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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아름다움 돋보이는 일본의 철구조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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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주택 Japan
절제된 아름다움 돋보이는 일본의 철구조 주택
일본의 주택시장은 국내 주택시장의 내일을 보는 거울이다. 일본시장을 잘 분석해보면 우리 주택의 향후 대책을 세우는 데 적지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함께 국내에서도 최근 단독주택의 건축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안정성을 높인 스틸하우스 등 건축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으면서 국내 단독주택 시장이 다양해진 셈이다. 최근 일본의 철골축조-패널 병합구조는 지진뿐만 아니라 태풍이 심한 기후에 충분히 대비한 신개념 주택양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진과 태풍이 많은 일본 주택의 두드러진 특징은 내진성(耐震性)에 있다. 구조재뿐만 아니라 설비재의 경우에도 지진 등의 자연재해에 대비해 안전, 강도 등이 철저하게 검증된 자재를 쓴다.
예를 들어 일본에 가서 어떤 집을 방문하려면 먼저 강진에 대비해 특수 설계된 방화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이 문에는 초내진 금형설비가 장착되어 있다. 현관이나 욕실에는 안전 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건축기본법에서는 체계적인 성능시험을 통해 특정 건축재료를 법률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법률로 사용 가능한 건축재료를 명시해 자연재해로부터의 피해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에서 최근 철골구조의 주택건축이 유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일본의 주택구조는 기둥-보(post & beam) 구조방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집들이 일본에서 흔한 삼나무(스기)를 이용해 기둥을 세우고 보를 걸치는 등 전통적인 축조방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 업체에서 개량된 기둥-보 구조방식과 조립식 방식을 개발해 과학적인 집들을 짓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적인 단독주택 건설전문업체인 다이와 하우스의 경우 전통적인 구조방식의 주택공법을 응용해 철골축조-패널 병합방식의 주택을 짓고 있다. 이 방식은 철골구조(기둥)에 두 개의 내력 패널 프레임을 끼워 넣어 전체 구조를 일체화시키는 방식이다. 그런 다음 세 개의 철골이 하나로 묶인 구조(triple united system)로 주택의 안전성을 높인 것이 특징.
특히 이 철골축조-패널 병합구조는 지진뿐만 아니라 태풍이 심한 일본의 기후에 충분히 대비한 점이 돋보인다. 지진과 풍압력을 전달, 분산시키기 위해 기둥, 들보, 트러스, 뼈대 등을 고품질의 볼트로 단단하게 결합한다. 또한 지붕기초 패널과 동제 몸체의 접합에는 강제 지붕패널 접합의 show window를 사용한다. 태풍에 의한 지붕의 피해를 대비해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토대에서 주택의 하중을 보다 견고하게 지지하기 위해 동제 가로대를 사용하며, 가로대로부터의 힘을 연결해 마루속의 base에 전하는 연결 기둥에는 동제속을 이용해 내구성을 강화시켰다.
기초와 기둥을 연결하는 토대에는 용융 아연도금을 400g/m 이상 처리한 동제 토대를 쓴다. 외벽 마감재로는 DC system wool, DE system wool, DS system wool 등 세 종류를 채택해 쓴다. 이 외벽재는 모두 석면을 함유하지 않은 세라믹계다.
이처럼 안전성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주택들은 대부분 에너지 절약 설비 시스템이 설치된다.
특히 지난해 11월 14일부터 17일까지 동경 아리아케의 일본국제종합전시장(Big Site)에서 열린 ‘Japan Home Show 2000’에서는 최첨단의 에너지 절약 제품인 탄소섬유 발열체를 이용한 원적외선 난방설비, 열선저항식 측정기, 다기능 단열재 등이 선보였다. 이처럼 주택의 건축에서도 에너지 절약 시스템에 철저한 것은 70년대 세계를 강타한 바 있는 오일쇼크 이후라고 한다.
이처럼 철저한 내진, 에너지 효율 설계와 구조에 따라 지어지는 일본의 주택시장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 98년 한 해 동안 일본의 신축주택 가구수는 1백19만8천2백95가구(일본 건설성 자료)였다. 참고적으로 같은 해 미국의 주택건축 가구수는 1백61만 가구에 불과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인구는 1억2천5백만 명이고 미국은 2억7천4백만 명이다. 인구로는 미국의 50%에도 못 미치는 일본이 주택 건축 규모에서는 미국을 앞지른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에서는 매월 약 4만5천여 가구의 단독주택이 지어진다. 이에 비해 매월 다층 주택 가구수는 약 4만8천여 정도이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건축비율이 비슷하단 얘기다. 이중에서 2×4 목구조로 지어지는 가구수가 매월 6천6백여 가구에 불과한 반면 철골조-패널 병합구조를 포함한 조립주택은 약 1만6천여채가 건축되고 있다.
일본의 주택시장은 국내 주택시장의 내일을 보는 거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단독주택의 건축비율이 일본처럼 높아지는 가운데 안정성을 높인 스틸하우스 등 건축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일본 주택 문화의 전통 ‘다다미’
일본주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문화는 다다미다. 우리나라 주거에서 온돌문화가 중요하듯 이웃 일본의 주거문화는 다다미 문화인 셈이다.
최근 일본은 새로운 기능의 다다미 제품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며 한때 우리나라 온돌을 이용한 온돌 다다미가 일본내에서 크게 인기를 있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일본내 다다미 수요는 젊은층에서 조금씨 줄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지금도 전체적으로 볼 때 70%이상이 주거에서 다다미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다다미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으나 근래들어 일본문화 개방과 더불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주로 일식집 및 종교집회장 일반주거용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접는 것, 거듭해지는 것, 깔개 등의 어원을 가진 다다미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구사(인초), 돗고(짚매트), 해리(태두리/천)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종류와 디자인도 매우 다양하다.
다다미는 응접실,침실,서재 등의 용도 등 다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다미는 피질인 등심초 자리 특유의 성질로 방의 공기를 정화해 주며, 다다미 한 장에 쓰인 등심초 자리는 5백cc정도의 수분을 흡수하고, 실내가 건조하면 이를 방출시켜 실내를 적정 습도로 유지시켜 준다.
이 등심초 자리는 공기 중에 포함된 유해한 이산화질소를 흡착하는 성질이 뛰어나고 흡착한 이산화질소의 50%~80%는 등심초 자리 내에서 무해한 일산화 질소가 되어 공기 중에 환원하고 있다.
또한 등심초의 향에는 진정 효과가 있어 실내에서 삼림욕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다시말해 등심초 자리가 실내 환경을 정화해 주고 있는 셈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등심초 자리 표면에 무수한 기공이 스펀지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공기를 흡입, 배출하기 때문이다.
