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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미국식으로 지은 90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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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지은 전원주택
정통 미국식으로 지은 90평 목조주택
이 집의 설계 역시 외국 잡지에 실린 도면을 활용한 것이다. 현지에 연락해 설계도를 사고 이를 바탕으로 집을 지었다. 우선 설계상의 기본 구조를 충실히 따랐고 내외장재의 경우도 외국식 모델을 많이 적용했다. 목구조 주택이되 외관상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베벨사이딩(레드시다)외에 일부 마감은 조적으로 처리했다. 사이딩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은은한 색상의 이 벽돌은 호주산으로 치장벽돌로 불린다.
동혁 동현이 형제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쌍둥이 형제. 원주 아파트에서 이 곳 원주시 행구동으로 이사온 후로는 더욱 씩씩해 졌다. 일년이면 몇 번씩 걸리던 감기를 이 곳에선 아직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이찬수 황미옥씨 부부는 아무리 봐도 이 곳으로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눈싸움을 하다 발그레해진 얼굴로 뛰어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흐뭇할 따름이다. 아파트처럼 아이들을 밖에 내놓고 마음 졸이는 일도 없고 그저 씩씩하게 뛰노는 아이들을 창문으로 내다볼 뿐이다.
어른들도 좋기는 마찬가지다. 이 곳은 원주 시내와는 차로 10분 거리임에도 도심과는 완전 격리된 전혀 다른 전원풍의 한적한 동네. 곧게 올라간 전나무들이 이국풍의 분위기를 더해주고 집 앞으로는 산 능선이 첩첩이 지나간다. 지난여름의 풀벌레 소리와 미풍은 새삼스런 경험이었고 채소 길러 먹는 재미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왜 진작 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들만큼 이 곳에서의 생활은 아주 만족스럽다. 한마디로 새로운 것들과의 ‘조우’다. 이찬수 황미옥씨 부부가 이 곳에 부지를 마련한 것은 지난 95년. 부동산중개업소의 소개로 9천여평에 이르는 준농림 임야를 평당 15만원씩 주고 구입했다.
최근 이웃 땅이 30만원 정도에 거래된 것을 보면 현재는 준농림 시세가 대략 그 정도를 형성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건축은 3년 뒤인 98년 10월부터 시작됐다. 쎄쩌한국지점에 의뢰했다. 여러 업체를 놓고 저울질했지만 그래도 공신력이란 측면을 높이 사 쎄쩌한국지점을 최종 선택을 했다. 또 외국계 회사인 만큼 예전 유럽에서 보고 좋은 느낌을 받았던 외국풍 주택을 가장 잘 소화해줄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다.
이찬수씨는 그동안 외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집을 눈여겨 보았다. 외국 주택관련 잡지도 많이 보았는데 그중에 눈에 띈 것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형태. 이 집의 설계 역시 외국 잡지에 실린 도면을 활용했는데 현지에 연락해 설계도를 사고 이를 바탕으로 집을 지었다. 시공상에서도 설계상의 기본 구조를 충실히 따랐고 내외장재의 경우도 외국식 모델을 많이 적용했다.
우선 목구조 주택이되 외관상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베벨사이딩(레드시다)외에 일부 마감은 조적으로 처리했다. 사이딩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은은한 색상의 이 벽돌은 호주산으로 치장벽돌로 불린다.
내장도 폰더로사 파인, 오스모 스프루스 루버, 웨스턴 레드시다 등이 사용됐다. 지붕은 45년 수명의 아스팔트싱글이며 창호 및 도어, 주방용품, 욕실도 외국풍으로 장식 됐다.
실내 구조는 1층에 방 1, 거실 2, 주방, 식당, 화장실 등으로 구성됐고 2층은 방 3개에 욕실이 있다. 집 전면과 측면으로는 데크를 둘렀다. 식수는 지하수이며 난방은 기름보일러와 심야전기보일러를 겸한다. 각각의 용도를 별도로 적용해 기름보일러는 난방용으로 사용하고 심야전기보일러는 온수 전용이다.
재작년 10월부터 시작된 공사는 4개월 뒤인 1월 초에 완성됐다. 지난해 1월 입주했으니 이제 갓 1년을 넘겼다. 주위에 인가가 드물어 지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십중팔구는 시선을 떼지 못한다. 길쪽에선 조적식 주택인데 길 따라 시선이 측면으로 이어지면 다시 목조주택으로 바뀐다. 지나는 사람들에겐 퍽 재미있는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90여평에 이르니 집이 웅장하기도 하고 외장 마감도 이색적이어서 으레 발걸음을 멈추기 일쑤다.
이 곳으로 이사온 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아이들은 아파트에 살 때보다 나들이를 더 좋아하고 유치원에 가는 것도 매우 즐거워한다. 어른들도 시내에서보다 외출이 더 잦아졌다. 그만큼 이 곳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다는 반증이다. 매일 이찬수씨 가족은 즐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나선다.田
글· 사진 류재청
쎄쩌한국지점, 자재에서 시공까지 토털 시스템 구축
쎄쩌는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본사를 둔 종합 목재회사로 1927년 설립됐다. 미국 서부 연안 일대의 자체 삼림지에서 육성, 벌목되는 양질의 원목으로 다양한 목재 관련 제품을 미국 등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한국지점은 지난 93년 설립됐다. 크게 자재 영업 및 판매부, 목조주택 설계 및 시공 부서로 나뉘어져 있다. 본사는 서울에 있고 경기도 안성에 대단위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인정되는 정품을 사용하며 건축의 기초 자재부터 마감재까지 다양한 품목을 구비, 원스톱 쇼핑 체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오랜 경력의 전문인들로 구성된 시공 부서는 소규모 농가에서부터 고급 전원주택까지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해 집을 지어주고 있다. 약 2천여 종에 이르는 목조주택 표준 도면과 방대한 관련 자료를 보유, 고객의 취향 및 여건에 맞출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미국 표준 규격에 맞는 정확한 목조주택 시공을 추구하고, 미국 기준의 품질 보증(WARRANTY)을 적용한다는 점도 쎄쩌한국지점의 특징 중 하나다.
건축정보
위치: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부지면적: 준농림 임야 9천평(이중 4백평 대지 전용)
부지구입 금액: 평당 15만원
부지구입년도: 95년
건축공사기간: 98년 10월~ 99년 1월
건평: 90평(1층 64평, 2층 26평)
실내구조: 1층 - 방 1, 거실 2, 주방, 식당, 화장실2 2층 - 방 3개, 욕실
방위: 동향
순수건축비: 평당 4백20만원
건물형태: 2층 목구조주택
공법 : 미국식 2X4, 2X6 스터드 공법
내벽마감: 가족실(폰더로사 파인, 미국),
현관실(오스모 스프루스 루버, 독일),
침실1.2(웨스턴 레드시다 루버)
침실3(오스모 스프루스 루버, 독일)
계단재(오크, 피츠사)
안방/거실(드라이월 위에 페인트 마감)
바닥재(오스모 오크 플로어링, 독일)
내부도어(오크 집성도어, 미국)
내부프레임(오크 솔리드)
외벽마감: 베벨 사이딩(웨스턴 레드시다), 호주산 미드랜드 치장벽돌,
창호(밀가드), 현관도어(이글)
단열재: 글라스울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45Y)
데크: 레드우드(미국)
난방형태: 난방(기름보일러), 온수(심야전기 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시공: 쎄쩌한국지점(02-515-8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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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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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 임대해 전원생활 하며 지은 쌍둥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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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짓고 전원도 즐기고
낚시터 임대해 전원생활 하며 지은 쌍둥이 집
편병대씨는 한채는 자신이 직접 살고 다른 한집은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매매하겠다는 생각으로 똑같은 모양, 똑같은 평수의 쌍둥이 집을 여주 점동면 어우실마을에 지었다. 집을 지으면서 IMF를 겪어 자금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낚시터를 운영하며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억5천여만원을 투자해 4천2백여평의 낚시터와 40평 카페를 운영하고 사는 편병대씨를 찾았다.
