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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하는 아내를 위해 지은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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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집
발레하는 아내를 위해 지은 2층 목조주택
전북 구이면 항가리 모악재에 자리한 이 집은 발레를 하는 아내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때문에 건물은 주거공간인 본관과 발레 연습실인 별관, 이렇게 두 개의 건물로 구성됐다. 주거공간으로 구상된 본관은 최대한 전원주택의 이미지를 담아내도록 했다. 외관에 있어서는 건물을 지면과 많이 이격시키고, 층고를 최대한 높여 이층건물이 더욱 웅장해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지면과 현관입구의 이격은 목조계단을 설치해 보완했으며, 다시 계단의 폭으로 생겨난 공간은 현관처마를 늘이고 바닥을 데크로 처리, 차를 마시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어머니가 양팔을 벌려 사방 몇 백리의 너른 들녘을 감싸안고 있는 모습의 모악산, 여기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구이ㆍ금평ㆍ안덕저수지를 채우고, 만경강과 동진강으로 흘러들어 호남평야를 넉넉하게 해준다.
전라북도의 중심에 위치해 바로 호남의 어머니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모악산은 정상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다해서 ‘모악’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러한 모악산이 아이를 품은 듯 포근히 감싸안고 있는 마을이 있다.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예술인 마을 ‘모악재’. 오랜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히 형성된 이곳은 18여년 전 처음 이곳을 찾은 한 미술가를 시작으로 예술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지금의 부락을 이뤘다.
때문에 이곳은 구옥과 신옥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서성운, 손윤숙부부가 예술인 마을을 찾은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무용을 전공한 부인이 전주에 위치한 전북대학교 교수로 임명되면서 그 가족은 난생처음 호남이라는 낯선 땅을 밟게 되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기에 처음 이곳에서의 생활공간은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또 생활하기에 조금은 편한 아파트가 선택됐다.
서울의 탁한 공기에 찌들었던 그들이었기에 중소도시라고는 하지만 아직 맑은 공기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래 그렇게 만족하고 한동안을 아파트에서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는 법. 얼마가지 않아 그들은 더 맑고 상쾌한 공기와 숲이 우거진 전원을 갈망하게 됐다. 또한, 끝임 없는 연습을 필요로 하는 발레를 하는 부인을 위해서도 개인 연습실을 마련할 수 있는 곳으로의 이주가 필요했다.
아파트에서는 활동이 많은 발레 연습실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 결국 마땅한 장소를 찾다가 이곳 예술인 마을을 찾게 된 것이다.
길게 뻗은 산자락이 포근히 감싸안고 있으며,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는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마을, 게다가 삶의 방식이 비슷한 이들이 마을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예술인 마을은 그들에게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그곳의 부지 4백5평을 당시 가격 평당 35만원에 구입했다.
집은 전원주택의 느낌이 가장 많이 드는 목조주택이 선택했다. 그는 두 개의 목조건물을 지어 하나는 가족을 위한 주거공간을 꾸미고, 나머지 하나는 아내를 위한 연습실로 꾸밀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영성목조주택건설의 김화수씨에게 건축을 의뢰했다. 공사는 99년 4월에 시작됐다. 기초공사는 능선에 계단식으로 개간된 밭이었던 부지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
때문에 예전에 밭고랑이었던 석축이 앞마당을 자연스레 주차공간과 정원으로 공간구분을 하고있으며, 얼마만큼의 세월을 머금었을지 가늠할 수 없는 이끼 낀 석축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집에 운치를 더한다.
주거공간으로 구상된 본관은 최대한 전원주택의 이미지를 담아내도록 했다. 외관에 있어서는 건물을 지면과 많이 이격시키고, 층고를 최대한 높여 이층건물이 더욱 웅장해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지면과 현관입구의 이격은 목조계단을 설치해 보완했으며, 다시 계단의 폭으로 생겨난 공간은 현관처마를 늘이고 바닥을 데크로 처리, 차를 마시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실내는 거실을 1,2층 개방형으로 구획, 시원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그러나 동시에 매입형 보조등을 다수 설치, 동시에아늑한 분위기도 연출했다. 그리고 침실 및 서재 등은 모두 2층에 구획되었는데 이러한 공간들의 천장은 모두 지붕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하이실링으로 처리했다.
30평 규모의 별관은 화장실과 탈의실로 약간의 공간을 할애하고 나머지는 모두 발레연습공간으로 구획했다. 그리고 자신의 동작을 보면 연습할 수 있도록 사면에 전면거울을 설치하고 바닥에는 발레용 매트리스를 깔았다.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전북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예술인 마을 ‘모악재’
부지면적: 4백5평
부지구입년도: 98년 5월
건축형태: 2×4 2층 목조주택
건축면적: 총 88평(본관 58평, 별관 30평)
공사기간: 99년 4월~8월
실내구조: 본관 1층-방1, 주방 겸 식당, 거실, 화장실
2층-방3, 거실, 화장실 별관 화장실, 탈의실, 연습실
골조: 본관 2×4 수입목, 별관 2×6 수입목
외벽마감: 시멘트사이딩
내부마감: 방화석고보드, 목조루바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바닥재: 본관-1층 온돌마루, 2층 플로어링 별관-플로어링 위에 발레용 매트
단열재: 유리섬유
창호재: 시스템창호(미국산)
난방시설: 기름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건축비: 평당 3백만원(조경 별도)
■ 설계: 명성건축사사무소 063-253-5131
■ 시공: 명성목조주택건설 018-62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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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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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사상과 전통 공법의 조화 ‘48평 목구조 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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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로 지은 집
풍수 사상과 전통 공법의 조화 ‘48평 목구조 흙집’
현대화된 기계를 이용해 재단된 뉴송(뉴질랜드 소나무)을 약 20여일 간 강제 건조(찜목)시켜 들여왔다. 이는 시공후 목재의 수축과 변형을 사전에 줄여보고자 하는 건축주와 시공사의 고려였다. 입주(立柱)란 단순히 기둥을 세우는 작업만이 아니라 기둥의 머리에서 도리와 보를 결합시켜 건물의 뼈대를 형성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도 선조들의 건축의식을 반영했다. 세우는 나무는 가지 쪽이 위로 향하도록 하고, 누이는 나무도 가지쪽이 안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이는 선조들의 위로의 지향성과 안으로의 지향성을 의미한다.
여주군 가남면 본두리에 위치한 이재웅씨댁은 기획에서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과정이 남달랐다. 우선은 집터 선정이 그랬고, 건축 과정에서도 풍수사상을 바탕으로 종가의 꿈을 실현키 위한 건축주의 정성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자식에게 집을 대물림하고 손자가 그 집을 이어받아 하나의 종가를 이어가려는 꿈의 결정체는 지난해 5월부터 시작돼 이후 7개월 가량 진행됐다. 건축에 직접 참여하며 모든 실무 과정을 직접 이끌었던 행인흙건축 이동일 사장의 글을 싣는다.
집터는 지관(풍수)를 통해 구입한 임야의 아랫자락에 위치하며 집터 앞의 공터가 넓게 트여있다. 산자락 아래로 길게 혈(穴)이 뻗어 있었으며, 그 혈을 중심에 두고 집터가 앉았다.
집터 안에서 건물의 위치와 방향을 정하는 일을 좌향이라 하는데 좌향이란 국혈을 중심으로 각 방위의 길흉을 살피는 방법이다. 이로 인해 건축물의 전체적인 향은 북향이 되었다. 좌향의 기준점인 혈 중앙에 어르신이 기거할 안방이 배치되었으며 좌로는 거실과 방, 우로는 주방과 화장실 등 물 쓰는 공간이 배치되었다.
기초 공사
기초 공사의 관건은 혈(穴)을 보호하는 기초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옛날 집들처럼 구들난방이라면 주추방식의 기초공사가 가능하겠으나 심야전기난방방식이란 점 때문에 콘크리트 기초공사가 불가피 했다.
봉곳한 혈(穴)을 그대로 두고 터파기를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혈 하단부의 경사면을 잡석으로 채우고, 물끊기 바닥 콘크리트 위에 옹벽을 세우고 확대기초로 마감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집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한 물끊기 작업과 혈(穴)로 인한 좌·우의 균열을 방지하기 위한 기초공사에도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다.
입주(立柱)
콘크리트 기초 위에 간이 주추를 앙카로 고정했다. 전면 툇마루 원형기둥에는 원형 주추를 사용했고, 본채는 마름모꼴의 사각 주추를 사용했다. 주추공사가 완료되면서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예전엔 원목을 들여와 치목이라 하여 현장에서 목자재를 가공하였다. 하지만 현대화된 지금에 있어 재단된 뉴송(뉴질랜드 소나무)을 약 20여일 강제 건조(찜목)시켜 자재를 들여왔다.
이는 시공후 목재의 수축과 변형을 사전에 줄여보고자 하는 건축주와 시공사의 고려였다. 입주(立柱)란 단순히 기둥을 세우는 작업만이 아니라 기둥의 머리에서 도리와 보를 결합시켜 건물의 뼈대를 형성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도 선조들의 건축의식을 반영했다.
세우는 나무는 가지 쪽이 위로 향하도록 하고, 누이는 나무도 가지쪽이 안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이는 선조들의 위로의 지향성과 안으로의 지향성을 의미한다.
지붕·처마 공사
지붕의 경사도는 45도를 유지했으며 팔작지붕으로 구성했다. 전체적인 지붕공사는 트러스로 형태를 갖추고 거실 부분은 가천장을 만들어 마룻대(종도리)를 얹었다.
처마의 네 귀를 들어올려 한옥의 지붕선을 살리고 서까래와 부연으로 이중 처마를 만들었다. 처마 마감재는 깔끔한 마감을 위하여 루버를 사용하였다. 지붕재는 한식기와를 사용하였으며, 용마루를 높게 하고 착고를 사용해 웅장해 보이도록 했다.
