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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지형조건 잘 활용해 지은 또 한채의 통나무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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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로 지은 집 2 까다로운 지형조건 잘 활용해 지은 또 한채의 통나무 주택 영통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위치한 이 집은 2000년 3월에 시공에 들어가 같은 해 7월 완공된 것이다. 이 집의 건축주 역시도 횡성 한국통나무학교 프로과정 출신으로 앞서 소개한 '들꽃피는 뜰팡'의 건축주와 같은 이유에서 통나무 마루터에 건축을 의뢰하게 됐다.이 집은 1층 18평, 2층 10평으로 규모에 있어서는 총 건축면적이 2백평에 달하는 들꽃피는 뜰팡에 비해 월등히 작지만 부지가 가파른 절벽에 위치해 오히려 공사의 난이도는 더 있었다.까다로운 지형여건으로 수차례에 걸친 설계변경이 불가피했으며, 자연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축대 및 방호벽 등 신중히 고려되어야할 사항들도 많았다. 그래 결국 규모는 최소화되고 능선에 따라 길게 늘어뜨린 지금의 형태를 이루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집의 공사에는 새로운 공법이 시도됐다. 최근 통나무 주택은 다른 작업장에서 미리 자재를 가공한 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공사가 이뤄진다.그러나 지붕만은 현장에서 가공 및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집의 경우, 지붕 역시도 작업장에서 패널형으로 가공한 후 크레인을 통해 현장까지 옮겨 조립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이는 지형여건상 현장공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취한 불가피한 조치인데, 오히려 지붕을 패널형으로 만들고 골조 시공과 동시에 올림으로써 인건비의 절감 효과와 더불어 비가 많은 하절기 공사에서 자재(특히 OSB합판)가 물에 젖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이 집에는 인천에서 구입한 더글러스 퍼 말구 28cm의 통나무 22봉과 강원도 홍천에서 구입한 길이 8자의 소나무 육송 40봉이 소요됐다. 국내산 소나무는 수입된 더글러스 퍼 보다 20% 정도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솔 향이 우러나고 우리의 정서에도 잘 맞는다.田 ■ 글ㆍ사진 김성용■ 건축정보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 부지면적: 준농림 전 1백50평 건물형태: 2층 통나무주택 (POST & BEAM 방식) 건축면적: 28평(1층 18평, 2층 10평) 공사기간: 2000년 3월~7월 (약 4개월) 벽체구조: OSB 외벽마감: 테라코타, 인조석 내벽마감: 핸디코트 단열재: 유리섬유단열 창호재: 곡재 소나무 창틀, 우드샤시, 페어그라스 지붕마감: 방수시트 후 피죽너와 난방시설: 심야 보일러, 벽난로 식수공급: 지하수 건축비: 평당 2백8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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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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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앉아 별을 볼 수 있는집 '첨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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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 있는 집
거실에 앉아 별을 볼 수 있는집 '첨성제'
건축주는 가족을 위한 세 개의 영역이 분리된 공간을 필요로 했다. 우선 건축주 부부와 두 아들이 살 수 있도록 방 3개와 거실, 식당, 주방이 있는 살림채로서의 본채, 현재 모시고 있는 부모님이 기거할 방과 욕실 그리고 조그만 주방이 있는 별채, 마지막으로 사진을 전공하는 건축주가 사용할 사무실과 암실과 스튜디오가 있는 작업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방의 크기를 가능한 최소한으로 하여, 되도록 마당 등의 야외공간을 최대로 느낄 수 있는 집으로 설계했다.
건축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담는 그릇이라면, 주택은 그 중에서도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 중의 그릇이라 하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주택 대부분은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넉넉함과 개성이 죽어있는 그저 최소한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공간으로 되어 있으며,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내 집을 한번 가지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다.
하지만 막상 내 집을 가질 기회가 왔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로 집짓기를 포기하기도 하고, 그 문제들을 어렵사리 해결했더라도 처음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결과물을 보며 아쉬움을 접기도 한다.
이런 시행착오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평소에 집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또 어떤 준비를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접할 기회가 전무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가는 거주의 틀 안에 마련된 모든 인식이나 행위가 쉽사리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크게 나누어 ‘거리감’과‘거리’(距離)의 경험을 전제로 한다고 보았다.
거리감의 경험이 공간언어의 기획과 운용으로 얻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이라면, 거리의 경험은 공간과 장소의 의미들을 불신하고 끝없이 흔들어놓기 위한 설정을 통해 파생될만한 현상들에 그 근거를 둔 것이다.
경험과 의미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거나 의미와 개념이 공간 속을 부유(浮遊)하고 방랑하는 동안에 위의 긴장은 본디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이다.
이집의 가장 큰 특징은 천정에 달린 큰 창문이다. 첨성제라 불리우는 이집의 가장 큰 특징으로 거실과 바로 연결된 큰 창에는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재미를 더했다.
건축주는 가족을 위한 세 개의 영역이 분리된 공간을 필요로 했다. 우선 건축주 부부와 두 아들이 살 수 있도록 방 3개와 거실, 식당, 주방이 있는 살림채로서의 본채, 현재 모시고 있는 부모님이 기거할 방과 욕실 그리고 조그만 주방이 있는 별채, 마지막으로 사진을 전공하는 건축주가 사용할 사무실과 암실과 스튜디오가 있는 작업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방의 크기를 가능한 최소한으로 하여, 되도록 마당 등의 야외공간을 최대로 느낄 수 있는 집으로 설계했다. 또 현재 서울의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빠른 시일 내에 이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건축주의 바램에 따라, 설계 기간을 단축하는 데 건축가는 노력을 했다.
그래서 토마건축에서는 계약상 보다 한달 앞당겨 설계 및 시공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이곳의 대지조건을 보면 서울 근교에서 풍치가 좋기로 유명한 가평 근방이다.
양수리의 저수지를 지나 왼쪽에 있는 가평군 하면 마을 뒤에 있는 언덕배기의 길을 따라 제일 높은 곳에 대지가 있다. 이곳은 배산인 운길산을 배경으로 좌우로 길게 뻗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고, 마을 내의 어느 곳에서나 넉넉한 남한강과 듬직한 운길산을 앞뒤로 본다. 이 곳이 들어설 땅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덕에 마을 전체를 관조하고 남한강을 보는 위치도 가장 좋다.
듬직한 운길산과 수량이 넉넉한 남한강을 남북으로 보고 앉았으니, 말 그대로 풍수상의 명당이라 하겠다. 언덕에서는 동쪽으로 남한강을 바라볼 수 있고, 뒤로는 운길산이 막아주고 있어서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걱정이 없다.
