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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이야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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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이야기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라는 테레비젼 프로그램이 있었지요. 무슨 귀신이나 괴기담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주로 새로 이사간 집에 귀신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제가 시골로 이사를 들어올 무렵에 바로 그런 이야기가 자주 나오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처음 시골로 들어와 보니 해만 지면 사방이 금세 칠흑같이 어두워지는데 어디 불빛 한 점 없고 뒤 울에서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마치 산발한 여자 머리카락처럼 느껴지더군요.
이사를 오고 며칠 되지 않아 가족 셋이서 테레비를 보는데, 마침 어느 집에 이사를 가서 겪은 괴기담이 나오더군요. 밤마다 낯선 여자가 동생 목을 조르더니 얼마지 않아 그 동생이 죽고, 가족들도 시달리다 못해 그 집을 버리고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차에 이웃에 사는 아줌마가 오더니 뭐하러 이런 집에 이사를 왔냐고 묻더군요.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사람이 다섯이나 죽어 나간 집이라는 거였습니다.
아줌마는 친절하게도 구석방을 가리키며, 저 방에서 이 집 할아버지가 죽고, 작년에는 이 집 주인 남자가 안방에서 죽었다는 설명을 해 주었지요. 약간 푼수기가 있는 분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또 이야기 속으로를 보고 나니 밤만 되면 으스스한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군요.
화장실에 앉아 있노라면 시커먼 쪽창으로 누군가 들여다 보는 거 같아 부리나케 안방으로 뛰어나오곤 했지요. 그 다음부터 우리는 ‘이야기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지요.
처음 시골로 이사오는 분들에겐 시골의 밤이 여간 쓸쓸하고, 으스스한 게 아닐 겁니다. 노상 번쩍거리는 도심의 불빛과 가로등, 소음 속에서 지내던 도시 사람들에게 적막하고, 달빛만이 비치는 시골의 밤은 고즈넉하기만 할 것입니다만 그것도 몇 달 지나고나면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산골짜기 외딴 집에 살면서도 그런 으스스한 기분은 느끼지 못합니다. 깊은 산속에서 사방이 숲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 지내다 보니, 먼저 살던 농가는 번화한 다운타운 정도더군요.
무엇이든 정을 붙이고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법인가 봅니다. 다행히 아내는 그런 호젓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언젠가는 잠을 자다가 어렴풋이 깨어보니 곁에서 자던 아내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방마다 찾아 보았지만 아내는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였지요. 그런데 아내는 바깥 데크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더군요. 잠도 안 오는 데다 별이 너무 좋아 나왔다는 겁니다.
시골의 밤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밤이 문제가 아니라 시골 생활에 대한 애정이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정말로 시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깊고 어두운 밤이라도 오히려 그 어둠이 포근한 이불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며, 적막함도 호젓함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정이 없다면,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도 소음으로 들려 밤마다 잠을 설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도 불안감을 던져 줄 것입니다. 그것은 담력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무 걱정을 할 게 없습니다. 그 사랑이 모든 걸 당신의 아늑한 보금자리로 만들어 줄 테니까요.
■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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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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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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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코스모스
가을엔 늘 기억할 것이 있었다
목이 길어 흔들리던 하늘과
하늘빛 꽃잎들과
내가 아는 사람
주문진에서 속초로 가던 해변길
가을볕과 함께 달리던 경춘선의 강촌 어디쯤
배를 타고 갔던 청평사의 양지바른 석탑 아래
아이들 웃음소리가 돌아간 외따른 오후
강원도 오래된 시골학교 화단 가득
목이 길어 흔들리기만 하던 기억이 있었다
흰색의 얼굴과
붉은색의 가슴과
분홍빛 사랑과 이별
가을엔 목이 길어 흔들리던 기억과
아직도 분홍빛인 사람이 있었다
■글 김경래(본지 편집자문위원. (주)좋은집 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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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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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족제비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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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족제비를 잡다
이건 실화인데요, 혹시 족제비를 보셨나요?
불당골에서 이곳 광대울 밑으로 이사와 살다 보니, 이상한 걸 보았어요. 다람쥐치고는 좀 크고, 청솔모도 아닌 것이 등에 조그만 새끼를 엎고 차 앞을 가로질러 나갑니다. 참 해괴한 놈도 다 있다 싶었지만 까맣게 잊고 지냈지요.
그런데 추석을 지내느라 시골에 다녀오니 풀어놓고 기르던 닭 다섯 마리가 없어졌어요. 개들이 물어갔나. 아니면 누군가 닭서리를 해 갔나.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밤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새벽 두세시 경쯤 되었는데, 얼핏 깨어보니 닭장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닭이 목이 메인 듯 킥킥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팬티 바람으로 달려나갔지요.
