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전원주택으로 가는길] 왜, 힘들여 온 길을 되돌아가는가
-
-
전원주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아니다. 다시 말해 전원생활을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 속 나라에 나오는 시골 풍경쯤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살았던 도시하고는 문화나 정서 그리고 모든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도 다 사람이 사는 곳인데 나라고 못 살겠어’ 하고 시작하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의 전원생활은 대체로 원만하다. 소싯적에 시골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 사대문 밖은 다 시골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필자는 도시로 되돌아가는 젊은 세대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왜, 돌아가는 것일까? 그동안 보고 느낀 점을 몇 가지 나열하면서 거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 글은 평범한 젊은이들이라면 전원생활을 불편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일부 동감한다는 고백을 전제로 한다.
출퇴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생각
시간 계산이 아닌 거리상으로
사실 시간만을 말하자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물론 어디로 출퇴근을 하느냐가 관건이지만, 대개 시간이 아닌 거리상으로 본 관점인 것 같다.
도시로 되돌아가려는 사람들은 전원생활의 불편함 가운데 출퇴근 문제를 첫 번째로 꼽는다. 필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는 가까운 거리라도 많은 시간을 버리고 다니지만 시골에서는 먼 길도 상당히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을 염두에 두면 출퇴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말은 그저 핑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한 가지 더 필자의 경험을 예로 들어 보자. 필자도 처음 광주 퇴촌에서 4년간이나 논현동으로 출퇴근을 했고(약 45분 소요), 명동성당까지 1년간 출퇴근할 때도 승용차와 지하철을 이용해 1시간5분에서 10분 사이면 도착했다. 강동, 송파, 강남, 서초, 관악, 성동, 광진, 동대문, 노원, 중랑구 정도면 필자가 사는 곳에서 출퇴근을 해도 과히 불편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성남시나 하남시 등은 아주 가까운 지호지간(指呼之間)이다. 거리는 20킬로미터에서 멀게는 45킬로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을뿐더러 시간은 30∼40분에서 많이 걸려도 1시간 정도면 충분한 거리다. 그런데도 멀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게다.
편의 시설 부족과 문화생활의 갈증
도시에서는 운동복 차림으로 편의시설에 가는데 별 불편이 없었지만 전원은 어디를 가나 거의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도시는 문밖으로만 나서면 모든 편의시설이 즐비하지만 전원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꽤 오래 전, 처음으로 미국에 가서 친구네 집에서 묵었을 때의 일이다. 친구는 주 중에 필요한 식료품이나 생활필수품 목록을 꼼꼼히 적어 두었다가 주말에 대형 마켓에 가서 차분히 구입했다. 그것을 보면서 ‘미국 생활이란 것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데에 불편 없이 살았기에 미국 생활을 이해하지 못했다. 필자가 광주시 퇴촌면에 정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전원생활이 미국 생활하고 꼭 닮은꼴이다. 전원에서 생활하면 할수록 미국 생활이 매우 합리적이란 생각이 든다.
첫째는 많은 과소비(過消費)를 줄일 수 있어 좋고, 둘째는 참을성(忍耐)을 기를 수 있어 좋고, 셋째는 준비성(準備性)을 키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는 모든 것이 불편함 그 자체였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모터가 고장났을 때,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을 때, 안테나를 설치하지 못해 텔레비전을 몇 개월 못 볼 때, 목재를 비롯하여 건축자재를 조금만 사려해도 먼 길을 가야만 할 때 등등 불편함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도시에서는 전화 한 통화면 만사 오케이 되던 일들이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지금은 필요로 하는 모든 일을 대부분 직접 처리하고 있다. 전문가답게 빠르게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반풍수(半風水) 노릇은 한다. 그 모두 불편했기에 얻은 산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시골에는 주로 토박이들이 모든 걸 자급자족하다시피 하며 살았지만 요즘에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선 수도권의 경우 그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필자가 이곳으로 이주해 왔던 12년 전에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아주 조그마한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다. 아침엔 늦게 열고 저녁엔 공무원 일과 시간에 맞추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개인이 운영하는 딱 한 곳뿐인 구멍가게를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잘 열리지 않는 미닫이 유리문을 여느라고 얼마나 자주 손톱을 다쳤는지! 그런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 산 과자를 도시 어린이들은 불량식품이라며 아예 먹지도 않았다. 그랬던 일들이 아직도 뇌리를 스치며 쓴웃음을 짓게 한다.
12년간의 세월, 그 수많은 변화를 어찌 글로 다 표현하랴! 그만큼 세월이란 수레바퀴는 빨리 돌아가고 있다. 시간이 모든 걸 변화시킨다지만 요즘은 옛날과 비교하면 도무지 분간조차 못할 만큼 빠르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젠 옛 이야기다. ‘일 년에도 강산은 변할 수 있다’로 바꿔 써야 하겠다.
과연 12년 후 이곳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밤의 문화를 중요시 여기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밤 9시만 조금 넘어도 암흑천지(暗黑天地)로 바뀌는 컴컴한 시골이 마음에 들 리 없다. 도시 같으면 한창 떠들고 마시고 하면서 나름대로 젊음을 발산할 시간대 인데…….
그러니 밤에는 더욱 갈 곳 없는 현재의 전원생활에 불만을 갖기 마련이다. 영화나 연극 관람은 물론이요, 체육 시설도 부족하다. 돈을 들여서 하는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공간조차 마련해 주지 못할 만큼 지금의 전원은 취약하기 때문이다.
전원생활이 비즈니스에 지장을 초래하는가
젊은이들은 가깝든 멀든 간에 이곳에서 떨어진 생활 전선에서 돈을 버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퇴근 시간 후에도 잔업을 할 때가 있다.
또한 거래처를 접대할 때 저녁식사에 곁들여 한두 잔 마시던 반주(飯酒)가 아예 술자리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면 해넘이와 함께 버릇처럼 찾아오는 게 있다.
집이 멀다는 데서 오는 강박감과 그에 따르는 초조함이다. 식사가 맛있을 리 없고 접대가 잘될 리 없다. 젊은이들은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참아 넘기기 어려워한다.
이 문제만은 필자도 변명의 여지를 만들 수 없는, 긍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도시생활보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받는 스트레스
주5일 근무제는 전원주택이나 펜션 업계에 바람을 일으킨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젊은이들 대부분은 펜션으로 놀러 가는 것에는 신바람이 나도 전원주택에서 상주하는 건 꺼려한다.
전원에서는 모든 집안일을 손수 해야만 하는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은 안팎으로 할 일이 많지만 젊은이들은 쉬는 날에도 마땅히 할 것을 못 찾아 무료함을 느낀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쉬는 날일수록 고민이 많다. 그렇다고 늙은 부모만 두고 여행을 떠나자니 너무나 속보이고……. 편한 자세로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본다거나 낮잠을 즐길 수도 없다.
도시에서는 쉬는 날 리모컨을 조작하는 것 조차도 성가시게 생각했던 ‘편히 쉬어’ 자세의 생활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밖에서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몸살나는 어른들이 이 일 저 일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정서가 아닌가.
이 기회에 어른들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제발, 자식들이 쉬려고 할 때는 방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말길 바란다. 어른들을 핑계삼아 전원생활을 시작한 가정이 많으므로 젊은이들에게도 너무 부담을 주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비가 올라치면 비설거지(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를 하는 일에서부터 비 온 뒤 뒷정리, 눈 치우기, 얼음 깨기, 미끄러운 길에 흙 뿌리기……. 정원의 잔디 깎기, 가지치기, 나무 심기, 버팀목 대기, 낙엽 치우기, 얼지 않게 새끼줄 묶기…….
텃밭에 씨뿌리기, 잡초 뽑기, 거름주기, 김매기, 추수하기, 고추 말리기, 우거지 만들기, 김장하기……. 그리고 짐승들 돌보기(절대로 그냥 예쁘게 커 주질 않는다). 어디 그 뿐이랴!