경사지 땅인지라 접근로에서 길게 위로 뻗은 대지는 3m~6m 정도의 고저차가 있고, 이 고저차는 집의 외부공간과 동선을 재미있게 풀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1백20평의 대지에 연면적 47평만을 건물로 앉힐 수 있는 만큼 건축주의 요구대로 다양한 외부 공간의 연출이 가능한 것도 이곳을 포함한 전원주택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 중 하나였다.
규모로는 현재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는 건축주는 지금의 대지를 찾으려고 10년 동안 서울 근교의 좋은 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 노력 끝에 찾은 지금 대지는 전 주인이 이미 46평 규모로 양평군에 단독주택 허가를 받은 상태였기에(이곳은 개발제한구역으로 건물의 신축이 까다롭기에, 전 주인은 땅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 실제로 지을 집은 아니지만 건축허가를 받아 두었음)기존에 허가를 받은 면적 내에서만이 설계가 가능했다.
벽돌로 외부를 마감하고 평범한 정도의 실내마감을 예상하면 평당 약 2백50만원의 공사비를 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주택은 외부마감을 노출 콘크리트로 시공했고, 노출 콘크리트는 별도의 외벽마감재가 필요없지만 거푸집을 한번밖에 사용할 수 없고, 또 별도의 마감이 없는 관계로 공사시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 등으로 오히려 벽돌보다는 더 많은 공사비를 예정해야 한다.
이 주택의 경우에는 평당 약 3백만원을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공사 진행과정에서 증감이 있을 것이다. 설계비는 공사비용의 10~20% 내외에서 결정했으며, 좋은 주택을 위한 감리비는 공사진행시에 건축주와 건축가가 협의하여 결정했다.田
■ 글 진선영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부지면적: 대지 1백20평
건축형태: 조적조 주택
건축면적: 47평
공사기간: 1999년 10월~2000년 4월
외벽마감: 드라이비트 뿜칠+마천석 물갈기
내벽마감: 바닥- 온돌마루판 대리석
벽·천장- 석고보드위 백색 락카
난방: 전기온돌 시스템
■ 설계 및 시공 : 토마건축 02-782-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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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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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함 잊으려 시작한 ‘산촌’ “전원생활이 두배로 즐거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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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 있는 집
적적함 잊으려 시작한 ‘산촌’ “전원생활이 두배로 즐거워졌습니다”
외벽을 국산 적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단열을 위해 스티로폼을 대고 그 위에 석고보드를 댄뒤 다시 벽지로 최종 마감했다. 실내구조는 1층에 방 2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을 두고, 2층엔 방 1개와 소거실, 화장실 등을 두고 있다. 모두 43평(1층 30평, 2층 13평) 규모로 인테리어 업종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형님 덕분에 투박하고 무거운 조적조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형님이 직접 지어준 만큼 건축비는 크게 절감되어 평당 1백70만원 정도로 모두 7천여만원이 소요됐다.
김상철 민명희씨 부부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와 한쪽엔 살림집을 짓고, 그 옆에 ‘산촌’이라는 오리구이 전문점을 운영한다. 애초부터 식당을 운영할 요량으로 내려왔던 것은 아니고, 막상 시골에 내려와 살다보니 쓸쓸하고 적적해 소일 삼아 시작한 것이 오리고기 전문점.
줄곧 기업체에 근무해 음식점 경영에는 문외한이었지만 8개월 째에 접어든 요즘은 요령도 생기고 매상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김상철씨 부부가 시골행을 결심한 것은 지난 90년대 중반 무렵. 그러다 97년 가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 농가가 딸린 준농림지 2천8백평(전, 대지)을 평당 9만원씩 주고 구입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인접한 4천평 규모의 대규모 축사가 마음에 걸렸지만 산밑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데다 작은 계곡까지 끼고 있어 좋은 땅이라는 생각에 구입을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 입주했다. 다행히 형님이 인테리어 업종에 종사하고,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던 터라 모든 공정을 형님에게 일임했다.
H빔으로 골조를 세운뒤 벽돌로 벽체를 쌓아 올린 2층 조적조 주택을 짓기로하고 99년 11월 공사에 들어가 이듬해 4월 마무리했다. 외벽을 국산 적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단열을 위해 스티로폼을 대고 그 위에 석고보드를 댄뒤 벽지로 최종 마감했다. 실내구조는 1층에 방 2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을 두고, 2층엔 방 1개와 소거실, 화장실 등을 두고 있다.
모두 43평(1층 30평, 2층 13평) 규모로 인테리어 업종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형님 덕분에 투박하고 무거운 조적조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형님이 직접 지어준 만큼 건축비는 크게 절감되어 평당 1백70만원 정도로 모두 7천여만원이 소요됐다.
그러나 막상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했지만 당초 상상했던 것과는 크게 벗어났다.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로 민가가 없어 낮에도 말 붙일 이웃이 없는 데다 밤에는 그 적적함이 더해 이대로는 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밤이면 멀리 불 빛 몇 개가 아련할 뿐, 주위로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음식점 운영. 아무래도 음식점을 운영하다보면 밤늦도록 손님들 떠드는 소리에 사람 사는 집 같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또 주변으로 골프장이 두 곳이나 있는 데다 가까이 이렇다할만한 음식점이 없어 여건도 꽤 괜찮은 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음식점이 들어서기엔 인접한 대규모 축사가 걱정이었는데 일이 되려고 했는지 이 문제 역시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마침 농장주가 축사 운영이 어려워진데다 돈이 필요해 매도 의사를 피력해 왔던 것.
이때다 싶어 친척들을 불러모아 상의를 한 결과 4천여평에 이르는 목장지를 공동 매입하기로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결국 99년 6월 평당 15만원씩을 주고 친척 10여명이 함께 구입했는데 이는 동네 사람들로부터도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이제는 음식점 건물을 지을 차례. 그러나 알아보니 신축을 할 경우엔 허가가 잘 나지 않고 나더라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결국 신축을 포기하고 앞에 있는 35평 규모의 스레트 지붕의 농가를 리모델링해 용도 변경하기로 했다. 벽체를 조립식 패널로 하고 밖으로는 사이딩, 안으로는 석고보드 위에 벽지로 깔끔하게 마무리해 전혀 새로운 분위기의 ‘산촌’을 완성했다.
지난해 7월 오픈을 했으니 이제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지난 1월 폭설이 내려 손님이 뜸했던 것을 제외하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아직 매상을 크게 내세울 만큼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며, 애초 돈을 벌 목적이 아니었던 데다 임대료가 지출되는 것도 아닌 만큼 급할 이유도 없다.