벽체 공사
난방 바닥 높이 만큼(약 20㎝) 시멘트 벽돌로 쌓은 후 흙벽돌 쌓기를 하였다. 300×200×140 흙벽돌을 외벽은 뉘여쌓기, 내벽은 세워쌓기 하였다. 목기둥과 흙벽돌 사이는 10㎜ 압축스티로폼을 끼워 넣어 목재의 수축시 발생하는 줄눈의 이탈현상 및 틈 발생을 최소화시켰다.
창호 공사
외창은 우드샷시, 내창은 북미산 홍송 목창으로 시공하였다. 외창은 16㎜ 페어그라스 유리, 내창은 3㎜ 불투명+조선살+3㎜투명유리로 하였다. 처짐 방지와 왜소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2치×6치의 가창틀을 만들어 보에 고정하였다.
일반적인 창의 높이가 1m20㎝임에 비해 1m 40㎝로 커졌다. 방문은 홍송 목문으로 하였으며, 현관문은 철대문으로 하였다.
전기 및 설비 공사
전등은 천장 배관, 콘센트는 바닥 배관을 하였으며, 전등은 원목창살등으로 마감하였다. 1백50여m 깊이의 지하수로 식수를 삼았다. 난방은 본채는 심야전기 보일러, 별채는 구들로 나누었다.
본채는 건축주의 요구에 의해 화장실과 다용도실 등에도 바닥난방 또는 스팀장치를 설치하였다. 이로 인해 심야전기 보일러의 용량이 부족한 현상이 나타났다.
외장·외부 공사
목재는 오일스텐으로 마감했고, 외벽은 흙벽돌을 쌓은 후 줄눈으로 마감했다. 기초콘크리트면은 인조석으로 마감했으며, 현관 계단은 포천석으로 마감 지었다. 건축물의 사방 1m 폭을 화강암 경계석으로 구분하여 토방을 만들었다. 토방은 백시멘트로 마감지었다.
내장 공사
거실 천장은 마룻대(종도리)를 얹어 서까래로 경사천장을 만들고 루버로 마감했다. 벽체는 황토미장 후 거실은 실물낙엽 한지벽지로, 방은 닥나무 벽지로 각각 마감하였다. 거실과 주방은 온돌마루로 마감하고, 방은 한지 장판으로 시공하였다.
별채 - 구들방과 정자
6평 규모의 별채를 두었다. 3평 크기의 구들방과 3평 크기의 정자를 배치했다. 구들방 뒤에는 아궁이에 가마솥을 걸 수 있도록 하였으며,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메주를 쑤거나 손님이 왔을 때 쓰임이 있도록 구성했다. 정자는 난간을 하여 아늑함을 주었고, 댓돌을 놓아 운치도 살렸다.
툇마루와 발코니
실 건축면적에서 제외된 툇마루와 발코니가 약 15평 정도를 차지했다. 전면 툇마루는 폭이 약 2m 정도로서 원형 기둥과 지붕의 일체형으로 조선시대 양반집 형태의 고풍스러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발코니는 산쪽에 위치해 있으며, 전망을 해치지 않도록 발코니 샷시로 보완하여 실용적인 공간이 되도록 했다.田
■글 이동일/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본두리
전용면적 : 임야 2백평
건축구조 : 단층 목구조 황토벽돌집
지붕사양 : 한식기와
공사기간 : 2000년 5월∼2000년 12월
건축면적 : 본채 42평, 별채 6평(건축물대장상 본채면적 60평)
실내구조 : 방 3, 주방, 거실, 화장실2, 다용도실 / 별채 방1, 정자
식수 : 지하수(지하 150m)
난방 : 심야전기보일러 및 구들
■ 설계 및 시공 : 행인 흙 건축 031-335-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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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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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인부로 직접 참여해 지은 2층 목구조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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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짓기 경험
건축 인부로 직접 참여해 지은 2층 목구조 주택
내가 건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된 계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평생에 한번 지을까 말까하는 내집 짓는 일에 직접 참여한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살다보면 나중에 집을 보수하게되는데 보수가 필요할 때 정확하게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몸은 고되더라도 아르바이트치고는 적잖은 용돈 벌이가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일이 시작되고 보니 이 일은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는 막 일이었고 여러가지로 힘든 일이었다.
최흥교 박금례씨 부부는 지난해 김포 대곶면에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그동안은 이 곳과 가까운 양천리 한옥에서 살았었는데 집이 노후한데다 위풍이 세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러던중 지난해 대곶면 오리산리에 대지 1백24평을 4천만원에 구입, 터전을 마련하고 새 집을 지었다. 이번 건축에는 아들 최종오씨의 노력이 컸는데 사전 준비 단계는 물론 건축 과정에서도 직접 인부로 참여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경험했다. 자신의 전원주택을 지으면서 느낀 최종오씨의 글을 정리해 실었다.
집 짓는 일에 별 관심이 없던 나였기에 당초 새 집을 짓겠다는 부모님의 의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부모님은 내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보기 좋은 그런 집보다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존의 가옥 형태를 선호하셨는데 일종의 슬래브식 벽돌집이었다.
물론 다른 소재의 집을 지으려면 경제적으로 적잖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평생에 한 번 짓는 집인데’라는 생각을 하면 슬래브 주택은 영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고, 99년 겨울부터는 본격적인 자료 수집에 나섰다.
수도권 일대를 직접 방문해서 자료를 수집하며 공부를 시작했고, 수집된 자료를 정리해 부모님에게 설명 해드리며 이해시켜드렸다. 그러나 그 해를 넘기고도 결론은 나지 않았고 주택을 지어야하는 시점은 점점 임박해 왔다.
하루는 부모님을 모시고 목조주택 현장을 방문했는데 그 날 밤이후 비로소 부모님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는데 결국 목조주택을 짓기로 했다. 남은 문제는 건축업체 선정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고 몇 군데 가설계를 의뢰하고 견적을 받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운봉산업개발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견적서가 단순히 자재의 종류와 건축비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축주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방면에서의 노력과 성실성이 부가적으로 베어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당시 아버지는 아들인 내가 직접 건축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셨는데 운봉산업개발 사장님은 이를 쾌히 승낙했다. 나 역시 내 손으로 내 집을 짓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고 내가 건축에 참여하니 아버지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놓으시리라는 생각 때문에 선뜻 동의했다. 모든 시공은 건축업체에 위탁되고 나는 공사 기간동안 이 업체에 고용된 직원 형태로 일하게 되었다.
내가 건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된 계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평생에 한번 지을까 말까하는 내집 짓는 일에 직접 참여한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살다보면 나중에 집을 보수하게되는데 보수가 필요할 때 정확하게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몸은 고되더라도 아르바이트치고는 적잖은 용돈 벌이가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일이 시작되고 보니 이 일은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는 막 일이었고 여러가지로 힘든 일이었다. 첫째는 인근 주민들과의 사소한 마찰이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는데 건축에 직접 참여 하다보니 이 문제는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
두 번째는 현장에서 쓰는 용어들이 도대체 무슨 말이지를 몰라 여러 번 되물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전체적인 공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추후 집의 완성된 형태를 가늠할 수 없어 일하면서 내내 답답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집의 형태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할 때의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중심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중심이 될 때 가장 좋은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기 위해선 집이 단순히 부의 상징물이 아닌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그동안 건축을 하면서 많은 공부를 하는 중에 좋은 집에서도 집 때문에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집에 대한 자랑, 나에 대한 자랑으로 집 구경 온 사람들로 하여금 얼굴 한가득 웃음을 감추지 못하신다.田
■ 글 최종오 / 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오리산리
부지면적: 대지 1백 24평
부지구입년도: 99년 5월
부지구입금액: 총 4천만원(평당32만원)
건물형태: 2×4 2층 목조주택
건축면적: 42평(1층 28평, 2층 14평), 주차장 9평 별도
공사기간: 2000년 3월 중순 ~ 6월초
데크면적: 3.5평
실내구조: 1층-방2, 거실, 주방, 화장실2, 다용도실, 창고
2층-방3, 거실, 화장실
벽체구조: 외부 OSB, 내부 석고보드
단열재: 글라스울
내벽마감: 석고보드 우에 실크벽지
외부마감: 하디 사이딩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바닥재: 홍송 온돌마루(거실 및 주방), 황토장판(방)
난방형태: 가스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건축비: 평당 2백80만원(심야전기보일러, 데크 비용 포함)
■ 설계 및 시공: 운봉산업개발 02-2646-4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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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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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당 2백50만원에 지은 캐나다식 단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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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은 전원주택
평당 2백50만원에 지은 캐나다식 단층 목조주택
내부 구조는 방 3개에 거실과 주방, 다용도실, 화장실 등으로 구성하고 주택의 중심에 거실과 주방을 배치한 뒤 양쪽으로 안방과 나머지 방들을 배치했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는 국산 적벽돌을 쌓아 경계를 구분했는데 다소 거친 듯한 벽돌 질감이 오히려 세련미 넘치는 실내 포인트가 됐다. 내부 벽면 마감은 실크벽지와 일반 고급벽지를 병행해 밝고 깔끔한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했으며 다만 거실 천정은 원목 루버로 마감 해 또 하나의 포인트를 만들었다.
신동규 김미경씨 부부는 지난해 구옥을 헐고 단층 목조주택을 지었다. 기존의 구옥이 흙벽에 스레트 지붕의 옛날 집인데다 지은 지도 이미 30년이 넘었기 때문에 신축이 불가피했다.
이 곳은 30년을 넘게 살았음에도 그동안 지상권만 가지고 있어 집만 내 것 일뿐 땅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을 5년전 이 땅을 구입해 비로소 완전한 집주인이 됐으며 당시 준농림 임야 3백평을 평당 25만원에 구입했었다.
