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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와 국산소나무로 직접 지은 30평 전통황토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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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짓는 집
황토와 국산소나무로 직접 지은 30평 전통황토주택
30평 규모의 이 집은 서윤석씨가 직접 지은 집. 가능한 화학적, 인공적인 자재를 배제하고 소나무와 황토만을 이용해 손수 집을 지었다. 과거 시공경험이 있었던 데다 지금도 경기도 고양에서 건축자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영이 가능했다. 실내구조는 방 3개에 거실겸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다. 벽체는 황토벽돌을 쌓은 뒤 안팎으로 미장을 했고, 부분적으로 항아리를 쌓아올려 멋도 부렸다. 황토벽돌 역시 일일이 손수 찍었고, 골격을 구성하는 자재 역시 손수 다듬었다.
기본적인 골조작업을 끝내고 마무리 공사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날도 서윤석씨는 집 뒤에서 굴뚝 미장 작업에 열중이었다. 지난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넉달 째. 기본적인 공정이 거의 끝나 다음달쯤이면 완성될 수 있을 것 같다.
30평 규모의 이 집은 서윤석씨가 직접 지은 집. 가능한 화학적, 인공적인 자재를 배제하고 소나무와 황토만을 이용해 손수 집을 지었다. 과거 시공경험이 있었던 데다 지금도 경기도 고양에서 건축자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영이 가능했다.
실내구조는 방 3개에 거실겸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다. 벽체는 황토벽돌을 쌓은 뒤 안팎으로 미장을 했고, 부분적으로 항아리를 쌓아올려 멋도 부렸다. 황토벽돌 역시 일일이 손수 찍었고, 골격을 구성하는 자재 역시 손수 다듬었다.
천장은 전통한옥 방식 그대로 따라 서까래와 나머지 구조목들이 드러나도록 천장을 오픈 시켰다. 구조목들 역시 제재목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부정형의 자연적이 자재들을 그대로 사용했고, 지붕에도 오지기와를 얹어 최대한 자연에 가깝도록 집을 지었다. 실제 바깥 기온이 무척 무더웠던 8월의 한낮임에도 실내 기온이 낮아 무척 시원하게 느껴진다. 서윤석씨는 이를 두고 흙과 나무가 빚어내는 ‘한옥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서윤석씨는 원래 제천이 고향이다. 고향을 떠나 그동안 경기도 고양에서 살았으며 지금은 그 곳에서 조그만 건축자재상을 경영한다. 이 땅은 지금으로부터 5년전 구입한 것으로 친구의 농장을 인수한 것이다. 원래 시골을 좋아하고 옛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터라 고향이자 친구가 있는 이 곳 제천을 자주 찾게 되었고, 급기야는 친구로부터 그 농장을 사게 되었다. 지금도 30여마리의 한우가 사육되고 있는데 농장은 목부를 따로 두고 관리한다.
이 집이 위치한 곳은 바로 농장의 진입로쪽. 행정구역상 충북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에 속하며 요즘엔 이 집 때문에 거의 이 곳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 집은 당분간은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며 장기적으로는 노후를 대비한 실버주택 개념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한창 막바지 손길이 분주한 그는 “그동안 우사 한쪽에 거처를 마련해 내려올 때마다 그 곳에서 묵었는데 다소 불편했다”며 “집이 완성되면 잠자리는 물론 마음까지 뿌듯할 것 같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田
■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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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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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적조주택 골조 살려 H빔 보강 후 내부 공간 합쳐 개방감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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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한 집
조적조주택 골조 살려 H빔 보강 후 내부 공간 합쳐 개방감 강조
수원 시내의 주택가에 있는 이 집은 2층 조적조주택을 새로운 모양으로 개조한 집이다. 내부 공간이 벽체로 막혀 있어 답답하였는데 벽체를 헐어 공간을 연장해 개방감을 강조했다. 평당 1백80만원으로 개조한 새로운 스타일의 주택을 찾았다.
수원시 화서동은 도심의 주택가다. 골목길을 따라 1~2층 주택들과 다세대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우중충한 외관의 색과 천편일률적인 모양의 주택들 사이에 있는 이 개조주택은 외관의 색상이나 담장 등이 눈길을 끈다.
이 주택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연면적 45평인 조적식 주택이다. 기존주택은 적벽돌로 지었는데 이러한 골조를 그대로 살려 새로운 모양으로 개조했다. 기존주택은 2층으로 1층은 방 두개와 주방, 거실, 욕실 등이 각각 벽으로 막혀 있었고 2층엔 방 세개와 욕실, 거실 등이 있었다.
젊은 부부와 딸 등 세 가족이 살기에는 방이 너무 많고 또 공간도 벽으로 막혀 있어 답답했다. 그래서 불필요한 벽은 없애 공간을 넓히고 방의 수를 줄였다. 주택 전체적으로 H빔으로 보강하였으며 1층 전면은 데크를 시공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판을 교체하였고 1층과 2층방은 황토방으로 시공했다.
담장은 높이를 낮추고 나무 난간을 설치해 답답함을 줄였다. 1층의 경우 거실을 넓혔다. 그리고 방과 방 사이의 벽체를 터 방을 넓힌 후 욕실과 드레스룸을 넣었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 있던 문을 철거하여 개방감을 주었고 기존 욕실은 다용도실로 개조했다. 2층 철제 난간을 철거한 후 방부목으로 교체했고 전면 창호들은 창문턱을 없애고 시스템 창호로 교체했다. 또 방 하나는 터서 거실을 넓혔다.