김상철씨는 “사람 사는데엔 그저 사람 소리가 나야한다”며 “밤늦도록 손님들 떠들고 마당에서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에 이제는 적적함을 잊었다”고 자신의 전원생활에 대해 매우 흡족해 했다.
아울러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전원생활을 즐기게 된 자신의 경험을 필요로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주겠다(산촌 031-636-9242)는 말도 덧붙였다.田
■ 글ㆍ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살림집)
위치: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
부지면적: 준농림 2천8백평(전, 잡종지), 이중 2백60평 대지 전용
부지구입년도: 97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9만원
건물형태: 2층 조적조 주택
건축공사기간: 99년 11월~2000년 4월
건평: 43평(1층 30평, 2층 13평)
실내구조: 1층: 방 2, 거실, 주방, 화장실
2층: 방 1, 소거실, 화장실
벽체구조: 벽돌
내부 마감: 석고보드 위에 벽지
외부마감: 국산 적벽돌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단열재: 100mm 강압 스티로폼
창호재: 격자형 페어그라스
바닥재: 비닐장판
난방형태: 심야전기 보일러
식수: 지하수
건축비: 7천만원(평당 1백7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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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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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는 벽돌로, 별채는 황토로 마감한 58평 혼합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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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지은 집
본채는 벽돌로, 별채는 황토로 마감한 58평 혼합주택
전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어린시절 동심에 자리잡은 전원풍경에 대한 동경이다.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와 각박한 삶에 찌들다 보면 문득 어린시절 뛰놀던 동산이며, 논길이 아련한 영상으로 뇌리를 스쳐간다. 그리고 이러한 영상은 답답한 도시를 떠나라고 마음을 부추긴다.
노부부가 느지막이 새로운 삶의 개척을 위해 마련한 소박한 집이 있다.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에 위치한 이 집은 조적조로 된 본채와 황토벽돌로 쌓은 별채로 이뤄진 단층 주택인데, 규칙적인 벽돌문양의 검붉은 현대식 벽과 포근한 느낌의 전통황토 벽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또 아스팔트싱글로 깔끔하게 마감된 지붕은 집의 외관에 단정함을 더하고, 잘자란 소나무와 미루나무 등으로 가꿔진 정원과 이를 감싸듯 두르고 있는 새하얀 목조 울타리는 이 집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동화 속 전원주택으로 이끈다.
이 집은 건축주 김창술씨의 아내 서인자씨가 직접 구상하고 설계했다. 뿐만 아니라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건축일을 직접 진두지휘 해가며 완성한 집이다. 때문에 이 집에서는 남성의 투박함보다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베어난다.
본채의 외관은 다소 이국적인데, 이는 그녀가 업무로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스케치해두었던 어느 이름 모를 산자락에 자리한 캐나다 주택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반면 실내구조는 미국식이다. 미국식 주택의 실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하도록 배려한 공간배치가 주를 이룬다. 2층 주택의 경우, 1층에는 손님접대용 응접실이나 거실 등을 배치하고 2층에 개인 침실을 둔다.
또 단층일 경우는 현관을 중심으로 가장 안쪽에 침실을 배치하고 현관은 바로 거실로 이어지도록 설계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바로 이러한 공간배치가 이 집에서도 그대로 보여진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다른 공간에 비해 널찍하게 구획된 거실이 있다. 그리고 거실과 거의 개방된 공간으로 주방이 있는데, 두 공간은 이미테이션 벽으로 약간의 구분이 이뤄진다.
방들은 현관 오른쪽으로 좁은 통로를 이용, 배치됐다. 가장 안쪽부터 안방, 작업실, 화장실, 접대용 방 순서이다. 안방에는 드레스룸이 설치되어 있고 별도의 욕실 겸 화장실도 겸비되어 있다. 이 집의 실내구조의 컨셉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응용한 것이다.
별실은 본채가 완공된 뒤 서인자씨의 기도실 및 접대 용도로 증축된 공간이다. 그런데 외관에서부터 본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건축에 사용된 자재가 목재와 황토벽돌 등 전통적인 것들이다 보니 외관은 한옥에 가깝다. 또 실내인테리어도 다분히 한국 풍으로 되어있어 서구적인 본채의 실내공간과는 대조를 이룬다.
내벽을 황토미장에 상단은 평범한 한지로 마감했고 하단은 한자가 적힌 한지를 발랐다. 그리고 자개가 박힌 수납장을 비치하고 바닥에는 돗자리를 깔아 한국적 이미지를 강조했는데, 여기에 사용된 인테리어 소품들은 모두 인사동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실내구조는 원룸식이다. 하나의 공간에 방과 주방을 동시에 구획했고 별도로 화장실을 두었다. 이는 이곳이 접대용으로 사용될 때 손님이 번거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처럼 이집에는 곳곳에서 남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외에도 이 집을 지을 때도 마을주민과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는 선에서 그 규모를 선택했다. 그래서 이 집은 마을의 집들과도 잘 융화된다.
이들 노부부가 이곳에 집을 짓고 이주해 온지 이제 막 1년이 지났다. 어린시절 동심에 깊이 자리한 시골풍경에 대한 동경으로 전원생활을 결심한 서인자씨는 사업문제로 서울생활을 고집하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이곳으로 왔다.
그래서 항상 출퇴근에 불만을 토로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남편이 오히려 답답한 서울로는 가지 않으려 한단다.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인천직할시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부지면적: 준농림 전 3백평
부지구입년도: 1999년 8월
부지구입금액: 평당 18만원
건축형태: 단층 조적조+황토벽돌 혼합주택
건축면적: 56평(본채 38평, 별채 18평)
공사기간: 1999년 8월~11월(약 3개월)
실내구조: 본채- 방 3, 거실, 주방, 화장실 2, 드레스룸, 다용도실
별채- 원룸형(방, 주방, 화장실)
외벽마감: 별돌
내벽마감: 벽지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난방시설: 심야 보일러, 벽난로
바닥재: 비닐장판
건축비: 평당 2백5십만원(싱크대, 보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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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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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로 벽체 세우고 벽돌로 마감한 전원주택 2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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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은 집
패널로 벽체 세우고 벽돌로 마감한 전원주택 2채
전원주택지를 고르는데 있어 최선은 스스로 많이 돌아다니며 직접 보는 것이다. 다리품은 많이 팔면 팔수록 그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진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김원재씨는 전원생활의 터전을 찾아 헤매는 다른 어떤 이들에 비해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 20여 년 동안 많은 경치 좋은 곳을 두루 다닐 수 있었고, 또한 그러한 곳에 대한 영상을 머릿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부부가 느지막이 새로운 삶의 개척을 위해 마련한 소박한 집이 있다.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에 위치한 이 집은 조적조로 된 본채와 황토벽돌로 쌓은 별채로 이뤄진 단층 주택인데, 규칙적인 벽돌문양의 검붉은 현대식 벽과 포근한 느낌의 전통황토 벽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또 아스팔트싱글로 깔끔하게 마감된 지붕은 집의 외관에 단정함을 더하고, 잘자란 소나무와 미루나무 등으로 가꿔진 정원과 이를 감싸듯 두르고 있는 새하얀 목조 울타리는 이 집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동화 속 전원주택으로 이끈다.