그랬더니 수탉 한 마리가 땅에 쓰러져 있는데 웬 노르스름한 놈이 목을 물고 있는 겁니다. 나는 땅바닥의 돌을 집어들고 힘껏 던졌지만 돌멩이는 유감스럽게도 놈을 못 맞히고 애꿎은 수탉만 후려갈겼으니, 놈은 비호같이 닭장 안을 맴도는데, 얼마나 빠른지 전기같다고나 할까요.
다시 돌멩이를 집어드니 맴을 돌던 놈이 용케도 쥐구멍 만한 닭장 밑의 틈바귀로 빠져 나오는 겁니다. 녀석을 향해 후래쉬를 비치니, 생긴 게 꼭 기생 오래비같이 생긴 놈이 영 밥맛없더군요.
그런데 녀석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겁니다. 나는 녀석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나서, 우선 팬티 바람으로 서 있는 나의 중요한 부위부터 가리고, 비스듬히 몸을 꼰 채 다시 돌을 집어던지자 녀석은 무협영화의 고수처럼 쏜살같이 나뭇단 속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나는 나뭇단을 향해 이리저리 서너 차례 돌멩이를 집어던졌지만 유감스럽게도 놈은 한 대도 안 맞고, 숲으로 달아났습니다.
멀리 버석거리는 낙엽 소리만 듣고 망연자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잠을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아내는 잠결인지 대수롭지 않게 그저 그러냐며 나보고 다시 잠을 자라고 하더군요. 알았다고 하며, 방으로 돌아와 누웠지만 도무지 분해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다섯 번이나 돌을 던졌는데 한 대도 안 맞습니까. 나는 분을 못 참아 다시 팬티 바람에 마당으로 나가 개들을 풀어놓았지요. 어미가 사냥개라는 데 노상 애꿎은 닭들만 잡아 대는 놈들이었지요. 녀석들은 아닌 밤중에 웬 떡이냐 싶어 신이 나서 펄쩍거리더니 또 괜스레 잠자는 닭들만 귀찮게 합니다.
개들을 야단쳐 쫓아내니, 녀석들은 시큰둥하여 어디론가 몰려갔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잠을 자려는데, 얼마쯤 지나자 이번엔 개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이번엔 그 흉악한 놈들이 개를 잡아가려나 보다 하고 몽둥이를 들고 나가보니, 바로 현관 문 앞에 개 두 마리가 낑낑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개들이 싸움을 하나보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무언가를 물고 있더군요. 바로 숲으로 달아났던 그 노르스름 밥맛없는 놈이었어요. 그런데 녀석은 개에게 물린 채 다시 개 주둥이를 물어 개가 낑낑거리는 겁니다.
그러자 까망이란 수놈이 녀석의 꼬리를 끈덕지게 물어대니, 녀석은 몸을 돌려 이번엔 까망이 입을 물고, 그러자 바둑이가 다시 녀석의 꼬리를 물고… 이러기를 얼마쯤 후에 녀석이 축 늘어지더군요.
때는 이때다 싶어 나는 개들이 물어다 놓은 녀석을 몽둥이로 후려갈겼습니다. 녀석은 다리를 뻗고 최후를 맞이하는데, 나는 재차 집중적으로 그 얄밉게 뾰족한 입만 네 대를 갈기고, 마지막으로 발로 한 번 멋지게 걷어차려는데, 이게 웬 걸 헛발질이 뭡니까. 골문 앞의 한국 축구팀처럼 차라는 족제비는 못 차고, 내 신발짝만 휘익 날아갑니다.
그 순간 거실에서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려 옵니다. 나는 놈이 방으로 뛰어들어갔나 싶어 허겁지겁 뛰어들어가니, 아내는 입을 막고 아우성칩니다. 어쩌면 그리 잔인하냐는 겁니다. 아내는 어느 결에 잠을 깬 채 내가 족제비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걸 거실 창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내가 족제비를 발로 걷어차 그 족제비가 날아오는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는 겁니다.
나는 누누이 녀석이 그동안 우리 닭들을 죽이고 괴롭힌 죄목을 조목조목 일러주었건만 아내는 족제비 편만 들고, 나를 무슨 잔인한 범죄인 보듯 합니다. 나는 분했지만 밖으로 나가 그 못된 녀석이 완전히 운명한 것을 확인한 뒤, 녀석을 닭장 근처 나무에다 거꾸로 매달아 놓았지요.
