시 진북면 인곡리에 59.7평 단층 스틸하우스를 짓고 이주했다. 산자락이나 마을 안에 들어선 주택들만 보아서일까. 흰색 시멘트 사이딩에다 아스팔트 슁글로 마감한 주택이 논 한복판에 다소곳하게 앉혀진 모습이 이채롭다.
이들 부부는 이곳으로 이주하기 전, 마산시 문화동의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도심이라지만 언덕배기에 앉혀진 집이라, 한때는 한적했으며 멀리 바다가 바라보였다. 그러나 개발의 여파로 하루가 다르게 고층 아파트들이 집 앞까지 밀물처럼 몰려왔다. 바다를 밀어 낸 콘크리트 숲에서는 자동차 경적소리만 요란했다. 결국 보다 나은 삶의 환경을 찾아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삼대에 걸쳐 농학(農學)에 매진하는 농학자 집안이다 보니, 전원행은 자연스러운 귀착점이었다. 신태기 씨는 부친에 이어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후 원예 기술 연구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그의 막내아들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에 재학 중이다. 한편 큰딸은 미학 박사 과정에 있고, 둘째딸은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셋째딸은 일러스트레이터로 발돋움하고자 석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여 제 길을 가고 있기에, 이들 부부는 굳이 갑갑한 도심 속 콘크리트 더미에 갇혀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9대째 뿌리내리고 살아 온 마산을 떠나기란 쉽지 않았기에, 주로 마산 외곽의 땅을 찾아다녔다.
“마산에서 전원주택지를 찾는 데에는 지리적으로 한계가 있었어요. 동쪽은 도심이고, 북쪽은 산이 병풍처럼 막아서고, 남쪽은 바다고… 서쪽 빼고는 갈 데가 없었지요. 산자락에 붙은 땅도 여럿 봤지만, 좋다 싶으면 음택(陰宅 : 묏자리)이었지요. 결국 찾아낸 곳이, 논으로 둘러싸인 이 땅이지요. 한쪽 면이라도 숲이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욕심대로 안 되더군요.”
그렇게 해서 진북면 인곡리의 도로와 우측면이 접한 논 516평을 평당 16만 원에 구입하여, 그 가운데 216평을 대지로 전용했다. 이 지역은 벼농사와 함께 화훼 특화산업이 활발히 추진되는 곳이다. 또한 마산까지 20여 분이면 닿기에 도심의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목포-부산 간 2번 국도와, 거제-부산 간 14번 국도가 교차하여 교통 여건도 좋은 편이다.
건축주의 꼼꼼함이 공기 앞당겨
신태기 씨는 전에 살던 단층 슬래브집을 2층집으로 증축했고, 일과 관련하여 농기계를 보관하는 창고나 온실 등을 여러 채 지은 바 있다. 그러한 경험은 스틸하우스 선택으로 이어졌다. 이 주택을 설계·시공한 ‘예진스틸하우스’ 전희수 대표의 말이다.
“건축주가 처음부터 스틸하우스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았고, 설계나 인테리어 등 요구 사항이 분명하여 일이 한결 편했어요. 집을 짓다 보면, 건축주가 욕심이 생겨 중간에 구조 변경을 하는 예가 적잖거든요. 이 주택은 건축주가 워낙 꼼꼼하여 설계 협의를 하는 데만 꼬박 한 달 걸렸지요. 그만큼 사전 준비가 철저했기에 토목에서 기초, 골조, 설비, 외장,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3개월 만에 논스톱으로 진행했어요.”
토목공사는 2004년 3월 초에 시작했는데, 계단식 논자리라 연약지반과 장마철 물 넘침에 역점을 두었다. 논흙을 40센티미터쯤 걷어 내자, 이곳에서 어떻게 논농사를 지었나 싶을 정도로 돌이 많이 나왔다. 그렇게 연약지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다음은 우기(雨期) 물 넘침인데, 여기에 대비하여 기초를 지면보다 60센티미터 정도 높였다. 이 작업은 구조체 침하에 대비하여 버림 콘크리트를 한 후에, 50센티미터 줄기초, 돌로 되메우기, 30센티 줄기초, 흙 채우기, 바닥 콘크리트 순으로 마무리했다.