여주군 점동면 관한리에서 어우실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는 편병대씨는 97년이전까지 서울과 수원 등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했다. 그는 전원주택 중개를 할 때마다 항상 불만이 있었다. 수요자들의 구미와 딱 맞아 떨어지는 전원주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수요자들이 필요로 하는 주택을 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중개업을 포기한 채 건축일에 뛰어들었다. 남들이 지어놓은 집을 소개하는 것보다 본인이 손수 지으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노후에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심산으로 마련해둔 부지가 있어 그 곳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여 편씨는 낚시터 근처에 전원주택 두채를 짓게 되었다. ‘어우실’이라 불리는 이 동네의 지명은 ‘임금님의 친구’가 살았다 하여 유래되었는데 경관이 좋고 명당지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정승이 나는 터로 알려진 지역이었다.
마을 뒤로는 인근에서는 높은 해발 6백9m의 오갑산이 둘러쳐 있고 관한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흘러 호수를 이루는 그야말로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전원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약 30여호의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이 곳엔 축사가 없어 물이 맑고 환경이 좋다. ‘아우실’마을은 행정구역상 여주지만 서울서 가는 길은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중부고속도로 일죽 나들목을 나와 38번 국도를 따라 장호원과 충북 음성을 잇는 다리를 지나면서 좌회전 하면 극동정보대 앞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 길을 따라 좀 더 들어가면 관한리가 나온다.
이 곳 어우실 낚시터가 있는 호숫길을 끼고 오갑산 자락으로 들면 어우실 마을에 닿는다. 이렇게 오는 것이 여주나들목에서 들어오는 것보다는 약 5㎞쯤 멀지만 시간적으로는 단축이 된다.
편씨가 이 곳에 땅을 마련한 것은 90년의 일로 구입당시 유명건축가인 공간건축 대표였던 고 김수근씨가 생전에 아끼던 흙 토담집이 하나 있는 남향받이 땅이었다. 이 곳에 그는 자신만의 전원주택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97년 7월 2백58평을 대지로 전용하여 똑같은 모양의 주택 2동을 지었다. 한 집은 자신이 직접 살고 다른 집은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으면 매매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두 채를 지었는데 자신의 살겠다는 생각으로 지었기 때문에 자재 하나 집안 구석 구석까지 신경 써 꼼꼼히 지었다.
손수 강남의 자재백화점을 찾아 자재들을 구입해 올 정도였다. 이렇게하여 98년 2월 똑같은 모양 똑같은 면적의 두집이 완성되었다. 집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조적조 주택으로 지하 10평, 주차장 12평 서비스면적 18평 등을 포함해 총 81평 규모다. 집을 지을 때 견고한 집을 만들려고 많이 노력했다. 특히 내부 공사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목수 6명을 불러 일당제로 일을 했다. 그래서 내부 마감이 매우 깨끗하다.
벽체의 경우 뼈대를 세우고 방의 내벽은 흙벽돌로 쌓은 후 황토마감 위에 닭종이와 한지로 도배를 했다. 방바닥은 자갈을 깔고 황토를 다진 후 다시 황토로 마감했다. 장판은 건강에 좋다는 콩땜 후 니스칠을 했다 채광성을 높이기 위해 지붕에는 천창을 많이 만들었고 1층 거실은 유리블럭을 만들어 빛을 많이 끌어들였다. 특히 지하에 주차장을 넣어 곧바로 1층 거실과 연결되게 했다.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방의 경우 유리블럭을 사용해 전혀 어둡다는 느낌이 없으며 홈바나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넓다. 또 욕실에는 별도의 황토찜질방을 두었다. 1,2층 전후면에는 데크 공간을 넓게 냈는데 전면데크에는 방부목을 깔았고 후면에는 타일로 바닥을 시공했다.
이 집을 지으면서 편씨는 마을 초입에 있는 어우실 낚시터를 운영하게 되었다. 어우실에서 정착해 살 궁리를 하던 중 어우실 마을 초입에 있는 4천2백여평의 저수지를 임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권리금을 포함해 부대시설을 9천만원에 매입했다. 이렇게 하여 관리사무실로 쓰는 콘테이너 2동과 작은 배 한척, 좌대 50여개로 낚시터를 시작했다.
그 후 관리사무실을 확장하여 매장으로 만들었고 온돌을 시공하여 방으로 만들었으며 수상 좌대 12척을 설치했다. 그외 주차장을 만들고 양어를 할 수 있는 가두리를 만들고 하여 6천여만원을 더 투자했다. 또 낚시터와 붙어 있는 건평 40평 규모의 식당을 9천만원에 매입했다.
낚시터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식당을 개조하여 현재 카페를 하고 있다. 카페로 개조하는데 1천만원정도 들었다. 편씨가 이곳에서 현재의 규모로 낚시터와 카페를 운영하는데 투자된 금액이 총 2억5천만원 정도다. 이것을 통해 얻는 연수입은 약 7천만원 정도된다.
도시에서 생활하던 편병배씨는 좋은 전원주택을 지어보겠다는 생각에서 어우실마을을 찾게 되었고 이 곳에서 전원주택을 지었지만 공사중 IMF를 겪는 바람에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연이 돼 낚시터를 운영하게 되었고 낚시터를 통해 수입도 생기고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어 기쁘다. 그가 그토록 공들여 지은 2동의 주택은 아깝지만 자금사정상 임자가 나타나면 매매할 생각이다.
“저희 어우실 낚시터는 물이 깨끗하고 주변경관이 수려해 자생토종인 참붕어가 많고 가물치, 메기 등 토종 민물어종들도 많습니다.” 낚시터 윗쪽에 30여호의 농가 외는 아무도 살지 않기 때문에 물이 맑다는 편씨는 탤런트 이덕화씨를 비롯해 많은 연예인 낚시광들이 이 곳을 즐겨 찾는다고 자랑한다.
글·사진 김경래
건축정보
위치:여주군 점동면 관한리
부지면적:2백58평
건축기간:97년 5월~98년 2월
건평:29평
연면적:81평(1층 29평, 2층 12평, 지하 10평, 주차장 12평, 데크 등 18평)
실내구조:1층(방2, 주방1, 화장실2, 다용도실, 황토찜질방, 거실), 2층(방1, 가족실, 화장실), 지하(방1, 보일러실, 다용도실, 주차장)
방위:정남향·건물형태:2층 조적조
외벽마감:하디사이딩
내벽마감:방(흙벽돌 조적 후 황토마감 위 한지 도배),
거실(조적미장위 석고보드마감 후 백색 락카 페인트),
방바닥(강자갈위 황토다지기마감 후 민속장판)
지붕마감:콘크리트슬라브, 아스팔트싱글
단열재:스치로폼 50㎜
창호:외부 칼라샷시에 16㎜격자 페어, 내부 5㎜ 유리 목재 창틀
바닥재:체리목
목재:아파목(단단하고 괴목과 같이 결이 좋으며 색상이 아름답다)
타일 및 도기류:이태리 및 미국산
난방형태:3만5천 칼로리 기름보일러(전화로 자동점화 가능)
식수공급:지하 1백25m 암반수(대공, 수중모타)
조경:제천 국화석을 쌓고 기존 자연수(감, 밤, 가래나무)를 살려 자연미를 갖췄으며 철쭉밭을 꾸밈, 담장은 미측백을 심었음)
■ 시공·건축주 직영(0337-88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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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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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해 머물 생각으로 왔다 평생 살려고 지은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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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지은 집 ①
한두해 머물 생각으로 왔다 평생 살려고 지은 2층 목조주택
캐나다 현지에도 다녀 왔다. 당초 정통 목조주택을 짓고 싶다는 욕심에 캐나다 현지에서 자재를 들여오고 현지인을 통해 집을 지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인건비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체재비용 등 일일이 챙겨야할 사항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막상 현지에 다녀와 얘기를 듣고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포기 하고 국내 업체를 통해 집을 짓기로 했다. 다만 주택 유형은 외국의 관련 책자를 보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구입해 다시 국내 설계 사무소에 의뢰해 설계를 마쳤다.