지하수 모터에 보온 덮개 씌우기, 보일러에 기름 넣기, 고장 난 것 고치기 등등 일하려고 마음 먹으면 밤이 되어도 끝없는 게 전원생활이다. 이 모두 도시에서 살 때는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일들이다. 물론 단독주택에 살았다면 조금은 경험했겠지만…….
어른들에겐 소일(消日)거리가 있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젊은이들은 직장생활에 찌든 몸과 마음을 쉬는 날 만큼은 꼼짝달싹 않은 채 그냥 푹 쉬고 싶어한다. 문제는 잔뜩 쌓여 있는 일들을 어른들이 하고 있기에 어떡할지 몰라 짜증을 낸다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부득이한 일이 아니라면 주말이나 공휴일을 피해서 하라고 어른들에게 당부 드린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젊은이들이 푹 쉬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은 어떨까?
푹 쉰 뒤에는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무엇인가 할 일을 찾는 것이 인간은 물론이요, 동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힘이 들더라도 이 때까지만 참고 견디길 바란다. 그리고 이 때를 이용하여 ‘나 이거 좀 도와줄래~’ 하고 청한다면, 흔쾌히 일을 할 것이고 이처럼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새로운 취미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편해야 되지 않겠는가!
열악하다고 단정을 짓는 교육환경
전원을 떠나 다시 도시로 유턴(U-Turn)하는 젊은이들의 십중팔구는 자녀의 교육문제를 가장 큰 이유로 삼는다. 교육열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과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 사이에 괴리乖離가 많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묻고 싶다. 양질의 교육이 같은 또래들보다 글자 하나 더 먼저 알고, 영어 단어 한 개 더 외우고, 수학 문제 몇 개 더 푸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속으로는 필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자녀의 교육문제인 것 같다.
더욱이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면面 단위에서도 공부할 수 있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인근 도시로 통학해야 하는 등 갖가지 번거로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서울에서도 8학군으로 못가는 것이 한으로 맺힌 젊은 부부들의 한결같은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학교생활보다 훨씬 좋은 면이 많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전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은 건강하다
자연이라는 아주 멋진 벗과 어울리다 보면 도시 어린이들보다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연이라는 환경 자체가 절로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저절로 자연과 사회생활 공부를 한다
계절의 변화나 동식물의 성장 과정 등등이 체험으로 얻는 자연 공부라면, 명절 때면 어김없이 치르는 동네 행사인 척사대회나 널뛰기, 그네뛰기, 제기차기 등등의 놀이는 우리나라 민속의 산 역사를 배우는 사회교육의 장이다.
이 밖에도 저절로 얻어지는 그러나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공부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도시 어린이들은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도 잘 알지 못하지만 전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은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참으로 예의 바르고 착하다. 전원의 어린이들은 방학 때 예절을 배우러 굳이 청학동으로 갈 필요가 없다. 실생활에서 예절을 터득하면서 생활의 일부분으로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전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은 편협하지 않다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은 도시 어린이들보다 마음이 아주 넓다. 신비스런 변화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그러나 한 번도 같은 것이 없는 자연은 어린이들에게 일상의 권태를 잊게 하고, 인내를 가르치며 그것을 통해 사랑의 참뜻을 깨닫게 한다.
또한 항상 모자라는 것을 채워 주는 소박하고 진정한 가족 사랑으로까지 자연스레 이어진다. 가족 사랑을 깨닫는 것만큼 더 큰 보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얻은 참된 사랑을 자라면서 모든 것에 나누어준다. 이렇듯 참된 사랑이 몸에 밴 어린이들이 편협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의 개인주의가 팽배한 도시 어린이들보다 서로를 위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바로 전원이다. 여기에는 학교나 동네에서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넓지 않은 지역 환경이 한몫을 한 다.
만남이 잦으면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사이가 조금 벌어졌더라도 이내 풀리고 마는 것이 어린이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적은 인구와 좁은 동네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전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은 상식이 풍부하다
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학원으로 분주히 발길을 옮기는 도시 어린이들보다 산으로 들로 맘껏 뛰어다니며 보는 것이 많은 전원의 어린이들은 실생활에 필요한 상식을 많이 배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산지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원의 어린이들은 친구가 많다
도시의 어린이들은 이사를 자주 다니기에 사귈 만하면 헤어진다. 그러나 전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은 한 반에 몇 안 되는 친구는 물론, 같은 학년 친구와 전교생이 모두 선후배의 돈독한 정을 나눈다. 도시에서 만나는 시골학교의 동창회를 상상해 보라.
필자는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아직까지 그 때의 친구들을 거의 만난 적이 없다. 도시민들의 잦은 이사가 가지고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이곳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서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되어서까지 부러울 만큼 많은 정을 나누고 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친구라지만 사실, 함께 옛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나눌 추억거리가 있어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동기 동창생이라고 다 친구일 수는 없지 않은가! 도시의 학교에서는 많은 동기 동창생이 있지만 과연 우리는 그 중에서 몇 명과 친교(親交)를 나누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在京 ○○鄕友會’는 고사하고라도 ‘在京 S초등학교 同窓會’라든가, ‘在京 H중학교 同窓會’ 같은 ‘在京’이 들어가는 모임을 우리는 신문지상으로도 자주 접한다.
그러나 ‘在경기도 서울 미동초등학교 同窓會’라든가, ‘在전라도 수송 초등학교 同窓會’ 같은 얘기를 들어 보았는가? 아마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많다는 것이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 얼마나 좋은가는 부언하지 않아도 잘 알리라 믿는다. 지금 잘나간다는 사람들의 측근들을 상기해 보자!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결국, 나의 이상향(理想鄕)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온 길로 되돌아가고 만다. 지금까지 얘기한 몇 가지 이유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전원생활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간혹 있다. 2대가 함께 내려 온 가정의 젊은이들은 다시 도시로 떠나고 만다. 늙은이들만 남겨 둔 채로…….
그러나 여러 가지 불만이나 불편을 감수한 채 1년 만이라도 꾹 참았더라면 전원생활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편과 불만보다는 만족스러운 부분이 더 많다는 사실을 차츰차츰 깨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못 참고 떠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전원생활을 한 시간은 비록 얼마되지 않지만 그들은 맘속으로나마 전원생활의 좋은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는 ‘나도 애들 학교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전원으로 돌아와야지’ 하고 각오를 굳힌다. 田
■ 글 양정일
글쓴이 양정일은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에 있는 한국전원 부동산 컨설팅에서 전원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컨설팅을 해주고 있습니다.