골조 역시 신태기 씨가 요구한 일곱 가지 사항에 따라 척척 진행됐다. △지형에 관계없이 정남향으로 집을 앉힐 것 △차고가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할 것 △각 실의 구획을 1층으로 하되, 차고 위에다 반 층 정도 높여 서재를 드릴 것 △부엌과 거실을 트고, 한옥의 대청처럼 남쪽에서 공기가 유입되어 북쪽으로 빠져나가게 할 것 △서재를 제외하고, 방을 3개 드릴 것 △거실에서 모든 방의 문이 보이지 않게 할 것 △보일러실을 집 안으로 넣을 것 등이다.
“60평이면 보통 2층집으로 짓곤 하죠. 그런데 터가 평지다 보니 집이 높으면 부자연스럽고, 나이 들면 오르내리기 불편할 같아서 단층으로 앉혔죠. 방은 서재를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침실 하나에다 집사람만의 작업실, 아이들이 왔을 때 맘 편히 쉬어갈 게스트-룸, 이렇게 셋이 필요했지요.”
각 실의 프라이버시 강조
이 주택은 주 출입구인 현관이 북쪽에 있다. 기초를 지면보다 60센티미터 높이다 보니, 대문에서 현관을 잇는 진입로를 방부목으로 경사지게 만들었다. 현관문을 열면 좌측으로 차고로 통하는 문과 서재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차고는 지대가 낮고, 문이 자동으로 개폐될 때의 진동 발생 우려가 있어 철근콘크리트 골조로 했다.
서재는 한옥의 누마루를 드린 사랑채를 떠올리게 한다. 천장에는 이미테이션 서까래로 마감하고 모서리에 벽난로를 설치하여 현대미와 전통미를 적절히 조화시켰다. 차고에서 실내로 진입하는 부분의 높이를 살려서 붙박이용 침대를 드렸다. 또한 계단실과 북쪽 벽면에는 붙박이장을 짜서, 선친 때부터 수집해 온 원예 관련 서적 및 사진, 비디오 테이프 등을 진열했다. 동쪽과 남쪽 벽면에는 전망과 채광을 겸한 넓은 창을 냈다.
현관에서는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여 각 실의 방문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재봉틀이 놓인 조정애 씨의 작업실과 게스트-룸하고, 화장실과 보일러실이 마주한다. 두 개의 방에는 의자나 침대에 걸터앉은 상태에서 밖을 내다보도록 창을 냈다.
거실과 주방을 한 공간에 배치하고 식탁과 보조 테이블을 이용하여 분리했다. 주방 가구는 거실이나 복도에서 싱크-볼과 싱크대가 보이지 않도록 ‘ㄷ’자형으로 배치했다. 주방에서는 동선이 북쪽의 다용도실로 통해 장독대가 있는 서쪽의 후정(後庭)으로 이어진다. 한편 주방에서 일할 때는 보일러실 사이에 놓인 벽면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를 감안하여 남쪽의 중정(中庭)을 향해 세 개의 고정창을 냈다. 아트-월로 꾸민 거실 북쪽 벽에는 고정창을, 남쪽 벽에는 중정 덱으로 통하는 미닫이 전망창을 설치했다. 천장은 반자형인데, 전등을 매입시키기 위해 한 겹을 덧댔다.
안방은 현관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남쪽으로 전면 일부를 돌출시키고 가벽을 설치하여 출입구를 가렸다. 모든 공간과 마찬가지로 사생활 보호를 극대화한 것이다. 또한 욕실을 비롯하여 드레스-룸과 파우더-룸을 드려 편리성을 강조했다.
전체적인 특징은, 채광과 전망을 고려하여 세 개의 방을 동쪽과 남쪽으로 배치했고, 프라이버시를 강조하기 위해 공용공간인 거실에서 방문이 보이지 않도록 엇갈리게 한 것이다. 또한 공간 배치상 한계성을 드러낸 곳에는 가벽이나 계단실을 이용하여 시선을 차단했다.