나는 다음날에서야 동네 사람들을 통해 그것이 족제비라는 것과, 이 근처에는 족제비뿐만이 아니라 오소리, 너구리, 멧돼지, 심지어는 곰까지 있으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닭장 근처에 족제비들은 얼씬도 않고, 가끔 토끼들만 집 근처에 나타났다가 환약 같은 똥만 남기고 떠납니다.
얼마 전엔 집 주변의 산들을 수색정찰을 했는데, 내 키만한 높이에 나무 껍질이 벗겨지고, 날카로운 발톱자국을 남긴 걸 보았습니다.
시이튼의 동물기에 의하자면 그건 영역을 표시하려는 곰의 행동으로 보이는데, 곰치고는 발톱이 너무 가는 것으로 미뤄 오소리가 아닐지 추정합니다.
여러분, 시골에서는 족제비를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족제비를 잡을 때는 팬티 바람을 피하고, 부득이한 경우 중요한 부위는 철저히 방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밥만 축낸다고 믿었던 우리 집 바둑이와 까망이가 아주 훌륭한 사냥개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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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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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아이들 교육 “좋은 점이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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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지은집
시골에서의 아이들 교육 “좋은 점이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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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유치원이기 때문에 서울보다 못할 것이란 막연한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인성 및 감성 교육, 자연교육 측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더욱이 양평지역엔 예술인들이 많고, 이들이 유치원 교육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어 서울보다 양질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빈이는 지난 겨울 취학통지서가 나왔으나 유치원 교육에 대한 아쉬움이 많아 2년째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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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수빈이는 이사와서 한동안 비포장 길에 적응 못해 매일 넘어지다 시피 했습니다. 서울의 잘 포장된 길 대신 비포장 길을 다니다 보니
넘어지고 다쳐 울고 들어 올 때가 많았죠. 초등학교 5학년인 언니 수진이도 전학 초기 한동안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울며
들어올 때가 많아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정홍철 이종원씨 부부는 지난해 3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 곳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로 이사를 왔다. 전원생활을 결심할 당시부터
아이들 교육문제가 적잖은 고민거리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사 초기 번갈아 울고 들어오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 고생이 컸다.
지금은 두 아이 모두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이사 초기만 해도 마음이 혼란스러워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사 후
몇 달 지나서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적어도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시골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시골생활에 적응하는데는 엄마 이종원씨의 노력이 컸다. 특히 언니 수진이를 위해선 더욱 그랬다.
이종원씨는 주말마다 수진이의 학급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어울리도록 했고, 그런 자리가 자주 마련되면서부터 수진이는 울며
집에 들어오는 일이 없어졌다. 매일같이 넘어져 무릎이 까져 들어오던 수빈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비포장 길에 적응해 나갔다.
시골 생활중 이종원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은 수빈이의 유치원 교육. 시골 유치원이기 때문에 서울보다 못할 것이란 막연한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인성 및 감성 교육, 자연교육 측면에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더욱이 양평지역엔 예술인들이 많고, 이들이 유치원 교육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어 서울보다 양질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빈이는 지난겨울 취학통지서가 나왔으나 유치원 교육에 대한 아쉬움이 많아 2년째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이종원씨는 “이렇게 유치원 교육이 잘 돼 있을 줄 몰랐다”며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사는 이 곳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은
만족스런 수준”이라고 했다. 또 “적어도 초등학교까지는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한 면이 더 많다는 것도 이 곳에서 와서
비로소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자연 속에서 뛰노는 수진이와 수빈이 모습이 이종원씨 부부에겐 대견하고 기특할 따름이다.
