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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처분하고 1천만원 들여 농가개조해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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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 농가 30평 전원주택으로
아파트 처분하고 1천만원 들여 농가개조해 전원생활
우선 툇마루가 놓인 곳을 앞으로 내어 거실로 꾸몄고 거실 문도 내 달았다. 외양간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주방으로 꾸미고, 밖으로 나 있던 화장실도 주방 뒤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3개의 방중에 2개를 헐어 거실로 할애하고 뒤쪽으로 블록을 쌓아 방을 하나 새로 들였다. 개보수 공사는 약 10여일이 소요됐다. 15평 정도에 불과했던 건평이 약 30여평 정도로 늘었다.
조금 손을 보았지만 군데군데 옛 흔적이 아직 그대로다. 궁색하거나 초라하다는 느낌보다는 친근한 멋스러움이 풍긴다. 이러한 느낌은 실내로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야트막한 천장과 거실을 가로지르는 기둥들. 거실 보다 움푹 내려앉은 주방. 그리고 올망졸망한 창문들. 영락없는 우리의 시골집 분위기다.
이 곳은 윤상진 김정애씨 부부의 새 보금자리. 95년 부인 김정애씨가 우연히 지나다 눈도장을 찍어 두었던 집이다. 야트막한 산밑에 위치해 따뜻한 햇살을 듬뿍 받고 있는 모습이 매우 포근하고 인상적이었다. 마침 팔려고 내놓은 집이라는 얘기를 동네사람으로 부터 듣고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 윤상진씨와 함께 방문해 계약을 마쳤다. 모든게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만큼 집에 대한 느낌이 김정애씨에겐 강렬하게 다가왔다.
서울서 나고 자랐지만 시골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강했다. 시골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욕구가 더 열병처럼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편하기로 따지면 아파트 만한 것이 있으랴. 그럼에도 서울생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내려가 살아보는 것이 김정애씨에겐 꿈이었다.
처음 이 집을 접했을 때의 모습은 지은지 몇십년은 됐을 법한 아주 낡고 작은 집이었다. 한동안 사람이 거주하지 않아 더욱 초라한 모습이었다. 일자형의 싱거운 모양에 방만 3개 달랑 있었다. 건평이라고 해야 15평 남짓한 규모였으니 각각의 방 크기도 대충 짐작이 간다. 처마는 낮았고 건물 앞쪽으로는 툇마루가 있었다. 화장실은 밖에 위치했고 한 쪽엔 소를 기르던 외양간이 있었다. 벽체는 흙벽돌을 쌓아 겉만 시멘트로 미장한 구조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헐고 새로 지을 것이냐, 아니면 개보수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결론은 개보수쪽으로 내려졌다. 어차피 시골 생활이 처음인데다가 당분간 주말주택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으니 큰 집을 지을 이유가 없었다. 일종의 시골 생활 맛보기인 셈이었다. 개보수는 동네 어른에게 부탁했다. 개보수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나 전문가라기 보다는 그냥 동네에서 이런 일에 경험이 있는 분들이다. 설계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건축주와 구두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면서 작업이 이뤄졌다.
우선 툇마루가 놓인 곳을 앞으로 내어 거실로 꾸몄고 거실문도 내 달았다. 외양간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주방으로 꾸미고, 밖으로 나 있던 화장실도 주방 뒤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3개의 방중에 2개를 헐어 거실로 할애하고 뒤쪽으로 블록을 쌓아 방을 하나 새로 들였다.
개보수 공사는 약 10여일이 소요됐다. 15평에 불과했던 건평이 약 30여평 정도로 늘었다. 총 소요 비용은 1천만원 정도. 공사비의 절반은 인건비가 차지했고 나머지는 자재비와 식사비용 기타 부대비용이었다.
96년 5월. 드디어 김정애씨의 꿈의 이루어졌다.당초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남편 윤상진씨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하루 이틀 지내보니 참 좋은 곳이었다.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임에도 온갖 산채와 약초들이 계절별로 지천이다. 앞마당을 가꾸는 재미도 그만이었고 공기에도 ‘맛’이 있다는 얘기를 새삼 이 곳에 와서 실감했다. 서먹서먹하던 동네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지낸다.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재미도 알게됐고, 밥이 모자라면 옆집에 가 밥을 얻어올 만큼의 친분도 쌓였다.
그렇게 두 해 정도를 보내고 나니 또다른 고민이 생겼다. 매번 이렇게 오가야 할 이유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결론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 더 이상 서울에 적을 두고 불편하게 오갈 이유가 없었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기로 했다. 결국 지난해 초 서울 오금동 아파트를 처분하고 아예 이사를 했다.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남편 윤상진씨도 이 곳과 가까운 하남쪽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지난 여름엔 김정애씨의 친구 김명순씨도 아랫동네에 거처를 마련해 현재 주말주택으로 이용하고 있다. 김정애씨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친구 김명순씨는 김정애씨보다 좀더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거쳤다. 농가의 뼈대만 남긴 채 한옥으로 말끔히 개조했다. 이젠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보니 수시로 오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올 봄엔 함께 봄나물도 캐고 진달래 꽃잎으로 전도 지져볼 참이다. 봄볕 따사로운 날을 택해 서울에 있는 친구들도 부르자고 입도 맞추었다. 봄 볕 화사한 4월의 시골 내음을 고스란히 전해주기로 했다.
글·사진 류재청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
부지면적: 대지 1백1평
부지구입년도: 95년
부지구입금액: 대지 평당 1백만원
현재 주변 대지시세: 70만~1백20만
개조기간: 96년 5월(10일간)
개조비용: 1천만원쪾건평: 30평
실내구조: 방2, 화장실, 주방, 거실
방위: 정남향
벽체구조: 흙벽돌(새로 들인 안방은 블록)
외장마감: 시멘트 미장
지붕마감: 시멘트 기와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식수공급: 마을 공동 상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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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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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아랫동네 미천골에 지은 눈꽃이 들꽃같이 피는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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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과 생활
설악산 아랫동네 미천골에 지은 눈꽃이 들꽃같이 피는 목조주택
김명석·엄연진씨 부부가 설악산 아랫동네인 미천골로 내려온 것은 4년전이다. 서울서 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서울서 직장생활을 했던 이들 부부는 지금 이곳 미천골 생활에 푹 빠져 살고 있다. 함박눈이 내려 발목까지 쌓이고도 모자라 줄기차게 눈이 내리던 날 미천골의 목조주택을 찾았다. 그곳 집의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입김과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오대산에서 또다시 봉우리를 만들기까지 거쳐 가는 곳이 양양군 서면 미천골이다. 이 곳은 설악산과 오대산의 가운데 있는 산간마을로 골이 깊다 못해 심오하다.
동해안 산간 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며 TV들이 온통 호들갑을 떨고 있던 날 미천골을 찾았다. 벌써 산속은 발목까지 눈이 쌓여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계속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구룡령을 넘어 미천골자연휴양림이란 이정표를 보고 약 4㎞쯤 들어갔을까 흰색밖에 볼 수 없었던 산속에 옅은 고동색이 눈에 띈다. 나무색이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목조주택 두 채가 나란히 있고 그 두 집과 비교해 조금 초라해 보이는 통나무주택 한 채가 그 옆에 낮게 웅크리고 있었다.
휴양림 매표소를 지나서도 한참 더 들어간 미천골자연휴양림 안쪽에서 김명석·엄연진씨 부부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는 눈과 같이 온통 흰색으로만 살고 있었다. 식구라야 강아지 두 마리가 전부인 이들이 사는 모습은 한폭의 동화였고 수채화였다.
이들 부부가 이 곳에 들어와 집을 지은 것도 벌써 4년이 흘렀다. 이 곳이 고향인 김명석씨는 어려서 서울로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엄연진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과 함께 곧바로 미천골로 내려왔다. 언젠가 이 곳에 들어와 살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하였는데 결혼을 하면서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어쩌면 부인 엄연진씨를 만나지 못했으면 아직도 도시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인 엄연진씨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도시 그 자체였던 사람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남편보다 오히려 그녀가 더욱 전원생활을 원했다. 요즘은 미천골 생활이 몸에 배어 혹시라도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하루도 못 견디고 내려올 정도로 이곳 생활을 즐기고 있다.