본디 서울에서 나고 자라 한 번도 도심을 떠난 적이 없었고 그럴 계획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이 곳에 올 때에도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그냥 한 두해 머물 생각으로.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들도 좋고 자연경관도 좋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리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더 이상 이 곳을 떠나선, 그리고 더 이상 서울에선 살 수 없을 것 같은 예감,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제주도 예찬론자가 됐다.
홍성철 유신애씨 부부는 이렇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자연스럽게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 유신애씨는 시골생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다. 이러한 상황은 남편도 마찬가지. 모두가 서울태생으로 한 번도 시골생활을 접해보지 못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유신애씨보다 남편 홍성철씨는 전원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뿐.
그러던중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에 올 기회가 생겼다. 의사인 남편이 제주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 처음엔 남편 혼자 내려 올 계획이었으나 적어도 2년은 머물게 될 것이란 남편 설명에 유신애씨도 함께 따라 나섰다. 그때가 10년전인 90년 무렵이다.
처음 제주에 와선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2년 계획으로 왔던 제주. 그러나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고 어느 덧 7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눌러 앉게 됐다. 그사이 남편 홍성철씨는 다니던 종합병원을 그만 두고 개인 병원을 개업했다. 그만큼 제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력적인 곳이었고 이러한 생각은 유신애씨도 마찬가지였다.
이왕 눌러 살 바엔 집도 새로 짓기로 했다. 제주도에까지 와서 아파트 생활을 하기엔 다소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 때 구입한 땅이 바로 지금의 집이 위치한 땅. 제주시 해안동에 위치한 곳으로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던 농장 주인으로부터 구입했다. 모두 2백여평 규모의 자연녹지지역으로 평당 30만원씩 주고 구입했는데 농장 주인이 직접 조성한 18필지 규모의 택지다.
집을 짓기 전부터 많은 궁리를 했다. 어떻게 하면 예쁘고 멋지고 실용적인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캐나다 현지에도 다녀 왔다. 당초 정통 목조주택을 짓고 싶다는 욕심에 캐나다 현지에서 자재를 들여오고 현지인을 통해 집을 지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인건비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체재비용 등 일일이 챙겨야할 사항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막상 현지에 다녀와 얘기를 듣고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국내 업체를 통해 집을 짓기로 했다. 다만 주택 유형은 외국의 관련 책자를 보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구입해 다시 국내 설계 사무소에 의뢰해 설계를 마쳤다.
건축은 96년 6월부터 시작됐다. 건축에 들어가기 앞서는 일일이 동네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렸고 건축 중에도 가끔씩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여러 경로를 통해 마을 사람들과의 융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집이 다 지어지고 나서는 마을회관에서 남편이 의료봉사 활동을 펼쳐 자연스럽게 마을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집은 97년 10월 완공됐다. 지층까지 포함한 3층 건물로 총 80평 규모. 층별로는 1층이 32평으로 주방, 식당, 손님 응접실, 가족실, 다용도실, 화장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2층은 방 3개와 다락이 있다. 지층에도 방 1개와 서재가 있고 일부는 창고를 겸한 주차공간으로 활용된다.
전체적으로 층별 용도를 분명히 해 2층은 취침공간으로 활용하고 1층은 활동공간으로 활용되도록 꾸몄다. 집의 구조와 배치에는 유신애씨의 생각이 많이 반영됐다. 음식물의 부패를 고려해 부엌을 서북쪽에 배치한 것이나, 아이 공부방의 경우 조도를 고려해 동북쪽으로 배치한 것이 그 경우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모두가 유신애씨 자신이 생활 속에서의 경험과 느낌을 반영한 것이다.
올해로 제주에 온지 10년. 그리고 이 집에 들어온지도 2년이 넘었다. 누가 뭐래도 이제는 자신 있게 제주 사람임을 내세울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제주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서울만큼의 화려함은 아니지만 대신 넉넉하고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이들 부부에게 제주는 삶의 색깔을 바꿔준 아주 특별한 곳이 됐다.
글·사진 류재청
건축정보
위치: 제주시 해안동
부지면적: 자연녹지지역 2백평
부지구입년도: 96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30만원
건축공사기간: 96년 7월∼97년 10월
건평: 80평(1층 32평, 2층 28평, 지층 20평)
실내구조: 1층-주방, 식당, 손님 응접실, 가족실, 다용도실, 화장실 2층-방 3개, 다락, 지하-방 1개, 서재, 창고
건축비:3억5천만원
방위: 정남향
건물형태: 2x4 2층 목조주택
내벽마감: OSB, 석고보드, 벽지
외벽마감: 벽돌, 나무사이딩
단열재: 화이버글라스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50Y)
바닥재: 온돌 마루
난방형태: 기름 보일러
식수공급: 상수도, 마을 공동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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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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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생활을 위해 서귀포 고근산 중턱에 새들공법으로 지은 30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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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지은 집 ②
노후 생활을 위해 서귀포 고근산 중턱에 새들공법으로 지은 30평 목조주택
여행 삼아 내려와 몇 군데 땅을 소개받았다. 그 중엔 해변가에 위치한 땅도 있었고, 도심이나 산 속에 위치한 땅도 있었다. 그러나 해변 땅은 바람이 심하고 습도가 높아 좋지 않다는 얘기에 포기를 했다. 실제 많은 외지인들이 해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나 막상 살아보면 바람이 심해 적잖이 불편함을 호소한다는 게 이 곳 사람들의 설명. 그렇다고 다시 제주에까지 와서 혼잡한 도심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산 속은 너무 적적할 것 같은 생각에 선듯 내키지 않았다.
집 지을 당시 포크레인 기사가 쌓아주었다는 돌탑이 그럴듯하게 제주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주에 온지 이제 두어 달. 바람이 많은 것을 제외하면 그닥 여타 지역과 다른 점을 찾기 쉽지 않다. 애초 생각대로 제주는 그냥 평화롭고 온화한 곳. 고근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보니 경관이 좋고 좋아하는 등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관광명소가 산재해 있어 아직 적적하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박민길 서석자씨 부부가 이 곳에 정착한 것은 지난해 12월.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기대하고 제주에 왔다. 본디 고향은 부산이었으며 그동안의 모든 생활 기반도 부산에 있었다. 운영하던 기업체에서 손을 떼고 이제는 이 곳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굳이 제주를 꼽은 이유는 한적하고 여유로울 것이란 기대감 때문. 줄곧 부산의 도심에서 그것도 아파트 생활했으니 노후 생활만큼은 전원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 노년의 쉼터가 바로 제주가 된 것이다. 처음엔 양평지역도 고려했었다. 서울에 있는 자식들과 가까이 있으려는 생각에 양평을 택해 여러 곳을 다녔지만 땅 고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주위의 소개로 제주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제주로 발길을 돌렸다.
여행 삼아 내려와 몇 군데 땅을 소개받았다. 그 중엔 해변에 위치한 땅도 있었고, 도심이나 산 속에 위치한 땅도 있었다. 그러나 해변 땅은 바람이 심하고 습도가 높아 좋지 않다는 얘기에 포기를 했다. 실제 많은 외지인들이 해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나 막상 살아보면 바람이 심해 적잖이 불편함을 호소한다는 게 이 곳 사람들의 설명. 그렇다고 다시 제주에까지 와서 혼잡한 도심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산 속은 너무 적적할 것 같은 생각에 선듯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만난 곳이 지금의 땅. 해변과도 적당히 떨어져 있고 지대가 높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그런 곳이었다. 또 시내와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고 가까이에 민가도 있다는 점에서 크게 나무랄 데가 없는 곳이었다. 결국 98년 자연녹지지역인 이 곳을 평당 30만원씩 주고 3백평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부터 건축에 들어갔다.