정홍철 이종원씨 부부가 양평에 오게 된 것은 지난 99년 3월이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서 살기로 결심,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지금의 땅과 주택을 구입했다. 우선 서울과 가깝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1억4천만원) 때문에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 집은 지난 96년 지어진 30평 규모의 단층목조주택으로 대지는 1백38평이다. 지은지 5년째에 접어들었지만 건축업체 대표가
자신이 살기 위해 직접 지었고, 줄곧 살았었기 때문에 잘 지어지고 관리도 양호한 상태였다.田
■ 글·사진 류재청
작은 인터뷰/홍창빈 자연 대표
“예쁘진 않아도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지어진 집입니다”
96년 11월 제가 직접 지어 작년까지 살다 정홍철 이종원씨 부부에게 매도한 집입니다. 4×6 2층 목구조 주택으로 1층에 방
2개, 거실,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이 있고, 2층에도 방이 하나 있습니다. 경사면을 잘 활용, 전면에 데크를 설치했는데
30평의 작은 집임에도 데크 때문에 훨씬 넓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외부 마감재로 사용한 세로 사이딩은 CSP라는 공학목재로 요즘 주택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부 마감에선 거실에 중점을
두었고 깔끔함 대신 다양한 마감재를 사용했습니다. 루바, 콜크벽지, 드라이비트, 벽지 등을 병용했고 거실 바닥엔 콜크타일을
붙였는데 다소 실험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건축비는 평당 2백90만원 정도가 들어 당시 금액으로는 비교적 비싸게 지어진 집이며, 비록 예쁜집은 아니지만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지어진 집입니다.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양평군 양성면 부용리
부지면적: 대지 1백38평
구입년도: 99년 3월(대지 및 건물 일괄구입)
구입비용: 1억4천만원(대지 및 건물 일괄)
건축년도: 96년 11월
건축면적: 30평
데크면적: 10평(수종 스프러스)
실내구조: 1층-방 2, 거실, 주방, 화장실
2층- 방, 욕실
건물형태: 2층 목구조주택
구조체: 4×6
벽체구조: 양쪽 12mm OSB 위에 3mm펠트지
단열재: 스티로폼
내벽마감: 루바(거실 및 천장), 콜크벽지(거실), 드라이비트(거실), 벽지(방)
외벽마감 : 캐나다산 CSP(단풍나무 재질의 세로 사이딩, 공학목재)
바닥재: 거실(콜크 타일) 방(비닐장판)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난방형태: 전기온돌
식수공급: 마을상수도
건축비: 96년 당시 평당 2백90만원
■ 설계 및 시공: 자연 031-772-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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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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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도랑에서 낚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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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도랑에서 낚시하다
지금 사는 곳은 산으로 둘러 싸여 새집처럼 움푹 파인 곳에 도툼하니 올라선 언덕입니다. 오래도록 버려진 밭에는 잣나무와 낙엽송이 가득찼는데, 집터를 닦으니 오르는 언덕길과 집 주변을 낙엽송이 둘러싸고 있지요.
그런데 좌우로 개울이 흐르는데, 여름이면 제법 물소리가 방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워낙 낚시를 좋아해서 북한강과 남한강 가상이(가장자리)만 찾아다녔는데 그런 곳엔 온통 모텔과 카페가 가득 차 땅값도 비싼 데다 주거 환경으로는 마땅치 않았습니다.
늘 툇마루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는 꿈만 꾸다가 산 속으로 들어오니 그게 영 맘에 안 찼지요. 그런데 우연히 집 앞의 개울을 지나다 보니 고기들이 화들짝 놀라 피하는 게 보였지요.
나는 그날로 밭고랑을 뒤져 지렁이 몇 마리를 잡아 한칸짜리 낚싯대를 들고 아들놈과 밤낚시를 했지요. 혹시나 하는 맘으로 던졌는데, 이게 던지자마자 찌가 꼬르르 빨려 들어갑니다. 그러더니 흡사 미꾸라지와 피라미 잡종 같은 고기가 탈탈거리며 끌려 올라옵니다.
금새 스무 마리쯤 잡아 어항에 넣었지요. 그런데 차고 맑은 물에만 놀던 녀석들인지 하루를 못 견디고 죽고 말아서 그 후로 낚시는 잘 안합니다만 그래도 넘어져도 코가 닿을 거리에 낚시를 할 물이 있고, 그 속에 고기가 논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행복합니다.
장마만 지면 여기저기 투망을 치는 이들이 보이고, 여름밤이면 개울가에는 반딧불이 같은 캐미라이트 불빛이 얹혀진 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그리고 강가는 당장은 좋아도 오래 머물러 살기에는 지루하기 쉬워 산이 낫다는 말을 절감하고 지냅니다.
산이 깊으면 물이 있게 마련이고, 강만큼 깊지는 않지만 발목이 잠기는 개울에 앉아 수박을 쪼개고, 슬쩍 돌만 들어도 가재가 기어다니는 물이 있으니 산과 물을 함께 즐기는 셈이지요. 그리고 수동은 북한강변에서 차로 불과 10여분 거리이니,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자전거 타고 달려가도 되지요.
서울에서도 강이 뵈는 아파트들이 비싸고, 수도권에도 강물이 찰랑거릴만큼 가까운 땅들은 금싸라기 같다지만 막상 머물러 살다 보니 강보다는 산이 여간 아기자기하지 않더군요.
이왕 강 가까운 곳이라면 그냥 맹송맹송한 강보다는 강 가까운 곳의 산자락을 돌아 들어간 개울가를 찾아 나서기를 권합니다.
