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구수리에서온편지] 해뜨는 동쪽나루 정동진에서
-
-
구·수·리·에·서·온·편·지
해뜨는 동쪽나루 정동진에서
사람 사는 일이 이런일 저런일 겪으면서 삶의 깊이를 다해가듯, 늙은 호박을 말리는 과정도 이와 비슷해서 울타리에 척 걸쳐놓은 호박고지가 낮에는 투명한 햇살에 마르고 밤에는 찬서리 맞으면서 얼었다 녹았다 하더니 호박 특유의 향과 단맛이 깊게 배었습니다.
제맛이 톡톡히 든 호박고지와 밤새 물에 불린 쥐눈이 콩을 곱게 빻은 쌀가루에 함께 넣어 얼기설기 넉넉하게 버무려서 시루에 찐 후 정다운 사람들에게 보낼 것을 알맞게 가늠해 놓고, 구수리 어른들과 나누어 먹는 것으로 해거리를 대신 하였습니다.
아이가 푸르른 나무처럼 늠름하게 자라 청년이 되고 어린 시절을 뒤돌아 보게될 때, 구수리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이 그리운 이름으로 마음속에 자리잡길 바라며 용기 내어 시작한 이 곳 생활도 어느덧 햇수로 삼년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어설프게 시작한 시골생활이 한켜한켜 시루에 떡고물을 얹듯 하루하루 보태져 제법 이숙해져서 이제는 우리가족도 구수리사람이 다 된 듯합니다.
산과 들을 벗하며 살아가는 일이란 아주 특별해서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속에서도 순간마다 생명에의 외경심을 느끼게 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축복입니다.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집안일을 잠시 내려놓고 정동진에 다녀왔습니다.
지명(地名)이 말해주듯 서울을 기점으로 정 동쪽 방향으로 자를 대고 줄을 쭉 그으면 일직선상에서 마침표 찍듯 해안선에서 만나게 되는 바닷가 마을이 있습니다.
정.동.진.
언뜻 들으면 멋진 배우 이름 같기도 하고, 한창시절 덩치만 크고 순박했던 친구이름 같기도 한, 깨끗이 세수한 얼굴처럼 바닷바람에 씻긴 푸른 깃발이 높이 펄럭거리고 있을 것만 같은
상쾌한 느낌이 드는 곳.
청량리에서 강릉을 목적지로 정하고 출발한 야간열차가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해안선의 등줄기를 따라 파도소리를 들으며 거쳐가게 되는 길목인 이 곳은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철길이 해안선에 닿아 있어 기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칠 때면
손에 잡힐 듯 바다가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 말고는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여느 바닷가 마을과 별로 색다를 것이 없는 어촌마을 입니다.
하루에 한두번 타고 내리는 손님이 있을 때만 완행열차가 잠시 설 뿐 무심코 지나쳤던 나루는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모험을 즐기는 매니아들 사이에서 지명이 오르내리기를 몇몇해, 해를 거듭하면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여행자 가슴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각인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음양의 이치는 예외가 없듯이 이 조용하던 마을도 세상바람을 비껴가지 못하고 한해가 다르게 아름다운 풍경에 상처를 내고 있지만 등푸른 생선처럼 펄떡거리며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는 여전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그나마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이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일생동안 가슴에 품고 살아갈 마을의 보석 같은 풍경들이 그들에게 있어서 풍경 이상의 의미를 지니듯 이제 정동진은 고향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어떤 인연으로든지 이 곳을 거쳐가거나 사랑하게된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간직되어 생각만 해도 위로가 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정선의 두타산 기슭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동해를 향해 미끄러지듯 가파르게 나 있는 길을 따라 달려가 만난 바다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서부터 하늘인지 가늠치 못할 정도로 수평선은 아득했고 칼바람과 함께 솟구쳐 오른 파도는 첼로소리를 내며 옥색의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연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다녀가게 된다는 정동진에서 겨울비를 맞으며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수평선을 바라보는 연인들을 미소로 바라보며 중국시인이 썼다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사랑을 얻는 것도 고통이요, 사랑을 잃는 것도 또한 고통이라는 한 수필가의 글에 인용된 이토록 매혹적인 싯귀는 그 함축적 의미와 함께, 젊은 시절 오월의 바다에 가서 모래 위에 이 시를 쓰고 돌아섰다는 수필가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있습니다.
밤바다에 나가 보았습니다. 겨울비는 걷히고 파도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습니다. 어느새 하늘에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세월을 가로질러 날아온 별빛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고개를 젖히고 북극성을 찾아보았습니다. 밤바다의 어부들에게 등대와 같은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별.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바닷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
밤하늘의 북극성이 스스로 빛날 때 바닷사람들에게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는 길 안내자가 되었듯이 자연 속에서는 스스로 빛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스스로 그러하다는 自. 然. 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 우리가 곧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산다면, 있는 곳이 어디든 북극성과 같이 빛나지 않으랴, 하고 생각해 봅니다.
바닷바람에 후련하게 마음을 씻어볼 일입니다. 파도소리에도 파묻히지 않는 갈매기소리를 들으면서 삶의 고단함을 툭툭 털어 버리고 바다처럼 깊고 푸른 가슴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올 일 입니다.
