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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D.I.Y-애완견 하우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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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 하우스 만들기
디자인하기 - 재단하기(자르기) - 45도 사선 자르기 - 홈따기 - 직소사용하기 - 샌딩하기 - 조립하기 - 마감하기
집에서 할 수 있는 D.I.Y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테이블, 의자, 장식장, 우편함, 책꽂이, 책상, 침대, 화분 등등. 장비와 어느 정도의 기술만 갖춘다면 웬만한 것은 가족과 함께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품목들이다. D.I.Y는 필요에 의해 만들고, 시간과 땀이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간단한 작품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 하나 없다. 다소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배우며 만들어 보도록 하자. 그리고 D.I.Y의 다양한 멋과 매력에 빠져 보도록 하자. 물론 가족과 함께 하면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1 자르기. ▲측판(벽면) : 가로(530㎜)×높이(340㎜) 2장 ▲바닥ㆍ지붕 면 : 가로(360㎜)×세로(410㎜) 2장 ▲지붕 수납공간 : 가로×세로 440㎜×290㎜ 1장, 440㎜×270㎜ 1장 ▲지붕 옆면 삼각형 : 가로(360㎜)×세로(180㎜) 2장 ▲하판 : 가로(375㎜)×세로(310㎜)×발코니 기둥(50㎜) 8개 ▲굴뚝 : 가로(640㎜)×나무의 두께(40㎜)×높이(100㎜) 1장 등을 재단기를 이용해 각각의 치수에 맞게 자른다.
2 45도 사선 자르기. 루터기를 이용하여 45도 사선 자르기를 한다. 지붕에 필요한 면으로 수납공간이 들어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3 홈파기(재단기 사용). 하판 끼워 넣을 부분의 홈파기를 한다. 10㎜정도 띄우고 넓이는 5㎜, 깊이는 8㎜로 하여 홈파기를 한다.
4 하트 모양 따기(직소 사용) : 직소를 이용하여 하트 모양 따기를 한다. 이때 9㎜ 드릴을 이용하여 구멍을 내어 주면 직소날이 들어갈 수 있다.
5 직소를 이용해 문틀을 딴다.
6 샌딩. 벨트 샌딩기와 진동 샌딩기를 이용해 사포 80번과 150번으로 샌딩 작업을 한다. 그리고 조립을 시작한다. 먼저 목공 본드와 클램프를 이용 측면 기둥과 측판을 고정시킨다.
7 측면에 목공본드를 바르고 기둥을 붙인다.
8 클램프로 측판 조이기. 이 작업이 끝나면 이중 비트드릴로 드릴링을 한 후 피스를 박는다.
9 측면 부분 드릴링.
10 조립하기. 측면 조립→ 하단 부분 조립→ 측면 조립→ 상판 끼우기→ 지붕 조립하기 순으로 조립을 한다. 사진은 하단 조립.
11 상판 끼우기.
12 지붕 조립. 지붕은 측면 삼각모양을 먼저 조립을 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목공본드와 타카를 이용한다.
13 지붕 드릴링.
14 지붕 피스 박기.
15 경첩 달기. 지붕을 수납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경첩을 단다. 그리고 통원목을 이용하여 굴뚝을 설치하고, 가는 나무를 이용하여 격자 창문을 만들어 타카를 이용하여 조립한다.
16 발코니 만들기.
17 페인트 칠하기.
18 완성 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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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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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향촌 사대부가의 진면목을 한눈에 윤증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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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 사대부가의 진면목을 한눈에
윤증고택 尹拯故宅
윤증(尹拯 : 1629-1711) 선생은 본관이 파평(坡平)이고 호가 명재(明齋)이다. 선생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지는 않았으나, 그 학문이 높아 조정에서 수많은 출사 권고를 받았지만 한번도 조정에 출사하지 않았다. 우의정에까지 제수(除授)됐으나 결국 거절했다. 이로써 선생은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선생은 당시 서인의 수장이던 송시열과 아버님의 묘지명 문제로 사이가 나빠진 후 정치적 대립을 했다. 당시 송시열을 따르던 파를 ‘노론(老論)’이라 하고, 윤증 선생을 지지하던 소장학자를 ‘소론(少論)’이라고 불러 서인의 분열을 가져왔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의 집을 ‘윤증고택’이라 부르지만, 사실 윤증 선생은 이곳에서 거처하지 않았다. 선생의 13세손 윤완식(한국효문화원 이사, 50세) 씨의 설명이다.
“선생은 매우 검박하게 생활했다. 이 집은 선생의 자제들과 제자들이 힘을 합하여 지은 것인데, 선생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이 살던 실제 고택은 현재 유봉영당(酉峯影堂)자리이며,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윤증 선생이 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소박한 삶의 태도 때문이다. 선생은 돌아가실 때 제사도 간단히 지내라 하고, 평소 때도 반찬이 두 가지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할 정도로 검박한 생활을 했다. 이러한 선생의 유지는 지금까지 내려와 현재도 제사상을 매우 소박하게 차리고 있다.”
집안 자존심 지키려 솟을대문을 없애
윤증고택은 선생의 후손과 제자가 지었지만, 선생의 생각을 많이 반영했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품위 있으며, 집이 밝고 아늑한 것도 선생의 뜻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점에서 ‘사람이 사는 집은 어떠했으면 좋을까’ 하는 느낌을 느끼고자 한다면 윤증고택에 가서 보기를 권한다.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밝은 햇살이 비치고 포근해야 한다. 이러한 집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윤증고택은 이러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안채는 밝고 포근하며, 사랑채는 늘 밝고 좋은 전망을 갖추고 있다.
윤증고택은 열린 입구자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집은 자칫 폐쇄되어 답답하기 쉽고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음침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넓지 못하고 괴팍하다. 그러나 윤증고택은 늘 밝고 명랑하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두 차례 만난 차종부(신정숙, 60세)의 마음은 넓고 포근했다.
윤증고택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첫째 모든 한옥에 있는 솟을대문이 없다. 둘째 향교와 담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없는 윤증고택 만의 특징이다.
솟을대문이 없는 집도 많지만 그 대부분은 전쟁 때, 또는 관리 소홀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러나 윤증고택의 경우는 일찍부터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누군들 사랑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할 것인가. 윤완식 씨는 현 위치로 향교를 이전한 것과 솟을대문 없어진 것이 관련이 있다고 한다.
“원래 향교는 노성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극심하던 19세기 초 궐리사(공자의 영정을 모신 곳)를 노론의 주도로 윤증고택에서 멀지 않은 현 위치로 옮기더니, 20∼30년 후 향교도 윤증고택의 바로 옆으로 옮겨버렸다. 이것은 소론 영수 집안의 동태를 감시하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노론의 속셈을 알아챈 웃어른께서 그럴 바에는 모든 것을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솟을대문을 없애버렸다.”
19세기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정녕 그렇게 나온다면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겠다’는 오만과 자부심에서 나온 것으로, 자존심만은 지키려는 노력의 발로다. 그만큼 윤씨 집안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없어진 솟을대문으로 사랑방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매우 시원하고 아름답다. 사랑채에서 바라다보는 마당 앞 둔덕 위에 있는 소나무가 아름답고, 향교와 사랑채 사이에 있는 연못을 바라보는 경관도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경관은 솟을대문이 있었다면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집안 곳곳 살아 숨쉬는 집
우리의 집은 손님을 위한 집이 아니라 주인을 위한 집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한옥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안에서 밖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즐거움을 모른 채 사진 몇 장만을 찍고 돌아가 버린다. 주인의 입장에서 집을 느끼려면 안채나 사랑채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앞에 있는 언덕에 소나무가 너무 성글어 나무로 좀더 가려졌으면 했는데, 윤완식 씨는 ‘예전에는 대추나무가 많이 있어 지금보다는 많이 가려졌다’고 한다.
모든 점에서 윤증고택은 참 사는 맛을 느끼게 하는 집이다. 사랑채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에서 술을 한 잔 걸치고 거나해진다면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것만 같다. 편안하게 앉아 주변을 바라보며 먹는 음식 맛은 어떠했을까. 집주인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윤증고택에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가 가득하다. 모든 옛집이 그렇듯이 이곳에서도 은유적 표현인 ‘도원인가(桃源人家)’라는 당호로부터 사랑채 앞의 ‘석가산(石假山)’까지 작지만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넓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사랑채 누마루 바로 아래 한 뼘 크기의 작은 연못을 파고 주변을 몇 개의 돌로 감싸놓고는 석가산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크기가 문제이겠는가. 작음 속에서 큰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로써 족할 뿐, 그러한 마음이 곧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 될 것이다.
윤증고택의 안채는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시원함과 아늑함이 있다. 이러한 느낌을 보여주는 안채가 그리 많지 않다. 윤증고택의 안채는 시원함을 주기 위하여 대청을 다섯 칸으로 간살잡이를 했다. 평면상으로 안방과 건넌방에서 한 칸씩 잡아먹어 실제 규모는 8칸이지만 10칸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옛말에 부잣집을 6칸 대청집이라고 했다. 6칸 대청도 큰데 10칸 같은 8칸 대청이니 얼마나 넓게 느껴지겠는가. 이러한 개방된 분위기 때문에 대청에 앉아 있어도 답답함이 전혀 없다. 또한 뒤뜰의 장독대와 대나무 숲도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시원함을 더해 준다.
