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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형 전원주택, 경기도 안성 32평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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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 사람과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면서 일상생활의 편의를 위해 언제든 도심으로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에서요.”
경기도 안성시 당왕동에 자리한 실버형 스틸하우스. 이곳에는 세 가족이 생활하고 있다. 건축주(73세)와 그의 아내(70세) 그리고 셋째아들(40세)이다. 이곳은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한적하여 세 가족이 생활하기에 여유로운 공간이다.
건축주는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 왔고 정년 퇴임한 지 꽤 오래됐다. 전원에서 텃밭을 일구며 조용하게 살고픈 맘에 이곳에 전원주택을 지었다고 한다. 안주인은 안성시 도심에서 양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소일거리 삼아 하고 있는 셈이다.
건축주의 셋째아들은 뇌성마비 장애가 있다. 셋째아들 얘기에 건축주는 금새 눈물을 터뜨릴 기색이다. 셋째아들이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버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한다. 덕분에 가족 모두 생활력이 강해졌다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 장애인이 살기에는 인식론적으로나 편의시설 면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그렇게 넉넉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건축주는 걱정이 태산 같다.
도심을 굽어보는 실버형 전원주택
38번 국도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 위에 홀로 우뚝 선 이 집은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어 전원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주위에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 멀리 있는 산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조망이 시원스럽다.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침목을 깔아 친근감이 들고, 제법 굵직굵직한 소나무들이 그럴싸한 자연정원에 수를 놓았다.
총 1000여 평인 부지는 대지가 300평이고 이 중 건평 32평을 제외하고 정원, 텃밭, 창고용 방갈로, 주차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집은 2004년 2월 착공하여 4월 말 완공했고, 건축주는 5월 14일 입주했다. 총 건축비는 1억6000만 원, 평당 290만 원 정도가 소요된 셈이다.
애초에 지난해 7월 전원주택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건축 인·허가 문제로 인해 예정보다 6개월 정도 늦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원래 임야에 맹지(길이 없는 도로)였다. 건축법상 허가가 날 수 없는 땅인 것이다. 건축주는 100여 년 동안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이 땅에 전원주택을 짓기를 원했고, 건축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사비용을 들여 길을 냈다고 한다.
이 집의 겉모양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외벽은 흰색의 드라이비트와 연한 하늘색 비닐사이딩으로 그리고 지붕은 아스팔트 이중그림자 슁글로 마감했다. 집 정면에서부터 우측면까지 덱(Deck)을 넓게 설치했는데 정면 덱은 거실과 연결되고, 우측 덱은 주방과 연결시켜 놓았다.
덱 위에는 파라솔이 꽂혀 있는 목재 테이블을 얹었는데 그 모양새가 전원주택과 맞물려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간활용을 효율적으로
32평 단층 거실, 방(4), 주방, 욕실, 다용도실로 구성된 이 집은 세 식구가 살기엔 여유롭다. 현관을 뒤쪽으로 설치하고 방을 앞쪽에 배치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남향을 고려하여 각 방마다 조망권을 확보하도록 하고 빛의 유입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배려 차원이다. 뒤쪽으로는 현관과 주방, 욕실, 다용도실을 두어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시켰다.
거주자들의 이동이 편리하도록 실내에 문턱을 설치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고, 효율적인 공간활용을 위해 각 방마다 붙박이장을 설치했다. 사적 공간인 방을 분리시키지 않았고 또 방을 여러 개 구성한 것을 볼 때, 이 집은 실버형 전원주택으로 지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거실이 들어오는데 전면창으로 화사한 햇살이 들이치고 앞으로는 전답과 산이 펼쳐져 있어 조망이 시원스럽다. 이러한 조망과 햇살은 각 방의 창을 통해서도 맘껏 누릴 수 있다.
창호는 미국식 시스템창호로 설치했다. 바닥은 목재 무늬가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강화마루로 천장과 벽은 석고보드와 실크벽지로 깔끔하게 마감했다.
건축주는 대부분의 시간을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데 보낸다. 정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들을 심을 계획이고, 300평이나 되는 텃밭에는 고추, 땅콩, 검은콩, 파 등을 심어놓았다.
텃밭이 워낙 넓다 보니 한쪽에서 풀을 뽑기 시작하여 다 뽑고 나면 처음 풀 뽑기를 시작했던 곳에선 또다시 잡초가 한 움큼씩 자라 있다고 한다.
이곳의 부지 중 일부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사용하고 있다. 건축주가 어린이들의 농촌체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라는 넉넉한 마음에서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어린이들은 그곳에 고구마와 감자 등을 심어 놓고 물을 주고 풀을 뽑으며 손수 농작물을 길러 본다
.
건축주는 앞으로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그저 조용하고 묵묵하게 살아갈 것이란다. 田
■ 글 박창배 기자 / 사진 윤홍로 기자
■ 시공사 인터뷰
- 이 집의 특징을 설명한다면
먼저 이 집은 자연 그대로의 조경을 이용하여 전원주택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입구(현관)를 뒤쪽으로 배치하여 가장 좋은 공간을 출입구로 뺏기지 않도록 공간 배치에 신경을 썼습니다. 또 가족구성원들이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문턱을 없앴고, 효율적인 공간활용을 위해 각 방마다 붙박이장을 설치했습니다.
- 시공 중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사실 건축은 작년 7월부터 하기로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건축허가 문제 때문에 시공에 차질이 좀 있었습니다. 다른 공사도 해야 하는데 건축허가는 나지 않고 해서 시기를 맞추느라 마음고생을 해야 했지만, 별 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안성시 당왕동
·건축구조 : 스틸하우스
·건축평수 : 32평(연면적)
·대지면적 : 300평
·내부마감 : 석고보드+실크벽지
·지붕마감 : 이중그림자 아스팔트 슁글
·외부마감 : 드라이비트 + 비닐사이딩
·창 호 재 : 시스템 창호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난방시설 : 기름보일러
·바닥마감 : 강화마루
·건 축 비 : 총 1억6000만 원(평당 290만 원)
·시공기간 : 2004년 2월~4월
■ 설계·시공 : 경기스틸(031)294-4704, www.steelhouse.biz
건축비용
·기초/토목/정화조공사 2000만 원
·스틸스터드골조공사 2000만 원
·수 장 공 사 1500만 원
·외 장 공 사 1300만 원
·창호/도어 공 사 1500만 원
·내 부 공 사 2000만 원
·기 타 공 사 1300만 원
·조경 및 부대공사 4400만 원
·합 계 1억6000만 원
(평당 29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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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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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면서도 넓은 공간 김포 33평 2층 통나무·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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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 어귀에 들어서면 10여 채의 농촌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집이 있다. 길게 늘어뜨린 처마와 집을 휘어 감고 있는 듯 설치된 덱(Deck), 그 위에 가지런하게 자리하고 있는 수공예 나무탁자. 외관에서도 전원주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건축주 정인성 씨(48세)의 세 가족이 생활하는 터전으로 들어가 본다.전원의 운치를 담아낸 집"이 집은 통나무와 목조를 혼용한 콤비네이션 형식의 주택입니다. 즉 기둥과 보는 통나무를 사용했고, 벽체는 2″×6″ 경량목재를 사용한 것입니다."푸른나이테 정희성 사장은 하자 발생을 최소화시키고 집이 무게가 있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통나무와 목조를 혼용했다고 설명한다.정 사장은 건축주의 친동생이다. 몇 개월 전 이 집의 바로 뒤편에 건축주의 동생이자 정 사장의 친누이 정춘옥(42세) 씨의 집도 같은 방식으로 지었다. 인근에 똑같은 형식으로 전원주택 한 채를 더 지을 거라고 한다. 가족 단위의 전원주택촌을 만들겠다는 것이다.이 집의 특징은 통나무의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크렉 유도선을 팠다는 점과 기둥을 외부로 많이 빼내어 처마를 길게 돌출시켰다는 점이다.길게 늘어진 처마는 집 주의를 감싸안은 덱을 덮어씌운다. 비나 눈이 와도 덱 공간을 활용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 처마를 받치고 있는 통나무 기둥과 보는 육중해 보이면서 전원주택의 운치를 풍겨내는 데 손색이 없어 보인다.시멘트사이딩과 인조석으로 외벽을 마감, 깔끔하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지붕에는 아스팔트 슁글을 얹었다.