이 집은 건축주 김창술씨의 아내 서인자씨가 직접 구상하고 설계했다. 뿐만 아니라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건축일을 직접 진두지휘 해가며 완성한 집이다. 때문에 이 집에서는 남성의 투박함보다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베어난다.
본채의 외관은 다소 이국적인데, 이는 그녀가 업무로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스케치해두었던 어느 이름 모를 산자락에 자리한 캐나다 주택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반면 실내구조는 미국식이다. 미국식 주택의 실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하도록 배려한 공간배치가 주를 이룬다. 2층 주택의 경우, 1층에는 손님접대용 응접실이나 거실 등을 배치하고 2층에 개인 침실을 둔다.
또 단층일 경우는 현관을 중심으로 가장 안쪽에 침실을 배치하고 현관은 바로 거실로 이어지도록 설계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바로 이러한 공간배치가 이 집에서도 그대로 보여진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다른 공간에 비해 널찍하게 구획된 거실이 있다. 그리고 거실과 거의 개방된 공간으로 주방이 있는데, 두 공간은 이미테이션 벽으로 약간의 구분이 이뤄진다.
방들은 현관 오른쪽으로 좁은 통로를 이용, 배치됐다. 가장 안쪽부터 안방, 작업실, 화장실, 접대용 방 순서이다. 안방에는 드레스룸이 설치되어 있고 별도의 욕실 겸 화장실도 겸비되어 있다. 이 집의 실내구조의 컨셉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응용한 것이다.
별실은 본채가 완공된 뒤 서인자씨의 기도실 및 접대 용도로 증축된 공간이다. 그런데 외관에서부터 본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건축에 사용된 자재가 목재와 황토벽돌 등 전통적인 것들이다 보니 외관은 한옥에 가깝다. 또 실내인테리어도 다분히 한국 풍으로 되어있어 서구적인 본채의 실내공간과는 대조를 이룬다.
내벽을 황토미장에 상단은 평범한 한지로 마감했고 하단은 한자가 적힌 한지를 발랐다. 그리고 자개가 박힌 수납장을 비치하고 바닥에는 돗자리를 깔아 한국적 이미지를 강조했는데, 여기에 사용된 인테리어 소품들은 모두 인사동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실내구조는 원룸식이다. 하나의 공간에 방과 주방을 동시에 구획했고 별도로 화장실을 두었다. 이는 이곳이 접대용으로 사용될 때 손님이 번거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처럼 이집에는 곳곳에서 남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외에도 이 집을 지을 때도 마을주민과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는 선에서 그 규모를 선택했다. 그래서 이 집은 마을의 집들과도 잘 융화된다.
이들 노부부가 이곳에 집을 짓고 이주해 온지 이제 막 1년이 지났다. 어린시절 동심에 깊이 자리한 시골풍경에 대한 동경으로 전원생활을 결심한 서인자씨는 사업문제로 서울생활을 고집하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이곳으로 왔다.
그래서 항상 출퇴근에 불만을 토로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남편이 오히려 답답한 서울로는 가지 않으려 한단다.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인천직할시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부지면적: 준농림 전 3백평
부지구입년도: 1999년 8월
부지구입금액: 평당 18만원
건축형태: 단층 조적조+황토벽돌 혼합주택
건축면적: 56평(본채 38평, 별채 18평)
공사기간: 1999년 8월~11월(약 3개월)
실내구조: 본채- 방 3, 거실, 주방, 화장실 2, 드레스룸, 다용도실
별채- 원룸형(방, 주방, 화장실)
외벽마감: 별돌
내벽마감: 벽지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난방시설: 심야 보일러, 벽난로
바닥재: 비닐장판
건축비: 평당 2백5십만원(싱크대, 보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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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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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공간배치 돋보이는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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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집
실용적 공간배치 돋보이는 2층 목조주택
집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곳에는 인간의 희로애락(喜怒愛樂)이 담겨있고 또 집을 보면 그곳에서 사는 이의 성품을 알 수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도 한참을 달려 매봉산 기슭에 도달해 서야 만나게 된 이 집은 건축주의 깔끔한 성격을 대변이나 하듯 지은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처음 지어졌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이 집은 건축주의 남편이 직접 지은 집이다. 그러나 건축에는 문외한인 학교 서무과 직원이 지었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을 만큼 제대로 지어졌다.
복잡한 공정을 요구하는 모임지붕이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매끄럽게 올라갔고, 비닐사이딩으로 마감한 깔끔한 외벽은 어느 한군데 나무랄 곳이 없다.
또 알맞은 공간구성으로 집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데크는 전문가 솜씨 못지 않다. 실내구조에 있어서도 여느 다른 일반적인 주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공간배치가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2층까지 개방된 공간의 거실이 있고 좌측으로는 주방으로 이어지는 길다란 통로가 있는데, 이곳에 안방과 화장실이 배치됐다. 이러한 구조로 안방에서 거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방으로 통할 수가 있는데, 이는 부엌일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자상한 배려다.
건축주의 남편 허명수씨는 사람 만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매일 같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대접하는 것을 낙으로 여겼고, 집에는 언제나 손님을 위한 차와 음식이 준비해 두었다.
한때 아파트 생활을 했는데, 당시 그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언제나 안절부절 했다. 그리고 이따금이나마 초대한 이들과 밤늦게까지 함께 할라치면 위아래 층으로부터 빗발치는 항의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 결심한 것이 전원생활이고 거기다 자신이 직접 건축하는 것이다.
처음 남편으로부터 이러한 제의를 받은 전상예씨는 이를 극구 반대를 했다. 유난히 외딴곳에 대한 두려움이 많던 전씨는 도저히 그러한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짓겠다니! 도무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뜻이 너무도 완고했기에 어쩔 수 없이 따르기로 했다. 그래 급기야 98년 8월 공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으나 일은 처음부터 그다지 순조롭지가 않았다.