윤증고택의 또 다른 맛은 다른 집과 달리 집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모든 곳이 새롭다. 정성을 들여 잘 가꾼 집임을 알 수 있다. 집을 돌아보는 쏠쏠한 맛이 있다. 구석구석 모두 정겨우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보다 큰 집도 이렇게 다채로운 맛을 보여주지 못한다. 윤증고택의 참 맛은 지금까지 사람이 아직 살고 있기 때문에 집 구석구석 손때가 묻어 있어 집이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윤증고택 만의 매력이다.田
글 최성호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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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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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건강한 아이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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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전원주택의 백미(白眉)라 불릴 만큼 현재 전원주택에서 생활하거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푸른 잔디가 널따랗게 펼쳐진 정원의 테이블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마음과 마음을 잇는 정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푸른 잔디를 잘 가꾸려면 많은 시간과 부지런한 손놀림을 필요로 한다. 정원을 좀더 보기 좋게 가꾸기 위한 기본 방법에서부터 정원이 생활에 미치는 효과, 푸른 자연을 가까이 옮겨와 감상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치료정원 시공사인 ‘푸르네’의 이성현 대표에게서 들어본다.
한 소년이 성장하면서 나무가 늙어 죽기까지 나무와 나누는 짧은 이야기인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 책에서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인 잎과 줄기 그리고 마지막 남은 밑동까지 어린 소년에게 베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자연은 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지만 정작 우리는 그 속에서 고마운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연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배우게 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한다.
다양한 정원활동 만들기
우리는 아이들이 자연과의 만남 속에서 많은 부분에 있어 변화하는 모습을 본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정원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정원에서 할 수 있는 활동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텃밭 만들기를 비롯해 낙엽 모으기, 꽃 이름 알기, 그림 그리기, 물 주기, 꽃 심기, 식물일기 쓰기 등 일일이 다 열거하지 못할 만큼 많다.
물론 이러한 활동은 정원의 크기와 나무의 종류 등에 따라 변수를 갖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의 시각으로 너무 틀에 맞추어진 활동만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릴 때 클로버로 만들던 꽃반지와 목걸이, 또 얼마 전까지 한창이던 아카시아 꿀 따먹기, 진달래 화전 만들어 먹기 등 다양하고 창조적인 활동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컴퓨터와 너무 친해져 버린 아이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모니터 앞에서 메마른 정서를 지닌 채 살아가도록 방치하지 말자. 생명을 알고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로 키우는 일은 정원을 만드는 이들의 책임이자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이라는 도구는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자연에 놓아만 주어도 귀를 쫑긋 세워 새소리를 듣고, 풀벌레 소리에 마음을 움직이고, 부드러운 공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찬찬히 자연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참여가 함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아이들은 또 다른 창조의 눈을 갖는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정원을 만들어 가면서 세심하게 배려할 때라야 아이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정원 안에서의 활동들은 어른들의 틀에 갇힌 생각에 기대지 말고, 아이들로 하여금 변화해 가는 자연을 맘껏 누리면서 느끼도록 하는 가운데서 찾길 바란다.
자연 안에서 변화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정원 안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변화를 나타낸다. ‘재미있어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보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이며, 자기 손으로 심어 본 식물들이 자라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을 상상하기도 한다. 또한 꽃이 피고 열매라도 열리면 어른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여러 가지의 표현력을 구사해 가면서 손을 잡아 이끌곤 한다. 이처럼 정원에 핀 한 송이의 꽃에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주고, 삶을 생각하게 하고, 부모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형성해 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이 성장하려면 물이 제일 필요하다. 아이들은 식물에게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에는 잘 모른다. 자신이 직접 심어 놓은 식물에는 호기심을 가지면서 차츰차츰 식물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열심히 물을 주기 시작한다. 물이 생명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식물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보호를 한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이 가꾸는 식물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들의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된 물을 주는 행동이 결국 생명이라는 큰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말을 못하는 식물이지만, 서서히 사람처럼 식물을 생각하면서,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것과 곧 이어서 꽃과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 그리고 작은 변화에도 즐거움을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체험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느껴
앞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체험을 하지 않고 알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느낌들을 어떻게 그림과 문자로 알려줄 수 있을까? 식물을 직접 키우면서 느끼고 알아 가는 것과 지식의 가르침으로 알아 가는 것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알아 가는 데에도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오직 체험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교육인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자연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자연과 사귀라고 권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자연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다음 일이며, 자연에 대한 풍부한 정서야말로 지식의 기초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런 체험을 최대한 느끼도록 하려면 아이들을 위한 전문 ‘치유정원’이나 ‘놀이정원’을 설계하고 시공해야 한다.
어른들은 정원의 개념을 시각적인 즐거움 정도로 보기 쉽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살아 움직이고 변화해 가는 자연의 놀이터로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정원에서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울 수 있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전원생활의 멋과 향취를 즐기면서 그에 못지 않게 아이들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정원에서의 많은 활동을 시작했으면 한다. 비록 작은 실천이지만 시간을 내어 식물 한 포기를 함께 심는 일을 시작으로 해서 자연의 스승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한다. 田
글 이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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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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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례를 통한 한국형 주거단지의 모델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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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례를 통한 한국형 주거단지의 모델 개발
■ 글 싣는 순서
해외사례 -1 Trilogy
1. Master Plan - Master Plan & Theme
2. Community - Clubhouse
3. Model Home - 주택유형 분석
지금 우리의 주거단지라 하면, 아파트나 빌라 단지 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과거에 단독주택들은 도시에서는 집단 부락 등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지방의 전원주택은 ‘나 홀로 주택(?)’의 형태로 산재했다. 현재는 단독주택 시장에도 단지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각종 전원주택단지를 비롯하여, 타운하우스(Town-House), 동호인주택단지 등 여러 형태로 들어서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단지들은 말 그대로, 단지 집이 모였을 뿐이다. 즉, ‘많이 만들면, 많이 남을 것이다’라는 사업 기준을 가진 공급자 중심의 단지 개발 형태다. 그 결과 우리네 단지는 가치나 환경을 잃은 채 마치 바둑판처럼 나누어진 모습으로 변했다. 그 결과 단지 개발 사업은 실패를 거듭해 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사업에 실패할 경우, 그 손해는 공급자보다는 수요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입주율이 낮은 미분양 단지는 시간이 지나도 입주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은 채 정체되어 단지의 기능을 잃고 만다. 자연 매매가 끊기고 단지의 가치는 떨어져서, 결국 수요자는 또 다른 나 홀로 주택에 살게 된다. 이처럼 수요자는 재산적으로나 삶의 환경적으로나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공급자 중심의 단지 개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치보다는 가격을 중시하는 시장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이제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가격과 가치의 본질을 깨닫는 시점부터 주거 단지 개발의 시장은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
여기에서는 우리의 주거 단지 실태를 재조명하고, 좋은 해외 사례를 통해 수요자에게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본질을 찾게 하고, 공급자에게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의 모태가 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주거 단지 개발을 모색해 보도록 하겠다.
Redmond Ridge-Trilogy
Trilogy는 미국 레드몬드에 위치한 곳으로 아름다운 숲과 맑은 호수, 에메랄드 빛 언덕의 예쁜 구조는 그동안 각종 소음과 현대적인 삶의 요구로부터 벗어나 삶의 여유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다.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있다.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과거의 꿈을 찾고 있는 듯하다.
Trilogy는 주요 도심지 근접한 곳에 위치하여 편리한 도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 허스키 스타디움, 시애틀의 야간 라이브 극장, 아트 갤러리 등의 문화 공간과 워싱턴 생매미쉬 강이 있어 카약, 카누, 낚시 등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함과 문화 및 레저 생활이 가능한 이 단지에서는 성공한 시니어(Senior)들이 삶의 여유와 환경적 풍요를 누리면서 꿈과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Master Plan
마스터플랜(Master Plan)이란, 그 사업의 종합적인 기획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급자뿐만 아니라 수요자들도 마스터플랜을 단순히 사이트 맵(Site Map) 이나 배치도 정도로만 여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단지가 실패하는 첫 번째 원인은 여기에 있다.
보통 분양이 실패하면 사업에 실패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업의 성패를 개발의 마지막 단계인 분양 단계에서 판가름한다는 것은 무척 잘못된 생각이다. 분양이 실패해서 사업에 실패한 것이 아니고, 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에 분양에 실패한 것이다. 그만큼 마스터플랜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단계이므로 철저한 사업적 분석과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Trilogy at Redmond Ridge는 총 975에이커(약 119만 7300평)라는 대규모의 단지 계획을 하면서 전체 면적의 약 60퍼센트를 골프장과 자연환경 보전 녹지공간으로 활용했다. 이렇듯 과감한 계획을 통하여 고객들에게 대규모 골프클럽과 환경 보존이라는 상반된 계획을 효과적으로 절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러한 마케팅 방식을 통하여 고객들에게 크게 어필했으며, 또한 세계적으로 환경 보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환경을 파괴하는 골프장이라는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그 주변 환경을 천연 녹지 공간으로 조성함으로써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Trilogy는 1차 개발분 195세대를 100퍼센트 분양됐고, 현재 2차 개발분 300세대 중 약 90퍼센트 이상 분양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마스터플랜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적절한 계획안이 절충됐을 때라야 성공을 할 수 있다.
Theme
테마(Theme)는 그 단지의 색을 갖게 한다. 테마가 없는 단지는 아무런 특색이 없기에 생명을 잃고 만다.
우리 단지의 테마는 너무 환경에 치우쳐 있다. 산, 호수, 맑은 공기 등은 가장 중요한 테마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단지의 특색을 대변할 수는 없다.
Trilogy는 꿈, 건강, 행복이라는 세 가지 테마를 갖고 있다. Trilogy는 Tri(3가지)+Logy(이념)의 합성어로 3부작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곳에서는 커뮤니티(Community) 시설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민들의 무한한 능력과 그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 준다.