마을 외곽에 위치한 데다 집 뒤로 야트막한 야산에 접해 있어 주변환경이 쾌적하고 조용한 편이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3리에 속한다.
건축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됐다. 구옥을 헐고 토목공사에 들어갔는데 원래 집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에 토목공사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건축은 시공업체와 충분한 상의를 거쳐 40평 규모의 단층 목조주택을 짓기로 했다. 단층일 경우엔 집 모양이 예쁘게 나오기 어렵다는 시공업체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연로하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점을 감안 단층을 고수했다. 설계는 시공업체측에서 제시한 몇 가지 도면중 하나를 선택해 실정에 맞도록 약간의 수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지형의 단 차이를 그대로 살려 위 단에 집을 앉히고 지하엔 차고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공사는 세달이 안되어 10월쯤 마무리됐다. 내부 구조는 방 3개에 거실과 주방, 다용도실, 화장실 등으로 구성하고 주택의 중심에 거실과 주방을 배치한 뒤 양쪽으로 안방과 나머지 방들을 배치했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는 국산 적벽돌을 쌓아 경계를 구분했는데 다소 거친 듯한 벽돌 질감이 오히려 세련미 넘치는 실내 포인트가 됐다.
내부 벽면 마감은 실크벽지와 일반 고급벽지를 병행해 밝고 깔끔한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했으며 다만 거실 천정은 원목 루버로 마감 해 또 하나의 포인트를 만들었다. 바닥재는 거실과 주방은 체리 온돌마루, 방은 민속 장판으로 각각 마감했다.
외부 벽체는 하디사이딩으로 마감하고 하단의 경우엔 인조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지붕 마감은 아스팔트싱글. 이밖에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했고 식수는 기존 지하수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추가로 경비가 들어가지 않았다.
집을 예쁘게 지은 만큼 조경에도 신경을 써 앞마당에 잔디를 깔고, 진입로쪽과 대지 경계면엔 자연석을 쌓아 차이를 분명히 해주었다. 산과 접해 있는 집 뒤쪽도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나지막이 돌을 쌓았다. 건축비는 평당 2백50만원 정도가 들었다.田
■ 글·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 3리
부지면적: 준농림 임야 3백평(이중 2백평 대지전용)
부지구입년도: 95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25만원
건물형태: 캐나다식 2×4 단층 목조주택
건축면적: 40평
공사기간: 2000년 8월~10월
실내구조: 방3, 거실,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단열재: 글라스울
내벽마감: 벽지(거실 및 방), 원목 루버(거실 천정), 엑사판(욕실 천장)
외부마감: 하디사이딩, 인조석(외벽 하단)
바닥재: 체리 온돌마루(거실), 민속장판(방)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기존 사용하던 지하수
건축비: 평당 2백50만원
■ 설계 및 시공 : 좋은집 031-338-6633
홈페이지 www.jpenz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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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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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쌓고 너와 얹어 내 손으로 지은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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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지은 집
통나무 쌓고 너와 얹어 내 손으로 지은 전원주택
이 집은 다소 이국적이다. 특히 지붕선이나 현관입구 및 돌출형 창의 처리는 미국식 통나무 주택의 양식을 그대로 표출한다. 이에 반해 실내 평면배치에 있어서는 다분히 한국적 사고가 깃들여 있다. 특히 주방 및 안방을 거실에서 보이지 않도록 계단과 기둥으로 교묘히 가린 것은 유교적 사고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의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내 중앙에 곡선미를 극대화시킨 계단이다. 나무의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는 기둥을 감고 오르는 이 계단은 차지하는 공간이 적고 그 모양에 있어서도 특이해 시각적인 미를 한층 높여 준다.
경기도 동남부에 자리한 여주는 경기도 내에서 서울과 비교적 먼 거리에 있어 도내 다른 군들에 비해 도시성장이 느린 편이다. 그러나 토양이 비옥하고 평야가 발달해 있어 예로부터 농사가 발달됐다.
지형은 대개가 노년기 구릉이 기복되고, 그 구릉사이에 평지가 널리 전개되어 이색(李穡)이 ‘들은 평평하고 산은 멀다(野平山遠)’ 라고 표현한 그대로이다.
그리고 여주 한복판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며 남한강은 이 고장의 역사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는데, 한강 상류이며 이 고을 사람들이 여강(驪江)이라 부르는 남한강은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지며 그 수려함이 하도 뛰어나 문장가들이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지금의 여주땅이 비록 강이 막히고 도시가 들어서 옛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신륵사의 종소리는 천년을 깨우고 절 앞을 흐르는 여강은 여전히 예전의 잔영이 남아있다.
이곳 여주땅 저 한구석 삼밭골에 자연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통나무집이 들어섰다. 마을에서도 한참을 올라가 너른 들녘에 우뚝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통나무집은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아가는 손익돈씨가 손수 지은 집이다.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농부로 살아가는 손익돈씨는 여주군 여주읍 월송리 토박이다. 한때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푼 욕심에 반포에서 3년여 동안을 생활해보기도 했지만 그는 역시 고향을 떠나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금새 보따리를 챙겨 고향으로 돌아왔고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일구며 살기를 결심했다. 그리고, 이곳 삼밭골에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가 지은 집은 통나무집이다. 나무와 흙의 자연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전통한옥에서 나고 자란 그는 나무된 집에 왠지 친숙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통나무집이다. 나무의 자연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통나무집. 이 집은 손익돈씨가 손수 지었다.
직접 통나무를 구입했고 몸통만한 통나무를 쌓아올리기 위해 평소 농사일에 사용하던 트랙터를 개조해 기중기로 이용하는 기지도 발휘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집이 건축주의 단순한 생각만으로 그렇게 쉽게 지어진 집은 아니다. 이 집을 짓기까지 건축주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강원도 횡성에 있는 전통직업전문학교 프로과정을 수료했으며 또 통나무집을 짓는 곳이 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품이라도 팔면서 지어지는 과정을 유심히 살피고 공부를 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얻어진 경험을 토대로 지은 것이다. 그래서 이 집은 여는 전문가가 지은 집 못지 않다.
이 집은 다소 이국적이다. 특히 지붕선이나 현관입구 및 창의 처리는 미국식 통나무 주택의 양식을 그대로 표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의 설계모태는 미국의 통나무주택시공업체인 테톤 픽스(Teton Peaks Log Homes)의 스텐다드 모델이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나 실내구조에 있어서 미국식 통나무 주택을 많이 모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실내 평면배치에 있어서는 다분히 한국적 사고가 깃들여 있다. 특히 주방 및 안방을 거실에서 보이지 않도록 계단과 기둥으로 교묘히 가린 것은 유교적 사고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손님에게 부엌과 안방을 보이기 꺼려했는데 이는 집안 여인이 주로 있는 장소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사고의 발로이다.
이 집을 직접 구상하고 시공한 건축주 손익돈씨는 유교적 환경에서 자랐다. 그리고 이러한 유교적 사고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주택양식인 전통한옥에서 오랫동안을 생활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에 오히려 익숙하다. 그래서 집의 평면구성을 할 당시 그의 이러한 사고가 의년 중에 반영된 것이다.
이 집의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내 중앙에 곡선미를 극대화시킨 계단이다. 나무의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는 기둥을 감고 오르는 이 계단은 차지하는 공간이 적고 그 모양에 있어서도 특이해 시각적인 미를 한층 높여 준다. 이 계단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은 동네에서 벼락을 맞은 은행나무를 건축주가 직접 다듬어 만든 것이라 한다. 때문에 조금은 거칠지만 나무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자연미가 돋보인다.
계단에 사용된 은행나무와 국산 소나무를 제외하고 이집에 사용된 목재는 모두 미국에서 생산, 수입된 더글러스 퍼이다. 평균수명 1백20년 정도의 10인치 규격의 하트우드로 목재구입에 들어간 비용이 만만찮다.
그러나 이러한 목재는 나이테가 조밀해 그 견고성이 탁월하다. 하트우드란 나이테의 중앙부를 포함하고 있는 목재를 의미하는데 이는 통나무의 심재를 증명할 뿐만 아니라 목재의 갈라짐이 이 중앙부를 가르지 못하기 때문에 목재의 견고함을 한층 높여 준다.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옂군 여주읍 월송리
용도지역: 준농림 전
건축면적: 49평(1층 29평, 2층 20평)
건물형태: 2층 통나무주택
실내구조: 1층-거실, 방2,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2층-작은방 2, 화장실
벽체구조: 오일스텐 처리된 미국산 더글러스 퍼
내벽마감: 루바
바닥재: 온돌마루
지붕마감: 아스팔트 싱글
난방형태: 심야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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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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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백색 깔끔한 외관 돋보이는 2층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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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며 지은 집
회백색 깔끔한 외관 돋보이는 2층 스틸하우스
주택은 지난해 7월 말부터 공사에 들어가 10월 초에 완료됐다. AN홈스틸에 의뢰해 연면적 47평 규모의 2층 스틸하우스를 지었으며 각각 1층이 36평, 2층이 11평이다. 1층엔 방 3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등이 있고, 2층엔 방 1개와 거실이 있다. 설계는 건축주 조용운씨가 캐나다의 설계도면을 들여와 내부 구조나 분위기를 실정에 맞게 약간의 수정을 거쳐 완료했다.
조용운 김호경씨 부부는 서울 순화동 한 지역에서만 30년을 살았다. 그것도 단독주택에서만 30년을 살았는데 이는 애초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데다 체질적으로 아파트 생활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만큼 나이가 들면 시골에서 살게 될 것이란 계획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결국 지난해 말 전원주택을 마련해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몇 년에 걸쳐 다리품을 판 끝에 자리 잡은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입석 2리. 준농림 임야 5백평을 평당 15만원씩 99년 5월 구입했는데, 단독 필지가 아니라 개발이 진행중인 5천평 규모의 단지 중 첫 번째 필지를 분양 받았다.