찬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맞닿은 어깨가 의지가 되어 수평선을 바라보던 연인들처럼 동쪽나루 정동진 밤바다에서 우리가 이름 붙여준 북극성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그리운 이름으로 남기를 소망해봅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바람. 별. 꽃나무 아름다운 구수리에서 김해경
-
2003-09-04
-
-
눈 온 날의 아침
-
-
눈 온 날의 아침
모두 바람이 되어 거리로 나설 때
나 홀로 고요하였다
바위처럼 땅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승천하던 꿈들 그 하늘의 언저리에서
새순처럼 자란 날개를 접고
아무 골짜기 아무 산등성에서
밤 새워 잎새가 되고 꽃잎이 되어
풀처럼 나무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수없이 긴 겨울밤 내내
꿈이 되어 오르다
사람 사는 골짜기 아침나절에
홀로 내려 내리고 내려
꽃처럼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이제는 온통 고요하기만 했다
밤새 눈이 내린 아침의 세상은 온통 고요했다. 사람이 살아도 차가 다녀도 세상은 고요할 뿐이었다. 이렇게 눈이 내린 아침에 광주군 오포면 신현리 골짜기를 지나다 집앞의 눈을 쓸고 있는 최창완·장정희씨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밤새 쌓인 눈을 쓸어 내기 아까워 그 눈들 하나하나를 아껴가며 마당을 쓸고 있었다. 서울서 엔틱사업(골동품 수집)을 하던 최창완씨는 그동안 자신이 모은 물건들로 박물관을 열 생각으로 이곳의 부지 4백평을 구입하여 1백평 규모의 집을 짓고 있다. 1층은 박물관겸 레스토랑, 2층은 살림집인 이 집은 시스모 공법으로 지어지고 있는데 외부공사는 모두 마무리 되었고 현재 내부를 마무리 하는 중이다. (이 집의 내부공사가 완성되면 전원주택라이프 2월호에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글·사진/ 김경래
-
2003-09-04
-
-
김경래의 시로 쓰는 전원풍경
-
-
김경래의 시로 쓰는 전원풍경
사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똑 같은 말이었다.
살면 살수록 그렇듯 똑 같아 지는 것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었다.
먼 길 가는 바람들이 나뭇가지에서
혹은 풀잎에서 깃을 치는 저녁이나
눈이 내려 그들끼리 살아갈 둥지가 되는
그런 아침을 살면서도
습관처럼 누구를 기다렸다
일처럼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했다
사는 것이 차츰 기다림을 잃어가는 것이라야
그래야 쉽게 사는 것일 텐데
살아내면 낼 수록
점점 기다려야 할 것들이 많아 지는 것은
오히려 행복한 일이었다
이렇듯 눈이 내리는 날
더 크게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글·사진/ 김경래
-
2003-09-04
-
-
[구·수·리·에·서·온·편·지] 겨울 단장
-
-
구·수·리·에·서·온·편·지
겨울 단장
산골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진하게 느낀 눈이 많은 겨울이었습니다. 새벽녘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인기척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겠지 하고 살며시 문을 열면 어김없이 마당에는 눈이 푹 쌓여 있었습니다.
눈 내리는 모습은 더 할 수없이 고요하지만, 결코 소리 없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 살 남짓 어렸을 적에, 손꼽아 기다리던 방학이 되면 강원도 산골에 계신 친척 아저씨 댁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눈 고장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던 겨울이면 폭설 때문에 마을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 며칠씩 끊어져 걱정하시던 어른들의 모습과, 친척언니와 오빠들이 재미있게 만든 나무썰매에 동생들을 태우고 힘껏 끌어주던 일이며, 눈썰매가 비탈길을 내려올 때 가속도가 붙어 저도 모르게 눈을 찔끔 감아야만 할 정도로 아찔하며 붕 떠오르던 느낌, 눈밭에 빠져 허둥대는 산토끼를 쫓아 눈 속을 뛰어다니며 옷을 적시던 일들이 함께 떠올라 생각할 때마다 잔잔한 기쁨을 줍니다.
옥수수 농사가 많았던 아저씨 댁은 커다란 드럼통마다 옥수수 낱알을 가득 담아 놓고 겨울이면 맷돌에 타서 작두로 썰어놓은 수수깡이나 콩깍지와 함께 가축 먹이로 주었습니다. 맷돌에 탄 옥수수를 마당에 뿌려 놓으면 어미 닭과 병아리들을 몰고 어디선가 나타나 정열적으로 모이를 쪼아먹던 기품 있는 수탉과 포르르 날아든 오종종한 참새 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일.
외양간에는 송아지가 오빠의 이름을 목에 걸고 침을 흘리며 되새김질을 할 때마다 하얀 입김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송아지를 돌보는 것은 오빠의 몫이 되었고 어미 소가 되면 실한 값을 받고 팔아 학비로 긴히 쓰곤 했습니다. 소 한 마리가 제 몫을 단단히 하던 때였지요. 팔려간 어미 소 대신 송아지가 다시 들어올 때까지 텅 빈 외양간을 바라보던 오빠의 마음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짐작이 되곤 했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더운물을 퍼다가 시린 손발을 담그던 기억.
하루종일 맷돌에 탄 옥수수를 가마솥에 넣고 밤새 고아 엿을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
이제나저제나 엿이 고아지길 기다리며 아궁이에 불을 때시던 할머니 곁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든 새벽녘, 쩍쩍 숟가락으로 조청 찍어 먹는 소리에 선잠이 깨어 겨우 눈을 뜨고, 고운 콩가루를 손에 묻혀가며 적당히 고아진 엿에 볶은 콩을 섞어 언니 오빠들과 둘러앉아 솜씨를 다해 보름달처럼 둥글고 도톰한 모양의 엿을 빚어 가지런히 상에 올려놓던 그때, 힘으로만 농사를 짓던 때라 어른들은 사시사철 들일에 매여 아이들까지 알뜰하게 챙길 손길이나 여유가 없었지만 연년생으로 고만고만하던 형제자매들은 자연과 더불어 올곧게 자랐고 시간의 강물은 어김없이 흘러, 이제는 모두 가족을 거느린 가장들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지혜롭게 거쳐온 시간들이라고 따뜻하게 기억됩니다.