사실 이들 부부가 이 곳에서 쉽게 적응하여 살 수 있었던 것은 이 곳이 남편 김명석씨의 고향이었고 더욱이 근처에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이들 부부는 자연휴양림내 준농림지 5백평을 구입해 2백20평을 전용한 후 목조주택을 지었다. 현재 이곳 부지에는 카페와 주택을 겸한 본채와 민박동 그리고 작은 통나무집 등 3동의 집이 있는데 이 모양을 갖춘 것은 작년 6월이며 아직도 틈만 나면 공사를 하고 있다.
60평 규모의 본채 1층은 카페, 2층과 다락은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민박동은 20평 규모의 2층집이며 통나무집은 12평이다. 특히 통나무집은 집주인이 손수 지은 단층집으로 구들구조의 황토방으로 돼 있다. 적은 예산으로 집을 짓다보니 고생도 많이 했다. 아직까지도 집짓는데 들어간 자금 때문에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집주인은 웃는다.
이 집은 에스엠하우징에서 시공하였지만 집주인이 거의 같이 일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에스엠하우징 한삼녕사장과 김명석씨는 집을 짓고나서 형과 동생이 되어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다.
시공을 맡았던 에스엠하우징의 한삼녕사장은 이 집의 건축상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콘크리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바닥온돌구조(건식공법)와 카페와 주택간의 분리를 위해 차음구조의 내벽을 설치하였다는 것, 15평인 다락방의 활용도를 최대한 높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특히 이 집은 1층에 25평공간의 카페를 넣고도 주거공간을 잘 살려낸 설계가 눈에 띈다. 공간마다 아기자기하게 처리했으며 그 동선흐름이 자유롭다.
이 곳 집의 이름은 불바라기산장이다. 계곡안쪽에 불바라기약수가 있어 그렇게 붙였다. 이 불바라기산장엔 가족단위로 조용히 묵어갈 사람은 민박을 할 수 있다.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한다든가 고스톱을 치는 그런 류의 사람들은 사절이다. 방이 비어 있어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방을 내주지 않으며 혹 빌려 주었다가도 정중히 돌려 보낸다. 이것만으로도 이집 주인의 성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이 곳 불바라기카페에서 부인 엄연진씨가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한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솜씨로 산장을 피아노 선율로 수놓는다. 그 선율이 들꽃이 되고 숲 속의 바람소리가 되고 때로는 계곡의 물소리 혹은 매미소리가 되기도 한다.
요즘 엄연진씨는 한달에 몇차례씩 근처 속초나 양양에서 피아노 강습을 해주고 있는데 그것이 이 곳 산속을 벗어나는 그녀의 유일한 외출이다. 이렇게 이 곳 사람들은 산에 젖어 살고 있다. 설악산 깊은 골짜기에 있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겨울 산장. 그것만으로도 도시인의 가슴은 바람이 되어 설레는데 거기에 더하여 눈이 내리고 있다니…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니… 눈내리는 산장에 무작정 찾아든 도시인의 그런 황홀한 감탄에도 불구하고 이곳 주인의 감탄사는 대수롭지 않다. “며칠전 눈이 왔을 때는 더 좋았는데…” 아니면 한참 더 빗나가는 덤덤한 대답뿐이다. “봄에 꽃이 피면 얼마나 좋다구요”
글·사진 김경래
건축정보
위치: 강원도 양양군 서면 미천리
부지면적: 준농림 전 5백평(2백20평 전용)
골조구조:외벽2×6, 내벽 2×4 북미산 햄퍼 목구조
외벽마감:시다 사이딩
내부마감:실크벽지
천정:미송루바
바닥재:오크 온돌마루(카페는 솔리드 오크 원목마루)
지붕:아스팔트싱글
데크:북미산 햄퍼 방부처리 목재
건평:본채 60평(1층 40평, 2층 20평), 민박동 20평과 통나무집 12평은 별도
실내구조:1층(카페 25평, 방1, 화장실, 거실), 2층(방 3개, 주방, 다용도실, 데크2)
난방형태:기름보일러, 벽난로
식수공급:지하수
평당건축비:3백30만원
■ 시공:에스엠하우징(0344-979-2777)
■ 불바라기산장(0396-673-4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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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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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모여 사는 80평 2층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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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전원주택
3대가 모여 사는 80평 2층 스틸하우스
거실은 높은 천장고와 지붕선을 따라 이색적인 서까래 처리로 단조로움에서 벗어났으며, 특히 스틸하우스의 장점인 단열효과를 잘 살려 계절별로 따뜻하고 시원하도록 했다. 주방은 거실과 현관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설계해 음식냄새를 차단하고 지저분한 것이 보이지 않도록 했으며 주부의 편리함을 위해 ㄷ자형의 주방가구를 택했다. 2층에도 아들 내외와 손자가 거주할 것을 감안해 별도의 가족실을 꾸몄다.
고양골은 내가 태어난 마을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오백년 전 이 곳에 터를 잡았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이 땅에서 살다 저 세상에 가셨다.
1년이 멀다하고 철새처럼 이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50여년을 이 땅에서 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마을은 30여 가구가 모두 초가집으로 오기종기 모여 살았다. 더욱 특이한 것은 서너 집만이 타성이고 모두가 동래 정씨로 그야말로 집성촌이었다. 옆집에 가도 아주머니 집이요. 이웃에 가도 할아버지 아저씨 집이었다. 때가 되면 아무 집에서나 밥도 먹을 수 있었고 꽤나 커서는 몇 녀석이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아저씨 집 할아버지 집에 우물을 가셔 주면 술과 밥을 생일 못지 않게 얻어먹곤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는 우리나라 산이 모두 까까중 머리 같았지만 우리 뒷동산엔 아름드리 참나무며 소나무가 가득 차 지금껏 보존되어 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름드리 참나무 가지에 매달린 다람쥐처럼 가지에 매달려 도토리를 무수히 털어 내곤 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니 우리 '고양골'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낙엽 한 삼태기를 땔 만한 아궁이도 없어졌고 뒷동산의 도토리는 누가 다 주워 가는지 구경한 지가 오래다. 아늑하던 초가집은 온데간데없고 옛날 집이 헐리고 새 집이 마구 들어선다.
땅 한 치에도 눈에 불을 켜고 이해 다툼이 생기는가하면 한 겨울이 다 되어도 고사 떡 구경을 못해 본지가 꽤나 오래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고사를 언제 하냐고 성화가 대단하시다.
우리 아이들은 고사떡을 돌리지 않아도 되리만큼 인심이 많이 달라졌다. 동네 사람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사니 말이다.
어느 할아버지가 "지금 젊은 사람들은 옛날 우리네 마음 같잖여"하시던 말씀이 두고두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저 삶에 찌들고 삭막해진 마음들에 아늑하고 단란했던 어린 시절 '고양골'의 훈훈한 봄바람을 되찾게 할 수는 없을까.
정규호씨는 누대째 이 곳 고양골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도로가 뚫리고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들어서 좀처럼 옛 정취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에 속한다. 이 터에도 초가의 흔적 대신 이제는 현대식 예쁜 주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정규호씨는 얼마전 슬라브집을 헐고 새 집을 지었다. 아이들이 장성해 출가를 하고 손자 손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니 50여평에 이르던 슬라브집이 비좁게 느껴졌다. 원체 튼튼히 지어 좀 더 쓸만했으나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불편할 정도여서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건축은 포스홈에 의뢰해 지난해 8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연 건평 80평으로 1층이 45평, 2층이 32평, 지하가 3평이다. 1층 구조는 방 2개, 거실, 주방, 식당, 다용도실, 드레스룸 등으로 정규호씨 내외가 생활한다. 아들 내외가 거주하는 2층은 방 3개, 거실, 드레스룸, 화장실 등으로 구성됐다.