수입목을 사용하기 위해 계약을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시간이 지연되고 그 바람에 공사기간만 늦어졌다. 그래서 결국 계약금을 포기하고서 다른 경로를 통해 목재를 구입, 99년 3월에서야 겨우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는 남편이 직접 진행시켰다. 수소문을 통해 목수를 구하고 설계 역시도 남편이 직접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집은 공사를 시작한지 약 7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에 마무리 됐다.
처음 이곳으로 오기가 그렇게 두렵기만 했다던 전상예씨는 지금 남편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곳이 그 어느 곳보다 포근한 곳이라 말한다.
이곳을 찾아주는 이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고 이제는 이곳을 떠나 다른 어떠한 곳에서의 생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그래서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남편이 더욱 원망스럽고 그립단다.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강원도 홍천군 화천면 장평리
부지면적: 대지 2백평
건축형태: 2층 2×4 목조주택
건축면적: 73평(지하 30평, 1층 30평, 2층 13평)
공사기간: 1999년 3월~10월
실내구조: 지하- 방 1, 차고, 창고, 보일러실
1층- 방 1, 거실, 주방, 다용도실, 화장실
2층- 방 2, 화장실
외벽마감: 비닐사이딩
내벽마감: 상단-석고보드, 하단-루바, 난로주변-대리석, 주방-벽지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난방시설: 기름보일러, 벽난로
바닥재: 비닐장판
건축비: 1억3천만원(평당 1백8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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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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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상단 전망좋은 곳에 지은 H빔 골조의 조립식패널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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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집
저수지 상단 전망좋은 곳에 지은 H빔 골조의 조립식패널 주택
건축은 99년 2월부터 시작됐다. 가까이 음성에 있는 지방 건축업자에게 의뢰했는데 H빔으로 골조를 세우고, 벽체는 소위 말하는 샌드위치 패널로 시공했다. 벽체 안쪽엔 다시 석고보드를 댄 뒤 벽지로 마감하고, 외벽엔 사이딩 모양의 알루미늄 재질의 외장재를 붙였다. 건축업자는 이 외벽 마감재를 ‘연다’라고 불렀다. 방이 4개 있고,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는데 실내구조는 물론 전체적인 설계를 손수 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작업복인지 평상복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편안한 옷차림. 영락없는 시골 아저씨 모습 그대로다. 그가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잘 나가는 은행의 지점장이었다는 것은 지금의 모습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을 때면 마치 평생 농사만 지어온 이 곳 토박이보다도 더 토박이처럼 보인다.
은행 지점장이란 위치는 참으로 고달프다.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루하루를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보내야하는 고달픈 직업. 그가 전원생활을 선택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과거의 이력에서 기인했다. 당시엔 부귀도, 영화도 다 싫었고 그저 편안한 시골생활이 그리울 뿐이었다.
퇴직을 결심하기 얼마 전부터는 본격적인 부지 물색에 나섰다. 땅을 구입하기 위해선 몇 가지 나름대로의 원칙을 정했는데 우선 서울과 1시간30분 이내 일 것, 병원이 가까울 것, 그리고 주변에 공장이나 축사가 없을 것 등이었다.
땅을 얻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몇 달 몇 년씩 다리품을 팔며 땅을 구한 남들의 경우에 비하면 비교적 운이 좋았던 편이다. 전원주택 전문회사 ‘인터비지니스’를 통해 소개받았는데 보는 순간 ‘이거다’ 싶은 생각에 바로 서울로 올라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곳이 바로 충북 음성군 금왕읍 백야리 백야저수지 상단이다. 높직이 자리하고 있어 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런 곳으로 당초 세웠던 몇 가지 기준들과도 딱 부합되는 곳이었다.
땅을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선 스님 한 분 오셔서 ‘이 일대는 음기가 충만한 지역인데 이 집터는 양쪽 산 능선을 타고 양기가 뻗어와 바로 이 곳에서 만난다’며 좋은 집터라고 일러주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고, 어깨도 으쓱했다.
모두 4백98평 규모의 준농림전으로 평당 6만5천원씩 주고 구입했으며, 지금은 이중 1백90평이 대지로 전용됐다. 당초 2백평을 전용할 생각이었으나 농지는 법적으로 최소 3백3평 이상을 소유해야한다는 인터비지니스측의 조언에 따라 이를 넉넉히 남겨두고 1백90평만은 대지로 바꾸었다.
건축은 99년 2월부터 시작됐다.
가까이 음성에 있는 지방 건축업자에게 의뢰했는데 H빔으로 골조를 세우고, 벽체는 소위 말하는 샌드위치 패널로 시공했다. 벽체 안쪽엔 다시 석고보드를 댄 뒤 벽지로 마감하고, 외벽엔 사이딩 모양의 알루미늄 재질의 외장재를 붙였다. 건축업자는 이 외벽 마감재를 ‘연다’라고 불렀다.
방이 4개 있고,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는데 실내구조는 물론 전체적인 설계를 손수 했다. 건평은 30평이며, 창고로 이용하는 지하층 40평이 별도로 있다. 이밖에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와 기름보일러를 병행하고 식수는 지하수를 이용한다.
2월에 시작된 공사는 5월에 완료되어 그 달 말 입주할 수 있었다. 토목 및 기타 부대비용을 제외하고 총 7천여만원 정도가 건축에 소요됐다.
서울생활, 은행생활 훌훌 털고 시골에 내려오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머리와 가슴을 짓눌렀던 업무상의 이런저런 근심이 없어지니 그야말로 날아갈 지경이다. 삽질이며 괭이질로 흠뻑 땀을 쏟고 난 뒤의 그 기분은 과거 10억짜리 예금을 유치한 것에 버금갈 만큼 상쾌하기 이를데 없다.
당초 시골행을 썩 내켜하지 않던 아내 이금녀씨도 1년을 훌쩍 넘긴 지금은 이 곳을 너무 좋아한다. 아내는 특히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주변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 쯤이면 아예 소녀시절로 되돌아간다.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섰던 아내였기 때문에 아내의 이런 모습이 남편 박매신씨에겐 고맙고 대견스럽다.
가을이 시작되는 지금, 집 뒤로 펼쳐진 텃밭엔 이런 저런 푸성귀며 곡식들이 심어졌다. 배추, 열무, 고추, 도라지, 고구마, 땅콩 등 갖가지 농작물들이 저마다의 넒이를 차지한다. 애초 ‘노동’이라고 생각했으면 고달팠을지도 모를텐데 씨를 뿌려 싹이 돋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그 진리가 새삼스럽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난 1년은 노동이라기 보다 일종의 새로운 ‘유희’였다. 당초 ‘돈 많은 서울 깍쟁이’ 정도로 보던 마을 사람들도 박매신씨의 수더분하고 소탈한 성격에 어느덧 ‘호형호제’하는 친한 이웃이 됐다.