마을 외곽에 위치한데다 막다른 길 끝에 자리 잡고 있어 한적한 편이며, 주변에 축사나 오염원이 없어 자연 환경도 우수하다. 게다가 수동농협이 위치한 생활권이 승용차로 불과 5분 거리에 불과해 생활하는데도 큰 불편이 없다. 다만 민가가 1채 뿐이나 개발중인 단지가 분양이 완료되면 7~8세대가 더 들어설 것으로 보여 크게 적적함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까지는 입지 여건이나 건축물에 대해 모두 만족스럽게 생각하는데 이는 그동안 부단히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관련 서적을 두루 섭렵했음은 물론 관련 전시회 역시 빠지지 않고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건축을 앞두고는 잘 지어졌다는 집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건축주로부터 의견도 들어보는 등 남다른 적극성을 보였는데 몇 년을 그러고 보니 반전문가가 되었다.
주택은 지난해 7월 말부터 공사에 들어가 10월 초에 완료됐다. AN홈스틸에 의뢰해 연면적 47평 규모의 2층 스틸하우스를 지었으며 각각 1층이 36평, 2층이 11평이다. 1층엔 방 3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등이 있고, 2층엔 방 1개와 거실이 있다.
설계는 건축주 조용운씨가 캐나다의 설계도면을 들여와 내부 구조나 분위기를 실정에 맞게 약간의 수정을 거쳐 완료했다.
전체적으로 밝고 환한 분위기 연출을 위해 외관에선 흰색과 회색을 적절히 배합해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편, 단조로움을 배제하기 위해 지붕 일부는 데크까지 처마를 내려 웅장함을 강조했다. 구조체는 아연도금 강관이며 여기에 안팎으로 OSB 합판을 대어 벽체를 구성하고 외부는 시멘트 사이딩, 내부는 석고보드 위에 수성페인트로 각각 마감했다.
거실과 주방의 바닥재는 국산 체리 온돌마루로 시공하고, 방은 황토 미장 위에 종이장판으로 시공했다. 이밖에 단열재는 우레탄폼, 창호는 미국산 시스템 창호,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 그리고 식수는 지하수를 사용한다.
조경에도 신경을 써 집 주변으로 잔디를 약 1백평 가량 조성했는데 잔디값과 인건비를 포함해 대략 2백40만원 가량이 소요됐다. 건축비는 평당 2백70만원 가량이 소요됐으나 심야전기보일러와 데크비용이 포함된 금액이서 실제 순수 건축비는 이보다 조금 낮다.田
■ 글·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입석2리
부지면적 : 준농림 임야 5백평(이중 건축후 5백평 모두 대지 전용)
부지구입년도: 99년 5월
부지구입금액: 평당 15만원
건물형태: 2층 스틸하우스
구조체: 아연도금 강관
건축면적: 47평(1층 36평, 2층 11평)
공사기간: 2000년 7월 말~ 10월초 완공(10월 말 입주)
데크면적: 11평(햄퍼 방부목)
실내구조: 1층- 방3, 거실,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2층- 방 1, 거실, 화장실
벽체구조: 벽체 양쪽에 OSB 합판
단열재: 우레탄폼
내벽마감: 석고보드 위에 수성페인트(거실 및 주방 벽체)
외부마감: 시멘트사이딩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바닥재: 체리 온돌마루(거실 및 주방) 황토 미장 위에 종이장판(방)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조경여부: 1백평 규모 잔디 조성(잔디 값 및 인건비 포함 2백40만원 소요)
건축비: 평당 2백70만원(심야전기보일러, 데크 비용 포함)
■설계 및 시공: AN홈스틸 02-2202-7852
작은 인터뷰/ 장희정 AN홈스틸 부장
실용성 겸비, 산뜻하고 깔끔한 분위기 연출에 초점
외부에선 진회색과 연회색, 그리고 흰색을 적절히 조화시켜 깔끔하고 담박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내부도 미색과 체리톤이 어우러져 쉽게 식상하지 않도록 했다. 구조적으로 보다 많은 채광을 위해 창문을 많이 설치했으며 건축주의 건강을 위해 방바닥은 황토로 미장했다.
지붕의 형태는 모임을 위주로 하되 거실 전면의 박공지붕과 2층 복도를 까치지붕으로 설계하여 단순함을 해소시켰으며, 외부 데크의 일부도 지붕을 만들어 전체지붕의 웅장함을 배가시켰다.
난방비 절약을 위해 특히 단열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단열재로는 우레탄폼이 꼼꼼히 충진됐다. 일부 바닥은 구들로 시공하고 보조 난방으로는 분위기 연출을 겸해 거실 한쪽에 벽난로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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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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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라산 중턱에 지은 전망 좋은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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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집
송라산 중턱에 지은 전망 좋은 전원주택
부지를 마련했으니 이제는 집 지을 차례. 건축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건축업자 선정이었다. 오랫동안 부지를 알아보러 다니며 공부를 하다보니 건축업자를 잘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경담씨 부부의 선정 기준은 기술적 요인보다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한 업체’냐는 점이었는데, 이는 공사비를 부풀리거나 추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 등 여러 가지 불미스런 사례들을 적잖게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김경담 여래심씨 부부는 집터를 마련하기 위해 당초 몇 가지 기준을 세웠었는데 첫째가 서울과 1시간 거리 이내일 것, 두 번째가 마을과 인접할 것, 그리고 세 번째가 공기 좋고 물 좋은 숲 속일 것 등이다. 이런 기준을 세우다 보니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부지를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설령 그런 부지가 나왔다 하더라도 땅값이 너무 비싸 포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의 집터는 1천평 규모의 준농림 임야로 96년 당시 평당 20만원씩 주고 구입했다. 천마산 줄기인 송라산 중턱에 자리 잡아 번잡하지 않고, 앞으로는 멀리 달기산 노적봉이 한 눈에 들어와 전망도 꽤 좋은 편이다. 지금은 이 일대의 지가가 50만원을 넘나든다니 투자가치 면에서도 성공적인 선택이 됐다.
부지를 마련했으니 이제는 집 지을 차례. 건축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건축업자 선정이었다. 오랫동안 부지를 알아보러 다니며 공부를 하다보니 건축업자를 잘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경담씨 부부의 선정 기준은 기술적 요인보다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한 업체’냐는 점이었는데, 이는 공사비를 부풀리거나 추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 등 여러 가지 불미스런 사례들을 적잖게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무와 집’ 문병화 사장을 만난 것은 10여년 전 전원주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도 알아보고, 건축현장도 가보게 되었는데 설악산을 다녀오던 중 오대산 근처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있는 문사장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후 여러 건축 업체를 방문하고, 견적도 받아 비교해 보았지만 당초 세웠던 선정 기준에 문사장 만큼 부합되는 사람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결국 나무와 집에 건축을 의뢰했다. 연분도 없는 유명 뉴스 진행자가 그에게 건축을 의뢰했다는 점도 간접적으로 그를 신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건축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9월. 먼저 벌목 허가를 받아 나무를 베어 내고 집터를 다졌는데 경사가 심한 편이어서 토목공사에 적잖은 애로가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과정에선 큰 문제가 없어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고, 착공 두 달 만인 10월 말경 연면적 44평 규모의 2층 목조주택을 완성할 수 있었다.
구조체는 2×4 스프러스가 사용됐고, 벽체는 양쪽으로 OSB 합판을 댄 뒤, 내부는 석고보드 위에 핸디코트, 황토핸디, 루버 등으로 각각 마감했다. 외부마감은 비닐사이딩이며 지붕은 아스팔트싱글.
면적은 1층이 32평, 2층이 12평으로 실내구조는 1층에 방 2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보일러실이 있고, 2층에도 방 2개와 거실, 화장실 그리고 전면을 조망할 수 있도록 작은 데크가 있다.
건축비는 평당 2백80만원이 소요됐다. 그러나 이 건축비 안에는 토목공사 비용을 비롯해 심야전기보일러, 지하수, 붙박이장 등 기타 부가 항목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어서 실제 순수 건축비는 이 보다 훨씬 낮아진다.
건축주 김경담 씨는 “집을 완성하고 서로 등 돌리는 경우도 있다는데 우리는 매우 흡족한 경우였다”며 “업체에서 단순한 건축의도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 여건과 여러 가지 주변상황을 감안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건축 계획을 세우려는 노력이 엿보여 마음이 끌렸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선, 성실성과 신뢰도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하고 그 다음이 기술적인 능력, 그 다음이 재무 건실도”라며 이는 건축업체와 충분한 상담을 거치거나 기존에 시공한 주택을 여러 곳 방문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파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田
■ 글·사진 류재청
작은 인터뷰/문병화 ‘나무와 집’ 대표
경사도 활용해 조망권 유리하도록 설계한 언덕 위 2층집
건축 자체보다 기초 작업이 더 어려웠는데 45도 경사진 송라산 중턱에 집을 짓는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건축 설계상 집의 위치를 동남향이 되도록 기획하고 먼저 전용 받은 2백평에 대해 벌목허가를 받아 작업에 들어갔다.
경사가 심해 벌목작업이나 토목공사가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다행히 이 곳에서 나온 자연석을 이용할 수 있어 토목비용은 예상보다 적게 들었다. 기초공사 과정에서도 펌프카와 레미콘 차량이 올라 갈 수 없어 파이프를 연결해 기초공사를 마쳐야하는 난공사였다.
건축에 있어서는 실내의 경우 석고보드만으로 시공하는 기존공법과 달리 먼저 OSB 합판으로 전체를 시공한 뒤 다시 그 위에 석고보드를 대고 최종 마감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 집은 특히 방수와 천정 단열에 많은 신경을 썼고, 문이나 기타 소품들도 ‘나무와 집’ 자체 공장에서 직접 제작해 건축주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는 한편 가격도 절감할 수 있었다.