혹독하게 추울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눈이 내린 날은 며칠동안 푸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며칠사이로 다시 눈이 쏟아지고 해서 햇살이 못 미치는 산골짜기에는 무릎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습니다. 털빛이 고운 족제비나 다람쥐, 청솔모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눈 위에 도장처럼 찍힌 토끼나 노루의 발자국까지 자주 눈에 띄자 우리 마을에 야생동물이 건재하고 있다는 흐뭇한 마음도 잠시, 겨울이 깊어지면서 늘씬한 사냥개를 앞세워 새를 잡으려고 이 골짜기까지 나타난 엽총을 든 사람들의 모습을 간간이 보게 되자 걱정이 앞섰습니다.
산에 오를 때면 사람 발소리에 놀라 자신의 존재를 이미 죽이고도 작아 질대로 작아져 딱 숨을 멈추고 웅크리고 있는 잿빛토끼와 마주치면 나도 놀라고 저도 놀라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산새를 훤히 알게 된 후, 어디쯤 덫이 놓여있는지 올가미가 쳐져 있는지도 짐작하게 되어 눈에 띄는 대로 치워주지만 며칠 후면 같은 자리에 다시 놓여진 덫이나 올가미를 발견할 때마다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 잔인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연민이 들기도 합니다.
다람쥐나 청솔모가 앙증스런 앞발로 눈을 헤치고 낙엽사이에서 찾아낸 마른 알밤을 까는 모습을 잠시라도 눈 여겨 본 적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먹이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온 노루의 겁먹은 눈빛을 보았다면, 제 아무리 백발백중의 사냥꾼이라 하더라도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를 향하여 함부로 총을 겨누지는 못 할거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폭설이 잦아지자 남편은 야생동물들을 위해 군데군데 먹을 것을 놓아두었습니다. 마당에도 한웅큼 모이를 뿌려 놓기가 무섭게 어떻게 알고 날아오는지 여기저기에서 새들이 날아와 앉습니다. 눈 속에서 미처 먹이를 찾지 못한 동물들이 지혜롭게 이 겨울을 견뎌낼 수 있기를 조심스레 지켜봅니다. 밭에 곡식을 가꿀 때에는 꼭꼭 묶어 놓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집 강아지 또또도 겨울이 되어 자유롭게 풀어놓자 지도 사냥개인 냥 이 골짜기 저 골짜기 누비고 다닙니다.
하루는 아이와 함께 산에 오르면서 토끼 발자국을 따라 가 보았습니다. 발자국은 등성이를 벗어나 골짜기로 접어들었고 낙엽으로 살짝 덮어놓은 노루 덫을 보지 못하고 그만 발을 디뎠습니다. 그날 따라 두꺼운 가죽 털 장화를 신은 덕에 신발 끝 부분만 끼어 위험은 면했지만 앞서 달리던 또또가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에요. 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느새 의젓함이 엿보여 한편으로는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길에서 마주친 사냥꾼들이 "꿩이 많이 보입니까?" 하고 물으면 "전혀 보이지 않던데요." 하고 짐짓 너스레를 떨지만 겨울잠이 든 개구리나 미꾸라지를 잡아 보신하겠다고 논두렁의 흙을 뒤집거나 개울가의 돌을 헤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할말이 없어집니다. (정말 정이 뚝 떨어집니다.)
우리의 삶 역시 자연의 한 뿌리라는 것을 잊은 채, 우리가 필요한 때만 자연은 의미 있는 것이 된다는 인간중심주의적 이기심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런지요. 재미로 혹은 고상한 취미정도로 별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이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스스로를 해치고 결국 우리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가리라는 것은 예정된 일인데 말입니다. 단지 나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부터 조절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을 갖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또 밥그릇 주위에 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한바탕 먹이를 쪼아먹고 날아갑니다. 한 두 마리가 날아와서 먹을 때에는 한걸음에 쫓아가며 왈, 왈, 왈 짖어 대던 녀석이건만 새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올 때는 차마 짖지도 못하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답니다.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으로 저렇게 많은 새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구나!' 하고 제 딴에도 잠시 생각하는 걸까요??
바람. 별. 꽃. 나무 아름다운 구수리에서 김해경
-
2003-09-04
-
-
전원에서 온 한편의 시
-
-
전원에서 온 한편의 시
멍석 몇 마름 속에
시·김유신
恨 서린 골동품 같은
멍석 몇 마름을 샀다.
자식 따라서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땅을 떠나는
이웃 마을 노부부
시골집을 몽땅 정리하는 과정에
멍석 몇 마름을 사왔다.
한결같이
老부부 나이만큼 크게 쓰잘 것 없는
멍석마름마다 허리가 구부러진
쇠잔한 꼴들이다.
