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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 피는 마을에 시베리아 소나무로 지은 통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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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음식점밤꽃 피는 마을에 시베리아 소나무로 지은 통나무집 IMF가 막 시작할 때 진주시내에 살던 이명자씨는 고향인 산청군 신안면에 시베리아산 소나무로 통나무집을 짓고 음식점을 열었다. 남들은 모두 어렵다고 할 때였지만 통나무집 때문인지 찾아주는 손님들이 많았다. 색감과 무늬가 강열한 시베리아산 통나무으로 지은 신청의 전원음식점을 찾아 보았다. 남녘의 들판과 산에는 밤꽃이 한창이었다. 그 들판의 어느 길을 달려가도 밤꽃내음으로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산청에서 진주로 넘어가는 길은 시원했다. 그 길을 타고 얼마를 달렸을까 산청과 진주의 경계쯤에 밤꽃 무더기를 뒤로하고 우람한 모습의 통나무집이 하나 있었다. 진주시내에 살던 이명자씨 가족이 이곳 산청군 신안면에 통나무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97년 4월이었다. 그후 7개월정도 걸려 IMF가 막 시작하던 97년 10월에 집을 완성해 입주한 후 '목촌'이란 음식점을 열었다.이 집은 일반주택이 아닌 상업공간이다. 무공해 콩나물 사업을 하던 이명자씨가 자신이 직접 기른 먹거리로 만든 음식을 판매하기 위해 차린 무공해 음식점이다. 그런 이유로 설계시공을 할 때 집의 외관에 많은 신경을 써 평면적인 연출보다는 입체감을 많이 주었다. 특히 지붕 전면의 돌출을 길게 하여 포인트를 주었다. 건물의 실내는 강한 입체감보다 부드러움에 초점을 맞추어 통나무의 결과 무늬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으며 이질감이 없게 처리했다.이 집은 콘크리트로 지은 반지층과 통나무로 지은 1층,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바닥면적은 50평이며 연면적은 콘크리트 50평, 통나무 1백평 등 총 1백50평이다. 집의 내부공간 일부는 주거공간으로 꾸미고 황토방도 만들었다. 아무리 힘들게 식당일을 해도 황토방에서 자고 일어나면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이명자씨의 이야기다.특히 그녀는 IMF와 동시에 음식점의 문을 열었지만 독특한 집의 분위기 때문인지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 주어 어렵지 않게 지금까지 왔다고 말한다. 평당 건축비는 통나무 부분만 떼어 계산했을 때 평당 4백50만원들었다.이 집의 통나무는 그 색감이 짙고 무늬가 매우 강렬하다. 매끄럽지 않고 거칠게 마무리된 표면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러한 질감과 색감때문에 분위기가 거친 듯 하면서도 독특하다. 이 집을 시공하는데 쓰인 통나무는 지름 22㎝의 시베리아산 소나무다. 시공업체인 진주의 코에코통나무주택의 강대철 사장은 "시베리아 소나무는 우리나라 설악산 이북지역의 소나무와 같은 수종이라 신토불이 자재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소나무는 추운 기후에서 더욱 좋은 품질이 생산될 가능성이 많으므로 시베리아는 우리나라보다 기후가 더 춥기때문에 같은 나무라도 품질이 우수하다"고 설명한다. 田 ■ 글·사진 / 김경래현장에서 만난 사람 시베리아산 통나무로 집을 짓는 '코에코통나무주택' 사람들 진주의 '코에코통나무주택'은 창업이래 10여년간 시베리아산 소나무로 집을 짓고 있는 통나무업체다. '코에코통나무주택'은 시베리아 중부 바이칼 호수 부근에 있는 '니스니우딘스크'에 합작공장 '니꼬르'를 소유하고 있어 양질의 통나무를 선별해 들여오고 있다.이렇듯 통나무의 생산에도 직접 관여하여 집을 지으므로 통나무의 수입에 의존하는 다른 업체들과 비교해 경쟁력을 갖고 있다.특히 '코에코통나무주택'은 단순한 시공업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생산과 설계까지 꼼꼼히 챙겨 한국형 통나무주택의 올바른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저희 업체는 목재부분만 수입하고 기타 부분은 국내 수급을 원칙으로 하여 무분별한 수입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코에코통나무주택' 강대철 사장은 "통나무주택은 일반주택과 달라 시공후에도 몇년간은 집중적으로 관리를 해 주어야 한다"며 "준공이후 A/S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덧붙인다.시공을 하면서 특히 신경을 쓰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열심히 챙겨 일하는 것이 '코에코통나무주택'의 마음이다. ■코에코 통나무주택 0591-745-6336'코에코통나무주택' 강대철 사장이 말하는 시베리아 소나무 설악산 이북의 나무와 같은 수종 … 우리환경에 가장 적합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목재는 낙엽송, 소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의 목재산업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혼란에 빠져 들었다. 이런 혼란기에 러시아산 목재가 국내에 무조건적으로 수입돼 들어왔다. 이때 들어온 러시아산 목재들은 불량제품들이 많아 "러시아산 목재는 가격이 저렴하다"든가 "러시아 통나무는 품질이 좋지않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시베리아산 목재로 통나무주택을 짓고 있는 '코에코통나무주택'을 방문하는 건축주들은 "러시아 목재는 품질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데 사실인가?" 혹은 "한국, 러시아, 미국, 캐나다, 핀란드 등 여러나라의 목재 중 어떤 것이 가장 품질이 좋은가?"라는 질문들을 많이 한다. 이런 건축주들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지역별 목재의 품질에 대해서 정확하게 분석해 놓은 자료가 없으며 국내 전문가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속시원하게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지역의 목재든 소나무와 낙엽송은 건축자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같은 나라에서도 목재는 여러 등급의 품질이 있으며 주변 환경에 따라 다양한 생장조건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통나무 질을 이야기 할 때 어느 나라의 것이냐를 이야기 하기보다는 어느 회사의 어떤 등급의 제품이냐를 따져 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목재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통나무주택을 시공할만한 목재를 구할 수 없다. 수입목재중 국내 목재와 가장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것이 시베리아산 소나무라 생각한다. 시베리아의 소나무는 우리나라 설악산 이북지역의 소나무와 같은 수종이다. 같은 수종에서도 추운지방에서 자란 소나무일수록 품질이 우수하다. 그러므로 국내 기후보다 추운 시베리아산 소나무의 품질은 우수하다 할 수 있다.그러나 현재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 각국의 통나무는 어떤 제품이든 건축자재로서 충분하다. 단 차이가 있다면 핀란드나 미국 등의 통나무는 인공적으로 가공이 많이 되어 있는 반면 시베리아산 통나무는 자연에 가깝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핀란드나 미국의 통나무 표면은 매끄러운 반면 시베리아산은 거칠다. 이것은 가공기술의 차이지 목재 자체의 질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건축주가 통나무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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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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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 바닷바람이 방안 가득 찰랑거리는 통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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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집영일만 바닷바람이 방안 가득 찰랑거리는 통나무집 수구초심이라 했던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지는가 보다. 바다가 가득한 영일만의 해안가에 핀란드산 통나무집을 지은 사람도 나이가 들어 고향을 찾았다. 