구조적으로는 지대가 높고 경사진 곳인 만큼 전면의 조망이 유리하도록 설계했고, 주방과 거실을 각각 좌우측에 분리 배치한 뒤 복도식으로 연결, 서로의 용도가 분명하도록 했다.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부지면적 : 준농림 임야 1천평(이중 건축후 2백평 대지 전용)
부지구입년도: 96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20만원(현재는 이 주변이 50만원 선에 거래)
건물형태: 2층 목조주택
구조체: 2X6 스프러스
건축면적: 44평(1층 32평, 2층 12평)
공사기간: 2000년 9월 중순~ 10월말 완공(11월 초 입주)
데크면적: 25평(국산 낙엽송에 오일스테인 도포)
실내구조: 1층- 방2, 거실,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보일러실, 창고(층계 밑)
2층- 방 2, 거실, 화장실, 데크
벽체구조: 벽체 양쪽에 OSB 합판
단열재:스티로폼 80mm
내벽마감: 석고보드, 미송 루버(거실천장, 부엌천장), 황토핸디(방), 핸티 코트(거실 벽)
외부마감: 비닐사이딩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지하수
건축비: 평당 2백80만원
(토목공사 비용, 심야전기보일러, 지하수 및 붙박이장까지 모두 포함된 금액)
■ 설계 및 시공: 나무와 집 031-593-5465
홈페이지 www.iwoodhou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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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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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산 벽돌로 치장한 56평 2층 목구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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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가 직접 쓴 건축일기 1
호주산 벽돌로 치장한 56평 2층 목구조주택
용인시 양지면은 전원주택단지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 곳이다. 영동고속도로 양지 나들목을 중심으로 반경 2㎞ 이내에서 현재 분양 중인 전원주택단지만도 20여 곳에 이른다. 수도권 어느 지역보다도 공장이나 축사 등 환경유해시설이 없고 양지리조트, 지산리조트 등 레저 및 위락시설이 많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조은직 김경애씨 부부가 이곳에 전원주택을 지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조은직 씨댁은 양지나들목에서 1㎞도 안되는 양지면 제일리에 있지만 주변에 산들이 감싸고 있어 고속도로 소음이 전혀 없다. 조은직씨가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 메모한 건축일기를 정리해 실었다.
지난해 초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제일리 푸른솔전원마을 부지 2백평을 평당 70만원에 구입한 후, 어떤 전원주택을 지을 것인가 고민하며 서울, 인천 등지의 여러 시공업체를 만나 보았다. 그러나 업체 규모나 그들이 시공하는 주택의 종류 등이 비슷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목조주택을 짓기로 내심 결정을 하고는 있었지만 목조주택이 가벼워 보여 그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해결책을 제시하는 업체가 없었다.
평당 350만원에 시공 계약
그러나 이런 고민은 (주)좋은집을 방문하면서 해결되었다. 업체측에선 목구조에 호주산 벽돌로 마감한 서산의 주택을 보여 주었다. 우리의 고민은 업체측에서 제시한 외벽 일부를 벽돌로 마감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결국 부분적으로 호주산 벽돌로 마감하기로 결정하고 (주)좋은집과 2000년 8월 10일 시공계약을 맺었다.
내가 좋은집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주)좋은집은 현장에서 불과 1㎞의 거리에 전원주택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어 시공 때 현장관리는 물론 시공 후 사후 관리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층 구조로 1층 42평, 2층 14.4평으로 총 56.4평 규모의 목조주택을 평당 3백50만원에 짓는 조건이었다.
설계 및 토공사
설계할 때 중점을 둔 것은 가족 수가 3명뿐이라 방의 수를 줄이고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다. ㄱ자형 평면을 구성하고 1층에는 주방과 식당, 거실, 침실을 넣었다. 2층에는 자녀방과 손님방을 들여 1, 2층 모두 3개의 방을 두기로 했다. 시공사는 2000년 8월 24일 설계에 의해 모형제작을 시작하여 나와 만나 몇번의 수정작업을 거쳐, 26일 모형을 완성한 후 자재 물량 산출을 끝내고 곧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일의 시작은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휘장막을 치는 것 부터였다. 8월 27일 규준틀을 설치한 후 건물을 앉힐 자리를 잡고 터파기에 들어갔다. 건물 위치를 잡을 때 거실과 주 침실은 남향으로, 주방과 식당은 동향으로 앉히기로 했다. 시공사는 부지의 흙이 마사토라 배수가 잘 되고 다짐도 좋아 작업하기 매우 편하다고 했다.
기초 콘크리트 공사
9월 1일부터 3일까지 버림콘크리트를 치고 기초바닥거푸집 설치 및 철근 배근 작업을 하였다. 4일엔 바닥과 기초벽 콘크리트를 타설한 후 5일 거푸집 해체, 6일 조적작업, 7일 되메우기, 8일 철근배근 작업에 들어갔다. 9일엔 철근배근 및 콘크리트 타설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으나 비가 오는 관계로 작업이 연기되어 결국 15일에 기초 콘크리트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기초콘크리트의 자재 사양은 버림콘크리트는 25-180-12이었고, 기초 철근은 주근 D-16@300, 부근 D-10@300이었다. 기초 콘크리트는 25-210-12였으며 기초 옹벽 철근은 주근 D-13@300(복배근), 부근 D-10@300(복배근)이었다. 이밖에 1층 바닥 슬라브 철근은 주근이 D-13@300(복배근), 부근이 D-10@300(복배근)이었으며 1층 바닥 슬라브 콘크리트는 25-210-12였다.
목조 프레임공사
9월 19일: 목구조 작업의 편리를 위해 기초 콘크리트 작업으로 어지러웠던 주변을 정리했다.
9월 20일: 목자재를 반입하고 전기 신청을 위해 서류를 접수했다.
9월 21일: 머드실(mudsill)작업과 헤더(header)제작을 했다. 머드실은 바닥의 방습과 구조목을 세우기 위해 바닥에 까는 나무로 외벽부분은 방부목 CCA2×6, 내벽은 방부목 CCA2×4를 사용했다.
9월 22일: 1층 프레임작업을 시작하여 24일 1층 내벽, 26일부터 27일까지 2층 바닥 조이스트(Joist)를 설치했다.
9월 28일: 2층 벽 프레임 작업 등을 거쳐 29일 2층 레벨링, 조이스트 작업을 마무리 했다.
9월 30일: 래프터(rafter, 지붕서까래) 작업을 시작했으나 비가와 작업이 지연되어 10월 4일 래프터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내외부 마감공사
10월 4일: 래프터 작업을 마감하고 창호자재를 반입했다.
10월 5일: 지붕 합판공사를 시작하여 6일 인슐레이션(단열재), OSB공사를 했다.
10월 7일: 전기 및 설비 공사를 시작하였다.
10월 9일: 지붕 싱글을 덮고 석고보드를 입고했다. 방수를 위해 타이벡을 시공했다.
10월 10~12일: 창문을 달고 전기 입선 및 설비배관를 했다. 또 지붕 싱글 공사를 마무리했다.
내장공사를 시작 인슐레이션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홍송문틀을 설치했고 인슐레이션 작업도 마무리 짓고 내부 목공사에 들어갔다.
10월 13~19일: 내부 석고보드 작업과 외부 사이딩 작업을 시작했다. 석고보드는 두겹으로 하였고 외부는 하디사이딩과 호주산 벽돌을 부분적으로 붙여 마감했다. 벽돌은 900㎜ 브릭 타이를 설치했다.
10월 23일: 비계를 철거하고 바닥 단열을 위해 스티로폼을 설치했다.
10월 24~25일: 데크를 설치하고 미장공사를 시작했다. 바닥미장은 1:3 모르타르로 하였다. 바닥미장은 특별히 나중에 마루시공에 영향을 끼치므로 수평에 신경을 써서 시공했다.
10월 27일: 바닥미장 건조후 홍송원목 Jamb Board와 Casing 설치를 하였다.
10월 30일: 도어 설치작업은 Flash Door 위 홍송무늬목을 입혀서 설치하였다.
11월 3일: 계단 설치공사를 하였는데 집성계단판과 핸드레일을 설치하였다.
11월 6일: 욕실 및 다용도실의 벽과 바닥에 우레탄 도막방수 작업을 2차례 실시했다.
시공사측에선 이때 2층 욕실의 경우 담수테스트를 하여야 하며 방수하는 벽의 높이는 최소 1.5m정도로 하여야 한다고 했다.
설비공사
11월 10~12일: 욕실, 다용도실, 주방, 현관에 타일시공을 하였다.
11월 13~23일: 도장작업을 하였다. 이때 문과 문틀, 걸레받이의 색깔을 결정하고 여러번의 샌딩작업을 통해 작업하였으며 벽체 핸디코트 작업 후 비닐텍스로 마무리하였다.
11월25일: 외부에 조적용 발수제를 도포하였다.
11월 26일: 도배 및 장판을 시공하였다. 이때는 내장재의 보양에 많은 신경을 썼다.
11월 28~30일: 1층 거실과 안방, 주방, 식당, 2층 계단실 등에 이건마루로 시공하였다. 시공면적이 넓어 시간이 많이 걸린 편이었다.
12월 1일: 위생기구는 공급업체에 크기 및 색상을 결정한 후 일주일전쯤 발주를 내놓은 상태였고, 수전금구류와 함께 욕실 및 다용도실작업을 했다. 이때 바디샤워기 같은 위생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기 때문에 미리 설비업체와 의논하여 배관에 신경을 썼다.
12월 3일: 조명기구를 논현동 자재백화점에서 구입하여 설치했다. 이때 콘센트와 스위치 등도 같이 작업하였다.