시공 업체는 제주 혼카우드피아. 우연히 차를 타고 지나다 눈에 들어온 목조주택이 있었고 차에서 내려 들어가 보니 제주 혼카우드피아의 사무실 겸 모델하우스였다. 애초 흙집이나 목조주택을 염두에 두었던 만큼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우선 축대를 쌓고 땅을 고르는 작업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건축은 지난해 7월 시작됐는데 ‘새들(saddle)’ 공법이라는 방식이 적용됐다. 착공 5개월만이 12월에 완공됐으며 비가 많이 내려 생각보다 시공시간이 길어졌다. 새들공법은 서로 맞대어 붙인 사각의 나무를 그대로 쌓아 올린 것으로 이 나무가 구조체겸 벽체가 된다. 사용된 나무는 핀란드산 홍송.
모두 30평 규모의 단층집으로 방3, 거실, 주방, 화장실, 다락이 있다. 지붕은 아스팔트싱글로 덮었고 바닥재는 온돌마루. 내외벽은 특별히 마감을 하지 않고 오일스텐을 칠했다. 외벽은 약간 색을 넣었고 내벽은 자연스럽게 나무색이 배어 나오도록 했다. 식수는 마을 공동지하수를 사용하고 보일러는 기름보일러. 가까이에 2가구 정도가 있고 조금 내려가면 마을이 형성돼 있다.
박민길 서석자씨 부부의 하루는 등산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침마다 고근산을 오르며 서귀포 앞바다를 내려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 고근산의 오솔길과 나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바람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앞으로는 바다낚시도 해 볼 참이다. 제주가 베푼 자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 것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앞으로 계획이다.
글·사진 류재청
시공포인트 / 제주혼카우드랜드 임병화 사장
비바람 많은 제주의 기후 특성 고려해 시공
퇴임후 편안한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주변 환경을 고려해 심사숙고한 끝에 지은 집이다. 거실 앞쪽으로는 서귀포 앞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뒤로는 아침저녁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는 고근산이 위치해 있다. 빼어난 경관 때문에 건축허가를 받기까지도 적잖은 애로가 있었는데 결국 2층을 계획했다가 미관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단층으로 지었다.
설계는 건축주가 원하는 구조를 임의로 설계한 후 이를 바탕으로 창문사이즈, 벽체 높이 등 구체적인 사항을 협의해 설계를 마쳤다. 거실에는 넓은 창을 넣어 바깥 경관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했고 앞쪽에는 넓은 테라스를 만들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했다. 지붕선은 하나만 추가해 깔끔하게 처리 했으며 난방은 기름보일러 외에도 거실에 벽난로를 설치했다.
제주는 바람이 세고 비가 많은 지역이어서 기타 지역에 비해 지붕선을 길게 처리하고 벽체와 지붕간의 이음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사용된 공법은 말의 ‘안장’을 의미하는 새들(saddle)공법이 적용 됐는데 말의 안장을 올리듯 층층이 쌓아 얹는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건축정보
위치: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부지면적: 자연녹지지역 3백평
부지구입년도: 98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30만원
건축공사기간: 99년 7월∼12월
건평: 30평
실내구조: 방3, 거실, 주방, 화장실, 다락방
건축비: 2억
방위: 남향
건물형태: 다락방이 있는 목조주택
공법: 새들(saddle)
벽체구조: 라미네이트(핀란드산 홍송)
내외벽마감: 오일스텐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바닥재: 온돌 마루
난방형태: 기름 보일러
식수공급: 마을 공동지하수
주변 마을 가구수: 500m이내에 2가구
생활권: 서귀포시
설계 및 시공: 제주혼카우드랜드 (064-744-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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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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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한옥 형태로 지은 2×6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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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은 우리집
전통한옥 형태로 지은 2×6 목조주택
이천시 마장면 오천리의 얼음박골은 지명이 말해주듯 추운 지역 이다. 이곳은 얼음박 약수로 유명한데 이천지역 수자원의 원류쯤 되는 물이다. 이곳에 있는 서명림씨 댁은 목조주택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허문 특색있는 모양과 구조를 하고 있다. 집주인이 직접 가족들이 살 집을 설계하고 시공하였는데 한국적인 문화와 기후를 고려하여 가족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 섬세한 배려가 눈에 띤다. 서명림씨 가족은 작년 9월 이 집을 짓고 이사를 왔다.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아들 둘 등 3대 여섯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남편 최유조씨는 이곳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을 한다. 이 집의 설계 및 시공의 특징에 대해 손수 작업한 서명림씨로부터 들어보았다.
외국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림같은 고급 목조주택의 디자인은 보는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그런 집은 한국사람이 그 집에서 살아야 하는데 있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그림같은 집이 불행히도 서양의 문화와 풍토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되고 검증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이 집을 지을 때 구조적인 안정성, 환경 친화적인 재료의 사용, 시공상의 편리함 등 미국식 목조주택의 많은 장점들은 유지하면서 한국의 풍토와 문화에 적합한 디자인을 접목해 시각적인 만족과 더불어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만족을 함께 추구하고자 했다.
건물의 배치 및 평면계획
우리나라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온대성 기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겨울에는 한냉 건조한 기후가 나타나고 여름에는 고온 다습한 기후가 나타난다. 또 겨울과 여름의 한서차이도 심하다. 따라서 겨울에는 온돌구조가 여름에는 마루구조가 적당해 이 집에서는 이들 구조의 유동적인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연에너지를 적절히 사용하기 위해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 했고 특히 이 주택이 위치한 얼음박골은 연중 평균기온이 3도정도 낮은 지역이므로 지역 특성상 우리나라 전통가옥 중에서 함경도 지방의 평면구조인 전(田)자형 주택 즉 방이 2중으로 되어 있는 복식구조를 응용해 건물의 연손실을 최소화 했다.
주택을 하나의 생태학적 시스템으로 보아 시스템 내부의 유기적 결합은 물론 외부환경과의 개방적 에너지 교환이 필요하다. 서양 건축이 건물을 고정된 작품 또는 시각적 형태로 보는데 반해 한 국의 건축사상은 건축을 인간과 환경의 매개물로서 외부의 변화에 적응해 변화하는 것으로 본다. 본래 무기물로 이루어진 폐쇄시스 템인 건축이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성을 통해 개방시스템이 되는 것 이다.
이와같은 사상을 평면계획에 적용하고자 전통가옥의 툇마루를 서양식 데크에 응용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자연스레 연결되는 유기적 흐름을 강조했다.
그리고 건축물에 유입되는 인적 물적 자원의 원할한 배출과 의식주생활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주택의 뒷공간(다용도실, 세탁· 건조실, 장독대, 창고)의 비중을 높였다.
건물의 내부공간들 사이에도 성격이 다른 두 공간 즉 주로 낮 생활이 이루어지는 활동적이고 공적인 양(陽)의 공간(거실, 식당)과 주로 밤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음(陰)의 공간(침실)이 현관과 진입 공간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분리돼 침투되게 했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은 입면계획에서도 천정의 높이와 모양을 차별화해 그 공간내에서 심리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입면계획
한국의 전통주거는 일조 및 일사를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배치 및 평면구성으로 발달해 왔다. 계절에 따른 실내의 환경변화를 막기 위한 조절장치로 지붕과 차양을 사용했다.
지붕에 의해 생기는 처마는 외벽과 창호가 침수되는 것을 막아 주며 태양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일사의 유입을 차단하고 태양고도가 낮은 겨울에는 일사를 실내 깊은 곳까지 유도해 쾌적한 일조환경을 조성한다.
온돌방식을 채택할 경우 건축면적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주택에 있어 단층집이 한국문화에 적합하다고 보고 지붕의 구배도 필요이상으로 높게 잡아 처마를 좁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태양고도가 서양과 다른 우리나라는 2층집으로 설계할 경우 지붕의 본래 기능인 낙수처리와 일사조절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달개와 차양을 설치해야 한다.