■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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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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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들깨가 눈이 달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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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들깨가 눈이 달렸다니
농사짓는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전 들깨 냄새가 참 좋습니다. 가을볕이 바작바작해질 무렵, 해 저문 들녘이 자꾸 휑하니 비워져 가면 여름내 푸른 잎을 달고 있던 들깨들이 여물어 갑니다. 가을 늦은 들판에서 깨 터는 모습은 우선 냄새로 다가옵니다.
그 향긋한 내음을 코로 들이키노라면 정말 전원의 풍요로움이 폐부 깊숙이 스며듭니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집 바로 부근에 깨밭이 있었습니다. 이웃에 사시는 분이 텃밭에 심은 것인데, 참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그 밭 한 모퉁이에 세워졌던 외등이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전구가 나간 줄 알았는데, 일부러 켜지 않는다는군요. 이유를 물으니, 깨가 밝으면 여물지를 않는답니다. 그래서 깨가 잘 여물도록 그즈음 일부러 외등을 꺼 놓았다는 겁니다.
인간이 만든 문명이 무언가 자연에 변화와 부작용을 남기는 법이겠지만, 그 겨자씨만한 깨알들에게도 하늘이 정한 하루의 때와 일정한 휴식의 어둠이 예비되어 있다는 걸 알고 새삼 경외롭기만 했습니다.
양계장에서 달걀을 거두기 위해 밤낮으로 켜 놓은 전등 빛 때문에 양계장 닭들은 수명이 고작 5~6개월밖에 못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이 문명을 이루고, 때로는 그 문명이 인간다움이라는 미명 하에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지만, 막상 그 욕심을 버리고 나면 자연인일 뿐입니다. 양수리 부근에 연밭이 있는데, 거기서 연꽃을 따는 아가씨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참 그림 같은 풍경이더군요.
짙푸른 물 위로 배를 띄우고, 지붕처럼 자란 연대 사이로 배를 저어가며 연연한 꽃들을 따는 젊은 여인의 모습은 가히 선경 부근은 될 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사연을 듣고 나니, 그 꽃을 따다가 팔기 위함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그 한가롭기만 하던 여름의 한경이 순식간에 짜증스러워지고, 월국의 정취를 느끼게 하던 여인들의 모습도 곤비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아마 그 여인들의 눈에 비친 연꽃은 한 장, 한 장의 지폐일 뿐일 겁니다. 산모롱이 한 자락에 자리잡은 들꽃 한 송이에도 자연이 있고, 생명의 아름다움이 있건대 그것을 꺾어다 집 안을 밝히려는 인간에겐 이미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는 듯 싶습니다.
도심에 살 때는 들이나 산에 나갈 때마다 갔다온 증표 삼아 꺾어 오던 풀꽃들도 이젠 막상 그 품에 들어와 보니, 거기 놓여 있는 편이 더 좋게 보입니다. 돌 하나, 풀 하나 그대로 놓이고, 나도 그 틈에 그대로 놓이고 싶을 뿐입니다.
■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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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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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새해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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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새해아침
하루종일 폭설이 내려/ 세상은 모두 길을 잃었다
바다로 가던 길도/ 산으로 하늘로 오르던 길도
흰 눈에 쌓여/ 제자리에서만 맴돌고
살아있는 것들
갈 수도 오를 수도 없어/ 선 채 제 살집만 지었다
뼈를 세우고 살을 발라/ 구들장 뜨끈하게 군불을 지피고 나면
꼭꼭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이 드는 저녁
밤 새워 하늘로 오르는 것은/ 날개를 단 연기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햇살 가득한 새벽이/ 세상 처음의 얼굴로 오고
밤새/ 죽은 듯이 걸어두었던 빗장을 내리면
거기 세상의 한길을 향해 열리는/ 너른 대문이 있었다
대문 밖에는/ 오래전에 내렸던 눈이 녹아
냇물로 흐르고
바다로 가고 싶었던 사람들/ 바다를 향해 떠나고
산으로 하늘로 오르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 그들의 길을 가는 길들이/ 눈이 아프도록 멀리 흘러가고
그 길 위로
아침의 따스한 햇살들은 풀어져/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글 김경래(본지 편집자문위원. (주)좋은집 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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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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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해 뜨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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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해 뜨는 집
나는 이곳 지둔리 골짜기로 이사온 후 집으로 오르는 언덕길에 <해 뜨는 집>이라는 나무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송판 조각에 노란 페인트를 칠하고, 내가 좋아하는 60년대 올드송 제목을 우리 집 문패 삼아 걸어 놓았지요. 그랬더니, 이젠 수동에선 우리 집 번지수보다 그 제목으로 불리게 되어, 편지에 적는 주소도 으레 <해 뜨는 집> 이라는 걸 적어두면 용케도 산골짜기까지 편지가 찾아듭니다.