-
2004-06-25
-
-
[인테리어 소품] 단조로운 창(窓)에 생명을 부여하는, 커튼 & 블라인드 & 로만쉐이드
-
-
주거양식의 서구화에 따른 라이프스타일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중 하나인 커튼(Curtain)은 중요한 생활용구 중 하나이며, 인테리어 장식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커튼은 광선의 조절, 시선의 차단, 방음·방서·방한의 목적 외에도 벽이나 유리의 딱딱한 감을 부드럽게 하고 색채의 배합에 따라 실내 장식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전통 한옥에서는 휘장이나 발·병풍 등이 커튼의 구실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커튼뿐만 아니라, 블라인드, 로만쉐이드, 스크린 등 다양한 품목으로 원하는 분위기의 연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용할 공간에 따라 세심하게 선택해야만 그 기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되는 '커튼'커튼의 일차적인 기능은 집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물론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도 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디자인이나 색상, 스타일 등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골라서 쓰면 되지만 먼저 커튼을 구입할 때는 사용할 장소와 방안의 분위기 등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아이들 방에 들어갈 커튼이나 블라인드에는 너무 화려하거나 복잡한 색상보다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캐릭터 상품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는 그림과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창의력과 모험심을 길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로 인해 신경이 예민해질 수 있는 학생들의 방에는 편안한 색상과 눈에 자극이 되지 않는 무늬들로 선택해서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커튼의 소재는 질감·색채·무늬 등이 다양해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 커튼의 크기는 주름잡는 형식이나 천의 무늬에 따라 달라진다. 무늬가 있는 천이면 무늬를 맞추기 위해 여분이 필요하다. 폭은 대략 창문 폭의 1.5배가 필요하지만 주름을 많이 잡으려면 2.5배 정도가 되어야 한다. 주름 잡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통주름이나 2줄 주름을 많이 사용한다. 또 최근에는 주름이 없는 커튼으로 개성을 표현하기도 하며, 커튼장식 집게와 커튼봉 등의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준다. 모던한 느낌과 현대적인 분위기의 '블라인드'먼저 블라인드는 대부분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으로 많이 제작되는데 일반적인 커튼과는 달리 개폐 각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채광과 통풍 조절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블라인드 살을 수평으로 펴놓으면 바깥 전경과 햇살이 그대로 실내로 들어오고, 블라인드 살을 닫으면 한번 걸러진 빛이 은은하게 실내로 들어오면서 실내 프라이버시는 보장된다. 이러한 특징이 있는 블라인드는 집의 베란다나 사무실 같은 곳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내기에 좋다. 또한 동향이면서 집이 좁은 가정에서는 커튼보다는 블라인드를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다.블라인드의 하단이 말려서 올라가는 특징이 있는 롤블라인드는 공간을 더욱 밝고 깨끗하게 꾸밀 수 있는 제품이다. 보통 빛차단 효과가 뛰어나며 구김이 잘 가지 않는 면과 폴리합사 원단을 주로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특수원단을 이용하기도 한다.로맨틱한 분위기와 편리함을 선사하는 '로만쉐이드'로만쉐이드는 고풍스럽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좋은 품목이다. '로마의 그늘'로 해석되며 원터치 형식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방식으로 편리함과 인테리어 효과를 동시에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로만쉐이드를 선택할 때는 방이나 거실의 분위기를 신중하게 생각해서 설치해야 한다. 독특하고 특이한 스타일이니 만큼 자칫하면 집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인테리어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 우선 사용할 창의 사이즈를 생각해서 제품을 골라야 한다. 로만쉐이드는 소·중·대로 골고루 출시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신혼부부들 사이에서는 일반 커튼보다 로만쉐이드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예전에는 커튼과 로만쉐이드를 따로 구입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사용자들의 취향과 기호에 맞춰 세트로 나오는 제품들도 많이 있다. 이런 세트 제품은 집안의 통일성과 함께 공간이 더욱 넓어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봄과 여름의 계절이 교차되는 6월, 계절이나 기분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의 커튼, 블라인드, 로만쉐이드로 실내 인테리어를 꾸며보는 것은 어떨까. 田■ 정리 김혜영 기자자료 제공 : 규수방커텐 (02-457-1849, www.gsb21.co.kr), 성진데코 (02-469-6410, www.sungjindeco.co.kr)
-
2004-06-25
-
-
가족이 함께 마음 모아 지은, 군산 2층 통나무주택
-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오곡리 신장부락에 위치한 수공식 통나무주택은 건축주 정천수(51세) 씨와 부인 장옥주(51세) 씨, 이들의 두 아들 욱이(24세)와 민이(21세)가 합작하여 이뤄낸 산물이다.군산시내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사업을 하던 정 씨는 오랜 시간 시골에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기회가 되는 대로 집 지을 터를 보러 다녔고, 황토집을 구상하고 있었다. 손수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장성한 두 아들에게 말하자, 선뜻 아버지를 돕겠다며 나섰다. 정 씨는 '집 지을 소재로 무엇을 쓸까?' 고심 끝에 아이들이 재미있게 다룰 수 있는 소재인 통나무로 결정하게 됐다. 우선 큰아들 욱은 통나무학교에 등록해 집 짓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은 아들 민이도 형과 동행하며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가족 모두의 합심으로 일궈낸 집정 씨는 2002년 6월, 720평의 임야를 구입했다. 야트막한 산자락 끝에 위치한 마을은 유난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4개의 지번이 있는 땅을 두 명의 소유주로부터 사들였고, 250평을 형질변경해 대지의 형태로 전용했다. 이후 그들의 집 짓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집 짓는 데 필요한 자재구입 담당은 큰아들 욱이었다. 2003년 1월 군산 외항에 있는 한 원목장에서 코르시칸 구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집 짓기가 시작됐다. 옹이가 나무를 빙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코르시칸 7.3미터 21본과 5.6미터 12본을 구입해 방갈로를 짓기 시작했다.우선 나무정리와 데이타베이스화에 들어갔다. 33본의 나무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데 만도 반나절을 훌쩍 넘겼다. 노트의 한면에는 모든 목재를 수치화해 정리했고, 다른 면에는 나무가 어떠한 모양으로 쌓여있는지, 몇번 나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쉽게 알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2003년 3월, 바닥 평탄작업 및 기초를 다지는 것으로 본채 집 짓기에 들어갔다. 콘크리트 줄기초로 기초 공사를 마무리했고, 그 위에 아스팔트 프라이머를 바르고 시트를 덮은 뒤, 크레오소트유를 바른 2″×6″를 올려 통나무가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벽체 작업은 노치 작업이 끝난 후 그루브 작업으로 진행된다. 라토랄 그루브를 파기 위해서 총 6번의 작업을 거치면 W모양의 그루브가 나온다. 톱으로 작업을 끝낸 후 끌이나 손도끼로 마무리를 해주고 우드가드를 물에 10대 1로 희석해서 뿌려준 후 어느 정도 마르면 아마인유를 발라주고 유리면을 깔아줬다. 코르시칸 같은 나무는 옹이가 많고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그루브를 과감히 파줘야 수정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햄록은 코르시칸에 비하면 작업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나무를 올려놓은 후 철근으로 위 나무와 아래나무를 고정시켜주는 것으로 벽체에 대한 작업이 끝났다. 대략 9∼10단 정도의 반복 작업을 한 뒤, 2층 조이스트 작업과 지붕공사로 이어졌다. 지붕에 아스팔트 슁글을 덮는 것은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일 중에 하나다. 때마침 일을 돕겠다고 나선 민의 친구 덕에 조금은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집 짓는 일은 주변의 많은 도움과 협동으로 완성됐다. "인건비와 재료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묻는 사람, 또 자신의 집도 지어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기초 공사와 바닥 미장, 타일과 마루를 깔 때 몇 명의 인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스스로 완성했기 때문에 인건비는 100만 원 안팎, 나머진 자재비로 나간 돈인데… 근 6000만 원 정도 들었나 봅니다. 거의 1년여 동안 세 명이 집만 지었으니 돈으론 따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죠. "젊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마무를 깔고 2층 덱을 설치하고, 8개에 달하는 문을 기성문으로 하기보다는 직접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사실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큼은 그 누구도 잃지 않았다. 먼저 얇은 합판을 문 사이즈로 가공 후 가장 밑에 깔고 골조를 짰다. 나중에 대패로 밀어가면서 문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못이나 나사 등은 사용하지 않았다. 집을 지으며 기억에 남는 일은 너무 많아서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다. 7.5미터의 주도리와 중도리를 올릴 때 가장 무섭고 복잡한 일이었다. 큰맘 먹고 장만한 곡면대패를 망가뜨리기도 했고, 방미, 방충, 자외선 차단 효과는 조금 떨어지지만 목재 보호제(Oil-Stain)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해가 지면 부자(父子)는 하루에 대한 마감과 의논을 시작했다. 1층에는 메인 거실과 주방, 서재 겸 방이 있고, 2층에는 미니 거실과 복도형 방으로 꾸며졌다. 사방에 발코니를 설치해서 다양한 조망이 가능하다. 3층엔 출구를 달리한 작은 다락방이 2개 있다. 박공지붕 상단 부분이 아이들에겐 꿈을, 어른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담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탄생했다.잘 가꿔진 정원과 파릇파릇 싹을 틔우는 텃밭. 배추, 아욱, 치커리, 상추, 더덕, 도라지, 콩, 고추, 고사리, 피마자, 딸기, 허브 등 은은한 향기가 멀리 돌아가는 나비를 붙잡는다. 정 씨는 정원 한 켠에 창고로 이용되는 비닐하우스는 유리온실로 만들 계획이다. 인근에 사는 20여 가구의 주민들은 인심이 좋고 우호적이다. 동네에 좋은 집이 생겨서 좋다며 구경도 자주 온다. 시내에 나가는 버스는 2시간마다 한 대씩 있지만, 7~10분 정도의 짧은 거리라서 특별한 불편함은 없다.가족간 '참사랑' 확인통나무집의 장점은 피로 회복을 빠르게 하고, 수분조절이 잘 되기 때문에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시켜 준다. 따라서 겨울철 실내에서도 목 따가움이 없고 통나무집에서 자고 일어나면 심신이 가뿐해 진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나무를 갉아먹는 흰개미 등 벌레들이 종종 서식하기도 하는데 정 씨는 "벌레와도 같이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넉넉한 마음가짐이다."사업을 하며 바쁘게 지낼 때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주고 금전적으로 도와주면 부모로서 할 도리는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갈증은 소금을 입에 문 것과 같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 집 짓기를 계기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서로 고생했고, 자립·배려·협동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마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집은 그에 따른 부산물이죠. 우리가 함께 일궈낸 것, 그것은 집이 아니라 가족간의 '참사랑'이었습니다."정 씨 가족에게는 오래된 통나무주택에서 우러나는 향처럼 참다운 가족 사랑의 향이 우러나오는 듯 하다. 田■ 글·사진 김혜영 기자■ 건축정보·위 치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오곡리·건축구조 : 통나무 주택·부지면적 : 720평·대지면적 : 250평·건축면적 : 1층 29평, 2층 20평, 총면적 49평·외벽마감 : 통나무(1층), 핸디코드(2, 3층)·내벽마감 : 통나무(1층), 실크벽지(2, 3층)·천장마감 : 통나무·지붕마감 : 아스팔트 슁글 ·난 방 : 심야전기 보일러·식수공급 : 지하수 ■ 설계·시공 : 직영군산 통나무집(063-471-9379, www.wooxlab.com)
-
2004-06-25
-
-
전원의 향수를 담은, 이천 48평 2층 황토주택
-
-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건축주 김광수 씨는 어릴 적 고향에서 뛰놀던 자연 풍경이 언제나 머릿속에 가득했다.