다다미는 일반적인 바닥 마감재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향과, 감촉, 적절한 탄력성, 동양적인 미의 매력이 있는 바닥재다. 특히 피질인 등심초 자리 자체에 적당한 보온, 보냉성과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독특한 ‘향’이 자랑이다.田
글 진선영/자료제공 일본대사관 상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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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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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2개 붙인 후 2층 목구조로 올려 지은 40평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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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 짓기
컨테이너 2개 붙인 후 2층 목구조로 올려 지은 40평 주택
이 집은 컨테이너 하우스의 상식을 깼다. 컨테이너로 지은 주택이란 것을 전혀 상상할 수 없다. 목조주택 전문시공업체인 나무와집의 문병화 사장이 사는 이 집은 두 개의 컨테이너를 나란히 붙여 1층을 만들고 그 위에 목구조를 올려 지은 2층집이다. 남양주 수동에 있는 목조주택 느낌의 컨테이너 하우스를 소개한다.
목조주택 전문시공업체인 나무와집 문병화 사장은 1970년 백련사 대웅전 공사 견습공으로 집 짓는 일을 시작한 후 사찰건축을 많이 해왔다. 건축현장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벼 다니다 40대 중반에 접어들자 어디 마땅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가족들과 함께 정착하여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리를 잡은 곳이 물골안이라 불리는 남양주 수동이다. 실개천이 감싸듯 휘돌아 가는 냇가 마을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 터는 비포장 진입로에 축사가 있던 곳이었다. 2백평을 평당 50만원에 구입한 후 50평 규모의 목재공장을 짓고 나니 막상 살림집을 지을 금전적인 여력이 없어 3×9m 크기의 중고 컨테이너 두 개를 구입해 내부를 개조하여 살림집과 식당으로 꾸몄다.
컨테이너 하우스는 공간확보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단열이 안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추웠다. 그래서 이들 컨테이너 두 동을 이용해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는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화가인 안주인 황향순씨가 외관 스케치와 설계를 한 후 본격적으로 컨테이너 집을 짓기 시작했다. 컨테이너를 두 개를 2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세워 방으로 사용할 부분 이외는 안쪽 면을 전부 텄다. 그리고 가운데 바닥을 붙여 거실과 주방으로 하였다. 방과 방 사이는 2층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을 설치한 후 지붕 트러스를 높게 하여 2×4 목구조로 2층을 올렸다.
이렇게 집구조를 세우고 온돌을 넣은 후 외벽은 미송 판제 사이딩으로 마감하고 내부는 원목과 도배로, 지붕은 아스팔트 싱글로 마감을 하니 겉보기에 훌륭한 목조주택이 되었다.
창호의 경우에는 기존 컨테이너 창호에 창문을 하나씩 덧붙여 시공하였고 방문과 가구는 문병화 사장이 운영하는 나무와집 공장에서 직접 제작하여 달았다.
이 집을 시공하여 직접 살고 있는 나무와집 문병화 사장은 “컨테이너하우스는 통풍이 잘 안되며 기존 컨테이너의 높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천장이 낮지만 시공비가 저렴하고 공사기간도 매우 짧아 경제적인 집을 지을 수 있다”며 장단점을 말한다.
이렇게 지은 컨테이너하우스는 1층 22평, 2층 18평 등 총 40평 규모로 1층에 방 2개, 2층에 방 2개가 있는 등 주택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2층은 그림을 그리는 안주인 황향순씨의 화실 겸 작업장으로 쓰고 있다.田
글·사진 김경래
■ 건축정보
위치 : 남양주시 수동면 입석리
대지면적 : 2백평
연면적 : 40평(1층 22평, 2층 18평)
구조 : 1층 컨테이너(3×9m), 2층 2×4 목구조
외부마감 : 미송 판제 사이딩
내부마감 : 벽(부분원목 및 도배), 바닥(온돌마감 후 장판)
지붕마감 : 아스팔트 싱글
창호 : 기존 컨테이너 창호에 창문 덧붙여 시공
방문 및 가구 : 나무와집 공장에서 직접 제작 시공
주방가구 : 한샘
계단 : 나왕 원목
데크 : 낙엽송
건축비 : 평당 1백60만원 정도
■ 시공 : 나무와집(031-593-5465)
가구, 창호 등 직접 제작해 집짓는 나무와집
나무와집은 나무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생각으로 집을 짓는다. 이 회사는 목조주택 시공은 물론 전통사찰 시공, 가구 및 창호 등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문병화 사장은 어린 시절 동자승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사찰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1970년에 직접 사찰건축에 참여해 목조주택을 짓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여년간 목조주택 시공을 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만 10년째 설계 및 시공을 담당하고 있는 김용훤 실장을 비롯해 20년의 경력을 갖고 있는 목수와 인테리어 경력자 등이 회사를 끌어가고 있다.
특히 나무와집은 주택 시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인테리어 장식품이나 가구 창호 등을 공장에서 직접 제작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건축비가 저렴하다.
문병화 사장은 “지금껏 많은 주택을 시공했지만 시공후 건축주와 단 한번도 불편함 없이 일을 하였다”며 그것이 나무와집의 자랑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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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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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고 나자 아들 내외도 아파트 팔고 전원주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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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짓기
집짓고 나자 아들 내외도 아파트 팔고 전원주택으로
"불과 6개월사이에 평당 1백60만원 들여 집 두 채 지었어요"
대전의 아파트에 살던 오희종씨는 올 4월 충남 금산군 수리면 수통리 적벽강변에 집을 지어 들어왔다. (월간 전원주택라이프 2000년 7월호 58쪽에 소개)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신혼인 아들 내외도 대전을 아파트를 팔고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에 전원 주택을 지어 6월 입주를 했다. 남들은 집 한 채 짓기도 힘들어 하는데 오희종씨 가족들은 불과 6개월만에 두 채의 집을 지었다. 이러한 집짓기가 가능했던 것은 개발한 스틸하우스 공법으로 저렴하게 집을 짓는 주택시공업체인 조양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희종씨의 집짓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글과 함께 소개되는 주택은 글쓴이 오희종씨의 아들 오일남씨 댁입니다.)
사람이 꿈을 가지고 살면서 자신이 생각할 때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이루어졌다면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30여년전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돈벌면 경치 좋은 곳에 기와집을 짓고 살았으면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당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30여년 동안 그 꿈마저 잊고 살다 어느날 갑자기 그 꿈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았을 때 그 감사와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머님이 소천하시고 참기 어려운 갈등이 엄습했을 때 시골행을 결심하고 강 따라 길 따라 전원주택지를 찾아나섰다. 아내도 심장질환과 경동맥 질병으로 양방과 한방치료를 받으며 전원생활을 권유받았다.