개구부의 디자인은 단열, 일조, 통풍, 전망 등 복잡한 디자인 요소를 충족하면서 아름다워야 한다. 먼저 단열을 위해 샤시창과 목창으로 이중창문을 선택했다. 목창은 창호지를 바른 격자형 살창으로 선스크린 역할을 하게 했다. 여름에는 창살에 의해 그늘을 제공할 뿐 아니라 겨울에는 창문 바깥쪽에 공기막을 형성해 열손실을 적게 했다.
창호지는 투명성, 통기성 및 열적 성능이 좋아 자외선 투과율이 좋고 직사광선의 반 정도만을 투과함으로써 부드러운 확산자연광을 실내에 이용해 실내 빛환경을 쾌적하게 해준다.
또 창호지로 마감된 실내는 실내발생음을 흡수해 울림현상을 줄이므로 아늑한 실내환경을 만들어 준다. 쾌적한 실내기류를 일으키기 위해 상하 긴창(1200×1800)들을 바닥면에서 3백㎜ 높이에 설치해 효과적인 통풍이 가능하고 내외공간의 심리적인 차단을 적게 하고자 했다.
마감계획
전통한옥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전체적인 주택의 이미지를 끌고 갔다. 지붕의 마감재인 아스팔트싱글은 검정기와와 유사한 색깔과 패턴을 선택했고 백색 스타코마감 위에 띠방을 돌리고 대들보기둥을 장식적 요소로 이용했다. 그리고 한옥의 널문도 장식적인 의미에서 부착해 한국전통건축사상을 색과 모양으로 표현해보고자 했다.
글 서명림 사진 김경래
글쓴이 서명림씨는 이화여대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어름박골주택을 직접 설계 시공했다.
건축정보
위치 :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오천리(일명 얼음박골)
대지면적 : 464㎡ (141평)
건축면적 : 144㎡ (44평)
구조 : 목조(2×6공법)
기초 : 철근콘크리트
지붕마감 : 아스팔트 싱글
외벽마감 : 스터코+띠방장식(춘향목)
내부마감 : 거실 및 식당(바닥 - 3백각 화강석, 벽과 천정 - 핸디텍스), 방(바닥 - 데코타일 및 종이장판, 벽과 천정 - 실크벽지, 닥종이)
건축비 : 평당 3백만원 정도
공사기간 : 1999년 5월 ~ 1999년 9월
설계 및 시공 : 서명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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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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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에서 만나는 또다른 과거, 골동품으로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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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있는 집짓기
걸리버 여행기에서 만나는 또다른 과거, 골동품으로 지은 집
15년간 수집한 외국의 희귀한 골동품으로 집을 지었다. 이 집을 들어서는 순간 아주 먼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서울서 살다 올 2월 광주 오포면 신현리에 1층은 박물관겸 레스토랑 그리고 2층은 주택인 2층집을 지어 이사한 최창완씨 가족을 만났다.
최창완 씨네 가족들은 지난 2월 광주 신현리의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작년 5월부터 집짓기 공사를 시작해 무려 10개월간의 긴 여정에 막을 내린 것이다.
뒤돌아 보면 아찔한 현기증이 일 정도로 많은 일을 했지만 집을 한 채 지었다는 것에, 이렇듯 큰 일을 손수 치뤄냈다는 것에 마음만은 뿌듯하다.
분당의 아파트 숲을 내려다 보며 태재고개를 넘으면 분당의 잘 정돈된 모습과는 상반되는 불규칙함이 펼쳐진다. 꼬불꼬불한 길가로 높낮이가 다른 집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같이 원색의 현란한 간판들이 달려있다.
이 길의 좌측편이 신현리인데 도로가에서는 그 안쪽 마을의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도로를 벗어나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또다른 모습의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도로변의 번잡함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아늑한 전원풍경이 그곳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느 시골풍경이 그렇듯 산자락을 뒤로한 양지쪽에 집들이 볕을 쬐고 있고 응달 텃밭에는 언제 내렸던 눈인지 밭이랑을 따라 수북히 쌓여 있다. 신현리 계곡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산밑으로 채 눈이 녹지 않은 마당의 집이 하나있다.
걸리버여행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집은 박물관 겸 카페 그리고 주택이다. 이 집의 내부는 걸리버여행기란 이름에 걸맞는 동화속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기 드문 희귀한 물건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집주인 최창완씨는 15년동안 엔틱사업을 해온 사람이다. 엔틱사업이란 한마디로 골동품들을 모아 그것을 매매하거나 임대를 하는 사업이다. 최씨는 골동품에 대해 할 말이 많고 이것을 이야기 할 때는 신이 난다. 국내 것보다 주로 외국의 오래된 물건들을 수집하는데 보유하고 있는 것이 몇 종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레코드판만 2만여종이고 축음기만 1백여대다. 이렇게 헤아리면 그 갯수가 엄청나다.
서울에 살 때는 이들 물건을 보관하는 것도 골치거리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곳 신현리 계곡이었다. 이곳에 애초에는 박물관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수익은 좀 있어야 할 것같아 박물관겸 레스토랑을 지었다. 작년 이곳의 준농림지 3백3평을 구입해 전용후 1층 90평 2층 46평 등 총 1백36평의 2층 집을 지었는데 1층은 박물관겸 레스토랑, 2층과 다락은 주택으로 쓰이고 있다.
이 집의 벽체는 시스모 빌딩 시스템(콘크리트 벽식구조)으로 했고 지붕은 박공지붕에 인조 슬레이트로 마감했다. 골조는 (주)철건에서 시공했고 마감과 인테리어는 건축주가 직접했다. 이 집의 내부는 온통 골동품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들을 모두 구경하는데만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 하나하나마다 사연을 갖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역사가 깃든 물건들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창완씨가 들인 공은 대단하다. 몇년을 쫓아다녀 손에 넣은 물건들도 많다.
“골동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하고 고가인 것을 골동품이라 하여 수집을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골동품은 투기의 수단이 아닌 물건을 아끼고 옛 것을 소중히 여길줄 아는 마음을 갖는 교육의 수단입니다.”
최창완씨는 이렇게 골동품과 관련해 할 얘기가 많다. 요즘 아이들은 새로 신을 사거나 옷을 사면 그 자리에서 헌 것은 버리는 것이 예사고 명동의 신발가게와 옷가게는 이렇게 버리고 간 멀쩡한 물건들이 산더미같이 쌓인다는데 이것은 자신의 물건에 대해 애착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들 녀석의 호주머니를 뒤져보면 못과 같은 쇠붙이들이 나옵니다. 길을 다니다 제딴엔 좀 오래된 휘귀한 물건이다 싶으면 무조건 주워 오는 버릇이 생겼거든요.” 이런 아들은 너무 낡아 부모가 내다버린 운동화도 다시 주워와 챙겨놓을 정도로 자신의 물건들을 아낀다.
이것이 바로 골동품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라고 최창완씨는 말한다. 광주 신현리에 있는 박물관겸 레스토랑 그리고 주택인 걸리버여행기 는 단순한 집이 아닌 이런 정신, 물건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는 교육장이기도 하다.