늘 사업에 쫓겨 도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전원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만 갔다. 그래서 7년 전에 구입을 한 400여 평의 부지에 2층 황토주택을 지었다.
목구조 황토집으로 내부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가족을 위해 현대적으로 꾸몄다. 100평이 넘는 텃밭에는 고구마와 배추를 비롯한 쌈거리만 8가지를, 마당 담벼락에는 10여 그루의 키 작은 주목을 심었다.
“아파트에서 생활할 때는, 자고 일어나도 몸이 묵직하고 개운한 느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곳으로 이사한 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어요.
햇볕이 쨍한 날엔 마당에 이불을 널어 바짝 말릴 수 있고, 창만 열면 잔디 푸른 마당이 한눈에 들어오고… 맹꽁이 소리랑 닭 우는 소리에 눈이 떠지거든요. 보세요∼! 이 얼마나 좋습니까.”
텃밭의 푸성귀와 정원의 푸른 잔디를 보면 건축주의 전원생활 일면을 느낄 수 있다. ‘집을 짓고 난 후의 좋은 점은 무엇인지…’ 질문을 채 하자마자, 전원생활 예찬론은 열기를 더한다.
어린 시절, 자연환경이 그리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에 전원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의 노랫말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의 향수를 엿볼 수 있다.
이곳 건축주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김광수 씨는, 어릴 적 고향에서 산으로 들로 내로… 동무들과 어울려 뛰놀던 모습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사업상 바쁘게 지내느라 줄곧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전원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만 갔다.
건축주는 7년 전에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약 400여 평의 땅을 구입한 터라 한 가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이곳에 전원주택을 짓겠다고 맘먹은 것은 3년 전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서구식 목조주택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러 업체에서 지은 다양한 목조주택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지인(知人)으로부터 소개를 받은 경기도 이천시 솟대전원마을의 황토집을 본 후로는 마음이 바뀌었다. 황토집 외 다른 구조의 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행인흙건축에서 조성한 솟대전원마을의 황토집들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을 만끽하며 맘껏 뛰놀던 어릴 적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처럼…. 그래서 목조주택에서 황토집으로 방향을 전환한 겁니다.”
한옥의 조형미를 살려
건축에 관해서는 문외한인 건축주는 믿음이라는 말로 모든 일을 행인흙건축의 이동일 사장에게 맡겼다.
그렇게 해서 흙 건축에 대한 오랜 현장 경험을 살려 3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48평의 2층 황토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당과 텃밭보다 약 1미터 정도 높여 자연석으로 단을 쌓은 후 집을 앉혔다. 외부는 전통미가 물씬한 반면, 실내는 아파트 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가족을 위해 현대적으로 공간을 배치했다.
1층에는 욕실이 딸린 안방과 주방, 세탁실, 작은방, 화장실을, 2층에는 자녀방 하나와 거실을 배치했다. 전면으로 돌출한 1층 거실과 2층 거실 천장 모두 오량구조로 서까래를 걸고 루바로 마감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도 역시 거실과 같은 소재를 사용해, 전체적인 실내 분위기가 통일되도록 구성했다.
이동일 사장은 “처마를 형성하는 기둥 위의 목재 수에 따라 삼량집, 오량집, 칠량집으로 나뉘지만, 요즘은 평면 구성이 다양해짐에 따라 건물의 폭과 길이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1층 거실을 돌출시켜 별도의 오량천장을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통 방식의 천장은 거실은 물론, 안방에서까지 볼 수 있다. 천장의 가운데 부분을 오목하게 단을 주어 만든 우물 천장은 여타 주택의 밋밋한 천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풍스러운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전원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제2의 거실이라 불리는 넓은 덱(Deck)일 것이다. 이 집에선 그 역할을 대신하는 툇마루가 있다.
처마 선을 따라 동남쪽으로 낸 툇마루는 정원과 거실을 잇는 공간이자, 걸터앉아 전원의 운치를 만끽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전통 목구조 방식을 따르다 보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창호재이다. 황토벽돌과 기와지붕으로 마감한 집에 일반 새시(Sash) 창문이라니… 그렇다고 창호지를 바른 문을 설치할 수는 없는 일.
이동일 사장은 외부에는 새시를 사용해 간결함을 주고, 내부에는 조선 목창을 사용해 천장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각 방의 바닥은 황토미장 후 한지장판으로, 거실에는 강화마루를 깔아 자연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요즘 대부분의 전원주택에서 아스팔트 슁글을 지붕재로 사용하는 추세지만, 이 집의 팔작지붕에는 개량형 한옥기와를 올렸다. 한옥의 멋을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는 부분이 기와를 올린 지붕선이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친구들을 데려와 집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마당에 있는 빈 창고에는 곧 헬스 기구와 노래방 기기를 들여놓을 예정입니다. 이 집을 가족뿐만 아니라 손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場)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현재 마당에는 키 작은 주목들만 10여 그루 심었지만, 앞으로 소나무도 몇 그루 들여놓을 계획이다.
소나무를 어느 위치에 심어야 좋을지 고심하는 건축주의 얼굴에서 산과 들을 뛰놀던 소년의 웃음이 겹쳐진다. 田
■ 글 조영옥 기자 / 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신원4리
·건축구조 : 목구조+황토 벽돌집
·부지면적 : 200평
·건축면적 : 총 48평. 1층 - 35평, 2층 - 13평
·외벽마감 : 300×200×140 황토벽돌
·내벽마감 : 레드파인 루바
·바 닥 재 : 한지장판 및 강화마루
·천장마감 : 레드파인 루바
·지붕마감 : 한식기와
·난방형태 : 기름보일러
·공사기간 : 2003년 4월∼7월
■설계·시공 : (주)행인흙건축(031-338-0983, www. hangin.co.kr)
-
2004-06-25
-
-
삼대가 함께 하는 여유로운 공간, 의정부 54평 2층 스틸하우스
-
-
건축주 이근배 씨는 얼마 전 가족을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경기도 의정부 녹양동에 자리한 270평 부지에 건평 44평의 스틸하우스가 그것이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집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뒷산과 탁 트인 시야로 전원생활의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건축주가 전원행을 선택, 이곳에 입지를 정하고 스틸하우스를 마련한 지 3개월 정도 되어 간다. 모친 한순희(72세) 씨가 아파트 생활의 따분함을 느낀 나머지 농촌에 사는 친척집에 농사일을 돕는다며 종종 찾아가자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노모에게 집에서 재미 삼아 소일거리라도 마련해 줄 겸 전원주택을 마련하게 됐다. 이 집에는 건축주 부부와 중2, 고1의 자녀, 모친 등 5인 가족이 생활하고 있다.