일년동안 말년을 정리하며 보낼 장소를 찾다 중개하시는 분의 소개로 충남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적벽강변에 땅을 구입했다. 건축은 직장 출퇴근 관계로 5년 정도 후에 하기로 생각했으나 포크레인으로 정지작업을 하고 토요일이나 주말마다 나무와 옥수수 호박 해바라기를 심고 가꾸니 그곳이 좋아졌다.
그동안 아내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어려움이 많아 건축을 서두르고 하나뿐인 아들 일남이도 바로 결혼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99년 금강댐이 들어선다는 소문과 함께 한차례 소용돌이가 있었지만 건축을 강행하기로 결심하고 준농림지 사용에 대한 법적 절차를 밟으며 건축을 맡길 사람을 찾던 중 적벽강을 오가는 길목에 교회와 사택을 짓고 있는 조양건축을 알게 되었다.
교회와 사택 건축을 마치고 다른 곳에 전원주택을 짓는 조양건축의 박남규 사장과 연락이 되어 상의한 결과 다른 곳에 교회 한 채를 먼저 짓고 2월 10일부터 주택 공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교회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건축주와 어려운 일이 생겨 건축이 자꾸 미루어져 불안해 하다 결국 2월 24일 녹음기를 틀어놓고 철골조 ESP단열패널방식으로 스틸하우스 1, 2층 30평을 평당 1백60만원에 짓기로 녹음으로 계약을 하였다.
박남규 사장은 이전 공사에서 건축공사비를 받지 못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계약서를 쓰지 않은 이상한 계약을 하였으니 나도 계약금을 받지 않은 이상한 착공을 한번 해보겠다”고 말하며 곧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집짓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기초공사를 하는 것을 보니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적으로 공사를 맡기고 토요일과 주일에만 둘러보았다.
전원주택을 건축할 때 관련기관의 비협조나 동네주민과의 불협화음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으나 면장님과 관련공무원들의 협조와 동네 주민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도움으로 즐거운 집짓기를 할 수 있었다.
동네 분들도 처음에는 평범한 조립식 주택을 생각했었는데 모양이 예쁜 집이 나오자 구경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비닐사이딩과 아스팔트싱글로 외관을 마무리 하고 나니 결혼을 앞둔 신부처럼 예뻤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차를 세우고 집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어갔다. 어떤 이들은 강변과 어우러진 카페로 생각하고 찾아오기도 했고 한밤중에 집구경을 하자고 찾아오기도 했다. 집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결혼을 앞둔 아들이 자신도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고 하여 그동안 대전시내에서 살던 아파트를 팔고 충남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에 있는 추부문화마을의 택지를 구입해 부리면에서 지은 집과 똑같은 공법의 집을 지었다.
이 집은 대지가 불과 90평이고 연면적은 30평이 채 안 된다. 이런 협소한 공간에 지은 작은 집이지만 2층 구조로 지었고 방이 4개나 나왔다. 철골조 ESP단열 패널방식이 아니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삼성카드 대전지점에 근무하는 아들은 출퇴근 시간이 30분 정도 걸리는데 가을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더욱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는 나를 보고 전원주택에 홀린 사람이라 말한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두 채의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신들린 듯한 일도 조양산업의 수고로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전 건축주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 해 자금압박을 받으면서도 성의껏 일을 해준 조양산업의 박남규 사장님을 비롯해 최영호 팀장 등 사모님까지 건축현장에 와서 함께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건축주와 시공자란 관계를 떠나 그들을 도와주고 격려해 주고 싶었다.
아들네 집을 지으면서는 아내와 상의하여 용을 넣은 한약을 지어 박남규 사장님에게 주었는데 그렇게 고마워하고 기뻐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대하면서 나는 매우 흐뭇했다. 박사장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제품으로 집을 지어주어 아들 내외는 6월 26일 입주를 할 수 있었다.
7월 6일 마무리 공사까지 끝내고 5개월간 정들었던 컨테이너 작업장이 크레인화물차에 실려 나갈 때는 눈물이 날 것같이 허전했다.
7월 8일 우리 가족들과 조양산업 팀들과 준공을 기념하여 저녁식사를 할 때 최영호 팀장은 그동안의 정으로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며 밖으로 나갈 때 건축주로서 보람을 느꼈으며 특히 아들 내외가 벌떡 일어나 조양산업 박사장님 내외에게 좋은 집 지어주어서 고맙다며 큰절을 할 때 매우 흐뭇했다.
현재 우리가족들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와 추부면 추정리에 집을 지어 한쪽에서는 우리 내외가 또 한쪽엔 아들내외가 살며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들이 몇 달 사이에 집을 두 채씩 지으니 돈이 많은 것으로 착각을 할 수 있으나 대전의 아파트를 매매하여 전원주택을 짓는데 무리함이 없었다.
특히 아들은 신접살림을 위해 사두었던 대전시내의 아파트를 팔고 추부면의 시골마을에 들어와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전원주택이라 하면 돈을 많이 들이고 짓는 집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직접 지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족은 남들은 턱없이 생각할 수 있는 평당 1백60만원에 그럴듯한 전원주택을 지었다. 크고 호화로운 집은 아니지만 사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는 집이다.田
■ 글·오희종 사진·김경래
글쓴이 오희종씨는 대전 한남대 관리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대전시내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올 4월 충남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에 전원주택을 지어 들어가 전원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 건축정보
위치 : 충남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 추부문화마을
대지면적 : 90평
연면적 : 29.31평
실내구조 : 1층(방1, 거실, 주방, 화장실, 보일러실), 2층(방3, 거실)
구조 : 철골조(H빔, C형강복합골조) ESP단열패널방식 스틸하우스
외벽마감 : 비닐사이딩
내벽마감 : 석고보드 위 도배
지붕 : 아스팔트싱글
건축비 : 평당 1백70만원
■ 설계 및 시공 : 조양산업(042-622-6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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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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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조건 잘 활용한 정원 아름다운 실버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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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잘 가꾼 집
자연조건 잘 활용한 정원 아름다운 실버전원주택
하루는 강원도를 다녀오다가 6번 국도가 막혀 이포대교를 건너 곤지암쪽으로 오는데 조그만 골짜기가 있어 우연히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후리란 곳이었습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세종대왕 묘자리로 물망에 오를 만큼. 예로부터 산세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합니다. 이곳을 능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아마 그것에서 연유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곳을 처음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저를 보고 지관, 또는 전원주택 전문가가 아니냐고 묻곤 합니다. 이만한 안목이면 분명 일가견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온 땅이 하나 있는데 자리를 보아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두어번 봐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지질학을 연구했다는 것 외에는 땅이나 주택에 대해선 아는 게 없습니다.