도시서 사업을 하다 고향이 그리워 고향에 들어와 지은 이재일씨의 통나무집을 찾아보았다. 포항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이재일 씨는 나이가 들면서 고향인 영일만에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자신 소유의 땅도 몇 평 있었다. 고민한 끝에 카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포항제철의 크고 작은 굴뚝들이 빤히 건너다 보이는 해안마을 동해읍 마산리 바닷가에 이재일씨는 통나무집을 지었다. 마산리지역은 우리나라 지도상에서 흔히 호랑이 꼬리로 불리는 곳이다.포항시내에서 동해쪽으로 빠지면서 우측은 구룡포가 되고 좌측은 바로 이곳 마산리다. 이곳에서 좀 더 들어가면 호랑이 꼬리의 끝인 대보면 호미곶(혹은 장기곶)이 나온다. 마산리의 바닷내음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 영일만 해안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는 이 통나무집의 창문으로는 바다가 가득히 들어온다.애초 이재일씨는 도심의 번거로움을 훌훌 털고 고향인 이곳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고 싶었다. 그러다 카페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바닷가를 따라 쉴새없이 곡선을 그리는 해안도로가 주말이면 사람들로 분비는 드라이브코스로 변하기 때문이다.현재 이 지역엔 이렇다 할 카페가 없다. 이곳 준농림지 가격은 평당 40만원선이다. 카페면서도 주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거만족도가 높은 통나무로 시공을 했다. 그는 이 집을 카페겸 주택으로 이용할 생각을 갖고 있다.이 집은 핀란드산 통나무로 4백99평 대지위에 지은 연면적 1백56평의 3층 건물이다. 지하 50평은 조적조로 하였고 1층과 2층은 통나무로 지었다. 시공에 쓰인 모든 자재와 시스템은 전부 핀란드에서 수입했다. 국내 핀란드산 목재 공급업체인 '정일품송'을 통해서다.이 집을 시공한 윤엔터프라이즈 윤달한 사장은 웅장함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 말한다. 통나무는 지름 21㎝를 사용해 외관상으로 웅장해 보이도록 했으며 내부도 2층과 3층 공간을 오픈시켜 웅장한 느낌을 더했다. 3층 공간은 통나무와 목조주택을 결합시켜 주택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천정은 서까래와 보 등을 그대로 노출시켜 밋밋한 목조 마감에 변화를 주었다. 이렇게 서까래와 보 등의 노출마감은 정통 유럽식에서는 흔히 쓰지 않는 방법이다. 화장실 공간도 특이한데 청결감을 주기 위해 유리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런 유리 시스템도 국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田 ■ 글·사진 / 김경래핀란드산 목재 국내 공급선정일품송이 말하는 '핀란드산' 통나무 포항에 지은 통나무집에 쓰인 목재는 핀란드산이다.목재로서 통나무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는 전통적인 임산국이며 세계 10대 목재메이커 중 8개가 핀란드업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핀란드는 일년에 가공되는 목재보다 자라는 나무가 더 많은 임산부국으로 전통적인 임업국이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기계식 통나무를 생산해 나무가공기술이 매우 뛰어나다. 국내에서 시공되는 기계식 통나무주택은 핀란드 목재를 사용하는 것들이 많다.핀란드 목재는 기후가 겨울에는 영하 40도, 여름에는 영상 35도에 이르는 등 온도차가 크고 4계절이 있어 나이테가 촘촘하다. 또한 나무 직경의 밑둥과 상단부가 거의 일치하여 통나무주택 시공에 적당하다. 정일품송 02-578-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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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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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에 이는 바람 선선한 하늘하래 첫동네에 지은 통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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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에 지은 집대숲에 이는 바람 선선한 하늘하래 첫동네에 지은 통나무집 지리산의 짙푸른 녹음이 숨찰 정도로 빼곡한 청학동에 집을 지어 덕산료(德山寮)라 이름지었다.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넓고 시원하게 살고 싶어 거실도 넓게 하였다. 하늘아래 첫동네의 유리알 같은 햇살과 대숲에서 이는 시원한 바람에 취해 여름을 나는 청학동의 집을 찾았다. 두류산은 높고 석양의 구름은 낮은데일만골 일천바위는 회계산(중국 절강성에 있는 산)을 닮아있네지팡이 짚고 청학동을 찾으려 하니건너편 숲속에선 원숭이 울음소리만 들리네누대는 보일듯 말듯 삼산(중국 강소성에 있는 산) 밖에 아득하고이끼낀 글자만 희미하게 남아있네묻노니 청학동은 어디메뇨꽃잎만 어지럽게 흘러 더욱 낙망하여라 고려때 청학동을 찾아나섰던 이인로는 결국 찾지 못하고 그가 쓴 책 파한집에 이런 시만 남겼다.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상향을 찾아 나섰다. 푸른 학이 산다하여 붙여진 이름 청학동도 이런 이상향 중 한곳이다. 해발 9백m의 지리산에 있는 산골마을인 청학동에는 지금도 상투튼 노인들과 댕기머리를 한 아이들을 볼 수 있다.행정구역상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로 되어 있는 이곳 청학동에 양재석씨는 97년 통나무집을 지어 살고 있다. 민족의 영산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이 마을에 진주시내서 전기공사업을 하던 그가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것은 7~8년전 쯤이다.이때 이미 그는 이곳 청학동에 집을 짓고 살기로 마음먹고 평당 7만원에 1천여평의 땅을 구해 놓았다. 청학동을 드는 마을 어귀의 언덕위였다. 사업을 하면서 매일 피곤해 있었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하여 통나무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지어진 통나무집들을 많이 보고 다녔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시베리아산으로 지은 통나무집이었다. 추운지방의 목재라서 그런지 다른 통나무보다 우선 단단해 보였다. 통나무의 색깔도 붉은기가 많이 돌아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시베리아산 통나무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전문시공업체인 코에코통나무주택에 공사를 의뢰했다. 96년 10월경이었다. 공사를 시작한지 5개월정도 걸려 창고 1동을 포함해 60평의 주택을 완성, 97년 2월 입주를 했다. 평당 건축비는 3백50만원정도 들었다.설계는 직접하였는데 내부구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거실공간이다. 집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거실이 넓어야 답답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거실을 넓게 했다. 거실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방, 주방, 화장실 등의 공간들을 나란히 배치했다.이 집을 짓는데 쓰인 통나무는 지름 18㎝ 굵기며 방은 모두 황토방으로 꾸몄다. 거실 바닥은 온돌마루로 했다. 지붕은 수공식 다이아몬드형 동판을 사용해 마감했다.특히 조경에 신경을 썼는데 마당을 3계단의 단차를 두어 꾸몄으며 층마다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고 각종 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조경을 하는데 약 1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안주인 박숙현씨는 이 집에 대해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그녀는 이 집을 짓고나서 흔한 하자 하나 없었다고 자랑한다. 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냉난방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으며 습도조절도 잘 되고 통풍도 잘 된다. 음식냄새도 잘 빠지기 때문에 실내는 항상 청결하고 뽀송뽀송한 느낌을 준다. 양재석씨는 불교에 심취해 있다. 집의 현판을 덕산료(德山寮)로 하였는데 덕산은 그의 법명이다.양재석 박숙현씨 부부는 아이들 학교때문에 진주시내에서 지금은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번씩 이곳에 와서 생활하는데 고등학교 3학년 1학년인 아이들이 대학진학만 하면 아예 이곳에 들어와 살 생각이다. 