시공사인 포스홈측은 이 집에 대해 건축주의 소박한 심성과 취미 생활, 그리고 3대가 함께 생활하는 점을 감안, 유기적인 공간이 창출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해 전면에는 정원과 연못을 조성하고 후면에는 텃밭을 조성해 아파트와 상가가 밀집된 공간에서 전원 속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 구성원의 사생활 및 채광을 보장하고 각각의 공용 공간에는 예술품을 전시 보관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거실은 높은 천장고와 지붕선을 따라 이색적인 서까래 처리로 단조로움에서 벗어났으며, 특히 스틸하우스의 장점인 단열효과를 잘 살려 계절별로 따뜻하고 시원하도록 했다. 주방은 거실과 현관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설계해 음식냄새를 차단하고 지저분한 것이 보이지 않도록 했으며 주부의 편리함을 위해 ㄷ자형의 주방가구를 택했다. 2층에도 아들 내외와 손자가 거주할 것을 감안해 별도의 가족실을 꾸몄다.
넓은 대지 위에 건물을 가운데에 배치하고 정면에는 연못과 함께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될 만큼 조경에도 힘썼다. 대문에서 주택의 현관까지 걸어가는 길도 아기자기하다. 4개월간 진행된 공사는 12월이 되서야 완공됐다. 지난 주말에는 온 가족이 모였다. 새집을 짓고 처음으로 모인 날이었다. 집이 넓어졌으니 모두들 좋아했다. 특히 손자손녀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당 이 곳 저 곳을 뛰어 다니며 즐거워했다.
정규호씨의 마음이 흐뭇할 따름이다. 새로 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봄이 오면 정원을 손실하고 집 뒤쪽으로는 텃밭도 가꿀 참이다. 부지런히 가꾼다면 유월쯤엔 개구리와 메뚜기가 뛰어 놀고 새도 날아들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손자손녀에게 선물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해 본다. 봄내 할아버지의 손끝이 더욱 바빠질 것 같다.
글·사진 류재청
인테리어 포인트/김영근(포스홈 고문)
품위 있고 단아한 내부공간 되도록 디자인
살아가면서 싫증이 나지 않고, 보면 볼수록 은근히 다가오는 친밀감 있는 내부 공간을 추구했다. 세대를 이어 뿌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 건축주의 이미지를 살려 요란하거나 천박스럽지 않은 단아한 내부공간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천장고를 최대한 확보하여 주택이 지니는 중후함이 나타나도록 했다. 몰딩이나 문선들도 체리 원목에 붉은 기운이 도는 채색으로 품위 있게 장식했다. 다만 계단의 난간이나 문선들의 디테일은 흔치 않은 형태로 디자인하여 단조롭고 심플한 전체적인 분위기를 탈피하고자 했다. 대체로 중후함, 편안함, 안정감이란 기본 컨셉에 충실하였고,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컬러나 모양으로 이를 피해 나갔다.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고양골)
부지면적: 대지 3백40평
지역지구 및 용도: 일반거주지역내 단독주택
건축공사기간: 99년 8월~ 12월
건평: 80.56평(1층 45.26평, 2층 31.89평, 지하 3.41평)
실내구조: 1층 방 2개, 거실, 주방, 식당, 다용도실, 드레스룸, 화장실
2층 방 3개, 거실, 드레스룸, 화장실
지하층 보일러실
방위: 남향
건축비: 평당 5백50만원(조경 및 담장 포함)
건물형태: 2층 스틸하우스
구조체: 경량철골조
벽체구조: OSB 합판
내벽마감: 핸디코트 및 실크벽지
외벽마감: 드라이비트 및 하디사이딩
단열재: 아크실(글라스울을 고압으로 충진)
지붕마감: 천연슬레이트
바닥재: 온돌마루(체리목)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식수공급:상수도
주변 환경: 아파트 및 상가 밀집한 일반주거지역.
■ 설계 및 시공: 포스홈(02-59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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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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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빔으로 골조 세우고 2층으로 지은 90평 흙벽돌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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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 짓기
H빔으로 골조 세우고 2층으로 지은 90평 흙벽돌 집
우선 2층 흙벽돌 집인 만큼 튼튼하게 하중을 지탱해줄 골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H빔. H빔으로 기본 골조를 세우고 나머지는 나무로 골격을 구성했다. 벽체는 흙벽돌을 그대로 쌓아 올렸다. 흙벽돌을 양쪽에서 이중으로 쌓아 올리며 벽체를 구성했는데 외벽엔 별도의 미장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외부와 실내 거실에서도 쌓아진 흙벽돌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머지 실내벽과 천장, 방은 몰탈로 미장을 하거나 한지벽지를 발랐다.
줄곧 안산땅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도심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시골에 5천여평에 이르는 논과 약간의 밭을 가지고 있고 직접 이를 경작한다. 주말이면 두 아들 하철이와 하영이를 데리고 시골 논으로 달려가 같이 일을 하고 돌아오곤 한다. 농사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 하철이와 하영이는 이번 집 짓는데도 적잖은 기여를 했다. 잔일을 도맡다시피 한 것이다.
신덕 정성길씨 부부는 최근 2층 흙벽돌 집을 지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흙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뜻을 최근에야 이루었다. 농사를 짓고 흙집을 고집하는데엔 시골생활에 대한 어려서의 기억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을 잘 알고 있던 만큼 정성길씨 역시 남편의 구상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길지 않았던 3년간의 아파트 생활. 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파트를 떠나고 싶어했지만 내내 단독주택에서 생활했던 정성길씨에겐 오히려 잠깐의 아파트 생활이 새롭게 다가왔다. 주부 입장에서 아주 편리하고 깔끔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미 남편의 뜻은 기울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부지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만난 곳이 지금의 땅이다. 여러날 다리품을 팔아가며 구한 곳으로 행정구역상 안산시 사동에 속한다. 대지 1백31평을 평당 1백50만원씩 주고 구입했다.
다른 지역도 많이 보았지만 70~80평 정도의 작은 규모가 대부분이었고 1백평을 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이 곳은 주택가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데다가 집 뒤로 바로 조그만 산이 맞닿아 있어 다른 밀집 지역보다는 다소 조용한 분위기였다.
건축은 99년 8월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연구하고 보아왔던 모양들을 그대로 쏟아 붓는다는 생각으로 시공회사에 맡기지 않고 직접 짓기로 했다. 다만 설계는 설계회사에 맡겼는데 신덕씨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 목수와 미장, 잡부 등을 일당제로 직접 고용했는데 사찰 건축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덕씨가 진두지휘를 했고 아내 정성길씨는 인부들의 식사를 준비했다. 두 아들도 일을 거들었다. 온 식구가 함께 참여해 집을 지었다.
우선 2층 흙벽돌 집인만큼 튼튼하게 하중을 지탱해줄 골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H빔. H빔으로 기본 골조를 세우고 나머지는 나무로 골격을 구성했다. 벽체는 흙벽돌을 그대로 쌓아 올렸다. 흙벽돌을 양쪽에서 이중으로 쌓아 올리며 벽체를 구성했는데 외벽엔 별도의 미장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외부와 실내에서도 쌓아진 흙벽돌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머지 실내벽과 천장, 방은 몰탈로 미장을 하거나 한지벽지를 발랐다.
2층 거실에는 수족관도 만들었다. 수족관의 바닥을 투명하게 처리해 1층 거실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이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2층 천장에도 천창을 달아 이 곳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수족관을 통과해 1층 거실바닥으로 떨어지도록 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신덕씨의 생각이 반영됐다. 천장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고 대문이나 창문도 되도록 옛스러움과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했다. 바닥 역시 황토와 숯을 섞어 마감했다. 흙벽돌 자체가 뛰어난 단열 성능을 갖추고 있어 벽체에 별도의 단열재를 넣지는 않았다.
난방은 나무와 기름을 같이 땔 수 있는 겸용보일러. 굳이 번거로움을 자처한 것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어려서의 기억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보일러는 나무를 때다가 나무가 다 타면 자동으로 기름으로 바뀌게 돼 있다.
건축은 착공 11월말경 완공됐다. 실내 구조는 1층에 방이 4개, 화장실, 거실, 주방, 다용도실로 구성돼 있고, 2층은 방 2개와 화장실, 거실로 구성됐다. 건평은 1, 2층이 각각 45평씩 연건평 90평 규모다.