자식 따라서
서울 위성도시로 떠나가는
정든 고향땅을 떠나야 하는
老부부의 때묻은 농가구는
이웃에게 넘겨 주며
고향땅을 떠나야 하는
요즈음 세태에 밀려
한 올 한 올 사랑방에서엮어낸
혹은 여름밤 모기불 속에 엮었을
멍석 몇 마름을 보면서
햇곡식을 풍요롭게 말려
자식들 학비 조달 끝에
이제는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변하여
늙으면 고향땅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늙으면 도시로 떠나야만 하는
세상살이
몇 마름 멍석의 운명도 전전하게 되었다.
요즈음에는
가마니 구경도 못하는 시대에
허리가 구부러진 멍석이면 어쩌랴
쇠잔한 멍석 마름이면 어쩌랴
옛날에는 머슴꾼들이 짧은 여름잠을 통하여
주인에게 백중 장날까지 엮어
선물하던
멍석들의 시대는
세월만큼 허리가 구부러진
멍석들이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한쪽으로 잘 쌓으며
한 시대 막을 바라보게 된 날이다.
-
2003-09-04
-
-
[구·수·리·에·서·온·편·지] 양을 잃어버린 목동
-
-
구·수·리·에·서·온·편·지
양을 잃어버린 목동
작가의 개성과 철학이 함축된 만화 한 컷이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은 때로는 핵심을 꿰 뚫는 예리한 관찰력과 더불어 그 어떤 것에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대만 출신의 작가 채지충의 만화를 보면 그 화필의 섬세함과 경쾌한 텃치가 범상치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국고전을 바탕으로 작가 나름대로 현대인의 일상사에 빗대어 넌지시 제시하는 비유들은 고전이 가진 핵심을 독자로 하여금 재미있게 읽는 가운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친화력이 높은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그림으로 해석을 시도한 중국 고전을 읽으면서 해학적인 표현과 탁월한 해석에 웃음을 머금게 되고, 웃음 끝에는 고전 내내 흐르는 옛 선인들의 빛나는 지혜와 향기로운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채지충의 만화 고전 장자 서문에 그의 벗이 얹은 글을 적어봅니다.
인생길은 걸어감에 있어서 누구나 나름의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몰고 있는 차는 모두 다르다. 어떤 차는 의젓하게 전진하여 언제든지 멈출 수 있고, 달리면서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하고 때로는 쉬기도 하여 심신을 회복해 가며 달려, 끝내 성공의 넓은 길로 접어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혹은 중도에서 험난한 길로 접어들기는 했지만 지혜를 발휘하고 신중을 기하는 마음으로 운전하여 끝내 험난한 고비를 넘기고 새로운 길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비록 많은 타격과 실패를 겪기는 해도 결국 성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운전하고 있던 차에 쓸만한 브레이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때에 깨어나 즉각 멈추어서서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는 마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 경주마냥 위태롭기 짝이없다. 각양각색의 자동차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시합 전에 차의 상태를 검사해 보지도 않은 채 출발한 경우는 달리는 동안에도 마음이 초조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를 것이다. 꼭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앞선 경우에는 규칙을 어기고 속력을 내어 달리다가 영원히 먼저 앞서가 버릴 수도 있다. 자기의 능력은 모르고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 방향을 잃어버리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근본과 결말이 뒤바뀌어 허세를 부리다가 세상의 큰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실 누구나 인생의 훌륭한 운전자들이다. 그러나 아깝게도 브레이크가 없거나 있어도 쓰려고 하지 않거나 쓸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물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고 용감하게 전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때에 차를 멈출 줄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장자 철학을 브레이크 철학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와 같은 브레이크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수많은 풍랑과 충격 속에서도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두가 장자 철학이 준 선물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꿈을 먹고사는 동물이라는 말처럼 풋풋한 소년에서 황혼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꿈꾸는 내용이 조금씩 바뀌어 갈 뿐 우리는 평생 꿈을 간직하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이는 꿈을 곱게 간직만하고 있고, 더러는 그것을 꺼내어 하루하루 소신껏 실현해 나가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겠지요. 종종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까지도 도전으로 삼고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은 일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그들이 뿜는 열기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유쾌하게 하고 활기에 넘치게 하지요.
팔 벌리면 껴안을 수 있을 만큼 아담한 봉우리에 불과해 보이는 장군봉이 어디에서부터 일년 내내 맑은 물을 흘려보내는지 생각할수록 신비롭기만 합니다. 장군봉 바로 아래쪽 양지바른 산 기슭에 새 식구들이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산책길에도 무심코 지나치던 언덕을 이사소식을 들은 후 기쁜 마음 으로 자세히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식구들의 안식처로 정을 들이게 될 터는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어 다시 다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앞이 탁 트여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전망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자연속에 동화되어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현실적인 이런저런 이유로 정년을 앞두거나 홀가분한 나이가 되어서야 누리게 되는 꿈의 전원생활에, 우리 마을에서 가장 젊은 가정이 될 386세대의 가장이 합류하게 된 것은 참으로 흐믓한 일입 니다. 곧 가까운 이웃이 될 그들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아름 답게 바라보는 것은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쓸만한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어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지혜, 제때에 멈출줄 아는 용기, 그리고 꿈을 현실로 행복하게 실현해 나가는 분명한 의지를 가진 특별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차근차근 계획한대로 지금쯤 포천의 통나무집 짓기 교실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손수 집을 지으려고 공부하며, 그의 성품대로 정성을 다하고 있을 이 젊은 가장에게 저희 가족의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 남풍에 매화 꽃향기가 묻어 올 때쯤, 구수리에도 민들레꽃, 제비꽃, 꽃다지, 구슬봉이 그리고 솜털이 뽀송송한 솜나물 꽃이 눈길 닿는 곳마다 화사하게 피어나겠지요.