개조 후 이 집은 1층에 거실과 방 하나(황토방), 주방, 화장실 두 개 등이 있으며 2층은 방 두 개에 화장실과 거실로 돼 있다. 외벽은 드라이비트로 마감하였고 지붕은 콘크리트슬라브에 아스팔트 싱글로 마감했다. 개조비용은 평당 1백80만원정도다.田
■ 글·사진 김경래
■ 건축정보
위치 : 수원시 화서동
부지면적 : 40평
공시기간 : 4월~6월
건평 : 20.8평
연면적 : 44.9평(지하 - 7.7평, 1층 - 20.8평, 2층 - 16.4평)
실내구조 : 1층(거실, 방1-황토방, 주방, 화장실2, 다용도실,
드레스룸), 2층(거실, 방2-황토방1, 화장실)
구조 : 2층 조적조
외벽마감 : 드라이비트
내벽마감 : 방(황토마감 후 한지 도배),
거실(하부 - 실크벽지, 상부 - 백색페인트)
지붕마감 : 콘크리트슬라브, 아스팔트싱글
창호 : 전면 - 시스템창호(웨더실), 후면 - 알루미늄새시(16㎜ 격자페어)
주방 : 동양토탈시스템
난방 : 가스보일러
개조비 : 평당 1백80만원
■ 시공 : 윈플러스(031-333-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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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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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와 통나무로 손수 짓는 황토집 ‘견우와 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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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짓는 집
황토와 통나무로 손수 짓는 황토집 ‘견우와 직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다간 좋아하는 것 못해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적지않은 나이에 이윤복씨는 결심을 했다. 그래 전원으로 가자. 그리고 23년간의 교사생활을 정리하고 평생 살았던 서울을 떠나 제천의 외진 시골마을로 들어왔다. 빠듯한 예산으로 5백평 정도의 땅을 구입해 손수 집을 지으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이윤복씨를 만났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윤복씨는 제천의 외진 시골마을에 내려가 황토로 집을 짓고 있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23년간 교사생활을 하다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도시를 떠났다.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장착할 곳을 찾아 아내와 함께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3년 전 이곳 충북 제천시 금성면 진리에 농가주택이 딸린 대지 5백평을 평당 4만5천원에 구입했다. 이 땅을 구입할 때는 당장 내려올 생각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사고로 아내를 잃고 나서 심경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도시가 싫어지고 일에 의욕도 없어졌다.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모습이 예전처럼 즐겁지도 활기차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양심의 가책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애초의 생각보다 빨리, 나중에 아내와 함께 조용히 노후를 보낼 생각으로 아내와 함께 땅을 구입해 자리를 잡아둔 이곳에, 이윤복씨는 혼자의 몸으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내려오게 되었다.
이윤복씨가 터를 잡은 제천 금성면 진리는 KBS 역사드라마 ‘태조왕건’ 촬영지로부터 승용차로 약 2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16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고 조용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일명 갬골이라도 부르는데 개암나무가 많아 개암골이라 하던 것이 변했다. 진리라는 행정명도 개암나무 진(榛)자를 쓴다.
올 3월 이곳에 내려와 농가주택을 대충 수리해 살면서 손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터는 대지의 가장 윗쪽으로 잡았다. 대지에서는 마을 전체가 내려 보이며 느티나무와 적당히 구부러진 마을 진입로도 한 눈에 들어오는 그러한 곳에 위치해 있다. 또 집 앞에는 커다란 거북바위도 있다.
이윤복씨가 짓는 집은 황토와 통나무를 이용해 짓는 건평 33평의 황토집이다. 중고 포크레인을 구입해 터닦이를 직접 했다. 이렇게 집짓는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직접하기 때문에 30평 집을 짓는데 들어가는 예산은 약 3천만원이면 충분할 것 같다.
4월 16일 터파기를 시작해 8월말 현재 일부 지붕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이런 공정이라면 올 10월쯤 완공될 것 같다. 집의 형태는 두개의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두 공간을 원형의 데크가 연결시켜 준다. 외형상 두 채의 모양이나 가운데 작은 원형의 데크가 두 채를 연결하고 있어 위에서 보면 세 개의 원이 일렬로 늘어선 모양이다.
이윤복씨는 이 집을 ‘견우와 직녀’라 이름지었다. 본체격인 견우는 22평 정도 크기고 별채인 직녀는 8평 정도다. 그리고 두 개의 집을 연결시켜주는 원형 데크를 오작교라 했다.
집짓기에 사용되는 주재료는 황토와 나무다. 자연소재인 간벌목(낙엽송, 소나무)을 30㎝ 길이로 잘라 블럭으로 벽체를 구성하고 블록 사이를 흙과 흙벽돌로 채웠다.
나무 블록은 해충방지를 위해 정제 목초액(15%)에 침전 처리했고 흙 반죽은 부패나 곰팡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금물을 첨가해 반죽했다. 노력이 배 이상 들어가는 공법이었지만 평생 살아야할 주택, 건강주택을 짓는다는 생각에서 신경을 썼다. 흙벽돌 2천장도 직접 찍었다.
벽체를 원형으로 쌓아야하기 때문에 흙벽돌의 형태는 사다리꼴이다. 길이 28㎝에 전면부의 두께는 15㎝로 두껍게 하고 후면부는 그 두께가 13㎝ 정도로 짧게 했다. 이 벽돌을 쌓아 나가면 자연스럽게 벽체는 원형이 된다.
본체인 견우집은 심야전력과 벽난로를 이용해 난방을 하고 별채인 직녀집은 전통 구들을 이용해 군불을 지필 수 있는 온돌방을 만들 계획이다. 임시거처로 사용하고 있는 농가주택을 헐고 그곳의 구들을 그대로 사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견우와 직녀를 잇는 오작교인 데크는 간벌 소나무와 방부처리목을 이용해 만들 생각이다. 견우와 직녀집이 완성될 때까지 이윤복씨는 매우 바쁠 것이다.
직녀집은 어느정도 완성되었지만 아직 견우집은 벽체도 마무리 되지 않았다. 게다가 바닥이며 내부공사까지 마무리 하려면 아직 많은 노동이 필요하고 시간투자도 많이 해야 한다. 그렇게 집이 하나하나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윤복씨는 즐겁고 또한 그러한 노동을 즐기고 있다.
집이 완성되고 나면 과수원을 열고 살구나무를 심을 것이다. 농부로 돌아가 살구농장을 하겠다는 것이 이윤복씨의 살구같은 꿈이다. 田
■ 글·사진 김경래
이윤복씨가 직접 쓰는
나의 집짓기 경험과 전원생활 맛보기
지난 23년 간의 교직 생활을 미련 없이 정리하고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과수재배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더 이상 이것저것 따지고, 나이 더 먹다간 마음만 있지 결국은 꿈으로 끝날 것 같고, 해 보고 싶은 일 못해 보고 죽을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충북 제천의 금성으로 터전을 잡고 이사를 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참 맛도 느껴보고 전원생활에 대한 검소하고 소박한 꿈을 실현코자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도깨비 같은 짓을 했습니다.