아침에 일어나 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고, 바에서 멋진 음악을 연주하고, 수영선수처럼 수영을 즐기며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처럼 입주민들의 새로운 웰빙 라이프(Well-being Life) 구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휘트니스 센터, 요가, 수영장 등 단순히 하드웨어한 시설만으로 운영하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강사와 웰빙 설계사의 운영프로그램 등을 기반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준다.
입주민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운영하는 클럽 모임 등은 가족 간의 화목과 이웃 간의 정을 돈독히 나눌 수 있고, 자신의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찾게 하고, 그것을 실현하도록 도와 준다.
한국형 테마는 무엇인가
Trilogy에서는 꿈, 건강, 행복 세 가지 테마를 내세웠다. 그럼 한국형 테마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이 세 가지 테마 외에 더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일이다.
일이라는 것은 한국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는 일상적인 일 외에도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때로 일이라는 것이 편안함보다도 더 삶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고, 그것이 바로 건강한 삶이고 진정한 웰빙 라이프이기 때문이다.田
글·사진 임송일
02-572-6051, www.miraehous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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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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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 울려 퍼지는 하모니, 남양주시 99평 복층 RC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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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대부분은 전원주택지를 마련하면 구조 선택에서 설계, 시공에 이르는 과정을 서둘러 진행한다. 꿈에 그리던 전원행을 하루라도 앞당기고자 하는 맘이야 십분 이해한다. 문제는 전 재산을 투자하다시피 하며 건축일을 서둘러 진행하다 보면, 간혹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전원주택지를 마련한 후, 4년간 땅과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서야 비로소 가족의 보금자리를 앉힌 사람이 있다. 다양한 소재와 형태의 리빙도어를 생산 판매하는 청구데코라인 대표 송교덕(44세) 씨다. 건축주는 올해 1월 26일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 천마산줄기에 둘러싸인 채 멀찍이 팔현계곡을 굽어보는 남향받이 터에 연면적 99평의 3층 철근콘크리트로 부인 윤광숙(43세) 씨와 아들 재욱(19세), 딸 다혜(15)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집의 규모는 차치하고,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여러 개의 박공지붕과 팔각지붕에다 곡선미를 살린 벽체를 전면으로 돌출시킨 점이 특이하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
·부 지 면 적 : 403평
·대 지 면 적 : 280평
·건 축 면 적 : 63평
·연 면 적 : 99평(1층 63평, 2층 28평, 지하 8평)
·건 축 형 태 : 3층 철근콘크리트 주택
·외벽마감재 : 적벽돌+대리석
·내벽마감재 : 천연 벽지
·지 붕 재 : 유기기와
·천 장 재 : 실크벽지
·바 닥 재 : 원목마루, 대리석(거실)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난 방 형 태 : 심야전기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시 공 기 간 : 2004년 8월 3일∼12월 말
시 공 : 가가종합건설
(031-595-8271, 011-9039-8272)
E-mail :8272gaga@hanmail.net
송교덕·윤광숙 부부는 남양주시 팔현리에서 전원생활을 하기 전에는,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청구리빙도어 상설전시장과 사무실, 살림집을 갖춘 빌딩을 짓고 살았다. 한편 건축주는 1시간 남짓 거리인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공장까지 10여 년간 출퇴근했다. 그에 따른 불편함도 있었지만, 늘 메마른 도시의 빌딩 숲을 떠나 공기 맑고 경관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자녀들 교육문제로 전원행을 쉽사리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4년 전, 아들 재욱 군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국 유학을 고집했다. 학군이 달라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할 바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아들의 소신이 너무나 뚜렷해 그 뜻을 받아들였는데, 현재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있다.
재욱 군이 미국 유학길에 오르자, 건축주 부부는 전원행을 차근차근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교통, 환경, 편리성 등을 염두에 두고 전원주택지 선정에 들어갔다. 그 즈음 건축주는 공장에서 10여 분 거리인 팔현계곡에 식사 차 들렀다가 맘에 편안히 와 닿는 땅을 알게 됐다.
“비탈진 산골짜기에 층층으로 된 다랑이 밭 403평을 평당 40만 원에 구입한 게 4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전원주택이 한두 채씩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개발이 전혀 안 됐습니다. 이곳은 자동차전용도로를 통해 30분 안에 서울에 닿을 수 있고, 저수지 상류인데다 자연녹지지역이라 오염원이 들어설 수 없으며, 또 사방이 온통 저수지 보안림이라 나무 한 그루도 훼손할 수 없고, 팔현계곡 어귀에 아파트 단지가 있어 각종 생활 편의시설이 들어차 있습니다. 심지어 자장면 한 그릇도 배달시켜 먹을 정돕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남양주시와 구리시는 경기도에서는 A학군에 속해 서울의 웬만한 학군보다도 낫기에 딸 다혜의 교육문제까지도 해결됐습니다.”
그후 건축주는 4년간 다랑이 밭을 오가며 이곳에 가족을 위한 제2의 보금자리를 어떻게 앉힐까 여러모로 궁리를 거듭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가꾸면서 땅과 교감을 했다. 지은 지 6개월 밖에 안 되는 집 치고 정원을 너무 잘 가꿨다 싶었는데, 부지를 매입한 후부터 주말농장을 찾듯이 가꾼 게 아름다운 정원이 된 것이다. 건축주는 스스로를 반목수라고.
“건축 관련 업계에 15년 이상 종사하면서 매년 각종 건축박람회에 참가했어요. 전원주택 시공사와 부스를 맞대다 보니 어깨너머로 보고들은 게 많지요. 또 직영으로 동소문동 빌딩을 포함해 남양주시에 제1공장을, 포천시에 제2공장을 짓다 보니 반목수가 다 됐을 정도니까요. 모두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은 박스 형태의 건물인데, 그렇다고 전원주택마저 박스 형태로 지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입면 구성이 가능한 스틸하우스 설계를 뽑아 세 차례 수정을 거쳐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은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는데, 전혀 다른 구조의 설계도면으로 집을 짓다 보니 시공을 맡은 가가종합건설 권동희 사장은 모르면 몰라도 혼쭐났을 거예요.”
건축주와 시공사가 호형호제해
건축주는 스틸하우스 전문 설계업체를 방문해 전원주택은 아파트와 달라야 하므로 각 공간을 널찍널찍하게 구획하고, 외관을 볼륨 있게 뽑아 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사업상 손님 방문이 잦기에 1층은 부부 전용 공간으로 꾸미되 한쪽을 손님 접대를 위한 공간으로 분리할 것과 2층은 자녀들의 독립생활 공간으로 배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건축주는 처음에는 직영으로 집을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스틸하우스 도면을 갖고 철근콘크리트로 지으려다 보니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자, 가가종합건설의 권동희 사장을 찾았다. 권 사장은 난공사임을 뻔히 알면서도 젊은 혈기 하나만 믿고 도전했다고 한다.
“작년 8월 3일 공사를 시작해서 12월 말에 준공검사를 받았는데, 공사하는 5개월 동안 머리 꽤나 빠졌을 겁니다. 철근콘크리트의 두께만도 40∼45센티미터인데, 그 걸로 다양한 형태의 지붕선하며 들쭉날쭉한 돌출부가 많아 구조계산을 하면서 짓느라 한시도 손을 뗄 수 없었어요. 어려운 고비 때마다 건축주가 나를 믿고 모든 재산을 맡겼다고 생각하면서 젊은 혈기로 넘겨냈지요. 결과에 흡족해 하는 건축주 부부를 보니 보람도 있었고요.”
건축주는 청구데코라인 공장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부득이 공장을 근린생활시설로 바꾸는 과정에서 권 사장을 알게 됐는데 누구보다 신뢰할 만했다고.
“나도 건축을 해봤지만 집 짓고 나면 건축주와 시공사하고 원수가 되는 게 다반사지요. 건축을 의뢰하기 전에 가가종합건설에서 지은 집을 대여섯 군데 방문했어요. 건축주들이 한결같이 권 사장과 유대 관계가 좋다는 걸 알았지요. 그때 저 사람이면 일을 맡길 수 있겠다는 신뢰감이 들었고요. 집 짓고 난 후에 나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았지요. 건축주는 많은 걸 요구하고, 시공사는 정해진 금액에 맞추려다 보니 작은 앙금들이 쌓여 끝날 때는 서로 얼굴을 붉히기 마련이지요. 권 사장이 그러한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는 걸 보면, 건축에 노하우가 있다고 봅니다.”
친환경 건축 자재 백화점 방불케 하는 마감재
이 집은 1층 바닥면적이 63평으로 여느 집의 연면적과 맞먹는데도 방은 안방과 서재 겸 손님방이 전부다. 대신에 거실과 주방 그리고 손님맞이 공간인 팔각정을 넓게 구획했다. 무엇보다 안방과 드레스-룸 겸 파우더-룸을 사이에 두고 월풀 욕조를 갖춘 안방만한 욕실을 독립시켜 배치한 점과 파티를 위한 팔각정이 눈길을 끈다. 건축주는 전원생활을 하다 보면 서구처럼 파티 문화가 자리잡을 것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반면 2층은 고스란히 자녀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특징은 아들과 딸의 공간을 독립시키고, 각 공간마다 서재와 침실, 드레스-룸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가가종합건설에서는 계약 전, 건축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취향을 파악한 후 내·외장재를 선택했다. 이 집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지만 내부에는 캐나다산 천연 목재를 많이 사용했으며, 벽면에는 참숯가루를 바른 후 천연 실크벽지로 마감했다. 또한 모든 바닥에는 열전도율이 높고 건강에 좋은 맥반석을 깐 후에 각 실의 성격에 맞추어 원목마루와 황옥대리석 등의 천연 자재로 마감했다.