한편 각 방의 창마다 제라늄을 심은 플라워 바스켓을 매달아 놓은 게 눈길을 끈다. 창이 밀폐된 상태고 방충망이 달려 있어 물을 주려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할 법하다. 하지만 외벽에 시멘트 사이딩을 붙이기 전, 점적식관수(点滴式灌水 : 방울물주기)를 하게끔 호스를 매입했기에 사다리가 필요 없다.
입주하기 전 밤에 왔을 때 개구리소리에 놀랐다는 신태기 씨.
“사방이 논이라,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집사람이 걱정하더군요. 개구리소리도 하루 이틀이지 이렇게 시끄러운데서 어떻게 사냐고요. 그런데 문을 닫자, 개구리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더라고요. 그만큼 방음이 잘 됐다는 것인데, 곧 단열 효과도 높다는 거였지요. 남들이 욕할지 모르지만, 아닌 게 아니라 지난 겨울에 거의 속옷바람으로 지냈을 정도니까요.”
전원주택의 화룡점정 정원
이 주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정원이다. 거실 앞 넓은 덱이 자리한 중정의 경우, 작업실과 게스트-룸을 전면으로 돌출시켜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서쪽에는 텃밭과 논 그리고 산만 있고, 남쪽에는 나무를 식재하여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신태기 씨가 원예를 연구하다 보니, 정원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통 현관은 동쪽이나 남쪽의 주봉(主峰)을 향해 내는데, 정원을 돋보이게 하려고 북쪽으로 냈다.
“건물 앞에 답석(踏石)을 놓았는데, 시각적인 동선 역할을 할 뿐이지 주 진입로는 아니죠. 외부인의 주 출입구는 북쪽의 현관인데, 그 걸 남쪽에 냈다면 정원이 양분되어 시각적인 효과는 줄어들었을 거예요.”
정원을 주택 쪽으로 약간씩 높여 변화를 주고자, 15톤 덤프트럭 8대 분량의 마사를 부었다고 한다. 푸른 융단처럼 깔린 잔디는 캔터키 블루 그라스로, 2004년 9월 파종을 했는데 8주만에 올라와 겨울을 푸른 상태로 났다고.
“사계절 잔디인데, 물을 엄청 많이 먹지요. 외출할 때를 대비하여 타이머가 달린 스프링클러를 네 군데 설치했지요. 1주일에 두 번씩 2센티미터 높이로 깎고, 여름철 고온에서는 누렇게 변하므로 물을 자주 줘서 시원하게 만들지요.”
정원에는 잔디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나무와 꽃을 심어 볼거리가 많다. 울타리에 심은 장미과 상록소교목인 홍가시나무를 비롯하여, 꽃이 피면 작은 꽃 하나가 웬만한 허브 동산과 맞먹을 만큼 향이 진해 만리향이라 불리는 금목서가 눈길을 끈다. 금목서는 70년 된 나무로 옛집에서 가져 온 것이다. 300평의 텃밭도 볼거리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배, 매실, 사과, 감, 포도, 체리 등의 과실수와 쪽파, 대파, 상추, 결구상추, 20일무(홍당무), 당근, 풋고추, 오이, 참외, 토마토, 부추 등에 이르기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가짓수가 워낙 많아 관리를 못할 것이다. 신태기 씨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관리를 하고 있다. 이곳으로 이주한 후, 농사꾼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다고.
"마산에 살 때는 농사꾼이지만, 지금이 보리를 타작할 때인지 모내기를 할 때인지 피부로 못 느꼈지요. 여기에서는 달력을 안봐도 세월 가는 게 느껴져요. 밤꽃이 피었으니 곧 무더위가 오겠다.. 뭐 그런 농사 계절 감각이 살아나다 보니 농사꾼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다고 할까요."