온 가족이 달려든지 넉달 만으로 참으로 힘든 4개월이었다. 예상외로 흙벽돌 쌓는 일이 어렵고 더딘 일이었다. 흙벽돌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는데 1명이 하루에 1백장을 쌓기 어려웠다. 12m짜리 대들보를 옮기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고 주변 이웃들에게도 미안할 따름이었다. 집 짓기 전에 미리 인사를 드리며 양해를 구했지만 흙집이 다른 경우에 비해 먼지가 많다보니 공사중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곳에 온지 이제 두어 달을 지냈다. 가장 큰 변화는 아파트에서 기르던 화초들이 이 곳에서 더욱 싱싱해졌다는 점이다. 집이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다. 분명 사람에게도 좋을 것이란 기대를 갖는다. 아직 집 주위로 공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언 땅이 녹으면 마당도 정리하고 텃밭도 꾸밀 계획이다. 올 여름쯤엔 마당의 상추를 뜯어 저녁상을 차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저녁상을 물리고선 마당으로 이어진 뒷산에도 올라볼 참이다.
글·사진 류재청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안산시 사동
부지면적: 대지 1백31평
부지구입년도: 99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1백50만원
건축공사기간: 99년 8월∼11월
건평: 90평(1, 2층 각각 45평)
실내구조: 1층 -방 4개, 화장실, 거실, 주방, 다용도실 2층 -방 2개, 화장실, 거실
건축비: 평당 4백만원
방위: 정남향
건물형태: 2층 흙벽돌 집
구조체: H빔, 목재
벽체구조: 흙벽돌
내벽마감: 흙벽돌, 몰탈, 한지벽지
외벽마감: 흙벽돌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바닥재: 황토+ 숯
난방형태: 나무, 기름 겸용보일러
식수공급: 상수도
입지여건: 주택 밀집지역의 외곽
■ 자재(황토벽돌):삼전황토(0339-358-9022)
신덕씨의 반짝 아이디어
채광도 하고 물고기도 기르고 '일석이조'
처음엔 어두운 실내를 좀 밝게 하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실내 벽이 황토벽으로 이뤄져 있다보니 다른 경우의 주택에 비해 다소 어두운 게 사실이다. 조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 거실 천장으로부터 햇빛이 비치게 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결국 지붕에 천창을 달고 2층 바닥의 일부를 투명하게 한다면 햇빛이 1층 거실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좀 더 발전해 단순히 투명하게 처리하기 보다 이를 수족관으로 꾸미면 어떨까하는 상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실제 이러한 생각들은 설계와 시공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붕의 천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2층 거실 바닥의 수족관을 통과해 1층 거실 바닥으로 떨어지게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채광이 됐고 2층 바닥을 투명한 수족관으로 꾸미니 1층 거실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됐다. 햇빛을 받고 자라니 물고기들에게도 아주 좋을 것이다. 지붕 천창은 비가 올 경우 시끄러울 수 있다는 생각에 진공 이중 유리로 시공했다. 신덕씨가 이번에 집을 지으면 구상하고 적용했던 가장 이색적인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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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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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산 목재 색감이 아름다운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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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 돋보이는 집
핀란드산 목재 색감이 아름다운 목조주택
최고의 전원주택지로 손꼽히는 용인 신봉리의 얕은 언덕에 눈에 띄는 두 채의 목조주택이 있다. 핀란드 목조·통나무주택 회사인 핀도모의 자재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어진 이 주택은 황금빛을 띤 외관이 우선 눈에 띈다. 목재의 미려한 질감과 화려한 색감이 또다른 느낌을 주는 목조주택을 찾았다.
용인 수지읍 신봉리는 서울 강남권의 최고 전원주택지로 손색이 없다. 지역적으로 수지택지개발지구는 물론 분당신도시와도 이웃하고 있어 주거지로서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LG, 삼성, 현대 등의 건설업체들이 주변에서 대단위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있거나 계획 중이다.
신봉리는 주변의 이러한 사회기반시설을 모두 이용할 수 있어 최고의 전원주택지로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그런 까닭에 전원주택 열기가 일찍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전원주택들이 들어 서고 있다. 이곳에 있는 삼호하우징 시공 주택은 그 황금빛 외관이 우선 눈에 띈다. 자재의 미려한 질감과 화려한 색감이 다른 목조주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데 핀란드산 목재의 또 다른 느낌이다.
삼호하우징은 핀란드의 목조·통나무 주택 및 사우나 제조 그룹인 핀도모(FINDOMO)의 공식한국대리점으로 자체적인 설계와 시공으로 국내에 목구조 주택을 공급하고 있는 회사다. 신봉리 주택은 삼호하우징이 핀도모의 자재로 시공한 지하 1층 지상 2층의 목구조주택이다.
전체적인 주택의 구조는 실용성을 꾀하기 위해 박스형으로 하였고 박스형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베란다는 전방향에 설치하였다. 또 지붕의 구조는 모임지붕으로 하여 외관에 변화를 주었다.
또 채광성과 조망감을 높이기 위해 창을 크게 처리하여 개방감을 높였다. 거실과 안방, 주방공간의 개방성이 돋보이는데 거실의 경우 채광성을 높이기 위해 전면으로 창처리를 크게 하였으며 안방은 직사광선이 가구 등에 바로 미치지 않도록 직접 채광은 피했다. 주방의 경우 대형창을 두어 외부의 조망감을 살렸다. 이곳 주택은 2개동으로 되어 있다. 1백80평의 대지에 건축연면적은 1백28평이다.
외부마감은 목재사이딩이며 내부는 홍송목재보드 마감이다. 벽난로는 물론 중앙집중식청소기, 핀란드식 사우나, 최고급 수전류 및 위생도기가 설치되었으며 평당 건축비는 4백50만원이다. 삼호하우징 시공주택의 경우 목구조일 경우 평당 3백50만~4백50만원, 통나무주택은 평당 4백만~4백50만원 수준이다. 가격의 편차에 따라 최저가의 경우 사우나, 중앙집중식청소기, 오닉스위생기, 각종 붙박이 가구가 별도이며 최고가는 이들 모두와 조경과 조명시설을 포함한 가격이다.
글·사진 김경래
신봉리주택의 공간별 설계 및 시공 포인트
구조 주택의 구조상 가장 실용적인 박스구조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외부 구조는 박스 구조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베란다를 전방향으로 설치했다. 지붕은 모임지붕으로 하는 등 외관의 아름다움에 신경썼다.
안방 기본적으로 밝은 채광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직사광선이 가구 등에 미치는 영향이 많아 가구에 직접 채광은 피했다.
주방 동선을 최대한 단축하는 등 주부의 피로를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했고 주방에 대형창을 두어 외부의 경관이 보일 수 있도록 조망을 최우선 했다. 특히 주방기구는 체리원목을 사용하였다.
욕실 타일은 3가지 색상을 사용였고 최고급 수전류와 위생도기 등은 모두 현재 국내에 시판되고 있는 최고급 오닉스 제품을 사용했다. 건물 외부에 U-Trap을 설치해 관내의 악취가 실내에 듀입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였다. 핀란드 사우나를 별도로 설치해 가정에서도 사우나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현관 바닥에는 수입제 대리석을 설치하고 입구의 계단은 철도침목을 사용했다.
건축정보
위치 : 용인시 수지읍 신봉리 455-4
지역 : 준농림지역
대지면적 : 1백80평
건축면적 : 1백28평(주택 2동)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 : 목구조
벽체 : 21㎜ SPRUCE 외장 패널 + 공기층 + 1백20㎜ MINERAL WOOL 방한재
+ 방습지 + 9㎜합판 + 21㎜홍송내장 패널(전체 두께 2백10㎜로 핀도모에서
직접 제작 수입되어 건축공기 단축 및 비용절감 효과가 있음)
외부마감 : 목재 사이딩(습기와 온도변화에 강한 스프로스 보드 설치)
내부마감 : 홍송 목재 보드
단열재 : 건물 내외부 등 전체 벽면과 지붕면 등 모든 부위에 1백㎜ 미네랄 울로 단열하고 1층 바닥면은 50㎜ 압축스치로폼을 사용해 보온
창호 : 3중유리로 홍송 프레임(FINDOMO에서 직접 제작 수입)
문 : 홍송원목
바닥 : PARAL 원목 마루재
건축비 : 평당 4백50만원
■ 시공 · 삼호하우징(0344-905-1313)
■ 자재 · FINDOMO 한국사무소(02-539-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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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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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평 대지에 지은 27평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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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있게 지은 집
69평 대지에 지은 27평 스틸하우스
당숙이 소개해준 곳이 바로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땅이다. 84년 7백20만원을 주고 69평을 구입했다. 잠실의 18평짜리 아파트 값이 1천만원정도였으니 당시 돈으로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사실 잠실의 아파트를 마련할까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결국 나중을 위해 이 곳을 택했다. 이 곳은 산골짜기로 산을 등진 양지바른 곳으로 다소 경사가 급한 것을 제외하면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최동선씨가 이 곳 상산곡리 땅을 처음 밟았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950년 가을. 10살 무렵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여주로 피난을 갔었고 몇 달 뒤 서울 수복 소식과 함께 다시 서울집으로 올라오던 중이었다.