아담하면서 넓은 공간 활용이 집의 건축면적은 1층(22평)과 2층(10평)을 합쳐 모두 32평이다. 실내는 아담하면서도 공간을 넓게 활용하도록 꾸몄다.우선 모든 가족의 공동 생활공간으로 꾸민 1층의 경우는 2층까지 시원하게 오픈시켜 놓았다. 그리고 1층은 부부와 가족생활 공간으로 그리고 2층은 아이들과 손님용 공간으로의 활용성을 염두에 두고 독립성과 연결성이 적절하게 조화되도록 했다.현관에 들어서면 좌측이 거실이고 우측으로 주방과 욕실, 부부침실을 두었다. 공용공간으로 활용되는 거실 부분은 천장을 하이실링으로 처리하였고 전면창을 내어 빛의 유입을 크게 하였다.애초에 거실에 벽난로를 설치하려 했으나 공간을 넓게 빼기 위해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벽은 인조석으로, 천장은 루바(더글라스퍼)로 마감하였다. 거실 창을 열고 나가면 덱과 연결되는데, 그 앞으로 전원풍경이 시야에 시원스럽게 들어온다.주방도 비교적 넓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주방 옆으로 덱하고 연결되는 세탁실을 설치함으로써 주부의 활동 반경에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ㄱ'자 형으로(요즘 2층 계단을 보통 'ㄷ'자 형으로 많이 한다. 이 경우 불필요한 공간이 많이 생긴다. 따라서 이 집의 경우 불필요한 공간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ㄱ'자 형으로 한 것이다.) 설치하였고, 계단 밑 공간은 다용도실로 활용하도록 했다. 2층 공간은 아이와 손님을 위한 공간으로 방을 계단을 통해 구분, 적당한 거리를 유지시켜 놓았으며, 별도의 욕실을 갖춰 독립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감수성 예민한 중학교 2학년의 현지를 위한 공간으로 2층에도 발코니를 설치했다.특히 2층은 천장의 높이를 낮게 하였는데 안정감이 들도록 하기 위함이고, 천창을 내어 채광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대들보, 중도리는 인테리어용으로 그대로 노출시켰다.가족과 함께 하기 위한 전원의 삶건축주 정 씨 가족은 이곳에서 생활한 지 불과 2개월도 채 안 된다. 2003년 12월부터 이 집을 짓기 시작하여 2004년 3월 완공했고, 지난 4월에 입주한 것이다.정 씨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서다. 그동안 정 씨는 틈나는 대로 이곳에 종종 와서 농사일을 돕곤 했지만, 어느덧 70세가 훌쩍 넘어버린 노부모 옆에 누군가 항상 있어야 한다는 게 가족 모두의 생각이었다. 때 맞춰 정 씨는 17년 6개월 동안 무사고로 버스운전을 한 덕분으로 정부로부터 개인택시를 발급,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이 고향인 정 씨는 그동안 강화읍에서 생활하면서도 주소지를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택시 면허가 이곳 주소지로 나왔다. 이 참에 노부모가 살고 있는 바로 옆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170여 평의 부지에 전원주택을 짓고 이주해 온 것이다. 여러 모로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정 씨는 이곳 나무집에서 생활하면서 몸이 달라진 걸 느낀다고 한다."나무집에서 생활하니까 너무 좋네요. 특히 콘크리트 집에서 생활할 때는 몰랐는데, 자고 일어날 때 몸이 가뿐한 것을 느껴요. 가족들도 모두 좋아하고, 주위 사람들도 다들 부러워하고 있어요." 田■ 글 박창배 기자 / 사진 조영옥 기자■ 시공사 인터뷰"나무를 다루는 게 너무 좋아서 목조주택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다른 주택보다 통나무집은 특히, 까다롭고 구조변경이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푸른나이테 정희성 사장(40세). 경력 10년의 목조주택 시공전문가인 그는 나무를 만지고 가공하는 게 좋고 적성에 맞아서 이 분야에 오게 됐다고 한다. 최근 통나무주택의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열기가 한풀 꺾인 것에 대해 정 사장은 그 당시 시공업체나 건축주들이 충분한 이해 기반 없이 집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통나무주택의 근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기술 성숙도가 높지 않은 데다 건축주들 역시 사후 관리에 대해 충분한 이해 없이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 모든 주택이 사후 관리가 중요하지만 통나무주택은 더욱 더 건축주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정 사장은 강조한다. 다음은 정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 집의 특징을 설명한다면사실 1, 2층 합쳐서 32평은 큰 평수가 아니다. 그래서 손님 많이 찾아와도 공간이 협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거실을 넓게 했고, 그리고 통나무와 목조를 적절하게 이용해 집을 지었다는 점이다.- 목조주택을 지을 때 주의할 사항은목조주택의 경우 환기가 잘 되도록 해야 한다. 결로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결로 현상이 생기면 목재는 쉽게 썩는다. 이 집의 벤트 시설은 처마 밑에 설치했다.-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집을 지어주고 나중에 집 주인을 만나게 됐을 때 만족하며 사는 것을 볼 때 가장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처음에는 잘 모른다.■ 건축정보·위 치 : 김포시 통진읍 옹정1리 215번지·건축구조 : 기둥 & 보 2층 통나무 목조주택 ·건축면적 : 33.61평(1층 23.91평, 2층 9.7평) ·실내구조 : 1층-거실, 부부침실, 주방 겸 식당, 욕실2층-아이방, 손님방, 욕실 ·내부마감 : 거실(석고보드+실크벽지), 천정(루바) ·지붕마감 : 아스팔트슁글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난방시설 : 기름보일러 ·바닥마감 : 온돌마루·식수공급 : 지하수 ·건 축 비 : 평당 290만원■ 설계·시공 : 푸른나이테 031)902-3123, www.greenannualr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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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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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희망의 결정체 제천 황토주택 ‘견우와 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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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너울 이윤복 씨의 소식을 접하면서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막연한 호기심이나 부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대체 얼마나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기에 혼자의 힘으로 두 동의 집을 지었을까. 그토록 전원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6월 6일 일요일 이른 아침, 청량리발 강릉행 기차에 올랐다. 너울 이윤복 씨가 살고 있는 충북 제천으로 가기 위함이다. 제천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너울을 만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 올랐다. 역 앞으로 나오자 얼핏 봐도 바로 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검은 선글라스에 개량한복, 흰 고무신을 신고 있는 사람. 언밸런스 한 복장이지만 그에게는 왠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남제천 나들목에서 3분 거리로, 지명도 아름다운 ‘진리’. 그곳에 그의 집은 한 폭의 그림처럼 자연의 여백을 채우고 있었다.
오랜 기간, 전원생활을 꿈꿔 오던 너울은 I.M.F.가 시작되던 그해, 친구의 도움으로 허물어져 가는 빈집이 앉혀진 대지 500평을 3600만 원에 구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25살 동갑내기 부부로 결혼해, 오랜 시간 함께 전원생활을 꿈꿔왔던 부인 데레사를 갑작스런 사고로 잃고 말았다.
너울은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고, 23년간의 교직생활을 뒤로 한 채 도시를 떠나 2000년 3월 금성으로 향했다. 늘 꿈꿔 왔던 일, 즉 집 짓기를 위해서였다.
너울은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당시를 잊지 못한다. 총 17가구가 모여 있는 이 마을에는 마을 이장과 너울, 47세 젊은이(?)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70대 노인들 뿐이었다.
하지만 14명의 마을사람들이 찾아와 이삿짐을 옮겨주며 호의를 베풀었고, 너울 또한 잊지 않고 답례를 했다. 엄동설한에 터진 수도며 고장난 TV를 고쳐주며 친분을 쌓았다. 시골마을에는 젊은이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지난 2년 동안 전원주택을 구상하며 설계한 6채의 집 중, 동그라미 두 채의 분할 구성으로 안정감을 더하는 설계를 선택했다. 전원에 어울리는 것은 흙집이라고 생각했고, 단조로운 형태를 피하기 위해서 간벌목을 이용한 통나무 황토집을 구상했다.
지붕의 물매도 뒷산과 어울리도록 15도로 잡았다. 두동의 흙집을 덱(Deck)으로 연결해서 오작교를 연출했고, 각각의 집은 견우와 직녀라고 명명했다.
우선, 시공에 앞서 수수깡과 나무를 이용한 모형주택을 제작해 보았다. 작업 중 생길지 모를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현지 임협에서 납엽송, 소나무 간벌목 15년생을 4.5톤 세 대 분량을 구입했다. 너울은 화목이나 톱밥용으로 버려지는 나무들을 활용할 수 있어서 더없이 기뻤다. 주 기둥으로 사용될 50년 생 낙엽송을 별도로 구입해 총 153만5000원이 소요됐다.
‘사다리꼴’ 흙벽돌 만들기
원형의 집은 직육면체 벽돌로 시공이 불가능했다. 이유는 벽체를 쌓아 올라갈수록 상단 부분이 넓어져 결국 기울어지고 안정감 있는 시공이 어렵기 때문.
필요한 것은 사다리꼴 모양의 벽돌이었다. 전체 길이 30센티미터에 높이 15, 안쪽길이 13, 바깥쪽 길이 15인 벽돌 틀을 손수 제작하고 3개월 간 벽돌을 찍어냈다.
흙은 집을 짓는 터 자체에서 마사가 섞인 것을 직접 사용했으며, 백석가루(백시멘트)를 3퍼센트 정도 혼합해서 부실부실한 정도로 흙을 반죽했다. 벽돌과 통나무의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흙과 백석 비율은 같되, 벽돌과는 반대로 약간 질척하게 반죽했다.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2400여 장의 벽돌을 찍어냈고, 벽돌 하나 나무 하나 흙 반죽으로 틈을 메우고 안팎을 미장했다. 총 60톤 분량의 흙을 비벼야 했다. 동그라미 벽체 한 켜를 쌓는데 이틀 정도가 소요됐다. 혼자의 힘으로 집은 짓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고, 탈진 상태까지 초래했다.