거실의 경우 무늬목으로 이미테이션 대들보와 서까래를 노출시키고, 루바로 마감하여 자연친화적으로 꾸몄다. 또 서로 맞닿은 거실과 주방 공간에 차별을 두고자 바닥에는 원목마루와 황옥 대리석을 라운드 형태로 잘라서 깔았다. 창호는 1층 거실에서는 소파에 앉은 높이에서, 2층은 복도에서 삼면의 경관을 바라보도록 큼지막하게 냈다. 한편 거실 동쪽에는 아홉 개의 작은 채광창을 내어 기능성에다 미관성까지 겸하도록 했다. 주방은 홈-바 개념으로 꾸몄는데, 주부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공간인 만큼 시력 보호를 위해 곳곳에 삼파장등을 매입했다.
팔각정은 주방과 거실에서 가까워 시선을 분리하기 위해 미닫이문을 냈다. 팔각정의 높이는 4.3미터로 목재를 이용해 평천장으로 꾸미고 아트 철물로 마감했으며, 서로 모르는 손님이 섞일 때를 염두에 두고 현관과 별도로 외부 파티 공간인 덱이나 연못 옆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냈다.
서재 겸 손님방으로 사용하는 작은 방은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꾸몄다. 평소 음악 감상을 즐기는 부인 윤광숙 씨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벽면에 스피커를 매입하고 문에 방음처리를 했다. 각 실의 문들은 전통 목공예를 하는 가가종합건설의 김영채 실장이 현장에서 제작한 것들이다.
2층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아들 재욱 군과 딸 다혜 양의 공간으로 나눴다. 인테리어는 아들 공간은 청년기에 맞추어 강렬하면서도 모던하게, 딸 공간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 어울리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방마다 다락방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박공지붕에다 이미테이션 서까래를 노출시켰다. 공간이 좁은 드레스-룸은 홀딩 도어를 달아 활용도를 높였다.
건축주 부부는 요즈음 아침이 즐겁다고 한다. 인공적이긴 하지만 연못으로 흘러드는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정원 곳곳에 심어 놓은 초목들과 눈을 맞춘 후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간밤 내린 비에 텃밭에 심어 놓은 푸성귀들이 성큼 자란 것을 볼 때마다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단다. 田
글 윤홍로 기자 / 사진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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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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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 예행연습 끝에 취향대로 지은 양평 50평 복층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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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콘크리트 주택을 매입해 전원생활을 시작한 건축주 이지현·유홍란 부부는 금년 5월 같은 마을 안에서 사방이 탁 트인 산중턱의 부지 205평을 매입해 50평 2층 스틸하우스를 지어 이주했다. 채광과 단열을 고려해 서향에서 남향으로 집터를 옮긴 것이다. 부부는 앞선 전원생활의 경험을 살려 거실과 주방을 분리하는 한편 집의 가장 좋은 향에 아이의 방을 앉혔다. 또한 나무 재질의 코르크벽지로 내벽을 마감해 나무의 은은한 향과 입체적 질감으로 독특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했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부 지 면 적 : 205평
·대 지 면 적 : 205평
·건 축 면 적 : 37평
·연 면 적 : 50평(1층 37평, 2층 13평)
·건 축 형 태 : H-beam + 경량 스틸
·외벽마감재 : 시멘트 하디 사이딩
·내벽마감재 : 거실-코르크벽지, 방-실크벽지
·지 붕 재 : 사각 아스팔트 슁글
·천 장 재 : 거실-루바, 방-실크벽지, 2층 거실-코르크벽지
·바 닥 재 : 온돌마루
·창 호 재 : 수입창호
·난 방 형 태 : 심야전기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시 공 기 간 : 2005년 3월~5월
·건 축 비 : 평당 350만 원.
설계·시공 : (주)파송하우징 031-774-1632 www.pasong.com
수도권 전원주택지의 메카로 불리는 경기도 양평군. 북한강과 남한강이 어우러진 빼어난 자연 경관과 서울과의 편리한 교통 여건으로 출퇴근 전원주택지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북한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형 주택을 지을 수 있는 서종면은 서향 택지가 많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조망을 선호하는 이들로부터 인기가 높아 강변을 따라 단지형 전원주택이 속속 들어서는 추세다.
건축주 이지현(45세)·유홍란(43세) 부부도 2002년 북한강변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되어 강을 낀 서향 부지에 기존 콘크리트 주택을 매입해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3년째에 접어든 올해, 같은 문호리 내의 조금은 다른 터에 가족의 보금자리를 옮겨 앉혔다.
강변에서 동떨어진 곳 산중턱에 위치한 남향 부지 205평을 매입해 50평 2층 스틸하우스를 지은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의 바탕에는 가족의 건강, 특히 다섯 살 된 아들 승민(5세)이의 성장을 위해서는 조망보다 좌향이 중요하다는, 건축주 부부의 체험적 판단이 녹아들어가 있다. 부부의 의도대로 지어진 집에서 새로이 시작된 전원생활 제2막. 부부는 ‘과정과 결과 모두에 만족을 느끼며 이 모든 것이 전원주택을 짓기 전, 전원에서 사는 연습부터 해온 결과’라고 말한다.
집 짓기 전, 사는 연습부터
“애초 전원생활을 결심할 때부터 무턱대고 집 짓는 일은 삼가자고 맘먹었어요. 한 몇 년 살면서 지역 특성을 파악한 뒤, 가족의 기호에 맞는 전원주택을 지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지어진 전원주택을 매입해 미리 살아본 게 백 번 잘한 일 같아요. 유행을 좇기보다는 가족들 입맛에 꼭 맞는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었으니까요.”
건축주 부부는 3년 전 서울 살림을 접고 이곳 문호리로 내려왔다. 서울 강남구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이지현 씨가 회식 차 우연찮게 문호리를 방문했다가 ‘이곳이라면 한번 살아볼 만하겠다’고 생각한 게 전원행의 발단이었다.
서울 직장과 불과 40분 남짓 거리인데다 웬만한 편의시설은 모두 갖춘 서종면 소재지와 지척이고, 무엇보다 한강수계 1권역으로 오염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없는 청정지역이라는 사실이 맘에 쏙 들었다.
당시 건축주 부부는 천식과 비염을 심하게 앓던 터라 건강을 위해 주저 없이 전원의 삶을 선택했다. 콘크리트 주택을 매입해 살다 3년 후 같은 마을에 새 집터를 앉힌 이유도 부부의 생활 패턴을 고려했을 때 문호리만큼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춘 지역은 드물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골이 오지일거란 생각은 잘못된 고정관념이에요. 서울 중심지와 승용차로 40분 거리인 지역이 어떻게 오지일 수 있나요? 교육과 문화의 불모지라는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승민이가 좀더 크면 면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낼 생각인데 학급 정원이 도시학교보다 적어 전인교육이 가능한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죠. 또 이 일대 전원주택단지에 문화예술인들이 이주해 들어오면서 면 단위의 문화행사가 달마다 열리고 있어요. 입지만 잘 고르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에서 서울 못지않은 교육,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게 바로 시골입니다.”
올 3월부터 2개월 공정을 거쳐 완성된 새 보금자리는 사방이 탁 트인 산중턱의 남향받이 부지 위에 앉혀졌다. 한 조경업자가 정원수를 키우던 땅을 개발해 별도의 공유면적 없이 전용면적으로만 분양한 필지인데 까다로운 대지 전용절차도 피하면서 토지 활용도도 높이고 싶었던 부부에게는 안성맞춤의 땅이었다. 매입가도 평당 70만 원으로 인근의 북한강 조망이 가능한 땅(평당 100만~150만 원선)에 비하면 절반 정도의 가격에 입맛에 꼭 맞는 부지를 매입한 셈이다. 새로 지을 집의 구조는 주택 관련 서적을 통해 익히 점찍어 둔 스틸하우스로 결정했다. 벽체가 얇으면서도 단열이 우수해 공간 활용도와 난방비 절약 등 이점이 많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이의 방을 제일 좋은 향에
멀리서 바라본 집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갈색 박공지붕과 하얀빛의 시멘트사이딩에 월넛으로 포인트를 준 외벽이 유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안정감 있어 보이면서도 세련된 미감을 자아낸다. 좌측 물매 완만한 박공지붕을 이고 마당으로 돌출된 입면 부가 바로 거실인데 너른 전면창과 집 몸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규모로 집의 상징적인 중심축 역할을 한다. 시더 베벨사이딩으로 포인트를 준 현관 상층부에는 2층 발코니를 두고 각 층마다 전면창을 내 산세에 휘감긴 주변 풍광을 한껏 끌어들인 모습이다.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뤄 튀지 않으면서도 맵시 있는 주택을 시공한 이는 현지 업체인 (주)파송하우징의 최형석 사장. 그는 3년 예행연습을 거친 건축주 부부의 적잖은 요구 사항을 받아 안아 유행보다는 실용을 우선 시 한 편리하고 안락한 연면적 50평의 2층 스틸하우스를 앉혔다.
사전에 건축주 부부가 요구한 내용은 대략 일곱 가지 정도다. 가족 공용공간인 거실은 답답하지 않게 높고 넓게 빼줄 것, 거실과 주방을 분리해 줄 것, 주방 쪽에서 야외 덱으로 출입하는 별도의 출입구를 내 줄 것, 부부 전용 욕실을 제외한 화장실은 실용적인 평수로 빼고 대신 방을 넓혀 줄 것, 집에서 제일 좋은 향에 아이의 방을 앉혀줄 것, 2층 거실과 1층 거실을 트지 말 것, 안방에 별도의 드레스룸을 앉히지 말 것 등이다.