제가 이 땅을 구입한 것은 지난 97년이었습니다. 정년을 앞두고 여기 저기 집사람과 구경 삼아 3년을 다녔는데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요. 그러나 생각보다 비싸더군요. 경비도 많이 들었죠.
어떻게 보면 비경제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원래 여행을 좋아했던 터라 놀이 삼아 다니며 마음에 드는 땅이 있으면 혹시 팔려고 내놓은 게 아닌가하고 묻곤 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마음에 들면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갔죠. 특히 조용한 곳을 찾던 상황이라 자동차 소음문제를 염두에 두었는데 도로에서 389m가 떨어져야 비로소 차소리가 들리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습니다. 물론 중간에 장애물이 있느냐 없느냐, 또 있다면 어떤 장애물이 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체로 그 정도 거리면 자동차 소음은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 것은 학문적인 이론과 경험, 연구를 통해 개인적으로 얻어낸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3년을 다녔으나 마땅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강원도를 다녀오다가 6번 국도가 막혀 이포대교를 건너 곤지암쪽으로 오는데 조그만 골짜기가 있어 우연히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후리란 곳이었습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세종대왕 묘자리로 물망에 오를 만큼, 예로부터 산세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합니다. 이곳을 능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아마 그 것에서 연유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곳엔 외딴 밭이 하나 있고, 바로 아래에는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마침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나이 지긋한 분이 한 분 계시기에 그 땅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분 얘기로는 그 땅은 자기 땅이며, 이 다음에 자기의 아들이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가지고 있는 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혹시 팔 의사가 없는지를 물었으나 그 분은 일언지하에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팔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으니 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당연하지요. 자리를 보니 좌청룡우백호가 뚜렷하고 실개천이 터를 감싸고도는 것이며, 산 쪽을 보니 암반으로 되어 있어 잘만 가꾸면 전원주택지로 일품이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뒤로는 더 이상의 마을이나 민가가 없이 산으로 둘러싸인 막다른 아주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그 곳을 마음에 들어했던 나는 그 후로도 시간이 나는 대로 그 곳을 찾아갔는데 나중엔 그분이 나보다 3살 정도 위인 것을 알고, 형님으로 불렀습니다.
일이 되려고 했는지 우리는 대화 도중에 공통사항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 분이 6.25때 청주로 피난을 가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피난시절을 보냈는데, 글쎄 그 곳이 바로 제 고향이지 뭡니까. 둘은 그렇게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고, 그렇게 몇 번을 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한달. 그 분의 마음은 조금씩 기울었고, 결국은 서울에 있는 자식을 설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저는 그 땅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 때가 97년 봄으로 평당 30만원을 주고 모두 2백60평을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건평 40평(1층 30평, 2층 10평) 규모의 조적조 주택을 직접 설계 해서 지었습니다. 월급쟁이 생활이 다 그렇지만 저 역시 그런 입장에서 3남매 공부시키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그런 좋은 전원주택을 짓는데 무리가 따라 평범한 벽돌집을 지었습니다.
그래도 정원만은 잘 꾸미고 싶어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우선 온양에서 구입한 자연석으로 실개천을 따라 앞쪽으로 축대를 쌓고, 정원과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앞마당에는 잔디를 심어 손자, 손녀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했고, 마당 한쪽으로는 6평 정도의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이 연못은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맑은 물이 모이고, 다시 흐르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여느 고여있는 연못과 달리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물레방아가 도는 것은 곧 산에서 물이 유입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 겨울 얼어붙을 때를 제외하면 물레방아는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뒷마당에는 약수도 있습니다. 사철 바위틈에서 약수가 솟아오르는데 애초에는 없었던 것으로 이 곳에 와서 제가 직접 찾아내고 개발한 것입니다. 지질학을 연구했던 덕을 톡톡히 본 경우입니다.
뒷마당에는 약수 외에 조그만 계곡도 흐릅니다. 제가 이 터를 탐냈던 이유중의 하나도 바로 이 조그만 계곡 때문입니다. 인연이 되어 이런 곳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도 만들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의 선물이죠. 계곡 위쪽으로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요즘 보기 드문 깨끗한 계곡물입니다.
당시의 안목이 맞아 떨어져 지금은 아주 요긴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한 귀퉁이에 파라솔을 설치해 우리집만의 커피숍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의 커피 맛을 더욱 일품인데 손님들이 오면 꼭 이 곳에서 커피를 대접합니다.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커피, 누구나 한 번 오면 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덧 이 곳에 온 지도 3년이 되어 갑니다. 처음 그냥 밭이었던 이 곳도 그 사이 많이 변했습니다. ‘상전벽해’라고나 할까요. 요즘 젊은이들 표현대로 한마디로 ‘용 됐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런 기억보다는 참으로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습니다. 하나하나 가꿔가며,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겐 제일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이제는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친구들도 주변에 많이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처음 전원에 내려가 살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 친구들은 저의 이런 얘기와 행동에 대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비로소 제가 터를 잡고 집을 지으니까 그때서야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더군요.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깨끗한 물이 있고 그리고 주위로 친구들도 있으니 나로선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이 곳에선 늘 행복한 하루하루 입니다.田
■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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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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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 헐고 그린벨트에 지은 45층 2층 벽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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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에 지은 집
살던 집 헐고 그린벨트에 지은 45층 2층 벽돌집
설계사무소에 의뢰해 건평 45.8평 규모의 본채와 별도로 20평 규모의 부속사를 짓기로 하고 설계는 물론 허가문제도 미리 마무리 지었다. 그린벨트 지역이어서 본래 건축이 까다로운 곳이지만 원주민이기 때문에 외지인보다는 허용면적도 넓고 건축과정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 주택은 철근콘크리트로 짓기로 하고 철근콘크리트로 구조체를 세운 뒤 외벽은 벽돌로 내벽은 미장 후 도배 처리했다.
한 때 객지에 나가선 안 해본 일이 없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한 적도 여러날 이었다. 그러면서도 고향에 있는 농토를 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인데다 언젠가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객지에서 다짐했던 꿈을 이루고 다시 고향에 내려와 주말농장을 운영하며 생활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무수리. 무수리란 이름은 본래 ‘근심 없는 마을’이라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수리는 다시 윗무술과 아랫무술로 나뉘는데 김기수 이화순씨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윗무술.
민가가 많지 않은데다 큰길에서도 한참을 들어와야 하고, 진입로를 찾기도 힘들어 우연히 사람들이 들어올 가능성조차 드문 시골마을이다. 게다가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 그동안 개발이 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비교적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근심 없는 마을’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도 외부와 격리되어 변화에 둔감한데서 붙여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집은 작년 이맘 때 지었는데 인부들을 고용해 직접 지었다.