당시 이 곳 상산곡리 골짜기에 당숙이 살았었기 때문에 중간에 쉬어갈 참으로 잠시 이 곳에 들렸다. 전쟁의 와중에도 10살 소년의 눈에 비친 이 곳 풍광은 평화롭고 한적했다. 소란한 세상과는 담을 쌓은 듯한 전혀 다른 느낌의 산골짜기 마을. 지금이야 교통이 잘 발달해 쉽게 오갈 수 있지만 당시엔 그야말로 심심산골 이었다. 어린 소견에도 편안한 곳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최동선씨가 이 곳에 부지를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80년대 초반. 피난시절 받았던 느낌이 인상적이었던 데다 그것이 인연이돼 그동안 당숙도 뵐 겸 자주 이곳을 드나들었다. 주변으로 도로가 뚫려 오가는데 편리해진 것을 제외하면 지금의 상산곡리 골짜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더구나 이 곳이 그린벨트지역으로 묶이다 보니 그동안 거의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옛날 분위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그때 당숙 소개해준 곳이 바로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땅이다. 84년 말 7백20만원을 주고 69평을 구입했다. 잠실의 18평짜리 아파트 값이 1천만원정도였으니 당시 돈으로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사실 잠실의 아파트를 마련할까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결국 나중을 위해 이 곳을 택했다.
이 땅은 산을 등진 양지바른 곳으로 다소 경사가 급한 것을 제외하면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농가도 한 채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곳이 예전 서당 자리였다며 현직 부부 교사인 최동선 홍향연씨 부부가 들어오게 됨에 따라 제대로 주인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우선 농가를 헐고 조립식 주택을 지었다. 요즘에야 조립식 주택이라 하더라도 고급화돼 괜찮은 주거형태로 인정받는 추세지만 당시엔 말 그대로 가건물 수준이었다. 더구나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쉬었다갈 요량으로 난방도 하지 않고 갈탄난로를 피우고 화장실도 본채와 뚝 떨어진 전형적인 시골집 구조였다. 최동선 홍향연씨 부부는 그렇게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이 곳을 찾았다.
다시 집을 짓기로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난해 초. 이미 집이 낡은데다 부부가 정년퇴직을하고 일선에서 물러나니 이제 이 곳에 정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이 불편하고 난방도 시원찮다며 좀처럼 오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집을 다시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건축은 한국스파-큐 스틸하우스에 의뢰했다. 큰딸의 권유로 건축박람회에 들렸고 한국스파-큐 스틸하우스의 아담하고 짜임새 있는 모델하우스를 보고 이내 결정을 내렸다. 공사는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됐다. 집 구조나 모양은 박람회에서 보았던 모델하우스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지었다. 모두 27평 구조로 방1개와 다락방, 주방 그리고 거실, 화장실로 구성돼 있다. 바닥면적만 20평이며 다락방이 7평 정도를 차지한다. 경량철골로 골조를 세우고 양쪽으로 OSB 합판을 댄 다음 가운데에 우레탄과 EPS로 단열을 했다. 내벽 마감은 석고보드를 대고 벽지로 마감을 했으며 외벽은 드라이비트로 처리했다. 지붕은 아스팔트 싱글. 난방은 기름보일러이며 식수는 산골짜기에서 스미는 약수를 사용한다.
5월부터 시작된 공사는 6월말쯤에야 마무리됐다. 경사가 가파르고 차량 진입이 여의치 않아 자재를 나르는데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순수 건축비만 약 5천8백만원 정도가 들었다. 20평에 대해 평당 2백40만원의 공사비가 들었고 나머지 다락 7평은 평당 1백40만원씩 계산됐다.
돌계단을 따라 높직이 자리한 그림 같은 집. 저렴한 비용으로 아담하고 맘에 드는 집이 지어졌다는 생각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한 번 오면 며칠씩 이 곳에서 머물다 간다. 아직은 서울집을 오가는 상황이지만 이제는 서울보다 이 곳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머잖아 아이들이 모두 출가하면 서울집을 정리하고 이 곳에 아예 내려올 계획이다. 마당 텃밭에 채소도 심고 그리고 50여년전의 그 길을 다시 한 번 걸으며 향수에도 젖어 볼 참이다.田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부지면적: 그린벨트지역 69평
부지구입년도: 84년도
부지구입금액: 7백20만원
건축공사기간: 99년 5월∼6월
건평: 1층-20평, 다락-7평
실내구조: 방1,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다락방
건축비:5천8백만원 평당 240만(20평) 평당 140만(7평)
방위: 정남향
건물형태: 다락방이 있는 단층 스틸하우스
공법: 철골조 단열보강 패널식
벽체구조: 철골조 단열보강 패널
내벽마감: OSB, 석고보드, 실크벽지
외벽마감: 드라이비트 은모래색 마감
단열재: 우레탄 및 EPS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바닥재: 온돌 마루
난방형태: 기름 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주변 마을 가구수: 500m이내에 5가구
생활권: 하남시, 서울 명일동
■설계 및 시공: (주)한국스파-큐 스틸하우스(02-561-1235∼7)
작은인터뷰 / 이완수(한국스파-큐 스틸하우스 대표이사)
좁은 면적 최대한 넓게 활용하도록 설계
그린벨트내 위치한 곳으로 대지 조건이 69평에 불과해 여유가 없는 편이었다. 따라서 주택의 외부 면적을 최대한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진입로 주변의 산수 경관과도 잘 어우러지도록 기본 구조를 잡았다.
주택의 내부구조 역시 좁은 면적을 넓게 활용하는데 초점을 맞춰 설계했다. 1층 20평, 다락 7평으로 모두 27평 정도의 작은 평수지만 거실과 주방을 오픈형으로 설계하여 40평만큼 넓게 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거실 천장을 경사천장으로 높게 하여 거실 공간이 넓고 공기 유통이 원활하도록 배려했다. 이밖에 다락 2층은 경제적인 비용을 들였음에도 짜임새 있고 실용적으로 구성했으며 천장과 닿아있는 만큼 단열에 많은 신경을 썼다. 반원창을 달아 시야를 넓게 한 것도 다락방의 포인트다.
글 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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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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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건축공부 하면서 지은 팔각 목구조 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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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있는 집짓기
직접 건축공부 하면서 지은 팔각 목구조 흙집
법당은 8각형의 흙집으로 나무로 구조체를 세우고 벽체는 나무 쫄대를 대고 양쪽에 황토를 붙이는 심벽치기를 했다. 내외벽은 마사토와 생석회, 볏짚을 섞어 마감을 했고 지붕엔 너와를 얹었다. 너와는 제재소에서 자투리로 나온 나무조각을 규격에 맞게 잘라 약품처리를 했다. 이 작업 역시 직접 쪼개고 약품에 담가 방부 방수 처리해야하는 번거롭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법당내 부처상도 직접 조각했다. 동국대에서 불교조각을 공부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도들이 왔다가 눈물을 훔치고 갔다. 험한 일을 마다 않는 모습이 신도들에겐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마침 포크레인을 운전하다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신도들 마음이 더욱 애절했다. 한상길 법사가 하는 일은 4천여평이 넘는 대지에 여러 채의 건물을 세우는, 그것도 목구조 황토 집을 짓는 까다로운 작업. 규모만 보더라도 개인이 감당하긴엔 다소 벅찬 일이다. 일부 토목 공사를 끝내고 본채와 법당을 완공해 한시름 돌렸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하다.