지리산 끝자락 청학동의 유리알 같은 햇살과 푸른 대숲에서 이는 바람에 이들 부부는 흠뻑 빠져 있다. 田 ■ 글·사진 / 김경래청학동 여행정보 상투 튼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늘아래 첫동네 경남 하동군 묵계리의 청학동은 지리산 삼신봉의 동쪽 기슭 해발고도 8백m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부터다. 왜병에 항거하던 사람들이 산깊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고 이후 인구는 점점 늘어나 일제시대에는 1백여호에 이르게 되었다.광복이후에는 동학의 아류인 강대성이란 사람이 '유불선합일사상'을 믿는 신도들을 데리고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다.6.25때는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전주민이 하산하고 마을 전체가 불타버리기도 하였고 이후 58년에 다시 20여가구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현재는 40여가구 2백여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갱정유도란 신흥종교를 믿고 있는데 집단생활을 하며 가옥은 전래의 초가집 형태를 띠고 있다. 의생활도 전통적인 한복차림을 고수하고 있다. 미성년 남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리며 성인 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최근까지도 마을의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마을 서당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이렇게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던 청학동이었지만 세상에 알려지면서 찾는 발길이 많아져 마을 어귀에는 민박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마을길이 포장되어 있고 현대식 주택과 자가용까지 갖추어 놓고 살고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하동을 목적지로 하여 찾아가면된다. 서울서 간다면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하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으며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서울역에서 열차를 이용하여 하동까지 갈 수도 있다.하동에서 청학동으로 가는 버스는 아침 8시 20분부터 저녁 7시 20분까지 하루 6회 운행한다. 진주에서도 청학동을 갈 수 있는데 진주에서는 버스가 아침 7시 10분부터 저녁 3시 50분까지 하루 3회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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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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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지은 꿈결 같은 통나무 주택 날아갈 듯 웅장한 날개짓을 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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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은 전원주택강가에 지은 꿈결 같은 통나무 주택 날아갈 듯 웅장한 날개짓을 하는 집 전원카페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강변에 지붕이 아름다운 웨스턴 스타일의 통나무집이 하나 있다. TV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보고 또 보고'나 '정 때문에'와 같은 프로에서 한번쯤 보았을 집이다. 웅장한 모습으로 강을 내려다 보고 서 있는 아니 강위에 떠있는 것과도 같은 잘 지은 통나무 집을 찾아보았다. 양평 강상면은 한강변을 따라 전원카페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 강변에 웨스턴 스타일을 한 지붕 아름다운 집이 한 채 있다. 남한강변의 수려한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으며 마치 물위에 떠있는 것과 같이 웅장한 구조를 하고 있다.이런 아름다움으로 하여 이 집은 TV드라마 '보고 또 보고' '정때문에' 등의 배경화면으로 자주 등장하였다. 대지 3백80평에 건축면적 1백80평, 바닥면적 60평인 이 집은 작년 5월에 짓기 시작하여 11월에 입주했다. 지붕이 매우 아름다운데 공을 많이 들였다. 건축비와 일손이 많이 들면서까지 뻐꾸기 창을 전후면에 각각 4조씩 넣어 지붕의 예술미를 더했다. 뒤쪽 창문에는 모두 격자살을 넣어 단순함을 피하였다. 그러나 전망감을 좋게하기 위해 강가쪽의 창은 통유리로 처리했다. 특히 전망감을 좋게 하기위해 거실부의 전후면 양측을 돌출시켰고 안에서 바깥풍경을 보면 서 있는 위치에서도 1백80도로 시야에 거침이 없다. 그만큼 시야감이 시원하고 좋다. 1층과 2층 모두 매우 넓은 데크를 4면으로 돌려 건물의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꾀하고 편리함을 제공해 주고 있다. 층고는 3.5m다. 이런 높이 덕분에 내부공간이 매우 크고 답답하지 않다. 특히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외부계단을 별도로 웅장하게 설치해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더했으며 계단은 모두 넓직하며 투박하고 두꺼운 원목을 사용해 자연미가 좋다.이 집을 짓는데는 굵기 1백80㎜인 북미산 소나무인 햄록을 사용했고 지붕은 적삼목 너와로 마감했다. 시공은 동국엔지니어링에서 했다. ■ 글·김경래 사진·김혜연 ■ 건축 개요 위 치: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163번지 대지면적: 3백80평 건축면적: 1백80평 구 조: 3층 통나무 구조 바닥면적: 60평 목재종류: HEMLOCK(북미산 소나무) LOG굵기: 1백80MM 지붕재: 너와(적삼목) 창호재: 목창호(16MM 복층 유리) 설계 및 시공: 동국엔지니어링 (02-407-6730) 미니인터뷰·김용엽(동국엔지니어링 사장)한국적 통나무주택 짓기서울은 물론 양평과 용인, 용평, 서산, 대전, 공주 등지에서 다양한 종류의 통나무를 시공하고 있는 동국엔지니어링의 김용엽 사장은 '통나무주택의 무결점화'를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미국의 현지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연구해 국내에서 미국식 정통 통나무주택 건축을 꾸준히 해왔다. 그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직접 하며 한국인의 정서와 생활방식에 맞는 예술적인 시공을 원칙으로 하여 집을 짓고 있다고 설명한다."한국적 통나무주택의 시공을 위해 우리의 기후와 풍토 및 생활방식에 맞는 집을 꾸준히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이렇게 말하는 김용엽 사장은 집 한채를 짓더라도 최고의 예술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을 기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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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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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시작한지 2년… 아직도 공사 중 전통주거공간과 현대적생활의 접목을 고민해 짓는 화가의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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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북내면 상교리 최창훈씨
집짓기 시작한지 2년… 아직도 공사 중
전통주거공간과 현대적생활의 접목을 고민해 짓는 화가의 한옥
화가는 가족들이 살 집이었기에 기초공사부터 신경썼다. 집터를 닦는데 모래와 자갈, 마사, 석분을 3m 높이로 층층이 쌓아 다졌다. 그리고 그 위에 살림집, 주방과 거실, 작업장등 한옥 세 동을 짓기 시작했다. 건축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건축공사장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익힌 기술과 주변의 조언만 믿고 용기를 냈다. 집짓기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완성을 못한 채 계속 집을 짓고 있는데 현재 창호공사와 내부 마감공사를 남겨 놓고 있다.