우선 설계사무소에 의뢰해 건평 45.8평 규모의 본채와 별도로 20평 규모의 부속사를 짓기로 하고 설계는 물론 허가문제도 미리 마무리 지었다. 그린벨트 지역이어서 본래 건축이 까다로운 곳이지만 원주민이기 때문에 외지인보다는 허용면적도 넓고 건축과정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
구옥을 헐기에 앞서선 당분간 기거할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8월부터는 본격적인 구옥 헐기와 터닦기에 들어갔다. 주택은 철근콘크리트로 짓기로 하고 철근콘크리트로 구조체를 세운 뒤, 외벽은 벽돌로, 내벽은 미장 후 도배 처리했다.
골조 공사를 할 때는 과거 레미콘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레미콘을 이용할 수 있었다. 벽돌은 전남 광주에서 올라온 것으로 개당 2백60원씩 모두 2만2천여장이 소요됐다. 지붕 마감은 아스팔트 싱글.
건축은 꼬박 3개월이 걸려 같은 해 11월 완공됐다. 실내구조는 1층의 경우 방 2개와 거실, 화장실, 주방이 있고 그리고 2층에도 방 2개가 있다.
김기수씨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여기저기 ‘무술농장’이라고 쓰인 푯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김기수씨가 운영하는 농장으로 3천여평이 넘는 밭을 주말농장으로 꾸몄다. 농사꾼 솜씨로 보기에 다소 어설퍼 보이는 농작물들은 이 곳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작품.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가계에 적잖은 보탬이 되고 있고, 조금씩 손님이 느는 재미에 적적함도 잊을 수 있다. 화려하진 않아도 고향엔 역시 푸근함과 넉넉함이 있다는 게 객지생활을 통해 얻은 김기수씨의 새삼스런 깨달음이다.田
■ 글·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소재지: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무수리
부지면적: 3천3백평 (대지 3백평, 전답 3천평)
건축면적: 본채 45.8평, 부속사 20평
건물형태: 철근콘크리트조
외벽마감: 벽돌
내벽마감: 미장후 벽지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실내구조: 1층-방 2개, 주방, 욕실, 화장실
2층-방 2개, 화장실, 옥상
방위: 동향
공사기간 : 99년 8월 ~ 11월
난방: 심야전기보일러
건축비: 평당 3백50만원
식수: 지하수
주변가구수: 8가구
생활권 : 퇴촌5km, 광주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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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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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 농가 임대해 욕심없이 자급자족하며 사는 산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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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산비탈 농가 임대해 욕심없이 자급자족하며 사는 산골생활
아침에 일어나 밭으로 나가 점심 무렵 돌아오고 다시 밭으로 나가 해질 무렵 들어온다. 계절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은 늘 이런 생활의 연속이다. 어지간한 사람은 생활의 불편함과 적적함. 고된 농사일 그리고 노동력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확량 등 단 며칠도 버티기 힘든 일상들뿐이다. 그러나 애당초 욕심을 버리고 아내의 건강을 위해 찹아왔던 만큼 이러한 외부 여건들은 신흥균씨에겐 문제될 일이 아니다.
자연환경이 쾌적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닥 내세울 만한게 없다. 주위로 민가가 있어 말벗할 이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기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길이 좋아 찾아오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조카가 준 냉장고를 냉큼 실어다 놓기는 했지만 아직은 무용지물이고, 저녁엔 호롱불이 백열등을 대신하는 외진 곳이다.
생활하기로 따지면 이만큼 불편한 곳도 드물다. 신문도 없고, TV도 없고, 바깥소식을 알려주는 유일한 도구는 전화와 라디오 한 대가 전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흥균씨는 이 곳에서 지낸 얼마간의 시간이 과거 어느때 보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도시에서야 항상 남과 비교되고, 남보다 앞서가야 하고, 또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으나 이 곳에선 비교대상이 없고, 보고 듣는 것이 없다보니 그저 홀가분할 뿐이다. 환갑이 내일모레이니 도시생활의 아쉬움이라든가 이런 저런 것에 대한 욕심도 사라진지 오래다.
신흥균씨가 이 곳에 온 것은 97년 4월. 아내 김순옥씨가 암수술을 받고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유로 이 곳을 택했다. 정년퇴직까지는 약 3년 정도가 남았지만 불가피하게 이 또한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이 곳은 예전에 매형이 살던 곳으로 행정구역상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도천리에 속한다. 산비탈에 자리한 농가는 스무평이 채 안될 정도의 전형적인 산골 오두막으로 이사하기 전 마루의 여닫이문을 새로 맞춘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손보지 않았다.
농가 아래 산비탈에는 1천8백여평 정도의 밭이 펼쳐져 있다. 사실 둘이 경작하기에는 적잖은 규모이나 소득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식구 먹을 만큼에 만족한다. 소득이라는 게 보잘 것 없어도 돈 쓸 일이 거의 없다보니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음식에 소요되는 기본적인 것들은 대부분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요즘 같은 여름철엔 기본적인 것 외에 마당 앞뒤로 심어진 복숭아나무가 단맛을 전해주고, 주위로 머루, 다래, 칡 등 자연 그대로의 열매들이 입맛을 돋워준다.
시계도 필요 없다. 문밖이 훤해지면 일어날 시간이고 어둑어둑해지면 하루가 끝날 무렵이다. 적당히 배고픈 시간이 식사시간인데 이제는 따로 식사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거의 일정하다.
아침에 일어나 밭으로 나가 점심 무렵 돌아오고 다시 밭으로 나가 해질 무렵 들어온다. 계절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 곳에서의 생활은 늘 이런 생활의 연속.
어지간한 사람은 생활의 불편함과 적적함, 고된 농사일 그리고 노동력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확량 등 단 며칠도 버티기 힘든 일상들뿐이다. 그러나 애당초 욕심을 버리고 아내의 건강을 위해 찾아왔던 만큼 이러한 외부 여건들은 신흥균씨에겐 문제될 일이 아니다. 그것이 문제 됐다면 처음부터 이 곳을 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양봉도 함께 하고 있다. 벌을 치는 이유도 순전히 아내의 건강 때문. 가려야할 음식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설탕이었고, 생각 끝에 시작한 것이 바로 양봉이다.