자연명상 아쉬람‘명주사’ 한상길 법사는 이 곳을 자연명상 아쉬람 ‘명주사’로 이름 지었다. 명상의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이요, 나눔의 공동체다. ‘아쉬람’이란 인도어로 수련원이란 뜻. 비록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고 ‘명주사’란 이름도 있지만 종교의 벽을 넘어 누구나 들려 명상을 통해 머리와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곳이다.
한상길 법사가 본격적인 자연명상 아쉬람 ‘명주사’ 창건에 나선 것은 이태전. 국방부 주지스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부터다. 한상길 법사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국방부 주지스님으로 있었다. 동국대 불교대학을 나와 장교시험에 합격, 성직과정을 이수하고 83년 장교로 임관됐었다. 지난 15년을 군종으로 있으며 모두 8개 부대를 거쳤고 국방부 법당 주지스님 자리를 끝으로 군종직을 떠났다.
이 곳에 정착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공부를 했다. 전역하기 얼마 전부터는 새로운 터전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곳을 돌아 다녔고 휴가 때면 이 일대를 자주 들렸다. 그리고 이 곳과 조금 떨어진 용암리에 농가를 얻어 터전을 마련, 전역과 함께 거처를 옮겼다.
군종생활 15년. 아무래도 세상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공부와 준비가 필요했다. 그동안 구상했던 계획들을 펼치기 위해서도 준비 과정은 필수. 우선 농촌 생활을 알기 위해 농촌진흥청 귀농교육 과정을 수료했고 귀농 창업자금도 신청했다. 건축을 알기 위해 건축학교를 다니며 건축과정도 이수했다. 관련 잡지를 뒤적이며 책에 소개된 집을 직접 찾아가 자문도 구하고 도움도 받았다. 새로운 공동체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자 본격적인 자연명상 아쉬람 ‘명주사’ 만들기에 나섰다. 우선 부지를 알아보았다. 96년 12월 부동산업자의 소개로 만난 곳이 바로 지금의 ‘명주사’ 자리. 이 곳은 준농림전 4천5백50평 규모로 모두 1억4천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비교적 싸게 구입했다는 생각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길이 없는 땅이었다. 길이 날 자리에 이미 여러사람의 땅이 얽혀 있는 상태였고 길 때문에 건축을 앞두고 적잖은 곤욕을 치러야했다. 결과적으로는 원만히 해결됐지만 도로 문제는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와 부딪친 첫 번째 난관으로 기억된다. 도로 문제가 해결되고는 토목공사에 들어갔고 이후부터 본격적인 건축에 들어갔다. 건축학교에서 만난 허우광씨와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다. 우선 법당을 먼저 짓기로 하고 99년 3월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본채는 이보다 뒤인 7월부터 시작했다.
법당은 8각형의 흙집으로 나무로 구조체를 세우고 벽체는 나무 쫄대를 대고 양쪽에 황토를 붙이는 심벽치기를 했다. 내외벽은 마사토와 생석회, 볏짚을 섞어 마감을 했고 지붕엔 너와를 얹었다. 너와는 제재소에서 자투리로 나온 나무조각을 규격에 맞게 잘라 약품처리를 했다. 이 작업 역시 직접 쪼개고 약품에 담가 방부 방수 처리해야하는 번거롭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법당내 불상도 직접 조각했다. 동국대에서 불교조각을 공부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법당은 착공 5개월 만인 8월경 완성됐다. 42평 규모로 정남향에 위치해 있으며 아래쪽에선 힘찬 날갯짓처럼 보인다. 본채는 법당이 완성되기 한 달전인 7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10월쯤 완공됐다. 법당과 부분적으로 비슷한 자재와 공법이 적용됐으나 다만 살림집 용도인 만큼 내부구조는 조금 다르다. 30평 규모로 방이 3개이며 주방겸 거실이 있고 화장실과 다용도실이 있다. 주요 창호재와 내부 자재는 건설업체 모델하우스에서 해체돼 나온 것을 사용했다. 난방은 심야전기 보일러, 식수는 지하수다. 이 곳에선 한상길 법사와 부인 김인숙씨 그리고 철산이와 지수가 함께 생활하게 된다.
본채와 법당을 짓는데는 2억5천만원 정도가 들었다. 신도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며 사실 불가능했던 일이다. 겨우내 일 손을 놓았다. 일이 일단락 지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중이다 보니 눈이 많아 공사를 할 수 없었다. 차근차근 다음 계획을 세우고 점점도 다시 해 본다. 봄이 되면 주변을 정리고 우선 주말농원 가꾸기에 나설 참이다. 꽃들이 만발할 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갈 것 같다. 그들과 함께 텃밭을 나누고 씨 뿌릴 계획을 세워 본다.
글·사진 류재청
건축정보
위치: 강원도 신림면 황둔리
부지면적: 준농림전 4천5백50평(이후 1천여평 추가 구입)
부지구입년도: 96년 12월
부지구입금액: 1억4천만원
건축공사기간: 법당(99년 3월∼8월) 본채(99년 7월~10월)
건평: 법당(42평) 본채(30평)
실내구조: 본채(방4, 주방, 거실, 화장실)
건축비: 2억5천만원(법당, 본채 합계)
방위: 정남향
건물형태: 목구조 흙집
벽체구조: 황토(심벽치기)
내외벽마감: 법당(황마사 + 생석회 + 볏짚)
본채(황마사 + 백시멘트 + 볏짚)
단열재: 스티로폼(본채)
지붕마감: 너와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설계 및 시공: (주)한국스파-큐 스틸하우스(02-561-1235∼7)
자연명상 아쉬람 ‘명주사’
누구든 들려 몸과 마음 비우는 명상의 장소
원주 제천간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신림 나들목을 빠져나와 신림터널을 지나면서 왼쪽편 높직한 곳에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상 강원도 신림면 황둔리에 속한다. 비록 ‘명주사’란 이름이 있지만 ‘자연명상 아쉬람’이란 수식어가 말해주듯 종파를 떠나 누구든 자유롭게 들려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곳이다. 한상길 법사는 지난해 본채와 법당을 지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계획대로라면 앞으로도 6년은 더 걸리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자연명상 아쉬람 ‘명주사’는 명상수련원, 휴양마을, 주말농원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구성되게 된다. 명상수련원은 말 그대로 심신을 수양할 수 있는 공간이고 휴양마을은 며칠씩 들려 쉬었다 갈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휴양마을에만 앞으로 몇 채의 건물이 더 들어서게 된다. 주말농원은 텃밭을 말하는데 신도나 방문객들이 직접 채소를 심고 가꿀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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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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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춧돌 놓고 짜맞추기식으로 재현한 전통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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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집
주춧돌 놓고 짜맞추기식으로 재현한 전통한옥
주춧돌을 놓고 전통한옥 양식 그대로를 재현하려고 애썼다. 기둥만도 66개가 들어갔다. 기둥을 세우고 나무와 나무가 연결되는 부위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홈을 파 일일이 짜맞추었다. 벽체는 소성한 흙벽돌로 쌓아 올렸다. 여기에 나무로 틀을 짜서 대고 스티로폼으로 단열을 한 다음 다시 그물망을 설치하고 흙과 양회를 섞어 벽체를 바랐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회로 마감을 했다.
십중팔구 시선을 떼지 못한다. 쉽게 볼 수 없는 ㄷ자형 주택인데다 외형에서 주는 분위기가 아주 이색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사찰 분위기가 풍긴다고 하고 또 누구는 일본집 같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나 찬찬히 둘러보면 다분히 한국적 분위기가 곳곳에 배어 있는 집이다.
경기도 포천군 소홀읍 직동리. 5년전 이정태 정현옥씨 부부가 이 곳에 왔을 때 직동리는 아주 한적한 동네였다. 불과 5년전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민가나 음식점들이 없었고 이정태씨 집만이 유일했다. 밤이면 무서울 만큼 적막감이 감돌았고 뒷산에서 가끔씩 울어대는 새 소리와 멀리 자동차 소리가 유일한 밤동무였다. 건물이 들어선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
이정태 정현옥씨 부부는 94년 친구와 함께 준농림전 4백40평을 구입, 필지를 분할해 절반씩 나누었다. 결국 2백20평을 구입한 셈이 됐는데 평당 20만원을 주었다. 건축은 이듬해 4월부터 시작됐다.