가을 걷이에 박매신씨의 손길이 분주해진다.田
■ 글·사진 김경래
■ 건축정보
위치: 충북 음성군 금왕읍 백야리
부지면적: 준농림전 4백98평(이중 1백90평 대지 전용)
부지구입년도: 98년 5월
부지구입금액: 평당 6만5천원
건축공사기간: 99년 2월~5월
건평: 30평(지하 40평 별도)
실내구조: 방4, 거실, 주방, 화장실
총건축비: 7천만원
건물형태: H빔 조립식 주택
벽체구조: 샌드위치 패널
내벽마감: 석고보드, 벽지
외벽마감: 알루미늄 재질의 외장재
단열재: 스티로폼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기름보일러 병행
식수공급: 지하수
■취재협조 인터비지니스 02-585-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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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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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총 수입이 고작 4백만원 “전원에선 그래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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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과 생활
지난 1년간 총 수입이 고작 4백만원 “전원에선 그래도 행복합니다”’
김중래씨 부부는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경기도 안산에 살았으며, 건설업에 종사했었다. 시골로 오게된 배경은 오직 ‘조용한 시골생활이 그리워서’다. 건설업에 종사하다보니 매일 이른 새벽에 출근을 해야했고, 책임자이다 보니 퇴근시간도 항상 밤늦은 시간이었다.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허무감, 무력감, 체력적인 한계 등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탈도시를 결심하게 됐다.
사슴이 의외로 기르기 힘듭디다. 성질이 고약하고 서로 잘 싸워 기르는데 애를 많이 먹어요. 반면 염소는 주는 대로 잘 먹고 말도 잘 들어 가축 중에 가장 키우기 수월합니다. 오리와 닭도 기르기는 쉬운 편인데, 튼튼하기로는 오리가 더 튼튼하고, 닭은 장마 지나고 나면 꼭 서너 마리씩 죽어나가요”
전원생활 4년째에 접어든 김중래씨.
이제는 어느 정도 가축의 특성을 꿰뚫고 있을 만큼 가축 기르기에는 일가견이 생겼다. 과거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나 가축을 길러본 경험은 없지만 이 곳에 내려와 살면서 가축에 대해 많은 것을 터득했다.
김중래 조금순씨 부부가 이 곳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에 내려 온 것은 지난 96년. 사촌 형님이 살던 터를 사들여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가축은 생계수단이 아니라 적적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처음 2마리로 시작한 사슴이 이제는 6마리로 늘어났다. 염소도 6마리가 됐고, 개도 6마리, 그리고 닭과 오리는 각각 16마리가 됐다.
김중래씨 부부는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경기도 안산에 살았으며 건설업에 종사했었다. 시골로 오게된 배경은 오직 ‘조용한 시골생활이 그리워서’다. 건설업에 종사하다보니 매일 이른 새벽에 출근을 해야했고, 책임자이다 보니 퇴근시간도 항상 밤늦은 시간이었다.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허무감, 무력감, 체력적인 한계 등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탈도시를 결심하게 됐다.
지금의 터는 96년 당시 사촌형으로부터 8천여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1천2백여평 규모로 이중 80평만이 대지였고 나머지는 모두 준농림전이었다. 구옥을 헐고 지금의 집을 지으면서 2백평을 추가로 대지로 전환해 지금은 대지 면적이 2백80평이 됐다.
건축 경험을 살려 사람들을 고용해 직접 집을 지었다. 건축은 2층 조적조로 H빔으로 골조를 세우고 블록을 쌓아 외벽은 적벽돌로 마감했으며, 내벽은 미장후 벽지를 발랐다. 지붕 마감재는 아스팔트싱글. 실내구조는 1층의 경우 차고, 창고, 방 1개로 구성돼 있고, 2층은 방 2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 등로 구성돼 있다. 건평은 60평으로 1, 2층이 각각 30평씩이며, 건축비는 대략 1억원 정도가 소요됐다.
김중래씨는 이 곳에서의 생활이 벌써 4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고, 다시 도시로 나갈 생각 역시 없다고 한다. 이 곳에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멍에처럼 짊어져야 했던 도시에서의 이런저런 걱정거리들도 비로소 이 곳에 와서 훌훌 벗어버릴 수 있었다. 마음이 고요하고 편해졌으며,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됐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자연히 책에 손이 가고, 도시에서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했던 독서량이 이 곳에선 서른권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마땅한 고정 수입이 없는데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는 않느냐’는 질문엔 ‘돈 쓸 일이 없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일체의 푸성귀와 과일을 자급자족하고 있고, 도시에 살 때처럼 교통비 개념이 없어졌고, 기타 현금이 필요한 경우도 서울에 비하면 아주 소액이어서 돈들 일이 많지 않다는 게 김중래씨의 설명이다. 다만 현금이 꼭 필요한 경우엔 조금 모아놓은 돈을 쪼개 쓰기도 한다.
김중래씨가 지난 1년간 이 곳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대략 4백만원 정도. 그것도 최근 1년을 따져 보았을 때 얘기고 처음 2~3년간은 거의 수입이 없었다. 오리가 낳은 알을 팔기도하고, 가축들이 새끼를 치면 분양을 하는 등 불규칙하게 푼푼이 들어온 돈을 따져보면 대략 4백만원 정도가 된다. 4백만원이라고 해야 노동비는 빼더라도 사료값이다 종자값이다 해서 들어간 돈만 쳐도 사실 4백만원이 훨씬 넘는다.
안산에서 건설업에 종사할 때는 한 달에 4백만원을 벌기도 했는데, 그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액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돈이 그리웠다면 애초 이 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왔어도 벌써 다시 도시로 나갔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중래씨는 “결국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직접 경험해 보니 시골에 와서 돈을 벌려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인 것 같고, 시골에 왔으니 시골 규칙대로 살아간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내 조금순씨는 지난봄에야 합류했다.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그동안 안산에 있었고, 지난봄이 되서야 비로소 같이 살게 됐다. 가진 것 많지 않지만 결코 궁핍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웃음소리 넘치는 행복한 전원생활이 펼쳐지고 있다.田
■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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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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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숨결 살아 숨쉬는 '외암리 민속보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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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마을
조상의 숨결 살아 숨쉬는 ‘외암리 민속보존마을
사회가 급변하면서 점차 우리 ‘옛 것’들은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아파트 빌딩 숲. 그 속에서 더 이상 우리의 한옥, 초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불편한 우리 옛 전통가옥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연과 가장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우리의 전통가옥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향의 포근함과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가끔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네 조상들의 삶을 엿보는 것도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한 방편인 듯 싶다.