주택이 잠만 자는, 일종의 새둥지 같다면 삭막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원과 텃밭을 전원주택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하는 것일까. 田
글 윤홍로 기자 / 사진 박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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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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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그리던 꿈을 담아낸 청도 12.5평 목구조 황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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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감나무를 가꾸며 시골에서 살아가는 꿈을 꾼다. 언젠가 시골에 집을 마련하면 가장 먼저 감나무를 심을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봄이면 감나무 뿌리쯤에 둥글게 골을 파고 퇴비를 넉넉히 넣어주어 정성으로 가꿀 것이다. 가을날 주렁주렁 열린 알 굵은 감을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던 아버지처럼 나도 그렇게 감나무 아래 서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보람 있고 아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음에.”―장문자 수필, 《산 너머에 내가 있네》 중에서
■건축정보
·위 치 :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1리
·부 지 면 적 : 480평
·대 지 면 적 : 270평
·건 축 면 적 : 12.5평
·건 축 형 태 : 단층 전통 목구조 황토집
·평 면 구 조 : 현대식 일(一)자형
·실 내 구 조 : 구들방 1, 거실 겸 서재, 주방, 욕실, 부엌, 현관
·벽 체 구 조 : 황토 이중 심벽치기
·내·외벽마감 : 황토 맞벽 후 황토미장
·바 닥 재 : 황토, 운모, 백모래 혼합 황토
·창 호 재 : 우드 컬러 하이 새시, 내부 목문(세살문)
·난 방 형 태 : 전통 구들 및 기름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정 화 조 : 5인용 오수정화조(혐기여상폭기식)
·시 공 기 간 : 2005년 1월∼2005년 2월(2개월)
·건 축 비 : 평당 300만 원
※별 채 : 목구조 전통 흙집(5평, 평당 250만 원)
설계·기술지도 :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011-556-2007 www.koreachoga.co.kr
여류 수필가 장문자(54세) 씨가 금년 2월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1리에 12.5평 전통 목구조 황토집을 지었다. 세상사 온갖 시름일랑 훌훌 털어 낸 듯이 산중턱 감나무 단지 안에 푹 파묻힌 수수하고 아담한 집이다. 발 아래로는 운문호에서 흘러내려 밀양강으로 합류하는, 일명 비단내〔錦川〕라 불리는 동창천(東倉川)이 활처럼 감돈다.
한 차례 나뭇잎을 정신 없이 두드리던 빗줄기가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비안개 사이로 강과 산과 들이 질펀하게 드러난다. 이를 일컬어 조화신공(造化神功)이라고 하는 걸까. 집 앞에다 시시각각 천의 모습으로 변하는 한 폭의 진경산수(眞景山水畵)를 내건 듯하다.
이곳에는 여류 수필가 장문자 씨의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청도군 각남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무희(56세) 씨와 결혼하여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딸 둘을 낳고 30여 년을 살았다. 무역업을 하는 이무희 씨는 외국에 나가 있고, 큰딸은 음악학원을 경영하고, 둘째딸은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있다.
수필에서 ‘아버지처럼 나도 그렇게 감나무 아래 서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그가 마침내 금년 2월 ‘시골 타령’에 마침표를 찍었다.
“부산의 아파트 단지에서 살 때는, 키 재기를 하듯이 치솟기만 하는 건물들 틈바구니에서 하늘 한 점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지요. 행동만 자유로웠지 마음을 옥죄는 것이, 감옥이나 진배없었지요. 두 딸들에게 ‘엄마는 시골 가서 살 거야’라고 말한 게 햇수로 20여 년이지요. 이제 이곳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보니 속이 다 후련하지요.”
현대수필로 등단한 장문자 씨는 두 딸이 제 앞가림을 하면서는 늦깍이로 한국방송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부산여성수필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올해 10년 동안 쓰고 다듬어 온 글들을 모아 수필집 《산 너머에 내가 있네》를 냈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이곳 해방구를 벗어나기도 한다. ‘엄마, 이제 시골 타령도 끝이네’라고 말하는, 두 딸에게 찬거리를 장만해 주려고 부산을 오가는 것이다. 부산 아파트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지금도 베란다에 서서 시내를 바라보면 낯설게만 느껴진단다.