전원생활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뒤에는 산, 앞에는 강이 흐르는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힘에 부치지 않을 만큼의 텃밭을 일구며 사는 것이 꿈일 것이다. 여주 북내면 상교리에서 손수 한옥을 짓고 있는 화가 최창훈씨도 이런 꿈을 꾸면서 여러날을 수소문한 끝에 이곳 고달사지 초입의 땅 1천40평을 96년도에 구입했다. 그리고 97년 봄 2백평을 전용받아 60평 한옥을 손수 짓기 시작했다. 한옥을 고집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때문이었다. 평소 화가는 한옥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도 즐겨 읽었다.
집을 지어본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화가가 직접 살림집을 짓겠다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림으로만 먹고사는 것이 힘에 부쳐 틈틈히 건축공사장에서 일도 하고 직접 인테리어 사업도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간접적인 경험과 주변의 조언에 힘입어 용기를 냈지만 집짓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특히 지반공사를 하는데 많은 힘이 들었다. 땅의 상태를 고려해 콘크리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터를 닦으려니 신경쓰이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낮은 지반을 돋우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 우기를 대비해 배수로를 파고 자갈과 유공관을 설치해 지반의 물빠짐에 신경쓰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집터는 모래와 자갈, 마사, 석분을 3m 높이로 층층이 쌓아 다졌다.
지반을 다지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한겹한겹 골고루 골재를 편 다음 15톤 덤프트럭에 모래를 가득 싣고 집터를 수없이 돌았다. 덤프트럭의 기사분과 중장비 기사분의 도움이 매우 컸다. 이런 기초공사 덕분에 장마철 폭우가 쏟아져도 한두시간만 지나면 바닥이 뽀송뽀송 말라 버린다. 터닦기 공사는 봄에 시작하여 거의 가을이 다 되어 끝났을 정도로 많은 경비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화가는 이런 경험 때문에 집을 지으려면, 특히 한옥을 지으려면 터를 고를 때 물빠짐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 선택하는 것이 기초공사할 때 덜 고생한다며 충고한다.
주춧돌은 주변의 석산에서 문화재 보수용으로 쓰이는 퇴색된 화강암을 구해 사용했다. 집은 모두 세채다. 가운데 거실과 주방으로 쓰이는 집이 하나 있고 양쪽으로 침실 등 주거공간과 작업실을 나란히 붙여서 지었다.
이렇게 집을 짓는데 목재는 우리나라 육송을 고집했다. 요즘에 짓는 한옥들을 보면 더글라스 소나무나 외국산 육송, 미송 등을 주로 쓰는데 화가는 우리나라 집을 짓는데 우리나라 목재를 사용하는 것이 제격이란 생각에서 국산 자재를 썼다. 기둥과 보는 각재가 아닌 둥근 기둥으로 마름질했다.
한자 간격으로 서까래를 올려 놓은 모습이 살림집 같지 않고 웅장하다. 세채의 집이 독립공간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 연결선이 물흐르듯 매끄럽다.
기와는 암수가 따로 있는 기와로 ‘충주기와’에서 시공을 했다. 문화재 보수용 기와라 모양이 좋으며 변형이없고 내구성이 강하다는 것이 시공회사측의 설명이었다. 특히 3대가 기와공장을 대물림하여 기와를 생산하고 있으며 시공후 40년동안은 사후관리를 해준다 하여 마음이 놓였다. 기와를 올리고 나서 그 모양이 점잖고 하자가 없어 흡족했다.
기와시공은 까다롭다. 잘못하면 누수가 발생하고 시공은 잘 했다 하더라도 기와의 질이 나쁘면 비가 새거나 겨울에 파손되어 건물에 치명적인 영향을 입힌다. 그래서 기와 선택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화가의 설명이다.
계획대로라면 작년 여름에 벌써 입주했어야 했다. 현재 문틀과 내부 마감공사만을 남겨 놓고 있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공사 진행이 다소 부진한 실정이다. 특히 실내 마감에서는 현대적인 생활환경과 전통적인 구조사이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여 고민하고 있다.
지붕과 처마는 기와를 얹고 창호는 현대식 창호를 사용하는 그런 전통을 위장한 마무리는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집을 지으면서 바로 곁에 전세를 얻어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틈틈히 연장을 챙겨 집짓는 일을 한다. 지금까지 집짓는데 들어간 비용은 평당 2백80만원 정도고 앞으로 평당 70만원정도 더 들이면 마무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간이 있으면 있는대로 경제사정이 허락하면 하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그는 집을 지어가고 있다.
고달사지
사적으로 지정된 여주 고달사지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창건돼 고려 광종이후 역대왕의 비호를 받았던 대사찰이었다. 그러다 언제 폐사 되었는지 모르게 폐사돼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이곳에는 국보 48호인 부도와 보물인 석불좌, 원종대사 혜진탑과 탑비 귀부·이수, 쌍사자 석등 등 많은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발굴 조사가 한창이다.
화가 최창훈
“직접 농사지으며 농촌의 현실을 그린다”
화가 최창훈은 홍익대학교 회화가를 졸업하고 91년부터 여주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농촌의 현실과 그 모습들 하나하나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농촌 사회에 터전을 두고 전통적 회화방식이라 할 수 있는 천위에 유화작업을 하는 그는 점점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우리의 모습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저녁 찬거리라도 하려고 남의 감자밭에 감자 몇개를 캐려다 들켜 쑥스러워 하는 시골할머니, 낮술에 겨워 논둑에 드러누워 횡설수설하는 늙은 농부들의 모습과 그들이 몸붙여 살고 있는 흙, 오래된 농기구, 허물어져 가는 농가의 한켠 그리고 그 주변에 수없이 핀 들꽃들.
화가는 점점 사라져 가는 이런 모습들을 화폭에 담아내면서 자신의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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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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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아파트 창을 통해 본 세상서 탈출해 지은 목조주택 “이 갇힌 듯 답답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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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생활과 집
13층 아파트 창을 통해 본 세상서 탈출해 지은 목조주택 “이 갇힌 듯 답답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
10년전 안양의 아파트에 살 때였다. 겨울 어느날 아파트 창을 통해 함박눈이 내리는 정경을 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함박눈을 맘껏 맞을 수 있는 자연속으로… 그렇게 하여 우리가족은 지금의 가평으로 이사를 했다. 이곳서 목조주택을 짓고 살고있다. 이곳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들과 내가 사는 집에 대해서 소개한다. ■ 글 . 한명희
10여년전 안양시의 한 아파트 13층에 살던 때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성큼 자라버린 아이들도 그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당시 아이들은 4~5살로 한참 호기심 많고 응석받이로 시중들기 힘들 때였다. 놀이터에 가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항상 엘리베이터를 아이들과 함께 타고 나서야 했고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이 혹 다치기라도 할까봐 지켜 보아야 했다. 이렇게 13층 공간에 갖혀 답답한 생활을 하면서 뭔가 불만족스럽다는 생각을 해야 했다.
그러던 겨울 어느날. 아파트 창을 통해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던 광경을 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아파트 좁은 공간에서는 많은 가족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와 함박눈을 맞으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광경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밤새 소복히 쌓인 눈밭에 뛰놀며, 비질을 하며, 눈도 치우며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서 부터는 서서히 도시를 떠날 준비를 했다.