들꽃과 함깨 태어나 장군봉 아래 아름다운 마을에서 맑은 햇살과 들꽃향기와 더불어 이쁘게 커 갈 아직 이름짓지 않은 귀여운 아기에게 사랑의 인사를 보내면서 장자의 양을 잃어버린 목동의 이야기로 글을 맺습니다.
양을 잃어버린 목동
하, 은, 주 삼대 이후, 천하에는 사물로 인해 그 천성을 바꾸지 않은 자가 없게 되었다.
즉 소인은 재물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선비는 명예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대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고, 성인은 천하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리게 된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결과 는 같다.
장과 곡은 함께 양을 치다가 똑같이 양을 잃어 버렸다. 장은 책을 읽다가 양을 놓쳤고 곡은 도박을 하다가 양을 잃었는데 두 사람의 행위는 다르지만 양을 잃은 것은 같다.
그런데 혹시 양을 훔쳐가는 세월의 바람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바람. 별. 꽃. 나무 아름다운 구수리에서 김해경
-
2003-09-04
-
-
시공업체로 부터 즐거운 꾸중 들으며 지은집
-
-
나의 집 짓기 경험
"시공업체로 부터 즐거운 꾸중 들으며 지은집"
"자재 몇개 빼고 집지었으면 벌써 빌딩 올렸을 거요"
--------------------------------------------------------------------------------
보통 사람들의 경우 집을 짓는다는 것은 자기재산의 전부를 투자하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에서 중요하고 큰 일이다. 그런 대역사에서
건축업자를 잘 못 만나면 자신의 재산을 몽땅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건축주 자신은 물론 가족들이 받는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그래서 건축업자의 양심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0년 동안 전원주택 꿈을 키워오던 건축주 김대환씨가
전북 임실에서 집을 지으며 건축업체를 잘 못 선정해 고생하였던 일과 그후 새로 만난 시공업체로 부터 감동을 받으며 집을 완성한
내용의 글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부로 보내왔다.
본사 편집부는 이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한 후 집을 지으려는 건축주는 물론 시공업체들에게 좋은 간접 경험이 될 수 있겠다 생각에서
전재한다.
( 이 집의 내부는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중이라 촬영 할 수 없었습니다. 완료 된 후 전원주택라이프 6월호에 소개하겠습니다.)
--------------------------------------------------------------------------------
마당에
나무를 심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고개를 드니 지붕 위에 걸린 아침햇살을 받으며 정말 아름다운 집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그
집을 뒤로 하고 마당가에 있는 돌 위에 걸터 앉아 내려다보니 멀리 호수가 쉬임없는 곡선을 그리며 흘러간다.
가슴은 한결 상쾌하고 뿌듯하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던 지난 겨울, 감기에 걸려 흐르는 콧물을 옷 소매로 훔치며 잠시 쉴 틈도
없이 망치질을 하던 고마운 얼굴들이 생각나 혼자 미소를 지어본다.
10년전 한달 봉급 60만원 정도를 받을 때 부터 전원주택을 꿈꾸며 휴일이면 일산, 양평 등지를 돌아다니며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집을 지었다 허물었는가?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내 눈앞에는 맑은 운정호수가 정원이 되는 나의 집이 있다. 이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7년전인 93년 2월 서울서 전주로 이사를 온 후에도 전원주택에
대한 꿈은 버릴 수 없었다.
그후 5년이 지나 98년 8월 드디어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전주시 인근의 임실군 운암면 운정리 332-6번지의 땅 4백56평을
구입할 수 있었다. 등기를 이전하고 나자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자연 속에 평생 마음에 그리던 집을 짓게 되었다는
기쁨에 몇날 몇일을 가벼운 흥분 속에서 살았다.
그때까지도 집을 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내가 겪어야 할 수많은 난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짓고 싶은 생각에 마음은 급했다. 그래서 땅 등기를 이전하던 바로 그날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목조주택 건축회사를
하는 H산업개발 대표와 평당 2만원에 토목공사 계약을 했다. 계약금액은 총 9백12만원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98년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비가 그치면 토목공사를 바로 시작한다는 말만 믿고 공사대금 전부를
일시불로 지급한 것이 문제였다.
돈을 받은 H산업개발은 공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재촉을 하면 여름에 비가 오기 때문에 공사를 할 수 없다고 미루고 또 가을엔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고 겨울엔 춥다고 미루고 그렇게 하여 해를 넘기고 봄이 왔을 때도 봄은 농지정리를 하는 기간이라 포크레인을 한
대도 구할 수 없다며 미뤘다.
결국 토목공사 대금의 환불을 요구했다. 그래도 이것 저것 이유를 대며 공사를 안하다 강력히 환불을 요구하자 99년 4월 1일 오후
약 3시간 30분에 걸쳐 전체 토지의 10% 정도 공사를 마친 후 계약대로 공사가 다 되었다며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 8개월을
기다렸던 공사가 이렇듯 성의없게 끝나자 그 허망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법원에 제소하기로 하고 사진을 찍기위해 현장을 방문해 보니 집 지을 자리에 집 짓는 것을 방해할 의도로 가로 약 4~5m
세로 3~4m 정도의 웅덩이를 파놓았다. 정말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집을 짓는다는 것은 자기재산의 전부를
투자하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에서 중요하고 큰 일이다. 나 스스로도 그랬다.