글 농사, 밭농사 지을 터를 찾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 요즈음 고향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마을이 변하고 들판이 변하고 길이 변한다. 읍내로 이어진 도로에는 또 하나의 고가도로가 생겨나고 길이 확장되어 가끔 고향을 찾을 때면 어리둥절해진다.”―《산 너머에 내가 있네》 중에서
장문자 씨는 강줄기가 에도는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 산중턱에다 집을 짓기까지 발품을 적잖게 팔았다. 당초 지리산이나 양산 일대에다 집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리산은 두 딸이 머무는 부산 집과 너무 멀고,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양산은 땅값이 너무 비싸 뜻을 접어야 했다.
이 땅은 고향 친구에게 부탁하여 2004년 5월에 장만했다. 무엇보다 발전이 더딘 탓에 시골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데다, 확 트인 전망이며 강이 맘에 들었다고. 부지는 대지 270평과 밭 210평 해서 모두 480평으로, 평당 대지는 20만 원, 밭은 12만 원에 샀다.
이 마을은 아홉 가구가 비탈길을 사이에 두고 드문드문 있는 ‘안마’다. 동창천하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들마’에는 20여 가구가 모여 산다. 50년 전만 해도 들마보다 안마에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으나, 안마는 지대가 높고 경사지라 농사짓기 어려워 대부분 들마로 내려갔다. 워낙 외진 곳이라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찾아드는 외지인은 경치에 반해 안마로 들어온다.
장문자 씨는 안마에 부지를 매입한 후, 주민들에게 정성을 많이 기울였다.
“주민들과 친숙해지려고 연말 모임에 참석하여 일일이 인사를 했지요. 이곳에 집을 지을 테니 잘 봐달라고요. 그 덕인지 이 마을은 앞에 강줄기가 흐르지만 ‘산수도’를 사용할 만큼 물이 귀한데 그걸 나누어주었지요. 그리고 진입로가 비탈지고 좁아 덤프차로 건축 자재를 나르지 못하자, 주민들이 경운기를 끌고 나와 도와주기까지 했지요.”
산과 강이 집을 에워싸다
“집을 짓고 있다. 산 너머에 흙집을 짓고 있다. 강이 바라보이는 산기슭에서 돌을 나르고 흙을 나르며 처음 산을 오를 때만큼이나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 이 기쁨을 만나기 위하여 이십 년 전부터 꿈을 꾸고 준비하고 노력하였다.”― 《산 너머에 내가 있네》 중에서
장문자 씨는 마음이 앞서 집 지을 땅도 장만하지 않은 채 시골집을 그려 왔다. 5년 전에는 시골에다 어떤 집을 지을까 고민하며 건축 강의를 듣기도 했다.
“흙, 나무, 야생초, 산짐승, 들짐승… 자연이 좋아서 전원을 그리워했지요. 그런 까닭에 시골답게 자연 친화적인 흙집을 짓고 싶었지요. 오순도순 나직이 어깨 두르던 시골집 대신에 들어선 양옥집을 보면 왠지 낯설고 슬펐으니까요.”
설계는 한국전통초가연구소의 윤원태 소장에게 의뢰했다. ‘작은 공간에서 자연과 생활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게 요구 사항의 전부였다. 윤 소장은 터를 찬찬히 살펴본 후, 단번에 그림을 그렸다. 그후 설계 변경 한 번 없이 12.5평 본채와 5평 별채가 두 달 만에 지어졌다.
장문자 씨는 마을 할머니 집의 방 하나를 얻어, 그곳에 머물면서 목수들과 함께 일했다.
“돌이 하나하나 쌓여 축대와 기단이 형체를 갖추어 가자 아이처럼 마냥 좋아했지요. 나무를 바심질(목재를 깎거나 파서 다듬는 일)해서 사개맞춤하는 게 힘들었지만 상량식 때는 가슴이 찡했고요.”