우리가족들은 꽤나 일찍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전혀 불만없이 나름대로 건강한 생활을 하며 행복을 가꾸어가고 있다.
가평에 터전을 마련한 이유는 남편이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어 사업장이 있는 서울까지 그리 멀지않아 출퇴근이 가능했고 또한 마을이 있어 아이들의 학교문제도 불편없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좀 불편하고 부족한 것들이 있었지만 감수하며 차츰 적응해 나갔다. 아이들은 유치원때부터 몇몇 안되는 아이들 틈에서 함께 뛰놀며 배우며 활동적이고 우호적인 성격으로 자라주었다. 저학년이라야 1백명도 안되는 조그만 초등학교였지만 선생님들과 부모들간의 가족같은 유대관계로 더없는 교육환경을 만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크면서 우리 가족들은 이곳의 전원생활에서 차츰 익숙해 졌고 지금은 큰아이가 10분거리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해 아무 불편없이 다니고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 교육문제에 관해 대단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신경을 쓴다. 그러나 정작 자연속에서 더불어 심성을 기르며 정서를 다지는 교육만큼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오직 기능적이고 공부 잘 하는 자녀교육이 전부인 것처럼 대학진학이 최대의 목표인 교육에만 전념한다.
우리시대 아니 미래의 우리아이들에겐 자연을 알고 사회와 더불어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며 그런 인간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족은 운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기도 가평군 상면 율길리에서 살고 있다. 이곳 땅을 구입하여 2채의 목조주택을 지었다. 한채는 우리가족이 살고 다른 한채는 필요한 사람에게 매매할 생각이다. 함께 살면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살기 편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곳의 아침은 동녘산의 아침햇살로 시작된다.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 학교로 가는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창을 넘어온 햇살은 방안 가득 따스하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이따금 전원생활이 궁금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은 전원생활을 단순한 동경만으로 시작하려 해 안타까울 때도 있다.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어느때가 되면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서 아름다운 집을 짓고 가족들과 전원생활을 즐기는 꿈을 꾸고 있다. 현재 전원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에는 주말주택으로 이용하다가 노후가 되면 내려와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그동안 전원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 본다.
첫째, 직장을 갖고 있다면 출퇴근 거리가 중요하다. 서울의 경우 시내 진입거리 50㎞ 이내의 위치에 1시간대 거리면 적당하다.
둘째, 학교등 주변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 좋다. 특히 자녀 학교문제나 시장, 병의원 등에 대해서는 꼼꼼히 체크해 보기 바란다.
셋째, 지나친 자연경관만 고집해 깊은 산속이나 계곡, 강 등 독립된 가옥을 선호하는 것은 자칫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혹은 방범이나 수해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어느 정도 마을이 형성된 곳이면서 독립된 공간을 형성할 수 있는 곳이 좋을 것이다.
넷째, 원주민과의 밀접한 생활을 하진 않더라도 더불어 유대관계를 갖고 환경을 이해하며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하다. 절대 폐쇄적이고 닫힌 마음으로 전원에 정착하려면 실패하게 된다.
다섯째, 나름대로 전원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하며 특히 전원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즉 정원의 잔디가꾸기, 나무심기, 텃밭가꾸기, 집단장하기 등 신경쓰일 일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으로 전원으로 출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터전을 새롭게 가꾼다는 각오와 그럴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 사진·김혜연
글쓴이 한명희씨는 주부로 90년 가평군 상면 율길리로 이사하여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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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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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집과 황토집 2동이 있는 대지 2백50평을 4천만원에 놀러왔던 아이들이 떠난 계곡엔 새소리 물소리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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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땅 임대하여 주택겸 화실·전통찻집으로
슬라브집과 황토집 2동이 있는 대지 2백50평을 4천만원에
놀러왔던 아이들이 떠난 계곡엔 새소리 물소리만 가득
화가는 서울생활이 지쳐갈 때 쯤 변화를 생각했다. 시골로 내려가 조용한 곳에 묻혀 그림을 그려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계곡 속의 끝 집을 찾아 이사를 했다. 대지 2백50평에 슬라브집과 황토집 2동이 있는 문중땅을 4천만원에 임대하고 8백70만원을 들여 컨테이너 집을 지었다. 이곳서 화가는 태림화실이라 하여 전통찻집을 열고 산속을 찾는 사람에게 향기나는 차를 대접한다. 그리고 그 생활 하나하나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협회일을 하다보니 시간이 좀체 나지 않았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많았고 자연 그림을 그릴 시간도 없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 수입도 줄어들었고 생활이 버거워졌다. 엄태림 화백은 이렇듯 서울생활에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할 때 쯤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시골로 내려가 그림 그리는 일에만 몰두하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적은 돈으로 시작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내집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었다. 그래서 임대하기로 했다. 서울 인근을 뒤져 이곳저곳을 쫓아 다니다 자리를 잡은 곳이 이곳 포천군 신북면 기지리 문암골 계곡의 끝집이다.
작년 2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조용한 계곡과 덜 녹은 눈으로 버짐을 먹은 듯 희끗희끗한 산등성이, 제멋대로 휘어져 자란 소나무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계약을 했다.
이곳은 문중땅이다. 그래서 조건이 비교적 좋았다. 총 대지 2백50평에 슬라브 집인 20평형의 본채와 10평 정도의 황토집이 2동 있었다. 이들 땅과 집을 4천만원에 임대했다. 이사온 후 콘테이너 박스 두개를 붙여 10평정도의 창고를 짓는데 8백70만원이 들었다. 그 외에는 더 이상의 투자는 없었다.
본채는 살림집 겸 작업장으로 쓰고 황토집 하나에는 전통찻집을 열었다. 그리고 또다른 황토집은 그림 배우러 오는 이들을 위한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이곳엔 그림을 배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집을 찾아오는 길은 쉽지 않다.
4차선 도로에서 마을길을 따라 6백m 정도 들어온 후 다시 비포장도로로 1㎞ 정도 들어와야 한다. 비포장 도로는 그야말로 산길 수준이다. 길을 따라 한쪽으로는 계곡이 있다. 계곡에는 식수로 쓰이는 맑은 물이 흐른다.
강의실에 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건너야 한다. 계곡에는 흔들다리가 놓여져 있다. 이 길을 따라 차를 마시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차를 팔아 한달에 생활비 정도는 번다. 그림을 팔지 않는 이상 이것이 주 수입원이다.
화가가 이곳에 터를 잡을 때 그림을 그리는 것과 찻집을 여는 것에 대해 동시에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찻집을 운영하며 생활비는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이런 화가의 조건에 가장 잘 맞는 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마을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등교는 자동차로 학교까지 데려다 주지만 하교땐 친구들과 어울려 1㎞ 이상되는 산길을 걸어서 온다.