하지만 황토를 만지는 일은 힘이든 만큼, 다음날이면 새로운 힘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 건축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에 들러 건축 상황을 체크하고 집 짓는 일을 한 시간여 구경하다가 돌아가는 이웃집 노인이 있었다.
때론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혼자 집을 짓는 일, 때로는 손이 모자라 머리와 다리까지 사용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 눈앞에 놓인다. 너울은 뜻 맞는 사람 두 명만 모이면 수월히 집을 지을 수 있다고.
24개의 서까래를 묶는 하나의 기둥
대지의 표고 차가 있어서 후면은 140센티미터를 파내고 전면은 30센티미터를 돋워 수평을 맞췄다. 높이 120센티미터로 콘크리트 기초공사를 하고 벽체 공사를 시작했다. 너울은 벽체와 지붕 서까래의 맞물림 처리를 위해 고심했다.
도리는 둥근 벽 전체를 24등분 해 2″× 8″ 목재 널을 깔고 그 위에 서까래를 얹어 지붕 하중을 벽체에 골고루 분산시킬 수 있었다.
구조목이 6미터가 넘는 것을 구할 수 없어 이중으로 겹침처리하여 트러스를 제작했다. 서까래와 도리를 물려주는 철물로 고정시킨 후, 서까래와 지붕 사이의 틈도 벽체를 쌓는 방법으로 흙벽돌과 통나무로 메움 작업을 했다. 주택 중앙부의 기둥은 모르타르로 고정 후, 거실 바닥 처리시 약 15센티미터를 묻히게 했다.
지붕 서까래 24개를 하나의 기둥으로 받아들이게 해 하중을 지지했다. 지붕 마감은 O.S.B.합판과 단열재, 방수시트와 아스팔트 슁글을 사용했다. 전원주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벽난로는 주문 제작을 했다. 겨울이면 군고구마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이들이 여럿이다.
본채 ‘견우’가 완성되고, 2000년 12월 드디어 허물어져 가는 농가주택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입주했다. 그 이듬해, 구들시공으로 완성한 별채 ‘직녀’를 완성하는 데 7개월이 걸렸다. 조경을 꾸미고 마무리를 하고 꼬박 2년 동안 집짓기 작업은 이어졌다.
직녀방은 전원생활에 필요한 아궁이를 갖는 구조로 그을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별도로 굴뚝을 설치했다. 실내 면적은 본채 23.7평, 별채 8.56평을 포함해 총 32.34평이다. 덱(Deck)면적 5.48평과 별도로 2.6평의 보일러실을 설치했다.
흙의 앙금을 이용한 고운 벽 만들기
일반주택과 흙집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기정화 능력이다. 황토는 숨을 쉬기 때문에 항상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단열과 통풍도 뛰어나다. 하지만 흙집은 손에 흙을 달고 살아야 할 만큼 흙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다. 건조 과정에서 크랙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너울은 고운 내벽을 얻기 위해 흙의 앙금을 이용했다. 점토성이 많은 흙을 잘 풀어 흙탕물을 만들고 가라앉힌 흙은 밀가루처럼 곱다. 소량의 백시멘트(5% 정도)를 풀어 잘 섞은 뒤 붓칠(수성페인트용 넓은 붓)을 하면 아름다운 황토벽을 얻을 수 있다.
백시멘트를 넣는 것은 흙벽의 강도를 높일 수 있고, 건조 과정에서의 작은 크랙마저도 없애준다. 타일공, 심야전기업체를 제외한 모든 집짓기를 직접 완성했기에 건축비용은 총 4813만1800원이 들었다.
집이 완성되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데레사의 고교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인 이혜경 씨에게 전화를 했다. 이것을 인연으로 두 사람은 현재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두 사람의 힘을 모아 완성한 귀틀집에서는 노모가 생활한다.
너울은 다시 학교에 복직해 전교 학생 수 58명인 아담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 학년이래야 9∼10명 정도여서 더 넓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에 안을 수 있는 꿈속에 그려오던 그런 학교다. 그는 한복과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출근한다.
영월, 단양, 충주가 30∼40분 거리이고, 인근에는 월악산, 금수산, 청풍호가 있어 낚시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박새, 소쩍새, 뻐꾸기가 아침잠을 깨우는 아름다운 집.
겨울에 털신이 제일 편하고 좋다는 이들은 분명 전원에서의 삶이 어색하지 않다. 끝으로 너울은 흙을 비빌 때는 가급적 오랫동안 비벼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집짓기 좋은 차진 흙으로 완성된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田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견우&직녀 공사비 지출 내역
[총 건축 면적 40.55평 기준]
공구 및 장비,구입
·수리 및 부자재 7,008,400 - 1톤화물, 포크레인 구입비 포함
·토목공사 150,000 - 15톤 화물 임차료
·기초공사 3,089,800 - 철근,레미콘,펌프카
·벽체공사 3,329,800 - 낙엽송,소나무,백시멘트 구입비
·지붕공사 5,891,100 - 육각 그림자 슁글 70평 소요
·창호 & 문제작 5,860,000 - 3중 유리 2중창, 원목 door
·단열공사 760,000 - 슈퍼 온도리 4단 구입비
·배관공사 1,571,800 - 상,하,정화조,난방
·보일러공사 5,700,000 - 보일러실 제작비 포함
·벽난로 제작 544,300 - 후드 제작료, 벽돌 구입비
·인건비 820,000 - 기초, 지붕공사 잡부사용
·전기, 조명공사 3,300,000 - 심야, 내선, 조명등 외주
·바닥마감, 타일공사 4,013,500 - 타일공사 외주 씽크, 세면, 샤워수전
·씽크, 붙박이장 5,003,900 - 제작외주
·운임 618,700
·조경공사 372,000 - 묘목구입
·잡비 98,500 - 택배료, 송금수수료, 고속도로비 등
·총경비 48,131,800
- 평당 1,186,000원
※ 1ton화물, 포크레인 구입경비와 씽크대, 붙박이장 제작 제외시
평당 940,000원 소요
■ 건축정보
·주 소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진리
·건축구조 : 목구조 황토벽돌집
·대지면적 : 500 평
·건축면적 : 32.26평(본채 23.7평, 별채 8.56평)
·실내구조 : 본채- 방1, 거실1, 주방, 고방, 화장실
별채- 방1, 화장실, 공구실
·외벽마감 : 황토 모르타르
·내벽마감 : 황토 모르타르
·천정마감 : 한지
·지붕마감 : 아스팔트슁글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 지하수
■ 설계·시공 : 직영 (043-644-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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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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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가 어울려 사는 전원생활 강화 42평 복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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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창가에 누운 한길이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포플러 나무를 바라다보고 있다. 잠시 후, 엄마는 “한길아, 포플러 나뭇잎은 어린 아기의 손바닥 모양과 비슷해서 눈을 감고 잘 들어 보면 박수소리가 들린단다.” 하고 이야기했다. 한길이가 두 눈을 감고 나자, 신기하게도 정말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새로 둥지를 튼 전원생활 새내기 가족 유창렬(43) 씨와 부인 김소임(42) 씨.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는 어느 날인가 강화의 한 펜션에 머물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났다. 무무건축 강신천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 ‘무무’.
천지간 사람의 집을 짓겠다는 강 사장과 그의 부인의 전원생활에 감동을 받았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과의 대화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망설이기만 했던 전원생활 계획을 굳힐 수 있었다.
88년 결혼 이후, 가족은 많은 여행을 함께 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한별, 초등학교 3학년인 한길이와 함께라면 즐겁기만 했다.
자그마한 소망이 있다면, 젊은 날 여행자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를 닮은 이들을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전원 속의 집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소망은 꼭 이뤄진다
정말 운 좋게도, 인터넷 부동산을 통해 토지 마련의 기회를 잡았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부인 김 씨가 일을 마치고 우연찮게 매물을 검색하던 중, 맘에 들던 땅이 나타났고 인근 부동산에 조회한 뒤,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임야와 일부가 전(田)의 형태였던 269평의 토지를 구입하고 대지로 전환하는 일은 2주 만에 이루어졌다.
토지를 구입하며 고려한 점은 산 중턱에 위치하며 길하고 좀 떨어진 곳. 그리고 산을 끼고 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모든 조건에 만족했다. 2/3가 임야인 토지는 뒤편의 절개지를 복구하고 229평을 대지로 전환됐다.
40평은 공동도로에 포함됐다. 토지 구입비는 평당 37만 원 정도 들었고, 그 사이 지가가 상승해 현재는 평당 42만 원 정도하고 있다. 형질변경 비용은 500만 원 정도 소요됐다. 토지 매입과 소유권 변경이 이뤄지자마자 공사가 시작됐다.
“건축을 앞두고, 준공이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무지했기에 일어났던 일이죠. 임야를 대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건축을 할 수 있도록 땅을 평평히 하는 토목공사 작업과 산림훼손 부분을 복구해야 한다는 것을 차츰 알아갔어요. 우물 공사로 600만 원, 공동 사용 도로로 40평 정도가 흡수됐습니다.”