그런 대역사에서 건축업자를 잘 못 만나면 자신의 재산을 몽땅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건축주 자신은 물론 가족들이 받는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그래서 건축업자의 양심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 겪은 고통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토목공사에서 건축업자와의 불협화음을 시작으로 그후 업체선정에서 몇번의 시행착오를 겪다 결국 (주)홈즈란
회사를 만났다.
TV에서
우연히 보고 전화를 해 99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밤 11시에 이 회사의 문상득 소장을 만났다. 새벽 2시까지 주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믿음이 갔다. 미국에서 17년 동안 목조주택을 시공했다는 문 소장은 목조주택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더욱 신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99년 12월 8일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를 시작하던 첫날 내 딴에는 건축주로서 도리를 다 한답시고 승용차에 컵라면, 커피, 어묵, 맥주, 음료 등 새참을 가득 싣고
현장을 방문해 문 소장 앞에 내 놓았다 망신만 당했다. 일하는 중간에 새참을 먹으면 리듬이 끊겨 공사진행에 방해가 될 뿐이란 말과
함께 오전 7시 40분 현장에 도착하여 자재 및 공구를 정리하고 8시부터 일을 시작한 후 12시에 점심식사, 12시 50분
작업시작 오후 6시 일을 끝낸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비가 와 하루 쉬게 되면 오후에 1~2시간씩 작업시간을 연장해 공정을 맞추어 나간다는 말에 나는 정말로 감동했다.
게다가 계약 당시 계약서에 건축 시공 후 1년 이내에 발생한 어떠한 하자에 대해서도 무료로 A/S를 해준다는 말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경북 의성에 집을 지은 건축주의 전화를 받고 작업이 끝난 밤 시간을 이용해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건축주와 시공업자라는 이해타산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후로도 건축주인 나는 시공회사의 현장소장으로 부터 즐거운 꾸중을 듣는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전면 창과 창 사이가 건축도면에
20㎝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시공할 경우 위에서 하중을 받으면 천장 이음새가 약간 벌어져 하자가 발생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내가 천장이 벌어지면 실리콘으로 때우면 되지 않느냐며, 도면대로 창과 창 사이를 좁혀 창문을 크게 하면 자재가 덜 들어가니
회사에서도 이익이지 않겠냐고 그냥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현장소장은 하자가 발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 시공을 할 수는 없다며 그런 식으로 자재를 빼먹고 돈을 벌었으면 벌써 빌딩
샀을 것이라며 무안을 주었다.
건축업자들 중 더러는 목조주택이 나무로 대충 못 박아 지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런 이유들로 나중이 벽이 돌아가고
누수가 되는 등 하자가 발생해 결국 목조주택 이미지만 버려 놓았다는 꾸중도 덧붙였다.
결국 창과 창 사이의 간격을 애초의 3배인 60㎝로 넓혀 시공하였다. 집의 내부구조를 잡을 때는 1층과 2층 바닥에 방, 화장실,
다용도실, 식당, 주방 등 위치대로 먹줄을 그어놓고 마음에 안들면 고치라며 추가 비용은 없다고 다시 한번 설명을 해줄 때 나는
바로 이런 것이 진정한 목조주택시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면 데크의 폭이 건축도면에는 1.8m였는데 데크의 폭이 좁으면 집이 볼품없어 진다며 데크의 폭을 50㎝ 더 넓혀 약 3평 정도
무상으로 시공해 주는 등 도면에서 좀 문제가 되는 것을 정확히 잡아내 추가비용없이 시공해 주었다. 눈이 와 건축자재를 실은 차량이
현장에 올라가지 못하면 일하다 말고 내려와 70m 거리를 등짐으로 나르는 등 정말 내집같이 성심껏 일해 주었다.
특히 문소장과 미국에서 같이 일했던 목조주택 20년 경력의 문현수 부사장 등 회사 경영진의 이해가 없었다면 이런 집짓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 부사장을 비롯한 회사 경영진에 감사드린다. 특히 문소장, 성진이형, 노희준 씨 그리고 건우 형제 모두
겨울 내내 감기에 걸려 고생하면서도 정작 내가 감기걸렸을 때 선뜻 약봉지를 선사하던 따뜻한 정은 집이 마무리 되면서 더욱 애뜻했다.
집이 하나둘 모양을 갖춰갈 때 그 아름다움에 기쁨을 감추지 못 하면서도 같이 집 지으면서 고생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여 지난 2월 5일 집은 완성되었다. 현재 입주를 위해 조경 등 마무리 준비를 하고 있다.田
글·김대환 사진·김경래
(글쓴이 김대환 씨는 전북 전주에서 레저 관련 용품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10여 년간 전원주택 공부를
했다. 지난 2월 5일 전주 인근 임실에 2층 목조주택을 지었는데 처음에는 업체를 잘 못 선정해 고생을 많이 했다.
이 후 (주)홈즈를 만나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집을 짓게 되었다.
집을 짓고 나서 시공회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주)홈즈에 적극적으로 부탁하여
호남지사를 하기로 했다.)