충남 아산시와 천안시의 경계인 광덕산 아래 자리잡은 외암리 민속마을은 옛 전통가옥과 문화가 잘 보존된 곳이다. 1978년 민속보존마을로 지정되었고, 이어 1990년에는 문공부가 전통건조물 보존지역 2호 (1호는 강원도 고성군 죽암면 오봉1리)로 지정하였다.
이곳 민속마을은 연못을 갖춘 넓은 정원의 거대한 한옥을 포함 10여 채의 양반가옥과 단아하고 잘 정돈된 여러 채의 초가 그리고 나지막이 가옥들을 두르고있는 돌담 등이 한데 어우러져 고스란히 옛 모습 간직하고 있다.
또한 마을입구의 장승을 비롯하여 물레방아, 디딜방아, 연자매 등 잘 보존된 많은 민속유물들은 옛 조상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게 한다. 마을 앞을 지나다보면, 입구에 버티고 서서 모든 부정한 것들을 물리치는 장승들과 멀리 광덕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시냇물이 돌리는 물레방아가 제일 먼저 발길을 붙든다.
추수를 기다리며 깊이 고개 숙인 벼와 잘 다듬어진 소나무 숲 그리고 이를 가로지르는 오솔길. 이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몇 백년 시간을 거슬러온 듯한 느낌이다.
연대를 알 수 없는 이끼낀 나지막한 돌담, 그 너머로 유연한 곡선을 뽐내는 초가지붕, 장독대와 옛 모습 그대로의 사립문 그리고 버들잎이 띄워진 한 바가지의 물을 생각케 하는 우물가 풍경, 이 모두가 옛 시골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한다.옛 모양의 기와가 가지런히 얹어진 한옥과 잘 꾸며진 어느 양반댁 정원의 담 너머로 길게 가지를 내민 감나무는 이러한 정취를 한층 고조시킨다.
이곳의 초가는 대부분 ‘일자형’이나 ‘ㄱ’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건넛방, 곳간 등을 갖춰져 있으며, 막대기단, 초석 위 가는 기둥, 납도리 반5량 등의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밝은 재사벽, 완곡한 지붕선의 흐름 그리고 장독대와 우물가사이의 배수로 등은 담백한 충청도 초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반면, 이곳에 있는 10여 채의 한옥은 양반생활의 풍족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충청지방 고유의 반가(班家)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문화유산으로써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마을 동쪽 중심부에 자리잡은 이득선(59세)씨 댁, 일명 참판 댁이라 불리는 가옥은 고종으로부터 하사 받아 지은 집이다. 창덕궁 후원의 낙선재를 본떠 만들었다고 하는데 행랑, 사랑채, 안채, 곳간 및 가묘 등이 갖춰져 있으며, 2동의 ‘ㄱ’자 곱패집이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터진 ㅁ자형’을 이루는 전통한옥으로 중요민속자료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5백여 년 전부터 정착해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는 예안 이씨의 집성촌이다. 외암(外岩)이라는 지명 역시 조선후기 문신이자 뛰어난 성리학자였던 외암 이간(巍巖 李柬:1677∼1727)선생 호에서 유래되었는데, 후에 한자만 외암(外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이 마을에는 83가구 93세대가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예안 이씨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점차 외지인의 유입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민속보존마을 지정이후 이곳의 가옥들은 대부분 정부보조금에 의해 보수나 증ㆍ개축이 이뤄지고 있다. 대신 건축물들의 내부구조는 건물주의 임의 데로 개조를 할 수 있으나 외부구조의 경우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기타 보수 역시 지정업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아직까지 이곳에는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초가가 여러 채있는데 최근 공법이기는 하지만 우리 전통가옥이 지어지는 과정에 관심이 있는 이는 지금쯤 방문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최근 이곳은 사극이나 영화촬영 장소로 종종 이용되고 있고 각종 매스컴들이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어 외부인의 발길이 부쩍 빈번해졌다. 그로 인해 대부분이 일반 살림집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의 옛 가옥을 찾는 관광객들과 주민들 사이에서 작은 마찰이 생기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하지만 주요 생계수단을 농사에만 의존하던 이곳 주민들은 지금은 점차 늘어가는 관광객들로 인해 연엽주(충남 무형문화재 11호) 등 이 지역 특산물 판매로 상당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田
■ 글·사진 김성용
도움말
납도리: 도리의 한 형태로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은 나무를 도리라
칭하는데, 이는 그 모양에 따라 각진 모양을 납도리, 둥근 모양을 굴도리라 한다.
재사벽: 모래와 흙을 섞어서 만든 벽을 사벽(砂壁)이라 하는데, 여기에 한번 덧 칠한 형태를
말한다.
낙선재: 창덕궁 후원에 있는 건물로 원래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거처하기 위해 헌종
13년(1847년)에 세운 것이다.
반가(班家): 양반의 가옥
곱패집: ‘ㄱ’자 형태로 굽어있는 집
가묘(家廟): 한 집안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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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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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두가족 살도록 설계된 단층 목구조 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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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은 전원주택
한 지붕 두가족 살도록 설계된 단층 목구조 흙집
장모님은 거동이 불편하여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일반적인 집 구조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데 몹시 불편하여 당사자는 물론 간병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단층으로 설계하여 한 세대는 휠체어가 다니기 쉽도록 문턱을 없애고 의료용 침대가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모두 크게 만들었다. 물론 현관 진입로는 램프시설을 하여 휠체어 사용이 편리하도록 하였으며 환자 방엔 벨을 설치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쉽도록 했다.
내 나이 쉰 여덟.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로 고향이 없어 지금까지 명절이면 더욱 외로움을 많이 탔다. 비록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그 곳을 떠난 데다 이제는 가족은 물론 친지도 남아있지 않아 사실 찾아갈 고향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명절 때면 귀성전쟁이라 불리는 교통대란을 겪으며 부모님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겐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가 전원생활을 계획하게 된 것은 찾아갈 시골이 없고, 그래서 내 손자 손녀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만큼은 평생의 추억과 포근함이 만들어지는 곳이자 명절이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그런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에서 오래전 용인의 한 외진 곳에 땅을 마련해 두었고, 은퇴 후엔 줄곧 내려와 노후의 꿈을 한껏 키웠다. 단순한 텃밭 개념이 아니라 밭농사는 물론 논농사도 지었는데 동네분들 덕에 서툴던 농사일도 점점 익숙해 졌고 정성스레 가꾼 집주변의 꽃나무들과 함께 소망하던 일들이 활짝 피어오르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어느날 정붙여 가꿔 놓은 땅이 택지개발지구로 수용돼 버리면서 나는 고향 같은 그 곳을 떠나야 했다.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보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러던 중 장모님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큰처남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상태여서 누군가는 장모님을 모셔야 했다. 장모님은 서울 생활 보다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했고, 그래서 우리 내외는 장모님과 함께 시골에서 살기로 하고 집 짓는 일을 서두르기로 했다.