전원생활을 결심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이들 부부에게는 부평시내에서 생활하던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다. 하지만 계속 망설이다가는 더 늦어질 것 같아 집을 세놓고 대출을 받아서 땅을 사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전형적인 도시생활만을 하던 분이어서 전원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마비증세 있던 몸이 완쾌되고 당뇨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전원에서의 생활은 기쁨을 더해갔다.
이사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없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둘째아들 한길이는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와 새둥지를 살펴보며 자연을 보살피고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거친 병마는 젊고 튼튼한 사람이라고 비켜 가는 일은 없다. 건축주는 서른다섯 살 되던 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일주일 동안을 중환자실에서 보냈던 적이 있다.
심장의 3/4이 작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꾸준한 운동과 전원에서의 생활로 몸이 많이 좋아졌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다. 잔병이 없어져 자연히 병원에 가는 일도 줄어들었다.
날마다 새로운 일몰에 물드는 집
무무건축 강신천 사장의 건축 특징은 ‘실증이 안 나는 집’을 짓는 데 있다. 건축주 내외는 “집의 구조가 남향이었으면 좋겠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창과 덱, 주방을 제외하고는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였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또 철제 식탁과 천장(Top-light), 서재와 책꽂이, 실용적인 선반을 함께 부탁했다.
42평의 복층구조로 설계된 본채에서는 삼대가 생활한다. 본채의 1층 구조는 방 3개, 거실, 주방, 화장실 2, 다용도실이 있고, 복층구조의 서재 겸 미니거실로 구성된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하늘과 맞닿은 아늑한 곳이다. 본채와 나란히 위치한 별채는 펜션으로도 이용하는데 ‘유시의 해름’은 13평 독채로 침실, 주방 겸 거실, 화장실과 다락방으로 구성돼 있다.
바람이 있다면 뒤 정원에 소나무를 몇 그루 더 심고, 조경이 잘 가꿔지면 절개지 부분에 펜션 동을 하나 더 지어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시골의 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들자, 통폐합을 하면서 스쿨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골의 교육이 도시와 다른 점은 자체 해결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길이의 피아노 수업은 형과 엄마가 직접 지도한다. 또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기를 수 있고, 연극 등의 취미활동을 통해 여러 가지 체험활동이 가능하다.
올해로 70세를 맞이한 동갑내기 시부모님을 모시고 전원생활을 시작하니, 모든 게 든든할 따름이었다. 특히 잔병이 많고 만성 두통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약을 끊을 수 있게 됐고 더욱 밝아진 모습을 보면 내심 기쁘다.
입주 후, 부인 김소인 씨는 부평까지 1시간 30분여 되는 거리를 출퇴근했다. 하지만 피곤한 것보다 그토록 소망하던 전원생활이 이뤄진 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현재는 강화도의 한 초등학교로 전근을 와서 근무 중이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는 정보화마을이면서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저 멀리 해가 지기 시작하면 새파란 어둠과 붉디붉은 낙조가 어우러져 손을 맞잡고 춤이라도 추는 듯하다. 특히 해가 지고 난 뒤, 더욱 붉은 석양의 매력에 부인 김 씨는 푹 빠져 있다.
도시의 선생님을 놀라게 하는 전원의 아이들
‘마음이 있는 곳이 뜻이 있다.’는 말처럼 머뭇거림 없이 이행하면 이뤄진다는 진리를 믿고 있다. 집 짓기 전에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고 자연스럽게 이웃을 만들어 가라.
아이들 교육문제는 핑계삼으면 안 된다. 전원에서의 아이들은 가끔 도시에서 온 선생님을 놀라게 할 때도 있다. 면학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집중력 있고, 뛰어난 학습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자기가 머문 곳에서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루고자 한다. 이런 아이들의 욕구를 어른들이 배울 점도 많다.
전원생활을 앞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음을 먹었으면 행동으로 옮기라는 이야기다. 두려움 없이 꿈을 펼쳐야 후회도 없다. 단순한 동경보다는 기본적인 가치관이 있어야 잘 생활해 나갈 수 있다.
또 전원에서는 도회지적인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규제만으로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없듯이, 자연을 보며 자연의 시스템을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셀프컨트롤(self-control)이라고 건축주는 설명한다.
이곳은 서울과 가까이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공장이 없다. 수변구역이라 정화조 시스템이 잘 돼 있다. 관리비는 월 15∼20만 원 정도 든다. 난방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요리를 할 때도 전기 조리 기구를 사용한다. 넓은 덱과 본채와 별채 사이에 위치한 중정이 이 집의 묘미를 더한다.
꽃이 피면 오래 간다는 의미로 붙여진 ‘장화리’이지만, 유독 꽃이 늦게 핀다. 또 새와 야생동물들도 많다. 김 씨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전라도 광주 무등산 기슭에는 연 밭이 많아서 연꽃이 탐스럽게 피고, 연밥을 따먹고 놀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회상한다.
올해로 18년째 교직생활에 있으며 욕심을 내지 않는 삶과 항상 아이들에게 열정을 다해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여행을 좋아하던 이들 가족은 주말이면 텐트와 버너, 침낭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하루하루 여행하는 기분 좋은 모습으로 새날을 열고 있다. 田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정보
·주 소 :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대지면적 : 269평
·건축구조 : 경량 목구조
·용 도 : 주거 및 펜션
·건축면적 : 본채 42평 + 펜션동 13평
·외벽마감 : 적송 가공처리 목(버티컬 사이딩)
·바 닥 재 : 온돌 패널 위 강화마루 및 타일
·지붕마감 : 아스팔트슁글
·난방형태 : 기름보일러
·온 수 : 심야전기 온수기
·공사기간 : 2003년 6월∼10월
·식수공급 : 지하수
■ 설계·시공 : 무무건축(032-937-9065, www.mumuhou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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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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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카페] 전원 속으로 떠나는 추억여행-피자성 효인방&청암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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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장흥국민관광지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카페가 많아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이와 더불어 장흥을 대표하는 토털 야외미술관, 놀이공원 두리랜드와 밤나무숲 공원 등이 있어 가족단위의 방문객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피자성 효인방’의 정복모 사장은 가족단위의 손님들을 위한 메뉴를 개발하고, 추억이 깃든 실내 분위기를 가꾸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 사장은 민속박물관인 청암민속박물관의 관장을 겸하고 있다. 정 사장이 직접 수집한 옛 생활용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청암민속박물관’은 피자를 먹는 즐거움 외에 또 다른 선물을 주고 있다.
빨강, 초록의 알록달록한 테이블과 화려한 조명, 먹음직스러운 과일과 갖가지 피자 토핑이 한쪽 벽면 가득히 그려진 모습. 이러한 실내 인테리어 분위기는 대형 피자 체인점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전원 속의 푸른 나무 그늘 아래서 까까머리에 검정 교복을 입었던 때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며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국민관광지 입구에 위치한 ‘피자성 효인방’은 언뜻 보면 고풍스러운 외관과 실내 풍경이 한식당이나 전통 찻집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지만, 피자성 효인방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피자를 파는 곳이다.
피자를 먹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손님들은 이 같은 실내 분위기에 조금 낯설어 할 수도 있지만, 동양과 서양을 조화시킨 ‘퓨전 스타일’이 생긴 것처럼 한국식 피자집을 만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는지, 맛있게 피자를 먹고 있는 진행자와 정복모 사장의 사진을 시작으로 카페 내부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오래된 한옥의 대문으로 만든 테이블, 까까머리에 검은색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학생들 사진, 한옥의 창틀 등은 여느 피자집과 다른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키워드 역할을 한다.
농가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태어나
피자성 효인방은 입구부터 한국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다. 맷돌로 들어오고 나가는 출입구를 마련해 동그라미 모양의 돌을 보고 걷는 재미를 주었고, 지붕 위에는 여러 가지 동물인형이 초록색 나무와 어울려 있다. 입구 왼편에는 1000여 개의 맷돌로 쌓은 돌탑과 하르방 등이 자리하고 있어 작은 민속촌에 들어온 듯 색다른 느낌이 든다.
40여 평의 실내는 목재 테이블과 의자와 전체적인 통일감을 주기 위해 목재로 마감했다. 중앙의 샐러드 바를 중심으로 오른편의 메인홀과 왼편에 나란히 두 개의 작은 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한 곳은 한정식집과 같은 분위기로, 신을 벗고 바닥에 앉아 마당 전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게 했다. 방 한쪽에 보이는 나무는 으레 조화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살아 있는 단풍나무다. 일반 농가를 리모델링을 한 이곳은 마당을 방으로 꾸미면서 단풍나무를 벨 수 없어 그대로 살린 것이 이 집의 큰 구경거리가 됐다.