구입한 대지에 농가주택이 있어 우선은 기거를 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텃밭을 가꾸며, 내 손으로 집짓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간벌목을 이용하니 가격도 저렴하고 내 마음에 드는 집을 맘껏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혼자 이렇게 집을 짓고 있자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이고 다녀갔습니다.
그들은 결코 많이 가진 분들이 아닙니다. 대부분 소박한 생각을 지닌 분들이더군요. 저렴한 비용으로 손수 집을 지어, 아주 좋은 집을 지어, 이렇게 소박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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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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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산골 마을, 오미리 ‘황토민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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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마을
조용한 산골 마을, 오미리 ‘황토민박마을’
골짜기마다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중간중간 이름 없는 소들이 있어 조용한 가족 단위 여름 피서지로 제격이다. 가을과 겨울 풍경도 인상적이라는데 요란하진 않은 이런 평범한 산촌 분위기들이 이 마을 관광자원이다. 민박마을 사업은 제천시청이 농민들의 소득증대 차원에서 마련한 것. 당장 뚜렷한 관광자원이 없어도 5가구 이상이 ‘신청서’를 내면 어렵지 않게 지정 받을 수 있다.
산골마을 오미리. 행정구역상 충북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에 속하며 오미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강원도와 충청북도로 나뉘는 지역이다. 옛날엔 교통이 불편해 충북에서도 오지에 속했으나 지금은 길이 좋아져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이 곳 사람들은 오미리를 두고 ‘황토민박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황토민박마을이라고 해서 주위에 대단한 볼거리가 있거나 잘 조성된 민박촌이 집단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제법 고즈넉한 산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골짜기마다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중간중간 이름 없는 소들이 있어 조용한 가족 단위 여름 피서지로 제격이다. 가을과 겨울 풍경도 인상적이라는데 요란하진 않은 이런 평범한 산촌 분위기들이 이 마을 관광자원이다.
민박마을 사업은 제천시청이 농민들의 소득증대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다. 당장 뚜렷한 관광자원이 없어도 5가구 이상이 ‘신청서’를 내면 어렵지 않게 지정 받을 수 있다. 민박마을로 지정이 되면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민박을 운영할 수 있게 되고, 건물을 개보수하는데 필요한 비용도 가구당 최고 1천5백만원까지 융자받을 수 있다.
오미리는 최근 수년 사이 외지인들의 유입이 부쩍 늘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땅값이 비교적 저렴해 부담이 적은데다 큰돈을 벌진 못해도 민박을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한적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곳에 정착한 경우도 있다.
고개 넘어 손태영씨가 그런 경우. 본래 경북 왜관이 고향이고 줄곧 그 곳에서 생활했지만 오래 전 우연히 들린 이 마을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 아예 이 곳에 정착하게 됐다.
95년 이 곳에 정착했으니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고, 당시엔 지금의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농가를 전세 내어 생활했다. 지금의 집터는 그로부터 3년 뒤에 마련했고, 이 집은 작년에 지어 현재는 민박겸 찜질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15평 규모의 작은 집으로 낙엽송으로 귀틀집을 지어 안팎으로 두텁게 황토로 미장해 완성했다. 시멘트가 전혀 쓰인 곳이 없고, 방바닥도 견운모를 깔아 찜질방 효과를 증대시켰으며, 지붕도 볏짚을 얹어 마무리했다. 지난여름 꽤 많은 손님들이 들어 분주한 여름을 보냈고, 지금도 주말이면 손님이 꽤 많다.
저수지 상단에 있는 양성운씨도 외지에서 온 경우. 이 전에는 경기도 분당에서 살았으며, 지난해 초 임야 1만평을 마련해 오미리에 정착했다. 이 곳과의 인연은 사돈이 오미리와 가까운 황둔에 살았기 때문인데, 재작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이 곳에 왔다.
이 집은 33평 규모로 양성운씨가 동네사람들과 함께 직접 지었다. 작년 8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11월 완성했으며 벽체는 황토벽돌과 경량벽돌을 병행했으며 외부는 황토미장, 내부는 드라이비트로 마감했다. 방이 3개 있고, 거실과 주방 그리고 욕실이 2개 있다. 지붕은 아스팔트싱글.
순수 건축비만 7천만원 정도가 들어 비교적 저렴하게 지었으며 현재는 민박을 겸한 생활집으로 이용한다. 양성운씨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이 조용하고, 깨끗해 항상 마음이 편안하다”고 전원생활의 소감을 밝혔다.
오미리 황토민박마을은 지난해 민박마을로 지정되어 현재 10가구가 민박운영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중 지금까지 5가구가 개보수를 마치고 운영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개보수가 진행중이다. 반응이 괜찮아 앞으로 민박을 신청하는 가구는 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송호민박을 운영하는 이 마을 새마을지도자 윤완일씨는 “특별히 내세울 자원은 없지만, 오히려 때묻지 않은 조용하고 평범한 분위기가 사람들에겐 더 큰 매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田
■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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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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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숨결 스며 있는 빨간 지붕의 작은 공원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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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풍경
옛숨결 스며 있는 빨간 지붕의 작은 공원 '민예원'
중간에 위치해 차도 마시고 궁중음식도 맛 볼 수 있는 민예원 건물이 지어지며 비로소 '민예원'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그러나 자연과 어울리는 집을 짓는데에는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짚을 얹은 자그마한 초가를 생각했지만 2년에 한번씩 짚을 얹어주어야 한다고 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스머프나라의 버섯집을 연상케 하는 지금의 건축물. 초가 모양을 본떠 콘크리트로 둥글게 지붕을 씌우고 빨간 석분을 뿌려 지금의 집을 지었다.
'민예원'의 주인 박용락 우연희씨 부부. 나이가 들면서 흙 냄새를 맡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골 방을 찾아 헤매 다녔다.