신흥균씨의 이런 지극한 정성 덕분에 3년이 지난 지금은 아내의 건강도 아주 좋아졌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데 매번 좋은 소식이다. 맑은 공기와 맑은 물, 직접 경작해 먹는 무공해 채소들, 그리고 근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여건들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신흥균씨 부부는 믿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곳은 단순히 새로운 생활 터전이 아니라 삶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준 스승과 같은 곳이다. 새로운 마음가짐, 가치관, 생활방식까지 모든 면이 자연의 가르침들뿐이다. 그날도 신흥균씨는 이름 없는 꽃들이 만발한 산비탈을 오르면 대자연의 위대함에 또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田
■ 글·사진 류재청
부동산정보
‘주천강 자연마을’ 평당 6~8만원에 분양
강원도 영월, 주천강변은 지금까지도 빼어난 자연환경이 그대로 간직된 곳.
지금이야 도로 사정이 좋아져 서울에서 불과 2시간 정도면 이를 수 있지만 예전엔 길이 불편해 좀처럼 가기 힘든 지역이었다. 이런 교통여건 때문에 지금까지도 쾌적한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신흥균씨댁 가까이에 조성되고 있는 전원주택단지 ‘주천강 자연마을’도 이런 자연의 혜택이 그대로 간직된 곳. 모두 1만2천평 규모로 총 12세대가 들어서게 되는데 필지당 면적은 6백~8백평으로 모두 준농림 임야다.
분양가격은 평당 6~8만원이며, 행정구역상 영월군 주천면 도천리에 속한다.
■ 삼보전원정보 02-485-3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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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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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가 자신의 의견 반영해 지은 전망좋은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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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은 전원주택
음악가가 자신의 의견 반영해 지은 전망좋은 전원주택
건물 구조와 외관은 물론, 창문이나 현관문의 모양, 실내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집안 구석구석 그의 생각이 반영됐다. 그 중에서도 그의 종교관과 예술적 감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현관문은 가장 대표적인 경우. 이 현관문 하나를 위해 손수 몇 십장의 밑그림을 그려보았고, 목수가 이 문 하나만을 위해서 꼬박 하루 이상을 소비해야 했다. 거실창 역시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없는 감각적인 창문들인데 모두 오숙자씨의 생각에서 비롯되어 직접 주문 제작된 창문들이다.
오숙자씨는 음악인이다. 지금은 대학 강단을 떠나 양평에 전원주택을짓고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원술랑’ ‘동방의 가인’ 등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음악인들 사이에선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오페라들.
오숙자씨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처음으로 시골에 터를 잡았던 것은 지난 97년. 대학측의 만류를 뒤로하고 창작 활동을 위해 양평에 아담한 시골집을 마련하고, 그쪽으로 모든 거처를 옮겼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그 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적잖은 심리적 부담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용기 있게, 조금은 조심스럽게 시작된 그의 시골생활 맛보기는 성공적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뒤인 지난 6월엔 그 집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가까운 곳에 새 집을 지었다. 아담했던 시골집과 멀지 않은 곳에 부지를 마련하고 전원주택을 지어 본격적인 전원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오숙자씨는 어려서부터 음악은 물론 미술, 무용에 이르기까지 예술방면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왔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끼는 이번에 집을 짓는데에 유감없이 발휘됐다.
건물 구조와 외관은 물론, 창문이나 현관문의 모양, 실내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집안 구석구석 그의 생각이 반영됐다. 그 중에서도 그의 종교관과 예술적 감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현관문은 가장 대표적인 경우.
이 현관문 하나를 위해 손수 몇 십장의 밑그림을 그려보았고, 목수가 이 문 하나만을 위해서 꼬박 하루 이상을 소비해야 했다. 거실창 역시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없는 감각적인 창문들인데 모두 오숙자씨의 생각에서 비롯되어 직접 주문 제작된 창문들이다. 내벽의 컬러나 커튼의 모양까지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감각적인 디자인들은 타고난 예술적 안목 외에도 과거 미국, 오스트리아, 일본에서 공부할 때 눈여겨보았던 외국의 주택에서 힌트를 얻었다. 특히 귀국할때 사왔던, 이제는 아주 오래된 당시의 외국 주택 서적이 많은 도움이 됐다.
떠오르는 형상이 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그리고 또 그려볼 정도로 한동안 집짓기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었다. 분명 그에겐 또하나의 창작이요, 새로운 것에 대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곳은 거실에 앉아서도 멀리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양평군 문호4리에 속하며 단지 내에 위치해 있다. 아직 여기저기서 막바지 토목공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오숙자씨 만이 유일하게 집을 짓고 제일 먼저 입주해 있다.
건축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돼 지난 6월 완공됐다. 9개월에 걸쳐 자신의 의견을 조금씩 반영하며 집을 지었다. 대지면적은 모두 2백평이며, 건축면적은 1층이 49평, 2층이 11평으로 모두 60평 규모. 실내구조는 1층엔 방 3개와 거실, 드레스룸, 욕실이 있고, 2층엔 서재가 있다.
벽체는 스틸로 골조를 세운 뒤, 1층은 경량벽돌(ACL)로, 2층은 목조주택 형식을 빌어 OSB와 석고보드로 구성했다. 내부 마감은 회벽, 외부는 드라이비트로 각각 마감하고 지붕은 아스팔트싱글로 마무리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어서 전체적으로 단열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1층 벽체를 경량벽돌로 시공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타 바닥재나 창호, 가구 등은 부분적으로 주문 제작해 획일적인 모양이나 형태에서 탈피해 실내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조경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조경업체와 상의해 자신의 생각을 많이 담았는데 심플한 구성과 관리의 편리성에 중점을 두어 설계했다. 집 뒤로는 텃밭을 조성해 여가시간을 이용해 돌보지만 경험이 부족해 결과물은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이 곳에 입주한지 아직 서너 달에 불과하지만 바로 전에 살던 집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우선은 지대가 높아 멀리 강이 보이고, 강 건너 먼 산에 이르기까지 시선이 떨어지는 아주 전망 좋은 곳이다.
창가에 앉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작곡에 열중하는 시간이 오숙자씨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 방안 가득 울리는 피아노 소리가 더욱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田
■ 글·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양평군 문호4리
부지면적: 단지내 대지 2백평
부지구입년도: 99년
건축공사기간: 99년 9월~2000년 6월
건평: 60평(1층 49평, 2층 11평)
실내구조: 1층- 방 3, 드레스룸, 거실, 주방, 화장실 2층- 서재
건축비: 평당 4백20만원
건물형태: 2층 스틸하우스
벽체구조: 1층 경량벽돌, 2층 OSB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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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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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에 중점 두고 설계 시공한 42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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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집
실용성에 중점 두고 설계 시공한 42평 목조주택
어쨌든 내 땅에 곡식을 심을 수 있게 된 것만도 기쁜 일이었다. 텃밭 한쪽에 임시로 조그만 간이 창고를 지어 놓고 쉬는 날이면 그 곳에서 머물며 밭을 가꾸었다. 그렇게 농사를 짓기 위해 2년여를 오간 뒤 비로소 올 봄 본격적인 건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조금 모은 돈을 합쳐 목조주택을 짓기로 하고 건축은 삼우하우징에 의뢰했다. 설계단계에서 부터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고 일일이 상의하면서 일을 진행해 나갔다.