실내에서는 단풍나무의 몸체를, 지붕 위로는 단풍나무의 잎을 구경할 수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호기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토핑을 얹은 피자
피자성 효인방을 오픈하기 전까지 정복모 씨는 ‘효인방’이라는 들꽃 농원을 운영했다. 들꽃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물 한 잔을 찾고, 커피를 찾고, 간단한 요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이 늘었고, 그럴 바엔 차라리 꽃을 구경 온 사람들이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피자성 효인방이 생겨났다.
처음 메뉴를 선택하는 데 있어 많은 고민을 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찾는 손님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로 좋아하는 피자를 선택하게 됐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인들의 입맛에 맞게 우리나라 식으로 양념을 더하고, 토핑을 얹는 등 많은 노력 끝에 지금의 다양한 피자가 완성됐다.
쑥을 반죽에 넣고 잣과 호두 등의 토핑을 얹어 어린 시절 쑥떡을 먹고 자란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쑥피자를 만들었고, 치즈와 쌀떡볶이를 조화시킨 미니폴 등의 메뉴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한 층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철길 따라 추억을 만나는 곳
피자를 먹은 후에는 철길을 따라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다. 피자성 효인방의 왼쪽에 위치한 ‘청암민속박물관’ 을 들러보는 것이다. 박물관으로 이어진 철길 양옆에는 이름도 낯선 갖가지 꽃과 풀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앵초, 구절초, 1년 내내 노란꽃을 피우고 있는 애기똥풀 등이 초록 잔디와 어울려 어느 대저택의 정원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뭔가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구할 수 없게 되고, 볼 수 없게 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하나둘 수집하게 된 것이 지금의 청암민속박물관이 생기게 된 이유”라고 정 사장은 박물관을 개관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박물관을 관람하는 데는 별도의 관람료가 필요하지 않다. 언제든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늘 문을 열어놓고 있는 정 사장의 여유로움 때문에 가까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지만, 일반 박물관에서 느끼는 딱딱하고 약간의 긴장된 마음은 조금 풀어놔도 좋을 듯하다.
피자성 효인방에서는 이처럼 철길을 따라 박물관을 관람하며 옛 추억을 구경할 수도 있지만, 먼 훗날 지금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 수도 있다.
덜컹거리며 금방이라도 기차가 지나갈 것 같은 철길을 비롯해 돌탑과 푸른 나무가 시원스레 정원에 펼쳐져 있고, 돌하르방과 사자상, 다정한 모습의 부부상을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는 예비 신랑, 신부들이 종종 찾아오기 때문이다.
카페 한 쪽 벽에 걸린 한 예비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이곳 정원을 다시 둘러보고 싶게 한다.
황토로 예스러운 분위기 더해
청암민속박물관의 메인홀인 종합박물관과 테마박물관은 내부 계단 등이 모두 목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부는 황토로 마감을 했다. 종합박물관 안에는 훈장님의 회초리와 함께 서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구들장과 다듬이돌, 탈곡기, 뒤웅박 등의 옛 생활용품이 어우러져 있다.
테마박물관은 시골장터, 대장간, 안방, 교실 풍경 등 다양한 주제로 꾸며져 있다. 안방에서 바느질 하는 어머니 옆에는 여러명의 자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숙제를 하고, 나무바닥의 교실에서 웃고 떠드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전시품은 유리벽 안에 있어 직접 만져볼 수 없다. 이곳에 전시된 물품들도 역시 만져보는 것은 사양하고 있지만, 유리벽 없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단순히 옛 생활용품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잊혀져 가는 우리들의 생활모습을 남겨놓기 위한 정복모 사장의 노력이 박물관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이러한 풍경은 황토로 마감한 박물관의 외관과 어울려 예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으며,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외부의 화장실까지 박물관과 동일한 소재로 마감해 통일감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사계절 내내 푸른 대나무와 200여 그루의 소나무 분재 등으로 꾸며진 정원에서는 정 사장의 부지런한 손길도 느낄 수 있다. 田
■ 글·사진 조영옥 기자
■ 건축 정보
·주 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건축구조 : 황토집
·대지면적 : 2000평
·건축면적 : 카페-40평, 박물관-150평
·외부마감 : 황토
·내부마감 : 황토
■ 설계·시공 : 피자성 효인방(031-855-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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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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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원추리 꽃 같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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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난장 같은 모내기철이 지나고 나면 시골 마을의 여름 들녘 벼들은 어미 뻐꾸기들의 새끼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쑥쑥 자라는 일만 남는다. 처음 모내기를 시작했던 논에서는 앳된 동자승의 머리 같았던 것이 금새 푸른 보자기를 깔아 놓은 듯 변해 간다.
이즈음 시골 마을에는 노랗기도 하고 주황빛이기도 한 원추리 꽃의 자태가 아름다운 시기다. 뒷산으로 한 시선만 돌려도 원추리 꽃들이 가는 허리를 고혹(蠱惑)적으로 낭창낭창 흔들어 대고 하얀 나비가 꽃 사이를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자생화들이 작고 소박한데 비해서 원추리 꽃은 꽃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처럼 세련되고 인위적인 매력이 있어서 왠지 시골 언덕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꽃이다.
원추리 꽃 같은 그녀와의 만남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서 원추리 꽃처럼 돋보이는 도회적인 분위기에 항상 상큼한 향기가 나는 그녀를 만난 것은 벌써 3년 전이다.
자녀를 둘 이상 둔 결혼 4, 5년 차의 주부들은 살림의 무게와 아이들 등쌀에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시들어 가는 꽃처럼 생기도 빠지고 푸석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가꾸는 일에도 소홀해져 서서히 ‘아줌마’의 본색을 갖춰 가게 된다.
큰아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의 엄마들 모임은 그런 아줌마화가 진행되어 가는 여인들이 다 모인 곳이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늘씬하고 큰 키로도 시선을 끌었지만 전문직 여성 같은 세련된 옷차림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먼저 낯을 가리지 않고 나한테 말을 건네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장롱 면허였던 그녀를 모임 때마다 내가 태우러 다니면서 그녀와 나는 가까워지게 되었다.
나처럼 도시에서 귀향을 했으리라는 추측과 달리 그녀는 우리 고장 토박이였으며 소를 키우는 고향 남자를 만나 고향 근처에서 살림을 꾸린 경우였다.
그녀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맞추면 요철처럼 꼭 맞물릴 것 같은 나와는 반대의 이미지와 성격을 발견하곤 했다. 통통하고 작은 내 체격을 보완하듯 큰 키와 늘씬한 체격도 그렇고, 수줍음이 많은 내 성격을 대신하듯 곰살궂고 낙천적이고 명랑한 그녀의 성격은 주변까지 밝게 해주는 듯했고, 매사를 알량한 지식으로 해결하려는 나와 반대로 그녀의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의 추진력은 잘 조화가 되어 끈끈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거기에 그녀와 나는 우연하게도 같은 성씨(姓氏)와 한 살 차이의 근소한 나이 차가 예정된 인연이었던 것처럼 쉽게 친한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에게서 항상 풍겨오는 산뜻한 향기가 만남을 즐겁게 해 준다.
그녀와 나는 시골 여자로 살아가는 어려움도 털어놓고 야생꽃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산나물을 뜯고 텃밭의 반찬거리들을 나눠 먹으며 흉금을 터놓는 사이로 발전했고 무엇보다도 우리 같은 타향 출신들에게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 정보들이 그녀를 통해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져 더 이상 우리의 시골 살이를 서럽지 않게 해 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갑자기 찾아온 손님 대접에 허둥거리고 있을 때 서슴없이 소매를 걷어 부치고 우리 집 주방으로 들어와 주는 친구였으며 내가 볼일을 보러 멀리 갈 일이 있을 때는 우리 아이들을 맡아서 돌보는 보모가 되어 주는 그녀는 쓸쓸하게 시작한 내 시골 살이를 윤택하게 해 준 또 하나의 정겨운 이웃이다.
그녀가 시골 살이에서 얻는 보람
두 해전 가을이었던가. 전화도 없이 불쑥 그녀의 집을 찾아갔을 때, 집 안에는 그녀 대신 노오란 국화 화분만이 그윽한 향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녀를 찾아 집 뒤에 있는 축사에 갔다가 나는 처음으로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헐렁하고 낡은 작업복에 고무장화를 신고 축사의 배설물을 치우고 있는 그녀의 낯선 모습은 한 마리 백조가 수면 위에 우아하게 떠 있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수 없이 발을 젓고 있는 결과라는 비유 그 자체였다.
“나, 소 냄새 안 배게 하려고 하루에 목욕을 두 번 씩 하고 빨래할 때는 섬유린스를 남들보다 두 배로 진하게 쓰면서 살아. 하지만 이제는 세 마리로 시작해서 열아홉 마리로 늘어난 이 소들이 내 시골 살이의 작품들이고, 그들이 불어나는 보람에 산다.”
그녀한테서 항상 배어 있던 향기의 진실에 나는 그만 가슴이 아릿해졌고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시처럼 쏟아 내던 그녀의 말은 여전히 내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다.
당시 우리 가족의 시골로의 방향 전환은 실의에 찬 낙향도 아니었고 풍족한 전원주택에서의 삶도 아니라 남편의 사업적 배경만 바꾼 것에 불과한 채 정착이 안 된 상태였다. 도시적 사고 방식으로 시골에서 살자니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던 참이었다.