그러나 마음처럼 뒤로 산이 있고 앞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마음에 그렸던 그런곳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은 땅을 찾기 위해 1년남짓 수도권은 물론 강원도까지 여러 곳을 다녀 보았고, 그렇게 마련한 땅이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부안리 지금의 민예원 터다.
그러나 처음부터 민예원을 계획하고 시골로 온 것은 아니다. 그냥 조용한 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고 싶은 생각이 그 시작이었는데, 조금씩 키원나가다 보니 지금의 민예원이 됐다.
맨 위쪽에 위치한 빨간 지붕의 살림집을 가장 먼저 지었고, 이어 맨 아래쪽에 위치한 전시공간이 지어졌다. 중간에 위치해 차도 마시고 궁중음식도 맛 볼 수 있는 민예원 건물이 지어지며 비로소 '민예원'이란 간판을 내 걸었다.
그러나 자연과 어울리는 집을 짓는데에는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짚은 얹은 자그마한 초가를 생각했지만 2년에 한번씩 짚을 얹어 주어야 한다고 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궁리끝에 생각해 낸 것이 스머프나라의 버섯집을 연상케 하는 지금의 건축물, 초가 모양을 본떠 콘크리트로 둥글게 지붕을 씌우고 빨간 석분을 뿌려 지금의 집을 지었다.
초가지붕처럼 각을 없애고 둥글게 처리했고 주변 이미지와 어울리게 하기 위해 주변의 막돌을 주어다가 벽을 쌓았다. 이 집을 손수 설계하고 구상해서 직접 지은 집인데 박용락씨 자신이 건축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 번은 양평에 사는 어느 분이 이 곳에 와 보곤느 마음에 들어해 똑같은 모양에 똑 같은 형식의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 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민속품을 전시해 놓은 전통 초가분위기의 전시공간. 취미 삼아 모아온 민속품을 테마별로 전시해 함께 보고, 즐기고, 옛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산기슭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어 제법 주변경관과 잘 어울린다. 전시관을 둘러싼 주변 정경과 그 곳에 놓인 민속품도 인상적인데 돌확과 부레옥잠 통나무벤치, 공중 전화 박스를 대신하는 나무집 등이 그것이다.
가장 나중에 지어진 건물이 가운데에 위치한 민예원이다. 실내 중앙에는 둥근 난로가 있고 한쪽으로는 천장을 높여 2층을 만들었다. 엤가구며 생활 소품, 장식품이 가득 전시되어 있고, 실내에는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대청마루를 놓았다. 역시 손수 지었다.
2층에도 반달쌀궤를 비롯해 각종 고가구와 술항아리 등 오지그릇 그리고 올올이 수를 놓은 사각베게와 버선, 노리개, 흙백사진 등이 소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마치 옛날 살림살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인데 이곳에 전시해 놓은 민속품만도 족히 1천점은 된다.
'민예원'은 민속예술원을 줄인 말. 박용락씨는 음악을 좋아하는 건축가이며 아내 우연희씨는 의상디자이너로서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오랜 세월 의상 디자인을 해왔기 때문에 음식관, 전시관, 정원등에 모두 그의 손길과 감각이 베어있다. 건축가, 예술가 부부가 빚어낸 옛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은 테마 공원이 바로 '민예원'이다.
■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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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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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정원꾸민 독특한 구조의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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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가 돋보이는 집
실내에 정원꾸민 독특한 구조의 목조주택
누구나 한번쯤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고픈 생각을 하게된다. 특히 답답한 도시에 사는 사람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교육문제와 생활터전의 변화가 그러하다.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전원에 대한 동경을 그저 단순한 동경에 머물게 하는 수가 많다.
윤노범(41세), 이경자(37세)씨 부부는 이러한 모든 것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전원생활에 도전한 용감한(?) 부부다. 이들 부부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은 아주 오래 전부터다. 이미 10여 년 전, 남편 윤범노씨가 남양주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전원생활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이들 부부는 윤씨가 정년 퇴임을 하면 농사를 짓고 살 요량으로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일대에 준농림지(전) 7백5십 평을 구입해 두었다. 하지만 그 후 윤노범씨가 직장을 의정부로 옮기게 돼 이들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의정부에서 아파트생활을 10여 년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금새 이들 부부는 아파트생활에 갑갑함을 느끼게 되었고 급기야 작년 초부터는 전원주택에 관련된 서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전원주택전시장을 배회하는가 하면 이미 지어진 다른 사람들의 집을 기웃거리게까지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느끼며 전원 속에서 살고픈 마음 뿐 이었다.
이러는 동안에 가장 이들 부부의 눈길을 끈 것은 전원속의 목조건물이었다. 단아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서구풍의 목조건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이들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건축회사에 직접 찾아가 목조건물에 대한 상담을 하고 전시용 건축물도 둘러본 후 모델을 결정하고 곧바로 건축을 의뢰하였다. 그리고 미리 사두었던 부지 7백5십평 중 3백평도 전용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주)한길건축(대표이사 최경수)이 금년 4월말에 시공에 들어가 7월초까지 약 3개월만에 완공한 건축물이 윤씨부부가 지금 살고있는 바로 이 집이다.
이 건축물은 지금까지의 다른 목조건축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러 가지 독창적인 구조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하로 들어갔어야 할 주차장과 다용도 창고(보일러실)를 콘크리트 구조의 옹벽을 세워 밖으로노출시켜 1층으로 하고 건축물의 본 채라 할 수 있는 2층에 안방 및 작은방, 거실, 서재, 주방, 화장실2, 실내정원 등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지상에서 현관까지는 외부에 계단을 설치해 오르게 했는데, 이처럼 2층 건축물이지만 단층 건축물 형식을 가지고있어 건축비는 저렴하고 건축물자체는 웅장해 보인다.
또 실내구조에 있어서 다락방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올려 접을 수 있는 형태로 처리하여 올려 접었을 때 거실 및 주방이 한결 넓어 보이게 한 점이 특징적이고, 건물 뒤쪽에 거실과 건너편 복도에서 출입할 수 있는 옛 툇마루 형식의 공간을 만들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독창적이다.