좀 처럼 꾸지 않던 꿈을 꾸었다. 재래식 아궁이에 앉아 불을 지피는데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게 아주 기분 좋은 그런 꿈이었다. 꿈에 불을 보면 좋다는데… 그 꿈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생생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남편을 깨워 땅을 알아보러 나가자고 보챘다. 남편은 고단했던지 오늘은 쉬었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원주택지를 알아본다고 일요일마다 다닌지가 벌써 6개월 째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그날만은 달랐다. 어젯밤 꿈이 예사롭지 않은 게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고, 다시 남편을 흔들어 깨워 결국 함께 집을 나섰다. 이승재 김명근씨 부부가 지금의 집터를 만난 것은 바로 그날이었다. 6개월을 돌아다닌 끝에 공교롭게도 그 꿈을 꾼 날 지금의 집터를 만났다. 그 때가 98년 봄이었다.
남편이 전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보다 앞선 훨씬 앞선 95년 무렵이다. 당시 남편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잡초가 무성한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남편 얘기에 따르면 친구들과 함께 가다 그 땅을 발견했고, 함께 개간해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만이라도 재미 삼아 채소를 길러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개인 땅이든 나라 땅이든 주인 없는 땅이야 있을리 없겠지만 오랫동안 방치된 것을 보니 그냥 놀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에서 ‘의기투합’ 했다는 게 남편의 설명이었다. 남편 이승재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사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이 일을 무척 재미있어 했고,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리고 남편의 소박한 즐거움은 ‘내 땅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발전했고, 결국 6개월간의 다리품을 판 끝에 꿈을 꾼 다음날 지금의 땅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 곳은 준농림전 6백평으로 행정구역상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옥천1리에 속한다. 평당 15만원을 주고 샀는데 매도인의 상황이 다급해 비교적 싼 가격에 땅을 살 수 있었다. 땅을 살 때 가장 큰 기준으로 삼은 것은 서울과의 거리. 남편과 두 아들의 직장이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에 서울과 가깝고, 편리하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최우선 조건이었다.
그러나 땅은 샀지만 당장 집을 지을 여력은 없었다. 대다수의 서민들이 그렇겠지만 땅 사고, 집 지을 만큼 돈을 쌓아두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처럼 이승재 김명근씨 부부의 경우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서울의 아파트를 처분하더라도 돈이 부족하다보니 목돈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쨌든 내 땅에 곡식을 심을 수 있게된 것만도 기쁜 일이었다. 텃밭 한쪽에 임시로 조그만 간이 창고를 지어 놓고 쉬는 날이면 그 곳에서 머물며 밭을 가꾸었다. 그렇게 농사를 짓기 위해 2년여를 오간 뒤 비로소 올 봄 본격적인 건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 목조주택을 짓기로 하고 건축은 삼우하우징에 의뢰했다. 설계단계에서 부터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고 일일이 상의하면서 일을 진행해 나갔다.
지난 3월 중순 땅을 고르고 축대를 쌓고 토목공사가 완료된 뒤, 바로 건축에 들어가 지난 7월 말 건축이 완료됐다. 42평 규모의 2층 목구조주택으로 1층이 30평, 2층이 12평으로 실내 구조는 1층엔 방 2개와 거실, 주방, 욕실이 있고, 2층에도 방 1개와 욕실, 거실이 있다.
벽체는 OSB합판과 석고보드를 대고 단열재로는 글라스울과 스티로폼을 병행했다. 내부 마감은 실크벽지, 외부는 하디사이딩으로 각각 마감했으며 지붕은 아스팔트싱글이다.
바닥은 온돌마루로 시공했는데 시공전, 먼저 황토를 바르고 자연 건조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루시공을 마쳤다.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두고 꼼꼼히 챙기면서 집을 지었다. 이밖에 식수는 지하수,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했다.
집을 짓고 입주한지 이제 두어 달. 남편은 일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온다. 나의 전원주택과 그 앞에 펼쳐진 텃밭,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주말이면 두 아들도 서울에서 온다. 장정 두 명이 들어서니 집안이 꽉 차는 느낌이다. 이승재, 김영근씨 가족의 전원생활이 시작되었다.田
■ 글·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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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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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을 위해 횡성 산골에 지은 전망 좋은 단층 벽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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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지은 집
누님을 위해 횡성 산골에 지은 전망 좋은 단층 벽돌집
그 해 4월부터 시작된 건축은 8월쯤 완료됐으며 이국희씨 자신이 건축업 종사하고 있어 직접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총 건평은 64평으로 1층 55평, 1층 다락 4평, 지하 5평이다. 실내구조는 방 3개와 거실, 주방, 서재, 화장실 등으로 꾸며져 있고, 방 3개중 1개는 한옥 형태로 꾸몄다. 흡사 집 속에 또 다른 집이 들어앉은 형상으로 대청 마루며 처마까지 그대로 한옥 한채가 실내에 들어와 있다. 이 곳 만큼은 문이나 창문 등 실내 분위기도 모두 옛날식으로 마무리했다.
해발 5백미터의 높은 곳에 위치한 전원주택. 겨울에 눈이 쌓여 오가는데 다소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오히려 이로운 면들이 더 많다. 우선 한여름 서울처럼 열대야로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한낮의 기온 역시 서울에 비하면 그시원함이 몇 곱절이다. 파리는 있어도 모기가 없어 여느 시골집처럼 모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일도 없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상대리 이국희씨 댁. 일명 ‘웅골’로 불리는 이 곳은 횡성 시내에서도 비포장 산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 산골짜기 마을. 횡성댐 상류지역으로 마을이라고 해야 아랫동네에 서너 집이 있을 뿐 위로는 더 이상 민가가 없는 조용한 곳이다.
이국희씨가 이 곳에 땅을 마련한 것은 지난 93년. 애초 횡성 사람은 아니었으나 이 곳에 친구가 살고 있어 친구 때문에 횡성과 인연이 닿았고 이 땅 역시 친구 소개로 구입했다. 2천2백여평에 이르는 이 땅은 전, 답, 임야 등 4개의 필지가 인접한 곳으로 당시 구입 가격은 평당 1만5천원이었다.