겉으로는 원추리 꽃 같기만 하던 그녀의 엉겅퀴 꽃 같은 참 모습을 보고 온 후, 비로소 나는 그동안의 부적응과 내면적인 혼란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녀처럼 이 시골 살이에서 내 작품들을 꿈꾸게 되었고, 그녀의 향기는 물 설고 낯 설은 시골 살이를 낭만적 상상력만으로 뛰어 든 철없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5년을 버텨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내 시골 살이의 최대 행운
문득 돌아보니, 원추리 꽃만 보면 떠오르는 그녀에게 나는 겨우 장롱 면허 면하도록 운전 연습시켜 준 것과 아이들 사진을 찍어 주는 것 밖에 없는데 그녀는 내 시골 살이에서 내게 없는 모든 것을 채워 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녀는 평소에는 짝꿍 같은 친구였다가, 내가 곤란할 때는 키다리아저씨로, 삶이 버겁고 나태해질 때는 스승 같은 존재가 되는 그녀를 빼면 내 시골 살이에서 뭐가 남을까?
그녀는 오늘도 그녀의 작품들이 노니는 축사로 고추밭으로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다가도 외출을 할 때는 캐리어 우먼처럼 우아하고 세련된 차림으로 문 밖을 나설 것이다.
다소 거칠고 험해 보이는 엉겅퀴 꽃 같은 생활을 원추리 꽃처럼 변신을 시키며 사는 그녀를 만난 것은 내 시골 살이의 최대의 행운이다. 田
■ 글쓴이 오수향 (ocho290@hanmail.net)
∴ 글쓴이 오수향은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 살면서 글쓰기의 꿈을 좇아가고 있는 주부입니다. 공주 KBS,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수향의 시골살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메일을 보내보세요.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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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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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 정기에 음악과 그림과 도예를 담은, 전통 한옥펜션, ‘취옹예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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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국도(46번) 청평검문소 삼거리에서 현리 방면(37번)으로 꺾어 들어서면 조종천 맑은 물이 축령산 계곡을 따라 시원스럽게 흐른다. 5월 초인데도 숲은 어느새 녹색으로 우거져 그늘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여기저기에서 유원지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이 길은 그 유명한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이어진다. 이정표를 따라 경기도 가평군 상면 행현리 고개를 넘으면 축령산이 마주 보이는 곳에 아흔아홉 칸(間)은 족히 되는 기와집의 높고 낮은 지붕들이 가지런히 내려다보인다. 그곳이 취옹예술관이다.
이 일대는 지금 신작로(新作路)를 내느라 어지럽혀져 있고, 또 온갖 모양의 요란스런 민박과 펜션이 들어서고 있어 아쉽게도 옛 정취는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할까! 취옹예술관이라고 새겨진 나무 현판이 달린 문으로 들어서면 별세계(別世界)가 펼쳐진다.
높은 돌담 위로 올려다 보이는 팔각정인 청류정(淸流亭)이 가장 먼저 일행을 맞는다. 그리고 작은 내를 끼고 잣나무 숲 기슭에 걸쳐 지은 취옹산방이 멀리서 부른다. 마치 숨겨진 비밀의 정원처럼 취옹예술관은 감춰놓은 풍경들을 하나둘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눈에 들어오는 한옥의 규모와 품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인장인 도예가 김 호 관장이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석이당(石二堂)으로 안내한다. 작은 강의실로 쓰인다는 이 기다란 마루방은 한옥의 맛을 유감없이 전해 준다. 대들보와 서까래 그리고 기둥의 어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천장 아래 매달린 목어등(木魚燈)은 한옥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금년에 따왔다는 작설차를 따르는 김 관장의 어깨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또 어떤가! 별채 한옥들의 기와지붕이 멀리 축령산 줄기에 걸쳐 있어 감탄을 절로 일으키게 한다.
장인의 혼을 담아 한옥 향기 짙게 드리우고
도예가인 스승 이희전 선생이 붙여주었다는 ‘취옹’이라는 아호(雅號)의 의미대로 스스로 ‘도자기를 굽는 화부(火夫)’라고 소개하는 김 호 관장. 그가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5년 전, 1999년의 일이다.
10여 년을 변함없이 도자기를 굽고 문화예술마당으로 운영하던 포천의 취옹예술관을 수해로 모두 잃었다. 그후 재기의 결단으로 이곳 축령산 기슭에 둥지를 튼 것이다. 경기도 일대를 다 다녔지만 축령산처럼 마음을 편안히 하는 곳도 없었다고 한다.
조용하고 물이 맑고 게다가 석재(石材)도 풍부해서 그것을 캐어내 석축을 쌓으면 마음먹고 한옥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땅을 사들였다. 그래서 2000여 평의 땅에 평생 소원인 전통 한옥을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
김 관장이 전통 한옥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무척 오랜 일이다. 중학교 2학년 때쯤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미륵사지를 방문한 후, 전통 한옥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집터만 남았지만, 망초꽃으로 뒤덮인 사적지에서 받은 인상은 조상들의 집에 대한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우리만의 아름다운 집을 짓고 보존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그후 웬만한 기와집은 다 둘러보면서 미학은 물론, 대목(大木)의 안목까지 익혔다고 하니, 취옹예술관의 한옥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는 수십 년을 가슴에 쌓아 온 한옥의 꿈을 한 채, 두 채 이곳에 펼치고 있다. 그래서 일본식 건축술에 고유한 영역을 상실한 우리네 한옥을 원래대로 살리고 지켜가려는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터를 잡는 일과 조경을 준비하는 일에 2년의 공을 들였고, 집을 짓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경내는 3단의 터를 조성하여 첫 단 중심에는 청류정(淸流亭)을 앉혔다. 그 좌우에는 ‘미술관’과 ‘다석지실(茶石地室)’이라는 전시실이 나란히 있다.
장차 전시실을 공방이나 아틀리에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둘째 단에는 ‘수향헌(垂鄕軒)’과 ‘백송제(白松齊)’라는 객사(客舍)를 두고, 식당과 세미나 장으로 쓰는 ‘석이당(石二堂)’을 앉혔다. 그리고 맨 상단에는 주 전시실 두 동을 한참 짓고 있다.
김 관장은 조경과 터 조성을 먼저 한 셈이다. 현재 일곱 동의 건물에 상단 전시실 두 동을 더 지으면 모두 아홉 동으로 대궐 규모의 한옥 단지가 조성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재정이나 건축 면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묵묵히 인내하며 기다리며 추진해 온 김 관장의 열정에는 그 누구도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결국에는 이 엄청난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전통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곳
더구나 문화 낙후지역의 경기도민에게 문화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하자는 생각으로, 장르별 문화학교를 개설하여 각종 공연도 쉬지 않고 있다. 김 관장만의 이 독특한 주장과 철학은 이미 오래 전 포천에서부터 시작해 온 일이다.
양악에서 국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사물놀이를 가르침은 물론, 동양화를 그리고 도자기를 굽는 등의 이 모두는 농사짓는 시골 사람들로서는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고급 문화예술이다. 이와 함께 경기도 내의 문화예술집단이 서로 협력하여 운영하는 ‘기전문화대학’의 경기 북부지역 캠퍼스로도 내놓고 있다.
바로 이곳에 ‘한국 문화예술 체험’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펜션을 개설했다. 마당을 중심으로 기역자로 놓인 ‘수향헌’과 ‘백송제’라는 두 채의 객사가 취옹예술관의 펜션이다.
수향헌에는 7평에서 10평 남짓한 방이 모두 3개 있다.
장작불을 때 한옥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백송제는 같은 크기의 방을 6개 갖추고 있다. 보일러로 난방을 하게 한 다소 현대식 방들이다. 모두 최신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갖추고 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다. 단 취사시설은 갖춰져 있지 않아 석이당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공연히 음식을 만든다고 부산을 떨지 않아 좋다.
주변을 조용히 산책하거나 마주 건너다 보이는 ‘취옹산방’ 마루에 걸터앉아 축령산을 바라보는 여유는, 값을 매기기 어려운 즐거움일 것이다. 김 관장의 개인 사저로 사용하는 이곳은 한옥의 걸작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하다. 며느리서까래를 달아 지붕을 쳐 올린 솜씨가 한옥의 멋을 한껏 보여주기 때문이다.