12월 5일: 주방가구 설치는 디자인과 색상, 설치 일정 등을 시공업체 협의, 조언을 얻었으며 주방가구는 한샘에서 제작 설치하였다.
12월 7일: 모든 작업을 정리하고 준공검사를 위한 청소를 하였다.
12월 8일: 마루작업 후 샌딩작업과 광택을 내기 위한 왁스작업을 했다. 실질적인 모든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준공검사 및 등기
12월 10일: 새 집에 처음 입주한 날로 바로 준공검사 준비에 들어갔다.
12월 20일: 건축물대장 기재신청서를 작성한 후 현황측량성과도, 건축물현황도(배치도, 1층평면도, 2층평면도, 지붕평면도), 농지전용허가증, 오수처리시설 준공검사증 등을 첨부하여 양지면사무소에 준공검사 신청을 하였다.
12월 26일: 준공검사를 받은 뒤 법무사를 통해 보존등기 신청을 하였다.田
■ 글 조은직/사진 류재청
인터뷰/김명수 (주)좋은집 과장(현장소장)
일조권, 조망권 고려해 설계·시공한집
단지내 대부분의 주택이 지형상 동향인데 반해 조은직씨 댁은 남향이 되도록 배치했다. 집이 ‘ㄱ자’ 형태 이기 때문에 특히 1층 거실과 안방에서 남향 햇살을 골고루 받을 수 있고, 멀리 전원풍경도 자연스럽게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2층은 단지내 질서에 맞추어 동향이 되도록 했다.
외부에서는 목조주택의 단조로움과 가벼움을 배제하기 위해 일부 호주산 벽돌로 마감했으며 데크도 기존의 단조로운 형태에서 탈피, 파고라 형태가 되도록 했다. 마당과 건물 사이엔 작은 연못을 만들고 다리를 놓았다. 내부에선 거실 및 주방, 복도의 실내를 핸디코트 위에 VP마감 하고, 바닥은 어두운 계통의 월넛 원목 마루를 깔아 안정되고 깔끔한 실내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했다. 외벽 사이딩은 시다 쉐이크(shake) 하디사이딩이다.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제일리
구조: 외부 2×6, 내부 2×4 스터드 공법
외벽: 호주산 벽돌 및 쉐이크 문양의 하디 사이딩
지붕: 이중 그림자 무늬 아스팔트 싱글
외부창: 미국 시스템 창호(일반창), 이건창호(파티오 도어)
내부도어: 플러쉬 도어 위 홍송 무늬목
주방가구: 원목주방가구(인조 대리석 상판)
벽난로: 매립형 이중 벽난로
수납가구: 신발장, 붙박이장(1실), 주인침실, 드레스룸, 위생장, 다리미판
위생기구: 오닉스카운터, 위생도기(KS 대림)
조명기구: 고급형
현관키: 미제 현관 도어록
거실: 바닥(원목온돌마루), 벽(핸디코트 위 비닐페인트), 천장(원목루바)
식당 및 주방: 바닥(원목온돌마루), 벽(실크벽지 위 비닐페인트), 천장(비닐페인트)
복도: 바닥(원목온돌마루), 벽(실크벽지 또는 핸디코트 위 비닐페인트), 천장(비닐페인트)
주인욕실: 고급타일(스페인산) 및 루바
일반욕실: 고급타일(국산) 및 루바, 비닐페인트
현관: 인조대리석, 핸디코트, 원목루바
다용도실: 고급타일(국산) 및 비닐페인트
주인침실: 바닥(원목온돌마루), 벽 및 천장(실크벽지)
일반침실: 바닥(비닐장판), 벽 및 천장(실크벽지)
■ 설계 및 시공: (주)좋은집 031-338-6633 www.joenz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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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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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35평 단층 목구조 황토벽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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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가 직접 쓴 건축일기 2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35평 단층 목구조 황토벽돌집
드디어 터파기가 시작되었다. 보일러 난방과 구들방이 결합되었기에 기초는 콘크리트 기초 방식을 채택했다. 특이한 점은 일반 주택처럼 줄기초 방식으로 하지 않고, 이중기초(확대기초)를 한다는 점이었다. 기초에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추석전에 기초공사가 완료되어 연휴 기간동안 자연적으로 양생이 되었다고 한다. 시기가 잘 맞았다. 다른 현장의 일을 끝내고 목수들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뼈대(골조)가 세워졌다.
박광열 이영미씨 댁을 찾아간 날은 폭설이 내려 설경이 장관을 이루던 날이었다. 이 집은 지난해 여름부터 공사에 들어가 지난 12월 완공한 35평 단층 목구조 흙집으로 설경에서 더욱 빛나 보였다. 건축주 박광열씨는 건축 계획에서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느낌을 그때그때 상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박광열씨의 건축일기를 정리해 실었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 조금은 빠를지 모른다. 아직도 도시에서 해야할 일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눈을 잠시 돌려보니 각박한 도시의 숨막힐듯한 일상이 지겨웠다. 특히 아내는 시골에 대한 그림움이 사무쳤다. 땀흘리며 농사를 지으면 모든 병이 다 나을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터를 찾았다 - 2000년 4월
일요일이나 연휴가 끼면 어김없이 아내와 나는 집터와 농사지을 땅을 찾아 다녔다. 아직은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출퇴근이 가능한 서울 가까이길 바랬다. 1년여, 이제는 그만 포기하자고 지쳐 떨어졌을 때 우리가 찾는 땅이 나왔다. 땅은 ‘임자가 따로 있다’고 했던가? 용인시 백암 자연부락의 초입에 자리한 남향받이 터는 일반 전원주택지처럼 자연 경관이 빼어나진 않았지만 농사 지으며 살기엔 편안한 자리 같았다.
운명적 만남 - 2000년 5월
우선 땅을 계약해 놓았으니 집을 지을 건축 회사를 정하는 일이 남았다. 시골에 내려올 생각을 하며 땅을 구할때부터 흙집을 짓자고 정해논 터라 다른 고민은 없었지만 흙집 전문 시공업체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며가며 들려본 흙집들은 대부분 건축주 직영으로 지은 집이었고, 토속적인 향수는 있으나 실용적이지는 못했다. 전원주택 잡지를 뒤지면서 소개된 흙집들을 찾아 다니던 끝에 이제는 포기하고 일반 콘크리트 집을 지어야 할까보다고 생각하고 있던 5월 초파일 늦은 오후였다.
행인 흙건축이 시공 분양중인 솟대전원마을의 흙집을 보았다. 첫 느낌이 좋았다. 흙집이면서도 실용적이고 소박한 멋을 느끼게 했다. 상담중 흙집의 구조 원리와 자재선택, 시공 방식에 대한 자신있는 태도에 더 큰 믿음이 갔다. 이 운명적 만남이 오늘의 집을 있게 하였다.
가슴 철렁한 농지전용허가 - 2000년 6월
집을 짓기 위해선 길이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구옥이 있는 터까지를 함께 매입했다. 매입한 농지의 맨 뒷부분에 집을 짓고자 했던 것이다. 집 앞에 텃밭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는 매입한 땅까지 연결되는 약 30m의 비포장 현황도로 였다. 구옥이 있으니 그 앞까지 콘크리트 포장을 하면 현황도로로 인정받고 그 나머지만 농지전용 허가를 들어 가자는게 주변 의견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지목이 농지일 경우 콘크리트 포장을 하였어도 현황도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입로 초입만 현황도로 포장을 하고 농지전용허가를 신청하였는데 이것도 보완이 나왔다. 토지사용 승낙서를 첨부하라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도 진입도로 부분의 소유자에게 토지사용 승낙을 받아 문제는 없었지만 시기마다 해당 관청의 허가 조건이 달라져 낭패를 당할 뻔 하였다.
건축설계, 그리고 공사계약 - 2000년 7월
농지전용 허가가 나기까지 지루한 한달이 지나갔다. 내가 한 일이란 별로 없는데 벌써 진이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 집의 밑그림이 만들어지고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 오고가자 긴장과 함께 힘이 솟았다. 아내는 군불때는 구들방을 본채에 넣기를 원했다. 안방, 서재(작은방), 구들방+정자, 남향으로 열린 거실의 밑그림이 완성되고 두 번의 보완을 거쳐 설계가 확정되었다.
한옥식 목구조에 황토벽돌의 벽체, 황토미장 등 기본적인 사양이 확정되고, 지붕재에 대한 고민이 남았다. 지붕은 솟대전원마을의 세련된 아스팔트 싱글도 괜찮아 처음 설계는 싱글 지붕이었지만 주변의 의견을 들어 계약 당시 다시 기와지붕으로 변경하였다. 황토 기와집 35평, 별도의 창고 10평(일반 벽돌)을 포함하여 행인 흙건축과 2000년 7월 말 공사 계약을 체결하였다.
택지 내 수맥, 근심거리가 되다 - 2000년 8월
경계 말뚝을 박고, 택지의 터를 만들즈음 친척 한분이 택지 중앙으로 수맥이 흐른다는 말씀을 하셨다. 집안에 수맥이 지나면 우환이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은터라 아내의 근심이 커졌다. 시공사가 수맥을 진단한 결과 구들방이 배치된 자리로 넓게 수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내의 근심은 더 커졌다. 설계를 변경할까? 아니면 수맥 차단의 조치를 해야하나 몇일 몇날을 고민했는데 ...
시공사는 담담했다. 지하수를 파야 하는데 건축물 옆 수맥이 지나가는 자리에 대공을 파면 수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사족으로 달면 ‘마음의 병’이니 게의치 말라는게 시공사의 얘기였다. 하여튼 결과는 시공사의 말처럼 되었다. 수맥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근심을 덜었다.