이 터에 지금의 집을 지은 것은 땅을 사고 한참 후인 지난 99년. 산중턱을 다듬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평평하게 고른 뒤 본격적인 건축에 들어갔다. 그 해 4월부터 시작된 건축은 8월쯤 완료됐으며 이국희씨 자신이 건축업 종사하고 있어 직접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총 건평은 64평으로 1층 55평, 1층 다락 4평, 지하 5평이다. 실내구조는 방 3개와거실, 주방, 서재, 화장실 등으로 꾸며져 있고, 방 3개중 1개는 한옥 형태로 꾸몄다. 흡사 집 속에 또 다른 집이 들어앉은 형상으로 대청 마루며 처마까지 그대로 한옥 한채가 실내에 들어와 있다. 이 곳 만큼은 문이나 창문 등 실내 분위기도 모두 옛날식으로 마무리했다.
전체적인 건물형태는 소성한 벽돌을 쌓아 올린 전형적인 조적식 주택. 외부마감은 특별히 하지 않아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으며 내벽은 일명 컬러시멘트로 불리는 ‘아이코트’로 마감했다. 지붕은 샌드위치 패널에 데크라본드라는 기와를 얹었는데 철판 위에 모래를 뿌린 것으로 아스팔트싱글과는 다른 자재. 이밖에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 식수는 지하수를 사용한다.
이 집에는 현재 이국희씨의 누님이 거주하고 있다. 누님이 병중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누님에게 집을 양보했고, 누님은 이 곳에서 1년여를 보내면서 병세가 많이 호전됐다. 이국희씨는 이로 인해 아직 서울생활을 청산하지 못했고, 서울과 횡성을 오가며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요즘은 집 앞으로 흐르는 계곡을 막는 공사가 한창. 기존의 다리를 메워 물이 고이도록 해서 자연적인 물놀이 장소가 되도록 꾸밀 예정이다. 이 공사가 마무리되면 80평 규모의 초소형 저수지가 집 앞에 생기는 셈이다. 내년 여름엔 쏘가리가 헤엄치는 작은 연못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田
■ 글·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상대리
부지면적: 준농림지 2천2백5평 (전 1천2백75평, 임야 5백평, 답 4백30평)
이중 전 2백평 대지전용
부지구입년도: 93년 10월
부지구입금액: 평당 1만5천원
건축공사기간: 99년 4월~8월
건평: 64평(1층 59평, 지하 5평)
실내구조: 방 3개, 다락, 거실, 주방, 화장실
건물형태: 단층 조적조
벽체구조: 소성한 흙벽돌
내벽마감: 아이코트
지붕마감: 데크라본드
건축비: 평당 3백만원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 설계 및 시공: 횡성건설 02-907-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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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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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단된 건물 매입해 산뜻하게 마무리한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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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아름다운 집
공사 중단된 건물 매입해 산뜻하게 마무리한 전원주택
골조는 세워졌으니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고용해 직접 짓기로 했다. 자재는 을지로 자재상가에서 목수와 같이 다니면서 구입했다. 건물의 현관 앞으로는 원두막도 지었고, 정원에도 공을 들였다. 건물 뒤쪽으로는 수로를 만들어 장마철에도 대비했다. 벽체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이며 내벽 마감은 도배, 외벽은 인조석이다. 바닥재는 온돌마루, 지붕은 아스팔트싱글로 처리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 엉망이어서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 집에 대한 첫 느낌은 공사가 중단되고 한동안 방치되었던 터라 흡사 괴기영화에나 나올법한 그런 흉물스런 모습.
대충 얘기를 들어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그 정도가 심했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고개를 가로 저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감정적인 면들을 배제하고 찬찬히 뜯어보면 눈에 보이는 면들은 표면적인 상황들일뿐 근본적인 문제들은 결코 아니었다. 단순히 공사가 중단되어 시각적으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나머지 조건은 모든 것이 괜찮았다.
이관섭씨는 지대가 높고 뒤로 야산을 접해 잘만 꾸며 놓으면 좋은 전원주택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으로 카페와 전원주택들이 많지만 지대가 높아 주변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대중교통편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근처에 수목원이 있어 자연 환경이 쾌적하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항목이었다.
결국 다소의 갈등을 겪은 끝에 97년 공사가 중단된 이 흉물스런 건물을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로 대지 3백12평에 건평은 60평이다. 층별 면적은 1층이 46평, 2층이 14평이며 1층엔 방 2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이 있고, 2층에도 방이 1개 있다. 공사진척 상황은 골조만 세우고 중단된 상태였다.
계약을 한 뒤 마음이 흔들려 헐고 새로 지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폐기물 처리하는데도 상당한 비용이 들고, 공사 기간도 길어져 비용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판단되었다. 결국 처음 생각대로 공사를 재개하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골조는 세워졌으니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고용해 직접 짓기로 했다. 자재는 을지로 자재상가에서 목수와 같이 다니면서 구입했다.
건물의 현관 앞으로는 원두막도 지었고, 정원에도 공을 들였다. 건물 뒤쪽으로는 수로를 만들어 장마철에도 대비했다. 벽체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이며 내벽 마감은 도배, 외벽은 인조석을 붙였다. 바닥재는 온돌마루로 시공하고 지붕은 아스팔트싱글, 그리고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 식수는 지하수를 사용한다. 거실 전면을 커다란 통유리로 시공해 맞은편 죽림산이 잘 보이도록 했다.
처음 공사가 중단돼 흉물스러웠던 집은 차츰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외벽마감재가 붙여지고, 주변으로 정원이 어느정도 정리되자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새집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붉은색 계통의 외벽은 초록빛 정원과 대비를 이루며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사를 시작한지 세달쯤되어 건물이 완성됐다. 건축비용은 평당 2백90만원 정도로 모두 1억7천4백만원이 소요됐다. 여기에 조경공사 비용 3천만원과 부지구입비용 2억1천만원을 포함해 총 4억원 이상이 소요됐다. 마음의 결정단계에서부터 공사를 시작하고 마칠 때까지 적잖은 심적 부담과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이런 어려움들은 입주하던 날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당시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올핸 오이도 심고, 수박, 참외도 심어 여름내 따먹었다. 아직 농사 경험이 많지 않아 순을 제대로 질러주지 못해 열매들의 모양새가 조금은 우습지만 모두 좋은 경험이다. 이번 가을엔 김장용 배추에 도전해볼 참이다. 이관섭씨의 여름이 그렇게 지나고 있다.田
■ 글 ·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소재지: 경기도 포천군 소홀읍 직동리
부지면적: 대지 3백12평
부지구입 금액: 2억1천만원
건축면적: 60평(1층 46평, 2층 14평)
건물형태: 철근콘크리트조
내벽마감: 벽지, 루바
외벽마감: 인조석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2층- 방 1개, 거실
공사기간 : 97년 7월~10월
건축비: 평당 2백90만원
난방: 심야전기 보일러
식수: 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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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