상량문은 장문자 씨가 직접 썼는데, 2000년 부산미술대전 횡초서 부문에서 입선한 바 있다. 이 주택의 실내 구조는 천장을 루바로 마감한 포치형 현관을 기준으로 정면에 욕실이, 좌측에 구들방과 아궁이를 드린 부엌이, 우측에 서재 겸 거실과 부엌이 있다.
벽체는 대나무살을 엮어 황토에다 짚을 썰어 혼합해서 심벽치기를 했다. 바닥은 두께가 40센티미터로 참숯을 평당 한 가마 넣고 마사, 소금, 마사, 황토, 엑셀파이프, 마사, 6센티미터 황토 미장 순으로 마감했다. 참숯은 지반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제거하고, 소금은 벌레가 꾀는 것을 막아 준다.
군불을 때는 세 평 구들방은 기름보일러 겸용인데, 스위치 하나로 조절한다. 장문자 씨는 군불을 때러 들락날락해야 하지만, 옛날의 정취 그 자체를 즐긴단다. 바닥에는 한지 장판을 깔았으며, 한쪽 벽면에는 끈으로 얽어 달아 매 놓은 대나무 시렁이 있다. 한 평 남짓한 물 사용 많은 욕실은 바닥을 포함하여 벽체 중인방까지 타일로 마감했다.
네 평인 서재 겸 거실에는 열대지방 나뭇잎으로 짠 멍석을 깔았다. 정자와 별채를 바라보는 곳에 전망과 채광을 겸한 창을 큼지막하게 냈다. 원목 테이블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고, 책꽂이를 겸한 벽이 부엌과 경계를 짓는다.
5평 별채는 10년 만에 수필집을 내기까지 이끌어 준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지었다고.
“흙벽 심벽치기를 위하여 손수 대나무살을 엮어 붙이고 흙과 돌을 날라 굴뚝을 쌓는 일을 도왔지요. 고마운 분들에게 큰 유리창을 만들어 여기 나를 에워싼 산과 강을 담아 대접할 생각으로요.”
장문자 씨는 얼마 전, 이곳에서 집들이 겸하여 수필집 《산 너머에 내가 있네》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참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씨를 뿌린다. 자연의 힘을 불러들이기 위해 정성을 기울인다. 그럴듯하게 일구어진 밭이랑에 상추·쑥갓·시금치·열무를 고루 뿌리며 작고 마른 씨앗이 정말 싹을 틔울 것인지 염려가 된다. 그래도 한 열흘 잊은 듯 지내다 찾아들면 분명 푸른 생명이 만세를 외칠 것임을 확신한다.” ―《산 너머에 내가 있네》 중에서
장문자 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집 주변을 돌보고, 사색을 즐기며 한가로이 지낸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 내렸지요. 지대가 높아 차가 끊겨 불편했지요. 사람의 왕래가 없는 마을에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와서는 감나무 밑을 파헤쳤지요. 나는 그 불편함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궁리했지요. 풍경이 좋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지요. 생각이 트여야 사물을 깊이 있게 제대로 바라보는데, 이곳에서 생각이 트이기를 바랄 뿐이지요.”
집 짓고 바쁘게 맞이한 금년 봄에도 울 밑 채마밭에 고추며, 오이며, 호박 등을 심어 놓았다. 채마밭에서 어느새 성큼 자랐다며 따온 오이를 건네 받아 한 입 베어 물자, 아삭아삭한 맛이며 상큼한 향이 온몸에 배는 듯하다.
사람은 자연을 동결할 수밖에 없다는 장문자 씨.
“사람은 도시의 편리함 속에 살지만, 그 밑바탕에는 자연을 동경하고 있지요. 전원을 그리워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실행해 옮기지 못하면서요. 나는 내 삶이 중요하기에,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 생각했지요. 집 지으면서는 좀더 젊었을 때 올 걸… 그렇게 후회하면서요.”田
글 윤홍로 기자 / 사진 박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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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