장마 지나고 골조가 올라가다 - 2000년 9월
여름 장마가 계속되었고, 시공사가 다른 곳에서 짓고 있는 일이 길어져서 착공 일자가 약 보름정도 늦어졌다. 8월 16일 드디어 터파기가 시작되었다. 보일러 난방과 구들방이 결합되었기에 기초는 콘크리트 기초 방식을 채택했다. 특이한 점은 일반 주택처럼 줄기초 방식으로 하지 않고, 이중기초 (확대기초)를 한다는 점이었다. 기초에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추석전에 기초공사가 완료되어 연휴 기간동안 자연적으로 양생이 되었다고 한다. 시기가 잘 맞았다. 다른 현장의 일을 끝내고 목수들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뼈대(골조)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계획에 없었으나 나무 기둥이 설 자리에 간이 주춧돌이 놓여졌다. 주춧돌을 고정하고 철근 앙카로 목기둥과 딱 맞추어 내는데 역시 기술자들은 다르구나 하는 찬사가 흘러나왔다. 정통 한옥의 가구식 골조방식은 아니었지만 암·수 홈을 파 기둥과 보가 결합되어 골조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집의 뼈대가 튼실함을 보여주었다.
꿈을 꾸듯 드러낸 지붕선 - 2000년 10월
일이 바빠 주말에만 현장을 나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주중에 현장을 다녀온 아내는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연발한다. 이제 지붕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가는 모양인데 집이 너무 웅장해 보여 동네분들에게 위화감을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처음 솟대전원마을에서 본 지붕선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지붕 소재가 기와로 바뀌면서 서까래와 부연으로 지붕의 두께감이 살아났고, 처마의 대나무 사이딩이 깔끔한 루바로 바뀜으로써 고급화된 느낌을 주었다. 믿음은 준만큼 돌아오는 것일까? 시공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뿐인데, 처음 예상을 넘어 꿈을 꾸듯 집의 형체가 만들어져 갔다.
황토로 속단장을 하다 - 2000년 10월 중순∼11월 말
40여일에 걸친 목수일이 끝나자 바로 기와공사가 이어졌다. 예전처럼 흙으로 채워 기와를 얹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상을 걸고 못으로 기와를 고정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은 한달여의 기간이 걸리긴 했지만 순식간에 지나갔다. 일주일 만에 현장을 가보면 흙벽돌 쌓기가 끝나 있었고, 또 일주일이 지나 가보면 내부의 천장과 미장공사가 끝나 있었다. 또 일주일이 지나 가보면 구들방이 놓여지고 황토방까지 끝나 있었다.
그 사이 사이 정화조 공사와 택지 경계로 자연석 쌓기가 진행되었고, 어느새 굴뚝과 아궁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기초 콘크리트엔 인조석으로 마감이 되었다. 창 틀만 있던 자리에도 창문들이 달리고 화장실도 큼직한 타일로 마감이 되었다. 하나의 일이 끝나고 그 다음 일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한지의 은은함과 창살로 비치는 햇빛 - 2000년 11월 말
기본 일은 다 끝난 듯 한데 왠지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사 날짜도 잡혔는데 조금은 마음이 불안했다. 그런데 11월 마지막주 일요일, 다른 느낌의 집을 만났다. 은은한 한지가 차분한 실내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목등으로 된 전등이 집안 분위기를 바꿨다. 온돌마루를 깐 거실엔 하자의 우려가 있어 시공사가 황토미장을 피하였으나 아내가 고집을 부려 황토로 마감했다.
대신 접착식 온돌마루가 아닌 강화마루로 마감해 하자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준건 조선살에 한지 아크릴이 들어간 창이었다. 한옥식의 거실창에 은은히 감도는 햇살은 드디어 집이 완성되었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이사 첫날밤을 보내다 - 2000년 12월 6일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사 날짜를 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공사 막바지에 그대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이 들어오는 날 대문이 달렸다. 옛 대문을 응용하여 장식까지 얹은 대문은 집의 완성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정자와 쪽마루, 구들방과 아궁이, 굴뚝... 그리고 대문,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첫날밤을 보내고 아직 익숙치 않은 생활에 정리되지 않은 주변도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랬던가. 집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가꾸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이제 겨우 터를 잡고 집을 지었을 뿐이지 않는가?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아내와 얼마나 많은 밤을 꿈같이 그림을 그렸던가? 시공사의 고민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지만 집이 완성되어 가자 미쳐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생겨났다. 10평의 창고를 주택 용도로 개조한 결과 이것 저것 수납하고 쌓아둘 창고가 부족했다. 구둘방과 연결된 아궁이 위에 옛날식 다락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장 크다. 연기가 잘 빠지도록 아궁이 주변을 터 놨는데 밤에 군불을 지피자니 너무 추웠다.
임시방편으로 막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내는 다용도실의 용도가 단순한 세탁실 기능만이 아니라 음식물, 과일, 채소를 보관할 수 있는 간이 저장소 역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그 아쉬움은 또 살면서 채워가야 할 나와 아내의 몫일 것이다.
봄이 기다려진다.
이제 봄이오면 조경수와 과실수를 심을 것이다. 친척 아이들은 벌써부터 야단이다. 자기들이 과실수 하나씩을 사와 심는다고.... OK 목장처럼 둘러쳐진 나무 울타리마다 수세미와 박이 열릴 것이다. 나와 아내가 뿌릴 씨앗들이 여름을 나고 가을걷이 할 때 아마 그 기쁨은 더욱 더 크고 빛나지 않겠는가 !田
■ 글 박광열/사진 류재청
인터뷰/방태호 행인흙건축 시공이사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칭찬이다.
집을 지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은지 20여년. 목수·현장소장·시공이사로 살아오는 동안 모처럼 기분좋은 건축주를 만났습니다. 시공사가 먼저 믿음을 주어야 하겠지만 건축주가 보여주는 믿음과 신뢰, 칭찬은 일하는 모든 이들을 신명나게 만듭니다. 지금은 건축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은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휘둘리다 보면 해 놓고도 찜찜한 구석이 많이 남습니다.
집터와 건축물의 향, 구조와 평면배치, 그리고 마감재까지 평당 얼마짜리로 환산되기 어려운 어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따로 따로 떼어 놓으면 좋아 보일지 몰라도 하나로 합쳐지면 어색할 수 있는 것이 집입니다. 집에는 그 집에 맞는 모양과 색깔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건축주들은 기다림에 익숙치 않습니다. 조바심을 내고 주변의 이러저러한 이야기에 솔깃합니다. 그러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지지요. 이것이 계속되다 보면 마지못해서 일하는 꼴이 됩니다.
이 집은 건축주의 마음에 홀려 일하는 사람들의 신명으로 지어졌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내준 믿음, 하자로 트집잡기 보다는 보완하고 가꾸려는 마음 씀씀이, 언제나 일한 사람들에게 차한잔 대접할 수 있는 푸근함... 그래서 집은 건축주와 시공사가 함께 만드는 것이라 했습니다.
■ 건축정보
위치: 용인시 백암면 박곡리
부지면적: 준농림전 8백30평(이중 2백30평 대지 전용)
건축유형: 단층 황토벽돌집
건축구조: 본채 - 목구조 기와지붕 별채 - 조적조 싱글지붕
공사기간: 2000년 8월16일(착공일)~12월 13일(준공일)
건축면적: 본채 35평, 별채 10평
실내구조: 방 3, 주방, 거실, 화장실
식수: 지하수(지하 150m)
난방: 심야전기 보일러
■ 특징
- 구들방과 정자가 본채에 결합된 35평 건축 설계
- 목구조 한옥방식의 기와지붕
- 기초 콘크리트 위 간이 주춧돌 시공
- 보에 매단 한옥식 창호(처짐 방지)
- 서까래·부연 이중처마, 루바 사이딩
- 옛날 대문 시공
■ 공사비 내역
- 진입로 포장 및 구옥 철거: 3백50만원
- 농지전용 토목측량비 및 세금: 8백만원
- 지하수, 부지조성, 석축공사: 1천2백만원
- 본채 건축비: 1억 8백만원(평당 3백10만원)
- 별채 건축비: 1천7백만원(평당 1백70만원)
- 총공사 금액: 1억4천8백5십만원
■ 설계ㆍ시공 : 행인흙건축 (031-335-8133) www.hang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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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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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겪으며 9천만원에 직접 지은 유럽식 2층 조적조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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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가 직접 쓴 건축일기 3
우여곡절 겪으며 9천만원에 직접 지은 유럽식 2층 조적조 주택
지붕만큼은 전문업자에게 맡기자는 결정을 내렸다. 목조주택을 시공한 경험 있는 전문업자라면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서까래의 길이와 절단각도, 연결부분 상세도 등을 매우 세밀하게 도면으로 그려서 보냈고, 이후 곤지암 인근의 전원주택 전문업체 여러 곳에서 다녀갔다. 그들을 만나본 결과 우선 지붕공사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대체로 지붕공사에만 3천만원 정도를 요구했다. 또 다른 경우는 지붕이 너무 복잡해 설계도면은 물론 대들보에 실을 띄워 놓은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업자들도 있었다.
서울에 사는 이재룡씨는 지난해 여주에 있는 동생의 집을 손수 지었다. 현재 법학박사이자 고려대에서 법학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건축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해 온 결과 동생의 집을 직접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건축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완성하기까지 이재룡씨가 직접 체험하고 느낀점을 정리한 건축일기를 실었다.
아름답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리라. 나의 경우는 그런 소망을 내 집이 아닌 동생의 집을 통해 실현해 본 경우다. 누 대째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주택에 대한 애환과 에피소드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이는 작고하신 할아버지께서 마을과 떨어진 산기슭 한적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신 이래로 우리에게 그런 걱정은 애당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님께서는 다시 천혜의 장소에 그럴듯한 집을 지어야겠다는 희망으로 73년 지금의 자리로 이사와 당시로서는 면내 최고 최신의 집을 지으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26년 후인 지난해 그 분의 아들인 내가 다시 낡은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최신 최고의 집을 지었으니 뜻과 정성과 기질이 대물림되는 느낌이다. 이번에 내가 지은 집은 유럽식 고풍스런 분위기의 전원주택으로 순수한 아마추어 정신과 기술로 지어졌다.