“새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푸른 산이 가까이 있어 좋아요. 남편과 나름대로 구상한 여러 설계안을 가지고 설계·시공사와 상의해 가면서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안주인인 박미숙(42세) 씨의 말이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와 불편한 점이 있을 법도 한데, 애초부터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며 들어와서인지 그저 만족스럽고 재밌을 따름이란다. 내 손으로 직접 집을 가꾸고 자연과 늘 함께 하니, 남들이 우려하는 불편함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을 살려 지은 집
이 집은 2003년 8월 착공, 12월 완공됐다. 장마철 비로 인해 다소 공사에 차질이 있었지만 공사기간은 4개월 정도 걸렸고, 평당 건축비는 250만 원 정도가 소요됐다.
이곳은 원래 식당이 있던 자리였다. 건축주는 나무와 연못 등이 잘 가꿔진 조경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조경을 그대로 살려서 집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고, 설계·시공사는 이를 최대한 반영했다.
대지 총 면적 270평 중 건평 44평을 제외하고, 정원과 텃밭(20평), 창고용 방갈로, 주차장으로 구성돼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잘 꾸민 정원과 아담한 텃밭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야를 가릴 정도로 제법 큰 나무들이 놓여 있어 ‘전원주택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대문에서 현관으로 가는 길은 수수하면서도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침목(枕木)을 깔았다고.
외벽은 목재(원목판) 사이딩과 드라이비트로 마감하여 외부 조경과의 조화가 자연스럽다. 양쪽 끝에는 제법 널찍한 덱(Deck)이 있는데 우측은 부부전용 침실로, 좌측은 주방과 연결돼 있다.
주방 앞 덱은 다이닝 포치(Dining Porch) 역할을 해 비 오는 날에도 온 가족이 모여 야외 식사나 바비큐 파티 등을 할 수 있다. 바로 그 옆엔 연못이 자리하고 있어 집안에서도 맘껏 야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작은 텃밭엔 상추랑 고추 등 먹을거리를 심어 놓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물을 주고 풀도 뽑으면서 식탁 위에 오를 무공해 채소들이 쑥쑥 자라는 것을 바라보면 절로 배가 부르단다.
효율적으로 공간활용
총 건축면적은 54평으로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넉넉한 공간이다. 현관문을 기준으로 우측은 사적 공간으로 세대별 방을, 좌측은 공용 공간으로 거실과 주방을 독립시켜 배치했다.
1층(44평)에는 드레스룸과 욕실이 딸린 부부침실과 노모방, 욕실, 거실, 주방, 다용도실, 보일러실이 있다. 그리고 2층(14평)에는 두 개의 자녀방과 욕실, 작은 거실, 발코니를 마련했다.
건축주는 특별히 다른 공간은 좁더라도 거실만큼은 넓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설계·시공자는 이를 최대한 반영했다.
화사한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은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활용하기 위해 불필요한 가구를 과감히 없앴다. 공간의 협소함을 감안하여 거실과 주방의 동선을 분리하지 않고 일체화시켰다. 부엌 바로 옆에는 다용도실과 세탁실을 마련하여 주부의 일손을 덜었다.
바닥은 자연스런 색상의 마루로, 천장과 벽은 실크벽지로 깔끔하게 마감했다. 곳곳에 매입 등을 설치하여 분위기 연출에도 신경을 썼다.
2층에는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아이들만의 전용 발코니를 마련했다. 시원스레 트인 1, 2층 거실 넓은 창으로는 정원과 앞산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더 큰 전원생활을 꿈꾸며
“이렇게 전원주택에서 살게 되어 너무 좋아요. 파란 잔디와 나무 그리고 텃밭이 딸린 집에서 산과 들을 보고 새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하는 이 기분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이 집의 안주인은 이곳으로 이사온 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요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정원을 가꾸랴, 잡초 뽑으랴, 연못 청소하랴 등 일이 많다며 전원생활을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 반대다.
종종 친구들도 초대해서 정원에서 고기도 구워먹으며 놀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건축주는 이곳에서 10년 정도 살다가 강원도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민박을 하면서 사는 게 꿈이란다. 부인 또한 남편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田
■ 글 박창배 기자 / 사진 윤홍로 기자
시공사인터뷰
- 이 집의 주요 특징을 설명한다면
이 집은 우선 기존에 식당이 있던 자리라 조경시설이 잘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건축주도 기존 조경시설을 그대로 살려 달라고 요구했고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현관을 기준으로 우측은 사적 공간으로 구성했고, 좌측은 공용 공간으로 구성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실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했습니다.
- 설계·시공 시 어려웠던 점이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건축주가 주변 조경을 그대로 살려서 설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건물 크기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외관은 커 보이지만 실내는 좀 작은 편입니다. 또 거실도 넓게 해 달라고 요구해서 그렇게 했지만 상대적으로 주방이 좁게 나온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어려웠던 부분은 전체 공기가 4개월 정도 걸렸는데, 8월초부터 공사를 시작하다보니 비가 많이 와서 어려웠습니다.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건축구조 : 스틸하우스
·건축면적 : 총 면적 54평. 1층 - 35평, 2층 - 19평
·대지면적 : 270평
·내부마감 : 석고보드+실크벽지
·지붕마감 : 갈바륨 골강판
·외부마감 : 목재사이딩+드라이비트+갈바륨 골강판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난방시설 : 심야전기+기름보일러
·바닥마감 : 거실 - 온돌강화마루, 방 - 민속장판
·시공기간 : 2003년 8월∼12월
■ 설계·시공 : S.o.L(031-536-2141, www.theSoL.co.kr)
-
2004-06-25
-
-
귀틀집의 추억을 살린 여주 40평 황토주택
-
-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건축주는 10여 년 전, 이곳에 330여 평의 부지를 구입했다. ‘사업을 그만두면 전원에서 생활해야지’ 맘먹고 구입을 한 곳이다.
그런데 그 시기는 조금 앞당겨졌다. ‘주말을 이용해 전원생활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2002년 추석이 지나자마자 집 짓기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자연과 가까이 했던 때를 그리워하며 전원생활을 시작하지만, 직접 집을 짓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건축주는 어린 시절 귀틀집에서 생활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아버지가 직접 귀틀집을 짓는 모습을 봤던 어린 소년은 언젠가 나도 내 집을 직접 짓겠다고 다짐을 했고, 어느덧 오랜 세월이 지나 그 꿈을 이룬 것이다.
평소에 황토가 건강에 좋다는 말을 자주 접했던 터라 인터넷을 통해 황토집에 사용하는 자재 정보 등을 수집했다. 그래서 도자기를 주로 만드는 점질토로 외부를 마감하고, 각 방의 벽은 모두 한지를 이용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황토와 한지 등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현대 자재가 한데 어우러져 편안한 쉼터로 태어난 것이다.
주말마다 여행 오는 느낌
300여 평의 대지에 건축면적이 40평인 이 집은 방 2개와 거실, 화장실,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실 한쪽에 자리한 작은 공간은 매우 인상적이다.
벽의 높이를 허리쯤 오게 만들어 거실과 주방이 다 보이면서도 독립성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한쪽 벽면의 대형 창으로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집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겨울철에 바람이 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그야말로 시원한 산바람에 더위를 잊게 된다.