가까이에 집은 없지만 마을에 있는 아이들이 이곳 계곡까지 놀러온다. 아이들은 계곡의 바위가, 계곡물이 장난감이다. 하루종일 이곳서 뛰놀던 아이들은 저녁 어스름이 시작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면 계곡엔 물소리뿐이다. 때론 찻집의 향기를 찾아 오는 늦은 손님들도 있지만 ….
나의 도시 탈출기
물소리 바람소리에 씻긴 봄볕 가득한 산속으로
서울서 벗어나고 싶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지쳐 있고 황폐해 있는 자신을 더 이상 가눌 수 없었다.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심경의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가 작업을 하고 싶었다. 주변사람들과의 잦은 만남과 미술단체의 과중한 업무를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모험이었다.
미술단체의 사무국장과 총무일로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정작 필요한 작업시간은 늘 부족했다. 작업을 안하다 보니 자연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중대한 결심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98년 들어 서울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제부도쪽을 생각했다. 군생활을 대천과 무창포에서 하였기 때문에 짠 바다내음과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 질펀한 갯벌을 제대하고 나서도 항상 그리웠다. 하지만 예산이 맞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경제력으로는 작업장과 살림집, 찻집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작업만 하여서는 버틸 수 없었다. 오히려 작업을 하는데 연 2백만~3백만원 정도가 들어가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수입원으로 찻집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제부도는 이렇듯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를 했다. 다음으로 포천을 택했다. 서울 진입이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부분의 전시와 활동 그룹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울진입이 편하며 유리했다. 포천에서 나흘동안 헤매고 다니다 이곳 신북면 기지리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이곳은 첫인상이 좋았다. 4차선 도로에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6백m쯤에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해발 4백24m의 천주산을 배경으로 문암골 계곡이 약 1㎞ 이어져 있었다.
계곡은 비교적 소박하였지만 2월초의 잔설이 드문드문 보이며 참나무와 꼬불꼬불하게 자란 소나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계곡의 끝에 집이 하나 있었다. 황토방 2동과 슬라브 건물 1동, 원두막이 보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농구들과 시골생활용품들이 있었다. 위쪽에는 사슴과 염소, 닭, 꿩, 오리 등이 보였다. 이런 풍경들은 어릴적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고향에 온 듯 전혀 낯설지 않았다. 원두막에 앉아 모닥불에 물을 끓여 커피를 타서 마셨다.
겨울의 추위가 눈녹듯이 가셨다. 이렇게 시작된 전원생활이 벌써 1년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10년이 된 것같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이곳 하늘에 있는 무수한 별들과 같이 아득하기만 하다. 이곳에 온 후 많은 변화가 일었다. 일일 8시간 이상으로 작업량이 늘었고 자신을 차분히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좋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닌다.
오후면 아들녀석의 친구들이 몰려와 이곳 계곡을 운동장 삼아 재잘거리며 뛰어다닌다. 까치의 울음소리와 돌 위를 내달리는 다람쥐, 하루종일 들리는 계곡 물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소나무와 참나무의 장작타는 냄새 등… 이 모든 것들을 아름다움이란 말 이외에는 표현할 것이 없다.
작년 여름엔 폭우로 피해를 보았다. 길이 끊겼고 계곡의 다리가 떠내려 갔다. 전화와 전기가 끊겨 거의 한달을 고립된 채 생활했다. 동네 어른들은 40년만의 큰 비라 했다. 복구는 하였지만 계곡은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를 지내고 내년에는 그 앙상한 모습들이 다시 풀이며 꽃이며 나무들로 덮힐 것이다. 나는 지금 봄빛 완연한 나른한 오후를 택해 상념에 잠겨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은 내면의 움직임이 무한 공간 속으로 끝없이 배회를 한다. 내일이면 이런 산속의 흔적들과 나의 생각들이 화폭에 가득 담겨질 것이다.
봄빛 가득한 문암골 계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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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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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꽃길 눈길 끄는 마당 넓은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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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넓은 집
장미 꽃길 눈길 끄는 마당 넓은 2층 목조주택
한적한 전원을 지나다 우연히 보게된 전원주택 한 채, 푸른 잔디가 곱게 깔린 드넓은 정원과 그 한가운데를 가르는 장미꽃길이 눈길을 끈 다. 이 집에는 이제 막 사회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인심 좋은 부부가 살고 있다.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에서 맑은 공기, 푸른 자연 그리고 소박한 사람냄새를 찾아 온 부부다. 남편은 항상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희망했고, 부인은 낯선 생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를 자신 없어 했다. 하지만 꼭 1년 전, 어쨌든 부부는 함께 이곳 원당마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자연은 사람을 넉넉하게 만들어 준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여유로와 지고 또 남을 베려할 줄 알게 된다.
한적한 전원을 지나다 우연히 보게된 전원주택 한 채, 푸른 잔디가 곱게 깔린 드넓은 정원과 그 한가운데를 가르는 장미꽃길이 눈길을 끈다. 담장 옆으로는 씨알 굵은 알을 한껏 머금은 포도송이가 버거운 듯 처진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리고 이 모두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가을 전원의 풍경을 연출한다.
가을이라고는 하나 여름의 기운이 다하지 않아 아직은 무더운 날씨다. 이런 날에 귀찮은 손님이 찾아든다면 조금은 언짢아할 게다. 그것도 청하지도 않은 불청객이 말이다. 그런데도 주인부부는 그런 손님을 너무도 반가이 맞아 준다. 조금은 의심의 눈길을 보낼 만도 한데... 그런 내색도 전혀 없다. 그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너무도 편안하게 집안으로 안내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재배했다며 방금 따낸 씨알 굵은 포도송이를 한아름 내어놓는다. 함박웃음과 함께... 이것이 자연이 인간에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아닐 런 지...
황창운, 박선희씨 부부는 지난해 1월 이곳 용인시 원삼면 원당리로 이주해 왔다. 30년을 넘게 살아온 정든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맑은 공기, 푸른 자연 그리고 소박한 사람냄새를 찾아 온 것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 이들 부부의 삶의 공간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렇다 해도 넓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자연과 가까워지는 삶을 살수 있었다. 그곳에서 남편 황창운씨는 잔디가 곱게 깔린 마당에 갖가지 정원수들로 가득 메워진 정원도 꾸미고, 또 아름다운 새들도 기르며 준 전원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만족해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신의 집 주위로 높다란 다세대 주택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순간, 그의 집을 커다란 콘크리트더미 속에 가둬 버렸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그러하니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 체념한 그는 결국 자신이 삶의 공간을 옮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다시 서울 안에 집을 마련할 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자신의 집이 다시는 콘크리트더미에 갇힐 염려가 없는 한적한 전원이 좋을 듯 싶었다. 때마침 사회에서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상태인지라 그는 이참에 아예 자연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을 찾아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부인 박선희씨는 전원생활이 썩 내키지 않았다. 우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자신이 없었고, 또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자신을 알기에 외딴 곳에 대한 두려움도 앞섰다. 무엇보다도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남편의 자연에 대한 너무도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이내 뜻을 같이하게 됐다.
그후 부부는 함께 많은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98년 봄, 우연히 낚시를 위해 찾은 용인의 한마을에서 그들이 바라던 그런 땅을 발견하게 됐다.