-
2003-09-04
-
-
[물·골·안·에·서·온·편·지] 정자나무에서 자는 닭
-
-
물·골·안·에·서·온·편·지
정자나무에서 자는 닭
시골 생활을 하다 보니 유난히 동물들과 가까워집니다. 전에 아파트에서 기르던 개 이야기를 해 볼까요. 모란시장에 가서 애완견 강아지 한 마리를 샀었지요. 크기가 손바닥만한데 귀가 축 늘어지고 무슨 외국영화에서 본듯한 개입니다. 코카스패니얼이라는 건데 파는 이는 애완견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얌전하더니 커 가면서 장난이 어찌 심한지 침대 위로 날아다니고 밥그릇을 가지고 마라도나처럼 축구를 하는데 난감하더군요. 크기도 점점 자라서 아들만해졌습니다. 결국 그녀석이 침대 한가운데 고구마 만한 실례를 해 놓은 날, 나는 눈물을 머금고 시골집으로 녀석을 보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카스패니얼은 애완견이 아니라 새 잡는 사냥개라더군요. 그런 녀석을 집에서 길렀으니....
이런 실패 끝에 이번엔 정말 작은 개를 사려고 수소문 끝에 미니핀이라는 개를 샀습니다. 얼마나 작은지 주머니에 쏘옥 들어갑니다. 이 녀석이 한 살쯤 될 때 물골로 들어온 겁니다.
그리고 시골로 보냈던 코카스패니얼도 데려왔지요. 개 두 마리가 있으니 여간 든든한 게 아닙니다. 개들도 살판났지요. 녀석들을 데리고 자전거 타고 산책을 하니 제법 전원 기분이 납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해 장날 오리 세 마리와 오골계 두 마리를 샀지요. 얼마지 않아 오리 생각을 잊고 그만 개들을 풀어놓았지요. 불과 10초만에 오리 한 마리가 코카스패니얼 입에 물려 있더군요. 소리를 치니 오리를 물고 달아나는데 쫓아가 빼앗았을 땐 이미 오리는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리 한 마리가 돼지 한 마리보다 더 먹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얼마나 먹는지 지금 오리 한 마리는 거위로 착각할 지경입니다. 잘 걷지도 못해요. 그러다가 얼마전 TV를 보는데, 정말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던 닭이 보입니다. 토종닭이랍니다.
아, 눈이 확 뜨이더군요.
나는 그걸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그곳이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덕소의 ‘고센농장’ 닭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거길 가보니, 온통 시골닭들 입니다. 병아리를 길러 보려고 했더니 병아리는 다음 부화 때에 오라는 겁니다.
실망해서 돌아오던 길에 어느 농장 앞에 ‘순종 토종닭 팝니다’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거기는 규모가 좀 작았는데, 아직 어린 중병아리 정도 됩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옛날에 정자나무 위에 올라가 자던 닭입니다. 처음 며칠은 놓치면 그냥 산으로 날아갑니다”
몇 번이고 주의를 받고, 라면상자에 세 마리를 담아 왔습니다. 그리고 닭장에 넣는 순간, 세 마리가 비호같이 날아갑니다. 아, 나는 공연히 아이와 마누라만 핀잔을 주고 재빨리 낚시용 뜰채로 두 마리를 생포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눈앞에서 무려 삼십미터를 날아서 깨밭 속으로 숨었습니다.
날이 저물 때까지 찾았지만 어디로 기어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날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이 닭이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이틀이 지난 뒤 꼬리도 보이지 않던 닭이 나타났다고 마누라가 직장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난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닭장 옆에 어정거리는 닭을 보고 뜰채로 재빨리 생포했습니다. 닭의 눈치론 배가 고파 일부러 내게 잡혀 주는 눈치였습니다. 그날 우리 식구들은 감격스러워 덤불에 온통 긁힌 상처도 아랑곳 않고 그저 연신 웃기만 했습니다.
다음날, 망을 사다가 닭 놀이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키 높이로 열심히 망을 치는데, 토종닭이 비웃기라도 하듯 훌쩍 대추나무 위로 날아오릅니다. 나는 급히 철물점으로 달려가 망을 더 사다가 두 배로 높였습니다. 그래도 날아오릅니다. 이번엔 아예 지붕까지 덮었습니다. 닭들은 이제 날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한달이면 낳는다는 알이 통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누라가 솔 덤불 아래 수북히 쌓인 달걀을 찾아 왔습니다. 무려 열 다섯 개입니다. 그걸 열심히 품고 있는데, 몽땅 뺏어다 부쳐먹고 삶아 먹고 나니 화가 난 듯 알을 낳지 않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알을 품을 때는 빼앗으면 안된답니다. 그래서 요새는 몇 개씩은 남겨 놓습니다.
오리는 그저 먹기만 하고 알은 낳지 않습니다. 분명 오리 장사가 암놈이라고 뒤집어서 나체로 중요한 부분까지 보여 주었는데. 이거 혹시 수놈이 아닐까 의심은 했지만 전문가인 오리 장사가 큰소리 탕탕 친 기억이 나서 알 낳을 때만 기다렸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기이한 현상을 보았습니다. 오리 두 녀석이 암탉을 구석으로 몰고 가더니, 한 녀석은 닭 목을 물고, 한 녀석은 폭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제야 나는 녀석들이 왜 알을 안 낳는지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오리발이란 게 오리장사들이 잘 내미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엔 유난히 짐승이 많습니다. 개 두 마리 닭 여섯 마리 오리 두 마리
이밖에도 저절로 기어다니는 녀석들이 많지요
어느날, 신발을 신으려다 기겁을 했지요. 글세, 손바닥만한 두꺼비가 구두 속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녀석은 낮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녁이면 어슬렁거리며 방문 댓돌 아래 대령합니다. 거기서 밤새도록 무얼 하는지 그저 참외 잎사귀(아들이 마루에서 먹고 뱉은 참외 씨가 자랐어요)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파리 잡아먹나 봅니다.