그 덕분에 산길을 넘던 차들이 이따금 카페인줄 알고 들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 들어온 장인께서 당신의 취향에 맞게 <취곡산장>이라는 간판까지 붙여 놓아 나는 장인과 경쟁적으로 우리 집 알리는 일에 열중입니다.
연로하신 장인께서는 <해 뜨는 집>이라는 해괴하고 경박한 옥호보다는 한문체의 <취곡산장>이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신 듯하나, 우리 내외는 그것이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귀곡산장>이라는 코미디를 연상시킨다며 아우성쳤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유연하신 장인께서도 그것만은 결코 물러섬이 없이, 재빨리 명함까지 <취곡산장>이라는 주소를 넣어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시고, 집으로 오는 길목에 친필로 취곡산장이라는 이정표까지 걸어 놓으셨지요.
나는 우리 집이 그런 코미디적인 이름으로 인근에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 뜨는 집>을 홍보하고 다니니, 그야말로 한가족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장인께서는 나이에 비해 참 건강하시고, 건전하시지요.
왕년의 미술 솜씨를 발휘하기 위해, 이사온 후 처음으로 들른 곳이 화방이었습니다. 9호 짜리 캔버스 몇 개와 유화 물감부터 사들인 장인은 이미 우리 집 주변의 조경 조감도를 그려 두셨습니다. 그런데 언덕길 입구의 대문에 장차 장미로 아치를 만들려던 나의 계획은 장인이 왕년에 살던 연희동 집 마당에 있었다는 아카시아에 대한 추억으로 자칫 물거품이 될지도 모릅니다.
장인은 계속 아카시아나무의 그늘과 꽃향기의 뛰어남을 역설하고, 나는 그 나무의 뿌리가 주변을 망치고, 어느 정도 크면 바람에 잘 부러진다는 점을 들었지만 쉽게 합의가 되지 않습니다. 보다 못한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이 모여 조경에 관한 협의회를 갖자고 제안하여 지금 막후 절충중입니다. 음악도 나는 주로 60-70년대 팝송이나 포크송을 즐기는데 비해 장인은 이탈리아 가곡, 특히 <별이 빛나는 밤>이나 <남 몰래 흐르는 눈물> 같은 것만 틀라고 합니다.
나는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토종 조선인이건만 장인은 돈가스나 카레라이스 같은 양식을 즐기지요. 이런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인에게 많은 걸 배웁니다. 자연을 여유 있게 즐기며 사는 삶,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걸 소유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함께 살아가려는 생명에 대한 관조와 정성의 마음 씀씀이는 삶의 선배로서 내가 늘 존경하며 흠모하는 점입니다.
이제 어른들을 모시고 함께 사려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으며, 미리 생각하였던 것보다 실제 살아가면서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걸 일러 주고 싶습니다.
때로는 생각이나 취향의 차이, 연령에서 오는 가치관의 대립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결국은 한 가족이 모여 아기자기한 추억을 일구는 재미로 여기며, 오늘도 나는 장인이 기거하는 별채(우리집과는 지붕은 잇대었지만 뒷문을 나가 계단으로 올라가야 통하는)에서 오라는 특별요리 돈가스 만찬에 초대되었습니다.
서울공대를 나오셔서 주로 외국 건설현장에서 근무하신 장인은 요리에 관한 한 세계 각 국의 기법들을 익숙히 다룹니다. 조만간 친부모님께서도 우리 집으로 오실 예정이니, 나야말로 누구 말대로 실버타운 원장이 되는 셈이지요. 부모님께서 저희 집에 들르실 때마다 사돈끼리 밤늦도록 정담을 나누는 걸 곁에서 듣다 보면, 참 집안이 포근해집니다.
장모는 우리 어머님 무릎을 베고 누워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장인은 아버님과 6.25 전쟁 때의 고생담을 이야기합니다. 전 같으면 모처럼 저희 집에 들러도 테레비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들기 바쁘시던 부모님들이 모처럼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걸 보며 나는 요즈음의 우리들이 잃어버린 가족사의 한 장을 새로 쓰는 기분입니다.