“이러한 요구는 지난 3년간 전원주택에서 살면서 불편했던 사항들을 종합해 놓은 것입니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아내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죠. 그중 화장실 공간을 줄여서 아이의 방을 1층 남향받이에 앉힌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 같아요. 좁은 평수에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는데 최형석 사장의 노력으로 모든 바람이 이뤄진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데 우리에겐 남의 얘기처럼 들립니다.”
실내는 나무재질의 코르크벽지로
실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게 천장고 5.5미터의 탁 트인 거실이다. 한쪽 벽면을 밝은 매직스톤으로 장식해 개방감을 더했고 전면창과 하프라운드 고창을 달아 채광과 전망을 꾀했다.
부부의 안방은 거실 후면에 앉혀 안락한 휴식을 가능케 했고, 반면 홀 우측에 자리한 아이의 방은 입면을 남향으로 돌출시키고 전면창과 측면창을 내어 남녘 햇살을 한껏 끌어들였다. 식당 및 주방은 홀 좌측 후면에 앉혔는데 수납공간으로 쓰이는 계단실에 가려져 거실 쪽의 시선이 자연스레 차단돼 있다. 손님들이 주로 머무는 2층 공간은 1층 거실로 통하는 난간을 막아서 독립성을 보장했다.
이 집에서 눈에 띄는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주요 내벽을 코르크벽지로 마감했다는 사실이다. 방음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코르크벽지는 평당 5만~6만 원선으로 일반 벽지에 비해 고가의 마감재지만 나무 재질을 이용한 천연 소재의 우수성을 익히 들어온 건축주 부부는 지방의 한 업체에 직접 제작 의뢰해서 물건을 받아오는 수고를 마다치 않고 이를 사용했다. 은은한 갈색 톤의 코르크벽지로 마감한 1·2층 거실은 그윽한 나무 향과 입체적인 질감으로 독특한 실내 분위기를 자아낸다.
생각만 바꾸면 가능한 일
3년간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집에 대한 구상을 마침내 현실로 구현시킨 부부는 요즘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전원생활을 누리고 있다. 주말이면 들이닥치는 친지와 친구들을 맞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사람의 정으로 물들어 가는 집이 못내 자랑스럽다. 잠들 때에도 부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아들 승민이는 요즘 자기 방에서 혼자 곧잘 놀아 부부의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고즈넉하고 적막한 밤에 정원에서 발견한 반딧불과 가끔 집 앞에 출몰하는 고라니와 꿩은 이제 한 식구인 듯 낯설지가 않다.
부부는 도시의 많은 사람이 시골에 대한 생각을 바꿔 자연이 선물하는 이 모든 혜택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사고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용기를 내서 한번 살아보세요. 그럼 분명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애처롭게 여겨질 겁니다.“ 田
글 송희정 기자 / 사진 조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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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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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생 네 명과 3개월 만에 지은 울산 23.5평 단층 전통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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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은 전원주택지로 이름난 곳이다. 빼어난 경관을 지닌 데다 자동차전용도로가 부분 개통되면서 전원주택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진열·황정희 부부는 한 달 전, 울산시 2층 슬래브집에서 살다가 손수 23.4평 단층 전통 한옥을 짓고 이주했다. 이들 부부가 15년간 전원주택지를 찾아다녔다는 것도 그렇고, 황정희 씨가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서 흙집 짓기 과정을 수료한 동기생 세 명과 함께 3개월 만에 집을 지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통 건축 방식에다 현대의 편리성을 접목시켜서 적은 면적에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건축정보
·위 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
·대 지 면 적 : 300평
·건 축 면 적 : 본채 23.4평 (별채 - 5.8평 목구조 전통 흙집, 평당 280만 원)
·건 축 형 태 : 1층 단독 전통 한옥
·평 면 구 조 : 현대식 일(一)자형 겹집
·실 내 구 조 : 온돌방 2, 구들방 1, 거실, 주방, 다용도실, 욕실, 현관, 부엌 겸 보일러실
·벽 체 구 조 : 황토 이중 심벽치기
·벽 체 마 감 : 황토 맞벽 후 내벽 황토 미장, 외벽 회벽 미장
·지 붕 재 : 전통 토기와
·바 닥 재 : 황토+운모+백모래 혼합 황토
·창 호 재 : 외부 우드 컬러 하이새시, 내부 목문(세살문)
·난 방 형 태 : 전통 구들 및 심야전기 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정 화 조 : 10인용 오수정화조 설치(혐기여상폭기방법)
·시 공 기 간 : 2005년 2월∼4월(3개월)
·건 축 비 : 평당 500만 원
설계·시공 :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011-556-2007) www.koreachoga.co.kr
이진열(52세)·황정희(46세) 부부는 전원생활을 계획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에 23.4평 전통 한옥을 짓고 이주했다. 이진열 씨는 보건환경연구원 공무원이고, 황정희 씨는 울산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강의하는 교수다. 울산시내 2층 슬래브집에 살다가 한 달 전에 이주했는데, 지금도 이사를 덜 끝내 학교에 강의하러 갈 때마다 살던 집에서 필요한 세간을 한두 개씩 옮겨온다고.
“어릴 적부터 막연히 향토색 짙은 흙집을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시집오기 전에 흙집에서 산 것은 아니에요. 생계를 쫓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느라 어느 한 곳에 정착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자주 간 곳은 지금 금싸라기 참외로 유명한 성주인데, 예전에는 수박농사를 더 많이 지었죠.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여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인 집성촌으로 일가친척이 모여 살았어요. 흙집을 지은 것은 아마 그때의 기억들이 머릿속 깊이 각인돼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흙집을 짓기로 한 직접적인 계기는 울산시의 2층 슬래브집에서 살던 15년 전에 찾아왔다.
“남편의 친구 부인이 온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 여러 곳을 다녔는데 특별히 이상한 데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울산 외곽에 살림집과 식당을 겸한 흙집을 지은 후로는 몸이 말짱해졌어요. 우리 부부가 그 댁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식당이라 음식 냄새가 심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또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몸도 개운했고요. 그때부터 쌍둥이 딸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전원에서 흙집을 짓고 살기로 맘먹었죠.”
그후 이진열·황정희 부부는 전원주택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해 10년 전에 울주군 인보리의 땅 600평을 평당 4만 원씩 주고 샀다. 산으로 둘러싸여 공기 좋고 물 맑아서 샀는데, 갈 때마다 썩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산임수형은 맞았으나 전면이 산으로 가로막혀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더 남향으로 좌향을 틀어 집을 앉히려고도 했으나 뒷산이 받쳐주지 않아 결국 다시 맘에 와 닿는 땅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4년 전 여기에 당시 밭이던 땅 300평을 평당 25만 원씩 쳐서 7500만 원에 샀다고 한다.
“전원주택지를 고를 때 대전제는 이 다음에 애들이 다 빠져나가더라도 스스로 오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친구들과 놀러오고, 결혼해서도 자식들 데리고 놀러올 수 있는 그런 곳 말예요. 여기는 집터 뒤에 골 깊은 산이 있어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요. 가까이 석남사를 비롯해 멀리는 경주까지 30분이면 닿지요. 또한 우리 부부의 근무지까지 40분이면 족했는데, 최근에는 산북농공단지까지 자동차전용도로가 개통돼 더 빨라졌어요.”
15주 교육받고 ‘경주목수’소리 들어
15년간 전원주택지를 찾아다닌 것도 그렇지만, 특히 황정희 씨가 여성의 몸으로 경성대학교 부설 한국전통초가연구소(소장 윤원태) 동기생 세 명과 함께 3개월 만에 자신의 집을 지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평소 한번 맘먹은 일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린다는 황정희 씨.
“15년 전에 남편 친구의 집을 방문한 후, 우리 집도 나무와 흙만 갖고 내 손으로 짓겠다고 맘먹었어요. 4년 전에 집터도 장만했겠다 아들 준해가 작년에 군에 입대했고, 올해 쌍둥이 딸인 슬기와 슬비 모두 대학에 입학했으니 더 이상 전원행을 미룰 이유가 없어졌지요. 사실 나는 적극적이고 용기도 있는 편이에요. 겁도 없이 잘 설친다고나 할까. 딸 쌍둥이를 낳고 두 돌이 되자 대학에 입학해 학사는 물론 석사, 박사 과정까지 밟았으니까요.”
황정희 씨는 2004년 하반기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서 흙집 짓기 과정을 마쳤다. 2003년 윤원태 소장과의 첫 만남부터 오기가 발동했다고.
“윤 소장 님에게 평소에 좋아하는 야생화차 지하 저장고를 들일 맘에 콘크리트 기초 위에다 흙집을 앉히고 싶다고 하자, 발끈하더군요. 우리네 전통 흙집이 뭔지나 알고 찾아왔냐는 거였어요. 그때 내 손으로 흙집을 지을 바엔 이곳에서 제대로 배워서 짓자고 맘을 정했죠. 그 당시엔 일주일 내내 강의를 맡았기에 흙집 짓기 강의를 듣지 못하고, 해를 넘겨서야 15주 강의를 받았어요.”
한국전통초가연구소의 흙집 짓기 과정은 흙집 짓기 이론(4주)과 현장 실습(11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황정희 씨는 8기생 15명과 함께 현장 실습으로 국악인 이선숙 씨의 별채를 지었다. 현재 이선숙 씨는 자신이 살던 흙집을 아토피성 피부염을 심하게 앓는 애들을 둔 제자에게 내어주고 별채에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 별채가 경주목수들이 지은 집보다 더 훌륭하다고 한다.