글·사진 김경래
건축정보
위치 :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신현리
부지면적 : 3백3.4평
건축면적 : 1백3.86평
연면적 : 1백36.38평(1층 90.7평, 2층 45.68평)
실내구조 : 1층(박물관, 레스토랑, 주방, 화장실), 2층(안방, 거실, 주방 및 식당, 방3, 화장실2, 다용도실), 다락방(방2, 가족실, 화장실)
건물형태 : 2층 시스모 빌딩 시스템(콘크리트 벽식구조), 박공지붕
외벽마감 : 몰탈 스프레이 위 외부용 수성페인트
내벽마감 : 1층 백시멘트 몰탈 흙손 마감, 2층 바탕 목재틀 위 9㎜ 석고보드 2겹위 도배지, 다락 단열재위 무늬목합판(12㎜)위 투명락카
지붕마감 : 인조 슬레이트 지붕재(내쇼날 제품)
단열재 : 시스모 공법(36㎜ 양단열)
창호 : 하이샤쉬 2중창
바닥재 : 1층 타일(스페인산), 2층 오크 온돌마루판
타일 및 도기류 : 계림도기 및 국내산 타일류
난방형태 : 강남 심야전력 스테인레스보일러 2천7백ℓ, 귀뚜라미 보일러 RGB 2천b, 벽난로 설치
식수 : 지하 1백2m 암반수
건축기간 : 1999년 5월 ~ 2000년 2월
설계 : 맥가건축사사무소(02-540-1693)
골조시공 : (주)철건
마감 및 인테리어 : 건축주 직영
(걸리버여행기 0342-718-6189)
시스모공법에 대하여…
시스모(SISMO)는 ‘SYSTEM MODULE’의 약어로 건축물의 모듈화를 통해 건축공법의 개혁을 추구하기 위해 개발된 공법이다. (주)철건에서 국내 최초로 선보인 이 공법은 합판과 각목으로 구성된 목재 거푸집 대신 스티로폼과 철선으로 제작된 시스모 패널을 사용한다. 공장에서 직접 제작한 시스모 패널로 구조물을 지은 뒤 콘크리트 타설을 함으로써 시공현장에서의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다.
(주)철건의 박연수 전무는 “이 공법을 이용하면 생산성 향상은 물론 공사원가 절감, 해체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등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자재의 유동성과 편리함으로 건축디자인을 다양하게 할 수 있으며 건축후 냉난방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시스모 공법의 건축비는 단열을 끝낸 골조공사까지 평당 60만~80만원 선이고 마감까지 하였을 경우 2백50만~2백80만원정도 예상하면 된다.
(주)철건 032-815-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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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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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단 둘이 직접 55평 귀틀집 지어 도시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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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있는 집짓기
아버지와 단 둘이 직접 55평 귀틀집 지어 도시탈출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도 집은 조금씩 모양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2층 귀틀집 형태로 1층은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슬라브를 쳤고 그 위에 낙엽송을 쌓아 벽체를 구성했다. 1층 벽체 역시 통나무를 쌓아 올려 벽체를 구성했다. 목재상에서 낙엽송을 구해다 규격대로 잘랐는데 굵은 나무와 가는 나무를 번갈아 쌓아 올렸고 가는 나무가 올라간 자리는 황토로 메웠다. 지붕은 아스팔트 싱글. 55평짜리 귀틀집이 완성된 것은 98년 3월 무렵이었다.
이제야 나
예서 쉴 수 있게 되었다.
흘러간 일년여의 시간들
피곤에 지쳐 쓰러져도
잠 못 이루며 뒤척이던 숱한 날들
물집이 터져도
망치로 손가락을 때려도
참아야했던 순간들
무엇이 이들을 견디게 했던가?
이제
사라진 시간과 기억들은
공간 속에 쌓여있고
지쳐버린 영혼과 육신은
쉼을 갈망한다
집이 완성되면서 그는 굴러다니던 기왓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그가 왜 이 곳에 와야했고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녹녹치 않았음을 함축적으로 담았다. 당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와 살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까지, 식구들의 만류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잘 다니던 병원 약사직을 그만두고 산 속에서 살겠다고 나섰으니 흔쾌히 이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집 지을 돈이 없다거나 돈을 좀 아껴보자는 심산도 아닌데 굳이 직접 짓겠다는 이규헌씨의 생각을 가족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줄곧 ‘도시탈출’을 꿈꿔 왔던 이규헌씨에게 주위의 만류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구체적으로 생각이 정리되고 부터는 아예 쉬는 날이면 시골 구석구석을 돌며 부지를 물색했다.
그러다 만난 곳이 지금의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땅. 95년 무렵 농가가 딸린 준농림 전 7천평을 2억원에 구입했다. 감악산으로 오르는 길목이지만 인적이 뜸하고 계곡을 끼고 있는 데다 햇빛도 듬뿍 받는 그런 곳이었다. 계곡 옆 바위에 맷돌이 조각된 흔적이 있고 여기저기서 옛날기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엔 절터였거나 집터였을 것 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약사직을 그만 두고 본격적인 집짓기에 나선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97년 무렵. 그것도 손수 짓겠다고 나섰다. 남들처럼 시공업체를 선정하거나 인부를 고용해 이것저것 지시하는 선에서 짓겠다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손수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그냥 지어 보고 싶다’는 것, 그 것 뿐이었다.
인부라고 해야 이규헌씨와 그의 아버지 단 두사람. 한 사람을 더 꼽는다면 그의 어머니 정도가 이 작업에 동원된 인력의 전부. 그나마 힘쓰는 일은 아버지와 이규헌씨 단 두사람의 몫이고 둘의 힘이 부칠 때 가끔 아는 분이 들려 거들어준 정도다. 순수하게 외부 힘에 의존한 작업은 토목공사와 보일러 시공뿐.
97년 3월 시작된 공사는 이듬해 3월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인력이 부족한데다 건축에 대해서도 문외한인지라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설계도면이라고 해야 그냥 흰 종이에 쓱쓱 형태만 잡은 그림 두어 장과 머릿속에 그려진 도면이 전부. 명확한 도면이 있던 게 아니다 보니 작업중 여러 차례의 수정이 불가피했고 경우에 따라선 임기응변 식으로 대처해야 하기도 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번은 굴뚝이 무너져 애를 먹기도 했다. 무너진 굴뚝을 다시 쌓는 과정에선 어머니가 발을 헛디뎌 다리가 두 곳이나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번엔 불까지 나는 바람에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화재가 난 날엔 공교롭게도 눈이 내려 소방차가 근처에 왔다 진입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워야 했다. 다행히 잘 진화돼 산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조사를 받느라고 몇 번을 경찰서에 드나들어야 했다.
불려 다닌 일은 이 것 말고도 또 있다. 지나가던 사람이 베어 놓은 나무를 보고 신고를 하는 바람에 조사를 나오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이미 벌목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고 벌목 역시도 죽은 나무를 베거나 촘촘한 나무를 솎아내는 정도여서 결과적으로는 문제될 일이 아니었지만 한동안 이일 저일이 겹치며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와의 의견충돌도 적잖은 고통이었다. 단둘이 집을 짓고, 또 이렇다할 설계도면도 없이 서로 뜻을 맞춰가며 집을 짓다보니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도 다반사였다.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그래도 집은 조금씩 모양을 갖춰 나갔다. 2층은 귀틀집 형태로 1층은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슬라브를 쳤고 그 위에 낙엽송을 쌓아 벽체를 구성했다. 1층 벽체 역시 통나무를 쌓아 올려 벽체를 구성했다. 목재상에서 낙엽송을 구해다 규격대로 잘랐는데 굵은 나무와 가는 나무를 번갈아 쌓아 올렸고 가는 나무가 올라간 자리는 황토로 메웠다. 지붕은 아스팔트 싱글.
55평짜리 귀틀집이 완성된 것은 98년 3월 무렵이었다. 꼬박 1년이 걸렸다. 총 건축비만 1억5천만원 정도. 차라리 시공업체에 맡겼다면 덜 들었을 것인데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건축에 대한 무지가 건축비를 부풀렸다.
정작 집이 완성됐지만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워낙 고생을 했던 터라 집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본격적인 산속 생활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마음이 좀 안정되고 부터다.
사실 이 집을 짓기 전엔 이 곳을 명상의 장소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오다가다 사람이 들리면 차도 대접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밤손님이 오면 잠자리도 제공하고 그야말로 산지기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가 늘 꿈꿔왔던 생활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그의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손님이 늘었다. 손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참 뒤에는 ‘빈자의 노래’라는 푯말도 내 걸게 됐다. 손님이 늘었으나 이런 북적임이 그에겐 달갑지 않은 일, 조용히 지내려는 그의 꿈이 깨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점차 오던 손님은 물론이거니와 입소문이 전해지면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까지 생기게 됐다. 먼 곳에서 일부러 오는 손님이 늘다보니 차만 으로는 부족해 식사 메뉴까지 준비해야 했다. 여름 한철엔 한 달에 1천만원 이상의 매출이 올랐다. 돈을 보고 왔다면 이 것도 부족하다며 더 많은 궁리를 했을 텐데 목적이 다르다보니 이런 결과가 여간 탐탁치 않았다. 힘에도 부쳤다.