마을과 인접해 그다지 외지지도 않고, 또 산 아래로는 작지만 가재가 잡힐 정도로 맑은 계곡 물이 흐르는 원당리 부지는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부부는 곧바로 그곳의 부지 6백평을 평당 25만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서울 집이 처분된 99년 8월, 집 공사에 들어갔고, 공사가 마무리된 지난해 1월부터는 새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부인 박선희씨는 남편 못지 않은 전원생활 예찬논자가 되어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니 너무도 좋다고, 왜 진작에 이러한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입이 달토록 말한다. 그녀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질 줄 알았던 친구들을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오히려 더 자주 만나게 된다고 한다. 모두들 주말이면 휴식을 취하려 자신의 집으로 몰려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도 좋다고...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경기 용인시 원삼면 고당리
부지면적: 준농림 6백평
부지구입년도: 1998년 5월
부지구입가격: 평당 25만원
건축형태: 2층 목조주택
건축면적: 44평(1층 33평, 2층 11평)
공사기간: 1999년 8월~2000년 1월
실내구조: 1층-방2, 거실, 주방/식당, 화장실2, 다용도실
2층-방2, 미니주방, 다락방
구조재: 2×4 목조(햄퍼)
외벽마감: 비닐사이딩
내부마감: 실크벽지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바닥재: 비닐장판
창호재: 시스템창호
난방시설: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건축비: 평당 2백30만원(토목별도, 보일러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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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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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감각과 아이디어 돋보이는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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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집이 헐리던 날,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던 서운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안락하고 편안한 하루 하루였다. 사실 건축주 송선규씨가 10대째이고, 그의 자제가 11대이니 이 곳에 터를 잡은 지도 벌써 3백년이 훌쩍 넘었다. 그만한 세월이 흘렀으니 그동안 허물고 짓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고, 지난해야 비로소 정들었던 옛집이 헐리며 산뜻한 목조주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송선규 이성희씨 부부가 살고 있는 이 곳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주산리 농어촌기반공사가 조성한 ‘호저 문화마을’. 원주시 외곽의 전형적인 시골마을로 그동안 외지인들의 발길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그런 만큼 주변 자연환경도 아주 양호하다. 지난달엔 영동고속도로 북원주 나들목이 생겨 교통도 한층 좋아졌다.
송선규씨 댁은 지난해 봄부터 공사에 들어가 그 해 7월 입주했다. 연건평 64평 규모의 2×6 2층 목조주택으로 1층이 40평, 2층이 24평이며 전체 대지 면적은 2백70평.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만큼 가능한 넓고 편리함에 초점을 맞추었고, 1, 2층이 별도의 독립 공간이 되도록 설계해 1층엔 노부모님, 2층엔 송선규씨 부부가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집은 아내 이성희씨의 생각이 집안 구석구석 배어있는, 한마디로 안주인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집이다. 주택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그동안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를 다닐 때마다 틈틈이 그 곳의 주택을 사진으로 담아 왔고, 건축박람회에도 부지런히 다니면서 자료를 얻고 힌트도 얻었다.
그간의 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히 주부라는 점에서 가구의 선정과 배치, 활용적인 측면에서 신선한 면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주방을 보면 싱크대를 마주한 벽면에 몇 가지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벽쪽에 붙은 간이 테이블과 다림판이 그 첫 번째로 벽쪽으로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주문 제작되어 필요시 주방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림판을 이 곳에 설치한 이유는 앞쪽 입구 옆으로 세탁실이 있기 때문으로 이 역시 주부의 일이 주방을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동선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주방과 이어진 다이닝룸의 식탁과 싱크대 형태도 이색적이다. 식탁은 이성희씨가 별도로 주문 제작한 것으로 위쪽을 투명 유리로 덮고, 아래쪽을 서랍식으로 설계해 손쉽게 다양한 장식을 할 수 있고, 이 장식들이 투명 유리를 통해 비쳐지도록 했다.
주방의 싱크대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닌데, 대개 일자형이나 기억자형이지만 이 곳은 디귿자형을 약간 벌려 놓은 형태로 가운데 서 있는 주부를 중심으로 싱크대가 안쪽으로 모여있다. 싱크대 역시 별도 주문 제작된 것이지만, 애초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고 벽면의 모양에 따라 맞추려다 보니 별도 제작이 불가피했다. 오히려 일자형이나 기억자형 보다 훨씬 편하다는 게 이성희 주부의 얘기다.
여유 공간을 수납 공간으로 활용한 점도 주부의 알뜰함이 돋보이는 아이디어다. 주방의 간이 테이블 아래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 공간에 별도의 문을 만들어 붙박이 개념의 수납 공간을 만들었다. 거실 구석에 놓인 의자도 마찬가지 개념인데 주문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자투리 공간의 활용이란 측면에서 수납이 가능한 아이디어 제품을 골랐다.
이밖에 도서대여점에서 볼 수 있는 미닫이 시스템을 응용한 2층 책장과 집안 구석구석 놓인 가구와 집기류의 감각적인 면면들 역시 모두 이성희씨의 안목이다.
이런 안목은 밖에서도 잘 드러난다. 깔끔한 외부 디자인과 함께 정원의 조화 또한 인상적인데 소나무를 양쪽 포스트로 세우고, 나머지는 작은 나무와 꽃나무를 심었다. 최근에야 정원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아직 애초 의도가 모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푸른 솔잎과 가을 햇살에 빛나는 하얀 외벽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동안 오다가다 들린 방문객도 수없이 많았는데 한번 온 손님은 다음에 다시 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 손에는 어김없이 카메라나 캠코더가 들려 있다. 방문객들이 받은 인상이 깊다는 것은 그만큼 잘 지어진 집, 특색 있는 집이라는 반증인데, 송선규 이성희씨 부부로에겐 더없이 마음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을 햇살 반짝이는 오후, 고추를 말리는 노부모의 손길이 여유롭기만 하다.田
■ 글·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주산리
대지면적: 대지 2백70평
건축 유형: 2×6 2층 목조주택
공사 기간: 2000년 3월~6월
건축 면적: 64평 평(1층 40평(이중 10평은 창고겸 보일러실), 2층 24평)
실내 구조: 1층- 방2, 거실, 주방, 보일러실, 창고, 욕실, 화장실
2층- 방3, 거실, 주방, 다용도실, 화장실
외벽 마감: 컬러락 사이딩(미국산 화이버 종류)
내벽 마감: 석고 보드 위 천연페인트(독일 아우르사)
지붕마감: 이중 그림자 아스팔트싱글
바닥 마감: 오크 온돌마루(독일산)
단열재: 글라스울
데크: 15평(헴퍼 방부목)
난방: 심야전기 보일러(1층), 기름보일러(2층)
창호: 미국산 시스템 창호
총 건축비: 1억9천만원(평당 3백만원)
■설계: 테마건축 033-762-4547
■시공: 단하우스 건설 033-76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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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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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속삭임이 있는, 평창 ‘동화 속 풍경’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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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후 나라가 떠들썩한데 정작 평창 주민들은 무덤덤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동계올림픽은 호재로 작용해 목이 좋은 펜션부지는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평당 5만 원에 거래되던 관리지(前 준농림지)가 평균 20만 원에 거래 됐는데 입지 여건이 좋은 곳은 40만 원까지 호가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래가 둔화되면서 땅값 하락을 우려해 실거래가보다 낮은 매물이 부동산시장에 나오고 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수도권 투자자들의 몫일 뿐 지역주민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현지에 내려와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독립형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도 매 한가지다.