마침 우리는 우연히 ‘흙건축 행인’에서 짓고 있는 용인의 흙집 단지를 들리게 되었고 아내는 평소 황토집을 짓자고 이야기 해왔던 터라 흙집을 짓는데 이견이 없었다. 인근에 이미 집터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집 짓는 일은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비용은 큰처남과 공동 부담하기로 하고 집의 구조는 한 지붕 두가족의 형태로 결정해 장모님이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고 우리가 장모님을 모시는데 불편이 없도록 설계했다.
그동안 장모님은 거동이 불편하여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일반적인 집 구조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데 몹시 불편하여 당사자는 물론 간병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단층으로 설계하여 한 세대는 휠체어가 다니기 쉽도록 문턱을 없애고 의료용 침대가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모두 크게 만들었다. 물론 현관 진입로는 램프시설을 하여 휠체어 사용이 편리하도록 하였으며 환자방엔 벨을 설치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쉽도록 했다.
또 다른 세대는 일반주택구조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간병하는데 수월하도록 설계했고, 큰처남이 한국에 나오면 머물러야 하는 점도 염두에 두었다.
착공한지 두어달이 지나면서 점차 집의 모양이 갖춰져 갔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기초공사가 완료되었고, 기둥들이 세워지며 집의 형태가 완성됐다. 당초 계획보다 토목공사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 다소 지연이 됐으나 튼튼한 기초 위에 집이 세워졌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뿌듯하다.
집이 완성되고 나니 그동안 정성을 쏟았던 용인의 논과 밭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도 많이 사라졌고, 시골생활에 대한 열정도 다시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사랑하는 손자들에게 시골집의 추억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니 얼마간의 그 과정들이 내겐 큰 즐거움이었다.田
■ 글 박국웅/사진 류재청
작은 인터뷰/이동일 ‘흙건축 행인’ 대표
건축주와 시공업체간 신뢰를 바탕으로 지어진 집
지난해 박국웅씨와 큰처남 김성태씨 가족들이 흙집을 짓고 있던 솟대마을 현장을 방문했었습니다. 이 분들은 흙집을 둘러보고 마음에 들어하고 흙집을 짓기로 했습니다. 겨우내 집짓는 설계와 공사 계획을 준비해 건축을 마쳤는데 시공사 입장에선 이 기간 내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한 분이 대기업 건설사 출신인데다 또 다른 분은 미국에서 직접 건축업에 종사하시고 계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공사와 건축주 사이에선 대립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시공사는 보다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하고, 건축주는 더 좋은 것과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두 분 모두 건축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선 적잖이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지금 생각해보면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건축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해 주었고, 저희 입장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집은 시공사와 건축주 모두가 각자의 욕심을 버린 집입니다. 추가 공사가 발생하면 협의와 조정을 거쳐 합의하는 과정을 밟았고, 그 과정을 통해 집의 완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는 건축주가 시공사를 끝까지 믿어준 결과이며, 시공사가 건축주 가족들의 삶을 우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양자의 신뢰가 최종 결과물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
부지면적: 대지 1백98평(구입 당시엔 준농림전)
부지구입년도: 97년
부지구입비용: 평당 15만원
건물형태: 단층 목구조 황토벽돌집
(서구식 목조 골조에 공정별로 한국식 재료 및 시공방식 적용)
공사기간: 2000년 2월~5월
건평: 본채 48평, 별채 10평
실내구조: 방 4, 욕실 2, 거실 2, 다용도실 2, 주방 2
방위: 남서향
구조체: 8치 사각목재(뉴질랜드산 소나무)
벽체구조: 황토벽돌(300×200×140), 순수 황토만을 압착한 벽돌로 총 4천3백장 소요
벽체쌓는방식: 외벽은 뉘여쌓기, 실내 칸막이는 세워쌓기(외벽은 뉘여쌓기를 함으로써
벽체 두께 20cm를 유지할 수 있고, 내벽은 세워쌓아 벽체 두께가 14cm가 돼 내부 공간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내벽마감: 황토미장(황토분, 향나무 톱밥, 무기바인다(천연소재)가 혼합된 분말 완제품)
한지벽지
지붕마감: 시멘트 가압 기와
바닥재: 한지장판 및 온돌마루
건축비: 평당 3백만원(총 1억7천만원 정도)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 설계 및 시공: 흙건축 행인 031-335-8133
■ 건축비 산정 내역
부지조성 및 옹벽공사 (4천5백만원)
토목 측량 설계, 인허가 세금, 측량비 8백만원
흄관공사(맨홀, 장비비용) 8백50만원
옹벽공사 1천1백만원
석축공사 4백만원
지하수공사 1천2백만원
기타경비 1백50만원
건축공사 (1억4천8백60만원)
가설공사(설계, 현장사무소 운영, 임시전기, 수도) 6백50만원
기초공사 1천1백만원
목재(구조재, 지붕, 마루재, 대나무 등) 2천3백만원
목공사(골조, 내장공사) 1천6백만원
흙벽돌, 조적용 몰탈 7백50만원
조적공임 7백만원
메지(자재, 인건비) 2백만원
흙미장 자재(황토라이트, 황토) 4백만원
미장 공사(흙, 시멘트 미장) 4백80만원
기와공사(방수시트 공사) 1천1백만원
전기공사 외 4백80만원
설비공사, 정화조 3백80만원
우드샤시, 유리 4백50만원
목창, 목문, 대문 7백만원
페인트(자재, 인건비) 2백50만원
파일, 수전, 금구류 4백80만원
한지벽지, 한지장판, 온돌마루 6백만원
싱크대(2세대) 8백만원
인조석, 현관돌 3백만원
벽난로(2개) 4백40만원
심야전기보일러, 온수기(2대) 7백만원
부대공사 (8백40만원)
주차장, 울타리, 조경 6백80만원
보전등기 외 1백60만원
시공사 이윤 (2천3백만원)
공사 총액 2억2천5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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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