전통 공법에 현대 주택의 편리성 접목
황정희 씨는 15주 흙집 짓기 과정을 마친 후, 동기생인 김영석(29세), 손정목(41세), 김성열(51세) 씨와 금년 2월 23.4평 단층 일(一)자형 겹집을 짓기 시작했다. 황정희 씨는 학교 강의 관계로, 김성열 씨가 목수의 우두머리라 하는 도편수를 맡았다. 24개의 기둥과 130개의 서까래용 재목의 껍질을 벗기는 데 열흘, 그것을 다시 깎고 다듬는 데만 달포 걸렸다. 그후 주초를 놓고, 기둥에 보를 얹어 그 위에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까지는 삼 일 걸렸다.
“나는 학교 강의를 하면서도 재목의 껍질을 절반 벗겼고, 기둥과 들보가 연결되는 직각 부분에 끼워 넣는 48개의 보아지도 다 깎았어요. 여자지만 실습할 때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지요. 길이 7미터 되는 마룻대를 올려 끼워 맞추는 상량 때는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천장은 대나무로 외를 엮고 황토와 짚을 섞어 이긴 알매를 20센티미터 두께로 올린 후 황토미장을 했다. 또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우진각지붕에는 전통 토기와를 얹었다. 기단에서 하인방까지 높이가 40센티미터인데 맨 밑에서부터 참나무 숯을 30가마(평당 1가마 반) 깔고 소금, 황토, 마사토, 황토, 엑셀파이프, 황토, 맥반석 순으로 마감했다. 6센티미터 황토 미장 위에 신비의 돌이라 불리는 맥반석을 깐 이유는 열전도율이 황토의 2.5배라 난방 효과가 우수하고, 황토와 마찬가지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벽체는 두께가 20센티미터인데 인방과 인방 사이에 40센티미터 간격으로 힘살대를 박은 후, 대나무 외를 이중으로 엮어 그 사이에 짚과 황토를 이겨 채우고 황토 미장을 했다. 이러한 전통 방식에 따라 이 집은 3개월 만인 금년 4월 준공을 보았다.
평면은 편리성을 강조한 현대식이다. 작은 평수임에도 각 실을 적절히 구획해 온돌방 2, 구들방 1, 거실, 주방, 다용도실, 욕실, 현관, 부엌 겸 보일러실 등을 들였다.
“최소한 장작을 때는 구들방 하나와 서재, 안방은 필요했어요. 사실 방은 잠만 자는 공간이기에 작게 내고, 대신에 거실을 넓게 빼고 전면에 통유리 전망창을 내 실내를 밝게 꾸몄어요. 한편 기와집이다 보니 초가집과 달리 기단을 쌓고 집터를 높였어요. 나를 포함한 동기생 네 명이 3개월 만에 이 집을 지었다고 하자, 믿지 않더군요. 상량문에 집을 지은 사람들의 이름과 날짜를 기록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은 실명제네요.”
계곡하고 접한 본채 우측에는 5.8평의 목구조 전통 흙집으로 별채를 앉혔다. 자식들이 부모 눈치 안 보고 친구들과, 나중에 결혼을 해서는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쉬었다 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밟기까지 도움을 준 고마운 이들에게 보답하는 맘도 담겨 있다. 이사한 지 이제 한 달밖에 안 돼 집 안팎이 어수선하다는 황정희씨는 지금 마당 한쪽에 정자를 어떻게 놓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田
글 윤홍로 기자 / 사진 박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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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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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가평 단층 34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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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인 물질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 좋다는 김기흥·이순희 부부. 자신들의 삶을 찾아 금싸라기 땅을 버리고 과감하게 전원행을 결정했다. 집은 친환경적이고 습도 조절이 탁월한 단층 34평 목조주택으로 지었다. 외벽은 시멘트 하디 사이딩으로 마감하고, 박공지붕엔 아스팔트 이중 그림자 슁글을 얹었다. 실내는 거실을 중심으로 각 공간을 배치했는데, 현관 출입구와 거실, 안방, 다실(茶室)을 조망이 좋은 전면에 배치하고, 주방과 화장실, 방을 후면에 배치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중후하면서도 산뜻하고 따스한 느낌이 들도록 연출했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 가평군 하면 하판리
·부 지 면 적 : 500평
·건 축 면 적 : 34평
·건 축 구 조 : 2″×6″ 경량 목조주택
·외벽마감재 : 시멘트 하디 사이딩
·내벽마감재 : 루바 + 실크벽지
·지 붕 재 : 이중그림자 아스팔트 슁글
·바 닥 재 : 미국산 강화마루
·창 호 재 : 독일산 시스템창호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난 방 형 태 : 심야전기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시 공 기 간 : 2004년 9월~2004년 11월
·건 축 비 : 총 1억3600만 원(조경비 별도)
설계·시공 : 코람하우징(031-773-0587) www.ikoram.com
서울에서 승용차로 1시간 30분 남짓 달리면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잘 알려진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 닿는다. 그곳에서 하면 방면으로 10분쯤 달려 군부대 앞을 지나면 반딧불유원지 이정표가 나오는데, 그것을 따라 2∼3분 정도 산길로 들어서면 조그마한 마을을 지나 ‘보리울’이란 정자가 나온다. 그 정자 우측 편, 숲이 울창한 산중턱에 눈에 띄는 전원주택이 있다. 김기흥(50세)·이순희(49세) 부부가 새롭게 마련한 보금자리다.
건축주 부부는 전원으로 이주를 결심하고 살던 아파트를 공인중개사무소에 내놓자, 주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렸다고 한다.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데 왜 굳이 금싸라기 땅의 아파트를 팔면서까지 전원으로 가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주 부부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전원으로 가야 집과 정원, 텃밭을 가꿀 수 있고, 마을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주위 사람들은 우리가 돈이 많은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당시 가진 건 아파트가 전부였고, 아파트를 팔아서 전원주택을 지으려 한 것입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은 그만큼 답답한 도시보다도 전원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를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내놓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매매 계약은 성사됐고, 그후 1개월도 안 돼 아파트 시세는 1억 원이나 올랐다고 한다. 그러자 친척들은 하나같이 아파트 매매 계약을 해지하고 전원행을 포기하라며 매달렸다. 그러나 건축주 부부의 마음은 이미 전원에 가 있었다.
금싸라기 아파트를 버리고 전원으로
부지는 3년 전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에 전(田) 500평을 평당 14만 원에 구입해 놓았다. 건축주의 소싯적 친구가 이곳에서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어서, 10여 년 전부터 내 집 드나들 듯했다고.
“이곳에서 출퇴근을 할 정도였습니다. 자연환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공장이나 축사가 없어 깨끗하고, 또 서울에서 멀지 않으면서 일단 들어오면 먼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여기에다 전원주택을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는데, 어느 날 남편의 친구로부터 땅을 팔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와서 곧장 구입해 놓았습니다.”
전원주택 부지를 마련해 놓고, 건축주 부부는 늘 전원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매일 밤 초가집이며 기와집 등을 머릿속으로 한두 채씩 지으며 잠을 이뤘다. 당장이라도 전원주택을 짓고 싶었지만, 당시 스무 살이었던 아들과 한 약속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단다.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서울에서 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군대에 입대를 하자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순희 씨.
“하루라도 빨리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더라고요. 아들과 한 약속이 맘에 걸리긴 했지만, 군에 가고 없을 때 사고를 치기로 했습니다.”
건축주 부부는 2003년 8월 아파트를 팔고, 전원주택을 짓기로 했다. 건축 구조는 친환경적이고 습도 조절이 잘 되는 목조주택으로 짓기로 하고, 시공사는 건축주의 초등학교 동창의 남편이 운영하는 코람하우징에 맡기기로 했다.
건축주 부부는 시공사 측에, 거실 천장은 높게 하고, 주방은 여러 명이 일을 하도록 넓게 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화장실은 밝게 하고 욕조는 큰 것으로 넣어 달라고 주문했고, 시공사는 건축주 부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공사는 2004년 4월 첫 삽을 뜨기 시작했다. 100년도 거뜬히 버티는 목조주택이 제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초부터 튼튼하게 쌓아나갔다. 토목공사만 3개월 정도 걸렸고, 본격적인 건축공사는 6월부터 시작, 그해 11월 완공과 동시에 입주했다. 조경과 마무리 공사는 입주한 후에 완료했다.
풍광 좋은 곳에 지은 집
집은 단층이지만 박공지붕의 경사가 각기 다른데다 꺾인 면이 많아 입면이 아름답다. 집의 전면으로는 시야가 확 트여 조망이 시원스럽고, 후면과 좌우면으로는 잣나무 숲이 울창한 산이 집을 감싸고 있어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느낌이다.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해 집의 좌향을 북서로 앉히고, 출입구는 서쪽에 냈으며, 실내로 들어가는 현관문은 북쪽에 설치했다. 남동쪽으로는 울창한 숲이 가로막고 있어서 일조량이 풍부하지는 않은 편인데, 건축주 부부는 오히려 늦봄까지 눈을 밟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집의 외벽은 시멘트 하디 사이딩으로 마감하고, 박공지붕엔 아스팔트 이중 그림자 슁글을 얹었다.
실내의 평면 배치는, 거실을 중심으로 각 공간을 배치했는데, 현관 출입구와 거실, 부부침실, 다실을 조망이 좋은 전면에 배치하고, 주방과 화장실, 방을 후면에 배치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중후하면서도 산뜻하고 따스한 느낌이 들도록 연출했다.
거실은 지붕의 박공 라인을 그대로 살려 천장고를 높이고, 전면창을 크게 설치해 외부의 자연환경을 집 안에서도 충분히 감상하도록 했다. 천장은 루바로, 벽은 실크벽지로 마감했는데, 벽 중간 부분에 유리타일로 선을 넣어 포인트를 주었다. 이 선은 주방으로 갈수록 진한 색을 넣어 거실과 주방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거실의 바닥은 대청마루 색의 강화마루를 깔아 중후한 느낌이 들지만, 거실에서 이어지는 주방은 화이트 톤으로 가볍고 산뜻하게 연출했다. 주방은 주부의 활동이 자유롭도록 넓게 구성하고, 다용도실과 세탁실을 별도로 갖춰 활용도를 높였다.