당초 있었던 농가에 기거하던 부모들도 탐탁치 않게 여기긴 마찬가지. 쟁반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 아들 모습이 못내 못마땅할 따름이었다. 결국 그는 2년 남짓한 그 곳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도시로 갔다. 그는 지금 제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며 다시 약사라는 본업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다분히 현실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등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 그가 그토록 고대하던 ‘그 영혼의 쉼터’를 뒤로 한 유일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잠시의 외유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지쳐버린 영혼과 육신은 쉼을 갈망하는데..’ 그 유일한 쉼터가 바로 그 곳이라는 확신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글·사진 류재청
건축정보
위치: 충북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부지면적: 준농림전 7천평
부지구입년도: 95년
부지구입금액: 2억원
건축공사기간: 97년 3월∼98년 3월
건평: 55평
실내구조: 1층 숙박시설(방 3개), 2층 홀
건축비:1억5천만원
방위: 정남향
건물형태: 철근 콘크리트 + 귀틀집
벽체구조: 1층 숙박시설(철근콘크리트). 2층 홀(낙엽송)
내외벽마감: 낙엽송, 황토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식수공급: 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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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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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 살며 농가주택 지어 전용부담금·대체조성비 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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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기의 집 여행
현지에 살며 농가주택 지어 전용부담금·대체조성비 절약
길을 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았고 지역 부동산 업소에도 의뢰 했다. 결국 2천여만원을 들여 도로 부지를 매입키로 하고 땅 을 매입했다. 건축은 일반주택이 아닌 농가를 짓기로 했다.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농가가 일반 주택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용부담금과 대체조성비 등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농가를 지으면 당시 규정으로 신고만으로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됐다.
가평군 외서면 상천리 일명 수리재 마을. 오동근 김옥희씨 댁 양지바른 거실 창가엔 때 이른 철쭉이 벌써 봄소식을 전한다. 이 곳은 자연마을 상단에 위치해 풍광이 좋고 거실에 앉아 있으며 아랫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동근씨 부부는 96년 봄 이 곳 수리재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준농림지 전 2천5백평, 임야 1천평 등 3천5백평을 평당 3만5천원씩 1억2천2백5십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오동근 씨는 이 땅을 사려고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고 어렵게 이 땅을 만났다. 평소 등산을 좋아해 여러 곳을 다니며 부지를 물색했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땅을 만날 수 없었다. 더구나 팔순이 넘은 장모를 모셔야 하고 자식들이 오갈 것을 감안하면 교통도 괜찮아야 했다. 그러나 여생을 보낼 곳을 마련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만난 곳이 지금의 땅. 당초 이 곳은 값은 쌌으나 길이 없는 맹지여서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길이 없 는 것을 제외하면 여러 가지 조건과 입지 여건이 딱 맞아떨어지 는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어떻게든 길을 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았고 지역 부동산 업소에 도 의뢰했다. 결국 2천여만원을 들여 도로 부지를 매입키로 하고 땅을 매입했다.
건축은 일반주택이 아닌 농가를 짓기로 했다.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농가가 일반주택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용부담금과 대체조성비 등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농가를 지으면 당시 규정으로 신고만으로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됐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사실은 농가를 짓기 위해 선 현지에서 1년이상 거주해야 하고 주민등록도 이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결국 주변의 빈 농가를 먼저 얻어 전원 생활을 시작하기로 하고 상계동아파트를 정리했다. 빈 농가를 얻어 살면 동네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융합할 수 있을 것이란 점도 염두에 두었다. 빈 농가는 동네사람에게 부탁해 소개받은 여러채 중 한 채를 택했다. 농가 임대비용은 연간 쌀 7말.
모든 터전을 수리재로 옮긴 뒤부터는 사두었던 땅을 고르는 일이 주요 일과가 됐다. 중장비를 대여해 작업을 진행했다. 많은 정성을 들이고 어느정도 모양이 갖춰지기 시작하자 오히려 땅을 팔라는 제의까지 들어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본격적인 건축은 98년 5월부터 시작됐다. 설계는 사위 이동훈씨가 맡고, 내부 인테리어는 딸 창희씨가 맡 았다. 시공은 마석에 있는 중소업체에 의뢰를 했다. 건축은 30평 규모로 경량철골로 뼈대를 세우고 조립식 패널로 벽체를 구성했 다. 구조는 방 3개, 거실, 욕실, 화장실로 되어 있고, 당초 기름 보일러를 철치 했으나 최근 심야전기보일러로 대체했다. 심야전 기보일러 대체비용은 3백80만원.
집을 짓는데 건축비는 주택의 경우 평당 1백60만원씩 모두 4천8백 만원이 들었고, 창고 30평 짓는데엔 5백만원이 소요됐다. 결국 30평 주택과 30평 창고를 짓는데 모두 5천3백만원이 든 셈이다.
이밖에 토목공사비 5천만원, 도로개설비 2천만원이 들었다. 땅값 과 기타 제반 경비를 포함하니 모두 2억5천만원 정도가 들었다는 계산이 나왔다. 착공 4개월 만인 98년 9월 새집으로 이사를 했 다.
오동근씨는 평소 등산을 좋아하고 분재와 고목공예에도 관심 이 많다. 등산을 하면서 눈에 띄는 고목이 있으면 주워다 다듬어 의미를 부여한다. 그동안 모은 것이 이제는 꽤 많은 수량이 됐다.
수리재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은 농사짓는 재미다. 오동근씨 는 농약을 치지 않는 순수 유기농법을 고집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실험과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의외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농약대신 칡즙을 내어 뿌려본 것은 가장 큰 수확.
처음 오동근씨의 유기농법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던 동네사람들도 점차 관심을 보였다. 작년엔 수리재 마을에서 고추농사를 제일 많이 짓기도 했다.
오동근씨는 한꺼번에 두 마리를 토기를 잡은 경우에 속한다. 하나 는 원하던 시골생활을 이루게 된 것이고 또 하나는 투자가치면에 서도 성공한 경우라는 점이다. 현재 이 일대의 준농림 시세가 평 당 15~3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도 적잖은 이익을 봤다. 하찮아 보이는 땅도 잘만 가꾸면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다.
글 진명기 / 사진 류재청
글쓴이 진명기씨는 공인중개사로 전원주택 돌의 대표이다. 20여년 간 전원주택만 컨설팅해 오고 있으며 천리안과 하이텔에 전원주택 관련사이트 ‘DOL’을 운영하고 있다. 02-536-2500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부지면적: 3천5백평(준농림전 2천5백평, 임야 1천평)
부지구입년도: 96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3만5천원(일괄구입)
건축공사기간: 98년 5월∼9월
건평: 주택 30평, 창고 30평
실내구조: 방3, 거실, 주방, 욕실, 화장실
건축비: 본채(4천8백만원), 창고(5백만원)
방위: 정남향
건물형태: 조립식 스틸하우스(농가)
골조:경량철골조
벽체구조: 조립식패널
내벽마감: 벽지
외벽마감: 흰색 비닐사이딩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난방형태: 기름 보일러(최근 심야전기보일러로 교체)
식수공급: 지하수
마을 가구수: 수리재 30가구
생활권: 청평(승용차 10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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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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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평 콘크리트 벽돌집 두채 지어 함께 사는 두가족 “전원으로 함께 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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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서 함께 살기
54평 콘크리트 벽돌집 두채 지어 함께 사는 두가족 “전원으로 함께 떠났어요”
전원으로 가고는 싶은데 혼자 가기는 왠지 불안하다. 좀 적적할 것 같고 무섭겠다는 생각도 한다.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어 같이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남 시내에서 앞뒤집으로 붙어 살던 이웃이 광주 목리의 한적한 마을로 들어가 두채의 전원주택을 짓고 함께 살고 있다. 자연을 찾아 함께 떠난 이들의 집을 찾았다.