이정태씨는 이미 집을 알아보러 다니며 ‘이번 집은 한옥으로 짓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굳이 한옥을 고집한 이유는 옛날 기억 때문인데 어려서부터 줄곧 한옥에서 살았었다. 이미 한옥의 좋은 점을 잘 알고 있었고 도심에, 그것도 아파트에 살면서 늘 한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설계와 시공은 모두 외부에 의뢰했다. 설계는 아는 설계회사에 맡겨 이정태씨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해주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지금의 도면을 만들었다. 시공 역시 전통 한옥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 맡았는데 나중에 들으니 김포공항 팔각정을 지은 사람이라고 했다. 주춧돌을 놓고 전통한옥 양식 그대로를 재현하려고 애썼다. 기둥만도 66개가 들어갔다. 기둥을 세우고 나무와 나무가 연결되는 부위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홈을 파 일일이 짜맞추었다.
벽체는 소성한 흙벽돌로 쌓아 올렸다. 여기에 나무로 틀을 짜서 대고 스티로폼으로 단열을 한 다음 다시 그물망을 치고 흙과 양회를 섞어 벽체를 발랐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회로 마감을 했다. 내외벽 마감재로 쓰인 회도 해초를 끓인 물에 삼을 찢어 넣는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 실내는 천장을 없애고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고 밖에는 툇마루를 만들었다. 창호나 문틀도 모두 직접 짰다. 지붕엔 오지기와를 얹었다.
착공 4개월 만인 7월쯤 공사가 완료됐다. 땡볕이 내리 쬐는 한여름에 입주했음에도 그해 여름은 그닥 더위를 모르고 지냈다. 전통방식을 고수한 한옥의 힘이라는 게 새삼스러웠다. 모두 54평 규모로 평당 4백만원정도가 들었다. 당초 3백만원정도로 예상하고 공사를 시작했으나 건축 과정에서 예산을 다소 초과했다. 실내 구조는 방 4개에 거실, 화장실, 주방이 있다. 난방은 기름보일러, 식수는 암반을 뚫고 올라오는 지하수다.
집이 완성되자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개는 음식점이나 카페인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주위에 건물이 없다보니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고 먼발치 호기심만으로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도 있다. 주말이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야외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주위로 건물들이 들어서 제법 동네 분위기를 풍긴다. 일장 일단이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5년전 한적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주위 환경이 많이 바뀌고 아이들도 이만큼 큰 걸 보면 그 사이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어느새 시골 사람이 다 됐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이 곳으로 오기를 참 잘했다.
글·사진 류재청
건축정보
경기도 포천군 소홀읍 직동리
부지면적: 준농림 2백20평(추후 대지전용)
부지구입년도: 94년도
부지구입금액: 평당 20만원
건축공사기간: 95년 4월∼7월
건평: 54평 (이중 툇마루 4평)
실내구조: 방4, 주방, 거실, 화장실
건축비: 평당 4백만원
방위: 정남향
건물형태: 전통방식으로 재현한 한옥
골조구성: 짜맞추기
벽체구조: 소성한 흙벽돌, 황토 + 양회
내외벽마감: 회(해초 끓인 물 + 삼)
단열재: 스티로폼
지붕마감: 오지기와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주변 환경: 음식점 및 카페, 민가 혼재
생활권: 소홀읍, 의정부, 구리시, 청량리, 상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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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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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품 팔며 직접 자재 구입해 지은 48평 벽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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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기의 집 여행
다리품 팔며 직접 자재 구입해 지은 48평 벽돌집
주택을 짓는데 60평 이하는 신고만하면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고 직접 설계를 하면 설계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주택은 48평으로 하고 창고는 72평으로 좀 크게 설계 했다. 4백평에 대한 건폐율 30%를 적용하니 1백20평을 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98년 봄부터는 사업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집 짓는데 매달렸다. 콘크리트 옹벽을 치고 철근도 보통 업자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배가 많은 양을 썼다.
평소 등산을 좋아해 쉬는 날이면 서울 근교의 산을 자주 다니곤 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부동산중개업소에 들려 노후에 살만한 전원주택지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97년 봄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에서 마음에 드는 땅을 만났다.
준농림전 4백평 규모로 시세보다 다소 비싼 듯한 평당 55만원을 달라고 했다. 좀 비싸다는 생각은 했지만 워낙 마음에 들어 다른 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그 땅을 구입했다. 광릉수목원과 가까운 지역이어서 자연환경이 쾌적하고 울창한 수목원 길을 산책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또 47번 국도가 4차선으로 개통이 되면 서울 진입이 편리해 지고 의정부와 상계동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문화적 측면도 나무랄 데가 없다고 보았다.
박중권 공맹님씨 부부가 구입한 땅은 높직이 자리해 시야가 탁 트인 곳으로 전원주택지로는 좋은 집터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고 정원수도 많이 심어져 있다. 박중권씨는 토지를 계약하고 난 뒤 전용허가를 내기 위해 군청 지적과, 주택과, 농지과를 찾아다니며 창구 직원과 부딪쳐 이를 직접 해결했다. 모르면 묻고, 잘못됐다고 하면 다시 작성해 결국 손수 전용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주택을 짓는데 60평 이하는 신고만하면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고 직접 설계를 하면 설계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주택은 48평으로 하고 창고는 72평으로 좀 크게 설계를 했다. 4백평에 대한 건폐율 30%를 적용하니 1백20평을 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98년 봄부터는 사업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집 짓는데 매달렸다. 콘크리트 옹벽을 치고 철근도 보통 업자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배가 많은 양을 썼다.
내벽은 옹벽에 OSB합판을 대고 다시 석고보드를 대고 도배 처리했다. 외벽은 벽돌로 마감했다. 인테리어는 관련 책자를 많이 활용했고 지붕은 옹벽 위에 흙을 깔고 청기와를 올렸다. 당초 아스팔트싱글로 처리하려 했으나 미색 벽돌의 외형과 조화롭지 않을 것 같아 청기와를 택했다. 보일러는 30평짜리 2개를 설치했다.
실내구조는 방 3개, 거실, 주방, 운동실, 다용도실로 구성돼 있으며 거실은 페어그라스 이중창으로 전면을 할애했다. 용암산 소리봉 전경을 최대한 거실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였고 서울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씻어보기 위해서였다. 집은 착공 4개월만에 지어졌다. 박중권씨는 집 짓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 집은 다리품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전용허가를 직접 나서서 해결했고 자재 역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구입한 것이다. 조금 호사스러워 보이는 주물 대문도 돌아다니던 중 물건이 팔리지 않아 재고로 쌓여 있는 것을 현금을 주며 흥정해 구입한 것이다. 다른 자재에 대해서도 물건을 고를 때마다 최소한 열 집 이상을 다니면서 가격과 물건을 비교해 선택했다.
박중권씨가 이 곳에 와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밥맛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주엽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1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그야말로 밥맛이 꿀맛이었다. 지난해엔 이웃 주민이 빌려준 텃밭 2백평에 채소를 심어 자급자족하며 무공해 자연식품도 원없이 먹어보았다.
농사를 지어 본지가 몇 십년이 지났지만 씨를 뿌리고 싹이 돋는 것을 보노라면 세상 시름 다 잊혀진다는 게 박중권씨의 얘기다.田
글 진명기 / 사진 류재청
글쓴이 진명기씨는 공인중개사로 전원주택 돌의 대표이다. 20여년간 전원주택만 컨설팅해 오고 있으며 천리안과 하이텔에 전원주택 관련사이트 ‘DOL’을 운영하고 있다. 02-536-2500
건축정보
위치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
부지면적: 대지 4백평
부지구입년도: 97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55만원
토목공사 비용: 5천만원(매립공사, 조경, 담장, 대문포함)
건축공사기간: 98년 6월~10월
건평: 48평, 창고 72평(창고는 추후 멸실 신고)
실내구조: 방3개, 주방, 거실, 다용도실, 화장실, 운동실
방위: 남향
건축비: 1억5천만원(토목공사비 별도)
벽체: 콘크리트 옹벽
외벽: 벽돌
단열재: 천장만 스티로폼 단열
내벽마감: OSB, 석고보드 후 벽지
지붕 마감: 청기와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식수: 지하수
주변가구수: 50가구(5백미터 이내)
생활권: 소흘읍, 의정부, 구리시, 청량리, 상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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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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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비치는 각도 계산해 지은 Y 자형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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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 지은집
햇살 비치는 각도 계산해 지은 Y 자형 목조주택
전통적인 2X6 미국식 스타일을 기본으로 주요 코너 부위는 4x6, 6x6 등 대형 각재를 사용해 기초와 토대 기둥이 튼튼한 구조가 되도록 했다. 또 향을 고려해 y자형태가 되도록 설계해 동쪽의 아침햇살과 남쪽의 한낮 햇빛 그리고 오후 해가 골고루 전체를 비춰 항상 밝은 실내분위기가 되도록 했다.