또한 주변에는 어우실낚시터와 오갑산, 골프장 등이 있어 언제든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고, 계절마다 바뀌는 산바람과 새벽녘 낚시터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면 주말여행이 따로 필요 없다.
또한 건축주는 “마당 한쪽에 텃밭을 가꿀 계획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주말농장을 따로 찾아갈 필요가 없는 거죠. 유기농 채소를 따로 사먹을 필요도 없고, 과일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다득이 되는거죠.” 라며 집을 짓고 난 소감을 전한다.
감기가 말끔히 떨어진 황토방
두 자녀 모두 외국에서 유학 중인 건축주 부부는 주말이면 이곳에서 크고 작은 모임을 갖느라 정신이 없다. 직접 지은 황토집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발걸음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안방은 전통 구들장을 들여 마당에서 군불을 때도록 했다. 구들장 위에 황토를 덮어 바닥을 마감하고, 내벽도 황토벽돌로 마감해 황토찜질방이 됐다.
한동안 감기로 고생했던 친구는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나니 기침이 싹 사라졌다’면서 ‘황토찜질방에 따로 갈 필요 없다’고 신기해했다.
마당에 자리한 아궁이는 가마솥이 걸린 재래식 부엌의 풍경을, 집 뒤편의 굴뚝은 금새 연기를 폴폴 내며 부엌에서 밥을 짓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건축주는 일상의 바쁜 시간을 잊고, 조용히 주말을 지내기 위해 황토집을 마련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 달에 반 이상을 이곳에서 지낸다.
설설 끓는 구들방에서 자는 재미와 주변을 정리하는 데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라일락 꽃향기에 흠뻑 취한 걸 보고 건축주는 그건 약과라며 아쉬워한다. 울타리가 따로 없는 이 집은 현관 밖이 모두 마당이다.
라일락 외에 산수유를 비롯한 앵두, 복숭아, 사과나무 등의 과실류를 심었으니 나중에 열매를 맺으면 다시 한번 오라는 초대장을 미리 받았다.
황토방에서 직접 잠을 자봐야 그 매력을 알 수 있을 텐데… 하며 재방문을 확인하는 건축주의 마음 씀에 고마운 인사를 남기고 돌아왔다. 田
■ 글·사진 / 조영옥 기자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관한리
·대지면적 : 330평
·건축구조 : 황토벽돌집
·건축면적 : 40평
·외벽마감 : 점질토
·지붕마감 : 아스팔트 슁글
·바닥마감 : 점질토, 황토
·난방형태 : 기름보일러 및 구들
·건 축 비 : 평당 400만 원
■ 설계·시공 : 직영
■ 황토벽돌 : 그린피시스(주) (031-773-2877 ~ 8, www.bsmb.co.kr)
-
2004-06-25
-
-
여유로운 공간 시야가 넓은, 평택 53평 2층 목조주택
-
-
경기도 평택시 지산동 소재 전원주택을 찾았다. 주변에는 창고형 건물이 군데군데 있지만, 마을 안쪽에는 하나둘씩 전원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 중 이미 입주를 끝낸 집도 있지만 푸른 잔디도, 화려한 꽃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볼 때 전원주택이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밝고 화사한 쌍둥이 집 한 쌍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건축주 김종길(39세) 씨와 부인 조은주(36세) 씨 그리고 초등학교 1, 2학년인 두 아들 태효와 민후가 살고 있는 집이다. 입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 집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제 막 전원생활을 시작한 젊은 집주인을 닮아서인지 풋풋한 생기가 묻어난다.
여유로운 전원의 삶을 찾아
"아파트 생활은 편리하지만 답답했어요. 특히 아이들이 자유롭지 못한 점이 그랬습니다. 좀 뛰거나 물건을 떨어뜨리면 아래층에서 바로 뭐라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같은 아파트 동으로 이사를 한 적도 있어요. 이제 그럴 일이 없어 너무 기분이 좋아요."
안주인 조은주 씨의 말이다. 건축주 가족은 10년 동안 아파트에서 전세 살면서 쌓인 게 많다. 아파트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내 집, 그것도 전원주택을 마련했으니 그 기쁨이야 짐작하고도 남는다.
건축주는 평소 대안학교에 관심이 많았다. 몇몇 뜻 맞는 사람끼리 대안학교를 만들려고 했을 정도다. 그 일이 뜻대로 안 되자, 답답한 학교생활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집에서라도 자유롭게 해주려고 전원생활을 택한 것이다.
건축주는 전원행을 결정하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2003년 11월 부지를 구입, 그해 12월 말 착공하여 3월 31일 입주하기까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그 과정을 볼 때 얼마나 아파트를 벗어나고 싶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일을 빨리 진행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이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당 80만 원 주고 구입한 부지의 지대가 워낙 낮았던 것이다. 그래서 성토(盛土)를 해야만 했는데 여기에 들어간 흙의 양이 자그마치 덤프트럭으로 400차였다고.
아직도 비만 오면 부지가 내려앉아 주말에는 흙을 퍼다 메꾸는 게 일이란다. 이러한 부지가 제대로 자리잡기까지는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공사기간은 3개월 정도 걸렸다. 12월 말부터 시작한 겨울공사였지만 건식공법인 목구조에다 설계 변경도 없었기에 비교적 짧은 기간에 소화할 수 있었다.
사전에 집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을 시간이 없었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다행히 전문가를 만나 일을 매끄럽게 진행했다.
효율적인 공간활용 시원스런 집
이 집은 총 면적 52평의 2층 목조주택으로 1층은 32평, 2층은 20평이다. 시멘트 하디사이딩으로 외벽을 마감해 분위기를 깔끔하게 연출했다.
지붕에는 검붉은 이중 그림자싱글을 얹어 전원주택의 멋을 한층 더했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현관문 주위는 인조석(매직스톤)을 붙였다.
이외에도 전면창 앞으로 널찍하게 펼쳐 놓은 덱(Deck)에서는 전원주택의 운치가 묻어난다.
이 같은 멋스러움은 실내 구조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우선 가족 공용공간인 1층 거실을 2층까지 오픈시킴으로써 전원에서의 여유로움을 강조했다.
1층에는 부부 공간을, 2층에는 아이들과 손님공간을 배치했다. 설계에 있어 활용성을 염두에 두고 독립성과 연결성을 적절히 조화시킨 것이다.
현관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계단실과 마주하게 된다. 계단 밑 자투리공간에는 다용도실을 내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이곳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서재와 침실, 우측에는 거실과 주방을 배치했다. 일단 동남향의 이점을 살려 거실에는 천장을 높이고 전면창을 내어 빛을 최대한으로 끌어들였다.
벽은 흰색 천연 페인트로, 천장은 루바로 마감했으며 가구는 최대한 줄여 시원스레 꾸몄다.
주부의 활동 반경을 고려하여 주방을 넓게 냈으며 그 옆으로 다용도실을 마련함으로써 동선을 줄였다.
부부침실은 독립성을 강조, 서재를 거쳐 들어가도록 했으며 별도의 드레스룸과 욕실을 배치하였다. 또한 각 방에는 공간 활용도를 염두에 두고 붙박이장은 설치했다.
이외에도 모든 연결공간의 문턱을 없애 청소와 이동에 있어 편리성을 가미시킨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2층은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배치하다 보니 다소 평이한 듯하다. 2개의 방은 계단을 통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시켰으며 별도의 욕실을 갖춰 독립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가족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며
“이곳에 살면서 무엇보다 아이들과 싸울 일이 없어서 좋아요. 아파트에서는 뛰지 마, 일찍 자, 이 시간엔 피아노 치면 안 돼, 뭐 떨어뜨리지마 등등 아이들에게 ‘∼하지 마라’는 얘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했다는데 그럴 일이 없으니까 저도 좋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해요.”
아파트에서 살 때는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는데 여기에서는 거리가 멀어도 서로 인사하고 먹을 것도 나눠 먹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몸은 더 바쁘다.
평택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건축주는 아파트에서 살 때는 8시 30분 정도에 일어났는데 여기로 오면서 5시에 일어난다고. 아직 집안 정리가 덜 됐기 때문이다.