달랑 방 하나에 누마루를 들였는데 현대에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누마루에서 예술관 전체를 조망하는 즐거움은 또 다른 수확이라고 할까. 조용히 흘러내리는 골짜기 물을 내려다보며 청류정과 마주하여 주인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면 신선의 풍류를 달리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펜션의 새 지평을 여는 취옹예술관
주인장 김 호 관장은 당초 수향헌과 백송제를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작가들의 숙소로 제공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인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지금은 그들을 위한 펜션으로 제공하고 있다. 펜션이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펜션 본래의 문화적 의미가 퇴색되는 것을 우려하는 김 관장. 그는 취옹예술관을 통해서라도 펜션의 모습이 제대로 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머물며 우리의 전통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배우는 즐거움이 이 펜션이 제시하는 테마이다. 김 관장은 보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다양한 기획 이벤트를 펼칠 계획이다. 그래서 도회에서도 만나기 힘든 독특한 음악회와 미술전시회 등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
특히 젊은 작가들에게 창작 의욕을 높여 주고 작품을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해, 전시실 관람자들이 더 많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또 작가들의 고객인 예술 애호가들의 참여 폭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펜션은 중요한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 우리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일반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이제 취옹예술관 펜션은 요즈음 침체된 펜션 비즈니스에 활기를 불어넣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의 생산자와 수요자들이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취옹예술관 펜션은 축령산 기슭에서 새로운 차원의 펜션 문화 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화된 펜션으로부터 한국화된 펜션으로 발전되는 우리 펜션의 새로운 가능성과 그 미래를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田
■ 취옹예술관 (031)585-8649, www.chi-ong.co.kr
■ 글 김창범(월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위원, ‘펜션으로 성공하기’ 저자)
■ 사진 권지혜 기자
■ 인터뷰
* 농촌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취옹예술관은 가평을 중심으로 한 경기 동북부 지역을 대상으로 주민의 문화적인 여가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재능 있는 청소년 및 역량 있는 지역 작가를 육성하며 여러 분야의 예술인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설립됐다. 나아가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과 교류 및 협력을 통하여 국내의 유망한 작가가 국제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외국작가들을 초청하여 전시회 및 워크숍 등을 열어 국내외 작가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문화활동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일부 계층 혹은, 전문인들의 영역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일부 계층이나 대도시 위주로 편중화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굳이 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도시와 농촌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특히, 소외된 농촌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을 더욱 많이 마련하여 균형 있는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이 시대의 의무일 것이다. 비록 역량은 부족하더라도 ‘취옹예술관’은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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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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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Garden] 수목의 신음소리에 귀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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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치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은 주부와 학생들은 물론,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스트레스는 인체의 면역계를 약화시키고 외관을 손상시킨다. 그럼 말없이 서 있는 나무는 어떨까? 온갖 오염물질은 잎의 숨구멍을 막아버리고 뿌리를 썩게 한다. 그것도 모자라 나무에다 갖가지 인테리어(?)를 하기까지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상 기온 현상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만약에 나무가 말을 한다면, 그 고통 소리로 우리는 귀가먹었을 것이다.수분과 온도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토양 내에 수분과 산소가 부족하면 수목의 뿌리는 노화(老化)하고 세포는 부풀지 않는다. 그것이 과실수인 경우에 입는 해는 치명적이다.장마철에 배수 관리를 못하면 토양의 수분 과잉으로 뿌리가 썩기도 한다. 그러면 나무는 시들 뿐만 아니라 각종 병균이 들끓는다. 특히, 다습한 상태에서 건조한 상태로의 변화가 급격할 때, 수목의 뿌리와 줄기, 열매가 받는 스트레스는 매우 크다. 토양의 용액이 높을수록 비온 후에 그 피해는 더욱 심해진다.대형 수목을 옮겨 심을 때는 수분과 온도 차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질소 성분 비료의 지나친 사용과 저온 다습은 강한 병원균이 생기는 원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물과 온도를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농약으로 인한 스트레스알다시피 정원에 농약을 많이 치면 암 발생률이 매우 높다. 그럼 수목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잎은 공장에 비할 수 있다. 잎이 피로하고 노화하면 모든 기능이 느리고 무뎌진다. 농약을 정기적으로 살포하면 광합성을 방해하여 수목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벌레가 꾀면 기겁을 하고 약을 치려는 사람이 많은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벌레를 다 죽이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생태계에는 해충(害蟲)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잡아먹는 천적(天敵)도 있다. 그것이 해충처럼 보여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작용을 하고 자연의 일부로 공존하면서 자연계를 유지해 간다. 벌레를 다 없애면 좋아 보일 것 같지만 결국,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농약을 치면 해충은 물론, 천적인 곤충과 익충(益蟲)까지도 죽는다. 여기서 살아남은 해충은 후손에게 더욱 강력한 유전자를 전해 주어 기존 농약에 내성(耐性)을 가진 슈퍼 벌레로 탄생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강한 농약을 사용해야만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벌레도 살아 남으려고 엄청난 노력과 투쟁을 한다. 눈물겨운 살아있는 한 편의 드라마다.그 피해를 입는 건 벌레만이 아니다. 나무와 인간도 치명상을 입는다. 인간은 먹이사슬에서 최종 소비자인데 농약으로 입는 해는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다시 말해 농약을 친 식물을 일부 동물이 섭취하고, 그 다음엔 조금 더 큰 동물이 그것을 잡아먹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그 동물을 잡아먹는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전해지는 농약의 잔류 농도는 최종 소비자인 인간에게 이르러 극에 달한다. 그러니 인간이 건강하겠는가?농약에는 살충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균 등을 죽이려고 개발된 살균제도 있다. 사실 그 해는 살충제보다 더욱 파괴적이다. '탄저균'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겁도 없이 농약을 마구 치는 사람을 보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실적으로 농약을 안 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꼭 쳐야 한다면 그 횟수를 극히 제한하고 발병 전에는 가능한 피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 생물학적 농약이 개발되고 있으나 사실, 그 값이 비싼데도 효과는 빠르지 않다. 그래서 아직도 대부분이 기존 농약을 사용하는 실정이다.그런데 식물을 건강하게 키워 저항력을 길러주면 문제는 쉬워진다. 우리도 아프면 약을 먹지만 근본적으로 몸을 튼튼하게 하고 체질을 강화시키면 밥만 잘 먹어도 병은 자연히 줄기 마련이다.벌레가 있으면 또 어떤가. 우리도 그들처럼 자연의 일부인데……. 같이 더불어 살자. 이제 자연을 그만 좀 망가뜨리자.토양이 받는 스트레스땅 속에는 무엇이든 마구 집어넣어도 다 잘될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가슴을 칠 일이다. 흙을 자꾸 밟아 다지면 토양 내 공기층이 없어지고 뿌리가 호흡하는 데 지장을 주기 마련이다.산성 비료를 자꾸 주면 땅의 성질이 나빠지고 수목의 뿌리에 쇼크를 주어 모근이 타들어 간다. 그러면 필수 영양소와 수분을 흡수할 수 없어 식물은 심각한 해를 입는다.화학비료의 정기적 사용은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대기오염과 결합되어 내리는 산성비는 토양의 산성화를 더욱 가중시킨다. 결국 뿌리 끝이 단단하게 굳어져 필수영양소를 흡수할 수 없게 되어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완전 발효되지 않은 퇴비를 주면, 토양 내 가스가 충만하게 되고 토양 중 산소 결핍을 일으켜 뿌리에 해를 준다.그밖에도 토양의 수질이 부패되어 뿌리가 썩는 현상, 제초제의 사용으로 토양오염과 농도 장애로 인한 피해, 농약의 사용으로 토양 내 뿌리의 활성화를 돕는 미생물들이 죽어버리는 등을 이야기하면 슬픈 일들이 너무 많다.나무를 이해한다는 것, 그 고통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연을 이해하는 일이고 우리 자신을 치료하는 일이다.수목 살리기와 치료 - 올바른 물 주기관수(灌注)가 지나치면 뿌리의 성장이 빈약해질 뿐만 아니라 뿌리가 썩는 병이 생기고 식물이 헛 자라기까지 한다. 물론, 지나치게 건조해도 뿌리와 식물 생장에 장해가 된다. 따라서 식물에 맞는 물 주기가(관수법) 필요한데 계절과 기후에 따라 달리해야 한다.소나무류는 무엇보다 배수가 중요하지만 적절한 수분이 없으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사실, 물 주기는 감각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특히 옮겨 심은 나무는 지상과 지하부 간의 수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목의 뿌리를 보호하고 땅의 온도를 유지하는 멀칭(mulching) 효과도 무시하면 안 된다. 비 오기 전후의 관리도 중요한데 특히, 이상기후 시 적절한 물 관리는 수목의 생명을 좌우한다. 田■ 자료제공 : 수목의료원(02-359-4133, www.gnsall.com)6월, 수목별 병충해 예방법♣ 소나무, 해송쪾병·해충명 : 소나무재선충병쪾피해 증상 :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10월 부산지역에서 처음 발견됐다. 