이제 나는 60년대 비극적인 미국 가정의 이야기를 노래한 <해 뜨는 집>이라는 노래가 이곳에서는 말 그대로 따스한 햇빛과 웃음이 넘치는 가정의 이야기로 바뀌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田
■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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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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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겨울 들판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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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겨울 들판에 서서
맨 몸뚱아리로 집 나갔던 청춘
이름 서툰 거리에서 떠돌다
제 연륜의 무게도 이기지 못해
삭정이처럼 등이 휘어 돌아 온 저녁
난 그 청춘들이 서러워
너무나 서러워
참 많이도 울었지
흐르던 눈물들 밤새
들판 가득히 흩뿌려 내리고
내리던 눈물도 목이 메는 새벽
눈물들 매운 바람 끝에 서서
이른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어
들판에 누운 생명을 위해
빛나는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어
하얗게
■글 김경래(본지 편집자문위원. (주)좋은집 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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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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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아이들 교육 “좋은 점이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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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지은집
시골에서의 아이들 교육 “좋은 점이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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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사라져가고 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서구의 편리함을 극대화한 건축물들이 들어오고 우리네 조상의 숨결이 묻어있는 한옥은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 융화되고 수많은 삶의 지혜를 담고있는 한옥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서구의 주택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민들레울이 지어지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옥이 갖고 있는 미를 최대한 살려보려 노력했고 한옥에
담긴 조상의 지혜를 얻으려 애도 썼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한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우리의 것, 한옥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짧은 소견이지만 참된 주가(柱家)문화가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민들레울이 지어지는 과정을 통해 한옥의
아름다움과 그 조영사상을 소개하고자 몇 차례에 걸쳐 글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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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왜 짓는가?
집을 어떻게 짓는가?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집짓기의 주체는 누구인가? 집을 짓고자 하면서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물음표가 만들어진다.
요즘은 집이 재산 증식에 큰 몫을 하면서 마치 아파트 하나 장만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 양 매달리고 있지만 정작 집에 대한 본질적
의미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규격화된 집에서 틀에 박혀 살다보니 철학과 감정이 깃들 지 않은 메마른 집처럼 인간도 황폐화되어
가는 것이다.
집을 왜 짓는가? 이는 단순히 집짓에 대한 물음이 아니다.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한 통찰의 문제이다. 인간이란 여럿이 함께 사는
사회성을 지닌 동물이므로 집이란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단순히 건축적인 면으로 들여다 볼 때 그
집은 삶과는 상관없는 사물로 그치는 것이다.
집의 참다운 가치와 아름다움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철학과 감정이 깃드는 데서 나온다. 사람이 주인이 된 건축, 주인의 땀과
정성이 재어져 삶의 진솔함이 베어나는 집이야말로 이상성의 집이다.
한옥에 대한 관심
건축에 대한 관심과 일가견은 물론 조그만치의 상식도 없다. 건축은 그저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나 관여하는 것이라 치부하고 일별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건축양식이니 건축에 조영된 사상, 숨은 뜻 따위엔 아예 문외한 일 수밖에...
거처하는 집조차 지어진 집이니 그저 그 안에 들어가 ‘살아주고’ ‘살아가는’ 것이 그저 당연하다 여길 뿐이었다. 일반적인 집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이니 ‘한옥’에 대해서는 새삼 말해 무엇하겠는가! 한옥과 양옥의 구분, 또 집과 건축의 구분은 무엇일까?
그리고 한옥이라 하면 도대체 어디까지를 일컫는가?
단순히 외형적인 모습만 보고 기와집, 초가, 너와집, 귀틀집 등으로만 구분하는 것이 한옥의 범주일까? 그렇다면 이런 유형의 집들은
과연 언제부터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땅위에 정착되었고 또 어떤 이유로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기 시작했는가? 집에, 구체적으로
우리의 ‘한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마자 이런 물음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한옥에 관련된 책들을 들춰본다. 이 방면의 자료들을 수집하여 상식의 범위를 넓혀간다. 집 구경도 다니기 시작한다. 이 방면에
아무런 식견이나 공부가 안된 상태이니 그야말로 코끼리 발가락 만지는 식이다. 이따금 한옥에 관련된 강좌를 듣기도 하여 견문을
넓혀간다.
그 중 가장 도움을 받은 것은 신영훈님의 강좌와 그의 저서들이다. 목수(木手)신영훈님에 의해 한옥의 미학의 우수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네 살림집 ‘한옥’
‘집’이라는 개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단순히 외형적인 건물로써의 ‘집’과 삶의 공간으로서의 ‘살림집’, 가족과
가문으로의 집 혹은 ‘집안’ 등으로 구분되어 지고, 건물을 의미하는 집은 우리의 주거문화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문화를 달리하는 민족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살림집을 가지게 된다.