무엇보다도, 외벽을 온실처럼 유리로 두른 실내정원을 현관과 주방사이에서부터 건넛방, 서재에 이르는 복도에 길게 배치해 다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실내정원의 천장을 개방시켜 햇빛과 빗줄기가 곧장 정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독특한 발상은 다른 어떤 건축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건축물만의 특징이다.
이 집에는 총 건축면적이 38평인 본채와 본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방갈로가 한채 더 있다. 건축비는 평당 3백9십만원이다.
현재 이 집에는 건축주 윤범노씨와 부인 이경자씨 그리고 이제 초등하교 4학년인 아들 윤효진(11세)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될 딸 윤유진(7세) 이렇게 네 가족이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 부부는 지금 살고있는 동네와 집에 대해서 대단히 만족해한다.
다만 아직까지 아이들의 등하교문제에 대해 조금은 걱정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40여세대의 전원주택이 단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주변의 자연경관이 수려해 앞으로도 더 많은 전원주택이 지어질 것으로 보여진다.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부지형태 및 면적: 준농림 전 7백50평
부지구입가격: 평당 15만원
부지전용면적 및 비용: 3백평, 4백50만원
토목공사 내용 및 비용: 석축, 옹벽, 배수로공사 등 1천2백만원
건물형태: 목구조
건축면적: 38평
실내구조: 안방, 서재, 거실, 주방, 화장실2, 다용도실, 실내정원
외벽마감: 포틀랜드 시멘트 사이딩(우드문양)
내벽마감: 목재 및 핸디코트
창호재: 하이샷슈(체리우드), 겹자복층유리
단열재: 스티로폼, 에폭시 단열재
지붕마감: 열반사 단열재, 시트 위 싱글마감
바닥재: 체리우드, 온돌마루
난방형태 및 비용: 심야전기 축열식(35평형 온수기 포함) 4백20만원
식수공급형태 및 비용: 지하수 우물, 1백20만원
조경내용 및 비용: 잔디, 소나무 외 다수, 5백80만원
건축비용: 총 1억 5천만원(평당: 3백90만원)
■ 설계 및 시공: (주)한길건축 031-53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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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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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잣나무와 적송으로 지은 2층 목구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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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지은 목조주택
국산 잣나무와 적송으로 지은 2층 목구조주택
이 집은 60평 규모의 2층 목구조주택으로 1층이 43평, 2층이 17평이다. 구조체는 2×6 벽체는 2×4가 쓰였는데 모두 국산 잣나무가 사용됐다. 벽체구조는 통상적으로 바깥쪽에 OSB를 대고 안쪽엔 석고보드로만 시공하는 것과 달리, 양쪽에 OSB를 대고 다시 석고보드를 댄 뒤 한지벽지와 핸디코트로 마감했다. 밖으로는 목재 사이딩으로 마무리했다. 내부에 사용된 목재들도 대부분 구조체와 마찬가지로 국산 잣나무와 적송이 사용됐다..
의류사업을 하다보니 외국의 바이어들을 자주 접하게 되고, 그 손님들을 가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느끼는 것이었지만 그때마다 아파트가 비좁게 느껴졌고, 좀더 넓은 아파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정복 이효월씨 부부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전원주택에서 살게 될 것이란 생각은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이나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음은 물론, 당시엔 오직 넓은 아파트로 옮겨야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다리품을 팔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날 남동생 이효진씨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동생 얘기의 요지는 우선 ‘전원주택에는 관심이 없냐’는 것이었고 ‘관심이 있으면 좋은 땅이 있는데 함께 보러갈 의향이 있냐’는 것이었다.
남동생은 ‘하우징인픽스’ 이사로 있으며 주로 휴양림에 지어지는 건축물을 시공해 왔다. 전국의 좋은 곳을 찾아 다녔기 때문에 땅을 보는 안목도 있고, 집이 들어설 자리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음을 이효월씨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애초 전원주택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큰 기대감 없이 남동생을 따라 나섰다.
동생이 안내한 곳은 바로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설매재휴양림과 인접해 있는 곳으로 우선 지대가 높아 시야가 탁 트인 게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주변이 보전임지로 둘러싸여 더 이상 개발이 허락되지 않아 전원주택지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게 남동생의 설명이었다.
비록 나무와 풀이 우거진 야산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전원주택엔 문외한이었지만 남동생의 자세한 설명에 장단점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은근히 마음도 끌렸다. 그동안 중요한 바이어들을 가끔씩 아파트로 초대했는데 이 곳에 집을 지어 초대한다면 외국에서 온 손님들이 더 좋아할 것이란 생각에 점점 마음이 기울었다.
결국 준농림전 1백50평을 평당 23만원씩 주고 구입하게 되었고, 이후 별도로 임야 3백평을 추가로 매입했다.
건축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됐다.
건축에 들어가기 앞서선 대대적인 토목공사가 필요했는데 비탈진 야산이었기 때문에 대단한 난공사가 됐다. 돌이 많아 땅을 고르는데도 애를 먹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온 돌들은 모두 석축 쌓는데 이용돼 별도의 돌 값은 치르지 않았다.
설계 및 시공은 남동생 이효진씨가 맡았다. 설계시엔 외부 손님이 많은 것을 감안해 가능한 방을 많이 들이고, 거실창을 크게 내어 바깥풍경이 잘 보이도록 했다.
이 집은 60평 규모의 2층 목구조주택으로 1층이 43평, 2층이 17평이다. 구조체는 2×6 벽체엔 2×4가 쓰였는데 모두 국산 잣나무가 사용됐다. 벽체구조는 통상적으로 바깥쪽에 OSB를 대고 안쪽엔 석고보드로만 시공하는 것과 달리, 양쪽에 OSB를 대고 다시 석고보드를 댄 뒤 한지벽지와 핸디코트로 마감했다. 밖으로는 목재 베벨사이딩으로 마무리했다. 내부에 사용된 목재들도 대부분 구조체와 마찬가지로 국산 잣나무와 적송이 사용됐다.
이는 이효진씨가 건축경험은 물론 목재에 대해서도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직접 나무를 가공, 재단해 시공했다. 벽체 사이 단열재로는 유리섬유가 충진됐으며 바닥재는 거실의 경우 온돌마루, 방은 황토바닥에 전통종이장판으로 각각 마무리됐다. 지붕은 아스팔트싱글이며 이밖에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 식수는 지하수를 사용한다..