정원가꾸기, 텃밭에 물주기 등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여유롭다며 좋아한다.
건축주는 가족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는 뜻에서 집에 이름을 붙였다. ‘건강한 집’이 그것이다. 옆의 집은 ‘SMilE house’로 지었다. 모양도 크기도 똑같게 두 채의 집을 지은 이유는 재테크를 위한 목적이다.
건축주가 2년 후에 외국으로 공부하러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기에 그때 안주인과 아이들의 생활비라도 조달하기 위해 한 채를 더 지은 것이다. 현재 여기엔 미국인 부부가 월 240만 원에 살고 있다.
건축주의 네 가족은 이곳에서 모든 생활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공기 맑고 조용한 이곳에 둥지를 튼 지 두어 달 남짓하기에 전원생활은 다소 서툴지만 그래도 생기는 넘쳐나고 있다.
■ 글|박창배 기자·사진|조영옥 기자
■ 인터뷰
강대영
“일을 할 때 종종 많은 사람이 구경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 ‘우리 집도 이렇게 지어 주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설계·시공사인 하얀울타리목조주택 기술부장 강대영(29세) 씨.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건축일을 시작했기에 나이에 비해 경력은 꽤 있는 편이다.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 또한 일에 있어 남에게 인정을 받을 때 가장 기분이 좋고 의욕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일이 너무 재미있고 적성에도 맞는다고.
이번 일을 하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다. 그래도 돌이켜본다면 외장이나 색상 등을 선택하는 데 있어 건축주가 너무 고르다 보니 시간이 지체돼 좀 애가 탔었다고. 그리고 건축주가 거실 천장이 너무 높다며 좀 낮춰 달라고 주문했는데, 강 씨가 보기엔 낮추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아 건축주를 끝까지 설득시켰다고.
당시에는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해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그 때 고집을 꺾지 않고 건축주를 설득시키길 잘한 것 같다고 한다. 건축주는 지금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평택시 지산동
·건축구조 : 목조주택
·건축평수 : 총 면적 53평. 1층 - 35평, 2층 - 18평
·대지면적 : 445평(1동 200평, 2동 175평)
·내부마감 : 실크벽지+온돌마루
·지붕마감 : 이중 그림자 아스팔트 슁글
·외부마감 : 시멘트 사이딩+인조석
·창 호 재 : 시스템 창호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난방시설 : 가스보일러
·바닥마감 : 온돌마루
·건 축 비 : 약 7억 원 (평당 330만 원)
·시공기간 : 2003년 12월 말∼2004년 3월 말
■ 시공 : (주)하얀울타리 목조주택(033-744-1470)
-
2004-06-25
-
-
[전원일기] 내 시골살이에 정겨운 이웃
-
-
“영림이 엄마, 오늘 우리 애들 좀 부탁해. 유치원에 전화해놓을게.”
“알았어요. 걱정하지 말고 볼 일 잘 보고 오세요.”
이렇게 싹싹하게 승낙을 하며 우리 아이를 봐주는 여인은 우리 이웃, 영림이 엄마다. 영림이네는 우리 집과 차로 15분 쯤 가는 거리에 있지만 시골 마을에서는 그 정도쯤은 이웃으로 친다.
그 집에는 우리 집 남매와 동갑내기 친구인 7살, 5살의 영희, 영림이 자매와 동물과 자연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영림이 아빠, 그리고 영림이 엄마 등 네 명의 식구가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다.
영림이 엄마는 유아 교육을 전공한 재원이니 내가 마음을 놓고 아이들을 부탁하곤 한다. 시골에 살게 되면서 이렇게 소중한 이웃이 생기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험난했던 시골살이
남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선택한 우리의 시골살이는 고목들만 성성한 숲에 갇혀 그 그늘 아래에서 단조롭고 정체된 생활로 시작되었다.
그 당시 한 살, 세 살짜리 남매의 엄마였던 나는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땡볕 아래인지 그늘 속인지 못 가릴 정도로 정신이 없었지만 화려한 직업과 마당발 인맥을 자랑했던 남편은 고요한 호수에 떠 있는 조각배 같은 생활에 쉽게 싫증을 느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떠나온 도시를 다시 찾아가 밤새 놀다온다. 그런 다음 날이면 나는 늑대가 물어가도 모르는 산골짜기에 아내와 아이들을 팽개쳐 놓고 밤새 놀다온 무심한 남편을 향해 아이들과의 전쟁으로 쌓인 스트레스성 바가지를 하루 종일 긁는다. 초창기 우리의 시골 살이는 이러한 불협화음이 연속이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라자 우리는 온 가족이 도시로 나가서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오는 일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단지 비슷한 향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워 우리는 한쪽 발은 시골에 다른 한쪽 발은 도시에 걸치는 어정쩡한 절름발이 생활을 했다.
하지만 단지 놀기 위해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밤길을 자주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 사람들과는 원만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우리가 예우를 갖춰야 하는 어른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아직도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우선으로 하는 관습이 몸에 밴 그들 사이에 우리가 끼어들 자리가 자주 마련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근처에 어울릴 만한 또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문화적 환경을 공유할 만한 이웃들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시골 살이는 조금씩 진이 빠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경쟁 상대도 없고 의지할 상대도 없는 우리의 시골 살이는 초반부터 김이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림이 가족과의 만남
큰 애를 어린이 집에 보내게 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가까운 곳에서 비슷한 사람들과의 교류에 물꼬를 트게 되었다. 알고 보니 바로 우리와 같은 면에 사는 영림이네는 우리와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서울에서 귀향을 한 가족이었다.
여자들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근육질을 자랑하는 바디빌더 경력에 ‘운동 처방사’ 라는 전문직을 버리고 도시 탈출을 감행한 영림이 아빠는 애견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알래스카 설원에서 썰매를 끄는 말라뮤트와 시베리안 허스키를 주로 키우면서 거위와 칠면조, 염소, 토종닭도 키우는 동물 농장주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영림이네서 노는 동안은 그림책과 방송에서 보던 동물들을 직접 보고 만지는 체험을 저절로 하게 되는 셈이다.
얼마 전에는 영림이 아빠의 특별 이벤트가 있다는 초청에 놀러 갔더니 킹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라뮤트에 썰매를 끌게 해서 온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마당에서 태워주고 있는 것이었다.
송아지만한 덩치에 사자의 갈기 같은 털을 휘날리며 시멘트 바닥에서 썰매를 끄는 말라뮤트 킹의 위용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만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까무러치게 좋아하는 모습에 내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어릴적 <눈의 여왕>이라는 동화를 읽으며 이글루가 있는 북극의 설원을 개 썰매를 타고 달리는 상상을 했던 한 장면이 어설프게나마 영림이네서 우리 아이들에게 재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무렵, 영림이네에 맡겨 놓은 아이들을 데리러 갔더니 농장 뒤쪽 둠벙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의 엉덩이가 보이고, 그 옆에는 바가지를 들고 있는 영림이 아빠의 모습도 보였다.
시골살이 백배 즐기기
“엄마, 이게 앞다리가 쑥~, 뒷다리가 쑥~ 하는 올챙이래. 엄마는 올챙이 알아?”
올챙이라는 동요가 유행하고 있고 한 발자국만 나서면 올챙이가 널린 환경에 살면서도 미처 올챙이를 보여주는 것까지는 생각을 못하는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대신하듯 영림이 아빠는 바가지로 올챙이를 잡아서 동요처럼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선이한테 거위를 보여줬더니, 황금 알을 낳는 거위냐고 하더라구요. 동화책을 많이 읽어 준건가요? 비디오를 많이 본건가요?”시골에 살면서도 실전보다는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습관이 딸아이의 거위 이야기로 다시 한번 탄로 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영림이 엄마가 나한테 큰 바구니를 안기더니 따라 오란다.