내부 공간에서 이순희 씨가 각별하게 신경을 쓴 부분은 다실이다. 이곳은 세속과 단절된 공간이면서 이순희 씨 자신만의 공간으로, 차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즐기도록 창을 여러 개 냈다. 천장과 벽면은 루바로 마감하고, 바닥엔 돌을 깔았다.
부부침실에는 욕실과 파우더-룸을 별도로 갖춰 독립된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했고, 거실에서 다실로 이어지는 복도 천장에는 수납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락방을 설치했다.
동화 속 세상? 바로 여기가 아닌가
건축주 부부는 이곳의 풍취에 푹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가올 계절마다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고.
“10여 년 전부터 이곳의 사계를 봐왔지만, 이곳에 직접 살면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더군요. 겨울 설경은 어릴 적 크리스마스카드에서나 보는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되고, 봄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말 그대로 봄의 향연이었다고나 할까요. 또 옹달샘에서 노루가 목을 축이는 광경이나 버섯을 먹느라 사람이 다가가도 모르는 토끼를 보고 있자면 꼭 동화 속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듭니다. 또 서울에서 살 때는 개미나 바퀴벌레 같은 벌레를 보면 다 죽였는데, 여기서는 거미나 개미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 그냥 밖으로 풀어주게 되더라고요.”
또 건축주 부부는 초보 전원생활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얼음꽃, 우산나물, 윤판나물, 연산홍, 단풍, 은방울꽃, 은초대란, 자란, 한라산 국화, 난장이 붓꽃, 홀아비꽃대, 둥글레, 구절초, 층층나무 등 30여종의 야생화로 정원을 가꾸고, 온갖 야채를 심은 텃밭과 표고버섯을 재배하느라 구슬땀을 흘리지만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앞으로 유기농 야채를 보다 많이 재배해서 도회지에 사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줄 것이라고....田
글·사진 박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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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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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실의 독립성과 기능 강화한 용인 58평 복층 RC + 목조 혼합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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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진술·장희숙 부부는 2003년 실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성남시와 마주하는 용인시 고기동에 연면적 58평으로 2층 RC + 목조 혼합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이 집은 아래층은 호주산 붉은 벽돌로, 위층은 비둘기 색 드라이비트로 마감을 하고, 그 경계에 곤색 띠장을 둘러 벽체의 단조로움을 피했다. ‘ㄱ’자형 구조에 현관부와 좌측 단층 건물부를 돌출시켜 리드미컬한 입면을 연출했다. 거실은 낮은 천장고의 답답함을 상쇄하기 위해 삼면에 전면창과 측면창을 내고, 이미테이션 서까래와 밝은 색 실크벽지로 산뜻하게 연출했다.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용인시 고기동
·부 지 면 적 : 200평
·대 지 면 적 : 200평
·건 축 면 적 : 31평
·연 면 적 : 58평(1층 31평, 2층 17평, 지하 10평)
·건 축 형 태 : 1층 철근 콘크리트조, 2층 목조주택 (외벽 2″×6″, 내벽 2″×4″)
·외벽마감재 : 1층 호주산 벽돌, 2층 드라이비트
·내벽마감재 : 실크벽지
·지 붕 재 : 사각 아스팔트 슁글
·천 장 재 : 실크벽지
·바 닥 재 : 온돌마루
·창 호 재 : 시스템 창호
·난 방 형 태 : LPG
·식 수 공 급 : 지하수
·시 공 기 간 : 4개월
·건 축 비 : 총 1억 4천만 원(평당 400만 원)
■ 설계·시공 : 신영 하이랜드 건설(02-592-0494) http://cafe.daum.net/greenhousing
청계산과 바라산, 백운산, 광교산을 잇는 완만한 능선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고기동.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데다 분당신도시 인접지이고 특히 서울권까지 30분대에 닿을 수 있어 전원주택 수요층이 많은 지역이다.
성남시 분당구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진술(53세)·장희숙(46세) 부부는 2003년 겨울 실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성남시와 마주하고 있는 이곳에 연면적 58평인 2층 RC +목조 혼합주택을 짓고 전원으로 이주했다. 유년시절 뛰놀던 동산의 흙 냄새와 풀 냄새, 개구리 울음소리를 그리워하며 서울 살이 내내 등산과 여행으로 공허한 마음을 달랬던 건축주 부부의 전원생활에 대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전원으로 내려가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것 같아요.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시골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누구나 전원에서의 추억 한 가지쯤은 갖고 있죠. 이는 막연한 동경이기보다는 추억이 깃든 소망이입니다. 시골 태생의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전원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심으로 일군 전원의 삶과 꿈
사업체가 위치한 분당과도, 두 딸아이가 다니는 서울의 학교와도 가까운 용인시 고기동은 부부가 찾던 전원 속 바로 그 땅이었다. 부지가 구릉 위에 자리잡아 전망도 뛰어난 데다 지척에 등산로와 계곡, 낚시터 등이 위치해 있어 훗날 일손을 놓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부부는 한 단지개발업자가 분양한 대지 200평을 평당 200∼300만 원에 매입했다. 설계와 시공은 수년 전 전원주택 박람회에서 인연을 맺었던 신영 하이랜드 건설의 최길찬 소장에게 맡겼다. 애초 명함만 주고받은 사이였다가 전원주택 시공 문의 차 몇 차례 만남을 가진 후 ‘가식 없고, 항상 연구하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최 소장의 듬직한 태도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믿고 맡겼기에 설계에 있어 별다른 요구 사항은 없었어요. 단지 1층 공간을 복잡하지 않게 구획해 달라고 주문했죠. 건폐율 20퍼센트에 공유면적 12평까지 제외하고 나면 방 3개를 앉힐 공간이 많이 모자라겠다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의 취향에 맞게 또 각 실의 특성에 맞게 잘 구획된 것 같아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각 실의 기능과 독립성 살려
철근 콘크리트조(1층)와 목조(2층)의 혼합형 주택인 이 집은 밖에서 볼 때 아래층은 호주산 붉은 벽돌로, 위층은 비둘기 색 드라이비트로 마감을 하고, 경계 부분에는 곤색 띠장을 둘러 벽체의 단조로움을 피했다. 건물 전체로는 ‘ㄱ’자형의 구조를 취하고 있으나 현관부와 좌측 단층 건물부가 외부로 살짝 돌출돼 전후좌우 어느 방향에서 보나 변화무쌍한 입면을 즐길 수 있다.
‘ㄱ’자의 우측 꺾임 부분에 해당하는 거실부는 2층에서 흘러내린 박공라인을 물매 그대로 받아 안고 길게 뻗어나와 주변 환경에 한껏 몰입된 형상이다. 덱은 전면보다는 후면을 넓게 뺐다. 구릉에 일부 시야가 가려진 전면은 자연 풍광을 즐기기보다 아늑한 정원생활이 가능하게끔 마당을 넓게 잡고, 대신 벼랑 쪽인 후면에는 덱을 넓게 빼고 티-테이블을 놓아 눈앞에 펼쳐진 유려한 산세를 편안하게 조망하게끔 했다.
내부의 각 실은 복도를 중심으로 삼면에 걸쳐 독립적으로 앉혔다. 거실과 부부의 안방은 복도 좌우의 맨 끝 쪽에, 부엌 및 식당은 전면에 각각 배치하고, 부엌과 복도 사이에는 무늬목 가벽을 설치해 현관 쪽에서의 시선을 차단했다.
거실은 천장의 물매를 이용한 이미테이션 서까래와 밝은 색 실크벽지로 산뜻하게 연출하고, 마당 깊숙이 돌출된 삼면에다 전면창과 측면창을 달아 낮은 천장고의 답답함을 상쇄시켰다. 아일랜드 시스템을 적용한 부엌은 완성된 음식을 놓는 픽업카운터를 통해 식당과 공간적으로 분리했다.
2층은 두 딸아이의 전용공간으로 꾸몄다. 거실과 공부방, 침실, 화장실로 이뤄져 있는데 이중 침실은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한쪽 벽면을 코발트 빛 실크벽지로 마감했다. 2층 거실은 난간을 스틸로 처리하고 덩굴식물을 심어놓아 1층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야외 발코니인 듯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액자 구실을 하는 작은 창들이 전후좌우 벽면을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칼로 잰 듯 빈틈없이 구획돼 있는 공간의 딱딱한 느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연 풍광이 잘 들어오는 위치마다 창을 내어 실내에서도 전원의 조망이 가능하게끔 했다.
창 아래에는 실내 원예가 취미인 이진술 씨가 가꿔놓은 화초 화분들이 진열돼 있어 집 안팎으로 초록의 싱그러움이 넘실댄다.
행복으로 가는 길목에서
“대학에 다니는 큰딸아이와 고 1인 작은딸아이가 학업을 이유로 서울에서 머무는 날이 많아 이를 챙겨주러 아내가 곧잘 집을 비우곤 합니다. 그래서 혼자 적적함을 느낄 때마다 화분에 화초를 가꾸고 정원과 텃밭을 돌보았죠. 집은 사람 손길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데 집 안 가득한 화초들과 텃밭의 싱싱한 야채들은 어릴 적 고향집에 온 듯한 푸근함과 넉넉함을 선사합니다. 전원생활의 맛이 별 게 있습니까? 내 손으로 가꾼 푸성귀를 식탁에 올리고, 내가 키운 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게 바로 전원생활의 참 맛이죠.”