평창군 대화면 던지골에 7월5일 오픈한 ‘동화 속 풍경’의 펜션지기 김광용 씨(57세)도 예외는 아니다.
영동고속도로 장평I.C로 나와 평창·대화 방면으로 우회전 8킬로미터 들어서면 좌측으로 던지골이란 푯말이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해 4.5킬로미터 정도 진입하면 나오는 던지골 송어횟집이란 입간판을 따라 다시 2킬로미터 비포장길을 달리면 백석산 기슭에 알프스풍의 목조주택 ‘동화 속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군(郡)의 슬로건인 해피 700고지에 위치해 발을 내딛는 순간 심신이 가뿐하고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다.
* 사진작가와 산악인 펜션지기 부부가 테마
동화 속 풍경은 펜션지기가 곧 테마다. 김광용 씨는 대한사진예술가협회 회원으로 자연과 인간의 숨결을 카메라 앵글에 담고 있다.
또한 부인인 우선이(50세) 씨는 대한산악연맹 어머니산악회 리더이기도 하다. 작품활동과 산행을 위해 풍치(風致)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노후를 자연에 파묻혀 지내자던 약속을 펜션을 통해 실현한 셈이다.
이곳에 부지를 마련한 계기도 작품 활동 차 사돈이 운영하는 던진골 송어횟집을 수차례 방문하면서부터다. 사계절 변모하는 풍광(風光)은 저마다 격조 높은 작품을 감상하는 듯했다고.
“수려한 산세에다 공기 맑고 물 좋으니 이처럼 맛깔스러운 곳도 드물 겁니다. 그러한 자연을 늘 곁에 두고 반려자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사돈의 소개로 2002년 1월, 8500평 부지를 매입해 600평을 대지로 전용했다. 토목공사는 금년 2월17일 시작했는데 워낙 경사 심한 비탈인데다 초봄까지 폭설이 내려 난공사였다.
진입로를 내고 콘크리트 포장을 하면 양생이 제대로 안돼 차 한번 지나가면 깨지기 일쑤였다. 어렵사리 진입로 좌측 상단에 펜션을 앉히고 우측에 텃밭과 주차장을 조성했다.
한편 운영주는 임도(林道) 위에 있는 약수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1000만 원을 들여 5톤 짜리 집수관을 묻기까지 했다.
* 자연과 호흡하는 알프스풍 목조건물
펜션은 50평 2층 2″×4″ 경량목조주택이다. 설계와 시공을 맡은 (주)미담건축 주윤미 실장은 “산중턱에 위치해, 탁 트인 전경과 능선으로 떨어지는 낙조의 장관을 객실에서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주 이용객인 젊은 층의 취향을 살린 ‘동화 속 풍경’이란 이름도 그의 아이디어다.
외형은 박공지붕을 계단식으로 배열한 삼각구조로 따듯하고 안정감 넘치는 유럽의 성채(城砦)를 연상시킨다.
객실마다 뻐꾸기창을 내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감상하도록 했다. 외벽은 웨스턴 시다베벨사이딩으로 갤러리 앞 38평의 덱(Deck)하고 조화를 이룬다.
내벽과 천장을 루바로 마감해 은은하게 풍기는 나무향은 일상에서 짊어지고 온 피로를 말끔히 씻기에 족하다.
객실마다 덱을 분리해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도록 했다. 우측의 객실은 갤러리와 덱을 공유하는 대신 출입문을 독립시킴으로써 단점을 보완했다. 걸터앉아 대화하기 편하도록 덱의 난간을 30센티미터 높이로 낸 게 눈길을 끈다.
지붕은 포도주색 아스팔트 이중그림자 슁글로 마감했는데 임도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덱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널찍한 여러 단의 참(站)을 내 포토라인으로 꾸몄다. 오작교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맨 아래 계단참을 네온사인으로 장식할 계획이다.
* 컬러 테라피를 응용한 컬러풀한 객실
객실 인테리어는 펜션지기 동생인 김옥용 씨(연세대 의대교수)가 도맡아 했다.
세미나 차 유럽여행을 할 때 자주 묵었던 B&B 스타일에다 방이 7개인 점에 착안해 무지갯빛 컬러 테라피(Color Therapy)를 접목했다.
“색깔은 기분이나 건강, 사고력 등 우리 몸에 상당한 영향을 주죠. 옐로우, 그린, 바이올렛, 오렌지의 커플룸과 레드의 훼밀리룸에는 이름에 맞추어 컬러풀한 커튼과 침대를 배치했어요.
원색을 사용하면 일상에 지친 방문객들을 자극할 수 있으므로 삼차색을 사용했는데, 취향에 따라 룸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죠.”
12평의 갤러리 겸 홈바에는 대한사진예술가협회에서 추천한 펜션지기의 사진전 수상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올드팝이 잔잔히 흐르는 이곳은 연인과 사진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차나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다.
또 DVD도 상영하는데 이를 위해 한쪽 벽에 긴 나무의자를 붙였다.
* 토요일마다 열리는 사진강좌
현재 조경이 진행 중인데 계곡물이 흐르는 진입로 어귀에서 주차장까지 꽃사과가 심어진다. 800평의 텃밭에는 자연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각단층 파고라를 설치했는데 햇빛을 받아들이도록 지붕을 덮지 않았다. 대신 덩굴나무를 심어 시원한 느낌이 들게 할 예정이다.
텃밭은 방문객들이 고랭지 채소와 당귀, 황기, 가시오가피를 심고 캐는 농사체험의 장으로 꾸며진다. 그 한쪽에는 철마다 꽃을 감상하도록 금낭화, 개불알꽃, 아기똥풀, 매발톱 등의 야생화 군락지가 조성된다.
펜션 뒤는 원시림이라 그 자체가 조경인데 20, 30분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오솔길이 난다.
조경공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방갈로형 펜션 두 동을 더 지어 테마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본채와 떨어진 숲 속에 앉혀 삶에 지친 이들이 음악감상이나 독서, 그리고 산책을 하면서 원기를 재충전하는 공간으로 꾸며진다.
현재 자체 홈페이지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8월20일까지 객실 예약률이 100퍼센트에 달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희망자를 대상으로 사진 기초강좌를 열고 있는 운영주는 경기도 구리시 초등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사진 강의를 하기도 했다. 동화 속 풍경을 찾아 펜션지기인 사진작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은 추억 만들기가 될 것이다. 田
■ 동화 속 펜션(033-336-0221. www.widepension.com)
■ 글 윤홍로 기자 / 사진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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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