오늘도 김숙희 씨는 권영란 씨 댁 볕이 잘 드는 거실을 찾았다. 전원주택을 지어 이곳 광주 목리의 한적한 마을로 들어와 쓸쓸할 것도 같지만 이렇듯 바로 곁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가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 이곳에서는 바람도 볕도 소곤거리듯 다정하고 따사롭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했다.
권영란, 김숙희씨는 오랫동안 옆에 붙어살다 보니 정이 들어 친자매보다 더 가까운 친구같이 스스럼 없는 사이다. 이들은 광주 목리에 똑같은 평수의 전원주택을 지어 앞뒤 집으로 살고 있다.
광주 목리는 전원주택지로 손색이 없다. 분당을 배후도시로 하여 교통은 물론 생활 편의시설 등 생활환경이 매우 좋다. 목리의 마을 안쪽 산중턱에는 갓 지은 모습이 역력한 두 채의 벽돌집이 나란히 있다. 아래쪽의 집은 좀 도회적인 느낌의 모던한 스타일이고 위쪽의 집은 전통적인 주택 스타일을 하고 있다.
이곳 집에 사는 사람들은 성남에서 앞뒤 집에서 살던 이웃사촌으로 시작해 아예 친지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이곳에 들어와 땅도 같이 구입해 2백평씩 나누어 54평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있다. 위쪽 집에 사는 권영란 씨는 아래 집의 김숙희 씨보다 열살 위다. 언니뻘 되는 권영란씨와 남편인 오길록씨 부부가 먼저 전원주택을 짓겠다며 이곳저곳 땅을 알아보고 다니다 이곳 목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 땅을 사게 되었다.
그때 김숙희씨의 남편인 정동진씨가 같이 가자며 따라 나서 함께 땅을 사 똑같이 나누어 집을 지었다. 땅을 구입한 것은 3년전의 일로 당시 평당 27만원에 구입하였는데 전용 및 대지조성 과정에서 평당 23만원정도가 더 들어 대지로 만드는데 평당 50만원정도 들었다.
그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집을 짓기 시작해 작년 10월 마무리 지었다. 콘크리트 집을 지은 이유는 튼튼하기 때문이다. 평생 살 마음으로 집을 짓다보니 튼튼한 집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싫증나지 않는 소재선택에 신경을 많이 써 가볍지 않은 재료를 선택했다.
외부는 적벽돌 치장쌓기로 마감을 했고 내부의 경우 벽면과 천정을 핸디코트로 마감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두 집의 평수는 같아도 외관과 명면구성은 전혀 다르다. 권영란 씨의 집은 클라식한 모습을 하고 있다. 거실을 오픈하고 거실 한쪽에 주방을 넣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인 김숙희씨 댁은 기학학적인 외관이 좀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부도 미로를 연상시키는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거실과 주방을 떨어뜨려 놓아 주방이 독립된 공간을 유지한다. 이 집을 설계한 탑건축사사무소 신용철 소장은 자연과의 접촉을 가능한 많이 할 수 있도록 펼친 건축을 유도했다고 말한다. 특히 김숙희씨 댁의 경우 부지의 형태에 따라 ㄱ자형으로 펼쳐 놓아 동선이 매우 길다.
권영란씨는 이곳으로 이사온 후 매년 겨울 연례행사처럼 치뤘던 감기를 앓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전원주택을 선택한 것을 잘 했다고 자랑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성남이나 분당은 쉽게 갈 수 있고 특히 성남은 애들 통학거리다. 게다가 전화만 하면 동네 슈퍼에서 없는 것 없이 다 갔다주기 때문에 생활에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낀다는 것이 권영란 김숙희씨의 이야기다.
글·사진 김경래
전원서 함께 살기·권영란씨 댁
이곳 목리로 이사한 후 연례행사처럼 치뤘던 감기한번 앓지 않았다는 권영란씨,
권영란씨댁은 전형적인 전원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구조도 클라식한데 1층 거실을 오픈하였고
2층 거실 또한 넓게 하여 내부가 매우 시원하다는 느낌을 준다
건축정보
(목리에 지은 두채의 콘크리트 벽돌집은 외관과 평면구성만 다르고 다른 부분은 동일함)
위치 :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목리
대지면적 : 2백평
연면적 : 54평
구조 : 철근 콘크리트
외부마감 : 적벽돌 치장쌓기
지붕마감 : 아스팔트 싱글
내부마감 : 바닥(온돌마루), 벽(핸디코트), 천정(핸디코트, 천정지)
난방 : 심야전기
건축비 : 평당 3백50만원
■설계 : 탑건축사사무소(0342-757-3066)
■시공 : 탑건축
전원서 함께 살기·김숙희씨 댁
김숙희씨댁은 모던한 스타일을 하고 있다. 내부평면구조의 동선은 마치 미로 같이 길다.
특히 거실과 주방은 집의 양쪽끝에 배치하여 각각 독립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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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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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쪽빛 바다가 정원으로 펼쳐지는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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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좋은집
"남해 쪽빛 바다가 정원으로 펼쳐지는 목조주택"
쪽빛 바다가 마당이 되고 정원이 되는 집. 섬들이 파도를 따라 몰려 다니는 곳에 문종일 씨는 집을 지었다. 거실에서 혹은 집안 어느 곳이든 바다가 들어와 찰랑거리는 보성 득량면의 2층 목조주택을 찾았다. 거실에 앉아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고흥반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고깃배와 어울려 떠다닌다.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섬들은 소록도, 완도, 보길도 등 모두 그 이름만으로 도시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들이다. 차밭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에 있는 문종일 씨댁은 이렇듯 섬을 마주보고 있다. 마당만 나서면 남해의 쪽빛 바다의 찰랑거림이 음악이 된다. 이 집을 빼고는 모두 바다고 밭인 곳. 이따금 해풍에 동백의 향기도 묻어나고 또는 찻잎의 향긋함이 배어 나는 곳에 문종일 씨는 집을 지었다.
문종일 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농부다.
2만여평의 밭에 쪽파를 심어 1년 순소득이 1억을 넘는다.
면소재지의 단독주택에 살면서 언젠가는 이곳에 집을 짓겠다는 생각에 땅을 사두었다.
처음에는 군부대의 해안초소가 있어 집을 지을 수 없었는데 문민정부 들어 해안초소가 철수하면서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곳 부지는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최고의 명당 자리로 꼽는 곳이다.
바다 경관이 그야말로 장관인데 건축주는 평생 살겠다는 생각으로 이 집을 지었다.
목조주택을 짓기로 마음먹고 목조주택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지방이라 건축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특히 목조주택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더욱 어려웠다.
주변에 목조주택을 지어 사는 사람을 찾아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사실 목조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다들 좋다는 의견이었다. 인근도시 강진에서 목조주택을 짓는 신일우드홈을 찾아 현장답사를 한 후 최종적으로 목조주택을 짓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이 집의 대지 4백평에 60평으로 지은 2층 목조주택이다. 대지가 바다와 붙어 있어 각 방마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특히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각 방마다 욕실을 따로 두었다. 외부는 하디 프랭크 사이딩으로 마감했고 거실 천정은 오픈시켜 노출 서까래와 루바로 마감했다.田
글·사진 김경래
■ 건축정보
대지면적 : 4백평
연면적 : 60평
구조 : 2×4 목구조
외부마감 : 하디 프랭크 사이딩
내부마감 : 거실 및 주방 천정-노출 서까래 및 루바 마감, 거실 및 방 바닥-온돌마루,
1층서재 및 음악실 벽과 바닥-황토, 욕실-LG유비알 제노스, 방 천정-석고보드 위 페인트, 벽-석고보드위 벽지마감
난방 : 기름보일러
건축비 : 평당 3백50만원
■ 설계 : 내외로그홈즈(02-547-3100)
■ 시공 : 신일우드홈(0638-433-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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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