그리고 담벼락에 붙어 있는 손톱 만한 청개구리는 어디로 들어오는지, 방안 설거지 대에도 있습니다. 그밖에, 어둠 속에 별이 내려앉은 듯 가물거리는 반딧불이, 메뚜기, 매미, 하늘소(얼마 전에는 정말 손가락 만한 장수하늘소가 날아왔는데, 천연기념물이란 걸 알고 날려보냈어요) 그리고 우리집 개가 생포한 두더지까지.
이따금 개 밥 빼앗아 먹으러 찾아오는 고양이까지 그야말로 동물농장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쥐는 한 마리도 못 보았습니다. 그 흔한 집쥐는 커녕 들쥐 한 마리 못 보았어요. 신기하지요. 쥐가 왜 없는지, 혹시 이유를 아시는 분 알려 주세요.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
2003-09-04
-
-
[물·골·안·에·서·온·편·지] 비틀거리는 사람들
-
-
물·골·안·에·서·온·편·지
비틀거리는 사람들
물골안, 이름 그대로 물이 좋은 곳입니다.
재미없는 행정이름으로 말하자면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입니다. 그런데 이곳도 예전만 같지 않습니다. 여름이면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들어앉아 고기를 굽고, 밥을 해 먹느라 북적거리는데, 가고나면 쓰레기가 산같습니다.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그이들 인상이 너무 터프해서 관둡니다.
우리 민족은 고기에 한이 맺혔는지, 가는 데마다 고기를 굽습니다. 심지어는 실내 수영장 한구석에서도 삼겹살 구워 먹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시골에 왔다 하니 아는 이들이 피서 삼아 많이 찾아옵니다. 애들까지 데려와 며칠씩 묵고 가는데, 우리집은 그냥 민박집이 되었지요.
마당에는 저녁마다 고기를 굽는데, 어떤 이는 아예 철물점에서 고기 굽는 철망까지 사옵니다. 어떤이는 특별히 자동차 바퀴의 드럼을 가져왔어요. 그것이 번개탄을 안에 넣고 고기 굽기에 십상이더군요. 고기 굽고, 텃밭에서 딴 상추와 쑥갓(화초 삼아 길렀는데 여름내 먹어도 수북합니다), 고추, 취나물까지 사람들은 거의 손만 뻗으면 막따먹는 그런 무공해 반찬에 탄성을 지릅니다.
마당 한귀퉁이엔 쑥댈르 태우는 모깃불 내음이 향긋하고, 멍석 위에 않아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술잔에 어느 새 맑은 별들이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기타 소리에 맞춰 흘러간 70년대 포크송을 노래하는데 아이들은 굳이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잡니다.
내일 아침이면 자전거 타고 골짜구니 개울로 물놀이를 갈 겁니다. 이렇게 물골에서의 또 하나의 여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피서도 못 간 채, 손님 맞느라 삼겹살만 신나게 구워 먹고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는 여름을 보내고 나니, 수북한 소주병만 쌓이고 지금은 회복되었던 지방간이 도져서 병원 다니고 있어요.
소주병 치우기가 만만찮아 꽃밭 울타리로 땅에 꽂았는데, 조금 모자라서 그걸 채우느라 부지런히 또 사다 마십니다.
이곳에 살다 보니 쓰레기 문제가 제일 골치입니다. 쓰레기차는 오지도 않고 옆집에 물으니 그저 태우랍니다. 문제는 타지 않는 물건들입니다. 병이야 화단 울타리로 꽂으면 되는데 문제는 깡통입니다. 손님들에게 나는 가능하면 깡통을 사오지 않도록 미리 연락합니다.
그래도 물골은 여름이 좋습니다.
흐드러진 숲과 맑은 별, 댓돌 밑에 심은 채송화가 피고 지고, 한해살이 화초들이 저마다 빛깔을 뽐냅니다. 이런 여름엔 많은 이들이 찾아오지만 대개는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 위에서 과음을 합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술자리마다 그런 주의를 줍니다. 그러면 모두 피식 웃습니다. 그리곤 누군가 또 업혀서 내려갑니다.
내가 사는 집은 언덕 위라 좀 걸어 내려가기가 수월치 않거든요, 나는 가만히 비틀거리며 내려가는 이들을 내려다보녀 재미있어 합니다.
아마 하늘에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들 보기를 그처럼 할 것 같습니다.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
2003-09-04
-
-
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
-
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가을시작
세상은 온통 원색의 강물소리로
아득히 흘러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소나기로 내리던 장마는
시간의 대청 밑에서
푸른곰팡이나 이끼
그런 새로운 이름들로 부화를 하고
폭염에 여물던 대지의 관절 마디는
더 이상 익을 곳도 여물 곳도 없어
툭툭
소리를 내며 살점들이 터지고 있었다
터져 속살 깊은 곳까지 알알이 맺혀
다음 한철 기쁘게 울어낼
애벌레같은 것들이 되기 위해
아니 천년 후
아니 그 후 화창한 어느 봄날에 깨어날 생명들의
무늬 선명한 화석이 되기 위해
토담가에서 양철지붕에서 뜨락에서 들판에서
원색의 강물소리로 흘러가는 9월의
볕 잘 드는 등떼기
바람 잘 드는 가랑이
아무 곳에나 자리를 깔고 누워
이른 잠을 청하고 있었다
■ 글·사진 김경래
-
2003-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