우리 아이들까지 줄줄이 영림이 엄마를 따라 간 곳은 토종닭을 키우는 닭장으로 구석에 뒹구는 달걀을 줍는 것이었다. 내가 닭 배설물 냄새에 주춤거리며 알을 주울 때마다 닭이 부리로 쪼을 것 같아 은근히 겁에 질려 있는 사이 아이들은 달걀을 잘도 주웠다. 우리 아이들이 영림이네서 이런 식으로 놀 때면 좀처럼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저기 두릅도 있는데 좀 따다가 된장 끓여 먹어요. 얼른 자두가 익어야 따주는데...”
항상 아이들을 맡기는 신세를 지는데도 영림이 엄마는 아까 주운 달걀에, 두릅, 버섯 등을 친정에 온 것처럼 차에 한 가득 실어 준다. 나 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속이 깊고, 인정이 많지만 말은 조신한 영림이 엄마다.
우리와 영림이네가 다른 점은 시장을 가지 않고도 농장 구석구석마다 자급이 가능하도록 꾸며놓고 시골 살이를 이렇게 백배 즐길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한번 가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시작했지만 영림이네는 도시나 시골 이런 이분법을 초월해 그냥 자연스럽게 살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 부부보다 젊은 영림이네가 시골에서 사는 법은 정말 한 편의 그림 같다.
누구나 가슴 속에는 이런 시골 살이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일을 영림이네는 하고 있다.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아쉬운 부탁도 할 수 있는 이웃이 있어서 우리의 시골살이는 그리 삭막하지 않다.
이번 주말에는 영림이네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된장 삽겹살 숯불구이를 함께 먹으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어깨가 활짝 펴질 날을 이야기 할 것이다. 田
■ 글쓴이 오수향 (ocho290@hanmail.net)
글쓴이 오수향은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 살면서 글쓰기의 꿈을 좇아가고 있는 주부입니다. 공주 KBS,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수향의 시골살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메일을 보내보세요.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답니다.
-
2004-06-25
-
-
김창범의 실전 펜션강좌-3
-
-
문화운동으로서 펜션
지금부터 15년 전인가, 스코트랜드의 북쪽 지역인 하이랜드 아래쪽을 여여행한 적이 있다. 글래스고우에서 열차를 타고 한때 괴물의 출현설로 세계적인 화제에 올랐던 네스호의 북쪽 끝 도시인 인버네스를 거쳐 서북쪽의 벤(Ben)이라고 불리는 민둥산들을 둘러서 돌아오는 2박3일의 여행이었다. 여기저기 무너진 낡은 성채(城砦)들, 크고 작은 로크(Loch), 즉 호수들이 있고 암석투성이의 메마른 산들, 끝없어 보이는 황무지 지역들이 스코틀랜드의 전형적인 풍광(風光)을 보여주었다.
여행을 하면 늘 관심거리는 잠자는 곳과 음식이 문제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므로 이 문제는 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그래스고우를 출발하기 전에 숙박지를 미리 예약했다. 영국의 전형적인 숙박 형태는 이른바 ‘비엔비(B & B ; Bed and Breakfast )’였다. 즉, 침실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집인데, 비교적 저렴하고 깨끗한 곳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았다. 그래서 필자 역시 비엔비의 한 곳을 선택했다.
첫날 숙박한 곳은 인버네스에서 뚝 떨어진 곳으로 네스호가 내려다보이는 전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자그마한 시골집인데, 돌담에 둘러싸여 마치 작은 고성(古城)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전형적인 펜션이었다. 단층집으로 객실은 많지 않았다. 침실은 아주 소박했고 가구들은 낡고 오래되었지만 나름의 기풍이 느껴졌다. 운영하는 50대 아주머니는 “이 집은 아주 오래된, 아마도 1세기 가까운 농가” 라고 말했다. 집을 나서면 네스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으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네스호의 펜션이 지금껏 나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이곳에서 스코트랜드의 특유한 분위기, 그 문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식의 전형적인 아침식사를 통해서도 그러했다. 식탁과 그릇, 거실의 장식들, 주인의 복장과 말씨 … 등 이 모든 것이 이방인이 그곳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데 충분했다.
문화운동으로서 펜션
펜션은 이처럼 삶의 문화를 체험하는 곳이다. 스코트랜드 아주머니는 여행객에게 무엇인가를 억지로 보여주려 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삶의 한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 소박한 마음과 분위기는 오히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다. 이것이 바로 문화라는 이름으로 펜션이 전해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므로 펜션은 우리 삶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문화의 전령사’라는 작은 사명이 여기에 부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기 시작한 펜션 바람을, 우리만의 삶의 문화를 서로에게 전해주고 공감하는 사회·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도 마치 야생초처럼 자라온 다양한 문화의 싹들이 펜션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저마다 꽃 피우기를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교류의 영역을 넓히며 이웃나라를 위한 지역문화 공동체의 현장으로서도 그 잠재된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펜션이 세련되고 깊이 있으며 품격까지 갖춘 ‘고급 문화운동’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펜션 주인은 바로 이 문화운동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그저 돈벌이 수단 정도로 전락하는 맹목적인 펜션이어서는 안 된다. 펜션은 이제 우리 생활의 새로운 문화적 표현의 주체라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삶의 품격과 여유를 표현하는 문화의 전형으로 발전할 때, 펜션은 사업으로서의 가치 또한 높아갈 것이다.
-
2004-05-29
-
-
김창범의 실전 펜션강좌-4
-
-
펜션,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최근 펜션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펜션에 대한 순기능적 측면보다는 역기능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듯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펜션의 사회·문화적 영향과 관련하여 공익적 의미와 가치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펜션이 가진 삶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부동산 가치나 고수익에 대한 기대로 흐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물론 이까짓 펜션 사업을 갖고 너무 거창하게 접근한다는 핀잔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 달린 사업이라면, 아무리 그 의미를 확대해도 부족하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펜션을 계획하는 선의의 투자자에게 ‘첫 출발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적어도 ‘문화의 전령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 펜션 사업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다름아니라 먼저 ‘당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에서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바로 펜션의 출발점이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런 일이다. 더구나 노년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펜션 사업은 ‘가장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하고, 펜션 사업을 통해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소망했던 일’을 해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간,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 보라. ‘나는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어떤 펜션 주인하고 전화상담을 한 적이 있다. 이 사람은 나이 지긋해서 노후를 준비하겠다는 마음으로 강원도 원주시 문막 가까이에 멋진 별장식 전원주택을 한 채 지었다. 몇 년 전이니까, 펜션에 대한 개념이 알려지기 전이다. 서울이 가까우니 주말에나 한 번씩 들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집은 잘 아는 건축업체 사람이 지었으니, 완공 후에 열쇠만 달랑 받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름다운 전원주택처럼 아름다운 휴식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귀찮고 성가신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조금 떨어진 마을에 사는 이장은 물론, 그 동네 사람들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일도 수월치 않았고, 집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몇 차례 도둑까지 맞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곳은 아름다운 전원이기 전에 여느 데와 다름없이 사람 사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IMF 때 자신이 경영하던 사업체를 정리하고, 이 시골 동네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런 저런 복잡한 마음으로 시골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냥 놀 수는 없고 해서 전원주택을 고쳐서 펜션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펜션이 과연 내가 할 만한 사업인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게 여인숙을 하는 것이지, 펜션은 무슨 펜션이냐” 하는 갈등에서였다. “나이도 새파란 젊은이에게 허리를 굽신거리며 방을 팔아야 하니, 이거야말로 비참하다” 고 하소연을 했다. 이 사람은 무엇이 문제인가? 펜션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도 부족한 데다가, 펜션이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었다. 남들이 하니까 무턱대고 나도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달려들었으니, 그 결과는 판정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펜션은 바로 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남이 권유한다고 해서 시작할 일이 결코 아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좋아할 만한 일이라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 때 비로소 시작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이어야지 마음에서 ‘어떤 펜션을 해야겠다’ 라는 나름의 사업 윤곽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제 펜션을 ‘마지막 사업’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려 한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정말 ‘내가 좋아할 만한 사업인가’, ‘나의 마지막 모든 것을 던져도 좋을 만큼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인가’를 조용히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
200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