겨우내 진행된 공사는 이듬해인 지난 3월 완공됐다. 건축비는 평당 2백80만원 정도가 들었는데 동생이 꼼꼼히 챙기고 직접 지은 만큼 건축비는 당초 생각보다 덜 들었다.
실내구조는 1층에 방 3개와 거실, 주방 욕실이 있고, 2층엔 방 2개와 거실, 욕실, 발코니 등이 있다. 3월에 완공해 바로 입주했으니 벌써 이 곳에 온 지도 반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몇 차례 외국 손님들을 이 곳으로 초대했는데 그들이 이 곳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애초 이효월씨가 생각했던 것 보다 기대 이상이었다. 그들은 주위의 자연경관과 편안함에 매료되어 감탄사를 연발했다. 사실 한국을 자주 드나드는 대개의 외국의 손님들은 답답한 호텔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신 가정집으로의 초대를 최고의 환대라고 생각한다. 이런 외국인들의 심리에 비춰봤을 때 이들에게 이효월씨의 전원주택 방문은 최고의 선물임이 틀림없었다.田
■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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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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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생활 정리하고 마련한 마당 넓은 단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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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넓은 집
아파트생활 정리하고 마련한 마당 넓은 단층 목조주택
건축은 그 이듬해부터 시작됐다. 경사가 심해 토목공사가 우선이었는데 낮은 쪽으로 축대를 쌓은 뒤, 흙을 북돋워 평평하게 지반을 골랐다. 이 때 남은 흙은 마당 한쪽에 쌓아 놓았었는데 지금은 꽃과 나무가 심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동산이 됐다. 97년 여름부터 시작된 건축은 그해 11월 마무리되었다. 건물형태는 43평 규모의 단층 목구조주택. 방 3개에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고 그리고 서재로 이용하는 7평 정도의 다락방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서리.
개발 열기로 어수선한 용인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한적한 시골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 곳은 큰길에서도 농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와야 하고, 농로에서도 가장 끝자리에 위치해 있어 조용한 시골 정취를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다. 마을이라고 해야 10여호가 조금 넘는 정도인데 한적한 분위기 때문인지 더러 별장용 주택들도 눈에 띈다.
이영난 손위자씨 부부가 이 곳에 터를 마련한 것은 지난 96년. 서울의 아파트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터전을 마련할 요량으로 수도권 주변을 다니던 중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땅을 만났다.
당시 부동산중개업소 소개로 이 근처 왔으나 소개받은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던 중 마을 사람을 만났고, 그 마을 사람에게 ‘좋은 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말과 함께 연락처를 남겼었다.
마을사람으로 부터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건냈던 연락처였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연락이 왔던 것이다.
현장으로 달려가 눈으로 확인해 보니 마음이 끌렸다. 다소 경사진 땅이었지만 초입에 자리잡고 있어 전망이 탁트여 좋았고, 뒤로는 산이 있어 아늑한 지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결국 평당 25만원씩 주고 대지 3백20평을 구입했다.
땅을 사 놓고 집을 짓기 전까지는 자주 동네에 들려 마을 사람들과 얼굴을 익혔다. 명절 때면 찾아가 인사를 드렸고, 지금도 시장에 가면 두 식구 먹을 양보다 조금 더 많이 사서 이웃들과 나눠 먹는다. 이는 주위의 조언이나 권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우리 정서상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자연스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축은 그 이듬해부터 시작됐다. 경사가 심해 토목공사가 우선이었는데 낮은 쪽으로 축대를 쌓은 뒤, 흙을 북돋워 평평하게 지반을 골랐다. 이 때 남은 흙은 마당 한쪽에 쌓아 놓았었는데 지금은 꽃과 나무가 심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동산이 됐다.
97년 여름부터 시작된 건축은 그해 11월 마무리되었다. 건물형태는 43평 규모의 단층 목구조주택. 방 3개에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고 그리고 서재로 이용하는 7평 정도의 다락방이 있다. 건축비는 평당 3백20만원 정도.
벽체는 석고보드와 OSB가 내외벽면을 형성하고, 벽체 가운데와 천장엔 유리섬유가 단열재로 채워졌다. 마감은 외벽엔 하디사이딩, 내부는 대부분 벽지로 마감된 가운데 거실천장 정도만이 루바로 처리됐다. 바닥재는 거실은 온돌마루, 방은 비닐장판으로 각각 시공됐으며, 지붕은 아스팔트싱글, 이밖에 난방은 기름보일러, 식수는 지하수와 마을 공동상수도를 병행한다.
97년 11월 완공되어 이듬해 1월 입주했으니 이 곳에 온 지도 벌써 3년 째. 처음엔 서울에서 오가며 한동안 주말주택으로 이용했으나 점차 회수가 늘면서 얼마 뒤엔 아예 서울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정착을 했다.
사실 처음 ‘전원주택’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남편 이영난씨였다. 아내 손위자씨는 줄곧 서울의 아파트에서 생활했던 만큼 전원생활을 염두에 둔 적이 없고, 그래서 시골생활에 대한 기대감이나 동경 같은 것도 없었다. 썩 내키지 않았으나 남편이 워낙 시골생활을 동경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원행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몇 년을 살아보니 당초 ‘불편할 것’이란 막연했던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됐다. 부족한 점도 물론 있지만 오히려 그런면들 보다는 좋은 점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용인 시내나 수원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승용차를 이용하면 큰 불편 없이 시장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서울에서 시장을 보러 다니는 시간보다도 덜 걸리고, 아들이 있는 서울을 오가는데도 결코 먼 거리가 아니었다.