건축에 흥미를 갖다
얘기의 시작은 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1년간 유학 가 있던 나는 거기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목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많은 서적과 수 백만원 상당의 공구를 사왔을 정도로 목공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집 짓는 과정을 소개하는 ‘Hotime’ 프로도 무작정 복사해 왔는데 귀국할 때 보니 테잎이 10개가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내 손으로 집을 지으리라는 생각은 해보질 않았다. 우리의 고건축에는 상당한 관심이 있었지만 현대식 목조건축, 특히 직접 집을 짓는 일까지는 관심을 갖지 못했었다. 건축에 직접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건축 설계 프로그램을 입수하고 부터다.
중국의 사회과학원에 1년간 유학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입수한 컴퓨터 프로그램 중 건축설계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공부하다 쉬는 시간에 장난삼아 해보곤 했었는데 컴퓨터상에서 그럴듯하게 집 모양이 갖춰지는 게 흥미로워 무척 재밌어 했던 기억이 있다.
실력 발휘할 기회
여주에 있는 동생 집이 너무 오래돼 새로 지어야할 상황이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적잖은 농촌 가정이 그렇듯 우리 집도 3형제 중 막내가 부모님과 조상을 모시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뻔한 시골 형편상 집을 다시 짓는 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동생은 슬라브식 주택은 짓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그런 집을 짓기에는 가진 돈이 많지 않았다.
그 때 내가 직접 지어 보겠노라고 나섰다. 그러나 손재주가 많아 무엇이든 잘 만들었던 것을 인정했던 식구들이었지만 집을 직접 짓겠다고 나섰을 땐 누구하나 믿지 않았다. 건축에 대한 관심만 많을 뿐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오랫동안 법학박사로 대학에서 강의만 하던 학자였기 때문에 누가 생각해도 무리한 결단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직접 집을 지어 보자고 동생을 설득했고, 동생을 포천에 있는 목조주택학교에 1주일간 입학해 과정을 마치게 했다. 설계는 내가 하더라도 시공에 대해 누군가는 잘 알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해 겨울 나는 방학을 이용해 3개월 내내 설계에 매달렸고, 차츰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나의 감각을 컴퓨터 상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설계도면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동생과 수 없이 만나 최종설계를 확정지었을 때까지만해도 그 설계도면의 집이 그렇게 어려운 시공과정을 거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드디어 시작된 건축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자신 없는 순수 목조주택을 피하고 붉은 벽돌의 조적조에 2층 슬라브 목조지붕을 얹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정신 없이 강의에 동분서주하던 학기 중이라 주말을 이용해 잠시 내려와 기술지도를 할 뿐 함께 달라붙어 매일같이 시공에 참여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동생이 먼저 여러 곳에 자재값을 수소문해 싸고 좋은 자재를 구해 놓고, 인근의 건축 업자들을 불러 기초공사와 벽돌쌓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문제가 발생했다. 건축업자들은 내가 제시한 설계도면에 익숙하지 않았고 인치 (inch)를 mm로 환산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공 후 실측해보면 상당한 오차가 있었다. 사실 순수한 2층이 아니라 간이 2층이었기 때문에 2층의 벽돌쌓기는 섬세한 시공이 요구되었는데 특히 각도와 높이를 미리 알고 있어야 했다. 나는 설계과정에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옛날에 배웠던 수학공식까지 떠올리며 수많은 계산의 반복 끝에 수치를 찾아냈다.
하루는 2층 벽돌을 쌓던중 ‘빨리 와서 지붕 서깨래가 지나가는 실을 띄워달라’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급히 내려와 임시 대들보를 세워놓고 귀서까래를 대신해 실을 띄웠다. 모두들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집의 용마루가 그리도 높냐는 것이었다. 내가 봐도 이해가 안될 정도로 높았다. 그러나 분명 계산대로 된 것이라고 우기며 실에 맞추어 2층 벽돌을 쌓아갔다.
까다로운 지붕 공사
기초공사를 한 후 벽돌 쌓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벽체는 쌓았다 치더라도 그 위에 어떻게 지붕을 얹히는냐가 문제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였다. 건축에 참여했던 업자들도 까다로워 보였던지 그 상태에서 그대로 스라브를 치면 어떻겠냐고 제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지붕만큼은 전문업자에게 맡기자는 결정을 내렸다. 목조주택을 시공한 경험 있는 전문업자라면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서까래의 길이와 절단각도, 연결부분 상세도 등을 매우 세밀하게 도면으로 그려서 보냈고, 이후 곤지암 인근의 전원주택 전문업체 여러 곳에서 다녀갔다.
그들을 만나본 결과 우선 지붕공사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대체로 지붕공사에만 3천만원 정도를 요구했다. 또 다른 경우는 지붕이 너무 복잡해 설계도면은 물론 대들보에 실을 띄워 놓은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업자들도 있었다.
직접 해결하다
동생과 나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쯤 나는 1학기 강의가 끝나 여름방학이 되어 드디어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당초 계획대로 직접 부딪쳐 보기로 했다. 동생과 곤지암 목조건축 자재 창고에서 만나 상세하게 뽑은 견적서 대로 자재를 구입해 싣고 내려와 곧바로 지붕공사를 시작했다. 이때 미국에서 사온 목공기계가 유감 없이 사용됐다.
여러 식구들의 우려 속에 나와 동생, 매제 그리고 동네 청년 한 명이 함께 지붕 공사에 달려들었다. 비록 내가 설계를 했다고는 하나 시공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귀서까래의 각도를 계산하는데만 한나절을 소비했다. 낮에는 작업하고 밤에는 동생이 목조건축학교에서 가져온 교재를 놓고 연구하는 정신 없는 일과가 계속되었다.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팔각형의 지붕공사였다. 못하나 쓰지 않고 중심동자기둥에 6개의 서까래를 물리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처음에는 천장을 노출시키지 않는 설계를 했는데 동생이 서까래가 보이면 좋겠다는 말에 설계가 바뀌게 되었고 다시 복잡한 수학계산과 물리법칙이 동원되었다.
유럽의 일반적인 건축양식
공사라는 것이 다 그런 건지 공사가 진행되면서 점점 새로운 것, 좋은 것이 요구되었다. 현관입구의 포치(Porch)도 그런 경우인데 애당초 포치는 설계에 없었다. 나중에 내가 한가할 때 해보자고 했던 부분이었으나 난해한 팔각형 지붕이 멋들어지게 완성되자 동생이 지금 안하면 언제 다시 할 수 있겠냐며 그냥 해보자는 제의를 했다.
그날 밤부터 설계가 시작되었다. 이미 전문가(?)가 된 나는 하룻밤사이에 설계를 마치고 바로 포치 공사에 들어갔다. 기둥을 방부목으로 깎아 사용했고 추춧돌을 인근 석재공장에서 주워다 직접 다듬었다. 한껏 멋을 내느라 아치식으로 했다. 벽체에 못을 박을 수가 없어 순전히 지붕의 서까래에 의존해 힘을 받도록 했으며 하중과 뒤틀림이 방지되도록 하다보니 내부구조가 꽤 복잡해졌다. 이밖에 내부 인테리어는 전문 목수에게 부탁했는데 예상 밖으로 이 부분에서 많은 돈이 들어갔다.
한 번은 지붕의 단열문제로 고민하다 동생이 수학했던 포천의 목조주택학교로 문의 해보게 되었다. 얘기 끝에 밸리(지붕골) 얘기가 나오자 교장선생님의 말이 “정말 밸리가 있는 집을 지었느냐”고 의아해 했다고 한다. 이 집은 밸리가 무려 10곳이나 되어 표현 가능한 지붕형태가 모두 동원된 주택(박공지붕과 모임지붕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이 되었다.
나중에 독일에 유학하고 돌아온 동료들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이 처럼 벽돌과 2층 콘크리트 슬라브 그리고 목조지붕이 결합된 건축양식이 유럽에서는 일반화된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의 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총 9천만원에 지은 집
모두들 이 집을 보면서 궁금해하는 것이 ‘도대체 얼마가 들었는가’이다. 계산을 뽑지 못해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설계비와 기술 시공비를 제외하고 대략 순수 자재값과 간단한 인건비만을 포함해 총 9천만원 정도 들었다. 그런 질문엔 으레 내가 다시 ‘얼마가 들었을 것 같냐’며 반문을 하는데 대개는 평당 3백만원 정도 들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 완성했지만 아직까지 생활하는데엔 별 문제가 없다. 나는 집 짓는 과정을 통해 역시 교과서대로 정석에 맞게 짓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번 건축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틈나는 대로 주변에 건축관련 자문도 해주며 실제로 간단한 농가주택 시공도 기회가 오면 해볼 생각이다. 아울러 건축과 관련해 누구든 문의(016-373-5004, 메일 jairyong@yahoo.com) 하면 나의 경험을 모두 나눠줄 생각이다.田
■ 글 이재룡/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복대리
부지면적: 대지 3백80평
건물형태: 유럽식 2층 조적조
건축면적: 64.9평(지하 10평, 1층 39.5평, 2층 15.4평)
공사기간: 99년 5월~10월
실내구조: 1층: 방 2, 거실, 주방, 세탁실, 다용도실, 화장실 3개, 벽난로
2층: 방 3개, 화장실 1개
벽체구조: 시멘트 벽돌
단열재: 스티로폼100mm(벽체), 그라스울(천장)
내벽마감: 시멘트 미장후 벽지, 루버(거실 천장)
외부마감: 붉은 벽돌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바닥재: 비닐장판
난방형태: 심야전기보일러
건축비: 총 9천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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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9