행복하다. 얼굴 가득 머금은 웃음기가 가라앉을 줄 모른다. 조그마한 허브농장이 달린 전원주택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일전에 윗동네 풍수지리가 한 분이 ‘참 좋은 곳’이라며 일러주고 가 내심 흐믓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럴까. 96년 이 땅을 산 뒤로 다리가 놓여지고 양안치 고개에 터널이 뚫리고 2차선이 4차선으로 늘어날 예정이란다. 여주휴게소와 나들목 사이로는 여주 구미간 중부내륙고속도로도 생긴다. 원주시내엔 대형 할인매장도 생겼다.
남들은 땅값이 오르겠다며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자연이 좋아 일부러 오지 중에 오지를 찾아온 상황인지라 그에겐 이러한 개발 분위기가 그닥 달갑지만은 않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자연과학부 이주삼 교수. 생물자원공학이 전공이며 그 중에서도 식물생태학 쪽에 조예가 깊다. 농학박사인 그는 한때 덕소에 있는 50만평 규모의 학교농장에 15년간 농장장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서 여느 교수들처럼 말쑥한 양복 차림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의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이 교수가 원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79년부터 9년간 서울 신촌캠퍼스에 있다가 89년 원주캠퍼스로 내려 오면서 부터다. 막상 내려와 보니 ‘원주’는 참 매력적인 곳이었다. 원주시내를 구심점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흙과 식물을 가까이 하는 이 교수에게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부지를 눈여겨 두었다. 당장 서울과 원주를 매주 오가는 일이 번거롭기도 했거니와 노후를 대비한 안식처도 필요했다.
결국 96년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 대지 1백98평을 매입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바로 옆에 붙어있는 다른 사람 명의의 준농림전 4백평도 별도로 함께 매입했다. 준농림전을 별도로 구입한 것은 허브농장을 만들기 위해서. 사실 이주삼 교수는 허브 박사다. 60~70여종에 이르는 허브 종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허브를 보유한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허브 연구를 위한 공간이자 노후를 대비한 제 2의 보금자리가 된 셈이다. 건축은 땅을 사고 3년만이 올 초부터 시작됐다. 아영엔지니어링에 의뢰해 30평 규모의 단층 목구조주택을 지었다.
전통적인 2×6 미국식 스타일을 기본으로 주요 코너 부위는 4×6, 6×6 등 대형 각재를 사용해 기초와 토대 기둥이 튼튼한 구조가 되도록 했다. 향을 고려해 Y자 형태가 되도록 설계해 동쪽의 아침햇살과 남쪽의 한낮 햇빛 그리고 오후 해가 골고루 비춰 항상 밝은 실내분위기가 되도록 했다. 특히 Y자의 코너 부분인 욕실과 화장실에는 삼각형의 창문공간을 대칭으로 만들어 채광과 통풍을 동시에 고려했다.
또 거실 상단도 보를 들어올려 충분히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고, 동시에 창문을 크게 내어 채광과 환기에도 신경을 썼다. 목조건물인만큼 지붕에도 리지벤트를 설치해 원활한 통풍도 고려했다. 실내 구조는 거실과 방 2개, 화장실, 욕실, 다용도실 그리고 주방과 식탁이다. 침실에서부터 서재, 현관, 거실, 식당, 주방 등 어느 곳에서도 자연을 만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건축은 지난 3월부터 시작돼 6월말에 완공됐다. 건축비는 평당 3백30만원 정도로 순수 건축비만 대략 1억원 정도가 소요됐다. 기타 토목공사비 1천만원 정도와 알음알음 들어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총 1억2천만원정도. 이제 여름이 가고 이 집에 들어온 지도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내 이애희씨는 지난여름 이곳에 와서 ‘반딧불이’를 처음으로 보았단다. 이제는 푸성귀를 길러 먹는 재미도 알게 됐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면 서울에 있는 아내도 조만간 이 곳으로 합류할 계획이다. 가을. 조금 있으면 앞산과 뒷산도 발갛게 물들 것이다. 이 교수에겐 행복한 가을이다.
이주삼 교수의 허브 강의
허브는 향기가 나는 식물체의 총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범위를 좁히면 이중에서도 인간의 식생활과 문화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식물로 정의할 수 있다. 초본식물(1년생, 2년생, 다년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목본식물도 포함된다. 재배 조건은 배수가 잘 되고 토심이 깊으며 양지바른 곳의 비옥한 중성토양을 좋아한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적응성이 높아서 야외 재배에 큰 무리가 없다. 특히 전원주택의 정원 가꾸기에 알맞은 식물이다.
꽃의 색깔과 향기가 다양하고 모양과 높이 그리고 개화시기가 달라 활용가치가 매우 크다. 또 허브에는 벌이 많이 모여들어 더불어 양봉도 가능하다. 작더라도 비닐하우스 설치가 가능하다면 파종시기를 조절할 수 있어 정원으로의 이식시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화분에 심어 실내에 두면 실내에서도 허브 향기를 즐길 수 있다. 허브의 활용범위는 우선 차, 오일, 칵테일, 버터, 치즈, 잼, 소시지, 빵, 젤리, 과자 등에 첨가할 수 있다. 또 양초, 비누, 로션, 향수, 베개 등의 제조와 천연염료의 원료로도 활용된다. 최근에는 허브 식물에서 추출한 에센샬(essential)오일을 주원료로 하는 향료요법(Aroma therapy)이 보급되고 있어 앞으로 허브 식물의 활용범위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건축정보
위치: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
대지면적: 198평(옆에 별도의 준농림답 400평)
대지구입년도: 96년
대지구입금액: 대지 평당 6만원, 준농림답 평당 5만원
건물형태: 단층 목구조
공사기간: 99년 3월~6월
건평: 30평, 별도의 창고 10평
실내구조: 방2, 화장실, 욕실, 거실, 다용도실, 주방, 식탁룸
방위: 남서향
평당건축비: 330만원
구조체: 스터드 그레이드 수직재
2×6, 4×6, 6×6쪾외벽마감: 천연 적삼목널
내벽마감: 석고보드, 벽지
단열재: 글라스울
지붕마감: 이중 그림자 아스팔트싱글
바닥재: 온돌마루 및 비닐 시트
난방형태: 심야전기 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주변 가구수: 13가구(담배, 고추농사)
주변환경: 6Km 지점 귀래면사무소, 초·중학교
생활권: 원주시(승용차 25분거리, 버스 하루 2회왕복)
설계 및 시공포인트
■ 설계 및 시공: 아영엔지니어링(02-589-1049) 아영엔지니어링 박형준사장 서재 역할과 노후 안식처 될 것이라는 것에 주안점 두어 설계 입지 조건은 대지 뒤로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는 남서향이다. 처음 이 땅을 접했을 때 대지는 약 10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였고 앞쪽 도로보다도 7m 정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우선 대지의 경사진 부분을 평탄하게 만들었고 진입로도 정비했으며 측구도 설치했다.
이 집은 이주삼 교수의 서재로써의 역할과 이후 부부간의 노후 안식처가 될 것이라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됐다. 사실 30평 주택을 설계하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화장실 하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아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실을 중심으로 침실과 서재로 나누고 가운데 화장실과 욕실 그리고 화장대로 공간을 분할하여 효율을 높였다. 특히 욕실 부분은 평면 Y자의 내부 코너에 위치해 채광과 환기가 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코너 부분에 삼각형의 창문 공간을 대칭으로 만들었다. 주방은 반개방형으로 설계해 주방과 식탁을 분리시켰고 주방에서 외부로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출입문도 만들었다.
田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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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