특히 아파트엔 없는 넓은 마당이 생겼다는 것은 가장 큰 수확이다. 건물의 실내구조야 아파트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 앞에 마당이 하나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생활패턴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빨래 널기 좋고, 외손자들이 와서 마음껏 뛰어 놀기에 제격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난을 기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지난여름은 어느새 불쑥 커버린 손자 손녀들이 마당을 가르며 마음껏 뛰노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손위자씨에겐 행복한 시간이다. 빨개진 얼굴로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을 하게될 올 겨울 모습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田
■ 글·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서리
부지면적: 대지 3백 20평
부지구입년도: 96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25만원
건축공사기간: 97년 7월~11월
건평: 43평(다락방 7평은 별도)
실내구조: 방3, 거실, 주방, 화장실
건축비: 평당 3백 20만원
건물형태: 단층목구조주택
벽체구조: OSB, 석고보드
내벽마감: 벽지, 루바(거실 천장)
외벽마감: 하디사이딩
단열재: 유리섬유(벽체R-19, 천장R-30)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마을공동상수도
■ 설계 및 시공: 엘리에셀 홈즈 02-332-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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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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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황토집 4채 모여 있는 ‘솟대전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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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를 찾아서
옹기종기 황토집 4채 모여 있는 ‘솟대전원마을’
솟대전원마을은 이천시 호법면 안평리에 위치해 있으며 야트막한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외곽으로 인접한 남향받이 터에 황토집 4채가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황토집에는 진달래동, 개나리동, 민들레동, 들국화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으며 각 건물에는 다양한 형태로 본채와 별채, 정자와 연못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필지당 대지면적은 1백85평이며, 건축면적은 44∼47평(툇마루 제외) 정도다.
솟대 전원마을’ 황토집들은 별채, 다락방, 정자, 찜질방, 복층구조 등을 기본 요소로 다양한 형태의 우리식 건축양식을 현실화 시켰다. 특히 자연과의 연계성을 높인 툇마루와 정자, 별채(사랑방)등은 가장 큰 특징중 하나.
이천시 호법면 안평리에 위치해 있으며 야트막한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외곽으로 인접한 남향받이 터에 황토집 4채가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황토집에는 진달래동, 개나리동, 민들레동, 들국화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으며 각 건물에는 다양한 형태로 본채와 별체, 정자와 연못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흙건축 행인(대표:이동일 031-284-8230)에서 설계, 시공했으며 필지당 대지면적은 1백85평, 건축면적은 44∼47평(툇마루 제외) 이다. 대지가격은 평당 40만원이며, 건축비는 평당 2백90∼3백10만원대로 2채는 99년 8월 중순 건축준공을 마쳤으며, 나머지 2채는 2000년 8월 준공을 마쳤다. 분양가는 대지, 건축을 합하여 2억3백8십만원~2억1천8백 8십만원(심야전기 보일러 포함)이다.
건축설계
건축 설계의 기본은 ‘황토집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중심을 두었다. 한옥으로 대표되는 흙집의 단조로운 평면 설계 대신 현대인의 생활양식에 맞도록 아파트형 배치를 적용했다. 목구조 골조방식과 현대화된 아스팔트 지붕을 결합, 황토집을 현대 건축물로 재해석해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진달래동(46.46평)은 대지 입구에 사랑채(별채와 정자)를 배치하고, 본채에는 다락방을 배치했다. 개나리동(46.21평)은 본채 안쪽으로 별채를 만들고 툇마루로 본채와 연결시켜 서재 또는 독립된 공부방 기능을 강화했다. 민들레동(1층 32.83평, 2층 11.6평)은 복층형으로서 1층은 동향, 2층은 남향으로서 각 공간의 향 배치와 전망을 최대한 살려냈다.
2층은 독립된 기능(방, 주방, 거실, 화장실, 발코니)을 모두 갖춘 공간으로 복층집이 갖는 장점을 황토집에 적용시켰다. 들국화동(46.38평)은 동문에 남향집의 전통을 계승하고 ㄱ자형 배치 및 넓은 툇마루, 찜질방, 정자와 연못을 배치함으로써 선조들의 건축 양식을 현대에 적용시킨 모델로 삼았다.
부지조성 및 토목공사
부지의 양옆에 야트막한 소나무 숲 가운데 남향받이 터를 4개의 동(전용 대지면적 1백85평)으로 나누었다. 세대별로 약 80㎝∼1m 높이로 자연석 쌓기로 단을 주고 조경을 해 구분이 되도록 했다. 지하수는 1백30m 암반층의 물을 수중 모터로 끌어올려 저수조를 통해 공급하도록 하였으며, 난방은 심야전기 보일러로서 지중매설을 통해 전력을 공급케 했다.
정화조는 수질보전권역이기 때문에 합병정화조를 설치하였으며, 악취가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화조 앞에 맨홀을 설치하고 오수관과 하수관을 분리하였다. 이밖에 부지의 지형을 고려해 약 10평 정도씩 텃밭도 배치했다.
건축 기초공사
일반적인 단독주택의 경우 줄기초 방식이 기본이지만 튼튼한 집짓기의 기본으로서 확대기초 방식을 택했다. 건축물이 앉을 자리의 사방 외곽 1m 정도에 콘크리트 메트를 치고 3자 높이의 옹벽을 올려 되메우기를 한 후 방바닥 콘크리트 메트를 침으로써 아래위를 한 덩어리로 물어주어 기초가 허술해 벽에 금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골조공사
한옥 목구조 방식의 기둥, 보 결합방식으로 골조를 세웠다. 8치(약25㎝) 두께의 사각기둥과 보로 골조를 세우고 현대적인 트러스 공법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대들보 방식의 일자형 전통가옥의 단조로움을 현대적인 트러스 공법으로 처리해 목조 주택의 지붕 모양에 뒤지지 않는 지붕선을 만들 수 있었다.
지붕·처마 공사
황토집이나 한옥의 지붕은 대개 기와 또는 초가나 너와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현대적인 아스팔트싱글로 지붕재를 마감하므로써 고정관념을 깨고 중저가대의 황토집 보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황토와 아스팔트싱글이라는 건축 소재가 갖는 불협화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처마를 서까래와 대나무로 처리함으로써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특히 처마의 대나무 사이딩은 지붕안의 공기 순환을 자연스럽게해 주기 때문에 매우 실용적인 방법이다. (지붕재가 기와일 경우는 서까래와 부연으로 모양을 잡아주고 거실은 가천정을 만들어 대들보 시공이 가능하다.)