건축주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창문을 열 때마다 가슴이 떨려온다고 한다. 열린 창으로 밀려오는 이른 새벽의 맑은 공기는 마치 한여름에 찬물로 샤워를 하는 듯 짜릿한 청량감과 상쾌함을 안겨준다고. 애완견인 알래스칸 마라뮤트(Alaskan Malamute)와 진도개를 마당에서 키우고, 지인에게 선물 받은 진공관 앰프로 풍성한 음량의 세미클래식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도시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꿨을 일이다.
부부는 지금의 삶에 대해 일종의 ‘과도기’라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 온 전원생활이지만 현재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가족 모두가 한데 모여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부부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세 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부부는 이러한 상황을 한탄하기보다는 짬날 때마다 부지런히 몸을 놀려 집을 가꾸고 정원을 돌보고 주변의 이웃들과 인연을 맺으며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전원생활의 행복이란 어느 날 갑자기 손에 쥐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쏟아 꾸준히 만들어가는 ‘과정’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이들 부부는 이미 오래 전에 깨달은 듯하다. 田
글 송희정 기자 /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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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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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 짓는 목수 이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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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계곡에 우짖는 새는 그가 있어 행복하다
새집 짓는 목수 이대우
사람에게는 저마다 독특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눈으로, 귀로,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강원도 평창 흥정계곡에서 책 읽고 음악 듣고 산보를 즐기며 사는 이대우(62세) 씨에게서는 비 온 뒤 숲에서 피어오르는 그윽한 나무 냄새가 난다. 새 연필을 깎을 때, 돌돌 말린 대팻밥을 갖고 놀 때 코끝으로 스며들던 바로 그 향긋함이다. 숲과 나무를 너무 좋아해서 결국엔 그것을 닮아버린 사람. 강원도의 깊은 계곡에서 추위와 비바람에 단련된 나뭇가지를 구해 산새들의 집을 만들어 주는 그는 나무 향이 깊게 밴 목수의 손을 지니고 있다.
강원도의 하늘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낮게 드리운 먹장구름은 금세 툭하고 터져 봄의 끝자락에 붙어 있는 마지막 물기를 모두 쏟아 부을 것만 같다. “이웃마을서 막걸리 한 잔 하고 있을 테니 기자 양반들은 천천히 오슈.” 비로 인해 당일 촬영이 무산될까 노심초사하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느긋하고 한가롭기만 하다.
새의 둥지를 품은 나무 집
강원도 평창군 봉평읍 흥정리 허브나라 농원 안에 위치한 그의 집. 농원 식구들 사이에 ‘이대우’라는 이름보다 ‘새집 짓는 목수’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산골 집은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단박에 알아볼 정도로 그 모양새가 아주 목수답다. 세월의 때가 묻은 고색창연한 목조주택 덱 난간 위에 가지런히 놓인 각양각색의 새집들. 포로롱- 포로롱.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조막만한 산새들만이 출타한 주인을 대신해 반가이 객을 맞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분 좋게 불콰해진 얼굴의 이대우 씨가 부인 서경옥(59세) 씨와 함께 나타났다.
“늦어서 어쩌나. 막걸리 잔치가 벌어졌는데 그냥 올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기자들을 집 안까지 들이는 건 오늘이 처음이거든. 취재 왔다 생각지 말고 놀러왔다 생각하고 편히 쉬었다 가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코끝을 에워싸는 싱그러운 나무 냄새. 어둠에 눈이 익어 어렴풋이 실내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짧은 탄성이 새어나온다. 바닥과 선반 그리고 식탁 위, 시선 닿는 곳마다 빼곡히 진열돼 있는 새집들. 새의 둥지를 품고 있는 부부의 나무집은 흡사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새집처럼 느껴진다.
“이게 다 작품이거든. 한 개라도 같은 모양이 없어요. 이것은 성당, 저것은 크리스마스트리, 그 옆에 건 원두막…. -뒤란을 가리키며- 저기 새소리 들리죠. 내가 만든 새집인데 곤줄박이 가족이 살거든. 며칠 전 새끼를 부화했지. 그새 우리 집 식구가 또 하나 늘었지 뭐야. 얼마나 신기하고 예쁜지 몰라.”
여리고 작은 것들의 안식처
부부가 이곳 허브나라 농원 안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건 8년 전부터다.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 없을 정도로 여행을 즐겼던 부부는 산행 차 들렀던 봉평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돼 당시 개장 3년째인 허브나라 농원 안에 29평짜리 목조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경기고와 서울법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고 민간통신사 기자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 등을 거치며 30년 세월을 숨 가쁘게 달려왔던 이대우 씨. 하지만 그에게도 집안의 기대에 떠밀려 묻어 두고 살 수밖에 없었던 예인(藝人)의 끼가 있었으니 바로 화가의 꿈이었다.
“중·고교 때 그림을 곧잘 그렸지. 그 길로 가고 싶었는데 법관이신 아버지가 넌 법대 가라 하시더군. 꼼짝 못했지. 늘 그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았는데 여기 내려와서야 그 꿈을 이뤘네. -새집 설계 노트를 보여주며 - 이게 내 창작집이거든. 목공일 하는데 그림 그리는 재주가 한몫 했지.”
처음부터 새집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산골짝서 소일거리를 찾다 연장을 만지게 됐고, 뚝딱뚝딱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지다 보니 살림살이도 곧잘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주변 숲에서 쉼 없이 날아오르며 우짖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숲에서는 어린 새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일이 많아. 남들은 자연의 법칙이라 하겠지만 나 보기에는 참 안됐거든. 약자는 보호해야지.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게 새집이야. 새의 배설물에 섞인 소화 안 된 씨앗은 훗날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나니 숲을 살찌우는 데 새만큼 이로운 동물도 없다싶어.”
일주일에 닷새, 하루 7∼8시간씩 꼬박 매달려 만들어 왔다는 새집들. 그 개수만도 만만치 않아 숲에 매달고 이웃에 나눠주고도 남아서 지난해 이맘때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올해는 인근의 한 폐교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꼬맹이들에게 잠깐 선보일 요량이었는데 반응이 꽤 좋아 얼마간 거기에 모셔두기도 했단다.
새가 사는 집의 근본
겉보기에 앙증맞고 귀엽게만 보이는 새집이지만 완성하기까지 그가 들이는 노력과 정성은 실로 대단하다. 부부는 짬이 날 때마다 강원도의 깊은 계곡을 훑고 다니며 수년 동안 추위와 비바람에 단련이 된 나뭇가지들을 줍는다. 새가 기대고 살 둥지이기에 모든 기후 조건에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재료여야 했다. 장방형의 새집 골격을 짜는 데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임학을 전공한 동생에게 도움을 받는 한편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모든 이치를 스스로 터득했다. 그는 목공일이 숙련된 요즘도 1층 작업실에서 일하는 동안은 새집 만드는 일에 온 정신을 쏟는다. 그의 몰두가 얼마나 심한지 이웃이 오가며 안부를 물어도 들은 체 만 체 한다고 해서 지어진 그의 별명이 일명 ‘퉁명스런 목수’다.
그가 만드는 새집은 살림집과 먹이집 두 종류다. 사람들은 보통 새들이 일년 열두 달 새집에 머문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가 성장할 때까지 2개월 정도 의탁하는 게 다란다. 직경 3센티미터의 구멍이 난 살림집이 그 용도다. 이것과는 별도로 2면 이상 트인 것은 먹이집이다. 그는 겨울철이면 인근 정육점서 쇠기름을 얻어다가 새벽부터 숲을 헤집고 다니며 먹이집에 쇠기름을 놓아둔다. 아내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데 행복함을 느끼곤 한단다.
“서양 사람들은 집 지을 때 새집도 같이 달거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아하는 동물 1위로 새를 꼽으면서 정작 새들의 삶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어. 나무 심고 덤불 만들고 새 먹이 챙겨주면 새들은 자연스레 날아오는 법이거든. 새가 날아오지 않는 땅에는 결국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나 몰라.”
길손들의 사랑방
새가 날아드는 집에는 사람도 깃드는 법이다. 부부의 나무 집은 오래 전부터 흥정계곡을 찾은 길손들의 사랑방 구실을 해왔다. 흥정계곡이 지금처럼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때 이곳을 찾아왔다 마땅한 숙소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여행객들은 부부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의탁하곤 했다. 그 때 만나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을 회상하던 부부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로도 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고 말한다.
부부의 소망은 크지 않다. 음악 듣고 책 읽고 산보하고 새집 만드는 게 삶의 낙인 서로의 취미를 살려 앞으로도 자연의 속살에 기대 조용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게 그들의 바람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흥정계곡의 청정자연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어야 하지만 근래 들어선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들어와 살 때만 해도 이곳은 청정지역이자 오지였지. 한데 유명세를 타면서 이곳도 많이 변했어. 사람 피해서 살러 왔는데 사람에 치여서 살고 있는 형국이거든. 솔직히 더 골짝으로 가고 싶은 맘도 굴뚝같지만 이제 우리나라에 진짜 오지라고 할 만한 땅이 있나 싶어. 씁쓸할 따름이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 속도를 늦추고자 애쓰는 부부의 이야기는 어둠이 사위를 둘러쌀 때까지 오래도록 계속됐다. ‘봉평에 들를 일 있으면 잊지 말고 꼭 찾아와 술 한 잔 하고 가라’는 부부를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는 길,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 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크고 작은 주름살로 혹은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로 고스란히 얼굴에 남기 마련이다. 새집을 짓고 사는 목수 부부의 얼굴. 누군가의 가슴속에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들은 분명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일게다. 田
새집관련문의 (033-336-5897, 011-9140-2090)
글 송희정 기자 /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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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