매개충인 해송수염치레하늘소가 재선충을 옮긴다. 6∼7월부터 쇠약하기 시작하여 8∼10월경에 급속히 말라죽는다. 이듬해 봄까지 거의 100퍼센트가 죽는다.쪾방제법 : 피해 수목은 매개충이 우화하기 전, 소각하거나 칩으로 파쇄한다. 우화시기인 5∼7월에 매개충을 구제한다.♣ 밤나무류쪾병·해충명 : 밤나무줄기마름병쪾피해 증상 : 동양의 풍토병으로 미국과 유럽의 밤나무림을 황폐화시켰다. 가지 및 줄기에 발생한다. 수피와 형성층이 급속히 죽었을 때는 병 환부의 표면은 약간 들어가지만, 서서히 죽었을 때는 부풀어오르고 길이 방향으로 찢어지거나 균열이 생긴다. 병 환부에는 황색, 등황색의 돌기가 다수 형성된다.쪾방제법 : 배수 불량한 곳과 수세가 약한 경우에 피해가 심하므로 이 점을 유의한다. 인위적, 자연적 상처를 통해 병원균이 감염되므로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유의하고 절단면에는 도포제를 발라준다.♣침·활엽수, 과수쪾병·해충명 : 아밀라리아뿌리썩음병쪾피해 증상 : 6월경부터 가을에 걸쳐서 잎 전체가 서서히 노랗게 변하고 갈색으로 말라죽는다. 병든 나무의 뿌리목 부위를 벗겨보면 부채꼴 모양의 흰색균사층이 나타난다. 8∼10월에는 병든 나무 뿌리목에 병원균의 자실체(子實體)인 뽕나무버섯이 발생한다.쪾방제법 : 버섯은 발견 즉시 제거하고 병든 나무는 뽑아서 태운다. 토양 소독을 실시하고 석회를 시용하여 토양을 가급적 알카리성으로 개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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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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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Garden] 낮은 울타리로 자연과 가까이, 눈비에 강한 방부목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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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및 금속, 철제 등으로 만든 울타리 모두를 일컬어 휀스(Fence)라고 한다. 테니스장의 초록색 그물망을 비롯, 휀스의 다양한 용도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전원주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울타리는 단연 목조울타리이다. 하지만 목조 휀스의 경우 자재의 선택과 관리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휀스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목조의 특징과 관리요령에 대해 알아보았다.휀스(Fence)의 기본적인 기능은 외부로부터 건축물이나 내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대부분의 보호막이 여기에 속한다. 휀스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군부대 주위에 설치된 철조망이나, 차도와 인도를 분리해주는 가드레일, 전원주택의 낮은 울타리 등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처럼 휀스는 우리 생활에서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그 종류와 자재 또한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소재는 목재로, 전원주택에서 담장 대용의 울타리로 많이 사용된다. 높은 담벼락 대신, 낮은 울타리로 들여다보이는 정원 풍경은 전원생활을 그리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번쯤 떠올려 본 모습일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울타리는 대부분 집 밖에 설치하므로 눈비와 같은 자연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그중 방부목은 잦은 날씨 변화에도 쉽게 영향을 받지 않아 울타리용 소재로 가장 적합하다.방부목재의 특징 휀스는 물론 덱(Deck)공간에도 가장 널리 쓰이는 방부목은 눈비로 인한 습기에 약한 목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방충약제 등을 처리한 목재다. 방부목은 고압 탱크 안에 목재를 넣은 후 목재 내의 공기, 수분 등을 진공법으로 뽑아낸 다음 수용성 약제인 크롬, 구리, 비소화합물(CCA)을 채운 후 4~6시간 동안 압력을 가해 목재 내부로 약제를 밀어넣는 순서로 가공된다. 이렇게 가공된 목재는 약제의 정착을 위해 상온에서 3주 이상 양생 과정을 거쳐 방부, 방충력이 극대화 된 새로운 건축 자재로 사용된다. 눈비와 같은 자연환경은 물론 흰개미와 같은 각종 해충들로부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부목재는 휀스에서부터 목조주택의 기초와 접하는 토대, 발코니, 파고라, 덱과 같은 공간을 설치하는 데도 사용된다. 이 외에도 야외 식탁, 평상, 벤치, 화분박스 등 생활에서 손쉽게 사용하는 가구 등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부속 철물은 스테인리스 제품 사용 아무리 약제 처리가 잘 된 방부목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기초 기둥이 좋지 않으면 휀스의 수명이 오래가지 못한다. 휀스의 기초 기둥은 스테인리스 스틸의 재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백송우드휀스사에서는 휀스를 만드는데 기초가 되는 앵커블록을 선보였다. 원통 모양의 콘크리트에 2밀리미터, 2.5밀리미터 두께의 스테인리스판을 심은 블록으로, 기둥을 볼트로 고정하도록 고안됐다. 이 블록은 담장 기둥과 덱 기둥의 독립기초로 사용되는데, 목재의 기둥을 수분과 흰개미로부터 보호하고 목재의 수명을 배로 늘려준다. 뿐만 아니라, 시공할 때 정확한 위치와 높이 잡기, 수평 맞추기 등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시공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田■ 정리 조영옥 기자■ 자료협조 백송우드휀스(031-987-9710, www.bsw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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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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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Garden] 목재 휀스(Fence)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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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만드는 데 있어 그 출발점은 울타리(휀스-Fence) 만들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도심의 경우, 울타리는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기능을 우선으로 하지만, 전원주택에서는 낮은 높이로 주변 환경과 소통하는 장(場)의 역할을 겸하게 된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의 기능과 심미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휀스의 종류와 함께 시공사례를 살펴본다.■ 글 싣는 순서·스스로 만들어보는 정원이야기 ·정원만들기 준비하기 ·진입로 만들기 ·목재덱(Deck) 만들기 ·목재 휀스 만들기 ·연못 만들기 ·장미정원 만들기 ·바위정원 만들기 ·정원만들기의 수확 ·겨울정원 만들기 ·어린이를 위한 정원 만들기 ·정원예산 짜기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 곧 정원일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원이라는 의미에는 둘러싸인 땅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라면 경계와 보호의 의미를 강조하여 높은 담장을 쌓을 것이지만, 전원주택의 경우라면 햇빛이 골고루 들고 통풍이 잘 되도록 울타리의 높이를 낮게 조절하고(대개는 90~120cm), 폐쇄형보다는 개방형으로 하여 이웃과 터놓고 지내며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울타리를 경계와 영역표시의 단순한 의미만 가지고 설치한다면 자칫 동네 분위기가 경직되기 쉽다. 아름다운 울타리를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간의 의사소통에 장애가 되도록 하지 않게 해야 된다. 울타리를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가를 보면 그 지역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직감할 수 있게 된다.목재 휀스 만들기 : 전원주택에서 많이 사용되는 휀스의 자재는 목재이다. 손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전원주택 분위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럼 목재 휀스 만드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먼저 기둥을 세우기 위한 기초를 설치한다. 기초는 휀스가 튼튼하도록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목재 부분이 지면에 닿아서 썩지 않도록 살짝 띄워주는 것이 좋다. 기둥이 세워지면 가로대를 위아래로 두 줄을 스크류 볼트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판자로 만든 널을 가로대에 붙여나간다. 칠마감은 흰색을 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완전 백색을 쓰는 것보다는 다른 색소를 약간(몇 방울 정도) 섞어서 색감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도록 하는 것도 좋다. 널은 사진처럼 끝 모양을 동글게 할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 모양을 만들 수도 있다. 또 널의 폭을 두껍게 하는 대신 일일이 재미있는 모양을 새겨 넣는 것도 있다. 휀스의 모양은 울타리의 의미 외에도 정원주인의 심성을 볼 수 있는 안내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봄직하다.휀스에 사용되는 목재도 다양하다. 햄록, 더글라스퍼(미송), 레드우드, 적삼목 등이 있으며, 가격은 적삼목 쪽이 비싸지만 어떤 식으로 재재를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므로 나무 이름에 집착하지 말고 실제 목재를 보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식적으로 목재의 결이 잘 살아있고 옹이가 없는 것이 좋은 것이고 색이 진한 것일수록 잘 썩지 않고 오랜 수명을 유지한다.생울타리 : 살아있는 나무 또는 식물로 만든 것이 생울타리이다. 즉, 장미, 명자나무, 서양병꽃나무, 철쭉류, 박태기나무, 무궁화, 조팝나무를 조밀하게 심어서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다. 남쪽지방이라면 더욱 다양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사용할 수 있다. 동백나무, 애기동백, 치자나무, 서향, 철쭉류, 차나무 등도 이용 가능하다.높다란 생울타리를 만들려면 주목, 측백나무, 향나무, 사철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을 사용하면 된다. 예전에는 향나무나 주목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성장속도가 느리고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요즘에는 서양측백, 사철나무, 스트로브잣나무를 주로 이용한다. 서양의 정형식 정원에서는 생울타리 자체를 잘 다듬어 조형적 요소로 가꾸기도 한다.격자울타리(트렐리스-trellis) : 널판을 이용해서 만드는 간단한 휀스 외에 정원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은 격자형 울타리이다. 격자울타리를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첫째, 만들어진 격자를 구입한다. 둘째, 적당한 높이의 기둥을 세운다. 셋째로 가로대를 설치하고 U형 캡을 이용하여 기둥과 가로대에 고정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사진의 경우에는 보다 단순한 디자인을 위해서 기둥이 돌출되지 않도록 수평선을 만들어 준 것이 특징이지만 기둥에 여러 가지 장식을 고정하면 보다 색다른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진의 트렐리스에는 사계절 장미를 심어주었다. 田■ 글 이진규 (네이처조경디자인 대표, www. flower-wol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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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