한국인들이 즐겨 입었던 의복을 한복(韓服)이라 부르고 전래의 우리 음식을 한식(韓食)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또 우리는 우리네
조상이 살았던 집, 살림집을 한옥(韓屋)이라 부른다. 이는 다른 민족과 구분되어 우리만이 갖는 독특한 생활문화의 반영인데, 특히
우리네 살림집 ‘한옥’은 그 어떤 형태의 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독특한 구조로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온돌과 마루를 취한 구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정형화된 한옥은 온돌과 마루를 함께 취한 이상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방에서 시작된 원두막 형태의 집들이
북상하면서 지상으로 낮아져 마루로 발전하였고, 주로 북방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들인 화덕의 형태가 구들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 두가지 요소가 한반도에서 결합해 독특한 주거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유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특징이 내재된 한옥이 지금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집을 옮길 수 있음은 한옥의 큰 장점
민들레울의 기와집(본채와 사랑채)은 ‘이실집’이다. 즉 다른 곳에서 옮겨서 지은 집이라는 의미인데, 집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은
한옥의 또 하나의 큰 장점이다. 이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사개를 맞춰 나무를 조립하기에 가능한 것으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치목하여 기둥과 도리, 보 등이 서로 맞물리므로 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수백 수천년을 견딜 수 있으며 필요하면 그대로 해체하여
옮겨서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본래 이 집이 세워졌던 곳은 서대문구 천연동이다. 지금의 독립문 근처로 남향의 야트막한 둔덕에 자리잡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주변여건 때문인 듯 대문이 북쪽으로 나있었다는 것과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전각이 한칸 돌출 된 형태의 출입구가 있다는 것인데,
이는 본래 우리의 전통 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유형이다.
이 집이 조성된 연대가 소화 14년(서기 1939년), 일제 강점기가 막바지 기승을 부릴 때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형성된 것이다. 시대적 산물이라고나 할까? 집을 옮기면서 이 부분을 없앨까도 생각했지만 위치만 바꾸어 그대로 살렸다.
땅에는 터의 영기가 있다. 땅에는 터의 영기( 氣)가 있다. 그 터에 신이 있다는 설정이다. 우리는 이를 토신(土神)이라 부른다.
농사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땅은 경배와 소출의 대상이었지 물신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터를 사용하는 이의
마음이다. 등기상의 주인은 후손들에게서 잠시 터를 빌려 사용한다는 마음으로 가꾸고 보존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민들레울이 들어선 이 터는 좌향이 썩 훌륭하다. 알맞은 정도의 배산(背山)과 적지만 임수(臨水)했다. 뒤쪽의 산은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편안한 높이이며 앞쪽으로는 수목원 삼림욕장과 광릉을 감싸안은 죽엽산 줄기아래 논과 맞닿은 곳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터는 이쯤이면 썩 괜찮은 것 같다. 완성하는 지기(地氣)가 발현한다고까지야 장담할 수 없지만
시원스런 눈맛이 그만쯤이면 됐다.
‘민들레울’이 지어진 까닭 민들레울은 몇 가지를 지향하며 조형되었다. 우선 건물로서의 민들레울은 전통에 바탕을 두어 옛 것을
재현하고자 했다. 민들레울을 구성한 본채와 사랑채, 교육관, 측간 등이 초가와 기와, 돌기와 집으로 이루어졌다.
실내재료와 인테리어 등은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골격과 형태는 전통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민들레
울은 전통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자 조성되었다. 건물로서의 전통 가옥에서 나아가 집이 갖는 문화성을 나타내기 위해 생활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민들레울 본관은 살림집의 구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전통 차실과 한식집으로 마련되었다. 본관 바로 왼편에 있는 건물(달림방)은
사랑채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구들을 들인 전형적인 온돌방이다. 사랑채 앞쪽으로는 초가로 지은 교육관(다린초당)이 자리잡고
있다. 전통문화 강좌와 더불어 초중고 학생들의 전통문화교육 공간을 위해 세워진 공간이다.
이렇듯 민들레울에 들어선 건축물들은 제각각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갖도록 조영되었다. 민들레울은 궁극적으로 복합적인 어울림 터다.
그러므로 이 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열린 공간이다.
전통생활문화의 열린 마당! 이는 전통문화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정착되어지길 바라는 취지이다. 너무 설명이 장황하게 되었다.
아무튼 앞으로 민들레울이 지어지는 과정을 건물로서, 그리고 조상의 살림집으로서 한옥이 갖는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田
■ 글·정순오 (민들레울 대표 031-544-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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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