벽체공사
황토벽을 만드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게 싸릿대를 엮어 흙을 양쪽에서 치는 심벽방식과 담틀을 이용한 담틀방식 등이 있으나 기간과 비용, 내구성을 고려해서 기계압을 이용한 강도 높은 흙벽돌을 사용했다.
그러나 흙벽돌은 모양이 단조롭고 투박하다는 점 때문에 문양을 넣은 미려한 황토벽돌을 사용했다. 요즘 나오는 재래식 흙벽돌은 짚을 섞기도 하고,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백회나 시멘트 등을 섞어 사용하지만 모든 이물질을 제거한 순수 황토만으로 황토벽돌을 제작했다.
전기 및 설비공사
벽체 공사가 완료되기 전 전선은 흙벽에 매립하여 전기 배선을 하고, 콘센트 및 전화, 유선 등은 바닥 배선을 하였다. 물을 많이 쓰는 화장실 및 다용도실은 방수를 위하여 흙벽돌 안쪽에 시멘트 벽돌을 쌓고 방수미장 후 타일로 마감하였다. 난방은 심야전기를 이용한 전기보일러를 설치했다.
내장공사
천정은 석고보드로 마감하였으며, 벽은 황토벽돌에 메쉬(망)를 치고, 벽 미장용 황토몰탈(황토분+향나무톱밥+무기바인다)로 마감하였다. 바닥엔 80㎜ 스티로폼을 단열재로 넣고 엑셀 난방 배관 후 콩자갈을 채운 뒤 약 4㎝ 바닥용 황토몰탈로 미장하였다. 벽지는 한지벽지를 사용하였으며, 방은 한지장판, 거실은 온돌용 마루를 마감했고, 등은 고급 원목등을 설치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창호공사
외창은 우드샷시(5㎜그린유리), 내창은 조선살이 들어간 창살 목창 (창살을 가운데 두고 각 3㎜ 투명, 불투명 유리)으로 시공하여 단열과 멋을 동시에 이루었다. 문은 자체 제작한 창살문과 나왕 원목문을 사용하였으며, 현관문은 한옥 대문 형태로 자체 제작하였다.
외장공사
기초의 노출 콘크리트면은 인조석(강돌, 산성돌, 계곡돌) 등으로 마감하여 황토벽돌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벽체는 별도의 미장을 하지 않고 황토 벽돌을 그대로 살려 방수 줄눈 (황토색) 처리만 했으며, 현관 바닥은 문경석으로 마감하여 단아함을 주었다.
기타
건축 설계에 따라 매립 또는 노출 형태의 벽난로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배려도 했다. 사우나용 찜질방도 실험성이 강한 것으로 한국적인 온돌방 형태의 찜질방으로 발전시켜가고 있다.田
■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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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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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땅 지키며 지은 H빔 골조의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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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지은 집
고향땅 지키며 지은 H빔 골조의 2층 목조주택
집은 55평 규모로 실내 구조는 1층의 경우, 방 2, 거실, 주방,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엔 방 2개, 화장실이 있다. H빔으로 골조를 세우고, 벽체는 우레탄패널이 사용됐다. 외벽마감은 비닐사이딩에 적절히 벽돌을 사용했고 내벽 마감은 벽지. 건축비는 평당 2백10만원 정도로 모두 1억1천5백만원이 들었고, 조경과 담장 비용으로 1천만원이 추가로 들어갔다. 증여 받은 땅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대지 구입비용은 들지 않았다.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삼리. 10여년 전만 해도 이 곳은 어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조용한 농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떠나고 외지인들이 들어선 지금은 옛날집과 신식주택, 다세대 주택이 함께 들어서 조금은 어색한 모습이다. 농민들이 하나 둘씩 떠나면서 마을의 모습도 바뀌었다.
임명종 공점숙씨 부부는 이 마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지역 토박이. 얼마전까지만해도 채소를 재배해 성남 모란시장과 가락시장에 내다 팔아 그런 대로 괜찮은 수입을 올려왔다. 그러나 주변이 도시화되면서 이젠 옛날 같은 재미를 보지 못해 손을 뗐다. 농토는 줄고 가든이나 공장이 많이 들어서며 농사지을 여건도 함께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영농후계자였던 그도 지금은 양벌리에서 조그마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임명종씨가 지금의 집을 지은 것은 지난 95년. 결혼과 함께 분가해 집을 지었는데 집터는 몇 해전 증여 받은 땅으로 본가와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당시 농민에 한해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한시법이 적용되면서 이 때 증여를 받았다. 집은 55평 규모로 실내 구조는 1층의 경우, 방 2, 거실, 주방, 화장실, 2층에도 방 2개, 화장실이 있다. H빔으로 골조를 세우고, 벽체는 우레탄패널이 사용됐다.
외벽마감은 비닐사이딩에 적절히 벽돌을 사용했고 내벽 마감은 벽지다. 건축비는 평당 2백10만원 정도로 모두 1억1천5백만원이 들었고, 조경과 담장 비용으로 1천만원이 추가로 들어갔다. 증여 받은 땅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대지 구입비용은 들지 않았다.
증여세를 면제받았고, 건축비도 농협으로부터 장기 저리로 융자를 받아 여러모로 자금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한 때 남들처럼 고향을 떠날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고향에 남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친구들이 찾아와 ‘젊은 놈이 서울가면 할 일도 많은데 굳이 농사를 짓겠다고 우기는 게 무슨 이유냐’며 면박을 준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도 가끔씩 찾아오는 이들은 이젠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시골에 내려와 살고 싶어도 땅이 없어, 여건이 안돼 못 내려온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임명종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큰 부러움의 대상이다.田
글·사진 류재청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삼리
부지면적: 준농림전 1천3백평
부지구입년도: 92년(증여)
건축년도: 95년
건평: 55평
건물형태: 2층 H빔 목조주택
실내구조: 1층 - 방2, 거실, 주방, 화장실
2층 - 방 2, 거실, 화장실
총건축비: 1억1천만원
구조체: H빔
벽체구성: 발포우레탄 패널
내벽마감: 석고보드, 벽지
외벽마감: 비닐사이딩, 벽돌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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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